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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 망명 한·미간 묘한 기류

    ◎미 자국경유 제안… 정부선 소극적 반응/정부,중국입장 고려 유럽국 경유 희망 『미국이 뭐하러 끼어듭니까』 지난 12일 황장엽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가 주 중국 한국대사관 영사부에 망명을 신청한 이후 유종하장관을 포함한 외무부의 모든 당국자들은 이번 사건 해결과 관련한 미국의 역할을 묻는 질문에 한결같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미국의 역할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은 우선 황비서 신병 인도문제를 두고 협상을 벌여야 하는 중국이 미국의 개입을 바라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중국이 한국대사관 영사부에 병력을 배치하고 있는 것은 북한의 테러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영사부 출입자를 일일이 감시할 목적도 있는 것이라고 한 당국자는 말했다. 이와함께 황비서의 망명요청이후 미국의 중앙정보국(CIA)관계자가 면담을 했다거나,미국이 황비서의 신병을 미국측에 넘겨주도록 한국정부에 요청했다는 보도가 국내 일부 언론과 서울 소식통을 인용한 일본 언론에 계속 터져나오는데 대해 당국자들은 매우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정부가 공식적으로 부인하는 상황에서도 그런 류의 보도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정부 당국자는 『누군가 훼방을 놓으려는게 아닌가 의심스럽다』는 말까지 할 정도다. 김일성 김정일 부자에 관한 엄청난 정보를 간직한 신상옥·최은희 부부를 미국으로 넘겨줄 수 밖에 없었던 기억도 정부로서는 돌이키기 싫은 것 같다.이때문에 정부는 오는 22일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이 한국을 방문한뒤 일본을 거쳐 24일 중국을 방문하는 일정에 대해서도 큰 비중을 두지 않고 있다.유장관은 올브라이트 장관과의 회담에서도 『지나가는 말 정도로만 황비서 문제를 얘기할 것』이라고 당국자는 말했다.
  • “납치 주장 실익없다” 판단한듯/북 황 망명 허용시사 배경

    ◎북 국내 소문 확산땐 주민 동요 우려/중·미에 식량지원 대가요구 가능성 북한 외교부 대변인이 17일 조선중앙통신과의 회견에서 「황장엽 비서가 망명을 추구했다면 갈테면 가라」는 식으로 망명사실을 처음으로 시인했다는 것은 중요한 북한의 태도변화로 보여진다.북한이 지난 12일 황비서의 망명요청후 반나절도 지나기 전에 「납치극」이라고 주장하며 북경에 특공대를 대거 급파하며 위협을 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반응이다. 이는 결국 북한이 납치극을 주장해도 국제적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없고 경제난 해결 등에 실익이 없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또 북한내부에서도 이 사실이 확산될 것을 우려,서둘러 국면전환에 나선것으로 풀이된다.정부당국과 북한문제 전문가들도 북한이 황비서 사건을 조속히 마무리하고 내부의 체제위기 수습에 나설 것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황비서 망명사건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북한이 15일과 18일 두차례나 대내방송인 중앙방송을 통해 「비겁한 자여,갈라면 가라」는 내용의 혁명사상무장을 강조한 것은망명사실이 주민들에게 알려지기 전에 먼저 변절자로 몰아 선동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움직임으로 보여진다. 통일원 당국자들은 이와같은 북한의 변화에 대해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가다가도 대세가 기울었다고 판단되면 극적인 국면전환을 꾀하는 전례에 비추어 충분히 예견할수 있는 북한의 행태』라고 밝혔다. 당장 북한이 황의 망명을 시인하고 얻고자 하는 노림수는 무엇일까.임태순 남북대화사무국장은 『북한이 중국과의 외교교섭상 한계를 느낀 것 같다』면서 『북한은 대내적인 식량문제해결과 대미·대중관계를 고려한 실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통일원의 다른 당국자는 『북한이 올해 김일성사망 3주기를 치른뒤 김정일의 권력승계를 준비하고 있는 마당에 황비서의 사건은 북한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이라면서 『체제 비판자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도 황비서를 변절자로 몰아붙여 이 문제를 빨리 마무리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외무부의 한 관계자는 『북한이 태도변화를 보인 것은 50년 혈맹인 중국의 입장과도움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는 점을 고려한 선택이라고 보여진다』면서 『북한은 중국측에 망명을 시인하고 황을 한국이 아닌 제3국으로 내보내라는 요구를 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북한의 「황비서 망명시인」은 대외적으로는 대미·대중관계 등 국제적인 도움을 포기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대내적으로는 서둘러 황을 변절자로 매도해 제2,제3의 황장엽을 차단하려는 체제단속 차원인 것으로 여겨진다.
  • 북 통제불능 상태… 대비책 세우자(해외사설)

    북한 노동당 중앙위비서 황장엽이 아직도 북경의 한국총영사관에 머물고 있다.중국 공안당국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총영사관 출입자의 신분을 일일이 확인하고 무장경찰들을 시켜 영사관주변을 철저히 경비하고 있다.앞서서 일단의 북한인들이 영사관진입을 시도하다 제지당한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황의 망명과 관련,황이 그의 보좌관과 지난 12일 스스로 한국 총영사관을 찾아 정치적망명을 요청했다고 밝혔다.북한측은 맞서 한국측이 그를 납치했다고 주장,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며 중국측이 황을 한국에 인도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그러나 성명형태의 북한측의 주장은 믿기 어렵다.중국측은 입장이 어려운듯한 상황이다.황장엽은 당중앙위 서열 11위,북한의 권력서열 25위의 거물이다. 황의 망명요청 사건과 관련,분명한 사실이 있다.이번 사건으로 뒤늦게나마 안정을 취한 한반도의 상황이 다시 악화될거라는 거다.한국은 지난 수요일부터 군경계태세강화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번 사태는 한반도 분단이후 남북한간의 최대사건으로 여겨진다.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의 종말에도 관심을 갖지만 이 보다는 현재의 북한상황에 더 관심이 크다.북한은 김일성이 사망한 뒤 상황이 무척 어려워진 것으로 알려진다.모스크바와 북경으로부터의 물질적인 지원도 끊겼다. 더욱이 최근의 홍수는 북한을 더욱 곤경으로 몰아넣었다.이런 상황하에서 황장엽의 탈출은 북한에 엄청난 타격을 주었음은 분명하다.평양측의 주장,즉 황이 납치당했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북한의 특수군이 요인을 납치한 적은 있어도 한국은 그런 적이 없다.우리는 황의 행동이 그가 만든 주체사상에 염증을 느꼈거나 체제에 실망을 해 나온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아니 황장엽은 보다 일찍 그것을 깨달아야만 했다.나아가 더 큰 탈출이유가 있을 것이다.김정일 통치방식에 염증을 느꼈거나 혹은 반김정일음모에 가담하다 망명을 택했을 가능성도 있다.어쨌든 황의 망명은 북한의 정치·경제가 위기에 들어선 결과의 하나다.현단계에선 북한이 통제불능상태가 됐을때 어떤 나라도 구체적인 대책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북한은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고 이 점이 현재 가장 큰 문제다.
  • 황 망명 북한정권 붕괴 가능성 시사(해외사설)

    휘발성이 강한 한반도 문제가 북한의 고위관리가 남한으로 불쑥 망명을 신청하면서 그 위험도를 더해가고 있다.중국은 오래된 이념동지인 북한과 새로운 무역파트너로 등장한 한국사이에서 황장엽의 망명이라는 한편의 긴박한 드라마로 고민하고 있다.하지만 이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궁핍해진 스탈린식 부랑국가인 북한에 이 문제로 인해 어느정도의 중요한 정치적 변화가 나타날 것인가하는 점이다. 황장엽이 최근 열병처럼 번지는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신념의 위기의식을 겪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상당한 상상의 비약이 필요하다.그는 사악한 폭군인 김일성을 언제나 만족스럽게 해준 것은 아니기때문에 김의 절대적 신임을 받는 자리에는 오를 수 없었던 저명한 공산당 이론가이며 지식인이었다.그러나 그는 학생과 기술자,그리고 지식인들이 포함된 어느정도의 지지자들을 가지고 있으며 북한인으로는 드물게 알려진 바깥세계에 그런대로 좋은 평판을 가지고 있다. 그는 정치적 망명을 원해 한국대사관에 걸어들어 갔으며 남북한 사이에 화해와 통일을 자극하고자 했다고 말했다.그의 서신에는 북한의 불바다발언과 백성이 굶고 있는데 사회주의를 찬양하는 것은 미친짓이라고 공공연하게 비난하고 있다.그는 전에 그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르쳐준 제자이고 지금은 북한의 지도자인 김정일이 그를 일컬어 천재라고 말했다고 했는데 이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은 그의 망명신청이 미국과 한국으로의 성급한 접근을 서두를 것이냐 혹은 한걸음 물러날 것인가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북한정권의 붕괴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북한의 폭력성과 정전협정위반 사례들은 미국이 북한에 대해 경계심을 늦추지 말것과 철의 장막뒤편 평양에서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잘 살펴봐야 할 것을 요구한다. 그와동시에 이번 고위인사의 망명은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실상과 정치지도역량이 어떤지를 살피는 역량을 가다듬는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그를 알고 있는 서방세계 사람들은 그가 단순히 북한을 알려주는 정보원의 역할뿐만아니라 북한의 핵개발을 억제하고 북한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만들려는 미국의 노력이 중대한 국면을 맞을때는 중재자로서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 망명에 빛바랜 김정일 생일

    ◎각종 행사 작년 2배 “법석”… 분위기는 침참 지난 16일로 55세를 맞은 북한 김정일의 생일행사는 그의 영도자로서의 지도자상 부각을 위한 북한의 의욕과 오랜 준비에도 불구,황장엽 비서 망명 등으로 어수선한 가운데 외화내빈으로 끝났다. 김일성사망 3주기(7월14일)이자 김정일의 권력승계가 예상되는 올해의 김정일생일을 맞아 북한은 안팎으로 대대적인 선전과 각종 행사를 준비해 왔다.예년보다 3개월이나 앞서 해외의 경축사절단을 구성하는가 하면 내적으로는 지난해의 2배에 이르는 각종 기념행사를 주최했다. 북한 중앙통신은 생일전야인 15일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정부수반이 축하화분을,리비아와 이란은 축전을 보내왔으며 이날밤 김의 전설적인 출생지인 백두산의 정일봉이 불꽃놀이로 뒤덮였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행사의 어디에서도 김정일시대의 공식개막,나아가 김의 권력승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나 새로운 정책방향의 제시가 없는 등 전반적으로 침잠된 분위기를 벗지 못했다.가장 중요한 행사인 15일의 중앙경축보고대회에서 김기남 당비서는 보고문을 통해 김정일을 「사상도 영도도 덕망도 어버이 수령님 그대로인」,「어버이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우리시대의 지도자상으로 빛내는」 존재로 표현했을 뿐이다. 이날 보고에서는 특히 『정세가 긴장할수록 군사중시사상을 받들고 혁명적 무장력을 강화하는데 큰 힘을 넣어야 한다』고 군의존의 위기관리를 강조하는가 하면 『올해는 석탄,전력,금속공업과 철도운수를 추켜세움으로써 어떤 일이 있어도 경제건설과 인민생활에서 결정적인 전환을 가져와야 한다』고 말해 민생고의 절박성을 노출하기도 했다. 한편 황장엽 비서의 망명사건 탓인지 김의 생일을 맞은 북경의 북한대사관은 「민족 최대명절」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한산했다.
  • “제2 제3테러 가능성”/귀순자들 신변 불안감/귀순자 반응

    ◎탈북자대상 보복테러 신호탄 확신/이씨,저서통해 김정일 비판도 원인 김정일의 전 동거녀 성혜림의 조카인 이한영씨가 권총테러를 당해 중태라는 소식을 전해들은 귀순자들은 16일 『북한의 테러가 분명하다』면서 『김정일이 황장엽 노동당비서의 한국망명을 저지하기 위해 마지막 방법까지 동원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북한은 황비서의 망명을 저지하기 위해 다른 귀순자나 한국의 고위급인사를 대상으로 제2,제3의 테러를 저지를 수 있다』면서 신변에 대한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임영선씨(33·93년 귀순)=황비서의 망명요청이후 대남보복을 천명해온 북한의 소행이 분명하다.특히 이씨는 북한의 정책뿐 아니라 김일성·김정일의 권력세습을 직접 비판하고 김정일의 사생활을 들먹여 제1 테러대상이 된 것 같다.북한은 배신자의 말로가 어떻다는 것과 서울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줘 북한내부의 동요를 막고자 한 것 같다. 이번 테러는 고정간첩보다는 북한노동당 대남공작부의 지시를 받은 3인1조인 장기침투조의 소행인 듯하다.현장에서 목격된 2명외 나머지 1명은 테러에 사용된 차량을 움직이고 망을 보았기 때문에 노출되지 않았을 뿐이다.그리고 이같은 3인1조의 테러단은 북한이 요인암살 등을 위해 운영하는 장기침투조의 전형이다. ▲고청송씨(37·93년 귀순)=북한측 소행이 확실하다.황비서의 망명요청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황비서가 서울에 오면 보복당할 것이라는 암시를 주기 위해 이번 테러를 자행한 것 같다.황비서의 망명이후 잇따른 북한의 해외공관원·권력층·지식인층의 탈북사태를 막기 위해 강경한 경고메시지를 대내외에 알리려 한 것 같다.귀순자의 한 사람으로 사실 불안하다.남한사람이 북한의 안보위협에 너무 안이하게 대처해 고정간첩이 많다고 생각한다. ▲윤웅씨(31·93년 귀순)=이한영씨의 귀순은 북한의 최고권력자의 치부를 드러낸 사건으로 황비서의 망명보다 북한에는 더 아픈 것이었을수 있다.때문에 이씨는 황비서의 망명요청이전부터 북한의 테러대상이었을 것이다.이씨는 귀순한 지 오래돼 당국의 보호없이 자유롭게 활동해왔고 얼굴이 널리 알려져 쉬운 테러대상으로 지목됐을수 있다. ▲김광일씨(38·95년 귀순)=북한의 개입가능성이 높다.북한은 남한에 귀순하면 정보를 다 빼낸 뒤 죽인다고 선전하는데 이 말이 사실임을 선전하려고 테러를 저지른 것 같다.이씨의 피격사건으로 귀순초기 가졌던 불안감이 되살아났다.국민이 철저한 안보의식으로 무장,귀순자가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해주기를 바란다.
  • 황장엽 망명이후 김정일 선택/예브게니 바자노프(지구촌 칼럼)

    지난 94년 미국잡지 「아시안 서베이」에서 나와 집사람은 북한의 김일성이 죽으면 북한은 엄청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했었다.김일성은 지배계급뿐 아니라 북한인민마저도 그의 막강한 권력을 믿고 따랐다.반면 그의 아들은 아버지만큼 명망도 없고 난폭한 기질임에도 초월적 권력을 요구해왔다. 김정일정권 초창기부터 그를 싫어하는 지도자그룹이 생기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또 김정일이 바로 북한개혁에 최대장애물이며 폐허화된 북한경제의 주범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지도자그룹이 생겨나는 것도 당연한지 모른다.이 두 그룹은 새 지도자를 무너뜨려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반대세력이 충분한 힘을 가질 정도로 조직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때문에 그럭저럭 김이 권력을 지금까지 꾸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김 지지기반 붕괴 김정일은 지배기반을 공고히 하는데 성공하지 못한 것같다.일단 그는 친척과 추종자에게 각종 혜택·특권을 주면서 권력을 유지시키고 있다.부하의 의견을 따르는 척하면서 집단적으로 북한을 통치하고 있다.다른 한편으로 측근정치,군사력과 비밀경찰에 의존하는 식의 정치는 이제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다.그러한 것은 김정일정권에 화근만 될 것이다.김정일은 개혁의 도입을 온몸으로 막고 있고 결과적으로 북한경제는 황폐화가 가속되고 있다.이러한 현상을 막기는커녕 김정일은 전쟁 히스테리를 보이며 거의 모든 국가자원을 전쟁준비에 투입한다.북한의 실제상황과 북한정권이 말하는 슬로건 사이의 괴리가 너무 커서 정권을 지탱시켜온 「노병」,주체사상의 이론가,젊은 지도자세력이 이젠 인내심을 잃고 있다.또 공개적으로 김정일에 도전장을 내게 이르렀다.의심의 여지없이 이러한 움직임 가운데 하나가 황장엽 북한노동당 중앙위원회비서의 한국망명시도다.황의 탈출은 북한지도부를 밑바닥부터 흔들었다.김정일에 대한 반기의 신호탄이자 이제는 막다른 골목에 이른,아무 의미없는 정책에 대한 반란이다.다른 일부지도세력은 해외로 망명하는 식으로 황비서의 길을 따를 것이다.일부는 체제내에서 감히 변화 혹은 개혁을 주장하고 나설 것이다.김정일에 대한 압력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지도층 이반 가속 황의 망명은 베이징과 평양의 관계를 엄청나게 손상시킬 것으로 보인다.김정일은 「마지막 동지」 중국이 더이상 자신의 지지자로 남지 않을 것임을 느낄 것이다.지금까지 중국은 북한에 개혁을 권고해왔으나 오히려 북한은 중국에 대해 문제아로만 남았다.이번 문제로 다시 중국은 당황하게 됐고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는 한국과의 관계마저 장애물에 봉착했다.황탈출이후 북한은 중국에 대해 압력의 강도를 높일 것이지만 오히려 중국의 화만 자초할 것이다.이번 사건으로 한국과의 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만일 황이 서울로 가고 평양정부를 공격하기 시작하면 남북한의 관계는 불을 보듯 뻔하다.황서기 입에서 나오는 발표들은 미국·일본 나아가 세계 여러 나라에서 김정일을 더욱 곤경에 빠뜨릴 것이다. ○개방정책이 최선 이런 상황에서 김정일은 두 가지 선택을 할 것으로 보인다.우선 김이 계속해서 개혁에 저항하는 일이다.지도자숙청은 계속되고 북한은 새로운 내부테러공포에 휩싸일 것이다.이는 김정일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숙청이나 테러는 북한의 경제·사회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조만간 의외로 빨리 김정일정권은 무너질 것이다.내가 생각하기에 한국과 일부 북한전문가들이 선호하는 이러한 견해는 최선의 선택은 아닌 것 같다.이러한 시나리오는 마침내 북한내 정치엘리트 사이에 권력투쟁을 촉발시킨다.인민에 대한 통제가 약화되고 권부불신에 따른 지역봉기·내전가능성도 따른다.한국은 개입할 것이고 이렇게 되면 양쪽에서 휴전선을 넘는 일이 발생한다.북한의 일부지방조직이 한국정부,정치·사회조직에 도움을 요청할 것이고 한국의 정부·민간단체가 이를 도우려는 움직임이 벌어질 것이다.결과적으로 상황은 매우 복잡해질수 있다.체제붕괴위협을 느낀 북한공산지도부는 체제유지에 안간힘을 쓸 것이다.그들은 한국내 좌익에 동정심을 일으키거나 지원을 요청,한반도내에서는 다양한 차원의 국지전이 발발할 수 있을 것이다.혼란은 오랫동안 계속된다는 얘기다. 김정일이 만일 두번째를 선택하면 남북한 모두에 도움이 될 것이다.김정일에게 기회는 있다.제정신으로는 신봉하기 힘든,개인종교에 가까운 주체사상강조를 이제는 포기하고 내부정치·경제개혁,남한에 대한 개방정책을 선택하는 일이다.확실히 김정일은 이러한 선택이 북한식 공산주의의 종언을 구할 것이라고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다.그러한 두려움이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아직도 두번째의 선택이 그에게는 더 낫다.김정일이 결정적인 선택을 할 시기가 분명히 다가오고 있다.
  • 김정일 생일잔치 강행/「정일봉」 전야행사 불꽃놀이 “휘황”

    ◎곳곳서 충성맹세 결의… 오늘 절정 【서울 AFP 연합】 북한은 황장엽 노동당 비서의 망명에도 불구,신격화된 지도자 김정일의 55회 생일잔치를 15일 강행했다. 위대한 새 지도자에 대한 찬양이 점차 고조되면서 과거 김정일의 존경받는 스승이었던 황장엽(73) 비서의 이름은 북한의 언론매체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수반은 축하화환을,리비아와 이란은 축하전문을 보냈으며 밤새 벌어진 군의 생일 전야행사로 김정일의 전설적인 출생지 「정일봉」이 불꽃놀이로 뒤덮였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날이 밝을 무렵 색색의 불꽃놀이가 정일봉을 다시 수놓았으며 「경애하는 김정일 장군에게 충성과 헌신을 다하자」는 슬로건과 플래카드를 단 형형색색의 낙하산이 투하됐다고 중앙통신은 전했다. 관리와 군중들은 폭죽을 터뜨리면서 충성을 맹세하는 결의대회를 가졌으며 당기관지 노동신문은 「장군의 눈보라」라는 생일축시를 전면을 할애해 실었다고 이 통신은 덧붙였다. 한국내 전문가들은 몇달간에 걸친 대대적인 준비끝에 김정일의 공식 생일인 16일 절정을 이루게 될 이번 생일잔치형식은 김정일시대의 시작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지난 몇달동안 김일성에 대한 찬양이 갑자기 줄었음을 지적했다. 중앙통신과 북한 라디오방송들의 아첨섞인 찬양의 목소리는 북한 군요원들이 자동차에 탑승해 황장엽이 망명을 신청한 북경주재 한국대사관 영사부 진입을 시도하고 중국이 영사부 주변에 무장경비병을 배치하는 북경의 절망적인 분위기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북한이 2천2백만 주민의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식량문제를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지난 3년간 서방국들에 식량원조를 호소했던 것과는 달리 평양은 황장엽에 대해서는 불길한 침묵을 지키고 있다.
  • “사회주의 실패” 북 고령층에 공감대

    ◎북 전문가들 “황장엽 망명이 단적인 증거” 분석/혁명초기세대중심 「반김정일」 움직임 확산 「황장엽의 망명은 무엇보다 북한의 사회주의가 실패했다는 단적인 증거다.특히 사회주의가 실패했다는 것은 바로 북한 혁명 초기세대들이 더욱 절감하고 있다」.북한문제 전문가들과 최근 귀순자들의 종합적인 판단이다. 한국 망명을 요청한 황비서는 지난 95년 영국 런던의 마르크스 묘역을 참배한 뒤 『당신이 사회주의를 창시할 때와는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 얘기했다고 한다.황은 명실상부하게 김일성과 함께 사회주의 건설에 나선 혁명 초기세대에 해당된다.그런 황이 사회주의는 변질되고 실패했다고 자인했다는 것은 북한의 많은 혁명 초기세대 지식인들이 같이 겪는 갈등이라고 한다.북한의 경제가 남쪽보다도 50년이나 뒤떨어졌고 매년 수만명의 주민이 굶주려 사망했다는 진술도 북한 사회주의가 실패했다는 것을 입증하며 특히 고령층 혁명세대가 이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군부에 있어서도 6·25전쟁을 직접 수행한 고령층 군지도부는 「전쟁을 해도 승산이 없다는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한다.북한 군사 전문가에 따르면 현대전의 교과서라 일컬어지는 91년 걸프전 이후,북한의 군 지도부가 걸프전에 대한 녹화필름을 봤다고 한다.이때 소장파는 놀라지 않은 반면 6·25를 겪은 군지도부는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얘졌다고 한다. 황과 함께 망명한 김덕홍씨는 『북한 내부에는 김정일 타도를 위한 움직임이 미약하나마 생기고 있다』면서 『지금 30대의 젊은세대는 우리와 생각이 다르며 이들을 포섭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이는 결국 고령층을 중심으로 반사회주의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황도 「인사가 있을 것」으로 밝혔듯 김정일의 최고권력 승계에 앞서 대대적인 세대교체를 하려는 움직임도,이미 과거와 비참한 현재를 경험으로 비교할 수 있는 혁명 초기세대를 대거 퇴진시키겠다는 의도로 보여진다. 현재 북한에서는 나이가 많은 고령층,경제전문가,국제경험이 많은 인사를 중심으로 「우리식 사회주의」는 붕괴한다는 자각이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 황장엽 망명­북서 사상비판 받은 이유

    ◎작년 2월 “전쟁반대” 연설로 미운털/5월 노동신문서 “음모가” 공개 포문/김정일도 7월 논문통해 직접 비판 한국에 망명을 신청한 황장엽 북한 노동당비서는 지난해 7월 김정일로부터 논문을 통해 비판을 받았다고 아사히신문이 15일 보도했다. 관계소식통의 말에 따르면 황비서는 지난해 2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주체사상 국제세미나에서 어떠한 전쟁도 해서는 안되며 인민의 생활을 우선 향상시켜야 한다는 취지의 연설을 한 직후부터 비판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지난해 5월10일자 북한 노동당기관지 노동신문에는 「야심가,음모가들의 비열한 본성」이라는 기사가 게재돼 황비서그룹이 비판을 받았는데 이는 황비서가 한국언론에 보도된 서한에서 북한당국이 95년5월9일을 계기로 자신의 사상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고 밝힌 부분과 부합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특히 결정적이었던 것은 같은 해 7월26일 김정일이 노동당 중앙위 선전부 담당자에게 제시한 「주체철학은 독창적인 혁명철학이다」는 제하의 논문으로 김은 이 논문에서『주체사상은 북한에서 독자적으로 탄생한 것』이라면서 일부 사회과학자가 주체사상의 독창성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김의 논문은 황의 이름은 거론하지 않았으나 관계자에게는 이 논문이 주체사상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토대로 발전시킨 것으로 규정해온 황을 비판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도록 돼 있다는 것이다. ◎주체사상 독창성관련 황 비판/지난해 7월 북 월간지 「근로자」서 황장엽 북한 노동당비서는 지난해 북한의 「근로자」라는 이념잡지로부터 자신이 체계화한 주체사상에 대해 비판을 받는 등 사상적 마찰을 빚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남북고위급회담 대표출신인 자민련 이동복 의원(전국구)은 15일 『황비서가 지난해 7월 북한의 월간 간행물인 「근로자」로부터 우회적으로 비판을 받았다』고 말하고 『이 간행물은 김정일을 김일성의 후계자로 옹립하는데 기여한 중요한 이론지로서 그런 잡지가 주체사상 대부인 황비서를 비판한 것은 상당히 의미있는 일』이라고 밝혔다. 이의원은 『이 잡지는 일본의 구월서점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입수돼왔으나 북한이 재작년부터 해외반출을 금지,현재 황비서를 비판한 논문의 구체적 내용은 알 수 없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 북의 전쟁모험 경계해야/황장엽 자술서에 담긴 메시지(사설)

    황장엽 비서의 망명이 우리 분단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중대 「사건」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비단 북한 권력구조 안에서 그가 차지하고 있던 높은 지위 때문만은 아니다.북한내 사정이 그들의 핵심이념인 주체사상의 창시자가 등을 돌리지 않을 수 없는 모순과 혼돈의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이 더욱 충격적이 아닐 수 없다.이는 북한의 사회주의경제가 벼랑에 몰렸을 뿐 아니라 정신적 지주,이념체계마저 뿌리째 흔들리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황장엽 비서가 망명신청직후 한국대사관에서 작성한 자술서와 망명을 결심하는 과정에서 쓴 서신들은 철들어 50평생을 공산주의선교자로 살아온 한 원로가 오늘날 북한의 모순적 현실에서 느끼는 깊은 회의와 개인적 고뇌를 진솔하게 담고 있다.인생 황혼기에 지난날을 회고하며 자신으로선 순수한 이상을 좇아 정립한 주체사상이론이 한낱 김일성·김정일부자의 세습독재를 합리화시키는 도구로 전락하고 북한이 사회주의 아닌 김부자의 봉건국가가 돼버린 허망한 현실에 깊은 자괴심을 느낀 것 같다.민족 앞에 속죄하는 심정으로 모순투성이 존재가 돼버린 북한실상을 정확히 알려 북의 전쟁도발을 막고 평화적 통일을 가능케 하는데 여생을 바치겠다는 결의에서 망명을 결행했음을 읽게 된다. 그는 자신의 망명동기에 대해 『우리민족을 불행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한 문제를 남의 인사들과 협의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공산주의자로서보다 민족주의자로서의 고뇌를 읽게 하는 대목이다. 황비서가 북에 대해 느끼는 갈등은 노동자·농민의 지상낙원을 이룩했다면서 국민을 굶어죽게 만들고 평화통일을 떠들면서 남쪽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며 전쟁준비에 여념이 없는 김정일등의 모순된 언행일 것이다.이런 북의 실정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한눈만 팔고 있는 남쪽 동포도 그를 답답하게 만드는 존재였다.북을 제대로 알고 적절한 대비책을 마련토록 충고해주지 않으면 또다시 동족상잔의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불행스러운 확신에서 가족과 안락한 삶을 버리고 망명을 결행했음을 그는 고백하고 있다. 우리는 황비서의 메시지를 차분하게 분석하여 통일정책·대북정책의 교훈을 추출해내고 그가 가지고 있을 정확한 정보를 통해 북한실정을 보다 정확히 파악하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북한 최고위급의 망명이라는 외형에 흥분,요란스러운 홍보용 사건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온갖 추측보도와 흥미위주의 내막 까발리기경쟁을 벌이는 언론의 상업주의도 자제되어야 한다. 그의 메시지 가운데 특히 소홀히 다뤄서는 안될 대목은 그의 망명이 북한이 바로 붕괴함을 예고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그는 『독재체제가 너무나 째이고 탄압이 너무나 무자비하다 보니』 농민폭동도 일어나지 못하며 경제가 파탄이 되어도 『민심이 일정한 이념을 가지고 통치의 부당성을 주장하고 나설 정도로 성숙치 못했다』고 지적한다.따라서 북이 경제에 이어 이념적 파산에 직면했지만 붕괴에 앞서 평소 『전쟁밖에 출로가 없다』고 믿어온 김정일 등이 최우선적으로 강화해온 무력으로 전쟁을 도발하는 이판사판의 선수를 칠 가능성이 크다는 경고다.이념적 파탄에 처한 북의 최후의 모험을 사전봉쇄,조만간 평화통일이 찾아올 수 있도록 차분하게 대책을 세우는 것이 황비서의 모든 것을 건 망명의 의미를 살리는 길이 될 것이다.그의 망명이 그의 소망대로 남과 북의 화해와 통일에 도움을 주는 역사적 사건이 되기를 기대한다.
  • 신한국 강릉갑 개편대회/안보문제 집중 부각

    ◎“북 체제 이탈” “야 「서신조작」 제기는 불순”… 황 망명사건 초점 북한 황장엽 노동당비서의 망명은 신한국당 지구당 대회에서도 단연 주된 화두였다.4·11총선 이후 3차 개편대회의 마지막 순서인 14일 강원 강릉갑지구당(위원장 황학수 의원)임시대회에서 당 지도부는 황비서의 한국행을 위한 정부의 신중한 대책을 촉구하고 대북정책의 재검토 필요성을 주장했다.망명과정의 의혹을 제기한 야당측 주장에는 쐐기를 박았다. 이홍구 대표위원은 격려사에서 『3년전 제가 판문점에서 통일부총리 자격으로 북한의 김용순 비서와 남북한 정상회담을 합의한 며칠뒤 김일성이 죽었고 그때부터 북한체제는 방황하고 궤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이대표는 『북한의 연착륙을 얘기하는데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하고 남북관계의 현주소를 기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라고 전제,『북한체제의 전폭적 변화를 어떻게 최소 비용과 최대 효율로 이끌 것인지,급격한 변화에 어떻게 슬기롭게 대처할 것인지가 문제』라며 연착륙정책의 재고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만섭 상임고문은 『등소평·강택민·교석 등의 개방정신이 황비서의 정신과 일치하므로 중국은 합리적이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것』이라면서 『정부는 초조해하지 말고 신중하고 치밀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당부했다. 박찬종 고문도 『길조인 황비서의 망명사태를 야당측은 「한보사태 비켜가기」 「서신위조」 운운하며 당리당략에 악용하고 있다』면서 『길조가 우리품으로 날아들어는데 정작 우리는 국론통일이 안되고 있다』며 야당측을 나무랐다.그는 『신병처리가 어떻게 될 건지 불안한 황비서가 서신위조를 주장하는 야당 성명을 전해 들었을때 얼마나 참담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 주사파는 원조망명 직시를(사설)

    북한의 주체사상을 집대성하고 그것을 김일성·김정일부자의 유일지도이념으로 이론적 뒷받침을 해온 황장엽의 망명이후 학생운동권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고한다.특히 한총련의 주류인 민족해방(NL)계열의 주사파 조직은 당혹감을 금치 못하고 있으며 조직의 존립기반이 무너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일부 주사파는 황장엽의 망명이 북한의 주장대로 「납치·조작에 의한 것」으로 강변하고 있는가 하면 다른 일부에서는 『그가 진짜망명했더라도 주체사상에 대한 회의보다는 김정일과의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개인적인 일』이라면서 애써 현실외면의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들린다. 주사파가 황장엽의 망명을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는가는 그들 자체의 문제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가당찮은 궤변이다.북한의 주체사상을 투쟁이념으로 삼아온 그들로서는 「주체사상의 대부」가 「지상의 낙원」을 버리고 망명한 데 대해 당혹감을 떨칠 수 없겠지만 우리는 이번 사태의 본질을 직시할 것을 촉구하고자 한다.황장엽은 망명요청직후 『나는 내가 만든 주체사상이 김일성·김정일부자의 권력세습과 권력유지의 도구로 이용되고 또 그 사상 때문에 수많은 인민이 헐벗고 병들고 굶주리게 된 현실이 너무나 한탄스러워 죄책감을 느껴왔다』고 고백했다.그는 또 자신의 망명결심을 밝힌 서신에서 『남의 청년학생이 북이 사회주의가 아니고 봉건주의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북에 대하여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런 일』이라고 개탄했다.한총련지도부와 주사파는 이 고백과 개탄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황장엽의 망명으로 학생운동권의 주사파조직이 곧 와해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단기적으로는 노동법과 한보사태 등 사회적 이슈와 학내문제를 앞세워 그들의 투쟁노선을 이끌어갈 것으로 짐작 된다.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주사파는 설 땅을 잃게 될 것이며 스스로 변화를 모색하지 않는 한 도태되고 말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연세대사태」에서 친북 폭력시위가 얼마나 엄청난 피해를 가져오는가를 똑똑히 목격했다.때문에 대부분의 학생은 주사파를 외면하고있으며 지난해 연말 각 대학의 총학생회장선거에서도 주사파의 퇴조현상이 뚜렷이 나타난 바 있다.이제 철없는 주사파는 기나긴 미몽에서 깨어나야 한다.지금부터라도 낡아빠진 친북통일노선과 과격·폭력투쟁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건전한 학생운동에 동참해야 한다.그것이 학생의 본분에도 맞는 일이다.
  • 황 비서 95년부터 망명 고려

    ◎교포통해 김재순 전 의장에 “북 변화” 전언 부탁/귀순 최세웅씨 “영국서 만났을때 사상적 갈등” 황장엽 북한노동당비서는 지난 95년 이전부터 김일성 사후의 북한체제와 주체사상에 회의를 느껴,망명을 고려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황비서가 95년 2월 북한을 방문했던 재미교포를 통해 김재순 전 국회의장에게 북한 내부의 변화를 알리려 했던 것이나,같은해 11월 런던을 방문했을때 보여준 일련의 행동에서도 이같은 동요가 나타난다. 자민련 이동복 의원은 『황씨는 지난 95년 2월말 북한을 방문했던 재미교포 백모씨를 환송하면서 「이제 주체사상 갖고는 안되겠다.금년(95년) 말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김 전 의장에게 이같은 메시지를 전해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이의원은 지난해 여름 김전의장을 만나 이같은 내용을 들었으며 북한을 방문했던 백모씨가 95년 3,4월쯤 김 전 의장을 직접 찾아온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이의원은 『황이 95년에 망명을 결심하지는 않았겠으나 이미 주체사상과 김정일체제에 회의를 느껴 이때부터 망명등을 고려했던 같다』고 덧붙였다. 영국 런던에 파견돼 「영국개발투자회사」사장을 맡고 있다 지난 95년 12월 가족과 함께 귀순했던 최세웅씨(36)는 95년 11월 영국공산당 주최 세미나에 주체사상 강연을 위해 런던을 방문한 황비서를 만났다.최씨는 80년대초 황이 살았던 평양 창광거리 원형아파트에 살았었고 황의 아들 경모씨(35)와도 친구사이였다. 최씨는 『지금 생각하니 황비서가 런던을 방문했을때도 사상적으로 회의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최씨는 『황비서가 런던에 있는 마르크스의 묘역을 참배한뒤 「마르크스가 사회주의를 창시할때 하고는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 말하는 등 사상적으로 개혁적인 모습을 보였다』면서 『황비서가 이미 사상적 갈등을 느꼈으며 이후 자신의 생각들이 북한사회에 받아들여지지 않자 망명을 결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황의 망명을 『그 나이에 무슨 욕심이 있어서 망명한 것은 아닐것』이라면서 『북한에서 무엇인가 민중을 도탄에 빠트리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망명하게 됐을것』이라고 분석했다.
  • 망명결심후 황 비서의 메모·서신내용 요약

    ◎“주체사상 학설 왜곡… 독재 무기로 활용”/“평화통일 앞당길 수만 있다면 희생 각오” 황장엽은 지난해 망명결심을 굳힌뒤 자신의 심경과 남북에 대한 상황인식 등을 담은 문건을 11월 10,13,15일 등 세차례에 걸쳐 작성,중개자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월간조선이 입수,공개한 이들 문건을 요약한다. 〈11월10일자〉 1.원래 주체사상은 김일성주석의 이름으로 마르크스주의를 극복하고 인간의 운명개척의 길을 밝히기 위해 창시된 것이다. 그러나 통치자들의 이기주의로 말미암아 이 학설은 왜곡되어 독재의 무기로 이용되고,남의 청년학생들을 기만하는데 이용되었다. 지금 짬짬이 써놓은 글은 만일의 경우를 고려하여 생각을 그대로 쓰지 못한 점도 있고,방조자도 없이 짬시간에 쓰다보니 논리적으로 다듬을 시간이 없었다.당면하여 이남의 주사파 학생들과 지하조직 일군들을 계몽시켜 그들이 북의 가짜 주체사상 선전에서 해방되어 진짜 주체사상을 체득하도록 하는데 참고자료로 이용할수 있을 것이다. 2.남한에서 정치적으로 나서고 싶지 않다.지금 얼마 남지않은 여생,가능하다면 주체사상을 더 알기쉽게 정리하여 조국인민에게 남기고 싶다. 3.거사는 신중히 하기 바란다.(북한은)무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여 왔다는 것,사람들이 다년간 오염되고 기만당하여 왔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4.잠수함사건 가지고 회담하자는 것,4자회담 참가 가능성 있다는 것 다 거짓임.절대 기회 걸지 말것. 5.명년 7월에 가서는 이문제를 단행할 것이 예견됨.그러면 할일 없게됨. 〈11월13일자〉 우리 민족을 전쟁의 참화에서 구원하고 나라의 평화통일을 앞당길수 있다면,그리고 세계 력사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다 산 자기생명을 버리는 것은 더말할 것도 없고 가족과 동지들의 가슴아픈 희생까지 각오하고 있다는 것.경제가 파탄되고 통치기반이 약화됨에 따라 당국의 경계와 질투심이 더욱 고조됨.당국은 금년 5월9일을 계기로 나의 사상이 자기의 통치체제에 맞지 않는다고 하면서 공격을 개시하였으며 나에 대한 감시를 집중하고 있음.그러므로 현직에 그냥 머무러있는 것은 기대할수 없음.늦어도 6개월이내로 결론이 내릴 것같이 생각됨. 지금 지위에서 물러나서도 안전하게 살수 있다면 큰 다행이지만 나와같은 요직에 있다 물러나면 그대로 두지 않는 것이 상례로 되고 있음.당국이 꾸며낸 자료에 의하여 공개적으로 규탄받고 죽는 것보다는 그전에 자결함이 여로모로 유리함. 2월에 큰 행사가 있으므로 그때까지 나를 리용하고 소문내지 않고 내적으로 처리하려고 할수 있음. 그러나 어느때 문제가 제기될지는 예측할 수 없음. 〈11월15일자〉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서두를 필요가 없으며 혼자 희생되여도 후회할 것이 없음.그러나 전쟁이 일어나는 길밖에 출로가 없는 조건에서 어떻게 전쟁을 미리 방지하거나 일어나는 경우 손실을 최대한으로 주리겠는가.학생들과 지하조직의 역할을 어떻게 저지시키겠는가 하는 문제가 중요문제로,민족의 운명문제로 제기됨.한편 전쟁준비를 마지막으로 다그치면서 군단장들까지 검토하는 조건에서 우리 지위가 안전하다고 볼수 없음.당국이 지금 대체로 다 파악하고 더 활동정형을 감시하기 위하여 손쓰지 않을수도 있음.그러므로 명년 2월에 가는 것이 허용되는 경우 그 기회를 리용함이 제일 중요할 것같이 생각됨. 지금 허다한 사람들을 마구 총살함을 폭로하면서 반체제인사들을 교환할데 대한 제안을 내놓는 것이 좋을 것같이 생각됨.그들(남의 반체제인사)은 북에 오면 다 개조되든가 죽게 됨.그러나 기만당한 상태에서 남에 있으면 위험한 존재임. 민족의 운명이 지켜질수 있도록 무거운 짐 지고 잘 다녀오시오.
  • 황장엽 망명­56년 저서 「사회발전사」

    ◎초기이론 김일성 우상화 내용 없어/정치·경제 등 민주적 절차를 강조/남녀평등론 등 개혁 필요성 역설 북한의 사상적 지주이자 주체사상을 이론적으로 뒷받침,북한의 정치사상을 집대성한 학자로 널리 알려진 황장엽비서의 초기 이론전개에는 김일성 우상화나 신격화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민주적 절차를 강조했던 것으로 13일 미의회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황의 저서 「사회발전사」에서 밝혀졌다. 황은 1956년 김일성대학 철학강좌장으로 있으면서 학생들은 물론 일반 지식층의 정치학습용 교재로 펴낸 이 책에서 북한건설의 견인차가 될 4요소를 「인민정권」「인민군대」「조선노동당」「김일성 원수」 순으로 지적했으며 정치 경제 문화 등 각분야에서의 생활이 민주주의적 기초 위에서 개조되는 것과 이를 위한 남녀평등권 노동법령 등 일련의 민주주의 개혁이 필요함을 역설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정치의 「고전」으로 알려진 이 책은 170페이지 분량으로 도쿄 천대전구 부사견에 위치한 조선노동당의 도쿄 소재 출판사인 학우서당에서 출판된 것으로김정일을 비롯,노동당 역사연구소장 강석승 등 50,60년대 황의 강의를 들었던 현 북한지도층들이 재학당시 교재로 배운 책으로 알려져 있으며,특히 40년동안 저자의 사상적 고뇌가 정치적 망명이라는 「백기투항」으로 결말지어진데 대한 북한정치사상의 과오를 비교해볼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인류사회는 어떻게 발생하였으며 발전하여 왔는가」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제1장 「인류사회의 발생과 인류의 첫사회­원시공동체사회」,제2장 「계급사회」,제3장 「사회주의 사회 및 공산주의 사회」의 3개 장으로 나뉘어 국가사회 발전과정을 설명했으며 북한의 건설은 마지막 장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황이 최근 망명과정에서 편지와 석명서 등을 통해 밝힌 사상적 동요 내용들과 이 책에 나타난 그의 초기 견해들을 비교해 본다. 〔북한과 같은 1인 독재,세습체제가 없다〕:부르좌들과 그의 앞잡이들은 인류역사는 어떤 위대한 인물(왕이나 영웅)이 변화 발전시킨다고 주장한다.그러나 이것은 통치계급의 지배를 강화하며 근로 대중의 힘을 무시하고 그를 억제해 보려는 수작이다. 〔북한은 사회주의와 아무런 인연이 없다〕:사회주의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와는 정반대로 전체 근로 인민들이 행복스럽게 살수 있는 사회라는 것이 명백하다. 〔북한은 노동자와 농민이 굶주리고 있다〕:우리의 투쟁은 정치,경제,문화 각방면에서 거대한 성과를 거두었고 공화국 북반부에서 인민들의 물질문화 생활수준은 나날이 향상되어 갔다. 〔북한은 봉건주의나 마찬가지다〕:자본가들이 영도한 부르좌혁명은 철저하게 봉건적 잔재를 숙청할수 없었으며 노동자와 농민들을 가혹하게 착취하고 그들의 혁명적 투쟁을 탄압하기 위해 봉건세력들과 협력하게 됐다. 〔북한은 무자비한 탄압과 허위와 기만으로 충만된 암흑의 땅이다〕:공산주의 사회에 가면 문화가 최고도로 발전하여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사이의 본질적 차이가 없게 된다.특히 기계가 고도로 발전되어 적은 시간 일을 하고도 더많은 생산물을 얻을수 있으며 따라서 여유시간을 즐길수 있게 된다. 한편 황은 이 책에서 소련에 대해 『사회주의 사회를 이미 완전히 건설한 소련 인민은 현재 벌써 공산주의를 건설하는 길에 들어서고 있다』면서 최고의 이상향으로 소개해왔기 때문에 그같은 소련의 붕괴는 그의 이론을 뿌리채 흔드는 결과를 가져왔을 것임이 분명하다. 또한 북한이 인민민주주의를 건설할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는 튼튼한 민주기지가 있고 김일성 원수의 항일무장투쟁의 혁명적 전통을 계승한 인민군대와 조선인민을 승리에로 조직 동원하는 조선노동당과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원수가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에는 『제국주의자들이 제아무리 낡은 자본주의제도를 옹호,유지하려고 최후의 발악을 다하여도 그 멸망은 피할수 없으며 사회주의 진영은 반드시 승리하고 착취없고 행복스러운 근로자들의 사회인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가 전 지구상에 건설될 것은 틀림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 황장엽 망명­북 반응과 정부 대응

    ◎북 “납치” 주장속 지도부 우왕좌왕/북­대결국면 조성… 주민시선 돌릴듯/남­군사도발 등 우려 모든 대책 강구 황장엽의 망명으로 북한의 지도부는 일대 혼란에 빠졌음이 틀림없다.오는 16일 김정일 생일을 앞두고 대대적인 권력승계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던 북한은 황이 망명신청을 했던 12일 밤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평소 북한은 망명사건 등이 일어나면 즉각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런데도 이번에는 망명사실이 전파를 탄지 불과 반나절도 지나지 않은 13일 0시17분 중앙통신을 통해 외교부 대변인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명백히 적들에 의해 납치된 것』이라고 주장했다.이보다 조금 앞서 12일 밤 평양방송과 중앙방송은 「주체사상 국제토론회에 참석한 황장엽 비서의 일본 활동」을 보도하기도 했다.황의 망명소식을 감지하고도 이렇게 보도통제가 안되는 등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한 것은 권력상층부가 당황해서 허둥거렸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북한은 김정일 생일을 앞두고 주체사상의 창시자인 황의 망명사실이 발표도 없이 주민들에게 유포될 것이 두려워 서둘러 납치라고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북한은 『남조선 당국자들이 납치를 망명이라고 떠든다면 우리는 지금껏 있어보지 못한 중대한 사건으로 간주하고 응당한 대응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따라서 북한은 김일성 사망에 버금간다는 황의 망명사건을 일단 납치라고 주장하며 우리와의 대결국면을 조성하는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북의 경고가 아직 군사적인 움직임 등 구체적인 적대행위로까지 이어질 지는 미지수이지만 정부당국은 군사도발을 포함한 모든 방안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특히 이제 재개되기 시작한 대북경수로사업이나 민간차원의 경협,대북지원사업 등도 시간을 두고 북한의 대응을 지켜본뒤 대응해 나간다는 방침이다.오는 22일 북한의 신포지역으로 츨발할 예정인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제7차 부지조사단도 현재로서는 출발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정부는 조사단에 참여하는 기술자들의 신변안전보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출발자체를 보류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또 민간 차원의 대북접촉 등도 북한이 현재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당분간 자제토록 촉구할 방침이다. 한편 정부는 외교·군사적인 대비와는 별도로 경수로사업,남북경협사업,대북식량지원사업 등 북한과 관련한 모든 대북정책에 대해 조만간 정책협의를 거쳐 완급을 조절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 미 과학자협 스톤 회장의 「내가 본 황장엽」

    ◎심오한 이론지녀 많은사람이 존경/67년 체제비판 글써 김일성과 논쟁 황장엽의 초청으로 지난 91년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미국과학자협회(FAC)의 제레미 스톤 회장은 12일 황의 망명소식을 듣고는 『황은 당시 김일성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었으며 상당히 실용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회고하면서 자신이 방북 직후 협회보에 게재했던 북한인상기중 황에 관해 쓴 부분을 소개했다. 스톤 회장은 황이 『다른 사람들과는 비교될 수 없는 심오한 이론적 체계를 지닌 인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스승으로 존경받고 있었다』고 말하고 『황은 특히 자신의 이름을 나타내기 위해 일을 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내는 것까지 싫어할 정도였으며 그같은 겸손때문에 김일성이 더욱 그를 좋아하고 신뢰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또 황이 67년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의 변천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하여」라는 체제비판 글을 발표,극심한 비난을 받는등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을때 김일성이 주석궁으로 직접 불러들여 조목조목 따져가며 토론을 나눴다는 유명한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스톤 회장은 이어 황은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까지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대해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며 「악은 악으로 응답되어서는 안되며 정의에 의해서 답해져야 하고 정의는 사랑으로 다듬어진다」면서 일본의 학정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을 욕해서는 안된다고 가른친 것은 유명하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황은 비폭력에 많은 흥미를 갖고 있었고 핵무기와 전쟁을 싫어한다는 얘기를 들었으며 김정일도 황을 좋아해 자주 휴가를 즐길수 있도록 배려함은 물론 중국에 3개월동안 편도선 치료를 알선해 주는 등 각별한 애정을 표현했다면서 황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유학 현인」으로 존경받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 북서 첫손 꼽히는 인텔리가/눈길끄는 황장엽 가계

    ◎부인 박승옥씨 김정일 가정교사 출신/아들 김일성대 교수… 딸은 유명한 의사 한국 망명 절차를 밟고 있는 황장엽 북한 노동당 당비서는 북한내 최고 인텔리집안 출신이라는 점에서 북한내 지식인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던져줄 것으로 보인다. 황비서가 김일성종합대학 총장시절인 지난 70년대 중반 김일성종합대학을 다녔던 C씨(96년 제3국에서 망명)는 13일 『황총장은 북한이 자랑해온 전형적인 인텔리로서 고지식한 학자적 기풍을 지닌 것으로 학생들에게 알려져 평가가 좋았다』고 말했다. 관계당국에 따르면 황비서는 북한에 부인 박승옥씨와 2남2녀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C씨는 그러나 『황비서는 부인 박씨와의 사이에 선희·노선·선옥 등 딸 셋과 막내인 아들 경모를 두고 있고 자식들은 모두 수재들』이라고 말했다. 황비서는 모스크바국립대학에서 유학했고 59년부터 김일성종합대학 총장을 맡아왔으며 87년부터 사회과학자협회 위원장을 역임했고 주체사상을 집대성한 최고 이론가로서 20여차례에 걸쳐 30개국을 방문,주체사상을 강론해 온북한 지식층의 대표적 인물. 또 모스크바 유학시절 황비서와 만나 연애결혼한 부인 박승옥씨는 남편 못지않은 인텔리로 김일성의 딸인 경희(김정일의 친동생)와 경진(김정일의 이복동생)의 가정교사를 지냈으며 남편과 마찬가지로 김정일의 가정교사를 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박씨는 특히 영어·러시아어를 비롯한 외국어에 능통,최근까지 평양외국문종합출판사에서 번역업무를 담당해왔다고 C씨는 밝혔다. 황비서의 자식들 중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는 사람은 외아들인 경모씨.그는 아버지의 모습과 인품·지적능력 등을 꼭 빼닮은 인물로 김일성종합대학 철학부를 졸업한 후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으며 김정일의 최측근인 장성택 누나의 사위라고 C씨는 말했다. 첫째딸인 선희씨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바가 없으나 둘째딸인 노선씨는 평양의학대학을 졸업한 재원으로 북한 의학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의료인으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셋째딸 선옥씨는 C씨의 남산인민학교 1년후배로서 남편은 외교부 참사국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 북 엑서더스 기폭제… 민족사의 대사건/황장엽 망명­전문가 좌담

    ◎군부 입김 강화… 「붉은기 철학」 등 사상통제 수정/김정일에 치명타… 친중 제3권력 등장 가능성 □참석자 ·김창순 북한연구소 이사장 ·유창렬 외교안보연 교수 ·김종일 서울신문 국제전략연 소장 김정일 측근이자 북한의 주체사상 대부인 당비서 황장엽의 예상치못한 망명은 남북한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황이 왜 망명했는지,그의 망명이 북한은 물론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북한문제전문가인 김창순 이사장(북한연구소),유석렬 교수(외교안보연구원)와 김종일 소장(본사 국제전략연구소)과의 좌담을 통해 알아본다.〈편집자주〉 ▲김종일 소장=북한의 거물인 황장엽의 망명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사건입니다.북한이 황의 망명에 대해 즉각 「불가능한 일」이고 납치라고 억지를 부리는데서 볼 수 있듯이 북한에 준 충격과 당혹감은 이루말할수 없을 것입니다.그동안 김정일의 각별한 보살핌과 북한에서 특혜를 받아오던 황장엽이 왜 북한을 등지고 한국에로의 망명의 길을 택했는지,먼저 탈북동기부터 짚어볼까요. ○망명 의도 오래된 듯 ▲유석렬 교수=여러 측면에서 볼 수 있는데 직접적인 동기는 일본 방문목적이 실패한 것에서 찾을수 있을 것 같습니다.이번에 일본을 방문했던 것은 표면적으로는 주체사상연구소의 초청에 참석한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식량난과 대일관계의 돌파구를 뚫기 위한 것이었습니다.북한은 식량지원때문에 황의 방일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는데 이게 무산된 것이고 빈손으로 돌아가게된 황은 면목이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두번째로 김정일의 통치방식에 황이 동의할 수 없게 된 것도 큰 이유로 들 수 있습니다.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폐쇄적으로 나가지 말고 개혁과 개방을 해야한다는 것이 황의 생각인데 이는 김정일의 통치스타일및 사상과는 다른 것이죠.또 주체사상의 수령론은 황장엽의 체계적인 이론에 근거한 것입니다만 김정일이 여기에서 일부 필요한 것은 뽑아쓰고 주체사상을 변질시킴으로써 주체사상이 결과적으로 점점 약화되어갔고 황이 중심세력에서 멀어져 간 것도 그의 심기를 무척 불편하게 했을 것입니다.세번째로 북한사회에 더이상의 희망이나 전망이 없다는 생각도 큰 작용을 했을 것으로 봅니다.암담한 상황에서 도피하기 위해 상당기간 망명을 생각했을 것으로 봅니다. ▲김창순 이사장=그렇습니다.황장엽은 오래전부터 생각을 해왔을 것으로 보입니다.황은 북한에서 혁명1세대도 아니고 일본에서 학교를 나온 사람이죠.김일성시대에 만들어진 이론가인데 지식인인만큼 통치이념면에서 남다른 고민을 해왔을 것입니다.이념정치가이기 때문에 탈냉전시대를 맞아 더 흔들리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세계 어떤 민족주의든간에 세계사방향에서 일탈한 민족주의가 살아남은 일이 없으니까 황장엽은 주체사상이 탈냉전시대에 살아남을수 있겠느냐고 고민했을 것입니다.시대가 바뀌는 등 모든게 변하고 있는데 북한의 이념은 바뀌지 않고 있기 때문에 주체사상이란 이념적 토대를 구축했던 그가 이대로는 안되겠다며 느낀 갈등은 대단했을 것입니다.심각한 이념적 갈등을 겪어온 것이 본질적인 탈북동기라고 봅니다. ▲김소장=자세한 망명동기는 그가 한국에 와서 본인의 입을 통해밝힐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두분이 공통적으로 지적하신대로 이념적 면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봅니다.황장엽의 망명이 갖는 의미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김정일식 사상 준비 ▲유교수=첫째 주체사상을 체계화했던 사람이 망명을 했으니까 주체사상이란 이념의 존재이유가 없어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이념의 종언」이라고 할 수 있지요.그런데 현재 김정일에게는 주체사상보다 더 새로운 이념이 필요하게 됐습니다.김일성이 죽은지 3년이 지난 마당에 아버지와 다른,차별화된 이념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이것이 바로 고난의 행군정신,붉은사상,붉은기 철학입니다.이런 측면에서 황장엽의 입지를 오히려 약화시키려는 생각을 갖게되었고 실제로 작년에 황장엽을 겨냥,주체사상의 권위와 가치를 떨어뜨리려는 논설이 나오기도 했습니다.그런만큼 황장엽의 망명은 주체사상보다는 새로운 이념을 끌고가려는 시발점이 될 것으로 봅니다.두번째로 특권지도층에 이념적인 혼란을 가중시키고 갈등을 증폭시켰을 것입니다. ▲김이사장=황장엽의 망명은남북한관계나 우리민족사에서 중대한 사건입니다.유교수께서 이념적인 면에 의미를 부여했습니다만 북한에서 김일성시대에 입은 이데올로기의 옷을 벗는 작업은 90년부터 시작됐습니다.91년 6월 노동신문에 등장한 민족제일주의를 읽어보면 「민족」이란 말이 220번 나옵니다.김정일시대를 맞아 주체사상이란 것도 낡은 것이 돼서 붉은기사상이란 것이 나왔는데 이는 주체사상과는 미묘한 관계에 놓이게 됐지요. ▲김소장=「믿었던 도끼에 찍힌 격」이 된 황장엽의 망명은 김정일과 북한에 엄청난 타격을 주었을 게 분명합니다.어떤 면에 어느정도의 타격을 주게 될까요. ▲유교수=그동안 김일성부자와 특별한 관계에 있었고 북한에서 특혜를 누려온 황이 망명한 것은 지도층을 동요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을 것입니다.그래서 김정일은 앞으로 측근들까지도 충성도를 챙기고 북한 주민들을 더욱 경계하게 될 것입니다. ▲김이사장=현재 북한에서 인텔리계층으로 분류할 수 있는 사람은 약 1백70여만명이 됩니다.북한체제의 버팀목이라고 할 수 있는 인텔리계층이이념의 대부인 황장엽마저 떠난 것을 보고는 얼마나 충격을 받고 동요를 하겠습니까. ▲김소장=북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다는 말씀이군요. ▲유교수=그렇습니다.권력지도층이 흔들리면 주민들은 오죽하겠습니까.그동안 북한은 주민들의 탈북을 막기위해 안간힘을 써왔는데 이번 황장엽의 망명은 대탈북의 기폭제가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본격화된 붕괴 조짐 ▲김소장=황장엽의 망명은 북한을 발칵 뒤집어 놓았을게 분명합니다.그 충격이 큰 만큼 황의 망명은 김정일의 공식적인 권력승계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당장 16일 김의 55회생일행사가 어떻게 치러질지 궁금합니다. ▲유교수=생일행사야 그런대로 치러지겠지만 과연 승계를 하게 될는지는 두고 보아야할 것 같습니다.당초 계획됐던대로 일이 되어간다면 10월쯤 총비서에 취임하겠지만 총체적인 난국이 심화될 경우는 승계한다고는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김이사장=승계준비는 하겠지만 「정치적 대공황」이라고 할 정도로 그 파장이 너무 큰 만큼 승계를 못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제2의 황장엽이 나오지 않도록 통제를 강화할 것이 분명합니다. ▲김소장=이번 황장엽의 망명은 경제붕괴에서 이념파괴로,그리고 앞으로 체제붕괴로 이어질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이를 북한붕괴의 전주곡으로 봐도 되는지요. ▲유교수=일단 김정일정권의 붕괴조짐이 본격화했다고 봅니다.김정일은 인민무력부를 중심으로 한 사실상의 계엄체제로 국가를 끌어가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입니다.권력을 승계하려면 계엄체제를 풀어야 하는데 계엄을 풀 경우 분출할 사회 전반의 일탈이 두려워 계엄을 풀지 못하고 있고 권력승계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황장엽같은 고위층이 망명을 결행한 것은 북한체제가 더이상 주민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같은 민심이반은 결국 김정일정권의 붕괴로 이어질 것으로 봅니다. ▲김이사장=당장 북한정권이 붕괴할 것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붕괴한다면 북한정권이 아니라 김정일정권이 무너질 것입니다.그러나 현재처럼 북한을 돌봐주고 있는 중국이 있는 한 북한정권은 살아남을것이고 김정일정권이 무너진다면 친중국성향의 제3의 권력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김소장=주체사상의 대부인 황장엽이 망명한 이후 주체사상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으로 보십니까. ▲유교수=워낙 오랜 세월동안 유지돼왔기 때문에 황장엽의 망명에도 불구하고 당장 없어지진 않을 것으로 봅니다.현재 김정일은 소위 「붉은 기 철학」과 「고난의 행군정신」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로 보아 김정일은 주체사상을 점차적으로 퇴색시키고 앞서의 두가지 이념을 자신의 새로운 혁명이념으로 수정해 나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김소장=황장엽의 망명이 향후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유교수=기왕에도 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남북관계는 더욱 경색국면으로 빠질 수밖에 없겠지요.황장엽이 서울로 오게 될 경우 북한은 아마도 이 사실을 왜곡,대남 비난에 더욱 열을 올릴 것입니다.그러나 지금까지 북한이 통미봉남 정책을 써온 터여서 더 악화될 것도 없다고 봅니다.하지만 대북 식량지원이나 경제협력같은 것은 당분간 중단될 것으로 봅니다. ○테러 감행 가능성도 ▲김이사장=북한이 황장엽의 망명을 왜곡시킬 것은 자명하고 같은 연장선상에서 남북관계가 더 껄끄러워질 질 것 또한 분명합니다.더 나아가 황장엽의 망명이 북한체제유지를 어렵게 하는 상황으로 발전할 경우 「안되겠다」는 심산에서 DMZ 이남에서 테러를 감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그러나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벌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합니다.특히 북한의 뒤를 봐주고 있는 중국이 있는 한 전면전은 어렵다고 봅니다. ▲김소장=황장엽망명 이후 북한의 대내정책에도 적지않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유교수=주민에 대한 철저한 통제와 사상교육이 실시되고 동시에 제2의 황장엽이 발생하지 않도록 감시의 고삐를 더욱 옥죌 것이 분명합니다.특히 군부로 대변되는 북한 강경파의 대남 적대가 강화될 것이며 더이상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협박과 함께 언제든지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준비가 돼있다는 강경발언으로 우리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심복 중심으로 통치 ▲김이사장=군부의 입김이더욱 강화될 것이며 노동당서열에서 황장엽에 앞서는 원로들의 행보가 어려워질 것입니다.그렇잖아도 혁명1세대를 버거워하던 김정일로 하여금 그들을 멀리할 수 있는 명분을 마련해준 셈이죠.김정일로선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심복들을 중심으로 북한을 꾸려나갈 것으로 봅니다. ▲유교수=사실 김정일은 김일성 세대에 부담을 느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형식적으로 예우는 하되 권력측면에선 거세해 나가고 있는 과정이죠.이에따른 혁명 1세대들의 불만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황장엽도 김정일에게서 느끼는 소외감이 적지 않았을 것이고 그것이 이번 망명을 결심하게 한 동기가 됐을 가능성이 많습니다.〈정리=장수근·유은걸 서울신문국제전략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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