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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별기고]금강호 선상토론에 다녀와서

    200여명의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원들이 지난달 20일부터 3박4일로 금강산을 다녀왔는데,그 첫날밤에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선상토론회가 열렸다.이미 알려진 것과 같이 ‘민화협’은 지난해 9월 이른바 진보세력과 보수세력을 막론한 민간단체들이 모여 조직한 민간통일운동단체이다. 우리 민간운동단체를 진보적 단체니 보수적 단체니 하고 서슴없이 구분하고 명명할 수 있게 된 일에도 격세지감이 있지만,어쨌든 그 때문에 선상토론장에도 이른바 진보적 인사와 보수적 인사가 자리를 함께하여 옛날에는 감히토론으로는 할 수 없는 말들을 얼굴 하나 붉히지 않고 예사롭게 하게 되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어느 고령의 토론 참가자가 북쪽 김일성주석이 사망했을 때 있던 일을 이렇게 회고했다.회담을 약속했던 상대방 정상이 사망하여 성사되지 못하게 되었으니 ‘유감스럽다’ 정도의 의사표시를 남쪽정부가 해야 한다는 말을 공식적으로 표명했다가 날마다 걸려온 항의전화 때문에 온가족이 신경쇠약에 걸릴 정도였다는 것이었다. 아마 이 토론 참석자는 일반적으로 진보적 인사라는 말을 듣지 않을까 하는데,정작 당사자는 언젠가 필자를 보고 “내가 진보적 인사인가요”하며 자문처럼 물은 적이 있었다. 또 다른 고령의 토론 참가자는 김주석이 사망했을 때 ‘백번 죽어 마땅하다’는 글을 썼는데 얼마나 많은 항의 협박전화를 받았는지 모른다고 했다.이토론 참석자는 6 25전쟁 때의 반공 전사의 한 사람이었다고 알려졌는데,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보수적 인사의 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험난했던 근·현대사에 비추어 김주석의 죽음에 유감을 표시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반대로 유감 표시는 천부당만부당할 뿐 아니라 백번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다만 이들 두 유형의 사람들이 금강산 가는 배를 같이 타고 한자리에 앉아서 얼굴 붉히거나 삿대질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거리낌없이 말할 수 있게 된 시대적 변화,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누가 무어라 해도 시대는 변하고 만다는 사실을실감한 일이라 할 것이다.분단 이후 오랫동안,특히 군사독재시대를 통해 백번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민주정권이 정착하면 할수록 유감을 표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점점 일반화해 가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백번 죽어 마땅하다는 생각은 무력통일론이나 흡수통일론의 소산물이라 할 수 있는데 반해 유감을 표시해야 한다는 생각은 비흡수 평화통일론의 소산물이라 할 수 있으며,세상은 어쩔 수 없이 무력통일·흡수통일 지향의 시대로부터 비흡수 평화통일 지향의 시대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역사를 다시 군사독재시대로 되돌려놓지 않는 한 우리 역사는 이제 무력통일·흡수통일 지향시대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설령 군사쿠데타 같은 것으로또다시 되돌려놓는다 해도 그것은 잠시 동안일 뿐이며 역사는 결코 영영 되돌아가지는 않는다.이제 무력통일론이 하나의 유물이 된 것처럼 백번 죽어마땅하다는 생각도 유물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선상토론의 한쪽 자리에 참가했던 필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의 금강산행은 관광여행이 아니라 거대한 비흡수 평화통일 민간운동이다. 7·4공동성명이나 남북합의서 체결 과정에서는 몇사람의 정부쪽 통일교섭 요원이 북쪽을 다녀왔을 뿐이었다.그러나 금강호나 봉래호를 타고 금강산에 가서 북쪽땅을 밟고 그 안내원들과 자연스럽게 만나는 하루 1,000명이 넘는 평범한 남쪽 시민들이야말로 비흡수 평화통일 운동원들이다. 강만길 前고려대 교수·한국사학
  • 故문익환목사 부인 박용길 장로

    “장로님의 금강산 방문을 열렬히 환영합니다.늙으신 몸으로 문목사님의 뒤를 이어 통일을 위해 얼마나 애쓰십니까” 통일꾼 문익환목사의 부인 박용길(80)장로가 금강산에 올랐다.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마련한 ‘평화통일염원 기독교인 금강산방문단’의 일원으로 400여명의 교인과 함께 22∼25일 금강산 관광에 나선 박장로를 금강산 안내원들은 열렬하면서도 정중하게 모셨다.89년 ‘분단의 벽을 허문다’며 밀입북,김일성을 만나 통일에 대해 얘기를 나눴던 문목사가 94년 타계한 이듬해 박장로 자신도 북에 들어가 한달여 머물다 판문점을 통해 남으로 내려와 옥고를치렀다. “올해가 문목사 방북 10주년과 타계 5주기를 맞은 해입니다.통일을 위해애쓰시던 목사님이 길을 트신지 10년만에 이렇게 많은 교인들이 방문하게 됐으니 참으로 감개가 무량해요.이렇게라도 이제 뱃길이 열렸으니 목사님이 그토록 바라던 통일도 머지않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박장로는 팔순의 고령에도 젊은 기자들보다 더 가볍게 구룡폭포와 만물상까지 오르며 문목사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목사님은 학창시절 폐가 나빠 해금강에서 휴양을 했다고 합니다.그래서통일이 되면 당신이 직접 금강산 관광단을 조직해 안내하겠다는 말씀을 하시곤 했지요.금강산에 와보니 우리는 정말 축복받은 민족이라는 생각이 간절합니다.이런 절경과 심성을 가진 우리민족이 일제와 분단으로 이만큼 고생했으니 이젠 통일을 이뤄 우리 힘으로 새로운 세기를 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외세에 의해 조국해방은 됐지만 통일만은 우리 힘으로 준비해 맞자며 문목사가 타계 10일전에 결성한 ‘통일맞이 7천만 겨레 모임’을 맡아 문목사에이어 통일운동을 펼치고 있는 박장로.지난 5년여동안 이 모임을 이끌어오던박장로는 ‘통일맞이 늦봄 문익환기념사업’과 함께 하나로 뭉쳐 통일운동을 펼쳐 나가기 위해 사단법인 설립허가를 얻었다.앞으로 여기서 ‘통일맞이’ 잡지도 내고 통일강좌도 열고 분단현장 여행을 통해 통일기운을 확산시킬예정이다. 朴燦
  • 23일 美한인학생회 세미나

    미국 U.C.샌디에이고대학 한인학생회가 오는 23일 주최하는 ‘남북통일세미나’에 김일성종합대학 학생 10∼20명이 참가한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이 13일 보도했다. U.C.샌디에이고대학 엘런 강 한인학생회 부회장은 이날 RFA와의 회견에서“학생회측이 지난 8개월 전부터 김일성종합대학에 세미나 개최를 제안했으며 10여 차례에 걸친 편지교환 끝에 김일성종합대학측이 세미나에 참석하겠다는 입장을 알려왔다”고 밝혔다.具本永 kby7@
  • 친일의 군상(22회)-독립선언서 기초 崔南善

    육당(六堂) 崔南善을 ‘역사의 저울’에 달면 공(功)으로 기울까,과(過)로기울까? 공과가 교차되는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참으로 어렵다.견해나 입장에따라 한 쪽으로 기울기 쉽기 때문이다.육당 최남선(1890∼1957)이 바로 그런 인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흔히 육당은 3·1의거 당시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독립운동가이자 사학자·문필가·출판인 등으로 알려진 인물이다.70이 안되는 생애를 살다간 그지만 그가 문화사 분야에서 남긴 업적은 결코 과소평가 될 수 없다. 육당은 1907년 18세의 나이로 출판사인 신문관(新文館)을 설립,계몽도서를출판하였다.또 이듬해에는 종합잡지 ‘소년(少年)’을 창간,창간호에 최초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게재한 사실은 우리 문화사 첫 페이지에기록돼 있다. 육당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민족적 면모는 그가 3·1의거 때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사실이다.문체를 두고 지나치게 나약하다거나 한문투라는 비판적인 견해도 있지만 그는 이 일로 31개월간 감옥살이를 하였다.그러나 그는 다른 독립운동가들이받은 건국훈장을 받지 못했다.이유는 간단하다.그의 친일행적 때문이다. 친일파 중에는 초창기 민족진영에서 활동하다가 일제의 탄압이 극심해진 일제말기에 가서 친일로 변절한 사람이 상당수 있다.그러나 육당은 사정이 다르다.1921년 10월 가출옥으로 석방된 그는 출옥 직후부터 일제와 ‘교감’을 하고 지냈다. 출옥 이듬해 그는 16년동안 운영해온 신문관을 그만두고 동명사(東明社)를설립,주간지 ‘동명(東明)’을 창간하였는데 창간과정에서부터 일본측 인사로부터 도움을 받은 구석이 역력하다.출옥후 육당이 일본인 거물인사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대목이 있다. “잡지는 ‘동명(東明)’이라는 이름으로 원서를 제출하였습니다(중략).잡지건은 진력한 성과가 가까운 시일안에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금후의처분은 모든 것을 하나로 하여 선생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일이 없도록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이 편지는 본지가 일본 국회도서관 헌정자료실에서 입수,처음으로 공개하는 것임) 특히 이 편지의 첫 부분과 끝 부분을 보면 정말 이 편지를 육당이쓴 것인지 의심이 갈 정도다.“지난날 (선생께서) 경성(京城,서울)을 출발하실 때부친과 함께 역까지 달려갔습니다만 공교롭게도 정각에 늦어 실례가 많았습니다.”우선 보고(報告)를 드리면서 이것으로 붓을 놓겠습니다.” 이 편지를 받은 사람은 사이토(齋藤實)총독의 정치참모이자 총독부 일어판기관지 ‘경성일보(京城日報)’의 사장을 지낸 아베(阿部充家)였다.‘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애국지사 육당 최남선의 면모는 이미 보이지 않는다.3·1의거가 발생한지 불과 2년 9개월만의 일이다. 육당이 친일대열에 본격적으로 합류한 것은 1928년 10월 총독부의 역사왜곡기관인 ‘조선사편수회’의 편수위원직을 수락하면서부터다.조선사편수회는1911년 총독부가 ‘구습(舊習)제도의 조사와 조선사 편찬계획’을 목표로 발족한 단체.본래 목적은 조선을 영구히 강점하기 위해 조선인을 일본인으로개조한다는 ‘동화주의(同化主義)’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따라서 여기서 편찬하려는 조선사는 식민사관에 의한 조선사 왜곡이 주목적이었다.육당은 편수위원으로 위원회활동에도 참여하였으며 실무자로 직접편찬작업에 참여하기도 하였다(1928년∼36년).이밖에도 그는 총독부가 위촉하는 여러가지 위원직을 수락,일제에 협조했는데 이 공로로 그는 중추원 참의(주임관 대우·1936.6∼38.3)를 지냈다. 육당의 대표적인 친일행적중의 하나는 만주에서 있었다.중추원 참의를 물러난 직후인 1938년 4월 그는 만주행에 올랐다.처음 맡은 직책은 만주의 친일지 ‘만몽일보(滿蒙日報)’의 고문자리였다.원래 이 자리는 秦學文이 있던자리였는데 진씨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자 그 자리를 물려받은 것이다.1년뒤그는 다시 만주국의 엘리트 양성기관인 건국대학(建國大學) 교수로 부임하였다.대우는 칙임(勅任)교수에 월급은 400∼500원으로 최상급이었다.(‘삼천리’1938년 5월호). 사학자로 육당과는 절친한 친구였던 위당(爲堂) 鄭寅普선생이 그의 집 대문앞에 술을 부어놓고 “이제 우리 육당이 죽고야 말았다”며 대성통곡을 한것은 그가 건국대학 교수로 부임한 것을 두고 한 것이었다.육당은 이 대학예과에서 만몽(滿蒙)문화사를 강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건국대학 교수 재직중 그는 1940년 10월에 조직된 ‘동남지구 특별공작후원회본부’의 고문직을 맡기도 했다.이 단체는 일본 관동군의 반공·선무(宣撫)공작을 지원한 친일단체로 독립군과 항일빨치산을 상대로 한 귀순공작이 주임무였다.이 단체의 총무 朴錫胤은 육당과 처남-매부간으로 나중에만주국 외교부 조사처장,‘매일신보’ 부사장 등을 지냈다. 육당의 친일은 일제 말기까지 계속됐다.4년 7개월간의 만주생활을 청산하고 1942년 11월 귀국한 그는 칩거하면서 집필활동에 전념하였다.그러던중 이듬해말 총독부의 부탁으로 李光洙 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인 유학생들을 상대로 학병지원을 권유하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훗날 육당은 자신의 학병권유가 마치 조국의 광복을 대비하여 ‘민족 기간요원 양성’을 위한 행위였던 것처럼 변명하고 있지만 이는 설득력이 없다.속으로는 일제패망을 확신하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당시 그는 일제의 필승을 장담하면서 대일본제국의성전(聖戰)을 위해 조선청년들이 전쟁터로 나가 죽어야 한다고 공언했다. 여기서 재미있는 일화 한 토막을 소개하면,그는 학병권유를 한 반면 그의 3남은 그와 정반대편에 서 있었다는 사실이다.경도(京都)상고 출신으로 동경(東京)제대 법학부에 재학중이던 그의 3남 漢儉(1922∼?)은 학병출진을 끝까지 거부하다가 해방을 맞았다.해방후 월북하여 문학대학·김일성대학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던 그는 부친의 친일행적 때문에 적잖은 곤욕을 치뤘다고 한다(북한 고위직 출신 신모씨 증언). 49년 1월 초부터 반민족행위자 검거에 나선 반민특위는 2월 들어 문화계 인사를 손대기 시작했다.2월 7일 마침내 육당의 우이동 집에 특위 조사관들이들이닥쳤다.자택에서 ‘조선역사사전’의 원고를 집필중이던 그는 “시대적현실을 역행할 수 없다”며 순순히 체포에 응했다.같은 날 세검정에서는 춘원 李光洙가 체포됐다.일제하 문화계의 양대 거물이었던 두 사람이 ‘역사법정’에 끌려나온 것이다. 마포형무소 수감시절 육당은 ‘자열서(自列書)’라는 일종의 ‘반성문’을쓰기도 했다.“내가 변절한 대목,즉 왕년에 신변의 핍박한사정이 지조냐학식이냐의 양자중 하나를 골라잡아야 하게 된 때에 대중은 나에게 지조를 붙잡아라 하거늘 나는 그 뜻을 휘뿌리고 학업을 붙잡으면서 다른 것을 버렸다.대중의 나에 대한 분노가 여기서 시작하며 나오는 것을 내가 잘 알며 그것이 또한 나를 사랑함에서 나온 것도 내가 잘 안다” 양자택일의 기로에서 학문을 위해 지조를 버렸다.이 선택을 그는 ‘변절’이 아닌 ‘방향전환’이라고 했다.명색이 학자를 자처한 그가 지조와 학식을 별개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그에게 지조있는 지식인이 되어줄 것을 기대한 자체가 조선동포들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심산 金昌淑선생이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을 때의 일이다.한번은 전옥(典獄,교도소장)이 육당이 쓴 ‘일선융화론(日鮮融和論)’을 갖고 와서는 읽고 감상문을 쓰라고 했다.심산은 첫 몇 장을 읽고는책을 전옥에게 던지며 이렇게 호통쳤다.“나는 반역자가 미친 소리로 요란하게 짖어대는 흉서(凶書)를 읽고 싶지 않다.기미년 독립선언서가 남선(최남선)의 손에서 나오지않았는가.이런 사람이 도리어 일본에 붙어 역적이 되었으니 비록 만 번 죽여도 그의 죄가 남는다”고.
  • ‘99 ‘북한인명사전’ 개정·증보판

    김정일을 떠받들며 북한을 움직이는 김정일의 측근들과 당정군(黨政軍) 주요 인물 등 1만6,000명의 신상을 자세히 소개한 북한인명사전 99년 개정·증보판이 나왔다. 종합일간지로는 유일하게 대한매일신보사가 매년 펴내고 있는 이 인명사전에는 지난해 9월5일 최고인민회의 제10기회의에서 단행된 권력체계의 대폭적인 개편에 따라 급부상한 군부 실세와 새로 등장한 인물들의 인적사항이 빠짐없이 수록돼 있다. 특히 김정일이 명실상부한 자기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선대 김일성의 사람들인 원로들을 후선으로 퇴진시키는 세대교체를 통해 핵심 요직에 포진시킨 김정일의 사람들과 물갈이를 통해 내각과 최고인민회의에 입성한 새 인물들의 신상과 활동사항이 자세히 정리돼 있다. 지난 90년 첫판을 낸 이래 판을 거듭할 수록 내용이 충실해지고 있는 99년판 북한인명사전엔 대폭 개편된 북한의 권력체계가 알기 쉽게 도해돼 있으며 지난해에 수정된 북한 헌법을 비롯 북한의 경제개방과 관련된 19개 법령이부록에 실려있다.아울러 노동당의 들러리 당인 사민당을 비롯 노동당의 지시에 따라 대남공작 및 선동에 나서는 외곽조직과 사회단체들이 모두 수록돼있다. 국민의 정부가 이른바 햇볕정책으로 북한을 포용하기 시작하자 금강산관광을 허용하는 등 변화의 조짐을 보이면서도 뒤로는 변함 없이 간첩선을 밀파하는 이중전술을 구사하고 있는 북한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 지 모르는 불투명한 상황에서 대폭 증보된 북한인명사전은 ‘북한 바로 알기 길잡이’로써북한을 연구하고 통일을 준비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대한매일신보사 펴냄 ·4·6배판 1,447쪽·가격 10만원.
  • “南韓 외래어 남용 너무 심해요”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려면 남한에서 공부해야 된다는 점을 느꼈습니다.북한과 비교해 시설 뿐만아니라 다양한 문화·역사를 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7월 정부 초청으로 경희대 국제교육원에서 한국어 연수를 마치고 21일 중국으로 돌아가는 쟝지안이씨(張湘恰·27·여·길림대학원 한국어과).쟝씨는 지난 95년 10개월 동안 김일성대학에서도 한국어를 배워 남북한 교육의 차이점을 체험했다. “남한 대학에는 첨단 과학기기와 교육 프로그램이 많아 연수에 큰 도움을받았습니다” 쟝씨는 남북한간의 생활수준 차이가 크다는 점을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며 놀라워 했다. 그는 대학의 교육프로그램에도 남한쪽이 다양한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한다.하지만 쟝씨는 남한이 북한과 비교해 무비판적으로 외래어를 남용하고 있는점은 언어 교육에 큰 문제점이라는 지적을 잊지 않았다.李鍾洛 jrlee@
  • “北 정치범수용소에 어린이 수천명”/탈북 姜哲煥씨 佛紙와 회견

    ◎일부는 태어나면서부터 수감 【파리 연합】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는 많은 어린이들이 무기한으로 수용돼 있으며 이중 일부는 태어나면서부터 갇혀있다고 지난 92년 북한을 탈출한 姜哲煥씨(30)가 밝혔다. 姜씨는 24일 프랑스 리베라시옹과의 회견에서 자신이 10년간 생활했던 수용소의 수용인 1만5,000∼2만5,000명 중 4분의 1 내지 3분의 1이 16세 이하 어린이였다고 증언했다. 지난 12일 파리에서 열린 ‘아시아 민주주의자 회의’에서 유럽에서는 처음으로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인권탄압 실태를 폭로하기도 했던 姜씨는 이 어린이들 대부분이 부모가 저지른 ‘정치적 실책’ 때문에 수용됐다고 말했다. 그는 반혁명 분자의 가족은 규정상 3대에 걸쳐 벌을 받게 돼있다고 전하고 정치적 실책에는 김일성 동상에 침을 뱉거나 당 간부에게 무례하게 대하거나 불법 상행위를 하는 것도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또 정치범 수용소에는 기독교 신자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고 말하고 북한은 모든 종교를 인민의 아편으로 보고있다고 덧붙였다.
  • 金勳 중위 사망의혹 파문­변용관 상위 귀순 당시 조사내용 공개

    ◎3단계 포섭 방법·접촉 원칙/北 적공조 공작 상세히 진술/작년 김일성 생일에 한국군 사병이 화분 보내/93년 이전 4명 와전 포섭 JSA(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북한측 경비병들이 우리 장병에 대한 포섭을 시도해 온 사실을 군 수사당국이 묵살했음을 입증하는 자료가 공개됐다. 10일 공개된 기무사의 지난 2월 ‘변용관 상위(25)에 대한 신문조사 자료’에는 ‘97년 4월15일 金日成 생일에 한국군 사병이 축하 화분과 족자(자필 서예품)를 건넸다는 말을 다른 공작조원에게서 들었다’는 등 북한 대남심리전 특수요원과 우리 장병간 접촉이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다. ●야간에는 감시가 소홀한 곳을 골라 1대 1로 접촉할 것 등 접촉원칙 및 ●1단계 5∼10회 만나면서 단순한 친분 상태를 유지 ●2단계 10∼30차례 만나며 대상자에 대한 번호와 가명 부여 ●3단계 대상자 신상자료 수집 후 상부 보고 등의 ‘포섭방법’도 구체적으로 기술돼 있다. 변상위는 “4개 소대 가운데 金榮勳 중사가 소속됐던 2소대 근무자들의 접촉이 가장 쉬웠다”고 진술했다. 자신도 1년간 근무하면서 모두 3명의 카투사와 접촉했다고 밝혔다. 또 “처음 JSA에 전입해 교육을 받을 때 ‘93년 이전까지는 공작활동이 활발해 4명이나 완전히 포섭할 수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기무사는 당시 “변상위를 신문한 결과 북한측 ‘적공조’들이 실적 과시 또는 상부의 문책을 두려워한 나머지 과장해서 보고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JSA 장병들의 의식성향과 근무여건 등을 고려할 때 포섭됐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면서 “재발 방지 차원에서 접촉방지교육과 방첩활동을 강화하겠다”고 보고했다. 당시 JSA에 근무했던 장병 200여명에 대해 서면으로만 조사한 뒤 보고서를 기무사령관에게만 보고하고 사건을 자체 종결했다. 이처럼 변상위의 진술을 통해 북측의 대남 포섭공작이 확인됐는데도 서둘러 수사를 종결한 군 당국은 직무를 유기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나아가 간첩활동을 방조했다는 비난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다.
  • 북한 주민 추정 변사체 발견

    지난 9일 오후 4시쯤 경북 영덕군 강구항 동쪽 60마일 해상에서 북한에서 떠내려온 것으로 추정되는 남자 시체 1구가 발견됐다. 군경 합동신문조 관계자는 “사체에서 김일성배지가 발견됐다”면서 “북한의 어민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 北韓의 자본주의 연습/張淸洙 논설위원(外言內言)

    일본 후쿠야마 교수는 저서 ‘역사의 종언’에서 사회주의 경제는 이론과 현실적 모순관계로 인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사회주의 종주국인 소련은 경제적 실패로 67년만에 공산주의 몰락으로 끝났다. 20세기 동서의 심각한 이데올로기 패권다툼은 자본주의 경제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는 평가다. 얼마 전부터 동토의 사회주의 북한땅에도 자본주의 경제바람이 불기 시작해서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김일성종합대학에 자본주의 경제학 강좌가 개설됐으며 이 강좌에는 미국 하버드대 전문가들도 참여하고 있다. 북한이 공개적으로 자본주의 경제학을 수용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로 새로운 변화의 모색이라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최근 북한의 이같은 움직임은 경제개혁을 위한 사전준비 작업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북한 정치·경제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수출확대가 필수적이라는 인식아래 이를 위한 인력 양성에 목적을 갖고 있다고 본다. 북한의 의도가 어디에 있건 간에 자본주의 경제학을 배우겠다는 변화움직임은 환영할 일임에는 틀림없다. 시장경제에 대한 북한지도부의 인식전환이라는 점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나진·선봉을 자유경제무역지대로 지정한 것이나 금강산 관광사업을 허용한 것도 이같은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북한이 내년 3월 중국식의 개혁·개방정책을 선언할 것이라는 점도 같은 맥락에서 볼수 있다. 특히 북한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가 초래한 경제난국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방식 차용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보면 때늦은 감은 있지만 현명한 선택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장기적 안목에서 고통과 부작용이 따르더라도 과감한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중국이 지난 78년 자본주의 시장경제원리를 차용한 이후 경제성장 기반을 확충했고 특히 지난해 말로 경제특구 3억 인구의 1인당 국민총생산(GNP)을 2,800달러까지 올려 놓은 경제성장실적을 소중한 교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북한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인식해야 할 정책과제는 한국이 이룩한 경제성장의 발전전략과 풍부한 개발경험을 직접 보고 배우는 일이다.
  • 崔章集 위원장 강연… 사상논쟁 등 견해 밝혀

    ◎“나는 개혁적 자유주의자”/특정언론 기준따른 사상검증 동의 못한다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의 崔章集 위원장(고려대 교수)은 26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독언론인모임 주최 조찬강연에 참석해 최근 월간조선과의 사상논쟁,‘국민의 정부’의 개혁방향 등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崔위원장은 “자유민주주의자요,개혁적 자유주의자”라고 스스로의 정치적 이념을 규정하면서 “북한의 권력체제는 전근대적,봉건적 권력구조와 스탈린주의가 결합해 나타난 변종으로 보는 것이 일관된 입장”이라고 밝혔다. 崔위원장은 또 한나라당 金光元 의원이 전날 국회 예결특위에서 “제2의 건국 운동이 전국적 정당을 창당하려는 정치적 의도를 갖고 추진되고 있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정책기획위가 청와대에 보고한 문건의 내용은 정치개혁 차원에서 우리나라 정당이 지역당 구조를 극복하고 전국당 체제로 나가야 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崔위원장은 또 “정책자문위가 청와대에 보고했다고 金의원이 공개한 문건의 내용도 이미 지난달 2일 제2의 건국범국민추진위 창립대회 당시 배포된 책자에 있었다”면서 “이를 마치 정치적 의도를 갖고 제2의 건국 운동이 추진되고 있는 것처럼 말한 것은 공직자인 국회의원으로서 무책임한 행위”라고 비난했다. ●자유민주주의자,개혁적 자유주의자 사이의 차이는. 자유민주주의자라는 것은 추상적인 표현이고,개혁적 자유주의는 좀더 구체성을 가진 표현이다.우리나라에서 자유주의는 도덕적 반공주의 관점으로 수용되어 보수적인 성격이 강한 게 사실이다.반공 위주의 체제하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개혁적 자유주의자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조선일보측은 공직자로서의 사상 문제를 제기한다는데. 그런 입장에 동의할 수 없다.학자로서 문제가 없다면 공직자로서도 문제가 없어야 한다.학자로서 전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사상과 양심,종교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원리인데 사상검증을 이유로 공직 적합·부적합을 판단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를 부정하는 전체주의적 방식이다.더구나 극단적인 보수주의를 지향하는 특정언론의 기준에 의해 제기되는 사상검증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탈리아 공산당의 이념적 지주인 안토니오 그람시의 이론을 소개하고 그에 따라 진지전을 구축해 결정적 시기에 사회변혁을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가. 그람시 이론을 한국정치이론에 처음 소개한 것은 사실이다.노사정위원회를 낳은 기본이론인 조합주의도 내가 소개한 것이다.그런데 어떤 이론을 소개했다고 해서 그 주의자라고 보면 곤란하다.그람시를 얘기했다고 해서 빨갱이가 아니냐는 질문은 우리 사회의 척박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회와 사상’ 91년 가을호에 실린 논문에서 그람시의 진지전이 우리 사회 민주변혁의 전략적 경로라고 주장한 것을 볼 때 좌파라고 인정할 수 있는 것 아닌가. 80년대 사회과학의 개념이나 용어를 군부독재와의 투쟁무기로 사용해 썼던 적이 있다.서구사회라고 가정할 때 좌파나 우파라는 개념은 도덕적으로 나쁠 게 없다.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좌파라는 말이 정치적 용어로 변질되어마르크시스트,나아가 친북주의자,김일성주의자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우리 사회가 종교전쟁같은 감정과 신념의 대결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용어를 받아들일 수 없다. ●제2의 건국 운동은 새마을 운동과 어떻게 다른가. 새마을 운동은 상당히 좁은 틀에서 구체적인 일을 시작한 것이지만,제2의 건국 운동은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있기 때문에 개혁의 과제와 범위가 대단히 넓다.때문에 조금은 추상적으로 보일 가능성이 있다.점차 구체적 실천프로그램을 만들고 실천해 나갈 것이다.
  • 활짝 열린 금강산뱃길­이모저모

    ◎“금강산은 신의 솜씨” 감탄 절로/옥류동계곡은 볼때마다 새로워/장전항에 ‘관광객 환영’ 현수막/등산로 철사다리·보호막 시설 금강산 시험관광을 마치고 16일 돌아온 관광객들은 한결같이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예찬했다. ●관광객들은 금강산을 직접 본 느낌을 묻는 보도진의 질문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절경”이라면서 “알프스나 록키산맥에 비할 바가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전인관광 대표 趙海善씨(47)는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금강산은 이리 보고 저리 보고,좌로 우로 돌아봐도 정말 아름다운 산”이라고 극찬했다. 지난달 30일부터 5박6일의 일정으로 금강산을 다녀온 적이 있다는 관광안내조장 운영위원장 梁承奉씨(55)는 “두번째 본 금강산이지만 옥류동 계곡은 전혀 새로운 느낌이었다”면서 “등산로의 철사다리와 보호막 등 시설도 잘 보완돼 있었다”고 밝혔다. ●북한측은 장전항 선박계류장에 ‘금강산 관광객들을 동포애의 심정으로 환영한다’는 현수막을 내걸었지만 주민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고 관광객들이 전했다.관광객들은 “북한 입국 때부터 떠날 때까지 감시당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장전항에서 온정리,금강산 입구까지 버스로 이동하는 길 옆에는 50∼100m 간격으로 북한 군인들이 서 있었으나 총은 없었다”고 말했다. 현대건설 洪사성 상무(47)는 “장전항에는 구축함 4대가 정박해 있었는데 군인들이 훈련하는 장면이 종종 눈에 띄었다”고 전했다. ●관광객들은 “주민들과 아이들은 한결같이 깡마른 모습이었으며,허름한 옷차림 등 겉모습만으로도 어려움을 금세 알 수 있었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관광객들에 따르면 장전항 기념품가게에 있는 특산품은 대나무 지팡이,참빗,나무로 된 담배파이프 연필꽂이 등 4∼5가지에 불과했으며 값은 미화로 2∼5달러였다. 점원들은 2달러를 ‘둘 달러’,5달러를 ‘다섯 달러’ 등으로 불렀다. 한 점원은 “관광이 시작되면서 바뀐게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14일부터 항구 주변 마을에 전기가 공급된 것이고,또 하나는 온정리로 가는 길 옆에 흙벽돌로 지은 새 집이 들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금강산 곳곳에는큰 바위에 ‘김정일 탄생기념’‘김일성 수령 만세’ 등 金日成 부자를 찬양하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글귀는 큰 바위에 붉은 색으로 칠해져 있었으며 깊이가 1m가 넘는 것도 있었다고 관광객들은 전했다.
  • 월간조선 판매금지 가처분 결정문 요지

    법원이 11일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 崔章集 고려대 교수가 조선일보사를 상대로 낸 ‘출판물 발행·판매·배포 등 금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이면서 내린 결정문을 간추린다. 언론·출판도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아니되므로 고위 공직자의 신념에 대한 평가를 내용으로 하는 보도라고 하더라도 헌법과 법률이 허용하는 한도를 벗어나 사실과 다른 허위 내용을 보도한다든지 사실을 보도하는 경우에도 대상 인물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명예훼손적 사실을 주장함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더구나 남북이 분단되어 대치하고 있는 특수한 정치적 상황과 반국가 단체를 찬양하고 고무하는 경우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되는 우리 법체계를 감안하면 어떤 사람이 공산주의,사회주의 혹은 김일성주체사상을 신봉한다는 주장은 물론 단지 그에 동조한다거나 좌파적 또는 친북한적이라는 정도의 표현만으로도 인격권을 침해할 수 있다. 또 전체 저서의 일부를 발췌한 기사의 경우 전체를 읽어본 적이 없는 독자들은 그 흐름과 맥락을 알지 못하고 발췌된 부분만 읽음으로써 사실적 주장의 대상이 된 사람에 대한 그릇된 인상을 가질 수도 있는 경우 역시 명예훼손도 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문제가 된 월간조선 11월호 기사 및 표지와 목차를 보면 목록 기재 부분은 신청인의 저서인 ‘한국민주주의의 조건과 전망’과 ‘한국민주주의의 이론’의 일부를 인용한 것이기는 하나 앞뒤 문맥에 비추어 신청인의 의도를 왜곡하고 신청인을 더 좌파적 인물로 묘사해 명예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보여진다.“…김일성은… 그의 우세에 대한 지나친 과신이 그를 전쟁을 통한 총체적 승리라는 유혹에서 헤어날 수 없게 하였고”라고 돼 있고 그 뒤에는 “무엇보다도 김일성의 오판을 유도했던 요소는…”이라고 표현해 김일성의 전면전 결심이 잘못된 판단임을 밝히고 있다.그렇다면 ‘역사적 결단’이라는 문구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훌륭한 결단’의 뜻이 아니라 ‘역사에 중대한 영향을 줄 선택’ 정도의 가치중립적 표현임에도 독자들에게 신청인에 대한 그릇된 인상을 부여할 수 있는 결과를 초래했다. 월간지 목차에는 “남진은 민족해방전쟁…”이라는 부분이 있고 기사에도 “최위원장은 그의 책에서 ‘개전 초기 한국전쟁은 민족해방전쟁이었으며…’라는 요지로 해석했다”는 부분이 있다.그러나 신청인은 한국전쟁을 네가지의 시기로 나누고 각 시기마다 고유의 성격을 부여하면서 “첫번째 시기에서의 전쟁은 전쟁을 유발한 북한 지도부가 기본적으로 믿었던 바의 ‘민족해방전쟁’이었던 반면…”이라고 논술하고 있다.따라서 신청인은 ‘민족해방전쟁’이라는 용어를 ‘북한 당국자들이 생각했던 한국전쟁의 성격’으로 사용한 것이 명백함에도 신청인의 생각인 양 그릇된 인상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북진의 가공할 사태’ 역시 ‘조건과 전망’에서 이 사건 기사와 정확하게 동일한 표현을 사용한 바는 없으며,저서를 통해 볼 때 문맥상 ‘3차 대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따라서 북진 자체가 가공할 사태라는 의미가 아님이 분명함에도 독자들로 하여금 신청인에 대한 그릇된 인상을 가지게 했다.
  • 과제(다시 태어난 ‘대한매일’:19·끝)

    ◎민족정론지 체계적 해석 필요/언론·정신사적 측면서 새 연구 첫발 디딜때/창간∼15호 찾기 급선무/北韓도 ‘대한매일’ 평가 남북 공동연구 가능할듯 대한매일신보는 대한제국 말기 국운이 풍전등화이던 1904년 7월18일 창간,두차례의 휴간에 이어 1910년 8월29일 한일합방과 함께 강제 폐간됐다. 모두 6년1개월10일을 존속,전체 지령 1,651호를 발간해오면서 매 지면 구성을 항일구국의 정신으로 일관했다. ‘저항’‘구국(救國)’‘우국(憂國)’‘개화’의 4대정신으로 요약되는 보도내용은 물론 대한매일은 근대적 신문의 모든 요소를 완벽히 갖춘 상업지의 성격을 분명히 해왔다. 논설 뉴스 외신 소설 등의 지면 형태를 비롯,월정 구독료 징수,광고비 안내및 광고게재,전국적인 지사운영 등. 이같은 측면에서 볼때 대한매일은 대한제국 말기의 귀중한 정치적 사회적 역사적 연구의 1,2차적 사료가 됨은 물론 한일합방 과정 연구에 있어서도 필수적인 사료가 된다. 그동안 대한매일에 실린 600여편의 가사(歌辭)와 16편의 연재소설은 우리 국문학 연구에 빼놓을 수 없는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그밖에 신문학적 연구에 있어서도 근대신문의 형태를 거의 완벽하게 갖추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대한매일 발행인 배설의 재판을 둘러싼 영국과 일본,그리고 대한제국의 국제법적 논쟁에 대한 상세한 보도는 20세기초 근대외교사 연구의 자료로서의 가치도 높여주고 있다. 그러나 대한매일의 이같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연구는 매우 미미하다. 단행본 3권과 학위논문 20여편이 고작이다. 단행본은 ‘대한매일신보연구’(이광린 유재천 김학동 공저 1986)‘제국주의와 언론­배설·대한매일 신보 및 한·영·일 관계’(구대열 1986)‘대한매일신보와 배설’(정진석 1987)이 있다. 학위논문도 대부분이 석사학위 논문으로 국문학적 측면에서의 연구이고,의병·자주의식·산업진흥·광고 등에 관한 것들도 있다. 이제 대한매일의 재탄생을 계기로 민족정론지로서의 대한매일에 대한 체계적이고 새로운 연구가 요청되고 있다. 이는 단지 언론학적인 측면에서가 아니라 민족정신사적 측면에서도중요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이같은 대한매일에 대한 새로운 연구작업에 북한과의 공동작업이 기대된다는 사실이다. 물론 남북한 간의 언론에 대한 관점과 역사해석이 다르기 때문에 남북한의 언론 100년사는 상호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그러나 대한매일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는 대부분 남북한이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한매일신보에 대한 북한측의 해석은 북한 김일성종합대학 부교수 리용필이 1985년 펴낸 ‘조선신문 100년사’(정진석 해제,나남 1993)에 잘 정리돼 있다. 이 책 제1편 ‘우리나라 근대및 일제통치하의 부르죠아’의 제2장 ‘애국문화운동의 전개와 근대 부르죠아신문의 발전’편 40여 페이지에 걸쳐 상세하게 기술돼 있다. 독립신문이 창간된 1896년부터 1910년 한일합방까지의 시기를 포함하고 있는 이 장에서 대한매일을 ‘애국적 정론가들의 주동적인 참가 밑에 창간’,‘일제침략자들과 그 앞잡이 매국도배들을 반대배격하는 데서 비교적 예리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 인민의 반일애국투쟁이 더욱앙양되고 있었던 력사적 시기를 배경으로하여 발간됐기 때문’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대한매일의 출현으로 하여 이 시기 우리나라 신문발전 력사는 정론적 수준의 가일층 제고로서 특징지어지게 됐다”고 평가하며 많은 논설과 가사 등을 소개하고 있다. 결국 대한매일에 대한 남북한의 이같은 일치된 해석은 언론학 또는 항일투쟁사의 해석에 있어 남북한 간의 공통분모를 형성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대한매일의 공동연구는 남북한 간 언론학 뿐 아니라 일반 학문교류에 있어서의 단초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매일에 대한 남북한 공동과제는 아직 찾지못한 1904년 7월18일 첫 창간호부터 15호까지의 신문을 찾는 일이다. (현재 영인본은 16호부터 돼있으며 1905년 8월11일 재창간호를 대외적인 창간호로 하고 있음) 북한이 그 신문들을 보관하고 있다면 우리와 영인본을 교환할 수도 있으며 또 대한매일신보사의 당시 50여개 지사 가운데 북한에도 상당수가 있었기 때문에 북한땅 어디엔가 대한매일의 귀중한 자료들이 흩어져 있을지도모른다. ‘다시 태어난 대한매일’연재를 마치며 이같은 민족 공통분모찾기에 북한측의 적극적인 동참을 촉구한다.
  • 계간‘인물과 사상’ 진중권씨 ‘김일성과 박정희,황장엽과 조갑제’

    ◎극우파·전체주의자는 한배에서 나온 형제/한국적 민주주의·조선식 사회주의 닮은점 많아/오제도 변호사·황장엽씨 의형제 ‘어울리는 만남’ 전북대 강준만교수가 펴내는 계간지 ‘인물과 사상’(개마고원 펴냄) 8권이 나왔다. ‘출판의 언론화’,‘1인 저널리즘’을 표방하며 지난 96년 10월 첫권이 나왔으니 창간 두돌을 맞은 셈이다. 이번 호에서는 진중권씨(베를린 자유대 박사과정)의 ‘김일성과 박정희,황장엽과 조갑제’가 눈길을 끈다. 진씨는 황장엽씨와 월간조선 편집부장 조갑제씨의 글을 통해 민족의 ‘주체성’을 강조한 박정희의 ‘한국적 민주주의’와 ‘주체’의 조국 김일성의 조선식 사회주의 사이에는 놀라운 유사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황씨는 김일성 주체사상의 이론가,조씨는 박정희 대통령 신봉자라는 것이 진씨의 설명. 진씨는 “시위와 파업은 인민에게 큰 손실을 줄 뿐아니라…폭력적으로 지도권을 장악할수 있다…폭력을 쓰는 자에 대하여는 폭력을 적용해야 하며 총살까지 해야 한다”(황장엽),“60∼70년대의 한국은 서구와 사회발전단계가 다르기 때문에 서구식 민주주의를 도입할수 없고…국민의 자유와 평등을 제한해야 한다”(조갑제)는 글에서 주체사상의 전체주의적 역사관과 박정희의 파시스트적 역사관은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말한다. 진씨는 “이처럼 극우파와 전체주의자들은 한배에서 나온 형제이기 때문에 반공검사로 유명한 오제도 변호사와 황장엽씨가 의형제를 맺은 것은 잘못된 만남이 아니라 어울리는 만남”이라고 꼬집었다. 이번 호에는 또 참여연대가 특별검사제를 도입하기 위해 개혁대상인 한나라당과 손을 잡는 것은 제도 만능주의라며 참여연대의 제도결정론을 비판한 ‘김대중 정권을 어떻게 지지하고 비판할 것인가’(강준만),영어공용화 논쟁과 관련,먼 미래에는 민족어와 영어가 공용어로 되는 이중언어사회가 될 것이라는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고종석)도 실려 있다. 강 교수는 머리말에서 “한국에선 이데올로기 이전에 연고주의가 모든 걸 결정한다”며 “인물 자체를 개입시켜 평가하고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1차적인 힘인 연고주의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해 인물과 사상의 무게중심이 어디를 지향하고 있는지를 제시했다. 그는 이어 “한국의 지식인들은 지독한 권위주의를 버리고 자성해야 한다”며 “내년 초에 나올 9권부터는 수구기득권 세력에 속하는 지식인들의 위선과 기만 폭로에 주력할 것”이라고 앞으로의 방향을 소개했다.
  • 言改連,‘崔章集 교수’ 건국사관 관련 토론회 요지

    ◎“남북대결·보수세력 비판 ‘친북 좌익’ 운운은 어불성설”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인 崔章集 교수(고려대 정치외교학과)의 저술을 둘러싼 월간조선의 보도와 관련,언론개혁시민연대(언개연·이사장 金重培)는 2일 한국프레스센터 12층 한국언론연구원 회의실에서 열렸다. 계명대 사회학과 李鍾旿 교수의 ‘학문·사상의 자유와 崔章集 교수 현대사연구 왜곡보도사건­민주주의와 문명에 대한 도전’이라는 주제발표문을 간추린다. ‘6·25는 김일성의 역사적 결단’이라는 부제가 붙은 월간조선 11월호 기획기사로 한국사회는 다시한번 ‘사상논쟁’을 겪고 있다. 한국사회에서는 지식인에 대한 공안사건이 일정한 주기를 두고 발생하고 있다. 과거에는 지식인의 지적 작업에 대한 공안적 접근의 주체가 국가기관이었다면 이번에는 조선일보가 주체로 등장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현 정부는 대북,통일 정책에서 과거와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른바 ‘햇볕론’에 입각한 대북 포용정책이다. 이는 남북의 내부에 다같이 존재하는 냉전체제의 해체를 가져올 수 있다. 政周永 현대 명예회장의 ‘소떼몰이’와 금강산관광 역시 이런 변화를 예감케 한다. 남북의 수구세력은 이런 변화를 비판하며 분단체제를 고집하고 있다. 햇볕론에 대응하는 남북의 보수대연합이 형성돼 있다고 할 수 있다. 崔교수의 논저가 이른바 ‘친북 좌익’ 기조에 서 있지 않음은 일일이 해명할 필요조차 없다. 그의 논저는 남북의 냉전세력에 대한 비판과 극복을 기본정신으로 하고 있다. 본질은 남한의 보수세력이 한국 정부의 개혁정책과 탈냉전 평화주의에 대한 전면적 부정과 도전을 개시한 것이다. 냉전체제의 해체로 자신의 입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세력의 얼토당토않은 사상논쟁이며 기존의 냉전체제,남북대결 구조를 그대로 가지고 가겠다는 의도의 반영이다. 실제 崔교수는 논문에서 한국전쟁의 해석보다 훨씬 더 많은 면을 한국민주주의의 문제에 관해 할애했다. 문제가 된 저서명이 ‘한국민주주의의 이론’,‘한국 민주주의의 조건과 과제’라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조선일보는 그의 민주주의관이나 노동운동에 관한 부분은 차치하고 몇가지 어구와 문장을 차출해 보수 진영을 감정적으로 자극,선동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상논쟁이 그랬듯이 혀재의 사상논쟁도 토론이 아니라 선동으로 논리가 아니라 감정에 의거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다원성이 허용된다. 진보와 보수가 다같이 시민권을 누리고 있다. 진보나 보수만의 배타적 시민권을 주장하는 것은 사회를 다시한번 이념적 독재 혹은 전체주의 사회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崔교수 사건은 한국 사회가 문명으로 갈 것이냐 혹은 야만으로 남을 것이냐의 분수령을 이룰 것이다. 한국의 집권세력,지식인,시민사회는 이 문제를 진보와 보수의 대립으로만 보지 말고 민주주의와 문명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상정,진지하게 대처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문명에 대한 위해를 가져오는 극단세력에 단호하게 대응 다수의 대중이 극우의 선동에 포로가 되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
  • 매카시 망령 무엇을 노리나/金三雄 상무·주필(時論)

    우리 시대의 대표적 정치학자로 꼽히는 崔章集 교수의 사상이 의심스럽단다.지금까지는 멀쩡하다가 金大中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에 취임하면서 그의 사상이 도마위에 올랐다. ○일부 언론 ‘사상 칼춤’ 그것도 검찰이나 정보기관이 아닌 월간조선이 칼질을 시작했다. 5년전 金泳三정권 초기 총리 겸 통일원장관에 취임한 韓完相 교수를 사상 문제를 제기하여 결국 퇴진시킨 바 있는 일부 언론이 다시 ‘사상 칼춤’을 추고 나섰다. 金泳三 정권은 韓부총리의 퇴진을 계기로 개혁이 좌초되면서 수구세력에 둘러싸여 참담한 국정실패를 가져왔다. 이런 경험을 가진 국민들은 崔교수에 대한 ‘사상 칼춤’이 무엇을 노리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1950년대 미국사회에 용공선풍을 일으켰던 매카시는 교묘한 과장법으로 상대를 공산주의자로 몰아갔다. 정보관련기록의 ‘반역’을 ‘반역자’로 묘사하고, ‘피의자’는 ‘중요한 피조사자’,‘러시아 이름을 가진 세명’은 ‘러시아인 3명’, ‘고위관리’는 ‘고위 관리들’,‘첩보원’은 ‘첩보원들’로 조작하였다. 그리고 ‘소련의 포섭대상’은 ‘소련의 첩보원’,‘친공성향’이 있는 것으로 보고된 사람은 ‘공산주의자’로 바꿔서 활용했다. 또 ‘자유주의적’이란 문구는 ‘공산주의 성향이 강한’이란 표현으로,‘공산주의 동조자’는 ‘활동중인 공산주의자’로 바꾸었다. 한마디로 단어를 조작하여 억지 공산주의자로 만든 것이다. 이런 결과 로젠버그 부부를 비롯한 수많은 인사들이 반역죄로 기소되어 처형되고, 원자탄제조를 지휘했던 오펜하이어 박사마저 반역죄로 몰려 처벌받게 되었다. ○반공 내용 철저 외면 그러나 허위나 조작이 오래 가기는 힘들다. 웰치 변호사의 끈질긴 추적으로 덜미가 잡힌 매카시는 병역사실의 조작등 개인 비리까지 드러나 탄핵되면서 미국사회의 매카시선풍은 사라졌다. 한국사회의 매카시즘은 아직도 기승을 부린다. 월간조선의 崔교수에 대한 모해는 언론 매카시즘의 전형이다. “학자의 학문적 성과를 전체 맥락과 상관없이 특정 문구를 작위적으로 재단하여 문제삼고 崔교수가 마치 친북적인 학자인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한국정치학회 성명)는 바로 그대로이다. 학자의 연구성과, 특히 대통령자문위원장의 논문이 조명되고 바판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논문의 전체를 비판해야지 단어 몇개 문장 몇 구절을 토막쳐서 문제를 삼는것은 정당한 비판의 자세가 아니다. 월간조선은 崔교수의 글에서 “6·25 최대희생자는 북한민중” 등 몇 구절을 뽑아서 사상에 붉은색을 칠하고자 한다. 그러면서 반공적 내용은 철저히 외면한다. 예컨대 “주체사상은 불가오류의 김일성 유일체제를 강화하는 대중동원의 이념적 기제로서 작용하여 왔다. 이제 주체사상은 민중이 오직 하나의 정점에 의해 지도되고 동원의 대상으로 설정되는 민중소외, 민중대상화의 기능을 탈피하여 문자 그대로 민중주체의 민중자율성의 원칙과 이념으로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한국민주주의의 조건과 전망」, ‘한국전쟁의 한 해석’) 이 구절은 북한의 가장 아픈 대목이다. 이 내용만 떼어내 읽으면 崔교수는 극우적 반공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정권 상처내기 외도 월간조선의목표는 崔교수가 아니라 金大中 정권이다. “崔교수가 관계한 ‘제2건국운동’은 어디로 가나”란 광고문에서 나타나듯이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제2건국운동, 나아가 金大中 정권에 용공의 너울을 씌워 상처를 입히려는 의도가 아닌가 싶다. 정부를 비판하고 학자를 비판하는 행위는 언론의 본질이다. 하지만 비판이 비판의 정당성을 얻으려면 공정성과 사실성에 입각해야 한다. “학자의 학술 연구를 특정의 이데올로기적 잣대에 의해 견강부회식으로 왜곡하여 매도하는 것은 학자의 인권과 명예에 대한 침해”(한국정치학회)이며, “언론이 표피적으로 왜곡된 사실로써 인신공격을 가하는 것은 崔교수를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으려는”(김학준 인천대총장) 매카시즘이다. 한국언론과 정계일각에 똬리를 튼 매카시 망령을 박멸하는 길은 없는가.
  • 월간조선 ‘崔章集 교수 이념시비’ 파문 확산

    ◎“의도된 신매카니즘” 비판 봇물/쓸데없는 사상논쟁 국가적 손해 초래/기득권측 개혁 저항·상업적 이익 꾀해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인 고려대 崔章集 교수의 학술적 성과를 둘러싸고 인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많은 정치학자들은 “崔교수에 대한 월간조선의 보도가 언론사의 ‘의도된’ 신(新)매카시즘적인 행태”라고 비판하고 있다.다른 정치학회 회원들도 崔교수가 대통령 자문기구의 위원장임을 문제삼아 현 정권의 사상문제를 쟁점화하려는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학계 일각에서는 “쓸데없는 사상논쟁에 휘말리는 것은 국가에 상처만 남기고 해당언론사에 대한 상업적 이익만 안겨줄 뿐”이라며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각계의 성명도 이어지고 있다. 23일 한국정치학회(회장 백영철)는 “崔교수가 6·25를 ‘김일성의 역사적 결단’이라고 했다”는 월간조선 보도와 관련,성명서를 내는 등 지식층 각계에서 월간조선 보도행태를 비판하는 성명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 정치학회는 22일 긴급 상임위원 회의를 23일자로 정리하면서 “월간조선 보도행태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는 강한 톤의 성명을 냈다.정치학회는 “학자의 학술연구를 특정 이데올로기적 잣대에 의해 견강부회식으로 왜곡,매도하는 것은 학자의 인권과 명예에 대한 침해”라면서 이같이 비판했다. 19개 시민단체 모임인 정치개혁시민연대(공동대표 孫鳳鎬)도 22일자 성명에서 “한국사회에서 기득권층의 반격은 항상 사상문제를 매개로 한 매카시즘 형태로 나타났다”면서 “기득권층이 개혁에 저항하는 수단으로 崔교수의 사상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면 당장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명지대 정외과 申律교수는 “월간조선 보도태도는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일뿐 아니라 특정 이데올로기를 강요·유도하려는 신매카시즘적 발상이며 과거 군사독재정권이 악용한 고전적 수법”이라고 주장했다. 월간조선은 문민정부 시절 당시 韓完相 통일원장관,金正男 교문수석에 대해서도 사상·이념을 문제삼아 ‘사상시비’를 제기·확대시킨 바 있다. ◎정치학회 성명 요지/“견강부회식 매도이며 이념적 폭력” 우리는 문제의 기사가 사실 및 논지의 중대한 왜곡이자 이데올로기적 인신공격이라는 점에서 우려를 표명한다.학문적 성과를 전체 맥락과 관계없이 특정 문구를 작위적으로 재단해 문제삼고 최교수가 마치 친북적인 학자인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 학술연구를 특정 이데올로기적 잣대에 의해 견강부회식으로 왜곡하여 매도하는 것은 학자의 인권·명예에 대한 침해임은 물론 자유로운 창의에 바탕한 학문자유와 학문활동,그리고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보인다.문제의 기사는 기본논지의 공정한 인용에 바탕한 합리적 비판이 아니라 논지의 부당한 왜곡에 바탕한 것이라는 점에서 중대한 지적·이념적 폭력이다.이는 학자들의 자유로운 의견제시를 막아 학문활동을 위축시키고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다. 한국정치학회는 학문의 자유와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월간조선에 대해 사실및 논지 왜곡에 근거한 매카시즘적 마녀사냥을 중단할 것과 문제의 기사에 대한 적절한 정정과 사과를 촉구한다. 한국정치학회 회장 ◎崔章集 교수 인터뷰/“개혁 불이익 우려한 기득권 언론의 공격”/사회분위기 이제는 그같은 행태 용납 않을것 崔章集 고려대 교수(정치학)는 23일 현대사 연구 논문을 둘러싼 월간조선과의 이념 시비에 대해 “개혁이 가져올 불이익을 우려하는 기득권 언론의 공격”이라면서 “이제 사회 분위기는 그같은 왜곡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자문기구인 정책기획위원장을 맡고 있는 崔교수는 “이런 왜곡 시비가 통용되면 학문의 영역이 침해받고,정부의 개혁 의지도 흔들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념 시비에 대한 입장은. ▲한마디로 황당하다.개인적으로는 비판이 있으면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다.그러나 이번 같은 일이 통용되면 개인적으로뿐만 아니라,공부하는 학자들의 학문 영역이 침해받을 수밖에 없다. ­월간조선에서 문제를 제기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정권이 교체되고 새 정부가 들어서자 기득권의 이익이 흔들리고 있다.그 때문에 일부 언론이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취약한 위치에 놓이게 돼 어떤 피해의식이 생긴 것 같다.개혁이 가져올지 모르는 불이익을 사전에 예방하자는 차원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왜 崔교수의 논문이 쟁점이 된 것으로 생각하나. ▲정부의 개혁적인 인사들을 선별 선택해서 집중 공략하는 것 같다.정부를 취약하게 만들려고 흔들고,개혁의 의지를 약화시키자는 생각일 것이다. 정의와 개혁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부패하지 않으니 이념밖에는 무기가 없을 것이다.우리사회의 취약한 부분이 이념인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는 것 아닌가. ­崔교수의 논문에 오해받을 대목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이것은 논문을 과장 해석한 것이 아니고 완전히 왜곡한 것이다.무슨 이념을 가진 진보와 보수의 대결 같은 게 아니다.일방적으로 말도 안되는 공격을 하는 것이다.언론으로서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것이며,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문민정부 초에도 韓完相 부총리 겸 통일원장관과 金正男 청와대 교육문화 수석이 이념 시비로 물러난 바 있는데. ▲그 때와는 다르다.다른 언론 매체들도 그 때와 달리 신중한 것 아닌가. ­향후 대응 방향은. ▲소속해 있는 정치학회와 사회과학계,더 나아가 지식인 사회가 격분하고 있다.그들은 이번 논란을 언론의 횡포,폭력이라고 생각한다.사회 분위기를 보면,이미 승부는 난 것이나 다름없다.
  • 崔章集 교수 조선일보 提訴/정치학회·시민연대서도 비판 논평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인 고려대 최장집 교수(정외과)의 현대사 연구성과 보도를 둘러싼 파문이 확산되면서 법정으로까지 비화될 조짐이다. 최교수는 28일 ‘월간조선’을 상대로 손해배상 등 청구소송을 냈고 월간조선은 이날 ‘최교수 반박에 대한 반박문’을 각 언론사에 배포하고 법적대응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월간조선 보도행태에 대한 비판성명·논평도 쏟아져 한국 정치학회 성명에 이어 이날 19개 시민단체가 참가한 정치개혁 시민연대가 ‘비판논평’을 냈다. 최교수는 이날 조선일보사를 상대로 월간조선 11월호의 판매 칭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과 함께 5억원의 손해배상 및 반론보도 청구소송을 서울지법에 내면서 “월간조선이 본인의 현대사 연구를 왜곡보도했다”고 주장했다. 월간조선측은 이날 오후 각 언론사에 보낸 반박문을 통해 “최의원장이 김일성의 남침결심을 ‘역사적 결단’이라고 한 것은 그의 논리체계 전체의 맥락에서 파악할 때 이상할 것이 없는 자연스런 용어선택”이라고 주장했다.
  • KDI ‘남북경협 10년 평가·과제’ 토론회 요지

    ◎남북 경협 北 군비 통제와 연계 필요/對北 3원칙 실행방안 미비로 한계 북한은 동아시아 외환위기로 인해 올 상반기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일본 등 3대 교역국과의 교역규모가 전년 동기대비 29.6%,3개국에 대한 수출은 40.3%가 각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남북 경제협력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부문의 군비통제와 병행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지적됐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2일 주최한‘남북경협,지난 10년의 평가와 향후 과제’란 주제의 정책토론회에서 연구원들은 이같은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高日東 연구원◁ ‘북한 경제의 최근 상황과 향후 전망’=북한은 올들어 자립경제와 중공업 우선주의를 재천명하는가 하면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등 의도적으로 긴장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조치들은 벼랑끝 외교를 통해 실리를 얻고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체제의 근본적인 위기는 심화되는 경제난에서 비롯된다. 90년대 들어 북한은 구 소련의 해체 등으로 인해 경제 침체가 가속화되는양상을 보여왔다. 북한은 93년 12월 농업,경공업과 무역제일주의를 채택했으나 핵문제 대두, 김일성 사망과 홍수피해 등으로 3대 제일주의는 사실상 실패했다. ▲농업=기후나 토양 등 자연조건으로 볼 때 북한은 식량의 자급자족이 불가능하다. 다만 최근의 식량위기는 외화가 부족,식량을 수입할 수 없는 데 따른 것이다. 기본적으로 북한의 식량문제는 산업부문의 재건이나 대외경제관계의 회복 등 전반적인 북한경제 재건계획과의 연계하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산업=90년대 북한 산업의 급격한 붕괴는 생산시설과 부품,원료와 에너지 등 제반 생산요소들을 의존해온 구 소련과의 경제관계 단절 때문이다. 또 산업구조는 투입요소 다(多)소비형인데다 중공업에 치중되어 있다. ▲대외경제관계=95년 이후 나진·선봉지역을 중심으로 투자가 늘었다. 그러나 동아시아 외환위기로 인해 북한 전체 교역액의 75%가 집중된 동아시아의 경기침체로 북한은 큰 타격을 입었다. ▲대안과 정책적 시사점=북한은 심각한 경제난으로 인해 개혁을 추진할 수 없는 형편이다.북한의 중공업 우선정책은 불가능하다.가동률이 20% 안팎으로 떨어진데다 산업시설이 급속히 노후화돼 복구가 불가능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유일한 탈출구는 외자유치를 통해 수출을 지향하는 것이다. ▷林源赫 연구원◁ ‘남북경협의 제약요인과 활성화 방안’=숱한 논의에도 불구,남북경협이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는 본질적 문제에 대한 검토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의 이중성=남북경협이 침체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적대적 요소와 동반자적 요소가 병존하는데 따른 것이다. 북한 정권이 변하지 않는 한 남북경협은 최소한으로 제한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어왔다. 그러나 남북한 경제력 격차가 더 벌어질 경우 북한의 대외의존도를 높이게 되고 한반도 문제가 국제화돼 한민족 주도에 의한 통일은 요원해질 가능성이 있다. ▲대북정책의 문제점=정부의 무력도발 불용,흡수통일 배제,교류협력 증진 등 3대 대북원칙은 손색이 없다. 다만 정부가 실행원칙으로 내세우는 정·경분리와 상호주의는 구체적인 실행방안이 미비해 한계가 있다.북한의 도발수준이 낮을 경우 정치·군사적 사안이 경제적인 사안과 연계되지 않도록 하는게 바람직하다. 상호주의 원칙도 개별 접촉에 대한 건별·사안별 상호주의인지 아니면 선 양보,후 대가라는 장기적인 상호주의인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대안과 과제=인천∼남포구간 운임이 부산∼함부르크간 운임과 비슷할 정도로 비싸 남북교역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정부의 보조금 지급이 필요하다. 남북경협은 하나의 북한정권이 다수의 남한 기업을 상대로 진행되는 점에서 정치적 사안에 의해 영향받을 뿐 아니라 북한측이 독점적 지위를 활용할 우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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