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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포럼] 건전한 진보를 위하여

    송두율 교수에 대한 유인태 청와대 정무수석의 발언은 의미심장하다.그는 “송씨가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사실을 본인이 부인한다고 들었고,우리도 황장엽씨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 송 교수 말이 옳지 않은가 하는 선입견을 가졌던 게 사실이다.”라고 말했다.송 교수가 많은 한국 진보세력의 기대와 환영 속에 서울에 온 것을 보면,유 수석의 말은 진보세력의 시각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진보세력이 황장엽씨의 말을 믿고 싶지 않았을 정황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황장엽씨는 김일성·김정일 독재체제를 강력히 비판하며 보수세력의 ‘전위대’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보수세력은 그동안 기득권 유지를 위해 북한을 악용했다.진보진영의 민주화 운동도 친북행위로 몰아붙였다.진보세력은 거꾸로 보수진영의 그러한 행위를 ‘악’으로 규정하고 극복의 대상으로 여기며 투쟁했다. 진보세력의 투쟁은 한국의 민주화를 앞당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그러나 많은 진보세력은 북한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외면했다.한국의 군사독재는 비판하면서 북한의독재체제에 대해서는 눈을 감으려 했다.송두율 교수 사건은 진보세력의 북한 보기 문제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그들이 황장엽씨의 말을 냉정하게 받아들였다면 송 교수를 ‘영웅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보주의자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달라져 왔다.자유방임주의가 진보일 때도 있었고 사회주의가 진보인 지역도 있다.진보주의는 궁극적으로 인간다운 삶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좋은 것이다.무엇이 인간다운 삶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그러나 자유와 평등의 확대 그리고 풍요로움이 인간다운 삶의 중요한 요소임은 분명하다.그래서 여러 한계가 있지만 자유민주주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한국의 진보세력도 이러한 관점에서 북한을 냉정하게 봐야 한다.북한에는 김일성에 이은 김정일의 전체주의적 독재체제가 건재하고 있다.독재는 경제의 파탄을 가져와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다.탈북자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인권탄압은 세계적으로 악명 높다.한국의 진보세력은 균형감각을 갖고 북한의 독재체제도 비판해야 한다. 진보세력이 감상적 민족주의에 빠져 북한의 독재체제 비판을 외면한다면 민주화 운동을 친북행위로 왜곡했던 보수진영의 논리가 지지를 받을 위험성이 있다.민주화 운동과 북한체제 지지는 구별되도록 해야 한다.진보진영은 북한의 독재체제가 아니라 북한 인민에 대해 민족적 애정을 가져야 한다.북한도 자유롭고 풍요로운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그런 북한을 지향하는 것이 북한문제에 대한 건전한 진보의 길일 것이다.송 교수 사건은 건전한 진보의 깃발을 올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어야 한다.그러면 한국사회에 약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소모적인 이념논쟁이 확대되면 사회혼란만 심화시킬 것이다.한나라당 등 정치권을 비롯한 보수세력이 정치적 이익을 위한 이념공세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송 교수 문제는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적절하게 처리하는 것으로 끝내야 한다. 한국사회는 소모적인 이념논쟁으로 많은 사회적 손실을 가져 왔다.그러나 지금은 이념의 시대가 아니다.세계적 이념논쟁은 사회주의의 몰락으로 끝났다.서울의시계만 거꾸로 가서는 안 된다.수구세력이나 지나치게 북한 편향적인 진보세력은 자기 성찰을 통해 건전한 보수와 건전한 진보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건전한 진보와 건전한 보수의 건전한 경쟁이 건강한 한국을 만들 수 있다. 이창순 논설위원 cslee@
  • “후보위원급 대우만 받아”송교수 변호인 의견서

    서울지검 공안1부(부장 吳世憲)는 6일 출두한 송두율 교수가 “북한측으로부터 후보위원급 대우를 받았지만 공식적으로 임명된 적은 없었다.”는 내용의 변호인 의견서를 제출함에 따라 타당성 여부를 조사한 뒤 돌려보냈다. 검찰은 송 교수를 8일 다시 소환 조사키로 했다. ▶관련기사 4면 송 교수측은 의견서를 통해 후보위원급으로 대우를 받았을 뿐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에는 전혀 선출된 적이 없으며 북한이 통일전선 대상으로 자신을 이용하기 위해 장례식 때 그런 대우를 해줬다고 주장했다. 이어 공개적인 절차를 거쳐 공표되는 정치국 후보위원 명단에 김철수는 한번도 오른 적이 없고 단지 김일성·오진우 장의위원 명단에 후보위원이란 직책 없이 김철수란 이름만 두번 오른 일이 있다고 설명했다. 송 교수 변호인인 김형태 변호사는 이같은 내용의 27장 분량의 변호인 의견서와 함께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선임 문제 등과 관련한 자체 수집 증거자료 200여장을 검찰에 제출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검찰, 이르면 오늘 宋교수 조사 매듭

    서울지검 공안1부(부장 吳世憲)는 친북활동 등 혐의를 받고 있는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를 6일 다시 불러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활동 진상 등을 집중 조사키로 했다.검찰은 가급적 이날 송 교수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송 교수가 지난 94년 7월 김일성 사망 당시 후보위원 임명 사실을 통보받았다는 국정원 조사결과를 대부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그러나 송 교수측은 이를 부인하고 검찰조사에서 입회 전면 허용 등의 내용을 담은 변호인 의견서와 자체적으로 수집한 증거자료를 제출키로 해 검찰조사가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강충식 이두걸기자 chungsik@
  • “정치국 후보위원 오른적 없다”/宋교수 “김철수명단은 장의위원” 부인 정정희씨 국내 첫 인터뷰

    친북 활동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는 송두율 교수측은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논란과 관련,지난 94년 김일성 전 주석의 장례식에 초청됐을 때 ‘김철수’라는 이름이 23번째로 적힌 명단은 정치국 후보위원이 아닌 장의위원 명단이라고 밝혔다. 송 교수측은 또 당시 노동신문에 23번째로 적힌 이름을 보고 ‘후보위원급’대우를 받는 것으로 ‘짐작’했을 뿐이라고 국정원에서 진술했다고 주장했다. ▶송교수 부인 인터뷰 3면 5일 본지가 단독 입수한 송 교수의 변호인 의견서와 변호인 입회신청서에서 송 교수는 이같이 주장했다.송 교수는 6일 서울지검에 출두해 두 문건을 제출할 예정이다. 송 교수의 이같은 주장은 송 교수가 노동당 서열 23번째의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활동했다는 국정원의 발표내용을 반박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송 교수는 의견서에서 “한번도 정치국 후보위원 명단에 오른 일이 없으며,국가보안법 제3조에 규정한 ‘간부 기타 지도적 임무에 종사’하는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가입한 사실도 전혀 없다.”고 밝혔다. 송 교수는국정원 조사에서도 “당시 노동신문에도 정치국 후보위원이라고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고 진술했다고 주장했다.그는 평소 옛 소련,중국,북한 등 사회주의 국가의 권력구조 등을 연구하여 23번째쯤 나열된 것은 ‘후보위원급’ 대우를 받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밝혔다. 변호인 의견서는 모두 20여쪽 분량으로 크게 ‘노동당 입당’,‘김철수와 후보위원’,‘오길남 방북건’,‘북한으로부터의 금품수수’ 등 4가지 항목으로 이뤄졌다. 이와 관련,송 교수의 변호인인 김형태 변호사는 “변호인으로서 아직까지도 국정원의 진술조서를 볼 수 없었다.”면서 “한국은 독일정부와 약속한 대로 송 교수가 진술조서에 서명 날인할 때만이라도 변호인을 입회시켜 본인의 의사가 조서에 정확히 반영되었는지를 살필 수 있도록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앞서 송 교수와 김 변호사는 5일 주한 독일대사관을 방문해 송 교수의 검찰조사와 관련한 변호인 입회권 문제 등을 논의했다.독일대사관 측은 한국정부가 송 교수에 대한 수사상황을 설명하지 않은 데 대해 외교채널을 통해 입장을 전달하기로 했다고 김 변호사가 전했다.김 변호사는 “검찰에 변호사 입회권을 요청하겠지만 입회권이 허용되지 않더라도 진술 거부 등의 강경책은 쓰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구혜영기자 koohy@
  • 검찰 송두율교수 조사/‘김철수’ 맞는지 원점서 재수사

    검찰은 3일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를 상대로 노동당 후보위원 김철수인지 여부를 집중 조사했다.국가정보원이 자세히 조사했지만 본인이 부인하고 있는 만큼 신문사항을 다시 만들어 동일인 여부를 추궁한 것이다. ●후보위원 임명을 사전인지했는가 검찰은 송 교수가 북한측으로부터 후보위원에 임명됐다는 사실을 통보받았는지를 다각도로 캐물었다.국정원은 4차례 소환 조사를 통해 송 교수가 지난 73년 9월 독일거점 북한 공작책에게 포섭돼 입북한 뒤 주체사상 학습 및 공작원 교육을 받고 노동당에 입당했으며,91년 5월 김일성 주석 면담을 계기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임됐음을 인지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그러나 송 교수는 “후보위원 임명에 대한 공식적인 통보가 없었다.”면서 “뒤늦게 임명 사실을 알았다.”고 부인했다. 검찰은 송 교수가 노동당 후보위원 김철수라는 점을 사전에 전혀 몰랐다고 계속 부인하는 한 기소해 법정에서 판가름낼 수밖에 없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이 부분은 공소시효가 15년으로 기소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또 91∼95년에 이뤄진 공작금 수수 및 재독 유학생 오길남씨 입북 권유 부분은 다음 소환 때 조사할 방침이다.검찰은 공작금 수수는 공소시효 5년이 지났고,입북권유는 86년 11월의 일로,오길남씨가 입북하지 않았으므로 범죄가 안되지만 사실확인 차원에서 다루겠다는 것이다. 검찰은 송 교수에 대해 출퇴근식 조사를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체포영장이 발부된 사실을 알고도 입국한 만큼 도주의 우려가 없어 구속수사는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국정원과 검찰의 판단이다.때문에 국정원 수사 단계부터 출퇴근식 수사를 진행해 왔다. ●송 교수,국정원 교감설 부인 송 교수는 예정 출두 시각인 이날 오전 9시쯤 김형태 변호사와 함께 검정색 승용차를 타고 서울 서초동 서울지검 청사에 도착했다.최근 급변한 국민여론을 의식한 듯 시종 굳은 표정이었다.검찰에 제시하기 위한 관련 자료를 준비한 듯 검정색 가죽 가방을 들고 있었다.송 교수는 기자들의 질문에 묵묵부답이었으나,포토라인에 섰을 때 잠시 말문을 열었다.귀국 전 국정원 등과의 사전 교감설 등에 대해서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검찰은 송 교수 사건이 대형 공안사건임을 감안,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검찰은 사건이 송치되기 전부터 공안검사들로 하여금 심야 난상토론을 벌이도록 하고 법리검토까지 했다.서울지검은 송 교수가 출두할 무렵 이례적으로 수사팀인 공안1부가 위치한 9층 전체를 차단,취재진 등의 접근을 막는 등 보안유지에 안간힘을 썼다.송 교수는 이날 밤 10시5분쯤 돌아갔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송두율교수 처리 논란 /송교수의 진실은…

    송두율 교수가 입국한 지난달 22일 이후 지금까지 국가정보원 조사 결과 “송 교수는 북한 서열 23위인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라는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주장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이에 따라 이러한 주장을 부인해 온 송 교수에 대한 도덕성 논란이 일고 있다. 송 교수는 지난 98년 7월 황씨의 주장이 처음 제기된 직후부터 황씨의 주장을 일관되게 부인해 왔다. 송 교수는 황씨와 황씨의 주장을 보도한 ‘월간조선’을 서울지방법원에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송 교수가 김철수라는 사실을 입증할 증거는 없다.”는 판결을 받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국정원의 조사가 계속되면서 송 교수의 입장은 변하기 시작했다.송 교수는 국정원 조사 과정에서 “94년 김철수라는 가명으로 북한의 초청을 받았으나 노동당 후보위원으로 활동한 적은 없다.김철수라는 가명도 그때 한 번 사용했다.”라고 밝혀 이전과 다소 다른 입장을 보였다. 지난달 29일에는 “지난 73년 방북할 때 북한 요청으로 노동당 입당원서에 서명했으나 당원으로 활동하거나후보위원이 된 적은 없다.”고 김형태 변호사를 통해 밝혔다.그러나 송 교수는 국정원에서 “94년 노동신문의 김일성 장의위원 명단에 내가 김철수로 등재된 것을 보고 후보위원으로 선임된 것으로 생각했다.”라고 진술,황씨의 주장을 사실상 시인한 것으로 1일 알려졌다. 송 교수는 이처럼 “정치국원 김철수라는 주장은 사실 무근”이라던 종전의 주장을 스스로 뒤집음으로써,학자적 양심을 저버렸다는 비난과 함께 진보 운동의 입지를 좁혔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상지대 정치학과 정대화 교수는 “노동당에 입당했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만 해도 분단된 나라의 지식인으로 겪어야 했을 고뇌라고 이해하고 싶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당혹스럽기만 하다.”고 말했다.함께하는 시민행동의 하승창 사무처장도 “왜 사실을 숨기고 여러차례 말을 바꿨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서 “더 이상 (송교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두걸 이세영기자 douzirl@
  • 송두율교수 처리 논란 /정형근의원이 전한 ‘국정원 브리핑’

    국정원은 1일 국회 정보위 국정감사에서 송두율 교수에 대한 조사 결과를 비교적 자세하게 밝혔다.다음은 국회 정보위원인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 기자들에게 브리핑한 국정원의 조사 내용. 송 교수는 73년 9월 독일 거점 북한 공작책인 이재원(현재 71세)에게 포섭된 뒤 모스크바를 경유 입북,2주간 초대소에서 주체사상 학습 및 공작원 교육을 받고 노동당에 입당했다. 이후 91년 5월 입북해 묘향산에서 김일성 주석과 면담했을 당시 북측의 예우가 이전보다 좋아져 자신의 위상에 큰 변화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던 중 94년 7월8일 김 주석 사망 당시 독일의 북한공작원으로부터 자신이 ‘김철수’라는 가명으로 노동당 정치국 서열 23위(후보위원에 해당)로 선임됐으며,김 주석 장의위원임을 통보받았다. 94년 7월9일 노동신문에 게재된 북한 노동당 정치국위원 서열에 따르면 김철수는 1위 김정일과 2위 오진우,7위 김영남,21위 연형묵,22위 이선실에 이어 23위로 돼 있다. 김철수는 또 당 중앙위원으로서 당의 중요 정책을 심의하고 결정하는 권한을 행사해왔다. 국정원은 송 교수가 김 주석 장례식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는 사진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 교수는 96년 이후 매년 북한의 정권창건일과 김 국방위원장 생일날 같은 때에 친필 충성맹세문을 작성해 북한에 10여차례 전달하기도 했다. 송 교수는 특히 73년 9월부터 2003년 3월8일까지 총 18회에 걸쳐 입북할 때마다 “독일 유학생 포섭 및 조국통일사업을 위한 지식인 중심의 조직을 결성하라.”는 지시와 함께 미국돈 1000∼2000달러씩을 받았으며,91년 김일성 면담이후 95년까지는 별도로 독일 공작원을 통해 매년 2만∼3만달러를 받아 생활비 등으로 사용했다.합치면 15만달러정도로 추정된다. 자세한 내역을 보면,73년 9월 입북해 북한 공작책으로부터 활동비 2000달러 수수,79년 10월 입북해 1000달러 수수,88년 9월 전금철 조평통 부위원장으로부터 1000달러를 수수했다. 송 교수는 또 96년 8월 자신의 부친이 별세했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보낸 1500마르크를 조의금으로 받기도 했다. 송 교수는 92년 5월 자수한 재독일 유학생 오길남씨가 86년 11월 유럽으로 침투한 뒤 망명신청을 했을 당시 오씨에게 “내가 오형(兄)이라면 북한에 다시 들어가겠다.”며 재입북을 권유한 사실을 오씨와의 대질신문 결과 시인했다. 송 교수는 앞서 88년 서울올림픽 때는 독일에서 ‘한국은 올림픽을 할 수 없는 나라’라는 책을 썼으며,황장엽이 귀순했을 때는 다른 공작원에게 “나의 정체를 밝히지 말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정형근 의원은 “송 교수는 교수로서 한번도 재직한 일 없으며 올해에는 뮌스터 대학에서 특강형태로 5차례 걸쳐 강의한 데 불과하고 뮌스터대학으로부터 560㎞나 떨어진 베를린에 거주하고 있는 만큼,송 교수는 엄밀한 의미에서 교수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또 “송 교수는 자신의 시간당 강사료로 교통비를 할까 말까하고 부인이 도서관 사서를 해서 생계를 꾸린다고 진술했다.”며 “그의 직업이 북한 공작원이고 공작금으로 생활한다는 데 국정원도 동감했다.”고 말했다. 이어 “송 교수의 뮌스터대학 강의제목은 ‘반미’(反美)였다.”고 밝혔다. 김상연기자 carlos@ ●송두율교수 약력 재독 철학자 송두율(宋斗律·59) 뮌스터대 교수는 1944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67년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이듬해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세계적인 학자인 위르겐 하버마스의 지도 아래 ‘헤겔,마르크스 그리고 막스 베버에 있어서 동양세계의 의미’로 72년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82년부터 뮌스터대 교수로 일했다.저서로는 ‘역사는 끝났는가’,‘21세기와의 대화’,‘전환기의 세계와 민족지성’,‘통일의 논리를 찾아서’ 등이 있다.
  • 송두율교수 처리 논란 /송교수 변호사 강력 반발

    1일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 송두율 교수의 신분위장과 실정법 위반 사실 등에 대해 언급한 데 김형태 변호사는 강력 반발했다. ●北학자와 학술목적 서신 교환 김 변호사는 “송 교수가 지난 94년 김일성의 장례식에 북측으로부터 초청을 받았을 때 ‘김철수’라는 이름으로 통보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송 교수는 이에 대해 북측에 적극 항의했다.”면서 “송 교수는 김철수와 동일인물임을 시인한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김 변호사는 송 교수가 북한 인사와 편지로 내통했다는 이유로 적용된 ‘회합통신’ 혐의에 대해선 “송 교수가 독일에서 학술회의와 관련해 북한 학술원 관계자와 편지를 주고받은 사실은 있지만 전혀 정치적인 의도가 없는 순수한 학술 목적이었다.”고 주장했다.김 변호사는 송 교수가 북한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했다는 혐의에 대해 “송 교수 스스로 방북 때 보통 500달러 정도의 경비를 북한에서 받은 사실이 있다고 말한 것을 금품수수로 몰았다.”면서 “넓은 의미에서 학술활동과 관련된 남북학자들의 교류를 주선하면서 사용한 경비는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김 변호사는 “송 교수측은 하루에 한번꼴로 독일의 저명한 학자 하버마스 교수와 통화를 할 만큼 하버마스 등 독일 지식인들이 송 교수의 사법처리 향방에 대해 깊은 우려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오길남 “내가 너무 오래 살아서…” 한편 송 교수는 같은 날 국정원에서 송 교수가 방북을 주선한 것으로 알려진 오길남씨와 대질신문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송 교수의 측근은 “당시 대질신문에서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오씨는 송 교수에게 ‘내가 일찍 죽어야 되는데 너무 오래 살아서 이 자리까지 와서 미안하다.’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들었다.”고 밝혔다. 구혜영기자 koohy@
  • “宋교수는 정치국 후보위원”

    국가정보원은 1일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가 1991년 5월 ‘김철수’라는 가명으로 북한 노동당 서열 23위인 정치국 후보위원 겸 당 중앙위원으로 선임됐고 73년 9월부터 지난 3월까지 18차례에 걸쳐 입북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송 교수는 또 73년 9월 입국 당시 활동비조로 미화 2000달러를 받은 것을 비롯해 91년 5월 김일성 주석 면담후 95년까지 독일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연구비조로 매년 2만∼3만달러를 받았다고 국정원은 밝혔다. ▶관련기사 3·4면 국정원이 밝힌 내용을 토대로 송 교수가 북측으로 받은 공작금을 합산할 경우 대략 15만여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국정원은 이날 국회 정보위 국감에서 송 교수에 대한 조사 결과를 이같이 밝히고 송 교수에 대해 불구속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것으로 보고했다고 한나라당 정보위 간사인 정형근(鄭亨根) 의원이 밝혔다.이 자리에는 국정원 공보관 등 관계자들이 배석했다. 국정원은 또 송 교수가 그동안 알려진 것과는 달리 독일 뮌스터대 정식 교수가 아니며 뮌스터대에서 560㎞나 떨어진 베를린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고했다고 한나라당 정 의원은 덧붙였다. 국정원에 따르면 송 교수는 지난 73년 9월 재독 북한 공작원 이모(71)씨에 포섭돼 모스크바를 경유,입북해 북한 초대소에 2주간 수용돼 주체사상 학습 및 공작원 교육을 받고 노동당에 입당했으며 91년 5월에 ‘김철수’라는 가명으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에 선임됐음을 재독 북한 이익대표부에 파견된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통보받았다고 자백했다. 송 교수는 특히 94년 7월 김일성 주석 사망 때 장례위원으로 선임됐음을 통보받고 장례식에 참석했고,95년 7월부터 김용순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 등의 지시에 따라 베이징(北京)과 평양 등에서 6차례에 걸쳐 통일전선 구축차원에서 남북 및 해외학자 통일학술회의를 주도했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송 교수는 74년 독일 유학생을 규합해 재독 민주사회건설협의회를 결성한 뒤 79년 재입북해 협의회 활동상황을 보고하고 1000달러를 받았으며 88년 다시 입북,조국통일에 힘써주고 유능한 유학생을 연결시켜 달라는 부탁과함께 1000달러를 받았다고 국정원은 밝혔다. 한편 서울지검 공안1부(부장 吳世憲)는 1일 국정원으로부터 송 교수 사건을 넘겨받아 송 교수의 친북활동 혐의에 대해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국정원은 송 교수의 반국가단체 가입,금품수수,특수 잠입탈출,회합 및 통신 혐의 사실을 확인,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하면서 외국인 신분 등 여러가지 정황을 고려할 때 공소보류도 검토할 수 있다는 의견을 붙였다. 검찰은 국정원 수사기록을 신속히 검토한 뒤 오는 4일쯤 송 교수를 소환,조사하고 다음주쯤 최종적인 사법처리 수위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를 위해 법무부에 의뢰해 오는 3일로 만료되는 송교수 출국정지 시한을 연장키로 했다. 김상연 강충식 홍지민기자 chungsik@
  • 해외 민주인사 좌담회 / “조국 찾게해준 정부… 민주화 느껴”

    해외에서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헌신해온 해외민주인사 50여명이 지난 22일 수십년 만에 고국땅을 밟은 지 벌써 열흘이 다돼간다.이들은 그동안 5·18광주민중항쟁 유적지와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을 찾는 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대한매일은 30일 이들 가운데 선우학원(85)미국 조국통일 범민족연합 자문위원,이행우(72)자주민주통일 미주연합 의장,진 매튜(한국명 마태진·70)선교사 등 3명의 좌담을 마련,이들의 소회 및 우리 사회에 대한 진단 등을 들어봤다. ●‘뒷골목’ 없어져 유감 마태진 선교사 오랜만에 한국에 왔더니 국제공항이 인천으로 옮겨져 있어 깜짝 놀랐다.한국이 그동안 많이 발전했지만 유감스런 점도 있다.‘뒷골목’을 좋아해 작은 음식점과 찻집 등을 찾아다녔는데 모두 없어지고 큰 건물만 들어섰다.과거보다 서울의 공기가 깨끗해져 좋다. 선우학원 자문위원 그렇다.30여년 만에 오니 한국이 완전 딴 세상이다.고층빌딩이 미국보다 더 굉장하다.자동차도 너무 많아 어딜가나 길이 막히는 걸 보며 놀랐다. 이행우 의장 사회가 민주화가 됐다는것을 느꼈다.한국이 변하지 않았다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도 생기지 못했을 것이고 해외인사 초청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선우학원 한국의 군사독재는 노태우 전 대통령 때 모두 끝나고 민주화가 됐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지난 국민의 정부와 현 참여정부에도 실망했다.30여년 동안 한국에 오지 못했다.국가보안법이 아직도 없어지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민주사회에서 국가보안법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시민단체 활동 인상적 마태진 과거보다 민주적으로 발전했지만,완전한 민주주의는 아니다.물론 ‘조작되지 않은 민주주의’까지 기대하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지난 주말 미 스트라이커 부대 항의방문 구속자 석방을 위한 촛불시위에 참여해 보니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라면 정당한 주장을 한 학생들을 잡아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행우 건축물은 잘 지어졌고 시민의 질서의식도 좋아졌다.그러나 한국민의 급한 성질은 여전한 것 같다.그러다 보니 민주주의도 금방 이루려고 하는데 미국만 보더라도 민주주의를 완성하는데 수백년이 걸렸다.이를 테면 노무현 정권이 출범한 지 6개월 밖에 되지 않았는데 평가가 너무 급한 것 같다.정치권이 발전하는 속도는 느리지만 수많은 시민단체가 활발하게 활동하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선우학원 한국은 50년 동안 미국과 주종관계였다고 볼 수 있다.이제는 한국이 독립 주권국가의 행세를 해야 한다.이는 남북이 합해져야 가능하다.우리끼리 만나서 독립국가 행세를 해야 한다.그러지 않고는 통일도 요원한 문제다. 이행우 남북이 아무리 잘 한다 하더라도 결국 미국의 정책이 바뀌지 않으면 어렵다.미국의 정책을 변경하고 통일로 가는 정책을 펼 수 있게 하려면 남북이 가까워져야 한다.지금 잘 하고 있지만 앞으로 다양한 방면에서 많은 교류가 필요하다.20여년 전만 해도 미국 국회나 국무성 사람들을 만나 미군 철수 문제를 말하면 “언젠가는 주한 미군이 철수하겠지만 한국 사람들이 아무 말 안 하고 있는데 여기 있는 동포들이 말한다고 가능하냐.”고 웃었다.그러나 요즘은 한국에서도 주한미군 철수를 말하지 않나.우리가 통일을 하려면 우선 남북이 가까워져야 한다.북이 미국을 상대하는 이유는 어차피 남쪽을 상대로 회담을 해 봤자 안 되기 때문이다.어떤 사람들은 “우리끼리 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하지만 그것은 한·미 관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오는 말이다. ●남과 북 연결 열차에 감동 마태진 북은 미국에 불가침조약과 경제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이 부분이 이루어지면 남북 관계에 상당한 진전이 있을 것이다.미국이 북한을 침공할 생각이 없다면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미국이 남북 관계에서 한 측면으로 빠지고 남북 사이에 체육·사회·과학 등 전 분야에서 활발한 교류가 있을 때 남북 관계가 발전할 수 있다.지난주 도라산역에서 남과 북을 연결하는 열차를 보고 감명을 받았다. 이행우 미국의 정책이 한반도에 유리하게 작용하기 위해서는 재미동포보다 미국 사람이 많이 참여해야 한다.지난 7월 24일 미국인을 중심으로 한·미 관계를 연구하는 커뮤니티를 만들었다.한국 사회에서 반미 목소리가 높지만 일반 미국 시민 가운데는 선량한 사람이 많다.일반 미국인은 정확한 사실을 잘 모르고 있을 뿐이다. ●미국 민간인 중심의 대북활동도 중요 선우학원 과거 미국인 38명이 참여한 ‘American Community on Korea’라는 단체를 조직했다.여기에는 존 스완리 감리교 신학대 교수와 하던 램즈클락 전 미 법무장관,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 등 유명 인사들이 참여했다.이들은 지난 98년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설득해 평양에 보냈다.그때 김일성 전 주석으로부터 “우리는 미국과 친선관계를 맺고 평화를 원한다.”는 말을 듣고 클린턴에게 연락해 북에 대한 모종의 작전이 중단됐다.미국인 중심의 운동이 효과적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지금도 지미 카터는 “분단 책임은 미국에 있으니 남북이 가까워지는 책임도 미국에 있다.”고 말하곤 한다.그런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게 중요하다. 마태진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 자체가 전쟁을 방지한다.대단히 중요한 사실이다.그러나 통일 문제는 한국인들 스스로 풀어나가야 한다. 이행우 한국 사람들은 ‘나 아니면 적’이라는 식의 흑백 논리에 잘 빠진다.좌·우에 치우치지 않고 상대를 존경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애족·애민에 서툰 한국인 선우학원 평생 독립운동을 해 왔다.독립운동의 기본 자세는 애국·애족 운동이다.우리나라 사람들은 애국은 잘하지만 애족·애민 운동에는 서투르다.애족·애민 운동은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나와 내 가족만 잘 살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한국 정치를 보면 서로 돕는 게 아니라 당파 싸움에 치중하고 있다.그러면 정치가 바로 되지 않는다.분명히 개혁돼야 한다. 마태진 부정적 느낌을 받은 것은 한국 사회가 개인적 부의 축적에 몰입하고 있다는 것이다.정치가 돈에 좌우되는 실정이 안타깝다. ●송 교수 문제에 충격 선우학원 송두율 교수가 노동당에 입당했다는 보도를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미국과 독일의 환경이 다르긴 하지만 송 교수가 왜 입국했는지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이행우 송 교수는 주로 학자로서 활동했지 민주화 운동에 그리 큰 역할을 하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문제가 커지는 지 모르겠다.해외 민주화 운동 진영의 입지가 좁아질 것 같아 안타깝다. 정리 구혜영 박지연기자 koohy@ ■좌담 참석자 면면 선우학원 美조국통일범민족연합 자문위원 선우학원(鮮于學源·85·미국 로스앤젤레스 거주)씨는 현재 미국 조국통일 범민족연합 자문위원과 해외 한인학자 통일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다.선우씨는 1973년 당시 뉴욕시립대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던 중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사건을 계기로 한국 민주화운동과 인연을 맺었다.그 뒤 1981년 워싱턴에서 재미학자와 운동가들을 중심으로 ‘민족통일 심포지엄’을 만들면서 통일운동에 뛰어들었다.그는 같은 해 12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북한과 해외 기독인과의 대화’라는 모임을 조직,북한에 교회를 설립하고 북한의 기독교계와 정부인사들을 미국에 초청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다.30년 만에 고국땅을 밟았다. 이행우 자주민주통일 미주연합 의장 이행우(李行雨·72·미국 필라델피아 거주)씨는 1968년 미국에 건너간 뒤 1980년 미국내 평화운동가 모임인 ‘미국친우봉사회’를 조직,한국의 민주화를 호소하는 활동을 벌였다.같은 해 미국 민간단체로는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했고,1982년 남·북 통일운동가들의 만남을 주선했다.1970년대부터 국내 민주화운동 인사들의 가족을 돕는 ‘한국 수난자 가족돕기회’를 꾸려 모금운동을 펼치고 ‘우리나라를 돕는 미국인 모임’(Korea Support Network)을 만드는 데 앞장섰다.현재 자주민주통일 미주연합 의장과 미주동포전국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마태진 미국인 선교사 마태진(본명 진 매튜·Gene Eldred Matthews·70·미국 아이오와 거주)씨는 미국인 선교사로 1956년부터 40년 남짓 국내에서 선교활동을 펼쳤다.196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삼선개헌을 발표한 뒤 수많은 기독교 관련인사들이 곤욕을 치를 때 국내 민주화운동에 관심을 갖게 됐다.당시 한국에 있던 선교사와 외국기자,천주교인 등이 매주 월요일에 모여 국내 민주화운동을 위해 활동한 모임인 ‘먼데이 나잇 그룹’(월요기도회)을 만들었다.특히 1974년 북한의 지령으로 학생시위를 배후 조종하고 국가전복을 기도했다는 혐의로 8명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진 뒤 20여시간 만에 형이 집행됐던 ‘인민혁명당 재건위’사건에 깊이 관여했다.당시 제임스 시노트(74)신부와 함께 서대문형무소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였고 희생자들을 위한 장례미사를 주도했다. 구혜영 이두걸기자 douzirl@
  • 宋교수 “방북때 北서 경비제공”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가 지난 73년 북한 노동당에 입당한 이후 북측이 제공한 경비로 10여 차례 북한을 드나들었다고 시인했다. 하지만 송 교수는 29일 노동당 탈퇴 의사와 함께 한국의 실정법을 지키겠다는 준법서약서 형식의 ‘나의 입장’ 제목의 자술서를 국가정보원에 제출했다. ▶관련기사 4면 송 교수측 변호인인 김형태 변호사는 이날 “송 교수가 73년 북한에 처음 입북할 당시에는 노동당 입당원서를 쓰는 것이 입국신고서를 쓰듯 통과의례였다.”면서 “하지만 당원으로 활동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이어 “송 교수는 73년 이후 90년대까지 10여 차례 입북할 당시 북측으로부터 항공료 등 수백달러의 경비를 제공받았다.”고 덧붙였다.그는 또 “송 교수가 94년 김일성 사망 당시 ‘김철수’라는 이름으로 초대된 것은 사실이지만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와는 무관하다.”고 해명했다.김 변호사는 이와 함께 “송 교수는 입당원서를 아무 개념없이 썼지만 당원으로 활동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국정원에 제출했다.”면서 “서면에는 ‘이런 것이 문제가 돼 한국 민주화운동에 누가 된다면 미안하고 국민들에게도 사과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송 교수가 서면을 통해 앞으로는 한국의 실정법도 염두에 두고 살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밝혔다고 강조했다.이에 대해 공안당국은 송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는 인정되지만 송 교수가 노동당 탈퇴 의사를 밝히고 준법서약을 한 점을 감안해 최종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키로 했다.특히 공안당국은 송 교수의 준법서약을 중시,공소보류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충식 홍지민기자 chungsik@
  • 이서행교수 김일성대학서 강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이서행(57) 교수가 내년 상반기 북한 김일성대학에서 강의한다. 이 교수는 김일성대학 기숙사에서 묵으면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윤리 비교’라는 제목의 특강을 하는데,내년 5월 남북공동학술회의 서울행사 준비관계로 남과 북을 오갈 예정이다.
  • 송두율교수 자술서 내용/“입당원서는 北입국 통과의례”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가 29일 당국에 제출한 ‘나의 입장’이라는 자술서에는 북한 노동당 입당 경위와 그간의 행적을 비롯해 노동당 탈퇴 의사,준법서약 등이 담겨져 있다.송 교수는 자신의 사법처리에 대한 일부 강경기류를 감안한 듯 대국민 사과와 실정법을 지킨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송 교수는 지난 73년 처음 입북 당시 쓴 노동당 입당원서는 입국신고서처럼 의미없는 통과의례였다고 설명했다.그럼에도 송 교수는 “입당원서 작성이 현재 시점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만큼 노동당원이 아니라는 점을 자술서를 통해 밝힌다.”면서 노동당 탈퇴 의사를 나타냈다. 입북 경비는 북측으로부터 받았음을 시인했다.송 교수는 “73년 이후 80년대 후반 한 번,90년대 7∼8차례 등 지금까지 모두 10여차례 북한을 방문할 때 북측으로부터 항공료 등 수백달러를 지원받았다.”고 털어놨다.하지만 송 교수는 이같은 사실을 국정원이 추궁하기도 전에 털어놨다고 강조했다. 송 교수는 자신이 노동당 후보위원 김철수가 아니라는 점도 구체적으로 해명했다.94년 김일성 사망 당시 북한이 김철수라는 이름으로 초청해 입북했지만 정작 장례식장에서는 ‘송두율’이라는 이름이 다른 해외 초청인사들과 함께 있었다고 설명했다.특히 다른 행사장에서 자신을 김철수라고 지칭한데 대해 항의했고,이런 사실은 국정원도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자술서를 통해 ▲더이상 노동당 당원이 아닌 점 ▲입당사실이 문제가 돼 한국민주화운동에 누가 된다면 굉장히 미안하고 국민들에게도 사과한다는 점 ▲그동안 독일에서는 한국의 실정법을 염두에 두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한국 실정법을 염두에 두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공안당국은 송 교수의 해명으로 보더라도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 가입 및 특수탈출 혐의는 인정된다고 보고 있다.하지만 송 교수가 노동당 탈퇴 의사를 밝히고 준법서약을 함에 따라 사법처리 수위가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공안당국 관계자도 “준법서약서는 사법처리 수위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원칙대로? 정치고려?/국정원 ‘송두율처리’ 고심

    공안당국이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에 대한 ‘원칙 처리’와 ‘정치적 고려’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송 교수가 김철수라는 사실관계가 어느 정도 드러난 데 따른 것이다.그러나 송 교수의 처리에서 ‘정치적 고려’를 우선시하는 데 따른 반론도 많아 공안당국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국가정보원은 27일 송 교수를 한차례 더 조사해 신병처리 의견을 확정한 뒤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다.국정원은 그동안의 조사를 통해 송 교수가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와 동일인이라고 사실상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송 교수측은 “지난 94년 김일성 장례식때 북측에서 ‘김철수’라는 이름으로 초청을 받고 들어간 것은 사실이나 당시 송 교수는 이에 강력 항의했다.”고 반박하고 있다.특히 송 교수가 김철수라는 이름을 사용했더라도 노동당 후보위원으로는 활동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국정원측은 당시 송 교수가 김철수라는 이름의 노동당 후보위원으로 활동하라는 북한의 제안을 통보받았을 뿐만 아니라김철수라는 이름의 사용에 대해 특별한 거부의사를 보이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즉 송 교수는 북한 노동당에 가입하고 특수목적을 갖고 방북한 만큼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가입과 특수탈출 등의 혐의가 인정된다는 것이다. 국정원 수사팀이 송 교수에 대해 조사를 마치면서 ‘구속기소가 타당함’이라는 잠정 결론을 내린 것도 송 교수의 혐의가 사형을 선고할 수 있을 만큼 중하기 때문이다.특히 수사팀은 정책적 판단은 국정원 수뇌부나 검찰이 할 문제인 만큼 자신들은 수사 결과에 따른 원칙적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국정원 수뇌부는 송 교수가 체포영장 발부 사실을 알고도 입국,국정원에 자진출두하고 수사에 적극 협조한 점과 남북관계 등을 고려할 때 ‘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는 없다.’고 보고 불구속기소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하지만 일부 국정원 수뇌부는 정치적인 판단보다는 사실관계에 따른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국정원측의 최종 의견도 구속기소로 결론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결국 송교수에 대한 최종적인 신병처리 수위는 검찰로 넘겨졌다.설사 국정원이 구속기소 의견을 제시하더라도 검찰은 남북관계 및 정치·외교적 측면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는 계획이어서 불기소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사설] 중국 교과서 왜곡 시정 서둘러야

    중국 교과서의 한국 역사 왜곡이 심각하다고 한다.인민교육출판사의 ‘세계역사’는 한글을 한자에서 유래한 것으로 잘못 기술하고 있다고 한다.어떤 교과서는 독립운동은 김일성이 주도했다고 왜곡하고 있다.호주·미국·유럽 등 대부분의 외국 교과서에도 많은 왜곡이 있다고 한다.호주의 고등학교용 사회교과서에는 한국의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으로 잘못 기술돼 있을 정도다.그동안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에만 관심을 집중해 왔으나 이제부터는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역사 왜곡 시정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된다.교과서 왜곡은 외국 학생들에게 그릇된 이미지와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에 한국을 잘못 이해하게 만드는 심각한 문제다. 외국 교과서의 왜곡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그렇기 때문에 더 심각한 문제다.왜곡사실이 밝혀졌음에도 시정되지 않기 때문이다.일본의 역사 왜곡과 관련,정부의 ‘일본역사교과서 왜곡 대책반’이 있지만 거의 제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일본 교과서 왜곡에 대한 정부 대응이 이 정도이니 다른 나라는 말할 필요도 없다.중국에 대해서는 북한 때문에 정부 차원의 시정 요구는 거의 못하고 있다고 하니 문제가 심각하다. 정부와 관련 기관은 외국 정부에 시정을 요구하고 왜곡한 출판사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여 시정토록 해야 한다.외국 교사 초청 등 다양한 형태의 ‘한국 알리기’ 프로그램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해외의 한국학 전공자와 한국학과 개설을 위한 지원도 강화하지 않으면 안된다.선진국에 집중돼 있는 해외 지원도 다양화해야 한다.해외의 한국 공관도 한국 알리기와 자료 수집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 하프타임 / 올림픽축구 북한, 이라크 완파

    북한올림픽축구대표팀이 2004아테네올림픽 아시아지역 2차 예선에서 이라크를 꺾고 산뜻하게 출발했다.북한은 23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홈 경기에서 후반 20분과 30분 터진 김명철 이근우의 연속골로 이라크를 2-0으로 완파했다.1차 예선을 부전승으로 통과한 북한은 이로써 다음 달 2일 열리는 어웨이 경기에서 0-2 또는 3골 차 이상으로 지지 않는 한 내년 3월 올림픽 본선 티켓 3장을 놓고 12개국이 겨루는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에 진출한다.
  • “北에 고고학 공동연구등 제안”/남북공동학술회의 한국 단장 맡은 이서행 교수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역사 해석에서 남과 북이 공통적으로 다룰 수 있는 분야를 주로 논의할 예정입니다.” 20∼27일 평양 고려호텔과 삼지연 베개봉호텔(양강도 삼지연군 소재)에서 열리는 남북공동학술회의의 한국 단장을 맡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이서행(사진·57) 교수는 이번 대회에서는 남과 북이 시각을 달리하는 미묘한 문제들은 건드리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남과 북의 역사학계는 각각 고유한 민족이론의 틀 안에서 민족문제와 역사의식을 연구해 왔습니다.남한의 연구는 서구의 이론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했고 북한의 연구는 주체사상에 입각해 나름의 이론을 발전시켜 왔습니다.그 차이를 인정하면서 하나하나 공통분모를 찾아가려고 합니다.” 이번 남북공동학술대회에서는 민족 공동체 의식,항일운동사,일본의 역사왜곡등에 관한 논문 25편이 발표된다.이 중 남측에서 발표하는 논문은 공동체 의식과 일본의 역사왜곡 문제를 다룬 논문이 주가 되고 북측 논문은 항일투쟁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는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북한에 고고학 공동연구를 제안하는 등 다양한 남북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할 계획이다. “단군신화에 환웅이 태백산 신단수(神壇樹) 아래 내려와 신시(神市)를 열고 세상을 다스렸다고 나오는데 그 태백산이 북한의 묘향산입니다.북한과 협조해 우리 고대사를 복원하고 싶습니다.” 그는 개성특구에 남북 학자가 공동으로 강의하고 남북 학생들이 함께 배우는 민족대학을 세우는 일과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1988∼1991년 발간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현재 출간 준비 중인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의 북한 관련 부분을 북한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온전한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계획도 피력했다. “제가 북한 학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김일성대학에서 강의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는데 북측에서도 비공식적으로 한번 강의계획을 잡아보라고 하더군요.내년쯤 1∼3개월 일정으로 북한에서 강의하는 것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연합
  • 최승희 뮤지컬로 춤으로 34년만에 되살아나다

    춤 하나로 살면서 온갖 영욕을 누렸고 죽어서는 신화가 된 인물,최승희.‘전설의 무희’로 불리는 월북 무용가 최승희(1911∼1969)를 조명한 공연 두 편이 나란히 무대에 올라 눈길을 끈다.극단 미추의 뮤지컬 ‘최승희’(26일∼10월12일,예술의전당 토월극장)와 재일교포 무용가 백향주의 무용공연 ‘최승희의 신화를 넘어’(24일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28일 국립국악원 예악당).뮤지컬과 춤 공연에서 최승희 역을 맡은 배우 김성녀(52)와 무용가 백향주(27)를 만나 공연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다. ●뮤지컬 ‘최승희’- 인간 최승희의 삶과 예술 포스터용으로 찍은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반듯한 이목구비며,기품있는 포즈가 영락없는 자료사진 속 최승희다.“전부터 ‘최승희 닮았다.’는 말을 적잖이 들었어요.언젠가는 최승희 역을 맡으리라 기대했는데 이제야 꿈을 이루었네요.” 밝히길 쑥스러워했지만,김성녀는 이 작품을 위해 무려 7㎏을 감량하는 열의를 보였다. 극단 미추 대표 손진책 연출가와 김성녀 부부가 최승희 소재의 작품을 구상한 것은 14년 전.1988년 월북 예술가에 대한 정부의 해금 조치 이후 최승희의 존재가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일찌감치 뮤지컬 제작을 염두에 두었고 그때부터 자료를 수집하며 차근차근 작품을 준비해왔다. “최승희의 삶 자체가 아주 드라마틱하잖아요.‘천재무용가’ 칭송을 받을 만큼 탁월한 춤꾼이었지만 이념과 사상에 휩쓸려 친일무용가의 오명을 썼고,결국엔 남북 모두로부터 버림받아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불운의 인물이지요.” 뮤지컬은 최승희에 덧씌워진 전설과 환상의 베일을 벗겨내고 오직 춤만을 위해 평생을 살았던 그의 숙명적인 삶에 초점을 맞춘다.역사적인 인물을 형상화할 때 흔히 범하기 쉬운 ‘미화’의 유혹에서 벗어나 최승희의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측면도 묘사한다.뮤지컬이지만 음악 비중을 줄이고,무대를 최소화한 대신 풍부한 영상활용으로 깔끔하고 현대적인 이미지를 살릴 계획이다. 그는 “연습을 할수록 최승희의 삶이 남의 일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예술가로서 가정보다 일을 앞세우고,제자에게 엄격한 모습 등 삶의 방식과 성격면에서 자신과 비슷한 점을 보았다는 설명이다. 아무리 무용가가 아닌 인간 최승희에 조명을 맞추더라도 극중 춤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하지만 그는 무리한 욕심을 내지 않기로 했다.“아무리 노력한들 최승희의 춤을 어떻게 똑같이 해내겠어요.할 수 있는 만큼만 최선을 다해 보여줄 생각입니다.” 극중 최승희의 대표작 ‘보살춤’ ‘노사공’ ‘에아라노야’ 등 핵심 부분만 선보일 계획이다. “마지막 부분에 최승희가 육성으로 남긴 자작곡을 부르는 장면이 있어요.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최승희의 체취가 느껴져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배우 김성녀의 얼굴에 최승희의 모습이 겹쳐보였다.(02)747-5161. ●무용 ‘최승희의 신화를 넘어’- 춤으로 재현한 최승희 지난 봄 백향주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 입학했다는 소식은 무용계에 화제가 됐다.두살 때부터 무용가인 아버지 백홍천으로부터 클래식 발레와 조선민족무용을 배우기 시작해 25년 넘게 춤을 췄고,‘최승희의 환생’이라는 찬사까지 받고 있는 그가 뒤늦게 배움의 길로다시 들어섰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기 때문이다. “저에겐 당연한 선택이에요.지금으로선 남북한의 춤을 체계적으로 비교연구할 수 있는 사람이 저밖에 없는데 한국무용을 모르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죠.” 재일동포인 백향주는 9살 때부터 평양을 드나들며 무용공부를 시작했고,11살 때는 김일성 주석 앞에서 단독공연을 할 만큼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이듬해 평양음악무용대학에 입학해 무용가 엘리트 양성과정을 밟다가 16살 때 국비장학생으로 중국 유학을 떠났다.1991년 최승희의 수제자인 전 국립만수대 예술단 무용가 김해춘으로부터 최승희 춤을 배운 뒤 ‘최승희의 부활’이란 격찬을 받았다.국내에서는 1998년 처음 춤을 선보여 많은 화제를 뿌렸다. 이번 공연은 네번째 한국 무대이자 2년만의 단독 공연.‘최승희의 신화를 넘어’라는 부제는,그가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명확히 보여준다.“제 춤을 오로지 최승희의 재현으로만 대하는 분들을 보면 섭섭해요.물론 칭찬이란 걸 알지만 제 춤은 어디까지나 저의 예술세계를 표현하는 것이지,누구를 흉내내는 건 아니니까요.” 최승희의 춤을 바탕으로 하지만 그 위에 백향주의 색깔과 느낌이 묻어나는 그만의 춤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뜻이다.그는 또 특정 국가나 민족을 대변하는 예술가로 머물기를 거부한다.한반도를 뛰어넘어 동북아를 대표하는 무용가가 되겠다는 야심이 만만치 않다.이번 공연에는 우조춤,무당춤,관음보살무와 영춘장고춤,중국 태족춤인 공작새춤 등 독무 5개를 선보인다.한층 깊어진 그의 내면이 최승희의 춤사위를 어떻게 풀어낼지 기대된다.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최승희 연구가인 정병호 중앙대 명예교수를 만나러 간다며 자리를 터는 그에게선,최승희의 그림자 대신 무용가 백향주의 향기가 오롯이 느껴졌다.(02)3464-4998. 글 이순녀기자 coral@ 사진 이언탁기자 utl@
  • 영호남 4개대 총장 16일 방북

    영·호남 4개 대학총장들이 북한을 방문한다. 대구 영남대는 9일 이상천 총장을 비롯해 동아대 최재룡,조선대 양형일,원광대 정갑원 총장 등 영·호남 4개대 총장들이 오는 16일부터 4박5일 일정으로 북한을 방문한다고 밝혔다. 조선불교도연맹 중앙위원회 초청으로 이뤄진 이번 방북에서는 이들 대학과 경희대,계명대 등 국내 6개 대학이 공동으로 추진한 ‘2002 북한동포 담요 보내기 운동’의 성과를 점검하고 앞으로 북한동포돕기운동 추진방향과 전개방법 등을 논의하게 된다.아울러 김일성종합대학(총장 박관오)을 방문,남북대학간 학술교류 및 협력 방안을 협의 할 예정이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
  • 9·9절행사 안팎/北 새 미사일 공개 안해

    북한 정권 수립 55주년을 기념하는 열병식과 군중시위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비롯한 군·당·정 고위간부가 대거 참석한 가운데 9일 오전 10시부터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개최됐다. 그러나 당초 일부에서 예상했던 신형 미사일과 전차·로켓 등 군사장비를 동원한 무력시위는 없었으며,핵 보유 선언이나 미사일 시험 발사 발표 등 ‘상황을 악화시키는 조치’는 나오지 않았다. 조선중앙TV는 오후 3시부터 열병식과 군중시위 장면을 녹화 방영했으며,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도 같은 시각부터 이 행사를 일제히 녹음방송했다. 행사는 김 위원장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조명록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대동하고 주석단에 입장하면서 시작됐다.이어 개인화기인 ‘자동보총’으로 무장한 육·해·공군 및 여군 2만여명의 열병과 분열에 이어 붉은 꽃을 든 수십만명의 군중행진 순으로 진행됐다. 김영춘 인민군 총참모장은 연설에서 “우리는 미국이 우리의 선의와 아량에도 불구하고 적대시 정책을 포기할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는 조건에서 나라의 자주권을 수호하기 위해 자위를 위한 정당방위 수단으로 핵 억제력을 계속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국내외 일부 전문가와 언론의 관측과 달리 군사장비를 동원한 무력시위를 하지 않은 것은 미국 등 주변국들을 자극하지 않고 6자 회담으로 조성된 대화의 분위기를 이어가려는 뜻으로 해석된다.특히 행사를 며칠 앞두고 미사일 발사대와 본체 운반과정을 미국의 인공위성을 통해 일부러 노출시켜 긴장을 고조시킨 뒤 막상 행사 당일에는 공개하지 않는 심리전을 쓴 것으로 당국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통일부 관계자들은 당초 북한이 이날 상황을 악화시키는 조치를 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으나,이같은 예상이 사실로 확인되자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또 이에 따라 북한이 오는 11월로 예상되는 제2차 6자회담에도 참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도운기자 da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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