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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일 건강이상설] 주목 받는 北 후계구도

    [김정일 건강이상설] 주목 받는 北 후계구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악화설에 무게가 실리면서 북한 정권의 후계구도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사망했을 때는 김정일의 세습체제가 확고했었다. 현재는 두드러지는 승계자가 없어 불안정성이 더 높은 것이 차이다. 군 고위관계자도 10일 “뚜렷한 후계구도의 그림이 나오고 있지 않다.”면서 “이로 인한 급변사태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66세인 김정일 자신은 1974년 김일성 주석이 62세 때 후계자로 선정됐었다. 북한 전문가들은 10일 후계 구도로 부자 세습, 국방위원회 중심의 군부 통치, 군부 및 노동당 지도부의 집단지도체제 등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 가운데 지금 당장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신변에 이상이 생기면 군부 및 노동당 지도부의 집단지도체제 가능성이 가장 높다. 확실한 2인자가 오랫동안 없었던 것도 이유다. 김 위원장 통치 14년 동안 북한은 ‘선군정치’를 강조해오면서 군부에 힘을 실어왔다. 정상적인 정치·경제시스템이 마비된 상황에서 군을 앞세워 사회를 지탱해온 것이다. 비상계엄 형태로 군이 전면에 나서 단기간은 위기관리에 주도적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북한의 봉건적·가부장적 분위기를 고려할 때 부자세습 가능성도 빼놓을 수 없다. 세 아들인 정남(37), 정철(27), 정운(24)도 후계자로 거론된다. 장남인 정남과 삼남인 정운의 가능성이 차남 정철보다 높다. 정철은 ‘여성 호르몬 과다분비증’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고, 마약 중독설도 나돌고 있다. 특히 정남은 거주하던 베이징을 떠나 지난 7월 말부터 평양에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후계작업을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김정일 건강이상설] “거동·대화 가능…北 내부 동요 없어”

    국정원이 10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밝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상황은 ‘건강에 이상이 있지만 통치하기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국정원은 김 위원장의 정확한 신변을 묻는 여야 의원들의 질문에 “김 위원장이 지난달 14일 이후 순환기 계통에 이상이 발생해 수술을 받고 현재 호전 상태”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김 위원장은 금년 들어 모두 93회, 작년엔 74회에 이를 정도로 활발하게 공개 활동을 했지만 지난 8월14일 이후 공개활동 상황이 포착되지 않고 있다.”고 국정원은 보고했다. 국정원은 또 질의·응답 과정에서 김 위원장의 병명에 대해 뇌졸중, 뇌일혈, 뇌출혈 등 3개 질병의 가능성을 거론했으나 하나로 특정하기는 힘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회의에 참석한 복수의 의원들은 “병명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우리 정부의 정보 수준이 드러나는 데 대한 사전 방어막으로 풀이된다. 국정원측은 이밖에도 “(수술 부위) 이외에도 김 위원장이 40대 후반부터 고혈압과 심장병 등 각종 성인병이 발병해 투약 등 건강검진에 주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외국에서 의사들이 북한으로 들어갔다는 보도에 대해 “일부는 확인이 됐다.”고 정보위 의원들은 답했다. ‘호전 상태’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국정원은 “북한의 내부 동요가 없는 상황으로 봐서 거동도 할 수 있고 언어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한때 나돌았던 김 위원장의 ‘중병설’을 일축하는 언급이다. 나아가 북한에 권력 공백기가 온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뒤엎는 정황으로 파악된다. 이에 덧붙여 “통치 행위를 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 여야 의원들의 전언이다. 종합적으로 ‘김 위원장의 건강은 문제가 있지만 통치를 하는 데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다.’는 것이 국정원의 판단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김 위원장의 건강 문제가 유포된 배경은 무엇일까. 국정원은 이와 관련,“김 위원장은 과거에도 장기간 공개활동을 하지 않은 사례가 있었다.”면서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모두 17회 정도이며, 김 주석 장례식 이후엔 87일간 나타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국정원의 설명을 토대로 유추해 보면,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유포된 것은 최근 북한이 처한 국내·외적 상황과 무관치 않은 것 같다. 북핵 문제와 테러지원국 해제 여부를 놓고 대미 관계가 원만하지 않자, 김 위원장이 모종의 결단을 위해 ‘장고’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구혜영 구동회기자 koohy@seoul.co.kr
  • [김정일 건강이상설] ‘건강 이상설’ 김 위원장 어디 있나

    10일 국가정보원이 파악한 대로라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순환기 계통에 이상이 생겨 수술을 받은 뒤 상태가 호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회복 예후에 따라서는 후유증 발병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정부는 만일의 사태에 철저히 대비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통치에 문제가 없다지만 두 번씩이나 순환기계통 수술을 받을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 만큼 후계구도 작업이 본격화하는 등 북한의 정치지형 급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불능화 중단 선언’ 누가했을까? 이와 관련, 벌써부터 군부가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보를 종합하면 김 위원장은 지난달 14일 이후 수술을 받았다. 첩보에 따르면 22일을 전후해 수술대에 올랐을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26일 발표된 외무성 대변인 성명에 관심이 모아진다.“핵시설의 불능화 조치를 중단하고, 원상복구도 고려하겠다.”는 일종의 ‘폭탄선언’이었다. 하루 뒤 조선신보는 불능화 조치 중단이 “인민군의 냉철한 분석과 요구에 따른 것”이라고 보도했다. 또 “20일까지 외무성은 원상복구에 대해 고려하지 않았으나 그 후 현 정세에 대한 엄격한 판단이 조선의 외교정책에 반영된 것”이라고도 했다. 수술 직후 김 위원장이 이런 중요한 정책을 결정해 집행하긴 힘들 것이라는 가정하에서 군부가 김 위원장의 ‘유고’에 대비, 북핵협상의 문을 걸어잠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부도 이런 군부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외교안보장관회의 등을 통해 긴박하게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김 위원장 소재지 관심 증폭 같은 맥락에서 김 위원장의 소재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이와 관련, 이날 오전 중국쪽에서 친북인사의 말을 인용,“‘장군님’은 현재 북한에 없다.”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여러 정황상 김 위원장은 평양시내에 머물면서 국내외 의사들의 집중 관리하에 요양하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게 정보 당국의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중국 의사 5명이 고위층 치료를 위해 비밀리에 방북했다는 첩보에 이어 지난달 17일 프랑스 뇌신경외과 전문의가 방북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정보 당국의 눈과 귀는 평양시내에 있는 김 위원장 관저에 쏠려 있다. 행사에 참석하려 했다면 멀리 떨어져 있는 비밀별장에 있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추정 때문이다. 김 위원장의 공식 관저는 김일성 주석의 생전 관저이자 지금은 김 주석의 시신이 놓여 있는 금수산의사당(일명 주석궁) 북쪽 2㎞ 지점에 있는 이른바 ‘55호 관저’. 하지만 김 위원장은 신변 안전을 위해 ‘창광산 관저’ 등 4∼5개의 비공식 관저를 별도로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9·11테러’ 이후에는 비공식 관저의 이용이 빈번해졌고, 최고위급 간부에게도 공개 안한 비밀관저를 여러 곳 추가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보 당국의 분석이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김정일 뇌졸중 가능성”

    “김정일 뇌졸중 가능성”

    북한 김정일(얼굴) 국방위원장이 9일 정권수립 60주년 기념 열병식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당뇨병, 심장병 등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김 국방위원장이 뇌졸중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고 AP통신이 미국 정보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정보당국자는 김 국방위원장의 건강이 위중한 상태라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다고 덧붙였다. 로이터통신도 익명의 서방 정보 당국자를 인용, 최근 2주 안팎에 “김 위원장에게 건강상 이상, 특히 뇌졸중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이날 오후 평양시내 ‘김일성 광장’에서 정규군이 주축이 된 기존의 대규모 열병식이 아닌 노농적위대 열병식으로 행사를 축소 진행했다. 중앙방송과 평양방송, 조선중앙TV 등은 오후 9시부터 녹화 중계했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단상에 모습을 드러낸 가운데 김영춘 인민군 총참모장이 열병 보고를 했다. 김 총참모장은 “미제와 그 추종 세력들이 반공화국 압살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는 자위적 전쟁 억제력을 계속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국정원 대북라인 등 가용 채널을 총동원해 김 위원장의 신변 이상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건강 문제를 포함해 행사 불참 배경 등을 다각도로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건강 이상설과 관련, 한 외교 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지난달 쓰러졌다는 첩보가 있었지만 확인되진 않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정권수립 50년(1998년)과 55년(2003년) 등 이른바 ‘꺾어지는 해’(5년,10년째 되는 해)에 열리는 열병식에 참석, 행사를 지켜 봤었다. 북한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행사 불참 배경을 ▲심각한 건강 상태 ▲치료 후 회복기 ▲답보 상태인 북핵 및 남북 관계에 대한 불편한 심정 표출 등으로 추정했다. 북한은 정권 수립 60주년이라는 의미에도 불구하고 해외 사절의 방북 초청을 축소 조정하는 등 이례적으로 차분하게 행사를 준비해 왔다.‘꺾어지는 해’에는 열지 않던 중앙보고대회를 전날 개최한 것도 열병식 규모 축소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北 오늘 9·9절] 김정일 위원장 중앙보고대회 불참

    북한이 중시하는 ‘꺾어지는 해’(5년,10년째 되는 해)이면서 정권수립 ‘환갑’을 맞는 올해 9·9절에는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많다. 우선 최근 3주 이상 공개석상에서 사라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열병식 행사장인 ‘김일성 광장’에 등장할지 주목된다. 올 들어 ‘사망설’ ‘건강이상설’ 등이 잇따라 제기된 만큼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심각한 건강상 장애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안팎의 눈이 쏠려 있다. 김 위원장은 8일 열린 정권수립 60주년 경축 중앙보고대회에 불참했다. 특히 북한이 핵시설 복구 등 강수를 놓고 있는 입장에서 내부단속용으로 대규모 군중과 군인들을 상대로 핵자주노선 등을 발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이 파견할 9·9절 특사의 면면에도 관심이 쏠린다. 한·미·일 3국은 대화에 불응하는 북한에 대해 중국이 적극적인 중재노력을 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북한은 ‘꺾어지는 해’에는 열지 않는다는 관례를 깨고 9·9절을 하루 앞둔 8일 오전 평양체육관에서 중앙보고대회를 열었다. 그만큼 이번 9·9절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얘기다. 김영일 내각 총리는 행사에서 “경제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에 힘을 집중해 우리나라를 21세기의 사회주의 경제강국으로, 인민들이 부러운 것이 없이 잘사는 사회주의 낙원으로 건설하는 것은 우리 앞에 나선 가장 중요한 과업”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 3기 체제 출범은 현재까지 최고인민회의가 열리지 않아 가능성이 높지 않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北 오늘 9·9절] ‘北 정권60돌’ 최대규모로… 주민은 ‘원조’ 연명

    [北 오늘 9·9절] ‘北 정권60돌’ 최대규모로… 주민은 ‘원조’ 연명

    한반도 남쪽에 대한민국이 세워진 날(1948년 8월15일)로부터 26일만인 같은 해 9월9일 북쪽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하고, 수상에 ‘김일성 장군’을 옹립했다. 그로부터 60년, 한 차례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남과 북은 체제대치 상황을 지속하면서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북한은 5대 국경절 가운데 하나인 ‘9·9절’ 60주년을 맞아 경축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다. 기념 금·은화를 발행하고, 평양 청년거리·강안도로 등의 도시미관 개선공사도 끝냈다. 올해 새롭게 창작한 집단체조 ‘번영하라 조국이여’ 등 각종 문화축전도 성대하게 진행되고 있다. 역대 최대규모의 군사퍼레이드 준비상황도 포착됐다. ●계획경제에서 구호경제로 북한정권 60년사는 철저히 대한민국과의 체제경쟁으로 점철돼 있다.‘적화통일’은 1990년대 초까지 북한이 내세운 최고의 가치였다. 하지만 정치적 구호의 톤이 높을수록 민중의 삶은 피폐해져 왔다. 북한 주민 수백만명이 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 처참한 지경으로 굶어 죽었고, 지금도 북한 주민의 3분의2가 두 끼 식사로 하루를 버틴다. 물론 북한 정권이 그동안 경제를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1954년 전후복구 3개년 계획,57년 5개년 계획,61년 7개년 계획,71년 인민경제 6개년 계획,78년 제2차 7개년 계획,87년 제3차 7개년 계획 등으로 ‘계획경제’를 시도했지만 결과는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북한 정권은 93년 공식적으로 계획경제의 실패를 자인했다. 그리고 95년 이후 국제사회의 원조 없이는 주민들의 식생활을 책임질 수 없는 ‘구호경제’ 체제로 접어들었다. 실제 북한은 올해도 곡물 최소 소요량 520만t 가운데 380만t만 자체공급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부족분 140만t은 남한이나 세계식량계획(WFP) 등 국제사회의 원조에 의존해야 한다는 얘기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지난해 6월 ‘대북 인도지원 10년 평가’ 토론회에서 “북한 경제는 한국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은 경제로 바뀌었다.”며 “한국으로부터의 자원 유입이 없으면 도저히 지탱하지 못하는 체질로 변모했다.”고 진단했다. 금강산·개성관광이나 개성공단 등 남측과의 협력사업을 통해 들어오는 외화가 그나마 북한경제를 돌리는 ‘윤활유’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다. 경제 실패는 49년 이래 조선노동당 일당독재 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정치지형과 무관치 않다. 경제보다 유일지배체제 유지가 지배계급의 최대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수령주의에서 장군주의로 실제 북한은 60년대 말까지 지속적인 숙청을 통해 김일성 유일지배체제를 완성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6·25 종전을 전후해 박헌영 등 남로당파를 숙청했고,56년에는 연안파와 소련파를 몰아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종파청산 선언’ 10년만인 67년 ‘갑산파’를 쳐냈고,69년에는 김일성 권위훼손을 이유로 군부 고위층마저 ‘군벌주의’로 숙청했다. 이후 북한에서는 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할 때까지 수령의 교시가 최고 가치인 ‘수령주의’가 뿌리를 내렸다. 20년간의 후계수업을 거쳐 김 주석 사망후 권좌에 오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엄청난 자연재해와 핵위기를 ‘선군(先軍)정치’로 정면돌파해 나가고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김정일 장군만 믿고 따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장군주의’를 통치담론으로 내세우게 됐다. 실제 북한 정권에 ‘선군정치’와 ‘장군주의’는 안으로는 체제 안정과 결속, 경제 재건과 발전을 이룩하고 밖으로는 핵을 무기로 “미국과의 대결전을 승리로 이끌고 있는” ‘보검’으로 인식되고 있다. ●불확실한 미래 북한은 올해 초 2012년을 ‘강성대국의 문을 활짝 여는 해’로 만들겠다는 내용의 ‘비전 2012’를 발표했다.2012년은 김 주석 출생 100년, 김 위원장 출생 70년이 되는 해이다. 그 때까지 북핵 외교를 마무리짓고 북·미, 북·일 관계개선을 이루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미국, 일본과의 수교는 경제적 돌파구를 찾는 북한 입장에서 가장 시급한 목표점이다. 하지만 북한 정권의 미래는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는다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대체적 견해다.20여년간 후계수업을 받은 김 위원장과는 달리 아직 김 위원장의 후계자는 윤곽이 드러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김 위원장의 유고 등 급변이 발생하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김정일 건강이상설 신빙성 낮다”

    북한 매체에서 3주 이상 김정일(66) 북한 국방위원장의 동정이 보도되지 않자 어김없이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이번에는 “중국 의사 5명이 최근 방북한 뒤 아직 돌아가지 않았다.”는 정보와 맞물려 한때 설득력 있게 소문이 돌았다. 김일성 주석 생존 당시 외국 의사들이 김 주석 치료를 위해 방북했던 전례에 비춰 중국 의사들의 방북이 김 위원장 치료를 위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 것. 하지만 7일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건강이상설’은 과민반응인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지난달 14일 제1319 군부대를 시찰한 이후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지만 예전에도 2주,3주 정도의 ‘활동 공백기’가 많았다는 점에서 특별한 이상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정권 수립 60주년 준비와 북핵 문제 등으로 공개 활동을 줄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결국 김 위원장 ‘건강이상설’은 북한 정권 60주년 기념일(9·9절)인 9일 그가 ‘김일성 광장’ 연단에서 대규모 열병식을 관람하느냐에 따라 판가름날 전망이다. 김 위원장은 50주년과 55주년 행사 때 모두 참석해 지켜봤었다.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직제에도 없는 ‘사로청 서기’ 근무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여간첩 원정화의 대남 간첩 행위와 별개로 원정화의 북한내 경력과 행적에 대한 의문이 일부 탈북자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다. 일부 고위층 탈북자와 공작원 출신들은 북한의 대남 공작 시스템이나 관행 등에 비춰, 검찰 공소장에 원정화가 진술한 것으로 나타나 있는 원정화의 북한내 행적에 쉽게 수긍하기 어려운 대목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원정화는 1989년 6월쯤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현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의 최룡해 당시 위원장에게 발탁돼 낮에는 사로청 조직부에서 서기로 근무하고 오후에는 금성정치군사대학(현 김정일정치군사대학)에서 사로청 간부, 돌격대 대대장 등과 함께 공작원 양성교육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청년동맹 중앙위 조직부에는 지금이나 과거 사로청으로 불릴 때나 서기라는 직제가 없다. 금성정치군사대학에서 공작원 양성교육을 받았다고 진술했으나, 금성정치군사대학에서는 일단 선발되면 외부인과의 접촉은 단절된다. 낮에는 일반인들과 섞여 지내고 오후에만 교육을 받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는 게 탈북자들의 지적이다. 원정화는 “돌격대 간부교육을 이수했다.”고 했으나 ‘속도전청년돌격대’는 사실상 건설노동자 집단이다. 군대식으로 운영이 되고 노동 강도가 센 데다 말그대로 ‘막노동 집단’이라는 인식이 강해서 탄광·광산 다음으로 청년들의 기피대상이다. 원정화가 공작원 훈련을 받았다는 특수부대의 위치로 평양 모란봉구역 전승동을 지목했지만, 탈북자들은 “노동당이든 군이든 모란봉구역 전승동 같은 평양 도심에서는 특수부대 훈련을 하는 곳이 없다.”고 말한다. 원정화는 받았다는 ‘이중영예 붉은 기 휘장’은 개인이 아니라 모범적인 학교나 학급 전체에 수여되는 것이다. 한 탈북자는 “원씨를 아는 탈북자들 사이에서는 남한 실정을 잘 알는 원씨가 몇년 감옥살이 하고 나오면 몸값을 높여 돈을 벌려고 북한 보위부의 끄나풀인 자신의 북한내 이력을 과장하는 것 같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고 전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50년전 김정일은 부끄럼 많은 학생”

    “50년전 김정일은 부끄럼 많은 학생”

    북한 평양에 있는 김형직사범대에서 교수로 지내다 남쪽으로 내려온 재미 학자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얽힌 이야기를 기고해 눈길을 끈다. 미 버지니아 조지메이슨 대학교 김현식(76) 교수는 외교정책 전문 격월간 포린폴리시 9·10월호에 김 위원장의 어린 시절을 털어 놨다. 제목은 ‘김정일의 숨은 이야기’이다. 김 교수가 김일성 주석의 지시에 따라 김 위원장에게 러시아어 회화를 가르치기 위해 평양 남산중 3학년인 김 위원장을 처음 만났다.1959년 10월이었다. 김 교수는 “처음 봤을 때는 얼굴이 빨개지는 부끄러움이 많은 학생이었다.”면서 “당시 북한을 통치한 옛 소련 지도자 스탈린의 눈에 들어 유학까지 갔던, 최고 지도자의 아들이라는 점을 전혀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시험을 치렀다.”고 회고했다.“회화시험 땐 얼굴이 빨개졌고 이마에는 땀까지 맺혔다.”면서 “떠듬거리는 러시아어로 “‘나는 우리 아버지를 가장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나는 스포츠보다 영화를 즐깁니다.’라고 답했다.”고 덧붙였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민족의 아픔 담긴 노래 통해 역사 보고 싶어”

    “민족의 아픔 담긴 노래 통해 역사 보고 싶어”

    |도쿄 박홍기특파원|“노래에도 민족의 아픔과 설움이 고스란히 아로새겨져 있지요. 그래서 노래를 통해 역사를 보고 싶었습니다.” 일본에서 ‘금지된 노래·조선반도 음악백년사’를 펴낸 재일동포 2세 성악가인 전월선(田月仙·50)씨가 밝힌 출간 배경이다. 그는 “‘일본강점 100년’을 맞는 2010년을 염두에 두고 부제를 ‘조선반도 음악백년사’로 달았다.”고 말했다. ●일본·북한서 금지된 노래도 소개 도쿄에서 태어난 전씨는 일본음악계를 대표하는 소프라노의 한 사람으로 활약하고 있다.1985년에는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 앞에서 노래했고,1994년에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오페라 ‘카르멘’에 주역으로 나섰다.2002년에는 도쿄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가 주최한 김대중 대통령 환영 공연에도 출연했다. 이번에 내놓은 책은 일제강점기, 남북 분단, 군사정권 등 역사의 굴곡에 따라 부를 수 없었거나 부르기를 꺼릴 수밖에 없었던 노래들의 뒷이야기를 담았다.‘아리랑’과 ‘봉선화’,‘임진강’,‘그리운 금강산’,‘동백아가씨’,‘고려산천 내사랑’,‘아침이슬’,‘노란샤쓰의 사나이’….2006년 펴낸 자전적 논픽션 ‘해협의 아리아’에서 못다한 노래에 얽힌 사연도 담았다. 전씨는 “한국에서 허용하지 않았던 노래를 주로 다뤘지만 일본·북한에서 금지된 노래도 소개했다.”면서 “가능한 한 자료보다는 해당 노래의 작사·작곡가 등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삶터도 찾아 가봤다.”고 밝혔다. ‘해협을 넘나드는 가희(歌姬)’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전씨는 일본 공연 때엔 되도록 한국 가곡을 두세 곡 정도 부른다고 했다. 북한 노래 ‘임진강’은 음반으로 냈을 만큼 즐겨 부른다. 이 노래는 1968년 일본 그룹사운드 ‘포크 크루세이더’가 불러 크게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음반이 출시되기 직전 북한과 조총련이 강하게 반발해 처음에는 발매되지 못했고, 전파도 탈 수 없었다. ●10월 도쿄서 막 올릴 오페라 ‘춘향전´ 준비 한창 그는 ‘임진강’을 두고 “아름다운 노래로 한국에서는 1994년 처음 불렀다.”면서 ‘임진강 맑은 물 흘러 흘러내리고, 물새들 자유로이 넘나들며’라는 가사를 읊조렸다. ‘그리운 금강산’의 작곡가 최영섭씨가 금강산을 방문할 때 ‘이 노래를 불러서는 안 된다.’며 미리 안내원으로부터 주의를 받는 일화도 소개했다. “봉선화는 곡절도 많죠. 일제강점기에는 일제가 막았고, 지금은 작곡가인 홍난파 선생이 친일파로 낙인찍히는 바람에 잘 불려지지 않지요. 노래가 가진 사연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요즘 전씨는 한국의 뉴서울오페라단이 오는 10월 도쿄에서 막을 올릴 오페라 ‘춘향전’에서 춘향역을 맡아 연습에 한창 바쁘다. 그는 “춘향역을 두번이나 해봤지만 늘 새롭게 흥분된다.”며 웃었다. hkpark@seoul.co.kr
  • 독도라이더가 간다 3

    독도라이더가 간다 3

    유럽 홍보 활동 중 만난 북한 사람들 베를린에 울려 퍼진 조선의 노래 통일 독일의 수도 베를린. 세계의 수많은 수도 가운데 이곳만큼 흥망성쇠, 영광과 고난을 함께한 도시도 드물 것이다. 티어가르텐의 중심부에 있는 전승기념탑은 그 영광의 나날들을 잘 보여준다. 이 탑은 1864년 덴마크, 1866년 오스트리아, 1871년 프랑스와 싸워 이긴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탑이다. 베를린은 20세기가 시작하면서 고난을 맞이하게 된다. 1, 2차 세계대전에서 연달아 패배했고, 특히 2차 대전 말에는 연합국이 ‘악의 제국’의 심장부인 베를린을 무차별적으로 폭격했다. 1943년 연합국의 집중포화로 무너진 카이저 빌헬름 교회는 아직도 파괴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승리의 사두마차가 위용을 뽐내는 브란덴부르크 문은 동, 서 베를린을 나누는 기점이 되어버렸다. 1990년 다시 하나가 되었지만, 아직도 곳곳에 분단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베를린. 바로 이곳에서 오늘 이곳에서 평양예술단의 공연이 펼쳐진다. 사실 우리에게는 월드컵보다 더 의미가 큰 공연이다. 시작 시간보다 조금 일찍 극장에 도착했다. 극장 문을 살짝 열고 안을 보니 리허설 중인 모양이다. 80년대에나 유행했을 법한 짙은 화장을 한 여자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한눈에 북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여행을 하면서 수많은 나라의 사람들을 접해보았지만 이렇게 강한 동질감과 이질감을 동시에 느끼기는 처음이다. 한마디로 묘한 기분이다. “오빠, 문 닫고 나와요. 리허설 하는데 그렇게 오래 지켜보는 거 아니에요.” 민영이(유럽 홍보 활동을 위해 새로 합류한 독도라이더의 유일한 여성 멤버)의 핀잔에 화들짝 놀라 얼른 문을 닫았다. 오늘따라 잔소리도 많고 웃음도 많은 민영이. 딱 강석이 형이 무슨 유명한 건축물 앞에 섰을 때의 반응이다. 우리 모두 이제 겨우 이십대 초반이지만 그래도 전공은 속일 수 없나 보다. 국악을 전공하는 민영이는 오늘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 같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었다. 우리도 얼른 홍보물을 정리하고 공연장으로 들어섰다. 무대 중앙의 ‘도이췰란드’라고 쓰인 현수막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손으로 쓴 엉성한 글씨에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까는 몰랐는데 이제 보니 무대며 조명이 너무 열악했다. 첫 곡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반갑습니다’였다. 다섯 명의 성악가들이 노래를 부르며 하나 둘 객석으로 걸어나와 사람들과 악수를 나눴다. 두 번째 곡에서는 여성 성악가가 앞줄에 앉은 외국인과 함께 춤을 춰 보였다. 숙련된 무대 매너와 시종일관 밝은 미소에 사람들 모두 환호를 보냈다. 성악가들이 하나같이 목소리가 맑았다. 특히 여성 성악가들은 고음 처리가 너무도 깨끗하여 전율이 느껴질 정도였다. ‘젓대’라는 처음 보는 악기도 등장했다. 모양은 거의 대금과 흡사하다. 민영이가 계량한 대금 같다고 넌지시 알려주었다. “대금이랑 소리는 거의 비슷한데 음이 좀 더 다양한 거 같아요. 소리 내는 부분이 금속으로 되어 있어서 연주하기도 쉬울 것 같고요. 그런데 시김새(전통음악에서 선율을 이루는 골격음의 앞이나 뒤에서 그 음을 꾸며주는 장식음이나 음길이가 짧은 잔가락, 올라가는 음, 내려가는 음, 꺾어지는 음을 일컫는 말)가 좀 트로트 같네요.” 다른 얘기는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트로트 같다는 데는 공감했다. 젓대 연주뿐만이 아니라 성악가들의 노래도 전체적으로 트로트 같은 느낌을 준다. 어떻게 들으면 촌스럽고 어떻게 들으면 구수하다. 이어 무용 공연이 펼쳐졌다. 반주 음악과 함께 장구를 멘 무용수가 사뿐사뿐 걸어나오더니 이내 화려한 연주와 춤을 선보였다. 전통 무용이라면 조지훈의 ‘승무’에 나오는 정적인 동작들만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내 견문이 많이 얕았던 것 같다. 춤은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현란했다. 마지막 곡 ‘다시 만납시다’가 흘러나올 무렵 우리는 먼저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모터사이클을 세워놓은 곳에 간이 부스를 만들었다. 이곳에 참석한 북한 사람들에게 우리가 하는 활동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만약 서명까지 받을 수 있다면 우리에게 무엇보다 값어치 있는 보물이 될 것이다. 곧 건물에서 하나 둘 북한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가슴에는 김일성의 얼굴이 그려진 배지를 달고 있다. 하지만 즐겁게 웃고 있는 그들의 얼굴은 바로 우리의 얼굴이고, 옆 사람과 재잘거리는 그들의 말 또한 익숙한 우리말이다. 여행 내내 백만 번은 했을 “안녕하세요. 저희는 독도라이더입니다”라는 말을 떨리는 목소리로 내뱉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들이 다가왔다. 한 북한 청년은 우리의 모터사이클이 신기한 듯 눈을 떼지 못했다. 조금은 뿌듯한 목소리로 “국산 모터사이클이에요” 하고 말해주자 “아…!”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다들 외부 사람을 접할 기회가 많아서인지 경계하는 느낌은 전혀 받을 수 없었다. 오히려 우리의 설명도 귀 기울여 들어주고 독도 엽서와 지도를 기뻐하며 받아갔다. 그리고 몇몇은 우리의 활동을 지지한다는 서명란에 이름을 남겼다. 국적에는 ‘조선 사람’이라고 적었다. 가슴이 뭉클했다. “저기 계시는 분이 홍창일 북한 대사이니 가서 서명을 부탁드려 보십시오.” 한 사람이 나에게 넌지시 뜻밖의 정보를 알려주고 갔다. 유럽 한복판에서 이렇게 북한 대사를 만나게 될 줄이야. 좋은 기회이지만 한편 긴장이 되었다. “이러다 한국 돌아가자마자 보안법에 걸려 끌려가는 거 아냐?” “요즘도 납북되는 사람 있다던데.” 우리는 무시무시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일단 부딪치고 볼 일. 씩씩하게 다가가 우리의 활동 취지를 설명해 드리면서 도움을 주실 수 있는지 정중하게 부탁드렸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혹시 말실수라도 했나 싶어 슬슬 불안해지던 찰나 대사님이 천천히 입을 여셨다. “어디서 서명하면 되나?” 그리고는 우리의 안내에 따라 간이 부스로 이동해 서명을 남기셨다. 내친김에 나는 “세계 횡단을 마치고 귀국할 때 중국이 아닌 북한을 통해 한국에 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대사님은 그저 “몸 건강히 여행하시오” 하는 말로 답하셨지만 그 속에 묻어 있는 한 조각의 따스함을 우리는 잘 느낄 수 있었다. 전 세계가 월드컵으로 들썩이던 2006년 독일의 여름, 그 열기와 조금은 동떨어져 조용히 베를린을 울리고 간 조선의 노래…. 그래서 더 애틋하고 인상 깊었던 공연과 북한 사람들을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 같다. 아직 우리 땅에는 경계선이 그어져 있지만,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얼마든지 그 경계선이 사라질 수 있으리라. 글·사진 김영빈(독도라이더 팀장, 서울대 4학년) 2008년 7월 샘터에서 출간된 <독도라이더가 간다 - 21개국 3만4천 킬로미터, 232일간의 논스톱 모터사이클 세계 횡단기>를 통해 더욱 짜릿한 그들의 모험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2008년 8월
  • [씨줄날줄] 제2의 애치슨 라인/김인철 논설위원

    1950년 1월12일 당시 딘 G 애치슨 미 국무장관이 워싱턴 내셔널 프레스클럽에서 깜짝 연설을 했다. 소련과 중국의 세력 확장을 저지하기 위한 미국의 태평양 방어선은 “알래스카 알류샨열도에서 일본-오키나와를 거쳐 필리핀으로 이어진다.”는 내용이다. 이 결과 남한은 ‘애치슨 라인’으로 불리는, 미 방위선에서 제외됐다. 그 6개월 전인 1949년 6월30일 주한미군이 철수한 데 이어 나온 조치였다. 그리고 5개월여 뒤인 6월25일 한국전이 발발했다. 북한이 소련과 중국의 협조 아래 남침했음을 보여주는 사료들이 속속 발굴되고 있지만, 애치슨 라인은 남한이 위기에 처하더라도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란 오판을 낳기에 충분했다. 미국이 김일성에게 남침을 감행토록 빌미를 주었다는 주장이 지금도 제기되는 이유다. 한국전 당시 종군기자로 활약했던 존 리치 전 미 NBC 방송 부사장은 지난 25일 정전 55주년을 맞아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가진 강연에서 “애치슨 라인에서 한국을 제외한 것은 커다란 실수(Great Mistake)였다.”고 회고했다. 미 정부는 자국의 지명위원회(BGN)가 최근 한국령 독도를 ‘주권 미지정’으로 변경한 데 대해 한국 정부가 원상회복 조치를 요구하자 지록위마(指鹿爲馬)식의 강변을 늘어놓고 있다. 곤살로 갈레고스 국무부 부대변인은 “미 정부의 입장과 관련이 없으며, 미 정부의 입장은 변화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 역시 “전문가들이 정치적 고려 없이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다. 수십년간 사용해온 한국령 표기를 주권 미지정으로, 리앙크루 바위섬의 변형된 표현의 순서를 다케시마-독도로 바꿔놓고서 ‘미국은 중립’이라고 주장하는 미국인들에게 한국민들은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무지렁이로 보이는 건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눈 길 어지러이 가지마라/오늘 내가 지난 발자국 훗날 뒷사람의 길이 될지니” 조선 후기의 선비 이양연이 남긴 야설(野雪)이 새삼스럽게 기억나는 아침이다. 오늘의 갈지(之)자 행보가 일본의 독도 야욕을 부추기는 ‘제2의 애치슨 라인’이 되었다는 오점을 남기지 않도록 미국의 현명한 조치를 당부한다. 김인철 논설위원 ickim@seoul.co.kr
  • [부고] 한국인 기자 첫 김일성 주석 인터뷰

    [부고] 한국인 기자 첫 김일성 주석 인터뷰

    |워싱턴 김균미특파원|한국과 미국에서 50여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해온 ‘유에스 아시안뉴스’의 주필인 문명자(줄리 문)씨가 지난 21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버지니아주 패어팩스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78세. 문씨는 지난 1961년 초대 조선일보 주미특파원으로 워싱턴에 부임한 뒤 동아일보와 경향신문,MBC의 워싱턴 특파원을 지냈다.40년 가까이 백악관을 출입했다. 73년 MBC 특파원 시절 보도통제 중이던 ‘김대중 납치사건’을 보도한 것과 관련, 중앙정보부의 체포를 피해 미국에 정치적 망명을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박정희·전두환정권 시절 한국 언론에서 문씨의 이름은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됐었다. 이후 미국 동료기자들과 함께 통신사인 ‘유에스 아시안뉴스’서비스를 만들어 국제정치담당 주필로 활동해왔다. 80년 중국 덩샤오핑(鄧小平)의 초청으로 미국 여기자단 단장으로 중국을 방문, 덩샤오핑을 인터뷰했으며, 서방기자로는 처음으로 옌볜 지방을 취재했다. 90년 남북고위급회담 이후 방북취재를 시작한 이후 한국 출신 기자로는 92,94년 두차례에 걸쳐 김일성 주석을 인터뷰했다.94년 김일성이 사망했을 당시 서방 기자로는 유일하게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의 장례 전 기간을 취재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북한을 수차례 방문해 취재기를 월간 ‘말’에 기고, 국내에 소개했다. 잦은 방북으로 그는 한때 한국의 정보기관으로부터 ‘친북인사’‘반한인사’로 분류되기도 했다. 99년 11월 고희를 맞아 출간한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워싱턴에서 벌어진 일들’은 국내에 반향이 적지 않았다. 출판기념회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으로 망명한 지 26년만에 귀국하기에 앞서 서울신문(당시 대한매일)에 회고록을 10회에 걸쳐 연재했다. 동양통신 초대 워싱턴특파원을 지낸 남편 최동현씨에 따르면 문씨는 소설 ‘대지’의 작가 펄벅 여사와 각별한 친분을 유지했다. 문씨는 펄벅 여사와 함께 존 F 케네디 전 미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가했는데 그것이 계기가 돼 펄벅 여사가 문씨의 안내로 한국을 방문했고, 그의 미국이름 줄리 문도 펄벅 여사가 지어준 것이다. 문씨는 미국 여기자협회 회장과 미국 기자협회 이사를 역임했다. 발인은 25일 오후 8시 페어팩스 메모리얼에서 열린다. kmkim@seoul.co.kr
  • [씨줄날줄] 평양 리모델링/함혜리 논설위원

    평양(平壤)은 ‘평평한 땅’ ‘조용한 지대’라는 뜻 그대로 벌판이 넓고, 강을 끼고 있어 살기 좋고 경치가 좋은 곳으로 유명했다. 정치·경제·군사적으로 유리해 일찍이 고조선과 고구려의 도읍지로 번창했다.20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이 도시가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6·25전쟁 이후다.1953년의 내각결정 제125호가 그 발판이 됐다. 역사적으로 형성된 도시의 기본을 보존하면서 사회주의 체제에 걸맞은 계획도시로 건설하기 위한 것이었다. 대동강을 도시의 축으로 삼아 강변으로 구릉 기복조건에 어울리게 건축물을 배치하고, 김일성 광장을 남산 동쪽 기슭에 건설하며, 대동강과 평행되면서 하류에 산업시설을 배치하는 등의 계획이 이 결정에 담겼다. 김일성광장, 평양학생소년궁전, 인민문화궁전, 인민대학습장, 만수대예술극장 등 크고 웅장한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이 이 계획에 따라 설계되고 지어졌다. 평양은 1980년대 ‘평양 대개조 계획’에 따라 전세계를 향한 전시용 도시로 탈바꿈을 시도한다.1982년 4월 김일성의 70회 생일을 맞아 주체사상탑, 개선문 등 크고 웅장한 우상화 건축물들이 속속 들어섰다. 현대건축의 흐름을 따르는 건축물도 계획됐다. 그중의 하나가 유경호텔이다. 보통강 구역에 위치하고 있는 이 호텔은 높이 323m,105층에 평행사변형 꼴로 동서쪽으로 뻗어있는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다. 김일성 주석의 80회 생일에 즈음한 1992년 완공을 목표로 1987년 8월 착공됐으나 북측의 대금체불 등을 이유로 프랑스 기술진이 1989년 5월 철수했고,1992년 이후엔 공사가 완전 중단됐다. 오랜기간 도시의 흉물로 방치되던 이 호텔이 지난 3월부터 외자유치로 공사를 재개했다는 소식이다.‘평양 국제도시화 계획’에 따른 도시 리모델링의 일환이다. 최근 북한의 외모가 급격히 달라지고 있다고 전해진다. 향후 개방에 대비하려는 징후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북핵 문제의 진전 속에 식량 3만 8000t을 선적한 미국 선박이 지난 29일 북한에 도착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가 제안한 옥수수 5만t을 거부했다. 통미봉남이라지만 어이가 없다. 그들의 사고도 리모델링할 수는 없을까.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씨줄날줄] 잊혀진 전쟁/ 구본영 논설위원

    한국전의 기원과 관련해 이른바 수정주의 사관이 풍미한 적이 있었다.6·25의 책임을 북한이나 소련에서 찾는 게 아니라 미국에 묻는 게 그 핵심이었다. 전통주의 사관이었던, 북한의 남침설을 부인하면서 남침유도설 등을 제기한 게 골자다. 미국의 브루스 커밍스 교수 등이 들고 나온 학설이다. 지나친 반공교육에 따른 역풍이었을까. 이런 사관은 1980년대 초 우리 대학가에서도 득세했다. 당시 기자에게도 얼마간 솔깃하게 와닿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1980년대 말 구소련의 붕괴로 각종 비밀문서가 해제되면서 결정타를 맞았다. 스탈린 소련 공산당 총서기가 북한 김일성 수상에게 남침을 승인한 사실 등이 속속 공개되면서다. 이로 인해 남침유도설을 주창한 국내외 학자들도 수세에 몰렸다.‘한국전쟁의 기원 1·2’를 쓴 커밍스조차도 “1권을 쓴 뒤에 구소련의 비밀자료를 보고 매우 놀랐다.”고 실토할 정도였다. 미국이 애치슨라인에서 한반도를 의도적으로 제외해 북한의 오판을 유도했다는 주장 등이 설 자리를 잃게 된 셈이다. 국내 학자로선 진보적 성향의 박명림 교수가 커밍스를 합리적으로 비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어제는 베이징대 김동길 교수가 러시아의 문서보관소에서 찾아낸, 스탈린이 당시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에게 보낸 극비전문이 일부 언론에 공개됐다. 이 전문에서 스탈린은 미국과 중국의 참전을 유도하는 한국전 시나리오를 짰다는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며칠 전 이런 학계의 흐름을 무색케 하는 안보의식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중고생 절반 이상이 6·25가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게 그것이다. 전쟁 발발 연도를 아는 학생도 드물었다. 이쯤 되면 한국전은 우리 청소년들에겐 이미 ‘잊혀진 전쟁’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E H 카도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하지 않았던가. 역사는 자라나는 세대를 위해서 끊임없이 재해석해 공급돼야겠지만, 그런 역사교육도 좌든 우든 이념이 아니라 정확한 사료를 근거로 해야 할 듯싶다. 과거를 쉬이 잊거나 잘못 해석해 대비를 못하는 민족에게 비극은 되풀이된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한국전쟁 개전, 고려인 유성철이 명령”

    6·25전쟁 때 남침을 시작하는 개전 명령은 소련 국적의 고려인이면서 참전한 유성철 북한 인민군 작전국장이 내렸다는 증언이 나왔다. 1945년 소련군 장교로 김일성 부대와 함께 북한으로 들어가 6·25전쟁에 참전한 정상진(90·문학평론가)씨는 24일 카자흐스탄에서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이 유씨로부터 말을 직접 들었다고 전했다. 연해주에서 태어난 정씨는 “김일성이 1949년초 모스크바를 방문해 스탈린에게 남침을 위한 지원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하자 이듬해 4월 다시 소련을 비공식 방문, 끈질긴 설득 끝에 승인을 받아 냈다.”고 말했다. 전쟁이 끝난 뒤 소련파 숙청으로 쫓겨간 정씨는 “북한은 평화통일을 외치면서도 1946년부터 소련군의 지원을 받으며 착실히 남침을 준비했고, 남한의 이승만 정부도 공공연하게 무력통일을 외치고 있었다.”면서 “그러나 1950년 전쟁이 발발하자 북한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이승만 도당이 북침해 인민군이 2시간 만에 격퇴한 것으로 선전했다.”고 털어 놨다. 한반도에서 일제를 몰아 내야 한다는 부친의 영향을 받아 소련군에 자원입대했다는 정씨는 “6·25전쟁 직전에 자신은 김일성종합대학 러시아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었으나, 전쟁이 터지자 러시아어에 능통하다는 이유로 인민군 병기총국 부국장(여단장급)으로 임명돼 참전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 1952년 12월초 김일성이 불러 찾아갔더니 “전쟁이 거의 끝났으니 문화선전성 제1부상(차관급)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고 수락했다.”고 말했다. 그는 “문화선전성 부상에 임명된 직후 고려인 동료인 유 인민군 총부참모장 겸 작전국장(중장)이 평양의 한 술집에서 ‘전쟁은 북한이 시작했으며, 내가 6월25일 오전 4시 (공격개시를 위한) 신호탄을 쏘라고 직접 지시했다.’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전후 자신과 유씨를 포함해 소련국적 고려인 428명이 숙청을 당했다.”고 덧붙였다.연합뉴스
  • [씨줄날줄] 배기(背棄)/ 김인철 논설위원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의 춘추좌씨전에 나오는 고사성어다. 마오쩌둥은 6·25전쟁 당시 북한 김일성의 파병 요청에 일주일 동안 수염도 깎지 않고 고민한 끝에 이 한마디로 북·중 관계의 중요성를 정리한 뒤 파병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마오쩌둥은 중국의 ‘이’를 보호하기 위해 60만∼70만명의 병력을 희생시켜야만 했다. 개인적으로는 장남 마오안잉이 참전중 미군기의 폭격을 받고 28세의 나이로 숨지는 참척을 당했다. 순망치한이라 불리는 북·중 혈맹관계의 역사는 중국 국공내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1945∼49년 중국의 국공내전 당시 북한은 중국 공산당의 후방 역할을 했으며, 중국 공산군 출신 조선족부대는 이후 북한정권 수립에 기여하는 상호작용이 이뤄졌다. 순망치한의 북·중 관계는 1992년 한·중수교로 급랭했다. 당시 북한은 “제국주의에 굴복한 배신자”라는 극한 표현을 써가며 중국을 성토했다. 북한이 탈북자들에게 대해 퍼붓는 최악의 저주가 “배신자여 갈 테면 가라.” “배신자는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는 정도의 수사임을 감안할 때 당시 중국에 대한 분노와 섭섭함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된다.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이 취임 후 첫 해외방문 국가로 북한을 선택하고 어제부터 2박3일간의 방북 일정에 들어갔다.5년 뒤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뒤를 이을 시진핑의 방북은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로 선정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1983년 6월 첫 중국 방문을 연상케 한다. 김 위원장은 당시 후야오팡 총서기와 덩샤오핑 주석 등 지도자들을 두루 만났다. 미래 중국 최고지도자와 북한 지도부간 상견례가 될 이번 방북은 최근 극도로 가까워지고 있는 북·중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나는 중국을 절대로 배기(背棄)하지 않을 것”이라는 김 위원장의 약속은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한때 배신자라고 비난하던 중국에 대해 “절대로 배신하고 버리지 않겠다.”고 충성 서약을 한 것 같아서 말이다. 중국 신화통신은 시진핑의 방북 계획을 보도하면서 지난 2월 방북한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과 만났을 때 나왔다는 김 위원장의 발언을 굳이 소개했다. 김인철 논설위원 ickim@seoul.co.kr
  • “그는 젊은 詩의 거대한 뿌리”

    “그는 젊은 詩의 거대한 뿌리”

    ‘풀’의 시인 김수영의 시 세계를 되새기고 후배 시인들이 기념 시집을 헌정하는 김수영 40주기 기념 문학제가 16일 서울 홍대 앞 한 카페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시인의 아내 김현경씨와 여동생 김수명씨, 시집을 헌정한 김근·이원·이장욱·강정·김이듬·문혜진 등 시인과 독자 등 70여명이 참석해 시인의 문학혼을 기렸다. 이날 헌정한 기념 시집 ‘거대한 뿌리여, 괴기한 청년들이여’(민음사)는 시인이 세상을 뜬 해인 1968년 이후에 태어난 젊은 시인 40명이 그에게 바치는 젊은 시들을 묶은 것. 김경주, 손택수, 신용목, 심보선, 안현미, 이원, 이장욱 등 시인들은 김수영의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작품들을 선보였다. 서동욱 시인은 기획의 말에서 “김수영 시인은 한국 사회가 서구 근대화 물결에 밀려 재래적 시작법이나 시적 접근이 어려울 때 전위적인 시적 모험을 통해 한국 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면서 “독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현 시점에서 김수영 시인의 시가 어떻게 반영돼 대중 속에 발현되고 있는지를 짚어보는 데 행사의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김 시인의 대표시를 낭송한 김근 시인은 “‘사랑의 변주곡’을 낭송하다 보니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과 너무 맞아떨어졌다.”고 말했다. 한편 김수영 시인의 육필 원고를 모은 영인본 시집도 이달 중 나올 예정이다. 하버드대 한국문학 강사인 이영준씨가 고인의 부인 김현경씨가 소장하고 있던 육필 원고를 받아 편집했다. 영인본엔 김수영 시전집에 실린 시 176편 외에 방민호 서울대 교수가 2005년 발굴한 ‘음악’, 지난달 공개된 ‘김일성만세’등 새로운 원고가 추가될 예정이다. 글·사진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서울광장] 광우병 정국서 본 북한의 미래/구본영 논설위원

    [서울광장] 광우병 정국서 본 북한의 미래/구본영 논설위원

    생전의 북한 김일성 주석은 “이밥(쌀밥)에 쇠고기국을 먹이겠다.”고 북한주민들에게 약속했다. 그러나 그 비원을 끝내 이루지 못했다. 그의 사후에도 식량자급은 이뤄지지 않았다. 작가 황석영은 지난 1993년 펴낸 그의 방북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에서 “식의주 문제는 완전히 해결됐다.”고 북한 측의 주장을 소개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님은 불문가지다. 지난 1995∼98년 ‘고난의 행군’ 기간 적게는 수십만명에서 많게는 300만명 이상이 아사했다는 추정이 나오지 않았던가. 사정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대에 들어와 더 악화됐다. 지난 수년간 해마다 남측으로부터 수십만t의 식량지원을 받은 게 그 증거다. 올 들어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하다고 한다. 우리 측 인도적 지원단체들은 수많은 아사자가 나올 ‘제2의 고난의 행군’을 우려하고 있다. 이 와중에 지난달 말 뜬금없는 김정일 위원장 유고설을 접했다. 하지만, 필자는 이를 믿지 않았다. 구체적 팩트가 없는 첩보이어서만이 아니라 나름대로 남북관계를 취재해온 경험에 따른 직감이었다. 특히 인류 역사를 통틀어 굶주려서 망한 국가는 없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나 며칠 후 생각을 좀 달리하게 되는 계기를 맞았다. 북한당국이 남쪽의 ‘광우병 정국’에 뛰어들면서다. 당기관지 노동신문은 “역도의 범죄적 책동에 격노한 민심은 온 남녘땅을 촛불바다로 뒤엎고…”라며 대남 공세를 폈다. 한·미 쇠고기 수입 협상 타결로 불붙은 촛불시위에 편승한 셈이다. 북한은 지난 2001년 유럽에 광우병이 창궐할 무렵, 독일과 스위스에 폐기할 소를 무상 원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양국은 “(북한주민이)굶주리는 것보다는 폐기 처분할 쇠고기를 먹는 게 낫다.”며 제안에 응했다. 당시 스위스와 독일에선 각각 수백마리의 광우병 소가 발견됐다. 위험성으로 말하면 북한주민들이 먹은 쇠고기는 오래 전에, 그것도 3마리만 광우병 소로 판명된 미국 쇠고기와 비할 바가 아니었다. 다행히 북한에서 단 한명의 인간광우병 환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반면 ‘광우병 공포증’이 촉발시킨 촛불집회로 이명박 정부가 위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광우병 정국에 끼어드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광우병 우려가 컸던 유럽산 쇠고기를 대량 소비했던 북한이 목소리를 낼수록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홍보하는 꼴인 까닭이다. 이런 모순되는 논리 전개가 가능한 것은 북한이 확고한 김정일 1인체제임을 웅변한다. 인터넷도, 촛불시위도 없는 사회이기에 정보 소통이나 주민 여론에 대한 통제가 가능할 게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역설적으로 북한사회의 급변 가능성과 그 이후의 남북관계를 걱정해야 할 진짜 이유다. 김 위원장이 언제까지고 북한의 개혁·개방을 미룰 수는 없을 터이기 때문이다. 개량이나 점진적 개혁을 거부하는 경직적 정권은 언젠가 혁명을 당해야 하는 게 역사의 법칙이 아닌가. 일사불란한 것처럼 보이는 북한이 실은 광화문을 가득 메운 촛불시위대와 맞닥뜨리고 있는 이명박 정부보다 더 큰 위기요인을 잉태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엊그제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도 한·미는 물론 중·일까지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어둠이 깊으면 새벽이 다가오듯이 북한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면 그에 대한 우리의 대비도 이를수록 좋을 듯싶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DMZ 철책선 따라 들리는 생명의 노래

    DMZ 철책선 따라 들리는 생명의 노래

    2만 31일. 총부리를 겨눴던 남과 북이 휴전협정을 맺고, 동시에 한반도를 횡으로 가르는 155마일 비무장지대(DMZ) 철책을 세운 날로부터 오늘에 이른 시간이다. 반세기가 훨씬 넘는 세월 동안 상처받고 훼손됐던 ‘죽음의 땅’은 스스로를 치유하기 시작했다. DMZ는 이제 발길 닿는 곳마다 생명의 울림이 깃드는 평화와 생명의 땅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비무장지대로의 여행은 전쟁의 기억을 되살리고 반공을 외치는 안보관광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DMZ를 포함한 동서횡단 여행 코스가 새로운 여행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대치의 현장에서 화해의 장으로, 그리고 평화와 통일을 이야기하는 여행지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 # 아주 특별한 땅에서 만난 열쇠전망대 DMZ(demilitarized zone)는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과 북이 각각 2㎞씩 뒤로 물러서 형성된 공간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 지역. 비극과 통한의 현장이긴 하지만, 희소가치 때문에 관광상품으로서의 매력을 갖고 있기도 하다. 경기도 연천의 열쇠전망대를 찾았다. 몇 발짝 뒤 후방지역과 같은 산, 같은 물인데도 DMZ로 향하는 민간인통제지역의 그것들에서는 왠지 모를 무거움이 느껴진다. 영화의 한 장면인 듯, 시간을 초월한 공간처럼도 느껴진다. 화약냄새 무성했을 반세기 이전에도 산자락 곳곳마다 민들레가 무시로 피고 지고, 산새들은 아침을 노래했을 게다. ‘강한 친구’ 육군 이모 상병이 간단한 신분확인 절차를 마친 뒤 전망대로 향하는 바리케이드를 열었다. 방문객에게 단정한 웃음을 짓는 것도 잊지 않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DMZ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금단의 땅이었다. 요즘은 많이 변했다. 신분증만 있으면 어지간한 전망대는 손쉽게 출입할 수 있다. 대북방송용 확성기가 치워진 것은 이미 오래고,‘견즉필살’ 등 섬뜩한 구호 일색이던 수색대대 담장은 ‘컬러풀’한 벽화가 대신하고 있다. 강원도 철원군 평화전망대의 경우 전망대 오르는 길에 모노레일까지 깔아 뒀다. 열쇠전망대는 북녘땅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터를 잡았다.‘통일의 열쇠’가 되겠다는 의지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철책선 아래 넓게 펼쳐진 DMZ의 신록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관광객 중 일부는 통일을 바라는 마음에 민들레 씨앗을 날려보내기도 하고, 리본에 구호 등을 적어 가시 돋친 철사에 매달기도 했다. # 철책 따라 여행해 볼까 DMZ를 평화생명지대(PLZ·Peace Life Zone)로 탈바꿈시켜 관광상품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한국관광공사는 ‘분단과 화해’를 테마로 4개 시범코스를 제시했다. 아직 공식 상품화된 것은 아니지만, 시범코스대로 DMZ를 돌아보는 것도 훌륭한 테마여행이 될 듯하다. ‘분단의 판문점에서 화해의 개성까지’ 코스는 서울을 출발해 북한 개성과 판문점, 연천 열쇠전망대 등을 1박2일 동안 돌아본다.‘평화가 흐르는 한강 뱃길’ 코스는 서울 여의도에서 애기봉, 초치진 등 김포와 강화 지역을 돌아오는 당일 일정.‘전쟁이 만든 생태를 만나다’는 철원 평화전망대와 금강산 철교, 칠성전망대, 수달보호구역 등 철원, 화천, 양구 지역을 돌아보는 1박2일 코스다. 인제와 고성, 금강산 등을 묶은 ‘설악과 금강의 아름다운 만남’은 금강산과 통일전망대, 화진포, 외설악 등을 돌아보는 3박4일 일정으로 짜여졌다. DMZ관광주식회사는 비무장지대 전문여행사다. 다양한 가격대의 상품을 준비하고 있다.www.dmztourkorea.com,(02)706-4851. 글 사진 연천·철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전방지역 주요 전망대 ● 경기도 ▲오두산통일전망대 : 임진강 하류 너머 황해도 땅이 보인다. 자유로를 타고 가다 성동리 나들목에서 빠져나간다. 당일 방문이 가능하고 신분증은 필요없다. 오전 9시∼오후 5시.(031)945-3171. ▲도라산전망대 : 임진강 자유의 다리 너머 도라산역 앞에 있다. 개성의 송악산, 김일성 동상, 북의 선전촌인 기성동, 개성시 변두리, 개성공단 등이 보인다. 임진각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가면 편리하다.30명 이상 단체만 가능하고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 오전 9시20분∼오후 3시.(031)940-8347. ▲태풍전망대 : 한국전쟁 격전지로 유명한 베티고지와 노리고지가 지척이다.3번 국도를 따라 전곡을 지나 322번 지방도로로 갈아탄 뒤 백학 방면으로 진행한다. 군 초소에 신분증만 제출하면 출입할 수 있다. 오전 9시∼오후 5시.(031)839-2789. ▲열쇠전망대 : 비무장지대에서 가장 너른 들판과 마주할 수 있다. 철책에 소망 리본을 달아 놓을 수도 있다. 경원선 대광리역에서 마전리 초소를 지나 들어간다. 신분증 지참. 오전 9시∼오후 5시.(031)839-2789. ● 강원도 ▲철원 평화전망대 : 철원평야에서 북한의 평강고원, 낙타봉 등으로 이어지는 철의 삼각지대가 압권이다. 인근에 백마고지 전적비, 노동당사, 월정리역 등 유적지들이 산재해 있다. 고석정에 있는 한탄강관광사업소에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출입 허가(화요일 제외)를 받아야 한다. 하루 네 번 출입.(033)450-5558. ▲승리전망대 : 휴전선 155마일의 정중앙에 자리해 있다. 금강산철도,43번 국도 결절점, 광삼평야, 아침리 마을 등이 보인다.43번 국도를 타고 김화까지 가 마현리 입구를 찾는다. 철원군청에서 운영하는 승리전망대 매표소가 있다. 방문 요령은 철원 평화전망대와 동일하다.(033)450-5900. ▲칠성전망대 : 중동부 전선 백암산 기슭에 있다. 북한 금성천 변이 조망된다. 자유 관광 불가.7사단 칠성부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신청서는 관람 일주일 전 화천군청 민군협력계를 통해 낸다. 오전 10시30분∼오후 5시.(033)440-2307. ▲을지전망대 : 전망대 앞으로 스탈린 고지가 보인다. 날씨만 좋으면 금강산 비로봉·차일봉·월출봉 등도 볼 수 있다. 해발 1049m.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북쪽 능선 위에 있다. 근처에 제4땅굴이 있다. 양구에서 31번 국도를 타고 가다 453번 지방도로 갈아탄다. 통일관에 대표자 1인의 신분증과 출입신고서를 작성해 제출한다. 오전 9시∼오후 5시30분.(033)480-2674. ▲통일전망대 : 동해안 최북단 고성군 현내면 명호리에 있다. 해금강 대부분 지역이 눈에 들어오는 곳.7번 국도를 타고 명호리까지 가면 된다. 통일안보공원에서 출입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한다. 오전 8시30분∼오후 6시.(033)682-0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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