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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사진통치/함혜리 논설위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 스타일 가운데 두드러지는 특징은 ‘얼굴 없는 통치’다. 김 위원장은 한반도 정세가 악화일로에 있다거나 북한 핵이나 미사일 문제 등이 대두됐을 때 결단이 임박한 상황에서 잠적해 버린다. 짧게는 20일 길게는 80일 넘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의도적 은둔을 하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우선 지도자로서 조국과 민족의 장래를 위해 고뇌에 찬 결단을 내린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해서다. 신비주의를 가미함으로써 ‘지도자 동지’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충성심은 하늘을 찌르게 된다. 외국 언론의 호기심은 증폭되기 때문에 결단의 영향력을 배가시킨다. 김 위원장이 이런 식으로 공개활동을 중단한 것은 1994년 7월 김일성 전 국가주석이 사망한 이후 현재까지 총 17회에 이른다. 최장기 은둔 기록은 87일간이다. 지난 8월14일을 마지막으로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김 위원장이 최근 왕성한 공개활동을 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사진들이 잇따라 공개되고 있다. 조선중앙방송 등 북한매체들은 지난 2일 김 위원장의 북한군 축구경기 관람 사진에 이어 5일 2200군부대와 534군부대 시찰사진,6일 국가공훈합창단을 비롯한 중앙예술단체의 공연 관람 사진 들을 쏟아 냈다. 공개된 사진들만 보면 김 위원장은 건재하다. 북한 전문가들은 이번 사진 공개가 김 위원장 자신의 건재를 과시함으로써 건강이상설을 불식해 북한 내부의 동요를 차단하고, 군부 및 당 세력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려는 의도라고 풀이한다. 대외적으로는 미국 대선을 전후해 대미관계나 북핵문제를 김 위원장 본인이 직접 관장할 수 있으며 통치행위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시켜 주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북한이 최근 내놓은 사진들은 조작 가능성이 제기될 정도로 조잡하고 엉성하다.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와 BBC인터넷판은 최근 공개된 김 위원장의 사진들이 합성된 것일 가능성이 있다고 잇따라 보도했다. 어설픈 사진이라도 공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만큼 북한 내부의 동요가 심각하고, 김 위원장의 건재를 확인시키는 게 다급했다는 반증은 아닐까. 사진통치의 약발이 언제까지 갈지 지켜 볼 일이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김정일 이번엔 공연 관람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연일 공개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5일 군부대 두 곳을 시찰하는 사진을 통해 걷거나 박수치는 등 건강이상설을 일축한 김 위원장이 북한군 장병들과 함께 공훈국가합창단 등 중앙예술단체 예술인들의 공연을 관람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6일 새벽 보도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관례적으로 관람 날짜와 장소는 언급하지 않았다. 정보 소식통은 “김 위원장의 활동을 수행하는 인사들의 숫자가 차츰 늘어나고, 점점 공개장소를 찾고 있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건강이상설 불식을 위한 고도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달 4일 김일성종합대 축구경기 관람 때는 리재일 제1부부장만 수행자로 소개됐고, 제821부대 산하 여성포중대 시찰 때는 현철해, 리명수 대장 2명이 거론됐다. 북한군 축구경기 관람 때는 현철해, 리명수, 김명국 대장과 장성택 행정부장, 리제강·리재일 부부장 등 6명이 수행한 것으로 소개됐다.5일 군부대 두 곳 시찰 때는 현철해, 리명수, 김명국 대장 등이, 그리고 이번 공연관람에는 최태복·김기남 당비서, 장성택·리광호·김양건 당 부장, 현철해·리명수 대장 등 7명이 수행했다. 통일부 김호년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북한에서는 2~3일에 한번씩 김 위원장의 동정 보도를 하는 것이 정상”이라며 “과거의 사례에 비춰 너무 많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또 납북자가족모임 등 일부 민간단체가 대북 전단(삐라)을 계속 살포하는 것과 관련,”정부는 그동안 여러차례 남북간 합의정신과 현 남북관계를 고려할 때 대북전단 살포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상황을 설명하며 거듭 자제를 요청했다.“며 ”이와 같은 요청에도 불구하고 전단을 살포한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다시 한번 전단 살포를 자제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부고] 北 ‘혁명 1세대’ 박성철 정치국 위원 사망

    북한의 박성철 정치국 위원 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이 28일 ‘오랜 병환’으로 사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9일 전했다.96세. 경북 경주 출신인 박성철은 ‘혁명 1세대’로 김일성 주석과 함께 항일투쟁을 하다 광복 후 북한에 들어가 인민군 15사단장, 노동당 국제부장, 외무상, 정무원 총리, 국가 부주석 등을 지냈다. 김 주석의 유일사상체계 및 노동당 유일지도체계 구축에 기여한 최측근 중 한 사람이다. 그는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성사의 주역으로 참여했다.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평양 방문에 이어 북한의 김영주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을 대신해 서울을 방문, 이 부장과 회담했다. 특히 7·4공동성명에 따라 설치된 남북조절위원회 북측 위원장인 김 부장 대신 같은 해 12월 서울을 다시 비공개로 방문해 박정희 대통령을 면담했다. 1994년 7월 김 주석이 사망했을 때 국가장의위원회 서열 5위, 이듬해 오진우 인민무력부장 사망 때는 서열 4위에 오를 정도로 최고위직을 역임했다.1998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명예부위원장에 선임되면서 사실상 은퇴했다.‘공화국 영웅’(1992년) 칭호와 ‘김일성 훈장’(1993년)을 받았다. 1989년 평양에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이 열렸을 때 “이제는 인민들의 먹고사는 문제에 힘을 써야 할 때”라며 행사 개최에 불만을 표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관계가 껄끄러워졌다는 일각의 분석도 있다. 북한은 박성철의 장례를 30일 국장으로 치르기로 했으며 김 위원장이 빈소에 조화를 보냈다고 북한 매체들은 전했다.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평화문제硏 역대정부 통일정책 변천사 발간

    이승만 정부부터 이명박 정부까지 역대 정부의 통일정책을 분석한 책이 나왔다. ‘역대 정권의 통일정책 변천사’(평화문제연구소 발간). 저자인 신영석 평화문제연구소 부이사장은 이 책에서 분단 이후 우리 사회가 겪어 온 통일환경의 변화와 분단 극복의 노력을 총괄적으로 고찰했다. 신 부이사장은 “통일은 결국 다양한 의견과 주장을 가진 여러 집단의 총체적 의사가 결집되면서 분단의 높고 두꺼운 장벽을 뚫고 나가는 과정”이라며 “어느 주장이 옳고, 다른 주장은 그르다는 편가르기식 태도는 가장 반통일적인 자세”라고 지적했다. 저자에 따르면 힘대 힘으로 치닫던 남북관계에서 통일 논의의 싹을 틔운 것은 4·19혁명이다. 통일 논의의 자유화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주장과 제안이 쏟아졌다. 박정희 정부는 남북협상을 통해 일부 성과를 냈지만 정부가 통일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불신이 팽배했다고 신 부이사장은 지적했다. 군사정부 시절 통일논의가 다시 활성화된 것도 특이할 만하다. 신 부이사장은 “전두환 정부 시기 남북관계 및 대북·통일정책에서 적지 않은 진전과 함께 남북교류와 접촉이 시도됐다.”며 “6월 민주화운동을 통해 확산된 남북대화 촉구분위기 등에 따라 노태우 정부도 북방정책을 비롯한 각종 대북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김영삼 정부에는 북핵 문제 대두와 김일성 주석 사망 등으로 대북정책이 냉·온탕을 오갔고, 김대중 정부 들어 냉전적 사고를 극복한 정책을 추진함으로서 한반도 분단 역사의 극복을 위한 일대 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노무현 정부 때는 북핵 문제의 진행에 따라 남북관계가 전진과 후퇴를 반복했다고 평가하고, 현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대선 공약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서술했다. 평화문제연구소는 27일 오후 서울 세종호텔에서 출판기념회를 연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닝푸쿠이 中대사 이임

    닝푸쿠이 주한 중국대사가 3년 임기를 마치고 20일 이임했다.2005년 9월 부임했던 닝 대사는 김일성종합대 조선어문학부 출신으로 한국어에 능통하고 우리 국민들과도 많이 접촉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여 양국관계 증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후임 청융화 주 말레이시아 중국대사는 26일 부임,11월 초쯤 신임장 제정을 거쳐 공식 활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 [北테러지원국 해제] 北 국제사회 편입 신호탄?

    북한이 20년 만에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되면서 `테러리즘과 밀접한 나라´라는 ‘꼬리표’를 떼게 됐다. 이제 관심은 북한도 지난 2006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된 리비아처럼 북·미 관계 정상화에 급물살을 타게 될 것인지에 쏠린다. 북한은 지난 1987년 대한항공(KAL) 여객기 폭파사건 직후인 1998년 1월 미국법에 의해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됐다. 미 국무부가 지정하는 테러지원국은 ‘국가가 테러를 직접 지휘하고 지시하거나 테러집단을 재정 등 여러 방법으로 지원하는 나라’로, 현재 북한을 제외하면 쿠바·이란·수단·시리아 등 4개국이 지정돼 있다. 북한은 그 후 특별한 테러행위는 없었지만 1970년 일본기 ‘요도호’를 납치한 일본 적군파를 보호하고,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등이 부각돼 테러지원국 명단에 계속 머물러 왔다. 이번에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가 20년 만에 이뤄지면서 북한은 관련 제재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에 편입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북한은 먼저 미국의 무기수출통제법·수출관리법·국제금융기관법·대외원조법·적성국교역법 등 5개 법률에 의거해 받았던 제재에서 벗어날 근거를 갖게 된다. 무기수출통제법은 테러지원국에 대해 미 군수품을 직·간접으로 수출·임차하거나 미 군수품 이전을 용이하게 하거나 재정지원을 금지한다. 수출관리법은 테러지원국에 군수용으로 전용될 수 있는 이중용도 제품과 기술을 수출할 경우 허가를 받아야 하며 특히 미사일 관련 제품과 기술의 수출은 전면 금지된다. 국제금융기관법은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IBRD) 등 국제금융기관들이 테러지원국에 차관 제공 등을 위해 자금을 사용할 경우 미국측의 반대를 의무화한다. 대외원조법은 테러지원국에 대해 식량 및 평화봉사단 지원, 수출입은행 신용대출을 금지하며 적성국교역법은 테러지원국과의 교역·금융거래를 금지한다. 이 중에서 북한의 가장 큰 관심은 국제금융기관의 차관 제공 가능성으로 알려졌다. 김일성 주석의 생일 100주년을 맞는 2012년을 ‘강성대국의 원년’으로 정한 북한으로서는 경제회생을 위해 외부로부터의 ‘수혈’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이 테러지원국에서 해제되더라도 당장 국제기구로부터 차관을 받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북한은 테러지원국 해제로 자존심을 회복하고, 대내외적으로 대미 협상에서 승리했다고 선전할 수 있는 만큼 상징적 효과를 극대화할 것으로 보인다.또 북한보다 먼저 테러지원국에서 해제된 리비아의 경우 최근 수도 트리폴리에 미국 무역사무소가 개설되는 등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가 속도를 내고 있어 북·미 관계 진전도 앞당길 수 있다는 기대도 높일 수 있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北테러지원국 해제] 北공개 김정일사진 배경 7~8월?

    북한이 8월16일 이후 56일 만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군부대 시찰 사진 10여장을 11일 오전 1시42분 조선중앙텔레비전을 통해 공개했다. 정부 당국은 공개 시간, 공개 사진 숫자, 사진 배경 등에서 이례적인 부분이 많다고 보고 정확한 경위 파악에 주력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12일 “사진을 통해서는 김 위원장이 언제 군부대를 시찰했는지 알 수 없어 건강 회복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북한 매체가 공개한 김 위원장의 시찰 부대는 인민군 제821부대 산하 여성포중대. 북한에서 세 자릿수 부대는 우리의 군단 규모로,821부대는 함경남도 원산과 강원도 통천 사이를 관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이 이번 사진 공개에 대해 품는 의문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촬영 시점이다. 중앙TV는 김 위원장의 부대 방문 일자를 밝히지 않았지만 정보 당국은 사진 속의 풀과 나무가 한여름을 연상시킬 정도로 초록색이라는 점에서 ‘지금 상황’은 아닐 것으로 보고 있다.7∼8월 또는 6월 초 이후에 촬영됐거나 과거 이 부대를 방문했던 사진이 아니냐는 것이다. 10여장의 많은 사진을 공개한 것도 의문이다. 통상적으로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나 군부대 시찰 모습을 담은 사진은 2∼3장 정도만 공개돼 왔다. 북한 주민들이 대부분 잠들었을 오전 2시쯤에 전격적으로 사진을 공개한 것도 음미해볼 대목이다. 앞서 조선중앙방송은 전격적인 예고를 거쳐 10일 오후 9시에 5일 노동신문에 주었다는 김 위원장의 담화를 보도했다. 정보소식통은 “지난 4일 김 위원장이 관람했다는 김일성종합대 창립 62주년 기념 축구경기 보도부터 일련의 과정이 정교하게 계획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그런 점에서 축구경기 관람 보도부터 담화 보도, 사진공개 등은 미·북간 핵협상이 완결되고,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가 확정되는 것에 대한 자축 및 체제선전과 함께 건강이상설 불식 등의 다목적 포석하에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진경호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씨줄날줄] 10·10절/구본영 논설위원

    북한의 명절은 개념부터 우리와 다르다. 음력설과 추석같은 전통적 명절은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반면 고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 및 정권창건일(9·9절)과 노동당 창당일(10·10절) 등 사회주의 명절이 국가적 명절로 치부된다. 국가적 명절이 민속명절에 비해 훨씬 중시됨은 말할 나위도 없다. 양력설을 제외한 민속명절은 봉건잔재로 규정해 폐지했다가 1980년대에 되살렸다. 그나마 하루 쉬고 다음날 보충노동을 해야 한다. 하지만 태양절로 불리는 김일성 생일(4·15)과 김정일 생일(2·16)은 이틀 연휴다. 여기에다 9·9절과 10·10절을 보탠 4대 명절엔 주민들에게 특별 배급과 선물까지 제공된다. 그래서 지난 9·9절 행사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부재는 북한식 표현을 빌리자면 ‘일대 사변’이었다. 가정이지만, 건국 60돌 기념식에 이명박 대통령이 불참한 것과 다름 없기 때문이다. 노동당 창당 63주년인 오늘 김 위원장의 출현 여부가 주목되는 이유다. 건강이상설 속 그의 건재여부나 북한권력 변화를 가늠할 리트머스 시험지라는 점에서다. 그는 지난해 아리랑 공연을 참관하는 등 95년 이후 지난해까지 총 7차례나 10·10절 행사에 출현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모습을 드러낼진 불투명하다. 북한 매체들은 그가 최근 축구경기를 관람했다고 보도하면서 짐짓 그의 건재를 알렸다. 그러나 사진이나 동영상없는 보도라 복귀 징후로 해석하긴 무리다.5년,10년 주기의 ‘꺾어지는 해’가 아닌 데다 주민들에게 줄 선물이 없다는 점도 변수다. 세계식량계획(WFP)은 얼마 전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북한주민 60% 이상이 하루 두끼로 버티고 있다고 보고했다. 까닭에 김 위원장이 일단 화환이나 편지를 보내는 식의 ‘얼굴없는 행보’를 할 개연성도 점쳐진다. 북한의 급변 사태는 한반도 평화관리의 최대 변수다. 그런 만큼 우리의 정보 역량도 시험대에 올랐다. 우리 측이 김 위원장의 건강상태나 북한 내부정세에 대해서 너무 호들갑을 떨어 북측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까닭은 없다. 국정원은 새 원훈의 한 구절처럼 ‘무명(無名)의 헌신’에 충실하고, 정부는 정확한 정보를 토대로 차분히 대비해야 한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김정일 공개 행보 재개?

    김정일 공개 행보 재개?

    김정일(얼굴), 공개 행보 다시 나서나? 공개석상에서 자취를 감춰 ‘건강 이상설’이 제기됐던 김정일(66) 북한 국방위원장이 김일성종합대학 창립 62주년을 맞아 김일성종합대학팀과 평양철도대학팀 간 축구 경기를 관람했다고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4일 보도했다. 지난 8월14일 군부대 시찰이 보도된 뒤 51일 만으로, 이 보도가 사실일 경우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직후 87일간의 장기 은둔 이래 두 번째로 기록되게 됐다. 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리재일 노동당 제1부부장을 비롯한 당중앙위원회 책임간부들, 관계부문 일꾼들”과 함께 축구경기를 관람했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관람 일시와 장소는 언급하지 않았다. 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경기를 관람하면서 “혁명적이며 전투적인 우리 대학생들이 조국과 인민을 위한 과학탐구에 지혜와 열정을 다 바칠 뿐 아니라 예술활동과 체육활동도 잘하고 있다.”며 경기 성과를 축하했다. 북한 주민들이 청취하는 대내 라디오방송인 조선중앙방송도 5일 첫 뉴스 시간인 오전 6시 김 위원장이 김일성종합대학 창립 62주년을 계기로 열린 대학생 축구경기를 관람한 소식을 전한 뒤 정규 뉴스 시간인 오전 7시,10시에도 다시 내보냈다. 평양방송도 이날 첫 뉴스 시간인 오전 7시에 이어 오전 8시,10시에 김 위원장의 경기 관람 소식을 반복해 보도했다. 위성으로 중계하는 조선중앙TV도 이날 오전 9시13분쯤 김 위원장의 경기 관람 소식을 전했으나 아나운서 멘트로만 보도했다. 중앙TV가 이날 오후 전한 ‘오늘호 중앙신문 개관’에 따르면 노동신문, 민주조선, 청년전위, 평양신문 등 주요 신문도 경기 관람 소식을 사진 없이 1면 톱기사로 다뤘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경기장을 직접 찾아 관람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대북 소식통은 “김 위원장의 축구경기 관람이 경기장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이뤄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현장에 있었다면 조만간 사진 등이 추가로 공개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 한 소식통은 “동영상 없이 보도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공개 활동을 본격화하기 앞서 사전 정지작업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실장은 “북한이 김 위원장의 건강에 대해 염려하거나 궁금해 했던 북한 주민들을 진정시키는 효과를 거두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전문가 “짧으면 1년 후 김정일 유고상황 올수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고(사망등으로 인한 통치 불능 상황) 시기가 짧으면 1년 정도 남았다는 분석이 나왔다. 북한 전문가인 홍관희 안보전략연구소장은 6일 김 위원장의 건강상태에 대해 “짧으면 1년,길게 잡아야 4∼5년이고 전문가들은 5년 이상 버티기가 어려울 것이라 예상한다.”고 전했다. 홍 소장은 이날 PBC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에 출연,“현재 해외 의학전문가들의 분석과 국내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볼 때 김 위원장의 유고는 멀지 않은 것 같다.”며 “지난해 10·4 남북정상회담 당시에도 얼굴에 병색이 짙었다는 분석이 많았다.”고 전했다. 그는 “김 위원장의 병세는 위중한 상태”라며 “66세 고령에 심장·신장·당뇨 문제가 결합되어 치료가 어렵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한 오동선 PD도 이에 대해 “정상적인 보행이 어려운 상태”라는 고위 정보 관계자의 말을 전하며 김 위원장의 건강이 좋지 못한 상태라는 것을 알렸다. 오 PD는 이 관계자의 말을 인용 “최근 며칠 사이 김 위원장의 사망설이 또 다시 제기돼 정보 당국이 바짝 긴장한 적이 있는데 여러 경로로 알아본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고 전하기도 했다. 한편 북한 조선중앙통신 등은 지난 4일 김 위원장이 김일성종합대학 창립 62주년을 맞아 김일성종합대학팀과 평양철도대학팀 간 축구 경기를 관람했다고 전했으나,관련 사진이나 동영상 등은 보도되지 않아 사실을 확인하기는 어려운 상태이다. 이에 대해 홍 소장은 “장소와 시간이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김 위원장이 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어렵다.”며 “김 위원장이 생존을 강조함으로써 내부 체제를 단속하려는 의도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남북관계 개선 없이 한·러경협 어려워”

    “남북관계 개선 없이 한·러경협 어려워”

    “이번 한·러 정상회담이 양국 관계 격상 등 상당한 성과를 거뒀지만 극동시베리아 개발,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연결 등은 남북 관계가 개선되지 않고는 실현될 수 없습니다.” 러시아 국책연구소인 동방학연구소 알렉산드르 보론초프 한국·몽골과장은 1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러 정상이 정치·경제·안보협력 등에 합의한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향후 이행이 중요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에서 손꼽히는 한반도 전문가인 보론초프 과장은 2000∼2002년 주북 러시아대사관에서 일했으며 한국외대와 김일성종합대,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등에서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한·미 동맹을 중시하는 이명박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 한·러 정상간 협력 범위를 넓히기로 합의한 것은 양국 관계 발전에 중요한 단계로 평가할 만 하다.”며 “그러나 천연가스 도입과 극동시베리아 공동개발, 시베리아횡단철도(TSR)·한반도종단철도(TKR) 연결 추진 등은 북한의 협조 없이는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바뀐 뒤 남북 관계가 악화됐다고 지적하면서 “한·러간 추진할 경협은 북한의 값싼 노동력과 한국의 기술력 등이 함께 투입돼야 하기 때문에 남북 관계가 개선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또 한국 정부가 북핵 문제와 남북 관계를 연계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북핵 문제는 남북보다 북·미간 문제로 봐야 한다.”며 “북핵 해결이 대북정책의 조건이라면 남북 관계 발전은 어려우며 이에 따라 한·러가 합의한 경협도 이행될 수 없다.”고 말했다. 보론초프 과장은 북핵 6자회담이 순항하다가 최근 북·미간 핵 검증 문제로 주춤하는 상황에 대해 “참가국 모두가 지난해 10·3합의를 제대로 이행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며 “특히 핵 검증 문제는 10·3합의에 명시된 것이 아닌 만큼 비핵화 2단계가 아니라 다음 단계에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글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 [씨줄날줄] 김정일 은둔/김인철 논설위원

    16년전인 1992년 2월18∼21일 평양에서 열린 제8차 남북고위급회담에 참석했던 남측 대표단은 깜짝 놀랄 만한 경험을 했다. 회담 3일째인 20일 오후 주석궁에서 열린 남측 대표단과 김일성 주석과의 면담에서 김 주석의 목 뒤편 큰 혹을 남측 사진기자들이 정면으로 포착한 것.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던 김 주석의 신체적 약점이 그대로 노출된 데 대해 의전 실수가 아닌, 고도의 계산이 있어 보인다는 분석이 나왔다. 게다가 3박4일간의 평양체류 중 TV방송에선 ‘할아버지 머리위에 흰서리가 내렸네’라는 노래가 여러 차례 흘러 나왔다. 김 주석의 노쇠함과 병든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김정일의 권력승계가 임박했음을 내비친 게 아니냐는 등 해석이 구구했다. “백두산 마루에 정일봉 솟아 있고…광명성 탄생하여 어느 덧 쉰돐인가…만민이 칭송하는 그 마음 한결같아…” 1992년 2월16일 50회 생일을 맞은 김정일에 대한 ‘송시’의 일부다. 놀라운 것은 지은이가 바로 ‘위대한 지도자’ 김일성 주석이라는 사실이다.80살 고령의 아버지가 50살 아들의 생일에 송시를 지을 만큼 부자세습 구도가 확고했음을 알 수 있다. 김 주석은 이듬해 8월 백두산밀영에 있는 이 송시비를 배경으로 강사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것은 김정일 동지의 영도를 잘 받들라는 의미라고 말할 만큼 권력세습에 적극적이었다. 1974년 후계자로 지명된 지 18년이 흐른 1992년 아버지로부터 송시까지 받은 김정일은 그러나 김 주석이 1994년 사망한 뒤에도 3년 이상이나 공석에 취임하지 않고 유훈통치를 했다. 혈연·부자세습의 공식화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짐작케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달 14일 군 제1319부대 시찰 이후 46일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자연스레 후계문제가 관심사다. 김 주석 사망 때 부자세습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면, 이번엔 후계구도의 불확실성이 한반도 안정에 부정적이라는 분석이 나와 역설적이다. 후계구도와 관련, 세아들인 김정남(37)과 김정철(27)·김정운(25), 매제인 장성택(62) 노동당 행정부장 등 3세대 세습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김일성-김정일 세습의 지난한 과정에 비춰볼 때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김인철 논설위원 ickim@seoul.co.kr
  • [씨줄날줄] 김정일 은둔/김인철 논설위원

    16년전인 1992년 2월18∼21일 평양에서 열린 제8차 남북고위급회담에 참석했던 남측 대표단은 깜짝 놀랄 만한 경험을 했다. 회담 3일째인 20일 오후 주석궁에서 열린 남측 대표단과 김일성 주석과의 면담에서 김 주석의 목 뒤편 큰 혹을 남측 사진기자들이 정면으로 포착한 것.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던 김 주석의 신체적 약점이 그대로 노출된 데 대해 의전 실수가 아닌, 고도의 계산이 있어 보인다는 분석이 나왔다. 게다가 3박4일간의 평양체류 중 TV방송에선 ‘할아버지 머리위에 흰서리가 내렸네’라는 노래가 여러 차례 흘러 나왔다. 김 주석의 노쇠함과 병든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김정일의 권력승계가 임박했음을 내비친 게 아니냐는 등 해석이 구구했다. “백두산 마루에 정일봉 솟아 있고…광명성 탄생하여 어느 덧 쉰돐인가…만민이 칭송하는 그 마음 한결같아…” 1992년 2월16일 50회 생일을 맞은 김정일에 대한 ‘송시’의 일부다. 놀라운 것은 지은이가 바로 ‘위대한 지도자’ 김일성 주석이라는 사실이다.80살 고령의 아버지가 50살 아들의 생일에 송시를 지을 만큼 부자세습 구도가 확고했음을 알 수 있다. 김 주석은 이듬해 8월 백두산밀영에 있는 이 송시비를 배경으로 강사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것은 김정일 동지의 영도를 잘 받들라는 의미라고 말할 만큼 권력세습에 적극적이었다. 1974년 후계자로 지명된 지 18년이 흐른 1992년 아버지로부터 송시까지 받은 김정일은 그러나 김 주석이 1994년 사망한 뒤에도 3년 이상이나 공석에 취임하지 않고 유훈통치를 했다. 혈연·부자세습의 공식화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짐작케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달 14일 군 제1319부대 시찰 이후 46일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자연스레 후계문제가 관심사다. 김 주석 사망 때 부자세습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면, 이번엔 후계구도의 불확실성이 한반도 안정에 부정적이라는 분석이 나와 역설적이다. 후계구도와 관련, 세아들인 김정남(37)과 김정철(27)·김정운(25), 매제인 장성택(62) 노동당 행정부장 등 3세대 세습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김일성-김정일 세습의 지난한 과정에 비춰볼 때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김인철 논설위원 ickim@seoul.co.kr
  • 김일성 편지 등 미공개 자료 전시

    김일성 편지 등 미공개 자료 전시

    김일성과 펑더화이(彭德懷·6·25때 중국군 사령관)가 6·25 휴전회담이 진행되던 당시 유엔군사령관 리지웨이 장군에게 보낸 편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서신 등 미공개 자료와 영상물들이 건군 60주년을 맞아 공개된다. 26일부터 12월31일까지 전쟁기념관에서 열리는 ‘대한민국 건군 6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에서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과 펑더화이는 공동 명의로 된 편지에서 각국 신문기자 20명이 유엔군 측 수행원으로 개성에 오는 것에 동의했다.“사소한 문제(기자 수행여부) 때문에 오랫동안 회담이 중지되거나 회담이 파국에 처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귀측 제안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편지는 김과 펑의 사인은 없었고 영문을 타이프로 쳐서 만들었다. 시기는 1951년 7월 중순에서 8월로 추정된다. 이 대통령이 백선엽 장군에게 보낸 편지도 영문 타이핑으로 돼 있지만 이 대통령의 영문 이름 사인이 어제 쓰인 양 확연하다. 1951년 8월3일자 편지에서 이 대통령은 백 장군에게 “밀봉해 함께 보내는 편지는 극비(top secret)이니 밴 플리트 장군이나 조이 제독에게 직접 건네주어서 리지웨이 장군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하라.”고 명했다. 편지에서 또 이 대통령은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지만, 유엔군 대표들이 어떤 (휴전) 분계선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책임은 내가 질 테니 백 장군은 휴전회담에 지금처럼 참석하라.”고 명령했다. 이 자료들과 함께 미공개 자료 중에는 백선엽 장군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휴전협정과 관련한 경과를 보고하는 편지 등 1급 비밀문서로 분류돼 있던 자료들이 들어 있다. 또 2000여점의 사진과 영상자료, 문서와 실물 자료들도 선보인다. 이와 함께 국군의 모태가 된 광복군의 군복과 무기, 훈련용 교재와 노트 등 건군 60년의 발자취가 담긴 각종 무기, 사진과 영상, 생활용품 등의 실물자료 등도 전시된다. 국방과학 코너에서는 군 위성통신 체계인 ‘아나시스’(무궁화 5호 위성) 모형을 비롯, 휴대용 대공 유도무기인 신궁, 함대함 유도무기인 해성, 차기 보병전투장갑차(K21), 차기전차(K2), 차기 소총, 국방 로봇인 ‘견마로봇’ 등 최신 무기의 실물과 모형도 등장한다. 이 무기들은 시뮬레이터를 통해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다. 군 생활과 군대 문화를 간접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도록 60∼70년대,80∼90년대,2000년대의 내무반을 시대별로 실제 모습으로 재현했다. 군복의 변천사,10대 군가, 군인들의 먹거리와 놀거리, 얼차려 등 군대이야기도 자세하게 소개된다. 기념관 관계자는 “세계 각국의 군복과 군장류 등을 볼 수 있고 얼굴 위장, 각군 군복 입어보기 체험, 건빵 등 전투식량을 먹어 보는 체험 행사도 마련했다.”고 말했다. 기념관 내에 2500㎡(750여평) 규모로 마련된 기획전시실은 ‘건군 60년 발자취’ ‘국방과학’ ‘병영생활과 문화’ ‘평화와 번영을 위하여’ ‘체험 이벤트’ 등의 주제로 꾸며졌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한총리 ‘유엔 외교행보’

    제63차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한승수 국무총리는 22일(현지시간) ‘코리아소사이어티 라운드테이블´ 참석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유엔외교 행보에 돌입했다. 이날 뉴욕 맨해튼의 주유엔 한국대표부 건물에서 열린 행사에서 한 총리는 기조연설을 통해 “정부는 실용과 생산성에 기초한 남북관계 발전과 6자회담틀 내에서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한 총리는 또 “건국 이후 60년 동안 놀랄 만한 경제성장을 이룩한 데는 유엔을 비롯한 각국의 도움이 컸다.”면서 “이제는 우리가 그들의 도움에 답할 시점”이라며 국제 사회의 노력에 적극 동참할 것임을 밝혔다. 그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문제를 언급하면서 돌발적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한반도의 정세 변화를 묻는 한 참석자의 질문에 대해 “지난 1994년 김일성 사후와 사전에 큰 변화가 없었듯이 심각한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日 대북위기관리 시스템 5년만에 재검토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정부는 한반도의 유사시에 대비, 구축해 놓은 위기관리시스템을 5년만에 다시 수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과 관련, 북한 정세가 혼란해지는 상황이 발생하면 언제든지 즉각 대응하는 체제를 갖추기 위해서다. 위기관리시스템은 특히 1994년 4월 김일성 전 주석의 사망 때와는 달리 김 위원장의 후계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만큼 유고시에 일어날 수 있는 만일의 사태를 상정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1일 민간 항공기를 이용해 한국에 체류 중인 일본인·미국인 등의 철수 절차, 북한의 난민 수용대책 등이 주된 재검토 대상이라고 보도했다. 또 항공회사 및 지방자치단체와의 연대 방법, 자위대와 경찰의 경계태세 등도 손질 대상이다. 재검토 작업은 관계 부처의 담당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이뤄질 전망이다. 위기관리시스템은 19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을 계기로 정비된 적이 있다. 시스템은 북한의 난민 발생, 무력 충돌 등의 시나리오를 설정한 뒤 단계별로 대응 요령을 담은 매뉴얼이다. 앞서 차기 총리로 확실시되는 아소 다로 자민당 간사장은 20일 연설회에서 북한 정세와 관련,“예측 불가능한 사태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 총리 취임 뒤 북한을 둘러싼 외교·안보의 점검 방침을 밝혔다.또 아소 간사장은 “위험한 국가의 최고 지도자가 비틀거리고 있다. 위험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며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을 처음 거론, 일본의 안전에도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표명했다.hkpark@seoul.co.kr
  • [‘교과서 개편’ 파장] 보수진영 수정요구 주요내용

    보수진영이 제기하고 있는 교과서 수정 요구는 주로 근현대사에 집중된다. 국방부의 수정 요구 의견은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 등을 옹호하고 있다. ‘이승만 정부는 이를 이용하여 독재정권을 유지하였다.’(중앙교육진흥연구소)는 부분을 ‘이승만 정부는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는데 최선을 다했다.’로 고쳐 달라고 주문했다.‘전두환 정부는…권력을 동원한 강압정치를 했다.’(금성출판사)를 ‘전두환 정부는…친북적 좌파의 활동을 차단하는 여러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로 고쳐 달라고 했다. 같은 책의 각 단원 제목 가운데 ‘이승만 정부의 독재화’→‘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확립시킨 이승만 대통령’,‘헌법 위에 존재하는 대통령’→ ‘민족의 근대화에 기여한 박정희 대통령’,‘전두환 정부의 강압정치와 저항’→‘전두환 정부의 공과와 민주화 세력의 성장’으로 수정을 요구했다. ‘1947년 제주도에서 3·1절 기념식을 마치고 시가행진을 하던 군중에 경찰이 발포했다…이 사건은 1948년 제주도 4·3사건이 일어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대한교과서)라는 구절도 수정대상이다.‘제주도에서 4월3일 발생한 대규모 좌익세력의 반란진압 과정에서 주동세력의 선동에 속은 양민들도 다수 희생된 사건’이라고 고쳐 달라는 것이다. 통일부의 수정의견은 ‘김대중 정부는 햇볕정책을 추진하면서’(천재교육)를 ‘김대중 정부는 화해협력정책을 추진하면서’로 수정하자는 것이다. 같은 교과서의 ‘박정희 정부는 통일문제보다는 경제개발문제에 집착하였고’를 ‘박정희 정부는 통일문제보다는 경제개발에 우선순위를 두었고’로 개정하자는 의견이다. ‘북한군부내 강경파에 의한 대남도발이’(금성출판사)는 ‘북한에 의한 대남도발이’로 바꾸자고 했다. 범문사 교과서의 ‘북한체제의 고착화와 북한의 변화’는 ‘북한 유일지배체제와 북한의 변화’로 수정 요구했다. 상의는 ‘1950년에 6·25 전쟁이 일어났다.’(대한교과서)를 ‘1950년 북한의 김일성은 6·25 전쟁을 일으켰다.’로,‘새마을 운동은 박정희 정권의 독재를 정당화하는데 이용되기도 했다.’(금성출판사)는 ‘새마을운동은 민간의 자발적 운동이었다. 오늘날 많은 나라들에 학습의 대상이 되고 있다.’로 수정의견을 냈다. ‘이승만 정부는…친일파청산 등 민중의 요구에는 소극적으로 대처하면서 권력을 강화하는데 힘을 쏟았다.’(금성출판사)에서는 ‘그러나 국가건설과 경제회복, 교육기회 확산을 위해서도 크게 노력했다.’를 추가하라고 요구했다.‘2000년 6월15일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해 남북 화해 협력시대를 열었다.’(중앙교육진흥연구소)는 ‘하지만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함으로써 남북한의 군사력에 엄청난 불균형을 초래했다.’를 추가하라고 요구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김정일 건강이상 파장]개성공단등 한국인 1000여명… 유사시 ‘무방비’

    [김정일 건강이상 파장]개성공단등 한국인 1000여명… 유사시 ‘무방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뇌수술을 받고 의식을 잃었을 당시 평양과 개성을 비롯한 북한 지역에 모두 1000명이 넘는 우리 국민이 체류하고 있었던 것에 대해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김 위원장의 ‘유고’나 북한 권력체제의 급변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국민 보호에 등한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12일 통일부에 따르면 김 위원장이 뇌수술을 받은 직후로 추정되는 지난달 18일 북한 지역에는 개성공단 853명, 금강산 114명 등 모두 1011명이 체류하고 있었다. 평양에도 교류협력 목적으로 방북한 14명이 일시체류했다. 이때부터 12일까지 북한지역에는 매일 1000∼2000여명이 체류했다. 문제는 ‘이상동향이 없다.’고 파악될 때까지 관광이나 인도적 지원 등을 위해 매일 수백명씩 간단한 방북교육만 받고 아무런 통제없이 북한 지역을 방문했다는 사실이다. 정보라인을 통해 급박하게 김 위원장의 병세와 북한 정국의 변화 여부를 점검하던 와중에도 매일 평균 1000명 넘는 국민들이 북한 지역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다는 얘기다. 남북간 합의로 적법한 왕래자들에 대한 신변보장이 약속돼 있다고는 하지만 급변사태에서 이 합의가 제대로 지켜질지 의문이라는 점에서 정부가 시급히 대책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면 북한 정세의 급변시 북한 내 1000명 이상 되는 국민들의 보호는 어떻게 이뤄질 것인가. ●2005년 논의 중단… 실효성도 의문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한 대처 방안은 ‘충무3300’ 등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가 마련돼 있지만 대부분 대량탈북사태 등의 대책을 담고 있고, 북한내 우리 국민에 관한 사항은 ‘개념계획 5029’에 들어 있다. 북한내 한국인 인질사태 등이 발생할 경우의 ‘액션플랜’이 그것. 하지만 어차피 사태발생 이후의 조치인 데다 그나마 2005년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관련 논의를 중단시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정부 ‘무사귀환´ 초점 대비책 정비 이에 따라 정부는 통일부를 중심으로 유관 기관들과 함께 북한의 급변상황에 대한 대비책을 새롭게 정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우리 국민 1000여명이 상시적으로 북한 지역에 체류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의 무사 귀환에 초점을 맞춰 대비책을 정비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는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남북교류가 활발해진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위기 포착 시기’라고 보고, 북한 관련 정보분석의 ‘순도’를 높이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양측이 평양과 서울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면 유사시 현지 체류 국민들을 위한 영사기능을 할 수 있지만 북측이 응하지 않고 있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서울광장] ‘김정일 이후’의 통일 청사진/구본영 논설위원

    [서울광장] ‘김정일 이후’의 통일 청사진/구본영 논설위원

    북한 정권수립 60주년을 맞은 지난 9일 평양 김일성광장. 노농적위대 열병식장의 주석단은 썰렁해 보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병설 속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슴에 훈장을 주렁주렁 단 조명록 총정치국장 등 노쇠한 인민군 고위간부들의 모습이 외려 안쓰러워 보였다. 그러나 기자는 곧 감상에서 화들짝 깨어나 현실로 돌아왔다. 열병식에 이어 열린 횃불행진에서 수만명의 인파가 ‘인간 전광판’인양 ‘김정일’과 ‘2012 강성대국’이란 글귀를 아로새기는 장면을 보면서다. 분단 60주년을 맞았건만, 남북간 체제 경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새삼 깨달아야 했다. 물론 오늘 북한의 초상화는 남루하기 짝이 없다. 세계 13위권 경제대국인 남한에 비해 지난해 북한의 국민총소득은 36분의 1에 불과하다. 만성적 식량난에 탈북 행렬도 꼬리를 물고 있다. 영양 결핍으로 북한의 일곱살 어린이의 키가 남한 아동보다 평균 20㎝나 작다는 게 뜬소문이 아닐 게다. 올해도 얼마전 유엔식량계획 (WFP)이 대북 긴급구호를 요청했다. 이런 판국에 절대권력자인 김 위원장의 건강마저 적신호라면 북한의 불확실성은 커질 수밖에 없을 게다. 한 동안 잠잠했던 북한 붕괴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전 뉴욕타임스 특파원 리처드 핼로란은 최근 기고에서 워싱턴의 피터슨 국제문제연구소 보고서를 인용,“광범한 사회적·정치적 불안이 초래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미 의회조사국도 “비참한 경제상황이 김정일 정권에 잠재적으로 반대할 가능성이 있는 불만세력을 키울 수 있다.”고 관측했다. 하지만 합리적 인과관계에 기반을 둔 듯한 서방적 시각에도 맹점은 있기 마련이다. 지난 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직후에도 많은 관측통들이 세습체제가 짧으면 6개월, 길어도 3년 이내에 무너질 것이란 예측을 내놓았었다. 하지만 그후 십수년이 흘렀지만, 김정일 체제는 여전히 건재했지 않은가. 까닭에 60년 부자 세습체제가 저물더라도 수년 안에 북한에서 과거 동구권의 ‘붕괴 도미노 현상’ 같은 사태를 예견하긴 어렵다는 게 현실적 판단일 듯싶다. 이를 막기 위해서 북한도 핵카드에 기대어 생존을 도모하는 데 최우선 순위를 두면서 주민을 살릴 본격적 개혁·개방을 주저해온 게 아닌가. 우리가 10년 넘게 ‘햇볕’을 쪼였건만, 우리식 사회주의라는 낡은 외투를 벗기는커녕 선군(先軍)주의란 갑옷을 더 껴입고 있지 않은가. 이는 통독 과정과는 전혀 다른 상황 전개다. 월등한 국력의 서독이 꾸준히 동독과 교류협력에 나서자 동독의 지도부와 주민들은 마침내 체제를 버리고 서독에의 흡수통일을 선택했었다. 더구나 김정일 정권 이후 북한내 친중정권이 나타날 것이라는 예측은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 한다. 분단 고착화야말로 최악의 시나리오인 탓이다. 하지만 어쩌랴. 실패했지만, 쉽사리 무너지지 않을 듯한 북한체제와 더 오래 공존해야 하는 게 동족의 업보라면. 우리는 과거 서독이 그랬듯이 경제력뿐 아니라 복지와 인권 등 모든 면에서 내실을 다지면서 북한과 대화와 교류의 끈도 놓지 말아야 한다. 최소한 북한정권의 개혁·개방을 돕는 일이 우리에게도 이롭다는 신념에 회의를 품을 이유는 없을 듯 싶다. 좋든 싫든 우리의 통일정책에 ‘김정일 이후’까지 내다보는, 창조적 상상력을 보태야 할 시점이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김정일 건강이상 파장] 김위원장 언제 재등장할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병세가 빠르게 호전되고 있다면 언제쯤 활동을 재개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활동을 재개하더라도 ‘현지지도’는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후계구도 점검이 시작되면서 권력분점까지는 아닐지라도 위임통치 가능성도 점쳐진다. ●건재 과시 ‘깜짝’등장 가능성 지난달 15일 뇌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김 위원장의 회복세를 암시하는 대목은 ‘9·9절’ 열병식을 9일 오전이 아닌 오후에 개최했다는 사실이다. 당일까지도 김 위원장의 참석 여부를 놓고 고민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 관계자는 “행사 참석이 애초부터 불가능했다면 사전에 지도부가 행사를 취소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열병식을 1∼2시간 정도 서서 지켜봐야 하는 상황인데도 참석을 고려했을 정도라면 곧 활동을 재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 위원장이 맞은 ‘스트로크(뇌졸중)’의 범위와 응급치료시기, 수술후 회복추세 등이 변수이지만 전문의들은 “발생 부위가 작다면 1∼3개월 내에 정상적인 업무복귀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이런 가정하에서 사회주의 5대명절 가운데 하나인 조선노동당 창건일(10월10일)이 주목된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05년 10월10일 노동당 창건 60주년 기념 열병식에 참석, 군을 격려했었다. ‘꺾어지는 해’(5년,10년째 되는 해)가 아니어서 열병식이 열릴 가능성은 적지만 9·9절 열병식을 축소개최한데다 주민들에게 김 위원장의 건재 사실을 보여줄 필요가 있기 때문에 ‘깜짝’ 개최 가능성이 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도 “금년 북한의 향후 정치일정상 가장 중요한 행사는 노동당 창건일”이라며 김 위원장의 등장 가능성을 점쳤다. 2005년부터 3년간 한번도 빠짐없이 추석 때마다 시찰이나 공연관람을 했기 때문에 이번 추석(14일)에 사진을 통해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도 있다. 북한 매체는 지난 10일 김 위원장이 시리아 대통령에게 생일축전을 보냈다는 동정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현지지도’ 현저히 줄 듯 북한의 독특한 통치방식인 ‘현지지도’를 통해 등장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뇌수술을 받은 환자가 활동하기 힘든 계절로 접어들고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은 떨어진다. 김 위원장이 회복하더라도 공개활동은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김 위원장은 올해 모두 93회에 걸쳐 활발한 공개활동을 했다. 대부분 군부대와 공장, 기업소 등을 직접 찾아다니며 보고를 받고 지시하고, 격려하는 현지지도였다.1995년 11월에는 한달내내 현지지도와 전선시찰을 했다고 노동신문은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뇌수술을 계기로 이같은 왕성한 현지지도는 이제 불가능해진 것으로 보인다. 비록 상황은 다르지만 현지지도는 후계자인 김정일 위원장에게 맡기고 관저로 외부인사들을 불러 격려했던 말년의 김일성 주석처럼 ‘접견통치’ 위주로 통치행태가 바뀔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전현준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이 장성택이나 김국태 등 측근을 통해 위임통치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김 위원장의 위임을 받은 인물이 현지지도를 해도 현지에서는 김 위원장의 권위로 인식하게 만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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