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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시각] 1996년 경험과 美기자 억류/김규환 국제부장

    [데스크 시각] 1996년 경험과 美기자 억류/김규환 국제부장

    1996년 3월23일, 기자는 중국 지린(吉林)성 허룽(和龍)시 충산(崇善)진에 머물고 있었다.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양강도 대홍단군 삼장리와 불과 20~30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당시는 식량난이 심해 중국으로 넘어 오는 탈북자들이 가장 많던 시기였다. 이날 아침 자동차에 과자와 술 등 먹을거리를 싣고 북한 주민들이 자주 나타나는 ‘김일성 낚시터’로 출발했다. 낚시터라고 해봐야 지름 3~4m 크기의 웅덩이로, 김일성 주석이 1930년대 항일 빨치산 투쟁을 벌이던 중 틈틈이 낚시를 즐겼다는 게 중국인의 설명이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중국 안내인이 휘파람을 불며 “술과 과자가 있으니 같이 먹자.”고 소리쳤다. 5분쯤 지나자 “좋소.”라며 북한 주민 한 명이 산속에서 걸어나왔다. 두만강을 폴짝 뛰어 중국 땅으로 건너온 그는 불안한 눈초리로 기자를 쳐다봤다. 안내인이 기자를 홍콩 관광객이라고 소개하고, 중국말로 얘기를 건네 그를 안심시켰다. 술과 과자를 먹은 그는 “잡아놓은 노루가 한 마리 있는데 사지 않겠느냐.”고 은근하게 물었다. “좋다.”며 안내인이 흥정을 벌여 600위안에 사기로 했다. 그는 대신 그 돈으로 화장품과 담배 등을 사달라고 했다. 한 시간 뒤 다시 만나기로 하고 “노루를 가져오겠다.”며 다시 북한 땅으로 넘어갔다. 안내인이 물건을 사러 간 사이 기자와 선배 사진기자는 그가 노루를 메고 국경을 넘어오는 장면을 찍기 위해 산속에 숨어 기다렸다. 한 시간쯤 지나자 그가 노루를 메고 국경을 넘어오는 모습이 멀찍이 보였다. 사진 찍을 기회를 기다리던 선배는 시야가 나무에 가려 찍기 어려워지자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산속에서 내려왔다. 이때 갑자기 “남조선 특무(간첩)가 우리를 찍는다.”는 큰소리가 들려, 소리나는 쪽을 보니 북한 초병 두 명이 총을 들고 쏜살같이 중국 땅으로 넘어왔다. 북한 초병들은 선배의 목에 총을 겨누며 필름을 내놓으라고 욱대겼다. 안내인이 “이 사람은 관광객이지 특무가 아니다.”며 두 시간여에 걸쳐 설득한 끝에 살짝 바꿔치기 한 필름을 내주고 가까스로 풀려났다. 기자는 갑자기 벌어진 공포 분위기로 옷이 흠뻑젖도록 진땀을 흘리며 가슴을 졸인 탓에 두 시간이 여삼추(如三秋)처럼 길게 느껴졌다. ‘선배가 잡혀 가면 같이 잡혀 가야 하나.’ ‘피신해 선배가 잡혀 가는 모습을 현장 보도해야 하나.’ ‘그러면 선배를 버린 사람으로 평생 마음의 멍에를 지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등 온갖 생각을 다하면서…. 지난달 17일 미국 국적의 여기자 두 명이 북·중 국경지대서 취재를 하다가 억류돼 풀려나지 못하고 있다. 억류 경위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취재 욕심이 지나친 나머지 북한 땅으로 넘어가 붙잡힌 것인지, 아니면 북한군이 촬영하는 모습을 보고 중국 땅으로 넘어와 끌고 갔는지 확실하지 않다. 경위야 어떻든 기자의 억류는 어떤 의미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설령 기자들에게 잘못이 있더라도 취재 목적을 조사한 뒤 곧바로 돌려보내야 한다. 그런데도 북한은 아직까지 돌려보내지 않고 있다. 물론 북한이 기자들의 신변안전을 보증한다는 입장을 전해와 다행이긴 하다. 하지만 기자를 적대혐의로 기소하겠다고 밝히는 등 미국과의 협상수단으로 삼고 있는 것 자체가 반인도적(反人道的)이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철학이 알려진 대로 ‘광폭 정치’ ‘통큰 정치’라면 더더욱 어울리지 않는 처사다. 지난해 10월 20년 만에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겨우 빠진 마당에 기자를 억류하고 있는 것은 북한의 대외 이미지만 떨어뜨린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아무 조건 없이 하루빨리 돌려보내 과거와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때 북한은 이미지 개선과 함께 ‘정상국가’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다. 김규환 국제부장 khkim@seoul.co.kr
  • 6월 사우디·이란 홈 2연전 고비

    6월 사우디·이란 홈 2연전 고비

    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 B조, 특히 남북한과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 상위 4개국은 안갯속 여정을 계속해야 한다. 남은 경기는 오는 6월6일부터 17일까지 열린다. 한국과 이란이 각 3경기, 북한과 사우디아라비아는 각 2경기 남았다. 한국과 이란은 많게는 승점 9점을 보탤 수 있다. 하지만 북한과 사우디는 많아야 6점이다. 막판까지 박빙의 승부가 펼쳐지면 남은 경기수가 변수가 될 수도 있다. 한국은 사실상 탈락한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6월6일 원정전을 치른 뒤 사우디-이란순으로 연속 홈경기를 갖는다. 중동 강호와의 2연전이 다소 부담스럽다. 특히 UAE 원정전을 끝내고 나흘 뒤 홈에서 사우디전을 치러야 한다. 반면 6일 경기가 없는 사우디는 일찌감치 서울에 입성할 수 있다.44년 만에 본선 진출을 노리는 북한은 6일 ‘원정팀 무덤’이라는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리는 이란전이 분수령이다. 이후 열흘간 여유를 갖고 사우디 원정에 나선다. 이란만 홈에서 잡는다면 본선행이 가시화된다. 사우디는 공교롭게도 잔여경기가 남북한과의 대결이다. 한국과의 원정경기에 총력전을 펼친 뒤 북한을 홈으로 불러들인다. 4위로 추락한 이란으로서는 남은 3경기 북한-UAE-한국전을 원정-홈-원정 순으로 널뛰기를 해야 한다. 남북한과의 대결이 모두 원정전인 것도 고민이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남아공월드컵]北 월드컵대표팀 조1위로… 서울 도착

    44년 만에 월드컵 본선 진출을 노리는 북한의 상승세가 무섭다. 북한은 28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아랍에미리트(UAE)와의 2010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B조 5차전에서 박남철(24)과 문인국(31·이상 4.25체육단)의 골에 힘입어 2-0 완승을 거뒀다. 2연승의 북한은 3승1무1패(승점 10)로 한국(2승2무)을 승점 2차로 제치고 조 선두로 올라섰다. 새달 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맞붙는 한국은 승점 3을 반드시 챙겨야 하는 처지가 됐다. 북한대표팀은 29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날 홈팀 이란을 2-1로 잡았다. 사우디(2승1무2패·승점 7)는 이란(1승3무1패·승점 6)를 제치고 한국에 승점 1차로 3위에 올랐다. 3-4-3전형을 즐겨 쓰는 북한은 5-4-1 변형 포메이션으로 ‘선 수비, 후 역습’을 통해 미드필드를 넘자마자 예상을 깨는 ‘번개 슈팅’으로 상대 수비진의 넋을 빼놓고 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북한월드컵축구대표 29일 오후 입국

    새달 1일 한국과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맞붙을 북한 축구대표팀이 29일 오후 6시25분 입국한다. 북한은 28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최종예선을 벌인 뒤 중국을 거쳐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북한은 공격수 정대세(가와사키)와 홍영조(로스토프), 미드필더 안영학(수원)을 축으로 한 선수단 25명도 발표했다.
  • [씨줄날줄] 5성장군/박정현 논설위원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두 달도 되지 않은 1950년 8월. 국군과 북한군은 낙동강 방어선을 놓고 치열한 ‘대부동 전투’를 벌였다. 북한군은 3개 사단 2만여명을 투입해 파상공세를 벌였고, 국군은 학도병을 포함해 고작 7000여명으로 맞섰다. 북한군에 밀려 1사단 11연대 1대대가 철수한다는 보고를 받은 백선엽 1사단장은 현지로 달려갔다. 그는 “내가 선두에서 돌격하겠다. 내가 후퇴하면 너희들이 나를 쏴라.”라면서 권총을 뽑아들고 돌격했다. 장병들은 백 사단장의 뒤를 따랐고, 북한군은 새로운 증원부대가 오는 줄 알고 물러났다고 한다. 백 장군은 10년 전 펴낸 회고록 ‘길고 긴 여름날 1950년 6월25일’에서 사단장이 직접 돌격하던 모습을 보고 미군 대령은 한국군을 ‘신병’(神兵)이라고 감탄했다고 소개했다. 백 장군은 32세의 나이에 최연소 육군참모총장(대장)을 지냈고, 북진 때는 평양에 첫 번째로 입성한 인물이다. 그래서 그는 한국전쟁의 살아 있는 영웅으로 불린다. 정부가 내년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아 89세의 백 장군을 ‘명예 원수’로 추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명예원수가 되면 우리나라 첫 5성장군이 되는 셈이다. 군인으로서 엄청난 영예의 계급인 5성장군을 받은 미국 장군은 더글러스 맥아더를 비롯해 조지 마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등 손에 꼽을 정도다. 공산국가에서는 5성장군보다 더 높은 대원수 제도가 있고, 스탈린·김일성이 여기에 해당된다. 하지만 백 장군이 5성장군이 되기에는 몇 가지 걸림돌이 있다. 원수는 전쟁 중에 수여하는 계급이다. 미국은 2차대전 당시 연합군의 4성장군들을 지휘·통솔하기 위해 5성장군으로 승진, 임명했다. 우리나라는 원수를 현역 대장 가운데 임명하고, 명예진급의 상한선은 대령으로 한다고 법령으로 정하고 있다. 관련 법령을 개정해야 가능한 일이다. 정부의 원수 임명 방침이 알려지자 백 장군의 전력이 논란을 빚고 있다. 일제하 만주군 중위 출신인 백 장군에게 줄 바에야 독립운동가에게 줘야 맞지 않느냐는 반론이다. 평시에 원수 계급 수여가 적절한지도 따져볼 일이다. 법령 개정과정에서 논란은 더욱 뜨거워질 것 같다. 국내 제1호 5성장군이 나올지 주목된다.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 스캇 브루스 美노틸러스硏 소장 “北 전기분야 열악”

    스캇 브루스 美노틸러스硏 소장 “北 전기분야 열악”

    북한에 신재생에너지를 공급하자는 아이디어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국제안보 전문 싱크탱크인 노틸러스연구소는 지난 1998년 북한 평안남도 온천군 운하리에 5기의 풍력 발전기를 설치한 바 있다. 노틸러스연구소의 스캇 브루스 미국 사무소 소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북한에 신·재생에너지를 지원했던 경험과 지원 가능성 등을 들어봤다. 브루스 소장은 영국 벨파스트의 퀸스대학과 UC버클리에서 역사를 전공했으며, 버클리 역사연구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북한에 풍력 발전소를 지원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북·미간의 신뢰구축조치(CBM)로 기획된 시범사업이었다. 존스재단, 록펠러재단 등 민간 재단에서 재정지원을 했다. 당시 프로젝트는 비정부기구(NGO)가 북한에 식량이 아닌 에너지를 지원하는 최초의 사례였다. 풍력발전기 용량은 11㎾로 50가구의 주민 2300명 가운데 절반이 하루 12시간 이용할 수 있는 에너지원이 됐다. →그 당시에 풍력발전소로 경수로를 대체한다는 미 정부의 숨은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그렇지 않다. 당시 빌 클린턴 미 행정부는 경수로 제공을 반대하지 않았다. →당시에 왜 운하리를 선택했는가. -평양과 남포에서 가까웠기 때문이다. 풍력발전 장비를 배로 운반해야 했기 때문에 항구 부근 마을을 선택한 것이다. →신재생에너지가 북한에 어떤 유용함을 주는가. -우선 북한으로서는 중국으로부터 ‘에너지 독립’을 할 수 있다. 석유와 달리 태양광이나 풍력은 북한도 갖고 있다. 석탄처럼 고갈되거나 환경문제를 유발하지도 않는다. 이와 함께 핵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도 미국으로서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와 함께 북한 전국이 아니라 지역 차원에서 에너지 생산이 가능하다. 필요한 마을마다 소규모 발전소를 설치해 학교와 병원의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북한은 신·재생에너지가 아니라 경수로를 원하지 않는가. -북한의 에너지 문제는 단순하지가 않다. 경수로를 짓는다고 해도 북한의 에너지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경수로 발전소에서 전기가 필요한 지역으로 송·배전 시설이 연결돼야 하는데 북한은 그런 시설이 없다. 따라서 북한으로서는 에너지원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당시 풍력발전기를 설치할 때 북한 주민들의 반응은. -처음에는 미국 사람들이 와서 이상한 공사를 한다고 두려워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프로젝트의 성격을 이해하고 매우 협조적으로 변했다. →북한 당국도 최근 세계적인 신재생에너지 부각 등에 대해 알고 있었나. -북한 당국자들도 신재생에너지를 개발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국제적인 신재생에너지 워크숍에도 북한 대표단이 참석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경수로 대신 신재생에너지를 지원한다면 북한이 받아들일까. -북한에 경수로는 김일성 전 주석의 유언 때문에 합목적성을 갖고 있어 설득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끝까지 경수로를 요구한다면 북핵 협상은 결국 파국을 맞게 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신재생에너지가 원자로 못지않게 ‘하이 테크’라는 사실을 갖고 설득해봐야 할 것이다. →북한에 다시 풍력발전 등을 지원할 계획은. -가능성은 계속 검토하고 있다. 무엇보다 펀딩(모금)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또 북·미간의 외교 문제도 있다. →풍력발전소 지원을 다시 한다면 지난번과는 어떻게 달라질까. -1998년 프로젝트는 사실 거꾸로 된 것이었다. 원래 풍력발전소를 세우려면 먼저 대상 지역의 바람의 세기와 빈도를 측정하고, 그 지역 주민의 전력 수요를 조사하는 것이 순서다. 그런데 당시에는 일단 발전기를 세우고 봤다. 어쨌든 당시에 북한 주민의 전력 사용 행태 등 많은 자료를 축적했다. 따라서 민간 차원이든 정부 차원이든 풍력 등 발전 지원 사업이 재개되면 당시에 축적한 자료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운하리의 풍력 발전기들은 아직도 작동되고 있나. -2002년까지는 계속 전기를 공급한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그해 말에 북핵 문제가 다시 불거지면서 소식이 두절됐다. 이도운기자 dawn@seoul.co.kr
  • 北, 미국인 억류 사례

    북한은 미국인 억류를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 내거나 군사적 업적을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카드로 사용해 왔다. 이번 미국 국적의 두 명의 여기자 억류 사건도 최근 미사일 발사 문제, 미국의 대북식량지원 거절 등으로 북·미관계가 미묘해진 상황에서 발생한 돌발 사건이란 점에서 어떻게 해결될지 주목된다. ●푸에블로호 11개월 만에 석방 과거의 사례를 살펴 보면 북한은 김정일 현 국방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로 떠오르던 1968년, 미 첩보함 ‘푸에블로호’를 납치해 선전에 활용했다. 북한은 그 해 1월23일 원산 앞바다에서 정찰활동 중이던 푸에블로호를 초계정을 이용해 억류했다. 이후 북한은 11개월간의 협상을 벌인 끝에 미국으로부터 영해 침범 사실에 대한 시인과 사과를 받아 냈다. 억류됐던 미국인 승무원 83명은 그 해 12월23일 석방됐다. 북한은 이후 납치한 푸에블로호를 원산항에 두고 ‘반미승전(反美勝戰)’의 교재로 삼았으며 90년대 후반 이 배를 미 상선 제너럴셔먼호를 불태운 대동강변에 옮겨 현재까지 전시중에 있다. ●1996년 한국계에 간첩 혐의 씌워 북한은 지난 1996년 11월에도 압록강을 건너 북한으로 들어간 한국계 미국인 에번 헌지커를 간첩이라며 구속, 억류했었다. 당시 26세였던 헌지커는 한국전에 참전한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계 혼혈 미국인으로, 술에 취해 알몸으로 압록강을 수영해 북한으로 들어갔다.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의 특사로 북한을 방문했던 빌 리처드슨 미 하원의원의 협상으로 헌지커는 석방됐다. 북한은 헌지커 석방 협상 당시 벌금으로 10만달러를 요구했다. 하지만 미국은 ‘인질 몸값은 지불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헌지커의 가택연금에 든 ‘호텔비’ 명목으로 5000달러를 지급했다. 1994년 12월17일에는 강원 금강군 이포리 휴전선 지역에서 순찰 비행 중 북한 영공으로 진입했다가 피격되면서 붙잡힌 주한미군 OH-58 헬기 조종사 보비 홀 준위가 억류됐다. 역시 리처드슨 의원이 방북, 북한과 협상을 벌였고 홀 준위는 억류 13일 만에 판문점을 통해 귀환했다. 이외에도 1958년 2월16일 미국인 홉스 기장을 비롯한 승무원 3명과 승객 28명이 탑승했던 대한민국항공사(KNA)소속 여행기 ‘창랑호’가 북측 간첩 김택선 등에 의해 납치, 북한에 억류됐다. 당시 한·미 정부는 국제적십자사와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해 억류 승객 송환 및 반환을 강력 요구, 북한은 협상을 통해 그해 3월6일 판문점에서 승객 26명만을 송환한 바 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북한축구 “서울 가겠다”

    남북 관계가 급격히 냉각됐지만 북한은 서울에서 열리는 내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축구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한국전에 예정대로 참가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대한축구협회는 북한이 다음달 1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월드컵 최종예선 경기를 위해 서울에 오겠다는 뜻을 비공식 경로를 통해 최근 알려왔다고 19일 밝혔다. 이에 따라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하는 A매치로는 두 번째로 서울에서 남북 대결이 펼쳐진다. 북한은 지난해 6월22일 월드컵 3차 예선 최종전 서울 경기 때, 쇠고기 재협상 요구 촛불시위 등 대규모 집회로 선수단 안전에 문제가 있다며 ‘제3국이나 제주도’ 개최를 요구하다 결국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경기를 치렀다. 그러나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던 남아공월드컵 예선 두 경기는 애국가 연주와 태극기 게양에 부담을 느낀 북한의 반대로 중국 상하이로 옮겨 개최했다. 북한은 오는 28일 평양 김일성종합경기장에서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최종예선 5차전 홈경기에 참가한 뒤 항공기를 이용, 29일이나 30일 베이징을 거쳐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할 예정이다. 현재 한국은 최종예선 B조에서 2승2무(승점 8)를 기록, 북한(2승1무1패·승점 7)을 제치고 조 선두를 달리고 있다.상황에 따라서는 사상 처음으로 남북이 동시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가능성도 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김정일 “배가 쏙 들어갔네~”

    김정일 “배가 쏙 들어갔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19일 조선중앙통신이 배포한 사진에서 배가 쏙 들어간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다. 김 위원장은 이날 김일성종합대학에 새로 지은 수영관을 찾아 국제경기도 할 수 있도록 설계된 수영관 안팎을 ‘장시간’ 돌아본 뒤 만족감을 표시했다고 통신은 전했다.이어 “김일성종합대학은 만년대계로 물려줄 민족 번영의 귀중한 재부”라고 강조하면서 “현대적인 도서관을 비롯해 대학을 전망성있게 꾸리는 데서 지침으로 되는 강령적인 과업”을 제시했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지난해 뇌졸중을 앓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김정일은 최근 들어 공개된 사진에서 배가 쏙 들어가고 주름과 흰 머리칼이 부쩍 늘어난 모습을 보였다.  북한이 국제기구 등에 통보한 대로 다음달 8일 ‘광명성 2호’를 발사하게 되면 다음날,김 위원장은 새로 구성된 최고인민회의 첫 회의를 열 예정이다. 지난 8일 최고인민회의 선거에서 김 위원장은 만장일치로 국방위원장에 재추대됐다.  인터넷서울신문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시론] 김정일 후계구도 제대로 보려면/박영호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시론] 김정일 후계구도 제대로 보려면/박영호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 난해 8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악화설 이후 북한의 후계구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김정일의 후계에 대한 논의는 ‘누가 후계자가 될 것인가.’라는 인물 문제로부터 ‘김정일 이후의 북한은 어디로 갈까.’라는 체제 문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유일지배, 현대판 세습봉건제, 일원론적 이데올로기 지배, 전체주의적 독재 등의 성격을 모두 포함하는 북한체제의 속성 상 새로운 통치자에 대한 문제로 관심이 집중될 수는 있다. 그렇지만 대북 및 통일 정책을 세우고 또 북한 주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려면 인물 문제보다는 체제의 문제를 보다 체계적이고 심층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북한 같은 1인지배의 전체주의 독재체제의 경우에도 통치자의 변화는 체제의 본질문제와 직결된다. 따라서 후계구도에 대한 논의는 지도자, 제도(체제운영), 정세 환경 등 여러 요인들을 복합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지도자 측면에서 보면 김일성-김정일로 이어져온 북한 지도자의 성격을 살펴야 한다. 극단적 개인지배의 북한체제에 적용할 수 있는 지도자의 성격으로는 전제군주(prince), 독재군주(autocrat), 예언자(prophet)적 군주, 폭압군주(tyrant) 등이 있다. 전제군주는 국가를 자기의 사유물로 생각하며, 소수 충성파들의 선호 경쟁을 유발하여 권력을 유지한다. 그는 어떠한 권력의 도전자도 허용하지 않는다. 독재군주는 권력을 타인과 나누지 않으며 오로지 명령과 지시뿐이다. 국가기구는 명령 집행도구이며 당료와 관료는 그의 종복이자 에이전트다. 예언자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사회를 재구성하려 하며, 그가 내세우는 비전은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폭 압군주는 개인지배의 가장 나쁜 형태다. 권력은 지배자의 충동에 따라 행사된다. 체제는 불확실하고 잠재적 불안정성이 존재한다. 김정일을 이에 대비해 보고, 아들 중 누가 이런 지도자의 성격을 이어받을 수 있겠는가를 판단해 보자. 제도의 측면은 현 북한의 당-국가체제의 핵심 운영시스템을 파악하는 것이다. 김정일의 권력은 어떤 독재자보다 압도적이지만 김정일 혼자서만 체제를 이끌지는 않는다. 김정일 비서실, 당 조직지도부, 국방위원회, 군부 등 북한체제를 지탱하는 핵심 제도들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세밀히 추적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주의 독재의 리더십 변화과정에서 흔히 나타나는 파벌(factionalism)이 북한에서 어떠한 형태로 나타날 것인가를 살필 수 있다. 체제를 뒷받침하는 ‘선군정치’와 같은 이념구조가 유지되는 신민(臣民)적 정치문화의 변화 가능성도 살펴야 한다. 김정일의 북한은 현재 개인적 지도력에서 제도적 지배라는 상황에 더 의존하기 시작했다. 파벌도 이런 상황에서 더 구체화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세 환경에 대한 분석이다. 북한의 경제 사정이야 더 이상 말할 것도 없지만, 북한사회 저변에서부터 일고 있는 기존체제의 이완현상을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미국, 중국의 대북정책과 북한 주변국과의 관계도 북한의 후계구도를 보는 데 지나쳐서는 안 될 요소이다. 북한 핵심 우방의 대북정책은 현 북한체제가 계속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김정일 이후의 후계구도를 북한체제 전체의 변화 방향이란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다. 박영호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김현희-다구치가족 만남] 김현희·다구치 日語 제자·스승 ‘2년 합숙’

    [김현희-다구치가족 만남] 김현희·다구치 日語 제자·스승 ‘2년 합숙’

    ■ 김현희·다구치 인연 제자와 스승의 인연이었다. 김현희씨(이하 김현희)와 다구치 야에코(가명 이은혜)의 첫 만남은 3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구치는 납북되기 직전 일본 도쿄에서 세 살 된 아들과 한 살 된 딸을 키우며 카바레의 호스티스로 일했다. 그녀는 1978년 6월(당시 22세) 한 남자와 함께 차를 타고 신주쿠의 베이비 호텔에 두 자녀를 맡긴 뒤 도쿄 이케부쿠로 인근에서 납북됐다. 북한 당국은 다구치에게 김일성과 김정일 은혜를 입었다고 해서 이은혜라는 가명을 지어 줬다. 납북 이후 다구치의 첫 동거인은 김현희였다. 다구치는 북한에 납치된 뒤 약 2년간 김씨와 함께 살며 일본어를 가르쳤다.1989년 2월3일 검찰이 KAL기 폭파 혐의로 기소한 김현희의 공소장과 그해 4월 사형선고가 내려진 김씨 판결문에 따르면 다구치와 김씨는 친자매 이상으로 가까운 사이였다. 김현희는 다구치와의 동거 생활 동안 모든 일상생활 용어는 일본어만을 사용했다. 김현희는 오전에 다구치가 작성한 강의안을 중심으로 일본어 설명을 듣고, 오후에는 강의 받은 내용을 복습했다. 일본 영화나 텔레비전 프로는 녹화기로 보거나, 평양시 보통강 구역 서장동에 있는 공작원 전용 영화관에서 함께 관람하기도 했다. 김현희는 아침에는 다구치와 함께 일어판 주체사상 교육을 받았다. 김현희는 지난 1월15일 일본 NHK TV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자신에게 일본어를 가르친 이은혜가 1978년 실종된 일본인 다구치 야에코라는 사실을 재차 확인하면서 “다구치 야에코와는 2년간 국적을 떠나 친자매처럼 살았다.”고 고백했다. 다구치로부터 일본어 교육을 받은 김현희는 1987년 11월29일 북한 공작원 김승일과 함께 하치야 마유미, 하치야 신이치라는 일본인으로 위장, 총 115명을 태우고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서울로 가던 대한항공 858편 보잉 707기를 미얀마 근해에서 공중폭파했다. 김승일은 수사기관의 조사 중 음독 자살을 기도해 숨졌다. 김현희는 그해 12월 서울로 압송됐다. 김현희는 이듬해 4월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1990년 사면됐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北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권력 승계 어떻게 이뤄지나

    지난해 8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제기된 이후 ‘김정운(김 위원장의 셋째 아들) 후계자설’까지 확산되면서 북한의 권력 승계 작업이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북한의 권력 승계 작업은 어떻게 이뤄질까. 과거 김 위원장의 권력 승계 작업을 통해 김 위원장 이후의 후계권력 승계 구도를 전망해 봤다.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권력 승계 작업 과정은 1971년 김일성 주석이 사회주의 노동청년동맹(사노청) 6차 연설에서 권력 세습 의사를 밝히며 시작됐다. 김 주석은 1년 뒤 ‘당중앙위원회 제5기 6차 전체회의’에서 김 위원장이 후계자로 결정될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했다. 이후 1980년 10월에 열린 ‘제6차 당대회’에서 공식적인 후계자로 김 위원장을 지목해 그를 북한 체제의 중추적 권력기관인 노동당에서 실질적인 2인자로 만들었다. 김 위원장은 당의 정치국원이자 당 비서국의 비서,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당내 서열 2위라는 지위를 이용해 자신의 지지기반을 확충해 나가는 방식으로 권력을 승계 받았다. 김일성 부자의 후계 권력 승계 작업은 약 9년이 걸렸다. 김 주석이 김 위원장을 후계자로 지목할 당시의 나이는 68세였다. 공교롭게도 외신등을 통해 김정운 후계자설이 거론된 시점의 김 위원장의 나이 또한 68세이다. 아직 공식적인 후계 구도 발표가 나오진 않았지만 그 구도가 거론되는 시기는 비슷한 셈이다. 하지만 김일성 부자가 권력 승계 작업을 벌인 당시와 비교해 현재 북한이 처한 대내외적 여건이 많이 달라 후계 권력 승계 작업은 이전보다 훨씬 단시간 내 압축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26일 “김정운이 김 위원장의 후계 권력을 승계 받을 경우 과거 김 위원장처럼 당 정치국원이자 당 비서 혹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다음 군의 지지를 얻기 위해 국방과 관련된 부서나 위원회 등에서 활동하게 할 것”이라면서 “요즘 북한의 상황은 과거 김일성 부자의 후계권력 승계 작업이 이뤄지던 시기와 현저히 달라 권력 승계 작업이 굉장이 압축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북한실장도 “아직 북한 후계 구도가 명확히 발표된 건 아니지만 김정운에 대한 권력승계 작업이 이뤄진다면 후대에 북한 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당조직 지도부의 일정한 직책을 부여하는 방법과 (선군 정치를 중시하므로) 국방위원회에 진입시켜 권력 승계 작업을 이행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망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北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미리보는 김정일 3기 체제

    8일 북한에선 김정일 체제 3기 출범의 토대가 되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실시된다. 북한은 5년 주기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실시, 김정일 통치의 분기점을 만들어 왔다. 과거 10기 및 1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통해 김정일 체제 1기 및 2기의 특징을 살펴보고 김정일 체제 3기를 전망해 봤다. ●김정일 체제 1기:국방위원회 국가주권 최고 군사기관으로 지난 1998년 9월에 실시된 제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의 가장 큰 특징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체제 1기를 공식 출범시킨 데 있다. 전체 대의원 687명 중 64%에 해당하는 449명이 새로운 인물로 교체돼 김일성 체제에서 김정일 체제로의 전환을 뒷받침했다. 특히 10기 최고인민회의는 사회주의 헌법을 개정하면서 국가주석직 폐지 및 유훈통치를 마감했다. 국방위원회를 국가주권의 최고 군사지도기관으로 삼아 김정일 국방위원장 체제의 출범을 위한 제도 정비에 주력했다. ●김정일 체제 2기:대남 실무자·김 위원장 측근 대거 등장 2003년 8월3일에 실시된 제1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의 가장 큰 특징은 ‘김정일 2기 시대’ 개막을 알렸다는 점이다. 11기 최고인민회의는 임기 5년의 국방위원회를 재구성하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재추대하는 절차를 밟아 ‘선군정치’와 김 위원장에 대한 북한사회 내 일심단결을 촉구했다. 또 대의원 687명 가운데 343명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북한군 고위인사들이 대의원에서 대거 탈락하거나 교체되고 대남 실무책임자와 김정일 국방위원장 측근 인물들이 등장했다. 군부에서는 박기서, 정재서, 최인덕 등 3명의 차수와 대장인 김명국, 김학유 등이 모두 탈락하고 신진 소장층이 부상했으며 북핵 문제와 관련해 박길연 유엔대사와 1994년 제네바 협상에 참여했던 김계관 외무성 부상, 채진수 중국 대사가 새로 대의원에 뽑혀 눈길을 끌었다. ●김정일 체제 3기:포스트 김정일 체제 표면화 8일에 구성되는 12기 최고인민회의는 ‘김정일 3기의 출범’을 공식 추인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김 위원장은 이번 12기 1차 회의에서 다시 추대될 가능성이 높다. 또 이번 12기 대의원 선거에서 주목할 점은 ‘포스트 김정일’, 즉 권력 후계 작업의 여부다. 동국대 김용현 북한학과 교수는 “다음 최고인민회의 때는 김 위원장의 나이가 70세가 넘는 만큼 이번 최고인민회의 구성에 향후 포스트 김정일 체제의 방향성이 표면화될 것”이라면서 “정운 등 김 위원장의 아들들이 대의원에 선출되거나 후견 그룹과 같은 측근들이 대거 등장해 친정체제가 강화될 경우 북한의 향후 권력 승계작업 구도를 가늠해 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어 김 교수는 “북한이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의 목표를 갖고 있는 만큼 12기 최고인민회의의 대의원 인적구성은 경제, 대외, 무역 부분의 출신들이 예년에 비해 많은 비중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이틀에 한번꼴… 김정일 ‘시찰통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오는 8일 열리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대회를 앞두고 군부대 시찰 및 공개 활동이 부쩍 많아졌다. 지난달 김 위원장의 공개활동은 총 15회다. 김일성 주석이 1994년 사망한 뒤 김 위원장이 명실상부한 1인자가 된 뒤 연도별 2월 공개활동으로는 가장 많다. 지난 10년간 공개된 김 위원장의 2월 평균 활동 횟수는 5.3회에 불과했다.또 올 초부터 지난달 말까지 두달간 김 위원장의 공개 활동 횟수는 총 28회로 이틀에 한 번꼴이었다. 지난 10년간 1~2월 김 위원장의 공개활동 횟수는 평균 8회에 그쳤다. 1999년 7회, 2005년 7회, 2006년 9회, 2007년 10회, 2008년 10회였다.올 초 김 위원장의 공개활동 횟수가 대폭 늘어난 셈이다.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일 김 위원장이 자강도 만포시의 만포제련소, 압록강다이야(타이어)공장, 만포방사공장과 식당인 만포각을 현지지도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김정일 제3기 체제 출범의 초석이라고 볼 수 있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대회를 앞두고 김 위원장은 군부대와 산업시설에 대한 시찰 방문에 집중하고 있다.”면서 “김 위원장이 북한의 경제 및 군사 분야에서 인민 및 관계기관과 호흡하며 통치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내부결속용 행위”라고 설명했다. 동국대 북한학과 김용현 교수는 “포스트 김정일 체제에 대해 북한 외부에서의 언급이 늘면서 대내외 적으로 아직까지 북한내 실질적 통치력은 (후계자가 아닌) 김 위원장에게 있음을 과시하고자 잦은 공개행보를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한반도 긴장 고조] “국지 충돌 가능성 높아… 北 미사일 실패땐 협상력 약화”

    [한반도 긴장 고조] “국지 충돌 가능성 높아… 北 미사일 실패땐 협상력 약화”

    북한의 대남 도발과 대륙간 탄도탄(ICBM) 수준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많다. 올 들어 지속적으로 긴장 수위를 높여 온 북한의 도발과 미사일 발사가 내부 정치일정과 맞물려 임박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따라 서울신문은 1일 국내 통일·외교·국방 전문가 10명의 분석과 함께 북한의 의도와 행보 등 향후 남북관계를 전망해 봤다. 남북 긴장 수위 어디까지 갈까.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비등점을 향해 끓어오르는 남북긴장 관계가 획기적인 조치 없이는 전환점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봤다. 악화를 막거나 경색을 풀 계기를 찾기 어려운 까닭이다. 현 상황에서는 서해에서 국지적인 무력 충돌을 피해가기 어렵고, 북한은 인공위성이라고 주장하는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도 임박한 것으로 풀이했다. “북한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반발하고 긴장을 계속 고조시키는 마당에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구본학 한림 국제대학원대 교수 등의 지적도 이같은 분위기와 맥을 같이한다. 국지적·제한적 도발 우려는 상당히 높고 긴장도 상당기간 지속되겠지만 전면적 무력 충돌 가능성은 낮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무력 정당화 발표수위 높여 긴장 북·미관계 개선을 시도하는 북한이 남북관계를 파국으로만 몰고 갈 수 없고 국지적·제한적인 도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가 비용보다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벼랑끝 전술로 경제외교적 이익을 챙겨 온 북한으로선 판이 깨지지 않는 한 가는 데까지 가보려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기적으로도 남북한 긴장을 통해 내부 결속을 다지고 이를 대외적인 협상 카드로 활용할 수 있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8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와 그 뒤 한 달 안에 열릴 첫 전체회의, 4월15일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 4월25일 인민군 창건일 등 시기적으로 장거리 미사일 발사의 효과를 최대한 낼 수 있는 계기들을 활용해 발사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김영수 서강대 교수는 “남북긴장이 올 상반기 내내 높아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면서 “장거리 미사일 발사 뒤 5~6월쯤 단거리 미사일 발사로 교섭능력을 강화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지역은 경계선을 확인하기 어렵고 기습공격이 쉬운 편인 데다 분쟁지역으로 국제적으로 부각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국지적이지만 무력충돌 가능성을 높게 봤다. 10명의 전문가 중 3명만이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응답했다. 고려대 유호열 교수는 “북측이 무력 도발을 정당화시키는 일련의 발표수위를 높여왔다.”면서 “남북 및 북·미관계의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으면 경고가 빈말이 아님을 입증하는 국지적인 도발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남북관계 연구실장도 “NLL은 군사적·전략적으로 북한에 아킬레스건으로 북한 군부도 치욕적으로 생각하고 있어 기회 있을 때마다 변경을 시도해 왔다.”고 지적했다. 도발 시점은 9일부터 20일까지 열리는 한·미 합동 군사훈련인 키리졸브연습과 독수리훈련(Foal Eagle)이 끝난 뒤나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첫 전체회의가 끝나는 시점으로 예상하는 의견이 많았다. ●“대미외교 지렛대로 계속 활용할 듯” ICBM 수준의 장거리 미사일 개발은 북한의 숙원이었다. 2012년 강성대국에 진입하겠다고 공언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체제로서는 기술력을 높이고 군사적 성취를 대내외적으로 입증할 필요도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와 협상을 앞두고 있고, 북한 내부의 주요 정치일정들과 맞물려 발사는 기정사실화된 분위기다. 발사 시기에 관심이 맞춰져 있을 정도다. 김명길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공사가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공대에서 열린 학술회의에서 “인공위성 발사는 예정대로 한다. 시점만 남았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미 국무부가 스티븐 보즈워스 전 주한대사를 특사로 2일부터 한국, 일본, 중국 등에 파견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막기는 어려워 보인다. 북한에 대한 효과적인 제재 수단도 찾기 어렵고 그렇다고 북측과 대화를 끊을 수도 없는 처지다. 김태우 국방연구원(KIDA) 국방현안연구위원장은 “미사일 사정거리와 외교력은 비례한다.”면서 “미국이 북한이 받아들일 만한 카드를 제시하지 않는 한 북한이 대미 외교의 지렛대로 활용할 미사일 발사 가능성은 높다.”고 진단했다. 김연수 국방대학교 교수도 “북한이 과거보다 미사일 발사를 요란스럽게 강조하는 것도 (미사일 발사에) 큰 의미를 두기 때문”이라면서 발사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발사 시기로는 8일 실시되는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직후부터 그 한달 뒤 쯤 열리는 대의원대회 첫 전체회의 직전이라는 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대체로 수렴됐다. 올해 최고인민회의 첫 전체회의는 이달 말에서 4월 초쯤 열릴 전망이다. ●본토 사정권… 美 대북정책 변할 듯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미사일 발사로 김정일의 권위를 높이고 대내 축제분위기 속에 내부 결속을 다지고 대외 메시지를 전달할 계기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북한 지도부는 지난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악화와 이완된 북한내 사회기강 및 대남의존도 확대 등의 상황 속에서 남북 긴장국면은 내부결속과 함께 대남, 대미 협상에서 손해볼 게 없다고 계산하고 있는 모습이다. 북한은 1998년 8월에도 당·정·군 주요 보직 인사를 확정하는 최고인민회의 첫 전체회의를 1주일 앞두고 대포동 1호(북한은 인공위성이라고 주장)를 쏘아 올렸다. 일부에선 오바마 행정부와의 협상이 본격화되지 않은 상태여서 북한측이 보다 홀가분하게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고 이를 통해 협상력을 높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측 주장대로 인공위성이든 ICBM 수준의 장거리 미사일이든 발사에 성공하면 미국 본토를 핵탄두 탑재 IC BM으로 공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까지도 예상된다. 흔들리는 남북관계에 한 층 더 충격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계했다. 물론 북측의 발사가 실패하면 북측의 카드는 약화된다. 이석우 선임기자 안동환기자 jun88@seoul.co.kr
  • [사설]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경거망동 말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준비 시위를 하던 북한이 어제 미사일 발사 준비를 공식 발표했다. 조선우주공간기술위원회 대변인 담화 형식을 빌려 인공위성 광명성 2호 발사 준비라고 굳이 강조했지만 이를 믿을 사람은 없다. 북한은 1998년에도 인공위성인 광명성 1호를 발사했다고 주장했으나 국제사회는 장거리 미사일인 대포동 1호로 보고 있다.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할 가능성이 높다. 발사를 강행할 경우 한반도에 엄중한 긴장 조성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우리는 우려한다.북한은 미사일 발사 시점을 밝히지 않았지만 발사 강행 시점은 후계자 구도, 다음달 8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와 무관치 않은 듯하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 사망 4년 뒤인 1998년 대포동 1호 미사일을 발사하고 김정일 체제 개막을 선언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최근 셋째아들 김정운을 후계자로 지명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북한이 후계세습을 위해 미사일 발사를 강행한다면 판단착오다. 주변국의 경고 메시지를 무시하고 미사일 발사를 강행한다면 국제사회로부터 엄청난 수준의 제재가 불가피하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지난주 방한해서 “유엔 안보리 결의 1718호를 기반으로 했을 때 북한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과 관련된 모든 활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유명환 외교부 장관도 “북한이 미사일이든 인공위성이든 발사할 경우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는 것이어서 제재가 수반될 수밖에 없다.”고 밝혀 왔다.3년전 북한의 핵실험 당시에도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대북 제재를 가했다. 하지만 실패한 핵실험과 달리 장거리 미사일은 미국, 일본 등 주변국에 직접적이고 심각한 위협이 된다. 그래서 미사일 발사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는 예측불허의 수준이 될 수밖에 없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 강행이라는 경거망동을 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 [서울광장] 징역12년 구형과 무죄 판결 사이/황성기 편집위원

    [서울광장] 징역12년 구형과 무죄 판결 사이/황성기 편집위원

    검찰이 액셀을 과도하게 밟았다. 간첩이란 증거가 불충분한데도 인신을 구속하고 기소부터 해놓고 증거를 모았다. 그 귀결은 무죄였다. 탈북자 김동순(64)씨. 지난해 9월 기소 때부터 “진짜 간첩이 맞냐?”는 의구심을 낳았던 사건이다. 18일 수원지방법원 310호 법정. 재판장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선고가 떨어지자 김씨는 지난 반년 미결수로 지낸 끔찍한 시간을 털어내듯 울먹인다. 지난해 촛불정국 직후 여간첩 사건이라고 발표돼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원정화(35)씨의 의붓아버지이다. 김씨 재판은 원씨와는 달리 이목을 끌지 못했다.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방청권까지 나눠줬던 원씨 때와 비교하면 김씨의 재판은 방청석이 썰렁했던 잊혀진 간첩 사건이었다. 남에 있는 가족조차 간첩 친척이라는 눈길이 무서워 재판에 거의 오지 않았다. 검찰의 공소사실을 본다면 김씨는 원씨 못지않은 간첩이다. 공작원 원씨에게 간첩 행위의 편의를 제공하고, 황장엽씨 거처를 알아내려 시도했고, 노동당 당원증을 소지하고 있었으며 중국 단둥에 있는 북한대표부 부대표로 위장한 보위부 직원과 만났다는 게 기소 내용이다. 그에게는 국가보안법의 간첩, 잠입·탈출, 찬양·고무, 회합·통신, 편의제공이란 무시무시한 죄명이 적용됐다. 하지만 검찰이 내놓은 증거는 원씨 진술과 중국을 왕래한 행적, 조선노동당 당원증이 고작이었다. 김씨는 원씨가 공작원이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자신이 공작원이라는 것을 계부가 알고 있었다는 딸의 진술이 거짓이라고 맞섰다. 유일한 직접 증거라 할 수 있는 당원증도 그가 훗날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글을 쓸 때 자료로 활용하려고 가지고 왔다고 했다. 당원증은 김씨 집을 압수수색할 당시부터 김일성 얼굴에 낙서가 돼 있는 상태였다. 진짜 간첩이라면 소지할 리가 없고 훼손하는 것은 더더욱 있을 수 없다는 다른 탈북자의 증언이 공판에서 채택됐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시한 간접증거를 일절 인정하지 않았다. 선고를 한 차례 연기하면서 열렸던 변론재개에서도 재판부는 원씨와 김씨의 전화통화 감청 가운데 검찰에 유리한 발췌 기록이 탐탁지 않은 듯 감청내용 전부를 듣고 피고에게 진위를 물어보는 씁쓸한 광경도 있었다. 간첩 하나 만들고 낙인 찍긴 쉬워도 잘못 찍힌 낙인을 지우기는 어렵다. 지난달 법원은 ‘80년 진도 가족간첩단 사건’ 재심에서 29년이란 세월이 흘러서야 무죄로 돌렸다. 검찰은 민주화 이전 시절의 살벌한 공안 드라이브를 타려는 것일까. 검찰의 “국민의 보안의식이 해이해져”라는 논고처럼 최근 공안을 강화하는 데 2008년판 ‘가족 간첩단’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재판장이 판결에서 지적한 대로 “간첩이라는 대전제 하에” 짜맞추기 수사를 했다는 지적을 들을 만하다. 공안당국의 폭주에 손바닥을 맞췄던 과거 사법부 같았다면 분명 유죄 판결이 나왔을 것이라는 섬뜩한 상상도 해본다. 이 사건 변호사는 “국가보안법이 이렇게 무서운 줄 처음 알았다.”고 한다. 전가의 보도처럼 국보법을 빼든 검찰의 징역 12년 구형은 무죄로 매듭지어졌다. 검찰의 역주행에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피고인 최후진술에서 “단 하루라도 인간답게 살려고 남에 왔다.”는 김씨. 탈북 2년 사이 지옥과 천당을 오가며 만신창이가 된 그는 도대체 어떻게 위로 받고 보상 받아야 하나. 황성기 편집위원 marry04@seoul.co.kr
  • “한국 여성문학 계속 연구할 생각”

    “한국 여성문학 계속 연구할 생각”

    북한 김일성 종합대학 출신 중국인이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박사 학위를 받게 됐다. 주인공은 오는 26일 ‘한·중 기녀시인 김운초(雲楚)와 류여시(柳如是) 비교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는 리리추(李麗秋·37·여)씨다. 현재 베이징외국어대 한국어과 교수로도 재직 중이다. 리씨는 한국과 중국 수교 전인 1990년 김일성대 조선어과에 입학했다. 예비과정 1년을 포함해 5년 동안 북한에서 한국어를 배웠다. 리씨는 김일성대 입학 이유에 대해 “아버지가 한국과 수교가 될 거니까 미리 한국어를 배우라고 조언했는데 당시에는 북한으로 가서 배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리씨가 북한으로 떠난 지 딱 2년 뒤, 한·중 양국은 외교관계를 맺었다. 졸업 후 모국으로 돌아가 한국어를 가르치던 리씨는 2000년 서울대 대학원에 입학했다. 석사학위 역시 한·중 기녀 시인인 이매창(李梅窓)과 설도(薛濤)를 비교한 논문으로 받았다. 2005년에는 박사 과정을 수료했고 이번에 박사 학위를 받게 됐다. 그는 “공부하는 동안 한시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그래도 남들보다 2~3배 노력한다는 생각으로 버텨냈다.”고 말했다. 리씨는 “김일성대 출신으로 서울대 박사 학위를 받는 것은 아마 내가 처음일 것”이라며 “앞으로도 중국에서 한국어과 교수로 활동하며 한국의 여성 문학을 계속 연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北 “뭐 쏠지 두고보라” 발사 임박 암시

    北 “뭐 쏠지 두고보라” 발사 임박 암시

    ■ 미사일 벼랑외교 북한의 미사일 발사 가능성을 둘러싼 긴장이 계속 비등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미군은 일본 오키나와에 미사일 정찰기를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고 장거리 미사일 대포동 2호의 발사 준비 움직임을 둘러싼 한국과 미국 고위 정부관계자들의 대북 경고수위도 더 높아지고 있다. 북한은 16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장거리미사일 발사와 관련, “우주개발은 자주적 권리이며 현실 발전의 요구”라고 강조, 발사 임박설에 힘을 실으며 긴장을 높였다. 조선중앙통신은 “우리나라에서 무엇이 날아올라갈지는 두고 보면 알 것”이라며 엄포를 놓았다. 미사일 발사는 2월 말에서 4월이 고비로 여겨진다. 북한엔 미사일 발사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계기가 이 기간에 이어지기 때문이다. 16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일에 이어 이명박 대통령 취임 1주년(25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3월8일), 김일성 주석 생일(4월15일)과 인민군 창설일(4월25일) 등의 계기들이 기다리고 있다. 19~20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방한 기간 동안의 대북 메시지 내용이 북측 발사 결정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지난 6일 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위성용 로켓과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은 표리일체”라며 인공위성 발사기술이 군사적으로도 이용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7일 북한 노동신문도 ‘평화적 우주이용권’을 강조했다. 대외적으로 위성 발사라는 주장을 펴면서 미사일 카드를 사용할 가능성도 높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1998년 8월에도 당·정·군 주요 보직 인사를 확정하는 최고인민회의 첫 전체회의를 1주일 앞두고 대포동 1호(북한은 인공위성이라고 주장)를 쏘아 올렸다. 최고인민회의 첫 전체회의는 3월 말에서 4월 초쯤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대포동 2호 발사에 필요한 물자를 함경북도 무수단리(옛 대포동) 미사일 기지로 운반하는 작업을 최근 마친 상태다. 그동안 북한은 무수단리 미사일 기지에서 대포동 2호를 조립해 왔다. 미사일이 조립되면 미사일을 높이 30여m의 발사대로 이동시켜 수직으로 세운 뒤 탄두(彈頭)를 장착한다. 발사대 설치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미사일에 액체연료를 주입하는 과정도 남아 있다. 이달 말 실제 발사도 가능한 상황이다. 북한은 2006년 대포동2호 발사 실패 뒤 발사대를 개량하고 자동펌프식 연료주입 장치를 설치해 발사 준비시간을 줄였다. 정보 소식통들은 “이명박 대통령 취임 1주년인 25일쯤이 고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장거리 미사일과 함께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에 동시다발적으로 스커드B, 스커드C 미사일 등을 발사할 가능성도 주목된다. 단·중거리 미사일 발사를 통해 NLL을 분쟁수역화하고 우리 함정에 위협을 가해 위기국면을 높일 가능성도 높다는 게 군의 분석이다. 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북한은 황해도 초도 등의 지대함(地對艦) 미사일기지 등에서 지난해 10월까지 수차례에 걸쳐 시험발사를 하는 등 훈련수위를 높여 왔다. 16일 이상희 국방부 장관이 국회 본회의 답변에서 “북한이 서해에서 함정공격과 함대함 미사일을 발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군 당국은 북한의 서해 NLL 일대 공중도발 가능성에 대비, 국산 지대공 유도무기인 ‘천마’를 전진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천마는 20㎞ 이상의 항공기를 탐지·추적할 수 있고 고도 5㎞로 날아오는 각종 전투기를 10초 이내에 요격할 수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은 미사일 발사를 통해 한반도 긴장을 높이고 대내 결속을 다지는 한편 미국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 등에 대한 대외 메시지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사일 카드를 고려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테헤란 무승 못 깼지만…지성 있어 행복했네

    테헤란 무승 못 깼지만…지성 있어 행복했네

    ‘자유의 경기장(아자디 스타디움) 마법’은 역시 풀리지 않았다.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월드컵축구대표팀이 ‘사막의 아들(팀 멜리)’로 불리는 이란 대표팀과 1-1로 비겼다. 북한은 사우디아라비아를 26년 만에 깨는 이변을 일으키며 조 1위를 지킨 한국과 사상 첫 월드컵 동반 본선행 꿈을 부풀렸다. 한국은 11일 테헤란에서 벌어진 이란과의 2010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4차전에서 박지성(28·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극적인 동점골로 무승부를 기록했다. 승점 8(2승2무)로 B조 선두를 지켰고, 이란과의 상대전적에서는 8승6무8패로 여전히 우열을 가리지 못했다. 그러나 처음으로 맞붙은 지난 1974년 9월11일 아시안게임 0-2 패배를 시작으로 무려 34년5개월이나 테헤란 원정 무승기록은 이어졌다. 다만 2007년 11월 출범한 허정무호로서는 첫 평가전 상대인 칠레에 0-1로 덜미를 잡힌 뒤 19연속 무패(8승10무1패)를 이어간 건 그나마 위안거리. 이란은 2004년 이후 홈 31경기 무패행진(26승5무)을 이어갔다. 한국은 승점을 챙기긴 했으나 부정확한 크로스와 패스, 골 결정력 부족에 시달리며 내내 끌려 다녔다. 전반전 초반 이란의 파상공격을 잘 버틴 한국은 서서히 고삐를 죄어 나갔다. 전반 38분 강민수가 코너킥으로 흘러나온 공을 골문을 겨냥해 슈팅을 때렸지만 살짝 빗나갔다. 2분 뒤엔 박지성이 얻어낸 프리킥을 기성용이 직접 40m짜리 장거리슛으로 연결했으나 골키퍼에게 걸려 아쉬움을 남겼다. 전반을 0-0으로 마친 한국은 후반 14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뛰는 이란의 공격형 미드필더 자바드 네쿠남(오사수나)에게 먼저 골을 내줬다. 네쿠남은 프리킥으로 골문 왼쪽 모서리를 찔렀고, 이운재는 몸을 날렸지만 손이 닿기엔 너무 멀었다. 골 가뭄을 푼 해결사는 역시 ‘젊은피’와 프리미어리거였다. 후반 36분 페널티 지역 정면 아크에서 프리킥을 얻어낸 기성용(FC서울)이 허를 찌르는 슛을 날렸고, 골키퍼 펀칭으로 손을 맞고 튀어나온 공을 골문으로 쇄도한 박지성이 머리로 받아 넣었다. 이후 한국은 이란을 줄곧 거칠게 밀어붙였지만 승점 3을 챙기는 데에는 끝내 실패했다. 북한은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사우디와의 홈경기에서 전반 28분 터진 문인국(4·24체육단)의 골을 끝까지 지켜 1-0으로 승리를 거뒀다. 1982년 11월 2-2 이후 3무3패의 절대 열세에서 벗어난 북한은 승점 7(2승1무1패)을 기록, 단숨에 B조 2위로 뛰어올라 본선 진출의 희망을 키웠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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