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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김일성의 오산/곽태헌 논설위원

    1945년 8월 15일 혹독한 일제 36년 치하에서 해방되고 3년 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될 당시 남쪽에는 변변한 공장이 하나도 없었다. 1943년 11월 완공됐을 때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하던 수력발전소인 수풍발전소도 북쪽에 있었다. 지하자원도 북쪽에 편중됐다. 남과 북이 각자 출발했지만, 출발선부터 대한민국은 북한보다 열세에 있었다. 게다가 김일성이 소련의 지원을 업고 6·25 전쟁을 일으키면서 남쪽은 쑥대밭이 됐다. 그러지 않아도 공장다운 공장도 없던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의 날벼락이었다. 김일성의 오판(誤判)과 오산(誤算)에 따른 참화였다. 정부가 수립되던 해 수출과 수입을 합한 무역규모는 2억 달러에 불과했고, 1953년 1인당 국민소득은 67달러였다. 60여년 전 대한민국은 세계 최빈국이었다. 하지만 올해 무역규모는 1조 달러를 넘어 세계 10대 무역대국의 반열에 오를 수 있게 됐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15위로 아프리카 50여개국의 GDP를 합한 것보다 많다. 선진국의 문턱에 와 있는 신흥 경제모범생이 됐다. 사실상 맨땅에서 시작한 대한민국은 1970년대 중반 경제력에서 북한을 앞서기 시작했다. 남북 간 경제력 차이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북한의 명목 국민총소득(GNI)은 30조원으로 남한 GNI의 2.5%에 불과하다. 북한의 1인당 GNI는 124만원으로 남한의 5.1% 수준이다.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다. 미국의 외교안보전문연구소인 우드로 윌슨센터가 공개한 ‘한반도에서의 데탕트 부상과 추락:1970~1974’에 따르면 1971년 6월 김일성은 북한을 방문한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루마니아 국가평의회 의장에게, 남한이 북한보다 경제적으로 강해질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몽상이라고 일축했다. 김일성은 “그동안 우리가 잠을 자고 발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박 전 대통령)가 상상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했다. 오늘의 남북 경제력을 보면 남한은 밤을 낮 삼아 열심히 일한 반면, 북한은 잠만 잔 꼴이다.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대(代)를 이은 북한 정권은 주민들을 제대로 먹여살릴 능력도 없어 외국에 손을 벌리는 한심한 처지가 됐다. 러시아의 권위 있는 국책연구기관인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IMEMO)는 2020년대에 북한은 사실상 남한에 흡수통일될 것이라는 전망을 했다고 한다. 6·25 전쟁에 이은 잇따른 김일성의 오판과 오산으로 북한과 북한 정권의 운명도 바람 앞의 등불 신세가 되고 있다.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북·중, 김정일 기념비 철거 놓고 갈등

    북·중, 김정일 기념비 철거 놓고 갈등

    북한과 중국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기념비 철거를 놓고 갈등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4일 도쿄신문에 따르면 중국이 북한과 압록강 국경에 가로놓인 다리 확장 공사를 북한 측에 제의했지만 “다리 밑에 김 위원장의 기념비가 있어 불가능하다.”고 거부했다. 이 다리는 중국 지린(吉林)성 창바이(長白)조선족자치현과 북한 혜산시를 연결한다. 중국은 최근 들어 혜산 광산에서 구리의 생산이 늘자 이를 운반하는 트럭도 증가해 1차선 다리를 확장하는 계획을 세웠다. 다리 주변에 있는 기념비는 김 위원장이 부친인 고 김일성 주석의 항일투쟁현장을 돌아본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중국 측은 다리 확장 공사를 하기 위해서는 다리 주변에 있는 김 위원장 기념비의 이동이나 철거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북한 측에 전달했다. 하지만 북한은 별도의 지점에서 새로운 다리 건설을 할 것을 역제안했지만 강폭이 넓어 중국 측이 난색을 보이고 있는 중이다. 북한 측은 “다리는 중국 측의 필요에 의해 건설되는 것”이라며 건설비의 전면 부담도 요구하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돈줄 마른 北, 주민 달러·金 털어 ‘외화쓸이’

    북한이 김일성 생일 100주년이자 ‘강성대국 대문을 여는 해’로 삼은 2012년을 앞두고 부족한 외화를 확보하기 위해 주민들을 갈취하거나 휴대전화를 주민들에게 4배나 비싸게 팔아 폭리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30일 복수의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북 당국은 해외파견 근로자들의 임금을 가로챌뿐더러 주민들이 갖고 있는 소액 달러도 다양한 방법으로 갈취하고 있다. 또 기관·단체들도 주민들의 외화와 금을 집중적으로 매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식통은 “북 무역은행이 암시장 환율을 적용, 주민들의 외화 회수에 전념하고 있고 무역기관들도 시세보다 높게 주민들의 금을 매입하고 있다.”면서 “북 원화로 외화와 금을 대량 매집하는 것은 화폐개혁 후 인플레이션을 매개로 교묘하게 주민들의 재산을 강탈하는 ‘꼼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북 체신성은 중국 중흥통신·화웨이 등에서 한 대당 80여 달러에 수입한 휴대전화를 주민들에게 300여 달러에 판매, 폭리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소식통은 “70만대에 이르는 휴대전화 누적 판매량과 대당 등록비 140달러를 감안할 때 약 2억 5000만 달러의 외화를 착복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북한이 연말까지 가입자 100만명을 목표로 판촉행사를 진행하고, 시·군 체신소에 판매량을 강제 할당하고 있어 휴대전화를 매개로 한 외화 수입 규모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북한은 미국에 사는 이산가족들의 방북을 유도, 주선료 명목으로 1인당 수천 달러를 갈취하는 한편, 개성공단 내 북한 근로자에게 인센티브로 지급되는 초코파이를 현금으로 달라고 요청하는 등 우리 기업들도 외화벌이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소식통들이 전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조선학교 돈줄죄기…日, 보조금 27%↓

    일본이 재일본 조선인 총연합회(조총련) 계열 조선학교의 반일·사상 교육을 문제 삼아 27개 광역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 1억 5000만엔(약 22억 3000만원)을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24일 문부과학성에 따르면 조선학교가 있는 27개 도도부현(都道府縣)은 2009년에 5억 4973만엔을 보조금으로 줬지만, 2010년에는 4억 243만 9000엔만 지급했다. 1년 새 보조금이 1억 4729만 1000엔(26.8%) 줄었다. 조선학교의 고교 역사 교과서가 일본인 납북 문제에 대해 ‘일본 당국이 납치 문제를 극대화해 반조선인 소동을 키우고 있다.’고 기술하거나 1987년 북한이 자행한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를 ‘한국의 날조’라고 쓴 점 등이 문제가 됐다. 특히 오사카부(府)는 ‘교실에서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초상화를 떼어내고 조총련과 관계를 끊으라.’는 조건을 내건 뒤 이를 거부한 학교에는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조선학교 학생 수가 점점 줄어드는 것도 보조금 감소의 한 원인으로 거론된다. 지방자치단체 보조금과 별개로 조선학교 고교 과정을 수업료 무상화 대상에 포함할지를 두고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19개 도도부현 의회는 중앙 정부에 반대 의견을 표시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기고] 카다피의 종말과 김정일의 미래/한기범 통일연구원 초청연구위원·전 국정원 3차장

    [기고] 카다피의 종말과 김정일의 미래/한기범 통일연구원 초청연구위원·전 국정원 3차장

    무아마르 카다피가 리비아 국민의 저항 끝에 자신의 고향 시르테에서 사살되었다. 카다피의 처참한 종말을 지켜본 김정일은 내부의 위험요소를 차단하느라 더욱 바빠지게 되었다. 올해 초부터 시행해 온 재외 북한인과 주북 외국인 감시, 국경 경비, 정보기술(IT)기기 통제 강도를 높이고 핵 보유의 정당성 선전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이러한 민감 반응은 통치 행태가 유사한 카다피 정권의 말로가 자신들의 미래일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김정일과 카다피의 지배에는 여러 가지 공통점이 있다. 무엇보다도 한 세대를 넘는 기간 장기 독재체제를 유지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정일은 1974년 2월에 후계자로 내정된 이래 사실상 37년간 북한을 통치해 왔다. 카다피는 1969년 9월 무혈 쿠데타를 주도하여 정권을 장악한 이래 42년간 절대 권력을 유지해 왔다. 장기 독재를 위해 현대 국가에서는 찾기 어려운 기형적 정치체제를 구축하면서, 부자세습을 추진해 왔다는 점도 같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주체사상에 자신의 공포통치를 정당화하고자 선군사상을 가미했다. 카다피는 자신의 지배체제를 ‘대중의 국가’를 의미하는 ‘자마히리야’라고 부르며, 이슬람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국민에 의한 직접 민주주의와 석유회사 국유화 등 경제적 사회주의를 표방했다. 김정일이 2009년 1월 3남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정하고 후계 안착에 안간힘을 써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카다피 또한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을 유력한 후계자로 점찍고 권력 이양을 준비해 왔다. 절대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다 보니 두 사람 모두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책무를 철저히 유기한 점도 공통점이다. 김정일은 매년 수십 회의 공개처형을 하고, 6곳의 정치범수용소에 15만여명을 구금하며 인권을 짓밟아 왔다. 카다피는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자 전투기까지 동원하여 수천 명에 이르는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했다. 참담한 실정의 국민과 달리 독재자의 아들들은 호화 사치생활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도 닮았다. 후계자인 정은은 자신의 호화 집무실 신축에만 200만 달러 이상을 쏟아부었다. 끝으로 반인륜적인 테러를 자행한 점도 유사하다. 김정일은 서울올림픽 방해를 목적으로 1987년 11월 KAL기를 인도양 상공에서 폭파하여 우리 승무원을 포함한 탑승객 115명을 희생시켰다. 카다피는 1986년 4월 미 공군의 트리폴리 폭격에 대한 보복으로 1988년 12월 팬암기를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에서 공중 폭파시켜 승객 전원과 지역주민을 합쳐 270명을 죽게 했다. 꺼림칙했던지 항공기 테러 주모자인 두 사람 모두 항공기 탑승을 꺼려 왔다. 물론, 북한은 리비아와는 달리 종족 간 갈등이 없고, 리비아보다 물리적 통제력이 발달되어 있어 쉽게 민간봉기로 붕괴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의 생각이 바뀌고 있다. 시점이 문제일 뿐 세계적인 민주화 흐름에 북한도 예외일 수는 없다. 우리는 북한에서 리비아와 같은 혼란이 발생하기보다는 개혁·개방 정권으로 연착륙하기를 기대한다. 북한은 리비아 사태에서 핵 보유의 정당성이 아니라, 인권·민생 향상으로의 정책전환을 교훈으로 찾아야 한다.
  • 당신들도 떨고 있습니까

    당신들도 떨고 있습니까

    42년간 리비아를 철권 통치했던 무아마르 카다피가 사망하자 현재 권좌를 누리고 있는 독재자들의 거취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재스민 혁명 이후 아직까지 아랍권에서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독재자는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과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이다. 카다피 사망 이후 시리아 국내외 반정부 인사들은 알아사드 대통령이 카다피의 뒤를 잇게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고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가 21일 전했다. 실제로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NTC)가 승리를 선포하는 순간 시리아 홈스에서는 주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환호했다. 현지 통합시리아혁명위원회 대변인은 “주민들은 ‘오늘은 기쁨과 희망의 날’이라고 한목소리로 외쳤다.”면서 “모두가 너무 기쁘고 알아사드가 다음 차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알아사드는 30년간 집권한 아버지로부터 권력을 승계받아 11년째 집권하고 있다. 시리아에서는 당국의 초강경 시위 진압으로 2000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추산된다. 살레 예멘 대통령은 지난 6월 대통령궁 경내에서 폭탄 공격으로 중화상을 입고 치료차 사우디아라비아로 건너가 두 달 넘게 체류하다 지난달 말 귀국했다. 카다피의 몰락을 지켜본 살레로서는 자신이 거부했던 걸프협력협의회(GCC)의 중재안에 다시 관심을 가질 가능성도 있다. 앞서 아라비아반도 6개국으로 구성된 GCC는 살레의 처벌 면제를 보장하는 대신 조기 퇴진하는 중재안을 제시했다. 예멘의 야당은 살레의 아들 아흐메드가 최정예 부대 공화국수비대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해 살레의 퇴진을 강제할 수 있는 방안이 마땅치 않다고 보고 GCC 중재안을 선호해 왔다. 그러나 청년단체를 주축으로 한 시위대는 살레를 즉각 퇴진시키고 시위 강경 진압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편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최근호에서 앞으로 무너질 독재자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비롯해 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베, 쿠바의 카스트로 형제,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등을 꼽았다. 포린 폴리시는 김 위원장과 고(故) 김일성 주석이 북한을 세계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국가로 만들었으며 북한에는 현재 약 15만명이 수용소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무가베 대통령은 집권 후 3만명에 이르는 소수 민족을 학살했을 뿐만 아니라 지지자들을 통해 야당 인사까지 살해하는 등 통치 행태가 갈수록 대담해지고 있다.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와 그의 권력을 물려받은 동생 라울 카스트로도 언론과 인터넷 등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으나 최근 경제 침체로 입지가 위축되고 있다. 벨라루스의 루카셴코는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로 불리고 있다고 이 잡지는 덧붙였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김정일 “전제조건 없이 6者 재개”

    김정일 “전제조건 없이 6者 재개”

    북한 김정일(얼굴) 국방위원장은 19일 “전제조건 없이 6자회담을 하루 빨리 재개하고 9·19공동성명을 이행함으로써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해 나가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날 러시아 이타르타스 통신과의 서면인터뷰에서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오는 24일부터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제2차 북·미 고위급 회담을 앞두고 김 위원장이 북·미 간 현안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직접 밝힌 것은 회담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 위원장이 전제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라는 지침을 준 만큼 북한은 북·미회담이 열리더라도 한·미 양측이 요구하는 선행조치를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핵문제와 관련, “미국의 핵위협으로부터 자주권을 지키기 위해 핵억지력을 보유하게 됐다.”며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김 위원장은 북한과 미국, 일본 간의 관계 정상화에 대해 “전적으로 미국과 일본의 태도에 달려 있다.”면서 “우리를 선의로 대한다면 관계를 개선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사설] 여객기 조종사가 종북사이트 활동가라니

    국내 민간항공사의 현직 기장이 인터넷 사이트에 수십건의 북한 찬양글을 지속적으로 올리는 등 종북(從北) 활동을 해온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대한항공 소속 기장 김모씨는 최근까지 위장 과학사이트를 개설해 운영하면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노작’ ‘빨치산의 아들’ 등 이적(利敵) 표현물을 무더기로 올린 혐의를 받고 있다. 노동계·학계·IT업계 등에 이어 이제 여객기 조종사마저 종북 사이트 활동가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경찰의 지적처럼 그가 비행기에 승객을 가득 태운 채 월북(越北)이라도 할지 누가 알겠는가. 회사 측은 여객기 운항을 금지시켰지만 국민의 불안은 여전하다. 어제는 병무청 공무원이 종북 사이트를 만들어 북한을 찬양한 혐의로 수사를 받는 사건도 발생했다. 사이버 공간이 ‘붉은 네티즌’의 영토가 돼버린 것이 아닌가 걱정스럽다. 한상대 검찰총장이 취임 일성으로 ‘종북 좌파와의 전쟁’을 선포한 지 두 달이 넘었다. 한 총장은 종북세력을 방치하는 것은 “국가적 불행”이자 “검찰의 직무유기”라고 했다. 그러나 전쟁을 선포해 놓고도 정작 전장에는 제대로 나서지도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10·26 재·보궐선거 등을 의식해서다. 검찰은 종북 사이트의 북한 찬양 행위에 대해 전면적이고 집중적인 단속에 나서야 한다. 자생적인 종북주의자들이 갈수록 위세를 더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은 지난 10년간 국가보안법상의 찬양·고무 규정이 사문화되다시피 한 영향이 크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런 만큼 검찰은 엄중한 법 적용에 결코 멈칫거려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한은 최근 대남 사이버 선전전을 한층 강화하며 남남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하지만 일부 세력은 그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 종북세력은 명백한 ‘위험’이다. 종북세력의 실체를 직시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때다.
  • “北 김정은 올봄부터 내정 물려받는 중”

    북한 지도체제가 올해 봄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핵, 미사일 문제 등을 포함한 외교에 전념하고 후계자 김정은은 점차 내정을 물려받는 방향으로 재편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김정은의 지시를 각 기관에 전파하는 전담 기구가 구성된 것으로 보이며, 이 기구는 권력 승계 업무를 담당하면서 김정은을 지지하는 차세대 간부들을 길러내는 역할을 할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9월 말에 개최된 조선노동당대표자회의에서 공식 등장한 김정은은 1년 만에 당 중앙위원과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조선인민군 대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 소식통은 지난 8월 김 위원장이 러시아와 중국을 잇따라 방문했을 무렵부터 김정은이 내정을 이끄는 것에 대한 합의가 마련됐다고 밝혔다. 다른 소식통은 고(故) 김일성 주석의 탄생 100주년 기념일인 내년 4월 15일쯤 권력 승계가 거의 마무리될 것이라고 장남 김정남이 밝혔다는 정보가 있다고 말했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는 지난달부터 회원들에게 김 위원장과 김정은의 철학과 지시에 신심을 갖고 따를 것을 내부 문서를 통해 강조하는 등 앞으로 조직적인 사상교육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권력 승계가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외교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김 위원장이 올해 안에 다시 중국을 방문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단숨에 휙 그었을 뿐인데 그것이 한국이더라 …

    단숨에 휙 그었을 뿐인데 그것이 한국이더라 …

    #1. ‘We’라 쓰여있다. W자의 한쪽 끝이 끝 모르게 치솟더니 그 위에 사람이 한 명 얹혀 있고, 그 옆에 ‘she’라고 적혀 있다. 한진중공업 사태, 고공크레인 시위, 김진숙 민노총 지도위원이란 키워드를 가진 희망버스 사건을 접하고 그렸다. #2. 미술계에 대한 풍자도 있다. 미술관, 갤러리, 미술경매장을 한 언덕 위에 나란히 그려놨는데 뒤로 갈수록 건물이 더 커진다. 공적인 미술관보다 상업화랑이, 상업화랑보다도 경매로 가격을 뻥튀기하는 데 더 관심 있느냐는 질문이다. #3. 한국인의 일상도 있다. 손에 든 휴대전화에는 주소, 생일, 연락처, 뉴스, 음악, 영화가 다 들어 있는데 정작 사람의 머릿속에는 거의 아무것(almost nothing)도 들어 있지 않다. 쉽고 재미있는 그림체 때문에 비주얼아트나 일러스트레이션 계통에 적지 않은 마니아층을 보유하고 있다는 단 페르조브스키(50). 그의 한국 첫 개인전 ‘뉴스 이후의 뉴스’(The News after the News)가 12월 4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 토탈미술관에서 열린다. 작가는 북한의 김일성을 모델로 삼았다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나라, 루마니아 출신이다. 그렇다고 ‘자유 루마니아 만세’를 기대할 필요는 없다. 작품을 보면 옛 공산독재를 상징하는 인물이 다른 사람에게 ‘오 자유의 동지여’(OH MY LIBERTY BROTHER)라고 악수를 건네자 반대편 사람은 ‘악! 이 공산주의 악마야’(WOW! COMMUNIST DEVIL!)라고 경악하는 것도 있다. “공산주의에서 민주주의로 바뀐 게 아니라,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바뀌었을 뿐”이라는 작가의 말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반공주의가 민주주의의 전부라 우기는 한국의 뜬금없는 ‘자유’ 민주주의 바람이 떠올라 설핏 웃음이 나온다. 작가는 10살 때부터 국가의 집중적 교육을 받을 정도로 그림에 천부적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별 재미는 없었단다.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을 토대로 공부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는 고전주의에서 후기인상파에 이르기까지 모든 화풍을 다 소화해낼 수 있는 재주”를 갖췄지만 흥미를 느낄 요소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시작한 게 드로잉이다. 어릴 적 펜 하나 쥐면 아무렇게나 그리던 아이들이 10살을 넘어가기 시작하면 그리기를 망설인다는 점에 착안했다. 그림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인데 제도권 교육이 되레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얘기다. 천재적인 손재주를 지녔음에도 단순명료한, 만화 같은 드로잉을 그리는 이유다. 1999년 베네치아비엔날레를 통해 세계적 작가로 떠올랐다. 바닥에다 드로잉을 그려뒀는데 포인트는 관람객들이 지나다니다 자연스럽게 지워진다는 것. 작가는 “주어진 공간에서 즉흥적으로 구현되는, 일종의 재즈연주와 같은 것이기에 (내 그림이) 영원히 남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후 2006년 영국의 테이트모던갤러리, 2007년 미국 뉴욕현대미술관 등에서 전시를 열면서 이름을 떨쳤다. 이번 전시에서도 미술관 측이 준비한 것은 깨끗한 빈 벽이다. 전시 두달 전부터 한국에 대한 뉴스를 제공받아 아이디어를 가다듬은 뒤 이를 드로잉북에 미리 그려왔다. 그리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빈 벽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이 작품들도 전시가 마무리되면 깨끗하게 지워진다. 한국에 도착한 뒤 드로잉한 작품도 있다. 직접 관찰한 현대 한국인의 일상들이다. 재치 넘쳐서 깔깔깔 웃게 된다. 전시 중임에도 여전히 돌아다니다 그릴 만한 것을 찾으면 슬쩍 들어와 빈 곳에다 드로잉 작업을 한다. 운 좋으면 작가의 작업광경을 볼 수도 있다. 관객들이 직접 그릴 공간도 마련해놨다. “나도 내 마음에 따라 그리는데, 관람객들에게도 그런 행운을 누리게 해줘야 한다.”는 작가의 제안에 따른 것이다. (02)379-3994.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내 안에 다른 軍 있다] ‘공정통제사’(CCT) 왜 필요한가

    공정통제사(CCT)는 병력과 보급 물자를 안전하게 투하하기 위해 생겨났다. 적진 가장 깊숙한 곳에 가장 먼저 침투해 안전한 공중 보급 장소로 공군 수송기를 안내해 주는 게 CCT의 기본 임무다. 공정통제사는 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의 시실리 공정작전이 실패로 돌아가자 특수부대의 필요성을 느낀 미 공군에 의해 세계 최초로 창설됐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중 수송 임무를 전담하는 제5전술공수비행단을 구성한 뒤 보다 효과적인 임무 수행을 위해 베트남전에서 맹활약한 미국 공군 CCT를 모델로 해 1978년 3월 중대급으로 창설했다. 일각에서는 1968년 1월 북한 124군부대의 청와대 습격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김일성 주석궁을 폭파하는 임무를 띠고 같은 해 4월 창설된 실미도 부대가 전신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두 부대가 정보교육대대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것 말고는 임무가 전혀 달라 무관하다는 게 공군의 설명이다. 우리 공군 CCT는 전원이 부사관으로 구성되는 전형적인 전술공정 작전팀으로 발전해왔다. 전시에 적지의 비행장이나 아군 목표 지점에 육상, 해상, 공중을 통해 침투해 작전용 통신망을 구축하고 아군 수송기를 유도·관제하며 지상 정보를 수집하고 병력과 물자 투하 지점을 설치, 운영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F15K 전폭기 등이 전략 목표물을 공격할 때 첨단 미사일이나 폭탄이 정확히 목표물에 명중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임무도 맡고 있다. 육군의 특수전부대, 해군 특수전여단, 해병대 특수수색대 등 다른 특수부대가 주로 적진에 침투해 타격 작전을 벌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과는 구별된다. 우리 공군의 CCT 부대는 2000년 동티모르 한국군 수송기 관제를 완수했으며, 2005년에는 이라크 전장 공수를 맡은 쿠웨이트 다이만 부대에 파병돼 경호 및 대테러 임무를 수행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김정일 손자 보스니아 국제학교 등록”

    “김정일 손자 보스니아 국제학교 등록”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손자가 보스니아 남부 모스타르에 있는 한 국제학교에 등록했다고 현지 언론이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김한솔(16)은 유나이티드 월드 칼리지(UWC) 모스타르 분교 6학년 학생 72명 가운데 한 명이다. 그의 아버지는 김 위원장의 장남인 김정남이다. UWC는 전 세계에 분교가 설치돼 있다. 특히 분쟁 지역 학생들이 많이 입학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UWC 모스타르 분교의 교직원은 이 보도 내용의 사실 여부 확인을 거부했다. 또 다른 현지 일간지는 김군이 중국 베이징 주재 보스니아 대사관에서 학생 비자를 신청했으며 아직 보스니아에 오지는 않았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은 보스니아 외국인 사무청 대변인의 말을 인용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익명의 보스니아 정부 관계자는 미국과 서방 국가들이 그에 대한 비자를 거부한 이후 그에 대한 기록을 보스니아 관계 당국이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김정일의 장손자가 보스니아 남부 도시의 국제학교에 등록한 이유에 대해서는 의문이 일고 있다. 모스타르는 1992년부터 1995년까지 일어났던 보스니아 내전 당시 크로아티아인, 무슬림, 세르비아인들 사이에 심각한 충돌이 벌어졌던 곳이다. 로이터통신은 김군이 보스니아를 선택한 것에 대해 유고슬라비아 시절 티토 전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의 각별했던 관계를 소개했다. 김 주석과 티토 대통령은 생전에 상당히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부고] 문단 ‘큰 어른’ 김규동 시인

    [부고] 문단 ‘큰 어른’ 김규동 시인

    한국 시단의 ‘큰 어른’인 김규동 시인이 28일 오후 2시 50분 폐렴과 노환으로 별세했다. 86세. 1925년 함경북도 종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8년 김일성종합대학을 중퇴하고 이남으로 내려왔다. ‘후반기’ 동인으로 활동하던 초기에는 모더니즘을 표방하며 야만적인 물질문명을 비판하는 작품들을 발표했다. 1970년대에는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하면서 현실비판적인 시를 주로 썼다. 고인은 ‘나비와 광장’ ‘죽음 속의 영웅’ ‘오늘밤 기러기떼는’ ‘길은 멀어도’ ‘느릅나무에게’ 등 시집 9권과 ‘새로운 시론’ 등 평론집, ‘지폐와 피아노’ 등 산문집을 펴냈다. 지난 2월에는 문학 활동을 집약한 ‘김규동 시선집’을 내기도 했다. 시선집에는 60여 년간 지은 시 432편을 담았다. 이어 3월에는 자전에세이 ‘나는 시인이다’를 출간했다. 당시 거동이 불편했던 시인은 구술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자서전을 완성했다. 고인은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 등을 지냈으며 은관문화훈장과 만해문학상 등을 받았다. 지난 6월에는 대한민국예술원 수상자로 선정됐다. 유족으로는 부인 강춘영 여사와 3남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10월 1일 오전 8시다. 문인장으로 치러진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부고] 故 문익환 목사 부인 박용길 장로 별세

    [부고] 故 문익환 목사 부인 박용길 장로 별세

    고 문익환 목사의 부인이자 전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공동의장인 박용길 장로가 25일 오전 1시 30분 별세했다. 93세. 황해도 수안군 출신인 박 장로는 1944년 문 목사와 결혼한 뒤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에 몸을 바쳤다. 통일맞이·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민화협·통일연대 상임고문과 ‘6·15 남북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해외 공동행사 남측준비위원회’ 명예대표 등을 지냈다. 1995년 6월에 김일성 주석 1주기를 맞아 평양을 방문한 데 이어 2000년 10월에는 조선노동당 창건 55돌 초청 인사로 방북하기도 했다. 2005년 남북 화해 협력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아들인 문성근 ‘국민의명령’ 대표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박 장로는 문 목사가 그랬듯 각막을 기증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문 목사는 1994년 별세 당시 각막을 기증해 두 명의 환자가 성공적으로 이식 수술을 받았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발인은 28일 오전 9시다. 유족으로는 딸 영금씨, 아들 의근(JP모건 시카고 부사장)·성근씨, 며느리 정은숙(성신여대 석좌교수)·김성심씨와 사위 박성수씨가 있다. 장지는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02)2072-2010.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박재범 칼럼] 소용돌이의 정치와 북한

    [박재범 칼럼] 소용돌이의 정치와 북한

    역시 한국 정치의 소용돌이는 세차다. 그레고리 헨더슨이 1950~60년대 한국을 지켜보고 내린 결론은 ‘소용돌이의 정치’였다. 다음 달 말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일으킨 돌풍은 블랙홀급이다. 세상에는 그러나 정치게임의 역동성보다 우리의 평범한 삶에 더 영향을 주는 변수가 여럿 있다. 첫번째는 두말할 나위 없이 북한이다. 이 점에서 선거바람이 한창인 이때 북한을 살펴보는 것은 유의미하다. 북한 사정에 밝은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변화 조짐이 뚜렷하다고 진단한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깜짝쇼로 등장한 3대세습 왕자 김정은의 퇴조다. 김정은 대신 김정일 위원장의 활기찬 모습이 자주 공개되고 있다. 지난 5월 중국 방문 때에 비해 러시아 방문길의 김 위원장은 훨씬 좋아보였다. 담배를 다시 피운다는 얘기도 있다. 김 위원장은 김일성의 후계자로 30년간 머물렀다. 김정은이 권력을 넘겨받기까지 시간이 한참 걸릴 전망이다. 건강을 되찾은 김 위원장은 어떤 행로를 걸을까. 1990년대와 현재를 비교해보면 갈피를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김일성은 1990년대 초반 옛 소련의 소멸을 지켜봐야 했다. 심각한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핵 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해 긴장수위를 높였다. 때맞춰 북한 경착륙론이 세계를 풍미했다. 김일성은 상황 타파를 위해 서울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갖기로 합의, 준비작업 중 갑자기 심장쇼크로 숨졌다. 이로써 한반도의 지형 변화는 무산됐다. 김 위원장은 김일성과 똑같은 환경에 처해 있다. 재스민 혁명 등 아프리카 우방의 붕괴를 바라보고 있다. 경제난은 도를 넘어섰다. 그럼에도 핵과 함께 재래전 위협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있다. 김 위원장은 위키리크스에서 폭로한 대로 중국을 믿지 못하고 있다. 중국이 겉으로만 융숭하게 접대하는 데 실망하는 모습이다. 차선책으로 러시아의 손을 잡으려 하고 있다. 금강산은 봉쇄했지만, 개성공단은 4만 3000명에서 4만 8000명으로 근로자 수를 늘리고 있다. 사면초가에 처한 김 위원장의 불안한 내심을 엿볼 수 있는 사안이 최근 하나 있었다. 북한 TV는 지난 6월 한국 측이 남북 접촉을 매수하려 했다고 일방주장했다. 한달 전 중국 방문에서 돌아온 김 위원장이 왕왕 있었을 법한 낮은 단계의 남북 접촉에 불벼락을 내리자 실무자들이 화들짝 놀라 뚱딴지 같이 나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 위원장이 예민해졌다는 방증으로 보인다. 상 층부의 이런 움직임보다 한층 중요한 것은 주민들이다. 똑같은 위기 시대인 1990년대에 볼 수 없었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1990년대 초반 북한 주민의 사상은 견고했다. 지금은 배급체제가 무너진 탓에 시장이 형성되면서 정보와 의견의 소통이 활발해지고 있는 양상이다. 한류 바람도 거세게 불고 있다. 최근 북한 이탈 주민들은 체제 비교 때문이 아니라 시장과 문화의 매력에 이끌려 탈북을 결행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두 가지 문제를 앞에 두게 된다. 하나는 북의 변화가 언제 우리의 현실 생활을 좌우할 사안으로 대두될 것인가, 둘째는 한반도의 변화 관리를 위한 대화 상대는 누구여야 하는가라는 부분이다. 시장과 문화의 변화는 근본적이어서 되돌이키는 게 불가능하다. 따라서 북한이 60년 전 설계한 현행 유일신 형태의 봉건왕조는 지속가능성이 극히 낮다. 대화는 설익은 김정은보다 아무래도 산전수전 다 겪고 고민이 깊은 김 위원장이 적절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지금 생존을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정적 변화에 목을 매고 있으며, 날이 갈수록 남북정상회담 외에는 달리 묘책이 없음을 인식하게 될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이제 한국의 실력과 북한의 여건은 과거에 비해 크게 달라졌다. 한국은 북의 좌충우돌식 행보에 단호하게 대처하되 취약한 여건을 염두에 두고 유연한 정책을 일관성있게 추진해야 할 시점이다. 북한발 소용돌이는 국내 정치의 그것보다 범위와 강도가 넓고 크다. jaebum@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능라전통음식교육원 여는 탈북 여성박사 1호 이애란

    [김문이 만난사람] 능라전통음식교육원 여는 탈북 여성박사 1호 이애란

    서울 한강에 여의도가 있다면 평양 대동강에는 능라도가 있다. 비단 같은 능수버들이 그물처럼 펼쳐진 듯 아름답다고 해서 능라(綾羅)라 했다. 능라도에서 바라보는 부벽루와 을밀대의 경치가 무척 빼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럴 것이 경기민요 ‘양산도’에 보면 ‘대동강 굽이쳐서 부벽루 감돌고 능라도 저문 연기 금수산 어렸네’라고 노래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나훈아의 ‘대동강 편지’에서도 ‘대동강아 내가 왔다 을밀대야 내가 왔다/우표 없는 편지속에 한 세월을 묻어놓고~/대동강아 내가 왔다 부벽루야 내가 왔다~’라고 한이 서리도록 불러댄다. 그만큼 능라도는 실향민들에게 ‘꿈에 본 고향산천’이기도 하다. 이 같은 ‘능라’의 향수를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는 공간이 서울 한복판에 들어선다. 다름 아닌 ‘능라전통음식문화평생교육원’(능라교육원)이 다음 달 1일 종로구 종로3가에서 정식 개원되는 것. 능라교육원은 국내 최초의 탈북자 전문 직업학교로 북한 특선 요리과정, 북한 연회 요리과정, 냉면과 온면 제조, 북한식 건강요리 등을 개설했다. 특히 탈북자들의 남한 정착을 위한 특별 코스로 생활문화 정착 및 스피치 강좌 등도 마련했다. 이 교육원은 기관이나 단체가 아닌 탈북 여성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는 점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국내 최초의 탈북자 전문 직업학교 탈북 여성박사 1호로 알려진 이애란(48)씨는 3년전부터 북한전통음식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국내에 정착하지 못해 방황하는 탈북자들을 보면서 일자리를 마련해 줄 방도가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던 중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식품영양학 박사)를 살려 탈북자들의 취업을 도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능라교육원’을 개원하게 됐다. 경인여대 식품영양조리학과 겸임교수이기도 한 이씨는 앞으로 탈북자들은 물론 북한요리를 배우고 싶은 남한 사람들에게도 문호를 적극 개방할 예정이다. 지난 1일 오후 이씨를 만나기 위해 종로3가 국악로 입구에 위치한 북한전통음식연구원을 찾았다. 때마침 연구원 직원들이 추석을 맞이해 요리를 하느라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한 연구원에게 무슨 요리냐고 물었더니 “개성약과입네다. 추석때 쓰겠다고 주문이 왔습네다.”라고 대답했다. 요리실 안에는 여러 개의 싱크대가 진열돼 있었고 4~5명의 요리사들이 북한요리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잠시 후 이씨와 마주앉았다. 먼저 추석 얘기가 오고 갔다. 그는 “추석이 가까워서인지 북한음식을 만들어달라는 주문이 많이 온다.”면서 그중 개성약과를 가장 선호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개성약과는 북한에서 알아주는 고급약과라는 설명이다. “평양에서는 추석무렵이 되면 노티떡을 잘 해먹습니다. 찹쌀과 기장쌀을 섞어서 엿기름을 반죽시켜 삭힙니다. 그걸 5㎝ 크기로 동글납작하게 참기름에 노릇노릇하게 지져서 완전히 식힌 다음 사기항아리에 조청이나 꿀을 발라서 차곡차곡 담아두었다가 먹는 평안도의 음식으로 이름 나 있습니다. 노티는 겨울까지 간식으로 먹는데 주로 부잣집에서 만들어 먹습니다. 건강에 좋은 당을 쓰는 발효음식이기때문에 인기가 아주 좋지요. 추석때면 온 가족이 모여 노티를 만들었던 추억이 지금도 아련합니다.” 하지만 가난한 함경도 지방에서는 추석때 주로 감자를 재료로 한 음식을 많이 만든다고 했다. 개마고원, 부전고원 등 고원지대에서 나는 감자를 캐서 녹말국수를 비롯해 감자떡, 감자 오그랑죽 등을 주로 만들어 먹는다고 했다. 이 밖에 수수요리도 많이 한다는 그는 “추석 전날 여자들은 잠을 안 자고 요리를 하는데 남자들은 뒷짐만 지고 알건달처럼 편안히 지낸다. 이런 것은 남한이나 북한이나 비슷한 것 같다.”며 웃는다. 그는 이번 추석연휴가 끝나면 연구원 자리에 이 같은 북한음식을 맛볼 수 있는 카페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미 ‘라이스토리’라는 상표등록을 마쳤으며 해주비빔밥, 평양비빔밥, 평양식 샌드위치인 녹두지짐떡, 순대, 북한의 상류층만 먹는 꼬부랑국수(수프 없는 라면) 등 남한에서는 맛볼 수 없는 것들을 요리해 아주 저렴하게 내놓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쯤해서 얘기를 능라교육원으로 돌렸다. 교육원은 연구원에서 불과 100여m 떨어진 곳이어서 자리를 옮겨 인터뷰를 계속했다. 그는 “탈북자들이 남한에 와서 일자리를 얻겠다고 하지만 실패하는 경우를 많이 봐 왔다.”면서 먼저 와서 나름대로 정착한 탈북자로서 나중에 온 이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줘야 한다는 생각에서 교육원을 개원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저도 대학에서 조리실습을 할 때 믹서나 티스푼 같은 용어조차 못 알아들어 실습팀에서 왕따가 된 경험도 있지요. 제 전공이 음식인 만큼 음식을 통해 탈북자들의 취업을 도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음식은 남과 북이 서로의 문화를 배우고 알아가는 데 가장 좋은 매개체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북한은 식량난을 겪으면서 전통요리의 맥이 끊기고 있습니다. 남한에 온 탈북자들이 그 맥을 잇는다면 장차 명품 관광산업으로 얼마든지 발전시킬 수 있거든요.” 그러면서 평양의 옥류관에 버금가는 북한 전통 음식점을 남한에 생기게 할 만큼 단단히(?) 교육할 것이라고 의욕을 보인다. 남한에서 유명하다는 북한 음식점을 돌아봤지만, 북한 음식 고유의 맛을 간직한 곳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자신있다고 했다. ●“탈북자 입장에서 탈북자 도울 것” 그는 북한 전통음식 외에 제과와 제빵과정 코스도 마련했다. 얼마전 인기 드라마였던 ‘제빵왕 김탁구’처럼 제빵왕을 배출시키는 것 또한 목표로 삼고 이미 탈북자 둘을 은밀히(?) 교육을 시키고 있다고 귀띔했다. 또한 내년 4월 대전에서 열리는 국제요리올림픽에 출전시켜 제빵왕은 물론 요리왕까지 탄생시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강사진은 이씨를 비롯해 북한에서 요리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몇명 있다고 말했다. “교육원은 서울문화와 평양문화가 만나는 곳입니다. 통일문제를 이념적으로만 접근하게 되면 비인간적인 측면이 많게 되지요. 제 생각에는 생활문화적으로 다가가야 인간적인 통일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제가 교육원의 캐치프레이즈를 ‘통일은 밥상에서’라고 내건 것도 바로 이런 점 때문이지요.” 통일 얘기가 나오자 열변을 토하듯이 말을 이어나간다. “통일문제와 관련, 방송에 출연한 사람들이 마치 점령군 같은 입장에서 얘기를 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예를 들어 통일되면 북한의 땅값이 얼마이며, 또 자원은 얼마나 나갈 것이며 등등을 얘기하는 것은 북한주민을 자극하는 신중하지 못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북한 주민들은 ‘식민지’라는 말을 무척 싫어합니다. 그들의 마지막 자존심 또한 식민지가 아닌 것이지요. 만약 북한 사람들이 우연히 남한 방송을 볼 때 이런 얘기를 들으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침략자, 또는 점령군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또한 남한이 우월적 지위에서 통일이나 통일비용을 자꾸 거론하는 것도 북한주민들의 입장에서는 썩 달갑지 않게 느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탈북자들에게도 이와 비슷하게 대하는 것은 오히려 사회적 문제와 갈등만 일으킬 뿐이지요.” 그는 이어 “배고픈 북한 주민들이나 탈북자들을 위해 스스로 먹고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탈북자의 경우 먼저 온 탈북자가 나중에 온 탈북자들에게 이러한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가장 좋다. 탈북자들이 정부에서 주는 기초생활비만 받아본들 아무 소용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제가 아는 탈북자 중에 용접일을 하면서 연봉 7000만원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를 만났을 때 가장 큰 고충이 언어의 소통이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말귀를 알아듣기까지 무려 7년이 걸렸다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용접을 배우고 싶은 후배 탈북자가 있어서 직접 가르친다면 7년이 아닌 3년만에 비슷한 연봉을 받게 하겠다’고 자신하더군요. 우리 교육원도 바로 이런 점을 중요하게 여길 것입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문의전화가 여러번 걸려왔다. 궁금해 하자 “남한사람들은 냉면집 차리는 것에 대해 어떤 로망을 가졌나봐요.”라고 말했다. 그에게 추석때 어떻게 지낼 것이냐고 했더니 “중학생인 아들을 데리고 부모님댁에 가서 함께 노티를 만들어야지요.”라고 하면서 웃는다. 그의 어머니(72)도 북한 고급 요리사 2급 자격증을 가졌으며 북한 진달래식당과 압록강각 등에서 오랫동안 일해왔다.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 이애란은 1964년 능라도를 바라보는 평양에서 맏이로 태어났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6·25때 월남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상검증에 의해 가족과 함께 양강도 삼수군 산림지역으로 추방당했다. 인민학교를 졸업하고 5년제 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자 과학자가 되기 위해 수학공부에만 전념했다. 졸업 당시 7만여명이 참여하는 수학경시대회에서 25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출신성분으로 기대했던 김일성대학 진학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할 수 없이 1981년 혜산고등경공업학교에 들어가 졸업한 뒤 신의주경공업대학에 편입해 1989년 졸업했다. 이후 국가과학기술위원회 혜산시 품질감독원으로 일했다. 그러던 1997년 미국에서 소설가로 활동하던 사촌 여동생의 소설이 문제가 돼 정치범으로 몰리게 되자 그해 8월 4개월된 아들 등 가족과 함께 압록강을 건넜다. 3개월동안 중국과 베트남을 전전하다 한국에 도착한 그는 호텔 청소부, 신문배달, 보험 설계사 등 닥치는 대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었고 틈틈이 모은 돈으로 건강음식점을 열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던 2003년 9월 이화여대에서 북한 관련 강의 요청이 온 것이 계기가 돼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석사학위에 이어 2008년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이때 평소 꿈이었던 사단법인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을 설립했고 2010년 경인여대 겸임교수에 지원해 47대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현재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 원장 외에 (사)하나여성회 대표, 능라교육원 원장, 경인여대 겸임교수 등을 맡고 있다. 주요 수상으로는 통일부장관상 (2008), 미 국무부의 ‘용기있는 국제 여성상’(2010), 국제 소롭티미스트 ‘루비상’(앞서가는 여성상·2010), 한국여성단체협의회 ‘2010 1호 여성상’ 등이 있다.
  • [나와 통일] (30) 20년간 해외등반·극지탐험 산악인 허영호씨

    [나와 통일] (30) 20년간 해외등반·극지탐험 산악인 허영호씨

    나는 1982년 세계 제5위봉인 히말라야 마카루 등정을 시작으로 20여년간 해외원정 등반과 극지탐험을 해 왔다. 1995년에는 세계 최초로 7개 대륙의 최고봉과 남·북극을 등정한 사나이로 기록됐다. 그러나 아직까지 못 가본 곳이 바로 북한의 명산들이다. 앞으로 북한 땅을 직접 밟아서 백두산, 금강산, 묘향산, 칠보산 등 북한의 4대산에 오르는 것이 내 소원이다. 백두산은 중국을 통해서 여러 번 오른 적이 있다. 1997년부터 매년 백두산을 다녀왔고 2000년 1월 1일에는 백두산의 물을 떠와 통일 기원 남·북한 합수식을 했다. 중국에서 올라가는 길은 안 가본 길이 없을 만큼 훤하게 꿰고 있다. 하지만 북한쪽으로는 백두산에 오르지 못했으니 절반이 미완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1995년부터 北등반 프로젝트 백두산의 최고봉은 북한에 있다. 천지는 분화구 중 가장 크고 높은 곳이고, 정상은 ‘장군봉’이다. 백두산 정상이 뻔하게 보이는데도 내 발로 가지 못하고 내려왔다. 마음 같아선 오리발을 끼고 천지를 헤엄쳐서라도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남북 간의 교류가 활발하던 5년전 묘향산 관광을 갔다. 가을의 묘향산은 울긋불긋한 단풍이 곱게 들어 설악산과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묘향산에는 김일성 별장이 있을 만큼 아름답고 신비로움이 묻어나는 곳이다. 분단되기 전 여러 산악인 선배들이 묘향산에 다녀온 기록이 있다. 당시 안내원의 통제하에 1시간 정도 걸어 올라가 크고 작은 폭포만 몇개 보고 내려왔는데 ‘내 발로 꼭 걸어서 정상을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북한의 산에 오르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 것은 1995년부터다. 중국 베이징에 나와있는 조선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위) 측 사람들을 만나 설득하기를 수차례. 베이징을 오가며 쓴 항공료와 접대비, 숙박비만 수천만원은 들었을 것이다. 항상 거의 될 듯하다가도 북한의 승인이 떨어지지 않아 애를 태우는 애물단지 프로젝트다. 곧 남북 교류가 재개되고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 북한의 초청장을 받아 우리 정부에 방북 신청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北주민에 ‘자유’ 알리고파” 내가 북한의 산에 가고싶어 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우리의 산이기 때문이다. 가보지 않은 산에 올라 산을 느끼고 오겠다는 것, 안 가본 곳을 내가 개척해야겠다는 욕심에서다. 산 정상에 깃발을 꽂거나 만세를 부르지도 않을 것이다. 산에 오르는 것 자체가 ‘자유’이고, 내가 북한의 산에 오름으로써 그 뜻이 북한의 주민들과 국제사회에 전달되었으면 한다. 몇년 전부터 이 프로젝트에 경비행기가 추가됐다. 남한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서해직항로를 통해 평양에 들어간 뒤, 북한의 산에 오르는 것이다. 비행 문제는 북한의 군부의 허락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에는 악조건이 추가된 셈이다. 그러나 내 비행기를 가지고 관제를 하면서 평양 순안공항에 내리는 것. 상상만 해도 신이 절로 난다. 남들이 가지 못한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이 내가 살아온 인생길이다. 하나원에서 만난 탈북 여성들에게 에베레스트산이나 남·북극을 등정했던 이야기를 들려주면 호기심을 갖고 눈을 반짝인다. 북한 주민들에게 여행의 자유가 없는 것은 얼마나 불쌍한 일인가. 북녘의 땅끝을 보고 예쁜 풍경을 마음에 담아 오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정리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약력 ▲57세 ▲드림앤어드벤처 대표 ▲서울~제주 초경량비행기 단독 비행 ▲아시아 에베레스트·남아메리카 아콩카과·북아메리카 매킨리·아프리카 킬리만자로·유럽 엘브르즈·남극 매시프·오세아니아 카스텐즈 등 7대륙 최고봉과 남·북극 최초 등정
  • 이승만 박사, 건국의 아버지? “이미지 전쟁 통한 역사 선전”

    이승만 박사, 건국의 아버지? “이미지 전쟁 통한 역사 선전”

    “민족의 영원한 지도자이시요, 세기의 영도자이신 국부”, “그의 생일에는 3군 분열식이 거행되는 등 국경일보다 더 성대했고, 학생들은 그를 찬양하는 글짓기를 해야 했다.”, “그가 출마하지 않겠다는 유시를 내리자 노총에서는 소와 말까지도 그의 출마를 원한다는 이른바 우의마의(牛意馬意) 소동을 벌였다.” 이처럼 낯 간지러운 호칭을 듣고, 말도 안 되는 소동을 벌인 나라의 지도자는 대체 누굴까. 김일성? 카다피? 아니면 미래의 김정은? 답은 ‘이승만’이다. 1956년 서울 남산에 세워진 그의 동상은 당시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그의 호 우남을 따서 우남정, 우남공원, 우남도서관 등이 들어선 데 이어 1955년엔 서울시를 우남시로 바꾸려고도 했다. 무산되지 않았다면 한국판 스탈린그라드, 한국판 김일성대학이 탄생할 뻔했다. 계간지 ‘역사비평’ 가을호에 실린 서중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의 논문 ‘이승만과 3·15 부정선거’에 담긴 내용이다. 서 교수는 왜 고(故) 이승만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를 심은 사람이 아니라 민주주의 그 자체를 파괴한 사람인지 조목조목 지적한다. ‘그래도 이승만은 박정희와 달리 선선히 물러나지 않았느냐.’는 옹호론에 대해서도 반박한다. 이 전 대통령은 ▲고 박정희 대통령과 달리 공수특전단 같은 직속 진압부대가 없었고 ▲군 지휘도 간접적이었던 데다 ▲차지철(박 대통령 재임 당시 경호실장)과 달리 ‘2인자’ 이기붕이 뇌중추마비로 나약했으며 ▲본인 자신도 85세로 고령이었기 때문에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최근 이 전 대통령을 ‘건국의 아버지’로 추어올리며 ‘역사 전쟁’을 시도하는 세력에 대한 통렬한 십자포화다. ‘역사문화’ 개념으로 현 상황을 분석한 이동기 서울대 평화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의 ‘현대사 박물관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글은 더 주목할 만하다. 이 교수가 보기에 역사 전쟁의 성패는 역사적 사실이 쥐고 있는 게 아니다. 현 정권이나 뉴라이트 진영의 관심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역사문화의 헤게모니 장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학문적 역사서술이나 논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역사교과서 문제, 역사기념일과 기념관, 박물관과 전시회, 신문과 방송을 통한 역사 선전에 집중한다.”고 이 교수는 지적한다. 일종의 변칙공격인 셈이다. ‘사실’보다 ‘이미지’ 전쟁이란 얘기다. 그렇다면 이미지 전쟁이란 무엇인가.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은폐, 왜곡하거나 비판적 역사의식을 억압하는 것”과는 다르다. 오히려 “그들 나름의 새로운 서사와 종합적 거시 역사관을 끌어들여 희생, 억압, 저항을 주변화하거나 의의를 축소 혹은 상대화하는 것”이자 “기괴한 개념과 플롯으로 구성된 메타역사(Meta-History)를 그려놓고 불편한 역사적 사실들을 탈맥락화하면서 역사비판을 교란시키고 무화시키는” 작업이다. ‘성공의 역사’라는 키워드에 맞지 않으면 무시해 버리고, 연관이 있다 싶으면 ‘이게 다 그분 덕’이라고 칭송하는 방식이다. 이 교수는 비교사례로 독일 역사박물관을 든다. 통일 뒤 독일은 1994년 본에 ‘독일연방공화국 역사의집’을, 2006년 베를린에 ‘독일역사박물관’을 열었다. 둘 다 첫 논의는 1983년 시작됐다. 제안자는 16년간(1982~1998년) 총리를 지낸 보수주의자 헬무트 콜. 배경엔 역사적 정통성이란 측면에서 동독과의 경쟁이 깔려 있었다. 그의 제안 연설에는 독일민족의 ‘위대함’, ‘발전’, ‘성공’ 같은 단어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곧 역풍을 맞았다. “학문적으로 ‘성공한 역사’라는 개념은 성립할 수 없다.”, “권력정치적 해석에 기초한 역사박물관은 왕조시대 ‘궁정박물관’으로 전락할 것이다.” 등 정치·역사학계의 비판이 쏟아졌다. 결국 10~20년에 걸친 대대적인 논쟁과 수정작업 끝에야 각각 문을 열 수 있었다. 이 교수는 “콜 총리를 비롯해 박물관 건립을 추진한 이들은 자의식이 강한 고루한 우파였지만 비판의견들을 수용했다. 어쨌든 그들은 ‘민주주의적’인 보수주의자들이었다.”고 평가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보수주의자들은? 현 정권이 추진하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대해 이 교수가 “극우파 보수세력의 정신적 위안소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냉전시대의 북한 알아야 제대로 된 대북정책 가능”

    “냉전시대의 북한 알아야 제대로 된 대북정책 가능”

    “냉전시대의 북한사를 이해해야 현재의 대북정책도 옳게 세울 수 있습니다.”  러시아가 1963년 남한과의 수교 가능성을 논의했던 정황히 담긴 외교문건을 발굴한 제임스 퍼슨 우드로윌슨센터 연구원은 4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사 연구는 죽은 역사 연구가 아니다.”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다음은 퍼슨 연구원과의 일문일답. ‘북한 기밀문서 발굴·연구사업’(NKIDP)은 어떻게 시작됐나.  -우리 연구소는 20년 전부터 ‘냉전 국제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러시아와 체코, 폴란드, 동독, 루마니아 등 옛 공산권 국가의 문서보관소의 외교 문건들을 통해 냉전 시대에 대해 ‘반대편’으로부터 배우자는 취지다. 특히, 북한과 소련 등의 관계를 연구하면 북한의 내·외무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한국의 경남대와 함께 북한의 외교관계, 경제 발전, 핵프로그램의 기원 등에 대한 광범위한 문건을 수집 중이다. NKIDP 연구를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나.  -북한과 소련 등의 관계 연구를 통해 북한의 냉전사를 알아볼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연구를 통해 당시 북한 정책을 이해하고 현재의 대북정책을 제대로 세울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예컨대 김일성 북한 주석은 에리히 호네커 전 동독 공산당 서기장과의 대화에서 “중국이 북한의 국내 문제에 자꾸 간섭하고 끼어들어 걱정된다.”고 솔직히 표현한 적이 있다. 이 정보는 현재 정책을 세울 때 매우 유용하다. 미국 정계 등의 많은 전문가가 ‘중국이 대북 영향력을 더해가고 있으니 중국이 북한을 설득해야한다.’고 기대한다. 하지만 북한은 중국이 이미 이같은 시도를 한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문건이 수집됐나.  -가장 최근에 집계했을 때 6만 페이지 분량을 가지고 있었다. 시기적으로 1945년부터 1993년까지의 문건이 수집 대상이다. 그러나 (영어로) 번역을 끝낸 것은 2~3%에 불과하다. 연구에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연구 비용 문제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이 많은 1990년대 초부터 많은 지원을 해줘 관련 연구 기반이 조성됐으나 해석해야할 문서가 워낙 많다. 그동안 NKIDP 사업을 통해 밝혀진 대표적 역사적 사실은.  -매우 많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2년 10월 유신체제로 넘어가기 전 미국에 앞서 박성철 북한 제2부수상에게 이 계획을 알렸던 사실을 공개한 것이 대표적이다. 박성철은 1972년 5월 서울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비공식 면담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냉전시대의 북한 알아야 제대로 된 대북정책 가능”

    “냉전시대의 북한 알아야 제대로 된 대북정책 가능”

    “냉전시대 북한사를 이해해야 현재의 대북정책도 옳게 세울 수 있습니다.” 러시아가 1963년 남한과의 수교 가능성을 논의했던 정황이 담긴 외교문건을 발굴한 제임스 퍼슨 우드로윌슨센터 연구원은 4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사 연구는 죽은 역사 연구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북한 기밀문서 발굴·연구사업’(NKIDP)은 어떻게 시작됐나. -20년 전부터 ‘냉전 국제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러시아와 체코, 폴란드, 동독, 루마니아 등 옛 공산권 국가의 문서보관소 외교 문건들을 통해 냉전 시대에 대해 ‘반대편’으로부터 배우자는 취지다. 경남대와 함께 북한의 외교관계, 경제 발전, 핵프로그램의 기원 등에 대한 광범위한 문건을 수집 중이다. →NKIDP 연구의 성과는. -북한과 소련 등의 관계 연구를 통해 북한의 냉전사를 알아볼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당시 북한 정책을 이해하고 현재의 대북정책을 제대로 세울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예컨대 김일성 북한 주석은 에리히 호네커 전 동독 공산당 서기장과의 대화에서 “중국이 북한 국내 문제에 자꾸 간섭해 걱정된다.”고 표현한 적이 있다. 현재 많은 전문가가 중국을 이용해 북한을 설득하자고 하는데 북한은 중국이 이미 이 같은 시도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까지 수집한 문건 규모는. -약 6만쪽가량 된다. 그러나 (영어로) 번역을 끝낸 것은 2~3%에 불과하다. →연구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연구 비용 문제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이 1990년대 초부터 많은 지원을 해줘 관련 연구 기반이 조성됐으나 해석해야 할 문서가 워낙 많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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