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김일성
    2026-01-20
    검색기록 지우기
  • 곤지암
    2026-01-20
    검색기록 지우기
  • 김학의
    2026-01-20
    검색기록 지우기
  • 알루미늄
    2026-01-20
    검색기록 지우기
  • 김병철
    2026-01-2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9,282
  • 김정일도 ‘대원수’… 北 우상화 속도전

    북한이 김일성 주석에 이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대원수’로 추대했다.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중앙군사위원회와 국방위원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14일 공동 명의의 ‘결정’을 통해 김 위원장에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원수 칭호를 부여하기로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5일 전했다. 1992년 원수에 올랐던 김 위원장은 사후 70회 생일을 앞두고 김 주석과 함께 북한 최고의 명예 계급 칭호를 갖게 됐다. 김 주석은 1992년 4월 80회 생일을 앞두고 당 중앙위 등 주요 기관의 공동 명의로 대원수에 추대됐었다. 대원수 추대는 미국 18대 대통령이 된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과 옛 소련 연방의 조셉 스탈린 수상 등 몇 명일 뿐 역사적으로 흔치 않다. 김 위원장의 대원수 추대는 김 주석과 같은 반열에서 그를 우상화하려는 조치로 보인다. 당 중앙위·중앙군사위와 국방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는 “김정일 동지는 자립적인 국방공업을 최첨단 수준으로 강화·발전시키고 우리나라를 핵 보유국, 인공지구위성 제작 및 발사국의 지위에 올려 세우며 조국과 민족의 자주권과 안전, 인민의 행복을 대대손손 믿음직하게 보장할 수 있는 강력한 담보를 마련했다.”고 업적을 기술했다. 당 중앙군사위와 국방위는 이날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최고사령관 명령으로 장성급 23명에 대한 승진 인사를 단행했다고 밝혔다. 군 인사에서는 김 부위원장의 군부 측근으로 꼽히는 김정각 인민군 총정치국 1부국장이 차수로 승급했다. 2002년 대장에 오른 지 10년 만에 차수가 되면서 ‘김정은 체제’의 군부 핵심 실세로 위상을 다졌다. 아울러 김영철 정찰총국장과 박도춘 당 비서가 대장으로 승진했고, 주규창 당 기계공업부장과 백세봉 제2경제위원장, 김송철 중장이 상장 계급을 달았다. 김명식 동해함대사령관 등 18명은 중장으로 승진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넷째 부인 김옥에 ‘김정일훈장’

    넷째 부인 김옥에 ‘김정일훈장’

    북한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후 70회 생일인 광명성절(16일)을 맞아 당·정·군 핵심 실세들에게 ‘김정일훈장’을 수여한다. 수훈자 132명 중에는 김 위원장의 넷째 부인인 김옥 국방위 과장이 포함됐다.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14일 각계 인사 132명에게 김정일훈장을 수여키로 했다고 밝혔다.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수훈자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상황에서 2인자 격인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과 김경희 노동당 경공업부장 부부가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남편 사후 제정된 훈장을 받는 김옥의 실명이 북한 매체를 통해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김옥의 아버지인 김효 당 재정경리부 부부장도 훈장을 받아 부녀 수훈자가 됐다. 김 부위원장의 군부 측근으로 꼽히는 김정각 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 김원홍 군 총정치국 부국장, 김명국·박재경 대장도 훈장 수여자에 포함됐다. 수훈자 명단에 우리의 장관 격인 내각 부처의 상들이 선정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김정일훈장 명단에 오른 이들이 ‘김정은 시대’를 이끄는 실세로 평가된다. 김 위원장도 1972년 김일성 주석 60회 생일을 앞두고 제정된 김일성훈장을 1979년 받은 바 있다. 김 위원장의 장남인 김정남과 김정은의 친형인 김정철은 배제됐다. 이번 김정일훈장의 수훈자 면면을 보면 ‘김정은 체제’가 당과 군 핵심을 기반으로 안착됐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또 북한의 ‘핵개발 대부’로 불리는 서상국 김일성종합대 교수가 포함된 것은 북한이 핵개발 의지를 표출한 것으로 풀이된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정부, 상시적 대화채널 재구축 의지

    정부가 14일 북측에 남북 적십자 실무접촉을 전격 제의한 것은 비군사적 분야부터 상시적 대화 채널을 재구축하려는 전략적 의지로 풀이된다. 류우익 통일부 장관이 신년 업무보고에서 밝힌 남북 간 대화채널 구축을 통해 상호 현안을 논의하는 ‘포괄적 대화 제의’ 구상의 연장선인 셈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후 북한과 미국의 첫 고위급대화가 오는 23일로 예정된 시점에서 적십자 실무 접촉이 제의됐다는 점에서 한·미 간 조율이 있었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미국 역시 남북관계 개선을 북·미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강조하고 있는 만큼 상호 긍정적 대화 여건을 제공하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남북 양쪽의 정치 일정을 감안, 한반도에서 불필요한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을 미연에 예방하려는 포석으로도 보고 있다. 김 위원장 사후 첫 생일인 광명성절(16일)과 이달 말 시작되는 ‘키 리졸브’ 한·미 연합연습, 4·11 총선거, 김일성 주석의 100회 생일인 태양절(4월 15일) 등으로 이어지는 일정상 자칫 한반도 긴장이 고조될 수 있다는 판단이 담긴 것이다. 북측이 우리 측 제안을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북측은 신년부터 김 위원장 사망에 대한 우리 정부의 조문 태도를 문제 삼아 “남측 당국과 상종하지 않는다.”며 통민봉관(通民封官) 기조를 강조하고 있다. 최근 고구려 고분군 병충해 방제 지원을 위한 우리 정부의 실무접촉 제의도 아직 응답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이날 실무접촉 제의 내용을 담은 전통문도 수령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가 이산가족 상봉을 매개로 북한에 대한 ‘통 큰’ 지원에 나설 수 있어 북측의 수용 가능성도 적지 않다. 정부는 이날 전통문에 이산가족 상봉뿐 아니라 인도적 지원 협의도 함께 제안했다. 정부도 북측의 식량 사정을 감안해 5만~10만t 규모의 쌀 및 옥수수 지원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북측이 2009~2010년 이뤄진 적십자 실무접촉에서도 대규모 식량 지원을 요청했지만 연평도 포격 도발로 논의가 중단됐다.”며 “10만t 미만의 식량 지원을 협의할 수 있지만 비료는 인도적 지원 물품에 해당되지 않아 제외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 적십자 실무접촉을 통해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면 현안별로 당국 간 회담도 진행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北 주민·국경통제 완화…金 사후 첫 생일 분주

    북한 당국이 최근 북·중 국경 및 주민 통제를 대폭 완화한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후 첫 생일인 2월 16일 ‘광명성절’을 앞두고 주민 불만을 해소하려는 체제 안정용 조치라는 분석과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의 후계 체제가 내부적으로 안착된 데 따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12일 대북소식통 등에 따르면 김 위원장 사망 후 1월 초까지 접경지대 통행을 엄중히 제한했던 북한 당국이 통행증 발급을 신속하게 내주면서 주민 이동이 활발해지고 있다는 관측이다. 중국을 넘나드는 보따리상도 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한 주민 강모(41·여)씨는 연합뉴스에 “최근 일련의 통제완화 조치는 김정은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지방 간부들은 ‘김(정은) 대장이 덩샤오핑처럼 개혁·개방할 수도 있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달 초에 단행된 대사면 조치에 한국행 탈북을 시도했던 ‘월경자’가 포함됐다는 소문도 파다하게 퍼지고 있다. 북한 당국의 주민 통제가 유화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정황이다. 내부적으로는 첫 광명성절을 맞아 새로운 권력인 ‘김정은 체제’를 공고히 하는 국가적 기념일로 분주하다. 지난 10일부터 평양에서 ‘백두산상’ 체육경기대회가 개막됐고 광명성절 기념우표 발행, 11일 인민문화궁전에서는 김 위원장의 활동상을 담은 기록영화가 상영됐다. 조선농업근로자동맹, 조선여성동맹과 조선직업총동맹,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등이 7~10일 각각 최고지도자 영도에 따를 것을 다짐하는 결의모임도 잇따라 개최했다. 이는 그동안의 어두운 추모분위기를 벗고 김일성 주석 100회 생일인 4월 15일 태양절까지 강성대국 축제 분위기를 띄우려는 의도로 읽혀진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대북소식통으로부터 김정은이 경제정책 개혁을 시도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며 “김 주석 100회 생일 행사가 끝나면 개방의 폭을 넓히는 조치들이 취해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온다.”고 전망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남북대화 4월 중순쯤 재개 가능”

    류우익 통일부 장관은 10일 “남북대화가 재개되려면 4월 중순은 돼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류 장관은 이날 개성공단을 방문하고 돌아온 여야 의원들과 서울 여의도 모 음식점에서 만찬을 하면서 이같이 전망했다고 복수의 참석자들이 전했다. 한 참석자는 “북측이 이명박 정부와 무조건 대화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아직 김정은 후계체제가 안착되지 않아 결정을 유보하고 있다는 것이 류 장관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류 장관의 이런 전망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100일 탈상(脫喪)쯤이면 북한도 남북대화의 명분이 어느 정도 생길 것이라는 관측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남북한 양측의 주요 행사가 마무리되는 4월 중순 이후에나 남북 간 대화에 본격적인 물꼬가 트이지 않겠느냐는 예상과도 맥을 같이하고 있다. 4월에는 남한에서는 4·11 총선이, 북한에서는 김일성 주석 탄생(4월 15일) 100주년 기념식이 각각 예정돼 있다. 류 장관은 여야 의원들이 전한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의 요구사항에 대해 “적극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내주 발표할 것으로 예상되는 정부의 개성공단 활성화 방안에는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신규투자를 돕기 위한 설비 반출 및 건축허가 신속화 ▲개성공단 입주기업에 대한 금융지원 ▲남한 체류 근로자를 위한 여가·체육·편의시설 설치 등이 포함될 것으로 전해졌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열린세상] 김정일 위원장은 어떤 북한을 물려주고자 했을까/임강택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열린세상] 김정일 위원장은 어떤 북한을 물려주고자 했을까/임강택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오는 16일은 사망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70번째 생일이다. 북한은 이를 계기로 김 위원장의 신격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1월 12일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은 김 위원장의 생일을 ‘광명성절’로 제정하였으며, 동상과 영생탑을 건립하기로 하였고, 뒤이어 ‘김정일훈장’과 ‘김정일상’을 제정한다고 발표하였다. 이를 통해서 3대 세습의 정통성을 강조하고 김정은 체제의 권력기반을 강화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과연 당사자인 김 위원장은 하늘 위에서 흐뭇한 마음으로 지금의 상황을 바라보고 있을까? 그가 아들에게 물려준 북한은 어떤 상황인가? 2008년 뇌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자신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은 김 위원장은 후계체제 구축작업을 서두르기 시작하였다. 안정적이고 탄탄한 통치기반을 마련해 주고자 한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고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서 군사·안보 측면에서 위협요소를 제거하고자 하였으며, 여러 차례 중국을 방문해 양국 관계를 회복함으로써 외교·경제적인 지지 기반을 확보하려고 했다. 또 내부적으로는 망가진 계획경제의 생산활동을 회생시키려고 했다. 한마디로 말하면 소위 ‘강성대국’을 물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북한에서 ‘강성대국’이란 “국력이 강하고 모든 것이 흥하며 인민들이 세상에 부러움 없이 사는 강국”이라고 정의된다. 북한은 ‘고난의 행군’이 한창이던 1998년 노동신문을 통해서 처음으로 ‘강성대국’이라는 정치적 구호를 제시하였다. 이후 2007년 말 김일성 주석의 생일(태양절) 100돌이 되는 2012년을 ‘강성대국에 진입하는 해’로 제시하고,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정한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해 왔다. 경제분야를 보면 김 위원장은 자신의 아들에게 ‘보다 안정되고, 발전한 경제’를 물려주려고 한 것으로, 이것은 주로 네 가지 영역에 집중된 것으로 분석된다. 첫째, 공식부문 생산활동의 정상화, 둘째는 국가재정능력의 확충, 셋째로 지속가능한 발전모델의 마련, 마지막으로 주민생활의 수준 향상 등이 그것이다. 공식부문 생산활동의 정상화를 위해 북한은 최근 수년 동안 4대 선행부문(전력·석탄·금속·철도수송)에 대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왔으며,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도 이 분야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가재정능력의 확충은 크게 두 방향에서 추진되었다. 하나는 정부의 재정조달능력을 강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 화폐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북한은 이를 위해 화폐개혁을 단행하여 정부의 발권력을 확보하였으며, 최근에는 외환거래를 금지시킨 바 있다. 지속가능한 발전모델의 마련은 대외무역구조와 산업구조의 개선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제한된 지역을 경제특구라는 이름으로 개방하거나, 투자 여건을 개선함으로써 외자 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CNC로 대표되는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한 산업구조의 고도화를 지향하고 있다. 북한은 이를 ‘지식경제강국’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주민생활의 수준 향상은 고난의 행군 이후 당국의 물자 배급이 중단되면서 이반된 주민들의 민심을 잡아야 한다는 절박감에서 출발하고 있다. 북한은 주민생활 향상에 경제정책의 우선권을 두면서 경공업제품의 증산과 질 제고, 식량 공급의 증대 및 전력문제의 해결 등을 강조해 왔다. 김 위원장 사망 이후 북한은 유훈을 내세워 경제강국 건설을 독려하고 있다. 이 중에서 평양시 살림집 10만호 건설사업은 가장 상징적인 사업이라고 할 수 있으며, 주민들의 호응을 이끌어 낸다는 측면에서는 식량문제 개선에 집중하고 있다. 중단된 식량 공급을 재개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경제강국 진입’을 선포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를 김 위원장의 유훈이자 치적으로 선전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중장기적으로 김정은 체제에 긍정적으로 작용할지, 아니면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주민들의 기대감만 높여 놓고 구체적인 성과를 제시하지 못할 경우 역풍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 “김정은 리더십 과시용 핵실험 가능성”

    북한 김정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리더십을 입증하기 위해 추가 핵실험을 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은 8일(현지시간)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북한 보고서에서 “김정은이 자신의 짧은 경력 때문에 기존 엘리트계층에 더 기댈 가능성이 있으며, 이럴 경우 북한 정권이 군사공격과 같은 도발에 나설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고 밝혔다. 특히 보고서는 “김정은이 강력한 군사력을 동원해 자신의 강경노선을 증명하려 한다면 추가 핵실험을 할 가능성도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김정은이 젊고 유럽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경제·정치 개혁과 국제사회에 개방적일 수 있다.”고도 했다. 또 북한은 오는 4월 김일성 주석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외국의 원조를 원하고 있기 때문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추도기간이 끝나면 북·미 대화와 남북 대화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北 노골적 通民封官, 南 통일외교 맞대응

    류우익 통일부 장관이 요즘 사석에서 답답한 심경을 종종 토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9월 장관으로 취임한 뒤 북한을 포용하기 위해 대북 유연화 조치를 시도하고 있지만 남북관계 경색이 풀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부 내에서는 류 장관이 지난해 말 당국 간 대화를 제의하려고 했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유연성을 통한 남북관계 실질적 진전’이라는 그의 구상이 실기(失期)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남한 정부를 배제하고 민간단체하고만 교류하는 북측의 ‘통민봉관’(通民封官) 공세는 노골화되고 있다. 북한은 9일 우리 정부가 제안한 고구려 고분군 일대의 산림 병충해 방제를 위한 남북 당국 간 실무접촉을 사실상 거부했다. 대남 선전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는 “이명박 패당은 가장 초보적인 예의조차 무시한 천하의 패륜패덕 행위를 저질러 북남관계 개선을 말할 자격을 영영 상실했다.”고 비난했다. ●“관계개선 말할 자격 없다” 이는 통일부가 지난 7일 고구려 고분군 일대의 산림 병충해 방제를 위한 남북 당국 간 실무 접촉을 거부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가 김 위원장 사망 후 처음으로 제의한 당국 간 회담마저 북측은 “남측 당국과 상종하지 않겠다.”는 공언대로 외면한 것이다. 북측은 그러나 민간단체인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가 제안한 중국 선양에서의 실무 접촉은 진행했다. 남측위 인사들은 이날 선양 칠보산호텔에서 북측위 김령성 위원장과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측의 통민봉관 기조가 재확인되면서 남북 교착 국면도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양측의 정치 일정만 봐도 당장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북측은 김 위원장 70회 생일인 광명성절(2월 16일)과 김일성 주석 100회 생일(4월 15일)을 위한 내부 통제에 골몰하고 있고, 남측은 한·미 키 리졸브 연합훈련(2월 27일~3월 9일), 핵안보정상회의(3월 26~27일), 4·11 총선 등 정치 일정이 예정돼 있다. ●국제사회 상대 외곽 다지기 남북 경색이 지속되면서 류 장관은 일단 국제사회를 상대로 한 ‘통일외교’를 통해 외곽을 다지려는 모습이다. 류 장관은 이달 말 독일과 벨기에 유럽연합(EU) 본부를 방문, 남북관계와 통일에 대해 유럽 국가들과 의견을 나눌 예정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독일과는 통일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주북한 대사나 남북 겸임대사를 두고 있는 EU 회원국들에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협력과 지지를 요청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독일과 러시아에 통일부 주재관(통일관)을 신설해 8월쯤 파견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김미경·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北 ‘20대 지도자’ 띄우기 총력

    北 ‘20대 지도자’ 띄우기 총력

    북한이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의 최대 약점으로 꼽히는 ‘20대 어린 지도자’ 시각을 극복하기 위해 선전을 강화하고 있다. 7일 통일부에 따르면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 등 북한 매체는 고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우상화 선전을 통해 김 부위원장의 ‘어린 나이’에 대한 북 주민의 우려를 불식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노동신문은 지난달 25일에는 김 부위원장을 ‘민족의 어버이’로 호칭했다. 김 부위원장의 실제 출생 연도는 1983년 또는 1984년으로 알려져 있다. 노동신문은 지난달 28일 ‘조선의 태양은 영원하다’는 제목의 정론을 통해 “우리의 최고영도자, 최고사령관 동지께서는 젊으시다.”며 “김일성조선을 더욱 빛내이실 젊으신 위대한 영도자를 받들어 모신 것은 우리 민족의 더없는 행운이고 영광”이라고 김 부위원장을 찬양했다. 아울러 김 주석이 15세에 독립운동을, 20대에 항일유격대를 창건했고, 김 위원장도 10대에 ‘선군혁명영도’에 나섰다고 강조했다. 김 부위원장도 10대에 비범한 정치적 식견을 보이며 인공위성과 핵실험을 진두지휘했다고 선전했다. 최고지도자 가계인 김씨 일가가 모두 10대 때부터 지도자로 나선 만큼 나이는 약점이 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셈이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지난 6일 ‘인민에게 희망 안기는 젊은 영도자’라는 글에서 “조선에서 영도자의 젊음은 불안 요소가 아니라 안심감의 근거”라고 강조했다. 물론 이는 북한 내부에서도 나이 어린 최고지도자에 대한 우려와 불안감이 적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한편 김정은 최고지도자의 1인 체제 수립을 위한 권력승계가 사실상 완료됐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이날 경실련 통일협회 좌담회에서 “김정일 사망 후 북 지도부가 김 부위원장의 유일적 영도 체계 출범을 확정했고, 당 총비서직을 수행해 사실상의 권력 승계는 이미 끝났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 부위원장의 후계자 내정 시점은 북한 대외비 문건과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의 발언 등을 고려할 때 2007년 1월로 보는 게 타당하다.”며 “김정일 급서 1년여 전인 2010년 7월에 이미 김 부위원장이 부친의 영향력을 능가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북한군은 내부 문건인 ‘존경하는 김정은 대장 동지의 위대성 교양자료’를 통해 “2006년 12월 24일 주체의 선군혁명위업을 이으실 것을 바라시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北 회담신사’ 김령성 다시 남북교류 전면에

    ‘北 회담신사’ 김령성 다시 남북교류 전면에

    과거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빼어난 말솜씨와 매너 있는 태도로 남측 협상단으로부터 ‘회담 신사’로 호평받은 김령성 전 장관급회담 북측 단장이 남북 교류의 전면에 다시 등장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달 31일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총회가 평양에서 열려 조직 문제를 논의했다며 김 전 단장이 위원장이라고 1일 전했다. 그동안 6·15공동선언실천 북측 위원장은 1990년대 초 열린 남북 고위급회담 북측 대표단의 대변인이었던 안경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이 맡아 왔다. 김 위원장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준비접촉 북측 단장을 지냈고 2001년 9월 제5차 회담부터 2004년 2월 제13차 회담까지 총 9회에 걸쳐 장관급회담 북측 단장으로 남측과 회담했다. 1944년생으로 김일성종합대학 출신인 그는 회담 때마다 사자성어를 제시하는 빼어난 언변과 노련한 협상력을 과시해 눈길을 끌었다. 당시 통일부 장관으로 김 위원장의 회담 파트너였던 정세현 원광대 총장은 “김 전 단장은 만찬 자리에서 시를 읊고 피아노 연주를 하는 등 북한에서는 드문 풍류가였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2004년 제13차 장관급회담을 끝으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비리에 연루돼 좌천됐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2009년에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서도 제외돼 재기가 어렵다는 예상이 나왔으나 김정은 체제가 들어서면서 북측 위원장으로 재발탁됐다. 김 위원장의 등장으로 냉랭한 남북관계에서 그의 역할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이 당장은 민간 교류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총회 연설에서 “6·15북남공동선언 발표 12돌과 10·4선언 발표 5돌을 맞으며 북·남·해외 공동행사를 성대히 개최하고 북남 계층별 단체 사이의 다양한 통일회합과 연대활동을 활발히 벌여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 올해 대남 민간교류에 적극 나설 뜻임을 시사했다. 우리 정부도 김 위원장의 등장을 반기며 민간 교류가 당국 간 대화로 이어지길 기대하는 분위기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日언론 “中, 北에 식량 50만t·원유 25만t 지원”

    중국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직후 북한에 식량 50만t과 원유 25만t의 대규모 지원을 결정했다고 일본 도쿄신문이 보도했다. 신문은 30일 복수의 중국·북한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전하고 김 위원장 사망 이후 북한에 대한 중국의 지원 내역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는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긴급 식량·원유 지원은 김 위원장의 사망 발표 하루 뒤인 지난달 20일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신문은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주재한 최고 지도부 회의에서 최종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소식통은 “북한에 대한 중국의 신속한 식량·원유 지원은 김 위원장의 후계자인 김정은 체제를 안정시키기 위한 조치”라고 분석했다. 식량지원은 고(故) 김일성 주석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4월까지 실시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北 ‘김정은 체제’ 한달 당·군·내각 장악한 듯

    北 ‘김정은 체제’ 한달 당·군·내각 장악한 듯

    최고지도자 ‘김정은(얼굴) 체제’가 30일로 개막 한달을 맞았다.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달 30일 당 정치국 추대로 군 최고사령관에 오르며 외견상 당·군·내각의 권력을 장악한 것으로 평가된다. 김 부위원장은 최고사령관 추대 후 선군통치로 대표되는 부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을 앞세워 ‘군심’(軍心)을 잡는 데 잰걸음이다. 김 부위원장이 최고사령관 추대 이틀 만인 새해 첫날부터 ‘근위서울 류경수 제105탱크사단’를 시찰하고 최고지도자 등극 한달여 동안 군부대만 6차례 시찰한 것도 군을 통치 기반으로 삼으려는 의도다. 북 주민들에게 인지도가 낮다는 김 부위원장의 약점에 대한 극복은 우상화 강화로 나타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이 최근 김 부위원장에 대해 ‘어버이’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고, 그에 대한 기록영화를 대대적으로 방영하며 충성을 유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김 부위원장이 현장지도에서 군 장병과 팔장을 끼고 학생들의 손을 잡는 등 스킨십에 나서는 건 과거 김일성 주석의 통치술을 활용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국제 무대에서도 김 부위원장은 북한 최고지도자로 공식 등장했다. 조선중앙방송은 28일 김 부위원장이 부친 사망에 조전을 보낸 각국 수반들에게 답전을 발송해 깊은 사의를 표시했다고 보도했다. 김 부위원장이 자신의 이름으로 외국 정상에게 공개적 메시지를 보낸 것은 처음이다. 북한 권력 지도에도 변화가 포착되고 있다. 노동신문이 김 부위원장의 현지지도 보도에서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동행자 1순위에 올리는 등 그동안 ‘곁가지’로 취급되던 장 부위원장이 2인자가 됐다는 게 중론이다. 또 군부 내 원로그룹이 물러서고 김명국 군 총참모부 작전국장, 김원홍 총정치국 조직담당 부국장, 리두성 중장 등 신진 세력이 김정은 시대에 중용되고 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왕재산 사건 피고인 진술 거부…사상교육 前 범민련 간부 기소

    반국가단체로 알려진 간첩단 ‘왕재산’ 재판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들이 검찰 신문에 대해 포괄적으로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다. 또 변호인의 반대 신문도 포기했다. 2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부장 염기창)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왕재산 총책으로 알려진 피고인 김모(49)씨 등 3명은 “1993년 일본에 있던 A씨를 북한에 보내 김일성으로부터 ‘관모봉’이라는 대호명을 받아오지 않았느냐.”, “관모봉이 받아온 김일성 접견교시와 함께 일본제 세이코 시계도 받지 않았느냐.”라고 묻는 검사의 신문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관모봉은 김씨 등과 함께 1990년대 초 왕재산의 전신 격인 조직에서 활동하다 북한에 다녀온 뒤 환멸을 느끼고 조직을 탈퇴했으며 일본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최근 국내 대학으로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26일 결심을 열어 나머지 피고인 2명에 대한 신문절차를 마무리한 뒤 검찰 구형과 변호인 최종변론, 피고인 최후진술을 들을 예정이다. 한편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이상호)는 이날 2006년 왕재산에 가입, 조직원들의 사상학습을 이끄는 등 이적활동을 벌인 전 범민련 남측본부 집행위원장 이모(48)씨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강원 철원 한탄강 얼음 트레킹

    강원 철원 한탄강 얼음 트레킹

    용암이 식으며 만든 주상절리 협곡 앞에 서보셨는지요. 혹은 물과 시간이 조탁한 화강암 절벽에 손을 대본 경험은 있으신가요. 빼어난 풍경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기란 쉽지 않지요. 예컨대 강원도 철원의 한탄강이 그렇습니다. 강 양쪽에 멋들어진 협곡이 줄곧 이어지지만, 강물 탓에 멀리서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겨울은 놀라운 선물을 선사합니다. 얼음입니다. 매섭도록 차가운 겨울이 강물을 꽁꽁 얼리고, 좀체 다가갈 수 없었던 풍경 속으로 다리가 놓여집니다. ‘추가령구조곡’이라 불리는 한탄강 협곡은 그제야 스스로의 나신을 아낌없이 사람들에게 드러냅니다. 그 기간은 길어야 1개월 남짓. 스릴 넘치는 ‘한탄강 얼음 트레킹’ 또한 그 기간에만 가능하지요. ●강물을 거슬러 오르다 출발 전 발목과 다리, 그리고 허리 스트레칭으로 꼼꼼하게 몸을 푼다.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출발지는 장흥리 대교천 협곡이다. 동호회 중심으로 이뤄지는 얼음 트레킹이 직탕폭포에서 시작해 한탄강을 따라 곧장 순담계곡까지 가는, 혹은 그 반대인 것과 대비된다. 정경해 DMZ철원평화관광 대표는 “대교천은 북한 오리산에서 분출된 용암이 맨처음 흘러간 곳”이라며 “한탄강의 이름값에 가려 있지만, 실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곳은 대교천 협곡”이라고 강조했다. 대교천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온전히 얼음 트레킹을 즐긴 게 아니란 뜻이다. 안내판은 ‘대교천 현무암 협곡’을 천연기념물 436호라 적고 있다. 협곡 초입의 현무암 주상절리 절벽들이 눈길을 끈다. 여러 차례 철원을 찾았지만, 한 번도 보지 못한 장면이다. 한여름, 무성한 나뭇잎에 가려졌을 현무암 주상절리들의 자태가 또렷하다. 강폭은 25~40m, 높이는 30m쯤 된다. 협곡 건너편은 경기 포천 관인면이다. 이런 이유로 포천에서는 대교천 협곡을 관내 ‘한탄강 8경’ 가운데 제 1경으로 올려놓기도 했다. 얼음 트레킹을 안전하게 즐기려면, 신경 써야 할 게 많다. 먼저 숨구멍이다. 물이 어는 과정에서 부피가 커지며 봉긋하게 솟아오른다. 숨구멍과 만났을 땐 우회하는 게 좋다. 여울 지대도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얼지 않은 곳이 많기 때문. 대부분 가이드가 안전하게 이끌긴 하지만, 개별 행동은 금물이다. 아이젠은 지참하되, 필요한 경우에만 착용하는 게 낫다. 얇게 눈이 덮여 미끄럽지 않은 데다, 바위를 오르내리려면 외려 불편할 때가 많다. 반면 등산 스틱은 필수품이다. ●수억년의 시간과 마주하다 검은 현무암들이 늘어선 대교천을 1.5㎞가량 걸어 내려가면 양합소다. 한탄강이 금강산에서 발원한 금성천 등과 합쳐진 뒤, 또한번 대교천과 몸을 섞는 곳이다. 이때부터 한탄강은 한껏 몸피를 키우기 시작한다. 도보꾼의 눈이 놀란 토끼눈처럼 커지고, 입에서 나지막한 탄성이 터져나오는 것도 바로 이쯤에서다. 대교천 너머로 근육질의 남성적인 풍경이 떠억하니 버티고 섰는데, 여간 장엄하지 않다. 너른 한탄강은 꽁꽁 얼어붙었고, 양안의 절벽들은 힘줄 튀어나온 거인의 팔뚝처럼 불끈 솟았다. 여기서부터 한탄강 중심을 따라 거꾸로 올라간다. 얕은 대교천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품이 넓은 강. 얼음 아래는 대략 5m 깊이의 물길이다.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오금이 저릴 지경이다. 눈이 덮여 아래가 안 보이는 게 차라리 다행이다. 종종걸음으로, 하지만 시선만은 주변 풍경에 고정시킨 채 가이드를 따라 걷는다. 목적지인 고석정에 이르는 동안 강 양쪽 절벽은 그야말로 천변만화의 풍경을 내어준다. 잉어바위와 거북바위, 선녀탕 등 명소들을 굴비 두름 엮듯 줄줄이 꿰고 있다. 여름철 래프팅을 즐기며 주‘주’간산(走舟看山) 했다고 만족하지 말길. 거북바위의 콧날을 만져보고, 선녀탕 안쪽까지 들어가 물의 침식을 받아 둥글둥글 해진 바위에 앉아 보는 건 이 계절만의 호사다. ●주상절리가 커튼처럼 둘러친 송대소 고석정에선 다시 뭍으로 올라온다. 고석정부터 승일교까지 얼지 않은 여울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이승만과 김일성의 가운데 글자를 따 이름 지어졌다는 승일교 아래에서 다시 얼음 트레킹이 시작된다. 목적지는 상류의 송대소다. 거리는 4㎞ 남짓. 송대소에서 더 위쪽의 직탕폭포까지 다녀오는 도보꾼들도 적지 않다. 작은 여울 위로 물새들이 ‘차르르~’ 소리를 내며 날아든다. 낭만적인 풍경이다. 이 코스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명소는 마당바위다. 일종의 너럭바위인데, 여인네의 허리께를 연상시키는 부드러운 곡선이 일품이다. 종종 바위 위에서 누드사진 촬영대회도 열린다니, 제대로 장소를 고른 셈이다. 마당바위에서 30분가량 거슬러 오르면 물소리가 굉음처럼 들리는 큰 여울에 닿는다. 송대소의 대문 역할을 하는 곳. 여울 주변은 온통 너덜들이다. 경남 밀양의 만어석(萬魚石) 너덜지대를 닮았다. 너덜지대 너머가 송대소다. 낭만적이던 풍경은 마지막 너덜을 넘자마자 묵직한 풍경으로 돌변한다. 거인들이 어깨를 맞댄 채 얼어붙은 땅에 무엇하러 왔느냐며 윽박지르는 듯하다. 토박이 가이드 박종선씨에 따르면 송대소의 수심은 가장 깊은 곳이 30m가량 된다. 강 가운데엔 강가의 절벽 크기와 견줄 만한 수중 절벽이 있다고 한다. 수심도 절벽을 기준으로 2단 구조를 이룬다. 박씨는 “어렸을 때 이곳에서 자주 수영을 즐겼는데, 상류에서 내려오다 수중 절벽 근처에 이르면 배에 닿는 물이 차게 느껴질 만큼 섬찟한 느낌이 들었다.”고 전했다. 송대소는 넓다. 무엇보다 주변을 커튼처럼 둘러친 주상절리 절벽들이 압권이다. 오로라에서 초록빛이 쏟아져 내리듯, 형광등 형태의 주상절리 기둥들이 아래로 쏟아져 내리고 있다. 송대소는 위에서 볼 때 새삼 크기와 깊이가 넓고 깊다는 걸 깨닫게 된다. 검푸른 얼음 위로 수백개의 발자국이 찍혀 있다. 그만큼 많은 도보꾼들이 알음알음 다녀갔다는 뜻. 하지만 입춘이 지나면 송대소 쪽 루트는 안전상 출입하지 않는 게 좋다. 박씨 또한 추위가 맹위를 떨치지 않는 이상, 입춘 이후 송대소 루트는 안내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니 꼭 봐야겠거들랑 부디 내년을 기약하시라. 글 사진 철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33) 가는 길: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동부간선도로나 43번 국도 의정부·포천방면→운천→신철원, 또는 올림픽대로→구리요금소→외곽순환고속도로→퇴계원·일동방면→43번 국도 포천·운천방면→신철원 순으로 간다. 민통선은 동절기(11∼2월) 09:30,10:30,13:00,14:00 4회 출입이 가능하다. 신분증은 반드시 지참할 것. 매주 화요일은 쉰다. 철새 탐조는 토교저수지, 평화전망대, 아이스크림고지, 철원두루미관 월정역사에서 할 수 있다. 철원군청 관광문화과 450-5365. 전적지관광사업소 450-5558. 얼음 트레킹: 안전을 위해 반드시 가이드와 동행해야 한다. DMZ철원평화관광에서 패키지 상품을 운용하고 있다. 한탄리버스파호텔 온천욕 포함 2만 7000원. 455-8275. 주변 볼거리: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이 일반에 개방됐다. 오래전 궁예와 왕건이 터를 잡았고, 일제 강점기엔 신사가, 군사정권 시절엔 이른바 ‘삼청대’가 세워졌던 사연 많은 산이다. 정상에서 서면 북한 평강고원과 오리산, 피의 능선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노동당사 맞은 편에 있다. 3월이면 철원 지역 일부 민통선 초소들이 현재 위치보다 더 북쪽으로 물러선다. 따라서 양지리나 토교·강산저수지 등 별도 절차를 거쳐야 출입할 수 있던 곳들도 아무 제재 없이 오갈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맛집:삼정콩마을두부집은 콩음식 전문점이다. 별미 콩비지 5000원, 두부전골(2인) 1만원. 고석정 인근에 있다. 455-9284. 폭포가든은 메기매운탕으로 유명하다. 직탕폭포 옆에 있다. 455-3546.
  • “황량했던 평양에 다시 생기가…”

    설을 맞은 북한의 표정을 전하는 AP통신의 평양발 기사가 지난 23일 송고됐다. AP통신은 ‘생기 넘치는 북한의 수도가 음력 설을 축하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설을 맞은 평양의 모습을 전했다. 지난 16일 평양에 종합지국을 개설한 이후 본격적으로 북한 소식을 전하는 신호탄이었다. 이 기사는 AP통신의 평양지국 취재 기자로 임명된 박원일 기자 명의로 작성됐다. AP통신은 이 기사를 통해 북한 주민들이 추위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을 추모하기 위해 23일 평양의 김일성광장에 대거 나왔다면서 새해를 맞아 형형색색의 꽃과 어린이들의 게임으로 북한 주민들이 설을 축하했다고 소개했다. 이 통신은 추모기간 이후 사라졌던 대형 김정일 초상화가 평양의 김일성광장에 다시 나왔고, 주민들이 줄을 서서 붉은 꽃을 바치며 김정일을 추모했다고 전했다. 또 지난 수주간 황량하고 어두침침했던 평양이 다시 여러 색으로 채워졌고, 많은 건물과 벽에는 ‘설’을 축하하는 포스터와 간판들이 내걸렸다고 보도했다. 평양 도심에 있는 보통문에는 새해를 축하하는 내용의 문구가 적힌 등이 걸렸고, 평양대극장 앞 광장에는 수백명의 어린이들이 나와 연을 날리고 전통놀이를 하며 추위를 녹였다고 전했다. 평양 주민들은 김정일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설 명절을 보통 때처럼 즐기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AP통신은 서방 언론사 중 최초로 지난 16일 평양에 종합지국을 개설했다. 한편 AP통신의 영상물만을 전문으로 송출하는 APTN은 이날 설을 맞은 평양의 모습을 담은 다양한 영상물도 송고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김정은, 先代 발자취 좇으며 ‘先軍통치’

    김정은, 先代 발자취 좇으며 ‘先軍통치’

    북한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새해 들어 두 번째 군부대 시찰에 나섰다. 지난 1일 ‘근위서울류경수 제105탱크사단’을 방문한 데 이은 시찰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인 ‘선군(先軍) 노선’을 이어 가려는 의지로 풀이된다. 조선중앙통신은 19일 김 부위원장이 ‘오중흡7연대’ 칭호를 받은 인민군 제169군부대를 시찰했다고 전했다. 김 부위원장의 군 시찰에는 이른바 ‘스토리텔링’ 기법이 활용되고 있다. 최고지도자가 된 뒤 처음 방문한 제105탱크사단부터 제169군부대까지 모두 선대(先代) 김일성 주석과 사연이 있는 부대이기 때문이다. 김 부위원장이 스토리가 있는 부대를 우선적으로 시찰하며 군심(軍心)을 얻기 위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오중흡은 북한군 최고 영웅 중 한명으로, 군부 강성파로 꼽히는 오극렬 국방위 부위원장의 5촌 당숙이다. 김일성 주석의 항일 빨치산 활동 때 일본 관동군에 쫓겨 위태롭던 김 주석의 목숨을 구하고 전사했다. 북한은 1990년대 중반부터 육해공 전군에 오중흡7연대 칭호 쟁취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고 주력 부대에 오중흡7연대 칭호를 하사했다. 김 위원장이 사망 직전인 지난해 12월 1일 직접 훈련을 지도한 것으로 알려진 부대도 오중흡7연대 칭호가 내려진 제630대연합부대다. 제105탱크사단을 지휘한 류경수도 북한군에서는 최고 영웅이다. 그는 6·25 전쟁 때 서울에 처음 입성해 중앙청에 인공기를 내건 전차부대를 지휘한 인물이다. 당시 탱크 번호 ‘105’와 지휘관 류경수, 김 주석이 전공을 직접 치하하는 의미의 ‘근위’를 조합해 북한군 중에서도 가장 화려한 부대명이 하사됐다. 김 위원장도 생전에 류경수 탱크사단을 거의 매년 방문했다. 특히 2010년에는 첫 방문지이자 그해 마지막 시찰 부대로 국내에도 알려졌다. 김 부위원장이 조부와 부친의 자취가 남아 있는 부대를 먼저 시찰하며 선군통치 행보를 강화하고 있다. 제169군부대 시찰에는 리영호 군 총참모장, 김원홍 군 총정치국 부국장, 김명국 작전국장, 박재경 대장 등 김정은 체제의 군부 실세들이 수행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北최고위급이 AP통신에 ‘경제개혁’ 첫 언급 까닭은

    북한 최고위급인 양형섭(86)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이 최근 김정은 체제에서의 경제 개혁을 처음으로 언급해 주목된다. 특히 북한에서 금기시된 ‘개혁·개방’이라는 용어를 최고위급이 외신과의 회견에서 사용한 점, 그리고 양 부위원장이 2000년 6·15 공동선언과 2007년 10·4 남북정상선언의 북측 중앙보고회 기념보고를 한 당사자라는 점에서 긍정적 메시지로 해석되고 있다. 양 부위원장은 지난 16일 평양에 종합지국을 두고 있는 미 AP통신과의 회견에서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지식기반 경제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중국을 포함해 여러 나라의 경제 개혁을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양 부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의 종매부로 북한 1세대 지도부 인사이며, 2007년 평양을 방문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영접하고 전송했었다. 양 부위원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을 이어받은 김 부위원장의 영도를 받아 안심하고 있다.”며 “김 부위원장은 수년 전부터 군사 정책뿐 아니라 경제를 비롯한 다방면에서 김 위원장을 지근에서 돕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의 발언은 최고지도자인 김 부위원장과 사전에 교감된 ‘의도적 발언’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전에 개혁·개방이라는 표현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 금기어가 된 상황에서 아무리 힘 있는 원로라도 이를 언급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김정은 체제’가 북한 내부에 안착했다는 점을 대외적으로 과시하고, 향후 경제적 지원을 위한 전략적 포석으로 해석된다. 통일부 당국자는 18일 “북한이 2002년 개혁·개방을 위해 ‘7·1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도입한 바 있고 그 연장선상에서 양 부위원장의 경제 개혁 언급이 나온 것으로 본다.”며 “북한이 시대의 흐름을 읽고 좋은 선택을 해야 하며 그런 의미에서 ‘긍정적 신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일 사망 한달 만에 개혁·개방이 언급된 건 김 부위원장의 지도력이 확고하다는 방증으로 보인다.”며 “북한이 내부적으로 전향적인 경제 정책을 검토하고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체제가 중국식 개혁·개방 노선을 지향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앞서 신년 공동사설을 통해 ‘지식기반 경제’를 언급한 바 있다. 김 부위원장의 대표적 업적으로 컴퓨터수치제어(CNC) 기술을 선전하고, 첨단 기술을 통한 지식경제 강국 건설을 새 경제 노선으로 내세웠다. 홍순직 한국경제연구원 통일경제센터장은 “김 부위원장이 첨단 정보기술(IT) 등에 관심이 많고 젊은 IT 지도자로 부각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며 “김정은 체제의 안정은 경제난 해소에 달린 만큼 개혁·개방의 속도를 내고 이를 최고지도자의 성과로 내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전교조부위원장등 4명 국보법 위반 압수수색

    국가정보원과 경찰청은 18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박미자(53) 수석부위원장과 인천지부 전·현직 간부 3명의 자택과 학교를 국가보안법상 찬양 고무죄와 이적표현물 제작·반포 혐의로 압수수색했다. 전교조에 따르면 국가정보원과 경찰청 보안국 수사관들이 오전 7시 30분쯤부터 박 수석부위원장과 백모(43) 전 전교조 인천지부 통일위원회 위원장 등 전·현직 간부 4명의 집과 학교 등에서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일기장 등 각종 문서, 휴대전화 등을 압수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김일성 회고록 등을 교재로 주체사상을 전파하고 학습한 정황이 발견됐다.”면서 “이들은 국가보안법 제7조 1항과 5항인 찬양 고무죄 등을 위반한 혐의”라고 말했다. 또 “국가정보원과 경찰이 2명씩 맡아 압수수색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초기 단계여서 구체적인 수사내용을 밝힐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전교조는 강하게 반발했다. 전교조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공안당국이 2003년 이후 진행된 남북교육자교육협력사업에서 전교조가 북측 인사를 만난 것에 혐의를 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학교폭력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교조가 교육은 등한시하고 친북 활동만 전개했다’는 논리로 진보진영을 통째로 훼손하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뉴차이나 시진핑 시대 사람들] (6·끝)공천당·태자당·상하이방

    [뉴차이나 시진핑 시대 사람들] (6·끝)공천당·태자당·상하이방

    중국 공산당의 각 계파는 2007년 제17차 전국대표대회 때 권력의 타협을 이뤘다. 퇀파이(團派·공청단 출신 그룹)는 성을 공격해 땅을 빼앗는 수확을 거뒀고, 상하이방은 진지를 굳게 지켜 안정을 유지했으며 태자당은 시진핑(習近平)이라는 거대한 ‘자원’을 얻는 데 성공했다. 올가을 5년 만에 열리는 제18차 전대에서는 태자당과 퇀파이의 약진 속에 상하이방은 다소 세력이 밀릴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하지만 퇀파이와 태자당, 상하이방은 통상적인 계파 구분일 뿐이며 서로 간에 생사를 다투는 적대관계가 아니라 융합할 수 있는 관계라는 점이 중요하다. ‘시진핑 시대’의 공산당 지도자그룹이 ‘후진타오 시대’와 마찬가지로 각 계파 간 타협에 의해 구성될 것으로 점쳐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번 전대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에 선임돼 최고지도부에 이름을 올릴 것으로 예상되는 인물은 시진핑, 리커창(李克强), 왕치산(王岐山), 리위안차오(李源潮), 보시라이(薄熙來) 외에 왕양(汪洋·57) 광둥(廣東)성 당서기, 위정성(兪正聲·67) 상하이시 당서기, 류윈산(劉雲山·65) 중앙선전부장, 류옌둥(劉延東·67·여) 국무위원, 장더장(張德江·66) 부총리 등이다. 후진타오 주석의 책사인 링지화(令計劃·56) 중앙판공청 주임, ‘리틀 후진타오’로 불리는 후춘화(胡春華·50)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당서기, 6세대 선두주자인 저우창(周强·52) 후난(湖南)성 당서기 등도 최소한 정치국 위원에 선임될 가능성이 높다. 공청단 출신인 왕양 광둥성 당서기는 최근 광둥성 우칸(烏坎)촌 사태를 원만하게 처리해 상당한 입지를 굳혔다. 왕 서기는 2003년 국무원 부비서장 시절에도 쓰촨(四川)성 한위안(漢源) 주민 폭동을 평화적으로 해결한 경험이 있다. 당시 댐 건설로 인한 수몰 보상비를 지역 공산당 간부들이 착복해 주민 폭동이 발생하자 지도부는 왕 서기를 보내 해결을 모색토록 했으며 그는 주민들의 요구 조건을 상당 부분 수용해 대규모 유혈사태를 피할 수 있었다. 우칸촌 사태 해결은 왕 서기의 이런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셈이다. 후 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기층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왕 서기의 이런 능력을 높이 사 중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정성 상하이시 당서기는 전형적인 태자당이다. 아버지 위치웨이(兪啓威)는 건국 후 톈진(天津)시 시장과 제1기계공업부 부장을 지냈고, 어머니는 베이징일보 사장과 베이징시 부시장을 역임했다. 국가과학기술공업위원회 전 주임 장전환(張震?)의 사위이기도 하다. 1980년대 중반 국가안전부에 근무하던 형이 미국으로 망명하는 바람에 고초를 겪기도 했다. 시 부주석의 뒤를 이어 상하이시 당무를 맡은 뒤부터는 철저하게 ‘시진핑의 사람’으로 변신했다. 류윈산 중앙선전부장은 중앙선전부에서만 20년 근무한 ‘선전의 달인’이다. 신화사 기자를 지냈고, 네이멍구자치구 근무 시절에도 10여년간 선전 업무를 맡은 바 있다. 중국 특색 사회주의 선전과 관련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공청단 미녀’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류옌둥 국무위원은 아버지가 농업부 부부장을 지내 태자당으로도 분류되고, 장쑤(江蘇)성 난퉁(南通) 출신이어서 상하이방으로도 볼 수 있다. 상하이방 태두인 장쩌민(江澤民)의 양아버지 장상칭(江上靑)이 그의 공청단 가입을 도와줬다. 태자당 막후 실력자인 쩡칭훙(曾慶紅) 전 부주석과는 서로 “오빠” “누이”라고 호칭하는 사이다. 공청단에서 오랫동안 후 주석과 호흡을 맞췄다. 장더장 부총리가 상무위원에 선임된다면 북·중 관계는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일성종합대 출신이어서 북한의 새 지도자인 김정은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는 동문으로 엮이게 된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6·25전쟁은 남침… 중공군 참전은 마오쩌둥 전략”

    “6·25전쟁은 남침… 중공군 참전은 마오쩌둥 전략”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은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 아니다.” 중국 톈안먼 사태의 주역인 왕단(王丹)은 최근 타이완에서 펴낸 ‘중화인민공화국사’를 통해 6·25 전쟁 파병에 대한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을 자처했다. 그는 책에서 6·25 전쟁은 북한의 남침이었으며, 중공군 파병은 당시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이 신생 중국 공산당 정권 수호를 위해 전략적인 차원에서 밀어붙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중국 공산당 건국부터 톈안먼 사태 이후까지를 총 15장으로 정리했으며, 소련 자료를 바탕으로 6·25 전쟁을 연구한 역사학자 선즈화(沈志華)의 논문 등을 바탕으로 제2장 ‘조선전쟁’(朝鮮戰爭)에서 6·25 파병의 진실을 조명했다. 책은 중국 최대 종합사전 사해(辭海)를 인용해 중국인들이 6·25 전쟁에 대해 그릇된 이해를 갖고 있다고 진단했다. 공산당은 “미군이 한국의 6·25 내전 당시 연합군의 이름으로 중국과 북한의 접경 지역인 단둥(丹東)까지 밀고 들어왔으며, 중국군은 미국의 침략을 물리치고 민족의 위대한 승리를 거뒀다.”고 사해는 적고 있지만 이는 일반적인 견해와는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6·25에 대해 항미원조전쟁이란 이름을 고집하는 것도 북의 남침을 도운 데 대한 유엔의 비판을 피하고 미국의 무력 간섭을 부각하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그는 책에서 “전쟁은 김일성이 소련과 중국으로부터 승낙을 얻은 뒤 도발한 명백한 남침”이라고 정의한 뒤 “미군의 발빠른 개입으로 전멸 위기에 처하자 같은 해 10월 중국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파병이 이뤄졌다.”고 기술했다. 그 중심에는 마오가 있었다. 그는 당시 공산당 정치국 회의에선 모두 난색을 표했고 지원을 약속했던 소련도 발을 뺐지만 마오가 파병을 고집했다고 적시했다. 마오는 총 5차례 전투 중 3차 전투에서 서울까지 점령하게 되면서 정전협정마저 거부할 정도로 자신감을 얻기도 했다. 특히 그는 마오가 민족주의 고취를 통한 공산정권의 안착을 위해 참전을 고집했다고 평했다. 실제로 당시 ‘항미원조 애국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전쟁 지원을 위한 모금 행사가 전국에서 성행할 만큼 국민을 결집하는 효과가 대단했다. 내적으로 공산당만이 외세에 맞설 수 있다는 메시지를, 외적으로는 강력한 군사 이미지를 전파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그는 “중공은 한국전 참전으로 미군의 타이완 주둔을 초래해 통일의 기회를 놓쳤고, 국제적으로도 고립됐다.”면서 “통치자에게는 장점이 있지만 인민들에게는 재앙을 가져온 전쟁이었다.”고 말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