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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진핑체제 첫 방북 인사 류치바오 → 리젠궈 변경

    중국 시진핑(習近平) 총서기 체제 출범 이후 북한을 처음 방문하는 고위급 인사가 당초 류치바오(劉奇葆) 당 중앙 선전부장에서 리젠궈(李建國) 전인대 부위원장 겸 비서장으로 하루 만에 변경됐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9일 “리젠궈 전인대 상무위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중국 공산당 대표단이 평양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대표단은 리 단장을 비롯해 왕자루이(王家瑞) 당 중앙 대외연락부장, 왕샤오후이(王曉暉) 당 중앙 선전부 부부장, 류제이(劉結一) 당 중앙 대외연락부 부부장 등으로 구성됐다. 북한 측에서는 김성남 노동당 국제부 부부장 등이 비행장에 나가 대표단을 맞이했다. 대표단은 방북 첫 일정으로 평양 만수대에 세워진 김일성·김정일 동상을 참배했다. 관영 신화통신은 이날 리젠궈를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이 북한·라오스·베트남 3국 순방길에 올랐다고 보도했으나 단장이 갑자기 교체된 이유는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류치바오와 리젠궈 모두 당 중앙 정치국 위원으로 정치적 위상이 같고 북·중 간 기류 변화가 있었다면 방북 자체가 성사되지 못했을 것이란 점에서 확대 해석은 무리라는 분석이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北인민무력부장 김격식 발탁

    北인민무력부장 김격식 발탁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국방부 장관 격인 인민무력부장에 지난 4월 임명된 김정각 차수를 6개월 만에 경질하고,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을 주도한 군부 강경파 김격식 대장을 임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정각 차수는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총장에 임명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29일 “김 제1위원장이 집권 이후 충성심을 기준으로 군 수뇌부를 갈아치우는 징후가 뚜렷하다.”면서 “최근 ‘충성심이 없는 사람은 막대기에 불과하다’는 메시지가 있었는데 이를 기준으로 군을 흔들어 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 북한 군부의 상황이 말이 아니다.”라면서 “이미 군단장급을 대거 교체한 데 이어 6개월 만에 인민무력부장도 교체한 것을 보면 내부 사정이 심상치 않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70∼80대가 주축이던 군단장급 간부 30% 이상의 자리가 바뀌면서 40∼50대가 전면에 등장하는 등 김정은 체제 이후 북한에 대대적인 세대교체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제1위원장이 자신의 기반 구축을 위해 충성심을 기준으로 대대적인 숙청과 인사를 단행하면서 군을 비롯한 북한의 내부가 동요하고 있는 것으로 정보 당국은 판단하고 있다. 김격식 대장은 천안함 폭침(2009년 3월)과 연평도 포격 도발(2010년 11월)을 주도한 군부 내 대표적 강경파 인물로 통한다.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총정치국의 지도 검열에서 “남조선의 반격에 대응을 제대로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상장으로 강등됐다. 그러나 지난 19일 조선중앙TV가 김정은 제1위원장의 제534군부대 산하 기마중대 훈련장 시찰 장면을 공개하면서 다시 대장 계급장을 달고 있는 그의 모습이 공개됐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김정은 “불순 적대분자 색출하라”

    북한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체제 출범 첫해부터 공안기관의 위상을 강화하는 등 취약한 권력기반 다지기에 나서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25일 ‘전국 사법검찰일꾼 열성자대회’ 참가자들이 평양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의 동상을 참배했다고 전해 전국 규모의 사법검찰 간부회의가 며칠 내에 소집될 것임을 알렸다. 통신은 북한 당국이 지난 23일 우리의 파출소장 격인 전국 분주소장들을 평양에 불러 모아 불순분자 색출 강화를 주 내용으로 하는 회의를 열고 김 제1위원장의 축하문을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김 제1위원장은 분주소장 회의 축하문에서 “소요 동란을 일으키기 위해 악랄하게 책동하는 불순 적대분자와 속에 칼을 품고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자들을 모조리 색출해 가차 없이 짓뭉개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분주소는 우리의 경찰에 해당하는 인민보안부의 최일선 기관이다. 김 제1위원장의 지시는 김정일이 국방위원장에 재추대된 이듬 해인 1999년 9월 전국 분주소장회의를 열어 공안통치를 강화한 사례와 비슷하다.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로 공식화된 직후인 1982년 11월 사법검찰일꾼 열성자회의를 연 전례가 있다. 김 제1위원장은 지난달에는 보안 간부 양성기관인 인민보안대학을 ‘김정일 인민보안대학’으로 개명하도록 지시해 공안기관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공안통치 강화는 권력 개편기를 맞아 최고지도자 개인에 대한 충성과 사회 결속을 강화하고 내부적 이완 요소를 단속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김정은 ‘광고로 이익창출’ 눈떴나

    북한 최고엘리트의 산실 김일성종합대학이 학보에서 광고에 관한 법령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 북한 당국이 이익창출의 수단으로 광고의 중요성에 눈뜬 게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됐다. 김일성대는 지난 7월 20일 발행한 학보에서 “광고가 수출을 발전시키고 국가의 대외적 권리를 높인다.“며 “광고활동에 대한 국가적 지도와 통제를 원만히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광고법을 정확히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보는 국가는 기관이 광고활동을 할 자격을 부여하고 광고의 심사 등록 사업을 해야한다는 등 광고에 관한 국가기구의 설립 필요성도 언급했다. 또한 광고에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진실성, 소비자의 주의를 끄는 신비성, 상품구매 의욕을 유발하는 예술성 등을 중요한 요소로 꼽는 등 효과적 광고방식을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김일성대의 학보가 이처럼 광고법 제정과 관련기구의 설립을 주장한 것에 비추어 북한 당국이 광고에 관한 법령을 적극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서는 평양신문에 실리는 작은 박스 형태의 광고를 제외하고는 조선중앙TV나 노동신문, 조선중앙방송 등 주요 매체에서 상업적 성격의 광고는 찾을 수 없다. 또한 금강산관광지구, 나선경제무역지대 등 외국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특구법에 광고 규정을 만들었지만 광고만 체계적으로 정리한 법령은 없다. 때문에 이번 김일성대의 학보는 김정은 정권의 광고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조봉현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18일 “북한이 최근 외자기업들을 많이 유치하면서 광고의 중요성을 느끼고 광고활동을 이익창출 수단으로 인식하는 것”이라며 “대외적 개방에 활용하겠다는 김정은식 경제개혁의 일환으로 관심 있게 지켜볼 일”이라고 평가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中 시진핑시대 개막] 장더장 상무위원, ‘江得張’ 별칭… 김일성大 나온 북한통

    장더장(張德江) 상무위원은 중국 옌볜(延邊)대 조선어학과를 졸업한 뒤 평양의 김일성종합대 경제학부에서 유학해 북한 인사들과 폭넓게 교류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역이 필요 없을 정도로 ‘조선어’가 유창하다.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이 그의 최대 정치적 자신이 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장 전 주석이 1989년 총서기 취임 후 이듬해 3월 방북할 때 수행한 것이 계기가 돼 상하이방(상하이 지역 정치세력)의 일원으로 자리 잡았다. 그는 방북 이듬해 옌볜조선족자치주 서기로 임명됐고 이후 지린(吉林)성 서기 등으로 중용됐다. 장 전 주석의 각별한 관심 탓에 ‘장쩌민의 아들’로 해석될 수 있는 ‘장더장’(江得張) 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광둥성 서기 재직 시절 농민 시위 등에 강압적으로 대응하는 등 악명이 높았다. 지난해 7월 원저우(溫州) 고속철도 사고가 발생했을 때는 관할 부총리로서 초기 대응에 실패한 점 등으로 구설에 올랐다. 일각에선 보시라이(薄熙來)의 실각에 따라 ‘어부지리’로 상무위원에 입성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 [씨줄날줄] 강영실 동무/박정현 논설위원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은 2000년 10월 북한을 방문해 고 김정일 국방위원장 면담 시 일화를 올해 소개했다. 그는 “기자회견장에 섰는데 키가 같았다. 나는 당시에 하이힐을 신고 있었는데, 그도 그랬다.”고 회고했다. 김정일 위원장이 키높이 구두를 신고 있었다는 얘기다. 부전자전일까.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도 키높이 구두를 신은 게 아니냐는 추정이 나오고 있다. 그의 키는 168~170㎝, 몸무게 90㎏이라는 관측이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비대한 체구에 비해 북한 주민들의 모습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비참하다. 질병관리본부가 새터민(탈북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9세 이상 성인의 평균신장은 남자 165.4㎝, 여자 154.2㎝로 나타났다. 조선시대(남자 161㎝, 여자 149㎝)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연구결과는 북한 주민들이 겪고 있을 굶주림의 참상을 짐작하게 한다. 17~25세 청년들의 체격이 왜소해지면서 북한군의 징집 기준도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병력 확보를 위해 140㎝이던 하한선은 137㎝로 낮아졌다. 이쯤 되면 일반적인 군인이 아니라 ‘소년 군인’이라고 할 만하다. 김일성 주석 사망과 수해를 겪은 이듬해 200만~300만명이 굶어죽었다는 ‘고난의 행군’ 시절 태어난 1995년생들이 입대 중이다. 개성공단 진입도로변 북측 초소에서 근무하다 지난달 6일 귀순한 북한군의 키는 180㎝로 컸으나 몸무게는 고작 46㎏으로 깡말랐다. 과거에는 출신성분이 좋은 병사들이 개성공단에 배치됐으나, 귀순 병사는 ‘비정상적’인 키 때문에 개성공단에서 근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북한 군인들 가운데 아사자가 속출한다. 300~400명의 대대급 부대에서 한 달에 굶어죽는 군인이 3~4명쯤 된다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이런 북한군을 은어로 ‘강영실’(강한 영양 실조) 군대라고 부른다. 지난달 군사분계선과 남방한계선 철책을 넘어 ‘노크 귀순’한 키160㎝, 몸무게 50㎏의 북한 병사가 이를테면 ‘강영실 동무’다. 우리 군인들이 그에게 라면을 끓여줘 논란을 빚기도 했지만 인도적인 차원에서 잘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라면은 북한 사회에서 굶주림을 해결하는 주요 식량으로 자리잡은 모양이다. 한 달 월급 3000~4000원을 받는 북한 주민이 무려 500원을 주고 컵 라면을 사먹고, 탈북자들이 두고온 가족과 친지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물건 1위가 라면이다. 통일 후 남북 주민들의 체격과 생활 수준의 차이를 어떻게 줄여나갈지 지금부터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 北, 김정은 초상화 배지 배포

    북한 당국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초상이 그려진 배지를 일부 간부들에게 배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체제 이완을 막고 충성심 고취에 전력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북한 간부들은 지난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이후 김일성·김정일 부자 얼굴이 나란히 그려진 배지를 착용해 왔다. 대북 전문매체 데일리NK는 9일 북한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최근 만수대창작사에서 김정은 배지를 제작해 국가안전보위부 중앙과 평양시 보위부 간부들에게 배포하기 시작했다.”면서 “이는 보위부가 김정은 원수님과 선군 조선을 지키는 최전선 사령부라는 사명감을 불어넣으려는 목적”이라고 말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김정은, 외국인사와 ‘스킨십 외교’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공개 석상에서 평양 주재 외국 인사들과 가까이 있는 모습을 잇달아 보여줘 개방적 이미지를 강조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김 제1위원장이 지난달 29일 부인 리설주와 함께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창립 60주년 기념 모란봉악단 공연을 관람할 때 그의 바로 뒤에 평양 주재 외교사절단 등 외국인 30여명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일반적으로 노동당이나 군부 핵심 인사들이 앉았던 최고 지도자 뒷자리에 외국 외교관과 국제기구 관계자들이 단체로 앉는 것은 상당한 배려로 받아들여진다. 다음 날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이 보도한 사진에는 외국인들이 일어서서 손뼉을 치는 장면이 보인다. 김 제1위원장은 지난 7월 25일 평양 능라인민유원지 준공식에서 류훙차이(劉洪才) 주북 중국대사와 영국 외교관 등과 함께 놀이기구를 즐기기도 했다. 김정은 체제가 공식 출범한 뒤 평양에서 열린 각종 행사에 외국 인사가 과거보다 자주 초대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전에 외국 외교관들이 참석하는 공식 석상에 좀처럼 얼굴을 내밀지 않았던 것과 대조된다. 김 제1위원장의 이런 행보는 스위스 유학 경험자로서 외교무대에 본격 등장하면 외국 지도자와 활발한 교류를 할 것이라는 추측을 낳고 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 제1위원장이 외국인에 대한 친근감을 표시함으로써 북한이 고립된 국가로서가 아닌, 세계적 추세 속에 나아갈 방향을 찾아가겠다는 뜻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北, 우상화 작업 대규모 투자”

    북한이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 등 김씨 일가에 대한 우상화 작업과 위락시설 조성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은 29일 국회 정보위의 국정원 국감에서 “김일성·김정일 동상과 영생탑을 전 지역에 건립하고 초상화도 교체하고 있다.”면서 “스위스 등 유럽의 테마파크를 모방해 능라유원지에 물놀이장 등 놀이기구를 건설하고 프랑스나 오스트리아의 궁전을 본떠 김씨 일가의 시신 보관소를 대규모 정원으로 바꾸는 공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우상화 작업과 위락시설 건설에 약 3억 3000만 달러가 투입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원 원장은 대선을 앞두고 북한의 개입의지도 노골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8월 중순에서 하순쯤 전방부대를 집중 방문해 선별적 타격을 위해 최후 명령을 기다릴 것 등 도발적 언행을 했다.”고 전했다. 최근 행방이 묘연한 김 제1위원장의 부인 리설주에 대해서는 임신설, 북한 고위 관료들의 리설주로 인한 풍기 문란 우려 등 복합적 요인이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한편, 북한 매체들은 이날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창립 60돌을 맞아 이 학교에서 열린 김일성·김정일의 동상 제막식에 김 제1위원장이 참석, 연설했다고 보도했다. 김 제1위원장이 공개석상에 모습을 보인 것은 지난 14일 만경대혁명학원 등의 창립 경축대회에 참석한 이후 보름 만이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씨줄날줄] 북한 ‘생눈길 정신’/육철수 논설위원

    북한의 달력은 오늘이 ‘주체 101년 10월 22일’이다. 김일성이 태어난 1912년을 원년(元年)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연초 신년 사설을 통해 “올해 주체 101(2012)년은 위대한 김정일 동지의 강성부흥 구상이 빛나는 결실을 맺는 해이며 김일성 조선의 새로운 100년대가 시작되는 장엄한 대진군의 해”라면서 “새로운 주체 100년대의 진군은 백두에서 시작된 혁명적 진군의 계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백두의 혁명정신’은 김일성이 북한 통치를 위해 처음으로 내세운 국시(國是)이자 북한 세습정권에 대를 이어 내려오는 시대정신이다. 북한의 표현을 빌리자면 ‘백두의 혁명정신’은 ‘백두산 위인들의 위대한 혁명사상이자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개척하신 자주의 길, 선군의 길, 사회주의의 길을 끝까지 이어 갈 담대한 배짱이며 공격 방식’이다. 김일성 집권기의 ‘천리마 정신’과 김정일 때 ‘속도전의 혁명정신’이나 ‘고난의 행군정신’ 등은 모두 ‘백두의 혁명정신’이 바탕이다. 최근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이 ‘생눈길을 헤치는 정신으로 창조하며 승리해 나가자’는 제목으로 사설을 게재했다고 한다.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생눈길’이란 말은 ‘아무도 밟지 않아 눈이 녹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길’이란 뜻이다. 북한의 신문·방송은 이 말을 ‘극복해야 할 난관’ 또는 ‘전인미답의 길’이란 의미로 가끔 사용해 왔다. 노동신문은 ‘생눈길 정신’에 대해 ‘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위한 새로운 역사적 시기의 시대정신이며 혁명의 최후 승리를 향해 과감히 돌진해 나가는 낙관적이며 창조적인 공격정신’이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였다. 그리고 이게 김정은 체제의 시대정신이라고 했다. 노동당과 군대, 주민에게 ‘일심단결하여 수령결사옹위를 위해 충성하고 자아희생의 고결한 인생관’을 가져 달라는 주문도 했다. 북한은 신년 사설에서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의 령도 따라 새로운 주체 100년대의 강성부흥을 위한 장엄한 진군길에 들어서고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제2의 고난의 행군이나 다를 바 없는 ‘생눈길 정신’으로 새 시대를 열었으니 북한의 앞날을 예고하는 듯하다. 불행하게도 북한 지도자들은 어려운 식량 사정과 분수에 맞지 않는 핵개발이 자신들을 생눈길로 몰아넣고 있음을 아직 깨닫지 못한 모양이다. 배가 고파 국경을 넘는 주민이 하루에도 숱할 터인데, 그들에게 아무리 충즉진명(忠則盡命)을 요구한들 귀담아듣기나 할까.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法, ‘김일성 회고록 감상문’ 교수 직위해제처분 효력 정지

    울산지법 제14민사부는 울산 모 대학의 국어국문학과 이모(55) 교수가 학교법인을 상대로 제기한 직위해제처분 효력정지 가처분신청 사건과 관련해 직위해제처분 효력 정지를 결정했다고 16일 밝혔다. 이 교수는 학생들에게 김일성 회고록 등 북한 원전을 읽고 감상문을 제출하도록 하는 등 국가보안법 위반(찬양·고무 등) 혐의로 지난 7월 불구속 기소됐다. 이어 지난 8월 2일에는 학교법인으로부터 직위해제 처분을 받았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 등에 비춰 형사사건으로 기소됐다거나 징계의결의 요구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직위해제 처분을 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밝혔다. 울산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10월 유신 40년] “박정희, 3選개헌만 했더라면… 유신 때문에 독재자 된거요”

    [10월 유신 40년] “박정희, 3選개헌만 했더라면… 유신 때문에 독재자 된거요”

    17일은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위한 ‘10·17 비상조치’, 이른바 ‘10월 유신’을 선포한 지 40년이 되는 날이다. 박정희 정권은 1972년 10월 17일 저녁 7시를 기해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했으며 일부 헌법조항의 효력을 정지시켰다. 그해 12월 27일에는 유신헌법(제4공화국 헌법)이 공포돼 유신 체제는 박 전 대통령이 1979년 10·26 사태로 사망할 때까지 7년 동안 유지됐다. 서울신문은 유신 40년에 즈음해 원로 헌법학자인 김철수 명지대 석좌교수 겸 서울대 명예교수로부터 유신 헌법에 대한 평가를 들어보고 유신 체제가 정치·경제·사회에 미친 영향, 유신 헌법의 내용 등을 짚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3선 개헌만 했더라도, 5·16 군사쿠데타만 일으켰더라도 위대한 대통령으로 평가받았을 텐데, 10월유신 때문에 독재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김철수(79) 명지대 석좌교수 겸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는 1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제3공화국 때는 언론계나 교수들이 상당히 바른 말을 많이 했고, 독재를 할 수 없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10월유신 전후로 중앙일보 논설위원을 겸직하고 있던 김 교수는 자신도 이런저런 비판을 많이 했다고 회상했다. ●통일주체국민회의는 ‘박수기관’ 1972년 11월 21일 국민투표로 채택한 유신헌법에 대해 김 교수는 “소위 권력의 인격화라는 명목으로 대통령의 독재가 행해졌고, 긴급조치에 의해 국민의 기본권이 많이 제약됐다.”고 평가했다. 유신헌법은 대통령의 지위를 대폭 강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대통령은 국회의원의 3분의1을 추천할 수 있고 국회해산권을 갖고 있다. 긴급조치권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으며, 제2·3공화국 헌법에서 천부인권설에 기초해 강화했던 기본권 규정에 법률 유보조항을 뒀다. 대통령은 간접선거로 선출하고 임기를 연장했다. 대신 국회의 권한은 축소·조정하고 국회 회기도 단축했다. 제2공화국의 헌법재판소를 없애고 명목상의 헌법위원회제도를 도입했다. 김 교수는 10월유신 헌법을 제정한 뒤 국민투표에 회부하기 전 헌법학 교수와 정치학 교수들이 총동원돼 선전전에 활용될 때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중립’을 지켰다. 1973년 1월에 대학 교재로 유신헌법이 포함된 ‘헌법학 개론’을 냈다가 초판을 몽땅 몰수당하고,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1주일 동안 수정할 것을 협박당했다. 이후 낸 수정 재판과 3판도 몰수당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문제의 ‘헌법학 개론’은 중앙정보부의 꼼꼼한 검열을 거쳐 수정 4판에서야 세상에 내보낼 수 있었다. 김 교수는 “박 대통령이 ‘헌법에 대해 개정 청원을 해서는 안 된다’는 등의 긴급조치를 발동하기 전이라 크게 비판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핍박을 받았다.”면서 “그때 삭제했던 내용을 이번에 출간한 ‘헌법과 정치’(진원사 펴냄)에 모두 복원했다.”고 밝혔다. 당시 김 교수는 정부가 최고의 주권 기관이라고 자랑하던 통일주체국민회의에 대해 행정부의 ‘협찬기관’ ‘박수기관’이라고 썼고, 이런 정부 조직은 독재국가들인 타이완의 ‘국민대회’와 스페인의 ‘국민회의’, 아프가니스탄의 ‘국민대의회’와 같다고 평가했다(496쪽). 또 제4공화국의 대통령제에 대해서는 독재 체제인 타이완, 그리스 등과 비슷한 ‘현대판 군주제’라고 비판하고, 유신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에 독재적 요소가 많다고 서술했다(316쪽). ●체제 비판엔 “北과 내통” 협박 김 교수는 “당시 중앙정보부는 ‘김 교수가 ‘현대판 군주제’라고 현 체제를 비판한 내용을 북한에서 논평하고 있다. 북한과 내통한 것 아니냐’고 ‘지랄’을 해대더라.”라고 원색적으로 표현했다. 그 뒤로도 김 교수는 이런 원색적인 표현을 여러 차례 썼는데, 가장 왕성하게 학문적으로 집필 활동을 해야 할 시기인 40대에 침묵을 강요당한 것에 대한 울분이 40년이 지난 지금도 올라온 것처럼 보였다. 김 교수의 이런 심사는 신간 ‘헌법과 정치’ 머리말에도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다. ●긴급조치, 국민 기본권 제약 김 교수는 “뒤늦게 유신시대의 위헌적 행위에 대해 비판하려고 하니, 편안하게 죽지도 못한 대통령을 너무 욕되게 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 못 했다.”면서 “또한 유신 때는 왜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있다가 지금에 와서 몰수됐던 책의 내용을 공개하면서 초를 치고 있느냐고 비판받을까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그래도 유신헌법 제53조의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 질서가 중대한 위협을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어 신속한 조치가 필요 있다고 판단될 때는 내정·외교·국방·경제·재정·사법 등 국정 전반에 걸쳐 필요한 긴급조치를 할 수 있다.’라는 긴급조치법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비판했다(673~679쪽). 김 교수는 “독일에서 공부하다 5·16 직전에 귀국했는데, 거의 매일 쿠데타가 날 것이라는 소문이 서울에 널리 퍼졌고, 정부청사 관료들은 쿠데타를 기다리며 자리를 비우기 일쑤였던 만큼 5·16은 불가피했다는 평가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박통이 3선 개헌만 하고, 5·16만 했더라면 위대한 대통령으로 평가받았을 것인데 유신 때문에 독재자라는 평가를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5·16 군사혁명정부 시절은 1년 동안 헌법이 부재한 상황이었는데, 당시 혁명위원회가 만든 ‘국가재건비상조치법’에서 ‘제2공화국의 헌법을 계승한다.’고 공표했지만 내각제도 없애고, 국민의 기본권을 완전히 억압했으니 군사독재를 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박 대통령이 10월 유신을 하려고 국회를 해산하고, 입법부 대신 비상국무회의에서 유신헌법을 만들어 공고한 뒤 국민투표에 부쳐 93% 찬성으로 통과시킨 것은 초헌법적인 불법행위”라고 비판했다. 문제의 ‘헌법학 개론’에 정부가 홍보한 대로 93%의 국민 지지로 통과됐다고 서술한 것에 대해서도 중앙정보부는 “야유하는 것이냐?”고 트집을 잡았다고 회상했다. 김 교수는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헌법을 통해 우리나라를 부흥시키고 통일시킨다는 명분은 있었겠지만, 핵 연구소를 대전에 만드는 등 미국 정부와 갈등하고, 부마학생운동 등에 대해 폭력적으로 대응하자 김재규가 헌법 개정 준비를 했던 것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김신조·실미도’에 정권 위기감 김 교수는 “당시 김재규의 중앙정보부 특별보좌관이 대학 동기(서울대 법대)인데, 자꾸 만나자고 한 뒤 헌법 이야기를 많이 했었기 때문에 헌법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면서 “12·12 이후 가담했던 사람들이 모두 처형돼서 그 기록과 흔적이 모두 사라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김재규는 박 대통령을 저격한 일에 대해 재판 과정에서 ‘유신의 심장을 쏘면서 유신시대를 없애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10·26 이후 우리가 잘했더라면 민주화가 더 빨리 오지 않았겠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이 정상적인 정신 상태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말도 했다. 김 교수는 “1968년 1월 김신조 사건으로 암살 위기를 겪고, 이에 보복하겠다고 만든 북파 공작원들이 문제가 된 1971년 실미도 사건도 터지고 해서 정권 차원에서 위기감이 극대화됐을 것이다. 북한 김일성과의 대립 관계에서 승리하고 권력을 유지하려는 생각들이 10월유신에 많이 반영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학문적으로 ‘입헌정치’란 헌법이라는 국가계약의 문서로 정치를 규율하겠다는 것인데 대한민국의 헌법은 정치를 규제하지 못하고, 정치가 헌법을 유린하고 새로 제정하는 악순환을 거듭하며 한국적 비극을 낳고 있다고 김 교수는 평가했다. 제헌헌법과 제6공화국 헌법을 제외하고 유신헌법을 포함해 많은 헌법 개정안이 국민의 기본권 보장 규범으로 기능하지 않고 집권자의 지배 도구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헌법에 위배되는 국가변란죄나 국헌문란죄를 엄격하게 처벌하지 않은 관행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유신헌법은 유신헌법 안에서는 합헌이지만, 입헌주의 정신을 감안하면 유신헌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국회가 아닌 대통령이 만든 긴급조치에 의해 침해하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강조했다. ●20살 박근혜가 유신 알았겠나 10월유신에 대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진정한 사과가 필요하냐는 질문에 김 교수는 “그 무렵 20살밖에 안 된 박근혜 후보가 유신헌법에 대해 무엇을 알았겠느냐.”면서 그의 몫이 아니라는 식으로 답변했다. 이어 그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데, 유신에 대한 평가나 나의 인터뷰가 누군가를 겨냥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김철수 석좌교수] 1933년 7월 10일생으로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모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2~1998년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재직한 뒤 탐라대 총장을 거쳐 현재 명지대 석좌교수로 있다. 한국헌법연구소 소장, 한국헌법학회 고문 등을 역임했다. 주요저서는 ‘헌법이 지배하는 사회를 위하여’ ‘헌법개설’ 등 23권.
  • [열린세상] 대통령의 외교언어/장철균 서희외교포럼대표·전 스위스 대사

    [열린세상] 대통령의 외교언어/장철균 서희외교포럼대표·전 스위스 대사

    신라 선덕여왕이 즉위하자 당(唐) 태종이 모란 그림을 보내왔는데 당연히 있어야 할 나비가 없는 것을 보고 여왕은 ‘그림에 나비가 없으니 이는 당제(唐帝)가 과인이 짝이 없음을 놀리는 것이다.’라 했다고 삼국유사는 전하고 있다. 이는 당과 신라의 정상외교를 묘사한 것으로, 여기에서 모란 그림을 오늘날 넓은 의미의 외교언어(diplomatic parlance)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외교언어란 말과 글(문서)뿐만 아니라 그림과 같은 상징물, 독특한 몸짓이나 태도, 스타일과 같은 비언어로도 메시지를 전달하는 외교 의사소통 방식이다. 미국 첫 여성 국무장관이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 여사가 외국방문 시에 색깔이 다른 브로치를 사용해 의사표시를 한 것도 외교언어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의 베이징 방문 시에는 중국이 판다 곰을 선물해 ‘판다 외교’도 그 이름을 남겼다. 때로는 침묵도 외교언어가 될 수 있다. 은둔으로 일관하다가 필요할 때 잠시 등장해 세상의 주목을 유도한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의 행태를 ‘침묵 외교’라고도 한다. 2008년 2월 뉴욕 필이 평양에서 공연을 했다. 미국의 ‘콘서트 외교’는 1956년 미·소관계 정상화의 물꼬를 튼 이래 1973년에는 미·중관계의 해빙을 조성해서 공산권과의 외교에 단골메뉴가 되었다. 1946년 3월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가 야당 당수일 때 미국을 방문해 미주리 주의 웨스트민스터 대학 연설에서 언급한 ‘철의 장막’은 냉전 반세기 동안 외교언어의 대명사가 되었다. 1992년 5월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바로 이 대학을 찾아 ‘냉전의 종식’을 선언했다. 외교언어는 국가관계와 국제정치에 영향을 주고받는 외교의 중요한 소통수단이다. 그래서 국가정상의 외교언어는 언제나 주목을 받지만, 외교언어에 힘과 행동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진실성이 결여된 ‘구두선’(lip service)으로 또는 ‘그저 한번 해본 소리’(rhetoric)로 평가 절하되어 정상 개인뿐 아니라 나라의 신뢰에도 손상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서양에서도 ‘큰 대포는 잘 쏘지 않는다.’고 한다. 세치 혀는 천 냥 빚을 갚을 수도 있지만, 천 냥의 빚을 질 수도 있다. 한국 대통령의 외교언어는 실패한 사례가 자주 거론된다.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의 ‘일본 버르장머리 고치기’와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의 ‘북한 핵 개발 일리 있다’는 발언이다. 정제되지 않은 외교언어였다. 지난 8월 이명박 대통령의 ‘일왕도 방한하고 싶으면 먼저 사과하라.’는 발언도 신중하게, 의도된 외교언어가 아니었기 때문에 독도문제나 과거사 문제에 대한 메시지는 약화되고 대일외교에 혼란을 초래했다. 학생과의 대화 중에 우연히 나온 실수라는 해명은 또 하나의 실패한 외교언어가 될 수 있다. 옛말에도 ‘왕의 말씀은 바꿀 수 없다.’고 했다. 한국 대통령의 외교언어로서 성공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1952년 1월 국제사회에서는 ‘리-라인’으로 회자된 이승만 대통령의 ‘평화선‘이다. 6·25전쟁 중이었고 미국과 일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평화선을 통해 우리의 영해를 넓히고 독도의 실효적 지배를 가능하게 했다. 외교언어를 잘 구사하기 위해서는 우선 의도하는 목표를 명확히 하고, 그 결과를 예측해야 한다. ‘결과를 잘 생각하라.’는 로마 속담도 있다. 결과를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결과가 불확실하면 아니함만 못하다. 그리고 행동할 때는 힘이 수반되어야 효과가 있다. ‘큰 몽둥이를 갖고 다니되 말은 부드럽게 하라.’ 외교의 정곡을 간파한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 대통령의 말이다. 12월 19일 대통령 선거가 있다. 대통령의 외교언어는 곧 외교력이다. 세 후보의 외교언어 능력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아직 후보들은 인기가 없는 외교, 안보 이슈에 말을 아끼고 있다. 그러나 남북관계와 동북아의 영토분쟁, 민족주의, 정치 우경화, 군비경쟁 등 한국에 주어진 외교적 도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준엄하다. 한국의 미래는 외교전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과 러시아의 지도자는 교체되었고, 중국과 미국·일본의 정상은 곧 선출된다. 이들과 상대하게 될 새로운 한국 대통령의 외교력을 기대해 본다.
  • [뉴스 WHO] 北 최룡해, 김정은의 ‘그림자 사나이’

    북한이 지난 7월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 숙청 등 군부 재편을 단행한 이후 8~9월 중 최룡해(62)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 1위원장의 현지지도를 가장 많이 수행한 것으로 알려져 실세로 부상했음을 실감나게 한다. 특히 최 총정치국장은 김경희 당비서나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등 ‘로열패밀리’의 집사 역할을 맡았다는 점에서 위상 확대에 따라 북한 내 권력 투쟁의 불씨가 될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3일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의 주요 매체를 분석한 결과 김 제1위원장이 지난 8~9월 총 18회의 현지지도와 공개활동을 했으며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은 이중 17회를 수행했다고 보도했다. 2위는 14회 수행한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이다. 건강 이상설이 제기된 김 제1위원장의 고모 김경희 당비서는 4회로 지난달 2일 이후 공식행사에서 종적을 감춘 상태다. 민간인 출신인 최룡해는 지난 4월 인민군 총정치국장으로 장군복을 입게 돼 김 제1위원장이 군을 장악하기 위한 카드로 여겨진다. 그의 아버지 최현(1907~1982) 전 인민무력부장은 빨치산 출신으로 김일성 주석과 막역한 친구였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 체제에 막대한 공을 세웠다. 최룡해는 출신성분으로만 따지면 장성택 부위원장보다 앞선 셈이다. 그는 1998년 외화착복 등으로 좌천되기도 했으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신임에 힘입어 복귀했으며 현재 권력의 핵심에서 김 제1위원장을 중심으로 김경희, 장성택 부부와 기능 분업을 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김정은의 ‘그림자 사나이’ 北 최룡해 하는 일 보니

    김정은의 ‘그림자 사나이’ 北 최룡해 하는 일 보니

    북한이 지난 7월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 숙청 등 군부 재편을 단행한 이후 8~9월 중 최룡해(62)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 1위원장의 현지지도를 가장 많이 수행한 것으로 알려져 실세로 부상했음을 실감나게 한다. 특히 최 총정치국장은 김경희 당비서나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등 ‘로열패밀리’의 집사 역할을 맡았다는 점에서 위상 확대에 따라 북한 내 권력 투쟁의 불씨가 될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3일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의 주요 매체를 분석한 결과 김 제1위원장이 지난 8~9월 총 18회의 현지지도와 공개활동을 했으며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은 이중 17회를 수행했다고 보도했다. 2위는 14회 수행한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이다. 건강 이상설이 제기된 김 제1위원장의 고모 김경희 당비서는 4회로 지난달 2일 이후 공식행사에서 종적을 감춘 상태다. 민간인 출신인 최룡해는 지난 4월 인민군 총정치국장으로 장군복을 입게 돼 김 제1위원장이 군을 장악하기 위한 카드로 여겨진다. 그의 아버지 최현(1907~1982) 전 인민무력부장은 빨치산 출신으로 김일성 주석과 막역한 친구였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 체제에 막대한 공을 세웠다. 최룡해는 출신성분으로만 따지면 장성택 부위원장보다 앞선 셈이다. 그는 1998년 외화착복 등으로 좌천되기도 했으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신임에 힘입어 복귀했으며 현재 권력의 핵심에서 김 제1위원장을 중심으로 김경희, 장성택 부부와 기능 분업을 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기고] 9·28 서울 수복과 박정모 소위/민병원 국립대전현충원장

    [기고] 9·28 서울 수복과 박정모 소위/민병원 국립대전현충원장

    대전현충원은 대한민국의 역사다. 독립과 호국이라는 역사의 두 수레바퀴 속에서 조국을 세우고 만들기 위해 목숨을 던진 이 땅의 영웅들이 잠들어 있는 곳, 통곡과 회한의 눈물로 비석을 닦는 유가족들의 발길이 연중 멈추지 않는 곳, 이곳의 아픔과 영광을 모른 채 개개인의 정체성과 대한민국의 발전을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이곳에서 가장 먼저 마주치게 되는 것이 태극기이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넋을 원동력으로 조국을 영원토록 약진·번영으로 이끈다는 천마웅비상 밑에는 가로 9m, 세로 6m의 거대한 태극기 화단이 조성돼 있다. 조각상 뒤로 150m의 거리에 대형태극기 50개가 펄럭이고 있다. 태극기를 보고 있으면 6·25전쟁 당시 서울 한복판인 중앙청에 희망의 깃발을 내걸고 대한민국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박정모 대령이 떠오른다. 미국 트루먼 대통령으로부터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숨은 공훈’이라는 내용의 표창장을 받은 인물로 용감한 해병의 상징이다. 고인의 묘소에는 그날의 기쁨을 기억하듯 소형 태극기가 가을의 햇살에 빛나고 있다. 상석에는 ‘중앙청 태극기 게양 그 벅찬 감격의 순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필승’이라고 써 있다. 서울은 전쟁이 발발한 지 사흘 만에 함락됐다. 그러나 9월 15일 유엔군 총 7만여 명의 병력과 260여척의 함정으로 감행된 인천상륙작전은 전세를 역전시키며 9월 28일 서울을 수복했다. 시민들은 중앙청에서 휘날리는 대형태극기를 보고 서울을 되찾았음을 알고 양손을 번쩍 들고 만세를 불렀다. 극적인 중앙청 태극기 게양은 3명의 해병대원에 의해 이뤄졌다. 스물네 살의 해병대 소위 박정모, 이등병조(현 병장) 양병수, 견습해병(현 이병) 최국방이 바로 그들이다. 9월 25일부터 서울 시가지 전투가 전개돼 26일 서울 시청에 들어선 뒤 스탈린과 김일성 초상화를 내리고 인공기를 불태웠다. 해병대원들은 서울의 상징인 중앙청 수복은 반드시 우리 손으로 해야 한다는 각오로 북한군의 극렬한 저항을 뚫고 중앙청에 도착했다. 27일 새벽 3시 박 소위는 대형 태극기를 온몸에 감고 장대를 들고 태극기를 게양하기 위해 중앙청 건물 위로 올라갔다. 폭격과 총탄으로 벌집이 되어버린 중앙청 건물의 돔은 철제 사다리가 파괴돼 오르기가 힘겨웠다. 박 소위는 대원들의 허리띠를 연결해 로프를 만들어 올라갔다. 북한군에 점령된 지 꼭 89일 만에 다시 중앙청에 태극기가 휘날린 것이다. 박 소위는 ‘내가 온 국민이 소원하는 우리나라 심장부에 자랑스러운 태극기를 직접 꽂았다.’는 벅찬 감격에 눈물을 흘렸다. 서울 탈환에 앞장섰던 미 해병대는 한국 해병대가 태극기를 올리도록 양보함으로써 돈독한 혈맹관계를 보여줬다. 박 소위가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승리의 감동과 대한민국의 혼을 보여줬다. 그러나 승리의 뒷면에는 많은 희생이 있었다. 인천상륙작전과 서울 수복을 위해 국군과 유엔군 사상자가 4000여명이 발생했다. 9월 28일 서울수복을 기념하면서 오늘 우리는 자유와 평화가 유엔군과 국가유공자의 고귀한 희생 위에 꽃피웠음을 잊지 말고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갖는 날로 삼아야 할 것이다.
  • ‘맹탕’ 北 최고인민회의 왜 열었나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6차 회의가 25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렸지만 당초 관심을 모았던 경제 개혁 관련 조치는 나오지 않았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번 회의 안건이 ‘전반적 12년제 의무교육을 실시함에 대하여’와 ‘조직 문제’라고 밝혔지만 농지 개혁 등의 경제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통일부 관계자는 “이번에는 경제 관련 조치가 나올 것으로 예상했지만 (북한의) 여건이 성숙되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면서 “경제 관련 조치를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발표할 필요는 없으며 앞으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정령을 통해 할 수도 있어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에서 북한은 의무교육 기간을 1년 늘려 12년제 교육제도를 채택함으로써 학교 전 교육 1년→소학교 5년→초급중학교 3년→고급중학교 3년의 학제를 갖추게 됐다. 북한은 이번 조치가 “김정일 동지의 숭고한 조국관, 미래관이 집약돼 있는 중대한 조치”라며 사실상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첫 작품임을 강조했다. 또 홍인범 평안남도 당 책임비서와 전용남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위원장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에 선임하고 최고인민회의 예산위원장을 최희정 당 과학교육부장에서 곽범기 내각 부총리로 교체했다. 경제 개선 문제가 이번 발표에서 빠진 데 대해 전문가들은 대체로 북한이 내부적으로 이를 논의했으나 공개하지 않았을 가능성과 내부의 혼란 등을 의식해 개혁을 조용히 진행하려는 의도로 분석하고 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학제 개편만을 위해 최고인민회의를 개최한 것은 이해할 수 없으며 내부적으로 다른 논의가 있었을 것”이라면서 “2002년에 7·1 조치를 시행했을 때도 법제화 여부나 내부 문건을 공개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고 교수는 “우선 경제 조치를 시행하되 추후 성과를 본 다음 법제화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류길재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도 “개혁·개방설의 확산과 북한 내부의 주민 동요 등에 따른 부담이 문제가 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40년 만에 이뤄지는 북한의 의무교육 기간 연장은 그 자체로서 중요한 논의”라고 말했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은 26일 오전 청와대에서 외교안보장관회의를 소집한다. 회의에서는 최근 한·중·일 3국 간 영토를 둘러싼 외교 갈등을 비롯해 북한 최고인민회의 결과, 북한 어선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 등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북한 변수’에 대한 논의가 집중적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김성수·하종훈기자 sskim@seoul.co.kr
  • ‘김정일 미라’ 내년 초 공개할 듯

    ‘김정일 미라’ 내년 초 공개할 듯

    북한이 영구보존을 위해 방부처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신을 이르면 내년 초 일반에 공개할 것으로 보인다. 19일 북한관광 전문 온라인 여행사인 ‘주체여행사’가 최근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2013년 북한여행 일정표’에 따르면 일반 외국인 관광객들은 내년 2월14∼19일 진행되는 ‘광명성절 단기여행’부터 금수산기념궁전(현 금수산태양궁전)을 관람할 수 있다. 금수산태양궁전은 김 위원장의 부친인 김일성 주석의 미라 형태 시신이 안치된 곳으로, 내·외국인들이 찾는 주요 관광명소이다. 그러나 올해 초 김 위원장 시신의 영구보존 작업이 시작된 이후 사실상 일반 내·외국인들의 관람은 전면 금지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올해 1월 12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특별보도’에서 “금수산기념궁전에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를 생전의 모습으로 모신다.”고 공표해 김 위원장의 시신 역시 이곳에 미라 형태로 영구보존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주체여행사는 내년 3∼4월 북한 여행일정에도 금수산기념궁전 관람을 빼놓지 않고 포함해 북한이 사실상 내년 초부터 ‘영구보존’ 작업이 완료된 김 위원장 시신을 일반에 공개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일성 주석의 경우 북한은 사망 1주년을 즈음한 1995년 7월 12일 영구보존 처리된 김 주석 시신을 북한주재 외교관, 군인 등에게 먼저 공개한 뒤 사망 2주년이 되던 1996년 7월부터 일반인들에게 완전히 공개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북한의 작가들은 체제수호 선봉장… 정형화된 글쓰기 작업에 신물 났다”

    “북한의 작가들은 체제수호 선봉장… 정형화된 글쓰기 작업에 신물 났다”

    “사회주의적 자연주의를 강조한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카프)과 구 소련의 영향을 받은 북한 문학은 세계적 조류와도 동떨어져 있습니다. 김정일이 1970년대 문화예술계를 장악하면서 문학 속 우상화 작업도 마무리됐지요.” 14일 경북 경주에서 폐막한 제78차 국제펜(PEN)대회에서 정식 회원으로 가입한 ‘망명 북한 펜 본부’의 정해성(67) 이사장은 탈북 이후 작품 활동을 “감개무량하다.”고 표현했다. 그는 1996년 탈북 전까지 조선중앙TV에서 방송작가로 일했다. 망명 북한 펜 본부에 소속된 28명의 탈북 작가 중 가장 먼저 한국에 왔고, 그런 인연으로 이사장을 맡았다. 정 이사장은 “북한 문학 속 등장인물은 한번 타락하면 벗어나지 못하는 이분법적 구조에 갇혀 있다.”며 “친일파가 회개해 해방 이후 당과 수령을 위해 목숨 바쳤다는 설정은 상상도 못하고 아예 친일 반동분자의 등장을 금한다.”고 강조했다. 문학성의 기준은 얼마나 거짓말을 잘하느냐이고, 김일성 가계를 우상화해 인민의 충성을 끌어내는 정도에 달렸다는 것이다. 직접 쓴 대본에서 “김일성·김정일 교시를 집행하지 못하면 밥을 먹어도 모래알 씹는 것 같다.”는 대사를 인용해 이를 설명했다. ●‘망명 북한 펜 본부’ 국제펜 정식회원 가입 이어 북한에도 시·소설·희곡 등 분과가 있는데 남측 글쓰기와의 공통점은 권선징악이며 차이점은 표현의 자유라고 덧붙였다. 김일성 가계와 관련된 작품을 창작하는 4·15 문학창작단의 현승걸 단장을 예로 들어, 그가 사석에서 “언제쯤 쓰고 싶은 걸 쓸 수 있나.”라고 푸념했다가 요덕 수용소로 끌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적시했다. 엘리트 작가였던 정 이사장은 북한에서 즐겨 읽던 남한 작품으로 소설 장길산·토지·허준 등을 꼽았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에서 발간한 ‘시대’라는 잡지에 실린 시인 김지하의 시도 모두 섭렵했다고 했다. 1970년대 김일성으로부터 직접 희곡 특등상을 받은 이진명(59)씨는 “북한의 정형화 작업에 신물이 났다.”면서 “북한에서 문학 한다면 체제수호의 선봉장쯤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함경북도 청진의 문학기자(통신원) 출신인 김정근(44)씨는 “또래인 임수경 의원이 1989년 6월 방북했을 때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남한사회를 동경하게 됐다.”면서 “체제의 위대성을 선전할 각오가 없다면 북한에선 작가나 기자의 꿈을 접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안전부와 대외경제위원회에서 일했던 림일(44)씨는 “김정일은 사실 문학에 관심이 없고 무용·노래·영화 등 극예술에 치중했다.”면서 “해외유학파인 김정은도 일종의 ‘쇼’를 하고 있고 결국 아버지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고 말했다. 림씨는 평양출신으로 쿠웨이트의 조선광복건설회사에 파견돼 일하다 탈출해 1997년 한국에 왔다. 탈북 뒤 소설 김정일 1, 2권을 잇달아 내놓았다. ●‘절반의 성공’ 그친 경주 국제펜대회 한편, 북한출신 문인들에 대한 관심을 호소했던 경주 펜대회는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북한 체제의 폐쇄성은 널리 알렸지만 정작 국내 문학계에 대한 정부의 압력에는 침묵했다. 진보성향의 젊은 문인들을 끌어안는 데도 실패했다는 지적이다. 글 사진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김정일이 만든 가상의 록음악

    김정일은 영화광이다. 또한 롤링 스톤스와 핑크 플로이드를 좋아했다. 저명한 북한 전문가 브루스 커밍스의 연구에 따르면 그렇다. 정치부를 거쳐 국제부 기자로 일하는 고일환은 이 이야기를 듣자 머릿속에서 ‘광명성 블루스 밴드’(스테이지팩토리 펴냄)라는 장편소설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로큰롤의 저항 정신과 자유로운 스타일로 사람들이 열광하게 되는데, 김정일의 열광은 엉뚱한 곳으로 뻗어나간다. 1972년 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이 환갑을 맞는 시점에 비틀스나 핑크 플로이드 수준의 록밴드를 만들어 서방세계 젊은이들에게 공화국의 위대함을 널리 알리겠다는 신념으로 비약하는 것이다. “…김정일은 백 발, 천 발의 대륙간 탄도탄보다도 악단이 더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수백만 수천만의 서구 젊은이들의 머릿속을 사회주의 사상으로 채울 것이다.”(140쪽) 언론사 기자로 14년을 일한 경험을 살려 40년 전의 북한을 아주 촘촘하게 되살려 냈다. 북한의 동독 유학생이나 북송 재일교포처럼 잊혀졌던 인물들이 록음악을 타고 이야기의 한복판에 살아났다. 작가는 “이야기는 모두 상상이지만 당시 평양 거리의 묘사나 등장인물의 역사적 배경에는 사실과 다른 것이 없다.”면서 “추리형식이 가미된 소설이니 동화처럼 읽으시라.”고 조언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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