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김일성
    2026-04-2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9,297
  • 박해일 “사랑한다는 표현 낯설어, 아들에게 엉터리같은 아빠”

    박해일 “사랑한다는 표현 낯설어, 아들에게 엉터리같은 아빠”

    배우 박해일이 사랑한다는 표현이 낯설다고 전했다. 박해일은 30일 MBC FM 4U ‘박경림의 두시의 데이트’에 출연해 최근 자신이 주연한 영화 ‘나의 독재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박해일은 ‘나의 독재자’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그동안 나의 작품 속에 아버지를 다룬 것이 거의 없었다. 아버지라는 단어를 많이 떠올리는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고 말했다. 박경림이 박해일의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냐고 묻자 “우리 아버지는 굉장히 남들 아버지처럼 평범하신 가장”이라면서 “사랑한다는 표현에 낯설어 하신다. 저도 그렇다”고 답했다. 이에 박해일은 아들에게 애정표현을 잘하냐고 묻자 “그래도 70~90년대보다는 시절이 많이 변했고, 아이들하고 소통하는 기회가 많아졌다”면서 “그런데도 제대로 된 아빠같지는 않다. 엉터리같은 아빠다”라고 자신을 평가했다. 한편 ‘나의 독재자’는 대한민국 한복판, 자신을 김일성이라 굳게 믿는 남자(설경구)와 그런 아버지로 인해 인생이 제대로 꼬여버린 아들(박해일)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손성진 칼럼] 친일과 뉴라이트, 그리고 기회주의

    [손성진 칼럼] 친일과 뉴라이트, 그리고 기회주의

    “내 조부가 친일이면 일제강점기 중산층은 다 친일파”라는 이인호 KBS 이사장의 강변(强辯)을 듣고는 생각난 단어가 지조와 절개다. 조선으로 치면 왜장(倭將)을 끌어안고 강물로 뛰어든 논개의 지조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라고 외친 사육신 성삼문의 절개 말이다. 총칼을 앞세운 일제의 회유와 협박에 논개나 성삼문처럼 행동할 용기를 가졌던 지식인들이 그 얼마나 되었을까. 비단 일제강점기 때만이 아니라 건국 이후 근 반세기에 가까운 독재의 시기에도 진딧물의 단물을 빠는 개미처럼 처신한 이 땅의 지도층, 지식인들은 수없이 많다. 옹호하려는 뜻은 전혀 아니다. 시대가 만든 비극이기도 하고 그 비극적인 시대에 산 사람들이 한편으로 측은하기도 하지만 가려내고 단죄하지 않는다면 역사의 발전은 있을 수 없다. 시종일관적이었던 골수 친일파보다 육당이나 춘원처럼 중도에 변신한 민족지사들이 더 욕을 먹는 것도 지조와 절개를 버린 데 대한 분노심 때문일 게다. 그들은 광복 후에도 친일 경력을 깨끗이 세탁하고 대한민국 정부에 귀의하는 ‘멋진’ 변신술을 보여 주었다. 변신은 현재 권력이나 사상과의 일종의 타협인데 지난 수십년간 권력 이동과 이념 투쟁의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태생적인 ‘확신범’도 있으나 전향이라는 이름으로 좌우와 여야를 넘나든 철새들 또한 드물지 않다. 가장 희극적인 전향이 김일성 주체사상을 추종하던 주사파가 이른바 뉴라이트의 한 축으로 변신한 것이다. 반미종북의 선봉에서 극단을 달리던 그들은 뉴라이트로 짐을 옮기고 나서도 시선만 정반대 방향을 바라볼 뿐 똑같이 극단을 달리고 있다. 그들의 방향 전환은 주지하다시피 공산주의의 몰락에 따른 정신적 붕괴의 결과다. 좌파로서는 기회주의적 변절이요 배신이다. 원의 바깥 선을 아무리 돌려도 여전히 바깥에 있듯이 극단은 결국 극단으로밖에 변신할 수 없는 것일까. 이 이사장도 변신과 전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1세대 러시아사학자로서 이 이사장의 성향은 원래 중도 진보였다고 한다. 1987년 역사문제연구소 창립 당시 강만길, 김진균씨 등 대표적인 진보 학자들과 함께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황모씨의 석방을 위한 탄원서에는 자신 때문에 서양사학과를 택했다는 최영미 시인과 동참하기도 했다. 김영삼 정부에서 역임한 핀란드 대사에 이어서 김대중 정부에서 여성 최초의 러시아 대사를 지낸 것은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진보처럼 보인 덕일 것이다. 그랬던 그가 돌연 뉴라이트의 선두에 서서 바뀐 정부의 공영방송 이사장직에 오르고 ‘대한민국 공로자로서 김구 선생을 거론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해방 직후 친일파 청산은 소련의 지령이었다’는 등의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그의 이런 변신은 조부의 친일이 공론화된 뒤부터인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엘리트 의식이 강한 이 이사장이 자존심이 상해 반대편으로 돌아섰을 것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할아버지 때문에 신념까지 바꾼, 어쩌면 그 자신이 현대사의 비극일지 모른다. 민주주의에서 신념의 자유는 보장되지만 정권과 시류에 영합하는 신념은 타인의 믿음을 얻지 못한다. 한국에서 ‘돈’과 ‘높은 자리’로 매매되지 않는 게 뭐가 있겠느냐는 어느 교수의 말은 과격해도 팔순을 눈앞에 둔 이 이사장의 ‘노욕’(慾)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인제 와서 “독재를 미화하고 일제 식민지 지배체제를 옹호한다는 비판은 터무니없다”는 것도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대표적 뉴라이트 학자인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2006년 한 방송에 나와서 ‘위안부를 강제동원했다는 객관적인 자료는 하나도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위안부 문제로 일본과 담을 쌓고 있는 박근혜 정부가 정부와 반대의 인식을 갖고 있는 뉴라이트 학자들을 대거 중용하고 있는 것은 이해불가다. 대북 관계의 직위에 종북 학자들을 등용한 꼴과 다를 게 없다. 지조와 절개, 변절 여부는 둘째 문제다.
  • [씨줄날줄] 제주도와 차이나 타운/구본영 논설고문

    당나라 전성기, 즉 성당(盛唐)시대 중국 동해안 일대에는 ‘신라방’이 있었다. 한반도 출신 상인·유학생과 망명객들의 집단 거주지로 신라의 사신들도 머물렀던 곳이다. 대제국 당은 꽤 개방적인 대외 정책을 폈던 모양이다. 신라 말고도 인도·페르시아 등 세계 70여개국과 무역을 했을 정도라니…. 역사는 돌고 도는 건가. 요즘 한반도 어디서나 중국 관광객과 상인들로 넘쳐나고 있다. 특히 중국인들의 제주도 부동산 사재기 열풍이 심상찮다. 제주 도심의 상가·모텔에서 아파트까지 문어발 식으로 매입 중이라고 한다. 한 해 수백만명이 넘는 중국 관광객, 즉 유커를 상대로 한 수지맞는 장사가 일차적 목적일 게다. 한화 5억원 또는 미화 50만 달러 이상 부동산에 투자하면 영주권을 주는 제도도 중국인을 제주도로 끌어당기고 있다. 이로써 외국 자본으로 제주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하지만 제주도민들은 큰 경계심을 보이고 있다는 전문이다. 무엇보다 유커들이 중국 가게로만 몰리게 되면 원주민이 소외되는 역설이 빚어진다는 걱정이다. 얼마 전 국정감사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제주도에 ‘차이나 타운’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제기한 배경도 이와 무관치 않다. 차이나 타운은 중국 자본이 마구잡이로 제주 전역의 토지를 잠식하지 않도록 울타리를 치자는 발상이다. 원희룡 제주지사가 “오히려 국민이 우려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완곡히 거부해 없던 일로 됐지만, 국민 여론이 중국인들의 부동산 사재기를 양날의 칼로 보고 있음을 방증하는 사례다. 사실 세계시장에서 중국의 물량 공세가 사뭇 위협적이다. 최근 중국 안방보험그룹이 미국의 자존심인 뉴욕의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을 사들여 주목을 받았다. 약 2조원의 자본을 유치한 미국이 상당한 대가를 감수해야 할 판이다. 미 국무부가 전 세계 정상들이 묵는 이 호텔에 중국 정부가 도청장치라도 달까봐 고심하고 있다니 말이다. 그러나 자본이 초단위로 국경을 넘는 세계화 시대다. 제주도의 정체성 훼손은 유의해야겠지만, 이러다간 중국땅이 되고 만다는 식의 반응도 성급하다. 2000년 방북한 언론사 사장단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화 장면이 생각난다. 당시 한 남측 인사가 백두산을 관광지로 개발하자고 제의하자 김정일은 “닭도리탕 집과 러브호텔로 뒤덮일 것”이라고 일축했다. 김일성 가계 우상화로 도배된 백두산을 개방하는 데 따른 위험부담을 고려한 거부였겠지만, 난개발을 부추기는 남측의 상혼도 들춰낸 셈이다. 중국 자본에 의한 제주도의 난개발 가능성이야말로 우리가 신경 써야 할 대목일 듯하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서울&평양 리포트] 북한 여군의 세계…고사포·폭격기 조종 척척 17세 입대 7년 의무 복무

    [서울&평양 리포트] 북한 여군의 세계…고사포·폭격기 조종 척척 17세 입대 7년 의무 복무

    지난 10일 민간단체가 경기 연천 접경지역에서 대북 전단 풍선을 날리자 북한군이 대공무기의 일종인 14.5㎜ 고사총 사격을 했다. 남북 화해 분위기를 일순간 얼어붙게 만든 도발의 당사자들이 의외로 꽃다운 나이의 여군 고사총 중대원들이라는 설(說)이 탈북자들을 중심으로 힘을 얻고 있다. 지난 3월 노동신문이 공개한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인민군 2620군부대의 시찰 사진은 의미심장하다. 환하게 웃고 있는 김 제1위원장의 모습과 그의 양팔을 부여잡은 여군 조종사들이 마치 남성 아이돌 스타에 열광하는 ‘오빠 부대’를 연상시키듯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고 있다. 신문은 김 제1위원장이 “여성 조종사들이 불리한 기상 조건 속에서도 전투 동작들을 훌륭히 수행했다”고 보도했다. 이들 여군은 대부분 지상 100m 이내의 저고도를 날아 특수부대를 실어 나르는 침투용 비행기 AN2기 조종사로 알려졌다. 이는 북한 여성들이 군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 준다. 우리 군 당국이 올해부터 여군에게도 포병·방공 병과 진입을 허용하고 2002년부터 여성 공군 조종사를 배출해 왔지만 북한 여군보다는 늦어도 한참 늦다는 평가다. 오늘날 북한 여군은 군관(장교)과 부사관, 병사 등을 합해 18만여명으로 북한군 전체 병력의 15% 이상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장교와 부사관으로만 구성된 한국군 여군 9228명(올해 6월 기준)에 비해 20배 가까이 많은 수치로 대표적인 ‘비대칭 전력’으로 불릴 만하다. ●대북전단 풍선 사격 여군 고사총 중대원說 전통적으로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북한 수령 3대는 여군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북한은 항일무장 투쟁 시기인 1936년 4월 중국 두만강 부근에서 조직한 여군 중대가 북한 여군의 효시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1947년 10월 평양학원 제1기 졸업생 800명 가운데 여성 중대 300명이 여군 간부로 배출된 데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성 군인 대체 인력으로서의 역할이 강했던 여군이 전투병으로 본격 활약한 것은 1970년대 들어서다. 북한은 1962년 ‘전인민의 무장화’, ‘전국의 요새화’, ‘전군의 간부화’, ‘전군의 현대화’라는 4대 군사노선을 주창한 뒤 최고사령관 김일성의 명령에 따라 평양시 대공방어를 위해 여군만으로 편성된 최초의 여군고사총 여단을 창설했다. 1964년부터는 여군 간호사를 양성해 각 군단 병원에 배치했고, 1971년 이후 전투부대까지 여군을 확대하면서 지상군 사단과 연대의 고사총 중대를 대부분 여군으로 교체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여군 사랑은 각별했다. 김 위원장이 사망하기 몇 년 전 방문했던 군 부대 중 최소 3분의1이 여군부대라는 증언도 있다. 그는 방문했던 여군부대에 선물과 함께 ‘감나무 중대’, ‘들꽃중대’라는 칭호를 부여해 사기를 진작시키고자 했다. 1995년 1월 1일에 평양 고사포사령부 예하 부대인 다박솔 중대를 찾은 김정일 위원장과 부인 고영희(2004년 사망)의 일화는 지금도 여군부대의 선전용으로 쓰이고 있다. 고영희가 여군들의 터진 손등을 보고 자기가 가져 갔던 크림을 선물하자 이를 본 김 위원장이 전체 여군에게 핸드 크림을 포함한 화장품을 선물했다는 내용이다. 북한이 최고지도자의 여군에 대한 현지지도를 부각시키는 이유는 여군들이 군내 대체 인력이 아닌 정규군으로서 제 몫을 다하고 있다는 모습을 과시하고 사회적으로 만연한 군 복무 기피 현상을 타개하겠다는 목적이 강하다. 이 밖에 인민들에 대한 사랑과 긍휼, 자기 희생을 표현해 최고지도자의 자애롭고 보듬어 주는 이미지를 형상화하려는 목적도 있다는 분석이다. ●예전엔 선망… 복무 길어 지금은 ‘군대 바보’ 북한에서는 여성 병사도 남성과 똑같이 고등중학교 졸업 시기인 만 17세에 입대한다. 지원제로 운영하나 실제 운영은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반강제적으로 입대하게 된다. 북한은 2003년 3월 여군의 의무복무 기간을 7년으로 법제화했다. 모집 연령이 만 17세임에 따라 23세에 만기 전역하고 군관으로 선발되면 19세에 군관교육을 받고 25세 이상까지 복무할 수 있다. 이 복무 기간은 최근 김 제1위원장의 복무 기간 연장 지시에 따라 1년 이상 늘어난 것으로 관측된다. 여군은 대체로 통신, 대공포, 해안포 부대, 군의소 등에 배치되는데 소수의 여군에 한해 일부 특수부대에 배치되기도 한다. 여군들은 첨단 전투기를 조종하지는 않지만 AN2 항공기, YAK18 항공기 조종사와 항공탐지수 등은 대부분 여군들이 맡고 있다. 이 밖에 저공 폭격기인 러시아제 일류신(IL)28 항공기 조종사의 경우 전원이 여군이라는 증언도 있다. ●복무 중 남녀교제 금지… 발각 땐 ‘불명예제대’ 황해도의 북한군 4군단 통신부대에서 10년간 복무했던 이소연(41·여) 뉴코리아여성연합 대표는 “1990년대만 해도 월급은 적었지만 ‘군에 가면 굶어 죽지는 않겠지’라는 생각과 6년 정도 복무하면 노동당에 입당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에 여군 입대에 대해 선망하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2003년부터 2010년까지 평안남도에서 3군단 병사로 복무했던 김모(29·여)씨는 “먹고살기 어려워지자 군인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며 “시집을 가려면 장사를 할 수 있는 등 가족을 부양할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군에만 있다 보니 무능하다고 해서 요즘에는 여군들을 ‘군대 바보’로 부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여군들은 대체로 자대에서 남성 군인들과 같이 생활하지 않고 여군들끼리 제대를 편성해 생활한다. 대공 방어 임무를 맡은 14.5㎜ 고사총 중대는 90~100명 규모로 5~6명이 한 개 조로 고사총 한 대를 맡는다. 규모가 큰 포병무기에 비해 고사총은 체구가 작은 여성들도 옮길 수 있고 다루기 쉽다. 하지만 탈북자들에 따르면 간부집 딸이나 예쁘고 똑똑한 여자들은 사단 참모중대, 사단 군의소나 연대 군의소에 배치되고, 여성 고사총 중대에 배치된 여군들은 일종의 막노동 비슷한 일을 하게 된다. 이 대표는 “북한에서는 여군들도 7년 이상 복무하기 때문에 21개월의 짧은 군 생활을 하는 남한의 남자 병사들보다 숙련도가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군부도 여군의 숫자가 많아 골머리를 앓을 때가 많다. 남자는 30세, 여자는 26세까지 장기간 군복무를 해야 하는 폐쇄된 사회에서 장병들의 성(性)군기 문란을 방지하기가 쉽지 않다. 드물기는 하지만 여군과 남군이 눈이 맞아 제대할 때 결혼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군 복무 중 남녀 간 공식적인 교제는 금지되고 몰래 관계를 갖다 발각되면 생활제대(불명예제대) 조치를 당한다. 여군의 결혼은 하전사(부사관) 이하는 금지하고, 군관의 경우 만 26세 이상은 허용하고 있다. ●장성급 4~5명… ‘유리천장’ 여전히 높아 우리 군 병영에서 여군에 대한 성폭력 문제가 부각된 가운데 북한 내 병영 성폭력 문제도 관심거리다. 탈북자들은 북한군 내 여군 인권이 더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여군의 숫자가 많아도 장령(장성)급 장교는 전체 1100~1200명 가운데 4~5명 정도인 것으로 추정돼 위로 올라갈수록 여성에 대한 ‘유리천장’은 여전히 높다. 한 여군 출신 탈북자는 “부대원이 중대 정치지도원(정치장교)에게 성폭행당한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면 그 간부는 구두 경고하는 선에서만 그치고 피해자는 다른 부대로 전출시킨다”고 말했다. 이 대표도 “1999년에는 통신부대 남성 중대장이 당시 중대원인 여군 120명 가운데 30명을 매일 밤 불러 성폭행한 사건으로 떠들썩했다”면서 “이처럼 큰 사건이 아니면 대부분 가해자인 남성 간부들은 처벌받지 않고 넘어가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믿고 보는 이 남자… 30일 개봉 ‘나의 독재자’ 주연 설경구

    믿고 보는 이 남자… 30일 개봉 ‘나의 독재자’ 주연 설경구

    그는 배우다. 1989년 이후 26년째 오로지 배우로만 살고 있다. 연극 ‘심바새매’에서 간드러진 호모였을 때도, 뮤지컬 ‘지하철 1호선’(1996)에서 얼떨결에 운동권 대학생 행세를 하며 청량리 창녀촌에 빌붙어 살 때도, ‘박하사탕’(2000)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린 김영호가 흔들리는 눈빛으로 달려오는 기차 앞에서 울부짖을 때도, ‘실미도’(2003)에서 버림받는 북파공작원일 때도, 단순 무식한 경찰 강철중으로 ‘공공의 적’(2008)을 무식하게 때려잡을 때도, 그는 늘 배우였다. 설경구를 버리고 연극 또는 영화 속 그 인물로 살았다. 얼핏 진창 없이 잘 닦인 길만 걸어온 듯 보인다.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찻집에서 만난 배우 설경구(46) 역시 자신의 배우 인생에 대해 “운이 좋아 잘 풀렸다”고 말했다. 근데 30일 개봉하는 영화 ‘나의 독재자’ 얘기를 꺼내면서는 약한 모습을 덤덤히 밝혔다. “마치고 나니 허전해요. 영화만 20년 넘게 했는데 요즘 자꾸 흔들려요. 기술자라면 장인이라도 됐을 시간인데 저는 더 이상 꺼내 보여줄 카드가 없다는 느낌이 자꾸 드네요.” ‘나의 독재자’에서 설경구의 역할은 배우다. 그냥 배우가 아니라 변변한 배역은커녕 무대에 서지도 못했던 무명배우다. 또한 이십수년이 흘렀건만 아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기 힘겨운, 실패한 아버지 역할이다. 탄탄대로를 걸어온 배우 설경구가 영화 속 무명 배우의 설움을 몸으로 이해했을까. 그는 “대학 졸업 직전 몸담았던 대학로 극단 시절은 매일같이 포스터 붙이고, 표 팔고, 손수레 끌고 극장 와서 무대 사진 찍으면 하루가 저무는 나날이었다”면서 “한 선배가 ‘너는 배우가 안 맞는 것 같다, 스태프를 하는 게 더 낫다’고 얘기했을 때 속으로 욕하고 얼마 뒤 호기롭게 ‘프리’를 선언하며 나와 버렸다”고 말했다. 말이 근사해서 프리랜서였지, 아무런 전망도 계획도 없었다. 그냥 ‘대학로 백수’였다. “그 당시 사실 딱히 특별한 목표나 꿈도 없이 그냥 대학로에 있었어요. 막연히 연기를 계속하고 싶은 열망만 있었죠. 그 시절의 설움이 컸었죠.” 갈 곳도, 오라는 곳도 없었다. 설경구는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 극단 ‘학전’에서 포스터에 풀을 바르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다 학전 김민기 대표의 눈에 띄어 전격적으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에 주연급으로 캐스팅됐다. 잘나가는 배우로 접어드는 시작이었다. 설경구가 생각하는 ‘나의 독재자’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자신의 존재도 없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찌들어 살아온 그 시대의 아버지들은 자식에게 군림해 왔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자식에게 뜯어 먹힌 세대”라면서 “영화 속 김성근과 같은 우리의 아버지들을 계속 생각하며 연기했다”고 말했다. 김성근은 무대 위 조명 속에서 덜덜 떨며 대사를 까먹는 추레한 리어왕의 광대이거나 남북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가짜 김일성’이다. 일생일대의 최대 배역을 맡았지만 이것마저 정상회담 무산에 따라 없어져 버리고, 22년 동안 현실을 부정한 채 과대망상증에 걸리고 마는, 평생에 걸쳐 실체가 없는 배우다. 하지만 김성근이 인정받고 싶은 진정한 관객이 있다. 아들 태식(박해일)이다. 영화 후반부에 성근은 인생 최대의 연기를 선보이는 곳에서 김일성 역할을 마쳤고, 덤으로 가슴 깊이 응어리졌던 단 한 명의 관객, 아들에게 한없이 부끄러웠던 기억까지 모두 털어낸다. 아들 앞에서 드디어 진짜 배우, 진짜 아버지로 거듭나게 된다.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부담이 아주 컸어요. 가장 중요한 대목이었으니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컸고…. 그 장면을 연기할 때 저절로 눈물이 흘렀는데, 이해준 감독이 갑자기 대본상 두 줄 앞에서 눈물을 흘리라고 요구하더라고요.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던 상태라 짜증을 부리기도 했죠. 허허.” 훌쩍 커 버린 아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권위 있는 척 연기하며 살아왔던 우리 세대의 아버지들에게 설경구가 바치는 내용이다. 또 잘나가는 배우로서 세상 모든 무명 배우들의 삶을 껴안아 주는 뜨거운 포옹이기도 하다. 작품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줄 아는 배우는 단순한 선망의 대상이 아니라 존경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슬며시 깨닫게 해 준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통합진보당은 폭력혁명·종북노선 추구”

    “통합진보당은 폭력혁명·종북노선 추구”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11월 접수된 ‘통합진보당 위헌정당 해산심판’ 사건에 대한 심리를 1년 가까이 이어 오는 가운데 1980년대 국내 대학가에서 ‘주체사상의 대부’로 불렸던 김영환(51)씨와 혁명조직(RO) 사건 제보자를 불러 신문하는 등 심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앞서 박한철 헌재 소장은 지난 17일 국정감사 오찬장에서 ‘연내 결정’ 입장을 밝힌 바 있다. 21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재 청사에서 열린 진보당 해산심판 청구사건 16차 공개변론에 법무부 측 증인으로 나선 김씨는 진보당을 “폭력혁명과 종북노선을 추구하는 정당”이라고 규정했다. 서울대 법대 82학번인 김씨는 1989년 북한 노동당에 입당하고 밀입북해 김일성 주석을 만난 뒤 지하 정당인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을 조직했으며 1999년 구속됐다가 사상 전향서를 쓰고 풀려났다. 김씨가 작성한 ‘강철서신’은 운동권에서 주체사상 교본으로 통했다. 김씨는 “사법적 판단이 된 이상 진보당처럼 폭력혁명, 종북적 노선을 추구하는 정당을 합헌이라고 판단한다면 국민과 광범위한 주사파, 일반 진보당 당원 모두에게 잘못된 사인을 주지 않을까 우려해 증언에 임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주사파는 지금도 폐쇄적이고 고루한 옛날식 이념과 노선에 집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진보세력이라기보다는 수구세력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진보당 김미희, 이상규 의원이 1990년대 지방선거에 출마했을 당시 북한 측 자금이 쓰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민혁당 하부조직에 1995년 지방선거와 1996년 총선에 입후보하라고 지시해 성남에서 김미희 후보가, 구로에서 이상규 후보가 각각 지방선거에 출마했다”며 “한 명당 500만원씩 지원했는데 밀입북 당시 받은 40만 달러와 민혁당 재정사업으로 번 돈이지만 그들은 북측 자금인지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진보당 측은 “김씨는 1997년 결별 이후 민혁당 보수파 등과 만난 적이 없고 진보당에 가입하거나 회의에 참석한 적도 없다”며 김씨 진술은 과거 경험과 전언을 토대로 한 일방적인 추측이라고 반박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커버스토리] 남북 70년 ‘삐라 전쟁’

    [커버스토리] 남북 70년 ‘삐라 전쟁’

    “인민군 동지 여러분! 평양, 원산 등은 이미 B29의 폭격으로 폐허가 됐고, 그대들을 사선으로 몰아낸 김일성 등은 만주 봉천으로 도피했다. 머지않아 전 세계 각국은 보조를 같이하여….” 1950년 7월 국방부가 북한군에 뿌린 대북전단(삐라)의 내용이다. 물론 이미 낙동강까지 밀고 들어온 북한군이 이를 믿을 리는 만무했다. 대북 전단은 1945년 해방 이후 분단이 고착화되면서 간헐적으로 살포됐지만 6·25 전쟁 때부터 본격화됐다. 일부 전단 살포 단체들은 성경에 나온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유해 자신들이 보내는 대북 전단을 ‘다윗의 물맷돌’이라고 부른다. 이들이 기대하듯이 실제로 북한이라는 ‘골리앗’이 대북 전단으로 전복될 수 있을까. 대북 전단을 둘러싼 남북·남남 갈등의 한편으로 정말 북한 체제가 흔들릴 정도로 이들 전단의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 근본적으로 따져 보자는 주장도 있다. 효과 논란은 6·25 전쟁 때도 있었다. 당시 미군은 포로들에게 전단을 읽었는지, 전단의 내용을 믿었는지 등을 물어 효과를 검증하기도 했다. 1950년 존스홉킨스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그해 9~11월 전쟁 포로를 신문한 결과 33.1%가 항복 이유로 심리전을 들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다른 보고서는 이를 반박하기도 했다. 적의 발목까지 쌓일 정도로 전단이 뿌려졌는데, 적군의 사기가 저하됐거나 분열된 증거가 있느냐는 반론이었다. ‘삐라’가 효과가 있다는 주장은 언론학의 ‘탄환이론’을 연상하게 한다. “나도 삐라를 보고 탈북을 결심했다”는 탈북자들의 증언이 대북 전단의 선전 메시지가 북한 대중에게 강력한 영향을 줬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자유북한방송 김성민 대표는 “북한 주민의 의식을 계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내가 일단 그 수혜자”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삐라 한 장’ 자체만으로 북한 사회가 흔들리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북한 엘리트들의 반발도 체제 비판에 대한 불쾌감 때문이지 주민 동요 때문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실제 북쪽을 향해 살포된 전단 가운데 북한 땅에 떨어지는 비율은 5%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창수 코리아연구원 연구실장은 “북한이 반발하니까 효과가 있다고 말하지만, 대북 전단의 내용 자체가 너무 말초적이고 저급하기 때문에 반발하는 것”이라며 “최고지도자의 사진이 나온 노동신문을 깔고 앉아도 처벌되는 통제 국가에서 공안 당국의 단속과 충성심 경쟁만 유도해 북한 주민에 대한 효과보다는 내부의 공안 통치만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석 기자 ccto@seoul.co.kr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그래픽 강미란 기자 mrkang@seoul.co.kr
  • [커버스토리] “월북하면 100억” 달콤한 유혹… ‘USB에 한국 가요’ 문화적 충격

    [커버스토리] “월북하면 100억” 달콤한 유혹… ‘USB에 한국 가요’ 문화적 충격

    남북한이 살포해 온 전단의 내용물은 시대적 상황 변화와 궤를 같이해 왔다. 전단 살포의 목적은 물리적인 전투를 직접 벌이지 않고 상대 집단의 가치체계에 혼란을 야기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전단은 당시의 정치·경제·사회상을 그대로 반영해 왔다. ●남북 가치체계 혼란 야기 ‘조용한 전쟁’ 전쟁 중에는 항공기로 적지에 살포하는 전단이 가장 보편적인 방식이다. 1950년 6월부터 1953년 7월까지 미 8군사령부와 극동사령부가 뿌린 대북 전단은 24억 6000만장이 넘는다. 우리 군이 뿌린 대북 전단까지 합하면 40억장이 넘는다는 추산도 있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월에는 한 달간 1억 5000만장의 전단이 살포되기도 했다. 북한 측도 3억장을 살포하며 대응했다. 양측 모두 귀순을 유도하며 추위와 배고픔에서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이 주를 이뤘다. 국군이 전쟁 당시 북한군을 상대로 살포한 삐라에는 “중공군이 좋은 무기는 자기네가 차지하고 못쓸 무기만 북한군에 넘겨 주고 있다”며 북·중 혈맹 관계를 이간질하는 내용이 들어 있어 눈길을 끈다. 당시 김일성-마오쩌둥(毛澤東)으로 연결되는 북·중 관계는 항일투쟁의 동지로 혈맹 이상으로 여겨졌다. 유엔군 총사령관 명의로 북한군에 살포한 삐라도 귀순을 유도하는 ‘안전보장증명서’가 대표적이다. 한국어와 영어, 중국어로 된 이 증서는 이 종이를 가지고 항복하면 무조건 항복을 받아들이겠다는 내용이다. 북한은 6·25 전쟁에 참전한 미군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무고한 주민들을 살해하는 미군의 모습을 그린 삐라를 제작해 대응했다. 사기를 떨어뜨리고 미군들의 향수를 자극하기 위해 ‘사랑하는 어머니께’(Dear Mom)로 시작하는 편지의 내용을 어머니가 읽고 있는 내용도 있었다. 우리 군 장병 가운데 북한에 투항한 병사가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는 내용도 많았다. 6·25 전쟁이 끝난 직후 남북한의 삐라전쟁은 경제발전상을 그대로 반영했다. 특히 북한이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던 1950~1960년대는 대남 공세가 거셌고 혼란한 시대상을 틈타 실제 월북한 인사도 많을 정도로 남한 정부는 수세에 몰렸다. 북한은 1960년대와 1970년대 김일성 주석의 우상화 작업을 본격화하면서 ‘우리 장군님 제일이야’, ‘민중 위주의 나라’, ‘치료비·공해 없는 민중이 살기 좋은 세상’ 등의 내용이 적힌 삐라를 살포했다. 특히 1960년대까지 평양의 빌딩과 가정집을 전단에 담아 월북하면 아파트까지 주겠다고 제의했다. 하지만 남한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212달러로 북한(194달러)을 앞지른 1969년 이후 상황이 바뀌게 된다. 1970~1980년대 체제 경쟁에서 점차 밀리게 된 북한에서 넘어온 삐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여성편력 등을 거론하며 모욕하는 내용이 많았다. 1980~1990년대에 와서는 의거월북하는 국군 장병들에게 대학 교육까지 무료로 시켜 주는 동시에 생활보장금으로 최고 3억원, 상금으로 100억원이 넘는 돈을 준다는 과장된 내용도 나왔다. 남한은 1970년대 서울에서 가장 높던 삼일빌딩(31층)을 내세웠다. 1980년대에 와서는 국산 자동차의 세계 수출이나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소 등 경제 발전상을 과시했다. ●1970년대 말부터 ‘풍선 대북전단’ 요즘처럼 풍선에 싣고 대북 전단을 살포하는 모습은 197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의 전신)가 심리전을 기획하면서 타이완 국민당 정부가 풍선에 식료품을 실어 중국 본토에 보내는 사례를 본뜬 것이 시초로 알려져 있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북한제 ‘천리마 라디오’와 같은 모양의 라디오를 만들어 대북 전단 풍선에 실어 보냈다. 대북 전단 풍선에 다는 타이머 역시 타이완 정부가 가르쳐 준 것으로 전한다. 정부는 당시 이에 대한 보답으로 타이완이 계절풍을 이용해 중국 둥성 쪽에 전단을 보낼 수 있도록 전북 부안에 임시 기지를 제공하기도 했다. 남한은 1980년대부터는 유명 연예인 사진을 전단에 넣고 월남을 유도하기도 했다. 또 선정적인 여자 모델 사진과 함께 귀순을 유도하고 월남할 때의 보상금과 혜택의 범위를 기재했다. 1990년대 중반 탈북한 정모씨에 따르면 당시 남한 정부는 삐라와 함께 옷 양말, 통조림, 1㎏짜리 봉지쌀, 여자 속옷, 시계 등을 비닐로 포장해 살포하기도 했다. ●北, 배용준·이승연 사진 넣어 대남전단 북한도 1990년대 이후부터 남측 유명 연예인들이 등장한 삐라로 관심을 끌고자 했다. 당시 유명세를 탄 배용준이나 이승연의 사진에 ‘민족의 제일 자랑 김정일 장군 만세!’라는 문구를 넣어 이들이 북한을 찬양하는 것처럼 디자인한 것이다. 북한의 대남 전단 공세는 김대중 정부가 대북 포용정책과 남북정상회담을 실시하던 2000년대 초에도 지속됐지만 남북한이 2004년 심리전을 중단하기로 함에 따라 주춤해졌다. 북한은 대신 인터넷을 통한 선전 선동으로 방향을 바꿨다. 노동당 통일전선부의 ‘우리 민족끼리’ 사이트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2010년 천안함 사건에 따른 5·24 대북 제재 조치로 심리전이 재개됐고, 북한은 지난해 연평도와 백령도 등 접경 지역에 한국군의 전투의지를 꺾는 내용의 전단을 살포하기도 했다. 2000년대에는 정부 대신 탈북자 출신 민간단체들이 대북 전단 살포에 나섰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의 치부를 겨냥한 삐라 살포는 북한 체제에 위협이 됐다. 이들은 김씨 정권이 수입하는 프랑스 코냑, 종마, 명품 가방, 시계와 유아용품 등 사치품을 부각시켰다. 특히 김정일의 여성편력 등 문란한 사생활 등에 초점을 맞추면서 북한이 ‘상호비방’ 중지를 요구하고 나선 계기로 평가된다. 자유북한운동연합 등의 대북 민간단체들이 지난 10일 경기 파주시 통일전망대 주차장에서 풍선에 매달아 띄운 전단에는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영결식 사진과 함께 “우리 탈북자들은 북조선 인민해방과 민주화를 위해 김정은 3대 세습을 끝내기 위한 자유민주통일의 전선으로 달려간다”는 내용이 담기기도 했다. ●김정은 일가 가계도 실린 대북전단도 특히 최근 대북 민간단체들은 전단에 보통 1달러짜리 지폐나 USB 등도 같이 넣어 보낸다. USB에 담긴 한국 드라마나 영화, 가요 등을 통해 문화적 충격을 주기 위한 것이다. 최근 북한이 전단 살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 일가의 가계도가 실렸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김 제1위원장의 생모 고영희의 부친은 제주도 출신의 재일교포로 조총련의 동포 귀국 사업에 따라 북한에 들어간 인물이다. 북한에서 재일교포들은 항일혁명과 6·25전쟁 후 재건을 이룩한 주류 사회와 달리 기회주의자로 평가된다. 북한 당국이 순수혈통으로 권위를 내세우는 ‘백두혈통’이 알고 보니 제주도 출신 재일교포 후손이라는 내용은 김 제1위원장의 권위를 손상시킬 수밖에 없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공공기관 교육원장, 세월호 유가족에 막말하고 5·18비하

    외국인전용 카지노 사업을 담당하는 관광공사 자회사 그랜드코리아레저(GKL)의 교육원장이 지속적으로 세월호 유가족에게 막말하고,5·18과 전라도 지역을 비하하는 발언을 SNS 상에 올린 사실이 드러났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박혜자 의원은 17일 관광공사 국정감사를 앞두고 공개한 자료를 통해 “세월호 유가족에게 막말하고,야당 국회의원들을 조롱하고 5·18 광주항쟁과 전라도민을 비하하는 등의 내용을 지속적으로 SNS에 올린 홍은미 GKL 교육원장을 해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 원장이 SNS에 올린 글 중에는 “자식 죽었는데 왜 부모에게 보상금을 주느냐? 노후 보장수단으로 자식 낳아 키운 거야?”라고 세월호 유가족을 조롱하는 내용이 있었다. “단식 결심했으면 조용히 죽을 때까지 할 수 없을까?”라고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 씨의 단식에 막말을 하기도 했다. “통진당과 민주당 강경파들이 모두 완전 단식에 동참하여 죽게 된다면 우리나라가 진전하고 약진하는 데 큰 기여를 하는 것이다. 근데 항상 죽지 않을 정도로만 단식하면서 소란 피우고 국정 마비시키는 게 문제다”고 야당 의원들을 비꼬기도 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전라도 지역을 비하는 글도 지속적으로 올렸다. “5·18은 북괴 김일성이 배후에서 조정한 국가전복 반란사태였다”, “전라도는 온갖 해괴하고 이상한 일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지방”,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완전 장악한 게 전라도다. 어이 상실을 넘어 두려울 정도”라는 등의 글을 올렸다. 박 의원은 “(홍 원장이 올린) 내용이 정상인이라면 어떻게 이럴까 싶은 생각이 든다”며 “일반 말단 사원도 아닌 고위직 간부가 이런 글을 지속적으로 올리는 것은 문제다”고 말했다. 이어 “GKL은 한국관광공사가 지분의 51%를 보유하고 있는 공공기관인데,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원장이 이런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은 문제 있다”며 해임을 촉구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정은 신변이상설 불식… 南 5·24조치 언급 후 ‘깜짝 등장’

    김정은 신변이상설 불식… 南 5·24조치 언급 후 ‘깜짝 등장’

    건강이상설이 나돌던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40일 만에 전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 등은 14일 김 제1위원장이 평양에 완공된 과학자 주택단지인 위성과학자주택지구를 현지지도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1~3면은 김 제1위원장이 왼손에 지팡이를 짚고 이동하는 사진 및 관계자들과 함께 찍은 단체사진 등을 게재해 그가 건재함을 보여 줬다. 중앙통신은 “김정은 동지께서는 살림집, 소학교, 초급중학교, 약국, 종합진료소, 위성원, 태양열 온실 등 위성과학자주택지구의 여러 곳을 돌아봤다”고 밝혀 그가 일상적인 움직임에 불편이 없음을 시사했다. 이날 공개된 김 제1위원장의 모습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지팡이’였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지팡이 등 보장구에 의지해 활동하는 모습은 아버지 김정일 때는 보기 어려웠던 장면이다. 이 때문에 김 제1위원장이 아직 건강을 회복하지 않은 상태에서 활동을 재개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 매체들이 이번 현지지도의 사진만 공개하고 영상을 방영하지 않아 정확한 몸 상태를 확인하기는 어려웠지만 이날 김 제1위원장의 흡연 사진이 조선중앙TV에 보도되는 등 일각의 ‘중병설’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정부는 그동안 발목 관절 수술과 통풍, 족저근막염 등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김 제1위원장의 동향을 살핀 것으로 전해졌다. 일반적으로 단순 발목 수술의 회복 기간이 6주(42일) 정도이고 41일 만에 나온 김 제1위원장의 행적이 공교롭게 일치한다는 점에서 발목 관절에 문제가 있었다는 관측에 더욱 힘이 실린다. 지난달 3일 모란봉악단 음악회 관람 이후 중요 정치 행사 등에 불참한 김 제1위원장이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은 외부 행사를 통해 다시 활동을 재개한 배경에도 관심이 쏠린다. 지난 3월 그가 직접 당 창건일(10월 10일)까지 위성과학자주택지구 완공을 독려한 바 있어 이번 현지지도는 자신의 지시를 직접 확인하는 것과 더불어 민생 문제를 중시하는 지도자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정부 당국자는 “핵·경제 병진 노선을 시사하고 실각설 등을 불식시키기 위한 것일 수 있다”면서 “(자신이 지시한 건설이) 만족스럽게 성과를 나타낼 정도가 됐기 때문에 그곳을 선택한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위성과학자주택지구는 북한의 핵·미사일 및 항공우주과학 분야 과학자들이 거주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팡이를 짚고 나오면서 잠적 전과 후의 김정은 이미지가 전혀 달라졌다”면서 “할아버지 김일성과 같은 성숙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김 제1위원장의 활동 재개를 최근 남북 관계와 연관 짓는 분석도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준비위원회 전체회의를 주재한 바로 다음날 김 제1위원장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 일종의 ‘계산된 등장’일 수 있다는 관측이다. 앞서 박 대통령은 2차 고위급 접촉이 열리면 북한과 5·24조치에 대해 대화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무엇보다 ‘김정은 건강이상설’로 인한 대북 정세의 최근 불확실성이 다소 해소된 만큼 우리 정부는 2차 고위급 접촉 준비에 더욱 집중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안석 기자 ccto@seoul.co.kr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김정은 공개석상 등장, 뇌사설까지 등장한 배경은? ‘현재 사진보니..반전’

    김정은 공개석상 등장, 뇌사설까지 등장한 배경은? ‘현재 사진보니..반전’

    ‘김정은 공개석상 등장’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공개석상에서 모습을 감춘 지 41일 만에 지팡이를 짚은 채 등장했다. 14일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평양에 완공된 과학자 주택단지인 위성과학자주택지구를 현지지도 했다”고 보도했다. 같은날 노동신문 1면에는 공개석상에 등장해 환하게 웃는 김정은의 사진이 실렸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난달 3일 모란봉악단 신작 음악회 관람 이후 40일여일간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앞서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7월 8일 김일성 주석 20주기 중앙추모대회에서 처음으로 다리를 저는 모습을 보이면서 건강이상설이 제기됐다. 이후 9월 3일 모란봉악단 음악회 관람 이후 두문불출하자 뇌사상태 설과 쿠데타 설 등 갖가지 억측이 난무했다. 이날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위원장이 “위성과학자주택지구의 여러 곳을 돌아보시면서 건설 정형(실태)을 구체적으로 요해(파악)하셨다. ‘희한한 풍경이다, 건축 미학적으로 잘 건설됐다’고 만족감을 표했다”고 전했다. 공개석상에 등장한 김정은은 이날 주택지구에 입주할 과학자들과도 기념사진을 촬영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앙통신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현지지도 날짜를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최고지도자의 현지지도를 이튿날 보도했다는 점에서 김 제1위원장의 위성과학자주택지구 방문은 13일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공개석상에 등장한 김정은 위원장은 왼손으로 지팡이를 짚어 왼쪽 다리가 완전히 회복 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위성과학자주택지구와 자연에네르기연구소를 둘러본 만큼 건강에 큰 이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네티즌들은 “김정은 공개석상 등장, 찌라시에는 뇌사했다더니”, “김정은 공개석상 등장, 건강이상설 헛소문이었구나”, “김정은 공개석상 등장, 건강해보이네”, “김정은 공개석상 등장, 다리는 왜 절까”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 = 뉴스캡처 (김정은 공개석상 등장) 뉴스팀 seoulen@seoul.co.kr
  • 김정은 공개석상 등장 “지팡이는 도대체 왜?”

    김정은 공개석상 등장 “지팡이는 도대체 왜?” 건강이상설에 휩싸였던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40일 만에 공개활동에 나서 건재를 과시했다. 그러나 김 제1위원장이 지팡이를 짚고 현지지도하는 사진이 공개돼 아직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조선중앙통신과 조선중앙방송 등 북한 매체들은 14일 김 제1위원장이 평양에 완공된 과학자 주택단지인 위성과학자주택지구를 현지지도했다고 보도했다. 중앙통신은 김 제1위원장의 현지지도 날짜를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과거 보도 관행으로 미뤄 하루 전인 13일일 것으로 추정된다. 김 제1위원장의 공개활동은 지난달 3일 모란봉악단 신작 음악회 관람 이후 40일 만이다. 김 제1위원장이 집권 이후 최장기간의 두문불출을 깨고 건재를 과시한 만큼 그동안 불거진 그의 신변이상설도 빠르게 사그라질 것으로 보인다. 중앙통신은 “김정은 동지께서는 살림집(주택), 소학교, 초급중학교, 약국, 종합진료소, 위성원, 태양열 온실 등 위성과학자주택지구의 여러 곳을 돌아보시면서 건설 정형(실태)을 구체적으로 요해(파악)하셨다”고 밝혀 그가 거동에 큰 불편이 없음을 시사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이날 김 제1위원장의 현지지도 소식과 함께 게재한 사진에는 그가 허리 높이의 지팡이를 든 모습이 담겨 다리 부상이 다 낫지는 않았음을 보여줬다. 사진 속 김 제1위원장은 그리 수척해 보이지 않았고 간부들과 함께 이야기하며 활짝 웃기도 하는 등 대체로 건강한 모습이었다. 김 제1위원장은 위성과학자주택지구에 들어선 건물들을 보면서 “정말 멋있다”, “희한한 풍경”이라며 감탄을 연발하기도 했다고 중앙통신이 전했다. 김 제1위원장은 새로 건설된 내각 산하 국가과학원 자연에네르기(에너지)연구소도 방문해 여러 곳을 둘러봤으며 국가과학원에 세워진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동상 앞에서 과학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의 이번 현지지도에는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최태복·최룡해 당 비서, 한광상 당 재정경리부장, 김정관 인민무력부 부부장이 동행했으며 장철 국가과학원장과 김운기 국가과학원 당 책임비서가 이들을 안내했다. 위성과학자주택지구는 김 제1위원장이 올해 1월 과학자와 기술자의 복지를 강조하며 내린 지시에 따라 3월 건설을 시작해 약 7개월 만에 완공됐다. 자연에네르기연구소는 환경오염이 없는 에너지 자원을 개발하라는 김 제1위원장의 지시로 건설됐다. 김 제1위원장은 지난 7월 8일 김일성 주석 20주기 중앙추모대회에서 처음으로 다리를 저는 모습이 포착돼 건강이상설을 낳았다. 이어 그는 9월 3일 모란봉악단 음악회 관람 이후로는 공개활동을 하지 않아 뇌사상태 설과 쿠데타 설 등 근거 없는 루머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기도 했다. 김 제1위원장이 전격적으로 공개활동을 재개한 것은 이 같은 억측을 잠재우고 최고지도자의 장기 잠행으로 인한 주민들의 동요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40일 만에 등장해 건재를 보여준 만큼 향후 남북관계에서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며 존재감을 과시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네티즌들은 “김정은 공개석상 등장, 결국 뇌사상태는 헛소문이었네”, “김정은 공개석상 등장, 저렇게 짠하고 나온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김정은 공개석상 등장, 지팡이 짚은 건 역시 건강 완전히 좋아진 건 아니라는 얘기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김정은을 지키는 ‘사상 최대’ 의 경호부대...쿠데타 사실상 불가능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김정은을 지키는 ‘사상 최대’ 의 경호부대...쿠데타 사실상 불가능

    김정은이 40일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동안 김정은에 대해서는 온갖 설(說)들이 쏟아졌다. 스위스 유학 시절부터 입맛을 들인 에멘탈 치즈 과다 섭취 후유증 설부터 지방 별장에서 요양하고 있다는 설, 심지어 군부 원로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켜 도피했다는 설 등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이 인터넷을 덮어 왔었다. 김일성이 사망하고 1995년 함경도 지역에 배치되어 있던 6군단이 반란을 모의하다 적발된 사건 이후 김정은 일가에 대한 쿠데타 설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었다. 김정일이 두문불출했을 때도 그러했고, 김정은이 이립(而立)도 채 되지 않은 나이에 최고 지도자로 추대된 이후에도 리영호나 장성택에 의한 쿠데타 가능성이 수 차례 나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쿠데타는 없었고 김일성과 김정일은 천수(天壽)를 누리다가 병으로 죽었고, 지금은 금수산기념궁전에 방부제 처리까지 되어 '곱게' 안치되어 있다. 김정은은 김정일과 달리 장기간 후계자 수업을 받은 것도 아니고, 경력이 일천하고 나이도 어려 집권 초기부터 얼마 가지 못해 실각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하지만 다른 이유로 인해 실각할 수 있다 하더라도 군부 반란에 의해 권좌에서 끌어내려질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북한에는 사상 유례가 없는 규모의 대규모 경호 부대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 북한판 수방사! ‘평양방어사령부’ 우리나라도 수도 서울을 지키기 위해 군단급 부대인 수도방위사령부를 두고 있지만, 북한의 평양방어사령부는 우리 수방사와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 우리 수방사는 부대를 구성하는 예하 4개 사단이 현역사단이 아닌 향토사단과 동원사단이며, 현역 전투병력은 대부분 헌병과 경비 병력 위주로 구성된 반면, 북한의 평방사는 북한군 내에서도 상당한 정예로 꼽히는 부대이기 때문이다. 평양방어사령부는 평양 외곽 지역을 지키는 군단급 부대이다. 국내 일부 언론에는 북한 최정예 기갑부대로 손꼽히는 ‘근위서울류경수 제105땅크사단’이 평방사 예하 부대로 알려져 있으나, 이 부대는 평양 남부 사리원에 배치된 820훈련소 예하 부대이며, 평방사는 보병과 장갑차 위주의 부대로 편성되어 있는 감편(減制) 군단급 부대이다. 예하에 장갑차로 무장한 4개의 차량화 보병여단과 1개 전차연대를 주축으로 2개 포병여단과 1개 경보병연대 등의 전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북한에서는 위장명칭으로 ‘91훈련소’ 또는 ‘제966대연합부대‘로 불린다. 전시가 되면 남포의 제3군단과 연계해 평양에 대한 방어임무를 수행하며, 남침에 실패해 방어전을 수행해야 할 경우 425훈련소와 820훈련소 등 기계화부대 잔존 전력과 함께 평양 방어 임무를 수행한다. 신형 전투장비를 가장 먼저 지급받는 부대이기 때문에 장비의 질적 수준은 북한군 가운데서 가장 높은 편이다. 4개의 차량화 보병여단은 러시아의 BTR-80 등 비교적 신형 장갑차를 모방해 개발한 신형 차륜형 장갑차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차연대에는 북한 육군이 보유한 전차 가운데 가장 신형인 폭풍호 후기형과 선군호 전차가 배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정예부대인 평양방어사령부 지휘관은 상장(우리 군의 중장급)급 장령이 보직되며, 지금은 숙청된 리영호 전 총참모장이 평양방어사령관을 지낸 바 있었다. ▲ 무소불위의 권력, 호위사령부 평양방어사령부가 기계화 장비를 운용하며 평양 외곽 지역을 방어하는 임무를 수행한다면, 평양 시가지와 김정은 일가에 대한 경호 책임은 호위사령부가 맡고 있다. 인기리에 상영된 국내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호위총국’으로 묘사된 호위사령부는 명목상 군단급 부대이지만, 예하 병력만 6만 명에 달하는 거대한 부대이다. 원래 이 부대는 이렇게 거대한 부대가 아니었다. 광복 직후 북한에 들어와 권력을 잡기 시작한 김일성의 개인 경호부대인 100여 명 규모의 ‘경위중대’로 출발해 6.25 전쟁 중 ‘경위연대’로 커졌으며, 전후 우리의 경호실 격인 ‘정부호위처’로 확대개편 되었다가 1965년에 상장급 장령이 지휘하는 ‘정부호위총국’이 되었다. 이후 정부호위총국은 호위사령부와 호위총국이라는 이름을 번갈아 사용하다가 2000년대 이후 호위사령부라는 명칭으로 굳어졌다. 과거에는 1~7국으로 나뉘어져 김일성과 김정일 일가는 물론 지방의 김씨 일가 전용 휴양소와 초대소, 목장 등을 관리하는 방대한 조직이었으나, 현재는 개편을 통해 그 규모가 다소 축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6개 부로 구성된 제1국은 김정은 일가와 금수산태양궁전, 당과 정부 주요 인사에 대한 직접적인 경호 및 감시 임무를 맡고 있으며, 김정은 일가의 생활 전반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제2국, 사령부 전투근무지원 임무를 수행하는 제3국과 독립전투여단 등으로 구성된다. 최근 화제가 되었던 황병서 총참모장의 경호원들 역시 제1국 소속이다. 이들은 황 총참모장의 경호 임무를 수행하면서, 동시에 감시 임무도 맡고 있다. 호위사령부는 총참모부가 아닌 국방위원장 직속이기 때문에 당시 인천을 찾았던 황 총참모장이나 최룡해 비서, 김양건 비서를 수행하면서 변심 또는 반역의 조짐이 보이면 이들을 사살하는 임무도 맡고 있다. 이러한 임무는 과거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등 고위층 탈북이 이어지면서 추가된 것으로 알려졌다. 호위사령부 요원들은 출신성분과 충성심을 엄격히 평가해 선발하는데, 보안을 위해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하며, 결혼 시에도 배우자의 출신성분과 당성을 보아야 하며, 결혼 후 지정된 숙소에서 생활하는 등 철저하게 통제된 생활을 해야 한다. 그러나 최고 수준의 공급규정을 적용받아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며, 김일성고급당학교 등 교육 여건을 제공 받아 당 간부로 진출할 수 있는 등 최고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즉, 호위사령부는 말단 전사부터 고위 군관에 이르기까지 처음부터 호위사령부 요원으로 선발된 인원들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온갖 특혜를 누리면서 이러한 특혜에 대해 김씨 일가에 대한 절대적 충성으로 보답한다. 김씨 일가에 대한 경호는 물론, 생활 전반에 걸친 밀착 수행을 담당하기 때문에 지휘관 역시 절대적인 신뢰를 받는 믿을 수 있는 인물이 맡고 있다. 1985년부터 약 30년간 호위사령관 직을 수행했던 리을설은 이례적으로 조선인민군 원수까지 진급했고, 퇴임한 이후에도 원수 계급을 유지하며 예우를 받고 있다. 후임으로 사령관에 임명된 윤정린 상장 역시 1984년부터 호위사령부 참모장으로 일하며 김정일에게 전폭적인 신임을 받아왔고, 최근 상장으로 강등당하기 전까지 대장 계급을 유지해 왔다. 호위사령관은 김씨 일가를 최일선에서 경호하는 ‘문고리 권력’으로 막강한 권한을 가진다. 전시가 되거나 쿠데타 등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인접한 평양방어사령부와 3군단 등 총참모부 통제를 받는 전투부대를 끌어와 휘하에 두고 지휘할 수 있다. 자체 보유한 전투여단 강화된 3개 대대 편성을 갖추고 있으며, 쿠데타 또는 ‘최고 존엄’에 대한 위해 시도가 발생할 경우 즉각 출동하여 기동타격대 역할을 수행한다. ▲ 10만여 친위대... '호위사령부' 건재한 이상 쿠데타 불가능 최근 중국 SNS에서는 ‘김정은 실각설’이 사실처럼 확산되고 있었다. 김정은이 40일 가까이 잠적했고, 최근 황병서 일행이 인천을 찾은 것도 김정은을 축출한 뒤 삼두체제를 인정받기 위해 내려온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되면서 이러한 소문이 돌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설은 평양에 오직 김정은의 명령만 듣는 10만여 명의 최정예 친위부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쿠데타가 발생한다면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호위사령부와 쿠데타 병력 간에 교전이 발발할 것이지만, 아직까지 평양 일대에서 이러한 특이 동향은 감지되지 않고 있고, 김정은은 다시 전면에 등장하여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황병서가 제아무리 2인자, 심지어 1.5인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어도 총정치국은 호위사령부에 대한 지휘권을 가질 수 없다. 2인자조차 인정되지 않는 유일 독재체제 북한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2인자나 1.5인자라는 단어에 박장대소할 것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휘어잡으며 2인자 행세를 했던 장성택조차도 건드리지 못한 것이 호위사령부였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자신들의 권력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안전장치로 반세기에 걸쳐 호위사령부를 철저한 사병 집단으로 만들어 놓았고, 이를 김정은에게 물려주었다. 김정은은 이 호위사령부 안에서도 사령관인 윤정린과 부사령관인 김성덕이 서로 견제하고 충성 경쟁을 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대장이었던 윤정린을 김성덕과 같은 상장으로 강등시킨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재 김정은은 건강상의 문제로 약 2~3개월 가량의 치료가 필요한 상황으로 알려져 있다. 치료가 어느정도 마무리될 때까지는 안정을 취해야하겠지만, 김정은이 통치 일선에서 물러난 것은 아니며, 빈도는 낮아지겠지만 앞으로도 대외 활동은 계속 이어나갈 것이다. 27세에 불과하지만 ‘백두혈통’ 덕분에 우리나라의 청와대 비서실장 격인 서기실장을 맡고 있는 김여정이 오빠인 김정은의 신임을 받으며 권력을 틀어쥐면서 오빠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고, 여기에 ‘총폭탄 정신’으로 무장하고 김정은을 결사 옹위하는 10만여 명의 친위대까지 버티고 있다. 김정일은 생전에 호위사령부 요원들에게 니콜라이 차우셰스쿠(Nicolae Ceausescu)의 경호원들에 대한 영상을 자주 보여주었다고 한다. 루마니아 혁명 당시 차우셰스쿠에게 충성하던 보안군 소속 경호원들은 최후의 1인까지 혁명군에 저항하다 사살됐고, 김정일은 호위사령부 요원들에게 최고의 혜택을 제공하면서 이들과 같은 충성심을 요구해왔고, 호위사령부는 이 같은 독재자의 요구에 충실히 길들여져 왔다. 이들의 충성 대상은 이제 ‘백두혈통’인 김정은에게 이어지고 있고, 김정은은 매년 각종 사치품 수입 최고치 기록을 경신하며 이들에게 막대한 특혜를 베풀고 있다. 김정은 체제 붕괴 또는 권력 약화는 독재자로부터 제공받는 호위사령부 요원들의 부귀와 영화가 끝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호위사령부는 대단히 강력하고 김정은과의 밀착 관계는 쉽게 끊어질 수 없는 관계다. 이 때문에 이립(而立)을 갓 넘긴 철부지 독재자가 권좌에서 끌어내려질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이고, 이로 인한 한반도 정세의 불확실성과 위험은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김정은 공개석상 등장…현지지도 사진 속 김정은 표정 보니 ‘깜짝’

    김정은 공개석상 등장…현지지도 사진 속 김정은 표정 보니 ‘깜짝’ 건강이상설에 휩싸였던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40일 만에 공개활동에 나서 건재를 과시했다. 그러나 김 제1위원장이 지팡이를 짚고 현지지도하는 사진이 공개돼 아직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조선중앙통신과 조선중앙방송 등 북한 매체들은 14일 김 제1위원장이 평양에 완공된 과학자 주택단지인 위성과학자주택지구를 현지지도했다고 보도했다. 중앙통신은 김 제1위원장의 현지지도 날짜를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과거 보도 관행으로 미뤄 하루 전인 13일일 것으로 추정된다. 김 제1위원장의 공개활동은 지난달 3일 모란봉악단 신작 음악회 관람 이후 40일 만이다. 김 제1위원장이 집권 이후 최장기간의 두문불출을 깨고 건재를 과시한 만큼 그동안 불거진 그의 신변이상설도 빠르게 사그라질 것으로 보인다. 중앙통신은 “김정은 동지께서는 살림집(주택), 소학교, 초급중학교, 약국, 종합진료소, 위성원, 태양열 온실 등 위성과학자주택지구의 여러 곳을 돌아보시면서 건설 정형(실태)을 구체적으로 요해(파악)하셨다”고 밝혀 그가 거동에 큰 불편이 없음을 시사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이날 김 제1위원장의 현지지도 소식과 함께 게재한 사진에는 그가 허리 높이의 지팡이를 든 모습이 담겨 다리 부상이 다 낫지는 않았음을 보여줬다. 사진 속 김 제1위원장은 그리 수척해 보이지 않았고 간부들과 함께 이야기하며 활짝 웃기도 하는 등 대체로 건강한 모습이었다. 김 제1위원장은 위성과학자주택지구에 들어선 건물들을 보면서 “정말 멋있다”, “희한한 풍경”이라며 감탄을 연발하기도 했다고 중앙통신이 전했다. 김 제1위원장은 새로 건설된 내각 산하 국가과학원 자연에네르기(에너지)연구소도 방문해 여러 곳을 둘러봤으며 국가과학원에 세워진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동상 앞에서 과학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의 이번 현지지도에는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최태복·최룡해 당 비서, 한광상 당 재정경리부장, 김정관 인민무력부 부부장이 동행했으며 장철 국가과학원장과 김운기 국가과학원 당 책임비서가 이들을 안내했다. 위성과학자주택지구는 김 제1위원장이 올해 1월 과학자와 기술자의 복지를 강조하며 내린 지시에 따라 3월 건설을 시작해 약 7개월 만에 완공됐다. 자연에네르기연구소는 환경오염이 없는 에너지 자원을 개발하라는 김 제1위원장의 지시로 건설됐다. 김 제1위원장은 지난 7월 8일 김일성 주석 20주기 중앙추모대회에서 처음으로 다리를 저는 모습이 포착돼 건강이상설을 낳았다. 이어 그는 9월 3일 모란봉악단 음악회 관람 이후로는 공개활동을 하지 않아 뇌사상태 설과 쿠데타 설 등 근거 없는 루머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기도 했다. 김 제1위원장이 전격적으로 공개활동을 재개한 것은 이 같은 억측을 잠재우고 최고지도자의 장기 잠행으로 인한 주민들의 동요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40일 만에 등장해 건재를 보여준 만큼 향후 남북관계에서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며 존재감을 과시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네티즌들은 “김정은 공개석상 등장, 뇌사 상태로 있었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었네”, “김정은 공개석상 등장, 주민들의 동요가 커지니까 몸이 완전히 좋아진 것도 아닌데 나왔네”, “김정은 공개석상 등장, 이제 적극적으로 나오는구만”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이기영 ‘고향’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이기영 ‘고향’

    문학 작품은 어디에서 시작하는가. 오로지 작품 그 자체인가, 아니면 작품이 탄생한 시대나 작가의 환경인가. 이런 물음에 농민소설의 대표작이자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의 표본이라고 평가받는 민촌(民村) 이기영의 ‘고향’은 오롯이 후자라 할 수 있다. 문학은 작가의 삶과 작품을 연결지어 볼 수 있는데 이렇게 생겨난 작품은 작가의 창작 의도가 동기, 체험 등에서 나온 것이므로 작가의 사상이나 감정을 알아야 작품을 명확히 해석할 수 있다. ‘고향’은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에 가담하면서 계급문학을 추구했던 이기영의 사상과 체험이 잘 응집된 소설이다. 갈수록 왜곡되는 현실에 어쩌지 못하고 체념하고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에 눈뜨는 성장을 통해 변화의 바람이 불던 당시 농촌 사회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사회주의적 해결책이긴 하지만) 뚜렷하게 제시한 작품이다. ‘고향’은 충청도 원터 마을을 배경으로 하루 살기에 바쁜 농민들과 이들을 갈취하는 새로운 지배계층 간의 대립을 축으로 한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 이 마을에도 전등과 전화가 가설되고 실을 만드는 제사 공장이 들어선다. 빠르게 근대화가 이뤄졌지만 농민들이 살기는 예전보다 더 어려워졌다. 자작농에서 소작농으로 몰락한 이가 한둘이 아니다.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한숨만 쉴 뿐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고 문제를 함께 해결하도록 돕는 사람이 김희준이란 인물이다. 그는 부모에 의해 14살에 조혼하지만 일본으로 유학까지 다녀온 지식인이다. 대단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기대가 당연한데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소작농의 생활을 시작한다. 그가 고향 땅으로 돌아온 것은 고향 사람들을 ‘진리의 경종으로 깨우치려’는 것이다. 여기서 김희준은 식민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함께 깨우쳐 나가는 데 필요한 촉매 역할을 한다. 농민 스스로 어렵게 문제점을 깨닫거나 기독교적 사상을 가진 계몽자가 등장해 문제를 해결한 당시 농민 문학들과는 달리 이기영은 고향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이 바라보는 것이 무엇인지를 느끼며 농민들 스스로 문제를 깨우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인물인 것이다. 다시 말해 일방적인 계몽 문학을 벗어난 것이다. 실제 이기영은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지식인이었지만 ‘농촌 사람’, ‘평민’이라는 뜻을 가진 ‘민촌’을 자신의 호로 삼을 만큼 농촌 사회에 귀 기울이고 사회주의적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했던 사람이었다. ‘고향’이 발표된 1930년대는 ‘브나로드 운동’이 확산돼 지식인이라면 농촌계몽에 일조하고자 노력하던 시기였다. 이광수의 ‘흙’, 심훈의 ‘상록수’ 같은 농촌을 배경으로 한 계몽 소설이 잇따라 발표된 것도 이때다. 하지만 이들 작품은 이기영의 작품과는 사상적 거리가 뚜렷하다. 민족주의적 색채를 띤 이들의 작품과는 달리 의식적으로 사회주의적 성향을 강조한 작품을 발표했던 이기영은 문학이 현실적 계급 문제를 등한시할 수는 없으며 더 나아가 계급적 투쟁을 이끌어 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고향’에서 새롭게 등장한 지배계층과 그 속에서 억눌려 지내던 피지배계층 간의 첨예한 갈등이 축을 이루고 이것을 무산 계급이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를 보여 주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김희준의 진두지휘하에 계급투쟁이 이뤄지고 한 인물의 영웅적 헌신과 노력으로 승리를 이끌어 갔다면 아마도 그저 그런 프로 문학으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스스로 계급의식을 깨쳐 가는 다른 등장인물의 노력과 문제의 해결점을 전통적 풍습에서 찾았다는 점에서 프로 문학의 관념성이나 도덕성을 극복했다고 볼 수 있다. 문제의식을 자각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인물은 물론 김희준이었지만 이 작품에는 또 다른 주인공들이 있다. 제사 공장에 다니면서 노동의 가치를 깨닫고 신념을 갖게 되는 두 여성, 인숙과 갑숙이다. 이들은 봉건적 여성상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삶을 개척할 수 있는 진취적 인물로 성장하는데, 죽도록 일만 해도 남편과 자식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당시 여성들에게 제시하는 새로운 역할 모델이다. 인숙의 오빠 인동 또한 오십이 넘은 그의 아버지 원칠의 삶을 이어받는다면 결국 열심히 땅을 일궈도 삶은 더욱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활로를 모색한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근본적으로 따져 보는 것이다. 그리고 원칠이나 김선달, 길동아버지 같은 기성세대도 함께 힘을 모은다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점을 희준의 솔선수범을 통해 깨달아 간다. 뿔뿔이 흩어져 있던 민촌들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 ‘두레’다. 희준은 오랫동안 내려온 두레에서 새로운 공동노동체의 가능성을 만들어 간다. 머리채를 휘어잡고 싸우던 여인들이, 아전인수에 골몰한 남성들이 두레를 통해 점차 공동의 힘을 느끼며 뿌듯해한다. 격이 다르다고만 느꼈던 희준을 자신들과 다르지 않은 농군임을 받아들이게 된 것도 두레 안에서다. 식민지 자본 논리 때문에 풍년이 와도 배불리 먹을 수 없는 ‘풍년 공황’의 자구책이 자기 것에 연연하지 않고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는 공산(共産)에 있음을 보여 주고 싶었던 저자의 의도가 확연히 드러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고향’에 등장하는 지배계급은 철저히 자본을 맹신하는 사람들이다. 일제에 의해 이루어진 근대화를 누구보다 먼저 받아들이며 신분 상승을 꾀했고 돈만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생각하는 안승학과 권상철이 바로 그들이다. 이기영은 이들의 모습에서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 주고자 했다. 지주보다 더 지독한 마름으로, 딸의 앞날까지 돈으로 흥정하려는 안승학이나 돈을 꿔 주지 않아 자살하는 사람이 생기든 말든 자기 부만 키우면 그만인 고리대금업자 권상철은 식민지 자본주의가 낳은 신흥 자본가들의 모습 그 자체다. 결국 돈만 아는 그들은 그 욕심 때문에 자멸하고 마는데 자본가에 대한 저자의 불신을 드러내는 동시에 독자로 하여금 권선징악적 통쾌함을 전해 준다. 마름집 딸 갑숙이나 부잣집 도련님인 경호가 의식을 전환하는 과정이 매끄럽게 흐르지 못하고 다소 작위적이라는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등장인물들이 현실에 부딪치고 성장해 가는 과정은 지금 봐도 매끄럽고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게다가 곳곳에 드러난 농촌 현실의 예리한 관찰과 문제점을 날카롭게 파헤친 이기영의 문학적 솜씨는 카프 문학의 대표자로 손꼽기에 모자람이 없다. 1946년 김일성의 권유로 월북 후 1984년 90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그가 북한 문학의 중심에 존재할 수 있었던 원동력에는 이런 문학적 역량이 뒷받침됐기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은 오늘도 논으로 밭으로 헤어졌다.” 그리고 희준이 인동과 갑숙을 ‘앞세우고’ 자기는 ‘뒤따라오다가’ ‘조금 높은 곳에서’ 발을 멈추고는 ‘먼동이 트는 새벽하늘’ 밑으로 흩어져 가는 그들의 뒷모양을 내려다보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것이 이 소설의 모티브이자 구조다. 이기영은 모래알처럼 흩어져버린 고향이 동트는 새벽하늘처럼 새로운 미래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그 안에 모두 담아낸 것이다. 신언수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책임연구원 ●‘읽어라 청춘’은 격주로 게재됩니다.
  • [서울&평양 리포트] 군복 입은 2인자, 北 총정치국장은 어떤 자리

    [서울&평양 리포트] 군복 입은 2인자, 北 총정치국장은 어떤 자리

    저화질의 북한 텔레비전을 통해서만 보던 황병서 북한 총정치국장이 지난 4일 오전 인천공항에 나타났다. HD화면으로 보니 군복을 입은 옷매무새와 왼쪽 가슴의 ‘약장(군복의 훈장표시)’이 더욱 뚜렷하게 보였다. 과묵하게 속을 알듯 모를 듯한 표정의 ‘군복을 입은 북한의 2인자’가 머리를 바싹 밀고, 선글라스를 낀 건장한 경호원을 대동하고 우리 국민 앞에 처음으로 실물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당시 오찬 회담 장소인 인천 영빈관에서 황병서를 본 한 정부 관계자는 “옅은 미소를 짓고 있는데, 시종일관 그 표정이 변하지 않아서 속을 알 수 없더라”며 “총체적으로 만만하게 볼 수 없는 고단수의 인사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 밝혔다. 총정치국장이란 자리는 북한 전체 권력에서는 ‘2인자’, 군 서열에서는 ‘1인자’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나 북한 전문가들에게 총정치국장이 우리로 치면 어떤 위치라면 물어도 딱 부러진 대답을 듣기 어렵다. 하지만 이들의 분석을 종합해 보면 국방부 장관과 대통령 비서실장, 총리의 역할을 모두 합쳐 놓은 막강한 권한을 가졌다는 결론이 나온다. ●황병서, 김정은 후계체제 구축하며 초고속 승진 황병서는 2005년 북한에서도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당 조직지도부에 부부장으로 승진한 후 군을 담당하는 당내 1인자인 조직지도부 1부부장 그리고 조선인민군 대장, 차수, 군내 서열 1인자인 군 총정치국장까지 거칠 것 없는 출세길을 달렸다. 그가 이처럼 군부를 장악하고 실세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생모 고영희의 신임을 받아 일찍부터 김정은 후계 체제 구축에 앞장선 것이 주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2009년 김정은이 후계자로 낙점되기 이전부터 조직지도부에서 김정은 후견인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김정은이 장성택 처형을 결심했을 때도 이를 막후에서 실행한 인물로 알려진다. 그의 방한 당시 전임 총정치국장인 최룡해마저도 그에게 깍듯한 예의를 갖췄던 것을 보면 그의 위상은 단순히 2인자로 표현할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 중앙위원회의 집행부… 총참모부보다 우위 총정치국이 북한군 창설 초기부터 만들어진 조직은 아니다. 북한은 1948년 2월 인민군을 창설하고, 같은 해 9월 정권을 수립하면서 ‘민족보위성(인민무력부 전신) 문화훈련국’으로 군대에 대한 당의 정치적 지도를 보장하는 기구를 설치했다. 이어 1950년 군인들의 사상무장을 담당하기 위해 ‘민족보위성 문화훈련국’을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으로 개편했다. 이는 군대에서의 정치사업을 민족보위성으로부터 분리해 당의 직접적인 지도하에 놓았음을 의미했다. 북한은 군을 ‘당의 군대’로 치켜세우며 당 중앙을 중심으로 군대의 당적 지도를 총정치국에서 담당하는 정치기구로 승격시켰다. 총정치국의 위상은 당 규약에서도 찾을 수 있다. 노동당 규약 49조는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은 인민군 당위원회의 집행부서로서 당중앙위원회 부서와 같은 권능을 가지고 사업을 한다”고 규정하고,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아래 각급 정치부들은 해당 당위원회의 집행부로서 당정치사업을 조직집행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총정치국은 당 중앙위원회의 집행부서로 군의 최상층부에서 하부단위까지 당이 총정치국을 통해 군대에 대한 정치사업을 진행, 군부에 대한 당적 지도를 강화하고, 당의 군대로 유지될 수 있게 한다. 결국 총정치국은 총참모부, 인민무력부와 형식적으로 수평적 역할분담 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실제로 총참모부와 인민무력부보다 우위에 있다. ●‘15년 군림’ 조명록 시절부터 ‘넘버2’ 본격 행보 하지만 총정치국장이 처음부터 북한 권력의 전면에 나섰던 것은 아니다. 총정치국장이 본격적으로 2인자 역할을 한 것은 조명록 전 총정치국장 때부터다. 조명록은 1995년 10월부터 2010년 11월까지 무려 15년 동안 총정치국장을 지냈다. 조명록이 총정치국장을 처음 맡았을 때는 공군사령관 신분이었다는 점에서 그때까지는 ‘총정치국장=2인자’ 공식이 통용되던 때는 아니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조명록은 두 번이나 김정일 특사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미국과 중국을 방문했다. 2000년 10월 한반도 분단 이후 북한의 인사로는 최고위급 특사로 미국을 방문해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과 군복 차림으로 회담하면서 북·미관계에서 최고 수준인 ‘북미 코뮈니케’에 합의했다. 그는 2003년 3월에도 신병치료를 핑계로 베이징에 체류하면서 차오강촨(曺剛川) 국무위원 겸 국방부장을 비롯한 중국 군부지도자들과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다자간 협상 등을 논의했다. 이 과정에서 6자회담 내 북한·미국·중국 3자회담의 참석 여부를 논의하며 실질적인 특사 역할을 수행해 김정일의 절대적 신임을 받는 북한 실세의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최룡해도 황병서 이전에 총정치국장에 올랐던 인물이다. 그는 김정일의 총애를 받으며 이른 나이인 36세에 김일성·김정일의 800만 전위조직인 ‘조선사회주의로동청년동맹’(사로청) 중앙위원회 위원장의 중책을 맡았던 인물이다. 승승장구하던 그는 1991년 말쯤에 반사회적 행위라는 과오로 실각된다. 그의 ‘반사회적 행위’ 혐의는 북한 당국이 공식적으로 밝힌 바는 없지만, 사로청 산하 외화벌이 회사를 통해 벌어들인 자금으로 방탕한 생활을 하고, 산하 선전·선동 및 예술공연단체인 ‘사로청 협주단’ 소속 가수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려진다. 실각 후 5년간 ‘혁명화’를 거쳐 1996년 사로청 후신인 ‘김일성사회주의 청년동맹’ 중앙위원회 1비서로 복귀한 후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지금까지도 순항 중에 있다. ●‘패션코드’는 선군정치와 핵·경제 병진노선 유지 총정치국장들은 대외 행보 때마다 군복을 입었던 것이 특징이다. 조명록이 2000년 10월 특사 자격으로 미국을 찾아 빌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을 만났을 때도 군복 차림이었다. 군복은 결국 북한으로서는 자존심을 상징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선군사상에 입각한 선군정치를 드러내고 핵·경제 병진노선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메시지이자, 자신들의 군사력을 강조하기 위한 ‘패션코드’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황병서가 이번에 군복을 입고 온 것을 북한 군부의 메시지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영빈관 오찬에서 친근하게 미소는 짓고 있었지만, 결국 황병서는 우리에게는 주적이자 ‘적장’인 것이 사실이기도 했다. 최룡해가 총정치국장이었던 때에도 군복을 입고 특사 자격으로 중국에 간 적이 있었다. 지난해 2월 3차 핵실험 이후 최룡해는 마지막까지 북핵실험을 반대한 중국을 달래기 위해 김정은의 특사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류윈산(劉雲山) 정치국 상무위원과 회담했다. 당시 중국은 북한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는데, 특히 류원산과의 회담 때 군복을 입었던 최룡해는 중국 측의 항의를 받고 다음날 시진핑과 만날 때는 군복을 벗고 만나야 했다. 그는 당시 중국의 달라진 분위기를 경험하고 빈손으로 북한에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北, 대북전단 향해 총격] 풍선에 뭘 담아 보내나

    [北, 대북전단 향해 총격] 풍선에 뭘 담아 보내나

    북한이 10일 탈북자단체가 쏘아 올린 대북 전단에 고사총을 발사하면서 전단 내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복수의 대북단체들에 따르면 최근 북한에 보낸 전단에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의 권력 세습에 대한 비판과 부친의 고향이 제주도인 김정은 생모 고영희의 가계도 등 북한 정권의 위상과 권위에 직격탄이 되는 내용들도 담겨 있다. 지난해 말 고모부인 장성택을 처형한 김정은을 ‘패륜아’로 지칭하기도 했다. 또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을 싣고 남한의 경제적 발전상을 소개하며 북한의 경제난과 대비시켰다. 실제로 이날 북한에 보낸 대북 전단은 북한의 최고지도자를 비난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적으로 전단과 함께 라면, 초코파이, 초코바, 상비약 등 생필품과 영상물, 스텔스 USB, 달러 등 외화까지 다양한 물품이 풍선에 담겨 보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생필품이 부족한 북한 주민들을 겨냥해 전단 살포 효과를 높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 밖에도 DVD 영상물을 제작해 북측으로 날려 보내고 있다. 한 대북단체 대표는 “백령도, 강화도, 철원 등 북한과 인접한 지역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DVD와 소형 DVD플레이어 등을 풍선에 실어 날려 보냈다”고 말했다. 일부 탈북자는 북한 최고위층의 사치품과 관련한 DVD 영상물과 북한 당국의 검열을 피할 수 있도록 고안한 스텔스 USB도 자체 제작해 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GPS 추적기에 타이머가 장착된 대북 풍선이 등장하면서 낙하지점 추적도 훨씬 쉬워졌다. 100달러 안팎의 GPS 추적기를 통해 전단을 실은 풍선이 어디에서 터졌는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타이머를 설치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곳에서 풍선을 터뜨릴 수 있도록 한 점도 대북 전단의 효용성을 높인다는 주장이다. 추적 결과 일부 전단은 평양 인근까지 도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북한 체제에는 상당한 위협일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대북 전단 살포를 주도하는 단체들은 이번에 경기도 연천에서 총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이민복 단장의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대북풍선단과 북한인민해방전선, 대북매체인 자유북한방송, 자유북한운동연합, 반북단체인 블루유니온, 탈북난민인권연합, 남북대학생총연합 등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한 번에 20만~300만장 정도의 전단을 풍선에 매달아 북한으로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 창건기념일 등 북한의 주요 명절이나 기념일에 맞춰 전단을 살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북한 김정은, 10월 10일 노동당 창건일에도 행방불명…37일째 깜깜무소식

    북한 김정은, 10월 10일 노동당 창건일에도 행방불명…37일째 깜깜무소식

    ‘북한 김정은’ ‘노동당 창건일’ ‘북한 10월 10일’ 북한 김정은이 노동당 창건일(북한 10월 10일)에도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건강이상설 내지 신변이상설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최근 건강이상설이 제기된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매년 노동당 창건기념일(10월10일)에 해오던 금수산태양궁전 참배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 매체는 이날 노동당 창건 69돌을 맞아 당, 정, 군 간부들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고 보도했으나 북한 김정은의 참배 소식은 전하지 않았다. 북한 김정은은 지난달 3일 모란봉악단 신작음악회를 관람하고 나서 이날까지 37일째 공개석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이다.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보통 당 창건기념일을 맞아 금수산태양궁전 참배뿐 아니라 공연 관람, 건물 준공식 등 각종 행사에 참석해왔다는 점에서 북한 김정은의 장기 ‘잠행’은 이례적이다. 북한이 북한 김정은의 신변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일단 그의 건강이 상당기간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좋지 않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북한 김정은은 지난 7월 초부터 공개행사에서 다리를 심하게 저는 장면이 조선중앙TV에서 방영됐다. 특히 중앙TV는 지난달 25일 북한 김정은이 남포시 천리마타일공장을 현지지도할 때 다리는 심하게 저는 모습을 보여주며 “불편하신 몸”이라고 언급, 거동에 문제가 있음을 사실상 인정했다. 실제로 북한 김정은은 고지혈증과 당뇨 등을 동반한 통풍 때문에 다리를 저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부는 김정은의 건강 이상을 둘러싸고 억측이 확산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북한 김정은, 10월 10일 노동당 창건일에도 행방불명…37일째 두문불출에 쿠데타설까지

    북한 김정은, 10월 10일 노동당 창건일에도 행방불명…37일째 두문불출에 쿠데타설까지

    ‘북한 김정은’ ‘노동당 창건일’ ‘북한 10월 10일’ 북한 김정은이 노동당 창건일(북한 10월 10일)에도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건강이상설 내지 신변이상설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최근 건강이상설이 제기된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매년 노동당 창건기념일(10월10일)에 해오던 금수산태양궁전 참배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 매체는 이날 노동당 창건 69돌을 맞아 당, 정, 군 간부들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고 보도했으나 북한 김정은의 참배 소식은 전하지 않았다. 북한 김정은은 지난달 3일 모란봉악단 신작음악회를 관람하고 나서 이날까지 37일째 공개석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이다.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보통 당 창건기념일을 맞아 금수산태양궁전 참배뿐 아니라 공연 관람, 건물 준공식 등 각종 행사에 참석해왔다는 점에서 북한 김정은의 장기 ‘잠행’은 이례적이다. 북한이 북한 김정은의 신변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일단 그의 건강이 상당기간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좋지 않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북한 김정은은 지난 7월 초부터 공개행사에서 다리를 심하게 저는 장면이 조선중앙TV에서 방영됐다. 특히 중앙TV는 지난달 25일 북한 김정은이 남포시 천리마타일공장을 현지지도할 때 다리는 심하게 저는 모습을 보여주며 “불편하신 몸”이라고 언급, 거동에 문제가 있음을 사실상 인정했다. 실제로 북한 김정은은 고지혈증과 당뇨 등을 동반한 통풍 때문에 다리를 저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의 ‘두문불출’이 길어지자 외부에서는 실각설, 쿠데타설 등 다양한 억측이 쏟아졌다. 그러나 정부는 김정은의 건강 이상을 둘러싸고 억측이 확산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북한 김정은, 10월 10일 노동당 창건일에도 모습 안 드러내…37일째 행방불명, 어디에?

    북한 김정은, 10월 10일 노동당 창건일에도 모습 안 드러내…37일째 행방불명, 어디에?

    ‘북한 김정은’ ‘노동당 창건일’ ‘북한 10월 10일’ 북한 김정은이 노동당 창건일(북한 10월 10일)에도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건강이상설 내지 신변이상설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최근 건강이상설이 제기된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매년 노동당 창건기념일(10월10일)에 해오던 금수산태양궁전 참배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 김정은은 집권 첫해인 2012년과 작년 모두 10일 밤 12시 군 간부들과 함께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고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같은 날 오전 4시쯤 이 소식을 보도했다. 그러나 올해는 북한 매체가 이날 오후 2시까지 현재 북한 김정은의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관련 소식을 보도하지 않았다. 다만 조선중앙통신이 이날 “노동당 창건 69돌을 맞으며 당과 국가, 군대의 책임일꾼들이 10일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아 숭고한 경의를 표시했다”며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박봉주 내각총리,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등이 참배했다고 전했다. 당 창건 69주년인 올해는 북한이 큰 의미를 부여하는 이른바 ‘꺾어지는 해’(끝자리 숫자가 ‘0’이나 ‘5’인 주년)가 아니기 때문에 통상 기념일 전날 열리는 중앙보고대회도 없었고, 열병식 등 대규모 행사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당 창건일에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지 않은 적도 많았던 만큼 북한 김정은이 건강 문제로 이날 참배를 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북한 김정은이 2012년 집권 이후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았던 최고인민회의(9월25일)에 불참한 데 이어 역시 매년 해왔던 당 창건기념일 금수산태양궁전 참배도 하지 않은 것으로 관측되면서 그의 건강 이상설에 다시 무게가 실리고 있다. 북한 김정은은 지난 7월 8일 김일성 주석 20주기 중앙추모대회에서 처음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절며 등장해 그 원인을 두고 다양한 해석을 낳았다. 이후 공개된 기록영화에서 심하게 절던 오른쪽 다리가 8월 이후 빠르게 호전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8월 31일 일용품 공장 시찰 현장에서 문제가 없었던 왼쪽 다리를 절룩거리는 모습이 포착됐다. 북한 김정은은 지난달 3일 모란봉악단 신작 음악회 관람을 끝으로 이날까지 37일째 공개석상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북한 김정은은 발목 질환이나 고지혈증과 당뇨 등을 동반한 통풍을 앓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 4일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한 북한 고위급대표단의 김양건 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은 김정은의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류길재 통일부장관에게 한 것으로 전해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