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김용옥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 덤프트럭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 피고인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 이탈리아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 대형병원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76
  • 도올 김용옥씨 ‘이성의 기능’ 번역… 해설도 덧붙여

    ◎“氣철학·화이트헤드의 이성론은 상통”/이성은 살아가는 문제 해결하는 도구/모든 욕망 다스리는 ‘자기규율’이 정수 반항아들이 만났다. 수학자이자 물리학자,과학철학자인 알프레드 화이트헤드의 ‘이성의 기능’이 도올 김용옥씨에 의해 번역,출간됐다. 화이트헤드는 데카르트,칸트,헤겔 등 서양 근대철학의 주류들이 이성을 초월적이고 선험적으로 파악해온 것과는 달리 자연주의적 입장에서 분석한다. 즉 이성은 어떤 추상적 실체나 본질이 아니라 우리의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일원적,유기적으로 연계되는 어떤 기능이라고 말한다.도올 역시 동양철학과 한의학을 공부한뒤 모든 것은 몸에서 비롯된다는 ‘기(氣)철학’에 심취한 인물.기성학계에 독설을 퍼부으며 반기를 들기로도 유명하다. 통나무출판사에서 펴낸 이 책은 화이트헤드가 1929년 대학에서 ‘이성’을 주제로 강연한 것. 도올은 원문과 함께 번역문을 싣고 번역에 대한 해설(案)을 덧붙여 난해한 ‘백두(白頭·화이트헤드)’의 이성론의 표피를 벗겼다.350여쪽 가운데 ‘안(案)’이 3분의 2 가량 된다. 화이트헤드의 이성은 실증적이고 현실적이다.이성은 초월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몸안에 있는 것이다. 삶의 기본단위는 욕망이다.그러나 욕망은 제어가 안돼 무질서하다.욕망은 단순히 생존하기 위한 저급 욕망에서 부터 삶의 방법을 해결하려는 실천이성,최고단계인 자기세계를 이해하려는 사변이성(speculative reason)까지 다양하다.사변이성은 수학적 사고와 맥락을 같이한다. 서양은 사변이성을 기반으로 과학,자본주의,민주주의라는 근대문명을 낳았다. 이성은 간단히 말해 살아가는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라고 할수 있다.도올은 화이트헤드 이성론의 고갱이는 ‘이성은 욕망중의 욕망(Reason is the appetition of appetitions)’이라고 말한다.즉 모든 다른 욕망들을 결정하고 규제하고 다스리는 ‘자기규율’이 바로 이성의 정수라는 것이다. 도올은 ‘자신이 천착하고 있는 기철학과 화이트헤드의 이성론이 일맥상통,이 책을 소개하게 됐다’며 ‘백두와 두해 씨름하고 나니 스산하다’며 예의 독설적인 직설화법으로 소감을 표명했다. 미국 케임브리지에 있는 ‘뉴 잉글랜드 복잡계연구소(NECSI)’의 철학분과 위원장을 맡아 침(鍼)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그는 이달말 다시 미국으로 간다.
  • 음악극 ‘천명’ 국립극장 25돌 기념공연

    ◎우리가락에 실은 녹두장군 생애/동학혁명 전개과정 전봉준 인간적 모습에 초점/무거운 주제 음악으로 이해도와 현대사회에서 문화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띄고 있다.소비적이고 향락적인 단계에서 철학과 종교적 수준에 이르기까지. 국립중앙극장이 장충동 개관 25주년을 기념해 특별공연으로 마련중인 음악극 ‘천명(天命)’은 역사적 무게가 느껴지는,후자에 속하는 공연이다.동학혁명을 주도한 녹두장군 전봉준의 생애를 토속적인 우리 가락에 실어 소개할 이번 작품은 요즘 유행하는 말초적이고 감각적인 시간때우기용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의미있는 무대다. 김용옥 원작에,박범훈 작곡,손진책 연출로 동학혁명 100주년을 기념하기위해 지난 94년 예술의전당에서 초연된 작품을 이번에 다시 손질해 무대에 올린다.작품의 소재는 물론이고 판소리 등 우리 음악적 요소가 진하게 배어있는 무대로 출연인물만도 국립극단과 창극단,무용단,합창단,국악관현악단 등 국립극장 전속단체가 총출연하는 대규모 공연으로 300여명에 이른다. 반봉건,반외세의 기치아래 구질서를 타파하고 밀려드는 외세에 맞서 근대 사회를 이룩하려는 사회변혁운동으로,우리 현대사의 원류가 되는 동학혁명과 탁월한 지도력으로 이를 주도한 녹두장군의 삶이란 다소 버겁고 무거운 주제를 음악에 실어 좀더 쉽게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도록 꾸몄다. 전봉준을 주제로 하되 동혁,복례란 평범한 농민부부를 내세워 당시 서민들에게 전봉준과 동학사상이 어떻게 비춰졌는지를 설득력있게 그려낸다.전봉준은 국립창극단의 간판스타 왕기석이,해월 최시형은 김종엽,동혁부부는 주호종·안숙선이 나서고 원로 연극배우 장민호 백성희도 고종과 촌로로 무대에 오른다. 연출가 손진책은 “그동안 전봉준을 다룬 공연물은 많았지만 일부분을 부각시키는데 그쳤다”면서 이번 작품은 동학혁명의 전개과정을 파노라마식으로 보여주면서도 전봉준 개인의 영웅담보다는 인간적인 모습에 초점을 맞춘 것이 특징이라고 강조했다.또 역사적인 사실 전달과 함께 음악적 완성도로 더 큰 감동을 안겨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봉준의 압송장면으로 시작되는 ‘천명’은 농민군의 봉기와 청·일군의 가세,농민군의 제2차 봉기로 이어져 일본군의 우세한 신무기에 밀려 궤멸당하고 마는 공주성 우금치 전투장면에서 하이라이트를 이룬다.그리고 전봉준의 처형장면으로 막을 내린다.1895년 그의 나이 42세였다. 100여년전 전봉준과 농민군이 보여준 역사적 의미는 기록으로만 끝나지 않고 경제적 위기를 맞아 허둥거리고 있는 오늘의 우리에게 생생한 교훈으로 다가설 것이다.10월10∼13일 국립극장 대극장.평일 오후7시30분,토·일 오후 4시.(02)274­1151
  • 金大煥 타악기 연주자(이세기의 인물탐구:180)

    ◎드럼연주·미각 일가이룬 ‘자유인’/자신의 북 여섯개 북채로 풀어낸 천상의 리듬/한해 절반 연주여행중에도 하루 8시간 연습/쌀 한톨에 새긴 반야심경 283자 기네스북 올라/주문제작 오토바이를 악기 사용 퍼포먼스도 인사동에 가면 金大煥이 있다.검은 모자에 검은 옷차림,그는 언제나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깡마른 체구에 안광이 빛나고 두눈에는 이상을 추구하는 열정이 담겨 있다. 그의 집이 있는 압구정동에서 새벽 4시면 일어나 세서(細書)·미각(微刻)에 골몰하고 하오에는 인사동 연습실에 나와 북연습에 파묻힌다.일년의 절반이상을 뉴욕과 도쿄,유럽무대를 누비는 세계적인 타악기 연주자에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세서의 달인이다. ○이슬·번개를 닮은 음악 먼저 그의 음악은 ‘이슬과도 같고 번개와도 같다’는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의 세계다.가장 빨리 사라지는 이슬에서 가장 크게 번뜩이는 천둥번개에 이르기까지 우주의 섭리를 쳐내기 위해 그의 손가락은 마디마다 부르트고 피멍이 맺혀 있다.그러나 그의 북연주는 물이 흐르듯이 흐르는 유장한 여운이 일품이다.처음에는 징과 챔벌,로토톰과 대고를 한꺼번에 쳤으나 지금은 그가 만든 북하나에 여섯개의 북채로 다양하고 현란한 리듬을 형성한다. 인간의 귀로 잡아낼 수 없는 침묵의 소리,마음의 눈으로나 들을수 있는 천상의 멜로디는 두번다시 재현되지 않는 즉흥연주로서 ‘가슴속의 추억’으로 남을 뿐이다.민속학자 심우성은 ‘그것은 전율과 경이로움의 연속이며 그 속에는 거문고 소리까지도 포함되어 있다’고 말한다.일본의 권위있는 음악전문지 ‘무신조’도 ‘약속된 악보없이 형식과 틀을 파괴한 그의 연주는 연주자의 마음가는대로 연주되는 프리 뮤직’이 강점이라고 평한다. 어떤 음악과 도 어울리고 어떤 장단도 구사하는 그의 테크닉은 ‘소리는 사라져버린다는 원리를 실천하는 행위’로서 공연기획자 강준일에 의하면 ‘그것은 눈부신섬광’일 수 밖에 없다. 그런가하면 그가 쌀 한톨속에 써넣은 ‘반야심경(般若心經)’ 283자는 세계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그의 붓글씨는 책상이나 바닥에서 쓰는 것과는 달리 선 채로 왼쪽에서부터 거꾸로 쓰는 좌서(左書)가 특징이다.현미경으로 봐야만 알아볼 수 있는,먼지보다 작은 세서도 글자마다 반듯하게 균형이 잡혀있고 획이 살아 있다.이 글씨를 쓰기 위해 바늘보다 더 가늘고 첨예한 세각도(細刻刀)를 직접 갈고 닦는 등 그의 손은 찔리고 베이고 성할 날이 없다. 바람에 흩날리듯,한바탕 춤추듯이 극(克)과 극(劇)이 극치에 다다른 그의 글씨를 보고 동양철학의 김용옥은 ‘왕휘지의 서법보다 더 분방하다’고 감탄했고‘그의 작품앞에선 타이베이 고궁 속의 세각도 빛을 잃는다’고 쓴 적이 있다.그가 미각에 빠지게 된 것은 지난 68년 중국에 가서 세서 전시를 보고 나서다.과연 ‘인간의 한계’란 어디까지인가.나도 해낼 수 있다는 확신과 함께 한국에 돌아오자 쌀알에다 글씨를 쓰기 시작했고 수백 수천개의 쌀알을 깨트린후 5년만에야 반야심경을 완성했다. 그에게는 두가지 호가 있다.음악을 할 때는 흑우(黑雨)이고 글씨를 쓸 때는 여수(如水)다.우(雨)와 수(水)는 두드린다,때린다(beat)는 뜻이다.노자에 의하면 ‘여수’는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上善若水)’는 의미이고 ‘흑우’ 역시 감추어진 소리를 찾아내는 소리의 탐구자로서 북을 치지 않아도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극소·극대의 경지를 터득하려는 극기 훈련이랄 수가 있다.그러나 그가 글씨를 쓰던 북을 치던 그것은 그의 음악을 위한 한 도정에 불과하다. ○“왕휘지 서법보다 분방” 20세기를 살아온 모든 예인들의 역정이 그러하듯 그에게도 ‘비천과 허영이 엇갈린 역사의 뒤안길’에서 외롭게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다.인천 동산중학교에 다닐때 그림과 조각,악기연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북소리가 좋아서 밴드부에 들어가 북을 치기 시작했다.졸업후 공군군악대를 거쳐 제대하자 이번엔 미8군 무대에서 이봉조 길옥윤 등과 연주,신중현과 재즈클럽을 만들기도 했으나 70년대에 들어서자 트럼펫의 강태환트리오와 공간사랑 무대에서 재즈 활동을 펼쳤다. 10년 이상 신나게 북을 두드리다가 어느날 ‘모든 박자는 일박(一拍)에 통섭(通涉)된다’는 것과‘한번의 때림으로 음악의 완성’을 깨닫자 지금까지 그를 둘러싼 모든 환경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연주를 위해 도쿄로 진출했다. 그 곳에서 아프로­아프리칸음악의 선구자격인 미국의 세계적인 트럼펫주자 레오 스미스,일본의 정상급 프리재즈 피아니스트 야마시타 요스케 등과 유럽 각지의 축제와 미국 인디언페스티발에 참가하면서 세계가 알아주는 대스타가 되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특별주문 제작된 오토바이 하레이 데이비슨을 타고 미국 동서횡단,남북종단의 연주에 나서는가 하면 오토바이를 악기로 사용하는 퍼포먼스는 세계 음악인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올해도 일본 시코쿠에서 출발하는 2,000㎞의 대장정과 이탈리아 아비뇽 예술제에 다녀왔고 중국과 미국연주를 남기고 있다.이른바 섬세의 극치인 미각에 신기원을 세우면서 역동적 드럼연주로 정상에 오른 상반된 두 분야의 거목인 셈이다. 절대로 매스컴을 타지 않고 포스터에도 자신의 사진을 싣지 않으며 낯가림이 심해서 남앞에 나서지 않는다. 그러나 예술을 사랑하는 지식층 사이에는 그의 추상회화적 음악,첨단음악은 오래전부터 ‘신화적 존재’로 회자되어 왔다.연주여행을 하면서도 반드시 8시간의 연습을 감행한다. 가족은 내조에 극진한 부인 權明姬씨와 딸하나. ○‘一拍에 通涉’ 섭리 깨쳐 재능있는 사람을 찬양하기를 꺼리지 않는 김용옥은 ‘이 땅에서 나와 같이 숨쉬고 있는 이만한 예술가’가 있음을 경탄하면서 ‘그의 기(氣)의 아름다움은 공부의 완성이며 완성으로 발출하는 심미적 세계 앞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다’고 경의를 표한다.보이지 않은 ‘흑우’와 들리지 않는 ‘묵우(默雨)’를 음악으로 성취한 그의 득도(得道)는 북이나 글씨가 아니더라도 그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가장 자유로운 예술가’로서 우리의 가슴속에 이슬같고 파도같은 긴 여운을 언제까지나 울려주게 될 것이다. ◎그의 길 ▲1933년 인천 출생 ▲1946년부터 인천 동상중 브라스밴드 ▲1952년부터 북 연주활동 ▲1953­57년 공군군악대 ▲1961년부터 미8군 무대활동 ▲1968년 세서각(細書刻) 시작 ▲1968∼72년 월남전 참가 ▲1975년 한국그룹사운드협회 회장 ▲1978부터 강태환트리오멤버 활동 ▲1985년부터 일본무대 진출 ▲1985년 ‘반야심경(般若心逕) 전문 백미실물(白米實物) 세서 완성 ▲1988년 북 개인발표회(동숭아트센터), LA에서 산타페까지 2천㎞ 대장정 연주,인디언 페스티벌 참가 ▲1990년 세각 세계 기네스북 인정 ▲1991년 ‘흑우(黑雨)’ 1집(일본출반) 기념콘서트(학전소극장) ▲1992년 김대환 미각반야심경전 ▲1993년 김대환북잔치(신라호텔),회갑기념 ‘울타리굿’(예술의전당),‘프리재즈페스티벌­블랙비트’(서울 연강홀 및 도쿄 산토리홀)연주 ▲1994년 흑우 김대환박물관 개관 ▲1995년 CD ‘흑우’ 2집,‘묵우(默雨)’1,2집 출반,하레이데이비슨 파이프사운드 연주(문화일보홀) ▲1997년 아시아 라이더스 발족,일본 시코쿠 페스티발및 오사카 서예라이브전 ▲1998년 그로벌 라이더스와 인디언 페스티벌 연주,이탈리아 아비뇽예술제, 오사카 간사이 페스티벌,일본 시코쿠 오토바이 연주 등 해마다 200여회 이상 일본·미국·유럽 연주
  • 연극연출가 孫振策(이세기의 인물탐구:177)

    ◎‘전통의 창조적 파괴’ 마당극 지킴이/“지금 우리의 삶 즐겁게” 마당정신 올곧이/‘서울말뚝이’ ‘오장군…’ 등 숱한 화제작 양산/우리 연극의 세계화 끊임없는 연구·정진 동양철학의 태두로 일컬어지는 도올 김용옥 박사는 연극연출가 孫振策을 향해 ‘항상 공부하는 손진책이 불후의 명작을 만들고야 말 것은 믿어 의심할 바 없다’고 단언해왔다. 한국학과 관련하여 지금까지도 친밀한 교분을 잇고 있는 도올은 지난 86년 손진책이 자신의 극단을 창단할 때 극단 이름‘미추(美醜)’를 지어주었다. 큰 ‘대(大)’위에 양(羊)을 쓰는 미(美)자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양’,추(醜)역시 ‘술병을 놓고 춤춘다’는 ‘제의식과 놀이’의 의미가 함축되어 이름에서부터 흥겨운 마당놀이가 물씬 풍겨나는 분위기다. 창단 선언문에서 손진책은 ‘마당은 인간의 보편성을 전제로 한 우리 고유의 삶의 양식이자 주객이 일체가 되는 영원한 역동성, 인습을 타파하는 새로운 전통’이라고 역설했다. 따라서 미추의 연극정신은 ‘마당정신’이며 ‘마당’이란 시간적으로 ‘지금’,공간적으로는 ‘여기’, 즉 지금 이곳에 살고있는 우리의 삶을 보다 적극적으로 ‘즐겁게’ 유도한다는 의지다. 예를 들어 현대극에다 우리 가락과 몸짓을 집어넣고 고전과 현대, 서양적인 것과 한국적인 것을 접목하여 전통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닌,인간다운 삶을 엮어내기 위해 전통을 창작적으로 해체하는 작업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명제아래 전통에 바탕을 두지않고는 우리 문화가 세계무대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그는 ‘전통의 창조적 파괴’에 끈질기게 천착해온 셈이다. 그래서 소재도 시대의 아픔을 정면에 내세우면서도 그 바탕에는 언제나 우리의 한맺힌 소리와 흥청의 몸짓이 곁들여진다. 그의 공연양식에 대해 연극계 일각에서는 ‘전통의 왜곡’이라고 공격하는 이들도 있지만 ‘치열한 자기개혁으로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전통’이 그가 고집하는 이상적인 영역이다. ○극단명 ‘미추’,김용옥이 지어 초기엔 극단 산하의 연출부에서 수습시절을 보내다가 73년 원로연출가 허규씨를 만나 극단 민예를창단,다음해 ‘서울 말뚝이’를 첫 연출로 그는 ‘배비장전’‘꼭두각시 놀음’‘한네의 승천’‘허생전’등 일련의 전통극의 현대화로 자신의 연극세계를 확고하게 구축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80년 MBC 후원으로 ‘마당놀이’를 시작했을 때도 멍석을 깔고 탈춤을 추는 복고풍에 그치지 않고 일상적인 삶이 이루어지고 있는 이 땅 이 광장에서 형식과 고정관념의 틀을 깬 오늘의 춤, 오늘의 문제에 집요하게 파고들어 발전을 모색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지킴이’‘오장군의 발톱’‘신이국기(新二國記)’‘영웅만들기’‘시간의 그림자’‘남사당의 하늘’등이 그 예이며 이러한 민족적 기상을 살린 연극으로 북유럽과 러시아 동남아 미국등 해외무대에 진출, 그때마다 흥행이나 작품성에서 호평을 받았을뿐 아니라 해마다 중요 연극상을 휩쓸기도 했다. ○민족연극 해외서 더 호평 그동안 90여편의 작품을 만들면서 그는 작품의 ‘완성도’에 치중하여 1년에 한 작품만을 고집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신념은 ‘문화는 흐르는 물과도 같아서 들어오는 것을막을 수도 없고 또는 수세적인 자세도 문화발전에 도움이 안된다’는 주의다. 국내는 물론 바깥으로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무엇을 내놔야 부끄럽지 않은 경쟁력을 지니면서 이겨낼 수 있을까를 연구하여 연극의 문학성과 해학성, 예술성을 치밀하게 복합시키기도 한다. 관객은 물론 그의 작품을 신뢰하게 되고 그가 연출한 어떤 작품을 보아도 실망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것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손진책은 언제봐도 변하지 않는 미청년의 모습이다. 천재성을 번뜩이지도 않고 난삽한 논쟁에 휘말리지도 않는다. 조용한 편이지만 자신의 입지를 밝히기위해선 노력과 정열을 아끼지 않고 눈앞의 현실을 직시한다. 경북 영주에서 사업을 하던 孫秉吳씨와 黃鳳漢씨의 8남매중 넷째이자 장남, 위로 누나셋중 큰누나인 손정숙은 서양화가이고 셋째누나인 손봉숙은 한국정치연구소장이다. 서울에서 대광고에 다닐 때는 연극무대가 있는 명동에 드나들었고 한 때는 클래식음악, 다시 그림그리기에 몰두하다가 아서 밀러에 심취하면서 부모의 만류를 뿌리치고 연극의 길로들어섰다. 대학시절에는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전국을 누비면서 남사당의 마지막 꼭두패인 남운용옹을 비롯 동해안 별신굿의 김영달,한국 가면연구회의 이근성씨등 전통연희의 장인들을 만나 봉산탈춤과 양주별산대를 전수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가족은 75년 극단 민예시절에 연출자와 연기자 사이로 만난 金星女와의 사이에 남매. 김성녀는 창과 춤솜씨가 뛰어난 중견배우다. 배고프고 외롭던 연극초창기에 그는 극단 민예의 아현동과 이대앞 대현동 시절을 거쳤고 지난 90년이후 장흥부근인 경기도 양주군 백석에 그의 오랜 염원이던 300석규모의 ‘미추산장’을 개관했다. 아무의 제재도 받지 않는 자신의 연극을 만들면서 연극 워크숍과 공연은 물론 연극학교도 열 계획이다. 그와 예술적 교감을 형성하고 있는 국악작곡가 박범훈은 ‘손진책은 가무악(歌舞樂)이 함께하는 우리 토착예술의 정수를 아는 사람’이며 만약 고향 영주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면 아마도 농토를 지키는 멋진 지킴이가 됐을 거라고 조언한다. ○전통연회 장인들에 전수 그의 연극은 처음부터 뚜렷한 목표가 있었고 그 목표를 향해 줄기차게 질주해 왔으며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해도 일목요연한 발전만으로 모든 파란은 침몰된 상태다. 그가 얼마나 학구파인가는 그가 연습실을 옮길 때마다 가지고 다니던 수천여권의 연극대본과 연극학 한국학 국악 철학관련 서적들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우리 사회에서 연극을 한다는 것은 성직자와 같은 각오없이는 도달할 수 없는 험로(險路)다. 그러나 도올의 단언대로 그는 ‘남사당의 하늘’‘시간의 그림자’같은 주옥편을 탄생시켰고 이제는 사방이 확 트인 자연속에서 불멸(不滅)의 명작을 잉태하기 위한 흥과 정취,긴 신명을 도저하게 펼쳐나가게 될 것이다. ◎그의 길 ▲1947년 경북 영주출생 ▲1970년 서라벌예대 연극과 졸업 ▲1967년 극단 산하 연출부입단 ▲1973년 극단 민예극장 창단동인 ▲1974년 ‘서울말뚝이’ 연출데뷔 ▲1881­현재 마당놀이 ‘허생전’‘‘이춘풍전’등 서울및 지방공연중 ▲1982년 런던로열셰익스피어극단연수 1982­86년 극단민예극장 대표▲1986년 극단 미추창단대표, 국제극예술협회(ITI)한국본부이사 ▲1987년 극단 미추창단기념공연 ‘지킴이’연출, 국악관현악단 지도위원 ▲1989년 ‘심청전’ 유고공연 ▲1990년 ‘아리랑’ 소련순회공연 ▲1992년 태평양국제연극제 참가 ▲1993­현재 LG복지재단주최 전국고교순회 마당극 ‘이춘풍전’등 공연 ▲1994­현재 국제극예술협회한국본부 부회장, ‘심청전’ 미국순회공연 ▲1995년 ‘춘향전’ 미국순회공연 ▲1996년 오늘의 작가전­최인훈 연극제 및 베세토국제연극제 ‘봄이 오면 산에 들에’참가 ▲1997년 세계연극제 국내공식초청작 ‘오장군의 발톱’공연 참가 한국연극영화예술상 신인연출상(75년) 한국백상예술대상 작품상(86년) 서울연극제연출상(87년) 예술평론가제정 ‘최우수예술가’선정(87년) 한국백상예술대상 대상·작품상·연출상(88·89·91·93년)
  • KAL기 괌추락 손배소/미 법원 “관할권 없다” 기각

    【로스앤젤레스 연합】 지난해 괌에서 일어난 대한항공(KAL) 여객기 추락사고의 사망자 유족이 대한항공을 상대로 미국 법원에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관련,법원이 재판관할권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 결정을 내림으로써 유사한 소송들에 전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관할 연방법원의 로버트 맬러니 판사는 지난달 28일 괌사고 사망자 김용옥씨(여·사망 당시 43세)의 유족인 김철균씨(경기도 성남 거주)가 대한항공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과 관련,이에 적용되는 국제조약인 바르샤바협약이 명시한 재판관할권 소재지중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으므로 이를 각하한다고 밝혔다.
  • 「농심마니」 창립10돌 기념전

    ◎“우리 땅 자연”에 대한 애정그린 작품/「토종」 미술회원 22명 출품… 내일 개막 지난 87년부터 전국 심산유곡에 약 7천주의 산삼 묘삼을 심으며 우리 「토종」과 관련한 학술세미나와 문화제등 문화예술활동을 펼치고 있는 문화단체 농심마니가 미술제를 18일부터 23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인데코갤러리(738­5074) 3·4층에서 마련한다. 농심마니 창립 10주년을 기념하는 토종문화제의 하나로 이 단체 소속회원 미술인 22명이 각기 자신의 역량과 소신을 담은 작품들을 내놓는 것. 우리 땅에서 생성하는 자연 본래의 모습과 생명에 대한 애정을 진지하게 담은 작품들이 나온다. 평면에서 강찬모 김윤진 김준근 김흥두 박권수 성선옥 왕형열 이목일 이존수씨가 작품을 선보이고 입체에선 박상희 신명덕 안진수 이기일씨가 참여한다.또 김기철 백수남 변재희 장양희 정기호 최울가 한규언씨와 마광수 이외수씨가 찬조출품한다. 개막일인 18일 하오5시 변규백(국악작곡가) 전유성(개그맨) 조영숙(국악인) 김운선(한국무용가) 이연실(가수)씨 등 회원들이출연하는 「산삼의 나라,생명의 세상」공연이 펼쳐진다. 이와 함께 전시 마지막날인 23일 하오2시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도올 김용옥씨의 강연 「삼의 역사」가 이례적으로 곁들여진다.
  • 무용가 김현자(이세기의 인물탐구:109)

    ◎일체의 형식 거부… 생명·자유를 춤춘다/끈질긴 실험정신… 공연마다 변형춤 창조/5살부터 정식 사사… 발레·현대무 고루 섭렵 2년전 백남준의 초청으로 뉴욕 코트하우스시어터에서 김현자가 「생춤」공연을 가졌을때 뉴욕타임스는 생춤을 「Lived dance」로 표기하고 「무대에서의 빛의 번쩍거림과 깊은 어둠의 교차조차 춤이며 빛의 어둠과 밝음의 존재를 수묵화로 그려낸 춤」이라고 평했다.특히 가야금산조에 맞춘 그의 「묵」과 「샘」은 한국춤에서의 정중동과 동중정을 아름답게 일깨우면서 때론 훨훨 벗고 때론 독수리처럼 훨훨 날면서 비상중의 정지,빛과 어둠속에서의 움직임과 정지를 교묘하게 엇가른다. 중앙대 정병호 교수는 김현자를 두고 이렇게 말한적이 있다.『그는 무한한 창의력과 에너지로 자신의 춤을 추고있다.남의 춤을 흉내내는 춤은 아무리 잘추어도 「좋은 춤」이라고 하기는 어렵다.무용가라면 시의에 맞는 자신의 춤을 만들수 있어야하며 그가 바로 김현자다』 그리고 「현대한국무용」이라는 차원에서 「그의 춤은 단연 빼어나다」고 못박았다. 92년 문예회관대극장에서 「백남준의 퍼포먼스와 김현자의 춤」을 공연했을때도 이를 관람한 도올 김용옥은 「백남준 선생의 해프닝 등 두개의 퍼포먼스가 한무대에 있어야만하는 아무 의미나 커넥션을 발견할수 없었으나」 「얼음덩어리들이 매달려있는 좁은 연단위에서 김현자선생이 추는 춤에대해서는 누구나 좋았다고 생각했고 탁월한 수작이라는데 이의가 없었다」고 그의 「석도화론」에 쓰고 있다. 김현자는 의외성이 많은 무용가다.한군데 머물러 「스스로 고이거나 누적되지 않고」「춤의 완성」을 위한 끈질긴 집념을 불태운다.그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생춤」은 이른바 「무와의 대결」이며 시인 김영태에 의하면 「얽히고 설킨 칡넝쿨이 바람에 쓸리고 흔들리면서 춤이 자연의 일부임을 가장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춤」이다. 그는 지금까지의 식상과 타성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얻는다」는 신념으로 오늘에 이른 예술가다. ○의외성 많은 무용가 69년 「황진이」부터 82년 대한민국무용제 연기상을 수상한 「열녀문」까지는 그의 선배들이 걷던 전통춤의 맥을 잇는 작업이었고 그때는 철저하게 계산된 스토리가 있는 정교한 극춤을 추었었다.특히나 흰수건을 떠받치고 추는 「살풀이」는 「살을 푸는 그의 떨림이 관객의 피부에 예리하게 촉감」될 정도였고 그의 부드러움은 「안개와 같다」고 찬사하는 이들도 있었다.이후 대한민국무용제 대상작품인 「홰」에 이르러 원로 박용구씨는 「단일하고 통일된 상상력과 구성력을 갖춘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하는가하면 김태원은 신무용의 전통과 밀착된 「신신무용」이란 새로운 용어를 등장시키기도 했다.그의 「춤의 비약」의 기미는 그렇게 태동하고 있었다. 둘째는 87년 럭키무용단을 창단하면서 그는 본격적인 실험정신이 깃든 춤을 선보이고 나섰다.창단기념공연인 「황금가지」는 인위적으로 모자이크된 박제된 춤을 버리고 무용수들이 거의 반라로 무대에 올라 「외설시비」를 불러일으킬만큼 센세이셔널한 충격을 던졌다.「그것이 한국춤이냐 아니냐」는 논란이전에 그의 변형춤은 그가 춤출때마다 하나의 사건으로 무용계를 긴장시켰고 철근골조와 육체의 대비를 그린 「회일」경우는 「강렬하고 자신만만하게 허심탄회를 춤추었다」는 평을 받았다.다음은 수년간 기훈련에 심취하더니 최근 7,8년사이 「인체에 내재하는 자연의 섭리」로 「육체와 정신의 무화」를 꾀한 자연스러운 춤을 끌어내게 되었다. ○럭키무용단 해체 아픔 그는 경관이 수려한 진주에서 태어나 푸르른 남강을 내려다보면서 장래 「강물처럼 춤추는 무용가」가 될것을 꿈꿔왔다.부친은 소설가 이병주씨와 절친하던 김성범씨(전 마산대 교수)이고 그를 실질적으로 무용가로 키워낸 사람은 그의 어머니 조우상달 여사(76)다.만 다섯살이전에 황무봉문하에 들어가 춤을 배웠고 김백봉 송범 이매방 한영숙을 사사, 발레와 현대무용을 고루 섭렵하면서 일찍이 「비범」을 보여 주변의 기대를 한몸에 모았다.무용가답게 아름답고 아담한 체구에 강인한 그의 춤은 언제나 「최고」라는 찬사에 둘러싸여 있었으나 「살아있지 않은 춤, 자신을 일깨우지 못하거나 상투적인 무대형식」을 경계하여 「무위」로 가기 위한 긴 몸부림을겪을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자연그대로의 생생한 춤」, 모든 형식에서 벗어나서 생명의 가장 근본적인 기로 추는 「생명의 춤, 자유의 춤」을 달성하게 된 것이다. 그는 정이 많고 대범하면서도 불투명한 것은 참지 못하는 선명한 성격이다.춤에 침몰하여 「우주의 심장에 도사린 춤의 핵심」에 파고들뿐 사교적인 자리에 나타나거나 단체공연에는 비교적 참가하지 않는다.그처럼 철저한 그에게 얼룩이 있었다면 럭키산하의 무용단 창단후 「세계적인 무용단」을 표방하고 밤낮없이 하드 트레이닝을 강행한 것이 단원들의 반발을 산것과 단체를 2년만에 해산한 것, 이로인해 아끼던 제자들과의 결별이 아픔으로 남아있으나 지금도 「공들이지 않고 달콤한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안일한 정신은 용서되지 않는다」고 외면한다. 그동안 부산에 살고있다가 7년전 서울근교인 경기도 하남시 하산곡동에 정착, 부군 정정철씨는 철학과 종교에 심취한 자유인이고 어머니와 아들과 함께 살면서 일주일에 3일은 부산대 강의, 그외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집에 머물러 주로 안무와 관련된 사색을 즐긴다. 「묵」과 「샘」이후 지난봄 호암아트홀에서 보여준 그의 「메꽃」은 「예살과 서기를 배제하고 몸으로부터 치솟는 샘물같은 정기와 몸속깊이 스민 묵존을 춤추어」 다시한번 관객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그러나 「회전하는 버선끝에서는 살풀이나 승무의 무보가 현란하고 사선과 나선형으로 말려 올리는 자진몰이부분은 한층 미의 극치를 이루어」 지난날 김영태가 그의 「살풀이」를 보고 「김현자의 살풀이는 독하고 요기가 서려 한의 끝자락이 강물에 녹는듯하다」던 평을 상기시킨다. 한군데 머무르기를 거부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면서도 그것이 한낱 시도나 실험정신이 아닌 「완성된 정품」이기를 원하는 그는 무대 한복판에 박힌 「한덩어리의 보석」인양 언제라도 눈부신 광채를 발하면서 「이시대 찬연한 존재」임을 그때마다 확인시켜 주고 있다. □연보 ▲1947년 경남 진주 출생 ▲54∼74년 황무봉 사사외 김백봉 한상묵 이매방 송범 한영숙 사사 ▲57년 진주개천예술제 특상·한국무용협회 주최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신인상 ▲63년 이화여대 주최 전국무용콩쿠르 1등 ▲70년 이대 무용과 졸업 ▲75년 김현자 무용발표회 ▲76∼82년 부산시립무용단장 ▲79년 일본 오키나와 한국인위령탑건립 5주년기념 초청공연 ▲82년 논문 「동래 기방무에 대한 연구」로 동아대대학원서 석사 ▲83∼현재 부산대 무용과 교수 ▲83년 김현자무용단 창단,뉴욕 한국문화원 및 호암아트홀개관기념 초청공연,마사 그레이엄센터 하계 연수 ▲84년 뉴욕 아시아소사이어티 및 미국 한스빌본브라운센터 초청공연,머스 커닝햄댄스스튜디오 연수 ▲85∼87년 럭키창작무용단장 ▲96년 아시안게임 개막식 안무 ▲87년 김현자 춤아카데미 설립,서울창작무용제 주관 ▲89년 김현자 「생춤」 발표 ▲92년 「백남준의 퍼포먼스와 김현자의 춤」 공연(문예회관 대극장) ▲94년 한양대서 이학박사,백남준 기획초청 뉴욕 코트하우스극장공연 ▲96년 하와이대 동서문화센터초청 「한국의 소리」,현대춤작가전 「메꽃」 공연(호암아트홀) 〈대표작〉 「황금가지」 「분리에서 합으로」 「윤사월」 「바람개비」 「갯마을」 「여자 새되어 울다」 「보리피리」 「홰」 「하루1,2」 「생춤」 「샘」 「묵」 등 다수 〈수상〉 대한민국무용제 연기상(82년) 대한민국무용제 대상(84년) 부산예술대상(90년) 〈저서〉 「김현자 생춤의 세계」(문학사)
  • 비디오작가 백남준(이세기의 인물탐구:96)

    ◎규격을 거부하는 첨단예술가/텔레비전 주사선 조작으로 비디오예술 “창시”/기존관념에 도전… 어떤 일에도 의미부여 안해/개관이래 외부 나간적 없는 뉴욕 휘트니비엔날레 93년 국내 유치도 멜빵 달린 바지에 두꺼운 신문뭉치를 옆구리에 끼고 뉴욕의 「남준 백」은 상오 11시께 아침식사를 하러 소호로 나온다.단골식당은 그의 스튜디오가 있는 스프링스트리트 코너바.아주 천천히 야채샐러드 한접시를 다 비우고 스테이크나 생선,롤빵을 더 시켜먹는다. 식사를 하는 동안에는 신문을 읽는다.뉴욕타임스,인터내셔널헤럴드튜리뷴,월스트리트저널을 샅샅이 읽고 한국신문도 훑어본다.임대료가 비싼 남의 스튜디오를 빌려 쓰기 때문에 주로 밤샘작업을 하는 편이고 취미는 낮잠과 산책.세계적인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겉모습은 언제나 천진무구하기만하다. 그러나 어눌한듯 하면서 거침없이 쏟아내는 말의 성찬은 상대방의 질문에 선문선답식으로 우회하거나 때로는 정곡을 찌르면서 그속에 해학과 사물에 대한 통찰이 숨겨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중에서도84년,34년만에 고국땅을 밟으면서 「예술은 사기」라고 한 말은 당시 우리의 지적분위기에서는 폭탄선언이었고 『왜 무엇을 근거로 예술이 사기인가』라는 논란과 함께 오랫동안 문화예술계에 혼란의 파장을 불러일으킨바 있다. 그가 비디오아트를 하게된 동기는 너무나 「간단」하다.기술잡지에서 본대로 텔레비전의 주사선만을 조작했는데도 『펑펑 새로운 그림이 쏟아져나왔다』는 것이고 『비디오무용만 해도 세상만사 아무거나 찍어서 이어붙이면 무용이 된다』고 대수롭지않게 말해버리기 때문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92년 8월,동숭동 문예극장 대극장에서 열린 무용가 김현자와의 퍼포먼스를 예로 들수 있다. 그날 그는 직접 무대에 나와 피아노에다 못을 박거나 피아노건반을 의미없이 튕겨보기도 하고 손가락을 허공중에 찔러보는 지루한 되풀이를 계속하고 있었고 김현자는 김현자대로 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춤을 추어대고 있었다. ○“예술은 사기” 충격선언 동양철학을 하는 도올 김용옥은 이 공연을 보고 처음엔 『공연자체로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다른 범인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낀 천재이거나 범인이 느끼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천재』일꺼라고 비꼬았다.반대로 가야금명인이자 현대음악에도 조예가 깊은 황병기는 『우리가 얼마나 부질없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부자연스럽게 살고있는지를 너무도 강렬하게 반영해준 천재의 공연』이라고 호평해 마지않았다.그러나 『왜 공연을 한시간만에 끝냈느냐』는 질문에 백남준은 『그렇게 지루한걸 뭣하러 오래해, 빨리 끝내는게 좋지』 두사람의 엇갈린 비평을 일시에 일축했다. 그후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한 대규모 회갑전을 본 도올은 『광대한 화폭이 끝없이 움직일뿐만 아니라 눈길이 닿는 순간마다 변화무쌍을 구사하는 그의 색채예술에 현혹되지 않을수 없었다』고 고백하게 되었다.『그는 무엇보다 정감이 가는 인간이며 해탈한 인간,그리고 그 인간이 훌륭하다』고 전제하고 「무위적 행동속에 유위」를 창조하는 백남준에게는 『참으로 광막한 지식의 세계가 엄존하고 있으며 관심의 초점이 맞닿는 곳마다 확고한 전거와 자기류의 해석을 가지고 있었다』고 감탄했다.실제로 그는 「한국의 역사는 물론 중국 노장과 주자학의 도덕적 엄격주의,명대사회의 개인주의와 시민정신을 표방한 양명학,삼국유사에 이르기까지 정확하고 디테일한 정보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그러나 막상 백남준은 「천재의 둘째」라면 서러워할 김용옥이 누구인가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고 오히려 머리를 빡빡 깎았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절깐의 중놈취급」하여 도올이 그의 저서를 증정하자 『왜 스님이 한글로만 책을 썼느냐?한문 없는 거는 책두 아니다. 난 그런 책은 안본다』고 묵살한 웃지못할 에피소드를 남기고 있다. 일탈한듯 방심한 듯한 그의 움직임을 세세히 뜯어보면 서구사회에서 물든 개인주의와 합리주의,세속적 관심과 유행의 흐름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고 디컨스트럭션(비구조)과 디포메이션의 철학을 바탕으로 작품에서도 정통성과 엄숙성,현실에 대한 야유와 풍자,시니시즘과 현란미까지도 치밀한 계산에서 종횡무진 모자이크하고 있음을 간파할수 있다. ○6·25 나던해 도일 63년 독일 부퍼탈 파르나스화랑에서 열린 「존케이지에 대한 경의」만해도 단순히 케이지의 넥타이를 가위로 자른 행위예 불과한것 같지만 「넥타이는 맬 뿐만 아니라 자를수도 있으며 피아노는 연주뿐만 아니라 두둘겨 부술수도 있다」는 기존관념에 대한 과감한 도전과 파괴의 실천임은 말할것도 없다. 콩을 던지고 쉐이빙 크림을 바르고 자신의 웃통을 벗은채 「인간첼로」가 되는가 하면 바이올린을 강아지처럼 끌고 다니는 그의 뒷모습에선 틀에 박힌 모든 일상에서 훨훨 벗어나고 싶은 현대인의 묘한 아이러니와 비애감이 물씬 풍겨난다. 대표작의 하나인 「달은 가장 오래된 TV이다」도 마찬가지다.「초승달에서 그믐달까지 달의 차고 기우는 과정을 교교한 시적차원으로 창출한 반면 TV모니터와 대좌한 「TV부처」의 경우는 「동양적 사유와 첨단기술이 서로 깊이 조응하는 무시무종의 윤회」를 구사하면서 기계의 철학화와 종교화를 꾀하고 있다. 그가 한국에서 산것은 6·25가 나던해 일본에 건너가기 전까지 18년 뿐이다.태창방직 설립자인 백낙승씨와 조종희씨의 3남2녀중 막내,종로구 서린동에서 그가 어린시절 「가장 재미있게 가지고 놀던 장난감은 피아노」였고 경기중시절에는 마르크스주의자였으며 「분배의 정의없이는 의를 실현할수 없다」는 사상이 지금까지도 「남의 모방이나 티내는 예술을 거부」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오는 7월17일 독일의 다름슈타트 현대음악제 50주년 기념행사 오프닝콘서트등 전세계를 누비는 전시와 공연에 쫓기는 중에도 기업체로부터 의뢰받은 작품제작을 위해 1년에 한번은 서울에 오고 그때마다 「부자가 많은 서울」에 익숙지 못한 그는 호텔비가 저렴한 변두리쪽에 숙소를 정하고는 반드시 만날 사람들을 구별하기 위해 호텔프런트에 「암호」를 대게하는 여전한 장난기를 누리기도 한다. 알뜰하고 낭비가 전혀 없지만 지난 93년에는 1억원이 넘는 돈을 내놓아 개관이래 외부에 나가본 적이 없다는 뉴욕 휘트니비엔날레를 국내에 유치했고 지난해 광주비엔날레 정보예술전에는 세계적인 미술인등 컴퓨터천재 60여명을 초청,고국의 미술계발전을 위한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일본인 부인인 구보타 시게코(구보전성자)와는 77년 뉴욕에서 결혼,시게코도 비디오작가이지만 둘이는 서로의 작업을 존중하고 철저히 방해하지 않는다. ○부인도 비디오 작가 그에대해 확신할수 있는 것은 그는 규격화를 거부하는 첨단예술가,행위예술가로서 어떤 일에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며 『모든 상식과 틀은 사람을 「바보」로 만들기 때문에 수시로 파괴되고 변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프랑스의 미술평론가 장폴 파르지에는 그런 그를 향해 「피카소이후 20세기작가 중에서 유일하고도 진정한 새로운 구상형식의 창시자」로 단정짓고 도올역시 「그는 한국이 낳은 예술가이긴 하지만 한국예술가는 아니며 마르셀 뒤상 막스 에른스트 쉔베르크와 머스커닝햄,그가 친애해 마지않던 존케이지 조셉 보이스와 함께 세계적 예술가」로 정의를 내리는데 주저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누구의 어떤 형태의 표현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는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은 「이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예술가」이며 더욱 확실한것은 예술가의 온상인 뉴욕하늘에 뜬 수많은 「별」들중에서도 특히 특별한 광채를 발하는 「아주 눈부신 존재」임에 틀림없다는 사실이다. □연보 ▲1932년 서울출생 ▲1956년 동경제대 졸업,독일 뮌헨대 쾰른콜로뉴대서 작곡수업 ▲1957년 프라이부르크 뮤직콘설바토리 입학,다름슈타트 강좌참가 ▲1960년 플럭서스결성 ▲1963년 독일 첫비디오 개인전 ▲1965∼77년 미국 첫개인전이후 유럽및 남미 전미국연속순회 ▲1978년 뒤셀도르프 국립미술대 초빙교수,파리·도쿄개인전 ▲1982년 뉴욕휘트니미술관주관 백남준 회고전,플럭서스 20주년기념전 ▲1984년 우주오페라 △1부작 「굿모닝 미스터 오웰」,도쿄·몬트리올개인전 ▲1986년 우주오페라 2부작 「바이바이 키플링」,체이스맨해튼소장전 ▲1988년 서울현대화랑 개인전,국립현대미술관에 「다다익선」설치.우주오페라 3부작 「손에 손잡고」발표 ▲1989년 서울현대화랑서 조세프 보이스를 위한 진오귀굿 추모공연 ▲1991년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아 「백남준 대회고전」순회전시 ▲1992년 국립현대미술관백남준회갑기념전,「92 춤의 해를 위한 김현자와의 퍼포먼스」(서울문예회관) ▲1993년 대전엑스포 비디오아트쇼,뉴욕 휘트니비엔날레 서울유치 ▲1994년 밀라노 두오모성당광장 공연,파리 퐁피두센터공연 ▲1995년 광주비엔날레특별전,제네바 유엔창립 50주년기념행사참가,조선일보미술관·갤러리현대·박영덕화랑 개인전등 수백여회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기념전 〈수상〉 독일 캐피탈지 「세계의 톱미술가」5위(93∼95년),스웨덴 스톡호름 아트페어 「올해의 미술가」(95),93,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호암상예술상(95년)
  • 일본 정치사상사 연구/마루야마 마사오 지음(화제의 책)

    ◎일 근대화의 바탕 이룬 정신세계 해부 일본 정치사상의 흐름,특히 근대화를 이룬 사상적 바탕을 밝힘으로써 현대일본 연구의 필수도서로 꼽히는 명저.지은이는 일본 학계에서 「마루야마천황」이라고 불릴 정도로 권위를 인정받는 인물이다. 한국·중국 등 동양 제국이 근대화에 실패,구미 열강의 식민지 또는 반식민지로 전락한데 비해 일본이 명치유신을 계기로 근대화를 이룩한 정신적 배경이 무엇인지를 분석했다.일본 유교가 전통적인 주자학에서 국학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자연」과 「작위」라는 개념의 대립에서 탄생한 국가제도,국민국가 형성 초기의 성격들을 다룬 논문 3편으로 구성됐다.40∼44년에 발표한 논문들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치사상사 연구에서는 아직 이를 뛰어넘는 저술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동양사상 연구에 몰두하는 김용옥 전고려대교수가 책에 곁들인 해제 자체도 읽어 볼 만하다. 그는 『우리 학계에는 철학사만 있고 사상사가 부재한다』고 비판하고 『이를 극복한 동아시아문명권 최초의 저서이며 일본사상사 연구의 출발점』인 이 책을 꼭 읽도록 권하고 있다. 김석근 옮김,통나무 1만5천원.
  • 김숙희 교육(신임각료 면모)

    ◎이대배출 두번째 여성교육장관 작고한 김옥길장관에 이어 이대가 배출한 두번째 여성교육부장관.쾌활한 성격과 강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국제영양학회 이사를 맡고 있으며 풍부한 아이디어는 국내식품영양학계와 여성단체의 사업결정에 길잡이가 되었다.27세때 미국텍사스여대에서 박사학위를 따 한국인의 우수성을 과시했으며 65년 귀국후 이대 조교수로 출발,83∼89년 가정대학장을 지냈다.오빠인 김용순씨(고대화학과 명예교수) 김용환씨(피부과의사)및 요즘 동양철학으로 유명해진 동생 김용옥씨(전고대교수)등과 함께 박사가 5명인 학자수재집안의 미혼여장부. 95년 세계Y 1백주년 기념대회를 유치하는등 사회활동에도 앞장서왔다.
  • 전국 공공도서관·중앙박물관·사상연 등 다양한 강좌 개설

    ◎즐거운 겨울방학 뜻깊고 알차게/고전·독서·민속 등 교양프로그램 다채/초중고교·대학생·교사 등 대상 겨울방학에 맞춰 박물관·도서관을 비롯한 각 학술·사회단체에서 각종 교양 프로그램을 활발히 준비하고 있다.프로그램의 내용이 독서지도·고전강좌등 다양하고 기간도 5일에서 석달에 이르는등 갖가지여서 자신에게 알맞는 것을 골라봄직하다.대표적인 프로그램 몇가지를 소개한다. ▷공공도서관 겨울독서교실◁ 국립중앙도서관을 비롯한 전국의 각급 공공도서관이 새해 1월10일부터 어린이독서교실을 연다.도서관 관계자들이 도서관 이용법,원고지 쓰는 법,올바른 독서법,좋은 책 선택법,독후감 작성법등 독서 및 도서관 이용에 따른 전반적인 사항을 지도한다.각 도서관 사정에 따라 개설시기·기간등에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개 국민학생 3∼6학년과 중학생 대상으로 6∼10일 일정이다.이번에 48번째 개설되는 독서지도 프로그램으로 지난 겨울강좌에서는 전국 1백55개 도서관에서 8천8백50명이 수강했다.문의(02)569­5638. ▷어린이·청소년 박물관교실◁ 국립중앙박물관이 국민학생 4∼6학년 4백명,중학생 2백명을 대상으로 개설한다.기간은 국민학생이 새해 1월10∼14일,17∼21일 두차례,중학생이 1월24∼28일등 각 5일씩이다. 전통문화에 대한 강의와 전시실 학습,유적답사,실습등 다양하게 프로그램이 짜여 있다.참가비 5천원.문의(02)739­3872. ▷고전강좌◁ 한국사상사연구소(소장 김용옥 전고려대교수)에서 대학생과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사서를 강의하는「도올서원의 동양학겨울서당」이 있다.일반적인 교양강좌와는 달리 수강자 자격을 엄격히 제한해 희망자는 소속대학·학과·배우려는 목적등을 적은 자기소개서를 보내 입학허가를 받아야 한다.개설기간은 새해 1월10일부터 2월4일까지 주5일 2시간씩이다.등록금 5만원.강의장소 서울 동숭동 성좌소극장건물 4층 도올서원.문의(02)395­09 80 기초한문을 배우려는 사람은 전통문화연구회(02­762­8401)에서 개설한 교양강좌를 수강하는 것이 손쉬울 듯 하다.지난 2일 시작돼 2월 말까지 계속된다. ▷국립민속박물관 청소년민속강좌◁ 고교생을대상으로 13일부터 17일까지 박물관 3층 민속공방에서 열린다.전통적인 관혼상제의 예,족보 및 친족관계,농경세시풍속과 무속신앙·민담·전설등을 전문가들이 강의한다.수강료는 받지 않으며 접수순으로 2백50명만 받는다.문의(02)720­3137. ▷기 타◁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은 각급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한국인과 문화」를 주제로 한 전통문화강좌를 연다.기간은 새해 1월10∼15일이며 프로그램은 전통문화개론·한국고미술·한국의 전통예술·건축과 조경등에 대한 강의와 창덕궁,충주·중원지역 답사로 구성돼 있다.수강료 5만원.문의(02)266­6938. 이밖에 아람연구원에서 13일부터 새해 2월말까지 3차례로 나누어 개설하는「성경원어 특강」이 있다.국내 대학등의 교과과정에 포함되지 않은 헬라어·히브리어·수메르어등 고대 중근동지방의 언어를 가르친다.문의(03 43)69­3123.
  • 「조용히 쓸어라…」(화제의 소설)

    ◎해외 한국여성문제 집요하게 추적 ▷「조용히 쓸어라 대지는 깊이 잠들지 않는다」◁ 여성문제를 다룬 소설은 많지만 유학생남편을 따라 나선 여성이 이국땅에서 겪는 해외한국여성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은 드물다.노벨상수상작가 윌코트의 시에서 따온 제목만으로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이 소설은 실제 15년간 미국생활을 체험한 작가가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그 한풀이를 시도한 작품이다. 작가 이하천은 이 소설로 등단했다.자신의 사고를 개발시켜준 김용옥 전고려대교수의 추천을 받기 위해 87년도부터 6년을 기다린 끝에 「대지의 잠을 깨우며」란 추천평론을 받아낸 끈질긴 여자이다.이후남이라는 여자주인공의 비참하고 억울한 죽음뒤에 가리워진 여자들의 문제를 이 작가는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다. 이하천지음 통나무 5천원.
  • “침은 기흐름 균형맞추는 과학”

    ◎전고대교수 김용옥씨,연대서 이색강연/한의학은 만병근원 복부에 있다고 인식/체질에 따라 치료… 양의학보다 과학적/6년만에 강단에… 동서양의학 균형·조화 역설 세간에 숱한 화제를 뿌려온 철학자 도올 김용옥씨(44·전고려대철학과교수)가 한의대생으로 돌아가 대학에서 수업한 한의학에 기초한 「한의학의 과학화」를 조명하는 특강을 가져 눈길을 끌었다. 지난6일 서울 연세대 대강당에서 「문화인류학 특강」으로 열린 「침은 과학이 될수 있는 가」란 강의에는 정치인·일반인·학생들이 1·2층을 가득메워 그의 한의학에 대한 특유의 접근방식·독설·기인적 행태 등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을 입증했다. 현재 원광대 한의대본과 1학년에서 공부하고 있는 김씨는 연세대 사회학과 문화인류학 특강 교재인 「신한국기」의 저자 자격으로 출강한 이날 강의에서 현시점의 역사적 국면을 이해하는 방법,한의학과 인연을 맺게 된 사연,동서양의학의 접근방식,침의 성립배경및 발전양태 등을 특유의 접근법으로 풀어나갔다. 그는 현재의 역사적 국면은 동양문화와 서양문화의 두축이 만나는 새로운 문화의 탄생으로 규정했다.먼저 동양권에서는 공자를 중심으로 한 유교문화와 인도의 불교문화가 합해져 위진남북조를 거쳐 당제국의 문예부흥기로 이어지다가 송·명대에 새로운 공자적 유교관인 주자학관과 양명학관으로 갈라져 현대문화를 형성해 현재에 도달했다.서양권에서는 그리스문화를 중심으로 한 헬레니즘과 기독교문화의 헤브라이즘이 합해져 중세(이때를 암흑기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문화의 잉태기로 봄)를 거쳐 문예부흥기(아랍문명의 절대적 영향을 받았다고 봄)로 이어져 경험을 중시하는 엠피리시즘과 이성중심의 레이셔니즘으로 분리됐다가 칸트가 체계화한 현대문화양식으로 발전해와 오늘날에 이르렀으므로 동시대인인 우리들의 과제는 동서양 보편자의 만남을 변증법적 통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한의학에 대해 인연을 맺은 사연도 독특하다.아버지가 세브란스의전출신의 의사로 어릴때부터 기독교의 정서와 근대적 정신속에 푹빠져 자라난 김씨는 지난 68년 관절염에 걸려 학교를 중단하기까지하는 방황을 하던중 권도원선생을 만나 침을 맞으면서 기의 운행을 체험하게 돼 한의학에 대한 인류의 보편성을 경험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동서양의학의 접근방식이 서로 다른 문화적 패러다임(이론적 체계)속에 이뤄진 산물이므로 달라야 한다는 그는 서양의학은 느낄 수 있는 오관을 통해 얻어지는 단지 계측된 사실에 불과하므로 이러한 관점에서 한의학의 과학적 측면을 재단할 수 없다면서 한의학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인식체계·인식언어로 이해해 풀어나가야 한다고 역설한다.예컨대 간과 Liver는 서로 다른 인식체계를 갖고 있으므로 동일한 대상은 될수 있지만 동일시 할 수는 없는 것인데 동일시함으로써 매우 간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한의학을 과학화 할수 없는 최대의 걸림돌이라고 비판한다. 한의학이 만병의 근원은 복부에 있다는 인식체계의 언어라면 서양의학의 경우는 중추신경이 있는 뇌중심 인식체계의 언어에 기인한다면서 모든 사람의 체질을 같은 것으로 인식,보편화된 치료법을 쓰는 서양의학보다는 인간의 체질은 다르므로 체질에 맞게 치료법을 적용하는 한의학이 더욱 과학화된 의학이라고 강조한다.그 대표적인 예가 인간의 체질을 희노애락과 연계해 설명하는 총체적 의학결정품인 이재마의 「사상의학」. 우리 몸속에는 팔과 다리에 오수혈(흔히 오행이라 함)의 일정한 기의 흐름이 있는데 침은 강한 부분은 약하게,약한 부분은 강하게 해 오행의 균형을 맞춰주는 것이라는 그는 이 균형을 맞추는 것,즉 강한 것은 약하게 약한 것은 강하게 하는 것이 바로 치료의 요체라면서 서양의학을 유선체계로 보면 한의학은 팩시밀리와 같은 무선체계라고 밝힌다.따라서 침을 과학화하는 것은 어떤 부위에 얼마나 정확하게 반복하느냐가 관건이 된다는 것이다. 김씨는 현재 서양의학은 인체를 검사하는 기술이 굉장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면서 문제는 검사하는 서양의학을 전공한 의사가 꼭 치료를 해야 한다는것이므로 이러한 인식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암이란 몸전체 기의 매커니즘의 불균형에서 초래된 것이므로 질병이 아니라는 그는 기는 하나의 언어이므로 무한하게 공부할수 있으며,색다른 과학화의 가능성을 던져주고 새로운 과학의 패러다임이 될수 있다고 말했다.
  • 「봉사하는 기업」이 21세기 이끈다/홍문신(서울시론)

    ◎「이윤 일변도」 탈피,분배·복지에 기여를 19일 소련의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우리 노 대통령이 제주도에서 정상회담을 갖게 됐다. 냉전시대를 살아온 우리로서는 감회가 새롭고 우리 국력의 신장과 함께 세계 속에 점하는 우리의 위상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되는 한 계기가 될 것이다. 소련뿐만 아니라 중국·동구 등 여러 나라들이 우리나라가 이룩한 자본주의 시장 경제발전 경험을 배우고 싶어한다. 그러면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고,또 가르치는 과정에서 우리의 21세기를 위해 무엇을 터득해야 하는가. ○사회의 주체는 기업 필자는 3년 전 중국 사회과학연구원과 국무원의 초청으로 북경에서 「한국 경제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강연 후 질의응답시간에 그들의 관심의 요체가 무엇인지를 알고는 필자는 많은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들의 질문 요점은 대략 이러하다. 한국의 경이적인 경제발전을 가능케 한 주역은 누구이며 사회조직은 무엇이었나. 경제발전 과정에서 고급두뇌들은 어떤 역할을 하였으며 국내외 고급두뇌를 어떻게 유치,활용하였나. 한마디로 경제발전 과정에서 「사람」과 「조직」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은둔의 나라를 다이내믹한(동적인) 시장경제체제로 만들었느냐는 것이다. 그들의 질문에 따라 자연스레 60년대 이래 우리 경제발전 과정에서 발전의 지혜에 대한 여러 가지 사례가 나열되었다. 그들이 나의 설명에 특별한 관심을 보인 것은 이런 것들이다. 발전과정에서 경제기획원이나 관련부처의 역할. 이들에게 지혜와 머리를 빌려준 두뇌집단(Think­Tank),예컨대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한국개발연구원(KDI),국제경제연구원(KIET의 전신) 등의 역할,또 수출진흥확대회의,대통령 직속의 과학기술자문회의나 기타 각종 위원회는 발전을 가속화하는 데 어떤 작용을 하였나 등등. 요컨대 사람과 조직의 운용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렇다. 결국 60년대 시작된 우리 경제발전은 사람과 조직을 어떻게 활용하여 국가의 지혜를 총동원하는 체제로 만들었는가 하는 것이 핵심이며 이것이 그들이 배우고 싶어하는 요체이다. 1960년 이래 30년간 우리의 경제발전은 여러 계층의 협조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관료조직의 공을 우선적으로 꼽을 수 있다. 최근 대우 김우중 회장과 전 고대 김용옥 교수가 해외여행중 나눈 이야기를 담은 「대화」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은 우리 사회를 이끌어온 선두조직이 대학→군→행정부→기업의 네 단계로 변천하였다고 적고 있다. 「20세기 초엽부터 일제 식민지가 끝나는 시점까지 우리 사회의 가장 선진조직은 대학이었다. …해방을 거치고 6·25를 거치면서 5·16까지 우리나라를 리드한 가장 선진조직은 군대였다. …5·16 이후 우리 사회에 등장한 가장 선진조직은 엘리트 관료층이 형성한 행정부 조직이었다. …80년대 들어와서 …그것은 기업으로 이동하였다.」 이 4단계 구분법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나 90년대와 그를 넘어 21세기 우리나라의 주역이 기업이 되고 또 되어야 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필자와 의견을 같이한다. 십수 년 전 일본의 원로 기업가로부터 일본의 고급 엘리트들의 사회적 이동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들은 적이 있다. 동경대와 같은 명문대 출신의 최고 엘리트들은 관료로 나가는 것이 정도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일본 경제가 성장하면서 이들 엘리트들은 관료보다 기업을 선택하는 경향이 눈에 두드러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곧 기업이라는 새로운 핵심사회를 조직으로 인재가 모이고 인재들이 관→기업,기업→관으로의 사회적 횡적 이동이 원활하게 될 때 일본의 사회구조도 변화를 가져오게 되리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90년대,나아가 21세기에 이르러 과거와는 달리 기업의 위치가 독립적인 주역으로 부상하게 되면 더욱 훌륭한 인재들이 기업으로 몰리게 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기에서 강조해두어야 할 것은 기업이 우리 사회를 이끄는 21세기의 주역이 되기 위해서는 기업의 기능,역할이 혁신적으로 달라져야 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가가 지금까지 평면적 사고에서 벗어나 입체적 사고로 의식을 전환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요청된다. 그리하여 새로운 기업철학,새로운 기업관,기업가정신이 창출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지금처럼 기업의 목표를 이윤추구에만 두어서는 안 되고,국가와 사회가 요구하고 기대하는 여러 가지 가치를 조화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평면적 사고」 벗어라 90년대 그리고 21세기의 우리 사회에서는 단지 이윤이나 성장 추구를 넘어 경제사회적 정의·공평·자유·분배·복지 등의 상위가치를 포괄하는 목표를 본격적으로 추구하게 된다. 이런 여러 가지 가치를 포괄하는,즉 사회에 봉사하는 기업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때 그 기업은 다기화한 21세기 사회에서 명실상부한 주역이 될 수 있고,국민의 존경을 받는 기업이 될 수 있고,또 국제사회에서 우뚝 설 수 있는 국민경제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만이 기업과 우리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기업 스스로가 인식하는 속에서 혁신이 이루어지고 또 모든 경제주체가,지식인이,근로자가,소비자가,뷰로크라시가 우리 기업이 기업다운 기업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한국의 기업들이여,21세기를 향하여 다시 한 번 깨어나 일어나라.
  • 김용옥 전교수,한의대 편입(조약돌)

    ○…전 고려대 교수 김용옥씨(44ㆍ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2의145)가 올 신학기에 원광대 한의대 예과2년에 학사편입,1주일에 교양과목을 제외한 26시간의 전공과목 강의를 받고 있어 대학가에서 화제. 학교측에 따르면 김씨는 학사편입생 37명중 편입시험과목인 영어ㆍ한문ㆍ생물ㆍ의학영어 등에서 성적이 가장 우수했다는 것. 한의대 박병렬학장은 『김씨가 기철학을 연구하다보니 실천동양철학의 근간인 한의학이 기철학을 증명해 줄 수 있다는 절실함을 느껴 한의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 펀입학 시험을 치르도록 했다』고 말했다.
  • 강도 살인범에 잇단 사형 구형/“잔인한 범행… 최고형 마땅”

    ◎자녀앞에서 주부폭행 20대엔 “무기” 서울지검 동부지청 백오현검사는 2일 대낮에 주부만 있는 집에 들어가 10차례에 걸쳐 금품을 털고 살인을 저질러 강도살인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원식피고인(24ㆍ서울 송파구 마천1동 354의29)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이피고인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논고에서 『피고인은 아무런 저항능력이 없는 주부를 장롱속에 가두고 살해하는 등 범행수법이 잔인해 정상참작의 여지가 없다』고 사형 구형이유를 밝혔다. 이피고인은 지난해 9월20일 상오10시30분쯤 서울 강동구 천호3동 195의45 안모씨(34ㆍ주부) 집 안방에 들어가 안씨를 흉기로 위협,장롱속에 가둔뒤 현금 10만원 등 20여만원어치의 금품을 빼앗아 달아나려다 안씨가 소리치자 흉기로 가슴 등을 찔러 숨지게 하는 등 지난해 7월부터 9월까지 모두 10차례에 걸쳐 강도행각을 벌여온 혐의로 구속기소 됐었다. 【부산】 부산지검 동부지청 조한욱검사는 임천택피고인(41ㆍ무직ㆍ부산시 강서구 대저2동 371)에 대한 강도살인사건 결심공판에서 강도살인죄를 적용,사형을 구형했다. 【광주】 광주지검 형사1부 박현상검사는 어린아들 앞에서 가정주부를 폭행하고 금품을 강탈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용옥씨(28)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김피고인에게 강도 강간죄 등을 적용,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