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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女언론인 지영선씨 총영사 발령 이례적

    외교통상부는 15일 주 보스턴 총영사에 지영선 전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을 임명한 것을 비롯해 6개 지역의 총영사 인사를 단행했다. 언론계 출신 인사가 재외공관장으로 임명된 것은 이례적이다. 직업외교관 출신의 김경임 튀니지 대사, 독일 전문가인 김영희 몬테네그로 대사에 이어 현직 세번째 여성 재외공관장이 되는 셈이다. 올해 57세인 지 신임 총영사는 서울 출신으로 경기여고와 서울대 독문학과를 졸업했으며 중앙일보와 한국일보 등을 거쳐 1988년 한겨레 신문에서 문화·국제부장 등을 거쳐 논설위원을 지냈다. 참여정부 들어서는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민간위원 등을 맡고 있다. 보스턴에 있는 하버드 대학에서 1년 동안 국제관계와 관련한 연수를 받은 바 있다. 지 총영사는 “언론인이 외교 업무를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있을 수 있지만 언론의 기본은 커뮤니케이션”이라며 “외교는 커뮤니케이션과 관계의 일이라는 측면에서 언론인은 상당한 연륜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주 로스앤젤레스 총영사에 최병효 전 노르웨이 대사, 주 시애틀 총영사에 권찬호 전 대통령비서실 의전비서관, 주 호찌민 총영사에 민영우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균형발전총괄국장, 주 광저우 총영사에 전재만 전 기획심의관, 주 삿포로 총영사에 강익순 주 일본 참사관이 각각 임명됐다.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월드 리포트] 워드의 상품성은 ‘인간적인 매력’

    하인스 워드의 매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흑인 미군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뒤 미 프로풋볼리그(NFL) 결승전인 슈퍼볼의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되기까지의 성공 스토리 자체도 충분한 얘깃거리가 될 만하다. 그러나 지난 며칠 동안 애틀랜타에서 워드를 직접 취재하면서 그가 가진 또다른 ‘상품성’에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첫째, 워드는 ‘얼짱’이며 ‘몸짱’이다. 가까이 서 본 워드는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잘 생긴 남성이었다. 특히 인터뷰를 할 때 깊게 반짝거리는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짧게 기른 코밑 수염도 단정하게 정리돼 있었다. 또 당당한 체구를 가졌지만 두려움이나 거부감을 느낄 정도의 육중한 근육질은 아니었다.TV 화면에서 보던 것보다 갸름했고 피부도 고왔다. 워드가 매고 다니는 목걸이의 팬던트는 한(翰)이라는 한자에 보석을 입힌 것이다. 하인즈와 음이 비슷한 한자어라고 워드는 설명했다. 둘째, 워드는 지적인 분위기를 갖춘 인물이다. 흑인 혼혈이지만 워드의 말에서는 흑인 특유의 액센트나 억양을 거의 느낄 수 없었다. 또 워드가 대화 중에 사용하는 어휘는 매우 다양했다. 스포츠 전문 케이블 방송인 ESPN에서 늘상 봐왔던 다른 풋볼(미식축구) 선수들과는 풍기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셋째, 워드는 매너가 좋았다.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대단했다. 그는 밤이고 낮이고 집 앞으로 찾아온 기자들은 누구나 만나주고 인터뷰에 응했다. 같은 질문이 세번, 네번씩 반복돼도 미소를 지으며 성실하게 답변했다. 넷째, 워드는 공과 사를 구별하고 자기 관리에도 철저했다. 워드는 인터뷰 도중 사진 찍는 것은 허락했지만 집안으로 기자들이 들어가거나 내부의 사진을 찍는 것은 안 된다고 명확하게 못박았다. 워드는 시즌이 끝났지만 매일 하루에 4시간씩 개인 훈련을 한다고 했다. 워드에 대한 한국 언론의 보도가 ‘과잉’이라고 어머니 김영희씨는 꼬집었다. 실제로 국내에서 불었던 워드 열풍은 일과성일 수도 있다. 그러나 워드에게는 단순한 성공스토리를 뛰어넘는 인간적인 매력이 있다. 그것이 워드 본인은 물론 소속 팀 피츠버그 스틸러스에, 풋볼의 세계적 확산을 지향하는 NFL에, 그리고 늘 새로운 스타를 갈구하는 국내 언론과 광고주에 주목할 만한 상품 가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도운 워싱턴특파원 dawn@seoul.co.kr
  • “흑인이나 혼혈에 언제 관심가졌나”

    “흑인이나 혼혈에 언제 관심가졌나”

    |애틀랜타 이도운특파원|“축하한다, 자랑스러운 아들아!” “생큐 맘(고마워요, 어머니).” 한국계 풋볼 선수인 하인스 워드가 12일(현지시간) 미국프로풋볼리그(NFL)의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된 뒤 처음으로 어머니 김영희씨를 찾았다. 워드는 지난 5일 열린 NFL 결승전 이후 애틀랜타 근교 맥도너의 자택에서 애타게 기다리던 어머니를 만나자마자 힘껏 끌어안고 볼과 입술에 뽀뽀를 하며 반가움과 기쁨을 표시했다. 김씨도 자랑스럽고 흐뭇한 표정으로 아들을 꼭 안았다. 워드는 ‘모자(母子)의 상봉´을 취재하려고 몰려든 한국 기자들에게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으로 승리의 V자를 그려보였다. 촬영과 짧은 회견에도 응했다. 김씨는 “이틀전 욕실에서 미끄러져 팔을 다치는 바람에 특별한 음식을 준비하지 못했다.”면서 “오늘은 할 수 없이 내 아들에게 짬뽕을 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워드도 “짬뽕 좋아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워드는 “어머니가 처음에는 풋볼에 대해 전혀 몰랐지만 요즘은 일요일마다 경기를 시청하고 가끔은 코치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어머니로부터 배운 대로 나의 아들도 겸손하게 키우겠다.”면서 “아들의 첫돌 때 한국식으로 잔치를 했는데 아들이 반지와 돈을 집었다.”고 전했다. 워드는 “나는 못하지만 아들에게는 한국말을 가르치기 위해 한국어 책을 몇 권 사뒀다.”고 말했다. ●“아들관심 너무 과잉스러워 거북” 김씨는 기자들과 만난 뒤 집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한국에서 일고 있는 아들에 대한 ‘과잉 열풍’에 대해 쓴소리도 했다. 김씨는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좋은 일이고, 여러 사람이 찾아와서 고맙긴 하지만 너무 과잉스러워 거북하다.”면서 “내가 원래 나서길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라고 말했다. 김씨는 “과잉의 의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국 사람들이 흑인이나 혼혈이라면 언제 사람 대접이나 해줬느냐.”면서 “어렵게 혼자 살 때는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잘되면 쳐다보고 그렇지 않으면 쳐다도 안 보는 것이 한국의 풍토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다. 김씨는 기자들이 사진 촬영을 위해 모자간 포옹을 거듭 요구하자 “동네 부끄럽다.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며 손사래를 치기도 했다. ●“아들위해 한국어책 사뒀다” 워드는 이에 앞서 하루 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10년이나 15년 후에는 어떤 일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스포츠 해설가가 돼 TV에 나올 수도 있고, 고등학교로 돌아가 풋볼 코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운동과 함께 공부도 아주 잘했던 워드는 “요즘은 학문적인 것 대신 비즈니스에 대한 공부를 한다.”면서 “부동산 투자 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만약 풋볼을 하지 않았다면 공부보다는 사업을 했을 것”이라면서 “어머니에게 배운 강인함 때문에 무엇을 해도 성공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워드는 그동안 집안의 법률 자문을 해주던 한국계 앤드루 리 변호사를 한국 언론 등과 관련한 창구로 지정했다. 따라서 워드가 한국에 투자하거나 한국과 관련한 사업을 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dawn@seoul.co.kr
  • [사설] 혼혈관심 ‘냄비성’으로 끝나선 안돼

    미국 슈퍼볼의 영웅 하인스 워드와 그의 오늘이 있게 한 어머니 김영희씨에 대한 열광과 찬사가 연일 쏟아지고 있다. 어머니의 사랑과 아들의 효성이 일궈낸 인간승리는 어떤 드라마도 흉내낼 수 없는 감동적 요소를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워드는 “엄마는 나의 모든 것” “반은 한국인 반은 미국인으로 태어난 것은 축복”이라고 했다. 그런 인간적 면모에 눈시울이 붉어지고, 한국혈통에 자긍심을 느끼는 것은 인지상정이라 하겠다. 일부에서는 워드에게 명예시민증을 주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몇달 뒤 그들 모자의 한국 방문을 앞두고 기업들은 서로 모시기 경쟁에 나섰다는 소문도 들린다. 그러나 흥분을 가라앉히고 현실로 차분하게 돌아와 보자. 워드는 한국과 미국 두 나라에서 인종차별과 냉대를 이겨내고 반듯하게 자라나 성공한, 보기드문 사례일 뿐이다. 따라서 지나친 미화는 경계해야 할 것이다. 김영희씨는 인터뷰에서 “한국 사람들이 흑인을 사람 취급했느냐.”면서 “잘 되면 쳐다보고 그렇지 않으면 쳐다도 안 보는 게 한국 풍토”라고 했다. 혼혈인에 대한 편견과 냉대가 유별난 우리 사회에 근본적인 문제를 던진 것이다. 국내에는 광복과 한국전쟁을 전후해서 태어난 ‘혼혈 1세대’가 5000명, 한국인과 아시아인 사이에 태어난 ‘2세대’가 3만명에 이른다. 혼혈인은 피부와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교육·군입대·취업의 제약은 물론이고 공동체에서는 언제나 외톨이였다. 국력신장의 틈바구니에서 아시아·아프리카·남태평양 등 나라 밖에도 버려진 한인2세들이 많다고 한다. 세계적 교류의 확대로 혼혈은 불가피한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의 의식은 순혈주의에 갇혀 인종의 다양성을 애써 외면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제 혼혈인에게 마음을 열고 따뜻한 손길을 내밀자. 정부가 뒤늦게나마 혼혈인에 대한 차별적 제도와 관행을 적극 개선하겠다고 나선 점도 바람직하다. 국내외 한인2세들에게 일시적이 아니라, 지속적 관심을 보이고 지원하는 것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서 당연한 소임이다.
  • [‘워드 신드롬’ 다시보기] “혼혈관심 금세 사라질라”

    경기도 안산 W초등학교 5학년 기운(가명)이는 별명이 ‘아프리카’다. 방글라데시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정모(36)씨 사이에 태어난 그는 ‘코시안’(코리안+아시안)이다. 기운이는 3년 전 서울에서 학교에 다닐 때 우울증을 앓았다. 아이들이 집단으로 따돌려 언제나 혼자였다. 엄마가 학교에 찾아가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수도없이 부탁했지만 소용 없었다. 정씨는 “하인스 워드라는 사람 때문에 쏟아지는 혼혈에 대한 관심은 금세 사라질 열풍밖에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 “냄비근성탓” 냉소적인 국내 혼혈인 한국계 혼혈 하인스 워드가 미국 프로풋볼(NFL) 슈퍼볼에서 최우수선수(MVP)가 되면서 국내 혼혈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신문·방송이 워드와 그의 어머니 김영희씨의 ‘영웅담’을 앞다퉈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국내 혼혈인들은 이런 분위기에 냉소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냄비근성’에서 비롯된 것쯤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혼혈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냉대가 너무나 오랜 기간 강하게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자프로농구 드래프트 5순위로 우리은행에 지명돼 코트를 누비고 있는 장예은(19)양도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장양은 주한 미군이었던 흑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장영심(51)씨 사이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장양이 네 살일 때 훌쩍 미국으로 떠났다. 어머니 장씨는 식당주방과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장양을 눈물로 키웠다. 하지만 장양을 괴롭힌 건 가난만이 아니었다. # 오히려 좌절·열등감 줄 우려 차별을 받기는 코시안이나 흑인이 아니어도 마찬가지다. 아버지가 백인인 지은(가명·15)이는 중학교 3학년이 된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바로 진학할 수 없다. 이전 학교에서 아이들이 하도 ‘양키’라고 놀리고 괴롭혀 종교계에서 운영하는 대안학교로 전학 왔지만 이곳은 정부에서 학력 인정을 해주지 않는다. 고등학교에 가려면 중졸 검정고시를 봐야 한다. 한 혼혈인 지원단체 관계자는 “백인 혼혈이 우대받는 것은 미국 시민권이 있고 경제력을 갖춘 일부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러시아계 백인혼혈 아이들은 어머니가 성매매 여성이거나 돈에 팔려온 것이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까지 받는다.”고 덧붙였다. 혼혈인과 관련 단체들은 이번 워드 열풍이 오히려 국내 혼혈인들의 피해의식을 심화시킬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혼혈인협회 박근식 회장은 “정부가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이상 지금 잠깐 쏠리는 관심은 문제해결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확한 실태조사를 거친 뒤 학계와 유관기관은 물론 당사자의 의견까지 모두 모아 제도적 지원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혼혈인 수는 민간지원단체인 펄벅재단이 미국계 5000명, 코시안 3만명 등 3만 5000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을 뿐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수치는 없다. # 혼혈인 숫자부터 파악하라 국제가족한국총연합 배기철 대표는 “워드의 성공은 혼혈인들이 희망으로 삼을 박수쳐 주고 싶은 일이지만 이 땅을 지켜온 혼혈인들이 오히려 좌절감과 열등감을 느끼게 될까 두렵다. 워드의 어머니도 훌륭하지만 미국보다 훨씬 못한 국내에서 차별과 싸워온 혼혈인과 가족들도 역시 박수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유지혜 이재훈기자 wisepen@seoul.co.kr
  • [여담여담] ‘워드 어머니’ 이름으로 열린 마음을/김수정 정치부 차장

    지난해 가을 일본 미야기현의 한 지방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그곳 우리 총영사관 관계자로부터 뜻밖의 말을 들었다. 이곳 농촌 총각과 결혼, 가정을 꾸리고 있는 한국 여성들이 2000명이나 된다는 것. 이 가운데는 중국 국경을 넘어 한국으로 왔다가 적응을 못해 일본 농촌행을 택한 탈북 여성들도 있다고 한다. 베트남과 필리핀 등 동남아 지역의 여성들이 ‘코리안 드림’을 찾아 한국 농촌행을 택하는 사이, 우리의 여인들은 상대적으로 더 잘사는 일본의 농촌으로 시집을 가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전쟁 직후 가난에 찌들었던 시절, 미군을 따라 시집간 적지 않은 우리의 딸들이 설움받던 시절은 ‘과거’로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와 같은 피부색이 아니면, 특히 상대적으로 약한 사람이면 차별하는 경향이 있다. 일본의 재일 한국인 차별정책엔 분노하지만, 막상 동남아 출신 노동자나 그의 가족을 보는 우리의 시선, 태도는 부끄럽기 짝이 없다. 백인과 한국인 사이 혼혈아를 보는 우리의 시각과, 아시안과 한국인의 혼혈아 이른바 ‘코시안’, 그리고 흑인과 한국인 사이 혼혈아를 보는 우리의 눈길은 다른 것 같다. 외국에서 얼마간 살다온 친구들과 만나면 공통적으로 갖는 느낌이 있다. 귀국해 공항만 벗어나면 너무나 똑같은 한국인들의 얼굴만 눈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우리와 조금만 달라도 마음을 닫고, 박하게 대하는 것 같다. 최근 미국 북미프로 미식축구리그(NFL)슈퍼볼 MVP가 된 하인즈 워드와 그를 훌륭하게 키워낸 한국인 어머니 김영희씨 사연을 계기로 ‘열린 마음을 갖자’는 캠페인이 열풍처럼 번지고 있다. 주한미군과 결혼한 뒤, 이웃으로부터 냉대를 받았던 김영희씨도,10만명을 웃돌고 있는 ‘코시안’들의 동남아 출신 어머니들도, 일본 농촌으로 시집가 아이들을 낳고 사는 한국인 어머니들은 모두 다 같은 ‘어머니’들이다. 인종과 국적 피부색을 넘어서 ‘어머니’그 한 마디가 주는 숭고함으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열 수 있지 않을까. 김수정 정치부 차장 crystal@seoul.co.kr
  • “어머니의 이름으로” 워드, 장학금 만든다

    “어머니의 이름으로” 워드, 장학금 만든다

    미국프로풋볼(NFL)의 영웅으로 떠오른 한국계 하인스 워드(30·피츠버그 스틸러스)의 어머니 김영희(55)씨의 이름을 딴 장학금이 만들어질 전망이다. 워드가 졸업한 포레스트 파크 고등학교에서 30년간 수학을 가르친 은사 정삼숙씨는 8일 “워드가 풋볼로 성공하면 꼭 어머니의 이름을 딴 장학금을 설립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정씨는 “워드가 모교에 이미 장학금을 기부해 후배 10여명이 학비를 지원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어머니 이름의 장학금은 미국 내 한국계 학생들이 지급 대상이 될 것으로 교민들은 관측했다. 뉴욕 한국문화원은 이날 워드의 활약상과 교민사회의 반응을 한국 정부에 보고하고 정부차원의 예우를 건의했다. 애틀랜타(미 조지아주) 연합뉴스
  • [데스크시각] 워드와 우즈/곽영완 체육부 부장급

    미국 스포츠계는 또 한명의 유색인 영웅을 탄생시켰다. 하인스 워드. 미국내 스포츠에서도 가장 열광적인 팬들을 몰고 다니는 미국프로풋볼(NFL) 챔피언매치인 슈퍼볼에서 최우수선수(MVP)로 우뚝 선 한국계 영웅이다. 지난 6일 디트로이트 포드필드에서 벌어진 제40회 슈퍼볼에서 MVP로 선정되면서 알려지게 된 그의 성공 스토리가 미국인들에게 많은 감흥을 주고 있는 모양이다. 미국에는 유색인 스포츠 스타들이 즐비하다. 인종의 용광로인 미국에서 살 색깔을 따지는 게 의미있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WASP(앵글로색슨계 백인 신교도)의 가치관이 휩쓰는 백인 주류 사회에서 유색인들이 펼치는 최고의 활약은 그만큼 돋보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 미국 스포츠계를 열광시킨 대표적인 인물로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를 꼽을 수 있다. 그는 백인들의 스포츠로 인식되던 골프를 통해 스타덤에 오른 흔치 않은 유색인이라는 점에서 미국인들, 특히 주류사회의 인식 변화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흑인, 엄밀히 말해 유색인들은 캐디백을 메고서만 참가할 수 있었던 미프로골프(PGA) 투어 최고의 대회인 마스터스에서 네 차례나 정상에 오른 영웅이다. 그런 우즈와 워드는 공통점이 꽤 있다. 우선 아버지가 흑인이고 어머니가 동양계라는 점이 같다. 우즈의 어머니는 태국계이고 워드의 어머니는 한국계다. 또 다른 공통점은 아버지가 해외 군 복무를 계기로 어머니를 만났다는 것이다. 그린베레 출신의 예비역 미 육군 중령인 우즈의 아버지 얼 우즈는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70년대 초 어머니 쿨티다를 만나 1975년 우즈를 낳았고, 워드는 1976년 아프리카계 주한미군 하인스 워드 시니어와 김영희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이들은 다른 점이 더 많다. 캘리포니아주 사이프레스에서 태어난 우즈는 성공할 때까지 부모가 곁에서 모든 것을 보살폈다. 학창 시절 그는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서 유일한 유색인이었고, 어려서부터 골프에 천재성을 과시한 덕분에 매스컴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그 역시 초등학교 시절 백인 친구들에 의해 나무에 매달려진 채 돌팔매를 맞는 등 남모를 설움도 많았지만 다른 유색인 소년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낸 것만큼은 사실이다. 그러나 워드는 일찍이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아 어려운 어린시절을 보냈다. 서울에서 태어나 생후 5개월 만에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곧 이어 부모가 이혼하는 바람에 한때 할아버지 집에서 천덕꾸러기로 지내다 8살 때 무작정 어머니를 찾아가 궁핍한 생활을 견뎌야 했다. 성장한 이후의 태도에서도 우즈와 워드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우즈가 백인 사회의 룰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반면 워드에게는 동양적인 사고방식이 배어있는 듯하다. 지난해 남태평양의 한 섬을 전세 내는 등 수백만달러를 쏟아부으며 스웨덴 출신의 백인 여성과 결혼할 당시 우즈가 보여준 행동은 그의 정체성이나 가치관마저도 의심받기에 충분했다. 물론 그의 가치관이 미국인들의 일반적인 그것과 같다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그 역시 그저그런 성공한 스포츠 스타 가운데 한명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워드는 항상 어머니를 위해 헌신하는 자세를 보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했다. 슈퍼볼 MVP로 탄생하는 순간에도 그는 모든 영광을 어머니께 돌린다고 했다. 슬럼가 소년의 성공스토리 못지않게 미국인들이 그에게 열광하는 이유가 그가 보여주고 있는 새로운 모습 때문은 아닐까. 그의 행동이 지금까지 미국 스포츠계를 풍미한 스타들의 정체성을 뛰어넘는 새로운 가치관을 미국인들에게 심어준 것은 아닐까. 그가 미국인들에게 새로운 가치관을 드러내 보이기까지는 물론 어머니 김영희씨의 한국적인 교육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오는 4월 그가 어머니와 함께 한국에 온다.“경기장 내에서 내가 이룰 수 있는 최고의 것을 이뤘다. 이제는 경기장 밖에서 가치있는 일을 찾아보겠다.”던 그와 그의 어머니가 한국 방문에서는 어떤 의미있는 행동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곽영완 체육부 부장급 kwyoung@seoul.co.kr
  • 워드 인생역전에 美 떠들썩

    미국프로풋볼(NFL)의 영웅으로 떠오른 하인스 워드(30·피츠버그)가 오는 4월2일 방한할 예정이다. 워드의 방한을 추진 중인 한 인사는 7일 애틀랜타 인근 고등학교 구내식당에서 일하는 워드의 어머니 김영희(55)씨가 봄방학 동안 방한을 원함에 따라 방학이 시작되는 4월2일 한국에 도착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체류기간은 1주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은 워드 일행을 태우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머니 김씨는 슈퍼볼 당일 너무 떨려 현장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 TV를 통해 아들의 모습을 지켜본 것으로 확인됐다. 워드는 7일 플로리다주 디즈니월드에서 카퍼레이드를 펼쳤고,8일에는 연고지인 피츠버그에서 카퍼레이드에 참석하는 등 우승축하 행사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한편 워드와 어머니의 감동스토리가 알려지자 미국 동포들은 불굴의 희생 정신으로 세파를 견뎌낸 어머니 김씨와 어려움을 극복하고 정상에 우뚝 선 워드에 대해 격찬을 쏟아냈다. 신구현 로스앤젤레스 한인 상의회장은 “4월 방한 때 조국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일부 동포들은 워드의 쾌거가 혼혈아에 대한 그릇된 편견을 바로 잡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했다.로스앤젤레스(미 캘리포니아주) 연합뉴스
  • [씨줄날줄] 절반의 한국인/육철수 논설위원

    혼혈인은 대개 전쟁과 사랑의 소산이다. 사랑이나 전쟁은 국경과 종교, 인종을 뛰어넘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원하든 원치 않든 다양한 인적 교류도 동반하게 마련이다. 타인종간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혼혈인이라면 축복받을 일이다. 인류평화와 인종간 이해증진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통 불가항력으로 세상의 빛을 봤다면 인생 또한 순탄한 경우가 드물다. 국가·인종간 교류가 흔치 않았던 시대, 혼혈인은 약소국 여성과 강대국 남성 사이에 태어나는 게 대부분이었다. 이민족간 교류가 많은 경우, 혼혈인은 민족단위로 형성되기도 한다. 메스티조(백인×인디오), 뮬레토(백인×흑인), 유레이지언(인니·말레이시아인×백인) 등이 대표적이다. 혼혈민족은 전쟁과 식민지배의 아픔을 딛고 어엿한 공동체로 성장한 케이스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도 광복 후 미군 주둔과 함께 원치 않은 혼혈의 아픔을 수도 없이 겪었다. 베트남전에서는 가해자가 되어 한인2세(라이따이한)를 양산했다. 최근에는 농어촌 총각들이 아시아권 여성을 신부로 맞아들이는 일이 성행해 ‘코시안’이라 불리는 2세도 늘고 있다.1999년 이후 이런 국제결혼은 11만 5000쌍이나 되고, 조만간 농어촌 초등학교는 재학생의 20% 이상이 이들 2세로 채워질 것이라고 한다. 미국에서는 지금 한국 어머니와 아프리카계 미군 사이에서 태어난 프로풋볼 선수 하인스 워드(30)가 온통 화제다. 어머니 김영희(55)씨가 언어장벽과 가난, 이혼으로 이어지는 역경 속에서 아들을 슈퍼볼 최고의 스타로 길러낸 스토리는 눈물겹다. 워드는 팔에 한글이름을 새기고,‘절반의 한국인’임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단다. 어머니한테 헌신·희생·겸손을 배웠고, 효성도 지극하다니 참으로 기특하다. 어머니의 강인한 의지와 뜨거운 애정, 그리고 미국땅에서 온갖 설움을 견뎌낸 눈물 덕분에 한국은 그에게 모국(母國) 대접을 톡톡히 받고 있다. 순수혈통을 고집하는 나라 안 분위기 탓에 수많은 한국계 혼혈인들은 사회 부적응과 냉대 속에 좌절하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인지 워드의 성공을 축하하기에 앞서 부끄러움이 앞선다. 이제 우리 이웃엔 어린 한국계 2세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이들 ‘절반의 한국인’을 따뜻한 가슴으로 품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NFL 슈퍼볼] 한국계 워드 피츠버그 우승 견인 “한인공동체 위해 최선 다할것”

    [NFL 슈퍼볼] 한국계 워드 피츠버그 우승 견인 “한인공동체 위해 최선 다할것”

    “위대한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랐던 꿈이 이루어졌다. 이제는 경기장 밖에서 이뤄야 할 것들을 찾아 의미있는 날들을 보내겠다.” 미국프로풋볼(NFL) 슈퍼볼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하인스 워드(30·피츠버그)가 6일 경기 직후 밝힌 소감이다. 워드는 ‘의미있는 날’들에 대한 정확한 뜻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오는 4월 최고가 되어 어머니 김영희(55)씨의 조국인 한국을 방문하겠다는 약속이 담겨 있다. 실제로 워드는 슈퍼볼 직전에 가진 여러 인터뷰에서 한국에 대한 진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USA 투데이와 인터뷰에서 “나는 절반이 한국인인 만큼 한인공동체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2일 한국의 한 스포츠 케이블TV와의 인터뷰에서도 “한국을 위해 꼭 이기겠다.”고 목청을 높였다. 지난달 31일 ‘미디어데이’행사에서는 “내 몸의 절반은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며 “한국말을 배우지 않은 게 인생에서 유일한 후회”라고 고백했다. 워드는 이런 비장한 각오를 되새기느라 긴장한 탓인지 출발은 좋지 않았다. 그러나 0-3으로 뒤지던 2쿼터 시애틀 엔드라인 3야드 앞에서 벤 로슬리버거의 패스를 받아 역전 터치다운의 발판을 놓았다.14-10으로 쫓기던 4쿼터에는 동료 앤트완 랜들 엘의 43야드짜리 패스를 잡아 승부의 쐐기를 박는 터치다운을 찍고 포효했다. 결국 워드는 리시브 5개에 123야드를 전진, 한국인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됐다. 워드는 겸손함과 희생 정신 등 한국인의 덕목을 풋볼에서도 가장 큰 덕목으로 여긴다. 그래서인지 이날도 모든 공을 코치와 동료들에게 돌렸다. 자신의 아들을 안고 시상대에 오른 워드는 “공격코치가 상황에 따라 정확한 공격법을 지시했다.”며 코치진에 감사한 뒤 “동료들이 기회를 줬고 나는 뛰기만 했을 뿐”이라며 겸손해했다. 워드는 특히 “43야드 패스를 해준 앤트완 랜들 엘의 도움이 컸다.”고 말해 팬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한국계 하인스 워드 ‘美슈퍼볼 MVP’

    부모의 이혼, 극심한 가난,‘혼혈’에 대한 편견…. 정신적·육체적으로 인생의 쓴맛을 고루 경험했다. 미국 슬럼가 뒷골목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한국계 소년 하인스 워드(30). 그런 그가 미국프로풋볼(NFL) 최고의 별이 됐다. 워드의 영광 뒤에는 한국인 어머니의 한없는 눈물이 있었다. 6일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제40회 슈퍼볼(아메리칸콘퍼런스-내셔널콘퍼런스의 챔피언결정전)은 하인스 워드(피츠버그 스틸러스)를 위한 자리였다. 와이드리시버 워드는 시애틀 시호크스와의 경기에서 5리시브,123야드 전진,1개의 터치다운으로 맹활약, 한국계로서는 첫 빈스 롬바르디 트로피를 안으며 최우수선수(MVP)로 우뚝 섰다. 워드는 21-10의 승리를 견인, 통산 5번째이자 1980년 이후 26년 만에 팀을 우승시켰다. 워드에게는 MVP트로피와 캐딜락 승용차가 주어졌다. 최고의 별이 된 워드에겐 아프고 힘든 과거가 있었기에 이날 승리는 더욱 값졌다. 1976년 서울에서 아프리카계 주한미군 하인스 워드 시니어와 한국인 어머니 김영희(55)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생후 5개월 만에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부모의 이혼으로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직업이 변변치 않았던 어머니에게 양육권은 주어지지 않았고 결국 할아버지에게 보내졌다.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워드는 8살 때 무작정 어머니를 찾아갔다. 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사랑 하나로 이를 악물며 일했다. 접시닦이, 호텔청소, 잡화점 캐셔 등으로 하루 18시간의 중노동을 했다. 자신은 남루한 옷을 입고 끼니를 거르는 일이 허다했지만 아들에게는 항상 깨끗한 옷을 입고, 운동하도록 했다. 처음에는 워드도 피부색이 다른 어머니의 존재가 부끄러웠다. 그러나 한없는 어머니의 사랑 앞에 새 눈을 떴다. 고교졸업 때 명문대학으로부터 입단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홀로 계실 어머니가 안타까워 집에서 가까운 조지아공대를 택했다. 프로팀 입단제의도 있었지만 “공부를 계속하라.”는 어머니의 뜻에 따른 것. 못 배운 설움을 되물림하기 싫었던 탓이다. 프로입단 뒤에도 화려하진 않았지만 묵묵히 자신의 몫을 해냈다.2001년부터 4년 연속 야구 3할 타율에 비유되는 리시브 전진 1000야드 기록을 세워 이날의 ‘영광’을 예고했다. 워드는 ‘성실’과 ‘겸손’을 강조한 어머니의 말을 가슴에 묻고 산다. 경기 뒤 “동료들이 기회를 줬고 나는 뛰기만 했을 뿐”이라면서 자신을 낮췄다. 어머니는 항상 “세상일이 맘대로 안 되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면서 아들을 격려했다. 워드는 “어머니가 없었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오는 4월 우승컵을 안고 갈 어머니 나라로의 첫 효도여행에 벌써 설렌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하프타임] NFL 워드 4월 한국 방문

    미국프로풋볼(NFL) 한국계 스타 하인스 워드(30·피츠버그 스틸러스)가 어머니 김영희씨와 함께 4월 한국을 방문한다.1일 AP통신에 따르면 워드는 김씨와 함께 한국으로 건너와 약 보름간 머물며 한국 문화를 직접 체험하게 된다.
  • ‘한국 피’ 워드,슈퍼볼 무대 선다

    그의 몸에는 한국인과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피가 반씩 섞여 있다.‘인종의 용광로’라는 미국 땅에서도 흑인친구들에 비해 하얀(?) 얼굴이 도드라진 그는 ‘이방인’의 삶을 살아야 했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스스로에 대한 강철같은 의지로 앞만 보고 달려온 한국계 미국프로풋볼 스타 하인스 워드(30·피츠버그 스틸러스)는 마침내 꿈을 이뤘다. 단일 경기로는 인류 최대 규모라는 ‘꿈의 무대’ 슈퍼볼에 출전하게 된 것. ●한국계 선수로는 처음 워드가 이끄는 피츠버그는 23일 인베스코필드에서 열린 미국프로풋볼(NFL) 아메리칸콘퍼런스 챔피언결정전에서 덴버 브롱코스를 34-17로 완파하고 슈퍼볼 티켓을 거머쥐었다. 워드는 이날 두 팀 리시버를 통틀어 최다인 5개의 패스를 잡아내 59야드를 전진했다. 이로써 워드는 1998년 프로 데뷔 이후 4년 연속 캐치 1000야드 전진,4년 연속 프로볼(올스타전) 출전 등 정상급 와이드리시버로 군림하면서도 슈퍼볼에서 뛰지 못한 한을 풀게 됐다. ●어머니는 나의 힘 워드는 1976년 서울에서 주한미군으로 복무하던 아버지와 한국인 김영희씨 사이에 태어났다. 한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이내 부모가 이혼을 했고, 법원 판결에 따라 아버지와 함께 지내게 됐다. 어머니가 영어를 못하는 데다 경제력이 없다는 이유다. 그러나 워드는 초등학교 2학년때 제 발로 어머니를 찾아가 고생을 자처했다. 김영희씨는 식당에서 접시를 닦고 식료품 가게 종업원으로 일하는 등 이민자의 고단한 삶을 살았지만 워드가 운동과 공부를 모두 잘 해 즐거움이 됐다. 워드는 풋볼 명문 네브라스카대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지만 어머니와 함께 지내기 위해 집 인근 조지아대를 택했다. 대학에선 쿼터백·러닝백·와이드리시버를 섭렵하며 패스·러싱·리시빙에서 모두 1000야드를 넘어서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워드의 지극한 효심은 그가 프로에 진출하면서 널리 알려졌다.NFL선수가 되고 나서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어머니가 옷을 사 입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예쁜 옷을 사드리고 싶다.”라고 말했었다. 김영희씨는 아들이 거액 연봉을 받게 된 뒤에도 여전히 학교 식당에서 일했다. 워드는 “어머니의 삶의 태도가 내가 성공하는 데 밑바탕이 됐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또한 팔뚝에 ‘하인스 워드’라는 한글 문신을 새기고 한국계임을 주저없이 밝혀왔다. 새달 6일 피츠버그는 디트로이트에서 내셔널콘퍼런스 챔피언 시애틀 시호크스를 상대로 빈스 롬바르디 트로피를 두고 단판승부를 펼친다. 워드가 해피엔딩을 연출할지 관심이다. 임일영기자 argus@ seoul. co.kr
  • [서울 12개 자치구 주요인사]

    새해를 맞아 서울시 25개 자치구와 일선 동사무소에서 근무하는 인물들이 많이 바뀌었다. 종로구를 비롯한 12개 자치구의 주요 승진인사와 인사이동을 소개한다. ■ 종로구 ◇승진△청운동장 최권신◇전보△여권과장 주요택 △민원관리담당 배상직 △여권1〃 박창신 △재활복지〃 정일두 △건설과장〃 서명남 △자동차등록〃 이형란 △사직동 김진환 △부암동 마호식 △가회동 장강주 △명륜3가동 박상서 △창신3동 이은삼 ■ 성동구 ◇승진△가정복지과장 염형순 ▲금호4가동장 진정근◇전보△민원여권과장 정종희 △세무2〃김기동 △청소행정과장직무대리 이재영 △조사담당 최무웅 △직소민원실장 강정우 △교육지원담당 이윤영 △문화지원〃 박종복 △호적〃 이상회 △혁신평가〃 정주섭 △세외수입〃 조병선 △건물등록〃 손수곤 △장애인지원〃 김인영 △보육지원〃 최형대 △교통시설〃 임창윤 △자동차등록1〃 김종만 △주차관리〃 권용진 △보건민원〃 강형구 △도선동 조희곤 △사근동 이철희 △금호2가동 지영민 △옥수2동 박창균 △성수2가1동 백보기 △재산세담당 한광석 △법인관리〃 양동남 △세입정리〃 박병인 △주민세〃 서승철 △자동차세〃 임성수 △체납정리〃 박현상 △생활보장〃 강종식 △도로조명〃 김도묵 △기정〃 이창균 △도로관리〃 박노학 △하수〃 김재하 ■중랑구 ◇전보△혁신균형발전담당 김관명 △호적〃 이춘식 △복식부기〃 김희영 △청소년〃 김연태 △교통과징〃 김홍엽 △위생지도〃 서재완 △면목1동 박병진 △신내1동 배흥식 △복지기획담당 김영희 △생활보호〃 이홍장 ■ 성북구 ◇승진△생활복지국장 권영해 ■도봉구 ◇파견△문화정보센터관장 박정호◇겸임△기획재정국장 서종태◇전보△건설관리과장 이수엽 △도봉1동장 신동근 ■ 강서구 ◇전보△조사팀장 이동식 △인사〃 신흥재 △자치운영〃 황인철 △생활체육〃 강희순 △체육시설〃 하성만 △복구지원〃 심현자 △복식부기〃 박주국 △공중위생〃 김본기 △주택정비〃 서종찬 △주차관리〃 이광석 △등촌3동 김웅환 △화곡2동 김은봉 △화곡6동 손귀숙 △발산1동 손기익 ■ 금천구 ◇승진△청소과장 이태형 △가산동장 문길수 △시흥1〃 정우섭◇전보△재무과장 장성진 △보건지도과장직무대리 노용해 △시흥2동장〃 신재문 △시흥본동장〃 현광무 △총무팀장 노성호 △인사〃 이성용 △공무원단체협력〃 김왕곤 △동행정〃 황석봉 △주민자치〃 정흥양 △여론동향〃 김동근 △혁신분권〃 유재명 △공보〃 김영동 △생활체육〃 김의배 △안전지도〃 이석봉 △재산관리〃 이일삼 △장애인〃 기진세 △청소년〃 김태남 △시설장비〃 조성한 △도시관리〃 한승민 △광고물〃 박병진 △보건관리〃 연규인 △시흥본동사무〃 금태현 ■ 영등포구 ◇전보△신길3동장 김성규 △여권심사팀장 이석정 △복식부기〃 송영혜 △세입총괄〃 곽세진 △징수1〃 김병욱 △징수2〃 서종출 △징수3〃 한용두 △부과1〃 조동헌 △부과3〃 윤하중 △부과4〃 한상범 △평가〃 박종연 △복지기획〃 남천우 △생활보장〃 이영은 △장애인복지〃 조미연 △자원봉사기획〃 김선성 △자원봉사운영〃 강현숙 △재활용〃 이평수 △청소제도개선〃 박병균 △자동차등록〃 이영섭 △식품위생〃 이종훈 △여의동 윤석철 △신길5동 홍운기 △영등포2동 이은상 △당산1동 박종국 △문래1동 이인근 △양평1동 이성자 △양평2동 김형진 △신길4동 노종호 △신길6동 정영분 △대림1동 남궁양림 △대림3동 이경범 ■ 관악구 ◇승진△생활복지국장 신팔복 △봉천7동장 윤관중 △신림3〃 황용◇전보△의회사무국장 정경찬 △총무과장 김양기 △세무1〃 권부홍 △봉천5동장 문영자 △봉천6〃 엄태섭 △신림6〃 김종남 ◇감사담당관 행정서비스담당 원중희 △법제의정〃 김병순 △문화관광〃 최재호 △재난관리〃 윤태욱 △도로굴착〃 이기석 △토목과 시설추진팀 이해완 △교통과징담당 이순자 △식품위생〃 안상진 △봉천1동 최인섭 △봉천3동 강미숙 △봉천8동 방민기 △신림4동 김인호 △신림5동 박규하 △신림7동 김재식 ■ 서초구 ◇전보△재무과장 하상도 △재난안전관리과 추진반장 안택주 △교통행정과장직무대리 김명중 △주차관리과장〃 엄인섭 △방배본동장〃 고현근 △방배3동장 이명구 ■ 강남구 ◇전보△민원감사담당관 조사순찰담당 김영권 △인사〃 김창현 △기획〃 서장원 △사회〃 장윤근 △토지〃 이영혜 △건설등록〃 신길호 △가로정비〃 선우철 △신교통〃 나승일 △보건위생과 민원〃 김진이 △도곡2동 김선도 △개포2동 서영길 ■ 강동구 ◇승진△의회 사무국장 박상춘 △고덕1동장 이종섭 △암사1〃 김장환 △암사3〃 이우명 △둔촌1〃 신부철◇전보△재무과장 성호용 △부과〃 이영도 △사회복지〃 김시구
  • [세이프 코리아] 최악 폭설 고창군 르포

    [세이프 코리아] 최악 폭설 고창군 르포

    ‘12월 폭설’로 잠정 피해액만 9일 현재 720여억원에 달하는 전북 고창군. 지난달 3일부터 3주일 남짓 쉬지 않고 내리던 눈은 그쳤지만, 쌓인 눈이 얼어붙으며 복구는 고사하고 피해 집계조차 하지 못했다. 때문에 고창군은 지난 5일 마감 예정이던 피해 접수를 10일까지 연장했다. 봉필운 고창군 기획감사실장은 “알타리 무의 파종시기는 2월인데 이 때를 놓치면 한해 농사를 망친다.”고 설명하고 “늦어도 이달 말까지 피해시설을 철거해야 하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지난달 29일 정부의 특별재난지역 선포 이후 폭설 피해지역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멀어져 갔지만 ‘설마(雪魔)’가 할퀴고 간 전북 고창지역 농민들의 시름은 더해가고 있다. ●특별재난지역을 지정해도 남는 건 빚 고창군 고수면 봉산리 일대는 가지를 재배하는 1만 5000여평 규모의 비닐하우스가 자리잡고 있다. 생산된 가지를 전량 일본으로 수출하는 국내 최대의 가지수출단지이다. 수출액만 연간 15억원에 달한다. 시설도 모두 정부가 권장하고 있는 ‘표준규격’에 맞춰 지어졌다. 하지만 지난 21일 내린 70㎝의 기록적인 적설량에 ‘수출농’의 꿈도 무참히 뒤덮이고 말았다. 2300평 규모로 표준규격 비닐하우스를 지어 운영하던 김영희(54)씨는 “처음 눈이 내릴 때는 난방을 해서 그럭저럭 견뎠지만, 기온이 크게 떨어진 21일은 내린 눈이 곧장 얼어붙어 방법이 없었다.”면서 “복구에만 6∼7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올해 농사는 이미 끝났다.”고 허탈해했다. 김씨에 따르면 이전과 같은 정도의 비닐하우스를 새로 지으려면 철거비 2500만원, 시설비 4억 3000만원 등 4억 5000만원 이상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의 순수 지원금은 8000만∼9000만원이 고작. 이마저도 특별재난지역 지정으로 무상지원 비율이 전체 피해액의 35%에서 45%로 높아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나머지는 빚이나 다름없는 융자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김씨는 “망가진 자재를 다시 쓰려 해도 재생비용이 더 들어간다. 부채가 이미 7000만원으로 신용한도가 찼는데 은행인들 융자를 더 해주려 하겠느냐.”면서 “나라에서 융자금을 아무리 많이 내려보내도 나에게는 그림의 떡”이라고 푸념했다. ●초기 시설투자 확대=안정적 영농의 지름길 김씨처럼 정부가 권장한 표준규격을 따랐어도 폭설 피해를 빗겨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규격을 따르지 않은 시설의 피해는 더욱 크다. 이번 폭설로 피해를 입은 고창군 내 축사 33㏊(약 10만평) 가운데 55%는 허가조차 받지 않은 비규격 시설이다. 부안면 수남리에서 젖소 100여마리를 기르고 있는 홍성권(56)씨는 축사 700평 가운데 500평 이상이 주저앉는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이 가운데 규격시설은 50평에 불과하다. 정부가 비규격 영농시설이라도 표준규격으로 다시 짓는 것을 전제로 지원키로 결정하지 않았다면, 자칫 지원의 ‘사각지대’가 될 수도 있었다. 이처럼 ‘이상 기후→피해 폭증→정부 재정부담 증가´ 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라도 초기 시설투자는 중요하다. 지난해 초 대산면 중산리에 420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를 지어 토마토 농사를 짓고 있는 김성묵(40)·명국(35) 형제는 이번 폭설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비닐하우스 토마토의 출하시기는 11∼2월,5∼7월 등 연간 두차례로 이번 폭설에 피해를 입었다면 빚더미에 나앉을 판이었다. 그러나 형제의 폭설 피해는 거의 전무했다. 이에 따라 9일에도 토마토 10㎏짜리 250상자를 출하하느라 분주했다. 성묵씨는 “시설비용이 더 들긴 했지만, 비닐하우스의 파이프 간격을 정부의 표준규격 최대치인 50㎝ 이상으로 촘촘히 설치했다.”면서 “비닐하우스를 튼튼하게 지은 덕에 이번 폭설을 피해간 것 같다.”고 안도했다. 명국씨도 “눈이 무릎까지 쌓이는 바람에 차가 다닐 수 없어 집에서 1㎞가량 떨어진 비닐하우스까지 밤낮으로 걸어다녔다.”면서 “난방온도를 평상시 12도에서 15도로 높이자 내린 눈이 녹아버려 쌓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고창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협찬:대한손해보험협회, 한국소방안전협회, 한국소방검정공사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국제강-철인 3대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국제강-철인 3대

    대궁(大弓)양행, 남선(南鮮)물산, 조선(朝鮮)선재, 동국(東國)제강…. 고 대원(大圓) 장경호 회장이 1929년 설립한 가마니 회사 대궁양행을 시초로 한 동국제강그룹의 사명 변천사에는 웅대한 포부가 담겨있다. 활을 숭상하는 민족사를 표방한 대궁이나 바다건너 남쪽으로 뻗어나가길 소망한 남선, 조선, 해뜨는 나라의 긍지를 담은 동국 등 장경호 회장이 강조한 민족사관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1974년 락희(현 LG), 삼성, 현대, 한국화약에 이어 5대 그룹까지 올라섰던 동국제강그룹은 잇단 계열분리로 인해 지난해 4월 현재 자산 5조 8000억원으로 재계 26위에 랭크돼 있다. 하지만 가마니와 못을 팔며 시작한 이 전통의 그룹은 3세인 장세주(53) 회장대에 이르러 범양상선(현 STX팬오션) 인수전에 뛰어들고 IT사업에 진출하는 등 의욕을 보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지남철로 수집한 철사 토막에서 연산 860만t체제로 장경호 창업주는 1899년 동래군 사중면 초량동에서 부농인 부친 장윤식씨와 모친 문염이씨 사이의 4남 2녀 가운데 3남으로 태어났다. 지금의 부산 초량동 중앙시장 주변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창업주는 1913년 서울의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진학했다. 당시 보성학교에는 부산출신 유학생이 단 두명 있었는데 나머지 한명이 4·19직후 과도정부 수반이었던 허정씨다. 둘은 광복 이후 각각 정치인, 기업가로 재회했는데 허정씨가 정계 은퇴 후 어렵게 살 때 장 회장이 음으로 양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장 회장은 은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 맏형 장경택씨가 운영하던 목재소 일을 돕고 농사를 크게 짓고 있던 두 형에게 가마니를 공급하는 일로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30세 되던 해인 1929년 대궁양행을 설립, 본격적인 가마니 장사에 나서면서 사업인생을 시작했다.1935년에는 남선물산을 세워 수산물 도매업, 미곡사업, 창고업 등으로 발을 넓혔다. 장 회장과 철(鐵)과의 인연은 우연찮게 시작됐다. 남선물산 창고에서 신선기(伸線機)를 설치해 철사와 못을 생산하던 재일교포가 창고에 화재가 발행하자 장 회장에게 신선기를 넘긴 것이다. 동국제강의 모태가 된 조선선재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당시 장 회장은 검정 고무신을 신고 보퉁이를 맨 채 지남철을 들고 다니며 고철을 수집해 못을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 동국제강의 연간 철강 생산량은 유니온스틸을 합쳐 무려 860만t에 이르지만 그 출발은 길거리에 굴러 다니는 쇠붙이였던 것이다. 한국전쟁 후 재건사업으로 못 수요가 폭발하자 조선선재는 큰 돈을 벌게 됐고 1954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 동국제강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민간 제철소 시대를 개막했다. 당산동 공장으로는 늘어나는 철강 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장 회장은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분개 소금’으로 유명했던 부산시 남구 용호동 일대 갯벌을 매립해 20만평 규모의 부산제강소를 완공한다. 1965년에는 50t 규모의 국내 첫 ‘고로(高爐)’를 준공, 한국 철강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당시 동국제강의 위상은 박정희 대통령이 1964년 부산제강소를 방문, 종합제철소 건설을 맡아달라고 당부할 정도였다. 장경호 회장은 “종합제철소는 민간기업이 하기에는 역부족이므로 국책사업으로 추진돼야 한다.”며 완곡히 사양했다. 이후 정부는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포항제철을 설립, 오늘날 포스코를 탄생시켰으니 장 회장이 박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한국 철강사가 새로 씌어질 뻔했다. ●아내 반지를 빼서라도 투자하겠다, 강철왕 송원 장상태 장경호 창업회장이 동국제강그룹의 기틀을 닦았지만 장 회장은 워낙 불심(佛心)이 깊어 수시로 절에 들어가 100일간의 수행정진에 들어가는 등 현대적 의미의 경영자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동국제강의 본격적인 역사는 1956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당시 부흥부(경제기획원)에서 일하던 고 장상태 회장이 전무로 입사하면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큰 형(고 장상준씨)과 공직에 있던 둘째 형(고 장상문씨)과 함께 동국제강을 키워 온 장상태 회장은 1964년 동국제강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2세경영’을 시작했다. 장 회장은 2000년 4월 지병으로 별세할 때까지 국내 첫 후판공장 설립, 부산신철(현 한국특수형강) 설립, 동일제강 인수, 한국철강·한국강업 인수, 연합철강·국제기계·국제통운 인수, 기업 상장, 직류전기로 도입, 포항 후판공장 준공, 국내 첫 항구적 무파업 선언, 부산제강소의 포항 이전, 일본 가와사키제철(현 JFE스틸)과의 포괄적 협력 체결 등 굵직굵직한 발자국을 남겼다. 64년 취임 당시 4만 8000t에 불과했던 동국제강의 철강 생산량은 2000년 705만t으로 147배 증가했다.5억 6000만원이던 매출은 1조 5442억원으로 불어났다. 장 회장은 약간의 여유만 생겨도 설비투자에 나섰는데 주변에서 자금 걱정을 하자 “내 아내의 반지를 빼서라도 투자금을 마련할 테니 설비만큼은 최고를 써라.”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장 회장의 존재감은 JFE홀딩스 스도 후미오 사장이 동국제강 사보 편찬팀과의 인터뷰에서 “장 회장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 때문에 지금도 동국제강 본사에 있는 장 회장 흉상 앞에 설 때면 자연스럽게 차렷자세로 ‘고맙습니다’하고 인사를 하게 된다.”고 털어놓았을 정도다. 스도 사장은 2005년 4월 방한했을 때도 경기도 광주에 있는 장 회장 납골탑을 참배하는 등 존경심을 감추지 않았다. ●디지털경영 시도하는 3대 장세주 회장 동국제강은 장상태 회장 별세 직후 포항제철 사장을 역임한 김종진씨를 부회장으로 영입,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했다. 하지만 김 부회장은 취임 1년여만인 2001년 7월 헬기를 타고 경남 거제의 대우조선소를 방문하다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졸지에 수장을 잃은 동국제강 계열사 사장단은 ‘회장 주청의 글’을 통해 당시 장세주 사장을 회장으로 추대키로 하지만 장 사장은 본인의 미흡한 점을 이유로 몇번을 사양했다. 장 사장은 선친과 교분이 두터웠던 박태준(현 포스코 명예회장) 전 국무총리와 해외 철강업계 수장, 모친인 김숙자(74)여사 등에게 차기 회장감을 상의했고 10여일의 고민끝에 “이젠 자네가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라는 박태준 회장의 권고를 받아들였다. 장세주 회장은 중앙고와 연세대를 졸업하고 학사장교(ROTC)로 포병장교 근무를 마친 뒤 미국 타우슨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1978년 말단 사원으로 입사, 경리부·일본지사·인천제강소장·기획조정실장 등을 거쳐 98년부터 대표이사를 맡았다. 그가 사장으로 승진한 것은 입사 22년만인 2000년이다. 장 회장은 “동국제강에 입사해 부장때까지 다른 신입사원들과 똑같이 현장에서 일하면서 라면도 끓여먹고 술도 마시곤 했다. 아버지는 늘 현장에 있으라고 강조하셨는데 현장에서 쇳가루를 마시고 커야 나중에 본사에 오더라도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다.”고 회고했다. 귀공자풍의 장 회장은 골프, 스키 등 만능 스포츠맨이다. 쉰이 넘은 나이에도 젊은이들이 즐기는 스노보드도 수준급이다.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스키를 즐겼던 선친과 많이 닮았다. 골프실력도 남다르다.74년 한국아마추어선수권대회에서 정상에 오를 만큼 프로급인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과 ‘자웅’을 겨룰 정도다.2오버파 정도를 친다고 한다. 장 회장은 또 어린시절을 함께 보낸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과도 친분이 두텁다. 방 사장과 허광수 회장이 사돈이고, 장 회장 역시 범 LG가(家)와 사돈이어서 눈길을 끈다. 장 회장 취임 이후 동국제강은 매출이 2001년 1조 7852억원에서 2004년 3조 2674억원으로, 순이익은 149억원에서 4562억원으로 급성장했다. 장 회장은 2004년 7월 동국제강 창립 50주년을 맞아 새로운 CI(기업이미지)를 선포하면서 2008년 그룹 매출 7조원 달성 목표를 내걸었다.2005년 들어 휴대전화 부품 제조업체인 유일전자(현 DK유아이엘)와 시스템통합업체인 탑솔정보통신(현 DK유앤씨)을 인수하는 등 IT영역으로도 발을 뻗고 있다. 중앙기술연구소 설립,MBA급 인재 100명 육성, 경영혁신운동 가동 등 인재육성과 기술개발에 정성을 쏟고 있다. 장 회장이 2005년 7월 ‘그룹경영회의’에서 주문한 내용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동국제강의 ‘체질’을 바꾸고 싶어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경영의 개념을 바꿔야 한다. 철강업, 물류업 등 우리 사업의 개념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져야 할 때이다. 선대 회장 시대의 경영패턴과 지금 시대에 해야 할 일이 바뀌었다는 점을 인식하자.” ●창업회장 시절의 수수한 혼맥 장경호 창업회장은 보성고보 2학년 때 같은 고향 출신의 추명순씨와 결혼, 슬하에 6남 5녀를 뒀다. 창업회장이 성사시킨 11번의 혼사 가운데 유력가문이라고는 동명목재뿐이다. 장남으로 동국제강 회장을 지낸 고 장상준씨는 부산에서 사업을 하던 박상선씨의 딸 명년씨와 결혼,4남 2녀를 낳았다. 장상준씨의 장녀 옥자씨는 부산세무서장을 지낸 송귀범씨와 결혼했고 장남인 세창씨는 타워호텔 회장이었던 고 남상옥씨의 딸 덕자씨와 결혼했다. 덕자씨는 남충우 타워호텔 회장의 누나로 남덕우 전 국무총리의 사촌동생이다. 차녀 옥빈씨는 태광그룹 이임룡 창업주의 둘째 아들인 고 이영진씨와 결혼했다. 장상준 회장의 자녀들은 동국제강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조선선재 경영을 맡았는데 선친에 이어 아들들도 일찌감치 유명을 달리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1978년 시집 ‘여(旅)’를 펴내는 등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장남 장세창 전 동일제강 사장은 2000년 지병으로 별세했고 차남인 장세명 전 조선선재 사장도 2005년 12월2일 59세로 사망했다. 조선선재는 곧바로 장세명 전 사장의 아들인 장원영씨를 대표이사로 추대해 새출발했다. 보스턴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원영씨는 불과 서른살이다. 3남인 장세승(57)씨는 조선선재 상무로 일하고 있다. ●불사를 이어받은 둘째 창업회장의 둘째 아들인 고 장상문씨는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고 공직자의 길을 걸었다. 장상문씨의 부인은 부산의 대표기업이었던 동명목재 창업주인 고 강석진 회장의 딸 강정자(76)씨다. 장경호 창업회장과 동향인 강 회장은 같은 불자로 친분이 두터웠다. 외무부 차관보, 스웨덴·멕시코 대사, 유엔대사 등을 역임한 장상문씨는 공직에서 물러난 뒤 선친의 뜻을 이어받아 1989년 사재 10억원을 출연해 전통문화 전문 출판사 ‘대원사’를 세웠다. 대원사는 현재 그의 아들인 장세우(57)대표가 맡고 있다. 장상문씨가 3대 이사장을 지낸 불교진흥원은 선친이 1975년 임종 직전 박정희 대통령에게 한국불교의 중흥을 염원하는 서한과 함께 헌납한 31억 6000만원(현재가 2000억원)으로 설립됐다. 불교진흥원 초대 이사장은 LG그룹 구인회 창업주의 동생인 구태회 당시 제2무임소장관이 맡았다. 동국제강과 LG그룹은 이후 사돈지간으로 발전하는 등 끈끈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2004년 동국제강 창사 50주년 기념식에 구본무 LG회장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었다. ●두 아들을 장교로 보낸 장상태 장남인 장상준씨가 일찍(1978년) 타계하고 차남은 회사 경영에 뜻이 없던 터라 동국제강은 3남인 고 장상태 회장 체제로 운영돼왔다. 부산 동래고와 서울대 농대를 졸업한 장 회장은 미국 미시간주립대 석사를 마치고 귀국, 잠시 부흥부(경제기획원)에서 일하다 1956년 동국제강 전무로 회사에 발을 내디뎠다. 장 회장은 부산에서 무역업을 하던 김영희씨의 외동딸인 김숙자씨와 결혼해 2남 3녀를 뒀다. 김숙자씨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나온 미모의 재원이었다. 김숙자씨는 시부모, 시동생 등 대가족을 모시고 살았는데 워낙 검박한 시아버지가 생활비(당시돈 500원)를 매일 매일 나눠주는 바람에 살림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 남편인 장상태 회장도 농림부 장학금으로 미국유학을 다녀오면서 부친이 용돈을 많이 주지 않아 고생을 했다.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도 미국 유학시절 부친이 차를 사주지 않아 걸어다녀야 했다고 한다. ROTC 출신인 장남 장세주 회장은 상명여대 교수를 지낸 남희정(44)씨와 결혼했다. 두 아들은 아직 학생이다. 막내인 장세욱(44) 동국제강 전무는 육사 41기생으로 육군 소령으로 예편한 뒤 96년에야 동국제강에 입사했다. 이후 남가주대 MBA를 졸업했다. 장 전무는 소위시절 친구 소개로 경제기획원 차관, 산업은행 총재, 금호석유화학 회장 등을 역임한 김흥기씨의 딸 남연(42)씨와 연애 결혼했다. 장 전무의 처남도 육사를 졸업했다. 장 전무는 “원래는 신문기자가 되고 싶었는데 국가를 위해 일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선친의 권유로 진로를 바꿨다.”고 말했다. 장상태 회장의 장녀인 영빈씨는 지병으로 이미 세상을 떴다. 차녀인 문경(48)씨는 울산대 의대 교수로 서울아산병원 정형외과 의사인 윤준오(52)씨와,3녀 윤희(45)씨는 부산지역 실업가이자 8대 국회의원을 지낸 고 이학만 화양실업 회장의 아들 철(47)씨와 결혼했다. 이철씨는 현재 철강유통회사인 세광스틸 사장이다. ●강철가문의 철 박물관 장상태 회장의 바로 아랫동생인 장상철씨는 부산제강소 공사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등 동국제강 경영에 활발히 참여하다 1991년 세상을 떴다. 장상철씨 사후 유족들은 세연문화재단을 설립해 고인의 뜻을 이어갔다. 세연문화재단은 2000년 충북 음성에 세연철박물관을 개관, 전통제철 복원실험, 대장간 조사 등 철강문화 발굴·보급에 힘쓰고 있다. 장녀 인경(47)씨가 관장을 맡고 있다. 장남인 세훈(44)씨는 동국제강 계열사인 국제기계 전무로 일하고 있고, 차남 세한(41)씨는 철강판매사인 ㈜동산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차녀 은주(45)씨의 남편인 송봉헌(49)씨는 주 인도 공사다. ●불사와 사업을 동시에 장경호 창업회장의 5남인 장상건(71) 동국산업 회장은 부산지역 사업가인 김대성씨의 큰딸 명자(64)씨와 결혼,1남 3녀를 뒀다. 장 회장은 부산상고와 동국대 임학과를 졸업하고 1960년 동국제강 감사로 입사했다. 이후 동국제강 부사장, 동국건설 사장을 지낸 뒤 1977년부터 동국산업 경영을 맡아왔다. 장경호 창업회장이 1967년 설립한 대원사가 전신인 동국산업은 2001년 동국제강에서 계열분리됐고 현재 동국S&C, 대원스틸, 한려에너지개발, 동국내화, 신안풍력발전, 고덕풍력발전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장상건 회장의 형인 고 장상준 회장 자손들이 운영하고 있는 조선선재 지분도 16.6% 갖고 있다. 동국산업은 현재 장상건 회장의 외아들인 장세희(38) 전무(경영관리본부장)가 21.52% 지분으로 최대 주주다. 장 전무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96년 동국산업에 입사했다. 장 전무의 부인은 동방그룹 창업주인 김용대 회장의 차녀 유경(36)씨다. 장 회장의 차녀 혜경(42)씨는 김장&리 법률사무소 설립자인 고 김흥한 변호사의 아들 유동씨와 결혼했다. 아직 미혼인 막내 혜원(36)씨는 국민대 시각디자인과에서 강의를 맡고 있다. ●화려한 혼맥, 눈부신 성장 장경호 창업회장의 여섯 아들 가운데 현재 가장 주목받는 이는 막내인 장상돈(69) 한국철강 회장이다. 경복고와 동국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62년 조선선재에 입사, 동국제강 상무·전무를 거쳐 82년 한국철강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이후 85년부터 98년까지 동국제강 대표이사 사장을 지냈고 2001년 한국철강을 갖고 독립했다. 한국철강은 계열분리 뒤 환영철강, 영흥철강, 대흥산업을 인수하며 한국특수형강, 세화통운, 마산항5부두운영과 함께 6개 계열사를 거느린 철강 전문그룹으로 도약했다. 한국철강 자체만으로도 지난해 매출 6861억원, 순이익 1120억원을 거둔 알짜기업이다. 환영철강 역시 매출이 4000억원이 넘고 한국특수형강도 지난해 매출이 2500억원에 달한다. 장 회장은 동국대 재학시절 이화여대 미대생이던 신금순(66)씨와 연애결혼했다. 장인인 신종식씨는 한때 동국제강 계열사인 부산신철(현 한국특수형강) 사장으로도 일했었다. 장 회장은 3남 2녀를 뒀는데 혼맥이 가장 화려한 편이다. 장남인 장세현(42) 한국특수형강 대표이사 부사장은 뉴욕대 경영학과를 마치고 한국철강에 입사했고 환영철강 부사장을 거쳤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화학과와 일본 와세다대학원을 나온 차남 장세홍(40) 한국철강 전무는 고 박정구 전 금호그룹 회장의 차녀인 박은경(34)씨와 결혼했다. 박 전 회장은 재계혼맥이 두텁기로 유명한데 맏사위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아들인 김선협씨, 셋째 사위는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의 차남인 허재명 일진소재산업 대표이사다. 3남 세일(35)씨는 영흥철강 기획이사를 맡고 있다. 차녀인 인영(38)씨는 구두회 극동도시가스 명예회장의 장남 구자은(42) LS전선 상무와 결혼했다. 구 명예회장은 구인회 LG 창업주의 동생이다.LG가와 동국제강의 남다른 인연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ukelvin@seoul.co.kr ■ 장씨일가 불교와 인연 동국제강 장씨 일가를 이야기하면서 불교와의 인연을 빼놓기 어렵다. 창업주인 고 장경호 회장의 묘비에는 ‘대원거사(大圓居士)’라고 새겨져 있다. 부인 고 추명순씨도 적선화라는 법명으로 통했다. 장 회장이 불교에 귀의한 계기는 17세 때 목격한 막내동생의 죽음이다. 사랑하는 동생의 죽음으로 인간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갖게 된 장 회장은 양산 통도사 주지 구하 스님을 통해 처음 불교에 눈을 뜨게 된다. 이후 1925년 통도사에서 첫 안거를 하면서 인생의 방향을 잡았고 수시로 금강산 마하연, 통도사, 청도 운문사, 부산 금정사, 금정산 무위암 등에서 안거와 정진을 거듭했다. 장 회장의 불사는 이후 불서보급사 설립, 대중포교당인 대원정사 설립 등으로 발전한다.1973년 대원불교대학까지 설립한 장 회장은 죽음을 예감한 1975년 스웨덴 대사로 있던 차남 장상문씨에게 불사를 부탁하고 사재 30억원을 불교사업에 희사, 대한불교진흥원을 탄생시킨 뒤 스스로 자리에 누워 입적했다. 그가 임종 직전 남긴 열반송은 ‘심즉시불(心卽是佛), 마음이 곧 부처이니 이를 믿고 깨달으라.’는 말로 끝난다. 창업 회장을 이어받은 장상태 회장도 부산제강소를 이전하면서 1996년 100억원을 출연해 대원복지재단(현 송원문화재단)을 설립, 장학사업·아동복지사업 등을 펼치며 선친의 유지를 이어갔다. 장 회장은 또 2000년 임종 직전 화장을 부탁해 장묘문화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는데 이 역시 그의 불심과 무관치 않다. 부인 김숙자씨, 아들인 장세주 회장, 장세욱 전무도 이미 화장을 약속했다. 창업회장이 생전에 불사를 부탁한 둘째 아들 장상문씨는 1981년 대원정사 이사장과 신행단체인 대원회 회장에 취임하면서 선친이 못다이룬 사업에 속도를 냈다. 장상문씨는 1989년 불교진흥원 이사장에 취임한 뒤 불교계의 숙원이었던 불교방송을 개국하는데 성공했다.UN방송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초대 불교방송 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장상건 동국산업 회장도 현재 대원정사 이사장직을 맡아 선친의 뜻을 받들고 있다. 동국산업은 1992년 재단법인 ‘불이원’을 설립, 소외된 이웃을 돕고 있다. 장 회장은 2004년 12월 부산에 대원정사 지원을 마련, 불교 포교에 힘을 쏟고 있다. 또 2005년에는 사재를 털어 부산 대원불교대학을 개교, 부산·경남지역 불교 인재 양성에 나섰다. 장상건 회장과 장상돈 한국철강 회장이 불교계열인 동국대를 졸업한 것도 이 집안과 불교와의 남다른 연을 짐작케 한다. ukelvi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눈꽃핀 차밭 보성에 빠지다

    눈꽃핀 차밭 보성에 빠지다

    낭만적인 크리스마스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녹차의 고장 전남 보성으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그곳에는 눈덮인 겨울 녹차밭의 아름다운 설경이 있고, 한적한 득량만 포구의 갈매기 날갯짓이 정겹게 다가온다. 태백 산맥의 무대인 벌교에 가면 소설 속으로의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다. 녹차·해수탕에서 겨울 포구의 정취를 느끼며 따뜻한 온천욕을 즐길 수 있으며, 제철 만난 벌교의 특산물 ‘벌교 꼬막’이 겨울 입맛을 돋운다.‘보성 차밭 빛의 축제’가 내년 3월까지 계속돼 해가 진 뒤 녹차밭에는 화려한 불꽃이 반긴다. # 눈덮인 녹차밭의 낭만 속으로 하얀 눈꽃이 소복이 내려앉은 차밭의 풍경은 장시간의 여행 피로를 한순간에 풀어준다. 녹차밭의 아름다운 설경에 6시간 남짓한 여행길의 지루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먼저 들른 곳은 각종 영화, 드라마,CF의 단골 촬영지인 대한다업(061-852-2593). 주차장에서 입구까지 이어지는 700여m 길이의 터널같은 삼나무 숲길이 반긴다. 하늘을 향해 촘촘하게 이어진 뾰족한 삼나무 길은 마치 설국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목숨도 아끼지 않는다.’는 삼나무 꽃말은 연인들에게 길의 의미를 더해 준다. 미끄러운 나무 계단을 오르자 흰색 융단을 깔아 놓은 듯한 차밭이 등고선을 그리며 파도처럼 물결친다. 산비탈을 가득 메운 녹색 차밭 위에 사뿐히 내려 앉은 눈꽃은 황홀경에 빠지게 한다. 보성 차밭은 1940년 경작되기 시작, 연간 5000여t의 차를 생산해 전국 생산량의 5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맑고 고온다습한 날씨와 토양덕에 품질 또한 으뜸으로 친다. 하얀 눈발이 날리는 차밭에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겨울 낭만을 즐기러 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곳으로 졸업여행을 온 안양여중 학생들이 “눈쌓인 차밭이 환상적”이라며 연신 휴대전화 카메라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노해나(16·안양여중 3년)양은 “멋진 차밭이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헤어질 친구들과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줬다.”며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차밭 입구에 있는 녹차 시음장에 들르면 따뜻한 녹차 한잔으로 추위를 녹일 수 있다. 시음료 1000원만 내면 향기로운 녹차를 마음껏 시음할 수 있다. 녹차는 등급에 따라 우전, 곡우, 세작, 중작, 대작, 엽차 등으로 나뉘는 데 곡우를 전후해 따 수제로 만든 최고급 녹차인 우전 100g에 5만 5000원이며, 대작은 1만원이다. 여기에서 18번 국도를 따라 10여분쯤 내려가면 나오는 봇재다원(061-853-1117)에서는 영천저수지와 득량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멋진 계단식 차밭의 풍광을 만난다. 도로변에 있는 다향각에 오르면 힘들이지 않고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이 곳은 지난 15일부터 ‘보성 차밭 빛의 축제’가 시작된 곳으로 내년 3월까지 녹차밭을 따라 만들어진 멋진 조명을 볼 수 있다. 멀리 활성산 자락의 녹차밭에 높이 120m, 폭 130m 크기의 대형 트리 조명을 설치해 멋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축제는 내년 3월까지 계속되며, 조명은 해가 진 뒤 새벽 3시까지 불을 밝힌다. # 녹차 해수탕에서 피로를 씻고 아침 일찍 율포해수욕장으로 가면 남해 바다로 위로 떠오르는 일출을 보며 겨울 바다의 낭만을 만끽할 수 있다. 한적한 바닷가에는 고깃배들이 정박해 있고 그 위로는 한 쌍의 갈매기가 하늘을 향해 힘껏 날아 오른다. 한적한 겨울 바다는 보는 것만으로도 낭만이 묻어난다. 바닷가와 인접한 보성군 직영 ‘율포 해수·녹차탕’(061-853-4566)에서는 바닷가 통유리를 통해 목욕을 즐기며 겨울 바다의 전경을 바라볼 수 있다. 지하 120m 암반에서 끌어올린 해수탕과 보성 녹차를 원료로 한 녹차 해수탕은 피부를 통해 녹차 성분이 흡수돼 피부탄력을 유지하고 관절염, 신경통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인기가 높다. 입욕료는 5000원. 아울러 보성은 남도 정서를 애절한 소리로 승화시킨 서편제의 고장. 대원군에게 총애를 받은 서편제의 비조 박유전의 창법이 정응민에게 이어지고 정응민은 독특한 보성의 소리를 만들어 냈다. 이 때문에 보성은 삼보향(三寶鄕)으로 불리는데 차의 본고향인 다향(茶鄕), 소리의 고향 예향(藝鄕), 충의열사가 많은 의향(義鄕)이 합쳐진 별칭이다. # 태백산맥의 무대 벌교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감동을 잊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벌교에서 시간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다. 벌교는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일종의 신도시로 벌교라는 이름은 지금 홍교(보물 제304호)가 있던 자리에 ‘뗏목 다리’가 있어 그 이름을 딴 것이다. 벌교 읍내 전체는 태백산맥 유적지로 가득하다. 첫번째 답사 코스는 ‘철다리’. 빨치산 대장인 염상진의 동생 염상구가 벌교 제일의 주먹이던 땅벌을 제압하고자 스스로의 담력을 보여주기 위해 기차가 올 때까지 오래 버티는 담력 결투를 벌였던 곳이다. 지금도 목포∼부산을 운행하는 서부 경전선이 운행한다. 인근에 있는 중도방죽은 일본인 나카시마(中島)가 동양척식주식회사를 통해 간척사업을 해 만든 곳으로 지금은 방죽위에 황톳길을 깔아 산책로로 이용된다. 홍교는 세 칸짜리 무지개 다리로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홍교중에 가장 규모가 큰 것이다. 벌교천 하류를 따라 내려가면 소화다리에 이르는데 원래는 부용교였으며, 소설 속에서 좌·우익 서로간에 사형을 집행했던 장소로 밀물때면 여기까지 올라온 바닷물이 온통 피바다였다는 아픈 사연을 안고 있다. 벌교초등학교 옆에 있는 남도여관은 소설 속에 등장한 여관으로 전형적인 일본식으로 지어진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 밖에 소설속 무대로 김범우의 집, 벌교역, 회정리교회, 현부자집, 진트재 등이 있으며, 태백산맥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로는 조정래 작가(www.jojungrae.com), 벌교 사랑회(www.beolgyosarang.com) 등이 있다. # 제철 만난 벌교 꼬막의 맛 보성에는 녹차 성분이 함유된 녹차 수제비와 녹차떡국, 녹돈, 녹우 등 녹차음식을 맛볼 수 있다. 하지만 대표적인 겨울 먹거리는 역시 벌교 꼬막. 예로부터 수라상에 오르는 8진미 가운데 으뜸으로 꼽혔으며 제사상에도 빠지지 않을 만큼 풍미가 일품이다. 꼬막은 단백질과 칼슘이 풍부한 식품으로 소화 흡수가 잘돼 어린 아이에게도 좋다. 찬바람이 부는 11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가 제철이다. 장암리와 대포리가 대표적인 생산지 인데 이 곳의 개펄은 모래가 하나도 섞이지 않은 참펄로 다른 곳의 꼬막과는 달리 짭짤하고 담백한 맛이 난다. 물이 빠지면 어부들이 널빤지에 갈고리가 달린 펄배를 타고 나가서 꼬막을 캐온다. 연간 2000t 정도가 생산되는데 재래시장 등에서 20㎏짜리 1깡(그물망)에 6만∼6만 5000원에 판매한다. 벌교 꼬막은 삶아서 까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 삶는 방법도 다른 곳과 다르다. 우선 80∼90도(중불)에 꼬막을 넣은 뒤 한쪽 방향으로 돌려 삶는다. 이때 꼬막의 껍질이 벌어지지 않도록 살짝 데친다. 꼬막이 물에서 검붉은 물을 쏟아낼때 꺼내 껍질을 손으로 벗겨낼 수 있으면 다 삶아진 것이다. 꼬막 전문식당으로는 홍도회관(061-857-8088)이 있다. 꼬막정식 1인분에 1만 2000원인데 삶은 꼬막과 꼬막전, 꼬막회무침, 양념꼬막, 꼬막된장국 등 각종 꼬막요리를 맛볼 수 있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 여행길에 동행했던 문화유산해설사 김영희씨가 선물이라며 ‘부용산’이라는 노래를 들려줬다. 부용산은 벌교 인근에 있는 산으로 박기동 시인이 꽃다운 16살의 나이로 폐병으로 죽은 여동생을 산에 묻고 돌아오며 지은 시에 이 지역 음악교사였던 안성현 선생이 곡을 붙인 애절한 노래다. ‘부용산 오리길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솔밭 사이 사이로 회오리 바람타고/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너만 가고 말았구나/피어나지 못한 채 병든 장미는 시들었구나/부용산 봉우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 여행정보 승용차로는 호남고속도로 동광주 IC로 나와 29번 국도를 따라 화순·능주를 거쳐 40분쯤 달리면 보성군이다. 서울에서 5시간30분쯤 걸린다. 기차는 서울역에서 보성역까지 무궁화호가 하루 한차례 운행하며, 버스는 서울 강남터미널 호남선에서 고속버스가 오전 8시20분과 오후 3시20분 2회 운행한다. 주변 볼거리로는 백제의 고찰 대원사와 티베트의 정신세계를 엿보는 티베트박물관, 세계 최대규모의 공룡알 집단산란지인 비봉공룡알 화석지, 보성소리 전수관, 정응민 예적지 등이 있다. 보성군 문화관광과 (061) 850-5223, www.boseong.go.kr 글·사진 보성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예술위 ‘올해의 예술상’ 선정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위원장 김병익)는 제2회 `2005 올해의 예술상´수상작으로 최하림의 시집 `때로는 네가 보이지 않는다´를 비롯해 7개 분야 32개 작품을 선정,13일 발표했다. 수상자와 단체는 `최우수상´ 각 5000만원,`올해의 예술상´ 각 3000만원이 주어진다. 시상식은 19일 오후 6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있다.◇문학▲최우수상=최하림 `때로는 네가 보이지 않는다´▲올해의 예술상=공선옥 `유랑가족´, 윤성희 `거기, 당신?´, 서영채 `문학의 윤리´, 남찬숙 `받은편지함´◇미술▲최우수상=함양아 `함양아전´▲올해의 예술상=김주현 `확장형 조각´, 강수미(기획)`번역에 저항한다´, 이영철(기획)`당신은 나의 태양:한국현대미술 1960´, 이화여대박물관 `시간을 넘어선 울림:전통과 현대´◇연극▲최우수상=극단 백수광부 `그린벤치´▲올해의 예술상=극단 골목길 `선착장에서´, 극단 물리 `죽도록 달린다´, 극단 미추ㆍPMC프로덕션 `김성녀의 벽 속의 요정´,Labo C.J.K `바다와 양산´◇무용▲최우수상=안성수 픽업그룹 `선택´▲올해의 예술상=김영희무트댄스 `마음을 멈추고´, 손인영NOW무용단 `안팎´, 이경옥 무용단 `2005 춘향 사랑놀음´, 서울발레시어터 `봄, 시냇물´◇음악▲최우수상=화음쳄버오케스트라 `화음쳄버오케스트라 10주년 기념음악회´▲올해의 예술상=김대진 `김대진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시리즈Ⅷ´, 서울바로크합주단 `서울바로크합주단 창단 40주년 특별정기연주회´, 최희연 `최희연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사이클´, 서경선(작곡) `2005서울국제음악제 KBS교향악단 특별연주-교향시 시월´◇전통예술▲최우수상=남북전통공예교류전 운영위원회 `남북전통공예 교류전´▲올해의 예술상=강은일 `강은일의 해금플러스V-일상과 회상´, 민속악회 메나리 `그 빛깔 그대로´, 타루 `밥만큼만 사랑해´, 박은영무용단 `박은영 궁중무용발표회´◇다원예술▲최우수상=없음 ▲올해의 예술상=머리에 꽃을 거리예술제 준비위원회 `2005 제주 머리에 꽃을 거리예술제´, 홍성민·김은영 `토탈씨어터 앨리스´.
  • [박동섭 가족클리닉 행복만들기] 타인에게 넘긴 상속지분 찾고 싶은데

    Q어머니는 3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최근에는 아버지도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개인사업체를 경영하시면서 상당한 재산도 모았지만, 사업상 빚 1억원을 지게 됐습니다. 상속인으로 3남매가 있는데, 큰오빠가 자신의 상속분인 3분의1을 통째로 제3자에게 넘겨 버렸습니다. 우리들은 아버지의 개인사업체를 물려받아 운영하기를 원했는데, 오빠가 넘긴 지분을 다시 찾아올 수 있나요 -김영희(37·가명)- A 도로 찾아올 수 있습니다. 상속이 개시되면 상속인들은 상속재산을 무조건 자동승계하게 됩니다. 상속인이 한 명이라면 상속재산은 그 사람 단독소유가 되겠지요. 상속인이 2명 이상인 경우는 상속재산은 이른바 상속인들의 공동소유가 됩니다. 그래서 공동상속인은 상속재산 전체에 대한 자신의 상속지분을 자유롭게 양도할 수 있습니다. 공동상속인은 상속재산(채무 등 포함) 전체에 대한 자기의 상속지분을 자유로이 양도할 수 있습니다. 지분이 아닌 구체적인 상속재산은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습니다. 상속분 중 일부인 아파트나 승용차를 마음대로 팔 수 없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상속지분을 초과하는 부분은 권리가 없는 사람의 처분에 해당돼 양수인이 권리를 취득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상속인은 자신의 상속분을 형제·자매 등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마음대로 양도할 수 있습니다. 상속분의 양도는 상속인 지위의 양도이므로, 상속 양수인은 상속인과 같은 지위에 서게 됩니다. 하지만 양수인이 상속재산 분할절차 등에 참가해 분쟁을 일으킬 우려도 있습니다. 각자가 상속분을 자유롭게 양도한다면, 유산이 분산되는 등의 문제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민법은 상속분의 환수제도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김영희씨의 경우 아버지가 남긴 상속채무 1억원은 상속인들이 3분의1씩 분할 승계하게 됩니다. 장남이 상속분을 양도하더라도 그는 상속채무를 면할 수 없고, 양수인은 상속채무를 중첩적으로 인수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상속분의 양도인과 양수인이 상속채무를 함께 지게 되는데, 이는 상속채권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공동상속인이 상속분 환수권을 행사하려면, 상속분의 양도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양도일로부터 1년 이내에 행사해야 합니다. 환수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공동상속인 중 1명 또는 전원이 상속분의 양수인에게 “내가 도로 사겠다.”고 일방적인 의사표시를 하면 됩니다. 그러면 양수인은 거기에 응해야 합니다. 또 환수하려면 상속분 가액과 제3자가 이미 지출한 양수비용을 물어주어야 합니다. 상속분 가약은 환수 당시의 상속분 시가를 의미합니다. 시가와 비용을 현실적으로 물어주어야 하고, 제3자가 가액이나 비용의 수령을 거절하더라도 환수권자가 이를 법원에 공탁하면 환수효과가 생깁니다. 상속인이 자신의 상속분을 무상으로 제3자에게 주었더라도 이를 환수하려면 가액을 물어주어야 합니다. 환수권은 공동상속인만 행사할 수 있습니다. 상속인의 채권자 등이 상속인을 대신해 환수에 나설 수는 없습니다. 공동상속인이 환수권을 행사하면, 환수대상인 상속분은 공동상속인 전원에게 각자 상속분에 따라 귀속됩니다. 환수하느라고 물어준 가액과 비용도 공동 상속인들이 상속분대로 분담하게 됩니다. 공동상속인 중 한 명만이 환수권을 행사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그 사람에게만 독점적으로 상속분이 귀속된다는 견해와 공동상속인 전원에게 귀속된다는 견해가 대립하고 있습니다. 공동상속인사이의 또 다른 분쟁을 방지하려면 앞의 견해가 타당하다고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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