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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 격침된 北 반잠수정 유류품서 단서 발견

    국가정보원은 지난해 12월 남해에서 격침된 반잠수정에서 발견된 ‘전화번호 기재 수첩’ 등을 단서로 사살간첩의 행적과 국내 연계망을 추적한 끝에암호로 적혀있던 김영환씨를 비롯한 용의자들의 전화번호를 밝혀냈다. 때마침 97년 10월 이후 중국에서 장기 체류하던 김씨가 어머니 조성자씨를통해 청와대에 입국 허용 탄원서를 제출한 뒤 지난 7월 29일 자진 귀국하자수사에 활기를 띠었다. 국정원은 8월9일부터 16일까지 김씨를 상대로 4차례에 걸쳐 조사를 벌인 끝에 “89년7월 남파간첩 윤택림(56·북한 대외연락부 5과장)에게 포섭돼 노동당에 입당한 후 91년 5월 서울대 1년 후배인 조유식씨와 함께 입북했다”는진술을 받아냈다.김씨 등은 공작원 전용시설인 모란 초대소에서 14일동안 체류하면서 국내정세 등을 보고하고 김일성과 묘향산 별장에서 2차례에 걸쳐면담한 뒤 김일성 훈장까지 받았다. 김씨는 91년 8월 경기 강화군 내가면 외포리의 드보크에서 미화 40만달러(당시 약 3억원)와 권총 2정,무전기 3대,난수표 등을 확보한 뒤 92년 3월16일 북한의 지령에 따라 주사파 운동권인 반제청년동맹을 주축으로 민혁당을 결성한 것으로 드러났다.김씨는 이 과정에서 국정원이 주사파 활동뿐만 아니라 민혁당에 대해서도 수사를 시작하자 심경변화를 일으켜 지난달 16일 ‘말’지를 찾아가 “국정원이 간첩단 사건으로 조작하려 한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하고 잠적했다.국정원은 소재를 추적하던 중 18일 홍콩으로 출국하려던김씨를 김포공항에서 긴급체포하고 관련자 조유식,하영옥,심재춘,김경환 등을 차례로 연행,혐의 일체를 자백받았다. 김씨는 95년부터 북한이 남한의 진보운동에 대해 배려하지 않고 탈북자의증언을 통해 정치범 수용소의 인권유린 실태 등을 알게 되자 민혁당을 이탈하려는 조짐을 보였다.이를 눈치챈 북한은 지난해 12월 민혁당의 합법연락원 등으로 활동하던 간첩 진운방을 남파시켰다. 하씨는 김씨가 97년7월 민혁당을 해체하려 하자 이를 인수한뒤 지난해 10월 남파 간첩 진운방에게 ‘원진우’라는 이름의 주민증을 발급받게 해주고 같은해 12월 진을 태운 반잠수정이 격침되자 인터넷 메일을 이용해 북한측과대응책을 논의하는 등 ‘사이버 간첩’ 활동을 해왔다고 국정원은 설명했다. 심씨는 지난해 9월 하씨에게 포섭돼 진운방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무전 및 인터넷을 통해 북한과 접촉한 혐의를,김경환씨는 89년 9월 진운방을 알게된 뒤 노동당에 입당하고 지난해 10월 다시 남파된 진운방이 하씨와 접선토록 주선한 혐의를 받고 있다.진운방은 지난 87년 말레이시아인으로 위장 침투,강남 논현동에 ‘삿떼리아 코리아’라는 음식점을 운영하는 등 5년간 암약하다 92년 출국한뒤 98년 10월 재침투,‘정성용’,‘원진우’란 가명으로활동해오다 지난해 12월 반잠수정을 통해 북한으로 돌아가려다 사살됐다. 이종락기자 jrlee@
  • ‘민혁당’ 실체는… 主思派 주축의 노동당 전위조직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은 김영환(金永煥)씨가 지난 91년 밀입북,지령을 받고 돌아와 92년 3월16일 주사파 지하조직인 ‘반제청년동맹’ 핵심세력을 주축으로 결성한 노동당의 남한 내 지하 전위당이다. 당 강령(3개조)과 당헌(6개조)을 통해 ‘김일성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하는 지하혁명당’으로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혁명’(NLPDR)을 완수할 것을목표로 내세우고 있다.조직체계는 당 지도부인 중앙위 밑에 도당(道黨) 성격의 경기남부·영남·전북위원회와 부문별 사업지도부를 두도록 했다. 국정원은 지난해 7월 부산경찰청에서 수사한 ‘영남위원회’도 민혁당의 하부조직으로 밝혀졌다고 발표했다.민혁당은 조직의 비밀유지를 위해 각급 조직을 동창회·사업소·영업소·대리점 등으로 위장,점조직 형태로 운영해 왔다.기관지 ‘빛’ 등 간행물을 통해 북한체제의 우월성과 김정일의 위대성을 부각,전파해는 데 주력해왔다. 국정원은 민혁당이 북한에서 유입된 공작자금 등 총 3억2,000만원을 활동자금으로 사용했다고 밝혔다.합법투쟁의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96년 총선과95년 지자체 선거 때는 일부 후보에게 4,500여만원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종락기자
  • 민혁당 구축 간첩5명 구속

    북한이 80년대 학원가의 주사파 핵심세력들을 포섭,남한 내 지하당인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을 구축토록 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정보원(국정원·원장 千容宅)은 9일 ‘민족민주혁명당 간첩사건’ 수사결과를 발표,‘강철서신’의 저자 김영환(金永煥·36),조유식(曺裕植·35·전 ‘말’지 기자),하영옥(河永沃·36.무직),심재춘(沈載春·29·대학강사),김경환(金京煥·35·‘말’지 기자)씨 등 5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김씨와 조씨는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점을 감안,공소보류 의견으로,하씨와 심씨는 기소의견으로 각각 검찰에 송치했다.김경환씨에 대해서는계속 수사하고 있다. 국정원은 지난해 12월 해군이 전남 여수 해안에서 격침시킨 반잠수정에서발견된 ‘전화번호 수첩’ 등을 단서로 격침 당시 사살된 간첩이 국내에서암약하던 진운방이라는 사실과 함께 민혁당의 실체 및 김씨 등 용의자들의혐의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종락기자 jrlee@
  • 新黨발기인 총35명 안팎으로

    여권은 9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국민회의 이만섭(李萬燮) 총재권한대행간 협의를 거쳐 35명 안팎의 신당 발기인을 확정,발표한다.창당발기인은국민회의와 당외인사를 각각 17명 내외로 하고 당내인사와 당외인사 각 1명을 공동대표로 선임할 예정이다. 발기인대표로는 국민회의쪽에서 정균환(鄭均桓) 총재특보단장이,당외인사로는 이재정(李在禎) 성공회대 총장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당에서 참여할 발기인으로는 정총재특보단장 외에 정동채(鄭東采) 기조위원장,조순형(趙舜衡) 추미애(秋美愛) 김민석(金民錫) 김영환(金榮煥) 김길환(金佶煥) 장영철(張永喆)의원 등이 유력시되고 있다. 당외 인사로는 이총장 외에 이창복(李昌馥) 민주개혁국민연합 상임대표,한명숙(韓明淑) 전 참여연대대표,이인호(李仁浩) 주러시아대사,영화배우 문성근씨 등이 참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발기인들은 9일 모임을 갖고10일 개최될 창당발기인대회 대책을 논의한다. 유민기자 rm0609@
  • ‘강철서신 사건 15명 연루’ 국정원 수사결과 발표

    국가정보원은 6일 ‘강철 서신’의 저자 김영환(金永煥·36)씨와 ‘말’지기자 등이 연루된 간첩단 사건 수사결과를 오는 9일 발표한다고 밝혔다.이번 사건과 관련,지금까지 사법처리된 사람은 김씨와 전 ‘말’지 기자 조유식(曺裕植·35)씨 등 5명이며 이들 외에 연루자 10여명이 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병철기자 bcjoo@
  • 김영환씨, 잠수정 타고 밀입북

    지난 21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주사파 이론 지침서 ‘강철서신’의 저자 김영환(金永煥·36)씨와 전 ‘말’지 기자 조유식(曺裕植·35)씨가 지난 91년 북한 잠수정을 타고 밀입북,김일성 당시 주석을 면담하는 등보름이상 체류하다 귀환한 것으로 밝혀졌다. 25일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김씨 등은 지난 89년 우연히 남파간첩 김철수(가명)와 접촉한 뒤 900만원과 무전기를 받고 공작활동에 가담했다.이들은 남파간첩의 제의에 따라 91년 5월 중순 경기도 강화군 건평리 해안가에서 북한호송안내원 2명의 인도를 받아 정박중인 반잠수정을 타고 황해도 해주를 거쳐 평양에 도착했다. 체류하는 동안 김씨 등은 평양 근교의 ‘모란초대소’를 방문했으며 묘향산의 ‘김일성 별장’에서 1박2일동안 머물면서 김일성과 2차례 면담,남한내지하당을 결성하고 ‘김일성주체사상’을 확산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김씨 등은 5월말∼6월초쯤 북한 남포항에서 공작선을 타고 서해 공해상을거쳐 제주도 남쪽 공해상까지 내려온 뒤 북한 호송 안내원의 인도로 서귀포로잠입해 서울로 되돌아왔다. 대남공작에 필요한 공작금 40만달러,권총 2정과 실탄,무전기 1대 등은 92년4월 쯤 고정간첩이 미리 마련해 둔 강화군 외포리의 ‘드보크’에서 찾아 권총 등은 숨기고 공작금은 공작활동에 사용했다. 이에 대해 김씨의 변호인단은 “현재 김씨는 조선노동당 가입이나 밀입북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병철기자 bcjoo@
  • ‘강철 시리즈’ 金永煥씨 간첩혐의 긴급 체포

    국가정보원은 19일 80년대 북한의 대남적화혁명론에 입각한‘강철시리즈’라는 이적표현물을 대학가에 유포시켰던 김영환(金永煥·36)씨를 간첩 혐의로 긴급체포,수사중이라고 밝혔다.김씨는 지난 18일 오후 대한항공을 이용,홍콩을 경유해 중국으로 도피하려다 김포공항에서 대기중이던 국정원 수사관들에게 긴급체포됐다. 국정원은 특히 전 ‘말’지 기자였던 조유식(曺裕植·35)씨도 김씨 관련 혐의로 긴급체포해 김씨사건과 연관돼 수사를 받게 될 인사들이 더 늘어날 전망이다.97년 10월 최정남부부간첩사건에 연루돼 중국으로 도피했다가 지난달29일 사상전향 의사를 밝히며 귀국한 김씨는 최근 네 차례에 걸쳐 국정원의조사를 받아왔다. 국정원은 김씨가 조사를 받고나서 모 월간지를 찾아가“국정원이 간첩단 사건을 조작하기 위해 회유와 협박을 했다”고 거짓 주장하는 등 수사업무를 방해한 뒤 탈출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경북 안동 출신의 김씨는 서울 법대 공법학과 재학때 서울대를 중심으로 한민족해방파(NL)학생조직 구국학생연맹(구학련)의장으로활동하다 지난 87년국가보안법 위반죄로 징역 7년에 자격정지 7년형을 선고받았다. 오일만기자 oilman@
  • ‘신진세력’조건과 영입 방향

    여권은 ‘새 피’의 조건을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다.개혁성과 도덕성은 신당 영입 대상들이 갖춰야 할 첫째 덕목이다.여기에 세계화에 걸맞은 전문성이 더해져야 필요 충분조건이 된다는 얘기다. 참신한 ‘젊은 피’면 더욱 좋다는 게 여권의 바람이다.그러나 국민회의 김영환(金永煥)정세분석위원장은 “젊은층 수혈론은 나이가 아니라 사고방식의 문제”라고 생물학적 연령론에 반대이다.그는 참신함,개혁의지,정보화마인드,전문성,민주성 등을 필요·충분 덕목으로 제시했다. 지역적 한계는 여권이 극복해야 할 과제다.여권의 한 관계자는 “영남,강원지역도 인물을 잘 내면 내년 총선에서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그렇지만 지역감정의 벽을 뛰어넘을 ‘새 피’를 찾기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이런 것을 토대로 ‘수혈론’은 ‘보완’에서 ‘혁신’으로 무게중심이 옮겨졌다.대폭 물갈이는 이미 대세로 굳어졌다.현역 의원들은 “생존율이 절반도 안될것”이라며 불안해하고 있다. 여권은 16대 총선 참여그룹,창당 지원그룹,미래정치 참여그룹 등 세 차원에서영입작업을 진행시키고 있다.‘+α’ 대상으로 스크린중인 인사는 2,000여명선.김상근(金祥根)목사,이돈명(李敦明)변호사를 비롯,각 분야의 교수·변호사·기업가 등이 망라된 국민정치연구회가 ‘+α’의 주축이랄 수 있다. 국민정치연구회는 이창복(李昌馥)씨가 상임대표인 민주개혁국민연합,‘386세대군(群)’인 ‘젊은 한국’,세력을 확산중인 ‘개혁 개미군단’측과 수시로 만나 논의중이다.개혁세력이 ‘+α’의 주축이 될 거라는 얘기다. 김병태(金秉泰) 국민연합 상임위원 등 256명의 ‘개혁 개미군단’도 지난달 29일 “개혁세력과 연대하겠다”며 신당 참여의사를 밝혔다. 박대출기자 dcpark@
  • 한강 아직은 안전

    나흘째 집중호우가 계속되면서 한강 상·하류지역에 홍수주의보가 내려진가운데 팔당댐과 화천댐 등의 방류량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그러나 한강홍수통제소측은 팔당댐 등에서 방류량을 최대로 늘리더라도 한강이 범람할 위험은 없다고 밝혔다. 한강홍수통제소는 한강 상류지역으로부터의 물 유입량이 계속 늘어나자 팔당댐과 청평댐의 방류량을 3일 오후 3시 현재 각각 초당 1만7,435t과 1만196t으로 늘렸다.평소의 8배 수준이다. 이에 따라 한강대교의 수위는 이날 오후 4시쯤 8.29m로 경계수위 8.5m에 육박했다.위험수위 10.5m까지는 2.01m를 남겨놓고 있다.홍수주의보는 한강대교의 수위가 위험수위인 8.5m에 달했던 2일 오후 5시에 이미 내려진 상태다. 홍수통제소는 방류량 조절을 통해 한강수위를 2일 오후 4시부터 경계수위이하인 8m 정도로 유지하고 있지만 한강 지천인 중랑천 등의 유입량 증가로조금씩 올라가고 있다. 이봉희(李奉熙) 조사과장은 “서울·경기지역에 수돗물을 공급하기 위해 팔당댐 수위는 항상 25m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태풍에 대비해 수위를 낮춰가면서까지 방류량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강 상류 각 댐들의 초당 방류량은 오후 3시 현재 ▲화천 4,334t ▲소양강 214t ▲충주 682t ▲춘천 5,487t ▲의암 8,805t ▲청평 1만196t 등이다. 소양강댐은 상류지역에서 초당 2,023t이 유입돼 저수위는 185.06m로 제한수위 185.5m에 거의 도달했다.충주댐은 초당 1만384t이 유입되고 있으나 저수위는 130.79m로 제한수위까지는 8m정도 여유가 있다. 댐에서 방류된 물이 한강 인도교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가장 먼화천댐이 평균 20시간,가장 가까운 팔당댐이 4시간 정도다. 김영환(金永煥) 통제소장은 “만약 팔당댐이 최대 방류량인 3만t을 내려보내도 한강수위는 2m정도밖에 오르지 않아 범람의 위험은 없다”면서 “지금상태대로라면 홍수경보가 발령되더라도 한강이 범람하지는 않을 것”이라고말했다. 한편 한강 홍수주의보는 한강대교 수위가 경계수위인 8.5m에 육박하면 남·북한강 수심과 유속,상류지역 강우량 등을 종합 분석해 홍수통제소장이 발령한다. 홍수주의보는 지난74년 통제소가 개소한 이래 모두 26차례 발령됐다.위험수위에 가까워지면 내리는 홍수경보는 84,90,95년 등 모두 7번 발령됐다. 특별취재반
  • 김자경오페라단 ‘라 트라비아타’ 다섯번째 무대

    김자경오페라단이 오는 8월 5∼7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라 트라비아타’를 올린다.오후7시30분.7일에는 오후3시30분 공연이 한차례 더 있다.(02)393-1244.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와 소프라노 김자경(82·김자경오페라단단장)은 인연이 깊다.지난 48년 1월 국내에서 처음 공연될 때 그는 주인공비올레타 역을 맡았다. 지난 68년 첫 민간 오페라단인 김자경오페라단을 시작하면서 그는 창단 작품으로 ‘라 트라비아타’를 택했고 스스로 비올레타가 되었다.이후 김자경오페라단이 정기공연으로만 무대에 올린 것이 이번으로 다섯번째이다.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하면 ‘김자경’을 떠올리고,99년판 ‘라 트라비아타’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지는 이유다. 이번 공연에는 국내 최정상급 가수와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는 성악가들이 더블캐스팅돼 한 팀씩을 구성했다. 국내파로는 소프라노 박정원이 비올레타를,테너 김영환이 알프레도,바리톤김동규는 제르몽,메조 소프라노 김현주가 플로라 역을 맡았다. 반면 해외파는 소프라노 전소은이 비올레타를,테너 이원준이 알프레도를,메조 소프라노 이현정이 플로라를 연기한다.김동규는 해외파 공연에서도 여전히 제르몽으로 출연,4회 연속 무대에 선다. 전소은은 임페리아 콩쿠르에서 우승,비오티 스프레토 국제콩쿠르에서 입상했다.본고장인 이탈리아에서도 비올레타 역을 40회이상 연기했다.이번 무대는지난 96년 국립오페라단의 ‘청교도’에서 주역을 맡은지 3년만이다. 이원준의 경력도 화려하다.91년과 94년 ‘토티 달 몬테 성악콩쿠르’에서,92년 파바로티 콩쿠르에서 각각 우승했다.95년에는 일본에서 초청 독창회를 가졌고 지난해 2월 리카르도 무티 지휘의 라 스칼라 오페라에서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에 출연했다.국내에서는 이번이 데뷔 무대다. 프라임 필하모니오케스트라가 연주하며,지휘는 지난 6월 KBS교향악단 정기연주회의 객원지휘로 호평을 받은 함신익(예일대 교수)이 맡았다.함교수는 폴란드 실레지안 국립오페라단의 수석 객원지휘자로 활동한다. 자,모처럼 찾아온 한여름 밤의 오페라 축제에서 ‘축배의 노래’‘그리운 프로방스의 바다로’‘아 그이였던가’등 주옥같은 선율을 감상하는 것은 어떨까. ‘여름휴가를 오페라와 함께’로 정해 호텔이나 전시장을 함께 이용하는 다양한 패키지 상품을 내놓은 점도 주목할 만하다. 강선임기자sunnyk@
  • LG반도체 임시주총서 현대반도체로 상호 변경

    현대로 넘어간 LG반도체는 26일 오전 10시 서울 대치동 사옥에서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상호를 ‘현대반도체 주식회사’로 변경했다. 또 정몽헌(鄭夢憲) 현대그룹회장,김영환(金榮煥) 현대전자사장,선병돈(宣炳敦)LG반도체부사장 등 모두 8명의 이사를 새로 선임하고 김용훈(金龍勳) 공인회계사를 상근감사로 뽑았다. 새 임원들로 구성된 이사회는 김 현대전자사장과 선 LG반도체부사장을 공동 대표이사로 선임했다.현대전자와 현대반도체 양사 합병을 위한 임시 주주총회는 다음달 7일 열린다. 노주석기자 joo@
  • [책과 세상] 김영환 지음 ‘홀로 선 당신이 아름답습니다’

    시보다 더 아름다운 감동이 있는 정치.온갖 혼탁함으로 얼룩진 정치판에서그러한 감동적인 정치가 가능할까.국회의원 김영환(44)에게서 그 가능성을읽는다.시인인 그의 깨끗한 정치는 시의 운율을 타고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깨끗한 정치의 실체를 보여주는 책 ‘홀로 선 당신이 아름답습니다’가 나왔다.(중앙M&B 7,000원).70·80년대 ‘어둠의 시절’을 온 몸으로 저항하며 살아온 고단한 삶과 이념적 동지로 같은 길을 걸어온아내와의 결혼 등 일상생활의 이야기도 담고 있는 이 책은 시가 있는 산문집이다. 김영환(국민회의)의 경력은 독특하다.의과대학생 구속 1호를 기록한 운동권학생이었으며 노동현장을 전기기술자로 전전한 노동운동가였다. 시인이며 치과의사였고 벤처기업 창업자였다.그는 다양한 삶의 굽이를 돌아,‘작은 의사는 병을 고치지만 큰 의사는 가난을 고친다’는 이제마 선생의 교훈을 가슴에 품고 정치판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무소유’의 정치철학을 실천하며 탁류의 정치판을 정화시키고 있다. 그는 얼마전 유일한 재산이던 42평짜리 아파트를 팔았다.96년 정치를 시작한지 3년만에 강남의 잘 나가는 병원과 아파트를 팔아먹은 것이다.남아있는 재산은 전세금이 전부다. 1,000만원의 정치자금을 받고 떨리는 마음으로 많은고민을 하다 결국 돌려주기도 했다. 그러나 깨끗한 정치라는 이름으로 아무 일도 하지않는 소극적인 정치가는아니다.경제청문회 때는 ‘스타 정치인’이었으며 지난 대선 때는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기피문제를 폭로,대선의 흐름을 바꾸어놓았다. 그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그러나 국민들의 생활에 도움이 되는 생활정치를 펼치는 일이다.전화요금의 인상을 막고 터무니없는 이동전화요금을인하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 등 생활정치를 실현하고 있다.그는 적지만 국민의 깨끗한 땀과 사랑이 담긴 후원금으로 국가를 살리고 국민을 살맛나게 하는 감동의 정치를 추구하고 있다. 그는 불신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정치를 구원할 희망의 빛이다.그 빛이 찬란하게 빛날 때 ‘정치가 시보다 아름다워야 한다’는 그의 꿈도 현실화될것이다.그러나그 빛은 부정부패의 검은 구름에 가리워져 있고 그는 혼탁한정치판에 홀로 서 있다. 이창순기자cslee@
  • DJT회동결과 3黨 반응

    21일 ‘DJT 청와대회동’ 결과와 김종필(金鍾泌)총리의 기자회견에 대해 여권은 무엇보다 ‘공동정권체제 유지’에 의미를 부여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반면 야당은 여권이 기어코 대(對)국민약속 파기를 강행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회의 한화갑(韓和甲)사무총장과 정동채(鄭東采)기조위원장,김옥두(金玉斗)총재비서실장 등 국민회의 지도부는 말을 극도로 아끼며 표정관리에도무척 신경을 썼다.그러나 ‘목에 걸린 가시’였던‘연내 내각제 개헌’문제를 단번에 해결한데 대한 만족감만은 얼굴에서 지우지 못했다. 이영일(李榮一)대변인은 공식 논평을 통해 “김총리의 용단으로 연내 내각제 개헌이란 공동정권의 과제가 총선 이후로 연기됐다”고 밝혔다.김영환(金榮煥)정세분석위원장도 “내각제 문제의 해결로 정국의 불안요인이 해소될것으로 본다”고 기대했다. 국민회의 지도부는 전날과는 달리 양당 합당을 통한 신당 창당에 대해 한결같이 ‘노 코멘트’로 일관했다.하지만 ‘현재진행형’임은 숨기지 않았다. “신당 창당문제도 공동여당간에앞으로 논의될 수 있는 사항이며 김총리도모든 정치현안을 양당 8인협의회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는게 이들의 반응이다. ?자민련 “내각제 조종(弔鐘)이 울렸다”며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충청권 내각제 강경파들은 “위약(違約)”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반면 비충청권 중도파들은 “예상했던 일”이라며 비교적 담담한 가운데 아쉬워했다. 한편으로는 김총리의 ‘합당불가 선언’으로 “당 간판은 유지하게 됐다”며 안도하기도 했다. 충청권 출신인 김칠환(金七煥)의원은 “뜻을 같이하는 사람끼리 거취를 모색하겠다. 이제 행동으로 보여줄 때” 라고 주장했다. 이원범(李元範)의원은“내각제 문제는 대통령의 공약사항으로 뒷골목 암거래로 끝낼 사안이 아니다”라고 반발했다. 반면 김현욱(金顯煜)사무총장은 “아쉽다”면서도 “그러나 세 분이 모여이같은 결정을 한 만큼 최상은 아니지만 최선은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지적했다.이건개(李健介)의원은 “현실적으로 최선의 선택이었던 것 같다”고 받아들였다.한 당직자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 일단락돼 국민 혼선을 매듭지은 점이 의미”라고 평가했다. ?한나라당 ‘대국민 공약의 공식 파기선언’이라고 강력하게 비난하고 나섰다.또 신당 창당 가능성에 대해 ‘완전히 꺼진 불’은 아니라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이회창(李會昌)총재는 21일 당무회의에서 “마키아벨리즘의 흉물스런 장면”이라면서 “정략적 정계개편을 주도하고 참여하는 정파와 정치인은 심판받아야 한다”고 경고했다.안택수(安澤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역시 확실한 화법을 피하는 김총리다운 입장설명이었다”고 깎아내렸다. 장광근(張光根)부대변인은 “합당하지 않겠다는 JP의 말을 믿는 국민들은 이제 한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합당 구상이 차질을 빚자 잠시 ‘봉합’해놓았다고 보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이부영(李富榮)총무는“여권이 내년 총선에서 표를 얻을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면 앞으로도 계속 무리수를 둘 것”이라고 말했다. 박대출 추승호 박준석 기자 dcpark@
  • ‘골수LG맨’ 70여명은 누구냐

    ‘떠나는 자와 남는 자….’ 반도체빅딜(대규모 사업교환)에 따라 현대전자에 인수합병된 LG반도체는 14일 LG그룹에 남을 임직원을 선별하는 작업으로 뒤숭숭하다. 현대전자와의 밀고 당기는 인수합병 협상끝에 LG그룹에 잔류키로 한 사람은 전체 8,100명의 임직원가운데 70여명에 불과하다.잔류자명단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임원 19명과 관리·영업부서의 팀장급 부·차장이 주를 이루는것으로 예상된다. 당초 LG그룹측이 잔류를 요청한 인원은 100명선.일부 핵심 기술인력을 포함,구본준(具本俊)사장 등 LG그룹과 특수관계에 있는 친·인척과 그룹 회장실근무 경력자 등이 포함됐다.대부분 빅딜과정에서 현대와 껄끄러운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연구·기술인력은 단 한명도 보내줄 수 없다는 현대측의 방침에 밀려 일부 관리·영업부서의 ‘골수 LG맨’들만 잔류자명단에 올랐다.현대 합류파의 대표는 선병돈(宣炳敦)부사장. 윤정세(尹楨世)상무 등 언론홍보팀 5명 전원은 현대측의 ‘특별한 합류요청’에 따라 열외없이 남았다. 현대전자 김영환(金榮煥)사장은 “본인이 강력하게 LG잔류를 희망한 관리·영업분야의 임직원가운데 70여명을 남기기로 했다”면서 “이들은 LG에 자리가 생기는 대로 단계적으로 복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주석기자 jo
  • 현대전자 반도체부문 사장 朴相浩 IBM부사장 영입

    현대전자는 13일 LG반도체 경영권 인수에 따른 반도체부문의 조기 경영정상화 및 경쟁력 제고를 위해 미국 IBM 본사 부사장인 박상호(朴相浩·52)씨를반도체 부문 사장으로 영입하는 등 반도체 부문의 임원인사를 단행했다.김영환(金榮煥)사장은 반도체와 내년초 분리되는 산업전자 부문(통신,모니터,LCD등)을 총괄한다. 영입된 박사장은 지난 16년동안 미국 휴렛팩커드사에서 구매부문 기술담당이사 및 아시아·태평양 지역 마케팅 담당 이사를 역임했다.95년부터 IBM 구매부문 기술담당 부사장으로 일해온 세계적인 반도체영업전문가이다. 노주석기자
  • 현대전자, LG반도체 경영권 확보

    현대전자가 8일 LG반도체 주식 9,122만주(지분율 약 60%)를 인수,LG반도체의 경영권을 확보했다. 현대전자는 지난 5월20일 LG측과 체결한 LG반도체 주식양수도 계약에 따라양수도대금 가운데 이미 지불한 1조5,600억원 이외의 잔금 1조원을 약속어음으로 주고 LG반도체 주식을 양도받았다. 통합반도체 법인은 10월쯤 출범하며 그때까지 LG반도체는 현대전자의 자회사로 운영된다. 현대전자 김영환(金榮煥)사장과 LG반도체 선병돈(宣炳敦)부사장이 LG반도체 공동 대표이사를 맡는다. 통합법인이 출범할 경우 세계 D램반도체의 시장점유율 1위 업체가 된다.세계적 반도체 전망기관인 데이터퀘스트는 통합법인의 시장점유율을 19.5%로전망,삼성전자(18.5%)를 제치고 1위로 부상한다고 내다봤다.IDC도 통합법인20.8%,삼성전자 20.1%로 예측했다. 양사의 통합에 따라 신제품 개발 및 출시 시기가 6∼12개월정도 앞당겨지고 생산설비의 중복투자와 연구개발 및 판매관리비 절감효과를 가져와 앞으로5년간 약 60억달러의 비용이 절감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현대전자 김사장은 이날 LG반도체 청주,구미공장을 잇따라 방문하고직원들을 격려했다. 노주석기자 joo@
  • 국민회의 청년조직 ‘聯靑’ 대변신

    국민회의 청년조직인 ‘새시대 새정치 연합청년회(연청)’가 20일 오후 서울 평창동 올림피아호텔에서 전국대표자대회를 갖고 변신을 선언했다.지난 80년 김홍일(金弘一)의원의 주도로 결성된 이후 20년간의 민주화 역정과 정권교체의 전위 역할에 ‘마침표’를 찍고 개혁과 통일,지역 봉사를 새로운 기치로 내걸었다. 대회에는 김영배(金令培)총재권한대행 등 당 지도부와 김정길(金正吉)청와대정무수석 등 1,500여명이 참석했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축하메시지를통해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묵묵히 민주화에 헌신한 연청의 공로는 길이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격려했다.김 대통령은 “세계가 국민투표에 의한 정권교체,붕괴 직전의 경제 구출,자신 있는 대북 포용정책의 추진 등 세 가지 점에서 한국을 크게 평가하고 있다”면서 “이럴 때일수록 개혁의 고삐를당기고 초발심으로 돌아가 다시 새 출발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행은 축사에서 “현 정권의 정치개혁이 야당 등 반개혁 세력의 방해와 몇 사람의 하찮은 실수로 몰리고 있다”며 한나라당의 당리당략적 처사를비난했다.이날 12대 중앙회장으로 뽑힌 김영환(金榮煥)의원은 취임사에서 “이제 민주화의 한고비를 넘었다”면서 “개혁을 완수하고 통일을 준비하며지역주민과 함께하는 연청이 되자”고 역설했다.명예회장인 김홍일의원과 역대 회장단의 격려사도 이어졌다. 회원들은 ▲지역주민과 함께 하는 연청 구현 ▲국민의 정부가 추진중인 총체적 개혁운동의 선도적 역할 ▲통일운동의 선봉 ▲16대 총선 승리와 개혁의 성공 등 4개항의 결의문을 채택했다.그동안 연청회장은 문희상(文喜相)(초대·6대)전 의원,정균환(鄭均桓 2대) 김충조(金忠兆 3·4대)의원,최봉구(崔鳳九 5대)전 의원,김옥두(金玉斗 7·8대) 남궁진(南宮鎭 9대) 정세균(丁世均10·11대)의원 등이 맡았다. 박찬구기자 ckpark@
  • 국민의 정부 국정진단(6)-여야 새 패러다임 구축을

    ‘고가의류 로비의혹’사건이 한창이던 지난달 31일 국민회의 확대간부회의장.이만섭(李萬燮)상임고문과 김영환(金榮煥)정세분석실장,박범진(朴範珍)홍보위원장 등이 “민심의 흐름이 심각하다”며 “미온적으로 대처해선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김영배(金令培)총재권한대행도 “옳은 지적”이라고공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당 총재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마녀사냥’언급 직후 분위기가 돌변했다.지난 2일 당8역회의에서 김대행은 당의 일치단결을 강조하며 일사불란한 수습쪽에 무게를 실었다.이를 두고 당내 일각에서는 “지도부가 눈치보기에 급급하다”는 비판이 일었다.정치개혁시민연대 김석수(金石洙)사무처장은 8일 “1인 또는 소수가 좌우하는 정당구조가 문제”라며 “당내 권위주의는 자칫 독선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당내 민주화도 권력 분산이 전제돼야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재선거 결과가 윤곽을 드러낸 지난 3일 저녁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후보의 서울 송파갑 선대본부 사무실에는 환영인파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소속의원만 줄잡아 40여명이 몰렸다. 같은 시각 안상수(安相洙)후보의 인천 계양·강화갑 선대본부 사무실은 ‘가슴졸인’선거과정에 비해 의외로 썰렁했다.기껏 근처 지역구 의원 4∼5명만이 자리를 지켰다.한 주요당직자는 송파갑쪽에 모인 의원들에게 ‘SOS’를 보내다 여의치 않자 본인마저 송파갑으로 ‘달려갔다’는 후문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내년 총선 공천을 앞두고 벌써 신경전에 들어간 모양”이라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소속 의원들이 이총재의 정치적 입지가 총선공천권 행사로까지 이어질 것을 감안,미리 ‘눈도장 찍기’에 나섰다는 것이다.이 관계자는 “공천제도가 민주화되지 않는다면 구시대적 줄서기 행태가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하향식 의사결정체계의 폐단을 꼬집었다. 여든 야든 21세기 정당정치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일컫는 당내 민주화나탈(脫)권위주의,권력분산 등에 둔감하다는 것을 입증한 사례들이다. 더욱 심각한 현상은 여당은 여당답게,야당은 야당답게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국회의장실의 한 관계자는 “국민회의는 과거 야당의 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한나라당은 옛 야당의 행태를 답습하고 있어정치권의 산술적인 평균 수준은 오히려 내려갔다”고 평했다.주요 사안마다야당을 끌어안지 못하고 내치는 여당이나,사사건건 정부·여당의 발목을 잡는 야당의 모습에서 우리 정치권의 현주소를 읽을 수 있다는 푸념이다. ‘고가의류 로비의혹’사건도 예외가 아니다.국민회의는 사태수습의 적기(適期)를 놓친채 계속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한나라당은 ‘호기(好機)를 놓칠세라’ 실체적 진실과는 상관없이 정치공세에 치중했다는 비판이다. 이는 여야의 정치력 부재와 직결된다.여야가 명백한 원칙이나 ‘게임의 룰’에 입각한 금도(襟度)는 상실한 채 당리당략에만 몰두하는 전근대적인 행태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한나라당 김문수(金文洙)의원은 “상대에게 이기면 모든 것을 갖고 지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제로섬’의 정치풍토가 문제”라며 “제도적으로 철저한 삼권분립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국민회의 김근태(金槿泰)부총재는“여야가 정책개발을 통한 선의의 대결로 나아가야 한다”면 “정책이 당과의정활동의 중심으로 자리잡으면 소모적인 정쟁(政爭)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찬구기자 ckpark@
  • [제2공화국과 張勉]-실패한 내각책임제(24)

    “4·19의거의 영웅인 학생과 전국민은 단순히 정권교체만을 요구하지 않고…정치 자유의 전면적 회복과 사회복지 향상을 위한 정치의 전면적 개혁을절실히 요구하고 있다.…권력 집중을 방지하고 국정 전반에 걸쳐 언제든지국민에게 책임지며 국민의 진정한 다수 의사를 현실적으로 국정에 반영할 수 있는 내각책임제로 헌법을 개정하는 수밖에 없다.”4월혁명 후 구성된 ‘국회 내각책임제 개헌안기초위원회’(위원장 鄭憲柱)는 1960년 5월11일 국회에 내각책임제 개헌안을 제출하면서 개헌의 필요성을이처럼 밝혔다. 당시 개헌을 하려면 재적 222명의 3분의 1(74명) 이상이 동의해 상정한 다음 3분의 2(148명)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했다.‘개헌위원회’는 즉시 서명받기에 들어갔다.시작한 지 1시간 만에 175명이 서명해 통과에 필요한 정족수를 훌쩍 넘어섰다.개헌안 통과가 기정사실로 굳어진 것이다. 게다가 이날 개헌안에 대한 찬반투표를 기명(記名)으로 하도록 국회법을 고침으로써 혹시 발생할지도 모르는 조직적인 반란표를 사전에 차단했다. 공고기간을거친 내각책임제 개헌안은 6월15일 오전 국회 표결에 올라 참가의원 211명 가운데 찬성 208표,반대 3표로 통과됐다.허정(許政)과도정부도오후에 긴급 국무회의를 열어 이날자로 새 헌법을 공포했다. 내각책임제 헌법이 확정되자 장면(張勉)민주당 대표최고위원은 “개헌이 독재를 배격하고 책임정치를 구현하는 데 목적이 있지만 앞으로 이 제도를 운영하는 데도 철저한 민주정신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승만(李承晩)정권이 무너지자 여론은 대통령중심제를 폐지하고 내각책임제를 시행하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귀결됐다.“권력은 권력을 낳고 권력은 권력에 집중돼 드디어 12년에 걸친 1인독재가 출현했다”는 ‘개헌 제안이유서’의 한 구절처럼 이승만독재가 대통령책임제라는 제도적 결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내각책임제 개헌에는 자유당과 민주당 구파가 적극 나섰다.자유당은 내각책임제가 되어야 그나마 살아남을 구석이 생긴다는 생각이었다.조병옥(趙炳玉)을 잃어 뚜렷한 대통령 후보를 갖지 못한 구파도 대통령중심제를 원하지 않았다. 민주당 신파는 달랐다.국민이 뽑은 부통령을 지냈고 당 대표최고위원이기도한 장면이라는 걸출한 대통령감이 있었다.대통령중심제를 고수하자는 욕심을 낼 만했다. 따라서 신파는 ‘4월혁명의 구호가 정·부통령 부정선거를 다시 하라는 것이니 재선거를 해 대통령부터 뽑자’고 요구했다.4월혁명때 타도의 대상으로지목된 자유당이 의석의 3분의 2 이상을 독점한 현행 국회에서 개헌을 다룰수는 없다는 논리도 내세웠다. 민주당 신파의 핵심인 주요한(朱耀翰)의원은 헌법 기능을 정지시키고 비상입법위원회를 구성,혁명 주체세력인 학생과 변호사,공명선거위원회,교수단,민주당 등이 주축이 돼 헌정질서를 개편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그러나 국민 대다수의 요구는 내각책임제 개헌을 서두르라는 것이었고 정치권에서는 자유당과 민주당 구파가 뜻을 맞춰 줄기차게 밀어붙였다. 사태가 이쯤 되자 장면 민주당 대표는 4월28일 자택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나의 지상목표이며 철칙이 독재를 막기 위한 내각책임제 개헌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해둔다”고 밝혔다.이어 “개헌을 현 국회가 하느냐,새 국회가 하느냐에 관해서는 제론(諸論)이 있으나 나로서는 현 국회가 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가장 좋은 방안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장면이 ‘현 국회에서의 내각책임제 개헌’ 지지를 밝힘으로써 개헌 추진은급류를 탔다.과정상 다소의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4·19에서 두달이 채 안된6월15일 내각책임제 헌법은 발효됐다.또 이 헌법에 따라 7·29총선을 치러제2공화국이 탄생한다. 장면정부가 내각제를 제대로 운용(運用)하려고 애쓴 흔적은 역력하다.먼저내각 운영의 핵심인 국무회의를 오전,오후 매일 두 차례씩 열었다.당일 올라온 안건을 다음날로 미루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운 것이다.따라서 장면총리는 “새벽 2시 전에 취침해본 일이 별로 없을 정도로“(회고록에서)일에 몰두했고,다른 각료들도 새벽에 나와 밤 늦게 들어가는 일상을 반복했다. 장면은 국회에도 거의 매일 드나들었다.‘오전에는 민의원,오후에는 참의원’하는 식이었다.송원영(宋元英) 당시 공보비서관은 “사소한 것까지 총리에게 물어대는 것은 난처하기도 했다.더구나 같은 안건이 민의원에서 논의될때와 2∼3일 후 참의원에서 논의될 때는 완전히 다른 경우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장 총리와 내각의 노력은 그러나 쉽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내각책임제 하에서의 필수적 요소인 ‘의회에서의 안정세력’이 뒷받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민주당 구파가 권력다툼에 패하자 분당(分黨)해 사사건건 시비를 벌인 것은 물론이고,신파 내에서도 소장파는 야당 행세를 하기 일쑤였다. 그 결과 장면정부는 8개월23일간 집권하는 동안 무려 세 차례나 개각을 해야 했다.하나의 내각이 존립한 기간이 평균적으로 두 달을 조금 넘을 뿐이었으니 일관된 행정을 펴기 어려웠음은 당연했다. 윤보선(尹潽善)대통령의 월권도 정국안정에 걸림돌이었다.윤보선은 ‘상징적인 국가원수’라는 내각책임제하 대통령의 역할에 만족하지 않고 시시때때로 장면정부에 간섭했다.그리고 그 간섭의 바탕에는 ‘구파의 영수’라는 파당적 시각이 깔려 있었다. 장면을 비롯한 신파 수뇌부의 지도력이 부족한 점도 내각책임제가 제기능을발휘하지 못한 책임의 하나로 꼽혀야 할 것이다. 제2공화국의 내각책임제는 어쩌면 처음부터 잘못된 선택이었을는지도 모른다.1960년대 초 한국 사회라는 역사적 토대에서 어떤 정부제도가 알맞는지를깊이 있게 따지기에 앞서 국민은 이승만독재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내각책임제를 열망한 면이 없지 않다. 더욱이 자유당의 ‘생존 욕구’와 민주당 구파의 ‘대통령감 부재’라는 정파적 이해가 결탁해 서둘러 추진된 점은 역사의 교훈으로 삼을 만하다. 이용원기자 ywyi@-내각제 운영과 폐해 민·참의원 역할구분 없어 비효율적 제2공화국은 우리 역사에서 유일하게 내각책임제를 채택한 정부다.비록 8개월여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내각책임제를 실제로 운용했기 때문에 그 제도가 갖는 장·단점을 두루 살펴볼 기회를 제공했다.먼저 제도적인 특성부터살펴본다. 내각책임제에서는 대통령이 상징적인 존재로서 국가원수 지위만을 부여받는다.구체적으로 제2공화국의 대통령은 국무총리를 지명하는 권리를 비롯해 선전포고 및 외교사절의 신임장 접수,명목상의 국군통수권,사면권 및 계엄선포,훈장·영예의 수여 등을 권한으로 가졌다. 행정권은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한 국무원(國務院) 곧 내각이 맡았다.행정수반인 총리는 국무위원을 임면하고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국무원령(지금의 대통령령)을 선포할 수 있었다.국무원은 총리를 포함해 15명 이내로 구성하되과반수를 국회의원으로 채우도록 규정했다. 아울러 제2공화국에서는 입법부 기능도 크게 강화돼 민의원과 참의원의 양원제로 구성됐다.무게중심은 민의원에 두었다.민의원은 총리선출권을 보유해대통령이 지명한 총리후보를 거부할 수 있었다.대통령의 지명이 두 차례 거부되면 민의원 스스로가 총리를 선출하도록 했다.또 국무원을 불신임할 수있었는데 이에 맞서 국무원도 민의원해산권을 가졌다. 상원격인 참의원은 그 정원이 민의원의 4분의 1 이내로 제한됐다.민의원에서 통과시킨 법률을 재심해 수정할 수 있었다.다만 참의원에서 고친 법안의 원안을,민의원이 재표결에서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으로 가결하면 그대로 확정됐다. 이밖에 제2공화국 특유의 제도로는 차관을 정무차관·사무차관으로 나눈 것을 들 수 있다.정무차관은 내각과 의회를 원활하게 연계하는 것이 주임무였으며 정책수립과 기획에 간여했다.장관대신 국무회의에도 참석했다. 장면(張勉)정부는 정무차관을 주로 의원으로 임명했다.조각(組閣)때는 장면총리가 장관의 추천을 거치지 않고 재선 이상의 의원 중에서 직접 뽑았다.법무의 김영환(金榮煥),국방의 박병배(朴炳培) 등 두 정무차관이 무소속이었다. ‘정무차관이 사무차관과 알력만 빚는다’는 이유로 신민당(민주당 구파)의서범석(徐範錫)의원이 1961년 1월 폐지법률안을 낼 만큼 부작용도 있었던 듯하다.정무차관으로 시작해 장관이 된 이로는 윤택중(尹宅重)문교와 태완선(太完善)부흥이 있다.사무차관은 지금의 차관과 비슷한 기능을 했다. 내각책임제·양원제·정무차관제 등 제2공화국 특유의 제도에 대해 당시 현장에서 활동한 인사들은 어떻게 평가할까. 고려대 법학과교수 출신인 김영구(金永求)내무부 정무차관(이하 당시 직책)은 “60년대 초 한국 사회는 이같은 제도를 수용할 여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본다.파벌이 많은 데다 이해관계에 따라 이슈별로도 의견이 엇갈리는 정치 수준에서는 내각책임제를 제대로 운영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장면정부 지도부의 역량이 부족했다고도 지적했다. 김 차관은 의회가 민의원·참의원으로 나뉘었지만 똑같은 법률을 이중으로다루었을 뿐 참의원 고유의 업무는 따로 없었다고 밝혔다.국회의원 수가 너무 많아지고,원로원격인 참의원이 권리주장만 하려 한 점도 양원제의 폐단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김업(金業)국방부 사무차관은 “정무차관이란 자리가 국회만 들락거릴뿐이지 부내에서는 결재 한번 하는 일이 없었다”고 기억하면서 “일본제도를 모방한 것인데 우리 실정에는 필요없었다”고 강조했다. 이용원기자
  • 이웃과 함께-치매노인 돌보며 신부전증 투병 김영환목사

    나눔의 삶은 아름답다.우리 주변에는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불우이웃들이 많다.하지만 남을 돕는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스스로를 지키는 것도버거울 만큼 사회 전반이 각박해졌기 때문이다.이웃 사랑은 모든 공동체 구성원에게 당연한 덕목이다.처음에 마음먹기가 어려울 뿐이다.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의 소외된 삶을 소개한다.이들에게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의 참모습을 보여주자. “제게 남겨진 마지막 소명이라고 생각하지만 이젠 너무 힘에 부칩니다” 경기도 양평군에서 양로원 ‘성산의 집’을 운영하는 김영환(金瑛煥·53)목사.양로원에는 치매에 걸린 노인만 7명이 살고 있다. 김목사는 치매노인을 돌보는 일을 4년째 하고 있다.부모를 내다 버리는 ‘현대판 고려장’이 성행한다는 신문기사를 읽은 뒤 노인들을 돌보기로 결심했다.방황하며 부모님의 속을 썩였던 젊은 시절의 불효를 반성한다는 뜻도있었다.30평 남짓한 퀀셋 건물로 지은 양로원의 건축비는 부인 신경순(申京順·53)씨와 함께 노동판에서 일을 해서 벌었다. 김목사는자신도 만성신부전증과 심장병을 앓고 있는 환자다.병마가 덮친것은 양로원이 자리를 잡아갈 무렵인 96년 11월.만성신부전증이 먼저 찾아왔다.병과 싸우며 노인들을 돌본 지도 2년반이나 된다.1주일에 세번씩 병원에서 신장 투석을 한다.양로원으로 들어오던 후원금도 끊긴 마당에 치료비 대기는 너무 힘들었다.지금은 생활보호대상자로 분류돼 근근이 치료를 받고 있다. 심장병은 최근에야 발견했다.신장을 기증하겠다는 고마운 사람이 나타나 이식을 받기 위해 검사를 받다가 심장판막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김목사는 한국심장재단의 도움으로 오는 6일 인공판막으로 교체하는 수술을 받는다. 그렇지만 몸상태가 좋아지는 1개월 뒤쯤 받아야 하는 신장이식 수술 비용이 없다.수술비는 1,500여만원.300만원은 한국신장협회에서 지원해 주었다.나머지는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막막할 뿐이다. “하루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노인들을 돌볼 수 있을 텐데 답답합니다”.30일 한양대병원에서 만난 김목사는 새카만 얼굴에 몹시 초췌한 모습이었다.건강할 때는 몸무게가 94㎏이나 나갈 정도로 건장했지만 지금 25㎏이나빠졌다. 김목사는 병상에 누워서도 치매노인들 걱정 뿐이었다.나이도 모르는 할머니,거동을 못해 종일 누워 있는 할머니,뇌졸중까지 겹친 할머니 등 혼자서는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중증 환자들인 노인들을 부인의 힘만으로는 돌보기 어렵다. 하루에도 몇번씩 대·소변을 치우고, 빨래하고,목욕시키고,식사준비를 하다 보면 잠시도 앉아 있을 틈이 없다.부인과 함께 수발을 들 때도 하루 해가짧을 정도로 바빴다.게다가 문을 부수며 발작을 하기도 하고 막무가내로 밖으로 달아나는 노인들도 있다. 김목사는 병과 싸우면서도 이런 노인들을 따뜻하고 친절하게 보살펴왔다.그는 하루빨리 건강을 되찾아 노인들 곁으로 돌아가게 해달라며 두손 모아 기도했다.(0338)74-4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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