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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찬구의 시시콜콜] 구중궁궐 심처의 세월호 인식

    [박찬구의 시시콜콜] 구중궁궐 심처의 세월호 인식

    “청와대는 구중궁궐의 심처 같은 곳이다.” 1997년 대선 직후 상도동계 정치인이 새로 정권을 잡은 동교동계 인사에게 조언했다. 겹겹이 싸인 궁궐 깊은 곳, 게다가 인(人)의 장막까지, 대통령이 민심과 동떨어져 독선과 오만으로 흐르기 쉽다는 얘기였다. 김영삼 정부의 부침을 지켜본 그는 김대중 정부의 성공을 위해 옛 민주화 동지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은 그 한마디뿐이었다고 당시 기자에게 전했다. 세월호 특별법과 관련한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16일 국무회의 발언에서 상도동계 인사의 충고를 떠올렸다. 오랜 침묵을 깬 박 대통령의 발언은 심지어 여당 내부에서도 성토와 비판이 나올 정도로 역풍을 맞고 있다. 민심을 오독·곡해하고 사태의 본질을 흐리며 마땅히 져야 할 국가의 책임을 외면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삼권분립 논란만 해도 그렇다. 수사권·기소권 부여는 삼권분립을 흔드는 일이라고 하면서도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입법부의 협상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함으로써 스스로 삼권분립을 해치는 모순을 보였다. 민주주의 가치나 헌법 정신과도 상충한다. ‘순수 유가족’, ‘외부세력의 정치적 이용’이라는 언급은 불순한 유가족·시민들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세월호 참사를 악용하고 있다는 식의 불신과 분열, 편 가르기 프레임을 내비친다. 진상 규명을 호소하며 단식을 마다 않는 피해자와 시민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이다. 참사의 자초지종을 밝히고 구조·수습 과정에서 드러난 국가의 책임을 가리자는 일이 그렇게도 어렵고 불경스러운 일인가. 대선 후보 시절 박 대통령은 서울 청계천 6가의 전태일 열사 동상을 방문한 적이 있다. 내 편, 네 편 가리지 않고 국민대통합을 실천하겠다는 다짐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이번 국무회의 발언을 정점으로 생각과 시선을 달리하는 민심을 퇴로 없는 천길 낭떠러지에 세우는 결과를 초래했다. 소통과 포용을 기대하던 민심의 낭패감과 패배감, 그리고 권력으로부터의 소외감, 어쩌면 그것이 가장 무서운 사회 퇴보의 전조일지 모른다. 시청앞 서울광장에는 5개월이 넘도록 세월호 희생자 합동 분향소가 차려져 있다. 노란 리본을 새기고 ‘마지막 한 분까지’라고 적은 현수막도 그대로다. 가끔 조문객도 눈에 띈다. 사통팔달의 광장에서 물처럼 흐르는 게 민심이다. 인위적으로 막으면 언젠가 둑은 무너지게 마련이다. 너무 늦은 때란 없다. 권력을 가진 자가 먼저 민심의 바닥에서 대화와 공감의 정치력을 복원해야 한다. 왕조시대나 지금이나, 민심이 곧 천심이기 때문이다. ckpark@seoul.co.kr
  • “제대로 된 시장경제 경험도 못한 한국인데 나쁜 건 다 신자유주의 탓?”

    “제대로 된 시장경제 경험도 못한 한국인데 나쁜 건 다 신자유주의 탓?”

    “한국은 선진국과 외적으론 닮았을지 모르지만 과정은 다릅니다. 미국과 유럽은 신자유주의를 통해 복지와 정부 역할의 축소를 가져왔지만 우리는 애초 복지가 존재하지 않았죠. 또 (그들은) 대공황 이후 정부 개입을 확대하는 케인스주의가 득세하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로 전환했지만 우리가 시장경제를 맛본 건 김영삼 정부 때인 1995년 이후입니다. 나쁜 것을 모두 신자유주의 탓으로 돌리는 일부 진보좌파의 주장은 서구에서 수입된 논쟁으로 옳은 대안을 마련할 수 없어요.” 장하성(61)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손사래부터 쳤다. 20여년간의 경제민주화운동 경험과 그동안 쌓아온 정치활동을 바탕으로 첫 저서인 ‘한국 자본주의’(헤이북스)를 오는 25일 출간하지만, 시기가 묘하게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의 ‘21세기 자본’ 한국어판 발간과 겹친 탓이다. 그는 “오랜 기간 사귀어온 지인들이 마치 내가 피케티를 크게 의식하는 것처럼 이야기해 화를 냈다”며 “(내게) ‘21세기 자본’의 서평을 구하진 말아달라”고 운을 뗐다. 4년 전 구상해 3년간 집필한 장 교수의 책은 1000페이지 넘는 원고를 200페이지나 줄인 것이다. 하지만 장 교수는 분명 자신의 저서에 피케티의 ‘자본세’ 도입 논쟁을 다뤘다. 소득분배에 실패한 한국같은 신흥국에서 피케티의 분석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미국과 달리 자본이 거의 축적되지 않아 지난 30여년간 예금, 채권 등의 자본수익률이 오히려 경제성장률을 밑돌았다는 실증자료도 내밀었다. “피케티의 분석 틀과는 정반대 결과죠. 근로소득보다 자본소득이 높아 양극화가 심해진다는 피케티 이론은 고도로 자본주의가 발달한 선진국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기업과 노동자가 몫을 나눌 때 기업 몫이 점점 커지는 1차 소득분배의 불평등조차 개선되지 않고 있어요. 자본과 관련된 2차 소득분배와는 다르죠.” 예컨대 1990년 국민총소득(GNI)에서 가계소득과 기업소득의 비중은 각각 71.5%와 16.1%였으나 2012년 62.3%와 23.3%로 기업 몫이 오히려 늘었다. 그래서 장 교수는 “기업 유보금에 적극 과세(초과내부보유세)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자유주의계열 우파 학자도 아닌 진보 경제학자의 피케티 비판은 다소 낯설었다. 장 교수가 누군가. ‘소액주주운동의 대부’ ‘재벌 저격수’로 불리며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의원의 싱크탱크인 ‘내일’에 참여했던 진보진영의 간판이다. “따지고 보면 (피케티와) 큰 차이는 없어요. 피케티는 자신의 책에서 ‘자본세’를 주장하면서 동시에 비현실적이라고 고백했죠. 저도 ‘누진소득세’에는 찬성합니다. 국내에선 수개월 전부터 피케티의 이론을 놓고 성장이니 분배니 계속 떠드는데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죠.” 예컨대 장 교수가 바라보는 한국경제는 극도로 불공정한 시장 경쟁구조, 재벌의 과도한 경제력 집중, 그리고 비정규직과 자영업 노동자 비중이 대단히 높은 불안정한 고용구조 등 선진국에는 없는 문제들을 떠안고 있다. 그래서 잘못된 진단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자유주의’라는 용어 대신 ‘시장 근본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아울러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 확대라는 일부 좌파의 주장을 ‘박정희 시대의 향수’로 치부하고, 재벌과 사회의 대타협론은 불가능하다고 규정짓는다. 공교롭게도 사촌동생인 장하준 캠브리지대 교수의 이야기를 반박한 것들이다. 그는 또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를 놓고 인수과정의 자격논란은 있을지언정, 국부유출론의 근거는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8년간 외환은행 운영이 고위험·고수익 투자이지 단기간의 ‘먹튀’를 노린 투기는 아니었습니다. 론스타에 앞서 외환은행에 투자한 독일 코메르츠방크는 5년간 경영했으나 반전시키지 못하고 재매각했죠. 중국 상하이차도 쌍용차를 인수했다가 손실을 보고 떠났는데 돈을 번 외국인 투자자는 나쁘고 돈을 잃은 외국인 투자자는 좋은 자본인가요?” 외환은행 노조의 하나은행 합병반대도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 때문이라는 설명까지, 그가 주장하는 ‘불편한 진실’이 수많은 적을 키울 것이란 생각이 스쳤다. “파편적이 아닌 새로운 논쟁이 일어나길 원합니다. 우리는 객관화된 논쟁이 필요한데, 오로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혹은 이념에 함몰된 비판만 늘어놓고 있어요.” 장 교수는 “현재로선 자본주의 체제의 대안이 없는 만큼 고쳐서 더 낫게 만들어야 한다”며 “정의로운 자본주의 실현을 위해 정치의 역할이 중요하고 국민들은 공약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기억상실투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인사]

    ■산업통상자원부 ◇실장급△기획조정실장 김준동△산업정책실장 박청원△에너지자원실장 정양호<승진>△산업기반실장 황규연◇국장급△투자정책관 김영삼△통상정책국장 김창규△통상협력국장 이상진 ■산림청 ◇과장급△기획재정담당관 김영철△산사태방지과장 조화택△산림복지시설사업단 기획과장 이용권 ■아주경제 ◇부국장△종합편집부장 이철호
  • 더나은세상 박지현 실장, 미국 국무부 IVLP 한국 대표로 참가

    더나은세상 박지현 실장, 미국 국무부 IVLP 한국 대표로 참가

    사단법인 더나은세상 박지현(국제협력단ㆍ사진) 실장이 미국 국무부의 ‘세계 차세대 지도자 프로그램(IVLPㆍInternational Visitors Leadership program)에 한국 대표로 공식 초청돼 참가한다. IVLP는 미국 국무부가 지난 70여 년 간 각국의 차세대 리더를 선정해 정치ㆍ경제ㆍ사회ㆍ교육ㆍ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이해를 증진하고 전문성을 교류하며 발전과 협력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운영하는 프로그램(MRPㆍMulti-Regional Program)이다. 이에 따라 박 실장은 이달 14일부터 3주간 미국 워싱턴DC, 뉴욕 등을 방문해 ‘여성 지도자의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과 활성화’ 분야에서 24개국 대표들과 함께 정부 및 시민단체 등 주요기관 방문과 전문가 대담 등의 일정을 소화하게 된다. 이 프로그램의 참가자 선정은 각국 소재 미국 대사관이 추천하는 대상 중에 미 국무부가 최종 선정해 이뤄진다. 우리나라에선 김대중(1965년), 김영삼(1964년) 등 두 전직 대통령이 초청된 바 있고, 호주 첫 여성총리로 알려진 줄리아 길라드(2006년), 프랑스 전 대통령 사르코지(1985년) 등 많은 세계적 리더들이 이 프로그램을 거쳐 갔다. 주한 미국대사관은 박지현 실장이 그간 양국 간 민간 국제교류협력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보였고 특히 청소년교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고 판단해 미국 국무부에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실장은 “추천 대상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최종 선발이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기회가 주어져서 감사한 마음과 함께 큰 책임감을 느낀다”며, “3주간 각국의 차세대 리더들과 교류하며 많이 경험하고 배워서 국제교류, 여성 리더십 개발, 비영리단체 역량 개발 등의 분야에 더욱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박 실장은 (사)더나은세상에서 한ㆍ미 청소년교류 사업, 국제 워크캠프 프로그램, 해외봉사를 통한 청소년 글로벌교육 등을 담당하고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홍준표 노무현 참배 후 “훌륭한 대통령이었다” 과거 인연도 털어놔

    홍준표 노무현 참배 후 “훌륭한 대통령이었다” 과거 인연도 털어놔

    홍준표 노무현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2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을 찾아 노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했다. 6·4 지방선거에서 맞붙었던 김경수 전 노무현 재단 봉하사업본부장의 안내를 받은 홍준표 지사는 분향소에서 헌화하고 노 전 대통령이 잠들어 있는 너럭바위 추모대에서 묵념했다. 홍준표 지사는 방명록에 “편안하게 쉬십시요”라고 짤막하게 적었다. 홍준표 지사는 참배 뒤 묘소 인근의 노 전 대통령 사저를 방문해 권양숙 여사를 만났다. 홍준표 지사는 “추석을 맞아 경남 출신 대통령 묘소와 부인 권양숙 여사께 명절 인사를 드리러 왔다”고 소감을 밝혔다. 아울러 홍준표 지사는 봉하마을 생태공원 조성 등에 필요한 예산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고 덧붙였다. 홍준표 지사는 사저에 들어가기에 앞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는 반대 입장에 있어서 달랐지만 훌륭한 대통령이었다”고 덕담했다. 새누리당 소속인 홍준표 지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홍준표 지사는 한나라당 원내대표 시절이던 2008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 생가 옆에 건립한 사저를 아방궁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홍준표 지사는 “당시 잘못된 보고를 믿고 그랬다. 미안한 마음이 없어지면 묘소를 한번 방문하겠다고 약속했었다”고 말했다. 홍준표 지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과거 인연도 털어놨는데 “1996년 1월26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권유로 신한국당에 들어가기로 돼 있었는데 그 전날 밤 노 전 대통령과 제정구·이철 전 의원, 유인태 의원 등 꼬마 민주당 스타 9명이 우리 집으로 와 민주당에 입당할 것을 새벽 2시까지 4시간 동안 설득했다”고 정치 입문 당시를 소개했다. 홍준표 지사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 참배 소식은 SNS 상에서 화제를 모으며 ‘홍준표 노무현’, ‘홍준표 노무현 묘소 참배’, ‘홍준표 노무현 훌륭한 대통령’ 등의 연관 검색어를 낳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동철의 시시콜콜] ‘명량’과 이념 지키기

    [서동철의 시시콜콜] ‘명량’과 이념 지키기

    ‘명량’을 볼 만한 사람은 대충 다 본 탓인지 며칠 전 찾은 극장은 한산하기만 했다. 머리 아프게 비평적 시선만 동원하지 않으면 즐겁게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영화였다. 개인적으로 임진왜란의 와중에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는 글귀를 등장시킨 대목이 흥미로웠다. 배우 김명곤이 연기한 왜장(倭長) 도도 다카도라가 이 글귀를 기함(旗艦)의 지휘대에 세우는 장면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가장 즐겼던 휘호가 ‘대도무문’이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이나 극중의 도도나 ‘사나이 가는 길 거칠 것 없어라’ 정도로 이 글귀를 이해했던 것 같다. 그런 뜻으로 써도 아주 안 될 것은 없겠지만, ‘대도무문’은 불교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깨달음을 이르는 데는 정해진 형식이 따로 없다는 뜻을 담고 있다. 장소, 시간, 방법에 관계없이 깨달음은 어떤 조건에서도 이룰 수 있다는 선불교(禪佛敎)의 가르침일 것이다. 물론 극중에서는 ‘우리를 막을 자 누가 있겠느냐’는 왜군의 허세를 상징하는 장면이었으니, 이 글귀를 담은 깃발은 곧 꺾여 버리고 만다. 이 장면을 보면서 영화 속의 픽션이 아니라 진짜 선불교적 의미의 ‘대도무문’을 내걸고 싸우는 군대가 있다면 대단한 것 아닐까 하며 혼자 웃었다. 더구나 영화 속 이순신 장군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의 기함에도 만(卍) 자가 앞뒤로 새겨진 승복 차림의 의승군(義僧軍)이 버티고 있었으니 재미는 더했다. 실제로 의승군은 국난 극복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명량’에 등장하는 것처럼 전라좌수영에는 800명 남짓한 의승수군(義僧水軍)이 배속되어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전국의 사찰이 커다란 피해를 입은 것도 의승군의 존재 때문이었다. 의승군은 병자호란 때도 국방력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남한산성과 북한산성을 쌓고 지킨 것도 승병이었다. 종교의 사회 참여를 이야기하지만, 당시에는 아마도 가장 시급했던 사회 참여가 바로 누란의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해 내는 일이었을 것이다. 조선은 불교 이념의 고려를 뒤엎고 일어난 유교 이념의 나라다. 정권이 바뀌면 구세력의 이념은 새로운 이념 집단으로부터 강력한 견제를 받기 마련이다. 그렇게 탄압받던 조선의 불교는 왜란과 호란의 국가적 위기 극복에 앞장선 결과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입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런 이치가 오늘날이라고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월호 위기 속 나라를 구하고, 자신의 이념도 지키는 방법을 찾고 싶은 정치인이 있다면 양란(兩) 시절의 불교를 벤치마킹해 봐도 좋을 것이다. dcsuh@seoul.co.kr
  • [이도운의 빅! 아이디어] 한·일관계 50년, 70년, 120년을 바라보며

    [이도운의 빅! 아이디어] 한·일관계 50년, 70년, 120년을 바라보며

    1994년 12월 23일 공로명 주일대사가 외무부 장관에 임명됐다. 1995년 초에 공 장관을 별도로 만날 기회가 있었다. “올해가 광복 50년, 수교 30년인데 한·일 간에 특별한 이벤트가 있느냐”고 물었다. 공 장관은 “올해는 명성황후가 시해된 지 10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면서 “과거사를 재정리하는 차원에서 일본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입장을 표시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공 장관의 ‘귀국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추가 취재에 들어갔다. 한·일 간에 나름 깊이 있는 논의가 이뤄진 것 같았다. 사과문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조선의 황후가 일본인에 의해 살해된 것은 매우 불행한 일로 한국민에게 사죄한다’는 선에서 협의가 오고갔다. 사과문 공표는 명성황후 시해일인 10월 8일 이전에 일본의 관계장관이 입장을 표명하거나, 의원 또는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한다고 했다. 또 시해 당시에 조선과 일본 사이에 오간 외교문서 등 관련자료도 일본 측이 공개하는 방안도 검토됐다. 다만 명성황후 시해에 일본 정부가 어느 정도 가담했는가를 밝히는 문제에는 양국 간 이견이 있었다. 나는 3월 1일까지 기다렸다가 취재 내용을 1면 톱으로 썼다. 그 해 10월 일본 정부의 명성황후 시해 사과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8월 15일에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는 일본의 태평양 전쟁 당시 식민지배를 공식적으로 사죄하는 역사적인 담화를 발표했다. 1996년 6월 22일부터 이틀 동안 제주도에서 김영삼 대통령과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 총리 간의 정상회담이 열렸다. 그로부터 일주일 전쯤 정부 고위관계자가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른바 ‘월드컵 조약’이 추진될 것”이라고 귀띔해줬다. 월드컵 조약은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를 계기로 양국관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보자는 취지였는데, 1963년에 체결된 프랑스와 독일 간의 ‘엘리제 조약’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프랑스와 독일은 나폴레옹 정복전쟁 이후 보·불전쟁,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무려 1세기 동안 적대관계를 이어왔다. 그런 과거를 청산하고 미래를 위해 화해, 협력하는 내용의 조약에 합의한 것이다. 파리의 엘리제 궁에서 서명된 이 조약의 핵심은 두 나라 정상과 주요 각료들이 빈번이 만나고 국민, 특히 청소년 간의 교류를 확대하는 내용이었다. 월드컵 조약은 독도와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양국 간의 갈등 때문에 현실화되지 못했다. 그러나 조약에 담으려 했던 정책들은 상당수가 추진됐다. 양국 정상 및 외교·경제·국방장관 간의 정기 회동, 첨단분야에서의 경제교류, 문화협력 강화, 청소년 상호방문 확대 등이 그 주요 내용이었다. 이런 정책들은 결국 1998년 10월 22일 김대중 정부의 역사적인 일본 대중문화 수입개방으로 이어졌고, 더 나아가 2000년대에 일본에서 한류가 꽃을 피우는 중요한 디딤돌이 됐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일본 극우 인사의 발언이나 일부 언론의 보도를 보면 명성황후를 난도질하던 일본 낭인들을 떠올리게 된다. 반면, 일본이 2020년 올림픽을 유치하는 과정에서는 우리 정부가 얼마나 도와줬는가도 의문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한·일 두 나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지금 그런 노력이 멈춰 있다. 1995년으로부터 20년이 지났고, 한·일 양국은 내년에 광복(일본은 종전) 70년, 국교정상화 50년, 명성황후 시해 120년을 맞는다. 아무런 이벤트도 없이 흘려보내는 것은 두 나라 모두의 ‘직무유기’가 아닐까. 엘리제 조약을 체결할 당시 프랑스의 대통령은 샤를 드골, 독일의 총리는 콘라트 아데나워. 둘 다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한 민족주의자이고 애국자였다. 그래도 그들은 두 나라와 유럽, 세계사의 미래를 보며 화해, 협력의 길을 택했고, 프랑스와 독일은 유럽연합의 정치와 경제를 이끌어가는 주역으로 우뚝 섰다. 그에 비하면 한국과 일본의 정치지도자와 민족주의자들은 우물 안 개구리나 마찬가지다. 한국과 일본은 왜 프랑스, 독일만 못한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 [씨줄날줄] 단식/문소영 논설위원

    단식(斷食)은 생명체를 죽음으로 내몰 수 있다는 점에서 극단적인 행동이다. 비록 칼로리가 넘쳐나는 현대에 단식은 다이어트의 하나이자 스트레스 해소책으로 각광받는다고 해도 그렇다. 자살을 금기시한 기독교가 전파되기 전 고대 그리스·로마에서 존엄하게 죽고 싶은 지도급 인사들이 단식하고서 스스로 목숨을 거뒀다. 단식이 정신을 고양한다고 해서 그리스의 피타고라스는 계획적으로 40일 단식을 했고, 소크라테스나 플라톤도 계획적으로 10일 단식을 했다. 종교적 깨달음에도 단식은 활용됐다. 사순절의 근원은 예수가 30세 때 40일 금식기도를 한 데서 나왔다. 석가모니는 6년 고행 과정에서 단식을 했다고 한다. 이슬람력으로 제9월에 진행되는 라마단은 한 달간 해가 있는 동안은 식음을 전폐해야 한다는 점에서 부분적인 단식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선술에서는 신선이 되고자 곡기를 끊는 수행법이 나온다. 곰곰이 생각하면, 곰에서 처녀로 변신한 웅녀도 마늘·쑥을 먹고 곡기를 끊었으니 단식은 ‘상징적’으로 인간이 되는 방법이다. 권위주의 시대에 단식은 민주화 운동의 한 방편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77년 5월 7일 진주교도소에 수감 중 접견 제한에 항의하며 단식투쟁을 했다. 1990년에도 지방자치제의 부활을 요구하며 13일간 단식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가택연금 중이던 1983년 5월 18일부터 6월 9일까지 23일 단식을 했다. 광주민주화운동 3주년을 맞아 시작한 단식에서 가택연금 해제를 요구해 전두환 정권의 양보를 얻어냈다. 종교·문화계로 동조 단식이 확산된 덕분에 끌어낸 양보였다. 당시 언론을 살펴보면 서슬 퍼런 전 정권조차 민심 악화를 우려한 나머지 단식 5일 만에 노심초사하며 그의 단식중단을 위해 뛰어다녔다. 서울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세월호 유가족인 김영오씨가 17일로 35일째 단식 중이다. 그는 오랜 단식으로 기억력이 소실되고 눈이 잘 안 보인다면서도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되기 전에는 죽는 한이 있어도 단식을 계속하겠다고 한다. 일부 야당 정치인, 영화감독과 배우들이 동조 단식을 하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면담으로 유가족의 눈물을 닦아줬다. 피눈물나는 이 단식을 언제쯤이나 끝낼 수 있을까. 1981년 영국 북아일랜드 감옥에서 아일랜드공화군(IRA) 출신 정치범들이 66일간의 단식투쟁 끝에 27살의 보비 샌드를 포함해 10명이 굶어 죽었다. 보비 샌드는 단식은 자살이라며 만류하는 신부에게 “타살”이라고 항변했다. 영국에 마거릿 대처 총리가 집권하던 시절이었다. 청와대와 국회는 대처 정부와는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상지대 김문기 총장 선임에 상지대 총학생회 반발…“사학비리 전력 이사장”

    상지대 김문기 총장 선임에 상지대 총학생회 반발…“사학비리 전력 이사장”

    ‘상지대 김문기’ 상지대 김문기 총장 선임에 총학생회가 반발하고 있다. 상지대 총학생회가 재단 측이 김문기 전 상지학원 이사장을 이 대학 총장으로 선임한데 대해 반발하고 나섰다. 상지대 총학생회는 15일 보도자료를 내고 “사학비리 전과자인 김문기는 김영삼 정부 출범과 동시에 ‘문민정부 사정 1호’로 지목된 인물”이라며 “대학 발전을 저해하는 총장 선임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현 이사회는 민주대학을 꿈꿔온 구성원들의 노력을 비민주적이고 반교육적인 행위로 물거품으로 만들었다”며 “이번 총장 선임에 강력히 반대하며 총장실 점거와 교육부 항의 방문, 탄원서 제출, 1인 시위, 촛불 집회, 수업 거부, 동맹 휴학 등을 진행하겠다”고 덧붙였다. 학교법인 상지학원은 지난 14일 서울 교육문화회관에서 제228회 이사회를 열어 김문기 전 이사장을 총장으로 선출했다. 김문기 전 이사장은 교비 횡령 등 사학비리로 수감돼 지난 1993년 이사장직에서 물러난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광복 69주년, 우리 땅 독도 지킬 수 있을까? (下)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광복 69주년, 우리 땅 독도 지킬 수 있을까? (下)

    -이순신 장군도 통탄할 우리 전력 ‘냉혹한 현실’ 일본이 독도에서 불과 158km 떨어진 오키 제도에 적어도 2개 대대 규모의 전투기 전력을 전진 배치할 수 있는 공항을 건설하고, 섬 곳곳에 독도 탈환을 부르짖는 간판을 설치하고 있으나, 여기에 대항해 하루 속히 추진되어야 할 울릉공항은 소형 여객기 정도만 이착륙할 수 있는 간이 비행장 수준으로 건설된다는 사실은 ‘광복 69주년, 우리 땅 독도 지킬 수 있을까? 상편’에서 살펴보았다. 독도를 지키기 위한 창은 해군이고 방패는 공군이라는 표현을 한 바 있었다. 이번 하편에서는 독도에 제대로 된 비행장이 건설되지 못할 경우, 나아가 독도를 노리고 있는 일본 자위대와 우리 군의 현재 전력이 충돌할 경우 얼마나 끔찍한 결과가 나오는지 다루고자 한다. “우리의 전력은 해상자위대의 30%입니다. 객관적으로 이길 확률은 없습니다. 하지만 전쟁은 무기와 수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막아야 한다면 막아내겠습니다. 우리 해군의 허락 없이 그 누구도 우리 바다를 지나갈 수 없습니다” 지난 2006년 388만의 관객을 동원했던 강우석 감독의 영화 ‘한반도’에서 일본 해상자위대와 대치하고 있던 해군 작전사령관(독고영재 分)이 해상자위대를 막을 수 있겠냐는 대통령(안성기 分)의 물음에 비장한 각오로 던진 대사다. 이 몇 마디의 대사로 인해 국민 여론은 들끓었다. 국민들은 우리 해군이 고작 일본의 30% 수준밖에 되지 않느냐며 분통을 터트렸고, 인터넷에는 양측 해군의 전력을 비교하는 게시물들이 쏟아졌다. 과연 영화 속에서 작전사령관의 대사처럼 우리 해군은 일본 해상자위대의 30% 수준밖에 되지 않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30%보다 더 형편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해군은 2014년 현재 4만 1천명의 병력과 진수되어 있는 함정을 포함해 구축함 12척, 호위함 13척, 초계함 20척, 유도탄고속함 15척, 고속정 55척, 잠수함 14척 등의 전력을 갖추고 있다. 이에 반해 해상자위대는 4만 5,800명의 병력과 항공모함으로 전용할 수 있는 헬기 구축함 3척, 구축함 41척, 호위함 6척, 유도탄고속함 6척, 잠수함 22척 등의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 해군 전력 자위대의 30%도 안돼 양적으로는 대동소이해 보이지만 질적 수준을 따지면 양측의 전력은 하늘과 땅 차이다. 해상자위대에는 6척의 이지스 구축함뿐만 아니라 4~10개의 다목표 동시 교전 능력, 즉 1척의 군함으로 여러 개의 표적과 동시에 교전할 수 있는 5,000톤급 이상의 구축함이 18척이나 있다. 그러나 우리 해군의 한국형 구축함들은 3척의 이지스 구축함을 제외한 나머지 9척은 동시에 2개 이상의 표적과 교전할 수 없어 전투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해역함대에 배치되어 있는 호위함은 최근 전력화가 진행 중인 일부 차기 호위함을 제외한 기존의 울산급 9척과 20척의 포항급 초계함은 현대 수상 전투의 핵심 타격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함대함 미사일 방어용 미사일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방어 수단은 기관포와 지상에서 보병들이 헬기 등에 대항하기 위해 쓰는 휴대용 단거리 지대공 미사일 뿐이다. 현대적인 함대함・함대공・대잠수함 작전이 가능한 대형 전투함 위주로 구성된 일본 해상자위대와 함대함 미사일만 갖추었을 뿐 현대적인 함대공 전투나 대잠수함 작전이 대단히 제한되는 소형 전투함 위주로 구성된 우리 해군 전력을 비교한다는 것은 자동소총과 방패를 들고 방탄조끼까지 입고 있는 강도에 맞서 맨 몸으로 권총만 들고 덤비는 격과 무엇이 다를까? 그러나 양측 해군 전체 전력이 같은 해역에 옹기종기 모여 치열하게 싸울 일은 없기 때문에 전체 해군력을 비교하는 것보다 독도에서 무력 충돌이 발발할 경우 동원되는 양측의 전력을 비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독도 유사시 우리 해군은 초기 대응은 제1함대가, 본격 대응은 기동전단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제7기동전단이 나설 것이며, 해상자위대는 독도 인근을 관할구역으로 삼고 있는 제3호위대군이 동원될 것으로 보인다. 제7기동전단은 이지스 구축함인 세종대왕급 구축함 3척과 한국형 구축함인 충무공 이순신급 6척, 그리고 필요에 따라 독도함이 지원 전력으로 가세할 것이다. 제3호위대군은 2014년 8월 현재 호위대군에 편성된 헬기 구축함인 시라네를 필두로 이지스 구축함인 아타고와 묘코, 범용 구축함인 아키즈키급 1척과 다카나미급 2척, 무라사메급 1척, 아사기리급 1척 등 8척의 전투함을 이끌고 나올 것이다. 이 가운데 시라네는 내년 1월 항공모함형 헬기 구축함인 이즈모함으로 대체될 예정이다. 독도 인근에서 양측 함대가 맞붙었을 경우 각각의 전투함들의 성능을 토대로 양측의 교전 능력을 비교해보면 우리의 7전단은 일본 함대를 향해 96발의 미사일 공격을 가하고 114발의 미사일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일본 제3호위대군은 56발의 미사일 공격을 가하고 우리와 동수의 미사일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우리는 일본의 모든 공격을 막아낼 수 있고, 일본 역시 우리의 모든 공격을 막아낼 수 있기 때문에 양측의 전력은 대등하다. 이렇게 되면 우리 해군이 일본 해상자위대를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전력을 가진 함대가 7전단 하나뿐이지만 일본은 4개나 있다. -전투기 독도 도착도 日 5분 vs 韓 8분 일본이 2개의 호위대군을 동원하거나 우리나라의 해역함대 격인 지방대 함정까지 동원한다면 해군 전력을 놓고 보았을 때 우리 해군 기동함대는 필패한다. 우리 1함대가 가세하더라도 1함대는 소형 호위함과 고속정 위주로 편성된 전력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함대함・함대공 무장을 갖춘 해상자위대에 맞서기 어렵다. 이 상황에서 앞서 언급한 오키 제도에 일본 항공자위대가 전진 배치되면 독도 해전은 해전이 아니라 일방적인 학살의 형태로 전개될 것이다. 항공자위대가 보유한 F-15CJ/DJ 改 전투기는 거듭된 성능 개량을 거쳐 우리 공군의 최신 주력기인 F-15K와 대등 이상의 공중전 성능을 자랑한다. F-16을 기반으로 일본이 독자 개발한 F-2A 지원전투기는 공대함 공격에 특화된 기체로 사거리 180km의 93식 공대함 미사일을 무려 4발이나 탑재한다. 오키 공항에는 이들 전투기가 최대 50대 이상 전개할 수 있는 넓은 여유 공간이 확보되어 있다. 따라서 일본은 마음만 먹으면 독도 상공에 5분 이내에 도달해 1시간 이상 체류할 수 있는 3개 대대 규모의 전투기 세력을 동원할 수 있다. 반면 우리 공군은 독도에서 330km 떨어진 대구공군기지에서 출격한 F-15K 전투기가 독도에 도달하는 시간은 약 8분이다. 이 8분이라는 시간은 연료 소모율을 급격히 높이는 애프터버너(Afterburner)를 이용해야 가능한 시간이며, 이렇게 8분 만에 도착했을 때 F-15K가 독도 상공에서 체공할 수 있는 시간은 30분이 채 되지 않는다. 이보다 소형 전투기인 KF-16이 보조연료탱크를 주렁주렁 달아도 5분 남짓 체공 가능한 것보다는 양호한 수준이지만, 파일럿들은 기지로 돌아갈 연료에 대한 심리적 압박 때문에 독도 상공에서 자위대를 상대로 제대로 전투임무 수행이 불가능해진다. 항공자위대 F-15가 연료 문제로 인해 기동에 제약을 받는 우리 공군 F-15와 F-16을 상대하는 동안 다른 F-15 일부 기체와 F-2 전투기들은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로 원거리에서부터 우리 해군이 해상자위대를 향해 발사한 함대함 미사일을 차례차례 요격해 나갈 것이다. AAM-4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로 무장한 F-15J는 10여대만 동원되더라도 우리 해군이 발사한 대부분의 함대함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어 굳이 해상자위대가 요격에 나서지 않아도 우리 7전단은 일본 3호위대군에게 생채기 하나 낼 수 없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독도 해전 반대로 항공자위대 F-2A 1개 대대가 동원될 경우 해상・항공자위대가 우리 7전단에 쏟아 부을 수 있는 대함 미사일은 약 140여 발에 달한다. 7전단의 대공 방어능력을 30개가량 초과하는 수량이며, 이는 7전단이 가진 전투함들의 대공전투 성능을 최대로 끌어내더라도 7전단 구축함은 척당 평균 3발 이상의 미사일을 맞고 격침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명량해전에서 성웅 이순신 장군은 12척의 배로 333척의 왜선을 물리쳐 우리 바다를 지켜냈다. 이것은 이순신 장군의 뛰어난 지략과 일본 수군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었던 무기체계의 성능에 힘입은 바 컸다. 그로부터 417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해군에는 12척의 구축함이 남아 있다. 417년 전과 다른 것은 그때는 우리 12척의 배가 일본의 333척보다 뛰어난 배였지만 지금은 우리 배의 성능이 일본보다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지금 이대로라면 이순신 장군께서 살아 돌아오신다 하더라도 독도를 지킬 수 없다. 독도는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명백백한 대한민국 고유의 영토이다. 일본은 반세기 넘게 독도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 왔지만, 우리가 일본의 야욕으로부터 독도를 빼앗기지 않은 것은 우리의 힘 때문이 아니었다. 지난 1996년, 일본이 독도 영유권에 대한 망언을 쏟아낼 때 격노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에 독도 수호를 위한 해・공군 합동훈련을 실시하라고 지시했고, 대통령 지시에 따라 군은 1함대 전력이 중심이 되어 독도 인근에서 무력 시위성 해상기동훈련을 실시한 적이 있었다. 당시 이 훈련 소식을 접한 일본 기자들은 “30분이면 전멸당할 배들을 끌고 나와서 무력시위를 하고 있다”면서 한참을 비웃었다는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그만큼 양측의 군사력 격차는 극심했고, 일본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독도를 강탈해 갈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영화 명량을 보면서 대부분의 관객들은 나라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순신 장군에게 쌀 한 톨 주지 않고 바다를 지키라 하는 선조와 조정에게 분노를 금치 못했을 것이다. 군함 건조와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고 방해하면서 압도적인 전력 우위를 가진 일본으로부터 독도를 지켜내라는 모순적인 태도는 417년 조선을 망국으로 몰아갔던 선조와 조정 대신들과 무엇이 다를까? 대한민국이 다시 빛을 본지 69년이 되는 날, 일본 내각 대신들은 침략전쟁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집단으로 참배하며 군국주의 회귀를 꿈꾸고 있고, 오키 제도의 독도 침공 전진기지화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광복절을 맞아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진지하게 묻고 싶다. 풍전등화의 독도를 눈 앞에 두고 이순신의 편에 설 것인가 선조의 편에 설 것인가?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열린세상] 대한민국의 국가시스템을 복원하려면/김주성 한국교원대 총장

    [열린세상] 대한민국의 국가시스템을 복원하려면/김주성 한국교원대 총장

    요즈음 너무나 굵직굵직한 대형사건이 터져서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걱정이 앞선다. 오랫동안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세월호 사건이 수습국면으로 들어가는가 싶더니 자대 배치된 뒤 하루도 빠짐없이 폭행을 당했던 참혹한 윤 일병 사건이 터졌다. 국가시스템에 무슨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물론 과거에도 대형사건들이 연이어 터진 적이 있다. 김영삼 대통령 때 육해공에서 모두 대형사고가 터졌었다. 구포 열차사고, 목포 여객기 추락사고, 서해 페리호 침몰사고, 대구 지하철 폭발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성수대교 붕괴사고 등 열거하기조차 숨이 찰 지경이다. 그래도 당시에는 문민시대가 열리던 참이라 모두들 희망을 잃지 않았다.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국가시스템이 전환되던 때였으므로 통과의례쯤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국민의 시름은 차원이 다른 것 같다. 민주정치시스템을 운영한 지 벌써 20년을 훌쩍 넘겼는데도 대형참사들이 연속 터져 나오니까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과거에는 생활현장의 물리적 사고가 주류였다. 당시에는 열차전복이나 선박침몰, 비행기 추락이나 건물붕괴와 같은 유형 건조물의 현장사고였다. 현장사고는 우리가 좀 더 경각심을 가지면 어렵잖게 극복할 수 있다. 우리는 김대중 정부 때 금모으기 운동과 태극기 달기 운동으로 자신감을 회복했다. IMF 위기도 잘 극복했고 월드컵 행사도 잘 치렀다. 박근혜 정부의 대형사고는 질적으로 다른 것 같다. 세월호 참사에서는 한국선급에서 지정된 평형수를 4분의3까지 빼고도 그 이상 과적하고 출항할 수 있었고, 배가 침몰할 때에도 선박지휘부는 승객의 안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구명도생했다. 세월호 사건은 과거의 사고와 같은 유형 건조물의 물리적 붕괴사고가 아니라, 국가조직이나 국민정신과 같은 무형건조물의 정신적 붕괴사고인 것이다. 윤 일병 사건도 광주민주화운동 때보다도 더 엽기적인 정신적 붕괴사고다. 내무반에서 남이 뱉어 놓은 가래침을 윤 일병이 핥게 만든 것은 광주형무소에서 일반인들이 전통화장실 바닥을 핥게 만들었던 것보다 더 경악스럽다. 소수에게 다수가 당하는 것보다 다수에게 홀로 당하는 것이 훨씬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윤 일병의 내무반은 인간성이 말살된 최후의 생활공간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대통령은 국가개조 작업을 하자고 하는데, 국민은 망연자실할 뿐이다. 한심한 세월호 참사와 엽기적인 윤 일병 사건을 겪으면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도통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국가개조 작업으로 국가조직은 복원될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배후였던 유병언씨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 국가기관의 무능이었다. 우리는 사정당국의 지휘계통부터 손보았다. 담당 형사과장, 순천경찰서장, 전남경찰청장 및 인천지검장과 경찰의 최고수뇌인 경찰청장까지 직위해제를 시켰다. 환부를 도려내는 방법으로 수사조직의 수사능력을 복원시키고자 했다. 윤 일병 사건의 조사 과정에서도 군대의 무능이 국민의 분노를 샀다. 우리는 군당국의 지휘계통부터 손보았다. 담당 본부포대장, 대대장, 연대장 및 사단장과 육군참모총장까지 보직해임을 시켰다. 군대조직에 사정충격을 줘서 지휘능력을 복원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국가개조 작업도 건전한 국민정신이 복원되지 않으면 헛일이 될 뿐이다. 국민정신은 사정기관의 처벌로 복원될 수 없다. 국민 모두를 처벌할 수도 없고 처벌하려 해서도 안 된다. 결국 이 문제는 국민교육 문제로 귀결된다. 대통령은 학교의 인성교육으로 풀자고 한다. 그럴 수 있을까. ‘버릇없는 아이가 크게 된다’는 경구, ‘튼튼하게 자란다면 개구장이라도 좋다’는 다짐, ‘공부만 열심히 하면 아이들의 신경질도 다 받아주는’ 부모들의 마음이 언젠가부터 우리의 에토스가 됐다. 이런 현실에서 어느 누가 인성교육을 제대로 해낼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다면 다른 길이 없을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모두 아이들의 신경질을 받아주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에게 성적보다는 좋은 버릇을 키워주는 데 올인해야 한다. 우리도 아이들에게 신경질을 내지 말고, 문제가 생기면 반드시 말로 풀어야 한다. 가능할지는 알 수 없지만 이 길뿐인 것 같다.
  • [시론] 차분한 경제개혁이 답이다/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시론] 차분한 경제개혁이 답이다/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대통령은 경제부총리로부터 ‘내수부진, 수출호조, 재정흑자’를 보고받았다”라고 신문 기사에 나오는 대통령은 누구일까? 1977년의 박정희 대통령이다. 내수부진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경환 경제팀 역시 내수진작→투자활성화→고용확대→내수확대의 선순환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목표는 달성될 것인가. 내수확대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가계소득이 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맞다. 그러나 재정과 금융으로 돈을 푸는 ‘반짝’ 내수 증가에 투자를 늘릴 기업은 없다. 그렇다고 계속 돈을 푸는 것은 나라 경제를 거덜내는 일이다. 그나마 기업소득환류세제가 지속성이 있는데 고소득층에 대한 배당은 늘어날 것이나 투자는 별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지속 가능한 내수진작이 필요하다. 내수부진의 배경은 가계부채, 고용 없는 성장, 고령화, 과도한 사교육비다. 가계부채에 뾰족한 방책은 없으나 상환능력에 따른 차별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고용창출을 위해서는 뻔하지만 규제 완화가 답이다. 고령화에 대해서는 정년연장과 인력수입을 고려해야 한다. 사교육비 감축 대책도 빠져서는 안 된다. 아울러 정부간섭을 줄이고 시장경제 원칙을 살리는 개혁이 병행돼야 한다. 특히 한계기업의 구조조정을 강조하고 싶다. 퇴출돼야 할 좀비 기업들이 한정된 내수시장을 잠식하면 성장 기업의 발목을 잡고 새로운 기업의 진입을 막는다. 새로운 내수창출 기회도 사라진다. 실세 경제부총리의 시대적 소명은 이런 경제개혁을 추진하는 것이다. 돈 푸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경제개혁을 위해 경기부양으로 개혁의 고통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1993년이 생각난다. 당시 한국은 1986~89년의 무역흑자, 88올림픽에 힘입은 활황세가 꺾이면서 경기침체를 보이고 있었다. 구조조정과 정부간섭을 축소하는 개혁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경기부양의 필요성을 놓고 목욕탕 수리론과 내과 수술론 논쟁이 벌어진다. 목욕탕 수리는 손님이 없는 여름철에 하듯이 경제개혁은 경기 하강기에 추진해야 하므로 경기부양은 필요 없다는 논리가 하나였다. 반면 내과 수술을 위해서는 환자 건강이 좋아야 하듯이 개혁도 호경기에 해야 하므로 경기부양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후자를 택했다. 취임 직후인 1993년 3월 초 경기부양을 위한 신경제 100일 계획을, 7월에는 개혁을 위한 신경제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결국 개혁은 별로 이뤄지지 않았고 경기부양으로 거품만 더 커져 1997년 경제위기를 맞는다. 당시 내과수술론이 간과한 점이 있다. 환자 건강이 반짝 좋아지면 수술이 필요 없다는 착각이 의사(정부)에게 든다는 점이다. 환자 역시 이를 핑계로 수술을 피하려 한다. 필요성은 공감해도 모두가 피하고 싶은 일, 그게 개혁이다. 이번 경기부양책이 최 부총리의 개혁 추진을 약화시키지 않기를 바란다. 쉬운 일은 아니나 우리도 이제는 저성장을 차분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정부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은 3.7%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예측한 세계의 올해 평균성장률 3.4%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선진국 대비 너무 빨리 성장률이 떨어졌다는 걱정도 있는데 사실 선진국은 1인당 소득 2만 달러가 되기 훨씬 전부터 성장률이 4% 이하로 떨어졌다. 주요7개국(G7)은 대부분 1990년을 전후해 1인당 소득 2만 달러를 달성했는데 1980년대의 평균 성장률이 4%를 넘긴 나라는 하나도 없다. 1970년대를 봐도 일본과 캐나다 정도만 4%를 넘겼다. 전경련 자료에 따르면 1인당 소득 2만 달러를 달성한 22개국이 3만 달러를 달성하기까지 기록한 평균 성장률이 바로 3.7%다. 한국의 기초체력을 의미하는 잠재성장률도 잘 봐줘야 4.0%인 점을 감안하면 3.7%는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 물론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차분한 경제개혁을 통해 달성되는 것이지 3.7%에 놀라 돈을 푼다고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 [인사]

    ■산업통상자원부 △기후변화산업환경과장 신동학△동아시아자유무역협정협상담당관 김재준 ■서울시교육청 △교육감 비서실장 조현우△공보담당관 이상수 ■경남도 △행정국장 김경일△안전건설국장 직무대리 이채건△기계나노융합과장 박달호△항노화산업과장 권현군△항공우주산업과장 김영삼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창조정책부장(대외협력실장 겸임) 권경훈△오창운영본부장(질량분석연구부장 겸임) 김현식△기획부장 김현기△물성과학연구부장 조영훈 ■아주경제 △전국부장 온기동
  • 장관들도 눈치 본다는 공무원,누군가 했더니…

    장관들도 눈치 본다는 공무원,누군가 했더니…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공직사회의 감춰진 적폐(積弊)가 드러나면서 공직 개혁은 피할 수 없는 칼날이 됐다. 환부를 도려내고 잘못은 고쳐야겠지만, 국정운영의 근간인 공복들의 자존심은 지켜줘야 한다. 국가를 위해 묵묵히 일하는 공무원 61만 9182명(6월 말 기준)을 대표하는 정부 부처의 핵심 요직과 이 자리를 거쳐 간 인사들을 연재물로 소개한다. 정부 부처 중 장·차관을 제외하면 가장 영향력 있는 1급 직책은 무엇일까. 여러 의견이 나올 수 있지만 경제 부처만 따지면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이 제일 앞 머리에 자리할 것이다. 357조 7000억원(2014년 기준)에 달하는 중앙정부 예산을 직접 주무르기 때문이다. 부처 장관들조차 기재부 예산실장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말이 근거없는 과장만은 아닌 이유다. 예산은 정부가 정책 목표를 달성하고 사회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제한된 재정 자원을 배분하는 행정 행위의 결과물이다. 이 때문에 예산 편성을 주도하는 예산실장은 국가 경제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미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정책 결정의 최전선에 서 있다. 예산실장이 옛 경제기획원(EPB) 라인의 영원한 꽃으로 손꼽히고, 역대 예산실장들이 정부 내에서뿐 아니라 정계와 재계에서 ‘파워 엘리트’로 자리잡고 있는 까닭이다. EPB는 ‘모피아’(옛 재무부) 라인과 함께 우리나라의 경제 정책을 이끌어 가는 양대 산맥이다. 예산실장이 속한 EPB 라인은 예산과 기획 등 거시 경제를 주 전공으로 삼는다. 이 때문에 기획과 비전 제시에 탁월하다. 반면 모피아 라인은 금융과 세제 등 미시 경제 분야를 다루다 보니 현안 해결에 주력하는 편이다. ‘EPB는 하늘을 보고 모피아는 땅을 살핀다’는 표현이 나오는 까닭이다. 예산실장을 중심으로 한 EPB 라인은 노태우 정부 전에는 모피아 라인 대신 경제정책의 주도권을 잡았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 때 재정경제원이 들어서면서 모피아에 밀리는 형국이었다. 노무현 정부 때 다시 키를 잡았지만 이명박 정부에서는 열세에 놓였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EPB가 발언권을 회복한 모양새다.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모두 경제기획원 관료 출신이다. 최경환 현 경제부총리도 EPB 라인으로 분류된다. 앞으로 예산실장 출신 관료들의 ‘입김’이 세질 것으로 내다볼 수 있는 대목이다. 1990년 이후 17명의 역대 예산실장 중 1명만 빼놓고는 모두 장·차관을 거쳤다. 경제 관료로서 ‘출세’하기 위한 필수 코스다. 예산실장 출신 고위 관료의 대명사는 박정희 정부 때 경제 개발의 초석을 닦은 김학렬 전 경제부총리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포항종합제철 건설, 경부고속도로 개통 등 굵직굵직한 국책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박 전 대통령이 그를 ‘경제 과외선생’이라고 칭하고, 1972년 췌장암으로 세상을 뜨자 “내가 일을 많이 시켜서 당신을 죽였다”면서 대성통곡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석채 전 KT 회장도 예산실장 출신 파워 엘리트로 손꼽힌다. 1992년 4월부터 2년여간 예산실장을 맡은 뒤 경제기획원 차관 등을 거쳐 옛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냈다. 외환위기 이후 관직을 떠났지만 2009년 국내 최대 통신사인 KT의 수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지금도 기재부 내에서 ‘추진력이 남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2000년대 들어서도 예산실장 ‘전성시대’는 계속되고 있다. 정권의 성격과 상관 없이 능력을 인정받은 결과다. 2002년 2월부터 2년간 예산실장을 맡은 고(故) 임상규 전 순천대 총장은 타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역임했다. 이용걸 전 예산실장은 기재부 2차관, 국방부 차관 등을 거쳤다. 김동연 전 국무조정실장과 이석준 미래창조과학부 1차관도 예산실장 출신이다. 정계에도 활발히 진출하고 있다. 장병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류성걸 새누리당 의원은 각각 노무현, 이명박 정부 때 예산실장을 지냈다. 정해방 전 실장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반장식 전 실장은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최근 차관급 인사에서 방문규 전 예산실장이 기재부 2차관으로 영전했다. 후임으로는 송언석 기재부 예산총괄심의관이 발탁될 가능성이 높다. 세종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 [공직 파워 열전] ‘EPB의 영원한 꽃’ 기재부 예산실장

    [공직 파워 열전] ‘EPB의 영원한 꽃’ 기재부 예산실장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공직사회의 감춰진 적폐(積弊)가 드러나면서 공직 개혁은 피할 수 없는 칼날이 됐다. 환부를 도려내고 잘못은 고쳐야겠지만, 국정운영의 근간인 공복들의 자존심은 지켜줘야 한다. 국가를 위해 묵묵히 일하는 공무원 61만 9182명(6월 말 기준)을 대표하는 정부 부처의 핵심 요직과 이 자리를 거쳐 간 인사들을 연재물로 소개한다.정부 부처 중 장·차관을 제외하면 가장 영향력 있는 1급 직책은 무엇일까. 여러 의견이 나올 수 있지만 경제 부처만 따지면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이 제일 앞 머리에 자리할 것이다. 357조 7000억원(2014년 기준)에 달하는 중앙정부 예산을 직접 주무르기 때문이다. 예산은 정부가 정책 목표를 달성하고 사회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제한된 재정 자원을 배분하는 행정 행위의 결과물이다. 이 때문에 예산 편성을 주도하는 예산실장은 국가 경제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미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정책 결정의 최전선에 서 있다. 예산실장이 옛 경제기획원(EPB) 라인의 영원한 꽃으로 손꼽히고, 역대 예산실장들이 정부 내에서뿐 아니라 정계와 재계에서 ‘파워 엘리트’로 자리잡고 있는 까닭이다. EPB는 ‘모피아’(옛 재무부) 라인과 함께 우리나라의 경제 정책을 이끌어 가는 양대 산맥이다. 예산실장이 속한 EPB 라인은 예산과 기획 등 거시 경제를 주 전공으로 삼는다. 이 때문에 기획과 비전 제시에 탁월하다. 반면 모피아 라인은 금융과 세제 등 미시 경제 분야를 다루다 보니 현안 해결에 주력하는 편이다. ‘EPB는 하늘을 보고 모피아는 땅을 살핀다’는 표현이 나오는 까닭이다. 예산실장을 중심으로 한 EPB 라인은 노태우 정부 전에는 모피아 라인 대신 경제정책의 주도권을 잡았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 때 재정경제원이 들어서면서 모피아에 밀리는 형국이었다. 노무현 정부 때 다시 키를 잡았지만 이명박 정부에서는 열세에 놓였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EPB가 발언권을 회복한 모양새다.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모두 경제기획원 관료 출신이다. 최경환 현 경제부총리도 EPB 라인으로 분류된다. 앞으로 예산실장 출신 관료들의 ‘입김’이 세질 것으로 내다볼 수 있는 대목이다. 1990년 이후 17명의 역대 예산실장 중 1명만 빼놓고는 모두 장·차관을 거쳤다. 경제 관료로서 ‘출세’하기 위한 필수 코스다. 예산실장 출신 고위 관료의 대명사는 박정희 정부 때 경제 개발의 초석을 닦은 김학렬 전 경제부총리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포항종합제철 건설, 경부고속도로 개통 등 굵직굵직한 국책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박 전 대통령이 그를 ‘경제 과외선생’이라고 칭하고, 1972년 췌장암으로 세상을 뜨자 “내가 일을 많이 시켜서 당신을 죽였다”면서 대성통곡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석채 전 KT 회장도 예산실장 출신 파워 엘리트로 손꼽힌다. 1992년 4월부터 2년여간 예산실장을 맡은 뒤 경제기획원 차관 등을 거쳐 옛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냈다. 외환위기 이후 관직을 떠났지만 2009년 국내 최대 통신사인 KT의 수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지금도 기재부 내에서 ‘추진력이 남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2000년대 들어서도 예산실장 ‘전성시대’는 계속되고 있다. 정권의 성격과 상관 없이 능력을 인정받은 결과다. 2002년 2월부터 2년간 예산실장을 맡은 고(故) 임상규 전 순천대 총장은 타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역임했다. 이용걸 전 예산실장은 기재부 2차관, 국방부 차관 등을 거쳤다. 김동연 전 국무조정실장과 이석준 미래창조과학부 1차관도 예산실장 출신이다. 정계에도 활발히 진출하고 있다. 장병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류성걸 새누리당 의원은 각각 노무현, 이명박 정부 때 예산실장을 지냈다. 정해방 전 실장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반장식 전 실장은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최근 차관급 인사에서 방문규 전 예산실장이 기재부 2차관으로 영전했다. 후임으로는 송언석 기재부 예산총괄심의관이 발탁될 가능성이 높다. 세종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 [7·30 재보선 후폭풍-지역구도 타파] 대구 門 노크 김부겸 ‘제2의 이정현’ 되나

    [7·30 재보선 후폭풍-지역구도 타파] 대구 門 노크 김부겸 ‘제2의 이정현’ 되나

    7·30 재·보궐선거에서 전남 순천·곡성의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된 것은 영호남 지역 분할 구도 정치에 금을 가게 하는 사건으로 31일 받아들여졌다. 지역 구도 정치의 타파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그 가능성을 열었다고 평가된다. 이 당선인은 1995년 1회 지방선거에서 광주시의원에 출마한 것을 시작으로 4번째 지역 구도에 도전해 19년 만에 꿈을 일궈냈다. 소선거구제가 도입된 1988년 이후 지역색이 상대적으로 짙은 전남에서 여당 후보가 당선된 것은 처음이다. 현재 지역 구도 벽에 도전하는 ‘제2의 이정현’은 다수다. 특히 전남처럼 지역색이 짙은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김부겸 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그는 19대 총선과 6·4 지방선거 때 대구에 출마해 40%대 득표율로 가능성을 보여 줬다. 이번 재·보선을 통해 전남 지역에서 여당 의원이 배출된 만큼 20대 총선에서는 대구 출신인 김 전 의원이 고향 민심을 얻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전남에서도 지역 분할 구도 정치 타파의 물꼬가 트인 만큼 대구·경북 유권자들이 압박받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같은 영호남이지만 상대적으로 지역색이 옅은 전북과 부산·경남은 이미 지역 구도에 균열이 생겼다. 1988년 이후 전북에서는 1992년 여당인 민주자유당 양창식(남원) 의원, 1996년 신한국당 강현욱(군산) 의원이 각각 당선된 바 있다. 부산·경남에서도 부산의 문재인(사상구), 조경태(사하구을) 의원과 경남의 민홍철(김해갑) 의원이 현재 새정치연합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 17, 18대 때는 최철국 의원이 상대 당 텃밭인 김해을에서 당선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0년 총선 때 지역 구도 정치의 벽을 깨겠다며 상대적으로 쉬운 서울 종로 지역구를 버리고 부산 북·강서을에 도전해 낙마했으나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칭과 함께 네티즌들이 ‘노사모’를 조직해 마침내 2002년 대선 때 대통령에 당선됐다. 지역 분할 구도 정치는 1971년 영호남 후보가 정면으로 맞붙은 대통령 선거에서 본격화된 뒤 1987년 1노(노태우) 3김(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이 출마한 대선에서 더욱 노골화됐고 이후 해당 지역 출신 정치인들이 기득권을 분점하며 지역주의가 고착화됐다는 평이 많다. 지역 구도 정치를 깨기 위해서는 지역주의를 고착화시키는 소선거구제 대신 중·대 선거구제를 도입하거나, 소선구제의 경우 지역구에 출마했다 떨어진 후보를 비례대표로 구제하는 석패율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등의 제도적 대안이 거론된다.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 “잘해래이” 합병증세로 서울대 병원에 입원 중인 YS 당 대표 된 뒤 병문안 온 김무성에게 덕담

    “잘해래이” 합병증세로 서울대 병원에 입원 중인 YS 당 대표 된 뒤 병문안 온 김무성에게 덕담

    새누리당 김무성 신임 대표가 지난 주말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병문안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21일 “김 대표가 지난 19일 새벽 시간을 쪼개 김 전 대통령이 입원한 서울대 병원 병실을 찾았다”면서 “전당대회 이후 재·보궐선거 유세 일정으로 더 빨리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거동이 불편한 김 전 대통령은 김 대표가 “늦게 찾아뵈어 죄송하다”고 신임 인사를 하자 한참을 바라보더니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로 “잘해래이”라며 연신 당부했다고 한다. 이날 병문안에는 김수한 전 국회의장이 동행했으며, 김 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는 동석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표는 21일 기자들에게 “김 전 대통령이 병세로 말을 잘 못했지만 나를 알아보고 좋아하며 잘하라고 했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김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정계에 입문한 상도동계의 막내로 김영삼 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비서관과 내무부차관 등을 지냈으며, 그동안 음으로 양으로 김 전 대통령을 챙겨 왔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해 4월 폐렴으로 서울대 병원에 입원한 후 심혈관계 합병증 증세로 장기간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김상연 기자 carlos@seoul.co.kr
  • [광역단체장 인터뷰] ‘강골 검사’서 4선 의원·與대표 거쳐 재선 도지사에

    홍준표 경남지사는 1993년 서울중앙지검 강력부 검사 시절 카지노 범죄인 ‘슬롯머신’ 사건을 수사해 박철언 전 의원 등 권력 실세들을 대거 구속시키면서 외압에 굴복하지 않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칼잡이’ 검사로 이름을 날렸다. 그의 이야기는 1995년 SBS 드라마 ‘모래시계’로 재탄생했고, 그에게는 ‘모래시계 검사’라는 별칭이 붙었다. 경남 창녕에서 태어난 홍 지사는 대구 영남중·고를 졸업한 뒤 육군사관학교에 특차로 합격했지만, 아버지가 누명을 쓰고 경찰에 시달리는 일이 발생하자 법조인이 되겠다는 목표로 문과 공부를 다시 해 고려대 행정학과에 진학했다. 그의 어린 시절은 가난했다. 부친은 울산 현대조선소의 경비원으로 일하기도 했고 모친은 가발 장사를 했다. 2011년 7·4 전당대회 당 대표 수락 연설에서 그는 “일당 800원을 받던 경비원의 아들, 고리사채로 머리채를 잡혀 길거리를 끌려다니던 어머니의 아들이 집권 여당의 대표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국민들에게 보여 줬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1982년 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청주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한 홍 지사는 1996년 신한국당 총재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요청으로 15대 총선에서 서울 송파갑에 출마해 당선되며 정치에 입문했다. 18대까지 내리 4선을 지냈다. 김대중 정부 때는 ‘DJ 저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2006년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나섰다가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게 패배했다. 홍 지사는 2011년 친박(친박근혜)계의 표 결집으로 당 대표에 오르긴 했지만 ‘친박계’에 흡수되지 않고 독자 노선을 고수해 왔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서울 동대문을 수성에 실패해 정치적 시련을 겪었으나, 같은 해 대선과 함께 치러진 경남지사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8개월 만에 재기에 성공했다. 이어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친박계의 견제를 뿌리치고 재선 도지사가 됐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원내·외서 물심양면… 계파 초월 ‘김무성의 사람들’

    김무성 새누리당 신임 대표 주위에는 친박(친박근혜)계와 비박(비박근혜)계를 망라한 ‘친김무성계’ 사람들이 두루 자리하고 있다. 한때 원조 친박계였다가 비주류로 자리매김했지만, 상도동계로 정치에 입문한 이후 민주계 출신 인사들, 친이명박계와도 두루 교분을 유지해 온 이유에서다. 현재 그의 인맥은 2010년 한나라당 원내대표 시절 원내부대표 출신 의원들과 정치적 고향인 부산지역 의원들로 양분된다. 이 밖에 비박계 및 원외 인사들도 측근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이번 전당대회를 적극 도왔던 재선 김성태(서울), 김학용(경기), 이진복(부산), 이군현(경남), 이한성(경북), 권성동(강원) 의원은 원내부대표 그룹으로 김 대표와 인연을 맺은 뒤 줄곧 지원군 역할을 해 왔다. 재선 강석호 의원은 서청원 의원이 앞서는 것으로 평가됐던 경북에서 김 대표가 전세를 역전하는 데 힘을 보탰다. 부산 출신 재선 박민식 의원은 지난해 4월 김 대표가 ‘남을’에서 ‘영도’로 지역구를 바꿔 국회에 재입성할 때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김 대표는 당선 직후 박 의원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 대표의 보좌관 출신으로 지역구를 물려받은 초선 서용교 의원과 이헌승 의원도 측근으로 꼽힌다. 원외에는 비박계 인사들이 두루 포진해 있다. 전대 캠프 선대본부장으로 활약한 권오을 전 국회 사무총장, 후보 비서실장으로 활동한 안형환 전 의원 등이 있다. 안 전 의원과 조전혁·김성회 전 의원도 원내대표단 시절 이후 계속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김 대표는 2012년 총선 불출마 직후 미국 배낭여행 때 안·조 전 의원과 동행하기도 했다. 이혜훈 전 최고위원과도 각별한 관계로 알려졌다. 캠프 공보단장이었던 배용수 전 국회도서관장, 공동대변인이었던 허숭 전 경기도 대변인, 문혜정 전 김황식 캠프 대변인도 김 대표 당선을 도왔다. 포항지역 인사들과의 인연도 각별하다. 부친인 김용주 전 의원이 설립한 포항 영흥초교 출신인 이병석 전 국회부의장과는 김영삼 정부 시절 공직 생활을 함께했다. 이 전 부의장은 당시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정무비서관을 지냈고 김 대표도 민정비서관 등으로 일찍부터 친분을 맺었다. 이승만 정권 시절 민주당 원내총무를 지낸 부친 김 전 의원은 전남방적, 대한조선공사(한진중공업 전신), 대한해운공사(한진해운 전신)를 일군 기업인 출신이다. 김 대표는 지난 3월 137억원의 재산을 신고했는데 대부분 부친에게 물려받은 재산이 기반이 됐다고 한다. 형인 김창성 전남방적 명예회장은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고문이다. 누나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어머니로 김 대표가 현 회장의 외삼촌이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중량급 보수 원로… DJ· 정부 인사 일부 합류

    중량급 보수 원로… DJ· 정부 인사 일부 합류

    15일 공식 발족한 통일준비위원회에는 정·관계와 학계 등의 중량감 있는 원로들이 민간 위원으로 다수 포진했다. 특히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 수립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인사들도 일부 이름을 올렸다. 민간 몫의 부위원장에는 주중대사를 지낸 정종욱 인천대 석좌교수가 임명됐다. ‘중국통’인 정 교수는 김영삼 정부 때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지냈고, 주중대사 당시인 1997년 황장엽 망명 사건을 처리하며 외교·안보적 능력을 평가받았다. 고건 전 총리, 외무부 장관을 지낸 한승주 한미협회 회장,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상임고문 등 관료를 거친 인사들과 학계에서는 장달중 서울대 명예교수,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 문정인 연세대 교수 등 국내 석학들이 안배됐다. 전체 민간 위원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보수 일색의 통준위 균형을 맞추기 위해 문 교수, 고유환 동국대 교수, 박명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장 등 대북 교류 협력을 강조해 온 진보적 인사들도 참여했다. 북한 외교관 출신의 탈북자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실장도 위원에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고 전 총리와 노무현 정부 때 동북아시대위원장을 지낸 문 교수, 김대중 정부에서 국정원 차장을 역임한 라종일 한양대 석좌교수 등은 햇볕정책 입안 및 추진에 관여했던 인사들로 꼽힌다. 경제 분야에서는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를 포함해 김동근 한국산지보전협회 명예회장, 최경수 북한자원연구소 소장, 함범희 전 코레일 센터장 등 실무형 인사들이 참여했다. 이 밖에 대북 지원사업을 펼쳐 온 월드비전의 양호승 회장과 탈북자들의 심리적 고통을 연구해 온 전우택 연세대 의대 교수,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 사업에 참여한 권재일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 등이 사회문화 분야 위원으로 발탁됐다. 통준위에 참여한 유호열 고려대 교수와 제성호 중앙대 교수의 경우 민주평통에서도 분과위원장을 맡고 있어 역할이 중복되는 인사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출신으로, 정부 출범 전 인수위에서 석연찮은 이유로 중도 사퇴했던 최대석 이화여대 교수는 민간·전문 위원 모두에서 빠졌다. 정부 측 부위원장인 류길재 통일부 장관, 당연직 위원인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함께 국가미래연구원 출신인 김재천 서강대 교수,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외교안보 전문위원에 이름을 올렸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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