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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떠난 YS 통합정신 후세대가 이어받아야

    김영삼(YS) 전 대통령 영결식이 어제 국가장으로 엄수됐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영결식에는 장례위원장인 황교안 국무총리 등 주요 인사, 각계 대표, 주한 외국 대사를 포함한 해외 조문 사절까지 1만여명이 넘는 조문객이 참석했다. YS의 운구는 광화문과 세종로를 지나 국회의사당으로 이동하면서 대통령과 9선 의원으로서 이승에서의 마지막 삶의 궤적을 반추했다. 추도사를 맡은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온몸으로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김 전 대통령의 삶을 추모했고 국가장인 만큼 김 전 대통령의 신앙인 개신교 의식을 시작으로 불교, 천주교, 원불교까지 4대 종교의식을 통해 넋을 기렸다. YS의 육신은 어제 서울 동작동 현충원에 안장됐지만 그의 철학과 정신은 후세들의 가슴속에 오롯이 살아남았다. 그가 2년 전 거동이 불편한 상황에서 남긴 ‘통합과 화합’이란 유지가 대표적이다. 첫 국가장으로 거행된 YS 장례식의 장례위원회도 지역과 이념을 초월한 ‘통합형 장례위원회’였다. 장례위원 2222명의 명단에는 YS의 상도동계와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는 물론 YS가 감옥에 보낸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이 총망라돼 있다. 분열과 갈등으로 찢긴 현 정치권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대통합의 단초를 제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고인의 뜻을 되새겨 새로운 화합의 시대를 여는 것이 남아 있는 우리의 책임이다. 이를 위해서는 30여 년 동안 한국 정치를 지배했던 ‘양김(兩)시대’의 종언 이후 지역주의와 계파주의로 대표되는 후진적 정치 패러다임의 변화가 시급하다. 정치권은 새로운 시대에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춰 갈등을 조율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국가·정치 시스템에 대한 큰 그림을 제시하고 이를 국민의 지지 속에서 실현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시기다. 대한민국은 지금 총체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경기 침체가 가중되면서 중산층들이 무너지고 있고 서민층의 생활고는 더욱 가중되고 있다. 고질적인 지역주의는 물론 첨예한 이념 대립의 악순환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국가 생존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들은 여야를 떠나 국력을 총결집해도 해결하기에 벅찬 과제들이다. 당장 19대 정기국회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비롯해 노동개혁과 경제활성화 법안은 물론 내년도 국가예산 심의 등 현안들이 쌓여 있다. 지역과 이념의 대립으로 정치 자체가 갈등과 반목의 온상이 된 지 오래다. YS의 유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치권의 각성과 쇄신이 전제가 돼야 한다. 여야는 우선 경쟁적 협력 관계와 대화와 타협, 그리고 정책 경쟁이 가능한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힘으로 상대방을 밀어붙여 굴복시키는 ‘패권의 정치’가 아니라 서로 공존할 수 있는 상생의 정치가 절실하다. 화합과 통합은 국민적 염원이자 시대적 요구다. 동서의 지역 갈등과 좌우 이념의 간극을 극복하는 것이 핵심이고 상생과 공존의 길을 여는 길이기도 하다. 동과 서, 좌우를 아우르는 사회 통합과, 갈등과 대립을 해소하는 것이 고인이 남긴 뜻이자 우리 세대가 해결해야 할 시대적 책무다.
  • 새정치연 ‘문·안·박’ 블랙홀에 빠지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제안한 ‘문·안·박’(문재인·안철수·박원순) 공동지도부 구성에 대한 안철수 의원의 입장 표명이 임박하며 야당이 다시 요동치고 있다.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진행된 26일 새정치연합 호남권 의원들이 대규모 회동을 갖는 등 조문 정국으로 잠시 잠복했던 당 내홍이 또다시 수면 위로 오르는 모습이다. 이날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가진 광주·전남·북 의원들의 오찬은 ‘문재인 성토장’이나 다름없었다. 당 지도부와 상의 없이 문·안·박 연대를 제안했다며 문 대표에게 사과를 요구해온 주승용 최고위원은 “이것은 당헌·당규에도 맞지 않는 초법적 권한행사”라고 비판했다. 일부는 ‘문·안·박 연대’를 ‘영남연대’로 규정하며 호남권 대표를 포함한 지도부 구성 필요성을 거론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회동에는 호남권 의원 27명 가운데 19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김 전 대통령 영결식 등의 일정을 고려해 27일 문 대표에 책임을 묻는 내용의 성명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주류 측은 문·안·박 연대 수용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초·재선 의원 등 당 인사 50여명은 27일 문·안·박 연대 수용을 호소하는 입장을 안 의원 측 등에 전달하거나, 성명 형식으로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수도권의 한 초선 의원은 “지금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더욱 정교하게 문·안·박 연대 성사를 위해 물밑에서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성명 발표와 같은 방식이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문 대표가 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 직접 안 의원을 만나 설득에 나서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온다. 안 의원은 오는 29일 기자회견을 갖고 문·안·박 연대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지만, 수용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기류다. 안 의원 측 관계자는 “당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을 요구해왔던 기존 입장의 연장선에서 자연스럽게 문·안·박 연대 등에 대한 생각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전국이 다 내 고향”… 생전 뜻 따라 고향 흙 대신 마사토 뿌려

    김영삼 전 대통령이 26일 오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불꽃처럼 타올랐던 88년 인생의 마지막 육신은 장군 제2묘역 우측과 장군 제3묘역 왼쪽 능선에 자리잡았다. 2012년 차남 현철씨가 지관인 황영웅 영남대 교수와 함께 둘러보고 정해둔 곳으로, 풍수지리상 봉황의 왼쪽 날개에 해당하는 곳이다. 이날 오전 10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된 발인 예배는 수원중앙침례교회 김장환 목사가 집전했으며 유족과 김수한 전 국회의장, 김덕룡 전 의원 등 측근, 정관계 인사 100여명이 함께했다. 40분에 걸친 발인 예배 후 조문은 정오까지 이어졌다. 이후 김 전 대통령의 관을 실은 검은색 링컨 리무진과 유족, 장례식 참석 인사들을 태운 버스들이 국회로 이동했다. 영결식을 마치고 국회를 떠난 운구 차량은 오후 4시 10분쯤 서울 상도동 사저를 들렀다. 동네 주민 100여명은 골목 입구에서부터 도열해 눈시울을 붉히거나 휴대전화 사진을 찍으며 고인의 마지막 길을 애도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합니다’라고 쓰인 검은 플래카드도 내걸렸다. 장손 성민씨가 영정을 들고 약 5분간 집 안을 한 바퀴 돌았다. 장남 은철씨 등 직계가족 15명이 뒤를 따랐다. 현관 복도를 지나 왼쪽 안방, 맞은편 식당을 지난 영정은 고인이 손님을 맞이했던 거실에서 제자리로 한 바퀴를 돌았다. 거실 벽면 가운데는 고인이 직접 쓴 ‘송백장청’(松栢長靑) 휘호가 걸려 있었다. 1969년 성북구 안암동에서 거처를 옮긴 이래 고인이 46년간 거주했던 상도동 자택은 고인은 물론 주변인들에게 단순한 집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민주화 운동의 거점이자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 자택과 함께 민주화 논의의 성지였다. 고인이 차량 초산 테러를 당했던 곳도, 23일간 가택연금을 당했던 곳도 이곳이었다. 이어 운구 행렬은 자택에서 500m가량 떨어진 김영삼대통령기념도서관 앞을 지났다. 생전의 김 전 대통령이 “매일 출퇴근하고 싶다”고 되뇌었다던 곳이다. 방향을 튼 운구 차량은 당초 예정 시간인 오후 4시보다 40분 늦게 동작구 사당동 국립서울현충원에 도착했다. 눈발이 날리는 궂은 날씨 속에서도 조문객들이 몰려들었다. 마지막 의식은 국군 의장대의 받들어총, 조악 연주와 함께 시작됐다. 충혼당 앞에서 열린 안장식은 고인에 대한 경례, 헌화·분향, 운구, 하관, 흙을 관 위에 뿌리는 허토 순으로 이뤄졌다. 250석 규모의 식장 맨 앞줄엔 부인 손명순 여사 등 유족 대표와 김수한·박관용 전 국회의장이 자리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외 동교동계 인사들, 장의위원, 일반 시민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차남 현철씨가 유족 대표로 헌화했고 정의화 국회의장이 조문객 대표,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장례 집행위원장 자격으로 헌화했다. 운구는 조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약 150m 떨어진 묘소 예정지까지 10여분간 이뤄졌다. 11명의 의장대가 태극기로 감싼 관을 조심조심 옮겼다. 현철씨는 하관하는 모습을 먹먹한 얼굴로 바라봤다. 뒤늦게 도착한 손 여사는 양쪽의 부축을 받고 맨 앞에 서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하관을 지켜봤다. 허토 의식 후 평소 고인과 친분이 깊었던 고명진 목사가 부활대망예배를 집전했다. 본격적인 허토가 시작되자 현철씨는 무궁화가 그려진 관 상판 위에 흰 국화꽃잎을 두 손으로 수북이 집어 두번 뿌리고 흙을 뿌렸다. 전 국회의장들도 한 삽씩 손을 보탰다. 관이 흙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되자 참지 못한 현철씨가 “아버님, 아버님” 소리 내어 흐느꼈다. 손 여사의 충혈된 눈에서도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군악대의 조총 발사, 묵념 속에 참석자들은 각자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고인의 고향인 경남 거제도에서 가져온 흙 대신 일반 마사토가 허토에 사용됐다고 한다. “전국이 다 내 고향”이라고 했던 고인의 뜻을 받들어서다. 관은 유족들이 마련한 것으로 고동색에 윤기가 조금 도는 나무 무늬만 있는 수수한 관으로 알려졌다. 묘소 봉분 앞에는 ‘제14대 대통령 김영삼의 묘’라고 새겨진 3.49m 높이의 목재 임시 묘비가 세워진다. 돌로 제작한 실제 비석은 내년 1월쯤 제막한다. 안장식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난 현철씨는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아버님께서 하늘에서라도 우리나라를 위해 끊임없이 걱정하고 지켜보시리라 생각한다”면서 “아버지의 유언인 ‘통합과 화합’이 우리 사회와 국민 전체에 큰 울림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이렇게 추운 날 가시나… ” 참았던 울음 터뜨리며 작별 인사

    26일 오전 10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발인 예배. 고인의 누이들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말 한마디만 하고 가, 맨날 사랑한다고 했잖아. 한번만 하고 가, 우리 오빠 보고 싶어.” 차남 현철씨를 비롯한 유족과 측근들은 침통한 얼굴로 서로를 껴안았다. 찬송가 ‘저 높은 곳을 향하여’가 울려 퍼지자 흐느낌이 예배당을 메웠다. 가족 인사를 하는 현철씨도 여러 차례 목이 메었다. 현철씨는 “왜 이렇게 추운 날 하나님께서 아버님을 데려가시려고 하시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민주화가 다시 불타는 조짐을 보이는 이 시점에 아버님을 통해 이 땅에 진정한 통합과 화합이란 사랑의 메시지를 보내 주셨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쇠약한 부인 손명순 여사는 매서워진 날씨 탓에 예배엔 참석하지 못했지만 영결식에 맞춰 서울 상도동 자택에서 국회로 이동했다. 휠체어를 탄 손 여사는 영결식 맨 앞줄 한가운데 앉아 남편과의 작별 의식을 치렀다. 그 오른쪽으로 장남 은철, 차남 현철씨, 1·2·3녀인 혜영, 혜경, 혜숙씨가 나란히 앉았다. 손 여사는 검은 코트로 몸을 감싸고 흰 십자 무늬가 있는 검은 담요를 무릎에 덮었다. 고인에 대한 묵념 순서에서 눈을 지그시 감은 손 여사의 뺨으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조사, 추도사가 낭독되는 동안 유족과 측근들은 애써 의연한 표정을 지었지만 고인의 생전 영상이 나오자 흔들리기 시작했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마침내 왔습니다”라는 김 전 대통령의 카랑카랑한 육성이 울려 퍼지자 현철씨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감싸며 오열했다. 손 여사는 멍한 표정으로 허공만 응시했다. 헌화, 분향에서 손 여사는 휠체어에 탄 채 흰 국화를 영전에 바쳤고 현철·은철씨, 나머지 가족들이 뒤를 이었다. .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길섶에서] YS 연하장/최광숙 논설위원

    정치부에 근무하면서 가장 신나게 취재할 때가 김영삼(YS) 전 대통령 시절이지 싶다. 당시 YS의 최측근인 최형우 신한국당 사무총장의 서울 마포구 성산동 집은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뤘었다. 교수에서 정치인으로 막 변신한 손학규 대변인과 함께 실세의 ‘말 한마디’를 들으려고 밤늦도록 그의 귀가를 기다리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청와대 출입 기자가 아니어도, 특별히 약속을 하지 않아도 이원종 정무수석과 박세일 사회복지수석, 이각범 정책기획수석 등을 만나 차 한잔할 수 있었다. 지금은 청와대 출입이 제한적인 것을 고려하면 기자로서는 취재원을 원 없이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순간들이었다. 퇴임 이후에도 YS의 일본이나 거제도 생가 방문 등을 취재하면서 이런저런 추억도 쌓았다. 그런 인연으로 언제부터인가 연말이면 손명순 여사와 함께 찍은 사진과 사인이 든 YS의 연하장이 집으로 날아왔다. 해마다 오는 그의 연하장에 익숙해지면서 특별히 YS를 떠올린다기보다는 이렇게 한 해가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앞으로 결코 받아 보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그의 연하장을 기다릴 것 같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그가 떠나는 날, 눈이 내렸습니다

    그가 떠나는 날, 눈이 내렸습니다

    그가 그토록 뜯어고치고 싶어 했던, 그럼에도 여전히 고칠 게 많은 이 세상과 김영삼 전 대통령이 영원히 작별했다. 지난 22일 서거한 김 전 대통령의 국가장(國家裝) 영결식이 26일 국회 본청 앞에서 거행됐다. 오후 2시부터 1시간 20분간 눈이 내리는 가운데 거행된 영결식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 여사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와 나란히 ‘통합’과 ‘화합’을 유언으로 남긴 김 전 대통령의 영정 앞에 헌화했다. 영결식에는 김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와 차남 현철씨 등 유가족은 물론 헌법기관장, 주한 외교사절, 각계 대표와 시민 등 7000여명이 참석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감기 증세로 영결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대신 영결식 전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고인의 영정을 배웅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도 건강 문제로 영결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장례위원장인 황교안 국무총리는 조사를 통해 “우리는 오늘 민주화의 큰 산이었던 김 전 대통령과 영원히 이별하는 자리에 있다”며 “대통령님이 염원한 평화롭고 자유롭게 번영하는 나라를 만드는 게 우리가 해야 할 몫”이라고 말했다.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추도사에서 “(김 전 대통령에게) 혹독한 탄압이 간단없이 자행됐지만 ‘잠시 살기 위해 영원히 죽는 길을 택하기보다 잠시 죽지만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하겠다’는 대통령님의 숭고한 의지를 꺾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영결식 후 운구 행렬은 고인이 46년간 살았던 동작구 상도동 사저에 들른 뒤 그곳에서 2㎞ 떨어진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종착(終着)했다. 김 전 대통령이 영면에 든 이날 서울 기온은 영하로 떨어졌고, 시민들은 몸을 한껏 웅크린 채 종종걸음을 쳤다. 김상연 기자 carlos@seoul.co.kr
  • [열린세상] 반기문 총장 평양행, 빠를수록 좋다/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열린세상] 반기문 총장 평양행, 빠를수록 좋다/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북이 늦어지고 있다. 지난 23일 본인이 직접 “평양행 일정을 조율하고 있지만,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고 얘기한 게 최근 소식이다. 반 총장이 뉴욕 유엔 주재 한국대표부에 마련된 김영삼 전 대통령 분향소를 찾아 조문한 후 한 인터뷰에서였다. 반 총장은 이번 방북 추진이 최근 리수용 북한 외무상이 유엔에 두 차례 방문했을 때 논의됐고, 북한으로부터 긍정적인 신호가 와 진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애초 지난 15일 한국의 한 통신사가 11월 셋째 주 전격 방북이라 보도한 후 빠른 평양행이 예상됐다는 점에서 그로부터 보름이 다 된 지금도 일정 조율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아쉽다. 반 총장은 취임 후 여러 차례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위해 방북할 의사가 있음을 밝혀 왔다. 유엔 사무총장의 평양행, 그것도 한국인 사무총장의 방북이 가져다줄 긍정적인 파장은 상당히 크다. 실제 반 총장의 방북은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 관계 개선에 많은 긍정적인 흐름을 만들 수 있다. 북핵 문제의 해법이 난망하고 8·25 합의 이후 지지부진한 남북 관계의 돌파구 마련이 절실한 지금 반 총장의 평양행이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반 총장의 방북이 빨리 이뤄지길 기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반 총장의 평양행은 북핵 문제의 동력 찾기를 위해 시급하다. 2008년 12월 이후 무려 7년 동안 6자회담은 한 차례도 개최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3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실험 등으로 북한의 핵 능력은 보다 고도화하고 있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전략적 인내’라는 틀에 매여 꼼짝달싹도 하지 않고 있다. 중국 시진핑 지도부는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적극적 행보를 펼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도 북한의 선 핵포기에 포박돼 유연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북핵 문제가 교착상태에 빠진 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지금 시점에서 반 총장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북핵 문제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한반도 평화와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서도 반 총장의 평양행이 급하다. 지난 8월 ‘목함지뢰 사태’에서 목도했듯이 하나의 사건으로도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고조는 촉발될 수 있다. 8·25 합의로 관계 개선을 향한 발걸음을 디뎠지만, 지금 박근혜 정부와 김 제1위원장 체제가 남북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는 않고 있다. 서로 샅바싸움 속에 공을 넘기는 지루한 남북 관계다. 이 시점에서 반 총장의 평양행은 남북 최고지도자의 의중을 서로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가 평양 방문 후 서울에 와 박 대통령에게 김 제1위원장의 의중을 전달하고, 박 대통령의 남북 관계 개선 입장이 김 제1위원장에게 전달되길 바란다. 박근혜 정부 임기가 2년쯤 남은 상황에서 2016년 상반기까지가 남북 관계 개선의 이른바 ‘골든타임’이다. 그 후는 임기 말 정부가 적극적인 남북 관계 개선 정책을 펼치기 어렵다. 김 제1위원장 입장에서도 2016년 5월 초로 예정된 7차 노동당 대회에서 연설문에 남북 관계 개선의 획기적인 성과를 담아야 할 것이다. 이 골든타임에 반 총장이 방북하고, 남북한이 당국 간 회담을 개최하고,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단계적인 남북 관계 개선 ‘그랜드 프로그램’이 작동하길 바란다. 반 총장의 평양행이 늦어지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파리 테러 사태로 세계가 뒤숭숭한 가운데, 유엔 사무총장이 이 문제에 대한 바쁜 소임이 있다. 북핵 문제,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해소 문제, 북한 인권문제 등 평양에서 김 제1위원장과 다룰 의제를 둘러싼 줄다리기가 있다. 국내 정치적 상황이 반 총장을 압박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총장의 방북은 기정사실이다. 그의 평양행이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 관계 개선에 촉매 역할을 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빠른 방북을 위해 북한 당국과 유엔이 조율을 서둘러야 할 때다. 반 총장의 평양행이 한반도 평화와 남북 관계 개선의 노둣돌이 되길 기대한다.
  • YS ‘차분한 영결식’… 노제·추모제 생략

    YS ‘차분한 영결식’… 노제·추모제 생략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정은 26일 오후 1시 25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떠나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2시에 열리는 영결식을 마친 뒤 46년간 보금자리를 틀었던 동작구 상도동 사저(私邸)를 한 바퀴 둘러본다. 행정자치부는 25일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한 김 전 대통령의 국가장 계획을 밝혔다. 영결식엔 1만여명이 초대됐다. 김 전 대통령을 실은 영구차는 서울대병원을 떠나 경복궁~광화문~세종대로~충정로~공덕오거리~서강대교를 거쳐 국회 영결식장에 도착한다. 영구차가 국군 의장대를 사열하며 입장하면 조악대 연주와 함께 영결식에 들어간다. 김동건 아나운서가 사회를 맡는다. 집행위원장인 정종섭 행자부 장관의 고인 약력 보고, 황교안 국무총리의 조사, 김수한 전 국회의장의 추도사가 이어진다. 4대 종단이 참여하는 종교의식은 고인과 유족의 종교인 개신교에 이어 불교, 천주교, 원불교 순으로 엄수된다. 고인과 가까웠던 김장환 수원중앙침례교회 원로 목사가 개신교 의식을 치른다. 이어 고인의 생전 모습을 담은 영상자료를 상영하며 차분히 넋을 기린다. 노제와 추모제는 유족들의 뜻에 따라 지내지 않기로 했다. 영결식을 마친 영구차는 상도동 사저에서 15분간 머문 뒤 인근 김영삼대통령기념도서관 앞을 서행하며 고인의 넋을 다시 한 번 기리는 시간을 갖는다. 오후 4시 안장식이 열리는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장군 3묘역 우측 능선에 도착해 헌화 및 분향, 하관, 예배, 허토(許土·장례를 치를 때 봉분하기에 앞서 상주들이 흙 한줌씩을 관 위에 뿌리는 의식)로 국가장 절차를 모두 마친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김영삼 前대통령 국가장] ‘가택 연금’ vs ‘구속’ 역사적 악연… 전두환 前대통령 빈소 찾아

    [김영삼 前대통령 국가장] ‘가택 연금’ vs ‘구속’ 역사적 악연… 전두환 前대통령 빈소 찾아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25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에는 조문객 발길이 나흘째 이어졌다. 특히 김 전 대통령과는 질긴 악연이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은 본인이 직접 가거나 장남을 통해 영결식을 하루 앞두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정적’을 배웅했다. 전 전 대통령은 오후 4시쯤 굳은 표정으로 빈소에 들어섰다. 다소 야위었지만 몰려든 인파 속에서 혼자 거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비교적 정정한 모습이었다. 전 전 대통령은 방명록에 ‘고인의 명복을 기원합니다’라고 눌러 적은 뒤 영정 앞으로 향했다. 조심스레 목례와 분향을 한 뒤에는 차남 현철씨를 비롯한 유족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가며 조의를 표했다. ●전 前대통령 유족들 위로 후 10분 뒤 떠나 김 전 대통령과 전 전 대통령의 ‘35년 악연’은 10·26 사태 직후인 1980년 전후부터 시작됐다. 김 전 대통령은 12·12 사태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정권에 의해 상도동에 가택 연금을 당했다. 1983년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3주년을 맞아 23일간 단식투쟁으로 전두환 정권에 맞섰다. 취임 이후에는 하나회 척결을 통한 숙군을 단행했고, 1995년에는 전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을 군사반란 주도와 수뢰 혐의로 구속했다. 전 전 대통령은 헌화 뒤 접객실에서 현철씨와 유족들을 위로했다. 건강 상태를 묻는 현철씨에게 “나이가 있으니 왔다 갔다 하는 거다”라며 “이제 담배 안 피우고 술 안 먹고 그러니까 좀 나아졌다”고 답했다. 이어 “임의로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 자다가 싹 가버리면 나를 위해서도 그렇고 가족을 위해서도 그 이상 좋은 일은 없다”고 말했다. 10분간의 짧은 조문을 마치고 장례식장을 떠나던 전 전 대통령은 취재진을 향해 “수고들 하시라”라고 말했지만 ‘(조문을) YS와의 역사적 화해라고 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답변을 하지 않고 떠났다. 역시나 김 전 대통령 집권 당시 구속되는 악연을 가진 노 전 대통령은 장남 재헌씨를 대신 보냈다. 재헌씨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셨고 한때 아버님과 국정도 같이 운영하셨고, 이어서 대통령도 되셨다”며 “정중히 조의를 드리는 것이 도의라고 생각하고 아버님도 또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현철씨는 미소를 지으며 조문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YS 막내딸 “부친의 過 부각돼 안타깝다” 재헌씨는 아버지가 특별히 전한 메시지가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지금 거동하기 힘들기 때문에 가서 정중하게 조의를 표하라고 전하셨다”고 답했다. 노 전 대통령이 YS정부에서 겪은 ‘고초’에 대해서는 “(아버지께서) 그런 말씀은 딱히 없었다”고 말했다. 83세인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전립선암 수술 이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연희동 자택에서 10년 넘게 투병하고 있다. 영결식을 하루 앞둔 빈소에는 김 전 대통령과 크고 작은 인연을 간직한 사회 각계 인사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1987년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단일화 운동을 할 때 찾아뵙고 (단일화를) 요청드린 적이 있었다”며 “그 이후에 (김 전 대통령이) 그걸 못 해서 후배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말했다. 15대 총선에서 김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정계에 입문한 이른바 ‘YS키즈’ 정의화 국회의장도 독일 공식 일정을 일부 취소하고 급거 귀국해 빈소를 찾았다. 정 의장은 “외환위기에 대한 모든 책임을 고인에게 다 가하는 측면이 있었다. 젊은 사람들은 오해를 할 수가 있다”며 “(김 전 대통령이) 안 계셨으면 우리는 유신독재로 다 망치는 거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의 막내딸인 혜숙씨도 기자들과 만나 “모든 지도자는 공과 과가 있다”며 “과가 부각된 것이 안타깝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결혼 후 미국 워싱턴 DC서 생활해 온 그는 “평소 다정다감한 아버지였다”며 “업어주시기도 하고, 막내딸이니만큼 정말 사랑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로 활약한 야구선수 박찬호씨는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다고 조언해 주면서, 늘 겸손한 마음을 갖고 국민에게 사랑 받는 선수로 성장하라는 뜻깊은 말씀을 하신 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97년 11월 LA 다저스에서 빼어난 성적을 거둔 박씨를 청와대로 초청해 “올해 우리나라는 빛낸 가장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고 칭찬했었다. ●신동빈·권오준·삼성 사장단 등 재계도 애도 서거 첫날부터 빈소를 지켰던 ‘상도동계’ 김수한 전 국회의장,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 김기수 전 대통령 수행실장은 이날도 아침 일찍부터 조문객을 맞이했다.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서청원 최고위원, 정병국 의원도 나흘째 빈소를 지켰다. 재계에서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권오준 포스코 회장, 최상순 한화그룹 부회장, 이관우 전 한일은행장 등이 빈소를 찾았다. 유족들은 하루 앞으로 다가온 영결식을 준비하기 위해 문상객을 맞이하는 틈틈이 회의를 했다. 유족들은 26일 오전 10시 서울대병원에서 발인 예배를 가진 뒤 영결식이 열리는 여의도 국회로 이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통령 집안이 3대째 기독교 신앙을 지키고 있어 예배 형식으로 발인을 하는 것이다. 예배가 끝난 뒤 운구차는 서울대병원을 떠나 오후 2시쯤 국회에 도착할 예정이다. 전국에 설치된 220여개 분향소에는 지금까지 15만명이 넘는 추모객이 다녀갔다. 여의도 국회에 설치된 정부 대표 분향소에는 심상정 대표를 비롯한 정의당 의원들과 강신명 경찰청장, 박근희 삼성사회공헌위원회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주요 사장단 50여명 등이 방문하며 추모 행렬을 이어갔다. ●정상회담한 日 무라야마 전 총리도 분향소 찾아 해외에서도 조문이 이어졌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는 도쿄의 주일본 한국대사관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아 고인에 대한 예를 표했다. 김 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인연이 있는 무라야마 전 총리는 지난 22일 서거 소식이 전해지자 “그 시대 한국에 가장 잘 어울리는 대통령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26일 영결식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류전민(劉振民) 중국 외교부 부부장을 비롯한 중국 정부 조문단도 베이징 주중 한국대사관 1층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아 조문을 했다. 류 부부장은 방명록에 “침통한 심정으로 애도를 표시한다”(沈痛悼念)는 글을 남겼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김영삼 前대통령 국가장] YS에 대한 세대별 이미지

    김영삼(YS) 전 대통령에 대해 국민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는 세대별로 어떻게 다를까. 지난 22일 서거 후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 투쟁 이력과 리더십이 새롭게 부각된 가운데 그에 대해 세대별로 연상하는 각각의 키워드를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종합해 봤다. 김 전 대통령 서거 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갓(God·신)영삼 시리즈’, ‘YS는 못말려’ 등 생전 김 전 대통령의 직설 화법을 잘 나타내는 어록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를 퍼나르는 사람들은 주로 그의 재임기에 초·중·고교를 다녔던 청년 세대다. 이들은 김 전 대통령이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대통령도 아니데이. 죽어도 국립묘지 못 간다”라고 했던 일화 등을 퍼나르며 ‘사이다’(자신의 감정 등을 속시원하게 대신 해 주는 말), ‘패기갑(甲)’ 등 찬사를 보내고 있다. 회사원 전모(30)씨는 “어록이나 조선총독부 철거 등의 행보를 보면 ‘사이다’이지만 IMF(국제통화기금) 사태의 원인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공(功)과 과(過)가 ‘반반’인 인물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총학생회 선거를 맞아 대학들의 ‘선거 공백’으로 분향소 설치가 미진한 가운데 최근 고려대 커뮤니티 ‘고파스’ 등에는 분향소 설치를 촉구하는 글 등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러나 청년 세대에게는 YS가 동시대의 인물이 아니라 마치 ‘위인전 속 인물’로 느껴지는 시대적 거리감도 있었다. 회사원 김슬기(29·여)씨는 “책상에다 ‘나는 대통령이 된다’를 붙이고는 커서 진짜 대통령이 된 의지의 사나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위인전 속 인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임기 말인 1997년 정부가 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했을 당시 20~30대였던 중장년들에게 YS는 국내 외환위기로 상징되는 경제적 빙하기와 뗄 수 없는 인물로 각인돼 있다. 당시 군대를 제대해 갓 복학했던 회사원 김모(41)씨도 마찬가지다. 김씨는 “학교 선배들이 대기업에 합격해 입사를 기다리다 갑자기 취소돼 좌절하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 바람에 취업한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한턱 쏘는 훈훈한 미담 대신, 오히려 입사 취소된 선배들에게 후배들이 위로의 술을 사줘야 했던 살풍경한 기억이 떠오른다고 했다. 그는 “IMF 사태가 전적으로 YS 때문은 아니지만, 일정 정도의 책임은 있다고 본다”고 평했다. 주부 김모(50)씨도 “당시는 엄마들끼리 ‘누구 아빠, 회사 갔어요?’라고 묻는 게 민망할 만큼 실직 가장이 많았던 시기”라며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으니 한 시대가 비로소 지나간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노년층에게 김 전 대통령은 ‘영원한 민주화 투사’다. 서울광장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트렌치코트와 중절모 차림의 노신사들이 많았다. 분향소 설치 첫날인 23일 조문을 하러 1시간 30분 거리를 달려왔다는 허철행(78·경기 평택)씨는 “나는 경상도 출신도 아니고 개인적인 연고도 없지만 젊은 시절부터 줄곧 존경해 왔다”며 “신군부에 맞서 23일간의 단식 투쟁도 마다하지 않던 대쪽 같은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같은 날 분향소를 찾은 강대성(65·건축업)씨는 “본인이 남긴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는 말을 평생 온몸으로 실천해 온 분”이라며 “하나회 척결이나 금융실명제 실시 등 그분의 사나이다운 면모가 없었으면 오늘날 우리나라에 민주주의는 없었을 것”이라며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김영삼 前대통령 국가장] 문재인의 ‘조문 정치’… 무미건조한 ‘YS 껴안기’

    [김영삼 前대통령 국가장] 문재인의 ‘조문 정치’… 무미건조한 ‘YS 껴안기’

    ‘김영삼(YS) 전 대통령 조문 정국’에서 적극적으로 ‘상주 정치’를 펼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달리 문재인(얼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보여준 행보는 ‘두문불출’에 가까웠다. 문 대표는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난 22일 오전 서울대병원 빈소를 찾아 합동 조문한 이후 특별한 정치 일정을 잡지 않았다. 25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개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광주를 찾기 전까지 감기 몸살을 이유로 최고위원회의에 불참하기까지 했다. 당 안팎에서는 ‘문·안·박’(문재인·안철수·박원순) 연대 논란 등 당 내홍 상황 때문에 일부러 대외활동을 자제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우리 모두가 상주”라며 YS의 ‘정치적 아들’을 자처한 김 대표와 비교하면 “민주주의 정신과 철학을 기리고 계승하겠다”는 문 대표의 조문 메시지는 무미건조한 ‘모범답안’ 같은 느낌을 줬다. YS와 경남중·고교 선후배 사이이자 동향 후배인 인연을 밝히기도 했지만, YS를 야당 역사의 한 축으로 재평가하려는 움직임 등에 대한 적극적인 설명은 부족했다. 오히려 이번 조문 정국에서 주목받은 야권 인사는 빈소를 계속 지킨 손학규 전 상임고문이었다. 당 일각에서는 문 대표가 좀더 적극적이고 반복적으로 ‘YS 껴안기’를 시도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내년 총선에서 부산 출마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 비춰 보면 PK(부산·경남) 지역 맹주였던 김 전 대통령의 서거는 PK에 기반하고 있는 자신의 존재감을 알릴 좋은 기회일 수 있었다. 당 관계자는 “이번 조문 정국은 문 대표로서는 자신의 정치적 출발이 PK임을 대외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자리였다”면서 “김 전 대통령의 민주주의 업적을 강조하려면 부마항쟁 같은 예라도 들었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김영삼 前대통령 국가장] ‘영웅적 지도력’ 아닌 협치의 시대… 진영 탈피한 통치능력 절실

    현대 한국 정치사의 두 거두,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양김(兩金) 시대’가 막을 내리며 “영웅적 리더십의 시대는 갔다”고 한다. 민주화·산업화 기반이 닦이고 절차적 민주주의는 안착했지만, 2015년 대한민국은 여전히 리더십 부재에서 비롯된 사회 갈등에 허덕이고 있다. 포스트 양김 시대로 접어든 지 13년째, 대한민국이 갈망하는 새로운 리더십은 무엇일까. YS 정부에서 최장수(2년 7개월) 공보수석을 지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25일 “지난 시절보다도 정치 지도자들의 자기 희생적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면서 “공동체나 국가 전체의 이익보다 자신이 속한 정파의 이익에만 매몰되다 보니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 도덕적 권위가 모두 땅에 떨어졌다”고 비판했다. 특히 현 19대 국회는 말로만 혁신을 외칠 뿐 여야 간 소통·통합은 외면한 채 서로 ‘상대 눈에 든 티끌’ 탓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윤 전 장관은 “이제는 한 사람의 영웅적 지도자가 사회를 끌고 가는 시대가 아닌 뉴 거버넌스, 협치의 시대”라고 규정했다. 이어 “국가와 시민사회, 사회 각 영역 간 협치의 리더십이 필요한 시대인데 우리 정치인들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훈련이 되어 있질 않다”고 지적했다. 이념 투쟁에 얽매였던 세대들이 국회로 활동무대만 옮겼을 뿐 사고의 전환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윤 전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 역시 입법부 설득 없이 전형적으로 혼자 끌고 가는 리더십”이라고 꼬집었다. YS가 노동법 날치기 처리 등 정국 경색의 고비 때마다 야당 총재와의 영수회담을 통해 돌파했던 사례도 회자된다. YS는 집권 시절 10차례 영수회담 테이블에 나왔었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이런 통 큰 소통이야말로 오늘날 복원해야 할 지도자의 덕목”이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YS는 정치적 난제를 국회를 통해 풀려고 했던 의회주의자였다”면서 “야당을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여야를 초월한 해법을 모색했던 점이야말로 현재 정치권에 아쉬운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YS·DJ 모두 국민과의 대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것도 마찬가지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재 여야 모두 진보·보수의 이분법적이고 진영지향적인 사고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무조건 이끌고 가는 지도자상이 아니라, 상대를 인정하고 보듬을 줄 아는 ‘코디네이트(coordinate) 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YS의 유지인 ‘통합과 화합’은 곧 상대방을 인정할 줄 아는 공감과 같은 뜻”이라고 강조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소장은 “양김의 리더십이 위기 돌파 리더십이었다면, 앞으로는 평시 상황을 관리하고 위기에 대처하는 리더십, ‘위기관리형 리더십’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월호 사태 같은 국가적 재난에 신속 대응하고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치적 영웅과 별개로 ‘전 계층을 아우를 사회의 큰 어른이 없다’는 점도 지적됐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YS의 정치적 후예라고 자처하는 사람은 많아도 포용하고 소통했던 그의 리더십을 따르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다”고 질책했다. 그러면서 “차기 지도자 욕심만 낼 게 아니라 민주주의 3.0 시대에 걸맞은 소통의 리더십을 실현하기 위해 불쏘시개가 되겠다고 나서야 한다. 그런 희생적 면모를 보이는 사람이야말로 큰 장작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YS는 “머리는 빌릴 수 있다”고 했지만, 이제는 정치인 스스로 국가를 운영하는 통치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배종찬 리서치 앤 리서치 본부장은 “정치·경제·사회적 성숙기에 접어들수록 전문화되고 훈련된 리더십이 등장해야 한다”며 “젊은 세대의 일자리, 고령화 세대의 복지 등 이율배반적인 가치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정무와 통치능력을 동시에 갖춘 지도자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장을 맡아 행정능력을 키우는 형태가 새 리더십의 훈련 형태로 부각될 전망이다. 미국 존 F 케네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시대정신을 간파했던 지도자로 꼽힌다. 배 본부장은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어젠다가 무엇인지 꿰뚫고, 국민 눈높이에 맞춰 민심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 한 예가 통일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YS 유언 ‘통합·화합’ 강조… 사회 아픈 문제 제대로 짚어”

    “YS 유언 ‘통합·화합’ 강조… 사회 아픈 문제 제대로 짚어”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서울신문이 일관되게 강조한 키워드는 그가 유언으로 남긴 ‘통합과 화합’이었다. 우리 사회의 가장 아픈 문제를 제대로 짚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김광태 온전한커뮤니케이션 회장·전 삼성전자 전무) “파리 테러 이후 국내에서도 테러 위험이 주요 이슈로 떠올랐는데 테러방지법 입법을 둘러싼 논란을 ‘3대 포인트’로 정리해 표와 함께 소개한 기사가 좋았다.”(홍현익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 지난 한 달 동안의 서울신문 보도에 대해 평가하고 개선점을 모색하는 독자권익위원회(위원장 박재영 서울대 행정대학원 객원교수) 회의가 25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본사 회의실에서 열렸다. 78회째인 이번 회의는 ‘메르스 사태 보도’, ‘성완종 리스트 사건 보도’ 등 특정한 주제를 정해 집중적으로 논의했던 지금까지의 회의 틀을 벗어나 정치·사회·경제·국제·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권익위원들이 자유롭게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권익위원들은 ‘광화문 민중총궐기 대회’,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파리 테러’ 등 국내외 이슈에 대한 서울신문의 보도 태도와 지면에 대해 평가와 비판, 제언을 했다. 박 위원장(전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은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해 재미있는 에피소드나 공적 위주의 기사도 좋지만, 김 전 대통령 시대의 밝은 면과 함께 어두운 면을 다각도로 분석해서 우리 세대가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지를 제시하는 미래지향적인 보도에 초점을 맞추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영찬(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위원은 문화면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그는 “문화 기사에 할애하는 지면이 한정적이고 기획기사가 적은 게 아쉽다”며 “젊은 독자층에게 접근하려면 모바일 플랫폼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문화 저널리즘을 구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를 위해 정치·경제·사회와 맞닿아 있는 문화 이슈에 대한 심층취재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상제(한국금융연구원 기획협력실장) 위원은 “서울신문 ‘현장행정’ 시리즈와 같이 행정 및 지방자치단체 분야 보도에 강한 서울신문의 장점을 살릴 필요가 있다”며 “외부 정책연구소와 연계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 기획기사가 실제 행정 개혁으로까지 이어지는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광태 위원은 “세계보건기구(WHO) 가공육 발암물질 발표 논란 등 국민의 혼란을 야기한 주제에 대해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현상 묘사에만 그친 것은 아쉽다”며 “근본 원인을 진단하고 나름의 대안까지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기가 어려울수록 독자들은 경제면을 관심 있게 읽으며 전략을 세우고 싶어 한다”며 “경제·산업 분야에서 단순한 정책 소개 기사보다는 독자에게 와 닿는 가계경제나 재테크 전략 등을 주제로 한 심층기사가 많이 보였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홍 위원은 “지난 14일 광화문 폭력시위와 과잉진압 논란과 관련해 단순한 현상 보도보다는 왜 시위가 벌어졌고 어떻게 과격한 형태로 발전이 됐으며, 어디까지가 합법의 영역인지 등 상황의 이면까지 객관적으로 짚어줘 독자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도와주었으면 한다”고 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김영삼 前대통령 국가장] 조의 표하는 시민들

    [김영삼 前대통령 국가장] 조의 표하는 시민들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나흘째인 25일 서울 태평로 서울광장에 마련된 고인의 분향소에서 한 시민이 상주 역할을 하는 분향소 관계자들에게 절을 하며 조의를 표하고 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김영삼 前대통령 국가장] 김무성의 ‘상주 정치’… YS 정치적 자산 물려받나

    [김영삼 前대통령 국가장] 김무성의 ‘상주 정치’… YS 정치적 자산 물려받나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상도동계의 막내’였던 새누리당 김무성(얼굴) 대표가 상주 역할을 자처하면서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자산을 물려받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대표가 서청원 최고위원 등 친박(친박근혜)계와의 공천권 갈등을 당분간 잠재우면서 YS의 정치적 기반인 부산·경남(PK)에서 정치적 위상을 높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대표는 25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대인의 사고방식을 가진 그분은 오로지 애국과 민생을 최우선으로 두었고 국민에 대한 사랑으로 통합과 화합의 리더십을 제시해 주었다”고 했다. 또한 페이스북에 올린 추도사에서 “위대한 개혁의 아이콘으로서 보수와 진보, 좌와 우의 이분법적 사고로 표현할 수 없었던 큰 어른이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중요한 회의 일정 외에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빈소에서 상주를 자처하고 있다. 김 대표와 서 최고위원이 서로 상주 역할을 자임하면서 친박계와의 공천권 갈등이 소강 국면에 들어선 것은 김 대표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새누리당 내 공천특별기구 구성과 조기 공천심사위원회 출범 여부를 놓고 계파 갈등 양상에 직면했던 김 대표는 김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그의 유훈인 ‘통합’과 ‘화합’을 강조하며 통 큰 정치인의 이미지를 구축하려 노력하고 있다. 또한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이라는 점을 부각함으로써 PK 지역에서 YS의 정치적 자산을 물려받는 후계자로서의 상징성을 얻을지도 관심을 모은다. 김 대표로서는 최근 ‘대구·경북(TK) 물갈이론’이 PK 지역까지 번진 것이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YS의 서거로 PK에서 정치적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김 대표는 지난 22일 빈소를 단체로 방문한 부산 지역 의원들과 대화하던 중 TK 물갈이론이 화제에 오르자 “물갈이, 물갈이하는 사람들이 물갈이 된다”고 뼈 있는 농담을 던졌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김 대표가 PK 지역에서의 정치적 위상 강화를 위해 ‘빈소 정치’를 활용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김영삼 前대통령 국가장] ‘건강 악화’ 朴대통령, 영결식 참석 끝까지 고심

    박근혜 대통령이 건강상의 이유로 26일 국회에서 거행되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 참석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은 열흘간의 다자회의 해외순방 강행군으로 감기와 체력 저하 증세가 나타나 청와대 참모진들이 영결식 참석 여부를 고심하고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25일 “해외 순방 마지막 날인 지난 22일 점심과 저녁도 거른 채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 일정을 소화하는 등 강행군으로 피로가 누적됐고, 감기 증세가 크게 악화됐다”면서 “영하권 날씨에 1시간 30분짜리 야외 영결식은 무리일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고 전했다. 청와대는 이날을 포함해 이번 주 예정된 외부 일정을 취소했다. 박 대통령은 앞서 23일 새벽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뒤 이날 낮 빈소를 찾았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첫 국가장인 데다 현직 대통령들이 전직 대통령의 서거 때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영결식에 참석해 온 점을 들어 참석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때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부인 김윤옥 여사와 함께 국회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조문했고 영결식에도 참석했다. 다만 같은 해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는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정부에 책임을 물으며 분위기가 격앙되자 노 전 대통령 측이 참석을 만류했다. 2006년 10월 최규하 전 대통령의 서거 때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빈소에 이병완 비서실장을 보내 유족과 직접 통화하며 위로의 뜻을 전했으나 경복궁 앞뜰에서 열린 국민장 영결식에는 직접 참석했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서동철 칼럼] 낭만이 있던 정치를 떠나 보내며

    [서동철 칼럼] 낭만이 있던 정치를 떠나 보내며

    김영삼 전 대통령(YS)이 서거한 직후 TV에 비친 빈소의 표정은 뭔가 모르게 드라마적인 데가 있었다. 한다 하는 정치인들이 다투어 찾아와 ‘나는 그의 정치적 아들’이라거나 ‘그는 나의 정치적 대부’라고 고인을 추모하는 장면부터가 현실이 아니라 영화적 설정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YS의 오른팔로 불렸던 최형우 전 의원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빈소에 들어서면서 대성통곡을 하는 모습도 그랬다. 개인적으로 ‘정치적 보스’를 정성을 다해 추도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왜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눈물도 흘리지 못했을까’하며 회한에 잠길 지경이었다. 일종의 ‘시대착오’를 느끼게 한 것은 빈소의 표정뿐만이 아니다. YS의 삶을 다룬 보도가 쏟아지면서 공(功)을 부각시켰든, 과(過)를 강조했든 보고 읽으며 ‘우리 정치에도 저런 모습이 있었나’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YS가 오랜 민주화 투쟁에 이어 3당 합당이라는 도박으로 대통령에 오른 과정을 빠짐없이 지켜본 세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YS의 인생역정이라고 해봐야 별것이 있겠느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TV에는 내가 기억하는 바로 그 장면이 비치고 있건만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은 뜻밖이었다. 오늘날 정치판에서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로망’이 담겨 있기 때문은 아닐까 짐작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반독재 투쟁 시절 당시 YS 모습이 오늘날 새롭게 느껴지는 것도 이유는 있다. 야당 총재 시절 YS의 반정부 발언을 날것 그대로 언론에서 접하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직을 박탈당하고 했다는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유명한 발언이 곧바로 보도가 이루어졌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니 “암흑적인 정치, 살인 정치를 감행하는 이 정권은 필연코 머지않아서 쓰러질 것”이라고 했던 ‘예언’도 당시에는 직접 들을 수 없었을 개연성이 크다. 민주화에 기여하지 못한 사람에게 YS의 용기는 부럽고도 고맙다. 한편으로 “서슬 퍼런 시절 주변을 움직이게 한 것은 YS의 인간미”라는 회고도 인상에 남는다. 측근이 실수를 저지르면 “한강물에 뛰어내려라”고 호통을 치기도 했지만, 상도동 집에 가면 YS는 늘 ‘밥 묵고 가래이’, ‘고생 많재’라며 다독여줬다는 것이다. 이런 인간미와 더불어 YS의 시대를 낭만의 시대로 기억하게 하는 요인의 하나는 유머집이다. “고생하던 부인이 퍼스트레이디가 되었다”는 덕담에 “집 사람은 절대 세컨드 아이다”했다는 유머가 대표적이다. 이제는 진부하기까지 하지만, 당시는 일간신문에서 대통령 부인의 사진을 다른 사람의 사진으로 잘못 썼다고 담당기자가 사표를 내는가 하면 대통령 부인의 이름이 발매된 신문도 아닌 교정지에서 한 자가 틀렸다고 시말서를 써야 했던 시대가 불과 얼마 전이었다. ‘YS는 못 말려’가 나온 것은 문민정부 출범 직후인 1993년 4월 초순이었다. 문화부 출판담당 시절 책이 나왔음을 알리는 간담회에 참석한 인연이 있다. 유머집에는 안기부장의 국무회의 불참에 YS가 “장관들이 대통령과 회의하는데 부장이 어떻게 자리를 차지하노”라고 일갈하는 대목도 있다. 안기부가 아니고 다른 기관이었다면 충분히 했을 만한 실수라고 시중에서는 키득댔다. 실제로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자 “차씨”라고 한 적도 있다. 이 유머집은 출판사의 모험이 아니었다. 출판사가 YS 측근과 소통하며 만든 책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지극히 교과서적인 정치 홍보 전략이지만, 오늘날의 정치 문화라면 용납할 수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YS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외환위기를 초래하며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했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내가 하나회를 척결하지 않았다면 김대중도, 노무현도 대통령이 될 수 없었을 것”이라는 회고도 이제는 가볍게만 들리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평가는 이제 역사에 맡길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싸울 때는 싸우고 웃을 때는 웃는 인간미 있는 정치마저 역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낭만이 있는 정치가 이루지 못할 꿈이어서야 되겠는가.
  • ‘민주화·큰 인물’ 부각 속 정치적 함의 압축

    ‘민주화·큰 인물’ 부각 속 정치적 함의 압축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빈소에서는 ‘방명록 정치’가 한창이다. 특히 정치권 인사들이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며 남긴 메시지에는 정치적 함의가 가득했다. ‘사자성어형’, ‘업적 칭송형’, ‘명복 기원형’, ‘에피소드형’ 등 그 형태도 다양했다. 어떻게 하면 남다른 메시지를 남길까 고민한 흔적도 엿보였다. 여권 인사들은 대체로 김 전 대통령이 ‘큰 인물’이었다는 점을 부각했다. 이인제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역사의 거인, 영면하소서’라고 남겼다. 박찬종 변호사는 ‘直情徑行(직정경행·생각한 것을 꾸밈없이 행동으로 나타냄)의 신념의 지도자’라고 적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길 없는 곳에 새 길을 열고 문 없는 곳에 큰 문을 여신 시대의 큰 별께 바칩니다’라고, 홍준표 경남지사는 ‘담대함으로 대한민국을 개혁하신 업적을 우리 국민들은 모두 기억합니다’라고 썼다. 야권 인사들은 주로 ‘민주화’라는 업적을 기리는 데 초점을 뒀다. 한화갑 한반도평화재단 총재는 ‘각하의 정치 역정은 한국 현대사의 한 부분입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는 24일 ‘영원한 민주주의 지도자’라고 적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이 땅에 민주화의 역사를 만든 큰 별’이라고, 같은 당 안철수 의원은 ‘고인의 민주화에 대한 신념과 헌신은 국민들 가슴속에 오랫동안 기억될 것입니다’라고 썼다. 천정배 의원은 ‘군정 종식의 역사적 위업을 남기신…’ 이라며 민주화를 강조했다. 여권으로 정계에 입문했다가 지금은 야권에 몸담고 있는 손학규 전 새정치연합 상임고문은 ‘민주 정신과 개혁 정신은 우리 역사에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라는 방명록 글귀로 김 전 대통령의 업적과 인물 됨됨이를 동시에 칭송하기도 해 눈길을 끌었다. ‘미스터 쓴소리’ 조순형 전 의원도 ‘한국 민주주의를 지켜 낸 우리 시대 거인’이라고 쓰며 양쪽을 아울렀다. 방명록은 개성 넘치는 내용들로 넘쳐났다. 수천명이 펜을 잡았지만 똑같은 글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음수사원’(飮水思源)이라는 사자성어로 강렬한 울림을 던졌다. 물을 마실 때 그 물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하라는 의미로,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가 김 전 대통령을 비롯한 선대 정치인들의 투쟁과 희생의 산물임을 잊지 말라’는 정치적 메시지를 단 네 글자에 압축해 담았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민주주의를 일으킨 천하장수’라고 표현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통합과 화합의 그 말씀을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쓰며 김 전 대통령의 유훈을 되새겼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김 전 대통령의 좌우명을 인용해 ‘大道無門(대도무문)의 그 길 우리가 따르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자신의 이름 외에 가장 짧은 메시지를 남긴 인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라고만 썼다. 일반 시민인 박종숙씨는 애도의 편지로 방명록의 한 페이지를 가득 채웠다. 권철현 전 주일대사는 ‘저를 정계로 이끌어 주셨던 각하. 감사합니다’, 이낙연 전남지사는 ‘아침에 가면 사모님의 시래깃국, 밤에 가면 대통령님의 와인을 주셨던 상도동을 기억하며 감사드립니다’라고 추억담을 기록했다. 이 밖에 박근혜 대통령과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 등 방명록 작성을 하지 않은 정치권 인사도 적지 않았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YS의 미소… 사랑… 투쟁… 고초…

    YS의 미소… 사랑… 투쟁… 고초…

    한국 현대 정치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우리 시대 ‘큰 별’이 졌다.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은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평생을 반독재와 민주화 투쟁을 위해 헌신한 민주화운동의 거목이었다. 서울대 재학 시절에는 65년 평생의 반려자였던 손명순 여사를 아내로 맞았지만 그의 앞날에는 기나긴 반독재 투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1954년 5월 3대 민의원에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서 그가 걸어온 길은 민주화운동 그 자체였다.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민주화를 요구하며 23일 동안 단식 투쟁을 하는 등 신념의 정치인으로 한국 정치사에 굵은 획을 그었다. 화보를 통해 현대 정치사의 산증인이었던 김 전 대통령의 과거 발자취를 돌아본다.
  • YS 유훈에 갈등·반목으로 답하는 정치권

    김영삼 전 대통령이 2013년 붓글씨로 남긴 유언이 ‘통합(統合)과 화합(和合)’이었던 것으로 전해졌지만, 여야 정치권은 여전히 반목과 갈등으로 답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24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을 자처하지만 위상만 노린 것”이라며 “역사 바로 세우기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로 이어져야 한다”고 공격했다. 전날 김무성 대표가 “김 전 대통령은 고통과 인내를 요구하는 민주화 투쟁 속에서도 국회를 최우선으로 챙기는 진정한 의회주의자였다”며 경제활성화·노동 개혁 법안 처리를 강조한 데 대한 반응이었다. 다음달 9일로 마무리되는 19대 마지막 정기국회는 원내대표단의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면서 ‘빈손’으로 끝날 우려가 제기된다. 새누리당 원유철, 새정치연합 이 원내대표와 양당 정책위의장·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누리과정(영유아 무상보육) 예산 등 정기국회 현안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댔지만 의견 차가 팽팽했다. 원 원내대표는 “누리과정 예산은 기본적으로 교육청 예산이므로 교육교부금에서 지원하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이 원내대표는 “2조 400억원의 누리과정 예산에 대해 국가가 책임을 방기한다면 어린이집 보육료, 교사 처우 등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다”며 국고 지원을 주장했다. 또한 이날 회의에서 여야는 테러방지법과 북한인권법을 회기 내 처리키로 했지만 이견은 여전하다. 여야가 26일까지 처리하기로 약속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과 경제활성화·노동 개혁 법안 등도 회기 내 처리가 불투명하다. 원 원내대표는 “본회의(26일)가 코앞인데, 새정치연합은 FTA 비준 동의나 국제의료법을 비롯한 (경제활성화) 법안 논의에 비협조적이라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새정치연합 최재천 정책위의장은 “정부·여당은 시장·수출 만능주의 맹신자로 전락하고 있다”며 무역이익공유제 실시와 농어민 피해 보전 대책 마련을 주장했다. 20대 총선의 선거구 획정 역시 여야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총선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되는 다음달 15일까지 선거구 획정이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온다. 여기에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논란까지 가세했다. 세월호 특조위가 전날 박근혜 대통령의 참사 당일 7시간 행적을 조사하기로 하면서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지속적인 대통령 흠집 내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야당은 누리과정 예산의 국고 지원과 세월호 특조위 기간 연장이 이뤄지지 않으면 국회 일정을 ‘보이콧’하겠다는 입장이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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