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김영삼
    2026-02-02
    검색기록 지우기
  • 소환조사
    2026-02-02
    검색기록 지우기
  • 김정은
    2026-02-02
    검색기록 지우기
  • 고소인
    2026-02-02
    검색기록 지우기
  • 선관위
    2026-02-0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8,912
  • [특별기고] 前·現職 대통령들께 드리는 충언

    요즘 언론이나 항간에는 전·현직 대통령들에 대해 여러가지 말들이 무성하다.나는 여론에 편승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전·현직 대통령들께 사심 없는 충언을 드리고자 한다. 먼저 최규하 전대통령께. 노후를 평안히 보내고 계시는 최전대통령은 역사와 국민 앞에 진솔한 증언을 통해 당시 하야와 5공 집권과정에 대한 진상을 밝혀야 합니다.회고록을준비하고 계시다니 회고록에라도 명확한 진상을 공개하실 것을 국민은 바랍니다. 전두환 전대통령께. 폐일언하고 5·18의 영령들과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그리고 지금도 고통으로 신음하는 부상자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사과의 말 한마디쯤 해주시는 것이어려운 일인지요.광주시민은 오랫동안 따돌림과 차별을 당해 왔지만 지역감정 해소와 동서화해를 호소하며 국민화합을 위해 마음을 열었습니다.망국지병인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 누군가 앞장서 풀어야 하겠기 때문입니다.한을삭이고 통분을 억누르면서 우리는 화해하자,용서하자,지역감정을 해소하자,동서화합을 이루자,구걸하듯이 손길을 내밀며 진정한 화해의악수를 애원해왔습니다.사죄와 사과는 강요할 수 없듯 화해와 용서도 강요할 수 없는 것임을 아린 마음으로 체험했습니다.어렵지만 동서화합 차원에서 마음을 비우고사과하기를 기대합니다. 노태우 전대통령께. 다른 전직 대통령을 당신 생전에 평가하는 발언은 현명하지 못합니다.다른분도 더한 말로 당신을 비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상호비방하면 똑같이 명예만 실추되고 위상만 떨어집니다.국민들은 대통령에 대한 냉소와 당혹과 황당감으로 상처를 받습니다. 김영삼 전대통령께. 당신의 아호처럼 ‘거산(巨山)’ 같은 지도자로 남아 주도록 국민은 기대했습니다.그러나 IMF로 기업인과 국민에게 큰 실망과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당신이 남겨놓은 실패의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국민과 현 정부는 안간힘을쏟고 있습니다.지역감정 유발로 힘을 분산시켜서는 안됩니다.당신의 취임사에서 5·18 선상에 놓였다는 문민정부는 5·18 진상과 명예회복과 보상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공소권 없음’이라던 ‘성공한 쿠데타’도 주모자들을 법적 처리했습니다.그때 당신의 용단을 환영했습니다.그러나 요즈음 당신의 행보는 결코 환영받을 수 없습니다.당신의 현직 대통령에 대한 비방과 독재자 운운하는 발언은 당신에게도 국가사회에도 결코 이롭지 않습니다.선진국의 전직 대통령들처럼 참고서가 될 수 있는 회고록 저술에 전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대중 대통령께. 부도 직전의 나라살림을 물려받아 노심초사하신 결과 일년반 만에 위기에서 벗어나 회복세로 접어든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반DJ세력이 아직도사사건건 과한 비판과 공격을 가하고 퇴임대통령까지 원색적 비난을 마구 퍼붓는데도 의연한 바위처럼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존경을 받을 만한 지혜로운 모습입니다. 그러나 공조와 화합의 기치 아래 보수세력,비민주 인사,독재 전과자들,반개혁 기득권세력,반개혁 언론까지 수용하고 아우르는 것은 DJ의 개혁 이미지를 흐리게 하고 여타 정권과의 차별성과 참신성이 희석된다고 우려합니다. 지역감정 해소와 국민화합,용서는 대통령의 평생 소신이요,덕목인 것도 이해합니다.한 신앙인으로서도 사랑과 용서를 한결같이 실행하는 것은 복음정신입니다.그러나 ‘박정희 전대통령 기념관 건립’ 지원을 약속하는 것은 화합과 화해의 차원이 아닌 역사왜곡이라는 비난이 빗발치고 있습니다. 경제개발과 근대화는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하겠지요.그러나 그것으로 상쇄할 수는 없습니다.5·16쿠데타,4·19혁명 무효화,비민주 일인 독재 장기집권,지역차별 심화,정의와 인권·자유 탄압에 대한 역사적 반성과 조명없이는국민들에게 가치관의 전도와 선악의 무분별을 가져다 줄 뿐이라고 우려합니다.정치적 역학 관계와 복잡한 복선이 얽힌 현실에서 힘과 지혜를 겨루는 것이 아슬아슬하게 비쳐지는 데 통치의 지혜와 힘을 다수 국민들로부터 얻고모으기 바랍니다.국민들은 국민의정부의 제2건국의 성공을 열망하고 기대에차 있습니다.
  • [특별기고]‘민추협’15년의 불행

    1980년대 ‘암흑기’를 살면서 민주주의를 생각해본 사람이면 ‘민추협’으로 더 잘알려진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기억할 것이다.한줄기 빛이자 희망이었고 우리들 자존심의 회복이었다. 민주주의가 질식상태에 빠져 있던 전두환정권의 폭정 아래서 ‘5·18 광주민중항쟁’ 4주년이 되는 날 출범했으니 지금으로부터 15년전 일이다. 지금에 와서 불행이란 말을 붙여 15년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건 아픈 부분을들춰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민주세력을 위한 교훈으로 삼기 위해서다. 민추협을 결성한 목적은 민주세력이 대동단결해 ‘군정’을 종식시키자는데 있었다고 할 수 있다.민추협의 정치권내 세력은 이른바 동교동계와 상도동계 양대 인맥으로 이뤄졌으며 민주세력의 단결이란 곧 이 양대 인맥의 단결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주효해 1987년 6월투쟁이 일어났으며 대통령직선제를 받아낼 수 있었다.그러나 그해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는 민주세력의 후보 단일화에 실패해 그 결과 직선제로 노태우 군부정권이 성립됐다.민추협의 첫번째 불행이었다고하겠다. 1988년 총선 결과 여소야대 국회가 되었고 이 때문에 노태우정권은 같은 군부정권이면서 ‘5공청산’이란 것을 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전두환 전대통령을 백담사로 귀양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민추협 세력 중 상도동계가 12·12 신군부세력인 전두환·노태우 중심 정당,5·16 구군부세력인 김종필 중심 정당과 합쳐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노태우 군부정권 아래서 여당이 됐으니 민추협의 두번째 불행이었다. 그후 민추협의 상도동계는 우여곡절 끝에 정권을 잡은 뒤 문민정부를 자칭했다.그러나 군부정권을 뒤엎거나 선거로 맞서서 이긴 것이 아니라 그것과의 타협에 의해서 성립된 문민정권이었다. 김영삼 문민정권 5년간의 정치적 업적 여부는 그만두고라도 민추협 세력이이제 상도동계의 여당과 동교동계의 야당으로 완전히 나누어지게 됐으니 세번째 불행이었다고 하겠다. 1997년 대통령선거 결과 상도동계의 문민정부에 이어 어렵사리 동교동계의‘국민의 정부’가 성립됐다.선거에 이겨서 성립되기는 했으나 단독으로 이기진 못하고 5·16구군부 핵심세력이 이끄는 충청도 세력과 연합함으로써성립할 수 있었다. 투쟁대상이었던 군사정권 세력과 상도동계같이 합당을 했건 동교동계처럼연합을 했건 민추협은 두번씩이나 정권을 성립시켰다는 점에서 대단한 정치적 저력을 가진 단체였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민추협 동교동계 중심 국민의 정부가 성립한 지 1년이 되는 지금 5·16 구군부세력은 정권 핵심부에 건재한 채 다시 내각책임제를 하자며 국민의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국민의 정부는 5·16 군사쿠데타 정권의 역사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고,12·12 군사반란후 5·18 광주항쟁을 피로써 탄압해 정권을 잡았던 신군부세력은 국민의 정부가 묵인 내지는 원조한다는 풍문 속에서 정치 현역으로 복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민추협 발족 15주년을 기념하는 날 상도동계의 김영삼 전대통령은 민주세력의 재단결을 말하기는 고사하고 동교동계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를 4·19전 이승만정권과 같은 독재정권이라고 비판했다.민추협의 네번째불행이라 하고도 남을 것이다. 민추협이 걸어온 길은 흔히 권력 획득만이 최고 목적이라는 ‘정치판’에서는 예사로운 일일지도 모르겠다.그러나 역사의 눈으로 보면 크게 비판받아야 할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姜萬吉 고려대 명예교수]
  • 金대통령 러시아·몽골 순방…韓·러 정상회담 전망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27일 러시아 방문은 4강외교의 ‘화룡점정(畵龍點睛)’ 수순이다. 한반도 4강 정상외교가 1차로 마무리됨과 동시에 한반도 정세가 발전적 국면을 맞게될 공산이 크다는 의미다.김대통령도 최근 “보리스 옐친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4강외교를 마무리하면 남북관계에 일대 진전이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표명했다.미·일·중 정상회담을 통해 다져진 대북 포용정책에대한 지지를 러시아로부터 이끌어내면서 양국간 경제협력 관계를 보다 공고히 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특히 이번 러시아 방문은 한·러관계 복원이라는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올 1월 홍순영(洪淳瑛)외교부장관의 러시아 방문을 계기로 관계개선의 실마리를 찾았으나 아직 ‘완전 복원’의 단계는 아닌 듯하다. 지난 94년 6월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모스크바 방문 이후 ‘내리막길’을걸었던 양국관계가 이번 방문을 계기로 21세기 동반자관계로 ‘자리매김’하는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러시아측이 요구해온 ‘6자회담’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한반도 문제에 국한된 4자회담과 달리 남북한과 미·중·러·일 등 한반도 주변국들이 모두 참여해 동북아 안보협력의 틀을 마련하겠다는 복안이다.물론 북한의 거부와 중국의 소극적 반응이 걸림돌이지만 이번방문을 계기로 급진전될 수도 있다는 것이 외교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최근 러시아 국가두마(하원)에서의 옐친대통령 탄핵안 부결과 스테파신 신임총리의 의회승인을 계기로 옐친대통령의 ‘레임덕 현상’도 어느정도 수습되는 분위기다.다만 건강이 좋지 않아 흑해 연안의 휴양도시로 휴가를 떠난게 변수다.그럼에도 28일 정상회담은 예정대로 모스크바에서 열릴 것이라고밝히고 있다. 양국간 경제협력도 이번 방문의 주요 테마다.90년 9월 수교 이후 양국간의적지 않은 우여곡절도 사실상 경협에 대한 양측의 ‘환상적 기대’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는 분석이다.이 때문에 양국의 새로운 동반자관계 구축은서로의 ‘거품’을 걷어내면서 실질적 협력관계로 나아가게 한다는 지적이다.이 때문에 김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러시아의방대한 자원 및 과학기술과 우리의 자본·생산기술의 효율적 결합을 통해 상호간 실질적 ‘결합’을 강조할 예정이다. 오일만기자 oilman@
  • 교수출신 관료‘중도하차’잦다

    관계(官界)에 발을 디뎠던 학계·교수 출신들이 잇따라 물러나고 있다.김태동(金泰東)전청와대경제수석에 이어 윤원배(尹源培)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도 25일 경질됐다.윤부위원장은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리는 국제증권위원회기구(IOSCO) 연차총회에 참석차 출국했다가 25일 오전 경질을 통보받았다. 학계·교수 출신들이 단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3공 시절 서강학파를 이끈남덕우(南悳祐)전총리나 5공때 ‘경제대통령’으로 명성을 떨치다 아웅산 폭파사건에서 순직한 김재익(金在益)전청와대경제수석처럼 성공한 케이스도 있으나 관료조직에 완전히 뿌리를 내린 사람은 많지 않다. 상대방을 배려하기보다 일방통행식 자기주장을 하는 게 단점으로 지적된다. 조직 내부에서의 반발도 있지만 서열위주로 짜여진 관료사회에 익숙지 못한탓이기도 하다. 윤전부위원장의 경우 한국은행 조사역 출신이지만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와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장을 거치면서 강의식 연설이 몸에 뱄다는 평이다. 정부 조직에 몸담고 있으면 말을 아껴야 하는데도 직접 재벌들을 질타,5대그룹의 ‘기피인물 1호’였다는 후문이다.특히 현대와 대우는 여권 고위층에 윤부위원장에 대한 불만을 여러차례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전경제수석은 관료조직에 적응하지 못한 케이스로 분류된다.당시 청와대비서관은 “차관회의를 하면 2∼3시간이 넘도록 일방통행식 강의를 하는 게보통이었다”며 “이 때문에 차관들은 김전수석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해 부처와의 의사소통이 원활치 않았다”고 말했다. 5공과 6공에 걸쳐 경제 부총리를 두번이나 한 이승윤(李承潤)전서강대교수,경제부총리와 한은 총재를 역임한 조순(趙淳)전서울대교수 등도 조직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했다.김영삼(金泳三)정권 때 청와대 경제수석과 재무부·산자부장관을 지낸 박재윤(朴在潤)전서울대교수는 승승가도를 달렸으나 결국 경제를 망친 장본인으로 지목,청문회에서는 불운을 겪었다. 백문일기자 mip@
  • 千容宅원장 발탁 안팎…국정원 정치색 탈색에 초점

    신임 천용택(千容宅)원장을 맞은 국가정보원의 변화여부가 관심을 끈다. 그의 기용 배경엔 국정운영의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기대가 깃들여 있다.국정원 내부 운영도 마찬가지다. 신임 국정원장이 군출신의 전형적 안보통이라는 점이 그같은 추론을 가능케 한다.가능하면 정치적 외풍에 휩쓸리지 않도록 하려는 배려라는 얘기다. 이종찬(李鍾贊) 전 원장은 정부 출범 초기에 국정원 내부 개혁에 힘을 쏟았다.전문성과 장악력을 바탕으로 옛 안기부의 구태를 벗기는데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받는다.하지만 그는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정치적 비중이 큰 인물로 인식됐다. 이에 비해 천 신임원장은 훨씬 실무적 체취를 풍긴다.호남출신이지만 김영삼(金泳三)정부때도 장관급 비상기획위원장을 지내는 등 상대적으로 무색무취한 인상이다. 때문에 천 원장 체제의 국정원도 정치색 탈색에 대한 기대를 낳는다.하반기 내각제 결론과 내년 총선 등 ‘정치의 계절’을 앞뒀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천 원장 자신도 정계와는 일정한 선을 그을 것으로 보인다.그는 이미 전국구 의원직 포기와 함께 16대 총선 불출마 의사도 김대통령에게 밝힌 것으로 알려진다. 이를 바탕으로 국민의 정부 2기 국정원은 해외정보 수집·분석기능을 강화하는데 초점을 맞출 참이다.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천 원장이 그동안의 국정원 내부 개혁의 과실을 향유하면서 국정원을 새로운 정보기관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신임 국정원장등 장관급·청와대 수석·차관급 프로필

    ◇ 千容宅 국가정보원장 정책·전략,군사교리 등 국방 전분야에 걸쳐 해박한 식견을 가진,자타가 공인하는 안보통. 93년 중장으로 전역한뒤 비상기획위원장을 거쳐 국민회의 전국구의원으로 15대 국회에 진출했다.국방위원 시절에는 율곡비리 폭로 등으로 이름을 날렸다.지난 대선 과정에서 ‘북풍’을 잠재우는 등 안보분야에서 김대중(金大中)후보의 핵심참모로 활약했다.그 공로로 국민의 정부 초대 국방장관에 발탁됐으나 잠수정 침투,미사일 오발사건 등 한때 어려움도 겪었다. 부인 김아미(金雅美·55)씨와 3녀. ◇ 朴舜用 검찰총장 빠른 판단력과 친화력으로 사시 8회 출신 가운데 일찌감치 ‘총장감’으로꼽혀 왔다.법무부 교정국장 시절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 두 전직대통령 수감 업무를 무난히 처리했고 대검 중수부장때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비자금 사건을 무리없이 처리해 신임을 얻었다.지난 2월 검사 항명파동때에는 밤늦도록 평검사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불만을 추슬러 신망을 얻었다.김태정(金泰政) 법무장관과는 총장-중수부장,총장-서울지검장으로 호흡을 맞추면서 ‘환상의 콤비’라는 평을 들었다.취미는 테니스.부인 김혜정(金惠貞·52)씨와 2남. ◇ 安炳禹 중소기업 특별위원회 위원장 경제기획원 예산정책과장과 예산총괄과장,예산심의관을 거치는 등 자타가공인하는 예산전문가.국민의 정부 출범후 초대 예산청장을 맡아 IMF사태 극복을 위한 본예산 편성을 무난히 처리해 능력을 인정받았다. 부하직원들에게 좀처럼 얼굴을 붉히는 일이 없다.부인 유인숙(柳寅淑·49)씨와 1남1녀. ◇ 李起浩 경제수석비서관 깔끔한 외모에 정연한 논리와 빈틈없는 일처리로 사무관 시절부터 윗사람의 신망이 두텁다.지난 김영삼(金泳三)정부에 이어 현 정부에서도 노동장관 자리를 지켜 화제가 됐다.IMF체제 하에서 노사정위원회의 필요성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보고해 관철시키는 등 실업대책과 노사관계를 무난히 이끌었다는 평을 듣고 있다.부인 양인순(梁仁順·47)씨와 1남1녀. ◇ 黃源卓 외교안보수석비서관 육사 18기 대표화랑 출신으로 합리적이고 온화하지만 업무 추진력도 만만치 않다는 평.91년 한국군 장성으로는 처음으로 군사정전위원회 유엔군측 수석대표에 임명됐으나 북한이 인정하지 않아 군정위가 열리지 않는 등 파동을겪기도 했다.12·12 당시 정승화(鄭昇和)육군참모총장의 수석부관을 지냈다는 이유로 5·6공때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기도 했다.부인 음성원(陰聖媛·54)씨와 1남1녀◇ 朴晙瑩 공보수석비서관 언론학박사 학위를 갖고 있는 해직기자 출신의 언론인.지난 80년 5·18 이후 언론검열에 항의해 강제 해직됐으나 87년 민주화바람에 중앙일보에 복직,뉴욕특파원 등을 지냈다. 신사풍으로 부드러우나 논리적인 원칙주의자.뉴욕특파원 시절 박지원(朴智元)문화부장관과 친분을 쌓았다.취미는 속기바둑이며,골프가 싱글수준이다. 부인 최수복씨(崔秀福·49)와 3녀. ◇ 嚴洛鎔 재정경제부차관 신임 엄차관은 행정고시 8회로 30년 경력의 정통 재무관료.금융,관세,경제협력국 업무를 거쳐 국장때 세제실로 옮겼다.2차관보 재직때 경제협력기구(OECD) 가입을 담당했다.성격이 온화하고 차분하며 일처리가 합리적이다.부인홍영신(洪榮信·46)씨와 1남1녀. ▲51·서울 ▲경기고 서울법대 ▲재무부 세제심의관,국세심판소장,2차관보◇ 梁榮植 통일부차관 제주 출신으로 72년 이래 통일부의 요직을 두루 거친 통일전문가. 역대 정권의 통일정책을 비교한 통일정책론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여러권의 저서도 낸 학구파.TV 대담 프로그램에 자주 얼굴을 내미는 등 개방적인 성격이라는 평.부인 권영례(權寧禮·53)씨와 1남1녀.▲58·제주 ▲통일부대변인 ▲통일정책실장 ▲통일연구원장◇ 朴庸玉 국방부차관 75년 하와이대에서 정치학박사를 받은 ‘국제신사형’ 정책전문가.92년 남북고위급회담때 남북군사분과위원장으로서 ‘불가침 부속합의서’와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탄생시켰으며,북한 핵문제가 절정에 달한 94년에는 주미 국방무관으로 대미협상을 주도했다.부인 유승애(劉承愛·52)씨와 3녀. ▲57·평남 평원 ▲경기고 육사21기 ▲국방부 정책기획차장,군비통제관,정책실장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 金興來 행자부차관 작은 체구임에도 추진력이 강하면서 부하들로부터 사랑받는 행자부의 맏형. 경찰관으로 근무하다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옛 내무부에서 잔뼈가 굵은 지방행정 전문가다. 박지원(朴智元)문화관광부장관의 진도 군내초등학교 1년 후배.부인 위영자(魏英子·57)씨와 1남2녀. ▲58·전남 진도 ▲목포해양고 단국대법대 행시 10회 ▲목포시장 ▲재정국장 ▲지방행정연수원장 ▲기획관리실장◇ 羅承布 소청심사위원회위원장 행정고시 10회로 전남도 내무국 지방과에서 시작한 정통 내무관료.온화한성품으로 대인관계가 원만하지만 업무에 관한한 치밀하고 추진력이 탁월하다는 평.옛 내무부 주요 부서와 시장,군수 등을 두루 거치면서 폭넓은 행정경험을 쌓아 ‘행정 9단’으로 불린다.▲57·전남 함평 ▲한양대 행정대학원▲전남 여수,목포시장.내무부 공보관,지역경제및 지방재정국장,전남 행정부지사. ◇ 李元雨 교육부차관 온화한 성품으로 강단이 있는 전형적인 외유내강형.법무부 보도직(5급)으로 출발해 77년 문교부 편수과로 옮겼다.서울시 부교육감을 역임해 일선 교단의 사정에 밝다.술자리에도 자주 어울리는 등 소탈한 성격으로 따르는 후배들이 많다.단국대 국악과 교수인 부인 서원숙(徐元淑)씨와 1남1녀. ▲57·충북 청주 ▲서울대 사대 ▲교육부 교육기획정책관 ▲서울시부교육감 ▲청와대 교육비서관◇ 趙健鎬 과학기술부차관 상공부와 재무부,총리실,청와대를 두루 거친 경제관료.일처리가 꼼꼼하지만 성격은 활달하고 솔직하다.대학시절 조정선수로 활약한 경험 때문에 조정협회 이사직도 맡고 있으며 연극,영화 등 문화에도 관심이 많다.재무부 공보관 시절에는 ‘명대변인’으로 꼽혔다.박찬혜(朴贊蕙·49)씨와 2녀. ▲55·경기 김포 ▲서울대 법대 ▲재무부 국제금융국장 ▲청와대 기획조정관◇ 金順珪 문화관광부차관 행시 출신으로 문화 분야에서만 28년 동안 근무해 온 문화부 터줏대감.정책기획력이 뛰어나고 합리적이다.그러나 고집이 세다 할 정도로 소신도 있고뚝심도 있다는 평이다.‘일본이 앞서고 있다’는 영문번역서를 낼 정도로 학구적.취미는 등산이며 자주 실력발휘를 하지 않지만 주량도 상당한 편이다. 노모를 모시고 살며 부인 김혜성씨와 1남2녀.▲52세▲경북 의성▲경기고▲국민대 무역학과▲행시 10회(71년)▲문화부 공보관▲문화부 청소년정책실장
  • 새 내각 이모저모

    24일 출범한 국민의 정부 2기 내각은 관료와 전문가 집단이라고 성격을 규정할 수 있다. 총리를 제외한 18개 부처 각료 가운데 관료 출신이 10명,학계와 기업,사회단체 등의 전문가가 6명이다.조각 당시 12명이나 됐던 정치인은 박지원(朴智元)문화·정상천(鄭相千)해양부장관 2명뿐이다.언론인 출신은 조각 때와 마찬가지로 한 명도 없다. 그러나 출신지역은 조각(組閣)때와 마찬가지로 안배된 느낌이다. 영남권 출신이 5명으로 가장 많고,충청권과 호남 출신이 각각 4명이다.영남권 및 충청권은 조각 당시의 숫자가 유지됐고 호남 출신은 1명이 줄었다.호남 가운데서도 전북 출신은 조각 당시 1명도 없었으나,이번에는 2명으로 전남과 균형을 맞췄다. 수도권은 조각 당시 2명에서 3명으로 늘었다.또 초대 내각에는 없었던 강원도 출신이 1명 입각했고,이북 출신은 초대 때와 같은 1명이다. 출신 학교별로는 고려대의 부상이 두드러진다.서울대 출신은 7명으로 여전히 가장 많았지만,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 시절의 평균 60% 정도보다는 많이 줄었다.또 국민의정부 조각 당시보다도 1명이 줄었다.이에 비해 고려대 출신은 5명으로 역대 내각 가운데 고려대의 비율이 가장 높은 내각 진용을 구성하고 있다. 이밖에 육사 출신이 2명이며 연세대와 단국대,부산대,미국 위스콘신대 출신이 각 1명씩이다.학과별로 분석하면 경제·경영학과 출신이 7명으로 법학·행정학과 4명보다 많아 경제 우위의 시대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또 이공계통 출신은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서정욱(徐廷旭)과기부장관 1명이어서 민간분야와 달리 정부부문에서는 문과계통의 압도적 우위 현상이 지속됨을 나타냈다. 각료의 평균 연령은 조각 당시의 58세보다 2세 늘어난 60.2세다.60대가 8명,50대가 10명으로 40대는 단 한명도 없다. 초대 내각의 최연소 장관은 당시 46세의 이해찬(李海瓚)교육부장관이었으나 2기 내각에서는 51세인 정덕구(鄭德龜)산자부장관이다.총리를 제외한 최고령자는 초대내각 당시 67세의 주양자(朱良子)보건복지부장관이었던 데 비해2기 내각에서는 68세인 정상천 장관으로 한살 많아졌다. 여성장관 수는 초대 내각의2명에서 1명으로 줄어 손숙(孫淑)환경부장관이홍일점이 됐다. 그동안 사회부처에서는 행시 10회 장관이 일찍 배출됐으나 경제부처에서는정 산자부장관과 이건춘(李建春)건교부장관이 이번에 처음 입각했다. 이도운기자 dawn@
  • 국민의 정부 2기내각 출범-새얼굴 14人 프로필

    ‘제2기 내각은 우리에게 맡겨라’.‘5·24’ 개각으로 김대중(金大中)정부제2기 내각의 진용(陣容)이 갖춰졌다.기존 국무위원 가운데 11명이 바뀌었다.신설된 기획예산처장관도 국무위원에 합류했다.장관급인 중앙인사위원회 위원장과 차관급인 국정홍보처장도 첫선을 보였다.신임 장관들은 저마다 맡은분야에서 전문성과 참신성·개혁성을 인정받아 내각에서의 역할이 주목되고있다.내각에 그대로 남은 6명의 국무위원들과는 신·구(新·舊) 조화를 꾀할 것으로 기대된다.새 내각의 면면을 소개한다. ■康奉均 재정경제 행정고시 6회로 옛 경제기획원에서 관리를 시작한 정통 기획원 출신 관료. 경제정책 기획과 조정에 탁월한 능력으로 초기 새 정부의 경제개혁정책을 청와대에서 뒷받침했다.기획원 핵심요직인 경제기획국장과 차관보를 각각 4년씩 장수하는 등 5차례나 경제개발 5개년계획 수립에 참여했다.예산담당 과장과 국장으로 10년 근무했다.총리실 행정조정실장 재직때는 사회·경제정책을 매끄럽게 조정했다.업무처리에서 적당주의를 인정치 않아 후배들이 어려워하는 편.미국 윌리엄스 칼리지 경제학석사,한양대 경제학박사 학위를 갖고있다.부인 서혜원(徐惠源·53)씨와 1남1녀. ■金泰政 법무 호방한 성격에 의협심이 강하고 뒤끝이 없는 보스형 인물.친화력이 뛰어나지인(知人)이 많고 부하들로부터 신망도 두텁다. 형광펜을 그어가며 보고서를 읽을 정도로 꼼꼼한 일면도 있다는 평. 문민정부 당시인 97년 검찰총장에 오른 뒤,‘DJ비자금 사건’ 수사를 유 보했다. 잔정이 많아 가끔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 지난 2월 심재륜고검장 항명파동 당시 일선 검사들로부터 사퇴압력을 받는 등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특유의 뚝심으로 극복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며 바둑을 즐긴다.부인 연정희(延貞姬·50)씨와 3녀. ■朴智元 문화관광 청와대대변인을 떠나는 고별사에서 “어디에 있건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모신 영광을 잊지 않고 행동하겠다”고 말할 정도로 충성심이 강하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정계복귀때는 전국구 의원직을 버리기도 했다. 야당 총재시절부터 지금까지 거의 매일 김대통령과 아침을 함께한 ‘측근중 측근’으로 8년동안 ‘김대통령의 입’으로 활약했다. 오랜 대변인생활로 달인(達人)의 경지에 올랐다는 주위의 평이다.언론계에지인도 많다. 미국에서 사업가로 성공,뉴욕한인회장과 미주한인총연합회장을 지냈다.부인 이선자(李善子·56)씨와 2녀. ■孫 淑 환경 현 정부 출범 이후 입각이나 국회의원 후보로 거론돼온 DJ인맥의 대표적 문화예술인. 지난 2월 연극 ‘어머니’의 주연으로 20년간 출연키로 정동극장과 계약하는 등 100편 가까운 작품에 출연했다.MBC 라디오 ‘여성시대’도 9년째 진행중. 93년 환경운동연합 창립시 지도위원을 맡은 뒤 지난 2월 공동대표로 추대됐다. 다정다감한 성격에 눈물이 많아 별명이 ‘수도꼭지’.‘무엇이 이토록 나를’등 3편의 책도 냈다. 고려대 연극반 선배인 연극배우 겸 탤런트 김성옥(金聲玉·64)씨와 3녀. ■陳 稔 기획예산 업무 장악력과 조정능력이 뛰어난 정통 경제관료.리더십과 정치감각을 겸비했다는 평.누구를 만나도 자기편으로 만드는 인간적 매력이 있으며 논리가정연해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능력이 탁월하다.추진력은 있으나 결론을 정해놓고 오락가락한다는 지적도 있다. 박정희(朴正熙)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공무원 중에서 저렇게 똑똑한 사람은 처음’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두뇌회전이 빠르다. 단신이나 소주를 좋아하는 소탈한 성격.성신여대 음대학장인 서인정(徐仁貞·52)씨와 한국은행에 근무하는 장남 등 2남이 있다. ■趙成台 국방 세밀한 부분까지 직접 챙기는 꼼꼼한 업무 스타일이다. 정책통답게 영관장교 시절부터 전략기획 및 군사작전 분야에서 탁월한 군사적 식견을 갖췄으며 조직장악력과 업무추진력도 뛰어나다는 평이다. 94년 정책기획관으로 있으면서 3억달러 규모의 한·미 방위비 분담협상을총괄하면서 500만달러를 깎기 위해 협상결렬 위기까지 몰고 간 일화를 남겼다. 외아들은 육사를 거쳐 대위로 복무중이다. 틈날 때마다 독서와 낚시를 즐기며 부인 이영숙(李永淑·53)씨와의 사이에1남1녀. ■鄭德龜 산업자원 재무부 재산세제과장과 증권정책과장,주영 재무관,경제협력국장,국제금융국장 등의 요직을 두루 거친 금융·세제·외환분야 전문가. 부가가치세 도입시 실무를 맡아 정착시켰고 대러 경협차관 협상도 주도했다.특히 97년말 IMF와의 자금지원 협상과 98년초 218억달러의 단기외채 만기연장,40억달러의 외평채 발행에 성공하는 등 환란을 수습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추진력과 판단력,담력이 탁월하다는 평을 듣지만 한편으로는 부하직원들을지나치게 엄하게 대한다는 얘기도 있다.부인 이명덕(李明德·49)씨와 2남. ■李相龍 노동 9급 서기보로 공직을 시작,38년만에 장관까지 오른 입지전적 내무관료.강원도와 내무부에서 잔뼈가 굵었다. 노동부 관련업무를 직접 다룬 적은 없으나 일선 시·도에서 재정·세무업무를 담당했다.대통령비서실과 건설부 차관을 지내면서 실업문제에 나름대로식견을 갖췄다는 평가다.지난해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회의에 입당한뒤,자민련 한호선(韓灝善)후보와의 후보단일화 논란 끝에 무소속으로 출마,낙선했다. 업무처리가 꼼꼼하면서도 부하들에게 자상하다는 평이다.부인 윤명규(尹明奎·60)씨와 2남1녀. ■金光雄 중앙인사위 방송을 통해 낯이 익은 행정학 교수.깔끔한 외모에 핵심을 찌르는 말솜씨가 일품이다.두뇌회전도 빠르고 합리적이지만 다소 깐깐한 성격이란 평가도 받는다. 98년 국민의 정부 출범 당시에 정부조직개편심의위원회 실행위원장을 맡아행정조직 축소를 주도했다. 제 2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상임위원으로도 활동해 일찌감치 입각 대상자로 꼽혀왔다. 지난해 9월에는 서울대 22대 총장후보로도 거론됐다.취미는 등산이며 술도즐기는 편이다. 부인 유정희(柳貞嬉·57)씨와 1남1녀. ■林東源 통일 통일·외교·안보분야의 ‘3박자’전문가.외교안보연구원장,통일원차관,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거치는 등 이론과 실무를 겸비했다. 90년 1차 남북고위급회담부터 대표를 맡은 이래 일관되게 대북 포용론을 옹호해왔다.지난 95년부터 아태평화재단에 관여하면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북한 핵위협 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포괄적 접근’구상을 기획,집행해왔다. 예비역 육군소장으로 5공 출범과 함께 외교관으로 변신했으나 군인체취가없고,부드러운 성품이라는 평. 부인 양창균(梁昌均·60)씨와 3남. ■金德中 교육 개혁적 성향에 추진력이 강하다.현 정부 들어 대통령자문기구인 새교육공동체위원회 위원장을 맡아온데다 김영삼(金泳三)정부때도 교육개혁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아주대 총장으로 재임하면서 학부제와 교수연봉제 등을 과감히 도입,대학개혁의 ‘전도사’라는 별명을 얻었다.그같은 개혁성향이 발탁 배경이라는 후문이다. 대우그룹 김우중(金宇中)회장의 친형으로 서강대 교수(경제학)를 정년퇴직한 뒤,대우그룹 계열사 사장을 맡기도 했다.골프 실력도 수준급이며 부인 박용주(朴容珠·60)씨와 1남2녀. ■車興奉 보건복지 일에 적극적이고 토론문화에 익숙한데다 리더십까지 갖췄다.지난 2월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총체적 난맥상을 조기 수습,제 궤도를 찾도록 했다. 사회보험의 두 축인 국민연금과 의료보험을 가장 잘 아는 사회복지학계의대표적 개혁론자로 꼽힌다.지난해 지역의보조합과 공무원·교직원의보조합의 통합에 따른 단일보험료 부과체계를 개발했다.박정희(朴正熙)대통령 시절청와대비서실 행정관으로 관가와 첫 인연을 맺었으며,83년 보험제도과장 재직때 의보통합 파동으로 불명예 퇴진하는 아픔도 겪었다.부인 송외숙(宋外淑·50)씨와 1남1녀. ■李建春 건설교통 특유의 친화력과 리더십이 트레이드마크.정통세무관료로서의 전문성 못지않게 부하직원들에게는 손을 잡고 이끌어주는 자상한 선배의 덕성을 갖췄다.외부에도 지인들이 많다.이러한 성격 탓에 ‘정치적’이라는 지적도 받는다. 국세청장에 오른뒤 납세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세무서 조직을 세목중심에서 기능중심으로 재편하는 등 강도높은 세정개혁으로 청와대로부터 높은점수를 받았다. 별명은 호남형의 외모와는 동떨어진 ‘불곰’.지난 80년대 후반 부동산 투기 억제시책을 강력히 밀어붙이면서 얻었다.부인 문영인(文玲仁·56)씨와 2남. ■吳弘根 국정홍보 지난 88년 군을 비판한 칼럼을 썼다가 정보사 요원들에게 테러를 당한 ‘정보사 테러사건’으로 잘 알려진 30년 경력의 언론인.칼럼이나 사설 등으로개혁적인 성향을 뚜렷이 드러내는 논객으로 알려져 있다.시경 출입기자때 신세지기 싫다며 도시락을 싸들고 다닌 일화를 남겼으며 후배들을 잘 챙겼다. 원칙을 지나치게 고집하고 주관이 강해 주위사람들과 가끔 마찰을 빚기도 했다.평소 책을 많이 읽으며 자기관리에 엄격하다.취미는 바둑.부인 송명견(宋明·54)씨와 2남. [알 림]‘제2공화국과 張勉'연재물 26회는 기사 넘쳐 쉽니다.
  • [김삼웅칼럼] 吳越도 같은배 타는데

    파도가 심할 때는 오월(吳越)도 동주(同舟)하고 산길이 험할 때는 승적(僧賊)도 동행한다. 6·25 이래의 국난기에 국민에게 한없는 고통을 안겨주고 국가위기를 불러온 전직대통령들의 행동거지는 참으로 볼썽사납다. 설혹 은원이 따르고 이해가 갈린다고 하더라도 전직대통령끼리,혹은 전·현직 대통령 사이가 중국 춘추전국시대 오왕(吳王) 부차(夫差)와 월왕(越王)구천(句踐)의 관계에야 비할까. 그들도 풍랑이 거셀 때는 함께 같은 배를탓다고 하지 않던가. 시쳇말로 ‘님’이란 글자에 점하나 찍으면 ‘남’이 되고 ‘나’라는 글자에 점하나 바꾸면 ‘너’가 된다고 하지만 적어도 이 나라에서 쿠데타거나부정선거거나 색맹선거를 통해서 대통령까지 역임했으면 퇴임 후라도 걸맞은 품위를 유지하면서 국민의 고통을 헤아리는 금도를 보이는 것이 본인들에게나 국민에게 좋을 것이다. 전직대통령들은 자신들이 행한 패도와 무능으로 무수한 국민이 희생되고 국가가 IMF 환란에 빠지게 된 죄업을 깨닫는다면 참회하는 심경으로 국난극복에 힘을 보태고 국민통합에 노력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옳다. 또한 그들과 함께 정권의 요직에 참여했던 인사들도 조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언론도 이제 전직대통령들의 ‘망언시리즈’를 중단토록 자제해야 한다. 전직끼리 또는 현직대통령에 대해 품격없는 욕설과 독설을 흥미위주로 보도하면서 편싸움을 부추긴다면 정치의 희화화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나라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솔직히 전두환·노태우·김영삼씨가 대통령직에 오른 데에는 언론·지식인들의 역할이 크게 작용했다. 노태우씨가 김영삼씨를 후계자로 선택한 것은자신과 지도층이 색맹환자였다는 고백은 그런 의미에서 함께 느끼는 바가 많아야 한다. 환란 당시 34억달러이던 외환보유고가 600억달러를 넘어섰고 산업생산·어음부도율 등 각 경제지표가 환란 직전의 수준으로 회복되고 있다. 그야말로위기로부터 간신히 벗어나려는 순간이다. 그러나 아직 지나야 할 터널은 길고 어둡다. 실업자는 여전히 150만명을 넘고 학교를 나와도 취업할 일터를찾지 못한 젊은이들이 거리에 넘친다. 수출증가율도 더디고공장가동률도 힘겹다. 취약한 산업구조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IMF 경제위기를 극복한 저력이 있고 이를 이끌어온 정통성을 가진 정부가 있다. 우월한 국력을 바탕으로 대북 포용정책을 펴고 이것이 국제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금강산 뱃길도 열렸다. 주변 4강의 역학관계도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환란위기를 국가발전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내외의 환경인 것이다. 건국 이후 대북관계나 4강관계에 있어서 이보다 더 유리한 시기는 별로 없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러한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활용은 커녕 IMF 격랑속에서 여야끼리,전직끼리,노정(勞政)끼리 싸우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부차와 구천의 치졸한 싸움이 그칠 줄을 모른다. 이와 같은 한심스런 행태는 대부분 지역주의를 볼모로 한다. 아무리 악과무능으로 국가와 국민에 위해를 끼친 지도자라도 그들을 감싸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이들의 망언과 망설이 계속되는 것이다. 우리 정치의 비극과 정치발전의 한계는 바로 여기에서 근원한다. 악성지역주의의 함정이고 병폐다. 주막 장기는 곧장 마을 장기판이 되기 십상이고 투전판의 개평꾼은 항상 강경파가 된다. 그렇더라도 훈수를 할 사람이 있고 잠자코 있어야 할 사람이따로 있다. 아무나 장기판에 끼어들어 제돈 잃지 않는다고 개평꾼이 함부로부추겨서는 안된다. 어렵사리 격랑을 헤치면서 환란극복과 지역화합에 노력하는 국민에게 더이상 갈등을 증폭시키는 언동을 삼갔으면 한다. 정작 훈수를 하고 싶고 개평을 뜯고 싶거든 마을사람들에게 지은 죄,주막에 진 외상값이라도 갚고 나서 하면 어떨까. 국민의 80% 이상이 전직들의 행보를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 한여론조사를 보더라도 이제 언론이 나서서 개평꾼들의 치졸한 ‘훈수’를 묵살할 차례다. 새 내각도 출범한 시점에서 국민화합을 위해 ‘전직’들의 대오각성을 촉구한다. ●주필 kimsu@
  • 국민회의 ‘부산讚歌’

    국민회의가 야당 텃밭인 부산에서 자신감을 과시했다.24일 해운대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대규모 부산시지부 후원회에는 지역상공인,업체대표 등 각계 인사 2,000여명이 참석,성황을 이뤘다.정권출범 이후 부산에서 열린 첫번째 후원회다.무소속 구청장 6명도 모습을 보였다.그동안 공석이던 부산시지부장과 후원회장에 김운환의원과 강병중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을 선임하는등 모처럼 활기를 띠었다.지역사정이 여의치 않아 두 차례나 후원회를 미뤄 온 뒤끝이어서 부산시지부쪽은 한껏 고무된 표정이었다. 후원회에는 김영배(金令培)총재권한대행,이만섭(李萬燮)상임고문,김봉호(金琫鎬)국회부의장,서석재(徐錫宰)·노무현(盧武鉉)부총재,손세일(孫世一)총무,한화갑(韓和甲)총재특보단장 등 지도부가 대거 출동했다. 김대행은 축사에서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경제회복 단계에 들어섰다”며“이는 국민의 정부가 1년반 동안 노력한 결과”라고 강조했다.김대행은 특히 지역현안을 거론하며 “국민회의 정부는 결코 부산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역인사들을 격려했다. 신임 김지부장은 취임사를 통해 “일부 지도자의 그릇된 시국판단에 시민이 귀속될 수 없다”며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의 정치행보를 견제한뒤 “정파와 동서를 떠나 지역과 나라의 발전을 위해 하나로 뭉치자”고 호소했다.이날 후원회에서는 예상치를 웃도는 20억원 안팎이 모금됐다는 후문이다.앞서김대행은 이날 지방에서는 처음으로 부산시지부 사무실에서 고위당직자회의를 열어 낙동강수질문제,2002아시안게임 지원,삼성자동차 정상가동 등 지역현안을 점검했다.방문단은 가덕 신항만과 신발업체,교통공단,농수산도매시장등을 돌며 민심을 두드렸다. 부산 박찬구기자 ckpark@
  • [오늘의 눈] 되짚어봐야 할 對러 외교

    오는 27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을 계기로 우리의 ‘러시아외교’를 총체적으로 점검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모스크바 외교가는 물론이고 교민사회에서도 대러 외교를 짚어봐야 할 때라는 지적이 많다.이러한 생각의 저변에는 우리가 러시아를 잘못 다뤄왔으며이 때문에 대통령 방문의 외교적 성과가 반감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깔려있다. 한국의 금융위기가 왔을 때 우리 기업들은 앞다퉈 러시아 지사를 ‘0순위’로 폐쇄하거나 철수시켰다.다소 성급한 결정이었고 ‘양국의 미래’나 ‘국가안보의 틀’이라는 전략적인 고려는 무시됐다. 한 대기업은 러시아 지사를 철수시킨 뒤 대러 수출이 4배 이상 뛰었다고 한다.서둘러 지사 복원을 꾀했지만 ‘자존심에 상처입은’ 러시아 당국이 이를 꺼린다는 소식이다.한국의 건설업계가 줄줄이 러시아를 떠나자,터키 유고스웨덴 등 경쟁국가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호황을 맞고 있다는 뉴스도 나온다. 정치 군사 외교분야도 ‘뜨거운 양철지붕’이 아니었느냐는 생각이다.외교적으로 김영삼 정부는한반도 문제 해결에서 미국과 중국,남북한을 포함하는 ‘4자회담’에 집착하면서 러시아와의 관계를 소원하게 했다.한쪽에선 비싼 값에 미국 무기를 사다 쓰며 러시아 첨단무기를 본체만체 해온 것도 사실이다.그 결과 러시아 정계에서는 북한과의 관계 회복에 눈을 돌리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한때 우리나라는 수교 대가로 옛소련에 빌려준 17억달러에 대해 “원금,이자를 빨리갚으라”며 채근한 적이 있다.달라고는 해야겠지만 상황을 멀리 봐야겠다.러시아 정부부문의 빚은 98년 말 현재 1,520여억달러.우리의 채권지분은 1% 정도다.돈을 좀 깔아놓고 그런 연으로 장사를 계속하면 안될까.또우리의 대러시아 직접투자는 전체 해외직접투자의 0.6%에 불과하다.우리나라는 러시아에 대해 무엇인가. 대러시아 제1,제2의 채권국인 미국과 독일 등은 10년 이상을 두고 러시아와 상환협상을 벌이고,또 벌인다.빚은 받지 못해도 안보,문화재 교류와 우주프로그램,군사 첨단기술분야에서 적지않은 이익을 누린다는 지적도 있다. ‘김대통령의 대러 외교’는 자존심추락에 속상해하는 환자-러시아를 치료하는 길목에서 볼 때 더욱 기대가 된다. 모스크바에서 rm0609@
  • YS도‘젊은 피’챙기기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도 ‘젊은 피’챙기기에 나서나. 김전대통령은 21일 부산에서 창립대회를 가진 ‘젊은 일꾼’들의 모임인 ‘21세기 국가전략연구회’에 축전을 보냈다.김전대통령은 축전에서 “젊은 세대는 우리의 미래”라면서 “진정한 개혁주체가 되어달라”고 격려했다.‘젊은 피’의 후견인 역할을 맡겼다는 뜻이 담긴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이 모임에는 30∼40대 학생운동권 출신 인사와 전문직 종사자 267명이 회원으로 참여했다.지역간 통합을 이룩하고 지방자치제를 범국가적인 개혁네트워크로 만들어나가겠다는 게 모임의 지향점이다.한나라당 김부겸(金富謙)경기군포,김영춘 서울 광진갑지구당위원장,이남주·오경훈 전서울대 총학생회장등이 참여하고 있다.여권에 비판적인 성향을 보이는 친야(親野) 인사들이다. 특히 부산출신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사무실도 부산시 남구 문현4동에 마련했다.내년 총선을 겨냥한 YS의 ‘정치공간’만들기와도 맞물려 있다는 시각이다.김전대통령은 모임을 주도한 부산출신의 김용철(金容哲)전 청와대 행정관이 상도동을 방문하자 “기특하다”“열심히 하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특히 자신의 정치 입문 당시 경험담까지 들려주며 ‘애정’을 보였다는후문이다. 최광숙기자 bori@
  • 「전직대통령 문화 달라져야 한다」사회를 위해 봉사해야

    - 정치영향력 확대 모색보다 역사에 남기는 일 몰두해야 우리 사회가 전직 대통령 문제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과 논의를 시작해야할 시점이 된 것 같다. 최규하(崔圭夏)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그리고 김영삼(金泳三). 우리는 네 명의 생존하는 전직 대통령을 두고 있다.전직 대통령이 많다는것은 민주화의 척도이고,국가의 정치적 자산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의 전직 대통령들은 그 반대로 우려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네 명의 전직 대통령 모두에게는 내세울 만한 업적도 있고,비판받아 마땅한 실정(失政)도 있다.그와 관련한 생산적인 토론은 다양한 분야에서 얼마든지 이뤄질 필요가 있다.그것은 현재의 대통령과 미래의 국가지도자가 참고할중요한 자료도 될 것이다.그러나 현재 전직 대통령 사이에 직접 이뤄지는 다툼은 공과(功過)의 객관적 평가보다는 개인적인 감정이 앞서 있다.또 과거통치기간을 정당화하고,앞으로도 출신 지역을 기반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계속 유지,확대해보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전직 대통령이 나서서 사회의 갈등을 확산할 시기가 아니다.참여연대와 신사회공동선운동연합과 같은 사회단체들은 “전직 대통령들이 지역감정에 편승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 네 명의 전직 대통령에게는 해결해야 할 역사적 과제가 아직 남아 있다. 또 공통적으로 부여된 소명도 있다. 정치학자와 정치인,언론·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전직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재임 당시의 회고록을 쓰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재임기간의 치적을과시하거나 합리화하지 말고,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역사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이밖에 평범한 사회봉사활동, 특별순회대사 역할 등으로 국가에 봉사하기를 국민들은 원한다. 현행 헌법 90조는 ‘국정의 중요한 사항에 관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기 위해 전직 대통령이 의장이 되고 국가원로로 구성되는 국가원로자문회의를 둘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정부도 이같은 헌법 정신에 따라 여유와 아량을갖고 전직 대통령에게 합당한 역할을 마련해줄 수 있는 준비를 해나가야 할것이다. 이도운기자 dawn@
  • YS, 새달3일 訪日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은 다음달 3일부터 15일까지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다.퇴임 후 첫 외유다. 김전대통령은 다음달 4일 규슈 국제대학에서 열리는 학술심포지엄에서 ‘21세기 아시아의 미래를 말한다’라는 제목으로 강연하며 대학생들과 토론회도 가질 예정이다. 5일에는 무라야마 전 일본총리 초청 만찬에 참석하고 8일 도쿄 히도쓰바시(一橋)대학에서 ‘뉴밀레니엄시대의 한·일관계’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한다. 이어 9일부터 일본의 여러 지방을 둘러보고 15일 귀국한다. 이번 일본 방문에는 권오기(權五琦)전통일부총리,김광일(金光一)전비서실장,이원종(李源宗)전정무수석,이각범(李珏範)전정책기획수석,유도재(劉度在)전총무수석,김기수(金基洙)전수행실장,김광석(金光石)전경호실장,박종웅(朴鍾雄)의원 등이 수행할 예정이다. 최광숙기자 bori@
  • [굄돌]-일등 대통령과 꼴찌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이 대구·경북지역 인사들과의 대화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역사적 화해’를 제안한 것이 논란이 되고 있다.지난 유신독재시절 최대의 정적이었고 또 그로 인해 몇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던 김대통령이 박대통령의 업적을 칭송하고 기념관 건립을 제안한 것은 어쩌면 숭고한결단일 수도 있고 혹은 승자의 여유일 수도 있다.그럼에도 이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시민들 반론의 요체는 대체로 김대통령의 화해 제의가 ‘인간적’ 차원을넘어 ‘역사적’ 차원에서 언급된 것은 부당하다는 견해인 듯 싶다.박정희씨가 누구인가? 일제시대 일본군 장교를 지냈고,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했으며,선거에 지역감정을 도입해서 분열을 조장했고,유신이라고 하는 독재체제를 굳혀 민중의 숨통을 죄다가 국민적 저항에 부딪쳐 결국 부하의 손에 시해되는 비극을 자초한 이 아닌가? 나는 김대통령의 이번 제안이 실은 ‘죽은’ 박정희 대통령에 있다기보다는 ‘산’ 대구·경북 주민들에 맞춰져 있다고 본다.그리고 그것은 대구·경북 주민들의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크기(?)와 무관하지 않다.부정하고 싶지만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다.나는 그것을 소위 근대화 이데올로기 혹은 경제개발 이데올로기라고 본다. 그런데 이번 김대통령 발언과 관련한 공방에 있어 단연 절정은 김영삼 전대통령의 돌발적인 반박성명과 이에 대한 박근혜 의원의 재반박성명이었다. 여기서 박근혜씨가 반박의 근거로 내세운 것이 역대 대통령들에 대한 평가여론조사 결과이다.그 결과를 보면 대체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등이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꼴찌로 나타난다.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나는 박정권 이후의 경제개발 이데올로기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대구·경북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은) 가치관으로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현상을 참으로 우려하고 있다.왜냐하면 우리가 IMF 체제를 맞게 된 연원도 그 근본을따져들어가면 멀리는 박정권 때의 근대화 논리가 그 시발점이기 때문이다.따라서 김영삼 전 대통령은 박정권의 종속적 경제 이데올로기를 확장해서 세계화시킨 후계자의 속성에서 결코벗어나지 못하며,그 속성이 결국 꼴찌대통령을 자초한 셈이다. 진정한 일등 대통령은 대승적인 지역감정 해소와 더불어 참된 의미의 경제자립 토대를 구축할 때만이 가능하다. 연극 연출가·판소리꾼 임진택
  • [사설] 터무니없는 ‘대국민 성명’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이 17일 수유리 4·19국립묘지를 방문한 뒤 느닷없이 ‘대국민 성명’을 발표해서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그는 대통령 재임시에도 ‘깜짝 쇼’를 연발해서 국민들을 놀라게 했었던지라 이번 성명도또 하나의 깜짝쇼쯤으로 보고 지나칠 수도 있다.그러나 김씨의 성명은 대통령직 퇴임 뒤 처음 내놓는 공식 성명인데다 올해 초부터 벼르고 별러왔었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너무나 비논리적이고 자가당착(自家撞着)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김영삼씨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독재의 상징 인물인 박정희(朴正熙)씨를 찬양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그러나 국민들은 김대통령이 박정희씨를 무조건 ‘찬양’하는 게 아니라,민주주의를 후퇴시킨 것은 그것대로 지적하면서 경제적 근대화 부분을 평가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김씨 자신도 92년 대선 당시 박 전대통령의 생가를 방문해서 기념관 건립을 약속하고 서명까지 했었다는 박근혜(朴槿惠)씨의 지적은 접어두기로 하자. 김씨는 김대통령을 ‘독재자’로규정하고 4·19국립묘지에서도 “지금의 정치·경제·사회상황이 4·19 때와 똑같다”고 했다.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정치지도자의 이같은 상황인식에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김씨는 “부익부 빈익빈,정경유착의 왜곡된 경제구조와 오늘의 경제위기도박정권의 잘못된 경제정책에 기인한 바 크다”고 지적했다.백번 옳은 말이다.그렇다면 대통령 재직시에는 그같은 사실을 몰랐다가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렇다는 말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국제통화기금(IMF)사태를 불러온 최고·최종 책임자인 그는 박정희씨의 원죄(原罪)를 따지기에 앞서 국민에게진심으로 사과를 했어야 옳다. 김씨는 또 “현정권의 박정권에 대한 미화는 기본적으로 지역정치를 바탕으로 하는 현정권의 사고에서 비롯된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김씨가 민정·민주·공화 3당합당을 통한 ‘반호남 연합’전술로 정권을 잡았던것은 재론하지 않겠다.그러나 부산·경남지역을 누비고 다니며 지역감정을노골적으로 부추기고 내년 총선에서 그 지역 공천의 지분권을 내비치다가 국민의 비판을 받은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옳은가.김씨가 느닷없이 성명을 발표한 것을 두고 김대통령에 대한 공격 뿐 아니라 영남지역을 누비고 다니는전두환(全斗煥)씨의 행보를 아울러 견제하는 데 목적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김영삼씨는 지역감정에 기대어 정치를 재개하려는 헛된 꿈을 버리기 바란다.그와 같은 일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김씨 자신의 말대로 ‘시계를 거꾸로돌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 [사설] 정부개혁 중단없도록

    정부조직개편안이 우여곡절 끝에 지난 17일 확정발표됐다.이에 따라 중앙부처의 4급 이상 고위직 자리 241개가 없어진다.실·국·과 120개가 감축되고8,358명이 추가로 줄게 됐다.정부는 오는 2001년까지는 국가공무원 정원의 10.5%인 1만4,861명을 줄이게 된다.어쨌든 기구감축과 감원은 고통스런 일이다. 이번 개편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무엇보다 개편 대상 부처들의 저항이 매우 심했다.그럼에도 이를 극복하고 이만큼이라도 해낸 것은 평가할만하다.더구나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권이 공무원 사회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시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그렇지만 민간부문이 치른 구조조정의 고통과 성과에 비하면 미흡한 것으로 지적된다.김영삼(金泳三)정권이 부른 환란의 피해가 민간부문에 집중되고있음은 긴 설명이 필요없다.이는 통계가 잘 말해준다.구조조정에 의한 민간의 감축규모가 정부부문의 3배인 30%에 달한다.그런데도 비명과 아우성은 오히려 정부부문에서 더 크게 들리는 것같다.개편 대상 부처들과 공무원들이크게 술렁이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그래서는 안될 것이다.정부부처는 개혁의 선봉에 서야 하며 모범을 보여야 한다.일반 국민들의 고통을 생각해 분위기를 빨리 다잡아야 마땅할 것이다. 당초 목표대로라면 정부개혁의 완성은 아직 멀다.이번 개편이 결코 ‘완성’이 될 수 없으며 여전히 미흡하고 미완성이라는 것은 정부 스스로 잘 알것이다.정부개혁이 더 계속돼야 하며 중단돼서는 안될 소이(所以)이다.사실정부는 이번에 한번의 중요한 기회를 놓쳤다.무려 46억원이나 들여 민간컨설팅회사에 의뢰해 만든 개편안을 백지화했다.그것이 최선책이었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의 개혁의지가 퇴색된 것같아 아쉽다.적어도 그 속에는 정부개혁에 관한 순수한 의지가 살아 숨쉬고 있는 것같았다.경영원리와행정효율 극대화를 위한 조직개편의 원칙과 목표가 분명해 보였다. 그에 비해 이번 개편안은 힘의 논리에 휘둘린 흔적이 많다.힘있는 부처는별로 달라진 것이 없고 힘없는 부처만 희생됐다는 얘기가 전혀 설득력과 타당성이 없는 것이 아니다.정부는 앞으로도 개혁에 관해 할 일이 많다.오는 6월 말까지 마무리해야 하는 2차 지방자치단체의 구조조정 뿐이 아닐 것이다. 정부개혁에 착수했던 초심(初心)을 되새겨 심기일전해주어야 겠다.정부개혁없이 다른 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정치권 ‘5·17’‘5·18’재조명 열기

    80년대 민주화의 열기가 17일 여의도에서 재현됐다. 당시 군사독재에 맞서 민주화투쟁에 몸바친 동교동과 상도동계 인사들이 이날 오후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의 이름아래 한자리에 모였다.지난 80년‘5·17 김대중(金大中)내란 음모사건’의 당사자와 가족도 이날 저녁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모임을 갖고 민주화 정신을 되새겼다. 민추협 기념식 민추협기념사업회는 민추협 창립 15주년을 맞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심포지엄 및 기념식을 가졌다. 김상현(金相賢·전민추협 공동의장 권한대행) 김명윤(金命潤·전민추협 부의장)의원은 기념사에서 “민추 승리의 원동력은 다름아닌 하나로 뭉쳤다는데 있다”며 “이는 앞으로도 우리의 값진 교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두김의원은 특히 “길을 달리하고 있더라도 모든 동지가 민추시절 처럼 뜨거운 동지애로 하나가 된다면 민추협은 과거와 현재에 이어 앞으로도 민주발전과 민족통일의 역사를 이끌어가는 정신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며 민주세력의결집을 호소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도 축하 메시지를 통해 “민추협은 지난 84년 자유와인권이 억압당하던 암울했던 시절에 김영삼,김대중이 앞장선 가운데 군사독재체제에 맞서 민주화의 등불을 밝혀들어 85년 2·12총선 선거혁명과 87년 6월 국민 대항쟁으로 이어지는 민주화운동의 구심점이었다”고 회고했다. 고려대 강만길(姜萬吉)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1부 심포지엄에서 토론에서 참석자들은 민추협 정신의 계승과 현 정치상황의 극복 과제를 중심으로 의견을 주고 받았다.2부 기념식에서는 일부 고인이 된 민추협 출신 인사 유가족에게 민주화 공로패가 수여됐다. 행사에는 동교동과 상도동계 인사를 포함,모두 500여명이 참석했다.현역의원으로는 국민회의 안동선(安東善) 한광옥(韓光玉) 한화갑(韓和甲) 이협(李協) 김옥두(金玉斗) 남궁진(南宮鎭) 이윤수(李允洙)의원과 한나라당 신상우(辛相佑) 김덕룡(金德龍) 박관용(朴寬用) 서청원(徐淸源) 김무성(金武星) 박종웅(朴鍾雄)의원 등 20여명이 참석했다.김대통령은 직접 참석하지 않는 대신 축하 메시지를 전해왔다. ‘5·17 내란음모사건’ 재조명 지난 80년‘김대중(金大中)내란음모사건’의 연루자와 그 가족 30여명은 이날 모임에서 내년 사건발생 20주년을 앞두고 기념사업을 개최하는 방안을 논의했다.이날 모임에서 참석자는 사건 관련자의 회고록이나 민주화 운동 관련 사진을 모은 사진집을 출간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한 참석자는 모임 직후 “국민의 정부를 맞아 내란음모사건은 반드시 짚고넘어가야 할 과제”라면서 “사건발생 20주년을 맞아 내란음모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 사건의 경위를 재조명하는 기회를 갖기로 했다”고 전했다. 박찬구기자 ckpark@
  • YS ‘깜짝 성명’ 무얼 겨냥했나

    - “독재정권과 연대”현정권 공격, 총선 대비 입지 넓히기 포석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이 17일 수유리 국립묘지를 다녀온 뒤 현정권을 강도높게 비난하는 성명을 내놓아 앞으로의 거취등과 관련,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 전대통령은 성명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박정희(朴正熙)전대통령과의 ‘역사적 화해’를 선언한데 대해 직격탄을 날렸다.그는 “독재의 상징인 박정희씨를 찬양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며 국민의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일”이라고 일소에 부쳤다.또 “양민을 학살하고 군사쿠데타로집권한 세력은 용납될 수 없다”며 전두환 (全斗煥)전대통령을 비난했다.성명은 수유리 국립묘지 참배를 수행했던 한나라당 박종웅(朴鍾雄)의원을 통해 발표했다.김전대통령의 이날 행보는 특유의 ‘결기’를 바탕으로 한 다목적용이라는 분석이다. 우선 현정권과 과거 독재정권과의 ‘연대’를 강조,자신의 정치적 입지를확보하겠다는 계산이 깔려있는 듯하다.나아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부산·경남지역에서의 세력 확보를 염두에 둔 깜짝쇼의 성격도 담겼다는 해석이다.자신의 ‘업적’을 ‘재평가’받겠다는 의지도 담겼다는 지적이다.YS정권 시절 청와대 한 고위관계자는 “김전대통령은 역사 바로세우기 등 일련의 개혁작업등에 대해 훗날 종합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대해 여권은 공식 입장을 보이지 않으면서도 극도의 불괘감을 감추지않았다.청와대는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김전대통령의 발언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김종필(金鍾泌)총리는 “김전대통령이 92년 대선 당시 박전대통령의 기념관 설립을 약속했는데 취임 이후 약속을 번복했다”고소개했다. 국민회의 한 당직자는 “경제를 망쳐놓은 김전대통령이 무슨 자격으로 국정 혼란을 부추기느냐”며 공격했다.자민련 이양희(李良熙)대변인은 “지역감정을 부추겨 자신의 입지를 세우려는 망국적 처사”라고 말했다. 최광숙기자 bori@
  • “박정희씨 찬양 용납할수 없는일”-김영삼전대통령 성명 발표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은 최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박정희(朴正熙)전 대통령과의 역사적 화해를 선언한 것과 관련,“5·16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국민이 선출한 민주정부를 전복시키고 민주헌정을 중단시킨 독재의 상징인물인 박정희씨를 찬양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으며 국민과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일”이라고 비난했다. 김 전대통령은 17일 측근인 한나라당 박종웅(朴鍾雄)의원을 통해 퇴임 이후 처음 발표한 성명에서 “박정희 정권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직 남아 있으며 결코 미화될 때가 아니다”면서 “전임 정권에 대한 평가는 역사가 내릴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전대통령은 박정희정권을 ‘장기 독재정권’으로 규정한 뒤 “박정권에대한 미화는 기본적으로 지역정치를 바탕으로 하는 현정권의 사고에서 비롯된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민주주의의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이에 앞서 김 전 대통령은 오전 수유리 국립묘지를 참배했다. 오풍연기자 poongynn@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