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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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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나라 · YS측 기류 험악

    ‘민주산악회’(민산) 재건을 둘러싸고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과 한나라당간 갈등이 심각한 양상을 빚고 있다. 한나라당은 22일 주요당직자회의에서 ‘민산’재건 움직임을 집중 성토했다. 신경식(辛卿植)사무총장은 “(민산이)땅바닥을 파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강력하게 비난했다.“민산에서 선거때 지역마다 후보를 낸다면 싸워야 하는 것 아니냐”고 흥분했다.YS의 신당창당 가능성을 염두에 둔경계섞인 발언이다.당원들이 민산에 참여할 경우 당헌당규에 따라 ‘징계’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안택수(安澤秀)대변인도 “‘민산’이 정치활동을 한다면 ‘후(後)3김(金)시대’에 돌입하는 것으로 정치발전에 역행할 뿐만 아니라 국가와 국민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상도동측은 ‘민산’을 ‘반국가단체’취급한다며 반발하고 나섰다.YS대변인인 박종웅(朴鍾雄)의원은 “민주세력을 결집해 독재정권과 투쟁하겠다는 것을 말리겠다는 것은 독재자의 하수인이고 협력자”라고 극언을퍼부었다.김전대통령도 아랑곳하지않고 이날 대신동 김동길(金東吉)전교수자택에서 서청원(徐淸源) 이재오(李在五) 정의화(鄭義和) 한이헌(韓利憲)의원 등과 점심을 함께하며 ‘민산’재건을 거듭 강조했다.“과거 경륜있는 인사뿐만 아니라 젊고 참신한 인물도 같이 일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젊은피수혈 의사도 밝혔다.김전교수는 이에 “좋은 생각이다”며 “정국상황이 답답한데 YS 말을 들으면 시원하고 희망을 주는데 대체세력이 없어 걱정이다”고 말했다고 박의원이 전했다. 상도동측은 참석의사를 밝혔던 김영선(金映宣) 노기태(盧基太)의원의 불참을 당지도부의 압력으로 해석했다. 최광숙기자 bori@
  • 삼성車 정치논리로 탄생

    최근 논란거리인 삼성자동차는 경제논리보다는 정치논리로 허가됐다는 게정설이다. 담당부서인 상공자원부(현 산업자원부)는 지난 94년 12월 삼성그룹의 승용차 진출을 허용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선친의 유지를 내세워 자동차산업에 집착한 이건희(李健熙)삼성그룹 회장의 오기와 반도체사업 성공으로 인한 자만에서 온 착오”라고 ‘삼성자동차 탄생’의 배경을 규정했다.이에 더해 경제정책을 제대로파악치못했던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이 주변 이해당사자의 ‘정치적 조언’에 주로 의존한 결과였다고 설명했다. 당초 상공부는 삼성의 승용차 진출에는 매우 부정적이었다.삼성이 94년 4월 26일 일본 닛산자동차와 자동차 기술도입을 계약한 사실을 발표한 직후 김철수(金喆壽)상공부장관은 삼성의 자동차 진출을 반대하는 보고서를 청와대로 올렸다. 보고서 요지는 산업정책적 면에서 삼성자동차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는 게바람직하다는 것이다.중복과잉투자가 우려되고 한정된 내수시장을 놓고 소모적인 경쟁이 심해진다는 점을 들어 불가(不可)론을 폈다.당시 김영삼대통령도 상공부 편을 들었다. 이에 따라 김장관은 “장관직을 걸고 삼성의 자동차 진입을 막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삼성은 포기하지 않았다.그룹에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라인을 총동원했다.삼성은 부산·경남(PK)출신 민주계 실세들에게 접근해 YS의 마음을움직였다는 게 정계와 재계의 관측이다. 당시 강경식(姜慶植)의원을 비롯,최형우(崔炯佑) 서석재(徐錫宰) 김운환(金^^桓) 박관용(朴寬用) 등 부산지역 의원들은 ‘100만명 서명운동’을 주도하면서 정부를 압박,대구 지역에 건설이 검토되던 삼성자동차를 부산으로 이전시키는데 성공했다. 부산 출신인 한이헌(韓利憲)씨가 청와대 경제수석에 임명되면서 삼성차 인허가 문제가 급진전하기도 했다. YS는 그해 11월말 호주방문을 마친 뒤 귀국길에 “세계화 시대에 기업이 공장을 짓겠다는 데 막을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삼성이 7개월만에 상황을 역전시킨 것이다. 삼성이 공장을 부산으로 한 것부터 허가에 정치적 배경이 있었다는 의혹을낳는 대목이다. 자동차 공장 입지로는 좋지않은 부산을 택한 것은 당시 집권층의 구미를 맞추려는 시도다. 삼성은 부산 신호공단에 공장을 착공했지만 연약한 지반 탓에 인근 산을 헐고 지하철 공사장에서 흙을 실어날라야했다. 그래서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이나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의 총 부지비용보다 3∼4배나 되는 돈을 쏟아부었다. 삼성자동차 허가는 국제통화기금(IMF)체제로 들어가게된 여러 원인 중의 하나라는 분석도 있다.삼성의 자동차 진출로 기아자동차가 더 어려워져 부도를내고 정부가 기아부도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서 외환사정이 급격히 나빠졌다. 지난 2월 국제통화기금(IMF) 환란원인 규명을 위한 청문회에서도 삼성차 인허가 의혹은 제기됐다.자민련 정우택(鄭宇澤)의원은 “삼성의 자동차 진출은YS와 강경식 전부총리,이건희 회장이 만난 자리에서 결정됐다는 설이 있다”고 몰아세웠다. 국민회의 천정배(千正培)의원은 “(부산출신인) 한이헌(韓利憲)의원이 청와대 경제수석이 되면서 삼성자동차 허가쪽으로 상황이 역전됐다”고 주장했다.하지만 YS와 이회장과 강 전부총리,한의원 등은 아직도 솔직한 답변을 피해‘의혹‘은 풀리지 않고있다. 곽태헌 오일만기자 tiger@
  • YS “민주산악회 재건하겠다”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은 21일 정권 창출의 기반이 됐던 사조직인 ‘민주산악회(민산)’를 전국적으로 재건하겠다고 밝혔다. 김전대통령은 이날 낮 상도동 자택에서 김동규(金東圭)전의원등 과거 민산간부들과 오찬을 한 뒤 “최근 현정권이 보여준 일련의 사태는 장기집권 음모”라면서 “독재와 장기집권을 분쇄하기 위해 민주산악회를 조직하겠다”고 밝혔다고 측근인 한나라당 박종웅(朴鍾雄)의원이 전했다. 박의원은 “민주산악회는 5공 시절 민주산악회가 주축이 됐던 ‘제2의 민주화추진협의회’와 같은 성격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이어 “내년 총선에대비한 조직으로 보지 말고 현정권의 독재화와 장기집권을 분쇄하기 위해 투쟁하는 조직으로 봐달라”고 말했다. 최광숙기자 bori@
  • ‘2+α’와 90년 ‘3黨통합’ 차이점

    여권이 추진중인 ‘2+α’방식의 정계개편은 지난 90년 3당합당과 맞먹는정치적 지각변동이다.3당합당 당시와 현재의 시대상황은 정치안정을 요구하는 국민 여망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유사점을 지니고 있다.3당 합당이든 ‘2+α’든 ‘파행정국으로 되는 일이 없다’는 정치불신과 혐오증을 ‘그래도 덩칫값은 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대체하는 효과를 갖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치성향과 이념의 측면에서 이질적인 여러 세력이 합당형식의 창당을 통해 한지붕 밑으로 들어앉는 모양새도 비슷하다.3당합당이 민주화와 군부세력의 물리적 통합이었다면 ‘2+α’는 보수와 개혁을 망라한 보혁연합과 지역연합을 염두에 둔 헤쳐모여식 결합이다. 그러나 3당합당이 미증유의 정치 실험으로서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켰던점과 비교하면 ‘2+α’가 갖는 심리적 충격의 강도는 다소 떨어진다. 3당합당은 지역주의를 이용한 정권재창출의 방편이었지만 ‘2+α’는 지역주의 극복에 비중이 두어지고 있는 점도 충격강도가 떨어지는 요인이다. 3당합당은 수혜자가 누가 될지 분명했지만 ‘2+α’는 불투명하다는 점도이채롭다.한 예로 ‘내년 4월 총선구도에서 1대1의 여야 맞대결 구도가 반드시 여권에 유리한 결과로 귀결되느냐’를 생각할 수 있다.단정하기 어렵다는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3당합당은 전격적인 합당선언으로 나왔으나 ‘2+α’는 구성원의 여론수렴형식을 거쳐 추진되는 것도 큰 차이점이다.지금까지 드러난 구도로는 정계개편 추진세력으로서의 영남권이 배제된 점도 3당합당 당시와는 다르다. 차기를 맡을 강력한 카리스마의 부재(不在)도 3당합당 때와는 다르다.‘2+α’에서는 당시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 같은 역할을 맡을 만한 인물이 없다는 것이다.‘얼굴의 신선미’가 떨어진다는 비판과도 맥이 닿는다. 박찬구기자 ckpark@
  • 세종로청사 명칭‘중앙청’으로 바뀐다

    정부 세종로청사의 명칭이 ‘중앙청’으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는 19일 주례 간부회의에서 “세종로청사는 총리가근무하는 핵심적인 정부기관이므로 행정지역으로 이름을 붙이기보다는 중앙청사라고 부르는 것이 좋겠다”는 국무조정실과 비서실측의 건의를 받고 “검토해 보라”고 지시했다. 중앙청은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 시절 철거된 국립중앙박물관(옛 조선총독부) 건물이 지난 71년부터 83년까지 총리실 및 일부 부처의 청사로 사용될 때 불리던 이름이다.김 총리도 70년대 박정희(朴正熙)전 대통령 시절 총리를 맡았을 때 이 중앙청 집무실을 사용했다. 총리 집무실은 83년 5월28일 옛 중앙청 3층에서 세종로청사 901호로 이전됐다. 총리의 집무실을 중앙청으로 부르기로 한 것은 김 총리의 역할강화와도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총리는 이날 이례적으로 2시간이나 회의를 계속하면서 실업대책,전국 도로망 실태로부터 시작해 내년의 6·25 50주년 기념사업 및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의 준비상황,그리고 최근 대학생의 농촌활동 실태에 이르기까지행정 하나하나를 꼼꼼히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김 총리는 보고를 받는 도중에 세세한 사항까지 질문을 던져 국무조정실과 총리비서실 당국자들이 미처 답변을 하지 못하는 사태도 빚어졌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그러나 정무비서실에서 최근 여야 및 국회의 움직임을 보고하자 ‘다 알고있다’는 듯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도운기자 dawn@
  • [김삼웅 칼럼] DJP협력의 역사인식

    한국현대사에서 지도자들의 협력이 절실할 때 분열함으로써 국가의 진운에큰 타격을 입힌 경우가 적지 않았다.정치지도자들의 갈등과 반목이 역사를그르친 사례가 크게 네 차례나 있었다.첫번째는 여운형과 송진우다. 해방직후 이들이 손을 잡았다면 건국준비위원회의 좌경화를 막고 임시정부를 봉대하여 정통성 있는 정권을 수립했을지 모른다. 여운형은 해방직전부터 송진우에게 민족해방에 대비할 것을 제의했다.측근을 보내 제휴를 희망하고, 해방당일에는 직접 자택을 방문하여 함께 일할 것을 간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송진우가 여운형의 거듭되는 합작요청을 거절한 것은 일제협력의 자격지심과 들러리가 되지 않겠느냐 하는 우려에서였다. 그 결과 해방정국은 엉뚱하게 흘러가고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암살당했다. 두번째는 해방공간에서 이승만과 김구의 분열이다. 두사람이 통일정부 수립이라는 대의(大義) 아래 협력했다면 독립운동세력이 중심이 되는 정통성을갖춘 정부가 수립되고 친일파는 발붙일 곳을 상실했을 것이다. 당시 이승만과 김구는국민의 희망이었고 신화적 존재였다. 두 영수가 개인자격으로 귀국했지만 국민은 힘을 합해 혼란을 수습하고 통일정부를 세워줄 것으로 기대했다. 당시 두 영수의 비중이 얼마나 컸는지는 한민당과 인민공화국이 각기두 사람을 영수급으로 추대한데서도 드러난다. 만약 이승만이 집권 후 김구를 보호하고 후계로 삼아 제2대 대통령으로 지원했다면,그리하여 김구가 북한측과 새로운 남북협상을 시도했다면 6·25전쟁과 자유당의 12년 폭정은 나타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세번째는 4월혁명으로 집권한 윤보선과 장면의 분열이다. 구파의 윤대통령과 신파의 장총리는 민주당의 한 뿌리이면서도 학생혁명이 갖다바친 정권을독식하고자 꼴사나운 이전투구를 벌였다. 내각제 대통령인 윤보선의 책임이컸다.힘을 모아 이승만정권의 부패와 사회악을 청산하며 경제건설과 민주발전에 전력해야 하는데도 권력다툼으로 1년여 만에 군사쿠데타를 맞아 탈권당하고 30여년의 군사통치가 자행되었다. 네번째는 김대중과 김영삼의 분열이다. 1980년 ‘서울의 봄’때 양김이 협력했다면 신군부의 쿠데타는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또 6월항쟁 이후 후보단일화에 성공했다면 노태우정권은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이후 헌정의 파행과 양민학살,그리고 전·노씨의 천문학적 부패의 사슬이 끼어들지는못했을 것이다. 역대 지도자들이 협력보다는 분열을 일삼아온 데 비해 김대중대통령과 김종필총리는 협력하여 50년만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고 IMF국난을 극복하면서 개혁을 서두르고 있다.두사람의 협력은 민주화세력의 본류와 근대화세력의 본류가 합류하는, 한국정치사(사상사)에서 획기적 의미를 갖는다. 5·16이래 갈등과 대립관계를 지속해온 두 세력이 공동정권을 수립한 것은 근현대사에서 개화와 쇄국, 독립운동과 친일매족, 통일정부와 분단정부, 민주화와근대화의 대립선상에서 처음으로 합치점을 찾았다는 의미가 부여된다. 이것은 부차적인 문제들, 예컨대 40년 특정지역의 패권주의가 소외지역으로교체되었다든가, 반세기의 지배구조가 바뀌었다는 가치보다 우선한다고 하겠다. 또 진보(상대적)진영과 보수(상대적)진영이 협력함으로써 ‘용공 매카시즘’을 극복하면서 대북 포용정책을 펴게되고 민족민주운동의 희생자들이 재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DJP협력의 진정한 가치는 신의냐 대의냐, 대통령제냐 내각제냐를 뛰어넘는, 협력해야 할때 협력할 줄 모르는 우리 지도자들의 잘못된 생각을 처음으로바로잡는 ‘역사인식’이라 하겠다. 칠순을 넘긴 두 지도자와 측근들이 항상이 점을 명심했으면 한다.
  • 노 전대통령, YS정권 비판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은 월간조선 8월호와의 인터뷰에서 “김영삼(金泳三)정권은 남북관계를 추진하면서 어렵게 얻어낸 남북기본합의서를 단 한번도언급치 않아 정책의 연속성을 단절시켰다”며 문민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6공때는 상호주의와 당사자 해결원칙을 기초로 북한을 압박했기 때문에 그들이 대화로 나왔고,도발도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정권이 바뀌어상호주의와 당사자 해결원칙이 실종됐다”고 덧붙였다. 노전대통령은 또 “재임기간중 남북관계에서의 주도권을 우리가 쥐고 있어미국은 우리 양해 하에서만 북한과 접촉했다”면서 카터 전미국대통령의 방북에 제동을 건 뒷얘기를 털어놓았다. 구본영기자
  • 「한국의 지역주의와 해소방안」지역주의 심화과정과 현황 토론

    ■한용원 한국교원대 교수 한국 정치사에 지역주의가 대두된 것은 군부정권이 안보상황론과 개발독재론을 내세워 민중을 배제하는 억압적 통치를 자행하면서 도당적·파당적 이익을 보장하는 인사정책과 개발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이다.지역주의를 이용한다면 정치발전을 저해시킬 것이므로 파벌정치와 접맥된 지역주의의 고리를 단절시키는 정치개혁의 추진이 급선무다. ■서경교 외국어대 교수 군부정권에 초점을 맞춘 지역주의에는 동감한다.하지만 정치권과 정치세력이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게 남아있는 이상 지역주의는 여전할 것이다.현실적인 의미에서 지역주의를 공정한 게임이라든가 다른지역간의 세력들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하는 식으로 접근하는게 바람직하다. ■최한수 건국대 교수 87년 대선이 끝난 뒤부터 지역주의가 본격 대두돼 김영삼 정권 시절인 95년 6·27 지방선거에서 심화됐다.유권자들의 투표행태를 보면 그렇다.지역주의를 양산할 수 있는 지도자는 김대중 대통령,김영삼 전대통령,김종필 국무총리 등 3김뿐이다.이제는 호남과충청에서 표의 결집력을 약화시키도록 해 지역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임성호 경희대 교수 유권자들의 투표행태로만 지역주의를 규정하는 것은그리 설득력이 있지 않다.정책혜택이라든가 민심·여론·정부인사 등의 변수도 지역주의를 이끄는 중요한 요인이다.이런 것들도 고려해야 한다.오늘날과 같은 상황에서 정치인들이 지역문제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지역적인 투표행태는 여전할 것이다. ■황태연 동국대 교수 지역주의를 볼 때 한반도로 시야를 넓혀 봐야 한다.통일이 되면 북한지역은 과거의 호남지역보다도 심한 차별을 당할지 모른다.통일 독일의 경우 구 서독사람들은 구 동독사람들을 경멸하고 멸시하고 있으며 이런 것은 해소될 기미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따라서 북한주민들도 이러한것을 우려해 반(反)통일적인 정서가 심할 수 있다. ■정영국 정신문화연구원 교수 북한지역까지 넓혀서 지역주의를 보는 시각은 독특한 접근방법이기는 하다.통일 독일의 예를 들면서 북한주민들은 통일을 바라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북한주민들은통일된 이후의 지역주의나 지역감정보다는 전직 대통령까지 구속되는 등의 사정을 더걱정하지 않을까. 지역주의적 정당구조가 고착화된 것은 87년의 대선에서 야당의 후보단일화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황교수 3김이 물러난다고 당장 지역주의가 없어질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곽태헌기자 tiger@
  • 「한국의 지역주의와 해소방안」지역주의의 심화과정과 현황

    [군부정권과 지역주의-한용원 교원대교수] 군부정권하에서 태동·심화된 한국의 지역주의는 정치인의 지역주의 전략과 유권자의 지역주의 선택이 구조화되어 지역할거주의로 비화됨으로써 지역주의는 선거정치의 핵심적 자원이자 정치발전의 딜레마로 작용하게 되었다. 한국 군부정권의 지배양식은 정보수사기관을 이용한 집정관 개인 중심의 통치와 도당적 이익을 보장하는 인사정책 및 개발정책의 추진을 그 특징으로함으로써 지역주의의 대두 및 구조화와는 상관성이 클 수밖에 없다. 군부정권은 영남의 공업화와 호남의 농업화를 통한 공간분업정책을 추진하여 지역적 불균등 발전을 조장시킨 데다가 여야의 대립을 지역의 대립으로전환시켜 호남에 대한 비호남의 경계를 자극하는 분할지배전략을 구사,호남대 비호남의 지역균열을 심화시켰다.이렇게 구조화된 지역주의는 첫째,군부정권하에서 호남 대 비호남의 양분 구도를 형성하게 되었고 따라서 소수 대다수로 결정화된 균열구조는 민주발전을 저해시켰다.둘째,지역주의가 파벌정치와 접맥되었고 따라서 3김정치로 상징되는 지역주의 정치를 초래했다.셋째,정치적 동원에 자극받아 형성된 지역주의가 구조화되자 정치적 동원의 자극 없이도 지역적 시민사회에서 분출됨으로써 지역할거주의를 대두케 하였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해 보면 지역주의의 해소를 위해서는 첫째,파벌정치와접맥된 지역주의의 고리 절단,둘째 파벌정치의 소지를 제거할 정치개혁,셋째정치사회 책임의 윤리회복 등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金泳三정부와 지역주의] 95년의 6·27 지방선거를 앞두고 김종필씨가 김영삼 정부에서 이탈해 자민련을 창당하고 지방선거과정에서 김대중 총재가 다시 참가함으로써 영호남,충청의 지역대결이 재연됐다.김영삼 정부 시절 실시된 6·27 지방선거와 15대 총선(96년),15대 대통령선거(97년) 결과에서 지역주의 특징을 볼 수 있다. 첫째,연고(緣故) 정당을 지지하는 편중지지율은 충청지역이 가장 높았으며호남,부산·경남(PK)순이었다.대구·경북지역(TK)은 오히려 무소속과 자민련을 지지하는 현상이 뚜렷했다. 둘째,비(非)연고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역(逆)편중 현상은 영남지역에서 호남 연고 정당인 국민회의에 대해 심한 편이었다.국민회의에 대해서는 영남뿐 아니라 충청지역에서도 역편중 현상이 심했다.다만 충청지역의 경우 대선에서는 김대중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표준지지율(지역 연고 정당이 없는 서울·경기·인천·강원·제주의 5개 시·도 각 정당 평균지지율)을 넘었다.DJP연합에 따른 것이다.지역주의를 해소하려면 현재 지역주의에 영향력을 가진김대중 대통령과 김종필 국무총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지역주의 해소의우선 대상은 호남과 충청지역이 돼야 한다는 점이다.즉 현재 영향력있는 지도자가 존재하는 두 지역이 먼저 햇볕정책의 자세로 지역주의 해소에 대한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이런 조치가 가시화되면 이제 지도자가 없는 PK도 TK의 경험을 따르게 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金大中정부와 지역문제] 우리나라의 지역갈등은 국제적으로 비교할 때 온건한 편이다.서구의 경우지역갈등이 무장투쟁으로 번져 대규모 유혈사태로까지 이어진다.한국은 합법적 정당관계와 선거를 통해서만분출된다.국민의 정부 아래서 호남 충청의정치적 소외는 해소됐다.그러나 일부 정치인들의 보복주의적 지역감정 선동으로 영남 정서가 악화됐다.호남 정치인들이 이심전심으로 지역정서에 호소했다면 영남 정치인들은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선동하고 있다.50년 만의 정권교체에 따른 지역화합의 기대가 희석되고 있는 것이다. 지역화합 정책의 기본 방향은 ‘체념의 미학’과 ‘차이의 철학’에서 찾아야 한다.호남도 향후 37년간은 영남을 지역패권적으로 지배해야 마땅하다는산술적 정의를 버리고 체념의 미학을 발휘,영남의 반발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영남인들도 체념의 미학을 발휘,37년 동안의 지역차별에 대한 분명한 반성 속에서 지역등권과 균형 발전에 동참해야 한다. 정치적으로는 중앙집권제를 혁파하고,정치개혁을 이루고,지역 통합적 정당관계를 형성해야 한다.경제적으로도 지역경제 육성과 균형발전에 관한 중앙정부의 헌법 의무(헌법 123조)를 철저히 이행해야 할 것이다.사회문화적인차원에서 계몽운동을 전개하고,동서간 인적교류를 촉진해야한다.제2건국운동 차원에서 지역화합정책을 본격화해야 한다.동서간 지역화합은 남북통일보다 쉬운 일이고 그것이 통일기반이기 때문이다.
  • 「한국의 지역주의와 해소방안」지역주의의 정치적 특성

    ‘망국적인 지역주의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창간 95년을 맞은 대한매일이 한국정치학회와 함께 1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주최한 ‘한국의 지역주의와 해소방안’ 특별 학술회의에는 김종필(金鍾泌)총리,차일석(車一錫)대한매일 사장 등 200여명의 관계자들이 참석했다.학술회의에서 참석자들은▲지역주의와 정치적 특성 ▲지역주의 심화과정과 현황 ▲지역주의 해소방안의 모색 등 3가지 주제로 세분,심도있는 토론을 벌였다. [정치문화와 지역주의-이남영 숙명여대교수] 선거에서 나타나는 지역주의는 상당 부분 ‘3김(金)구도’라는 현실 정치의반영이다. 영호남의 지역주의는 국가 권력 장악을 둘러싼 ‘패권주의적’ 성격이 가미돼 있다.영호남 유권자들의 지역주의 성향은 즉시적으로 지역에 돌아오는 혜택을 추구하기보다는 정권 장악을 통하여 장기적으로 유리한 사회환경을 조성하고자 하는 동기가 숨어있다. 반면 충청지역은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기 때문에 단독 정권 창출의 가능성이 다른 지역에 비해 희박하다.이런 의미에서 이 지역의 지역주의는 정권 창출이라는 거대한 목표보다는 지역적 이해추구라는 ‘실제적’이며 유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김종필씨의 정치행보가 ‘친(親)김영삼’으로부터 ‘친 김대중’으로 옮겨갈 수 있는 것도 이러한 실제적인 심리를 반영한 것이다.따라서 충청지역이 기반인 자민련이 내각제를 주장하고 있는 것도 이런 토대위에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전략일 수 있다. 지역주의 구조는 국민통합을 저해하고 감정적 경쟁 사회로 몰고가면서 점차 경쟁력 없는 사회로 후퇴시켰다.따라서 21세기 국경을 초월한 무한 경쟁시대를 맞아 합리적 방향의 경쟁구조 확립이 시급하다.지역을 초월한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해선 구조화돼 있는 3김 정치구조와 국민들 사이에 팽배한 지역주의의 척결이 첫걸음이다. 지역주의 타파의 가장 효과적 방법은 편견의 사회적 확산을 방지하는 일이다.가정과 학교,사회에서 탈지역주의적인 교육과 지역평등 강조를 사고 깊숙이 침투시켜 지역주의적인 사고방식을 점차 희석시키는 방안이다. [지역주의의 또다른 배경-김일영 성균관대교수]지역주의 발생 원인과 관련해서는 대개 역사적 잔재,정치·경제적 차별,그리고 인위적 동원이라는 세 요인이 거론되고 있다. 전근대로부터 근대에 걸쳐 한국에는 지역주의가 있었다.한국의 지역주의는고려 후기까지는 3국 분립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지방분열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 중앙집권이 확립되면서부터는 중앙이 특정지역을 차별하는 지역차별적 성격으로 변했다.적어도 조선에서 지난 50년대에 이르기까지영호남간의 차별이나 갈등은 심각한 정치적 및 사회적 문제가 아니었다. 전근대와 근대 사이에서 지역주의는 형식과 내용 면에서 연속적이지만 내용면에서는 불연속적이다.차별과 동원이 있기 전에도 상당한 지역적 격차가 있었다.이 격차는 정책이나 정치적 의도의 결과이기보다는 식민통치,동아시아냉전 등 지정학적 요인의 의도치 않은 결과 또는 부산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기존의 격차에 차별과 동원이란 인위적 조작을 가해 그것을 현재와같이 호남을 ‘왕따’시키는 지역주의로 만든 데에는 박정희 군사정권의 책임이 크다. 지역주의를 호남 ‘왕따’에서 그치지 않고 영남의 남북간 대립이나 충청의 ‘제몫 찾기’로까지 확대(소지역주의의 발흥)시킨 데에는 당시 야당 지도자들도 책임을 져야 한다. 지역감정은 90년 3당 합당과 97년 DJP연합을 거치면서 선거연합을 통한 지역동원의 형태로 바뀌었다. [선거와 지역주의-辛起鉉 전북대교수]71년 대선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던 정치적 지역주의는 80년대 후반의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도 여전히 선거정치를 결정하는 지속적 변수가 됐다. 국민 모두가 지역주의에 대해서는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폐해를 비판하면서도 지역주의에 몰입하거나 휩쓸리고 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지역주의를 정치화하는 대표적 공간은 선거다.지역색을 보여주지 못하는 정당은 득표도 시원치 않고 의석점유도 보잘것없었다.이를 적절히 활용하는 정당은 여전히 주요 경쟁 주체로서의 위상을 발휘하고 있다. 이미 형성됐던 호남정서와 영남정서에 이어 95년 선거에서는 충청정서까지가세하면서 한국사회의 지역정서가 다극화되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그것이 97년의 대통령선거로까지 이어져 그야말로 지역대결의 극치를 보여줬다.불균형 발전이나 소외 의식을 가졌던 지역에서는 이에 대한 시정을,지역패권을 유지해왔던 지역에서는 급격한 박탈감에 따른 시정을 기대하고 있는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권력을 각 지역에 동등하게 분산시키는 지방자치야말로 지역등권의 첫걸음이다. 다만 지역등권의 논리를 제대로 전개하기 위해서는 현 단계에서의 투자 우선순위를 불균형과 시급성 등의 차원에서 적정하게 판단해 가야 한다.
  • [대한매일 창간95] 하반기 정치권 기상도

    올 하반기 정국 기상도는 예측불허다.태풍급 변수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여야 3당끼리는 물론 각당 내부에 복잡하게 얽혀 있다.저마다 정국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힘겨루기가 예상된다.내년 4월 총선은 이런 변수들의 조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다.그 소용돌이 속에서 정계 대변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하반기 정국을 뒤흔들 4대 변수들을 점검한다. ■내각제 다음달 말이 여권내 조율 시한이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종필(金鍾泌)총리가 내놓을 해법은 오리무중이다.이원집정부제 도입,연내 개헌후 1∼2년 또는 2∼3년 시행 연기설,개헌 없이 김총리의 권한확대 등 각종설(說)만 난무하고 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간 물밑 신경전이 치열할 수 밖에 없다.청와대나 국민회의 일각에서는 두 수뇌부간 논의 진전을 주장하고 있다.개헌 시점에서 김대통령 임기말 또는 내년 총선 이후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자민련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김총리 측근들은 “김총리는 개헌시점 등구체적인 사안을 놓고 김대통령과 논의한 적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못박았다. 자민련에서는 충청권 세력들이 강공을 주도하고 있다.‘공동정권 철수’라는 배수의 진을 치고 국민회의측을 압박하는 분위기다. 양쪽 모두 변화의 움직임도 있다.국민회의측에서 연내 개헌을 추진하자는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자민련에서는 총선에서 내각제개헌을 공약으로 걸어 연합공천하자는 절충안이 대두된다. 즉 ‘김대통령은 내각제 약속을 지키려하는데 김총리 등 자민련측이 현실 상황을 인정,스스로 내각제 개헌시기를 연기하는 결단’을 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나라당의 동조 여부는 또다른 관건이다.이회창(李會昌)총재의 ‘결심’이 내각제 운명을 결정하는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이 내각제 세력화를 기도하고 있다는 관측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국민회의 전당대회 국민회의 전당대회는 하반기 정국 기상도와 내년 4·13 총선구도를 점칠 수 있는 주요 포인트다. 여권은 8월 전당대회를 각종 악재(惡材)가 잇따른 ‘터널정국’의 돌파구로 삼는다는 방침이었다.그러나 여러 악재가 터진데다 정치개혁안 확정이 지지부진하자 12월로 연기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어느때 시행하든 그동안 대야(對野)수세국면에서 벗어나 정국 주도권을 회복하고 이반된 민심을 되돌릴 수 있는 전기가 될 것이라는게 국민회의측의 기대다. 전당대회를 통한 면모일신 방안으로 수면에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 지도체제 개편론이다.당의 고위관계자는 “총선을 앞두고 강력한 지도체제 도입과 진용교체를 통한 당 쇄신의 필요성에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며 현행 지도체제의 대대적인 변화를 시사했다. 문제는 지도체제의 형태.명실상부한 전국정당화로 거듭 나기 위한 방안으로 집단지도체제 도입론이 거론되고 있다.대표최고위원을 정점으로 6∼7개 권역별 대표성을 띤 원내외 명망가를 최고위원에 포진시키는 시나리오다.당의흡인력을 높이고 친여(親與)성향의 외부인사도 영입할 수 있다. 그러나 정국 돌파를 위한 강력한 리더십의 필요성을 감안하면 집단지도체제의 형식을 띠면서 실질적으로는 구심력이 높은 단일지도체제로 운영하는 방안이채택될 가능성도 있다.어떤 경우든 ‘누가 당권을 장악할지’가 최대의 관심사다.국민화합형,실세형,관리형 등 다양한 그림이 그려지고 있지만 결국 최종 선택은 당 총재의 몫이다. ■JP 당복귀 자민련은 9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다.물론 내각제 연내 개헌문제가 어떻게 매듭지어지느냐에 따라 시기는 다소 유동적이다.연말로의 연기가능성도 비쳐지고 있다. 자민련 충청권 세력들은 무조건 복귀를 주장하고 있다.처음에 복귀설은 내각제 문제와 연관돼 나왔다.김총리가 당을 다시 장악해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는 논리였다.그러다가 차츰 내년 총선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이들은 김총리가 내각제 논의와 관계없이 내년 총선을 지휘해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박태준(朴泰俊)총재에 대한 불신을 언저리에 깔고 있다.한 충권권 의원은 “자민련의 가장 큰 위기는 정체성 상실이고,이는 박총재가 자초한측면이 강하다”고 말했다.내년 총선을 박총재에게 맡길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시각이다. 그렇지만 김총리의 연내 복귀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은 분위기다.당장 복귀하면 박총재를 내모는 모양이 된다.김총리로서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복귀해 전당대회에서 박총재를 재신임하더라도 마찬가지다.자민련 ‘오너’는 김총리이기 때문에 박총재에게 힘이 실리기는 어렵다.이런 사정으로 두사람간 자리바꿈도 아이디어로 나오고 있다. 김용환(金龍煥)수석부총재의 총재도전설도 제기되고 있다.하지만 본인은 펄쩍 뛴다.당 분열을 부추기려는 음모라는 주장을 편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당대회 문제는 박총재와 반박총재 세력간의 갈등양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TK·PK 신당 창당여부 가능성이 희박한 편이다.우선 현재의 정치구도에서창당 명분을 찾을 수 없는데다 내년 4월 총선을 감안할 때 시기적으로도 촉박하기 때문이다.이와 함께 당을 만들어 조직을 관리하려면 막대한 자금이필요한 데 그 또한 여의치 않은 것으로 점쳐진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대구지역에서는 ‘5·6공’출신인사들이 계속 여론조사를 하며 한나라당의 ‘틈새’를 노리고 있다.부산지역에서는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의 향후 행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과 이 지역 출신 의원들은 신경을 곧추세우고 있다.대구 지역 의원들은 수시로 모임을 갖고 ‘5·6공’인사들의 동태를 파악하는 등 공동 대응하고 있다.아울러 이들의 정치재개를 신랄하게 꼬집는 홍보전도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오풍연 박대출 박찬구기자 poongynn@
  • ‘한국언론개혁 어떻게’ 전문가 좌담

    언론 개혁은 왜 해야 하고,서두르지 않으면 안되는가.또 누가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하는가.최근 언론계 안팎에서 제기되는 이같은 질문은 우리 언론이그동안 걸어온 비정상적 궤적에 대한 비판인 동시에 언론 본연의 역할과 책임 회복을 원하는 온 국민의 간절한 기원 때문이다.대한매일은 창간 95년을맞아 올바른 언론의 역할을 재조명하고 언론 개혁의 당위를 일깨우는 좌담을 마련했다.좌담회에는 김정기(金政起) 외국어대 부총장,주동황(朱東晃) 광운대 교수,김주언(金周彦)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이 참석했다. [부패한 언론인부터 청산하라]■김정기 개혁적인 일이나 경제회생 같은 일은 여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큽니다.따라서 모든 개혁 이전에 언론 개혁이 전제가 돼야 합니다.언론은 여론을 형성하는 여론메체로 기능해야 합니다.개혁에 반대되는 저항세력으로 남으면 안됩니다. ■김주언 언론 개혁이 모든 개혁의 전제라는 의견에 동의합니다.우리 언론의 가장 큰 문제는 권력기관화했다는 것입니다. 많은 신문들은 또 자사 이익을 위해 지면을 낭비하고 있습니다.J일보는 자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한나라당을 통해 언론 길들이기 의혹 제기로 포장하고,D일보는 주필의 땅 투기 의혹에 대해 자체 조사를 하거나 해명하려 하지 않고 권력의 장난으로 몰아 정부를 공격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여론몰이 보도로 국민판단 흐려]■주동황 옷로비라든지 파업유도라든지 김태정,손숙,서해교전 사건을 보면일부 신문들,즉 우리 여론을 주도하는 신문들이 여론시장을 너무 독점하고있는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신문이 갖고 있는 여론지배력이 상당히크기 때문에 이 신문들의 논조 및 보도방향,나쁘게 이야기하면 여론몰이식보도로 인해 국민들의 판단력이 좌우되는 결과가 빚어지고 있습니다. ■김주언 언론 개혁의 과제 중 가장 시급한 문제는 언론인 인적 청산입니다. 방송사에는 독재정권에 복무했던 사람들이 여전히 주요 간부로 남아 있습니다.인적 청산은 언론사 노조 중심으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그래야진정한 언론 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주동황 모든 문제는 사람으로 귀결됩니다.언론개혁에 있어 중요한 점은 문제가 있는 언론인에 대한 정화입니다.거기에 대해서는 여러 방식이 있을 수있지만 곡필 언론인과 부패 언론인 적발이 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김정기 인적 청산 문제는 매우 중요합니다.제도가 바뀌더라도 바뀐 제도속에 옛날 사람이 그대로 있어 옛날 행태가 이어지면 안됩니다. ■김주언 프랑스는 2차대전 직후 비시정권에 협력한 언론인을 청산했습니다. 지금 우리의 경우 언론인 청산은 다소 타이밍을 놓친 감이 있습니다.하지만 방송,특히 공영 방송에서는 노조 또는 사용자측에서 기용을 하지 않는 기준을 정한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충분히 인적 청산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주동황 내년 광주민주화운동 20주년을 앞두고 책임있는 언론인들이 당시기자로서 어떻게 보도했는가를 발굴하고 곡필·왜곡보도등 그릇된 행태가 드러나면 그들에 대해 평가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겁니다. ■김주언 언론 개혁을 위해서는 언론을 제 자리에 올려 놓을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를 시행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드는것이 필요합니다.국회 산하에언론계,학계,시민단체 대표와 국회의원이 참여하는 기구를 구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정기 민주주의 모국인 영국에서는 50∼70년대 의회에 의해 왕립위원회가 만들어지고 89년 소위 칼커트위원회가 생겼습니다.우리나라의 문화관광부에 해당하는 문화유산부가 칼커트 변호사에게 타블로이드(황색) 저널리즘의 행태를 조사해 개혁 방안을 마련할 것을 지시한 것입니다. 영국의 예를 보듯이 정부가 큰 분야에 손을 놓고 있다는 것은 직무유기입니다.우리나라도 신문의 경우 비즈니스 측면은 공정거래위원회가 감시하고 조사해서 조치를 명령할 수 있습니다. ■주동황 저는 언론이 개혁을 해야 한다는 요구가 외부로부터 있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또 상당한 오해를 낳을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언론 개혁에 대한 정부의 의지 또는 정책이 필요합니다.전비(前非)가 있는 언론일수록 내부 개혁을 하지 못합니다. ■김정기 김대중 대통령은 기자협회보와의 인터뷰에서 “언론 개혁은 자율적 개혁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했습니다.또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보겠다”고 밝혔습니다.중요한 것은 바로 이 점입니다.정부가 언론 개혁을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김주언 금융감독위가 경영 투명성을 조사하고,국세청이 정기적으로 세무조사를 해서 내용을 공개하는 방법도 있습니다.공정위도 여론 독과점이나 불공정 거래를 조사할 수 있습니다.재단을 만들어 양도소득세를 돌려받는 행태등을 철저히 조사하면 족벌체제를 막을 수 있습니다.현 제도로도 얼마든지가능한 것입니다. ■주동황 요즘 언론 비리가 많이 터져 나오는데 이에 대해 신문이나 언론인들의 태도에는 그다지 반성하는 빛이 보이지 않습니다.언론윤리 저촉에 대해 언론사 스스로 절박한 문제,당장 시정해야 할 만큼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그런 의식의 밑바닥에는 ‘언론인들은 그런 정도는 누릴수 있다’는 잘못된 특권의식이 깔려 있습니다. [정부의 확고한 의자도 필요]■김주언 언론윤리가 심각한 수준을 드러낸 사건이 모 방송사 H 전 사장의 1억원 수수입니다.모 방송사 직원의 주가 조작 개입,J일보 K 전 차장의 주식내부자 거래도 있습니다.또 일부 신문에 보도된 것이긴 하지만 D일보 주필의 부동산 투기 의혹,D일보 L부장의 세풍사건과 관련한 금품 수수 등이 있습니다. 이런 사건들이 불거져 나오는데 언론사 내에서는 뚜렷한 조치가 없습니다.D일보만 하더라도 김영삼정권 초기 많은 장관을 투기로 몰아 물러나게 했습니다.투자라고 볼 수 있는데도 투기로 몰았습니다.그러나 주필이 의혹에 휩싸였는데 투기가 아닌 투자라고 합니다.세무조사도 마찬가지입니다.J일보가 세무조사를 언론 길들이기라면서 이에 반발하는 특별취재팀을 구성하는 것을보면 자정의지가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김정기 주필이라면 한 신문의 얼굴인데 얼굴이 의혹을 받으면 신문으로서는 독자들이 갖고 있는 신뢰도에 치명적 타격입니다.음해공작 또는 어떤 세력의 모함이라면 조사해서 밝히든가 구체적 정황으로 그려진 의혹에 대해 사내 기구 또는 제3의 기구에 밝혀 신문에 공표하는 것이 마땅한데 전혀 그런대응을 하지 않습니다. ■주동황 앞으로 사주나 언론사 간부 등힘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재산문제에 부정적 측면이 얼마나 있는가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봅니다.심각한 문제가 대두되면 사주나 언론사 간부의 재산 공개 요구가 나올 겁니다. [국민 눈가린 과거 반성을]■김주언 지방신문을 경영하는 자본의 실태를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지방신문은 토호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과거에는 건설업체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유통업체가 많습니다.이 때문에 지방신문은 지방정부에 대한 압력수단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건설업체는 수주 또는 건설 때 안전문제 특혜 등과 연결해 활용합니다.중앙의 큰 신문사도 경영의 도구로 활용하는 경우가없는 것은 아닙니다. ■주동황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사건 보도를 보면 그 속에 국민의 눈길을 끌기 위해 사소한 사실까지 크게 포장한 것도 많습니다.다른 신문이 보도하니까 한 발 더 나아가 새로운 것을 들추자는 의도로 주변적 사실까지 크게 보도합니다.보도자세의 객관성과 진실성이 여러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돼야 합니다. ■김정기 여러 사건을 보면 정치적 성질의 것도 있지만 여야의 대립적 구도속에 몰아넣고 기사화하려는 행태가 심합니다.서해 교전을 보더라도 북한과의 충돌은 휴전선에서 많이 일어나는 사건인데도 햇볕정책의 문제점으로 몰고 갑니다.그런 면에서 언론의 책임있는 보도태도를 백번 강조해도 부족하다고 봅니다정리 문호영 김미경기자 alibaba@
  • [대한시론] 임시정부 법통계승 기념사업

    1987년 10월12일 국회의 의결을 거쳐 그해 10월27일 국민투표를 통해 제9차로 개정된 현행 헌법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명시했다. 이는 대한민국이‘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것을 뜻한다. 법통 계승이 왜 중요한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을 것이다.헌법이 선언적인 의미만 갖는 형식적인 글귀가 아니라면 헌법전문에 명시한 법통 계승은 거기에 상응하는 실질적인 조치를 요구하고 있음이 당연하다.더구나 같은 전문에 명시된‘3.1운동’과‘4.19민주이념’에 대해서는 가시적인 조치가역대 정권에 의해 취해졌다.그런 점을 감안한다면 임정에 대해서도 예우가필요하다. 개정 헌법에서 임정과의 관계를 적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헌법하에서 출발한 노태우 정부나 김영삼 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는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하지 않았다.기껏 김영삼 정부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요인 몇분의 유해를 국립묘지에 안장했을 뿐이다. 50년 만에 교체되었다는 이 정권이 앞의 정권들과 차별성을 보이려면 임정의 법통 계승문제의 해결도 하나의 시금석이 될 수 있다.이에 법통 계승과관련된 몇가지를 거론하고자 한다. 첫째,임정 유적지 보존이다.임정은 상해에서 시작하였지만 1932년 한인애국단의 윤봉길 의사의 의거 후에는 계속 피난하지 않으면 안되었다.임정이 충칭(重慶)까지 옮겨간 여러 지방의 유적지를 찾고 후손들이 찾을 수 있도록보존해야 한다.오랜 세월이 지나 정확한 유적지를 알 수 없는 곳도 많겠지만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분들이 생존해 계시는 동안에 서둘러야 한다.이런 문제는 주재국 정부와의 외교적 교섭이 앞서야 하겠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둘째,임정기념관의 건립이다.지금까지 임정기념관이 설립되지 않은 것은 임정의 권위와 전통을 의도적으로 거부한 세력에 의한 것이지만 결코 떳떳한일은 아니다.임정기념관은 임정 관계자료와 독립운동 관계자료 및 일제강점기 총독부의 자료 등,이 시기 연구에 필요한 자료를 완벽하게 갖춘다.그렇게 되면 이곳에 와서 독립운동과 민족 반역의 역사를 모두 찾아볼 수 있게 된다. 필자는 여러번 임정기념관 설립 최적지는 헐어버린 조선총독부 자리라고 주장한 바 있다.주장의 의도는 광화문 일대의 국가 핵심 건물의 배치도가 종전에는 경복궁→조선총독부→정부종합청사의 순서로 되어 그것이 상징하는 것이 가관이었는데 조선총독부 자리에 독립광장과 임정기념관을 대신한다면 조선왕조가 독립운동(임정)을 거쳐 대한민국에 이르게 되었다는 바른 역사의식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셋째,효창원 등 국립묘지 밖에 있는 임정 요인 묘역을 국립묘지 수준으로예우하는 것이다.이런 묘역들은 나름대로 전통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국립묘지로 이장한다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현재 효창공원은 임정주석 김구와 임정 요인(이동녕 조성환 차리석),삼 의사(윤봉길 이봉창 백정기)의 묘역으로 조성되었다.이 묘역을 국립묘지 수준으로 격을 높이고,효창공원이라는 이름도 거기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 끝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임정 자료의 체계적인 편찬이다.여기에는 의정원과 정부의 각종 기록,독립신문,독립운동사 편찬자료 및 각국 정부·인사 및해외 교민들과 왕래한 문서들이 해당된다.그동안 국사편찬위원회 등 여러 곳에서 많은 자료를 출간하였고 최근 대한매일이 발간한 ‘백범 김구전집’에서도 상당 부분 보완하였다.임정 요인들이 귀국할 때에 두 트럭분의 문서를가져왔으나 소실된 것 같다고 하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정부는 임정자료를 수집하기 위한 한시적인 기구를 만들어 본격화시켜야 한다. 최근 임정자료 수집만을 위해 학계 중진들이 연구소 설립을 계획하고 있다. 정부가 이 사업을 직·간접으로 지원한다면 역사에 남는 정권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만열 숙명여대 교수·한국사
  • [화제의 책]

    - 그들속의 신 10여년간 정치권을 취재해온 여기자가 국내 정치지도자 20명의 ‘캐릭터’를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神)들의 원형에 비유해 분석한 정치인 연구서를 펴냈다.경향신문 발행 ‘뉴스메이커’의 임희경 정치팀장은 최근 도서출판 한송에서 ‘그들속의 신(神)’을 출간했는데 이 책은 종래의 정치인 전기물류와는 시각을 달리하고 있다.87년 6월항쟁을 비롯해 최근까지의 정치현장을 직접 목격한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국내 정치지도자들의 인간적 성향과 기질을 저자 특유의 안목으로 분석한 점이 돋보인다. 이 책은 1부에서는 현대 한국정치의 주역인 3김씨를,2부에서는 이들의 뒤를 추격하고 있는 소위 ‘차세대 정치인’을 다루고 있다.저자는 3김씨가 제1세대 올림피아 남신(男神)들인 제우스·포세이돈·하데스의 가부장적 원형을 빼닮았다고 분석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권력과 의지를 대표하는 제우스의 원형을,김영삼 전대통령은 감정과 본능을 대표하는 포세이돈의 원형을,그리고 낭만적 기질로 정면대립구도를 피해가는 김종필 총리는 하데스의 원형을 닮았다는 것. 저자는 각 정치인들의 특질을 정신분석학자인 볼린 박사의 “사람의 특정 캐릭터는 개인별로 특별히 활성화되는 원형에서 비롯된다”는 이론을 차용,설명하고 있다.8,000원정운현기자- 중세의 밤 종교가 사회를 지배했다 하여 ‘암흑의 시대’라고 불리던 서양 중세 사람들은 밤을 어떻게 지냈을까를 탐구한 책 ‘중세의 밤’이 나왔다. 프랑스 역사학자 장 베르동(62) 리모주대학 인문학부 교수가 쓴 이 책은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중세의 지배층과 일반 민중들의 밤 생활을 추적한다.(이병욱 옮김,이학사 9,000원) 지은이는 서양사회가 정치적으로 불안정했던 만큼 밤은 온갖 소란과 음모의 장이었다고 설명한다.“살인·절도·권력투쟁·전쟁·매춘·강간 등 밤은폭력과 공포의 부정적인 면이 많았다.” 그러나 그들은 소름끼치는 악마적인 밤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았다.밤의 폭력과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빛이 필요했고 램프와 초 등이 그 도구가 됐다. 그들은 또 밤에 오락과 휴식을 즐기고 사랑을 속삭였다. 중세인들도 현대인들과 마찬가지로 꿈을 꾸었다.그 꿈을 하느님으로부터 내려온 것으로 생각했다.그결과 밤은 신과 함께하는 영적으로 승화된 영역이됐다.중세의 밤은 신의 빛으로 밝혀졌기 때문에 과학·기술의 힘으로 밝히는현대의 밤보다 오히려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고 지은이는 결론을 내린다. 이창순기자- 루르 루돌프 슈타이너 학교I 독일어권 국가에서 성공적인 학교 교육 모델로 인정받고 있는 ‘발도르프학교’의 교육을 소개한 책 ‘루르 루돌프 슈타이너 학교 Ⅰ’(요하네스 키어쉬 외 11명 공저,김용한 옮김)이 나왔다. 발도르프 학교의 교육이념은 개혁적 교육학자였던 루돌프 슈타이너의 핵심사상인 ‘자유정신에 뿌리를 둔 삶’에 기본 바탕을 두고 있다.1919년 독일슈투트가르트의 ‘발도르프-아스토리아’담배공장에 첫 학교가 생긴 이후 현재 독일에만 150여개,전세계적으로 600여개가 설립,운영되고 있으며,유치원도 1,500여개가 세워졌다. 이 책이 소개하는 루르 루돌프 슈타이너 학교는 독일의 150여개 발도르프학교 가운데 하나다.12명의 학교 관계자와 선생님들이 학교 설립과 운영,모든 수업계획과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발도르프 학교는 교육에 대한 출발을 각 개개인의 소질에 대한 인식에 둔다.그리고 가르침과 수업의 기본 바탕을 참된 인간학에 두고 있다.졸업도 학생들이 스스로 정한 졸업논문이나,졸업 예술작품 발표 등을 통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다양한 예술작업에 참여하게 된다.각종 공연이나 잔치,여행,기타 행사 등에 개인별 능력에 맞춰 참여할 수 있다.이러한 학사 일정이 학생과 선생님,학부모들이 조화롭게 조절하고 협의하며 물흐르듯진행된다.오늘날 인간을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기능적,수단적 존재로 전락시킨 우리 교육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는 책이다.밝은누리 1,2000원임창용기자 sdragon@
  • 정계개편 물밑서 다시 ‘술렁’

    최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전국 정당화’ 구상과 ‘맥(脈)’을 같이하는 움직임들이 가시화돼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정계 개편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국민회의 영입파인 ‘국민통합 21’과 이인제(李仁濟)당무위원,한나라당 김윤환(金潤煥)·이한동(李漢東)전부총재가 자리잡고 있다. 권정달(權正達)·이규정(李圭正)·김인영(金仁泳)의원 등 국민회의 영입파18명으로 구성된 ‘국민통합 21’이 여기에 발벗고 나섰다.이들은 지난 9일저녁 서울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회동을 갖고 정치개혁과 국민대통합을 위한 정계개편과 전국 정당화 추진을 강력히 촉구했다. 이들이 이처럼 정계 개편에 불을 지피고 나선 것은 현재와 같은 당 지도체제와 정국운영으로는 내년 총선에서 자신들의 입지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위기의식 때문으로 보인다.영입파들은 주로 영남과 경기·인천지역 출신이다. 이보다 앞서 이인제 당무위원은 8일 오전 상도동을 방문,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과 1시간여 동안 대화를 나눠 눈길을 끌었다.이위원은 지난 4월 29일상도동을 방문해 김대통령과의 화해를 제의했다가 문전박대를 당했었다.그러나 이번 방문에서는 양측이 가졌던 ‘오해’을 씻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대통령이 광범위한 정국수습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이위원에게 ‘모종의 역할’을 맡겼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이번 회동이 청와대와 교감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다. 49일간의 장기 외유를 마치고 지난 10일 귀국한 허주(虛舟·김윤환 전부총재) 역시 관심의 대상이다. 그는 “외유가 끝나면 정치개혁 문제 등이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혀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전혀 상황이 달라진 게 없어 당분간 국내 정치상황을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갖겠다”고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허주는 내각제 문제와 관련,“공동여당이 어떤 식으로든 국민과의 약속인내각제에 대해 해법을 내놓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그러나 허주는 때가 되면 독자적으로 움직일 공산이 크다.그도 내심 전국정당화를 염두에 두면서 ‘TK맹주’로서의 위상 강화에 골몰하고 있다는 측근들의전언이다. 허주는 올 초 ‘영남+보수 신당론’을 제기했으나 당시에는 별다른 호응을얻지 못했었다. 평소 국민통합을 최우선으로 꼽는 이한동 전부총재도 ‘보폭’을 넓힐 기세다.이전부총재는 지난 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냉전종식 한민족결의대회’ 기조연설을 통해 “특정인물 중심의 정치와 지역 볼모 정치에서탈피해 미래에 대한 밝은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건전한 지도세력이 정치의중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전부총재가 큰 틀의 정계 개편을 앞두고 ‘화두(話頭)’를 던진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대한시론] 지역주의, 민주화운동 차원 해결을

    삼성자동차가 문을 닫는 법정관리 문제를 놓고 부산의 시민단체들이 7일 부산역 광장에서 대정부 규탄대회를 열었다.이번 부산시민의 궐기대회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부산에서 본 김대중정부의 ‘지역차별주의적’ 경제정책에 대한 경고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수 국민의 걱정은 부산시민의 저항적 군중집회가 단순한 경제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저면에 깔려있는 감정적 지역주의의 대립이라는 사실을 숨길 수 없다.표면에는 ‘부산경제 살리기운동’으로 나타나 있지만 그 내막은속으로 깊이 번지고 있는 감정적 지역주의의 불길이 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치권이 늘 이런 일에 말려들고 있다는 사실이다.아니 기꺼이 끼어들면서 모든 이슈를 정치적으로 선동하며 마치 공을 맞받아 차듯이 여야가자기의 책임을 차내고 있다.야권은 김대중정부의 삼성차 빅딜이 시작부터 실패를 예견한 것이었다고 비난하고,이에 대한 여권의 반응은 책임질 사람은현 정권이 아니라 무모한 자동차사업을 삼성에게 허가해 준 김영삼 전 정권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지적하려는 논지는 부산집회 그 자체가 아니라 이로부터 전파되는 심각한 지역감정문제에 있다.결론부터 말해서 김대중정부에 와서도 그토록 ‘망국적 한국병’이라고 탄식한 지역감정문제가 나아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달라진 점이 있다면 지역주의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다는 불평의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이 바뀐 것뿐이다.한 때는 그 불평이 광주와 호남지역 및 기타 비영남권에서 들려 오더니,지금은 부산과 영남지방및 비호남권에서 불평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감정적 지역주의에 대한 불평의 소리가 어디서 들려오든 간에 한가지 일관되고 공통된 정치권의 속셈은 여야 모두 지역주의 때문에 큰 덕을 보고 있다는 사실에 흡족해 있다.국민의 다수가 아직은 지역주의적 감정에 따라 선거에 참여하고 투표한다는 사실을 잘아는 정치가들은 당선을 위해 모든 이슈를 감정적 지역주의로 해석하도록 유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새로운 천년을 약속하는 민주시민이라고 자부하지만 우리 국민 다수는 아직도 전근대적 연고주의 의식에 묻혀 있다.학연과 지연,혈연과 같은 1차집단에 집착하는 사회를 우리는 비민주적 후진국가라고 배웠다.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우리는 아직 연고주의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숨길 수 없다.지연에 기반하여 형성된 감정이 다른 지역에 대해 부정적이며 편파적으로 인식하고 처신하는 것이 한국의 지역주의이다.따라서 우리의 지역주의는 민주화 운동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민주화,즉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엔 여러 단계가 있다.첫째는 이행단계,둘째는 공고화 단계,셋째는 완성단계 등 세 가지로 구분해 연구하는 학설이 있다.한국의 지역주의는 정치화된,즉 정치가가 악용하고 또 국민 다수가전근대적으로 집착하는 비민주적 의식구조이며 동시에 정치문화의 일면이다. 때문에 한국의 감정적 지역주의 문제는 단시일내에 또는 김대중 정권기 내에 해결될 문제가 아닐 것이다.탈지역주의 과정도 민주화 과정처럼 이행단계,공고화 단계,완성단계 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민주화는 견해에 따라 아직 ‘이행단계’에 있다고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어떤 이는 이미 ‘공고화 단계’에 이르렀다고 한다.그러나 한국의 ‘탈지역주의’ 과정은 아직 이행단계에 조차도 이르지 못한 감이 없지않다. 민주화 이행단계에 진입하는 필수조건은 대략 두 가지로 알려져 있다.첫째지배계층이 자의,또는 타의적으로라도 권위주의 비민주정권의 불합리성을 시인하고 민주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이다.둘째,국민은 이러한 비민주적 엘리트 집단의 반성을 선의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과거사에 대한 죄를 용서하며 힘을 합쳐 모두가 행복한 민주화의 장정에 진입하는 것이다.그러나 탈지역주의운동은 이 두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지 못하다. 김대중정부의 핵심부는 과거 오랜 시간 권위주의적 비민주주의 정권하에서민주화투쟁을 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김대중정부에 바라는 기대는 영호남은 물론 기타 비영호남지역 국민이 공히 감탄할 수 있는 탈지역주의로의과감한 이행일 것이다.재야시절 지역주의의 대표적 피해 당사자였던 김 대통령은 탈지역주의의 이행을 위한 적격자이기 때문이다. 김유남 단국대 교수·비교정치학
  • [사설] 선동으로 될 일인가

    염려되던 삼성자동차 관련 부산(釜山)시민집회가 무사히 끝났다.이는 두말할 것 없이 부산시민의 성숙한 시민의식과 나라사랑을 반영한다.그 덕으로부산집회는 평화적이며 질서있게 끝날 수 있었다. 이같은 시민정신은 아무리 평가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일부세력은 부산집회를 소아(小我)적 정치목적에 이용하려 들었다.부산시민은 이에 말려들지 않았으며 오히려 제지하고 나섰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주최측의제지에도 불구하고 낭독이 강행된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의 메시지는 선동적인 내용에도 불구하고 들끓던 부산민심에 불을 지피지 못했다. 그렇지만 부산시민은 이날 보여준 수준 높은 시민정신과 자제심 때문에 도리어 더 많은 국민들로 하여금 그들의 주장에 관심을 기울이고 경청토록 만들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정치선동이 필요한 때가 아니라 슬기로운 해법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다.이런 때에 해법을 제시하기는커녕 불집을 이루고 일을 꼬이게 하는 것은누가 그러든 온당치가 않다.김전대통령이 그런다면 더 더욱그러하며 납득할 수가 없다.그는 삼성자동차사업을 허가해준 사람으로 지금의 문제에 원초적 책임이 있다.그런데 무슨 할 말이 있어 지역정서를 선동하고 정부를 비난하는가.어느 정당 대변인의 말대로 ‘부산집회에 굳이 메시지를 보내야 했다면 그 내용은 삼성자동차의 허가와 입지 선정 잘못에 대한 사과’여야 맞다. 그럼에도 그는 삼성자동차와 부산경제 문제에 대한 모든 책임을 현정부와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전가했다.자동차 빅딜이 정치보복이며 부산경제죽이기라 했으며 김대중 대통령을 독재자라 부르기를 서슴지 않았다.또한 부산시민의 투쟁에 적극적인 협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도 했다.이는 누가 보아도 지역감정과 민심을 선동하는 발언이다.전직 대통령이며 원로 정치지도자가 왜 이래야 되는지 이해할 수 없으며 안타까운 노릇이다. 그는 마땅히 국민통합과 국가문제 해결에 지혜를 보태고 조언해야 할 위치에 있다.그런 그가 선동적이며 무책임하고 분별 없는 말을 퍼붓는 것은 국민과 국가에 불행한 일이다.그는 이것을 깨닫고 자중하는것이 옳다.그렇지 않으면 자칫 나라를 파괴하고 자신도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삼성자동차와 부산경제 문제는 부산을 위해서뿐 아니라 나라경제를 위해서도 해결이 시급하다.현정부는 김영삼정권이 저지른 일이지만 수습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이런 때에 필요한 것은 민심을 선동하거나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냉정하고 슬기로운 해법을 찾는 노력이라는 것은더 강조할 필요가 없다.
  • 더 멀어지는 상도동·한나라

    “그래서 내가 연설문(격려 메시지)에 부산에 부끄러운 정치인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은 7일 부산 삼성자동차 집회에 보낸 자신의 메시지 낭독이 한때 거부된 데 대한 보고를 받고 보인 반응이다.김전대통령은 주저하지 않고 ‘연설 방해’ 주도자로 한나라당을 겨냥했다.특히 부산출신의원들을 지목했다. 부산 집회를 계기로 한나라당과 상도동측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는분석이다.상도동측은 이번 일로 한나라당이 ‘여당의 이중대’임이 확인됐다는 입장이다.한 인사는 “YS의 연설 여부를 놓고 시민단체의 입장이 바뀐 것은 여권의 공작도 있지만 한나라당측의 방해도 있었다”며 증거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7일 집회에서 한나라당의원들을 향해 “똑바로 하라”며 ‘호통’을 쳤던 김광일(金光一)전비서실장은 “부산지역의원들에게 YS인지 이회창(李會昌)총재인지 선택을 하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종웅(朴鍾雄)의원도 “시민단체에 압력이 있었다”며 “엉뚱한 장난을 묵과할 수 없다”며 한나라당을 ‘배후세력’으로 지목했다. 지난 6월 29일 부산시지부 후원회에서 “상호간에 오해가 있었다”며 김전대통령과 ‘화해’를 시도했던 이총재측은 “한마디로 말도 안된다”며 어이없어 했다.이총재의 한측근은 “우리가 뭐가 아쉽다고 YS 연설을 방해하나. 관심도 없다”며 배후설을 일축했다. 부산출신 의원들은 “(상도동에서)뭔가 오해를 하고 있다”면서 곤혹스러워 했다.부산출신 한 의원은 “YS는 ‘침묵은 금’이라는 금언을 스스로 되새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산 최광숙기자 bori@
  • ‘YS 메시지’부산시민도 곱잖은 시선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이 7일 부산역 광장에서 열린 삼성자동차 법정관리규탄대회에 보낸 격려 메시지를 두고 현지 시선은 곱지않다.시민·사회단체는 8일에도 “김전대통령은 지나치게 정치적논리로 문제에 접근하려 했다”며 우려와 불만을 표출했다.일반 시민들의 분위기도 마찬가지였다.이들은 “지역감정을 부추긴 듯한 발언으로 일관한 김전대통령은 자숙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문제를 더욱 꼬이게 할 우려가 있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조재범(趙宰範) 부산경실련 기획부장은 “김전대통령에게 메시지를 전달해달라고 부탁한 데서부터 문제가 발생했다”며 주최측의 신중치 못한 태도를나무랐다.김전대통령에 대해서는 “삼성차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절대 반대한다”면서 “정치적 고향이 부산인 전직대통령으로서 이같은 요청이 있었다하더라도 개입하지 않았어야 옳다”고 덧붙였다.IMF의 원인제공자로서 자성하고,정부에 힘을 실어주는 게 도리라는 설명이다.시민들은 삼성자동차 문제가 지역감정의 갈등으로 비화하지 않을까 우려했다.그러면서 “정치권이나 정부,시민 모두 지혜를 모아 삼성자동차 문제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해결해야한다”고 강조했다. 朴在律 부산참여연대 사무처장은 “김전대통령도 삼성차 책임문제 만큼은자유롭지 못하다”면서 “삼성문제를 현정부와 정치적 대결의 연장으로 표현하거나 몰고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진정으로 지역경제와국가경제를 위한다면 전직대통령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겸허한 자세로 임해야한다는 주문이다. 그러나 부산역 집회를 주도했던 부산경제살리기 시민연대는 정도의 차이는있지만 정치논리제기에도 일리가 있다는 반응이다.서세욱(徐世旭)사무처장은 “정치논리로 국제그룹이 해체되는 등 그동안 부산경제는 정치논리가 작용해 왔다”면서 “삼성차 빅딜과 법정관리,정부의 청산운운 발언을 종합하면부산경제 죽이기가 분명하다”고 동조했다.그러나 김전대통령 발언은 자신에 대한 얘기라며 시민연대와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부산 강동형기자 yunbin@
  • [오늘의 눈] YS메시지 유감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이 ‘선동(煽動)정치가’로 본격적으로 나서려는모양이다.7일 삼성자동차 관련 부산집회장에 김대통령이 보낸 ‘격려 메시지’는 과격선동가의 격문을 방불케하는 내용으로 일관했다.한나라당 박종웅(朴鍾雄)의원이 대독한 격려메시지는 A4용지로 4페이지나 됐다.사실상의 연설문이었다. 그는 “독재자 김대중씨는 자기자신의 불행한 무덤을 파고 있다”면서 “우리나라의 제2의 도시인 이곳 부산에서 정의와 진실이 살아있음을 보여줘야할 것”이라고 부추겼다.이어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부산 수영만에 우리역사상 유례없게 100만명이 넘는 인파가 모였던 그 순간의 감동과 눈물을 지금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고 지역감정을 파고 들었다. 투쟁의 정당성까지 부여하며 분위기를 띄웠다.이날 집회를 ‘자유를 위한투쟁’이자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고 외쳤다.“김대중정권은 국민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이렇게 빠른 속도로 부패하는 정권은 지구상에 찾아보기힘들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메시지 어디에도 자신의 원죄(原罪)에 대한 반성은 없었다.도리어“(문민정부때)삼성자동차를 허가한 것은 국제경쟁력이 있는 건전하고 우수한 기업으로 하여금 우리 자동차산업을 크게 발전시키고자 하는 굳은 의지와 정책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강변했다.그러면서 “삼성자동차의 퇴출은 전적으로 정치보복이며,부산경제 죽이기에 다름 아니다”고 화살을 돌렸다. YS의 이같은 억지 주장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조할까.허가 당시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생산시설은 이미 과잉상태였다.세계 유수의 연구기관과 우리 연구소,주무부서인 산업자원부에서조차 이같은 이유를 들어 반대했지만결국 허가를 내줘 오늘의 사태를 빚었다. 일부 시민 사회단체 관계자들도 자신의 정책적 오류에 대해 사과는 못할망정 도리어 큰 소리를 치니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는 반응이었다. YS는 ‘국민’과 ‘역사’를 두려워해야 한다며 전·현직대통령들과의 차별성을 유독 강조한다.지금 그의 행동을 보면 국민과 역사를 뒤로 한 채 나락(奈落)으로 떨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오풍연 정치팀차장]poongy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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