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김영삼
    2026-02-01
    검색기록 지우기
  • 검찰 인사
    2026-02-01
    검색기록 지우기
  • 영화관
    2026-02-0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8,912
  • 金대통령 남북회담 ‘워밍업’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5일 오후부터 청남대에서 3박4일 동안 휴식을 취한다.말이 휴식이지,관계부처에서 올린 남북정상회담 관련자료들을 읽고 면밀히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박준영(朴晙瑩)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김대통령은 하와이대 서대숙교수가 쓴 ‘현대 북한의 지도자(김일성과 김정일)’ 등 북한관련 책 3권도 가지고 갔다.본격적인 북한연구에 들어간 셈이다.정상회담 직전까지 갔다가 김일성(金日成)주석의 사망으로 무산된 김영삼(金泳三) 전대통령과의 9일 만찬회동에 이어 정원식(鄭元植) 전 국무총리 등과거 남북 고위급회담에 참여했던 인사들을 만나 자문을 구하려는 것도 준비작업의 일환이다. 특히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의 두차례 이상의 단독회담 준비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있다.서교수가 쓴 책에서부터 김위원장이 관심을 갖고있는 것으로 알려진 문화·예술분야에 대한 검토는 물론 그의 연설문과 어록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김대통령은 김위원장의 통일관과 남북관에 관심을 갖고있다”면서 “단독회담을 정상간 신뢰구축의 자리로 만들려는 구상이 엿보인다”고 말했다. 아울러 오는 8일 4차 실무접촉에서 합의될 평양 체류일정과 의전절차에 따른행동요령도 여러 각도에서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번 청남대 구상은 워밍업의 단계인 것같다.필수 인원 외에는 아무도 수행하지 못하도록 했고,장관이나 참모들을 부를 계획이 없다는 게 박대변인의 전언이다.영화 ‘타이타닉’ 비디오테이프를 가지고 간 것은 총선 격무 이후 휴식의 의미도 담겨있다는 설명이다. 양승현기자
  • 초점인물/ 한나라당 강인섭지부장

    14대 의원과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한나라당 은평갑의 강인섭(姜仁燮·64)당선자가 2일 한나라당 서울시지부장으로 금의환향(錦衣還鄕)했다. 이날 오후 서울시지부 정기대회에서 지부장에 선출된 그는 “서울시지부가정치권의 ‘심장부’인 만큼 그에 걸맞는 정치적 역할을 해 나가겠다”고 취임 일성을 터뜨렸다. 특히 “전국정당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서울지역 의원들의 역량을 키워나가겠다”면서 “앞으로 ‘장외집회’도 지양하고 생산적인 정치가 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언론인 출신인 그는 지난 88년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에 의해 발탁돼 통일민주당 부총재로 정계에 입문했다.이회창(李會昌)총재와의 인연은 정무수석 당시 김전대통령과 신한국당 대표이던 이총재의 청와대 주례회동 심부름을 하면서 자연스레 맺어졌다. 그러다가 지난 9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 이수성(李壽成)전총리를 지원하는 ‘정발협(政發協)’의 중립요구 발언으로 당내파문이 일자 정무수석에서 물러났다.그 바람에 ‘이회창사람’이 됐다는 후문이다. 입이 무거우면서도 나서지 않고,일처리를 꼼꼼히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치인으론 보기 드물게 4권의 시집을 낸 진짜 시인(詩人)이다. 최광숙기자 bori@
  • [격동의 남북관계 반세기](1)남북기본합의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간의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한달여 앞으로 다가왔다.대한매일은 1945년 분단 이후 현재까지 중요한 남북관계 일화와 사건들을 특별기획으로 연재한다.이번 특집은 남과 북의양측 당국이 대화와 협력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왔고,또 어떤 이유로 그같은 노력이 좌절됐는가를 반추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1992년 2월 19일 오전 10시 평양의 인민문화궁전. 남북한의 TV와 라디오가 생방송하는 가운데 정원식(鄭元植)국무총리를 비롯한 남측대표와 연형묵(延亨默) 정무원 총리를 비롯한 북측대표가 남북기본합의서 발효행사를 시작했다. [민족사적 의미] 수행원들의 기립박수 속에 발효절차를 마친 정 총리는 흥분된 목소리로 “오늘은 우리 민족사에서 참으로 뜻깊은 날로 기록될 것”이라고 감격을 표시했다.연 총리도 “최근 시베리아 고기압은 낮아지고 우리민족의 통일열기는 높아진다”고 시대의 변화를 은유적으로 표현했다.이날로 남과 북은 분단 반세기만에 평화공존의 틀을 마련한 것이다. 다음 날남측 언론은 기본합의서 발효사실을 대서특필했다.그러나 어찌된일인지 북측은 남북의 공동발표문과 대변인의 기자회견 내용만 간략히 보도했다.그리고 기본합의서 발효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남측에서도 북한의핵 개발의혹이 점차 실체적인 위협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역사적 배경] 1990년을 전후해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가 몰락했다.동·서독의 통일,소비에트연방의 해체 등 국제정세에 엄청난 변화가 이어졌다.세계적인 대변혁의 물결은 지구촌의 마지막 냉전지대인 한반도에도 밀려왔다. 북한은 국제환경의 급변속에서 외교적 고립을 탈피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이와함께 심각한 경제난에 따른 체제붕괴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존의 이념적·폐쇄적 노선을 포기하고 개방·개혁의 실용주의노선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남측도 시대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했다.88년2월 취임한 노태우(盧泰愚)대통령은 4월21일 열린 첫 기자회견에서 “임기중에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을이룩할 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천명한 뒤 ‘북방정책’을 추진했다.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와 수교가 잇따랐고,91년에는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가입했으며 한-러,한-중 수교도 이뤄졌다.그 시점에 남은 것은 남과 북 두 당사자간의 관계개선 뿐이었다. [추진 과정] 1988년 12월28일 강영훈(姜英勳)국무총리가 북한의 연형묵(延亨默)총리에게 서한을 보내 총리회담을 제의했다.이에 대해 연 총리는 다음해1월16 남북 고위급 정치·군사회담을 갖자고 제의했다.남북은 90년 9월부터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7차례의 고위급 회담을 이어갔다.91년 12월10일부터 14일까지 서울에서 열린 제5차 고위급회담에서 남북기본합의서가 합의돼 양측총리가 서명했다. 92년 2월18일부터 21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제6차 고위급회담에서는 남북기본합의서가 발효됐다. [내용상 함축] 남북기본합의서는 서문과 4장 25조의 본문으로 구성돼 있다. 서문에서는 남북한이 평화통일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본문에는 남북화해를 위한 실천과제와 불가침 약속,군축문제가 담겨있다.군축대상인 대량살상무기에는 화학·생물학무기와 핵무기도 포함하는 것으로남북간에 합의됐다. 또 경제교류와 협력,인적 왕래,교통로와 우편·통신의 재연결,통신교류의비밀보장과 관련한 규정도 담겨있다.남과 북 사이에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교류 방안이 다 들어있는 셈이다. [북측의 불이행] 북한은 1992년 11월 5일부터 개최키로 합의한 분야별 공동위원회 제1차 회의에 참석을 거부한 이래 기본합의서 이행과 당국간 대화를기피했다.93년 1월 북한 핵 문제가 터지면서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은 물론 남북관계 전체가 사실상 중단됐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까지 남북기본합의서를 부정하는 입장은 보이지 않고 있다. [우리측 이행노력] 정부는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실천을 임기중 시행할 ‘100대 국정과제’로 선정하고 있다.김대중 대통령은 취임사와 8·15 경축사 등여러 계기를 통해 북한측에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을 촉구하고 이를 위해 분야별 공동위원회 가동과 특사교환을 제의한 바 있다. 이도운기자 dawn@. * 기본합의서 법적 성격…민족 특수관계 규율 문서. 남북기본합의서는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를 규율하는 문서이다. 기본합의서는 서문에서 남북관계를 국가간 관계가 아닌 ‘잠정적 특수관계’로 규정했다.따라서 국가간의 조약이라고 할 수는 없다.다만 서문과 조문의 배열,발효의 절차,권리와 의무에 관한 규정,정부대표가 서명한 점 등은국가간 조약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이같은 기본합의서의 이중적 성격 때문에 합의서의 국회동의 필요 여부,국내법과의 저촉 등과 관련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92년 당시 노태우(盧泰愚)대통령이 남북기본합의서에 서명한 뒤 국회에 인준을 요청하지 않은 것은 정부가 국가간 문서가 아니라고 간주했기 때문이다.북한은 남북기본합의서 서명후 최고인민회의 동의를 거쳤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98년 7월26일 서울고법 특별7부(재판장 李根雄 부장판사)는 “남북기본합의서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판시하기도 했다. 남북기본합의서는 합의사항에 대한 체결 주체의 준수·이행을 명백히 요구하고 있다.단순한 정치선언이나 강령과는 다른 것이다. 따라서 기본합의서는 남북한 당국이 의지를갖고 실천하면 ‘민족의 장전(章典)’이 될 수 있다. 이도운기자. [기고] 남북정상회담과 '기본합의서' 남북기본합의서가 발효(1992.2.19)된지 8년 4개월만에 그 정치적 실천을 담보하는 정상회의가 6월 12∼14일 평양에서 열린다. 남북기본합의서가 화해,교류·협력,불가침 이행을 약속한 현상확인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면,남북정상회담은 현상확인적 요소와 함께 현상변경적 요소도 담아야 한다. 남한의 역대정부(노태우,김영삼,최근 김대중)들이 내놓은 통일방안의 공통점은 통일을 과정으로 보고 국가연합적 성격을 가진 ‘남북연합’이라는 중간단계를 둔 점이다.그 이유는 동서독과 달리 상호 무력충돌을 가졌고,50년이상 장기간의 분단으로 인한 이질화와 깊은 상호 불신 때문이다. 북한측도 1960년초 부터 고려연방제를 내놓았지만 1988년 이래 점차적으로통일의 점차적인 완성을 강조하면서 내용적으로는 남한의 남북연합에 매우유사한 주장을 하고 있다. 특히 1991년 김일성 신년사는 제도적 국가적 통일을 후 세대에 미룬다고 함으로써 국가연합적 성격의 통일방안을 명백히 하고 있다.이것은 남북한 양통일방안이 상호 수렴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이러한 점에서,정상회담이 이루어진다면 양 정상들은 남북연합이라는 가시적인 통일 청사진을 합의하여 발표해야 할 것이다. 남북기본합의서-남북연합의 헌장-통일헌법과의 관계는 3단계 통일방안으로설명이 가능하다.남북기본합의서가 화해협력단계의 법적 기초(1단계)라면,남북연합 헌장은 남북연합의 법적 기초(2단계)이고,통일헌법은 1민족 1국가 통일국가의 법적기초(3단계)라고 할수 있다. 따라서 남북기본합의서는 평화를 강조한다면,남북정상회의는 기본합의서의실천과 동시에 통일에 대한 큰 그림도 합의하는 현상변경적 결단을 내려야할 것이다.남북기본합의서가 평화에 대한 총론을 규정했다면 남북 정상회의는 평화를 실천하는 보다 구체적인 각론적 내용을 합의해야 한다.1992년 남북기본합의서가 탄생한 것은 남북한의 정치적 동기가 공통적으로 강했다.남한은 북방정책의 한건 주의의 일환으로,북한은 동구권 붕괴이후 정치·외교적 체제위기의극복을 위한 국면전환용으로 남북기본합의서에 서명했다. 그러나 남북한의 동기야 어떻든 남북기본합의서의 합의 내용은 최초로 공식적인 민족의 화해,협력과 평화 장전의 문서이다.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라는 7·4 공동성명의 3대 원칙을 천명한 남북기본합의서에 대해 그 법적 성격과 실천을 둘러싸고 쌍방간에 많은 공방이 있었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쌍방 모두 그 동안 그 남북기본합의서에 대한 정치적실천의지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쌍방 당국은 이제 지난 과오를 겸허하게 민족과 양쪽 국민 앞에 인정하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남북정상은 향후 모든 민족문제는 남북기본합의서를 기초로 풀어가겠다는정치적 결단과 그에 따른 구체적 실천조치를 재다짐해야 한다. 한 예로 쌍방은 기본합의서 제15조의 민족내부거래를 세계무역기구(WTO)를포함한 국제기구에서 공인받기 위해 유엔헌장 102조에 따라 유엔 사무처에등록함은 물론,4개 분과위원회와 5개 공동위원회의 조속한 가동에 합의하기를 바란다.이제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계기로 쌍방은 사문화된 기본합의서의정신 복원과 그 실천성을 살려서 한반도에 평화의 불씨를 다시 지펴야 할 것이다.그래서 한국전쟁 50년이 되는 2000년 그리고 6·25라는 동족 상쟁의 이미지를 가진 6월이 이제 평화와 희망를 잉태하는 해와 달로 바꿔지기를 바란다. 이장희 한국외대교수·국제법
  • 金대통령·YS 9일 회동 정상회담·지역갈등 해소 논의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오는 9일 저녁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을 부부동반으로 청와대로 초청,남북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협력을 당부할예정이다. 청와대 박준영(朴晙瑩)대변인은 30일 “김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과 만찬을함께 하며 남북 정상회담의 추진 및 성사 경위를 설명하고 김 전대통령의경험과 의견을 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의 다른 관계자는 “이번 회동을 통해 그동안 소원했던 김 대통령과김 전 대통령간 관계회복의 계기도 될 것”이라고 말해 지역갈등 등 정국현안에 대해서도 의견교환이 있을 것임을 예고했다. 김 대통령은 지난 18일 한광옥(韓光玉) 비서실장을 김 전 대통령의 상도동자택으로 보내 25일 전직대통령 청와대 만찬에 참석해주도록 요청했다.김 전대통령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으나 방미일정 때문에 25일 만찬에는 참석하지 못하고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뒤 따로 모임을 갖기로해 9일 만찬 회동이 결정됐다. 김 전 대통령은 한실장에게 “남북정상회담을 성공시켜야 한다”고 밝혔다고 박 대변인은 전했다. 김 전대통령은 미국방문을 마치고 오는 6일 귀국한다. 김 전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수행중인 한나라당 박종웅(朴鍾雄) 의원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김 전 대통령은 청와대 회동에서 정상회담에 대한 조언 뿐 아니라 정치적 얘기도 다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김 대통령은 지난 29일 청와대에서 한국신당 김용환(金龍煥)중앙집행위 의장과 조찬을 겸한 회담을 갖고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초당적으로 협력하기로 의견을 모았으며 1일에는 김윤환(金潤煥) 민국당 대표대행과 조찬회동을 갖는다. 양승현기자 yangbak@
  • 상도동측 반응,관계개선 기대 “정치 얘기 할것”

    오는 9일 전격 성사된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의회동에 대해 상도동측은 두 사람간의 ‘관계 개선’으로 비춰지는 시각을 일단 경계했다.그러면서도 일말(一抹)의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상도동측의 대변인격으로 현재 김전대통령을 수행해 미국을 방문중인 한나라당 박종웅(朴鍾雄)의원은 30일 “청와대측에서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조언을 요청해와 회동 제의를 받아들였다”면서 “YS는 DJ가 독재자라는 생각에변함이 없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번 회동을 두 사람간 ‘관계 개선’으로 볼 수 있느냐는 질문에“알아서 생각하라”고 말해 식사만 하는 자리 이상의 ‘의미’있는 자리가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박의원은 또 “두 분이 만나면 정상회담에 대한 조언뿐 아니라 정치적 얘기도 다할 것”이라며 “회담을 위해 따로 준비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말했다.이어 “YS가 주미(駐美) 한국대사관측으로부터 현직에 준하는 경호등 예우를 극진히 받은 것은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당은 두 사람의 회동 계획을 크게 반겼다.정동영(鄭東泳)대변인은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성공을 위해 각계 각층의 뜻과 협조를 모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면서 “재임 당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던 김전대통령을만나 경험과 준비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것은 적절하고 의미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핵심 당직자도 “이번 회동에서 전·현직 대통령이 남북문제 등 국정전반에 걸쳐 협력하고 조언함으로써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계기가 되기바란다”고 말했다. 박준석 주현진기자 pjs@
  • 9일 청와대회동 전망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이 오는 9일 청와대에서 부부동반 만찬을 갖기로 함으로써 벌써부터 두 사람의 회동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전대통령은 지난 98년 7월 김대통령이 취임기념으로 전직대통령들과 청와대 오찬 회동을 가진 이후 1년10개월 동안 김대통령의 초청에 네 차례나 응하지 않았다.김전대통령은 그뒤 현정부에 대한 비판 수위를 갈수록 높여왔다.특히 지난해 10월16일 부산민주공원 개원식때 김전대통령은 김대통령이 악수를 청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돌아가려 했을 만큼 냉랭했다. 두 사람은 외향상 성공적인 남북정상회담을 협의하기 위해 만난다.단독회동일정도 지난 18일 한광옥(韓光玉) 비서실장이 전직대통령 청와대 오찬을 성사시키기 위해 김전대통령의 상도동 자택을 찾아갔다가 잡혔다.당시 김전대통령은 “미국일정이 잡혀 있으므로 귀국후 만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박준영(朴晙瑩)청와대대변인도 “김대통령은 오랫동안 남북문제를 연구,스스로 이론과 방안을 제시해 왔으며,김전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성사 직전에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무산된 적이 있다”며 “회담 성공을 위해 만찬에서는 여러 좋은 얘기들을 나눌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번 회동은 어느 정도 예견돼 왔다.독설로 일관해 온 김전대통령이 이례적으로 “민족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기 바란다” “내 임기중 정상회담이성사되지 못해 아쉽다”며 유독 정상회담 부분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반응을보여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회동은 현안논의를 넘어 상징적이고 개인적인 의미를 무시할 수 없다.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두 분 사이에 그동안 서먹서먹한시간들이 있었다”면서 “이러한 감정도 아울러 풀릴 것으로 본다”는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두 사람의 화해는 그들이 지닌 정치적 상징과 기호로 인해 국민화합에 줄메시지도 적지않다.지난 총선에서 나타난 지역갈등 해소를 위해 별도의 논의를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양승현기자
  • 남북 정상회담 2차 준비접촉/ 논의내용과 전망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간의 남북 정상회담의 ‘모양’이 점차 가시화하고 있다. 남북 양측은 27일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열린 2차 준비접촉에서 정상회담 의제와 절차 등에 대부분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정상회담 예비접촉이큰 이견없이 굴러가는 것 자체가 남북관계의 진전일 수도 있다. 박재규(朴在圭)통일부장관과 우리측 수석대표인 양영식(梁榮植)통일부차관은 이날 준비접촉이 끝난 뒤 “다음달 3일 열리는 3차 접촉을 관심있게 지켜봐 달라”고 거듭 강조해 실무협상이 사실상 타결됐음을 시사했다.3차 접촉에서는 양측이 의제및 절차와 관련한 합의문을 작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남북은 일단 의전과 경호,통신,보도,대표단 규모 등 절차와 관련해서는 지난 94년 당시 김영삼(金泳三)대통령과 김일성(金日成)주석간의 정상회담을준비하는 과정에서 합의된 내용을 대체로 준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양영식 차관이 밝힌 것처럼 ‘사이버 디지털시대의 새로운 상황에 따른 절차문제’가 추가됐다. 고위 당국자는 이에 대해 “대통령이 움직이기 때문에 청와대와의 직통 교신 문제 등이 검토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방송 관계자들은 정상회담의위성 생중계나 컴퓨터 통신시스템 사용 등과 관련한 문제일 것으로 예측한다. 의제와 관련해서는 크고 작은 이견이 아직 남아 있는 상태다.우리측은 이산가족 상봉,경협 등 김대중 대통령이 베를린선언을 통해 밝힌 4개항을 그대로북측에 제시했다. 북한측도 7·4남북공동성명의 원칙인 자주,평화,민족 대단결을 주요 의제로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측은 이와 함께 주한미군 철수,국가보안법 철폐 등 우리측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를 계속 의제에 포함시켜야 한다는주장을 포기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재규 장관은 “3차 접촉에서 의제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4차 접촉이 열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그러나 시간관계상 실무접촉이 그이상 연장되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남북은 실무선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사전에 의제를 정하지 않고 정상회담에 일임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것으로 알려졌다. 3차 접촉에서 의제와 절차가 합의되면 남북은 의전·경호·통신·보도 등분야별 실무 준비에 들어간다.다음달 안에 우리측 의전 및 경호팀 선발대가평양에 파견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도운기자 dawn@
  • 남북 정상회담 2차 준비접촉/ 청와대 움직임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얻기 위해 지난 24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와의 영수회담으로 시작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1단계 의견수렴 과정이 26일 3부 요인과의 오찬 및 중앙 언론사 사장단과의 만찬 모임으로 마무리됐다.일단 27일 제2차 남북 실무접촉 결과를 보고받은 뒤 2단계의견 청취에 착수할 예정이다. 청와대는 이날 북한측 통일각에서 열린 2차 실무접촉 결과에 매우 만족해하는 모습이다.특히 양측이 다음달 3일 열릴 제3차 실무접촉에서는 의제·절차 등에 대한 세부적인 합의문을 작성하기로 함에 따라 정상회담에 거는 기대치가 상당히 높아지고 있다. 이제 김 대통령의 정상회담 준비작업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정빈(李廷彬)외교부장관 등의 중국 방문도 그 일환이다. 이번 주말 자민련 이한동(李漢東)총재와의 회담을 끝으로 총선 민의 수렴을위한 작업과 함께 정국 안정의 기초를 다진 만큼 다음주부터는 본격적인 회담 구상에 들어갈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한 관계자는 “역사적인 회담을 앞두고 김 대통령의 생각이 많은 것 같다”면서 “내주부터는 가급적 일정을 줄이고 정상회담 준비에 집중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각종 보고서와 예상되는 문제점을 하나하나 점검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능하면 회담 시믈레이션도 구상 중이라고 했다. 여기에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과의 회동도 추진하고,통일고문 등도 초청,지혜와 경험을 구할 계획이다. 경제수석실의 한 관계자는 “남북 특수에 대비,경제계 인사들과도 만날 계획”이라고 전했다. 현재 김 대통령은 남북경협의 틀 속에 이산가족 상봉 및 정상간의 정례 회담에 가장 신경을 쓰고 있다는 전언이다. 양승현기자 yangbak@
  • [사설] 金泳三전대통령의 저질 언동

    미국을 방문중인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이 25일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다른 정치인들에 대해 그대로 옮기기 힘든 상말과저속어를 사용하면서 거침없이 욕설을 해댄 것으로 전해진다.전직 대통령으로서 갖춰야 할 품격과 도량은 찾아 볼 수 없고 현직 대통령을 비롯,국내 정치지도자들을 싸잡아 욕설로 비하하는 저질 언행에 서글픈 마음을 금할 수가없다. 그는 간담회 내내 자신의 실정(失政)을 성찰하기보단 남을 헐뜯는데일관했다.김대통령에 대해서는 내각제 약속을 어겼으므로 하야해야 한다고했고 이회창(李會昌)한나라당 총재에게는 공천파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궤변과 욕설을 늘어 놓았다.속인이라도 지켜야할 절도가 있다.하물며 한 나라 국정의 최고 책임자였던 전직 대통령의 입에 담지 못할 험담과 욕설은 오히려 국민을 욕되게 한다는 것조차 생각이 못미친단 말인가. 더욱 민망한 것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의 불편했던 심기를 내보이면서 현직에서 활동중인 여야지도자들을 ‘민주주의의 반역자’라며 자신이쓸 회고록에 모든 것을 폭로하겠다고 협박에 가까운 극언을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그리고 자신은 송장이나 식물인간이 아니라고 강변하면서 차기 대선에 영향력을 행사할 뜻을 내비쳤다.그가 우리의 전직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그가 국정의 총책임을 맡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김전대통령 자신이야말로 국제통화기금(IMF)사태를 불러온 맨 윗 책임자로 지금도 많은 국민들이실직과 노숙자로 거리를 방황하고 있는 사실에 숙연한 자세를 잃지 않아야할 처지다.수많은 국민들을 실의와 좌절감에 빠뜨린 장본인이라면 자숙하고근신해야 마땅함에도 그런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전직 대통령을 국정의 원로로 모시고 싶은 것이 국민의 한맺힌 바람이다.국민들은 전직대통령이 현직대통령을 돕는 국정의 동반자로 외교적 역량을 발휘하는 외국의 예를 부럽게 생각하고 있다.국사(國事)에 도움을 주길 바라는소박한 국민 소망에 부응치는 못할 망정 부적절한 시기에,부적절한 장소에서 험담을 해서야 되는가.지금 남북정상회담을앞두고 국력을 결집해도 모자라는 판국에 외국에 나가 궤변으로 국론을 어지럽히는 모습은 온당치 못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우리는 김전대통령이 이성을 되찾고 나라와 국민을위해 진정 해야할 역할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주길 바란다.이제 총선도 끝나고 국민화합과 민족통일이라는 대승적 차원에서 국정의 원로로서 미래지향적인 역할을 해주길 다시 한번 촉구한다.
  • 전직대통령 청와대오찬 이모저모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25일 청와대에서 방미중인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을 제외한 최규하(崔圭夏)·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 등 3명의 전직대통령과 오찬을 함께하고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따른 조언과 지혜를구했다.김 대통령과 전직대통령들은 시종 밝은 표정으로 대화를 나눴다.1시간30분 동안 계속된 오찬에서는 노 전대통령이 비교적 많은 얘기를 했다고박준영(朴晙瑩)청와대대변인이 전했다.김 대통령은 전직대통령들에게 양식요리를 대접했다. □청와대 도착. 전 전대통령이 가장 먼저 도착했다.뒤이어 노·최 전대통령이 도착,영접나온 남궁진(南宮鎭)정무·황원탁(黃源卓)외교안보·박 공보수석에게 “오랜만이다”“잘 지냈느냐”고 반갑게 인사했다. 이들은 오찬장인 2층 백악실 입구에 서있던 김 대통령을 보자 반갑게 악수를 나누며 전날 여야영수회담을 의식,“고생 많이 했다”“어제 회담 모습이좋았다”고 위로했다. 전 전대통령은 “일부에서 북한의 신헌법에 국가원수가 김영남으로 되어있다는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며 “합의할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하기로 명시한 것인가”라고 묻자,배석한 박지원(朴智元)문광부장관은 “그렇다”고분명하게 대답했다. □오찬대화. 김 대통령의 건배 제의에 이어 3명의 전직 대통령들이 돌아가며 정상회담의성공을 축원하는 건배로 오찬은 시작됐다.이 자리에서는 박재규(朴在圭)통일부장관과 박 문광부장관,남궁 정무수석이 배석했다.다음은 대화록. *전 전대통령/ 오늘 고향에 가려고 했는데 점심이 있다고 해서 왔다. 고향의 소들이 아파 구제역으로 생각했는데 알아보니 아니라고 하더라. *노 전대통령/ 세월이 흐르면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것도 변하는데, 북한이 변하는 것을 보게 됐다. *김 대통령/ 북한이 정상회담을 하기로 한 것은 결국 남과 협력해야 한다는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으로 생각한다.세계의 지지도 요인이었다. *노 전대통령/ 전두환 대통령 때나 내가 재임할 당시나 항상 남북문제를 추진할 때는 북한이 우리 실정을 모르고 오판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우려해왔다.그 때는 북한이 항시 조건을 달아서 잘 진전이 안됐다.지금도 국민의뇌리 속에는 북한이 이번엔 왜 조건이 달지 않았는지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잘 홍보해야 한다. *전 전대통령/ 이번 회담이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 정말 성공하기 바란다.그러나 50년 만에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회담을 갖는 것만으로도 민족의 영광이다.양보할 것은 과감히 양보하고 할 수 없는 것은 안해야 한다.50년 이상 대결해왔는데,첫술에 배부를 수 있나. *노 전대통령/ 재임시 서동권 안기부장이 김일성 주석을 만났는 데, 공직자로는 유일했다.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실용주의자인 것 같다. *전 전대통령/ 미국 등 주변국과의 공조관계는 어떠냐. (황 수석이 굳건한 공조관계를 설명) *노 전대통령/ 이번 정상회담의 합의를 보면 김정일 위원장이 자기 체제를확립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또 실용주의 노선을 선택했고,변화를 수용하려는 느낌을 받았다. *최 전대통령/ 정상회담 절차문제를 잘 챙겨봐야 한다. *노 전대통령/ 이번 합의문에 7·4 공동성명만 언급되어 있다.지난 92년 남북기본합의서의 이행과 명분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김 대통령/ 실무회담에서 절차 등을 합의하게 될 것으로 본다. *전 전대통령/ 우리 국민은 북한에 대해 불신감이 높다.정상회담은 민족의미래를 결정하는 일로 북한이 근본적으로 변했는지를 유념하면서 대응하길바란다. *김 대통령/ 이번 정상회담은 베를린선언의 틀 속에서 논의가 될 것이다.북한의 SOC 투자에 대해서는 국제금융기관과 외국들도 관심이 많다.이산가족문제도 실질적으로 논의가 되도록 하겠다. 오찬이 끝난 뒤 김 대통령은 전직대통령들을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姜三載의원 당권도전 ‘출사표’

    한나라당 강삼재(姜三載·마산 회원)의원의 ‘당권 도전’ 기세가 심상찮다.이회창(李會昌)총재측의 ‘대안부재론’에 맞서 ‘세대교체론’으로 맞서겠다는 각오다. 16대 총선 선거운동 과정에서 이미 당권 도전을 선언한 강의원은 25일 낮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나 당권 도전 의사를 거듭 확인하고,이총재측의 ‘불공정’한 게임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97년 정권교체 뒤 거의 칩거(蟄居)생활을 해온 강의원이 언론에 공개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피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그래서 그런지 속마음을 훌훌털어놨다. 먼저 당권 도전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과 총재 경선 계획을 설명했다.그는 “이총재와 당이 이번 총선에서 133석을 얻었다고 자만하고 있는데 이대로 대선을 치르면 반드시 패한다”고 지적하고 “무엇보다 이총재의 오만과독선을 견제하기 위해 출사표를 던지기로 결심했다”고 각(角)을 세웠다.그러면서 “한나라당을 만들고 가장 사랑하는 전직 사무총장으로서 대의원들의 심판을 받겠다”고 덧붙였다. 이총재의 당운영과 지방 나들이에 대해서도 독설(毒舌)을 퍼부었다.“역대어느 야당 총재보다 당을 비민주적이고 독선적으로 운영해온 이총재가 전당대회에 앞서 세확산을 꾀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그런데도 당내에서 누구 하나 제동을 걸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총재의 ‘사당(私黨)화’를 꼬집었다. 강의원은 이총재를 겨냥,“여당과는 상생의 정치를 한다면서 비주류에게는왜 그렇게 하느냐”면서 “가슴이 없는 사람은 정치를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극도의 불신감을 나타냈다. ‘이회창 벽’을 넘기 위해 다른 경선 출마자들과의 연대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그는 “앞으로 나올 사람들과 협력방안을 모색하겠다”면서 “특히 김덕룡(金德龍)부총재가 반(反)이회창 단일전선을 위해 나에게 힘을 실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시선에 대해서는 “그분이 청와대에서 물러났을 때 정치적 고리는 끊어졌다”면서 “인간적인 신뢰 때문일 뿐정치적으로 확대해석은 하지 말라”고 해명했다. 그는 당권 도전에 나서기까지 누구와도상의하지 않았다고 소개하고, 김 전대통령에게는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 상도동으로 인사차 찾아가 출마 결심을 밝혔다고 전했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글라이스틴,민중항쟁 20돌 기념심포지엄 기조연설

    [로스앤젤레스 연합] 윌리엄 글라이스틴 전 주한미국대사는 21일 5·18 광주항쟁 진압은 당시 전두환(全斗煥) 장군이 결정하고 최규하(崔圭夏)대통령이재가한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글라이스틴 전대사(78∼81년 재임)는 5·18 민중항쟁 20주년 기념 심포지엄 이틀째인 이날 미 로스앤젤레스의 UCLA 교수회관서 열린 오찬 기조연설을통해 5·18항쟁의 근본원인은 신군부가 학생소요 유발혐의로 김대중(金大中)씨를 체포,지역정서를 자극하고 강경진압책을 구사한데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당시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학생들의 급진적 요구와 ‘공산주의 사상’ 확산을 고려할 때 체포와 진압은 ‘불가피한’ 조치라고 주장했으며 한국민이 이런 강경조치를 ‘이해하고 수용할 것’이라는 것을 내가 미국인이기때문에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했다”고 말했다. 이어 “최 대통령은 이런 신군부의 사고를 저지하기는 커녕 학생들에게 더감정적이었으며 김대중,김영삼(金泳三),김종필(金鍾泌)씨가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강하게 비난했다”고 밝혔다.글라이스틴 전대사는 따라서 “계엄당국이 광주 학생들을 협박해 굴복하도록 시도한 것에 대해 놀라지 않았다”면서 “(진압)결정은 전 장군이 결정하거나 승인하고 최 대통령이 형식적으로 재가한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나 “한국 특수부대들을 배치하고 학생들을 북한 공작원인양 공격하도록 명령을 내린 책임이 궁극적으로 누구에 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며 “아마도 이런 추악한 계획은 신속하고 효과적이라는 가정 아래에서 승인됐지만 그것이 총체적 오판이었음이 드러났을 때 병력은 며칠만에 철수될수 없었다”고 말했다. 다음은 글라이스틴 전 대사가 밝힌 5·18 당시의 미국 정부의 입장. ◆ 한미연합사 미군 사령관은 광주사태의 빌미가 된 한국 육군 특수부대(Korean Army Special Forces) 지휘권을 갖고 있지 않았다.‘특수부대’는 미국의 통제로부터 제외돼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 위컴 주한미사령관과 나는 경찰이 학생시위에 대처하지 못해 특수·해병부대가 지원병력(reserve)으로서 서울,부산,광주에 배치됐다는것을 알고 있었으나 특수병력을 광주 학생시위 진압을 위해 배치한다는 계획은 통보받지도 알고 있지도 못했다. ◆ 위컴 장군과 나는 특수부대의 행동에 관해 들었을 때 간담이 서늘했다.우리는 한국측에 추가작전에 대해서 신중할 것을 촉구했으며 나는 한국 정부가 광주시민들에 대해 사과할 것을 주장했다.위컴과 나를 포함해 다른 어떤 미국 관리도 특수병력의 출동을 승인하지 않았다. ◆ 미 정부는 한국군에게 자제를 요청하면서 광주에서 한국군과 시민위원회간 협상을 지원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우리는 군 수뇌부에 강한 압력을 가하고 공식성명을 발표했으며 시민위원회와 연락가능한 교회지도자 등을 격려했다. ◆ 5월18일 특수부대 배치결정과는 달리 위컴 장군과 나는 광주 시민위원회와 협상이 결렬될 경우 서울 재진입에 20사단 병력을 사용한다는 한국의 긴급대책계획에 관해 알았다.우리는 이 문제가 매우 민감한 문제라고 생각했다.20사단은 폭동진압훈련을 받았고 몇개월간 서울에서 노련하게 계엄령을 집행해왔기 때문이다. ◆ 미국은 입장을 공표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국무부는 계엄령확대와 대학휴교,학생과 정치지도자 체포에 ‘큰 우려’를 표명했고 북한에도 공개경고했다.한국군 관계자들은 미국의 대북경고를 원하면서도 미 성명이 의도적으로 자신들을 반란자들처럼 취급한데 불만을 가졌다. ◆ 나는 광주사태가 한국의 다른 지역으로 확산될지 모른다는 워싱턴의 우려를 진정시킬 수 있었으나 전 장군과 부하들의 행동을 억제할 묘책을 제공하지 못했다.미 정부는 미대사관측과 신중한 협의 끝에 소요가 통제될 때까지(신군부에 대한) 분노 표출을 자제하기로 결정했다.결국 한국의 새 실력자가 대통령이 됐고 박대통령 서거후 더 민주적인 한국정부 수립을 위해 기울였던 카터 행정부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 LA서 訪美 첫 기자회견

    김영삼(金泳三·YS)전대통령의 ‘어조’가 부드러워졌다.지난 21일부터 미국 방문에 나선 그는 22일 첫 도착지인 LA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남북정상회담 등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얼마전까지 현 정부를 ‘독재정권’이라며 독설을 퍼붓던 것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김전대통령은 “최근 발표된 남북정상회담은 94년 7월 김일성(金日成)북한주석의 사망으로 연기된 합의를 계승하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이어 “내가 재임중 추진하려 했던 일이 유보상태에 있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잘못했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에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축하를 보냈다”고 설명했다. 총선결과에 대해서는 “공천 파동만 없었다면 야당의 과반수 의석이 가능했었다”면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공천에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했다.이어 “과거에도 경상도·전라도의 골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깊게 파인 적은 없었다”며 ‘지역감정’이 심화된 데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차기 대권주자는 영남권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발언에대해서는 “그런 표현은 아니었다”고 해명한 뒤 “이번 선거에서 여야 관계없이 30대가 많이 당선된 것은 한국 정치사상 처음있는 일로 세대교체가 옳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전대통령은 “대통령을 5년 했지만 고통스러운 시간이 많았고,고난의 시기는 길었지만 영광의 시기는 너무 짧았다”고 회고한뒤 “인간은 잘 사는 것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성수기자 **
  • YS, 퇴임후 두번째 외유나서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이 21일 부인 손명순(孫命順)여사와 함께 미국 방문길에 올랐다.지난해 6월 일본방문에 이어 퇴임후 두 번째 외유다.일본방문때에는 정치적 행보를 뚜렷이 했던 김전대통령이 이번에 미국에서는 어떤 태도를 보일지 주목된다. 김전대통령은 로스앤젤레스·워싱턴·보스턴·샌프란시스코 등을 방문하고아메리칸대(24일)와 하버드대(27일)에서 강연할 예정이다.레이니 전 주한미대사와 솔라즈 전하원 아태위원장 등을 만난 뒤 다음달 6일 귀국한다. 이날 공항에는 한나라당 하순봉(河舜鳳)사무총장과 권철현(權哲賢)대변인이나와 눈길을 끌었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도 20일 김전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환송인사를 했다. 통화에서 이총재는 “건강하게 잘 다녀오시라”고 인사했고 김전대통령은“총선승리를 축하한다”고 화답했다.또 이총재는 지난 18일 맹형규(孟亨奎)비서실장을 상도동으로 보내 총선에서 중립을 지켜준 데 감사의 뜻을 전했다.김전대통령은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더욱 강한 야당이 돼 달라”고당부했다.이자리에서 맹실장은 이총재의 상도동 방문의사도 함께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준석기자 pjs@
  • 김대중 대통령, 25일 전직대통령 청와대 오찬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오는 25일 낮 전직 대통령들을 청와대로 초청,남북정상회담의 성사 과정을 설명하고 회담 성공을 위한 협력을 당부할 예정이다. 오찬에는 방미 중인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 최규하(崔圭夏)·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통령은 또 26일에는 박준규(朴浚圭) 국회의장,최종영(崔鍾泳) 대법원장,박태준(朴泰俊) 국무총리 등 3부 요인을 초청,오찬을 함께 하는 등 사회지도층 인사와의 회동을 잇따라 갖는다. 양승현기자 yangbak@
  • 金賢哲씨 美로 또 출국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의 둘째 아들 현철(賢哲·41)씨가 지난 17일 오후6시30분 대한항공 035편으로 미국 텍사스 댈러스로 부인 김정현씨(39)와 함께 출국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 전 대통령도 오는 2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등에서 강연하기 위해 출국한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18일 “김현철씨는 영문 KIM,H.C.로,부인 김씨는 KIM JUNG HYUN으로 1등석을 예약해 출국했다”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
  • 김남국씨 주장 북풍사건 전모

    김남국(金南國·예비역 대령)전 합참정보참모부 전략정보과장이 밝힌 지난96년 15대 총선 직전 북풍사건 전모는 다음과 같다. ◆북풍사건 요약 96년 4월4∼6일 판문점 북한군 무력시위가 있자 김영삼 전대통령은 전쟁 직전의 위기상황으로 몰아가도록 국방부와 합동참모부에 지시했다. 이에 따라 이들은 정보판단관을 교체해 부풀린 정보 판단을 하고,워치콘(정보 감시태세)이 격상되었다는 등 총 8회의 조작된 거짓 브리핑을 하고,상황발생 날짜를 하루씩 지연시켜 홍보기간을 늘리는 등 불안을 조성해 전쟁에위기감을 느낀 보수 유권자들이 집권 여당(당시 신한국당)을 지지하도록 유도하려 했다. ◆김동신 전 육군참모총장 및 유종하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관련 유 전수석은 당시 김 전 육참총장에 “전투복을 착용한 장군이 기자브리핑을 실시하고,여러차례에 걸쳐 현장감 있도록 생생하게 할 것”이라고 말하는 등 대(對)언론 홍보 강화를 지시했다. 이에 따라 김 전 육참총장은 “작전처장과 작전처 장교 3명을 뒷배경으로 모두 전투복을 착용하고 즉각 기자브리핑을 하라”는 등의 지시를 했다. ◆이양호 전 국방장관 및 박용옥 현 국방차관(당시 정책실장) 관련 박 전실장은 4월5일 전 국방장관의 지시에 따라 한·미간에 거론도 안된 워치콘을 “3에서 2로 격상되었다”고 거짓 브리핑을 했다. 실제 4월7일 워치콘이 격상되기까지 국방부와 합참 수뇌들은 미측에 매달리면서 격상을 요구했다. 특히 이 전 장관은 당시 연합사부사령관 등에게 워치콘을 미측과 협조,조속히 격상시키도록 지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관련 판문점을 제외하고는 북한군의 위협이 없었으나국가안보회의를 긴급 소집,국민 불안을 조성했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 관련 각종 연설회에서 북한군의 판문점 무력시위등 안보문제와 관련,정국 안정을 위해 집권 여당 지지를 단골 메뉴로 호소하였다. 4월7일에는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안보간담회를 갖는 등 판문점사건을 표로연결시키려 노력했다. 주현진기자 jhj@. * 김남국 북한군 관련 정보분석 담당. 지난 96년 4월 발생한 북한군의 판문점 무력시위에 대해 우리 정부 및 군이 위협용으로 부풀렸다는 주장을 제기한 김남국(金南國·52)예비역 대령은 당시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 정보전략과장이었다. 합참 정보본부 정보전략과장은 북한군과 관련된 각종 정보를 거시적으로 분석해 기초자료를 제공하는 일을 주로 한다. 일반적으로 이 자리를 거치면 장군으로 진급하는 게 통례였다.그러나 김씨는 이 자리에서 95년 12월부터 97년 2월까지 13개월 동안 재직한 뒤 진급을하지 못하고 국방대학교에 입교했다. 이후 정보사 행정부장으로 옮겨 1년을 근무한 뒤 정보사 어학처장으로 이동하는 등 이른바 ‘물’을 먹은 것으로 알려졌다.김씨는 정보사 어학처장을끝으로 99년 12월 명예전역했다. 김씨는 강원도 인제 출신으로 서울 용산고를 나와 육사 28기로 임관했다.89년 10월 대령으로 진급한 뒤 특전사 정보처장,21사단 65연대장,국방정보본부기획조정실장을 거쳤다. 노주석기자 joo@. *북풍조작 의혹 당사자 해명. 김남국 예비역 대령이 96년 4월 국방부 수뇌부가 북한군의 판문점 무력시위사건을 부풀렸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당시 군 수뇌부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박용옥(朴庸玉)당시 정책실장 박용옥 현 국방차관은 “4월5일 오후 2시에워치콘 격상을 발표한 것은 이 사태에 따른 국방부의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이 이미 예정돼 있었고 회견이 열리기 직전 장성(張城)당시 연합사부사령관으로부터 전화로 연합사가 워치콘 격상을 결정했다는 통보를 해왔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박 차관은 “장 부사령관에게 ‘발표해도 되느냐’고 물었고 장 부사령관이‘좋다’고 대답했다”고 덧붙였다. ◆장성(張城)당시 연합사부사령관 장씨는 “워치콘 격상은 한미연합사령관의고유권한인데 내가 월권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박 차관과 상반된 주장을 폈다.그는 “내가 박 정책실장에게 전화로 통보했다는 것은 박씨의 착각인 것같다”고 말했다. ◆김동진(金東鎭)당시 합참의장 김남국 예비역 대령이 교체 압력을 넣었다고주장한 김동진씨도 “북풍조작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되는 일” 이라며 “4년 전 일이라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당시 북한군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판단하라고 지시한 것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교체 압력 주장과 관련,“바꾸라고 지시한 적이 없으며 김 대령에대한 기억조차 없다”면서 “김씨가 왜 이런 일을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김동신(金東信)당시 육군참모총장 유종하(柳宗夏)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으로부터 전투복을 착용하고 브리핑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김동신씨도 “유 수석과 전화를 하거나 받은적이 없으며,김씨의 주장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면서 “전투복 착용도 전투태세 강화 지시가 내려지면 자동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노주석기자 joo@
  • 각계 화제의 당선·낙선자

    *정보통신·업계. 남궁석 전 정보통신부 장관(南宮晳·용인갑·민주),김효석 전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金孝錫·담양 장성 곡성·〃),곽치영 전 데이콤사장(郭治榮·고양덕양갑·〃) 등 실물과 이론으로 무장한 정보통신 전문가들이 대거 당선됐다.또 교육정보화의 권위자인 허운나(許雲那)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도 민주당 전국구로 당선됐다.386세대 출신인 임종석(任鍾晳·서울 성동·민주) 당선자도 청년정보문화센터 부소장을 맡아왔다.관련업계는 정보통신 활성화를위한 정책적 지원이 16대 국회에서는 크게 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업인 출신으로는 구로을에서 낙승을 거둔 장영신(張英信·민주) 애경그룹 회장을 비롯,이근진(李根鎭·고양 덕양을·〃) 유한전자 대표,김택기(金宅起·태백 정선·〃) 전 동부화재 사장,김윤식(金允式·용인을·〃) 신동에너콤 대표 등이 새로 금배지를 달았다.한나라당의 경제브레인으로 영입된 이한구(李漢久) 전 대우경제연구소 사장도 전국구로 국회에 진출했다. 또 주진우(朱鎭旴·고령 성주·〃) 사조그룹 회장,정몽준(鄭夢準·울산동·무소속) 현대중공업 고문 등 경제인 출신 전·현직 의원들도 수성 혹은 재입성에 성공했다. 김태균기자 windsea@. *관료. 공무원을 포함한 관료 52명은 출신지역과 정당 선택에 따라 명암이 극명하게 갈렸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강봉균(康奉均)전재경부장관과 임태희(任太熙)전 재경부과장이다.강 전장관은 민주당으로 경기 성남 분당 갑,임 전과장은 한나라당으로 경기 성남 분당을 지역구로 출마했으나 한나라당의 아성을 넘지못한 강전장관이 고배를 마셔야 했다. ‘적지’에 나갔던 고위관료출신들은 대부분 낙선의 눈물을 흘렸다.김중권(金重權)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한나라당의 아성인 경북 울진 봉화지역구에 나섰다가 떨어졌고,정해주(鄭海주)전 국무조정실장도 경남 통영 고성에 무소속으로 출사표를 냈으나 분루를 삼켰다.조일호(趙壹鎬)전 농림부차관(한나라충남 부여),배선영(裵善永)전 재경부과장(민주 서울 서초갑),김동태(金東泰) 전 농림부 차관(민주 경북 고령 성주)도 지역적 특성만 실감하고 내려왔다. 정두언(鄭斗彦) 전 총리실 공보비서관(한나라 서울 서대문을)도 고배를 마셨다.반면 강운태(姜雲太)전 농림부장관과 김성순(金聖順) 전 송파구청장등 지방자치단체장 출신들은 탄탄한 지역기반을 바탕으로 국회 입성에 성공한 경우가 많았다. 홍성추기자 sch8@. *법조계. 법조인들은 99명이 지역구에 출마, 39명이 금배지를 달아 39.3%의 당선율을기록했다. 전국구로 당선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까지 포함하면 40명이다.15대 때는 99명 출마에 41명으로 당선율은 41.4%였다. 출신별로는 판사 8명,검사 1명,변호사 14명이며 정당별로는 한나라당 20명,민주당 15명,자민련 3명,무소속 1명의 순. 지난해 법조계를 흔들었던 대전법조 비리·옷로비 사건 등과 관련,옷을 벗은 박주선(朴柱宣)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최병국(崔炳國) 전 전주지검장,이원성(李源性) 전 대검차장이 모두 당선,도중하차의 한을 풀었다.이들중 최당선자와 이 당선자는 대전법조비리 처리와 관련,악연(惡緣)이 있어 법사위에서의 맞대면에 관심을 끌고 있다. 또 판문점 총격요청사건의 한나라당측 변호사로 활약한 정인봉(鄭寅鳳),엄호성(嚴虎聲),심규철(沈揆喆)후보도 국회에 진출했다.이밖에 동화은행 비자금 수사로 명성을 날린 함승희(咸承熙)변호사도 금배지대열에 합류,초선의원은 모두 18명이 됐다. 이종락기자 jrlee@. * 재야. 이번 총선에서 당선된 재야출신 명망가들은 한결같이 “재야활동을 하면서꿈꿨던 깨끗한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강동을의 민주당 심재권(沈載權)당선자는 70년대 운동권을 주도하며민주당 김근태(金槿泰)의원과 함께 재야 1세대의 쌍벽을 이뤘던 인물.지난 71년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유신반대 투쟁,민청학련 사건,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등에 연루되면서 83년에 호주로 강제출국당했다.그후 94년 귀국할 때까지 10년 이상 망명 생활을 경험했다. 강원 원주의 민주당 이창복(李昌馥)당선자 역시 70년대부터 노동·통일·민주화운동을 벌인 재야의 거목이다.여론조사에서 줄곧 밀리다 극적으로 역전에 성공해 더욱 값진 승리가 됐다. 인천 남을의 한나라당안영근(安泳根)당선자 역시 환경·노동 분야에서 시민운동을 펼쳐왔고 경기 부천 원미을 민주당 배기선(裵基善)당선자도 대표적인 재야 출신이다. 전대협 의장을 지낸 서울 성동의 민주당 임종석(任鍾晳)당선자,인천 계양의민주당 송영길(宋永吉)당선자,경기 군포의 한나라당 김부겸(金富謙)당선자등은 학생시절 민주화 투사 출신으로 나란히 배지를 달게됐다. 장택동기자 taecks@. *언론계. 16대 총선에서 언론인 출신들의 여의도 입성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예상밖의 선전으로 ‘DJ저격수’ 이신범(李信範)후보를 꺾은 서울 강서을의 민주당 김성호(金成鎬)당선자는 한겨레 정치부기자 시절 김영삼(金泳三) 전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의 국정개입을 특종보도했던 경력이 이신범후보를 물리치는 힘이 됐다. 공주와 연기간 치열한 소(小)지역구도속에 당선된 자민련 정진석(鄭鎭碩·충남 공주연기)후보도 한국일보 정치부기자-논설위원을 지냈다. 민주당 박병윤(朴炳潤·경기 시흥)전 한국일보 부회장,무소속 이정일(李正一·전남 해남진도)전남일보 사장등은 언론사 고위간부를 지낸 경력이 당선에 큰 도움이 됐다. 이회창(李會昌)총재의 최측근으로 불리는 한나라당 고흥길(高興吉·성남분당갑) 전 중앙일보 편집국장도 재경부장관을 지낸 강봉균(康奉均)후보를 접전끝에 물리쳤다. 전남 함평·영광에 출마한 민주당 이낙연(李洛淵)전 동아일보 국제부장,대전 서갑의 박병석(朴炳錫)전 중앙일보 편집부국장,동아일보 사회부기자를 거친 한나라당 박종희(朴鍾熙·수원장안)후보도 금배지를 달았다. 류길상기자 ukelvin@. *방송·연예계. 방송연예계 스타출신은 진입은 쉬운데 수성은 어려운 것일까.새롭게 여의도 진입을 노린 스타출신 후보들은 8명중 5명이 당선된 반면 현직 후보들은 5명중 3명이 고배를 마셨다. KBS아나운서실장을 역임한 민주당 박용호(朴容琥·인천서 강화을),MBC 사장을 역임한 민주당 강성구(姜成求·오산화성),방송시사평론가 정범구(鄭範九·민주 고양일산갑),SBS앵커였던 민주당 전용학(田溶鶴·천안갑),영화배우인 한나라당 강신성일(姜申星一·대구 동) 후보 등은 무난히 선량 대열 합류에 성공했다. 하지만 ‘신바람건강학’으로 스타덤에 올랐던 황수관(黃樹寬·민주·서울마포을) 전 연세대의대 교수와 SBS 앵커출신 이창섭(李昌燮·자민·대전유성) 후보는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고 서울 성동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코미디언김형곤(金亨坤)씨는 3위. 탤런트 출신의 자민련 정한용(鄭漢溶·인천 연수)후보와 앵커 출신의 한나라당 박성범(朴成範)의원은 재선에 도전했다 탈락한 사례.반면 KBS와 MBC 간판앵커였던 한나라당 이윤성(李允盛·인천남동갑)·민주당 정동영(鄭東泳·전주덕진)의원은 나란히 다시 당선됐다. 임병선기자 bsnim@
  • 남북 정상회담/ 실무협의 전망

    13일 16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면 곧바로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협의가 시작될 전망이다. 우선 남북은 당국간의 직통전화를 통해 실무회담의 날짜와 장소,대표단 명단 등을 교환할 예정이다. 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양측 실무대표단이 만나게 되면 정상회담의 의제와 의전,경호 문제 등이 하나하나 정해진다. □실무대표단 지난 94년 김영삼(金泳三)대통령과 김일성(金日成) 주석간의정상회담을 추진할 당시 우리측은 이홍구 부총리 겸 통일원장관이 수석대표를,정종욱 청와대 외교안보수석과 윤여준 국무총리특보가 대표를 맡았다.북한측은 김용순 최고인민회의 통일정책위원장 겸 조평통부위원장이 수석,안병수 조평통부위원장,백남준 정무원 책임참사가 대표로 참가했다. 이에 따라 이번 실무회담도 우리측에서는 박재규(朴在圭) 통일부장관이 수석대표를 맡고 황원탁(黃源卓)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대북관계에 정통한 고위당국자가 대표를 맡게 될 가능성이 크다.북한측도 장관급을 수석으로 한 대표단을 보낼 것으로 예상된다. 실무대표 회담의 장소는판문점과 베이징 가운데 한 곳이 유력하다.우리측은 판문점을 선호하지만,북측이 강력히 원한다면 별다른 주저없이 베이징으로 갈 것같다. □의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11일 국무회의에서 ▲정부차원의 대북협력▲화해와 협력 ▲이산가족 상봉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을 위한 당국자간 대화 등 베를린 선언 내용이 협의될 것이라고 밝혔다.이 가운데 이산가족과 경협 문제는 박지원(朴智元) 문화부장관과 송호경 아·태평화위 부위원장간의협상에서 이미 의제로 거론된 바 있다. 남북 정상회담의 역사적 의미와 비중에 맞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관한획기적인 공동선언을 발표하는 문제는 양측이 모두 적극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북한측이 남북대화의 전제조건을 내세워왔던 국가보안법 철폐와 주한미군 철수 문제는 박·송 협상과정에서 거론되지 않았다고 한다.따라서 실무협상에서 북한이 두가지 문제를 거론한다 하더라도 우리측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이라는 큰 틀 속에서 협의하자고 제안할 것으로 예상된다.정상회담을단독으로 할 것인지, 확대로 할 것인지,몇 차례 할 것인지,김대통령이 평양에서 김정일 말고 다른 인사를 면담할 것인지도 의제에 포함된다.또 북한측은 김대통령에게 김일성 주석의 묘소에 참배할 것을 요청할 가능성이 크며,이에 대한 우리측의 대응도 주목된다. □방북 대표단 규모 김대중 대통령을 수행할 보좌진과 경호원, 취재진의 숫자도 중요한 협의 대상이다.94년에 우리측은 대표단 100명,취재단 80명을 내부적으로 검토한 바 있다.대표단에는 경호원이 포함된다. □경호와 의전 경호는 가장 민감한 문제이다.양측이 상대 대표단의 신변을보장하는 각서를 교환할 것으로 보인다.경호는 접수국에서 담당하는 것이 국제관례다.그러나 남북간의 특수관계를 감안해 적절한 절충이 필요하다. 의전은 양측이 세세한 사항까지 협의한 북한측이 진행을 맡는다.남북정상회담을 국가 대 국가의 행사로 보기보다는 민족 내부의 문제로 볼 경우 국제관례와는 여러가지로 달라질 수 있다.숙식,교통,통신 등 편의시설은 모두 북한이 부담할 것으로 보인다. 의전과 경호는 전문가들이 따로 만나 논의할 가능성이 크다.우리측 의전 및경호단이 최소한 두 차례 평양에 선발대를 보내게 된다. 이도운기자 dawn@
  • 남북 정상회담/ 전직대통령들 반응

    남북 정상회담 날짜까지 잡았다가 김일성(金日成)의 사망으로 뜻을 이루지못한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을 비롯한 4명의 전직대통령은 한결같이 축하와 환영의 뜻을 보였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상도동 자택을 찾은 황원탁(黃源卓)청와대 외교안보수석에게 “94년 당시 정상회담이 열렸다면 역사가 많이 바뀌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시했다.이어 “김대중 대통령에게 축하한다는 말과 안부를 전해달라는 당부의 말씀도 있었다”고 황 수석은 전했다. 전두환(全斗煥)전 대통령 역시 “아주 잘됐다”고 크게 환영한 뒤 대북 SOC(사회간접자본) 투자 지원의 의미를 강조했다고 한다.전 전 대통령은 “SOC확충을 위한 남북간 경협은 단순하게 식량을 지원하는 것보다 근본적으로 북한을 변화시키고 개방하는 데 엄청난 효과가 있다.이런 점에 대한 일부 국민들의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면서 “멀리볼 때 SOC 확충 의미와 효과에 대해 충분히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최규하(崔圭夏)·노태우(盧泰愚)전 대통령도 남북 정상회담을 크게 반겼다.특히 노 전 대통령은 “우리가 북한에 대해 지원만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국민들도 있는 데 이런 점에 대해서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바르게 이해시켜야 한다”며 자신이 대통령으로 재직할 당시 이뤄낸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이 반영되길 희망했다고 한다. 양승현기자 yangbak@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