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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색의 정치/이목희 논설위원

    우리 선거판이 흑백에서 벗어나 알록달록해진 때는 1987년 대통령선거였다. 신문에 컬러지면이 생기고, 컬러 TV방송을 시작한 뒤 처음으로 치른 직선제 선거였다. 당시 여당의 노태우 후보는 보수파가 애용하는 파란색을 택했다. 김영삼(YS) 후보는 적홍색, 김대중(DJ) 후보는 노란색, 김종필(JP) 후보는 녹색으로 유세장을 뒤덮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DJ의 노란색.DJ는 대선에서 3등을 했지만 다음해 국회의원 총선에서 제1야당을 만들어내면서 ‘황색돌풍’을 일으켰다. 한국정치에서 이전부터 색깔론은 있었다.18세기말 프랑스대혁명에서 급진파들은 빨간 깃발을 애용했다. 그것이 러시아로 건너가 공산혁명의 대표색이 되었고,‘빨갱이’ 논쟁은 한국정치에서 지금까지 이어진다. 한국인 스스로 의미를 둔 첫 정치색은 노랑이었다.YS·DJ가 노란색을 민주화 추진의 상징으로 삼아 전두환 정권 타도에 손을 잡았다. 군사정권의 색깔공세에 시달렸던 DJ는 노란색을 고수, 평화와 통합의 이미지를 주려 했다. 사상문제에 자유로웠던 YS는 빨간색으로 정면돌파를 시도하다가 파란색으로 변신했다. 1노3김 대결 이후 색은 보수·진보를 나눔과 동시에 지역으로 구분되었다. 파랑은 보수진영이면서 영남쪽을 대변했다. 노랑은 진보·호남을 상징했다. 녹색은 충청권의 보수쪽이면서 파랑·노랑 누구와도 합작할 수 있는 색이 되었다. 현재의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 색깔은 노랑, 제1야당인 한나라당은 파랑이다.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특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주요 후보들이 소속 당색을 멀리하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서울시장 예비후보 강금실 전 법무장관은 보라색, 경기지사 예비후보 진대제 전 정통장관은 파란색을 각각 자신의 색으로 내세웠다.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경선에 나선 오세훈 전 의원은 녹색이 뼛속까지 박혀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의 ‘색깔파괴’는 한국정치의 기회이자 위기라고 본다.‘87년 체제’의 후유증인 지역대결·이념대립을 희석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문화·과학기술·환경 등 다른 차원의 색깔정치를 편다면 고무적인 일이다. 반면 기성정치 혐오증을 이용해 튀고 보자는 식이라면 무책임하다. 엉터리로 덧칠하면 결국 회색, 검정색이 된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제16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 본선 2회전] 험악해진 판세

    [제16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 본선 2회전] 험악해진 판세

    제4보(71∼91) 흑71은 거의 선수. 백72를 생략하면 가에 붙이는 수가 강력해서 견디기 힘들다. 그래 놓고 흑73으로 지키니 갑자기 우변 일대의 흑진이 엄청나게 부풀어 올랐다. 이 모두 전보에서 흑이 상변 백집을 헤집고 수를 낸 탓일까? 갑자기 백의 비세로 변한 것이 이상해서 국후 대국자인 한종진 6단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랬더니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흑이 상변에서 수를 낸 것은 별것이 없다. 그보다는 백이 좌변에서 수를 낸 이득이 더 크기 때문에 형세는 백이 좋았다. 문제는 형세가 너무 좋다고 보고 백△로 지킨 수가 터무니없는 완착이다. 이 수로 우변에 쳐들어가서 수를 냈다면 백의 우세는 지속됐을 것이다.” 어쨌든 지금은 흑의 우세. 단 흑73으로는 (참고도1) 1에 지키는 정도로도 충분했다는 것이 바둑텔레비전을 통해서 이 바둑을 해설한 김영삼 7단의 의견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기용 3단이 흑73으로 둔 이유는 워낙 초반의 형세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상항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체감을 못해서 최대한 버틴 것이다. 백74는 형세가 여의치 않아졌음을 깨달은 한6단의 승부수. 그러자 김3단도 흑75부터 81까지 최강수로 잡으러 온다. 두 기사 모두 자신이 불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백90의 단수에 흑91은 강수이자 정수.(참고도2) 흑1로 빠지면 백2를 선수하고 이하 12까지 우변에서 큰 수를 내고 살아간다. 두 기사 모두 형세를 비관하고 강수로 일관해서 바둑판 위가 갑자기 험악해졌다. 유승엽 withbdk@naver.com
  • 中 기증 YS흉상 거제 생가에 설치

    김영삼 전 대통령의 흉상이 생가에 설치된다. 30일 거제시에 따르면 장목면 대계마을 생가 마당에 청동으로 만든 가로 70㎝, 세로 80㎝의 김영삼 전 대통령의 흉상이 130㎝의 좌대에 31일 설치된다. 이 흉상은 김 전 대통령이 2000년 중국을 방문했을 때 허난성(河南省) 한원비림(翰園碑林)을 참관하고 ‘동방문화 예술보고’(東方文化 藝術寶庫)란 휘호를 선물한 데 따른 감사의 뜻으로 한원비원이 기증한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중국한원비림 명예총재로 추대됐다. 한원비림은 흉상을 제작한 후 지난해 10월 자매결연을 한 충북 보은군 수한면에 있는 한국비림박물관으로 보냈고 김 전대통령의 뜻에 따라 지난 27일 거제로 옮겨져 생가에 자리를 잡게 됐다. 거제시는 제막식 등 특별한 기념행사 없이 설치가 끝나면 관광객들에게 공개하기로 했으며. 김 전 대통령은 내달 5일 생가를 방문해 흉상을 둘러볼 예정이다.거제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박대표·YS 요덕스토리 관람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김영삼 전 대통령이 26일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뮤지컬 ‘요덕스토리’를 관람했다. 탈북자 출신의 정성산 감독이 연출한 이 작품은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참상을 고발하고 있다. 박 대표는 이날 공연장 입구 홀에서 대기 중이던 김 전 대통령을 찾아가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건강하시죠.”라고 인사했다. 이에 김 전 대통령은 “반갑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수행한 구상찬 부대변인이 전했다. 양측은 “사전에 계획된 게 아니라 별도로 관람을 추진하다가 우연히 동반 관람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씨줄날줄] 노동개혁/우득정 논설위원

    1996년 4월24일 김영삼 대통령은 노·사·정·공익대표 회의에서 대립과 갈등의 역사를 청산하고 참여와 협력의 노사관계를 구축하자는 내용의 신노사관계 구상을 발표했다. 그리고 공동선 극대화의 원칙, 참여와 협력의 원칙, 자율과 책임의 원칙, 교육·훈련중시와 인간존중의 원칙, 의식과 제도의 선진화 원칙 등 5대 원칙을 천명했다. 노동관계법이 도입된 지 40년만에 일대 수술을 단행하겠다는 대국민 선언이었다. 당시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은 노사 모두로부터 불신을 사고 있었다. 광복 직후 급한 대로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가장 이상적인 법 체제를 원용했지만 현실적으로 지켜지지 않은 ‘사문화된 법’처럼 인식된 탓이다. 19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노동운동이 투쟁 일변도로 치달은 것도 이러한 법 체계와 무관하지 않다. 장식용이라는 전제 아래 그럴듯하게 포장했던 노동법이 노동자들의 권익 되찾기 운동이 본격화되면서 드디어 살아 숨쉬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법을 지키라는 노동자와 ‘법이라니?’라는 기업의 충돌은 필연적인 수순이었다. 이렇게 10년에 걸쳐 죽기살기 식으로 멱살잡이한 끝에 나온 결론이 ‘현실에 맞게 노동법을 고치자.’는 것이다. 하지만 40년만의 노동법 개정은 그 해 말 ‘국회 날치기 통과’에 이어 ‘민주노총의 총파업’,‘날치기 통과안 재개정’ 등으로 엎치락뒤치락했다. 당시 김성중 노사관계개혁위 사무국장(현 노동부차관)은 노동법을 바꾸는 것은 헌법 개정보다 더 어렵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1997년 말 사상 초유의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노사정 대타협’의 산물로 그동안 판례에 맡겨졌던 정리해고가 근로기준법의 한 조문으로 자리매김했다. 고용 유연화의 법적 근거가 마침내 마련된 셈이다. 오늘날 논란이 되고 있는 기간제 근로자 등 비정규직 양산문제도 따지고 보면 정리해고의 법제화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가 26세 미만의 노동자를 취업 후 2년 내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게 한 ‘최초고용계약(CPE)법’ 강행으로 정국 혼란 회오리에 휩싸여 있다. 정부는 고용 유연성이라는 동전의 앞면을, 노동시장 진입을 앞둔 학생과 노동계는 고용 불안이라는 동전의 뒷면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최후의 승자일까?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전북 맹주’ 쟁탈전 막 오르나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과 고건 전 총리가 23일 공교롭게도 전북에서 마주쳤다. 전북 지역은 두 사람 모두 자신들의 ‘텃밭’으로 여기는 정치적 고향이나 다름없다. 더욱이 지난 12일 ‘정-고 양자 연대’ 무산 이후 두 사람은 사실상의 경쟁 관계에 돌입한 상황이다.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두 사람이 ‘전북의 맹주’ 자리를 놓고 쟁탈전에 돌입한 분위기다. 정 의장의 이날 전북 방문은 전통 지지세력 결집을 위한 지방순회의 일환이다. 지난 21일 광주, 전남지역 방문에 이어 이날 전북 ‘텃밭 다지기’에 나선 것이다. 정 의장은 전주 전북도당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했고 새만금 방조제 공사 현장도 방문,‘친환경 새만금 개발’ 등의 정책 메시지를 전달했다. 반면 고 전 총리는 오전 새만금현장을 방문한 뒤 전북대에서 ‘희망 한국을 향한 창조적 실용주의 리더십’을 주제로 특강을 했다. 그러나 우리당의 일부 의원들은 “정치 지도자로서 사려깊지 못한 행동”이라고 고 전 총리를 비난했다. 이에 고 전 총리측은 “이미 한달 전 특강 일정이 잡혔기 때문에 정 의장 일정과 우연하게 겹친 것”이라고 반박했다. 더욱이 이날 정 의장측을 자극한 것은 탈당설이 나도는 강현욱 전북지사와 고 전 총리와의 면담이다. 고 전 총리는 서울대 1년 후배인 강 지사와 YS(김영삼) 정권 시절 내각에서 함께 일했던 돈독한 사이다. 반면 정 의장은 김완주 전주시장을 전북지사 후보로 밀고 있다. 강 지사가 무소속 후보로 출마하면 전북지사 선거는 ‘정-고 대리전’ 양상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하이에나는 항상 상대방의 약점만 있으면 상처난 부분을 공격하는 짐승”이라며 고 전 총리를 직접 거명하진 않았지만, 그의 행보를 거칠게 공격해 파문을 일으켰다.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 “30%는 커녕” 여성계 허탈

    신임 환경부 장관에 여성 임명이 ‘불발’로 끝나면서 참여정부의 ‘양성평등’ 공약도 ‘불발탄’이 됐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15일 단행된 부분 개각으로 노무현 정부 출범 당시 4명이던 여성 각료는 장하진 여성가족부 장관 한 사람으로 줄었다.19명의 국무위원 가운데 여성 비율이 2003년 21.1%에서 5.3%로 급락한 셈이다. 여성계는 허탈해하는 분위기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이미 지난 2일 4개 부처 개각에서도 여성이 장관으로 임명되지 않자 “마지막 남은 환경부 장관에라도 여성을 임용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여성단체연합은 “참여 정부는 애초 내각의 30%를 여성으로 구성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으며, 현재 각 부처 위원회의 30%는 여성에 할당되어 있다.”면서 ‘공약이행’을 촉구하기도 했다.사실 ‘여성각료 30%’는 여성계의 절절한 기대였다. 참여 정부는 “국회의원 비례대표의 50%와 지역구 의원의 30%를 여성으로 공천하겠다.”고 공약했다. 여성각료 비율을 따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당연히 지역구 의원 수준은 되는 것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5.3%라는 수치는 공무원 여성관리자 채용목표 10%에도 크게 못미친다. 여성 각료를 늘리겠다는 공약은 과거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7년 말 대선 당시 “국무위원 4명 이상, 주요 정책결정직의 20∼30%를 여성으로 임명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임기 첫해인 1998년에 여성 장관은 2명에 그쳤고, 임기말인 2002년에도 같은 숫자였다. 김영삼 대통령도 임기 첫해인 1993년에는 여성장관이 3명이었지만, 임기가 끝난 1997년에는 1명으로 줄었다. 과거나 현재나 ‘여성 우대’는 선거를 앞둔 정국에서 여성표를 의식한 공약(空約)에 불과했다는 것이다.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서울광장] 이총리가 물러나야 할 진짜 이유/이목희 논설위원

    [서울광장] 이총리가 물러나야 할 진짜 이유/이목희 논설위원

    김영삼(YS)정부 청와대를 출입하며 취재했다. 대통령 YS는 이전에 정당생활을 할 때보다 대단히 금욕적이었고, 외로워 보였다. 스스로를 갉아먹는다는 걱정까지 들게 했다. 주변비리,IMF경제위기로 지금은 인기 없는 전직 대통령이지만, 당시 느낌은 그랬다. YS의 과잉의욕과 금욕생활이 대통령직 수행에 오히려 장애라는 점을 간파한 이는 K씨였다.K씨는 YS청와대에서 고위직을 두번 역임했다. 그는 몇차례 YS를 파계시키려 했다. 한번은 YS와 친한 인사의 별장을 빌려 은밀한 파티를 준비했다. 접대하는 여인도 물색했다. 하지만 박정희 시대와 달리 당시만 해도 ‘국민정서법’이 이를 용납할 리 없었다.YS는 “당신, 미쳤나.”라는 한마디로 파티계획을 백지화했다.K씨는 또 YS집무실 주변 경비관계자를 예쁜 여성으로 배치하려 했다. 이번에는 ‘가족정서법’에 걸려 그 역시 무산됐다. 대통령은 임기 중 함부로 교체할 수 없는 자리다. 수시로 바꿀 수 있는 임명직과 다르다. 왕조시대에는 많은 궁녀를 두기도 했다. 지금 기준으로는 어림없는 일이지만 왕의 스트레스 해소를 구실로 한 것이다. 기회가 되면 대통령이 어느 수준의 수도승 생활을 해야 하며, 국민정서에 맞는 스트레스 해소법은 무엇인지 본격 탐구해보고 싶다. 몇달전 공무원 틈에 섞여 이해찬 총리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이 총리는 “주요 회의만 하루에 서너차례 주재한다. 민주화운동하다가 감옥갔을 때보다 지루하고 힘들다.”고 말했다. 가만히 보니 지친 표정이 역력했다. 준(準)대통령급으로 커버린 이 총리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음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스트레스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든지, 아니면 총리직을 그만두어야 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3·1절 골프’ 파문이 일자 총리실 관계자들은 “업무스트레스를 풀고, 나빠진 건강을 위해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그런 정황을 알면서도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게 더욱 문제다. 이 총리와 측근들은 ‘국민정서법’에 어긋나지 않는 방법으로 총리가 스트레스에서 해방되어 합리적 판단을 할 분위기를 만들어야 했다. 이기우 교육부 차관은 이 총리가 3·1절에 골프치겠다는 것을 차마 못 말렸다고 밝혔다. 골프장 관계자들은 “총리가 골프치러 내려온다기에 의아했다.”고 말했다. 골프장 직원조차 이상하게 여기는 일을 이 총리는 아무렇지 않은 듯 실행하고, 측근들은 반대하지 못했다. 정경유착 의심을 받을 인사들과 내기골프까지 했으니 감각이 무뎌져도 한참 무뎌진 셈이다. 국민신뢰를 잃은 이 총리는 버티기 힘든 형국에 몰렸다. 지방선거를 앞둔 열린우리당을 봐서도 총리직을 더 수행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판단력이 떨어져 국가정책이 잘못 결정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일에 찌들려 판단력이 흐려졌다고 여겨지면 주위에서 유임하라고 해도 물러나야 한다. 쉬는 게 나라를 위해서도, 본인을 위해서도 옳다. 이 총리 사태는 국정운영시스템 전반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참여정부는 분권형을 내세워 과거 청와대가 가졌던 주요 정책결정권 가운데 상당 부분을 총리실로 넘겼다. 이 총리는 많은 국정현안을 최종조율하는 부담을 떠맡아야 했다. 총리실 기구가 따라서 비대해졌다. 총리의 권한은 늘었으나 합당한 자기관리와 보좌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 골프파문의 본질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분권형 국정운영 체제를 그대로 가져갈지 숙고할 필요가 있다. 개헌을 하지 않고 이원집정부제식으로 국정을 이끌려니 무리가 생긴다. 실패한 총리를 또 만들지 않으려면 제도부터 따져봐야 한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서울광장] 정치여, ‘山의 겸손’을 배워라/이용원 논설위원

    [서울광장] 정치여, ‘山의 겸손’을 배워라/이용원 논설위원

    정치권이 한창 들끓고 있다. 한나라당 사무총장인 최연희 의원이 술자리에서 신문사 여기자를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나 쫓겨나다시피 탈당을 하더니, 뒤이어 이해찬 총리가 3·1절에 ‘부적절한’ 사람들과 골프를 치는 바람에 낙마의 위기에 놓였다. 5선 국회의원에 역대 가장 큰 힘을 받고 있다는 총리와, 제1야당 지도부까지 오른 3선의원이 보통사람은 상상하지도 못할 이같은 행동을 한 원인은 무엇일까.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오만불손함에서 비롯됐을 터이다. 곧 겸손함이 부족한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정치는 흔히 등산에 비유되고 실제로 정치인들은 등산을 즐긴다. 멀게는 엄혹했던 독재정권 치하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민주산악회를 이끌며 정치적 기반을 유지했고, 요즘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함께 북악산에 오르며 때때로 속내를 내비치곤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17대 국회가 개원하기 직전인 2004년 5월 서울신문사가 정리해 출간한 ‘17대 국회의원 인물 정보’를 보면 당선자 299명 가운데 38.8%인 116명이 등산을 취미로 꼽았다. 이처럼 정치인의 산(山)사랑은 각별한데 정작 산의 품성을 제대로 받아들인 이는 거의 없는 듯하다. 동양의 전통사상에서는 산의 미덕 가운데 으뜸을 ‘겸손함’으로 친다. 지난 연말 사자성어 ‘상화하택(上火下澤)’으로 유명해진 주역의 괘에는 ‘地山謙(지산겸)’이 있다.‘땅과 산은 겸손하니 만사가 형통하다.’라는 뜻의 괘이다. 풀어서 얘기하면, 땅의 속성은 아래에서 위로 쌓아가는 것이고 이를 대표하는 게 우뚝 솟은 산이다. 하지만 산은 더이상 자라지 않는다. 도리어 비·바람에 스스로를 깎아 골짜기·웅덩이 등 주위의 낮은 곳을 메워준다. 또 산이 제 살을 깎더라도 그 높이가 실제로 낮아지지는 않으며 위엄 또한 잃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겸손함이니 만사가 형통할 수밖에 없다. 유학자들은 이 괘에서 군자의 덕(德)을 찾았다. 그래서 ‘사람이 겸손하면 높은 자리에 있을 때 더욱 빛나고 낮은 자리에 있더라도 누구도 허물하지 않는다.(謙 尊而光 卑而不可踰)’라고 했다. 2000년 넘은 중국의 고전에서만 산이 주는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설악산 백담사 옆 등산로 초입에는 고은 시인의 시비(詩碑)가 단출하게 서 있다. 제목도 없이 시인의 서명만을 새긴 이 시비의 시는 간단하다. ‘내려갈 때 보았네/올라갈 때 못 본/그 꽃’ 그렇다. 위만 바라보고 발걸음을 재촉할 때는 한송이 야생화가 외따로 피어 있는지, 풀잎이 바람에 얼마나 흔들리는지 보이지 않는 법이다. 정상에 서거나 중도에 좌절해 하산할 때에야 비로소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이는 보통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심성이다. 그렇더라도 정치인은, 특히 큰 정치를 하겠다는 인물은 산에서 교훈을 얻고 이를 실천해야만 한다. 큰 정치인이라면 정상을 향해 발길을 옮길 때에도 늘 주변을 살펴야 한다. 외로운 한송이 꽃을 보아도,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을 보아도 아픔을 공감해야 한다. 또 산꼭대기(정상)에 오른 뒤에는 끊임없이 제 살을 깎아 주변의 낮은 곳을 메워주어야 한다. 그것이 정상에 선 자의 의무이자, 자신을 더욱 빛나게 하는 길이다. 이제 봄이다. 등산로는 형형색색으로 꾸민 상춘객들로 갈수록 붐빌 것이다. 그들 틈에 섞여 산을 오를 정치인들이여, 산의 겸손함을 배우기 바란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 [이경형칼럼] 임기4년차, 과욕은 금물

    [이경형칼럼] 임기4년차, 과욕은 금물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4년차에 진입했다.5년 가운데 이제 2년이 남은 셈이다. 단임제의 특성상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은 임기 초반에 탄력을 받아 상승, 중반쯤 최고조에 올랐다가 4년차부터는 가파르게 떨어지는 법이다. 이런 시기의 국정 수행은 새로운 과제보다는 기존 과제들을 선별하여 집중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무엇보다 과욕은 금물이다. 더욱이 자만이나, 오기를 부리는 것은 독배를 마시는 것과 다름없다. 5년 단임제의 역대 정권들이 비슷한 시기에 어떤 실패를 했는지를 되돌아보면 이를 알 수 있다.6공화국 노태우정권의 4년차였던 1991년은 수서사건에 이어 시위 중이던 명지대생 강경대군 치사사건이 발생하는 등 공안정국 여파로 몸살을 앓았다. 이러한 불행은 바로 전해의 3당 합당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여소야대에서 하루아침에 절대다수 여당으로 변신했지만,‘한지붕 세가족’은 내각제 밀약이 깨지면서 내분에 휩싸였다. 인위적인 정계 개편이 얼마나 허망하게 끝났는지를 보여준다. 문민정부 4년차인 1996년, 김영삼 대통령은 5,6공 청산 작업에 이어 4·11 총선에서 여당의 수도권 압승으로 기세를 올렸다. 한편으로는 OECD에 가입,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다며 때 이른 축배를 들었고, 연말엔 노동법을 기습 처리하는 등 권력의 오만함을 드러냈다. 그해 대외채무는 1045억달러에 달했지만, 펀더멘털 강조, 반도체 착시 등으로 IMF 위기가 도래하는 징후조차 포착하지 못했다. 김대중 정부의 4년차인 2001년엔 자민련에 민주당 의원을 꾸어주기까지 하면서 2차 DJP 공조를 선언했지만,9개월만에 다시 분열하고 말았다. 언론사 세무사찰을 4개월간 실시하는 등 권력의 칼을 휘둘렀으나,10·25 재·보선에선 한나라당에 완패했고, 결국 ‘게이트 공화국’으로 이어지다 DJ 아들까지 구속됨으로써 레임덕은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불과 3대 정권에 걸친 사례들이지만 반면교사로 삼을 대목이 적지 않다. 노무현 대통령은 일찌감치 권력기관을 독립시켜 권력을 분산하고, 청와대와 당을 분리해왔기 때문에 과거 정권에 비해 심각한 권력형 비리나 레임덕은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함정은 늘 있다. 정권재창출에 매달리다 보면, 무리수를 두기 쉽다. 앞으로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 후계 정권 창출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답시고 권력을 마구 휘두르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야당의 대권 주자들을 견제하고 싶은 유혹도 받을 수 있다. 정권 차원에서 합법적으로 구사할 수 있는 그럴싸한 일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자제하는 것이 득이 된다. 국민들은 대통령이 여당에 몸담고 있다 하더라도 공정한 심판관에 머물기를 원한다. 불공정한 심판이라고 생각되면 유권자들은 여당 후보에게 그 몇배의 피해를 입히기 마련이다. 당면 국정 과제들 가운데 노사관계의 재정립이나, 부동산정책, 한·미 FTA 추진 등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이것들만 잘 마무리지어도 높이 평가받을 것이다. 최근엔 양극화 해소와 고령화, 저출산 문제를 새로운 국정 과제로 제시하면서 해법을 찾고 있다. 단기 처방의 대증요법으로서는 안 된다. 다음 정권에 누가 들어서더라도 계승할 수 있는 장기 보약요법으로 가야 한다. 2차 남북 정상회담 추진 등은 매력적인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겠으나, 너무 매달릴 일은 아니다. 대선 국면에 이러한 대형 이벤트로 대박을 터뜨리겠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과욕=실패’로 끝나기 십상일 것이다. 본사 고문 khlee@seoul.co.kr
  • [씨줄날줄] 정당의 역사/한종태 논설위원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이 해산된다고 한다. 한나라당에 흡수되기 때문이다.11년만에 간판을 내리는 자민련은 현존 최장수(?) 정당이다. 자민련의 해산으로 불과 8년의 역사를 가진 한나라당(1997년 창당)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뒤이어 민주당(2000년 1월), 민주노동당(2000년 5월), 열린우리당(2003년), 국민중심당(2006년)이 있다. 이들 5개 정당은 의석 수 등에 따라 국고보조를 받는다. 이밖에 기독민주복지당과 천주평화통일가정당이 중앙선관위에는 등록돼 있다. 총 7개인 셈이다. 우리 정당사를 살펴보면 지금까지 110개의 정당이 명멸했다. 지나치게 많은 숫자다.10년 이상 존속한 정당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5·16쿠데타나 10·26사건,12·12 쿠데타 등 정변이 많았던 탓도 있지만 선거 때마다 있어 온 지역 맹주(盟主)나 대통령 중심의 분당과 창당 도미노 현상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 탓에 김영삼(YS)·김대중(DJ)전 대통령과 김종필(JP)전 총리 등 이른바 3김 발(發) 창당이 눈에 많이 띈다.3김은 13대 대통령선거를 앞둔 1987년 일제히 창당을 했다. 통일민주당(YS), 평화민주당(DJ), 신민주공화당(JP)을 말한다.YS와 JP는 90년 민정당 총재인 노태우 대통령과 함께 3당 합당(민자당)의 주역이 된다.YS는 대통령이 된 96년 신한국당으로의 명칭 변경을 이끈다.DJ는 평화민주당을 신민당으로 당명을 바꾼 데 이어 91년 이기택씨가 이끌던 ‘꼬마 민주당’과 합당, 민주당을 창당한다.14대 대선 실패 후 정계은퇴 과정을 거쳐 95년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 드디어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다.DJ는 2000년에 또다시 새천년민주당을 창당, 정당을 가장 많이 만든 인물로 기록돼 있다. 반면 JP는 95년 YS의 냉대에 반기를 들고 다시 창당하는데 바로 자민련이다. 우리 정당사만큼 복잡하고 어려운 게 없다고 한다. 단명으로 끝난 정당이 많은 때문이리라. 오죽했으면 박정희 대통령의 민주공화당(1963∼1980년)이 17년의 역사로 최장수 정당 1위가 돼 있겠는가. 영국의 보수당과 노동당,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처럼 적어도 몇십년은 존속하는 정당이 이제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종태 논설위원 jthan@seoul.co.kr
  • [인간시대] 5대째 아차산자락 토박이 ‘아차산지킴이’ 박정분 회장

    [인간시대] 5대째 아차산자락 토박이 ‘아차산지킴이’ 박정분 회장

    평생을 봉사활동을 하며 살아온 사람이 있다. 1945년 광복과 1950년 한국전쟁 이후에는 ‘4H운동’. 1970년대에는 ‘새마을 운동’. 1980년대에는 한·일 민간인 친선운동. 1990년대 이후에는 친환경 운동과 저소득층을 위한 자선 활동. 굴곡 있는 대한민국 반세기의 봉사 활동 역사를 구구절절이 이야기할 수 있는 박정분(70) 할머니. 할머니는 5대째 광진구에서 살아온 서울 토박이다. 봉사하며 살아온 자신의 삶에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할머니는 매주 일요일마다 아차산을 찾아 청소를 하는 ‘아차산 지킴이’의 대표를 맡아 봉사 활동의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체험으로 얻은 박 할머니의 봉사 활동 철학을 들어보자. 글 사진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내 평생을 광진에 봉사하며 살았다오. 인생의 황혼에서 칠십 평생을 돌아보니 후회는 없어. 다만 요즘 사람들이 너무 잘 먹고 잘 살아서 세상 모든 것이 귀한 줄 모르는 게 슬퍼.” ●14살부터 각종 활동… 봉사역사 산증인 배고프고 못사는 서러움 많았던 대한민국 반세기를 이어오는 동안 광진구에서 봉사활동을 해온 할머니가 있다. 지금은 ‘아차산 지킴이’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정분(70·광진구 광장동)씨가 그 주인공이다. 박 할머니가 평생 참여한 봉사활동 단체는 일일이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다.1945년 광복과 50년 한국전쟁 이후에는 ‘4H운동’에, 개발시기인 1970년대에는 ‘새마을 운동’, 일본과 교류가 절실했던 80년대에는 한·일 민간인 친선운동,90년 이후부터는 친환경 운동과 저소득층을 위한 자선 활동 등에 투신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각종 봉사 활동에서 손을 놓았지만 박 할머니는 대한민국 봉사활동의 산증인인 셈이다. 박 할머니가 어린시절부터 봉사 활동에 열심히 참여한 것은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 때문이었다. 아차산 자락에서 5대가 터를 일구고 살아온 광진 토박이인 박 할머니는 6·25전쟁 중인 51년 1·4후퇴 때 부산으로 피란을 떠난 것 외에는 평생을 광진에서만 살았다. 전쟁이 끝난 후 고향에 돌아왔을 때 박 할머니의 나이는 열네살. 폐허가 된 고향을 재건하자는 4H운동이 일었을 때 당시 소녀였던 박 할머니는 마을 사람들을 모아 돼지를 나눠주고 키우는 법을 직접 알려주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 박 할머니의 봉사활동은 스물 한살에 결혼한 뒤에도 계속됐다. 33년 3개월 동안 공직 생활을 하고 지난 92년 성수2가 1동장으로 퇴임한 남편은 박 할머니의 봉사 활동을 평생 지원해준 든든한 후원자였다. ●표창장 셀 수 없을 정도 70년대 새마을 운동은 물론이고 성동광진 농심회 광진구 회장,80∼91년 한·일 친선협회 부회장,90년대 아차산 어머니산악회 회장, 아차산 지킴이회 회장으로 활동하다보니 한 평생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박 할머니는 요즘은 매주 일요일에 아차산 지킴이들과 아차산에서 만나 쓰레기를 줍고 주변을 정리하는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박 할머니 자택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부터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등 전직 대통령들의 표창장이 즐비하다.‘자랑스러운 구민상’ 수상 경력은 셀 수도 없을 만큼 많다. 평생을 봉사 활동하며 살아온 이유를 묻자 박 할머니는 “팔자라니까. 그냥 좋아서 했어.”라며 웃는다. 그 시대에 남자로 태어났으면 큰 일 이루셨을 것이라는 기자의 말에 할머니는 “전쟁 통에 배운 게 있어야지. 우리 세대가 고생만 하고 참 애매한 세대라니까. 나는 봉사 활동하는 게 마냥 좋았으니까 됐어.”라며 웃는다. ●요즘 사람들 물건 귀하게 여길 줄 몰라 하지만 박 할머니가 평생을 광진에서 봉사 활동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5대가 한 장소에서 살았다는 박 할머니는 마을의 길 하나, 나무 한 그루, 동네 이름 하나까지 지키고 보존해야 할 소중한 역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어딨어. 요즘 아파트 한동을 한 시간만 돌아보면 1년 내내 써도 좋을 버려진 물건들이 넘쳐나. 그런게 모두 우리가 지켜야 할 역사인데 요즘 사람들은 간직하고 귀하게 여길 줄을 모르고 너무 쉽게 버려. 그러니까 내가 봉사 활동하면서 그런 것 지키고 싶었던 거야.”라며 박 할머니는 평생을 봉사 활동에 투신한 소신을 담담히 밝혔다. 세 아들은 출가시키고 남편과 단출하게 살아가고 있는 박 할머니는 “새벽 5시에 일어나도 여기저기 부르는데로 따라다니며 봉사 활동하면 하루가 너무 바빠.”라며 노년의 즐거운 삶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안동시 경북도청 유치 의지 재점화

    ‘우리도 한번 도청 유치를’ 경북 안동시 주민들이 경북도청 유치의지를 다지고 있다. 14일 안동시 등에 따르면 최근 전남도청이 무안지역으로, 충남도청이 홍성·예산지역으로 이전하거나 이전 예정지로 결정됨에 따라 경북도청을 안동으로 유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안동시가 고무된 것은 이들 도청 이전지가 전문기관의 연구결과 최고 평점을 받은 사실 때문이다. 안동시도 지난 1995년 경북도의회가 ㈜동명기술공단에 용역의뢰한 ‘경북 신도청 소재지 입지기준 설정 및 후보지 선정 연구’ 결과에서 구미와 포항을 큰 점수 차로 따돌리고 1위로 평가됐었다. 충남도청 이전지도 지난 2001년 충남발전연구원이 실시한 연구용역 결과와 일치하며, 전남 무안도 김영삼 정부 당시 광주전남공동발전연구원이 동북아시대 발전 가능성과 지역 균형발전 등을 토대로 연구를 벌인 결과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었다. 결국 전문기관의 평가결과가 그대로 현실에 적용된 셈이다. 이에 따라 안동은 경북도청의 안동 이전은 당연하다는 주장과 함께 도청 유치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지방선거를 앞두고 도청 이전문제가 주요 이슈로 부각돼 더욱 힘을 얻고 있다.경북도지사 후보인 정장식 포항시장은 최근 “도지사가 되면 2년 안에 도청 이전 지역을 결정하겠다.”고 공언했고, 한나라당 경북도당위원장인 권오을 의원(안동)도 “도지사 예비 후보자는 도청이전 문제에 대해 분명히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나섰다.안동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열린세상] 한·미 FTA와 정치의 죽음/이성형 이화여대 정치외교학 교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시작한다고 한다. 통상교섭본부장이 워싱턴 미의회 앞에서 미국과 공동으로 협상 개시를 발표했다. 갑자기 머리가 뻐근해진다. 이렇게 중요한 사안이 어떻게 한번도 제대로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았는지 나로서는 그저 신기롭기만하다. 언론도 애써 공론화를 피하는 것 같고, 정치인들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시민사회 단체는 갑자기 날아든 소식에 어안이 벙벙한 모양이다. 향후 한국의 산업, 문화, 심지어 방위정책과 통일에 이르기까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사안이 정치의 손을 떠나 관료의 입으로 발표되었다. 정치는 명백히 죽어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미 FTA는 무역과 투자를 넘어선 메가톤급 쓰나미가 될 것이다. 김영삼 정부가 추진했던 세계화 정책보다 더욱 큰 해일이 몰아닥칠 것이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스크린 쿼터나 농산물 개방만이 문제가 아니다. 산업의 구조조정을 넘어서, 문화에 이르기까지, 남북경협과 안보정책에서 대중관계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 영향권에 들어간다. 미국측이 이구동성으로 협상개시를 자축하는 것은 불안한 한·미동맹에 쐐기를 박는 효과가 있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 나도 FTA를 지지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수순이 틀렸고, 협상하는 방식이 졸속이다. 정말 조마조마한 느낌마저 든다. 일단 경제규모의 압도적 차이에서 오는 협상력의 비대칭성에서 출발해보자. CIA의 2005년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미국의 7% 수준에 불과하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맺은 멕시코의 GDP 규모가 8% 수준이다. 이런 수준이라면 미국에 한·미 FTA는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올려놓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한국이 겪어야 하는 것은 쓰나미 수준의 해일이다. 업계는 공산품 수출이 늘어날 것이라고 반기는 분위기다. 하지만 대미관세가 그다지 높지 않은 마당에 업계가 한·미 FTA를 목 놓아 기다리던 분위기는 아니었다. 대신 농촌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큰 피해를 입을 것이고, 이제 겨우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문화산업은 송두리째 무너져버릴 것이다. 경쟁력이 허약한 서비스 산업도 크게 바뀔 수밖에 없다. 멕시코의 예를 보자면 금융업과 유통업은 너무 쉽게 미국의 손으로 넘어갔다. 교육, 의료, 법률 서비스 부문도 미국화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나마 위로거리를 찾는다면 기러기 아빠들이 줄 것이고 과거보다 영어 발음이 조금 유창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실업은 더욱 늘어나고 양극화는 더욱 가속화된다. 논란을 거듭한 한·미투자협정의 핵심내용도 고스란히 FTA에 옮겨지게 될 것이다. 미국인투자는 내국인 수준으로 보장되고, 노동의 유연화는 무역협정에 내장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사관계도 적지 않은 변화를 겪게 되리라. 그래서 나는 한·미 FTA가 무역을 넘어서 한국 사회의 미래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가히 혁명적 수준이 되리라 예견한다. 혹시 공론화는 정책결정을 더디게 만드는 비용이라 생각해서 은근슬쩍 넘어가는 것일까. 한·미 FTA는 제2의 개국에 버금가는 사안이다. 돌아오지 못하는 다리를 건너는 것이다. 준비가 덜 된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정책으로 IMF 사태를 맞았던 우리가 아닌가. 성장과 안정이 보장되는 한·미 FTA가 되기 위해서 시민사회, 학계, 언론은 향후 1년 내내 토론회와 공청회를 열어야 한다. 당연히 이 사안은 다음 대선후보들의 공약이 되어야 하고 협상도 차기정부에서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닌 것 같다. 이성형 이화여대 정치외교학 교수
  • [씨줄날줄] 공안검사/우득정 논설위원

    참여정부 출범 이후 민주노동당의 한 의원은 검찰개혁을 위한 인적 청산 기준 3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정치검사, 둘째 비리검사, 그리고 마지막이 공안검사였다. 김영삼 정부 초기에 ‘구공안’이라는 낙인과 함께 처음으로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한 뒤 국민의 정부를 거쳐 참여정부에 들어서는 공안검사는 이처럼 검찰내 ‘공공의 적’이 돼 버린 것이다.“공안검사들은 국가보안법이라는 마녀의 빗자루를 타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승천하다가 국가보안법의 약발이 떨어지면서 끝모를 추락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이 공안검사 몰락을 당연시하는 진영의 시각이다. 그러다 보니 요즘 검사들은 ‘공안’으로 분류되기를 극히 꺼린다. 전공분야를 물을라치면 ‘특수’‘기획’‘마조(마약과 조직폭력)’, 하다못해 ‘형사’를 들먹일지언정 ‘공안’이라는 단어에는 대뜸 손사래를 친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공안검사는 말단 공안검사조차 마음대로 사표도 내지 못할 정도로 검찰 자존심의 상징이었다. 기수별 선두 그룹에서 일처리가 확실하고 인간관계가 원만한 엘리트들만 선발됐다. 검찰기준으로는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재야 및 운동권 시각으로는 ‘정권 안보’를 위한 첨병이 되려면 무죄 선고가 나오거나 조직내 이념적인 불협화음이 나와선 안 됐던 것이다. 당시에는 공안사건의 무죄선고나 공안부내 불협화음은 국가 안위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공안검사에게는 검사장 승진이나 국회의원 진출이라는 출세가 보장됐다. “공안이라는 딱지가 붙으니 사건이 들어오질 않아. 게다가 노동, 학원, 선거 등 공안사건은 별로 돈도 되지 않고.”참여정부 출범 이후 개업한 공안부장 출신 변호사의 푸념이다.20여년간 운동권의 반대편에서 공익의 수호자로서 악전고투한 결과가 오늘날 온통 낙인투성이라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사와는 담을 쌓은 채 이력서만 깨끗하게 보존해온 인물들이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게 그의 불만이다. 이번 대규모 검사장 승진인사에서 공안통들이 전멸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지만 검찰의 누군가는 국가보안법 위반자를 기소해야 한다. 또 선거법을 위반한 정치인에게 칼날을 들이대야 한다. 다만 추락하는 공안검사에게 어떤 날개를 달 것인지는 검찰의 몫이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서울광장] 손학규와 김근태, 그리고 대중성/한종태 논설위원

    [서울광장] 손학규와 김근태, 그리고 대중성/한종태 논설위원

    손학규 경기도지사와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원. 두 사람은 의외로 공통점이 많다. 우선 1947년생으로 동갑이다.. 경기도가 고향인 것도 같고 출신학교 역시 경기고와 서울대 동기동창이다. 학과만 정치학과(손학규), 경제학과(김근태)로 다를 뿐이다. 서울대생 시절에는 유명한 운동권으로 ‘학생운동 3인방’으로 통했다. 이후 손 지사는 노동운동에 투신했고, 김 의원은 통일운동에 매진했다. 두 사람이 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를 시작한 것도 공교롭다. 또 시기는 다르지만 둘 다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다. 재임시절 ‘힘 센’ 복지부장관이란 평가를 들은 것도 비슷하다. 진지하고 성실하다는 평을 듣는 성격도 같다. 그래선지 서로 상대방을 스스럼 없는 친구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두 사람의 차이점도 있다. 김 의원은 30년가량 재야인사로서 한길 인생을 살아온 ‘일관성’이 돋보인다. 까닭에 그를 빼놓고는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을 언급하기는 어렵다. 그에게는 ‘김근태와 친구들’로 통칭되는 마니아 집단이 있다. 물론 그런 탓에 폭이 좁다는 얘기도 듣는다. 반면 손 지사는 이념의 스펙트럼이 넓은 편이다. 좌우 경험이 모두 있어서다. 이념적으로 자유분방한 당내 소장파들이 그의 우군이다. 통합의 리더십을 갖췄다는 평가도 듣는다. 그러나 우파 정당인 한나라당에서 이것은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다. 그런 두 사람이 차기 대권에 승부수를 던졌다. 그러나 지지도가 영 말이 아니다. 대중성에서 취약한 탓이다. 당분간 이런 트렌드는 바뀔 것 같지 않다. 대권 후보군으로서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꽤 괜찮은 상품성에도 왜 그럴까.‘저평가 우량주’를 몰라보는 대중에게 책임을 돌리기 전에 자신들의 문제점은 없을까. 몇가지가 떠오른다. 우선 매사에 진지하고 사색적이어서 표현이 ‘서술형’일 때가 많다. 두 사람은 연설할 때나 대화할 때나 ‘기승전결’ 방식이 항상 머릿속에 있는 것처럼 비쳐진다. 자연히 복문과 중문이 많고 구어체보다는 문어체를 즐겨 사용한다. 말이 어렵다는 얘기도 자주 듣는다. 물론 그들의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60,70년대 학생운동권은 소수정예의 지하 이념서클 중심이었던 탓에 논리 무장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중은 단답형과 두괄식을 좋아한다. 에둘러서 표현하는 것에는 지겨워한다. 직설적 화법을 더 선호한다. 우리 정치사에서 표현의 ‘단순화’에 능한 정치인은 아마도 김영삼 전 대통령(YS)이 아닐까 싶다. 눌변이기는 하지만 표현을 단순화하는 YS 방식을 두 사람이 벤치마킹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또 자신만의 논리가 너무 강하다 보니 ‘사고의 경직성’이 눈에 띄기도 한다. 고집이 세다는 것과 같은 말일 게다. 이럴 때면 참모들의 건의는 한낱 흘러가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비슷한 맥락에서 자기 PR에도 둔한 편이다. 콘텐츠가 앞서니까 문제없다는 식이다. 상대적으로 미디어에 덜 친화적인 것도 지적할 수 있다. 같은 당의 다른 경쟁후보들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전반적으로 이벤트에 약한 것도 두 사람의 단점으로 꼽힌다. 감성적인 이벤트를 잘할수록 지지도가 올라가는 것이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로고스보다는 파토스가 흡인력에선 앞선다. 콘텐츠라고 하는 정책과 노선, 그리고 비전에서 나무랄 데 없는 두 사람이다. 중요한 것은 지지도와 연결하는 매개체이다. 김 의원과 손 지사가 이제부터는 소프트웨어에 주력해야 하지 않을까. 한종태 논설위원 jthan@seoul.co.kr
  • [이경형칼럼] ‘탈당’징후 어떻게 봐야 하나

    [이경형칼럼] ‘탈당’징후 어떻게 봐야 하나

    노무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탈당 관련 발언으로 야기된 탈당 문제는 잠시 수그러들었지만, 언제 다시 활화산으로 변할지 모른다. 현 권력구조의 1987년 헌법체제 이후 역대 대통령들은 차기 대선 일정에 임박해서 탈당했다. 그것도 여당 대권 후보의 압박으로, 혹은 자식들의 비리로 정치적 궁지에 몰려 당을 떠났다. 노 대통령은 스스로 ‘역발상’의 정치로 숱한 역정을 헤쳐왔다고 한다. 그래서 탈당도 과거 대통령들과 같은 모양으로는 결행하지 않을 것 같다. 6공화국의 노태우 대통령은 대선 3개월 전인 1992년 9월 민자당을 탈당했다. 당시 김영삼 후보는 SK 이동통신허가 반대, 중립내각 구성 요구 등으로 노 대통령을 세차게 밀어붙였다. 그런 YS도 대선 한달전인 1997년 11월 자신을 상징하는 ‘03마스코트’가 이회창 후보 지지자들에 의해 불태워지는 등의 수모를 당하면서 신한국당을 떠났다. 김대중 대통령도 각종 게이트와 아들의 비리 연루로 2002년 5월 대선 7개월을 남겨두고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했다. 과거 대통령들은 이처럼 당 대선 후보에게 백기를 드는 형국으로 당을 떠났지만, 노 대통령은 분명 다른 선택을 할 것이라고 본다. 적어도 탈당을 방어용이 아니라, 정치적 공격수단으로 카드화하거나 정치 지형을 새롭게 변경하는 지렛대로 활용할 것으로 생각된다. 지난 11일 당 지도부와 가진 만찬 석상에서 노 대통령은 탈당을 그저 ‘고부간 갈등 치유법’으로 에둘러 얘기하면서도 서명파고 뭐고 할 것 없이 일제히 “그것은 아니 되옵니다.”를 연발토록 만들었다. 짐짓 탈당을 카드화하려는 속내를 보인 것이다. 그동안 거듭된 노 대통령의 탈당 관련 발언이 현실화되는 시기는 임기를 1년 반 이상 남겨둔 올 하반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5월말 지방선거 후 개헌 논의가 산발적으로 시작되고, 어느 정도 가속력이 붙으면 새로운 권력구조의 ‘2007 헌법체제’수립을 촉진하는 지렛대로 탈당을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대통령의 탈당은 여·야당의 경계를 허물고, 모든 정파들이 권력의 프리미엄이 없는 제로 베이스에서 새로운 정치 시스템을 모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게 된다. 어떤 이는 지금 열린우리당의 지지도에 견줘볼 때, 지방선거에서 참패할 것이 불 보듯하므로 그 수습책의 하나로 탈당이 이뤄질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정치적 성정에 비춰 결코 수세적인 탈당은 취하지 않을 것이다. 역으로 공격적인, 그것도 ‘큰 고기’를 잡는 카드로 탈당을 결행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사실 5년 단임 대통령제를 바탕으로 하는 ‘87체제’는 6·10항쟁의 산물로, 민주·반민주 대결 구도에서 반독재를 최고 지향가치로 삼고 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민주화는 거의 완성 단계이고, 오늘날 우리 사회의 양극화 등 정치·사회적 긴장구조는 주로 진보-보수, 또는 좌파­우파라는 문제 해결의 접근, 방법론의 대립에서 비롯되고 있다. 따라서 어떤 헌정 시스템이 정치·사회적 긴장과 갈등을 더 효과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가를 올 하반기부터는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내년 12월 대선과 내후년 4월 총선은 현행 헌법 아래서 가장 근접한 4개월 차이로 실시된다. 국회의원 임기 단축을 최소화하면서 대통령 5년, 의원 4년 임기를 일치시킬 수 있는 기회가 20년 만에 처음으로 내년에 다가오는 것이다. 임기 불일치로 금년부터 내리 3년간 해마다 큰 선거를 치러야 할 판이니, 개헌을 한다면 내년이 적기다. khlee@seoul.co.kr
  • “위험한 친북 작태 당장 중단시켜야”

    “한국정부가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을 4년째 기권한 것은 참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18일 현 정부의 대북 정책 방향과 관련해 작심한 듯 거침없는 쓴소리를 뱉어냈다. 이날 낮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옛 통일민주당 소속 정치인 모임인 민주동지회 신년 하례식에서다. 김 전 대통령은 “수백만을 굶겨 죽인 범죄정권”,“3대에 걸쳐 권력세습을 꿈꾸는 세계의 웃음거리이자 역사의 돌연변이”라는 등 강한 표현을 섞어가며 북한 정권을 비난했다. 특히 “한국의 군사 독재자들을 물리친 우리가 김정일 정권 타도에 앞장서야 한다. 그것만이 통일을 앞당기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대중씨가 시작한 무모하고 위험한 친북 작태를 당장 중단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뒤 “김정일의 눈치만 보는 비겁한 짓들은 지금 당장 중지돼야 한다.”고 현 여권을 직접 겨냥했다. 이어 “지난해 12월 서울에서 열린 북한 인권 국제대회도 정부의 여러가지 형태의 방해로 예정보다 규모가 축소됐다.”면서 “죽어가는 북한 주민을 저버리는 일이자 우리 국민 다수에도 반하는 무도한 처사”라고 성토했다. 행사에는 최형우 서석재 박종웅 강인섭 전 의원과 한나라당 김덕룡 김무성 안경률 박진 김영선 의원, 손학규 경기도지사, 국민중심당 이인제 의원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오피니언 중계석] 참여정부 부동산정책

    토지정의시민연대와 헨리 조지 연구회는 16일 ‘헨리 조지와 한국 부동산 정책’이란 공동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주요 발제자의 연구를 중계한다. ■ “보유세 강화등 평가받을것” 참여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보유세 강화와 거래세의 경감, 둘째 실거래가 보고 의무화, 부동산 자료의 전산화를 비롯한 부동산 거래의 투명성 제고, 셋째 서민을 위한 장기임대주택의 공급 확대가 그것이다. 이 세 가지는 역대 정부에서 한 번도 제대로 실천한 적이 없는 정책으로서 장기적으로는 참여정부의 업적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그 효과가 미미하고, 정책 추진에 대한 반발, 부작용은 만만치 않다. 부동산정책을 요즘 유행하는 밥솥 유머에 의하면 박정희는 미래의 남의 장작까지 미리 사용해서 밥을 해놓고 생색낸 대통령이라고 평가받아 마땅하다. 그 뒤에 오는 대통령들은 아마 장작이 모자라 밥 짓는 데 애를 먹었을 것이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에 와서 부동산 광풍의 강도(强度)는 다소 가라앉았으나 기본적으로 연평균 두 자릿수의 가격 상승, 대폭적인 불로소득의 발생은 여전하였다. 그에 비해 김영삼, 김대중의 문민정권에 오면 과도한 개발이 자제되고, 부동산 투기에 대한 억제 정책이 비로소 힘을 얻기 시작하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토지보유세를 강화하는 대신 지금까지 지나치게 무거웠던 토지이전에 따른 세금은 가볍게 해줄 필요가 있다. 종토세(綜土稅)의 과표를 서서히 높여서 공시지가에 가깝게 현실화해야 할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거듭된 대통령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근본적 부동산 개혁이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는 땅을 가진 사람들이 비록 소수이지만 정치적 세력이 워낙 막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책임 있는 정책입안자들의 소신 부족으로 꽤나 강력했던 10·29대책조차 힘을 잃는 사태에 이르러 결국 8·31이란 더 강력한 처방이 나오고서야 산불이 잡히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보유세를 높여나가야 하는데, 조세저항 때문에 한꺼번에 시정하기가 어렵다. 점진적으로, 예고를 하고 보유세를 높여나갈 수밖에 없다. 재산세의 불형평성은 참여정부 들어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 이정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 “토지세 올리면 투기수요 감소” 노동이나 자본과 달리 토지의 공급은 완전 비탄력적이다. 따라서 세금을 통해 토지 사용자가 지불하는 가격과 지주가 받는 가격 간에 차이가 발생해도 가용토지의 양은 변하지 않는다. 만일 토지에 한 가지 이상의 조세가 부과된다면, 만일 세금의 크기가 잠재적 투자 기간 전반에 걸쳐 토지를 사용하는 가치를 초과하지 않을 것임을 잠재적 투자자들이 확신한다면, 토지세는 초과부담을 발생시키지 않는다. 즉‘중립적(neutral)’이다. 토지세를 적절하게 관리할 경우 중립적이 된다. 그러나 토지세는 사실 초중립적인데, 이는 토지세를 부과하지 않는 경우에 비해 경제적 효율성을 향상시킨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첫째 토지보유세는 대출시장의 불완전성을 상쇄하기 때문이다. 보통 토지세가 인상될 경우 할인율이 높은 (즉 대출에 대한 접근이 어려운) 이들보다 할인율이 낮은 (즉 대출에 대한 접근이 용이한) 이들의 호가가 더 많이 떨어진다. 따라서 토지세는 땅을 할인율이 낮은 사람들로부터 할인율이 높은 사람들에게로 옮기도록 한다. 이는 토지의 이용도와 경제 전체의 산출을 증가시킨다. 토지세가 초중립적이 되는 두 번째 이유는 토지투기에 의해 발생하는 비효율성을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토지 투기에서 최고 호가는 흔히 가치상승률을 가장 과대평가하는 사람들이 부른다. 이는 경제학자들이 ‘승자의 저주’라고 부르는 것이다. 토지가치세를 증가시키면 토지 매도가격이 떨어진다. 따라서 토지세가 올라갈수록 토지에 대한 투기적 수요는 감소한다. 하지만 현재의 토지 사용자가 기꺼이 지불하고자 하는 지대는 감소하지 않는다. 토지세는 투기자들로부터 현재 사용자들에게로 토지를 이전시키므로, 투기로 인해 토지가 인위적으로 부족해지는 경향은 줄어들고 경제 전체의 산출은 증가한다. 윤리적 관점에서 토지세는 효율적이면서도 정의롭다. 한 국가 내에서 자연적 기회인 토지의 가치를 동등하게 분배하는 방법 중 하나는 그에 대한 배타적 접근을 인정받은 각 개인에게서 임대가치를 거둬 모든 사람의 소득이 되도록 사용하는 것이다. 니콜라우스 티드먼 미 버지니아 주립대 교수
  • [사설] 군사보호구역 해제 투기 불씨 안 돼야

    국방부가 군사시설 구역 6522만평을 보호대상에서 해제했다. 해당되는 대부분의 땅에서는 주민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았었다. 그러나 오는 3월부터 각종 개발과 주택 신·증축이 자유로워져 재산권 행사가 용이해진다. 그런 점에서 이번 조치는 환영받을 만하다. 국방부는 앞으로도 10여가지 군사시설보호 관련법을 단순화함으로써 국민의 재산권 행사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남북한간 평화·협력·교류가 정착해 가는 과정에서 국민에게 권리를 되돌려주는 조치는 당연하다 하겠다. 그러나 규제 해제에 따른 땅값 상승이나 난개발, 녹지훼손, 부동산 투기에는 지속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지방선거를 앞둔 선심성이라는 지적도 불식해야 한다. 물론 해제지역 대부분이 토지거래허가구역이자 녹지여서 땅값 상승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5월 지방선거에서 자치단체장 후보들이 공약을 남발하면 난개발과 투기의 불씨가 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국방부는 이번 조치가 선거와는 무관하며, 합동참모본부의 계획에 따라 1년간 현장실사 및 심의를 거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심의과정이 불투명하고 발표가 느닷없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11년전 김영삼 정부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보호구역을 대거 해제한 전력 때문에 오해를 살 만한 대목이다. 참여정부는 정권의 명운을 걸고 부동산 투기 근절에 나서겠다고 했다. 그런데도 행정복합·혁신·기업·참여도시 등 온갖 개발 계획으로 부동산 시장을 흔들었다. 투기를 잡겠다면서 실제로는 투기심리를 부추기는 정책을 거듭해서는 곤란하다. 선거용·선심성 오해를 벗으려면 지속적인 투기단속은 물론, 개발 프로젝트가 지역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사후 관리에 빈틈이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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