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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S ‘혈흉’으로 입원·수술

    김영삼 전 대통령이 늑막염으로 인한 혈흉으로 22일 수술을 받았다. 김 전 대통령측은 이날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김 전 대통령이 늑막 내부에 혈액이 고인 상태인 혈흉으로 21일 서울대 병원에 입원,22일 아침 흉강경 시술을 했다.”고 밝혔다. 김기수 비서실장은 “현재 김 전 대통령의 상태는 양호하다.”면서 “건강에 다른 이상은 없고 3∼4일 계시면 괜찮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혈흉 원인에 대해서는 “아침 배드민턴 운동을 하다가 늑막염이 됐다고 한다.”면서 “아침에 갑자기 무리하게 운동을 하면 그렇게 되는 경우가 가끔 있다고 한다.”고 전했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국회 60년… ‘삭제된 발언’ 재조명

    올해로 제헌의회가 구성된 지 60년이 됐다. 국회 의사록은 이 의정사를 오롯이 담고 있는 핵심적인 자료다. 하지만 우리의 국회 속기록은 일반에 공개될 때 많은 부분이 삭제돼 있기 일쑤다. 과연 어떤 내용이 삭제됐고, 무슨 이유로 삭제됐을까? 17일 오후 10시에 방영되는 KBS 1TV 제헌절 특집 ‘국회 60년, 삭제된 역사를 복원하라’는 국회 속기록에서 사라진 발언들을 최초로 수집해 대한민국 국회의 역사를 조명한다. 국회기록보존소 서고에는 의정사를 고스란히 담은 국회 속기록 1858권이 보관돼 있다. 초대부터 17대까지 국회의 영욕이 스민 우리 현대사 연구의 보고인 것이다. 국회 속기록이 본격적으로 삭제되기 시작한 것은 박정희의 3선 개헌 이후부터. 이때부터 박정희 독재에 대한 저항의 기록이 살아남지 못하게 된 것이다. 유신치하 제9대 국회에서 사라진 대표적인 발언들은 ▲김대중 납치사건 관련 발언 ▲박정희 정권에 대한 비판 ▲긴급조치 철폐와 개헌요구 ▲군사, 국방관련 발언 등이다. 이 발언들은 삭제부호로만 남아 있다. 당시 독재에 맞섰던 대표적인 인물은 정일형 전 의원과 김영삼 전 대통령 등이었다.1974년 12월 박정희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한 정 의원의 발언은 국회 속기록에서 삭제됐다. 김 전 대통령은 1973년 9월 김대중 납치사건을 처음으로 언급하고 진상규명을 촉구했지만, 그 내용 역시 삭제됐다. 국회의원들의 발언이 가장 많이 삭제된 국회는 11대 국회였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르는 발언들은 속기록에서 살아남지 못했다.11대에서 사라진 발언은 모두 150건.12대에서 가장 많이 삭제된 내용은 광주 민주화운동 관련 발언이었다. 여소야대와 청문회로 기억되는 13대 국회에서는 권력비판 발언이 삭제된 경우는 현격히 줄어든 반면, 의원들의 상소리나 인신공격 발언 등이 주로 삭제 대상이 됐다. 이처럼 국회의원들의 발언은 2003년 국회법에 삭제 금지 조항이 신설되기 전까지 쉽사리 속기록에서 지워지곤 했다. 의원들에 따르면, 유신 때는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전두환 정권 때는 안기부가 회의를 모니터해 사실상 삭제를 주도했다고 한다. 어느덧 ‘환갑’을 맞은 대한민국 국회. 독재와 군사정권을 비판했던 용기있는 발언들은 이제 엄연한 헌정사의 일부분으로 당당히 복원되고 공개돼야 할 것이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창간 104주년 특집-건국 60년 사회문화 여론조사]“한강의 기적에 민족적 자긍심” 82%

    [창간 104주년 특집-건국 60년 사회문화 여론조사]“한강의 기적에 민족적 자긍심” 82%

    ■역사인식 “세대 갈등 확대” 57% ‘6·25전쟁’ 가장 큰 사건 서울신문 여론조사 결과 우리나라 국민 3명 중 2명꼴은 정부 수립 이후 60년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긍심을 갖는 이유로는 ‘한강의 기적’으로 대표되는 경제 성장이 으뜸으로 꼽혔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의 역사에 대해 ‘매우 자랑스럽다.’ 15.1%,‘대체로 자랑스럽다.’ 51.4% 등 전체 응답자의 66.5%가 긍정적으로 답변했다. 반면 ‘별로 자랑스럽지 않다.’와 ‘전혀 자랑스럽지 않다.’ 등 부정적으로 답변한 응답자는 각각 28.2%,4.4%에 그쳤다. 자랑스럽다는 긍정응답은 학력이 높을수록, 사무관리·전문직 종사자, 대전·충청 거주자 등에서 상대적으로 높았다. 반면 ‘자랑스럽지 않다.’는 부정적 응답은 생산·기능·노무직 종사자, 서울 거주자 등에서 상대적으로 높았다. 분야별로는 경제적 성장 정도에 매우 또는 대체로 자랑스럽다고 응답한 비율이 82.5%로 가장 높았다. 이어 문화적 다양성 정도 63.0%, 사회적 민주화 정도 62.0% 등의 순으로 긍정 답변 비율이 높았다. 반면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위상 55.6%, 전반적인 삶의 질 55.3%, 국민들의 의식수준 52.2% 등은 긍정답변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정부 수립 이후 우리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으로는 전체 응답자의 31.7%가 ‘6·25 전쟁’을 꼽았다. 또 1980년 ‘5·18 광주민중항쟁’(14.8%)과 1970년대 새마을운동(14.7%)이 ‘3대 사건’으로 이름을 올렸다. 아울러 ▲1988년 서울올림픽 10.0% ▲1960년 ‘4·19 혁명’ 9.2% ▲1961년 ‘5·16 군사쿠데타’ 6.7% ▲1987년 ‘6·10 항쟁’ 4.1% ▲2002년 한·일월드컵축구대회 3.1% ▲1987년 ‘6·29 선언’ 1.9% ▲2000년 남북정상회담 1.6% 등의 순으로 ‘10대 사건’에 포함됐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아쉬운 점을 묻는 질문(중복응답)에는 전체의 56.8%가 ‘정치권 갈등으로 지역·세대간 갈등이 커진 점’을 꼽았다.‘남북 분단으로 민족이 분열된 점’ 50.2%,‘성장 위주의 경제정책으로 빈부격차가 커진 점’ 44.0% 등을 지적하는 응답자 비율도 높았다. 이어 ‘군사정부의 장기집권으로 민주화가 늦어진 점’ 16.4%,‘지나친 국수주의로 세계화가 늦어진 점’ 14.4%,‘민족 고유의 문화와 정체성이 약해진 점’ 12.4%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시기별 주역 “정보화 원동력은 국민의 자질” 56%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한 산업화를 바탕으로,386세대가 민주화를 이끌어냈고, 일반 국민들이 선진국 진입을 위한 정보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서울신문의 여론조사 결과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 역사의 시기별 주역은 이처럼 평가될 수 있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가장 중요했던 시기를 묻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47.5%가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까지의 산업화 시기’라고 답했다. 즉 응답자 2명 중 1명꼴로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기틀이 마련됐고, 선진국 진입을 위한 초석이 다져진 것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8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의 민주화 시기’ 32.1%,‘9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의 정보화 시기’ 17.9%,‘건국 이후 60년대 초반까지의 건국 시기’ 1.0%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산업화 시기를 이끈 주역을 묻는 질문에는 전체 응답자의 60.1%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고 답했다. 박 전 대통령을 꼽은 응답자 비율은 50대 이상(70.3%), 고졸 이하(67.1%), 자영업자(74.4%) 등에서 상대적으로 높았다. 또 민주화 시기를 이끈 주역으로는 ‘386세대 중심의 대학생’을 꼽은 응답자가 전체의 45.1%에 달했다.386세대는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니면서 학생 운동의 불을 지핀 뒤 1990년대에는 사회에 진출해 왕성한 활동을 펼친 30대 중반부터 40대 중반까지를 일컫는 표현으로,1990년대 중반에 생겨난 개념이다. 민주화의 주역으로는 386세대 외에 일반 국민(25.4%)과 노동자·농민(11.0%) 등 이른바 ‘민초(民草)’들도 높이 평가됐다. 반면 정치권 내 야당세력(6.8%)이나 정치권 밖 재야세력(6.8%) 등 세력화된 정치권 인사를 꼽은 응답자 비율은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이와 함께 9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의 정보화 수준이 높아지게 된 가장 큰 원동력으로 ‘국민의 특성과 자질’을 꼽은 응답자가 전체의 55.8%를 차지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역사정보 “정부수립일 아예 몰랐다” 63% 서울신문 여론조사 결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1948년 8월15일)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전체 응답자의 13%에 불과했다.23.6%는 잘못 알고 있었으며,63.4%는 아예 몰랐다고 답했다. 정부수립일을 정확히 알고 있는 응답자는 연령이나 학력, 소득이 높을수록 많았고 여자(8.3%)보다 남자(17.7%)가 더 많았다. 대한민국 정부수립의 적절한 의미로는 ‘민주주의 국가로의 진정한 독립’이라는 응답이 45.7%로 절반에 가까웠고,‘일본식민통치 해방’(41.9%),‘남북 분단의 시작’(10.5%)이라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민주주의 국가로의 진정한 독립이라는 응답 비율은 연령이 낮을수록, 학력이 높을수록 컸고, 학생(61.3%)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반면 일본식민통치 해방이라는 응답은 연령이 높을수록, 학력이 낮을수록 많았고, 주부(51.4%)에게서 상대적으로 높았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하면 떠오르는 인물로는 김구 선생이 44%로 가장 많았고,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35.7%로 그 다음이었다. 김구라는 응답자 비율은 고학력자, 진보주의자일수록 높은 경향을 보였다. 또 남자,40대, 사무·관리·전문직, 부산·울산·경남 거주자 등에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반면 이승만이라는 응답은 저학력자이지만 보수주의자,60대 이상, 농림어업종사자, 서울 거주자 등에서 상대적으로 많았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최고 대통령 “경제는 박정희… 민주화는 김대중” 국민 4명 가운데 3명꼴은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가장 큰 업적을 남긴 대통령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꼽았다. 이번 조사에서 박 전 대통령은 73.4%라는 압도적 지지율을 보였고, 이어 이승만 전 대통령이 8.4%, 김대중 전 대통령 7.0%, 노무현 전 대통령 5.1%였다. 김영삼(0.5%) 노태우(0.2%) 전두환(0.1%) 전 대통령은 응답자가 모두 1%에도 못미쳤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연령이 높을수록, 학력이 낮을수록 높은 응답률을 보였으며 월소득 99만원 이하 저소득층에서도 상대적으로 높았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19∼29세 연령층에서 상대적으로 응답률이 높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29세 연령층과 전문대 재학생 이상의 고학력층, 진보층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지지를 얻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는 응답은 30대, 고학력층, 진보층에서 많았다. 분야별로 보면 경제분야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압도적인 지지율을 보였다. 나머지 분야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고른 응답을 받았다. 경제분야에 대해 응답자의 무려 82%가 박 전 대통령을 꼽았고, 김대중(5.2%) 전두환(4.6%) 노무현(2.5%) 전 대통령 순으로 지목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응답자 특성에 관계없이 모든 계층에서 70% 이상 높은 응답을 이끌어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남북관계에서 70.4%라는 압도적 우위를 이끌어냈다. 외교와 민주주의 성장 분야에서도 각각 26.7%,27.2%로 가장 높은 지지율을 나타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남북관계에서 모든 계층의 높은 호응을 받았다. 김 전 대통령 다음으로는 박정희(5.4%), 노무현(4.7%) 전 대통령이 이었으나 큰 차이를 보였다. 민주주의 성장분야에선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노무현(21.6%) 김영삼(15.3%) 박정희(11.4%) 노태우(5.2%) 전 대통령 순으로 업적을 많이 남긴 것으로 조사됐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日 독도영유권 명기 파장 확산] 정권마다 반복되는 對日 ‘냉온탕 외교’

    [日 독도영유권 명기 파장 확산] 정권마다 반복되는 對日 ‘냉온탕 외교’

    일본 중학교 사회과 교과서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의 독도 영유권 병기 문제가 터지면서 한·일간 역사·영토 문제를 둘러싼 ‘질곡의 역사’가 또다시 되풀이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과거 정권마다 출범 초기에는 한·일 관계 개선에 나섰다가 일본측으로부터 번번이 ‘뒤통수’를 맞아 여론이 악화되고 또다시 양국 관계가 냉각되는 ‘냉온탕 외교’가 반복돼온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의 ‘실용외교’도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日측에 번번이 뒤통수 맞아 여론 악화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한·일 갈등은 1950년대 이승만 대통령의 ‘해양주권 선언(이승만 라인)’ 후 불거졌고 65년과 98년 두차례 한·일 어업협정 등을 통해 분쟁이 심화됐다. 또 90년대 들어 일본의 우경화 현상이 강해졌고 김영삼 대통령의 독도 접안시설 설치 등이 일본을 자극, 한·일 어업협정 파기 등으로 이어졌다. 이후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정권 초기 대일 유화책을 펼쳤다가 일본이 도발하면서 강경책으로 선회, 양국 관계가 급랭하는 과정을 되풀이했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은 98년 ‘21세기 신 한·일 파트너십 선언’을 발표, 미래로 가자고 역설했다. 그러나 일본은 2000년 외무성이 발간한 외교청서에 ‘독도 고유 영토설’을 명기했으며 2001년에는 왜곡된 역사 교과서 검정이 통과됐다고 발표했다. 이에 한국 내 반일 감정이 확산되면서 양국 관계는 악화 일로를 걸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3년 취임 후 미래를 향한 새로운 한·일 관계를 담은 ‘대일 신독트린’을 발표했다. 그러나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2004년 우리측의 독도 우표 발행에 반발,“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라고 노골적으로 주장했다. 이어 일본 시마네현이 2005년 독도 영유권 주장을 조례로 만들어 발표했고 이후 양국 관계는 최악의 수준으로 악화됐다. ●“지금이라도 치밀하게 전략 세워 대응해야” 이런 가운데 이명박 정부가 앞세운 실용외교가 참여정부 때 악화된 한·일 관계 회복을 서두르다 보니 일본측에 허점을 보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지난 4월 대통령 방일 전 일본 외무성이 홈페이지에 독도 영유권 주장을 강화한 내용의 설명서를 올렸지만 이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 등 처음부터 양국 관계 회복을 위한 ‘저자세 외교’로 일관하다 보니 일본측에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도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독도 영유권 주장은 일본 입장에서 인위적으로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인 만큼 교과서 해설서 명기도 이미 예고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일본의 선의를 기대하고 정책을 펼치면 실패한다는 것을 지난 정권에서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독도 영유권 문제를 둘러싼 한·일 관계가 근본적·구조적 모순이 있는 만큼 정치적 의도에 말리지 않고 치밀한 전략을 세워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기정 연세대 정외과 교수는 “일본은 독도 영유권 문제를 영토분쟁화해 국제적·법적 문제로 끌고 가려고 한다.”며 “이에 말려들지 않고 실효적 점유를 강화하는 등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YS “촛불 이젠 지지 못받아… 등원해야” DJ “朴대표 요즘 상당히 원숙한 것 같다”

    YS “촛불 이젠 지지 못받아… 등원해야” DJ “朴대표 요즘 상당히 원숙한 것 같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8일 신임 인사차 김영삼(YS 왼쪽)·김대중(DJ·오른쪽) 전 대통령을 잇따라 예방했다. 박 대표가 YS의 상도동 자택을 찾아 “각하께서 당(민자당) 대표 하실 때 정치에 입문해 20년 넘게 배웠다.”고 인사하자 YS는 “당시 훌륭한 대변인이었다.”고 화답했다. YS는 “한나라당 책임이 중한데, 쇠고기 문제도 한물 갔다.”며 “촛불시위가 이제 국민 지지를 못받는다. 국회의원은 국회로 가야 한다.”고 했다. 박 대표가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을 예방한 자리에서 DJ는 “박 대표는 옛날에 아주 두뇌가 명석한 분이고 말씀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상당히 원숙해진 것 같다.”고 덕담했다. DJ는 특히 “(북한의 핵 신고서 제출은)북한이 친미 국가가 되겠다고 하는 것”이라면서 “미국도 북한을 품에 안는 것이 중국을 견제하고 남한과 일본의 방위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라고 말했다고 DJ측 최경환 비서관이 전했다. DJ는 또 “이명박 대통령이 6·15선언과 10·4선언에 대해 태도를 표시하지 않으면 북한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7·7 소폭 개각] 감사원장·장관 3명 평균재산 17억

    [7·7 소폭 개각] 감사원장·장관 3명 평균재산 17억

    ■ 내각 인선 배경·뒷얘기 7일 정부가 개각 명단을 발표하기까지 거의 한 달이 걸렸다. 그만큼 청와대가 시기와 폭, 교체 대상 등에 대해 고심을 거듭했다는 증거다. 일처리에서는 ‘불도저’라고 알려진 이명박 대통령이 인사 문제만큼은 ‘햄릿’ ‘거북이’임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 이번에 교체된 3명의 장관과 1명의 차관은 각각 충북, 전남, 경북, 충남 등으로 지역 안배에 신경을 썼다. 감사원장과 장관 3명의 평균 재산이 17억원이라는 점에서 ‘강부자’라는 지적을 벗어나고자 고민한 흔적도 엿보인다. ●철통보완속 재산문제 철저 검증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인선 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검토됐었다. 그러나 재산이나 이런 것들 때문에 탈락한 분들이 생각보다 많았다.”면서 인선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인선작업은 이 대통령과 정정길 대통령실장, 김명식 인사비서관을 중심으로 철통보안 속에서 진행됐다.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에 내정된 장태평 전 국가청렴위 사무처장은 막판까지도 베일에 가려 있었다. 재경부와 농림부를 두루 거쳐 세제와 농업분야에 밝은 데다 호남 출신이라는 점이 발탁 요인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에는 한때 김도연 장관의 유임도 검토됐으나 결국 안병만 미래기획위원장이 낙점됐다. 의외의 인물을 포함해 제3의 인물까지 폭넓게 검토됐다가 검증 단계에서 모두 탈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에는 일찌감치 한나라당 전재희 의원이 내정됐다. 한때 부동산 문제로 검증 과정에서 논란이 있었으나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고 한다. 개각의 또다른 관심은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3명+α’에 포함되느냐로 모아졌었다. 강 장관을 교체하는 대신에 최중경 차관을 경질한 것에 대해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실무적으로 협력이나 기조설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면서 “환율을 최종 책임졌던 차관을 경질하는 것으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강 장관을 대신한 희생양 성격의 경질이라는 논란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최 차관은 강 장관과 더불어 수출 위주의 경제성장 정책을 강조한 인물이다. 민주당 차영 대변인은 “경제팀을 바꾸라고 했는데 기획재경부 차관 정도 교체하면서 개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부처 행정공백 많아 조기 개각 국회 등원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에서 정부가 내던지듯이 개각을 발표한 시점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이 G8 확대정상회담에서 귀국한 뒤 해도 늦지 않다는 지적이다. 감사원장에 내정된 김황식 대법관도 헌법상 보장된 임기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자리를 옮겨 논란을 낳고 있다. 이 대변인은 “국회와의 관계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면서 “그러나 일부 부처에서 눈에 안 보이는 행정공백이 많이 있어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차원에서 발표하게 됐다.”고 말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고환율 유탄에 최중경 차관 ‘대리 경질’ 강만수 재정부장관 유임 기획재정부 최중경 제1차관의 경질은 고환율 정책에 따른 고물가 파동의 책임을 물은 것이다. 강만수 재정부장관은 개각에서 살아 남은 대신 오른팔 격인 최 차관을 잃었다. 그러나 환율 정책의 잘잘못은 가리지 않고 이례적인 차관 경질로 넘어가려 한다고 말이 많다.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역대 개각에서 장관은 남은 채 차관만 경질된 사례는 거의 없다. 장·차관의 일괄 교체 또는 일괄 잔류가 아니면 장관 개각 뒤 시일이 지난 뒤 차관을 교체하는 게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강 장관의 유임 가능성은 일찌감치 관측돼 왔다. 이명박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데다 ‘747’ 공약의 입안자를 교체해야 하는 정권의 정권의 부담도 만만치 않았다. 재정부 안에서는 강 장관의 유임에 대해 ‘경제정책의 연속성을 위해 다행’이라는 반응이지만 최 차관의 경질에 대해서는 납득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최 차관은 평소 부처 후배들을 잘 챙기면서 신망을 받아 왔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고유가 등 대외변수에 따라 어려워진 경제의 책임을 장관 대신 최 차관이 짊어진 셈”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고환율 정책을 채택한 것은 성장위주 전략을 기조로 잡은 MB노믹스 자체인 만큼 최 차관이 ‘747 공약’의 희생양이 됐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최 차관도 이날 이임식에서 “정책의 효과를 내려면 최소한의 시간이 걸리는 만큼, 후에 평가해 줬으면 좋겠다.”고 섭섭한 속내를 드러냈다. 최 차관이 강력한 환율주권론을 주창, 시장에서 ‘최틀러’라는 별명을 처음 얻은 것은 지난 2003년. 당시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으로 일하면서 원·달러 환율의 하락을 막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시장에 퍼부었다. 덕분에 2004년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140원이라는 ‘최중경 라인’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과도한 환율방어는 2조원의 손실이라는 부메랑이 되었고, 끝내 세계은행 상임이사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실용정부 출범 이후 최 차관은 강 장관과 함께 ‘최강 라인’을 구성, 수출증대를 위한 고환율정책을 다시 펼쳤다. 그러나 이번에는 원화값 약세에 따른 인플레이션 가중의 주범으로 몰렸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부처 첫 여성 장·차관 라인 떴다 복지부, 4년만에 女수장 전재희 의원이 복지부 장관에 내정되면서 정무 부처를 제외한 일반 부처 가운데 처음으로 여성 장·차관이 함께 일하는 장면이 연출될 전망이다. 복지부에는 이미 2월부터 이봉화(55) 차관이 근무하고 있다. 이는 문민정부 시절 여성업무를 담당해 여성만 임명하던 정무제2장관실 장·차관(당연직) 이후 한 부처에서 여성 장·차관이 함께 일하는 10년 만의 일이기도 하다. 특히 복지부는 참여정부 초대 김화중 장관 이후 4년만에 여성장관을 맞게 된다. 7일 행전안전부와 복지부에 따르면 역대 정부 부처 가운데 여성 장·차관이 동시에 재임한 사례는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김영삼 정부 때 정무제2장관실에서 권양자 장관, 김영순 차관을 필두로 4차례나 여성 장·차관이 함께 일했지만 독립된 부처가 아니었다. 문민정부 시절 정무제2장관실의 역대 장·차관 8명 모두 여성이었다. 결국 1998년 이연숙 장관, 신태희 차관이 정무제2장관실에서 퇴임하면서 이같은 모습은 더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때문에 전재희 장관 내정자, 이봉화 차관을 바라보는 주변 눈빛도 남다르다. 전 내정자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정책을 보좌한 ‘측근’으로, 이 차관은 대통령직 인수위원(사회교육문화분과)을 지낸 ‘실세’로 불리기 때문이다. 전 내정자가 ‘여성 최초의’ 행시패스, 중앙부처 국장, 민·관선 시장 등의 타이틀을 달고 다니는 동안 이 차관도 7급 지방공무원으로 시작해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승진과 영전을 거듭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감사원장 - 장·차관급 내정자 프로필 ■ 법조계 신망 높은 외유내강형 성품 김황식 감사원장 온화하고 합리적인 성품의 전형적인 ‘외유내강형’. 판사시절부터 대법관감으로 불릴 정도로 일찌감치 법조계 내부에서 신임을 받았다. 14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사법연수원을 수석으로 수료, 정통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법원행정처 법정국장, 기획조정실장 등 행정처 요직을 거치며 행정경험도 겸비했다. 특히 부동산등기 및 독일법 분야에서 실력자로 꼽힌다. 독일에서 민법과 부동산 등기법을 연구하고 이를 우리나라에 적용, 부동산 등기제도의 기틀을 마련했다.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에 대한 무죄추정의 원칙을 엄격히 적용하는 판결을 다수 선고했다. 공안사건 등에서는 보수성향을 보였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법조계 기독교 모임인 ‘애중회’ 회장이며, 예술품을 보는 눈이 남다르다. 법조계 테니스대회에 법원 대표로 출전할 만큼 테니스실력이 수준급인 스포츠맨이다. 부인 차성은(58)씨와 1남1녀. ▲전남 장성(60) ▲광주제일고, 서울대 법대 ▲사시 14회 ▲서울민사지법 판사 ▲전주·광주지법 부장판사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광주지법원장 ▲법원행정처 차장 ▲대법관 ■ 外大총장 역임한 행정학계 원로학자 안병만 교육과학부장관 이명박 대통령의 동갑내기 측근 가운데 한 명이다. 이 대통령 당선 전부터 외곽자문기구인 바른정책연구원 이사장직을 맡아 정책자문 역할을 했다. 이런 인연으로 새 정부의 초대총리 후보로 자주 거론됐다. 한국외국어대 총장을 두 차례나 역임한 행정학계의 원로학자이기도 하다. 한국외대 총장 때는 용인외고와 사이버외대를 설립하고 학내 분규를 해소해 ‘정이사’ 체제로 전환시키는 등 대학 경영 능력을 인정받았다. 또 총장 시절 졸업식 때 학생들에게 일일이 직접 졸업장을 수여해 화제가 됐다. 무난하고 모나지 않은 성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는 식의 경영스타일로 다소 우유부단하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미국 플로리다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20대 후반부터 대학강단에 섰다. 기독교 신자로, 취미는 테니스와 골프다. 부인 박정희(68)씨와 1남1녀. ▲충북 괴산(67) ▲경기고 서울 법대 ▲한국행정학회 회장 ▲한국외대 총장 ▲한국대학총장협의회 회장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이사장 ▲대통령 자문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 ■ 조세·정책홍보 업무 밝은 경제관료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행시 20회로 공직에 입문해 옛 경제기획원, 재정경제원 등에서 예산·세제·정책홍보 등 업무를 두루 거친 정통 경제관료다. 특히 재경원 국제조세과장·법인세제과장과 재정경제부 법인세제과장·재산세제과장, 국세심판원 상임심판관 등을 거쳐 조세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2004년에는 ‘국장 교류제’를 통해 1년8개월 동안 농업정책국장·농업구조정책국장을 맡으면서 농수산식품부(옛 농림부)와 인연을 맺었다. 당시 농업·농촌종합대책 및 119조원 투·융자 계획과 농협법 개정 등의 마무리 작업을 원활하게 처리해 농림부 안팎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온화한 성품이며,2001년에는 ‘강물은 바람을 따라 길을 바꾸지 않는다’는 제목의 시집을 낼 정도로 문학적 조예도 깊다. 부인 강명희(58)씨와 1남 1녀를 두고 있다. ▲전남 무안(59) ▲경기고 ▲서울대 사회학과 ▲경제기획원 소비자정책과장 ▲재정경제원 국제조세과장 ▲재경부 법인세제과장 ▲재산세제과장 ▲국세심판원 상임심판관 ▲농림부 농업정책국장 ▲재경부 정책홍보관리실장 ▲ 국가청렴위원회 사무처장 ■ 여성 첫 행시합격·시장 지낸 정책통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 여성 최초의 행정고시 합격자(13회), 민·관선 시장(광명시)으로 공직사회의 각종 여성 관련 기록을 갈아치웠다. 노동부에서 중앙부처 첫 여성국장을 지낸 뒤 1994년 관선 광명시장에 임명됐고 이듬해에는 지방선거에서 여성 최초의 민선 시장에 선출됐다. 16대 국회에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입문한 뒤 18대까지 내리 3선을 기록했다. 당의 대표적인 정책통으로 2004년 예결위에선 소액 연체자가 본인의 국민연금 일시 반환금을 이용해 신용불량에서 구제받는 방안을 당론으로 관철시켰다.2005년 유시민 복지부 장관 내정자의 인사청문회에서 내정자의 국민연금 미납 사실을 지적,‘송구스럽게 생각한다.’는 답변을 이끌어 냈다.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오래 활동해 이 분야에 두루 밝으며, 대선 과정에선 일류국가비전위 산하 제2공약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이명박 대통령의 복지·교육분야 대선 공약 작업을 주도했다. 조달청 차장을 지낸 남편 김형률(58)씨와의 사이에 1남 1녀. ▲경북 영천(59) ▲영남대 법정대 ▲노동부 직업훈련국장 ▲경기 광명시장 ▲16,17,18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한나라당 최고위원 ■ 노동현안 두루 밝은 ‘6·3사태’ 출신 김대모 노사정위원장 6·3사태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공대 학생회장을 동시에 맡아 법대 학생회장을 지낸 정정길 대통령실장과 함께 학생운동을 했다. 노동계와는 지난 1992년 최저임금심의위원회 공익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연을 맺었다. 1993∼1996년에는 한국노동연구원 원장을 역임해 노동계 현안에 두루 밝고, 원장으로 일하면서 방향 제시 등 선 굵은 행정업무를 선보였다는 평가다. 일각에서는 기존 노사정위원회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재조정을 시도할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부인 진양희(63)씨와 1남2녀. ▲평양(65) ▲서울고, 서울대 화학공학ㆍ경제학 ▲미 라이스대학 경제학박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최저임금심의위원회 공익위원 ▲한국노동연구원장 ▲중앙대 정경대 학장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장 ■ 정책 조정력 뛰어난 거시경제통 김동수 기획재정부 1차관 물가 관리 분야를 두루 거친 거시경제 관료다. 경제기획원 사무관을 시작으로 재정경제부에서 생활물가과장·물가정책과장 등 물가관리 부서를 모두 섭렵했다. 물가 부문을 담당하면서 제조물책임법·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 등을 제정해 소비자 보호를 위한 기본법의 토대를 마련했고, 서민 주거생활 안정을 위해 주택보급을 확대하고 전세보증금 융자제도도 도입했다. 인화를 중시하며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데 능숙하고 합리적이어서 정책 조정에 뛰어나다는 평가다. ▲충남 서천(54) ▲행시22회 ▲고려대 경영학과 ▲미 하와이대학원 경제학 박사 ▲경제기획원 예산실 ▲재정경제부 물가정책과장 ▲국무조정실 규제개혁2심의관(2급) ▲재정경제부 정책홍보관리실장 ▲기획재정부 차관보 ■ 유엔 차석대사 거친 국제법 전문가 신각수 외교부 2차관 30년 경력의 국제법 전문 외교관으로 유엔 차석대사 등을 거쳐 다자외교를 총괄하는 제2차관에 적임자라는 평가다. 외무고시 9회로 1977년 입부, 주로 대일 외교를 맡다가 91년 국제법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유엔 참사관, 조약국장, 유엔 차석대사 등을 맡아 다자외교로 전공을 바꿨다.2006년부터 이스라엘 대사로 활동해 왔다. 차분하고 꼼꼼해 복잡한 다자교섭에서 능력을 발휘하면서도 성격이 소탈하고 인간관계도 원만하다는 평가다. 새 정부 출범 당시 차관 등 물망에 올랐지만 유명환 외교장관의 고교 후배라는 점이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후문도 있다. 부인 홍소선(50)씨와 1남1녀. ▲충북 영동(53) ▲서울고 ▲서울대 법학과 ▲외시 9회 ▲동북아1과장 ▲장관보좌관 ▲유엔 참사관 ▲조약국장 ▲유엔 차석대사 ▲이스라엘 대사 ■ 김덕룡 대통령 국민통합 특보 ▲전북 익산(67)▲서울대 사회학과 제적 ▲13·14·15·16·17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원내대표 ▲한나라당 부총재 ▲정무 제1장관 ■ 이성준 대통령언론문화 특보 ▲서울(63) ▲서울대 인류학과 ▲한국일보 편집국장 ▲한국일보 대표이사 편집인(부사장) ▲관훈클럽 총무 ▲한나라당 제17대 중앙선대위원회 언론위원회 본부장 ▲대통령직인수위 자문위원 ■ 민봉기 황해도 지사 ▲황해(72) ▲국제대 중퇴 ▲인천광역시 지방행정동우회장 ▲인천시 북구청장▲인천시 남구청장 ▲16대 국회의원 ■ 한원택 함경남도 지사 ▲함남(67) ▲성균관대 사회과학부 행정학과 교수 ▲성균관대 행정대학원장 ▲한국도시행정학회 부회장 ▲한국지방자치학회 부회장 ■ 김정기 대통령실 교육비서관 ▲경북(52) ▲서울대 사회교육과 ▲교육인적자원부 평생학습국장 ▲교육인적자원부 교육인적자원연수원장 ▲교육인적자원부 차관보 ▲선문대 부총장 ■ 박찬모 과학기술특보 ▲충남 천안(73) ▲서울대 화학공학과 ▲포항공대 총장·대학원장 ▲한국컴퓨터그래픽스학회장 ▲재미한국과학기술자협회장 ▲한국과학기술한림원종신회원
  • 與 4색계파 극복 ‘발등의 불’

    與 4색계파 극복 ‘발등의 불’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가 당내의 ‘4색 계파 갈등’을 극복하고 임기 2년의 긴 항해를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을까? 경선 슬로건으로 ‘화합형 대표’를 내걸었던 박 대표는 4일 공식 업무를 시작하면서 “(당 화합을 위해) 탕평인사, 계파를 초월한 인사를 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천명했다.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는 당 화합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라는 판단에서다. 이는 당내 계파간 갈등의 골이 그만큼 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특히 친이-친박 간의 보이지 않는 갈등은 이번 경선에서도 명확히 드러났고, 친이 강경파와 온건파의 대립각도 날이 갈수록 첨예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차기 대권을 꿈꾸는 정몽준 최고위원도 경선에서 자신을 도운 10여명의 원내외 당협위원장을 기반으로 세력화에 나설 공산이 크다. 박 대표와 정 최고위원은 첫날부터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정 최고위원은 이날 의원총회에서 조만간 있을 내각 개편과 관련,“여당의 국회의원들이 내각에 많이 가는 것은 좋지 않다.”며 의원 입각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는 “개각 때 국회의원 4∼5명을 입각시켰으면 좋겠다.”는 박 대표의 ‘정치인 입각론’과 상반된 주장이다. 친이-친박 진영은 지명직 최고위원과 사무총장 등 당직 인선을 놓고도 엇갈린 속내를 드러냈다. 박 대표가 ‘화합의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는 첫번째 관문은 당직 인선과 친박 복당 문제다. 그가 취임 일성으로 ‘탕평인사’를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친박계의 허태열 최고위원은 당직 인선과 관련,“지도부가 저 하나 빼고는 친이 체제인데, 주류 중심으로 모든 인사가 가버리면 당이 정말 어려워진다.”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실제로 첫날부터 사무총장을 둘러싼 하마평이 쏟아졌다. 물론 각 계파에서 지원하는 인사들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친이 진영에선 안경률(3선)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미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 의원은 경선기간 중 사실상 박 대표의 선거대책본부장 역할을 했다. 이에 대해 친박측에선 “지금까지 친박측은 당직에서 철저히 배제됐다.”면서 “박 대표가 경선기간 내내 화합을 외쳐 놓고 이제 와서 친이만으로 딴살림을 차린다면 그 집안이 온전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박 대표는 이날 오후 취임 인사차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와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를 잇달아 방문, 국회 개원에 협조해 줄 것을 당부했다. 손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박 대표는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선물 하나 주시라.”며 “반드시 빠른 시일 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손 대표는 “야당을 제대로 인정하고, 야당의 역할을 만들어 달라.”며 “여당에서 빗장을 풀어 전당대회(6일) 전이든 후가 되든 간에 야당이 결단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답했다. 박 대표는 또 이 총재를 만나 “우리도 국회 문제는 정치적으로 풀어야지 숫자는 해결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협조를 부탁했다. 이에 대해 이 총재는 “어려울 때 대표가 돼서 힘든 점 많겠지만 잘해 주시길 믿는다.”고 화답했다. 이어 박 대표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과 잇따라 전화 통화를 갖고 화합의 행보를 이어갔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시론] 한·미관계는 공고한가?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 교수

    [시론] 한·미관계는 공고한가?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 교수

    북한이 핵신고와 함께 냉각탑을 폭파하고 미국은 테러지원국 명단해제 절차에 들어갔다. 미국은 또 50만t의 식량을 북한에 지원하기로 하고 이미 첫 배가 북한에 입항했다. 북핵 해결의 중대기로에서 미국과 북한이 2·13합의 이행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북핵해결 프로세스를 다시 가동할 수 있게 됐다. 냉각탑 폭파를 참관하고 한국을 방문한 성 김 미 국무부 과장은 부시 대통령 임기내에 비핵 3단계 완수도 가능할 것이란 낙관론을 폈다. 북·미 관계 진전과 대조적으로 남북관계는 여전히 냉각상태다. 남측이 옥수수 5만t을 지원하겠다면서 접촉을 제안했음에도 북측은 응하지 않고 있다. 남측은 지난 10여년간 거의 매년 관례적으로 지원해 왔던 대북식량 및 비료지원을 중단한 데 비해 미국은 2차 북핵위기 이후 중단했던 대북 식량지원을 재개했다. 대북 식량지원에 대한 한·미공조는 이뤄지지 못했다. 한·미공조를 강조해 왔던 이명박 정부는 북·미 핵협상의 진전을 한편으론 ‘긍정평가’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유감’이라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한국정부와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 핵무기 신고가 빠진 핵신고에 대한 한국 정부의 불만을 외교부 장관의 유감표명으로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이 밝힌 한반도관계 인식구조는 먼저 한·미관계가 좋아지면 남북관계도 덩달아 좋아지고 나아가 북·미관계도 좋아진다는 ‘순차적 삼각 순환구조논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한·미관계는 쇠고기협상, 북핵해법을 둘러싼 입장차, 대북 식량지원과 관련한 혼선 등으로 순탄치 않아 보인다. 남북관계는 당국간 대화가 이뤄지지 못하고 북한의 대남 비방은 도를 넘었다. 대선 전후에 이명박 후보와 대통령에 대해 침묵해 왔던 북한이 지금은 ‘역도’라는 표현까지 써 가며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가치동맹’을 확인했던 한·미관계의 문제는 임기가 끝나는 부시 대통령과 임기를 시작하는 이 대통령의 정세관의 차이에서 생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은 북핵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임기를 마칠 경우 핵확산의 오명을 쓸 수밖에 없다. 부시 대통령은 남은 임기동안 북핵문제 해결에 집중해 외교적 유산으로 남기려 한다. 의혹으로 제기된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과 시리아와의 핵협력설은 북·미간 비공개 양해각서로 우회하고 현안인 플루토늄 방식의 핵개발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자 한다. 이제 막 임기를 시작한 이명박 정부는 ‘비핵·개방·3000’ 구상을 내놓고 ‘선핵폐기’에 주력하고 있다. 남북관계도 이전 정부가 해온 방식에서 벗어나 상호주의를 내세웠다. 이명박 정부가 한·미공조를 그토록 강조했지만 지금은 김영삼 정부 때 사용되던 ‘통미봉남’이란 용어가 다시 등장했다. 북·미, 북·일관계에 진전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남북관계가 교착될 경우 한반도문제 해결국면에서 우리의 주도권이 상실될 수 있고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비등해질 수 있다. 북핵문제 해결을 계기로 북한이 미국과 일본 등 서방과의 관계개선을 본격화해서 서방과의 대타협이 이뤄질 경우 남한당국 배제정책을 통해서 체제이완 현상을 막고자 할지도 모른다. 조만간 6자회담이 재개되고 북핵문제에 진전이 있게 되면 남북관계에도 진전의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 이 기회를 잡으려면 무엇보다 남북당국간 신뢰를 쌓는 노력이 절실하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 교수
  • YS “폭력 변질 촛불 버릇 고쳐야”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최근 폭력화된 촛불집회에 대해 “완전히 버릇을 고쳐야 한다.”고 비판했다.YS는 이명박 대통령의 권위 회복을 주문했다.YS는 30일 상도동 자택에서 청와대 정정길 대통령실장과 맹형규 정무수석의 신임 인사를 받는 자리에서 “대통령의 5년 임기는 헌법에 의해 보장돼 있는데 ‘그만 두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되물으며 이같이 말했다. 강경진압을 하고 있는 정부를 두둔한 발언이다.YS는 촛불집회와 관련,“지금 무법천지, 무정부 상태로 가고 있다.”고 일갈했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서는 “국가 기강을 유지하는 것은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고, 대통령은 질서를 유지하는 게 제일 중요한 책무”라면서 “현재처럼 무력하게 하는 것은 책임을 다한 게 아니며 너무 긴 시간을 허송세월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임 시절이던 1996년 한총련 사태를 떠올리며 YS는 “그때 경찰을 동원해 강력히 소탕하다시피 해 사실상 한총련이 없어졌다.”고 한 뒤 “내 임기가 끝나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똑같은 짓을 했지만 경찰이 완전히 무력하게 됐다.”고 했다.YS는 시위대 중 일부가 ‘김정일 만세’라는 문구를 쓴 것을 언급하며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맹비난했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천정배 위원장’ 체제 선대위 발족 대안 경쟁 초점… 대세론 굳히기

    ‘천정배 위원장’ 체제 선대위 발족 대안 경쟁 초점… 대세론 굳히기

    통합민주당 당권 주자들이 사활을 건 막판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전당대회 종반전에 돌입한 당 대표 선거전은 정세균 후보의 ‘비교우위론’과 추미애 후보의 ‘원죄·책임론’이 팽팽하게 맞붙는 형국이다.‘짝퉁’‘패륜’등의 막말 공방까지 오가는 등 막판 경선전이 거칠어지고 있다. 앞서고 있는 정 후보측은 별다른 기조 변화 없이 대안 경쟁을 통해 대세론을 굳히겠다는 전략이다. 반면 추격 중인 추 후보측은 정체성 중심의 노선 투쟁을 강조하며 당내 기득권 세력과의 일대 결전을 선포했다. 추 후보측은 30일 천정배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선대위원회를 공개했다. 이종걸 의원과 노웅래·우원식·최재천 전 의원이 선대위에 힘을 모았다. 이들은 추 후보 지지성명을 통해 “당내 기득권 강화와 짝퉁 한나라당식 정책 노선의 중심에 있었던 후보가 구시대적 줄세우기를 강요하고 있다.”면서 “(열린우리당 시절) 당은 그에게 의장과 원내대표의 모든 권한을 몰아줬지만 입각 제안을 받자마자 당과 입법부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떠났다.”며 정 후보를 정면 비판했다. 이와 관련, 추 후보측은 경선룰에 여론조사를 반영해 달라고 당측에 공식 제안했다. 추 후보 선대위의 노웅래 전 의원은 “당심과 민심이 배제된 당 대표 선거는 정당성이 없다.”면서 “시간이 없다고는 하지만 정치적 결단으로 결정하면 된다.”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정 후보측은 “정치 도의를 저버린 분열주의적 망언”이라며 추 후보측의 공개 사과를 촉구했다. 정 후보를 향해 ‘짝퉁 한나라당 후보’라고 지적한 대목에서다. 정 후보측 선대위 윤호중 대변인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도와 일관되게 개혁노선을 견지해 온 정 후보에 대한 능멸이자 170만 당원에 대한 모욕”이라면서 “92년 대선 당시 김영삼 후보가 김대중 후보를 공격한 ‘용공매도사건’ 이래 최대의 패륜적 배신행위”라며 역공을 폈다. 정 후보측은 대안을 제시하는 경쟁으로 승부하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부동층 5%의 지지만 이끌어 내면 1차 투표에서 ‘끝장’낼 수 있다는,‘플러스 5’전략에 집중할 것으로 알려졌다. SBS 초청 토론회에서도 두 후보는 설전을 벌였다. 추 후보는 “정 후보가 재벌정책을 비판하면서도 산업자원부 장관 시절 출총제 폐지를 주장했다.”고 제기했다. 정 후보는 “무조건 폐지하자는 게 아니라 사후 규제가 가능한 대책을 만들고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좀더 파악해 보라.”고 응수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서울광장] 대통령과 언론조정신청/임태순 논설위원

    [서울광장] 대통령과 언론조정신청/임태순 논설위원

    이명박 대통령이 며칠 전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를 상대로 언론중재위원회에 조정신청을 했다. 불교계 인사와의 대화에서 촛불시위의 배후는 주사파 친북세력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보도는 잘못된 것이라며 정정보도와 함께 5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한 것이다. 이 대통령이 취임후 언론보도에 대해 조정신청을 낸 것은 처음으로, 대상이 온라인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조정신청을 가장 많이 한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그는 2003년 2월부터 5년간의 재임기간 중 18건의 조정신청을 했다. 이 가운데 9건이 합의가 돼 반론 또는 정정보도 등이 이루어졌으며 3건은 취하됐다. 나머지 6건은 조정결정, 조정불성립 등이었다. 조정신청은 대부분 오프라인 신문을 대상으로 했다. 또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국가기관에 의한 조정신청이 715건이나 됐다. 김대중 정부 시절의 118건에 비해 무려 6배 이상 증가했다. 김영삼 정부와 노태우 정부 시절에는 각각 27건과 8건에 불과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조정신청이 많았던 것에 대해선 최고권력자에 대한 언론의 비판이 자유로웠다는 긍정적인 측면과 언론을 통제하려 했다는 부정적 시각이 공존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조정신청을 한 것을 보고 솔직히 의아하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고,‘프레스 프렌들리’를 강조해온 대통령이 뭐를 아쉬워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으로서야 사실관계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국정최고책임자의 행위 하나하나는 정치라는 잣대로 보게 마련이다. 오프라인신문과 각을 세웠던 전임 대통령처럼 언론과의 ‘소모전’에 들어가려는 것인가, 주사파보도가 그렇게 큰 파문을 일으켰는가,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것 아닌가 등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면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우선 주사파보도가 담화나 기자회견 등 공적인 채널을 통해 해명할 만한 사안은 아니다. 하지만 ‘촛불시위의 배후는 주사파’라는 팩트는 ‘광우병정국’에서는 민감한 사안이다. 댓글이니 블로그니 인터넷의 엄청난 위력을 감안하면 그냥 덮어두기에는 찝찝했을 것 같다. 온라인매체에 제동장치를 걸어놓는 것이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을 법하다. 언론조정신청은 기본적으로 사실관계에 잘못이 있을 때 제기하는 것이다. 반면 사실을 바탕으로 한 의견이나 해석, 논평은 구제의 대상이 아니다. 최근 언론보도를 보면 사실관계에 감정이 많이 들어가 있다. 어떤 때는 독기나 살기마저 느껴져 섬뜩하다. 신문이고 방송이고, 온라인이고 다 마찬가지다. 자신의 입장이나 관점에 부합되면 부풀리고 반대로 축소하기도 한다. 아예 묵살하기도 해 독자나 시청자를 외눈박이로 만든다. 광우병사태, 경찰의 공권력 행사 등 동일사안에 대한 보도가 정반대다. 언론은 기본적인 사실, 팩트 전달을 생명으로 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한 관점이나 이념의 구축은 그 다음이다. 기자나 PD, 시민기자는 물론 신문사나 방송국마다 자신의 생각과 입장, 지향점이 있다. 그러나 언론의 1차적인 책무는 사실전달이다.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냉정하고, 감정을 배제한 채 있는 그대로 사실을 전달해야 한다. 언론이 이를 왜곡하거나 소홀히 하면 불신과 의혹과 의문이 가득 찬 사회가 되고 만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기시감(旣視感)/김인철 논설위원

    (온갖 우울한 뉴스를 전하던 저녁시간의 한 뉴스 앵커가 이렇게 말했다.“…어두운 뉴스만 보내드리다가 오랜만에 시원한 뉴스도 한토막 전해 드리겠습니다.” 기대를 하며 지켜 보았더니 그가 전한 것은 남산의 외인아파트 ‘폭파’장면이었다.…글자 그대로 그것은 ‘파괴’의 모습이었다.…수십길의 고층건물이 거짓말처럼 한 순간에 쓰러지는 그 ‘파괴의 미학’이 사람들을 더 많이 몰입시켰다.) 문민정부 시절이던 1994년 11월29일자 본란에 실렸던 ‘폭파=축제’의 일부다. 당시 서울시가 정도(定都) 600년을 맞아 남산 제모습 찾기의 일환으로 용산구 한남동의 외인아파트 2개동을 폭파하면서, 그 광경을 TV로 생중계하자 모든 언론이 한껏 의미 부여를 했다. 시민들도 아파트가 사라진 뒤 22년 만에 제모습을 찾은 모습에 “통쾌하다.”며 반겼다. 심지어 문제의 건물이 외국인을 위한 아파트 및 각국의 공관을 지으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지어졌다는 연유를 들어 “개발독재 논리가 굉음과 함께 붕괴되었다.”는 찬사까지 침이 마르게 보탰다. 문민정부의 파괴예술은 이후 거침없이 계속됐다. 그 절정은 1996년 11월13일 ‘역사 바로세우기’를 명분으로 옛 조선총독부 건물인 국립현대박물관을 흔적도 없이 폐기처분한 것. 그러나 역사의 평가는 준엄하다. 남산이 시원해졌다고, 역사가 바로 섰다고 박수치던 많은 이들이 ‘파괴예술’이 3당 야합으로 출범한 김영삼 정부가 취약한 정통성을 감추기 위해 벌인 일종의 ‘쇼’였음을 깨닫게 된 것. 역사는 되풀이 되는가. 어디서 본 듯한 일들이 동과 서, 어제와 오늘 구분없이 일어난다. 북한이 조만간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하며, 그 광경을 전세계에 생중계할 것이라는 소식에 강한 기시감(旣視感)이 든다. 미 대선을 5개월여 앞두고 펼쳐지는 북·미 협상 역시 조명록 국방위 제1부위원장의 방미,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방북으로 상징되는 2000년 화해 무드를 떠올리게 한다. 냉각탑 폭파가 북핵 타결로 이어질지, 무위로 끝난 ‘2000년 북·미 협상’으로 재연될지 예측불허의 상황이지만, 이번엔 기시감에서 벗어나고 싶다. 김인철 논설위원 ickim@seoul.co.kr
  • [데스크시각] 전윤철과 소렌스탐/곽태헌 산업부장

    [데스크시각] 전윤철과 소렌스탐/곽태헌 산업부장

    전윤철 전 감사원장은 40여년의 공직생활 동안 비교적 좋은 이미지를 심어왔다. 원칙을 중시하는 ‘꼬장꼬장한´ 관료라는 인상을 심어왔다.2003년 ‘실업자´ 생활을 하는 동안 사기업이나 로펌에도 가지 않아 후배관료들에게 ‘민원’ 부담도 주지 않았다. 그는 경남 출신인 YS(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1997년 3월) 장관급인 공정거래위원장에 오르기는 했지만 영남 출신인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전 대통령 때에는 그리 잘나가지 못했다. 전남 목포 출신의 전윤철 전 원장에게 기회는 왔다.DJ(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은 전윤철 전 원장의 전성기였다. 전윤철 전 원장은 DJ 집권 5년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공정거래위원장, 기획예산처 장관, 청와대 비서실장, 재정경제부 장관을 차례대로 지냈다. 공정거래위원장 시절에는 재벌개혁을, 기획예산처 장관 시절에는 노조의 반대에도 공공개혁을 밀어붙였다. 비서실장 때에는 공공노조의 불법파업에 원칙대로 대응해 성과를 얻어냈다. 전윤철 전 원장은 옛 경제기획원 출신이어서 금융분야에는 다소 약했지만 재경부 장관 시절의 평가도 괜찮았다. 부하직원들을 믿었던 게 주요인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세세한 지시나 전문적인 지식보다는 큰 틀을 만들어주는 능력이 있으면 된다. 외풍을 막고 부하들의 사기를 올려주면 금상첨화다. 전윤철 전 원장은 승진할수록 후한 평가를 받은 편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은 전윤철 전 원장에는 다른 의미에서 ‘기회’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헌법상 감사원장의 임기는 보장돼 있지만 전윤철 전 원장은 그동안의 이미지로 볼 때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함께 깨끗하게 사퇴하면서 존경받는 원로로 남는 게 좋았을 것 같다. 국가나 경제가 문제가 있을 때, 가끔 조언을 하는 길을 선택했어야 했다. 감사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는 혁신도시 건설을 독려하는 감사를 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자마자 혁신도시에 문제가 있다는 감사결과를 내놓았다. 혁신도시와 관련한 감사원의 상반된 모습을 보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전윤철 전 원장은 ‘코드감사’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전윤철 전 원장이 자리를 지키려고 그런 감사를 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전윤철 전 원장은 억울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자두나무 아래에서는 갓끈을 동여매지 않는 법이다. 그는 지난달 13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표를 낸 뒤 기자들과 만나 “감사원장은 헌법정신에 따라 임기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으나 나를 임명했던 대통령이 바뀌었고 나를 신임했던 국회가 5월30일 종료되기 때문에 5월말이 가까워오는 시점을 택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청와대의 압박에 떼밀려 사표를 냈다는 게 정설이다. 전윤철 전 원장이 퇴임식을 하던 지난달 14일 골프의 여제(女帝)로 통하는 안니카 소렌스탐은 전격적으로 은퇴를 발표했다. 소렌스탐은 지난해에는 부진했으나 올해 3승을 거두며 완벽하게 부활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은퇴를 선언했다. 잘나갈 때, 박수를 받을 때, 남들이 아쉬워할 때 물러나는 현명한 길을 선택한 셈이다. 현 정부는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공기업의 기관장들한테 사표를 받고 있다. 과거 정부 때 선임됐다는 이유만으로 옥석(玉石)을 가리지 않고 사표를 받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하지만 누가 봐도 과거 정부의 ‘코드인사’로 자리에 오른 사람들, 과거 정부 때의 실세 덕으로 자리에 오른 사람들, 과거의 여당에 몸담았던 사람들까지 자리에 욕심을 내는 것도 정상은 아니다. 노욕(老慾)이나 노추(老醜)로 비쳐져 좋을 건 없다. 아름답고 멋진 퇴장을 많이 보고 싶다. 곽태헌 산업부장 tiger@seoul.co.kr
  • [지방시대] 어떻게 만들어낸 민주주의인가/김준태 조선대 교수·시인

    [지방시대] 어떻게 만들어낸 민주주의인가/김준태 조선대 교수·시인

    정말, 정말 어떻게 만들어낸 민주주의인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서 일구어낸 민주주의인가. 얼마 동안 민족적 자존과 긍지, 통일의 그날에 대비코자 쑥물만을 삼키는 듯한 고통의 나날을 보냈던가. 아, 그래서 우리는 기억한다. 할머니가 켜 둔 등잔불 혹은 촛불 밑에서 제발 이 나라가 평화스럽기를, 사람살기 좋은 나라가 되기를 빌고 빌지 않았던가. 일제 강점기에 징용으로 끌려가 돌아오지 않은 할아버지,‘히로히토 천황군’ 징병으로 태평양 전쟁터에까지 끌려가서 돌아오지 않은 아버지들의 쓰라린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빌면서, 우리는 어느덧 이렇게도, 키가 훌쩍 커버리지 않았던가. 국군과 공산군의 몸이 무더기로 묻혀, 함께 썩어간 이 땅 삼천리 한반도…. 한국전쟁 직후, 무밥과 해초밥만을 먹고 자란 어린 시절부터 나는 이 땅 삼천리 한반도가 제발 폭력과 총소리가 없는 날이 계속되기를 천지신명께 빌지 않았던가. 너무나 빠른 나이에 목숨을 잃은 고향사람들의 무덤 위에서 철없이 뛰놀던 우리들의 유년시대(the Age of Korean Boys), 전후 반공시대의 흑막 속에서 수많은 정치가들이 암살됐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에미애비도 없던 우리들의 슬픈 유년’은 코밑 수염이 시커먼 청년기로 바뀌어 갔다. 그리고 우리들은 부산항에서 배를 타고 떠났던 것이다. “아아 잘있거라 부산 항구야/미스 김도 잘 있거라 미스 리도 안녕히….” 그렇게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면서 베트남으로 떠나갔던 10년 동안 연병력 55만여명의 따이한 병사들, 이들이 바로 우리들이 아니었던가.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대가로 250억달러를 벌어와 1960,70년대의 한국근대화의 밑거름이 된 아아 그 시절의 안타까운 젊은 영혼들! 그리고 살아서 돌아온 병사들의 두 손에 묻은 붉은 피의 냄새들! 그랬다. 베트남전쟁에서 별을 달고 돌아온 일부 장군들은 1980년 5월, 자신들의 조국―한반도의 남녘땅 광주에서 선량한 시민들을 총소리, 총소리 속으로 몰아넣었다. 잿밥(정치)에 눈이 어두워 지키라는 최전방(DMZ)을 뒤로하고 후방인 ‘빛고을 광주’를 타깃으로 삼은 것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의 끈을 결코 놓을 수 없었던 광주시민들과 전체 국민들의 함성이 모아진 1987년 6월항쟁 등을 통해 대한민국은 비로소 ‘정치민주주의’의 길로 들어섰던 것 아닌가. 신군부 출신 전두환·노태우를 ‘세기의 재판’을 통해 단죄코자 한 김영삼의 문민의 정부→6·15남북공동선언을 이끌어낸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권위주의를 불식시키려 했지만 ‘경제민주주의’의 코드를 찾아내지 못한 가운데서 연약한 생명을 유지하다가 CEO 출신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이명박에게 대권의 바통을 넘긴 참여정부의 노무현-. 아 그런데 2008년 6월, 이른바 ‘이명박호(號)’는 어떤가. 과연 항해가 순조로운가. 우리가 볼 때는 아직 출항 직전인 것 같다. 아직 항로가 불투명하고 안개 속인 것 같다. 아니 어둠보다 더 걱정스러운 안개 속에서 좌초 직전에 놓인 듯이 보인다.“이래서는, 저래서는 안되는데….” 그래서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촛불’을 켜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 나라의 정체성을 비하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려고 하다니! 그 발상부터가 틀리다는 것을 어서 빨리 알아차리고 애당초 잘못 끼운 첫 단추를 다시 끼운 다음, 새로운 출항의 자세로 ‘민주주의의 항로’를 계속하길 바란다. 민주정치와 민주경제는 동전의 앞뒤처럼 같다는 것을, 달리는 열차로 말하면 두 레일이라는 것을 빨리 깨닫길 바란다. 이명박 대통령! 님께서도 세종로에 나와, 촛불 앞에 앉아 ‘하늘을 우러러’ 자신을 돌이켜보길 부탁드린다. 이 땅의 구성원들 모두를 ‘ 끝끝내 보낼 수 없는 님’으로 손잡아주면서 함께 일어서주길 바란다. 김준태 조선대 교수·시인
  • “국민 놀랄만큼 대담하게 결단해야”

    “국민 놀랄만큼 대담하게 결단해야”

    |도쿄 박홍기특파원|김영삼 전 대통령은 12일 최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와 관련,“국민이 싫어하는 일은 안하는 게 옳다.”라며 이명박 대통령을 겨냥해 자신의 속내를 밝혔다. 또 “대통령은 국민을 놀라게 해야 할 만큼 대담하게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도 주문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일본 와세다대에서 가진 ‘한·일 신시대를 열며’라는 주제의 특별강연을 마친 뒤 참석자들의 현안 질문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김 전 대통령은 답변 과정에서 “신문에 보도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도돼도 좋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이라면 쇠고기 파문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겠느냐.”는 질문에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생각해 본 적이 없다.”라고 전제한 뒤 “대통령은 국민을 놀라게 해야 한다. 대담하게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일은 반드시 해야 한다. 그러나 (국민이) 싫어하면 안 하는 게 옳다.”고 강조했다.“대통령은 너무 막대한 책임을 갖고 있는 만큼 책임에 맞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10일 촛불시위에 대해 “6·10민주항쟁 때만큼 컸다. 언제나 누구든지 (시위를) 할 수 있다.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힌 뒤 “그러나 헌법상 5년의 임기가 보장된 대통령을 중간에 ‘그만두라.’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에 어떤 사태가 오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과 관련,“그저께(10일)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에) 잘 다녀오라.’는 전화를 걸었다.”고 소개한 뒤 “이때 이 대통령에게 용기를 내서 단호하게 결단을 내려야 한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기분으로 해야 한다. 국민을 놀라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hkpark@seoul.co.kr
  • 대통령실장 윤여준 급부상

    대통령실장 윤여준 급부상

    차기 청와대 대통령실장에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급부상 하고 있다. 한승수 국무총리는 유임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여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12일 “류우익 대통령실장의 후임으로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적임”이라며 “정무적 감각이 탁월하고, 개인적인 야망이 없어 대통령을 보좌해 민심이반을 정리할 적임자”라고 말했다. 윤 전 장관은 현재 류 실장을 대신해 이명박 대통령의 개각과 청와대 수석 인선작업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장관은 김영삼 정부 시절 청와대 공보수석과 환경부 장관을 지낸 여권의 전략기획통이다. 여권 관계자는 “한승수 총리의 경우 처음부터 ‘자원외교’로 역할이 한정돼 역량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다.”고 말해 유임될 가능성을 내비쳤다. 교체가 확실시되는 민정수석에는 대통령직 인수위 당시 법무행정분과 법령정비팀장을 지낸 정선태 검사와 정종복 전 의원이 경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무수석에는 맹형규 전 의원과 함께 권오을·박형준 전 의원이 거명되고 있다. 경제수석에는 김석동·진동수 전 재경부 차관과 김대기 통계청장 등이 오르내린다. 진경호 전광삼기자 jade@seoul.co.kr
  • 각계 전문가 ‘인적 쇄신’ 조언

    각계 전문가 ‘인적 쇄신’ 조언

    이명박 정부의 정치적 운명을 좌우할 인적쇄신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쇄신의 바구니에는 어떤 내용물이 담겨야 할까. 김영삼 정부의 김용태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 노무현 정부의 박남춘 전 청와대 인사수석, 시민운동가인 손혁재 성공회대 교수, 여론조사 전문가인 김형준 명지대 교수 등이 11일 조언에 참여했다. ●“책임·상징성 결합하는 인적쇄신을” ▶이명박 대통령이 단행할 인적쇄신의 폭과 방향은 어떠해야 할까. 김용태 전 실장 대폭 쇄신이 돼야 한다. 일부 교체로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한다. 실력이 검증된 사람을 임명해야 한다. 위화감을 줄 정도의 재산가는 배제해야 한다. 윤여준 전 장관 국무총리와 비서실장(대통령실장)을 포함해 내각과 청와대를 전면 개편해야 국민이 납득할 것이다. 대통령의 도덕적 권위와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쇄신이 돼야 한다. 박남춘 전 수석 왜 민심이 돌아섰는지는 인사권자가 제일 잘 안다. 원인부터 살피고 책임질 사람을 따져야 한다. 도덕성이나 전문성은 차후의 문제다. 손혁재 교수 국면전환용으로 수석, 장관 몇 사람 바꾸는 쇄신이라면 의미가 없다. 지금까지의 잘못을 거울 삼아 국정을 어떻게 운영할지를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 김형준 교수 청와대에서 국정을 총괄했던 사람과 쇠고기 협상 관련 부처 장관을 포함해 대폭 쇄신이 돼야 한다.‘강부자’,‘고소영’ 내각 이미지를 씻기 위해 감동을 줄 수 있는 입지전적 인물이 포함돼야 한다. 김영삼 정부 때 이회창씨, 노무현 정부 때 강금실씨 처럼 상징적 인물을 찾아야 한다. ●“국정공백 운운할 단계 넘었다” ▶쇄신 폭이 너무 크면 국정공백이나 인재 구인난이 발생하지는 않을까. 김 전 실장 지금 일신하지 않으면 성난 민심을 달래지 못할 것이다. 제2의 촛불집회가 생길 수도 있다. 윤 전 장관 국정공백은 걱정할 게 없다. 지금까지 자리를 다 차지하고 있었으면서도 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나. 자기와의 인연을 중심으로 사람을 쓰니 인재풀이 좁아지는 것이다. 박 전 수석 능력이 안 되고 도덕성에 흠결이 있는 사람을 계속 둘 수는 없지 않은가. 손 교수 인사 폭이 중요한 게 아니다. 민주적 합의절차를 무시한 대통령의 독단으로 쇠고기 문제가 일어난 만큼 국정 시스템을 어떻게 바꿀지를 먼저 정하는 게 중요하다. 김 교수 국정공백 운운할 단계를 넘었다. 중폭이나 소폭 쇄신으로는 감동을 줄 수 없다. 다소 무리가 따르더라도 큰 폭으로 해서 국민이 변화를 실감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효율성이 아니라 상징성이 중요하다. ▶한나라당으로부터 정치인들의 대거 입각 요구가 나오는데. 김 전 실장 능력 있는 의원이라면 위기를 타개할 방안을 찾아낼 수도 있겠지만, 낙천·낙선자들을 내각에 임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국회의원도 못됐는데, 국민을 다스리는 내각에 임명하는 것은 좀 모순이다. 윤 전 장관 정치인이 들어간다고 반드시 정치력이 발휘된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들이 정치력이 있었다면 정당에서 역할을 발휘했어야 했다. 박 전 수석 정치인의 장점은 민심 파악과 국정 조정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특히 정권 초기 복잡한 여론을 수렴하고 정책 방향을 잡아나가는 데는 정치인이 유리하다. 손 교수 정치인도 들어갈 수는 있겠지만 정치인과 비정치인 간 권력다툼이 나타나면 좋지 않다. 김 교수 특수 상황에서 소관부처를 완벽히 통제, 조정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정치인이 들어갈 필요성은 있다. 행정안전부나 보건복지부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대통령실장은 학습하는 자리 아니다 ▶대통령실장을 교체해야 할까. 바꾼다면 어떤 인물이 적합할까. 김 전 실장 대통령실장은 정무를 아우르고 도덕성과 전문성을 고루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 윤 전 장관 대통령실장을 바꾸지 않으면 국민 지지를 회복하지 못할 것이다. 대통령실장은 훈련된 사람이어야 한다. 대통령은 누구나 처음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배워가면서 하지만, 대통령실장은 배우면서 하는 자리가 아니다. 손 교수 대통령이 집사 같은 실장을 원한다면, 교체한다 하더라도 계속 류우익 실장 같은 스타일밖에 안 된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다 하려는 ‘토털 리더십’을 버리고 방향만 제시해 주고 나머지는 위임하는 ‘서번트 리더십’을 지향해야 한다. 김 교수 류 실장은 전반적 국정조정에서 빈약했다. 책임질 수 밖에 없다. 대통령실장은 ‘컨트롤타워’ 기능이 가능한 정치적 역량과 행정경험을 겸비해야 한다. ●총리는 정치·행정 아우를 수 있어야 ▶국무총리도 인적쇄신 대상에 포함해야 할까. 김 전 실장 인사라는 게 사람이 괜찮다고 해서 교체 대상에서 배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민심수습책으로 대두되면 경질할 수 있는 것이다. 윤 전 장관 주요 언론 논조대로 교체해야 한다고 본다. 손 교수 전부 다 쇄신 대상이 돼야 한다. 김 교수 포함되는 게 좋다. ▶여권 일각에서 ‘박근혜 총리론’이 나오는데. 김 전 실장 박 전 대표의 행정능력이 검증되지 않았다. 정치형 총리를 두기보다는 대통령이 정치를 해야 하고, 총리는 정치와 행정을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 윤 전 장관 당이 안정되는 것은 긍정적 측면이다. 그러나 이 경우 대통령과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서로 조심해야 한다. 손 교수 박 전 대표의 능력 때문이라면 모를까 당내 화합용 카드라면 좋지 않다. 지금 사태는 친이·친박 갈등 때문에 빚어진 게 아니다. 김 교수 지나치게 정치적인 생각이다. 두 사람이 여러 면에서 갈등관계를 갖지 않았나. 공유하고 있는 철학이 뭐냐. 대통령은 미래가 없는 사람이고 박 전 대표는 미래가 있는 사람이다. 당연히 갈등이 있을 것이다. 효율성 있겠나.DJP가 성공했나. 내각도 친이, 친박으로 나뉠 것이다. 둘다 죽는다. 행정에 몰입해야지 정치적으로 문제를 풀려 해선 안된다. ▶기획재정부 장관을 포함한 경제팀 쇄신 필요성도 제기되는데. 김 전 실장 갈아야 한다. 기획재정부 장관은 고소영 내각으로 지목됐다. 아무리 세계 경제환경이 좋지 않다고 하더라도, 민생을 놓쳤다. 경제팀을 안 건드리면 민심이 인적쇄신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윤 전 장관 강만수 장관의 환율 대처에 문제가 있었다. 국민총생산(GNP) 성장에는 기여했을지 몰라도 물가상승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손 교수 환율 등 현 경제팀이 한 게 하나도 없다. 기본적 경제 밑그림도 없다. 문제가 많다. 김 교수 국정기획수석과 장관, 경제수석 등의 역할 분담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모르겠다. 강만수 장관 이름만 들린다. 전체의 흐름이 안 보인다. ●“대통령 친형은 직언하는 역할해야” ▶쇄신 대상이 쇄신 주체가 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있는데, 대통령은 이 시점에서 누구와 인적쇄신을 논의해야 하나. 윤 전 장관 종교지도자, 사회지도자 등 다양한 국민의 요구를 수렴하면 된다. 손 교수 대통령이 여의도 정치를 싫어한다고 하는데, 국회가 국민 대표기관이니 그 의견을 듣고 국민 의견도 당당하게 들어야 한다. 김 교수 특정인이 인사를 주무를 게 아니라 미국처럼 국세청, 국정원 등에서 경쟁적으로 검증해 대통령에게 직보하게 해야 한다. ▶인적쇄신과 별개로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의 월권 논란도 있는데, 그의 역할과 처신은 어떻게 가져가야 할까. 김 전 실장 내가 그의 입장이면 국회의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본인이 신중을 기해도 말이 난다. 이왕 이렇게 됐으니 나라를 위해 가만히 있었으면 한다. 윤 전 장관 그 자리가 딱 오해받기 좋은 자리다. 한번 그렇다고 인식되면 아무리 본인이 오해라고 해도 소용없다. 김현철씨 비리 의혹이 불거졌을 때 김영삼 대통령이 내게 납득할 수 없다고 하길래 “그게 진실이 아닐지라도, 국민이 믿고 있는 게 진실이라고 전제하고 수습책을 내야 한다.”고 진언했다. 박 전 수석 노무현 대통령은 아들, 딸을 미국으로 보냈었다. 왜 그랬을까. 손 교수 정치 원로, 대통령 친형으로서 대통령의 잘못에 쓴소리 하는 역할을 해야지 자기가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안 좋다. 김 교수 이 전 부의장의 역할은 철저히 친이와 친박의 교량으로 가야 한다. 이종락 김상연 김미경 홍희경 김지훈기자 carlos@seoul.co.kr
  • [열린세상] 외교를 잘해서 지지율 높여라/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외교를 잘해서 지지율 높여라/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취임 100일만에 16.9%까지 곤두박질쳤다. 첫 여론조사에서 57.3%로 시작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7주 만인 4월16일에 10%포인트 이상 빠져 44.6%로 낮아졌다. 현재 평균점인 40.6% 밑으로 내려간 것은 9주째인 4월30일(35.1%)이었다. 통상 6개월 정도 지속되는 허니문 기간이 6∼8주로 끝난 셈이다. 여론조사가 한 달 간격으로 이루어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알앤알에 따르면 70.0%에서 시작해서 10%포인트 이상 하락하는 데 무려 8개월이 걸렸다. 재임기간 평균 52.5%의 지지율을 기록한 김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평균점 이하로 떨어진 것은 취임 11개월만인 1994년 1월(51.0%)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나름대로 긴 허니문을 누린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최고 87.3%에서 최저 14.0% 사이를 오르내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80.3%라는 높은 지지율로 시작하여 10%포인트를 까먹는 데는 무려 14개월이 걸렸다. 재임 기간 평균 58.9%의 지지율을 자랑하는 김 전 대통령이 평균점 이하의 지지율로 고생하기 시작한 것은 임기 반환점을 지난 2000년 9월이었다. 김 전 대통령의 허니문 기간이 길었고 인기도 다른 대통령에 비해 상당히 안정적이었던 셈이다.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의 최저점은 30.6%로 다른 대통령에 비해 매우 높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75.1%의 지지율로 출발했다. 이 대통령과 비슷한 리더십 스타일을 소유했다는 평을 받듯이 지지율이 10%포인트 빠지는 데도 이 대통령과 같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재임기간 평균 35.6%이었는데 취임 뒤 8주부터 그 밑으로 낮아졌다. 이렇게 일찍 끝나버린 허니문으로 노 전 대통령은 고생을 치렀고,2004년 총선 뒤부터는 20∼30%대의 지지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통령의 인기는 일반적으로 임기 초 70∼80%대에 육박하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 벌써부터 10%대에 빠진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올라갈 수 있을까? 이미 바닥에 떨어진 지지율이라 올라갈 공간이 훨씬 더 많으나 여간해서 20∼30%대를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관측된다. 국내외적으로 경제가 장기적 불황에 빠졌기 때문이다. 벌써 한번 총선을 치르면서 친이와 친박으로 갈렸다.2010년 지방선거와 2012년 총선으로 대운하네, 공기업 민영화네, 뭐네 진력할 시간도 남아있지 않다. 게다가 대선에서 몰표를 주었던 20∼40대 유권자, 고학력층, 수도권, 자영업자, 주부, 학생들이 이 대통령에게 등을 돌렸다. 그래서 이 대통령이 앞으로 지지율을 올릴 수 있는 비책을 하나 공개한다. 외교를 잘하라. 결집효과(rally around the flag effect)를 이용하라. 노 전 대통령도 임기말 지지율을 급등시킨 계기는 다름아닌 독도 소유권 선언, 한·미 FTA 타결, 남북정상회담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남북정상회담과 노벨상 수상으로 지지율을 높였다. 부시 미 대통령도 9·11테러, 이라크 전쟁, 후세인 체포 등으로 미국 역사상 최고의 지지율을 기록한 바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황과 브라운 영국 총리가 방문한 시점에 방미일정을 잡고, 졸속적으로 쇠고기협상을 진행한 외교부 장관과 청와대 외교안보라인부터 과감하게 교체하라. 일본에 미래지향적인 외교를 주창하는데 독도 교과서문제를 경미하게 파악한 외교라인을 모두 갈아치워라. 방중 때 외교적 결례까지 불러일으키고 국민의 자존심을 상하게 만든 외교라인 가지고 남은 4년 7개월 동안 지지율을 반등시킬 수 없는 것이다. 강대국에 당당하고 국민에게 신뢰와 자부심을 심어주는 방향으로 외교노선을 재정립하라. 남북의 화해와 평화를 기조로 통일정책을 과감하게 재수정하라.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인사실패로 민심 이반…李대통령이 변화해야”

    “인사실패로 민심 이반…李대통령이 변화해야”

    이명박 정부의 출범에 기대를 걸었던 보수진영 인사들의 요즘 심정은 어떨까. 김영삼 정부에 몸 담았던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 이각범 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등과 제성호 중앙대 교수로부터 현 시국에 대한 진단과 해법을 들어봤다. 보수주의자이지만 3인 모두 촛불시위로 발현된 민심을 존중하는 ‘전향(前向)성’이 인상적이었다. 이들은 인사 실패를 민심이반의 결정적 원인으로 들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변화’를 촉구했다. 윤 전 장관은 젊은 세대가 주도하는 촛불시위의 에너지를 사회변혁의 긍정적 동력으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이 대통령에게 조언했다. 이 전 수석은 이 대통령이 단편적 인기영합주의를 지양하고 국정에 대한 종합적 고찰을 해야 한다고 고언했다. 제 교수는 땜질식 개각이 아닌 고강도의 인사쇄신을 주문했다. ▶국민의 압도적 기대를 안고 출범한 이명박 정부가 출범 100일 만에 난국에 처한 이유는 무엇인가. 윤여준 전 장관 인사 잘못이 결정적이다. 개인적 국정 경험에 비춰 보면 민심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분이 인사다. 이각범 전 수석 편파 인사가 문제다. 그토록 지탄받던 노무현 정부의 ‘코드 인사’를 몇 배나 능가하는 파행 인사가 난국을 낳았다. 제성호 교수 강부자 내각, 기업 프렌들리라는 말에서 보듯 서민 프렌들리 정부라는 인상을 주지 못했다. 여기에 쇠고기 문제가 터진 것이다. ●촛불시위자 모두 불순세력으론 안 봐 ▶쇠고기 재협상을 주장하는 촛불시위의 이면에 배후조종 세력이 있다고 보나. 윤 전 장관 개중에는 선동하는 세력도 있고 놀아나는 사람도 있겠지만 모두를 다 불순세력으로 보는 시각엔 동의하기 어렵다. 촛불시위 현장에 가본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건(배후조종설은) 본질이 아니다. 그렇게 보면 답이 안 나온다. 이 전 수석 그런 요소도 있기는 하겠지만 전적으로 배후조종 세력에 휘둘린다고 보지는 않는다. 민심이 돌아서서 그렇게 된 것이고 쇠고기 협상을 계기로 반(反)이명박 정부 성향 세력이 투쟁양상으로 변했다고 본다. 제 교수 쇠고기 문제는 근본적으로 과학적 전문지식과 관련있는 사안으로 전문가의 견해가 중요하다. 협상이 잘못됐다 하더라도 합리적인 정책토론을 통해 보완할 수 있는 사안이다. 문제가 커진 데는 일반 시민 등 비전문가들의 무책임한 자극적 발언이 급속도로 확산된 측면이 있고, 인터넷 상에서의 교묘한 선동이 있었다는 시각이 유력하다. 문제의 쇠고기가 미국산이 아니라 호주산이라면 이처럼 문제가 커졌을까. ▶촛불집회 민심을 경시하다가 파문을 키웠다는 지적이 있다. 보수가 민심의 변화된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윤 전 장관 이게 이념의 문제인가. 보수가 변화에 둔감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 재협상을 요구하는 사람이 다 진보인가. 이 전 수석 당연히 정부가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데 대한 반감이다. 제 교수 그런 점이 없지 않다고 본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진영에서는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집권기를 ‘잃어 버린 10년’이라고 주장해 왔는데, 이런 전면적 부정이 부메랑이 돼 시대변화에 대한 보수진영의 감각을 무디게 했다는 지적도 있다.10년 동안 어쨌든 사회는 더 민주화됐고 국민의식은 더 성장한 것 아닌가. 윤 전 장관 잃어 버린 10년이라는 주장에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공과가 있는데 너무 과만 본 것은 문제다. 잘한 건 잘한 대로 균형잡힌 자세를 보여 줬어야 하는데 아쉽다. 이 전 수석 ‘잃어 버린 10년’은 맞는 말이다.10년 동안 세계사의 진운을 사이비 진보세력이 따라가지 못해 국가 경쟁력이 위축되고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을 상실했다. 이명박 정부가 잃어 버린 10년의 대안이 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실망스럽다. 제 교수 10년간 좌파 정부 아래서 국가의 근본이 훼손된 것은 사실이다. 지난 10년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 고칠 건 고치고 바로 잡을 것은 바로 잡아야 한다. 물론 잘한 것은 계승해 발전시켜야 한다. ●과거정부 잘한 것은 계승 발전시켜야 ▶386세대 이후 젊은 세대들이 보수화로 기운다는 분석이 있었는데, 이번 촛불시위는 10대,20대들이 주도하고 있다.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윤 전 장관 시대변화가 한국사회의 구조변화를 무섭게 몰고 오고 있다. 모든 권위가 무너지고 있다. 교육, 공권력, 삼성 등 한국사회의 ‘파워센터’들이 차례로 와해됐다. 어린 학생들의 행동은 무서운 동력인데, 한국사회를 수평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정치인들과 정부가 깊이 뜯어 보고 고민해야 한다. 새로운 구조와 권위를 어떻게 만들고 저 분출하는 에너지를 어떻게 한 곳으로 모을까를 고민하는 게 이명박 대통령의 자세다. 최근 영국 보수당이 ‘우애’(友愛)를 기치로 내걸고 있는 추세를 본받아야 한다. 과거의 수직적 소통이 아닌 수평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게 세계적 흐름이다. 이 전 수석 젊은층이 전반적으로 보수화된 것은 맞지만 상당히 현실적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쇠고기 문제도 생활과 직결된 문제니까 젊은이들이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것이다. 제 교수 급식 대상인 학생들이 자신의 건강과 안전에 관한 문제이기에 목소리를 냈다고 본다.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10대·20대 촛불시위는 독특한 청년문화 ▶투표율은 낮은데 촛불시위 참여열기는 높은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대의민주정치에 대한 불신과 직접민주정치 욕구의 발현인가. 윤 전 장관 민주주의의 장래가 걱정스러운 게 사실이다. 정당이 제 역할을 못하고 정치권에 대한 이 대통령의 시각이 부정적이다 보니 대통령과 국민이 맞대결하는 불상사가 나타난 것이다. 이 전 수석 2002년 월드컵이 촛불시위와 관련이 있다. 붉은색 셔츠를 입은 젊은이들이 시청 앞으로 모이지 않았으면 미선·효순양 촛불집회도 없었을 것이다. 모여서 구호를 외치며 시위하는 걸 즐기는 한국의 독특한 청년문화로 이해한다. 제 교수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이 촛불시위 참여율과 관련 있다는 분석은 일리가 있다. 넓은 의미의 직접민주주의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안에 대해 직접민주주의를 하려는 것은 과욕이다. ▶한나라당은 대선, 총선의 압도적 승리에도 불구하고 이번 6·4 재보선에서는 참패했다. 이명박 정부의 실책이 정권교체 주기를 앞당길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윤 전 장관 한나라당의 승리가 반사적 이득이었듯 이번 민주당의 승리도 반사적 이득이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 전 수석 그렇다. 이명박 정부는 보수세력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지금과 같은 국정 혼란을 반복하는 한 지지를 못받을 것이다. 제 교수 100일도 안돼 새 정부가 뿌리부터 흔들리는 상황을 놓고 5년 단임 대통령제의 문제점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4년 중임제나 내각제 개헌이 정치 어젠다로 본격 제기될 것으로 생각된다. ●MB노선은 실용주의 아닌 편의주의 ▶이 대통령이 현재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윤 전 장관 신뢰 회복이 급선무다. 지금 이 대통령의 노선은 실용주의가 아니라 편의주의다. 취임 전 원점으로 돌아가 뭘 잘못했는지 냉철하게 고민해야 한다. 어떤 나라의 지도자도 다수 국민의 의사에 반해 국가를 끌고 갈 수는 없다. 이 전 수석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이라 국가정책의 종합적인 고찰은 없이 안건 하나 하나에 단편적·단기적 승부를 본다. 너무 포퓰리즘적이다. 제 교수 쇠고기 문제로 촉발된 성난 민심을 달래야 한다. 고유가, 생활고에 허덕이는 서민의 어려운 삶을 보듬어 줄 대책을 내놔야 한다. 사회복지도 말로만 하지 말고 실효적인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이 대통령이 단행해야 할 인적 쇄신의 방향과 폭은. 윤 전 장관 조선·중앙·동아일보 등 이 대통령을 가장 잘 이해하고 성원하는 신문들이 사설을 통해 국무총리, 비서실장을 비롯한 내각, 청와대 전면개편을 촉구하더라. 이 기준에도 못 미치면 국민이 흡족해 하겠나. 이 전 수석 폭은 문제가 아니다.21세기 시대정신에 맞는 유능한 사람들을 중용해야 한다. 제 교수 땜질식 개각으로는 성난 민심을 달래기 어렵다. 고강도의 인적 쇄신 의지를 보여야 한다. ▶이 대통령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고 보나. 윤 전 장관 CEO 출신이라 ‘정치 과정’에 대한 이해가 없다. 국민 설득 과정을 비효율·비생산으로 보다 보니, 국민교감이나 설득이 없는 것이다. 이 전 수석 여러 세력을 포용하지 못한다. 국가 전체에 대한 견해와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 제 교수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 국민 눈높이에 맞추는 노력이 필요하다.CEO 리더십의 긍정적 측면은 잘 살리는 한편 소통과 타협의 리더십을 보완하면 좋겠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면 안돼 ▶촛불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진보진영에 할 말이 있다면. 윤 전 장관 충정은 이해하나 대통령과 정부에 어느 정도 시간은 줘야 한다. 이 전 수석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우지는 말았으면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밉다고 국가간 협상까지 뒤엎으려고 하면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외톨이가 될 것이다. 냉정하게 국익을 생각해야 한다. 제 교수 이제 촛불시위가 의도한 것은 대부분 달성됐다고 본다. 그러니 시위를 중단하는 게 옳다. 시민단체는 본연의 권력감시 역할로 돌아가고, 정부와 정치권은 치열하게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종락 김상연 한상우기자 carlos@seoul.co.kr
  • [건국 60주년] 국정철학으로 본 대한민국 약사

    이명박 정부는 ‘실용주의’를 국정철학으로 내걸고 출범했다. 실용을 바탕에 깔고 200여개 국정과제를 수립했고, 향후 5년간 이 기조에 의해 과제들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과거 정부들은 어떤 좌표를 내세워 국정을 운영했을까. 역대 정부들이 출범하면서 내세웠던 국정철학과 비전, 그에 따른 정책 추진과 간략한 평가는 곧 대한민국 정부 약사라고 할 수 있다. 이승만 초대 정부는 해방 이후 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정부 구성에 초점을 맞췄다. 좌파와의 싸움에서 승리해 어렵게 남한 단독 정부 수립에 성공한 이승만은 ‘반공’ 및 ‘시장자유주의’를 내걸었고, 결과적으로 현대국가 형성에 기여했다. 그러나 행정부로의 권력집중, 그에 따른 독재와 장기집권은 부패로 이어졌고 결국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국민에 의해 수명을 다했다. 군사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박정희 정부는 ‘근대화’를 국정좌표로 내세웠다.1963년 5대 대통령 취임사에서 ‘근대화’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박 대통령은 4회에 걸친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추진해 고속성장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소득격차 심화, 지역개발의 불균형, 물가 폭등 등 부작용이 불거졌고, 특히 대통령 권한 극대화에 따라 정치와 경제가 불균형적으로 성장하는 문제점을 도출했다. 전두환 정부도 경제정책면에서 ‘경제 제일주의’ 원칙을 세웠다. 다만 박정희 정권 때의 부작용을 의식한 탓인지 ‘복지’와 ‘안정’에도 초점을 맞추었으며, 실제 상당부분 국정운영에 반영했다. 그러나 군사쿠데타 주모자라는 태생적 한계에다 민주화운동 탄압, 장영자·이철희사건 등 권력형 부정사건의 빈번한 발생 등으로 ‘독재·부패정권’이란 오명을 얻었다. 6공화국 노태우 대통령은 ‘보통사람들의 위대한 시대’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권위주의 청산을 국정목표로 내세움으로써 5공과 같은 뿌리의 정권이라는 부담을 털어 내려고 한 것. 실제 여소야대 국회가 출범하면서 행정부 견제기능이 활발해졌고, 국민의 정치의식 수준도 향상됐다. 그러나 심각한 노사분규와 학원사태 등을 전혀 컨트롤하지 못하고 수천억원의 불법 정치자금 모금이 드러나면서 5공과 마찬가지로 ‘부패정권’이란 낙인을 면치 못했다. 김영삼 정부는 7공화국 대신 ‘문민정부’로 스스로를 지칭하고,‘개혁과 변화를 통한 신한국창조’라는 기치를 내걸었다. 취임 초기 금융실명제와 공직자재산등록제 도입, 하나회 해체 및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단죄 등 거침없는 개혁을 통해 90%라는 놀라운 국민지지를 이끌어 냈다. 그러나 측근 비리와 한보사태 등이 이어지고,IMF구제금융 사태까지 닥치면서 초기 개혁작업은 상당부분 퇴색됐다. 김대중 정부는 50년 만에 처음 이뤄진 여야간 정권교체의 역사적 의미를 강조, 주권재민 정치를 구현한다는 취지로 ‘국민의 정부’로 정부 성격을 규정했다. 이 시기에 군부의 정치개입 가능성이 거의 사라졌고, 시민의 기본권도 상당히 신장됐다. 또 IMF사태 극복을 위해 경제문제에 국정의 상당부분을 할애해 적지 않은 성과를 냈다. 노무현 정부는 정부 성격을 진정한 국민·시민주권이라는 취지에서 ‘참여정부’로 규정했다. 노 대통령의 취임사 제목인 ‘평화와 번영과 도약의 시대로’는 참여정부의 5년 방향타였다. 대미관계에서 ‘자주성’에 방점을 두는 한편 동북아 번영·평화의 공동체 구현 등 ‘동북아시대’를 강조했다. 그러나 부동산값 폭등과 경제 침체, 소득 불평등 등이 이어지면서 지지율이 바닥으로 치달은 상태에서 정권을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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