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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민주화 꽃 피우고 ‘인동초’ 지다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민주화 꽃 피우고 ‘인동초’ 지다

    민주화의 상징이자 남북 화해에 큰 족적을 남긴 김대중 전 대통령이 18일 서거했다. 85세. 지난달 13일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지 36일 만이다. 박창일 연세의료원장은 이날 오후 병원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김 전 대통령이 오늘 오후 1시43분 서거했다.”면서 “폐렴으로 입원하셨지만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인해 심장이 멎었고 급성호흡곤란증후군과 폐색전증을 이겨내지 못했다.”고 밝혔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회견에서 “부인 이희호 여사와 홍일·홍업·홍걸씨 3형제, 며느리를 비롯해 가족과 측근들이 임종을 했다.”고 발표했다. 박 의원은 “가족들의 뜻을 잘 받들고 정부와도 긴밀히 협조해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정중히 모시겠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국립 현충원 국가 원수 묘역에 안장될 예정이다. 김 전 대통령의 시신이 안치된 세브란스병원 영안실에는 국내외 각계각층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날 밤까지 400 0여명의 조문객이 빈소를 찾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 등이 문상했다. 김 전 대통령은 미열 증세로 병원에 입원한 지 이틀 만인 지난달 15일 폐렴 확진판정을 받고 중환자실로 옮겨졌으며 호흡부전으로 인공호흡기를 부착했다. 한때 병세가 호전돼 일반 병실로 갔으나 23일 폐색전증이 발생하면서 다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29일에는 기관지 절개술을 받았다. 지난 1일 혈액투석 도중 갑자기 혈압이 떨어져 병세가 급속도로 악화된 김 전 대통령은 잠깐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영면의 길에 들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맹형규 청와대 정무수석으로부터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사실을 보고 받고 참모진과 긴급 상황점검회의를 가졌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김 전 대통령이 병석에서도 우리 사회의 화해를 이루는 계기를 만들었다.”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고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이 대통령은 적절한 시기에 조문할 예정이며 영결식에도 참석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통령은 ‘인동초’, ‘행동하는 양심’으로 불리며 굴곡 많은 한국 현대 정치사를 풍미했다. 1973년 도쿄 피랍사건 등을 비롯해 5차례의 죽을 고비와 5년여의 감옥생활, 6년여의 가택연금, 3년의 망명생활 등 김 전 대통령의 정치 역정은 파란만장했다. 한국 정치사에서 ‘3김(金)시대’의 한 축이었던 고인은 1997년 15대 대통령에 당선돼 반세기 만에 선거를 통한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는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남북분단 이후 처음으로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로 1960년대부터 김영삼·김대중·김종필 세 사람이 이끌어온 ‘3김 시대’는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됐다. 이종락 허백윤 오달란기자 baikyoon@seoul.co.kr ■용어클릭 ●다발성 장기부전 한마디로 인체의 핵심 역할을 수행하는 주요 장기들이 동시에 나빠지는 상태로, 병명이라기보다 상황을 아우르는 지칭이다. 신체에 염증성 반응이 심해지면서 심장 기능이 급격히 떨어지고 의식장애가 오며 호흡부전·신부전·간부전 등의 증상이 동시에 나타나 의학적으로 수습이 어려운 상태를 말한다. 만성질환으로 인해 전신성 염증(패혈증)이 왔을 때 주로 발생하며, 심장 기능 정지 등 치명적인 쇼크를 부르는 게 일반적이다.
  • 낮엔 친일파 땅 찾고 밤엔 학업 매진

    현직 경찰관이 역대 대통령들의 리더십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아 화제가 되고 있다. 주인공은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에 파견 중인 지영환(42) 경위. 지 경위는 오는 25일 성균관대 학위수여식에서 ‘대통령의 대(對) 의회관계에 관한 연구’라는 주제의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는다. 2007년에는 경희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땄다. 지 경위는 17일 “낮에는 전국의 친일파 땅을 찾고, 밤에는 학업에 매진하는 주경야독의 생활을 2년 동안 해왔다.”며 지난 세월을 돌아봤다. 지 경위는 이번 논문에서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리더십이 의회와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했다. 그는 “한국의 대통령제가 견제와 균형원리라는 근본 취지와 달리 ‘대통령중심제’로 변질돼 운영되고 있다는 취지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인위적 합당으로 부정형의 리더십을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제도적 민주주의를 성숙시키지 못한 ‘최초의 민간출신 대통령’이라고 분석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적극적 리더십을 펼쳐 의회관계가 원만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의회에 주도권을 빼앗긴 소극적 리더십으로 불편한 관계를 보였다고 돌아봤다. 그는 “민주주의가 성숙할수록 대통령은 여야 모두와 소통해 정책을 추진하는 ‘조정자’ 능력이 중요시된다.”면서 “지도자보다는 법과 절차를 중심으로 한 정치의 제도화가 근본적인 과제”라고 조언했다. 1990년 순경 공채로 경찰에 입문한 지 경위는 2004년 계간지 ‘시와 시학’ 신춘문예에 당선한 시인이기도 하다. 지 경위는 “고고학 공부를 해서 은퇴 후에는 선사시대 박물관을 열어 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열린세상] 국가조직과 인력 충원의 문민화/성낙인 서울대 법학교수·한국법학교수회장

    [열린세상] 국가조직과 인력 충원의 문민화/성낙인 서울대 법학교수·한국법학교수회장

    1987년 헌법체제 아래서 다섯 명의 직선 대통령이 배출되면서 국가와 사회의 문민화가 진척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국가조직 곳곳에서 기득권에 안주하는 특정 전문가집단의 독식현상은 여전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취임 즉시 전광석화와 같이 군 내부의 최대 사조직인 하나회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단행했다. 군사정부의 잔재를 청산하겠다는 최고 권력자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장관을 비롯한 핵심 요직은 전현직 장군들의 독무대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 시절에 6년간 재임한 도널드 럼즈펠드와 그 후임인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모두 문민 출신이다. 게이츠는 정권교체 이후에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정부에서 국방장관으로 계속 재임한다. 외교부도 장관을 비롯한 대부분의 관료가 직업외교관 일색이다. 선진국에서는 직업외교관 출신이 아니라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가장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인물로 충원한다.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을 비롯해 주요국 대사는 오히려 비외교관 출신으로 충원된다. 동종번식이 계속되는 한 핑퐁 외교를 통하여 중국을 개방시킨 닉슨 대통령 시절의 헨리 키신저 같은 훌륭한 외교관이 배출되기 어렵다. 법조계의 배타적 독식현상은 더욱 심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판사출신의 젊은 강금실 변호사를 법무장관으로 전격 발탁했다. 검사들의 저항에 부딪치자 전무후무한 ‘대통령과 평검사의 대화’가 TV를 통해서 생중계됐다. 그 이후의 ‘검사스럽다’는 유행어에서 드러나듯이 노회한 변호사 출신의 대통령에게 열정만 앞선 젊은 검사들이 참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실험은 단명으로 끝났다. 법무부의 상층조직은 현직 검사의 독점 공간이다. 그 인적 구성에 관한 한 대검찰청과 차이가 없다. 오히려 검찰의 전위조직이나 마찬가지다. 검사는 현장에서 수사를 지휘해야 한다. 대신 법무부는 인권, 범죄예방, 교정, 법교육 같은 고유한 법무행정을 담당해야 한다. 1년이 멀다 하고 단행되는 검찰의 인사이동에 휘둘려 법무행정의 안정적 수행은 불가능하다. 대법원도 마찬가지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취임한 이후 법원행정처장을 법원장 출신이긴 하지만 비법관으로 임명한 바 있다. 하지만 후임은 종전대로 현직 대법관이 겸임한다. 법원행정처의 핵심 요직도 온통 법관으로 보임되어 있다.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법원행정처는 법원행정 전문가로 충원돼야 한다. 법관은 재판이 그의 소명이다. 그런데 심지어 법관이 해외주재 대사관 소속 또는 국회사무처 소속으로 파견 근무도 한다. 이는 법관이라는 특수한 신분에 본질적으로 어울리지 않을 뿐 아니라 헌법적 가치인 사법부의 독립 중에서도 핵심적 요구사항인 법관의 인적 독립에도 어긋난다. 국방부는 장군, 외교부는 외교관, 법무부는 검사, 대법원은 판사 출신이 행정의 수장으로 있으면 우선은 현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편할지 모른다. 하지만 국가행정은 기관이기주의에 매몰될 것이다. 물론 외부인사가 관료조직에 휘둘려 업무파악도 제대로 못한 상황에서 물러나고 마는 문제도 있다. 하지만 1년이 멀다하고 갈아치우는 장관직의 소모품화를 청산하고 장관이 실질적으로 업무를 파악하고 기관을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장관직의 안정을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 국가의 존립이유와 직결되는 국민의 신체와 재산을 보전하고 국가안보를 책임지며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핵심적인 국가기관은 이제 문민화돼야 한다. 정부의 다른 부처에는 각종 직역의 다양한 인재들이 수장에 취임하고 핵심보직도 차지하지만 유독 이들 부처만은 여전히 장군, 외교관, 검사, 판사의 철옹성이다. 민주화 이후에 정권교체와 정부교체가 일상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지도자의 정치철학을 제대로 담보할 수 있는 인사들이 책임 있는 지위에서 국정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 성낙인 서울대 법학교수·한국법학교수회장
  • 문병 온 전두환 “DJ 집권때 제일 행복”

    문병 온 전두환 “DJ 집권때 제일 행복”

    1970, 80년대 신군부의 수장과 민주화의 상징으로 대척점에 섰던 전두환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병상에서 해후했다. 전 전 대통령이 14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 중인 김 전 대통령을 병문안하면서다. 1979년 10·26사태 이후 12·12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거머쥔 전 전 대통령은 이듬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배후로 김 전 대통령을 지목했다. 김 전 대통령은 내란음모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죽음의 위기에서 옥고를 치른 김 전 대통령은 2년 만에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고, 2004년 재심에서 24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전 전 대통령에 대해 “종교적 용서”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입원 전까지 준비하던 자서전에서 전 전 대통령에 대해 “죽음 직전의 고초까지 안겨준 그를 신앙적으로 용서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은 평소 ‘용서는 최대의 용기이고, 관용은 정치의 최대 덕목’이라고 강조해왔다. 실제로 김 전 대통령은 1996년 12·12 및 5·18과 관련, 사형을 선고받은 전 전 대통령을 위해 당시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직 대통령의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돼선 안 된다.”며 사면을 건의하고, 자신이 집권했을 때 이를 단행했다. 그는 또 국민의 정부시절 전 전 대통령을 수차례 청와대로 초청해 국정 현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날 병세가 위중한 김 전 대통령 대신 부인 이희호 여사를 만난 전 전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의 재임시절 각별한 보살핌을 회고했다. “자꾸 상태가 나빠지는 것 같아 휴가 중에 올라왔다.”는 전 전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 때 전직 (대통령)들이 제일 행복했다.”고 밝혔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이) 외국 방문 후 꼭 전직 부부를 청와대에 초청, 방문 성과를 설명해주며 만찬을 성대하게 준비해주고 선물도 섭섭하지 않게 해주셨다.”고 했다. 그는 “연세가 많아 시간은 걸리겠지만 틀림없이 완쾌해 즐거운 마음으로 나가게 될 것”이라고 쾌유를 기원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전두환 前 대통령, DJ 병문안

    전두환 전 대통령이 14일 신촌 세브란스병원을 찾아 33일째 입원 중인 김대중 전 대통령을 문안했다. 전 전 대통령은 오전 11시께 20층 VIP 대기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아이고, 얼마나 고생이 많으시냐.”면서 이희호 여사의 손을 잡은 뒤 “자꾸 상태가 나빠지는 것 같아 휴가 중 올라왔다.”고 말했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 때 전직대통령들이 제일 행복했다.”고 회고하고, “김 전 대통령 재임기간에 자주 초대받아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상당히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고 도움도 많이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현직에서 안 봐주면 전직에서는 불쌍한 것이 있지 않느냐”면서 “김 전 대통령이 외국 방문 후 꼭 전직(대통령) 부부를 청와대에 초청, 방문 성과를 설명해주며 만찬을 성대하게 베풀었고, 선물도 섭섭지 않게 해 주셨다.”고 덧붙였다. 그는 “어떤 대통령은 그런 것을 안했는데...”라며 김영삼 전 대통령을 겨냥하는 듯한 발언을 한 다음 “이명박 대통령도 전직들 의견을 잘 들었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전 전 대통령은 지난 5월 이 병원에서 수술 받은 경험을 얘기하면서 “의료진이 워낙 저명하니 잘 될 것이다. 실력을 발휘해 잘 모셔 달라”고 당부하면서 “연세가 많아 시간은 걸리겠지만 틀림없이 완쾌해 즐거운 마음으로 나가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여사는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몇 차례에 걸쳐 전 전 대통령에게 답례했다. 면담은 10분정도 이어졌다. 앞서 전 전 대통령은 취재진 질문에 대답 없이 병실로 올라갔으며 병문안이 끝난 후에는 포토라인과 반대 방향에 있는 출구로 빠져나갔다. 전직 대통령의 DJ 문병은 지난 10일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이어 두번째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TV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사설] 음주운전 사면은 이번으로 끝내야

    정부가 광복 64주년을 맞아 152만 7770명을 대상으로 대규모 특별사면·감형·복권을 단행했다. ‘생계형 서민’이라는 정부의 강조처럼 상당수가 운전면허 제재 등으로 생업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라고 본다. 그럼에도 뒷맛이 개운치는 않다. 국민들의 준법의식 약화로 빚어질 부작용이 우려되고, 특히 음주운전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교통법규 위반자 등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은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말 첫 단행된 뒤 이번이 6번째다. 현 정부 들어서는 지난해 6월에 이어 2번째로 사면주기가 짧아지고 있다. 관련 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교통법규 위반자에 대한 대규모 사면조치가 이뤄진 후 1년간 평소보다 교통사고는 7000여건, 사망자는 200여명, 부상자는 1만여명 늘어났다고 한다. 그로 인한 경제적 비용도 수천억원으로 추산되었다. 손해보험업계는 교통사고율이 올라가면 보험료를 인상할 수밖에 없다고 울상이다.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음주운전의 폐해다. 대형사고로 이어져 남의 생명까지 순식간에 앗아가는 게 음주운전이다. 국제적으로 음주운전 단속기준을 강화하는 추세인데 우리는 특사로 법과 원칙을 허물고 있으니 걱정스럽다. 정부도 이런 지적을 의식한 듯 5년내 2회 음주운전, 무면허 음주운전, 음주 인명사고 등은 사면대상에서 뺐다. 그러나 “한번쯤은…”이라고 봐주다가 습관성 음주운전자를 양산할 수 있다. 음주운전의 경우 이번이 마지막 사면이 되길 바란다. 아울러 정부는 특혜성 사면·복권을 남발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 [지방시대] 평택에서의 전쟁과 평화/강문구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방시대] 평택에서의 전쟁과 평화/강문구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1. 평택 쌍용자동차 파업사태가 77일만에 사측 추산 3000여억원의 상처를 남기고 지난 6일 전격적으로 타결됐다. 평택 파업사태로 사측은 차량생산차질(1459대)에 따른 손실이 3160억원, 평택지역 경제는 150억원 이상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됐다. 경찰도 작전 및 경비 비용으로 30억원쯤을 쓴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1월 상하이차 철수를 시작으로 기업회생 절차 개시 신청, 사측의 2646명 감축을 골자로 한 경영정상화 방안 발표, 노조의 파업돌입, 사측의 평택공장 직장폐쇄, 노사의 대화시도 및 결렬로 이어지는 드라마를 많은 극민들은 하루하루 초조하게 지켜봤다. 하물며 평택시민들의 심정이야 오죽했을까? #2. 얼마전 용산참사를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하기에 그 심정은 더욱 처절하고 안타까웠을 것이다. 경찰이 용산 재개발지역 주민들을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6명이 사망하고 20여명이 부상한 용산참사는 경찰 특공대원들이 기중기를 이용해 컨테이너 박스를 철거민들이 농성 중인 건물 옥상으로 끌어올려 진압작전을 시작하면서 비롯됐다. 이 과정에서 철거민들이 대량으로 준비한 시너에 불이 옮겨 붙어 철거민과 경찰 등 6명이 사망하고, 경찰 20여명이 부상당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아직까지 용산참사를 둘러싼 진위가 가려지지 않고 갈등의 골은 깊이 패어 있다. 헬리콥터가 출동하고 전운이 감도는 전쟁영화 같은 장면들은 결국 처참한 비극으로 끝났다. 한국사회에 민주화가 도래해 공고화되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믿던 많은 이들에게 용산참사 등이 보여준 깊은 갈등과 적대감은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우려케 하고 있다. #3. 한동안 대학이 전장(戰場)이 된 때가 있었다. 1989년 5월 대학 입시부정 사건에 항의하는 부산 동의대생들과 이를 진압하던 전의경 사이에서 7명의 사망자를 비롯, 엄청난 인명 피해를 냈다. 동의대 사태는 학생 시위사상 최악의 사건이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996년 한총련 주최의 통일대축전을 원천봉쇄하려는 경찰측과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간의 엄청난 폭력사태의 과정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헬리콥터가 뜨고, 옥상 난간에 복면을 한 사람들의 초췌한 모습과 휑한 두 눈. 어찌 이런 장면이 한민족을 자부하는 우리에게 반복되는 비극이 되었는지, 그것도 그렇게 열망하던 민주주의의 시대에 말이다. #4. 국가는 추상(抽象)이고, 지역은 현실이고 구체다. 지역이 발전하고 지역의 민초들이 평화롭고 안정된 삶을 영위할 때 비로소 한국이라는 추상명사는 내용을 갖게 되는 것이다. 국가발전을 위해 몸바치겠다는 정치인 무리를 그리 신뢰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동백림사건으로 더 익숙한 윤이상은 결국 조국의 땅을 다시 밟지 못하고 머나먼 이국에서 눈을 감았다. 한국정부의 사과를 요구한 그에게 한국(당시 김영삼 정부)은 끝끝내 사과하지 않았고, 일본에서 연주회를 마친 윤이상은 조국을 향해 삼배한 후 이제 자신의 조국은 독일이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돌아갔다. 위대한 작곡가의 방랑과 한 많은 일생은 이렇게 끝났다. 1980년 광주는 여전히 민족의 비극으로 남아 있다. 부인 이수자씨는 윤이상이 텔레비전 뉴스를 뚫어지듯 보며 매일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윤이상은 1987년 2개월에 걸쳐 ‘광주여 영원히’를 작곡했다. 윤이상은 조국의 처참한 비극을 잊지 못해 우리 민족의 가슴에 영원히 안겨주는 곡을 쓰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분단의 비극에 이념의 대치까지 극에 달한 이 시점에서 광주의 비극이, 용산의 참사가, 평택사태가 더는 반복되지 않고 상호존중과 신뢰의 덕목으로 아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강문구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DJ 자서전 곧 출간… “정치보복은 절대 안된다”

    “한국에 민주주의가 정착하려면 반대세력끼리 정치보복만큼은 절대 안 된다.” 곧 출간될 것으로 알려진 김대중 전 대통령 자서전의 한 대목으로 1980년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법정에서 한 말이다. 2년여에 걸친 김 전 대통령의 자서전 구술작업에 참여한 유시춘 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은 이를 두고 “김 전 대통령의 한평생을 관통하는 말”이라고 전했다. 오는 13일은 김 전 대통령의 도쿄피랍 생환 36주년을 맞는 날이다. 내년은 6·15 남북정상회담 10주년이다. 김 전 대통령은 해마다 두 기념일을 각별히 챙겼다. 자서전도 모진 역경을 거친 세월에 대해 상당 부분 할애했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이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의 배후로 지목돼 최종 선고를 앞둔 당시 신군부세력은 “대통령만 빼고 원하는 대로 다 해주겠다.”며 회유한 구절도 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국민을 속일 수 없다.”며 사형을 택했다. 정적에 대한 소회도 빠뜨리지 않았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유신 때 차지철 경호실장이 번번이 박 전 대통령과의 대면 일정을 잘라 버렸다.”며 아쉬워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1988년 7·7선언(대북정책 6개항 특별선언)에 대해선 ‘남북관계를 진전시킨 공로’라고 평가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선 “87년 대선 때 후보 단일화를 못 이룬 게 빚으로 남아 있다.”고 고백했다. 다만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해선 “죽음 직전의 고초까지 안겨준 그를 신앙적으로 용서하려고 노력했다.”며 다소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자서전은 상하 2권이다. 김 전 대통령은 유 전 상임위원이 하권의 원고를 탈고한 뒤 감사의 뜻으로 몽블랑 만년필을 선물했지만 아직 최종 감수를 보지 못한 상태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다른기사 보러가기] 축구 보여주다 여자 ‘볼일’ 장면 수시1차 논술 이렇게 박지성,호날두 단골임무 맡나 수리점 시계가 늘 10시10분을 가리키는 이유 조각? 그림? 틀 깬 신기한 사진들 국내 인터넷 뱅킹 뚫은 조선족 해커 22조원 투입 38조원 효과…강따라 돈이 흐른다
  • [사설] 여야, YS와 DJ의 화해 무겁게 새겨야

    우리 정치사의 한 장을 정리하는 순간이라 할 장면이 어제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펼쳐졌다. 병세가 위중한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병실로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찾아가 화해의 뜻을 밝힌 것이다. DJ의 병세로 인해 두 눈을 마주하고 두 손을 굳게 잡는 모습까지는 볼 수 없었으나, YS가 화해를 말하고 DJ의 가족과 측근들이 감사의 예를 갖추는 모습만으로도 의미 깊은 자리였다고 할 것이다.지난 40년 한국 정치를 이끈 두 거목이 드리운 명암은 지금 이 시대에까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뚜렷한 굴곡을 남기고 있다. 암울한 군사정권 시절 반독재투쟁을 이끌며 민주화의 꽃을 피웠고, 훗날 문민통치 시대를 열어 국민들에게 민주화의 결실을 안겨준 반면 영·호남과 민주계·평민계라고 하는 지역분파적, 정파적 갈등 구조를 고착화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음도 부인할 수 없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정치 분열과 지역 갈등의 깊은 뿌리에 두 사람이 자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엊그제까지 현실 정치에 대한 상반된 발언으로 상대를 폄하하던 양김(兩金)이 오늘 화해를 말했다고 해서 수십년 된 앙금이 하루아침에 눈 녹듯 사라질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분명한 것은 화해를 향한 양김의 노력이 지금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이며, 현 정치권은 이를 무겁게 받들어 지역화합, 국민통합에 힘써야 한다는 점이라고 믿는다.그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의 인사정책을 둘러싸고 지역편중 논란에 여념이 없는 여야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정세균 대표까지 나서서 호남홀대론을 펴고 있는 민주당이나, 그런 제1야당 대표에게 ‘저급 정치인’ 운운하며 맞불을 놓는 한나라당의 행태는 양김 정치가 만든 갈등의 골 속에서 헤매는 정저지와(井底之蛙)의 모습일 뿐이다. 양김을 영영 지역갈등의 뿌리로 둘 것인가. 아니면 한국 민주화의 견인차로 높일 것인가. 여야의 깊은 성찰을 촉구한다.
  • ‘애증의 50년’… DJ - YS 역사적 화해

    ‘애증의 50년’… DJ - YS 역사적 화해

    죽음의 문턱에서야 풀린 50년 애증의 한(恨). ‘이제 화해한 것으로 봐도 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굳은 표정으로 “이제 그렇게 봐도 좋다. 그럴 때가 됐다.”고 말했다. 10일 오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병문안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YS는 DJ를 직접 위문하지는 못했다. 이에 앞서 YS를 맞은 DJ 부인 이희호 여사는 “염려해 주시고 와주셔서 감사하다.”면서 “오셨다는 말씀을 들으면 위로가 될 것”이라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 반세기를 이어온 한국 정치사 두 거목 간의 반목은 이렇게 청산됐다. YS는 이날 “(DJ는) 나와는 가장 오랜 경쟁관계이고 협력관계”라면서 “세계에서 유례없는 특수한 관계”라고 말했다. 또 “둘이 합쳐 한국 민주주의를 이룩하는 데 큰 힘을 쏟았다. 목숨 걸고 싸웠다.”면서 정적이자 동지인 DJ를 회고했다. 내내 침통한 표정이었다. 협력과 반목을 거듭하던 두 거목은 1997년 결정적으로 갈라서게 된 것으로 알려진다. 문민정부 말기 터져 나온 YS 차남 현철씨의 비리 사건이 화근이었다. YS는 DJ가 조속히 사면해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앞서 97년 DJ의 비자금 의혹에 대해 수사유보를 결정하며 민주화 동지의 대선 승리에 길을 터줬다고 생각해온 YS는 DJ의 늑장(?) 사면을 ‘배신 행위’로 여겼다. YS의 독설이 늘어간 것도 이때부터다. DJ의 노벨상 수상 소식에도 “상의 가치가 떨어졌구먼….”이라며 깎아내렸다. 지난 6월 DJ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직후 이명박 정부를 ‘독재’로 규정하자 “그 입을 닫으라.”고 했다. DJ는 묵묵부답, 무대응 전략으로 일관했다. DJ는 이날 위중한 병세로 YS에 직접 화답하지는 못했다. 대리인격인 권노갑 전 의원이 “이번 일을 계기로 화해 문제가 해소됐다.”며 사의를 전달했다. YS의 차남인 김현철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은 “아버지가 대승적으로 생각해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가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청와대와 여야 정치권은 DJ의 병세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9일 병세 악화 소식을 접한 청와대는 이명박 대통령의 10일 일정을 전격 취소하는 등 민감하게 반응했다. 당초 이날 전남 여수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여수세계박람회 D-1000일’ 행사에 참석하려 했으나 청와대는 DJ의 병세에 따라 “이 대통령이 갈 수 없다.”는 뜻을 여수세계박람회 측에 통보했다. 8·15 전후로 예정됐던 개각과 청와대 개편도 상당기간 늦춰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여야 정치권도 병문안을 위해 줄줄이 신촌 세브란스병원을 찾았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오전 10시20분쯤 공성진·박순자 최고위원, 윤상현 대변인 등과 함께 이희호 여사를 위로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 송영길·김민석·안희정·장상 최고위원 등은 병원에서 쾌유를 비는 예배를 했다. 김형오 국회의장과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이 여사를 만나 DJ의 쾌차를 기원했다. 한편 병원 측은 “이날 새벽부터 혈압과 맥박 등 건강 수치가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면서도 “고령에 지병으로 신체 기능이 서서히 저하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홍성규 김지훈 오달란기자 cool@seoul.co.kr
  • [사설] 서민 생계형 특별사면 취지는 좋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올 8·15에 즈음해 대규모 생계형 특별사면을 하겠다고 밝힌 것은 서민들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생계형 운전을 하다 면허가 중지된 이를 중심으로 자영업자, 농민, 어민 등 150만명이 사면검토 대상이라고 한다. 비리를 저지른 정치인·경제인을 우선 봐주거나 생계형 사면을 비리자 특사에 끼워넣기 식으로 하던 것에 비하면 이번 사면의 취지는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 대통령이 요즘 강조하는 서민행보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사면권이 남용되고 있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임기 동안 9차례에 걸쳐 700여만명을 사면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도 각각 7차례, 8차례씩 사면권을 집행했다. 이 대통령은 이번에 세 번째 사면을 하게 되며, 연인원이 460여만명에 이를 전망이다.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은 수사와 재판을 무위로 돌아가게 만듦으로써 사법부의 권위를 훼손시킨다. 잦은 사면은 국민들의 준법의식을 약화시켜 법을 지킨 사람이 손해라는 인식을 퍼뜨릴 우려가 있다. 때문에 특별사면 대상을 설득력 있게 골라야 한다. 운전면허 정지·취소로 생활이 어려운 생계형 자영업자나, 가벼운 법 위반으로 농사·어로에 지장을 겪고 있는 농어민들을 사면하는 데 반대할 목소리는 별로 없을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음주운전 초범을 특사에 포함시킬 뜻을 밝혔지만, 그 문제는 신중해야 한다. 정부는 지난해 이 대통령 취임 100일 기념특사에서도 음주운전 초범을 구제했는데 이번에 또 사면해 준다면 음주운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해이해지고, 형평성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 국회의 동의를 받지 않는 특별사면이 시혜성으로 남발되지 않도록 법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사면권은 국가이익과 국민통합을 위해 필수불가결할 때에 제한적으로 행사돼야 한다. 정부·여당이 앞장서 개선안을 마련하길 바란다.
  • [깔깔깔]

    ●소가 생겼을 때 대통령의 반응 박정희 대통령:시골에 보내 새마을 운동에 사용한다. 전두환 대통령:군대에 보내 군인들 식사에 사용한다. 노태우 대통령:군대에 보내 군인들 식사에 사용하는 척한다. 김영삼 대통령:어떻게 할지 아들에게 물어 본다. 김대중 대통령:북한에 보낸다. 노무현 대통령:“너 쌍꺼풀 어디서 했냐?” ●아이와 변기 어느날 엄마는 외출하고 아빠가 다섯살짜리 아이를 책임지게 되었다. 아빠가 거실에서 신문을 읽고 있는데, 아이는 컵에다 물을 받아 아빠에게 마시라고 드렸다. 아빠가 칭찬을 해 주며 그 물을 마신 후에 엄마가 돌아왔다. 아빠는 아이가 물을 떠다 준 행동을 엄마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엄마가 말했다. “여보, 아기가 손이 닿아 물을 받을 수 있는 장소는 오직 ‘변기’라는 사실을 알죠?”
  • [서울광장] 피 묻은 글러브, 낡은 드라이버/박재범 논설실장

    [서울광장] 피 묻은 글러브, 낡은 드라이버/박재범 논설실장

    과연 수명이 몇 년이나 남았을까. 요즘 맹위를 떨치는 극단적 정치행위 방식 말이다. 길거리 정치와 막장 국회. 수학공식처럼 정형화된 것 같다. 30여년 전 대학 앞길은 하루도 조용한 적이 없었다. 학생들은 스크럼을 짜고 길거리에 드러누웠다. 경찰도 로마병정 같은 갑옷을 입고 곤봉을 휘둘렀다. 국회도 못지않았다. 여당은 회의장을 몰래 옮겨 다니거나 문을 닫아건 채 날치기, 새치기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야당은 회의실 단상을 점거하고 서부활극에 몸을 던졌다. 이런 무질서 속에서 연꽃이 피었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대통령 등 4명이 민주적 절차를 거쳐 대통령이 됐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된 지 20년이 흘렀다. 헌법재판소, 국민감사청구제 등 갈등 해소장치가 속속 마련됐다. 그럼에도 서울시청앞 광장과 여의도 국회는 한 치도 변하지 않았다. 작년에는 두 달 가까이 수도 한복판인 태평로를 시위대가 차지했다. 올해도 30년 전 구호인 ‘독재타도 민주쟁취’를 외쳤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대통령 등 4명을 뽑은 국민의 뜻은 그럼 뭐란 말인가. 스포츠 가운데 가장 야성적인 종목이 권투다. 1974년 세계 챔피언에 오른 홍수환(59)은 1977년 4전5기로 다시한번 세계왕좌에 등극했다. 코뼈가 주저앉은 그가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고 했을 때 모든 국민은 울고 웃었다. 피묻은 글러브에 국민들은 매료됐다. 그러나 홍수환이 퇴장한 이후 그를 능가하는 선수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권투는 퇴조했다. 어느날 한국에서 누구도 상상못한 일이 벌어졌다. 골프인구가 30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1998년 US여자오픈 연장 두번째 홀인 11번째 홀 서든데스에서 박세리(32)가 맨발을 걷어붙이는 투혼 끝에 우승하고, 최경주(39)가 완도 앞바다에서 낡은 드라이버를 매일 수천번씩 휘두르다 한국인 최초의 PGA선수가 되면서부터다. 국민들은 주먹에 맞아 뚝뚝 떨어지는 코피가 아니라, 규칙을 지키며 펼친 멋진 플레이에 내편 네편 가리지 않고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30년 전에 비해 GNP는 1000달러 전후에서 15배 이상, 자동차 보급대수는 50만대에서 무려 1500만대 이상으로 30배, 전무하다시피했던 해외여행자수는 1000만명을 넘어서는 등 뽕밭이 바다로 변했다. 권투가 시들해지고 골프가 뜬 것은 삶의 양식 자체가 달라진 까닭이다. 강호의 야심가들에게 궁금해서 질문해 본다. 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이라는 걸출한 두 인물이 없는 세상에서 그들이 만든 게임이 지속 가능할까. 지금의 문제제기 및 해결방식은 이들에 의해 30년 이전에 완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DJ의 ‘건강 백세’를 기원하면서도, 자연법칙에 따라 언젠가 닥칠 수밖에 없는 ‘포스트 DJ’시대의 게임양식에 관심을 가져본다. 해답은 JP가 알려 줬다. JP식 해법은 추종자들이 어떤 몸부림을 쳤든 JP와 동반 일몰됐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큰일을 하려는 정치인과 시민사회운동가들은 이제 선택해야 한다. 5년,10년 뒤를 내다 보고 자신의 클릭을 맞춰야 한다. 길거리정치를 국회로 수렴하고, 막장국회를 정상화하는 장치를 만들고, 국민의 뜻을 진정으로 읽어 내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비정규전을 정규전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생각 밖으로 일찍 ‘박정희 향수’와 ‘김대중 부채’ 의식 자체가 없어질 수 있다. 박재범 논설실장 jaebum@seoul.co.kr
  • DJ 회복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은 17일 폐렴으로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뒤 점차 안정을 되찾고 있다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의 주치의인 장준 호흡기내과 교수는 “호흡, 맥박, 체온, 산소포화도 등 신체 활력도(바이탈 사인)는 정상 범위에 있으며 다소 불안정했던 혈압도 정상치를 회복해 지금은 혈압상승제를 투여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의료진은 김 전 대통령이 인공호흡기 의존도를 줄이는 훈련을 하고 있으며 1~2일 정도 상황을 지켜본 뒤 호흡기를 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날 입원 중인 김 전 대통령에게 난을 보내 쾌유를 기원했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서울신문 창간 105주년 기획-중산층 두껍게] 중산층 75%→58%… 발전동력 근간이 흔들린다

    [서울신문 창간 105주년 기획-중산층 두껍게] 중산층 75%→58%… 발전동력 근간이 흔들린다

    김영삼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던 1992년. 그 당시 우리나라는 전체 가구의 75%가 중산층이었다. 중위소득의 50~150%(월 200만원이 국민 전체 소득의 중간치일 경우 100만~300만원)를 버는 가구를 중산층으로 분류하는 일반 기준을 적용한 결과다. 100명 중 75명은 남들과 비교했을 때 아주 잘 살지는 못해도 그렇게 못 살지도 않았던 셈이다. 하지만 이 때를 정점으로 국내 중산층 비중은 꾸준히 하향 곡선을 그렸다. 김 전 대통령 집권 말기에 벌써 68.5%(1996년)로 떨어졌고 외환위기 때인 1998년에는 65%, 2006년에는 58.5%로 내려앉았다. 1996년 이후 감소한 중산층의 3분의1은 상류층으로 이동했지만 나머지는 고스란히 빈곤층으로 추락했다. ●자영업자 줄고 비정규직 증가가 주요인 소득 기준이 아닌 주관적 귀속 의식 측면에서도 중산층의 감소세는 가파르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은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에는 41%였으나 2007년에는 28%로 줄었다. 이렇게 빠른 중산층 감소와 빈곤층의 증가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화와 기술 진보 등이 맞물리면서 전 세계에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 속도가 다른 어느 나라보다 빠르다. 유경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외국에서도 중산층 비중이 감소하고 있지만 한국처럼 급격히 진행된 나라는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주된 원인 중 하나로 높은 자영업 비중을 들었다. 2005년 33.6%에 이르던 자영업자 비율이 최근 25%로 급감했고 퇴출 자영업자의 상당수가 실업자나 저임금 근로자로 전환돼 빈곤층으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일용직 등 중하층 복지 사각지대 내몰려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이 늘어 저임금(정규직 대비 85%) 근로자가 급증한 것도 중산층 감소를 부채질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중 스페인에 이어 두번째로 높았다.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도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위험 요소다. 교육비 가운데 사교육비 비중이 1982년 13.5%에서 지난해 63.6%로 4.7배가 됐다. 단기적으로는 중산층의 경제력에 타격을 주고 장기적으로는 학력의 양극화를 낳는 이유가 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9월 발생한 글로벌 경제위기는 중산층을 더욱 배겨내기 힘든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임시·일용직과 영세 자영업자 등 취약 계층을 중심으로 일자리와 소득이 줄면서 중산층에서 빈곤층으로 빠른 속도로 전락하고 있다. 소득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지난해 도시가구 기준 0.325로 통계청이 관련 자료를 보유한 199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산층이 엷어지면서 개인들의 삶이 불행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 전체적으로도 발전동력이 약화되는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주형환 기획재정부 성장기반정책관은 “중산층은 사회 안정과 균형 발전의 기반으로 개혁, 개방, 자유화를 이끄는 근간”이라면서 “중산층의 위기는 변화의 통로를 막아 사회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고 말했다. 중산층, 그 중에서도 임시·일용직과 영세 자영업자 중심의 중하층(중위소득의 50~70%)은 사회로부터의 보호 수준도 다른 어떤 계층보다 취약하다. 현재의 사회안전망이 공공부조(빈곤층)와 사회보험(중간층 이상) 중심이어서 중하층은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열린세상] ‘니체’와 ‘나체’ 그리고 ‘사다함의 매화’/김진 울산대 철학과 교수

    [열린세상] ‘니체’와 ‘나체’ 그리고 ‘사다함의 매화’/김진 울산대 철학과 교수

    시중에 이런 유머가 있다. 전직 대통령들과 이명박 대통령이 함께한 자리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를 쓴 저자가 누구인가를 물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눈을 지그시 감고 한참을 생각한 후에 ‘니체’라고 대답하자, 노태우 전 대통령은 그것을 커닝하여 ‘나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점잖지 않게 나체가 뭐냐.”라고 하면서 ‘누드’라고 말하였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우리말을 써야지” 하면서 ‘벌거숭이’라고 답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망설이고 있을 때, 도올 김용옥이 나서서 이런 경우에는 여러 사람들이 말한 것이 정답이라고 했다. 사실적 진리의 측면에서 보면 니체가 정답이다. 그러나 지록위마(指鹿爲馬)를 말한 승상 조고(趙高)와 같은 절대 권력자나, 혹은 민주주의의 기본이 되는 다수결의 원칙에서 보면 나체 시리즈가 정답으로 취해질 수도 있다. 조고의 경우처럼 강요된 거짓 진리는 권력이 해체되면서 효력이 상실되지만, 스스로 거짓 진리를 옳다고 믿을 경우에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기 전까지는 고치기가 쉽지 않다. 한때 유럽인들은 몽골군을 동방의 ‘사제왕 요한’의 군대로 오인한 적이 있었다. 이슬람 세력이 강성해지면서 1146년에 예루살렘 왕국의 동북방 도시 에데사(현 터키 동남부 우르파)가 초토화되고, 4만명 이상의 기독교 주민들이 희생되면서부터 유럽인들은 동방의 사제왕 요한이 이슬람의 위협으로부터 자신들을 구제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기 시작한다. 그로부터 91년 후인 1236년, 칭기즈칸의 셋째아들로서 제2대 칸에 오른 오코타이는 자신의 조카 바투에게 유럽 침공을 명하였다. 바투의 12만 몽골군은 1240년에 러시아 전역을 장악했으며, 이듬해에는 폴란드와 독일의 연합군 2만명을 괴멸하고 헝가리 전역을 초토화하였다. 사제왕 요한에 대한 유럽인들의 근거 없는 신앙은 몽골군이 이슬람의 유럽 침공을 저지할 원군이라고 착각하게 함으로써 치명적인 피해를 불러왔다. 지금 우리 사회에도 이 같은 치명적 오해들이 준동하고 있다. 이들은 북한의 원폭과 미사일 발사 실험 비용의 출처를 밝히려는 정부를 비난하고, 수일간 계속되었던 사이버 테러의 배후세력으로 지목된 북한을 비호하고 나섰다. 금강산 관광객이 총살되고 개성공단 관계자가 체포된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남북경색의 책임을 우리 정부에 돌리고 있다. 선거에 의하여 합법적으로 성립된 정부의 정책기조를 야권에서 전면 수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정신에 반하는 처사이다. 선거에서 패배한 정치인들은 집권한 후에 자신들의 포부를 펼치면 될 것이다. 야권, 특히 민주당은 현 정부의 주요 공약을 모조리 폐기하고, 우리 사회를 민주와 독재, 좌파와 우파의 대결장으로 재단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부터 대의민주정치의 근간에 충실하고 국회의 담론 규칙을 존중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은 약(藥)과 독(毒)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며, 모든 주장에도 장점과 단점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도(道)와 덕(德)과 법(法)을 말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좌도(左道)나 우도(右道) 한쪽에만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극단을 피하여 좋은 것을 취하고 나쁜 것을 삭이며 새로운 것을 창조함으로써 가장 현명한 선택에 이르고자 하는 중도(中道)나 중용(中庸)의 길은 그만큼 험난하다. 사제왕 요한과 같은 허구는 기망(欺妄)을 초래하는 유사종교적 코드일 뿐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이 권력유지의 비법으로 삼고 있는 ‘사다함의 매화’와 같은 요술상자도 부질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오직 성실하게 논의하고 이성적으로 타협하고 정성을 다하여 설득한 후에도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투표에 부치는 방식으로 정치일정을 진행시켜야 한다. ‘니체’가 ‘나체’가 되더라도 그것을 비판하는 것은 학자와 언론의 몫이고, 잘못된 것을 선거로써 바로잡는 것은 국민들의 몫이다. 김진 울산대 철학과 교수
  • [서울광장] 외로운 섬, 청와대/이목희 수석논설위원

    [서울광장] 외로운 섬, 청와대/이목희 수석논설위원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지난 대선때 이명박 캠프의 메시지 담당이었다. 아침마다 이명박 후보의 집으로 가서 깊은 얘기를 나누곤 했다. 당시 신 차관이 기자들을 향해 안타깝다는 식의 언급을 했다. “이 후보가 왜 안국동에 선거캠프를 차리는지 아느냐. 탈(脫)여의도가 이 후보의 핵심 컨셉트인데 기자들이 간과하고 있다.” 필자도 그때는 “기업인 출신이니까 그러겠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들었다. 다소간 캠페인성이니 신문 해설 한 줄 정도면 될 거라고 쉽게 넘겼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이 대통령의 참모들도, 언론들도 잘못 대처한 듯싶다. “대통령이 정치를 멀리하려고 한다.”는 것은 국가운영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다. 좀더 천착해서 분석하고, 대안을 내놓았어야 했다. 청와대는 구중궁궐이다. 대통령이 집무하는 본관에 가려면 수석비서관들도 자동차를 타고 간다. 최근 들어 이 대통령이 서민 행보를 강조하고 있다. 재래시장을 찾고, 전문가들을 청와대로 불러 의견을 나누고 있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동선은 단조롭고 딱딱하다. 본관의 일과가 끝나면 자동차를 타고 관저로 퇴근한다. 대통령 관저를 가본 적이 있는데 천장이 높고, 위용이 대단하긴 하지만 적막강산이다. 대통령의 고뇌를 알리는 대표적인 사진이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본관 집무실 창문 앞에 서서 밖을 내다보는 사진이다. 당시 언론들은 ‘고뇌하는 대통령’이라는 설명을 달았다. 박진 한나라당 의원은 그때 김 전 대통령 곁을 지킨 핵심비서관이었다. 박 의원은 “그 사진은 고뇌하는 사진이 아니라 외로워하는 사진”이라고 했다. “너무 외롭데이….”였던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무 분야에서 취약하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청와대가 대책 마련에 나섰다. 수석비서관회의를 월요일로 옮겨 주간 단위로 정무적 판단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 정도로 될까. 이 대통령 스스로 노력해도 기본 성정은 바뀌지 않는다고 본다. 특히 청와대의 구조가 ‘외로운 섬‘으로 남아 있는 한 현실 정치와 가까워지기 어렵다.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 밖으로 빼는 것도 한 방법이다.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 집무실을 꾸며 놓고 관리들과 정치인들을 수시로 만났으면 한다. 경호상 청와대 본관을 몽땅 옮기기 어려우면 제2, 제3의 집무실이라도 만들면 어떨까. 중앙청사, 과천청사, 여의도 국회의사당 등이 대상이 될 수 있다. 과거 여당은 대통령이 총재였고, 당사에 총재집무실이 있었다. 좀더 획기적인 발상을 하자면 국회의사당을 옮기는 방안이 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도 밤이면 적막강산이다. 한강으로 둘러싸인 채, 국민과 유리된 ‘외로운 섬’이다. 요즘 청와대와 정당·국회가 따로 노는 것을 보면 한강을 넘는 길이 이렇듯 멀고 먼가라는 한탄이 나온다. 국회의사당을 세종문화회관과 맞바꾸면 어떨까.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도심 한복판에 국회의사당이 있다. 국민들에게 친숙하고 대통령, 그 측근들과의 정치적인 교류가 쉽다. 여의도를 밤마다 문화가 꽃피는 한마당으로 만드는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맹형규 정무수석 등 청와대 관계자를 만나보면 나름대로 정치권과의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정무가 약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럴 때 형식을 과감히 바꾸면 출구가 보인다. 대통령이 정부 청사에, 국회의사당에 자주 나타나면 비서와 측근들의 발걸음은 더욱 잦아질 수밖에 없다. 이목희 수석논설위원 mhlee@seoul.co.kr
  • [단독]마이클 잭슨이 그린 자화상과 한국에 대한 연서(戀書), 국내에 있다

    [단독]마이클 잭슨이 그린 자화상과 한국에 대한 연서(戀書), 국내에 있다

    마이클 잭슨이 그린 자화상과 한국에 대한 연서(戀書), 국내에 있다 외환위기 당시 방한해 그림과 글 남겨/한국과 인연 많았던 마이클 잭슨 외환위기가 한창 고조되던 1997년 11월18일. 마이클 잭슨은 전북 무주군의 무조리조트에 묵고 있었다. 리조트 관계자와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측 관계자가 그를 초청한 데 응한 것이다. 그는 한국에 대한 투자를 검토하기 위해 방한중이었다. 그 날 그가 묵은 곳은 무주리조트 내의 특급 티롤호텔 501호(사진). 침실과 거실, 별도의 욕실에, 수행원 방까지 딸린 방이었다. 1박에 3백60만원의 정가가 책정돼 있는 프레지덴셜 룸이었다. 당시 그를 뒷바라지 했던 호텔측 관계자들은 그 날 그가 유독 잠을 못 이뤘다고 전한다. 그 시간 그는 창문 건너로 한 눈에 들어오는 리조트의 설원을 오래도록 응시했을 것이다. 이 때 그는 마치 동심으로 돌아간 듯, 자신의 침실에 그림과 글을 남겼다. 볼펜의 철심을 이용해 그가 침대 옆 나무 협탁에 어렵사리 아로새긴 것은 무엇일까? 그림은 다분히 만화 캐릭터를 닮아 있다. 그러나 긴 머리와 오똑한 코, 그리고 날렵한 턱선을 보면 자신이 꿈꾸던 자신이 모습과 흡사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는 자신이 꿈꾸던 자화상을 마치 서명처럼 남겨 놓았다. 반면 글은 자신이 처음 방문한 낯선 나라에 대한 것이었다. 그가 꾹꾹 눌러가며 쓴 그 글귀는 이렇게 돼 있다. “우리 아이들을 아끼고, 구해주십시오. 한국은 ‘신’(good의 오기(誤記)일 수도 있으나, 선명하게 god라고 쓰여 있다)이고, 무주는 사랑입니다. 영원한 사랑을 담아( LOVE and SAVE OUR CHILDREN. KOREA IS GOD AND MUJU IS LOVE. LOVE always)”(아래 사진) 머나먼 이국 땅에서 낙서로 뒤척이던 그는 새벽녘 배가 고프다면서 룸서비스를 요청했다. 메뉴를 고심하던 호텔 관계자들은 고추장을 넣지 않은 비빔밥을 제공했다. 당시 비빔밥을 만들었던 구철호 현 총주방장(46, 아래 사진)은 “마이클 잭슨이 당시 처음 맛을 들인 비빔밥을 평생에 걸쳐 좋아했다는 얘기를 나중에야 알게 됐다”고 회고한다. 방한 이틀째도 호텔에서는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투자 양해각서 체결을 위해 전라북도 관계자들을 만나는 자리에 나갈 때였다. 그 자리에 입고 갈 옷을 서울에 두고 왔다는 것이다. 그는 한사코 사전에 정해둔 그 옷만을 고집했다. 호텔 관계자들은 부랴부랴 헬기를 동원해 서울에 다녀올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호텔 관계자들에 따르면, 그가 단순히 까다로웠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만큼 한국인들에게 예의를 갖추고 싶어 했다. 한국에도 강한 애착을 갖고 있었다. 당초 그와 한국의 인연은 앨범 발표 후 잇단 세계 투어로 이어졌다. 그는 <BAD>(1987)나 <DANGEROUS>(1992) 등의 앨범을 발표한 후 세계 1백여개국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유독 한국과는 인연이 닿질 않았다. 1980년대 후반은 국내의 불안정한 정치 상황 때문에 공연이 무산됐다. 90년대 초반에는 한국 정부의 반대로 무대에 설 수 없었다. 1993년 미 로스앤젤레스(LA) 흑인 폭동 당시 한인과 흑인 사이에 갈등과 반목이 고조되자, 그는 재차 내한 공연가능성을 타진했다. 당시 미 정부까지 거들고 나서 성사 직전 단계까지 갔다. 김영삼 대통령은 외신과의 인터뷰 당시 마이클 잭슨의 서울 공연을 기정사실화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공연을 허락한 시점은 이미 예정 일정을 한참 넘긴 후였다. 공연에서 비롯된 인연으로 그는 한국에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방한 이틀째인 19일에는 투자와 관련한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이틀 뒤에는 서울 동교동을 찾아 김대중 당시 대통령 당선자와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김대중 당선자의 취임 후 남북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공연을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한국이 최후의 분단 국가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마이클 잭슨은 이듬해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도 참석했으나, 판문점 공연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안전에 대한 우리 정부측의 우려 때문이었다. 1999년 TV로 생중계 되던 잠실주경기장 공연 당시 그는, 한반도 통일이 이뤄질 때 다시 한 번 기념 공연을 하기로 한국민에게 약속했다. 그리고 오늘 새벽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그는 영원히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됐다. 서울신문NTN 이여영 기자 yiyoyong@seoulntn.com / 사진=이여영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열린세상] 에밀의 루소가 한국에 온다면/최창일 현대시인협회 이사·시인

    [열린세상] 에밀의 루소가 한국에 온다면/최창일 현대시인협회 이사·시인

    수험생 김군은 새벽녘까지 입시공부에 시달리다 곤히 잠이 들었다. 단잠을 깬 아침, TV에서 나오는 ‘전직 대통령 자결’이라는 비보를 접하고 머리가 멍해졌다. 19년 삶 중 이처럼 충격적인 일은 없었다. 그는 ‘교실에서 배운 정치와 사회가 현실과 다르다는 걸 깨닫고 고민에 휩싸였다.’ 등교를 서두른 김군은 습기 찬 목소리로 선생님의 견해를 묻는다. 정년퇴임을 앞둔 교사 친구는 궁색한 분위기였다며, 시대를 노래하는 시인은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뭔가 말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 섞인 전화다. 필자 또한 선명하지 못하게 얼버무리며 전화를 놓았다. 때마침 시청 앞 광장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서거 국민장이 거행되고 있다. TV 화면에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얼굴이 크게 클로즈업되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돌아서는 전직 두 대통령은 서로 간에 인사말 한마디 없이 돌아섰다. 대통령이 봉하 마을에 조문을 가지 못한 것은 차치하더라도 장례식이 끝나는 순간까지 유가족에게 한마디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조차 국민들은 볼 수 없다. 이날 현장에서 지켜본 수십만 국민과 생중계로 지켜본 시선들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가슴에 담았을까. 전두환 전 대통령은 전립선 수술 일정이 잡혀서 참석하지 못했단다. 누가 뭐래도 전 대통령의 임기 중 청문회에서 세차게 몰아붙인 당시 노무현 의원 모습과 오버랩시키지 않을 수 없다. 건강이 여의치 못한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해선 의견이 없다. 어떻든 현직 대통령을 비롯해서 세 명의 전직 대통령은 국민들의 시선과 마음에 묘한 상상만 남겼을 뿐 위로의 모습이 되지 못한 것 같다. 등산을 가도 삼삼오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화제다. 어떤 사람은 자살은 미학이 될 수 없다고 한다. 다른 무리에선 현 대통령에 대한 질타가 쏟아진다. 자신도 임기가 끝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모르는 거냐며 모진 소리를 한다. 일요일엔 교회 목사님의 현 사태에 대한 설교를 들을 수 있었다. 내용은 정치색이 없다. 서울역 광장의 노제에 대단한 불만을 설교했다. 노제란 미신이라는 것이다. 수십만의 사람이 운집한 자리에 기독인이 있었다면 큰일 날이라며 회개하라고 한다. 교회 문을 나서면서 국민들은 어디에 머리를 두고 살아야 할지 참으로 난감하다. 초등학생이나 내일의 행복을 꿈꾸는 청소년이 전임 대통령의 자살을 묻는다면 무슨 답변이 가장 적합할까? 전직 두 대통령이 눈을 감고 한마디 인사도 없이 앉아 있는 모습, 잔뜩 화난 표정을 무엇이라고 설명하여 줄까? 교육심리학 전공 교수는 “전두환, 노태우 전직 대통령 두 분의 옥살이는 옳지 않았다. 벌금형으로 마무리했어야 했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결이라는 극단적 방법도 자라나는 어린이의 교육문제에 반드시 크게 화가 되는 시간이 올 것이다.”라고 했다. 무형(無形)의 교육에 무척이나 옳지 않은 사례가 된다고 말한다. 보이는 교육만이 능사가 아니다. 무형의 교육은 교실이 아닌 어른들의 일거수일투족으로 청소년의 눈에 다가서고 있다. 전직 대통령이나 현직 대통령은 무형의 교육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듯싶다. 대통령만의 문제가 아니다. 법의 집행자를 비롯한 어른들은 무형의 교육의 교사다. 에밀의 저자며 교육론의 권위자인 루소가 한국에 온다면 청소년의 희망은 ‘무형의 교육’에 있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한명숙 전 총리와 문재인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영결식장에서 야유를 당한 이명박 대통령에게 미안함을 전하는 예의 갖춤이 바로 무형의 교육이다. 어떤 이는 영결식장에는 한명숙, 문재인만 보이더라고 한다.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의 말로가 초라하다 못하여 대역죄인으로 낙인 찍힌다면 참으로 난감하다.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들의 앙케트에서 존경하는 인물란에서 가장 많이 차지하는 순위가 나라 밖의 링컨과 케네디, 간디라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게 모두 무형의 교육이 무너진 결과가 아닌가! 최창일 현대시인협회 이사·시인
  • [전국플러스] 정약용 역사공원 19일 설명회

    다산 정약용의 18년 유배지인 전남 강진군에 다산 역사 주제공원이 색다르게 만들어져 19일 설명회를 연다. 지난 3월 마무리된 도암면 다산 주제공원에는 다산 동상(높이 3.8m)이 있고 주변에 49개의 국내 유명 인사들이 쓴 명언비(0.3~4.5m)가 세워졌다. 명언 비 앞면에는 초등학생에서부터 90세 할머니, 전직 대통령, 문화예술계 인사 등 각계인사 85명이 다산 선생의 목민심서 등에서 뽑아 낸 주옥 같은 명언들을 직접 쓴 글이 새겨졌다. 김영삼 전 대통령, 임권택 영화감독, 오웅진 신부, 탤런트 최불암씨, 김남조·오세영 시인, 이승엽 야구선수, 장미란 역도선수 등이 명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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