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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김무성·박지원 구태벗은 소통정치 하기를

    천안함 참사를 겪고 지방선거를 목전에 둔 시점에 여야의 원내사령탑이 모두 바뀌었다. 한나라당 김무성·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어제 국회에서 상견례를 가졌다. 여야가 근시안적 당리에 사로잡혀 강퍅한 대치를 일삼던 구태에서 벗어나 긴 안목으로 생산적 경쟁을 펼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공교롭게도 두 원내대표는 김영삼·김대중 두 전 대통령으로부터 정치를 배운 인물들이다. 이들은 각기 한국 정치사에서 오랜 세월 뿌리를 내려온 상도동계와 동교동계 출신으로 평소 호형호제하는 사이라고 한다. 그래서 공개든, 물밑 대화든 소통의 통로가 확보되었다면 퍽 다행한 일이다. 걸핏하면 무한정쟁으로 치닫곤 하는 척박한 정치 풍토를 일신할 수 있는 기회라는 차원에서다. 두 원내대표가 첫 회동에서 이달 중 원포인트 국회 본회의를 열어 시급한 민생법안을 처리키로 합의한 대목도 그런 기대를 갖게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개인적 친분만으로 상생 정치나 생산적 국회를 낙관하기에는 한국 정치가 정상 궤도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 있다. 순수한 정책적 판단문제조차 선악 개념으로 쉬이 대치해 버리는 악습이 체질화돼 있다는 얘기다. 더욱이 상도동계와 동교동계 출신 원내사령탑의 동시 복귀가 이른바 ‘적대적 공생’을 기반으로 한 ‘양김 정치’의 부활이어선 안 될 말이다. 지역 맹주를 중심으로 한 패거리 정치, 깜짝쇼가 상징하는 밀실 정치의 재연은 그야말로 한국정치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일이다. 박 원내대표의 “대통령이 성공해야 나라가 산다.’는 취임 일성에 김 원내대표는 어제 “통 큰 정치를 하자.”고 화답했다. 부디 이런 덕담이 공치사가 아니길 바란다. 제발 그런 초심을 잊지 말고 허심탄회한 소통과 대국적 절충으로 우리 정치의 품격을 한 단계 끌어올려야 한다. 그런 절차상의 민주적 의정 구현 이상으로 내용 면에서도 상대 당에 대한 낙인찍기나 말꼬리 잡기식 비방전이 아니라 정책 콘텐츠 경쟁을 통해 국민적 지지를 모으는 선진 정치를 펼치기 바란다. 독주하는 여당이나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야당 모두 국가의 진운과 국민의 복리 증진을 가로막는 걸림돌임을 명심해야 한다.
  • YS “박정희가 제일 나빠” 김무성 만난 자리서 비난

    YS “박정희가 제일 나빠” 김무성 만난 자리서 비난

    김영삼(얼굴) 전 대통령은 10일 김무성 원내대표 등 한나라당 신임 당직자들의 예방을 받는 자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제일 나쁜데 국민들이 긴급조치 때 괴로웠던 얘기들을 다 잊어버렸다.”며 박 전 대통령을 강도높게 비난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상도동 자택을 찾은 김 원내대표가 “원내총무만 다섯 번이나 하셨는데 그때는 어땠는가.”라고 묻자 자신의 의원직이 제명됐던 것을 언급하면서 “쿠데타 세력이 제일 나쁘다.”고 다시 말했다. 한때 친박(박근혜)계의 ‘좌장’으로 일컬어졌던 김 원내대표가 껄끄러운 듯 “민주화 투쟁의 스승인 김 전 대통령에게 의회주의를 배웠다.”고 화제를 돌리자, 김 전 대통령은 “여당이 양보도 해야 하지만 야당도 다수를 인정해야 한다.”면서 “국회에서 다수결의 원칙이 살아나야 민주주의가 꽃을 피울 수 있다.”고 말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김영삼 전 대통령 기록전시관 8일 개방

    김영삼 전 대통령 기록전시관 8일 개방

    경남 거제시에 건립된 김영삼 전 대통령 기록전시관이 8일부터 문을 열고 손님을 맞는다. 거제시는 7일 장목면 대계마을에 지난달 완공된 김 전 대통령의 기록전시관을 8일부터 개방한다고 밝혔다. 시는 지난달 9일 개관식을 갖고 개방할 예정이었으나 천안함 침몰사태에 따른 국민적인 애도 분위기를 고려해 개관식을 늦추었다. 시 관계자는 “공사가 끝난 기록전시관을 그냥 내버려두기보다는 개방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판단에서 관람객들을 맞기로 했으며 개관식은 지방선거가 끝난 뒤에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록전시관은 대계마을에 있는 김 전 대통령 생가 옆 1347㎡ 부지에 모두 50여억원을 들여 2층 규모로 건립됐다. 전시관에는 김 전 대통령의 학창시절과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던 모습, 군사독재에 저항하며 민주화 운동을 펼치던 모습들이 담긴 사진과 영상 자료, 김 전 대통령의 활동을 알 수 있는 문헌자료 등이 전시돼 있다. 조깅화, 취임식 때 입었던 양복 등 김 전 대통령의 물품도 곳곳에 진열돼 있다. 전시관은 매주 월요일과 설·추석을 제외하고 날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문을 연다. 운영은 거제시시설관리공단에서 맡아 한다. 거제시 관계자는 “김 전 대통령의 생애를 전시관에서 한눈에 살펴볼 수 있으며 기록전시관 출구가 생가와 연결돼 있어 관광객들이 다양한 볼거리를 구경할 수 있다.”고 말했다. 거제시는 전직 대통령 기록물을 보존하고 대통령 출신 고장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2007년 전시관을 건립하기로 결정하고 지난해 4월 착공했다. 거제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민주 새 원내대표에 박지원

    민주 새 원내대표에 박지원

    민주당의 새 원내대표로 재선의 박지원(68) 의원이 선출됐다. 박 의원은 7일 민주당 재적의원 88명 가운데 81명이 참가한 원내대표 경선 결선투표에서 49표를 획득, 31표에 그친 강봉균 의원을 누르고 당선됐다. 박 의원은 1차투표에서 34표로 1위를 차지했으나 재적 과반수(45명)에 미달, 2위인 강 의원(17표)과 결선에 진출했다. 김부겸 의원은 16표, 박병석 의원은 10표, 이석현 의원은 5표를 받았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DJ의 복심’으로 불리던 박 의원은 제1 야당 정책위의장에 이어 원내 사령탑에 오르면서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특히 경선 내내 “국회가 최상의 투쟁장소”라며 원내 협상을 강조해 타협의 ‘여의도 정치’가 부활하리라는 기대감이 높아졌다. 당선 직후 기자회견에서도 “투쟁은 지양하겠다. 반대만 하는 야당이 되지 않겠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먼저 변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카운터파트인 한나라당 김무성(59) 신임 원내대표와 ‘형님, 동생’ 하는 사이로 알려졌다. 박 의원은 “김 대표가 김영삼 정부 시절 내무부 차관을 할 때 처음 만난 이후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얼마 전에는 김 대표가 ‘형님이 정치를 한 번 살려보라.’고 했다.”고 소개했다. 김 대표도 “야당의 얘기를 더 많이 듣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 정치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상도동계와 동교동계의 후예들이 꽉 막힌 의회정치를 풀 수 있을지 주목된다. 혼전을 거듭한 경선에서 박 의원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강경일변도의 투쟁으로 거대 여당에 맞섰지만 얻은 것은 없지 않으냐는 자성론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국정 경험과 경륜에서 오는 정치적 무게감으로 대여 관계에서 정치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를 낙마시킨 인사 청문회에서 보여준 활약상 등 성실한 의정활동도 당선 요인이 됐다. 당권파인 친노(親)·386 그룹의 집단적인 지지도 힘이 됐다. 그는 이날도 새벽 5시30분에 인천공항에 나가 귀국하는 문희상·신건·박영선 의원을 ‘영접’하는 등 경선에 공을 들였다. 박 의원은 취임 일성으로 “대권 후보들이 다 지도부에 들어와야 한다.”며 집단지도체제로의 당헌·당규 개정을 요구했다. 현재는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분리해 뽑고 있으나, 지도부 경선을 통해 1위 득표자가 당 대표를 맡게 하자는 것이다. 박 의원은 “그래야 비주류의 목소리가 반영된다.”고 강조했다. 또 강원, 충청, 경북, 경남, 제주 몫의 최고위원을 임명해 전국정당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헌 논의와 관련해선 “개인적으로 분권형, 정·부통령 4년 중임제에 찬성한다.”면서 “어떤 개헌이든지 여야가 충분히 협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약 력<< ▲1942년 전남 진도 출생 ▲단국대 경영학과 ▲미주지역한인회 총연합회장 ▲14대 국회의원(대변인 4년) ▲청와대 공보수석 ▲문화관광부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 ▲김대중평화센터 비서실장 ▲18대 국회의원 ▲민주당 정책위의장
  • [씨줄날줄] 김정일 고소공포증/박대출 논설위원

    2007년 7월 미 뉴욕타임스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한국처럼 첨단기술 좋아하는 나라에서 무속신앙 부활’ ‘한국인 160명당 1명이 무속인’ 대선을 앞두고 역술가를 찾는 정치풍토를 꼬집은 것이다. 역대 정치인 중 역술 신봉자를 꼽으면 황낙주 전 국회의장이 선두권이다. 그는 국회부의장 시절 의장 등극을 확신했다. 단골 역술가의 예언을 믿는다고 했다. 역대 대선 후보들의 관련 일화는 적지 않다. 1992년 옛 민자당 때 관훈동 당사를 여의도로 옮겼다. 김영삼 후보는 구 당사에 사진을 남겨놓았다. 풍수지리 전문가가 구 당사의 기를 받아야 한다고 주문한 것이다. 이명박 후보 때도 풍수·지리 전문가가 후보 거처를 둘러봤다. 지금의 한나라당 정병국 사무총장이 주선했다. 김대중·이회창 후보 때도 나름의 스토리들이 있다.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단골 보도가 또 등장했다. 유명 역술인 집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한국만의 얘기가 아니다. 인도는 점술의 나라다. 점술은 인도인이 열광하는 세 가지 중 하나다. 결혼·취업부터 차를 사거나, 연인에게 고백할 때도 점을 본다. 나머지 둘은 영화와 크리켓 경기다. 1985년 11월19일 레이건과 고르바초프 간에 미·소 정상회담이 열렸다. 레이건 대통령 부인 낸시 여사의 단골 점성술사가 택일했다. 처칠, 드골, 스탈린, 히틀러도 점술을 선호했다는 기록이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포린폴리시가 세계 지도자들의 독특한 집착증과 공포증을 소개했다. 점성술을 신봉하는 미얀마 독재자 탄 슈웨 얘기도 실렸다. 그는 양곤에서 전기와 수도조차 없는 네피도로 수도를 이전했다. 점성술사의 예언 때문이라고 한다. 다른 지도자들은 주로 공포증과 관련돼 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이번 중국 방문 때도 열차를 이용한 배경이 보도됐다. 1976년 헬기 추락 사고로 생긴 비행 공포증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널리 알려진 얘기다. 카다피 리비아 지도자의 폐쇄공포증도 마찬가지다. 왕국을 호령하는 최고 독재자들에게 어째 어울리지 않는다. 메르켈 독일 총리가 개를 무서워하고,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말을 무서워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집착증은 기대는 심리고, 공포증은 도피하는 심리다. 상반되나 공통분모가 있다. 심리적 허약함을 채우고, 안정을 얻으려는 욕망이 그것이다. 과학적 근거 여부는 본질이 아니다. 일가(一家)를 이룬 인물들도 이렇듯 불완전한 존재다. 사소한 것에 집착하고 두려워한다. 범인(凡人)에겐 위안이 된다. 박대출 논설위원 dcpark@seoul.co.kr
  • “깜깜한 새벽에도 희망 가져야”

    │상하이 김성수특파원│상하이 엑스포 개막식 참석차 중국을 방문 중인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 여사는 30일 현지 임시정부 청사를 찾는 것으로 방중 일정을 시작했다. 전용기 편으로 상하이 푸둥(浦東)공항에 도착한 이 대통령 내외는 류우익 주중대사 등의 안내로 시내 루완(灣)구 마당(馬當)로에 있는 임정 옛 청사를 방문, 시설을 둘러보고 독립유물 등을 관람했다. 이 대통령은 중국 측 관리 책임자들에게 청사 보존을 위해 협력해 줄 것을 당부한 뒤 방명록에 ‘애국선열들의 뜻을 이어받아 선진일류국가를 만들겠습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청사 집무실에서 이 대통령은 ‘애타애기(愛他愛己)’, ‘광명(光明)’ 등의 글이 담긴 액자를 보고 “그때 광명이 얼마나 그리웠겠느냐. 깜깜한 새벽이었을 텐데…”라면서 “항상 희망을 가져야 한다. 절망 속에서 절망만 생각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연립주택형 3층 건물의 상하이 임정 청사는 1926년부터 5년간 우리 임시정부가 사용했던 건물로, 노무현·김대중·김영삼·노태우 전 대통령 등도 재임기간 모두 방문한 바 있다. 이 대통령 내외는 이어 루쉰(迅)공원 내에 위치한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을 찾아 역사자료 등을 둘러본 뒤 방명록에 ‘나라와 겨레에 바치신 뜨거운 사랑, 부강한 조국으로 보답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이 대통령은 2006년 4월부터 대통령 당선 직전까지 매헌 윤봉길 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재직했다. sskim@seoul.co.kr
  • 만화가 김영하 “내 작품만 2000권…복간은…”

    만화가 김영하 “내 작품만 2000권…복간은…”

    만화가 김영하는 1947년 평안북도 박천 출생으로 한국전쟁 당시 부모님과 자신만 남한땅을 밟았다. 한국엔 먼 친척뻘 형만 한명 있을 뿐이다. 의지할 친척은 없었지만 형제들은 많았다. 김영하는 7남매 중 장남이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김영하는 전문적으로 미술을 배운 적이 없다. 하지만 학창시절부터 책의 귀퉁이에 작은 그림을 그리며 어렴풋이 ‘그림’에 대한 꿈을 꿨다. 틈틈이 연습장에 그린 만화를 교실 뒤에 붙여놓으면 다른 친구들이 보고선 낄낄거렸다.  고3때, 작품공간은 교과서 한쪽에서 극장 간판으로 변했다. 서울 왕십리 어느 극장의 간판을 그리게 됐다. 몇달이 지났을 무렵, 지나가던 한 신사의 “네 그림체는 만화에 더 어울리겠다.”는 말을 듣고선 자신의 길이 만화가임을 깨닫게 됐다. 이후 시내버스 안에서 만화 대본을 들고 있던 ‘만화가 문하생’들을 우연히 마주친 것이 그 꿈을 실현시킨 계기였다. 이들 문하생과 서울 용두동 작은 방에 모여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기본으로 한 만화를 그렸고, 무작정 출판사로 찾아가 작품을 들이밀었다.  당시 편집장은 그 만화를 싣지 않았지만 김영하의 그림 실력은 인정했다. 스토리를 주며 작품도 의뢰했다. 열아홉살 때였다. 당시 돈으로 원고료 1000원을 받았다. 작품을 함께 한 셋이서 300원씩 나누고, 남은 100원으로 돼지갈비 석대와 막걸리 두되를 사먹었다. 하지만 작품은 자신의 이름이 아닌 출판사의 ‘대표 만화가’ 이름으로 나왔다.  이 작품은 오래 그리진 못했지만, 다른 만화가 밑에서 일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행운아’ ‘대성공시리즈’로 유명한 김기백 화백을 2년간 도왔다. 그의 이름으로 그린 첫 작품은 ‘주머니대장’이다. 기백이란 가명으로 그리던 작품의 3권째부터 자신의 이름 석자를 새겼다. 1967~1968년쯤의 일이다. 김영하는 이때부터 1997년 은퇴할 때까지 최소 2000권 이상의 작품을 그렸다. 30년 만화가 세월을 3시간여 인터뷰를 통해 되새김해 본다.  ▲ 은퇴후 작품활동이 없어 궁금했다. 어떻게 지냈나.  - 5년전 이곳으로 내려와 아내와 함께 작은 텃밭 가꾸는 재미로 살고 있다. 지난해 별로 작황이 좋지 않아 이번 겨울에 소똥을 3부대나 쏟아부었다. 지금도 잡초 뽑다가 들어왔다. 손녀들이 오면 마당에서 뛰어놀기 때문에 약을 치면 안된다.  ▲ 마지막 작품이 1997년 ‘요괴헌터’던데. 갑작스러운 은퇴였다.  - 요괴헌터 뒤에 한 PC잡지에 연재를 했는데 얼마 못 했고, 소년중앙에 연재한 요괴헌터가 사실상 마지막이다. 은퇴를 할 때쯤엔 나이가 많다보니 회식을 해도 상석에 앉히고, 완전히 원로 취급이었다.(웃음) 젊은 애들하고 ‘맞네 안맞네’ 이런 말도 나오고 나도 하기가 싫어졌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됐다. 마흔살까지만 하겠다고 처음부터 마음먹었는데, 막상 마흔살이 되니 인기가 더 올라가고 돈도 잘 벌고 그래서 좀 더 하게 됐다.  ▲ 은퇴에 뭔가 ‘만화적인 이야기’가 있을 줄 알았는데…어찌 보면 팬들이 실망할 수도 있겠다.  - 내 만화는 있으면 보고, 없으면 마는 작품이었는데 그런 팬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만화가가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많은 작품을 했고, 행복했다. 이제는 또 다른 삶을 살고 있어서 미련이 없다.  ▲ 얼마나 많은 작품을 했나.  - 한창 바쁠 때는 문하생들 15명과 함께 한 적도 있다. 잡지에 싣는 분량만 한달에 300페이지나 됐다. 대본소 것으로 봤을때 한달에 평균 9권(일반 단행본 3권 분량)만 잡아도, 1년 열두달 30년 했으니 2000권은 될 거다.  ▲ 어떻게 그렇게 많이 그릴 수 있었나.  - 같이 일하는 작가들이 여럿 있었다. 처음에 캐릭터의 특성을 설명하고 대강의 얘기를 잡아주면 나중에 다른 사람이 밑그림을 그리는 식이었다. 15명까지 함께 일해 봤다.  ▲ 그 많은 식구를 다 먹여 살릴 수 있었나.  - 아내가 매일 밥 해 먹이느라 고생이 많았다. 수입은 한창 때는 한달에 9권씩 그렸는데 그러면 원고료가 웬만한 공무원보다 2~3배는 많았던 거 같다. 80평(264㎡) 되는 집도 사고 100평(330㎡)짜리 건물도 사서 사무실로 썼다. 만원인 버스를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으니 나름 괜찮았던 것 같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뭔가.  - ‘고봉이와 페페’라고 펭귄이 나오는 건데, 보물섬 창간호때부터 함께 했던 작품이다. 보물섬이 창간하던 해에 ‘아기공룡 둘리’를 제치고 ‘최고상’을 받았다.  ‘요술공주 보배’가 가장 인기를 끈 작품이고, ‘짬보람보’가 가장 오래 연재한 작품이다. 요술공주 보배는 그때 당시 아내는 요술쟁이라는 드라마(미국 시트콤)를 보고 힌트를 얻었고, 짬보람보는 람보·코만도가 인기 있어서 생각해 냈던 것이다.  순수하게 내가 새로 만들었다기보다 차용한 게 많았다. 초기에 김기백 선생과 함께 일하면서 캐릭터를 구상할 때도 데스카 오사무(아톰 원작자)와 치바 테츠야(허리케인 조 원작자) 그림을 합쳐서 다른 인물을 그려냈다.  ▲ 하늘을 찌를듯 위로 오똑 솟은 콧날과 캐릭터 얼굴에 ‘x’표시가 있는 게 특징이라던데.  - 개구쟁이의 느낌을 표현하려 한 거다. 성깔 있고 왈가닥스러운 느낌을 주려고 했다.  ▲ 꾸리·꺼비·꽁이, 펭킹, 최고봉… 캐릭터 이름이 다 재미있다.  - 쉽게 지어야 더 쉽게 읽히니까 그랬다. 그림체도 그래서 되도록 쉽게 단순하게 그리려고 했다. 사실 나도 원래 본명이 김영삼인데, 어느날 점쟁이가 내 이름을 보더니 “이름이 똑같은 사람 2명이 동시에 출세하는 법은 없다.”고 말했다. 그때 김영삼 전 대통령이 신민당 원내총무를 지냈을 것이다. 그래서 내 필명은 ‘김영하’로 바꿨다.  ▲ 펭킹라이킹은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됐었는데.  - 내 원작을 바탕으로 했는데, 실제로 내가 애니메이션에 참여한 부분은 없다. 애니용 캐릭터를 그릴 때 내가 좀 틀을 잡아주고 했어야 했는데 워낙 바쁜 때라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원래 내 캐릭터보다 좀 더 길쭉하게 그려져서 ‘똘망똘망’한 느낌이 사라진 거 같다.  ▲ 그런 캐릭터들이 그립다는 팬들이 많다. 복간에 대한 계획은 없나.  - 후배가 원고 있으면 (복간을 위해) 달라고 하는데, 일단 이사오면서 책을 다 싸놔 정리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서울에 살 때 지하실에 예전 책을 보관해 놨는데 다 곰팡이가 슬어서 ‘풀죽’이 됐다. 글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영상 서울신문 나우뉴스TV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 “새만금은 세계로 뻗는 경제고속도로”

    이명박 대통령은 27일 “새만금방조제는 단순한 방조제가 아니라 동북아를 넘어 세계로 뻗어가는 대한민국의 미래 경제고속도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전북 군산 새만금방조제 준공식에 참석, 치사를 통해 이같이 말하고 “지역 한계를 벗어나 마음의 문을 활짝 열 때 새만금의 미래도 활짝 열릴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20년 전 첫 삽을 뜬 뒤 강산이 두 번은 바뀌었을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개발과 환경의 가치가 갈리며 국론이 분열되면서 전북도민의 애타는 염원에도 불구하고 새만금 사업은 표류를 거듭해 왔다.”면서 “우리 모두가 합심해서 사업을 진척시켰다면 훨씬 적은 비용과 짧은 기간 안에 사업을 완결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준공식에 참석한 직후 보슬비가 내리던 귀경길에 충남 아산시 현충사를 예고 없이 방문했다. 현직 대통령이 현충사를 찾은 것은 1995년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방문 이후 처음이다. 이 대통령은 현충사 본전에서 충무공 영정을 한참 바라보다가 참배한 뒤 방명록에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반드시 죽으려고 나아가면 살고, 반드시 살려고 하면 죽는다)’라고 글을 남겼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천안함 46용사 추모]국내외 끊이지 않는 추모행렬

    [천안함 46용사 추모]국내외 끊이지 않는 추모행렬

    │워싱턴 김균미·도쿄 이종락특파원·서울 김병철 김양진기자│천안함 ‘46용사’ 장례 사흘째인 27일 정·재계 등 각계 인사들의 조문이 잇따랐다. 오전 평택 해군2함대사령부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를 찾은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유가족들의 손을 잡고 “힘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용기를 내라고 위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샤프 한미연합사령관, 한승수 전 총리도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는 재계 인사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조석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헌화를 한 뒤 방명록에 ‘조국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천안함 장병들의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국가발전에 온 힘을 쏟겠습니다. 조석래’라고 썼다. 앞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재원 SK E&S 부회장과 김창근 SK케미칼 부회장, 이창규 SK네트웍스 사장 등과 분향소에 들러 고인들의 넋을 기렸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을 비롯한 사장단 20여명과 서경석 GS그룹 부회장 및 계열사 사장단, 강유식 LG부회장과 남용 LG전자 부회장 등 LG그룹 사장단, 정준양 회장을 비롯한 포스코 임원단도 합동분향소를 방문했다. 한편 주미한국대사관도 26일(현지시간) 워싱턴 시내 대사관 통합청사 1층에 합동분향소를 설치했다. 한덕수 대사를 비롯한 주미대사관 직원들이 오후 분향소에서 검은 조의 리본을 단 채 헌화와 분향을 한 것을 시작으로 오는 29일까지 희망하는 재외국민의 분향을 받을 계획이다. 주일한국대사관은 27일 오후 도쿄 요쓰야 대사관에 마련된 빈소에서 권철현 대사와 직원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천안함 순직 장병들에 대한 추도식을 가졌다. kmkim@seoul.co.kr
  • MB “임기중 남북정상 안 만날 수도”

    MB “임기중 남북정상 안 만날 수도”

    이명박 대통령은 23일 청와대에서 김영삼·전두환 두 전직 대통령과 오찬을 함께 하며 천안함 사건 등 최근의 안보 현안에 대해 의견을 청취했다. 이 대통령은 오찬을 시작하며 “두 분 다 북한과 사연을 갖고 있지 않느냐.”면서 “나도 현대에 있을 때 KAL기가 떨어져서 많은 현대식구들이 죽었다. 참 가슴이 아팠다.”고 얘기를 꺼냈다. 김 전 대통령은 모친이 북한 간첩에 피살됐고, 전 전 대통령은 미얀마 양곤에서 북한의 테러를 당했다. 그러자 김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재직시절에 김현희를 만나본 일도 있다. 아주 똑똑하더라. 그런데도 나중에 북한에서 자작극이라고 하는 얘길 듣고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김 전 대통령은 재임시절 일어난 동해안 잠수함 침투사건을 언급하며 “당시에 북한에 강경하게 항의했고, 북한이 결국 사과를 했다.”면서 “이번에도 내가 볼 때는 (원인이) 100% 북한 어뢰다.”라고 말했다. 남북관계가 화제에 오르자 이 대통령은 “직·간접적으로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타진이 있었다. 그동안에 만남을 위한 만남, 정치적인 의도를 깔고 하는 만남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밝혔고, 심지어 임기중 한번도 안 만나도 된다는 입장도 밝혔다.”고 소개했다. 전 전 대통령은 “북한은 과거에도 한편으로 정상회담을 하자고 협상하면서 뒤로는 아웅산 폭발 사건, KAL기 폭파를 자행하는 양면전술을 구사해왔다.”면서 “그동안의 경험이나 판단으로 볼 때 북한의 소행임이 분명한데, 개성공단의 철수와 북한선박의 제주해협 자유통항 조치를 취소시키는 등 비상한 대응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전 대통령과 전 전 대통령은 전시작전권 전환과 관련해서 “반드시 연기해야 한다.”고 공감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MB “말보다는 행동으로 조치”

    MB “말보다는 행동으로 조치”

    이명박 대통령은 22일 천안함 침몰사건과 관련, “말을 앞세우기보다는 행동으로 분명하고 단호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밝혀온 ‘단호한 대응’이라는 표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구체적으로 응징을 하겠다는 뜻을 밝힌 점이 주목된다. 이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군 원로 초청 오찬간담회를 갖고 “(원인에 대한) 결론이 나오는 대로 단호한 대응을 할 것”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고 박선규 대변인이 전했다. 간담회는 예정보다 길어진 2시간 넘게 진행됐으며, 박세환 재향군인회장, 백선엽 육군협회장, 김종호 성우회장 등 예비역 장성 22명이 참석했다. 이 대통령은 “올해가 6·25전쟁이 일어난 지 60주년 되는 해인데, 60주년을 기념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우리 군 전반을 점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나는 기본적으로 군을 믿지만 관행적으로 계속 해 오던 일을 한번 철저하게 돌아보고 문제가 있는 부분은 과감하게 정비해야 할 때가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군 스스로 강한 군대를 만들어야 하며, 대통령도 강한 군대를 만들기 위한 합리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또 천안함 사건과 관련, “국제사회와 공조해 원인을 규명하고 있기 때문에 머지않아 1차 결과가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그때까지 참고 기다려달라. 나라를 사랑하고 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약해진 안보의식을 세우고 국민통합을 이루는 일에 (원로들이) 앞장서 달라.”고 당부했다. 한 참석자는 “이번 천안함 사태야 말로 전시작전통제권 이양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볼 계기를 만들어줬다.대통령께서 이 문제를 다시 진지하게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고 건의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이런 일은 얼마든지 또 일어날 수 있다. 철저한 점검을 통해 효과적인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면서 “그리고 그런 시스템이 시간이 지나면서 정치적인 논리로 유야무야되는 상태가 돼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중심을 잡고 해달라.”고 말했다. “지난번 위험을 무릅쓰고 백령도를 방문해 주신 데 대해 정말 감사드린다. 그리고 많이 놀랐다. 대통령은 위험을 감수하셨지만, 그것으로 군의 사기는 많이 올라갔다.”는 발언도 이어졌다. 이 대통령은 23일에는 김영삼·전두환 두 전직 대통령과 오찬간담회를 갖는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또 불거진 ‘北 =主敵’개념

    천안함 침몰 사건의 용의자로 북한이 거론되면서 6년 전 폐기된 ‘주적=북한’ 개념을 부활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정치권과 일부 언론 등으로 논란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주적 개념 부활 주장은 우리 군에게 싸워야 할 대상국을 특정해 주지 않아 정신무장의 해이를 초래했다는 지적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국방부는 ‘북한=주적’ 개념을 추진할 것이라는 일각의 시선에 대해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원태재 국방부 대변인은 21일 “주적 개념의 부활을 전혀 검토한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만일 북한이 천안함 사건의 배후로 최종 결론 날 경우에도 국방부의 입장에 변함이 없을지는 의문이다. 국방부가 조심스러운 것은 주적 개념이 이념갈등으로 번질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또 남북관계가 더욱 악화될 것을 감수해야 하는 부담도 있다. 이번 주적 개념 부활 논란은 19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한나라당 김옥이 의원이 처음 제기했다. 김 의원은 “군사분계선 일대에 대북 심리전을 위한 전광판을 복구할 필요가 있고, 국방백서에 주적 개념을 없애 정신무장이 해이해진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이에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그런 사항들은 조사 결과가 나온 뒤 검토해야 할 사안 중에 들어 있다.”고 답변했다. 1967년 첫 국방백서가 출간된 이후 주적이라는 표현은 김영삼 정부 때인 1995년 백서에서 처음 사용됐다. 이후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4년 백서에서 주적 개념은 삭제됐다. 1994년 3월 판문점에서 열린 제8차 남북한 실무접촉에서 박영수 북측 대표의 ‘서울 불바다’ 발언은 주적 개념을 처음으로 등장하게 했다. 김대중 정부 때인 2000년 백서에도 주적 개념은 유지됐다. 다만 6·15남북정상회담 등의 상황을 반영해 ‘무장간첩 침투 지속’ 등의 용어는 삭제했다. 주적 개념은 2004년 백서에서 삭제되는 대신 북한에 대해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 대량살상무기, 군사력의 전방 배치 등 직접적 군사위협’이라고 표기했다. 2006년 백서에서는 표현이 좀더 완화돼 ‘현존하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이명박 정부 초기에 발간된 2008년 백서에서도 주적이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다. 다만 북한에 대해 ‘직접적이고 심각한 위협’이라고 표기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4·19혁명 50주년] 주역들 지금은 뭐하나

    4·19혁명을 이끈 역사의 주역들은 지금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나. 반세기라는 물리적 시간이 흐른 만큼 백발이 성성한 70대 노인이 되어 상당수가 정치·산업 일선 현장에서는 물러나 있다. 4·19 주역 가운데에는 정치권에 진출했던 사람들이 유독 많았지만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때 30명 가까이 국회에 등원했지만 18대 현역 의원 중에는 한나라당 이경재 의원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 이 의원은 18일 “4·19 혁명의 주역들이 산업화 현장에서 역할을 하면서 민주화는 물론 산업사회로의 발전에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면서 “그러나 우리나라가 앞으로 선진 민주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법 질서의 확립, 전(全) 국민의 행복 추구권 확보, 통일의 완성 등 여러 가지 과제가 아직 남아 있다.”고 밝혔다. 4·19 혁명 당시 서울대 문리대 사회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 의원은 현재 4·19혁명 50주년기념사업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광화문에 기념 조형물 건립, 4월19일의 공휴일 지정 등 다양한 4·19 관련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처음 4·19를 ‘의거’에서 ‘혁명’으로 인정하고 수유리 묘지를 국립 4·19민주묘지로 격상시킬 때 청와대 대변인을 맡기도 했다. 당시 서울대 정치학과 1학년이던 김경재 전 민주당 의원은 최근 창당한 평화민주당의 전남지사 후보로 출마했다. 이 의원이 김 전 대통령의 대변인이었다면 김 전 의원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쪽 사람으로 분류된다. 당시 고려대 정경대 학생회장이던 이세기 전 의원은 서울에서 4선 의원을 지낸 뒤 지금은 한·중친선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당시 고려대 3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이재환 전 의원은 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있다. 정치권의 4·19 세대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정치권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가 2000년 16대 총선에서부터 본격적으로 퇴조에 접어들었다. 민주당 대표를 지낸 이기택 수석부의장은 16대 총선에서 패배한 후 정치적 영향력이 약해졌다. 한나라당 김중위 전 의원은 낙선한 뒤 17대 총선 때 공천에서 떨어지는 아픔을 겪었다.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이던 이우재 전 열린우리당 의원은 2004년 17대 총선 출마 때 당내 경선에서 패배한 뒤 한국마사회장을 끝으로 정치권을 떠났다. 중앙대 학생회 간부였던 민주당 유용태 전 의원도 17대 총선에서 서울 동작을에서 낙선한 뒤 정치 일선에서 멀어졌다. 중동고 3학년 신분으로 고교생 시위를 주도했던 설송웅 전 열린우리당 의원도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영광의 역사만큼 오욕도 적지 않다. 서울대 정치학과 학생회장으로 선언문을 낭독했던 윤식 전 의원은 10대 유정회 국회의원을 지내며 변절 논란에 휘말렸다. 각각 연세대와 동아대 재학 당시 시위에 참여했던 김원기·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입법부 수장까지 지냈지만 지난해 ‘박연차 게이트’에 휘말리는 시련을 겪었다. 김 전 의장은 지금도 민주당 상임고문으로 활동중이다. 경제계에서는 롯데관광개발 김기병 회장과 경동제약 유덕희 회장이 현역으로 뛰고 있는 ‘4·19 세대’로 꼽힌다. 김 회장은 한국외대 3학년 학도호국단 부위원장으로 있었고, 유 회장은 성균관대 학생운영위원장으로 시위에 참여했다. 김 회장은 이태섭 전 과학기술처 장관과 함께 4·19혁명기념사업회 공동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천안함 진실 은폐 위험”

    “천안함 진실 은폐 위험”

    민주당이 천안함 침몰 사태와 관련해 국방부장관과 해군참모총장의 해임을 공개 요구했다. 또 현 정국을 서민경제·남북관계·민주주의·법치주의·안보의 5대 위기로 규정했다. 송영길 최고위원은 6일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천안함 사고의 진상이 밝혀진 뒤 결과에 따라 국무총리 등 내각에 대해 총체적으로 책임을 추궁할지를 결정할 것”이라면서 “진상을 밝히고 구조인양작업을 제대로 진행하기 위해서라도 국방부장관과 해군참모총장은 즉각 교체해야 한다.”고 밝혔다. 송 최고위원은 국회가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할 것도 촉구했다. 그는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진상조사에 동의한 것을 환영한다.”면서 “생존자 58명의 증언이나 열상감시장비(TOD) 동영상, 사고 직전 교신 내용 등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고 있어 천안함 뒷부분이 인양되더라도 조사 내용이 조작되거나 은폐될 위험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는 “진상조사특위는 국정조사권을 갖는 형태로 구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송 최고위원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아야 하지만 북한 잠수정이 초계함의 레이더를 피해 스크루 소음도 안 나는 신종 어뢰를 발사해 1200t급 천안함을 한 방에 두동강 내고 귀신처럼 도망갔다면 대한민국 안보는 그야말로 백척간두에 서 있다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북한의 공격 가능성에 신중하게 접근할 것을 요구했다. 송 최고위원은 이어 “이명박 정권은 제2의 김영삼 정권이 돼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고환율로 경기를 부양하는 게 위험한 선택임을 깨달은 정부는 2009년에는 ‘화폐 발행 증가’라는 카드를 빼들었고, 전 세계적으로 출구전략이 논의되는 시점인데도 14개월째 2.0%의 저금리를 유지하며 중앙은행을 압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 최고위원이 대표연설을 한 데 대해 민주당은 “이강래 원내대표가 이미 두 차례 대표연설을 했고, 정세균 대표는 미디어법 처리에 대한 항의 표시로 의원 사직서를 냈기 때문에 수석최고위원이 나섰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인천시장 선거의 전략공천설이 나오는 송 최고위원을 띄우기 위해 배려한 측면도 있다. 한편 한나라당은 “지방선거 출마자로 거론되는 의원이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한 것은 선거운동을 하려는 정략적 목적”이라면서 “천안함 사고의 진상을 규명하는 게 먼저인데 국방부장관과 해군참모총장의 사퇴를 촉구한 것은 일의 앞뒤를 바꾼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곪아터진 교육비리] (상) 왜 이지경까지 왔나

    [곪아터진 교육비리] (상) 왜 이지경까지 왔나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 시절 시교육청 핵심 보직은 ‘특정지역’ 출신들로 채워졌다. 여기에 서울사대 출신이면 ‘성골’로 통했다. 정권에 따라 이런 현상이 예외없이 반복됐다. 김대중 정권과 호남을 기반으로 한 노무현 정권 때는 호남인맥, 박정희 정권부터 김영삼 정권까지 30여년간은 영남 출신들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다. 한국의 고질병인 지연·학연이 교육계에도 독버섯처럼 퍼져 있었고, 혈연까지 더해졌다. 때문에 교육계의 부패는 당연한 현상이었다. 교육계 내부에서도 지연·학연·혈연 구조가 비리의 온상이라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정부 수립 후 60여년 동안 칡넝쿨처럼 뒤엉킨 뿌리깊은 이 ‘비리 3종세트’를 확실하게 단절하지 않고는 미래가 없다는 게 교육 관계자의 일치된 진단이다. 실제로 공 전 교육감 시절에도 교원 인사는 출신지와 출신학교에 따라 달라졌다. ‘호남+서울교대’, ‘호남+서울사범대’면 성골, 이 중 한 가지에만 해당되면 진골,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으면 6두품으로 인식됐다. 공 전 교육감은 전북 남원 출신이며, 구속된 목창수(63) 전 교육정책국장은 서울대 사범대, 김재환(60) 전 교육정책국장은 전북 군산·공주사범대, 장연익(59) 전 중등인사담당 장학관은 전북 김제 출신으로 전주대를 나왔다. 이런 부조리가 공 전 교육감 재임 기간 내내 지속됐다. 시교육청 관계자도 “당시 인사가 나면 어김없이 호남 출신이 요직을 독식했다.”면서 “출신 성분이 다른 교원들은 아무리 근무성적이 좋아도 요직에 앉지 못했다.”고 전했다. 서울시교육청 인사는 사실상 ‘그들만의 리그’였다. 인사청탁, 뇌물수수가 만연해도 감시와 견제기능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교육계 관계자는 “서로 감싸주는 가족 같은 분위기이다 보니 인사비리에도 무감각해진 게 사실”이라며 “그동안 교육계가 곪아 있었던 것은 비리를 알아도 ‘서로 견제·비판하면 제 살 도려내기밖에 안 된다.’는 묵계 때문에 모두가 입을 닫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전의 교육계는 영남판이었다. 교육감에게 집중된 무소불위의 인사권 역시 교육계 특유의 이런 ‘연줄’과 무관하지 않다. 교육감이 교장의 승진·발령·전보, 장학사·장학관 임명 등 인사 전권을 행사하다 보니 교육감에 대한 충성 경쟁이 끝없이 이뤄진 것이다. 한 교육계 관계자에 따르면 “나중에 교장이나 교육감이 될 가능성이 높은 선배 교사의 논문을 대필해주는 방식으로 충성을 다짐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현재 교육감의 인사권한을 견제할 만한 장치는 사실상 없다. 서울시교육위원회 등이 교육감의 인사권을 감시·견제해야 하지만 교육위원들 역시 교육계에 몸담고 있어 지연·학연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교육계에는 교육감 앞에 줄만 잘 서면 초고속 승진도 가능하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교육감과의 인맥은 ‘프리패스(Free Pass)’라는 말까지 나왔다. 반대로 인사에서 까닭없이 배제되는 교원도 많았다. 근무평정점수가 좋은 교원이 좌천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한 초등학교 교장은 “많은 인사가 교육감과의 인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 인사 결과를 그냥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교육당국의 최고위층 관계자도 “교육감과 친하게 지내야 교장 인사발령에서 혜택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교육감의 강력한 인사권을 인사비리의 출발점으로 보는 데는 이견이 없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한은총재 김중수 OECD대사 내정

    한은총재 김중수 OECD대사 내정

    이명박 대통령은 16일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후임에 김중수(63) 주(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를 내정했다. 박선규 청와대 대변인은 “한은의 기능과 역할도 대한민국의 높아진 위상에 걸맞게 바뀌어야 한다는 시대적인 과제 등 여러 문제들을 고려해서 이 대통령이 김 내정자를 적임자로 판단했다.”면서 “오는 23일 국무회의에 동의안을 상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 내정자는 다음달 1일 취임한다. 임기는 4년이다. 김 내정자는 이명박 정부의 첫 경제수석으로 임명됐다가 ‘촛불시위’로 다른 청와대 참모들과 물러난 뒤 지난 2008년 9월부터 OECD 대사로 근무해왔다.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청와대 경제비서관으로 활동하는 등 역대 정부의 경제정책에도 두루 관여해왔다. 관료출신은 아니지만 경제부총리 특보, 한국조세연구원장,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을 지내 관변(官邊) 학자로도 분류된다. 이에 따라 한은의 반발도 예상된다. 김 내정자는 영어실력과 국제적인 감각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 국내 대표적인 거시경제 전문가이지만, 금융분야 활동경력과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함께 받고 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與 공천자격 슬그머니 완화

    한나라당이 최근 공직 후보자 추천 관련 당규를 개정하며 비리 전력자의 공천 신청 자격기준을 완화한 것으로 10일 드러났다. 이를 두고 한나라당이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철새 정치인과 비리 전력자, 지방재정 파탄자 등에 대한 공천 배제원칙을 천명한 것과는 이율배반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지난달 26일 상임전국위원회를 열어 공직 후보자 추천규정을 포함해 당헌·당규를 개정했다. 개정된 당규 3조2항은 공천신청 자격제한 요건을 ‘뇌물, 불법 정치자금 수수, 경선 부정행위 등 부정부패와 관련해 금고형 이상의 형이 확정된 자’로 규정했다. 개정 전의 ‘벌금형’보다 완화된 기준이다. 또 공천자격 불허 대상에 ‘사면 또는 복권된 자의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는 규정을 신설해 사면·복권자도 공천을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당규 3조 2항은 18대 총선 공천심사 과정에서 김무성 의원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의 낙천을 불러왔던 규정이다. 김 의원은 1996년 알선수뢰 혐의로 10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 받았고, 현철씨는 1998년 한보 비리 사건에 연루됐다가 징역 2년을 선고 받은 뒤 사면됐다. 당시 친박계는 김 의원의 공천 배제에 강력히 반발했고, 김 전 대통령도 현철씨의 낙천에 서운한 심경을 드러냈다. 때문에 일부에선 ‘2012년 총선에 대비해 특정인을 염두에 두고 공천 신청 기준을 완화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당헌·당규개정특위 위원장인 황우여 의원은 “2004년 대선자금 사건으로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을 썼을 때 벌금형만 받아도 피선거권을 제한하도록 기준을 강화했던 게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공무원법이나 공직선거법 등에 비해 기준이 너무 엄격하고 신청조차 못하게 제한하는 것이 도리어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많아 현실에 맞게 개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오히려 파렴치범, 부정 관련자에 대해선 금고형 이상의 확정판결을 받고 5년 이상을 경과하더라도 공천에서 배제하도록 부적격 기준을 상향 조정했다.”고 덧붙였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열린세상] 원자력 자립의 길/박녹 기후변화에너지대책포럼 간사·한전원자력연료 감사

    [열린세상] 원자력 자립의 길/박녹 기후변화에너지대책포럼 간사·한전원자력연료 감사

    20기의 원자력 발전소를 가진 우리나라는 2016년쯤이면 고준위 폐기물 저장고가 포화상태에 이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는 새로운 저장고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난 부안 사태에서 보듯이 엄청난 국론분열과 국력낭비가 예상된다. 두 번째는 재처리를 통해 새로운 에너지로 재활용하면서 고준위폐기물 양을 줄이는 일거양득의 방법이 있지만 국제사회가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평화적 목적의 농축·재처리를 금지하는 국제사회의 규약은 없다. 우리나라는 이 권한을 미국과의 별도 협정과 선언을 통해 스스로 제한한 경우다. 정부는 ‘사용 후 핵연료의 형질을 변경하거나 다른 용도로 쓰는 경우에는 미국의 동의를 받는다.’는 내용으로 1974년 한·미 원자력협력협정을 체결했다. 1992년 남북 비핵화 공동선언을 통해서도 ‘농축 및 재처리 시설을 갖추지 않겠다.’는 방침을 국제사회에 천명했다. 이는 한국의 독자적인 핵개발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불식시킬 필요성과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서도 불가피한 조치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일부 연구원들이 시험적으로 농축관련 실험을 했던 사실이 2004년 드러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될 뻔한 일을 경험한 뒤 차곡차곡 국제사회에 신뢰를 쌓아 왔다. 지난해 6월 한나라당은 고준위폐기물 처리와 관련한 국론분열 방지와 평화적 활용을 위한 핵연료 재처리 금지의 완화가 필요함을 천명하였다. 즉 국제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에서 평화적인 목적의 농축과 재처리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미 정부 당국자는 “현재 유럽연합, 인도, 일본이 자국 내에서 핵연료를 처리하고 있지만, 오바마 정부는 이 국가들에 허용한 사례를 한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에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핵연료 재처리를 위한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이 필요하지 않다.”고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에 대하여 국내에서는 북핵 문제 등 주변 상황 때문에 핵주권을 말할 때가 아니라는 주장과, 국가적 당면과제 해결과 경제적 목적 때문에 핵 주권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대립된 양상을 보여왔다. 그렇지만 이 두 주장의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원자력의 국제환경으로부터의 통제 및 규제를 극복하고, 핵연료의 주기를 완성하는 에너지의 자립화로 귀결될 것이다. 사실 우리가 처해 있는 현재의 상황은 과거 일본이 핵주기 완성을 앞두었던 상황과 너무나 흡사하다. 핵주기 완성의 가장 큰 과제는 비핵화에 대한 국제적 신뢰라고 볼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일본은 국제원자력기구(IAEA)로부터 부과된 의무를 성실히 수행함으로써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대해 국제사회에 확신감을 심어왔다. 또 새로운 보장조치의 기술개발 및 원자력 선진국들과의 협력관계를 지속적으로 강화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원자력 평화 이용에 공헌하였다. 원자력 개발 및 유지에 필요한 다양한 교류를 통해 새로운 지식체계를 구축하고, 인적 교류를 통한 인간적 유대감을 형성함으로써 그들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점은 우리로서도 벤치마킹할 중요한 사례가 될 것이다. 지난달 스티븐스 주한 미 대사는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과 관련하여 한국에 대해서 “첫 협정 이후 일어난 변화를 고려할 것”이라고 좀더 진전된 언급을 하였다. 오는 10일부터 12일까지 기후변화에너지대책포럼 주관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이 대회장을 맡는 ‘세계 원자력 정상회의(SHAPE2010)’가 서울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열린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IAEA 명예사무총장 등 20여개국 원자력 권위자 150명이 참석하여 고준위폐기물의 효율적인 처리방안 등 평화적 핵 사용에 대한 전 세계의 바람직한 원자력 발전방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우리의 비핵화에 대한 국제적 신뢰를 확보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 YS “지방선거전 세종시 국민투표 해야”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세종시 해법으로 ‘국민투표’를 거듭 제안하면서 한나라당내 분란을 조기 종결하라고 촉구했다. 김 전 대통령은 26일 오후 여의도 한 호텔에서 친이(親李)계 모임인 ‘함께 내일로’가 ‘2010년 나의 소망’을 주제로 마련한 간담회에서 “세종시 문제는 국회에서 절대 해결 안 난다. 6월 지방선거 전에 국민투표로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전 대통령은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언급한 개헌 문제에는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내각책임제는 꼭 쿠데타를 초래한다. 이미 실패한 제도이며, 4년 중임제도 장기집권도 안된다.”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1997년 대선 직전 검찰의 ‘김대중 비자금’ 수사 얘기도 꺼냈다. “당시 김대중씨 비자금이 엄청났는데 관련 증빙서류가 이회창씨에게 갔고, (이씨가) 갑자기 강삼재 사무총장을 시켜서 수사가 된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이회창씨의 요구대로 수사를 했다면 바로 전라남도에서 폭동이 일어났을 것”이라면서 “비자금을 밝히는 것도 큰 의미가 있었지만 대선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당시 김태정 검찰총장을 청와대로 불러 수사 중지 발표를 하라고 시켰다.”고 회상했다. 김 전 대통령은 대권주자와 현직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을 묻는 질문에 “참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옳다.”고 답변했다. 그는 1997년 대선 때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가 자신의 탈당을 요구했던 것을 소개하면서 “탈당한 뒤 ‘이회창씨는 절대 대통령 안 시키겠다’고 각오했다.”며 “제가 탈당한 뒤 이씨는 표가 안나와 30만표 차이로 간단하게 떨어졌다.”고 말했다 간담회에는 정몽준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와 ‘함께 내일로’ 소속 의원 등 40여명이 참석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MB “싸워도 가슴에 맺히는 말은 피해야”

    “의견이 다를 수도 있지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중심에 놓으면, 정치가 해결할 수 없는 게 뭐가 있겠나.” 이명박 대통령이 25일 한나라당의 세종시 의원총회와 관련해 성숙한 토론을 당부했다. 취임 2주년을 맞아 한나라당 확대당직자 42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나눈 자리에서다. 이 대통령은 “우리가 서로 심하게 토론하고 싸우더라도, 싸우고 난 다음에 ‘그래도 사람은 괜찮다.’고 웃을 수 있는 마음이어야 한다. 가슴에 맺히는 말은 적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토론을 격렬하게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한나라당이라는, 문자 그대로 ‘한나라’라는 생각을 갖고 하면, 질곡에서 벗어날 수도 있고, 어려운 것을 딛고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고도 했다. 이 대통령은 “서로 협력하고 책임 있는 자세를 견지해 달라.”고 당부했다. 친이 주류에서 세종시 수정안의 ‘3월 초 당내 표결→4월 임시국회 처리’를 위해 강제적 당론 채택 등의 필요성이 흘러나오는 것과 맞물려 이 대통령이 ‘협력’과 ‘책임’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하지만 앞서 오전 국회에서 열린 나흘째 세종시 의원총회는 친박계의 대거 불참으로 ‘반쪽’으로 진행됐다. 전체 참석자 60여명 가운데 친박계는 7명뿐이었다. 친이계 이병석 의원은 “땅은 호미로 팔 수도, 곡괭이로 팔 수도 있다. 호미와 곡괭이는 수단으로, 돌이 나오는데도 계속 호미를 주장하는 것은 원칙이 아니라 어리석은 것”이라면서 “죽어도 못 변하는 정책은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친박계 이인기 의원은 “우리끼리 흠집내기를 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면서도 “표결을 통해 당론을 결정하자고 하는데 자제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중립성향의 조전혁 의원도 “입법기관인 의원에게 당론을 강요해 개인 생각과 다르게 한 표를 행사하도록 하는 게 과연 민주주의인지 의심스럽다.”고 꼬집었다. 한편, 정몽준 대표는 친박계 중진인 홍사덕·이해봉·박종근 의원 등과 마포 음식점에서 만찬을 나누며 세종시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이 자리에서 정 대표는 “박근혜 전 대표와 친이 의원들, 이 대통령과 친박 의원들이 각각 만나 폭넓은 얘기를 하면 어떠냐.”고 제안했다. 이에 홍 의원 등은 수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무리하게 밀어붙이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세종연구소가 롯데호텔에서 주최한 강연에서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 “국민의 뜻을 직접 물어보는 방법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민투표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말했다. 홍성규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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