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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준표 “대한민국 정책짜는 백용호는 나와 형님 동생하는 사이”

    홍준표 “대한민국 정책짜는 백용호는 나와 형님 동생하는 사이”

     여당의 당권을 거머쥔 홍준표 한나라당 신임 대표가 업무 첫날부터 강한 이미지 심기에 나섰다.  홍 대표는 5일 당선축하 인사차 여의도 당사에 찾아온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전에 있던 사람들은 나와 (사이가) 별로였는데 지금 청와대 진용은 전부 나와 인연이 있어 말하기 쉽고 잘 될 것”이라며 당정 소통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김 수석은 2008년 홍 대표가 원내대표를 맡던 시절 비서실장을 했다. 임태희 대통령실장도 당시 정책위의장으로 홍 대표와 호흡을 맞췄다.  홍 대표는 “백용호 정책실장은 15년 동안 형님, 동생하는 사이로 내가 형님이다. 방금 전화도 왔다.”면서 “대한민국 정책은 백용호가 다 짜는 것인데 정책 충돌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진규 정무 제1비서관도 내가 데리고 있던 사람”라고 덧붙였다. 이어 이명박 대통령과의 인연도 소개하면서 “(이 대통령과도) 형님, 동생하는 사이로 매일 전화통화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역대 4명의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에 탈당했는데 이 가운데 노무현, 김영삼 전 대통령의 탈당은 당·청이 충돌했기 때문”이라면서 “당정이 충돌하면 공멸하니 김 수석이 잘 좀 도와달라.”고 화합을 강조했다.  김 수석은 “이 대통령이 저를 임명하신 이유도 당과 같이 잘 하라는 것”이라면서 “잘 모시겠다.”고 화답했다.  일각에서는 홍 대표의 발언을 당·청 관계에서 주도권을 쥐려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청와대 참모진이 과거 자신의 아래에서 일했던 것을 꺼낸 것은 정책 결정과정에서 청와대보다 우위에 서겠다는 일성이라는 것이다.  홍 대표는 이 자리에서 “당이 달라지지 않으면 내년 총선은 참패한다. 빠른 시일 내에 변화시키겠다.”면서 강력한 체제변화도 예고했다. 김 수석과의 면담 후 이어진 최고위원 약식 간담회에서 “앞으로 계파 활동을 하면 (내년 총선에서) 공천을 안 줄 것”이라면서 당내 쇄신을 거듭 강조했다.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인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사무처 ◇서기관 승진 △통일정책자문국 국내지역과 이호승 ■행정안전부 △지역발전정책국장 심보균△기획조정실 정책기획관 김일재△중앙공무원교육원 교수요원(파견) 송영철 ■농림수산식품부 ◇전문계약직공무원(가급) △정책보좌관 엄대호 서상현 ■특허청 ◇서기관 전보 △고객협력국 고객협력정책과 구자광△특허심판원 강병재 강순구 이병용 손재만△특허심판원 송무팀 소진혹△정보통신심사국 정보심사과 이정숙 ■한국무역보험공사 △전략기획부장 김정원 ■국민건강보험공단 △급여상임이사 박병태 ■KT ◇글로벌&엔터프라이즈 부문 <부사장>△글로벌지원 CFT장 김한석△G&E전략본부장(STO추진실장 겸임) 김홍진<전무>△퍼블릭고객본부장 신규식<상무>△스마트스페이스TF장 박진식△위성사업단장(위성사업담당 겸임) 권영모[G&E전략본부]△G&E전략담당 이문환△글로벌사업개발담당 박준식[글로벌영업본부]△글로벌영업담당(글로벌영업본부장 직무대리 겸임) 김형준△글로벌기업고객담당 김상욱△김영택[엔터프라이즈]△고객1본부장 정윤식△고객2〃 박경석[본부장]△SMB고객 박영식△서비스딜리버리(프로페셔널서비스본부장 겸임) 한동훈△기업프로덕트 채종진△기업FI 장기숭◇개인고객 부문 <상무>△스마트에코본부장 안태효△개인FI센터장 곽봉군[개인프로덕트&마케팅본부]△본부장 강국현△무선단말기획담당 김형욱[개인세일즈&CS본부]△본부장 나석균△영업기획담당 이현석△수도권강남 무선마케팅단장 윤창영△수도권강북 〃 편명범△전략유통마케팅단장 한원식◇홈고객 부문 <상무>△홈상품기획단장(홈고객전략본부장 겸임) 임헌문[본부장]△홈마케팅 박혜정△홈세일즈(홈세일즈본부 현장혁신센터장 겸임) 정문철△홈CS 박용화<상무보>△홈FI센터장 서태석◇네트워크 부문 <상무> [무선네트워크본부]△본부장 오성목△수도권무선네트워크운용단장 권태일[유선네트워크구축본부]△본부장(엔지니어링단장 겸임) 윤차현[유선네트워크운용본부]△본부장 윤영식[유선네트워크운용단장]△강북 박찬경△강남 이대산△충청 김태근△호남 이종옥△대구 고종석△부산 김영현◇SI 부문△통합플랫폼개발본부장 상무 이현규 ■전자부품연구원 ◇본부장 △부품소재연구 강남기△에너지디스플레이연구 황학인△시스템반도체연구 최종찬△융합산업연구 성하경△경영지원 조원갑◇실장△감사 우병태◇연구센터장△SoC플랫폼 임기택△모바일단말 이경택△통신네트워크 임승옥 ■한국금융연구원 ◇승진 △선임연구위원 이명활 신용상△연구위원 임형석 구정한 ■신용정보협회 ◇신임 △전무 김인섭 ■강원대 △강원웰빙특산물산업화지역혁신센터장 최면 ■외환은행 ◇개인지점장 △경주 조규화△고잔 김성석△광주 윤인석△구미 정익재△논현남 홍경표△도당동 윤근철△동광동 전종식△동판교 심재환△마포남 이성기△목동1단지 조현욱△무역센터 이현수△문정동 김명옥△미금역 박윤옥△반월당 변경숙△방배남 박문철△범계역 윤석윤△범어동 정영표△부산 민용기△사당역 조경호△산본 서희석△상동 이만근△서대전 김경태△서울아산병원 이정주△선수촌WM센터 오정선△성산동 김기준△수유역 진대윤△스타타워 남원종△신내동 조대석△안산 허명욱△압구정중앙 박은주△야탑역WM센터 김정한△연신내 정명상△영등포 송천△울산 김석구△월배역 김원석△이촌동 조성환△이태원 박종림△전주 김영래△정릉 전계숙△진주 박영준△천안공단 이성합△천안 정기호△청주 권용한△충무로 이형수△퇴계로 유원호△평택 권창중△포항 박대순△하남공단 서순천△해운대신도시 김명우△홍성 이희철◇기업지점장△가락 홍건희△가스공사 곽순범△강서 송관△경주 전석채△광산 진광섭△광주 양호철△구미4공단 김태건△김해 김헌주△남영동 박동현△논현남 조시형△달성 박정원△동수원 조영호△반월공단 성삼현△범계역 이재우△삼성역 허환열△서대문 김종현△서잠실 김인석△소공동 이병근△압구정중앙 김선규△야탑역 양홍련△역삼역 전병세△익산 조남준△인사동 지정화△전주공단 전태평△주안공단 류재호△청담역 김웅렬△평촌 김상섭△SIM 박윤재 이만우 이진호◇대기업SRM지점장△구영주◇해외지점장△아부다비지점 개설준비위원장 류병도△파나마지점 양국진△KEB USA International Corp 이동국◇본점 부장△기업사업본부소속 이동규△여신사후관리대책반 조사역 김영규△인력개발부 정찬성△자금부 박준식△카드고객추진부 채충기△카드마케팅부 배일택△카드시스템개발부 석승징△홍보부 이선환△Brand Management부 정범△IT운영부 한주희 ■동부증권 ◇팀장 △법인금융2 노원종△채권전략 박정호◇지점장△화성향남 공우진 ■IBK투자증권 ◇임원 신규 선임 <영업본부장>△금융상품 한강헌△FICC 유식열 ■신한금융투자 ◇부서장 △투자전략 최창호◇지점장△강남구청역 김지일△울산 류채열△관악 성현철△강남중앙 용석원△울산남 윤상헌△노원역 이재웅△올림픽 장광철 ■신한생명 ◇승진 <본부장>△CS추진 한충섭△IT 윤중환△서부사업 김점옥<부장>△AM지원 이광표△변화추진 정봉현△감사 이석구<지점장>△잠실 박래윤△분당 이준규△흥덕 김석호△제일TM 이규태△동부법인AM 정기목△일산SOHO 황성준△구리 이금분△소망 김현조<고객지원센터센터장>△전주 백남호△제주 이동우◇전보 <사업본부장>△중부 주봉일△드림 이상윤<지점장>△충무 강일석△평촌WINNERS 배동운△보령 이상우△제천 한철규△전주 조우현△신익산 이장일△군산 한인수△빛고을WINNERS 김재두△일산TM 윤성호△서울복합 남미라 ■그린손해보험 ◇승진 <본부장>△선임계리사 이윤호△GA영업본부 이승재<부장>△경영관리 문두식△다이렉트사업 이창희△IT지원 금병걸△상품개발 이계문△영업교육 강영문<사업단장>△Agency사업2 조삼구<보상서비스센터장>△영남 이주찬△서부 곽춘원◇이동 <본부장>△고객지원 엄재섭△경영기획 배석일△마케팅 구발△자동차/보상 김성기△개인영업 정윤식△방카슈랑스사업 윤성욱<부장>△총무(연수원 겸임) 황의성△IT개발 김영삼△고객지원센터 여정훈△자동차업무 정찬옥△교차영업지원 오상태<사업단장>△Agency사업1 신윤하△Agency사업3 이상우△영남Agency 김승인△강남 송연덕△중부 윤호영△부산 이철호△울산 서정헌△충청 김경연<보상서비스센터장>△중앙 임병규△강남 이성환 ■PCA생명 ◇전무 신임 △CMO 박재중 ■유니에셋 ◇신규 선임 △대표이사 강경훈■삼정KPMG ◇신임 △최고운영책임자(COO) 서원정◇총괄부대표 승진△삼정KPMG 어드바이저리 신경섭△삼정KPMG 컨설팅 김인수◇전무 승진△이학률 서지희 윤학섭 김의성 신경철 ■한국경제신문 <지역본부장>△중부 백창현 △영남 신경원 ■인제대 백병원 <일산백병원>△원장 박시영△부원장(진료부장 겸임) 서진수△기획실장 이성순△대외협력〃 김경환 ■유리자산운용 ◇신규 선임 △홀세일본부 이사 조차래
  • 지지율 급락·민심이반… 집권4년차 닮은꼴

    지지율 급락·민심이반… 집권4년차 닮은꼴

    역대 정권의 집권 4년차는 혹독했다. 김영삼 정부 때는 1996년 노동법 강행 통과 파문을, 김대중 정부 때는 2001년 벤처 관련(정현준·진승현·이용호) 게이트와 맞닥뜨렸다. 노무현 정부 때는 5·31 지방선거 패배에 양극화 등 정책 실패로 적지 않은 후유증을 겪었다. 이명박 정부라고 예외는 아니다. 대통령 측근 비리와 반값 등록금·무상급식 갈등으로 집권 4년차의 악순환에 직면했다. ‘집권 4년차 증후군’은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을 떨어뜨리는 데 그치지 않고 권력 이탈을 불러왔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해에 탈당이라는 막다른 길을 걸어야 했다. 집권 여당은 청와대와 차별화하는 데 주력했다. 차기 대선 때문이다. 특히 2012년은 총선도 있다. 기존 당·청 갈등에다 여야 갈등이 최고조에 이를 전망이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이 “집권 4년차는 레임덕에서 데드덕으로 가는 분기점”이라고 한 말은 괜한 관측이 아니다. 역대 정권의 집권 4년차는 ‘지지율 급락’과 ‘민심 이반’으로 나타났다. 김영삼 정부는 최초의 문민정부라는 기대 속에 70~80%대의 높은 지지율을 보였지만 북핵 위기와 사회 갈등 속에서 부침을 겪다가 2005년 5·18 특별법 제정과 2006년 역사 바로세우기 등으로 40%대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집권 4년차 후반 무렵부터 한보 게이트가 터지면서 급추락했다. 김 전 대통령은 집권 말기 1년 동안 ‘식물 대통령’으로 지내야 했다. 김대중 정부는 집권 3년차에 남북정상회담으로 약 55%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듬해 터진 벤처 관련 게이트로 레임덕이 왔다. 이듬해 홍걸·홍업씨의 구속은 김 전 대통령의 장악력을 빼앗았다. 노무현 정부는 집권 3년차에 러시아 유전 개발과 행담도 개발 등으로 서서히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참패하며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이 급속히 떨어졌다. 임기 말에는 부동산 정책의 실패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논란 등으로 거센 민심 이반을 겪었다. 이명박 정부도 흔들리고 있다. 측근 비리가 연이어 터지자 서둘러 공직 감찰 강화에 나섰다. 집권 4년차의 악순환을 끊겠다는 의중이다. 반값 등록금과 무상 급식 문제 등 정책 갈등으로 힘겨운 계절을 나고 있다. 4년차 후유증은 차기 대선주자의 운명까지 갈라놓았다. 1996년 말 노동법 강행 통과로 당시 신한국당 내 주도권이 민주계에서 민정계로 넘어가면서 이회창 후보가 선두주자로 부각됐다. 부동의 1위를 달리던 박찬종 후보는 중도 낙마했다. 이명박 정부는 역대 정권과 달리 집권 후반기에 들어서도 정책 승부를 펴고 있다. 이 때문에 광범위한 민심 이반 현상이 벌어지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 정권인 노무현 정부만 해도 2004년 4대 개혁, 2005년 대연정 등 정치개혁에 치중했다. 이 대통령의 지지 기반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과 견줘 지역색이 옅고 친위그룹의 결집력이 떨어지는 편이다. 김윤철 경희대 교수는 “친이 세력은 이전 정권의 친노 세력에 비해 대선 당시 정략적 성격이 강했고 결속력이 취약해 밀어붙일 힘이 없다.”면서 “과거 정권에 비해 정치색이 강한 문제제기를 하거나 이념을 강조하지 않아 불안감도 덜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노무현 정부는 처음부터 정치발전과 개혁에 대한 문제의식이 강한 편이었다. 임기 내내 대연정, 언론개혁, 4대 개혁입법 등을 던지며 조용할 날이 없었다. 급격하게 지지 기반이 이탈했다. 그래서인지 집권 4년차에 들어설 때 이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은 전혀 다른 상황 인식을 드러냈다. 이 대통령은 “아직 2년이나 남았다.”고 한 반면, 노 전 대통령은 “벌인 일 잘 마무리하겠다.”고 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보수층 결집 노리는 박진

    한나라당 7·4 전당대회에 나선 후보들의 정책구상은 대체로 ‘친서민’으로 방향이 모인다. 무상급식, 반값 등록금, 추가 감세 철회 등의 이슈를 두고 기존의 한나라당 입장에 비해 ‘좌클릭’한 목소리를 낸다. 그러나 박진 의원은 예외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고 무책임한 포퓰리즘을 막아 위기에 빠진 한나라당을 구하겠다.”며 출사표를 던진 박 의원은 줄곧 보수본능을 강조하고 있다. “짝퉁 민주당”이라는 말도 거침없이 내뱉으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북한인권법 등 보수의 정체성을 살리는 정책에 대한 강한 추진력을 내비쳤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점 등 외교통 이미지를 부각시키며 전통 보수층의 결집을 노리는 것으로 해석된다. 박 의원은 29일 오후 열린 합동 TV토론회에서도 “무조건적인 대기업 때리기만이 능사가 아니다. 대기업 스스로 투자하도록 유도해야 진정한 상생이 이뤄진다.”며 정치권의 ‘대기업 때리기’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반값 등록금, 무상급식 등에 대해서도 “재정 여건을 무시한 무책임한 포퓰리즘에 빠지면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박 의원은 토론회 중 멘토가 누구냐는 질문에도 곧바로 “저를 정치에 입문시켜 준 김영삼 전 대통령”이라면서 “인간적 매력이 넘치고 정직성과 결단력이 뛰어난 분”이라고 치켜세웠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검경 수사권 합의 이후… 홍만표 검사장 ‘사의 인사’

    검경 수사권 합의 이후… 홍만표 검사장 ‘사의 인사’

    29일 사의를 표명한 홍만표(52·사법연수원 17기)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검사장)은 오전 검찰 내부 통신망인 이프로스(e-pros)에 ‘사직 인사’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이제 떠나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그간 무척 어려운 일이 많았는데 도와줘서 고맙다. 검찰을 지켜 주는 것은 국민의 신뢰밖에 없다.”며 “정치권과는 냉정하게, 경찰과는 따뜻하게 관계를 유지해 달라.”고 말했다. 이 글이 오른 직후 구본선 대검 기조부 정책기획과장이 “홍 검사장의 사표는 수리되지 않았다.”는 댓글을 달며 파문 확산을 막았지만, 두 사람의 글은 얼마 후 삭제됐다. 홍 검사장은 김준규 검찰총장과 박용석 대검 차장에게 사의를 공식 표명했다. 김 총장이 “사표는 절대 안 된다.”며 만류했지만, 홍 검사장은 다음 달 6일까지 병가를 내고 곧바로 퇴근했다. 홍 검사장은 검찰에서도 진짜 ‘실력’을 인정받은 ‘수사통’ 검사다. 1991년 부산지검 울산지청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한 홍 검사장은 4년 뒤 대검 중수부의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에 참여하면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같은 해 11월 전두환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에서는 전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했고, 1997년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 비리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다시 중수부로 파견됐다. 홍 검사장은 이듬해 김대중 당시 대통령 당선인의 비자금 의혹 수사에 참여하는 등 유독 대통령 수사와 인연이 깊었다. ‘대통령의 저격수’ ‘대통령 저승사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용호·진승현 게이트, 러시아 유전 개발 의혹, 줄기세포 의혹 등 굵직굵직한 사건 수사에서는 그가 빠지지 않았다. 2009년 대검 수사기획관으로 임명된 홍 검사장은 이인규 당시 중수부장을 보좌하며 ‘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진행했다. 홍 검사장은 그간 검경 수사권 조정을 논의한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 검찰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을 해 왔고, 실제로 건강이 악화됐다. 그러나 검찰 안팎에서는 홍 검사장이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안의 국회 수정 의결에 대해 ‘총대’를 멘 것으로 보고 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씨줄날줄] 골프 서밋/박대출 논설위원

    미국 대통령 중에는 골프 마니아가 많다. 이를 다룬 책도 있다. 돈 반 나타 주니어가 쓴 ‘백악관에서 그린까지’가 대표적이다. 그들에게 진 대선 후보들은 비(非)골퍼들이 많다. 앨 고어, 밥 돌, 마이클 듀카키스, 월터 먼데일 등. 지미 카터 전 대통령만이 비골퍼이다. 우리도 비슷하다. 비골퍼로는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유일하다. 나머지는 원래 골프를 쳤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골프를 즐겼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1990년 3당 합당의 단초를 골프로 삼았다. 이를 통해 김종필(JP) 당시 공화당 총재와 손잡았다. DJ는 한때 골프 반대론자로 알려졌다. 대통령이 되면 골프장을 갈아엎을 것이라는 악성 루머가 돌았다. 오해를 불식하려고 최경주 프로와 인터뷰를 갖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테니스를 선호한다. 물론 골프 실력도 수준급이다. 대통령이 된 후엔 다양하다. YS는 골프와 담을 쌓았다. 공직자들에게는 금지령을 내렸다. DJ는 조건부 허용을 했다. 비근무시간, 비업무관계, 자비 부담 등. 이명박 대통령은 YS에 가깝다. 때때로 금지령에 준하는 분위기를 이끌어왔다. 본인은 휴가 때만 골프를 치고 있다.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즐겼다. 우리 정치에선 골프는 까다로운 영역이다. 시점만 잘못 잡아도 파문으로 이어진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골프 파문으로 물러났다. 산불 골프, 수해 골프, 3·1절 골프 등. 남의 시선을 개의치 않는 정치인도 있다. JP에게 골프는 소중한 수단이다. 건강을 단련하는 스포츠이자, 사람을 잇는 정치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존 베이너 하원의장과 골프를 쳤다. 민주당 소속 대통령과 공화당 소속 하원의장은 정치적 앙숙이다. 미국 언론들은 골프 서밋(Golf Summit)으로 불렀다. 1달러짜리를 주고받는 가벼운 내기까지 곁들였다. 백악관은 사교적 행사로 선을 그었다. 워싱턴 포스트의 분석이 흥미롭다. 둘은 이례적인 ‘초당적 승리의 전리품’과 ‘많은 숙제’를 안고 집으로 향했다고 보도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손학규 민주당 대표 간에 회동이 추진되고 있다. 날짜만을 놓고도 정치적 계산이 오간다. “29일에 하자.”(청와대) “22일에 하자.”(민주당) 의제 신경전은 절충을 더 어렵게 한다. 미국과 대비된다. 한편으론 미국이 부럽다. 한발 더 나가면 더 복잡해진다. 이 대통령과 손 대표가 골프를 하면 어떨까. 당장 이런 여론이 비등하지 않을까 싶다. “시국이 어느 때인데 한가로이 골프냐.” 골프와 정치는 이래저래 어려운 관계다. 박대출 논설위원 dcpark@seoul.co.kr
  • 전 통일부 장관 3명 ‘남북관계 해법’ 좌담

    전 통일부 장관 3명 ‘남북관계 해법’ 좌담

    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정부에서 각각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원로 3명이 18일 한자리에 모였다. 2006년 작고한 여해 강원룡 목사가 이끌던 대화문화아카데미의 ‘여해포럼’이 주최한 ‘남북관계의 의미 있는 변화와 모색’이라는 좌담회에서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축사를 하고 1시간 20분간 진행된 좌담을 끝까지 경청했다. 좌담회는 시종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남북관계 ●이홍구 전 총리 남북관계의 제일 큰 책임은 북한에 있다. 북한이 세계적 변화 흐름에 잘 맞춰 갔으면 큰 진전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의 책임을 논한다면 남북문제와 관련해 대화하고 논의하는 민주화의 제도화가 지난 20년간 크게 진전되지 못하고 오히려 후퇴한 점이다. 기본 바탕이 취약한 상황에서 (남북)문제를 다루는 게 취약점이다. 남북관계가 궤도에 오르려면 한국의 민주정치 궤도를 정상적으로 가져가야 한다. ●임동원 전 장관 핵무기보다 더 급한 것은 전쟁 방지다. 많은 사람들이 군사적 충돌을 우려한다. 지금 시점에서 (남북)문제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때다. 천안함·연평도 문제와 6자회담을 분리해야 한다. ●김덕 전 장관 햇볕정책은 접촉을 통해 북한을 변화시킨다는 남북관계의 장기적 전략이다. 긍정적으로 본다. 그런데 북한을 변화시키려는 의지보다 북한의 요구에 대해 이쪽이 먼저 변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북한 비핵화 ●이 전 총리 비핵화 문제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지금부터 어떤 방식으로든 북에 호소하고 대화하고 설득해야 한다. ●임 전 장관 북한은 핵무기 개발단계 중 3단계인 핵실험까지 와 있는 것으로 보인다. 4단계인 핵무기 미사일 장착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고, 미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 ●김 전 장관 북한 지도자 입장에서는 핵 없는 북한을 생각할 수 없다. 핵 폐기는 한계가 있다. 북핵을 겨냥해 현실적으로 가능한 대비책을 세워야 하고, 구체적인 협력 분위기 조성에 역점을 둬야 한다. ▲북한 붕괴설 ●김 전 장관 북한의 3대 세습 시도는 상당히 어려운 고비를 맞을 수 있지만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는 계속 남을 것이다. 동구의 교회와 같이 민주화 혁명의 기반이 될 만한 ‘외딴섬’이 없다. 나쁜 정권은 개혁으로 위기를 맞지만, 김정일은 전혀 개혁다운 개혁을 하지 않았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서울광장] 국립 서울대, 법인 서울대/’박홍기 논설위원

    [서울광장] 국립 서울대, 법인 서울대/’박홍기 논설위원

    서울대가 가는 법인화 길이 멀고 험할 줄은 알았다. 가지 않은 길에 발을 내딛는다는 것 자체가 두려움과 불안의 시작인 데다 기존의 틀을 깨야 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생들이 전면에 나서 단식까지 강행하며 저항할 줄은 몰랐다. 공무원 신분 아래 기득권을 누리는 교수나 직원들이 아닌 학생들이 말이다. 학생들은 19일째 대학 행정관을 점거 농성하고 있다. 행정서비스는 마비됐다. 초유의 사태다. 대학 측은 학생들에게 행정관에서 나갈 것을 공식 요구했다. 대학 구성원들이 각자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서울대 법인화 역사는 짧지 않다. 1990년대부터 개혁 방안의 하나로 꾸준히 거론되고 논의됐다. 김영삼정부 시절인 1995년 서울대 스스로 ‘2000년대를 향한 장기발전계획’에서 특수법인화 내용을 담았을 정도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땐 학벌 타파의 일환으로 서울대 법인화를 추진하려 했지만 ‘서울대 폐지’라는 정치적 역풍에 휘말려 제대로 공론화도 못한 채 사그라졌다. 공교롭게도 법인화 추진에 반발하던 한나라당이 서울대법인화법을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법안이 상정된 지 1년 5개월 만이다. 2012년부터 ‘국립 서울대’를 ‘국립대학법인 서울대’로 전환토록 못 박은 것이다. 절차적 정당성엔 흠이 있다. 부정할 수 없다. 학생들과 교수, 민주당에서 “날치기”라며 문제 삼는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렇지만 법안 자체의 개폐를 들고 나온 처사는 지나치다. 앨버트 허시먼이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에서 밝힌 ‘개혁을 하면 오히려 위험한 상태로 치닫게 된다.’는 ‘역효과 명제’를 들이대는 식이다.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고비용·저효율’의 현행 운영체제가 바람직한가. 서울대는 국립대 중 국립대다. 전체 41개 국립대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유일하게 ‘서울대설치령’에 근거해 국가로부터 예산·인사·조직 전반에 걸쳐 인허가를 받아야 한다. 직원 한명을 증원하려 해도 행정안전부·교육과학기술부·기획재정부를 거쳐야 하는 곳이다. 신속성과 유연성을 찾아볼 수 없다. 법인화의 가장 큰 목적은 자율성 제고다. 교육과 연구역량의 향상을 통한 경쟁력 강화다. 국가의 보호막에서 벗어나 세계 속의 서울대로 설 수 있도록 터를 닦는 작업이다. 법인화법이 서울대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비책일 수는 없다. 다만 “이대로는 안 된다.”라는 공감대에 기초를 두고 있을 뿐이다. 법인화를 지지해온 쪽도 마뜩지 않은 부분이 없지 않다. 법인화란 말 그대로 새로운 법적 주체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라는 명칭에서 보듯 ‘국립’을 떼어내지 않았다. 논 란의 소지를 제거하기 위한 나름의 보완장치도 뒀다. 2004년 전면적으로 법인체제로 바꾼 일본 국립대를 벤치마킹해 기초학문 홀대, 교직원 신분 불안, 등록금 인상 등에 대한 제도적 안전망을 갖춘 것이다. 연간 3400억원의 국고 지원도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지원하기로 약속했으며, 3조원이 넘는 재산도 국고가 아닌 서울대에 귀속되도록 조치했다. 법인화 이후에도 여전히 ‘국립 고깔모자’를 쓰고 국고에 빨대를 대고 안정적인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농성에 참가한 학생들은 서울대 밖을 나가 봤으면 한다. 청계천에서는 매일 반값 등록금의 실현을 위한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그들은 등록금 인상을 우려하는 것이 아니라 삶까지 좌지우지하는 ‘미친 등록금’의 인하를 위한 절박감에 촛불을 켜고 있다. 법인화는 서울대에 대한 시대적 요구다. 국립 대신 ‘법인 고깔모자’를 쓰고 법인체제를 최대한 활용해 국내 대학, 나아가 세계적인 대학들과 활발한 경쟁에 돌입해야 한다. 질적·양적 발전을 위해서다. 법인화를 둘러싼 학내의 불신과 오해, 걱정도 적지 않겠지만 다양한 구성원들이 진정한 소통의 시간을 가지고 해소해 나가야 한다. 법인화는 함께 손을 맞잡고 가도 멀고 험한 길인 까닭이다. hkpark@seoul.co.kr
  • “청남대서 前대통령들 만나 보세요”

    “청남대서 前대통령들 만나 보세요”

    옛 대통령 전용별장인 청남대(충북 청원군 문의면)가 대통령들의 숨결을 느낄수 있는 다양한 물품들을 전시한다. 야간개장도 한다. 청남대관리사업소는 30억원을 들여 청남대 관리동에 있던 대통령 역사문화관을 새롭게 꾸며 오는 20일 개관식을 갖는다고 17일 밝혔다. 전체면적이 540㎡에서 1500여㎡로 넓어졌고, 볼거리도 많아졌다. 새롭게 전시되는 물품들은 전직 대통령들이 외국순방 때나 외교사절로부터 받은 선물들. 청남대관리사업소가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대통령기록관에서 임대해 온 것들로 목걸이, 목공예품, 의장도, 촛대, 도자기류 등 총 52점이다. 청남대관리사업소가 파손 또는 분실사고를 대비, 보험회사를 통해 시가를 따져보니 2억 6000만원에 달했다. 청남대관리사업소는 연말까지 이 선물들을 전시한 뒤 반응이 좋으면 임대기간을 연장한다는 계획이다. 또 청남대를 이용한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용하던 식기 등 기존에 전시됐던 1500여점 외에 제트스키, 노 젓는 보트, 페달 보트 등이 추가로 공개된다. 자전거를 타면서 청남대 곳곳을 관람하는 체험을 할수 있는 3D영상관도 역사문화관에 마련됐다. 청남대관리사업소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인 관람시간을 시범적으로 7~8월(매주 금·토요일)에 한해 오후 9시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이 기간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 오후 5시 이후에는 승용차 입장도 허용하기로 했다. 청주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8월 20~25일쯤 투표… ‘복지논쟁’ 뇌관 되나

    8월 20~25일쯤 투표… ‘복지논쟁’ 뇌관 되나

    소득과 무관한 전면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주민투표 청구안이 16일 서울시에 제출돼 투표 성사 여부와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서울신문 6월 15일 자 14면>. 주민투표에 대한 유권자의 표심이 최근 정치권을 달구고 있는 ‘복지 논쟁’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서다. 투표가 실시될 경우 주민청구에 의해 이뤄지는 첫 사례로, 향후 지방자치제도의 새 모델이 될 전망이다. 시민단체 연합인 ‘복지포퓰리즘추방국민운동본부’는 이날 오전 11시 20분 서울시 서소문청사를 방문해 청구서와 함께 80만 1263명의 서명부를 제출했다. 서명지는 1t 트럭 3대, 178상자 분량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송월주 전 조계종 총무원장도 서명했다고 운동본부는 덧붙였다. 김춘규 운동본부 총괄상임본부장은 기자회견에서 “80만여명이 서명에 동참함으로써 포퓰리즘을 앞세운 여야 정치인들보다 서울 시민이 더 현명하다는 점을 입증했다.”며 “투표에 적극 참여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최근 주민투표 철회를 주장한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에 대해서는 “정치적 야망 때문에 포퓰리즘 공약을 남발하는 정치인에 대해 낙선 운동을 벌일 것”이라며 강하게 성토하기도 했다. ●운동본부 “철회요구 남경필의원 낙선운동” 운동본부에 포함된 미래청년포럼 소속 대학생 대표인 정시율(건국대 4년)씨는 “후세에 세금 폭탄을 안기고 국가재정을 파탄시키는 전면 무상급식을 저지하기 위해 시민 3분의1 이상이 투표에 참여하도록 독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는 서명부 검증 및 명부 열람 과정을 거쳐 유효 서명자가 41만 8005명(전체 유권자 836만명의 5%)을 넘을 경우 시장 명의로 주민투표를 발의할 계획이다. 행정 절차가 60~70일가량 소요되는 점을 감안할 때 실제 주민투표는 8월 20~25일쯤 이뤄질 것으로 운동본부는 전망했다. 특히 운동본부는 서명부 제출에 앞서 자체적으로 확인 작업을 벌여 서명한 88만명 중 경기도 거주자와 주민등록번호 미기재자 등 8만명을 제외했기 때문에 청구 요건을 넘기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청구안이 제출되자 서울시와 시의회 민주당은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어 주민투표 실시에 대해 날선 공방을 벌였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시청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민 급식인지 부자 급식인지를 시민 손으로 선택하고 더 나아가 무상복지 포퓰리즘 시리즈를 확산시킬지 말지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역사적 기로에 서게 됐다.”며 환영 입장을 밝혔다. 이에 맞서 시의회 민주당도 시의회 본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주민투표는 주민투표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예산 문제이자 재판 중인 사안”이라면서 “주민투표가 초래하는 막대한 행정력 낭비와 200억원에 가까운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해 이번 주민투표를 불법 투표로 규정하고 그 부당성을 집중적으로 시민들에게 알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과반 득표땐 무상급식 조례안 폐기 이번 주민투표는 지방자치법과 서울시 주민투표 조례에 따라 실시되며, 반대안이 통과되려면 유권자의 3분의1 이상인 278만명 이상이 투표에 참여해 유효투표의 과반을 얻어야 한다. 투표자 수가 유권자의 3분의1을 넘지 못해 개표를 못하거나 개표함을 열어도 과반을 득표하지 못하면 현재 실시되고 있는 초등학교 전면 무상급식은 그대로 시행된다. 반면 과반을 기록하면 현행 무상급식 조례안은 폐기된다. 시청팀 hyun68@seoul.co.kr
  • [문화마당] 합창 교향곡/신동호 시인

    [문화마당] 합창 교향곡/신동호 시인

    새로운 선율이 필요했으리라. 처음에는 자기의 길을 가기에도 벅찼겠지만, 다른 것을 만날 기회가 많아지고 이해의 시간도 가졌으리라. 아집이 조화로 발길을 돌리고 이기주의가 결국 이타주의의 다른 이름이라는 걸 깨닫는 데도 그리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손을 내밀어 타인의 손을 잡는 순간, 연대감이 주는 기쁨 혹은 혼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정신의 고양을 경험했을 것이다. 합창의 부활은 그렇게 슬며시 다가왔다. 처음에는 바리톤으로, 베토벤 교향곡 9번 4악장은 “친구들, 이런 가락은 아니다. 더 기쁘고 즐거운 노래를 부르지 않겠는가.” 하고 묻는다. 플루트의 소리처럼 가냘프게 시작된 여명을 바리톤이 깨워주었다. 이윽고 소프라노와 알토가 화답한다. “세상의 관습이 엄하게 갈라놓은 것을, 모든 사람은 형제가 되리.”라고. 2악장에서, 조금은 느닷없고 불편하게 등장하던 팀파니와 큰북이 비로소 관현악과 어울려 행진을 북돋는다. 합창은 마치 거대한 군중의 물결 같다. 베토벤 교향곡 9번 1악장처럼 혼돈의 시절이 있었으니, 아버지들은 장조인지 단조인지조차 모를 어두운 공간을 지나왔다. 박정희 유신독재의 숨 막히는 시간은 음울한 바순 소리 같았다. 길거리에서 장발을 단속하고, 자를 들고 스커트의 길이를 재던 그 시대의 희극적 모습은 마치 뒤뚱거리는 바순의 비극적 분위기 속의 우스개를 닮았다. 유신의 끝에서 아버지들은 손을 잡았지만, 아직 함께 노래하지는 못했다. 1980년 오월 광주, 금남로와 도청에 뿌려진 핏빛 기억은 여전히 바이올린처럼 날카로운 주제에 어울렸다. 광주에 대한 부채의식은 목숨을 건 폭로와 저항으로 이어졌다. 격렬한 현악기로 시작되는 2악장은 1987년 유월과 칠팔월의 태양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팀파니의 둥둥거리는 소리는 불협화음처럼 들린다. 거리에 쏟아져 나온 시민들은 직선제 개헌과 불완전하게 타협했다. 노동자들의 칠팔월 대투쟁은 클라리넷 독주처럼 외로웠다. 노동자들은 단결했지만 시민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뒤였다. 그해 겨울, 결국 대통령 선거는 파열음을 내었다. 합창은 시작하지 못했다. 후보 단일화에 실패한 김대중과 김영삼 후보는 군사쿠데타의 일원이었던 노태우 후보에게 지고 말았다. 봄부터 여름까지 무수한 꽃들이 피고 지었다. 1991년이었다.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꽃들이 질 때 자본주의는 축배를 들었다. 명지대생 강경대의 죽음은 학원민주화운동의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전남대생 박승희, 성균관대생 김귀정…. 그해에만 열 번의 장례식을 치렀다. 불완전한 민주화의 후과였다. 아직 사회 구석구석에 가치의 전이가 이뤄지지 못한 탓이었다. 소비 사회의 승리와 더불어 진리에 대한 추구는 사라지고 대학은 실용으로 내달렸다. 각자 돈벌이를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한해가 지나 정태춘과 박은옥은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부르며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군중을 기다리지 마라.”고 절망했다. “우리들의 한 시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고. 베토벤 교향곡 9번은 아주 느리게 3악장을 이끌어간다. 긴 시간, 아버지들은 가정을 이루고 아들과 딸들을 낳고 외환위기와 사교육의 어두운 터널을 천천히 아다지오로 지나 흘러왔다. 소위 386세대의 아이들이 자라 대학에 입학해 새로운 합창의 선율에 목말라하는 동안, ‘92년 장마, 종로에서’ “다시는 시청 광장에서 눈물 흘리지 말”고, “절망으로 무너진 가슴 이제 다시 일어서고 있”다는 노래 가사를 잊지 않으면서 말이다. 교향곡 9번은 4악장에 가서야 합창을 보여준다. 오래 기다렸다. 2011년 유월의 광화문 같다. 자식들에게 동감한 아버지들이 함께 노래 부르고, 관현악기와 타악기는 절묘하게 조합하고, 터키풍 행진곡은 장중한 음색과 조화를 이룬다. ‘더 기쁘고 즐거운 노래’를 부른다. 죽음보다 숭고하다. 쉴러의 시에서처럼 ‘냉혹한 세상에 의해 분열되었던 것을 통일’할 듯하다. 가치와 진리를 위해 손을 잡는 ‘형제애’를 기대해도 될 듯하다.
  • ‘YS 대선중립’ 진실게임

    1997년 대선 과정에서 김영삼(YS) 당시 대통령이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 사건에 관해 취한 태도를 놓고 관련자들이 논쟁을 벌이고 있다. 민주당 이강래 의원이 최근 펴낸 저서 ‘12월 19일’이 발단이 됐다. 이 의원은 저서에서 1997년 대선전의 최대 고비로 ‘DJ 비자금 의혹 사건’을 꼽았고, YS의 선거 중립이 정권교체를 가능하게 했다고 회고했다. 김대중평화센터는 11~12일 연이틀 논평을 내고 이 의원의 주장을 반박했다. 최경환 공보실장은 “이 의원이 97년 정권교체를 YS의 선거 중립 덕이라고 말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면서 “비자금 의혹은 (DJ 집권 이후인) 98년 수사 결과 완전한 조작인 것으로 증명된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역사적 정권교체의 진실을 왜곡한 것은 DJ와 국민을 모욕하는 일”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이 의원 측도 성명을 내고 “이 책은 수많은 객관적 자료들을 바탕으로 이 의원이 직접 경험하고 목격한 바를 역사 앞에 증언하는 자세로 정리한 것”이라면서 “보고 느낀 대로 진솔하게 기술한 내용”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무슨 근거로 ‘진실 왜곡’, ‘역사 왜곡’ 운운하냐.”며 공개 답변을 요구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시대의 지성 김준엽 선생의 영면 기원”

    “시대의 지성 김준엽 선생의 영면 기원”

    “영원한 ‘시대의 지성’ 고(故) 김준엽 선생의 영면을 기원합니다.” 8일 광복군 출신으로 고려대 총장을 지낸 김준엽 사회과학원 이사장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안암동 고대안암병원 장례식장에는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각계각층 주요 인사들의 발길이 이틀째 끊이지 않았다. 고인의 광복회 시절 사진들이 놓여 있는 빈소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 등 각계 단체와 인사들이 조화를 보내 고인의 업적을 기렸다. 빈소에는 아침 일찍부터 이홍구 전 국무총리와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김신 백범김구기념사업회장 등 김 전 총장과 생전 각별했던 인사들이 찾아와 고인의 마지막 자리를 지켰다. 이 전 총리는 고인을 ‘존경스러운 광복군 출신 리더’로 돌이켰다. 그는 김 전 총장에 대해 “해방 후 한국 내에 일제의 영향이 남아 있던 시절 후배들이 우리나라의 독자적 발전 방안을 고민하도록 독려하셨다.”면서 “학자로서 민족적 긍지를 갖고 매사 주도적으로 나서신 분”이라고 평가했다. 이 전 총리는 “김준엽 선생 덕분에 한국에서 사회과학의 기틀을 제대로 다질 수 있었으며 70년대 북한에 대한 연구가 쉽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공산권연구회를 만드는 등 통일문제에 일찍이 눈뜬 선구자였다.”면서 “90년대와 2000년대에는 중국통에 머물지 않고 직접 중국 주요 각지에 한국학 연구를 널리 전파하신 분”이라고 덧붙였다. 강 교수는 “김 전 총장은 우리나라 최고의 중국통으로 중국에서도 존경받는 분”이라면서 “학문적으로뿐 아니라 국제관계에도 큰 공적을 쌓은 분인데 뒤를 이을 후학이 어서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전날 밤에는 현인택 통일부 장관, 한승수 전 국무총리, 임종인 전 국회의원,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장호권 사상계 대표이사 등이 빈소를 다녀갔다. 김 전 총장의 장례는 가족장으로 4일간 치러진다. 영결식은 10일 오전 8시, 발인은 오전 9시이다.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이다.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문성근 “총선 출마 가능성 열어두겠다”

    문성근 “총선 출마 가능성 열어두겠다”

    “좋지, 나도 그 꿈 하나 믿고 저 밑바닥에서 여기까지 올라왔어. 그냥 공짜로 올라온 거 아냐.” 1997년 도시화의 광풍이 몰아치던 일산신도시, 재개발이 확정된 한 허름한 건물 옥상에서 ‘가족들과 작은 식당 차려서 오순도순 살고 싶다.’던 꿈을 전한 조직원 막동이(한석규)에게 보스 배태곤(문성근)이 건넨 말이다. 영화 ‘초록 물고기’에서다. 막동이의 허리를 안고 “인생에 공짜는 없다.”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던 영화배우 문성근(58)씨. 고 문익환 목사의 아들로도 유명한 그가 요즘 가슴 밑바닥에 감춰 두었던 꿈을 펼치고 있다.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 유쾌한 백만민란 대표일꾼.’ 배우 직함 대신 내민 새로운 직책이다. 백만민란은 야권 단일연합정당 운동이다. 지난해 6·2 지방선거 직후 문 대표가 처음 제안했다. 현재 회원은 약 16만명이다. 지난 1일 일산의 한 식당, 3일 여의도 63빌딩 근처 커피숍, 그리고 4일 일산동구청 근처 한 커피숍에서 세 차례에 걸쳐 문 대표를 만났다. 26년 동안 영화(연극)배우로 살았던 문 대표가 야권 단일정당 운동에 나선 까닭은 무엇일까. 무대가 아닌 골목과 거리를 누비며 꿈꾸는 세상은 또 무엇일까. →백만민란이라니, 너무 선동적이지 않은가. -정당 민주화를 통해 전국 정당을 이루고 2012년에 민주진보 정부를 수립하자는 운동이다. 2012년은 민주진보 진영에게 중요한 해다. 대선 이전에 총선부터 단일 정당이 돼야 다수당이 될 확률이 높다. 국민이 참여하는 정당 구조가 돼야 지속 가능하다. →민주당은 기득권 포기를, 국민참여당은 민주당의 비민주적 운영을, 진보정당은 정체성 훼손을 우려한다. 현실화가 쉽지 않은데. -야권이 합의할 수 있는 정책이 많아졌다. 남북대화하듯 포용하면 된다. 그동안 단일화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봤다. 정치는 연애다. 탈락한 후보 쪽 지지자들은 내 후보처럼 단일후보를 지원하지 않는다. 진보대통합 후 민주당과의 선거연대, 연립정부를 전제로 한 선거연합은 한계가 있다. 민주당과 나중에 선거연대하면 전국 정당이 어렵다. 경선하면 되기 때문에 민주당 입장에서도 기득권 포기가 아니다. →단일 정당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 방안이 있나. -당론을 강제하지 않으면서 합의할 수 있는 만큼만 합의하고 합의가 안 되는 것은 정파로서 경쟁하자는 것이다. 정파등록제(소수 정당 정체성 보장제)와 복수정파제를 도입하면 된다. →왜 배우인 문성근이 굳이 나섰나. -나는 참여정부 5년 내내 비켜 있었다. 산만 다녔다. 노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모문화제 때 참여정부를 다시 생각했다. 서거 15분 전 집 앞에 있는 풀을 가지런히 뽑았던 그 마음을 떠올렸다. 죽어서도 역사 속에서 살아 있겠다는 것, 남은 우리들에게 지역구도 극복의 역사를 만들어 달라는 당부 아니었을까. 민주정부 10년 동안 정치권의 경쟁과 갈등과 분열과 재결합 과정에 전혀 관계하지 않았다. 그래서 특정 정파를 도우려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배우는 체제에 대한 무게를 덜 느끼고 윤리도 뒤집어 본다. 이 운동은 일종의 배우적 상상력이다. 문 대표는 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 부친 고 문익환 목사 얘기가 나오면 눈시울이 붉어졌다. 김 전 대통령과는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 사건(명동사건) 때부터 인연을 맺었다. 문 목사가 민주화 투사로 전환한 해다. 노 전 대통령은 문 목사 방북 사건 변호를 맡아 달라고 찾아갔을 때부터 각별하게 지냈다. 문 목사가 신학자에서 운동가로, 문 대표가 영화에서 정치로 뛰어든 시기가 공교롭게도 일치한다. 58세 때다. 아버지의 유일한 흠결은 1987년 양김(김영삼·김대중)의 분열을 막지 못한 것이라고 문 대표는 말했다. 내년 총선에 출마할 생각이 있느냐고 묻자 문 대표는 “이 운동을 성공시키는 데 할 일은 모두 다 감당하겠다. (그 일이 무엇이든)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겠다.”고 다짐했다. ‘꿈 하나 믿고 저 밑바닥에서 여기까지 올라왔다.’던 배우 문성근의 ‘초록 물고기’가 어쩌면 ‘정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 대표는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때 이해찬 전 국무총리와 이신범 전 의원에게 당시 거주하던 여의도 시범아파트를 빌려 줬던 기억, 2008년 노 전 대통령에게 부산시장 출마를 권유했던 일화도 들려줬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창설 50주년 국가정보원 어제·오늘 그리고 내일

    창설 50주년 국가정보원 어제·오늘 그리고 내일

    오는 10일로 국가정보원이 창설 50주년을 맞는다. 국정원은 5·16 직후인 1961년 6월 10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창설된 중앙정보부가 전신이다. 이후 국가안전기획부(1981~1998년)를 거쳐 1999년부터는 국가정보원으로 탈바꿈했다. 국정원의 지난 50년 공과(功過)를 평가하고 국정원이 대한민국 제1의 정보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한 방안을 염돈재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전 국정원 제1차장)과 제성호 중앙대 법학대학원 교수에게 들어봤다. 좌담은 지난 3일 본사 회의실에서 이뤄졌다. →국정원 50년의 공과를 짚어본다면. -제성호 교수 1961년 당시만 해도 1인당 국민소득(GNP)이 남한 80달러, 북한 160달러였다. 대한민국 발전과 번영의 배후에는 정부기관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2000년대에는 산업 기밀 유출 방지, 대형 행사 시 대테러 대책 등으로 대외 신뢰도를 높인 공도 있다. 그러나 이면에는 공안사건 처리 과정에서 고문이나 인권 침해, 정치 사찰, 불법 도·감청을 자행한 과도 있다. 국가안보기관으로서 대한민국 안보정보를 수집해야 하는데 정권 안보기관으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잘못된 부분은 과감히 청산하고 반성해 선진 정보기관으로 도약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인권 침해 등 잘못된 부분 청산·반성을 -염돈재 대학원장 안보기관으로서뿐만이 아니라 1970년대부터 해외 진출, 경제 발전에도 큰 기여를 했다. 제3공화국 때부터 국정원이 주관이 된 관계 기관 대책회의는 일사불란한 국정 운영의 뒷받침이 됐다. 국정 혼란이라는 말은 김영삼 정부 이후 생긴 말이다. →정권 교체에 따라 부침도 심했다. 정권에 흔들리지 않기 위한 방안은 없나. -제 교수 탈정치, 탈권력화를 통해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국정원 직원들의 전문성을 보장하고 국정원장 임기제를 통해 신분을 보장해줘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많은 인력이 교체되면 그동안 쌓은 노하우와 인프라 등에 대한 국가 차원의 손실이 매우 크다. 정보원들은 애국심, 충성심과 함께 전문성도 제고돼야 한다. -염 대학원장 가장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의지다. 최고 통치자의 의지가 있다면 문제가 쉽게 해결될 수 있다. 원장들의 잦은 교체도 문제다. 지난 20년간 평균 재임 기간은 1년 5개월이다. 최소한 3년은 근무하도록 전적으로 임기를 보장해주는 게 좋다. 국정원 직원들이 자기 신상을 위해 정치권에 기웃거려서도 안 되지만, 정치권 역시 국정원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국정원이 제1의 정보기관으로서 임무를 수행하려면. ●국가 중요 사안에 대해서는 감청도 필요 -제 교수 법과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는 데 인색해서는 안 된다. 법에 따라 업무 영역과 권한을 주고, 잘못했을 경우 책임도 묻는 관계가 형성돼야 한다. 국정원이 일을 하고 싶어도 국정원 직원법 외에는 법제적 뒷받침이 많이 취약한 상황이다. 테러방지법은 11년째 국회 통과가 안 되고 있다. 국가 중요 사안에 대해서는 감청도 필요하다. 인권과 국가안보 문제를 적절히 제한하고 용인하는 풍토로 가야 한다.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르면 국정원장은 정부 유관 기관에 대해서만 기술 지원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농협 해킹 사태에서 보듯이 북한은 정부기관이나 금융기관을 가리지 않는다. 법제적 관점에서 관련 법을 재검토하고 개정할 건 과감하게 해야 한다. -염 대학원장 우리나라 통신비밀보호법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규정이다. 미국보다 강력하다. 안보 현실은 다른 나라보다 엄혹한데, 절대적으로 강하게 돼 있다. 테러방지법은 2001년 이후 아직도 계류 중이다. 두 법률의 강화와 개정은 심각한 문제다. →최근 북한이 폭로한 남북 비밀 접촉에 대해 말들이 많다. 여기에 반드시 국정원이 끼어야 하나. -제 교수 냉전시대에는 적대적 관계를 풀려면 고도의 기민성이 필요했고, 앞으로도 정보기관의 역할은 필요하다. 지난 두 정부를 거치면서 정보기관이 대북 정보를 수집하기보다는 남북대화에만 많이 치중한 면이 있다. 현 정부 들어 대공수사기능을 복원한 것 같기는 하지만 정권 교체에 관계없이 국정원은 제자리를 지켜야 한다. -염 대학원장 북한이 대화, 협상의 대상임은 확실하다. 대화의 진정성을 보이는지 타진하는 것은 당연하다. 오히려 북한에서 국정원이 안 끼고선 대화를 안 하려는 측면이 있다. 북한도 국정원 직원이 오는지 회담 때 반드시 묻는다. 30년간 남북대화의 경험에 비춰 봤을 때 그렇다. →국정원은 여전히 비밀스러운 존재이고 베일에 가려져 있는 존재다.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방안은. -제 교수 일반적으로 정보기관 직원 하면 선글라스 끼고 음침한 데서 뒷조사나 한다는 부정적 인식이 있다. 북한뿐만이 아니라 이제는 산업 보안, 사이버 안보, 환경, 에너지 안보 등 안보 위협 요인이 다양하다. 국정원이 이런 정보를 일부 기관하고만 공유하고 버릴 게 아니라 필요한 기업이나 다양한 주체에 정보를 서비스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산업정보 등 필요한 주체에 제 공을 -염 대학원장 대국민 정보 서비스가 정보기관의 핵심 역할은 아니라고 본다. 핵심은 비밀에 둘러싸여 있다. 신뢰를 얻으려면 투명성이 높아야 하는데, 성공하면 할수록 가려야 하는 역설이 있다. 실패한 스파이는 화려하고, 성공한 스파이는 따분하다는 말이 있다. 정보기관의 활동은 산소와 같아서 하는지 안 하는지 베일 속에 가려져 있는 것이 가장 좋다. →현재 국정원의 역할을 평가한다면 몇 점을 줄 수 있을까. -제 교수 70년대에는 70점. 지금은 90점. -염 대학원장 정보기관이 하는 일을 점수로 매길 수 있을 만큼 다 공개된다면 이미 망한 정보기관이다. 외국 정보기관들과 비교해 보면 우리가 세계 10위권 안에는 충분히 든다고 생각한다. 북한은 인류 역사상 가장 정보 접근이 어려운 국가다. →그간 국정원은 대북 정보 수집에 치중해 왔으나 시대 변화에 따라 변화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앞으로 국정원의 정보 목표 1순위는 어디에 두어야 할까. -제 교수 북한 정보는 여전히 중요하다. 이제 재래식 전략으로는 북한과의 대결이 끝났고 남북 간에 해킹, 전파 교란 등 새로운 안보 위협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대처할 사이버 안보 기능을 강화하고 대테러, 마약과 국제 조직, 환경 안보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영상, 위성 등 과학기술 정보 영역에 대해서도 전문성을 확대해야 한다. 백화점식이라는 비난도 있지만 선택과 집중 전략을 취해야 한다. -염 대학원장 정보기관의 역할은 넓게는 국가 이익의 신장, 좁게는 안보다. 안보는 핵심 가치가 외부의 위협을 받지 않는 안전한 상태를 말한다. 그렇게 봤을 때 산업스파이나 해적은 하루 방심한다고 해서 국가 존망의 위기를 가져올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선택과 집중을 한다면 우선 북한이고, 사이버 테러 등 신안보 위협, 그리고 나머지를 선택해야 한다. 주 목표는 역시 북한이 돼야 한다. 정보의 분석과 심리전, 비밀 공작, 정보 공작 분야의 힘을 키워야 한다. →국정원이 지향해야 할 선진국형 정보기관이란. -제 교수 국정원의 역할은 정보를 수집, 분석, 공작하는 것이다. 망원을 활용해 정보 수집을 잘하고 분석을 잘하고, 필요할 때는 국가 이익 차원에서 공작도 잘하면 된다. 국민, 국회와의 관계도 법 제도 완비를 통해 제대로 형성해야 한다. 국정원은 어떤 사건이 발생해도 확인 불가, 설명 불가, 변명 불가의 입장을 취해야 하는데, 언론에 정보가 공개됨으로써 인프라가 노출되고 폭로되는 현상도 생긴다. 정보 문화와 함께 안보 의식도 선진화돼야 한다. -염 대학원장 선진적이라는 매우 모호한 기준으로 정보기관을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일을 잘하되 민주적 가치를 제대로 존중할 때 선진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스라엘 다음으로 가장 엄혹한 안보 환경에 놓여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해 대한민국은 선진형 정보기관이라고 생각한다. →정부나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염 대학원장 간혹 정보기관이 실패를 하더라도 관대하게 봐줬으면 좋겠다. 목숨 내놓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국민과 언론의 따뜻한 이해와 격려가 중요하다. ●정보원들 잘할 때는 격려도 해줘야 -제 교수 음지에서 묵묵히 일하는 정보원들은 사기를 먹고 자란다. 잘할 때는 격려도 필요하다. 실패에 대해 질책만 하면 선진국형 정보기관으로 가기 어렵다. 또 정보 자산 확보에는 한·미 동맹이 매우 중요하다. 하루 5억 개의 통신 정보를 공유하는 미국과 동맹을 통해 간접적으로 정보를 받고 있다. 필요할 때는 비판도 하고 대등한 관계를 유지해야겠지만 한·미 동맹은 귀중한 자산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사회 김규환 정치부 부국장급 정리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 YS “마음에 둔 대선후보 당선 확신”

    러시아를 방문 중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 2일 내년 대선과 관련, 마음에 둔 후보가 있으며 그 사람이 대통령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현지시간) 숙소인 모스크바 시내 롯데호텔에서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내년 대선 전망을 묻는 질문에 “내가 생각하는 게 있으며 그 전망이 거의 맞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지하고 싶은 후보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거론되는 후보 중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고 그가 당선될 가능성이 크지만 구체적으로 이름을 대지는 않겠다.”면서 “그렇지만 내가 이 사람과 둘이서 만나면 ‘당신이 틀림없이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얘기하곤 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염두에 두고 있는 후보가 한나라당 소속이며 정치활동을 하는 동안 가까이 뒀던 사람이라면서 “나는 한나라당의 재집권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도 덧붙였다. 한편 김 전 대통령은 현대자동차 현지 공장을 시찰하고 올해로 순국 100주년을 맞은 이범진 초대 주러 한국 공사 기념비를 찾아 참배하는 등의 일정을 보낸 뒤 4일 저녁 귀국할 예정이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씨줄날줄] 대의멸친(大義滅親)/곽태헌 논설위원

    중국 춘추시대 주나라 환왕(桓王) 때의 일이다. 위(衛)나라 장공은 환공을 후계자로 세웠다. 충성스럽고 올곧은 선비였던 석작은 장공이 죽고 환공의 시대가 되자, 물러났다. 얼마 뒤 공자 주우가 환공을 시해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주우와 환공은 이복형제 간이다. 주우의 성품은 본래 과격했다. 석작은 주우에게 역심(逆心)이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 그는 반역이 있기 전부터 아들 석후에게 주우와 절교하라고 했으나 아들은 듣지 않았다. 주우의 반란은 겉으로는 성공한 듯 보였지만 민심은 그렇지 않았다. 주우는 전쟁을 일으켜 땅도 넓혔지만 백성들은 그를 따르지 않았다. 석후는 아버지 석작에게 해결책을 물었다. 석작은 “천하의 종실인 주왕실을 예방하여 천자를 배알하고 승인받는 게 좋다. 먼저 주왕실과 가까운 진나라 진공을 통해 천자를 배알할 수 있도록 청원을 해 보아라.” 이 말을 듣고 주우와 석후가 바로 진나라로 떠나자, 석작은 진공에게 밀사를 보내 “주우와 석후는 우리 군왕을 시해한 자들이니 곧바로 붙잡아 처형해 달라.”고 부탁했다. 석작은 군신 간의 대의를 위해 아들까지 죽인 것이다. 대의멸친(大義滅親)이라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대의멸친은 말 그대로 큰 의리를 위해서는 혈육의 친함도 끊는다는 얘기다. 사사로운 감정을 버리고 엄정하게 법을 지켜야 한다는 말로 읍참마속(泣斬馬謖)도 자주 인용된다. 촉나라의 제갈량은 마속의 재능을 아껴 중용했지만, 마속은 제갈량의 명령과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않고 전투를 하다 패했다. 제갈량은 눈물을 머금고 마속을 처형했다. 대의멸친이든, 읍참마속이든 대의를 위해 가까운 사람의 인연까지 끊는다는 것은 다를 게 없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어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 소환된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에 대해 “안타깝지만 대의멸친”이라고 말했다. 홍 의원은 18년 전 나라를 뒤흔든 슬롯머신 비리 수사 당시 주임검사였다. 은 전 감사위원은 슬롯머신 수사를 벌인 서울지검 강력부 소속 6명의 검사 중 막내였다. 당시 같은 팀원이었던 김홍일 대검 중수부장이 은 전 감사위원 수사를 맡게 된 것도 인연치고는 묘하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에도 그랬지만 정권 말기가 될수록 대의멸친이니, 읍참마속이니 하는 말들이 나오는 것 자체가 비극이고 불행이다. 현 정부에서 제2, 제3의 은진수는 없을까. 대의멸친을 하든, 읍참마속을 하든 제대로 확실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재발도 막을 수 있고 기강도 바로 설 수 있다.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열린세상] 진정한 정당개혁이란/ 김용호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진정한 정당개혁이란/ 김용호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난달 재·보궐 선거에 참패한 한나라당이 당을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당을 개혁하지 않으면 내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수도권에서 30석을 차지하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한다. 노무현 정부 말기부터 한나라당의 지지도가 야당보다 계속 높았으나 최근 들어 역전되는 현상이 발생했으니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일부에서는 당명도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다. 한나라당은 내년 총선에 대비하여 과거 공천심사위에서 하던 국회의원 후보 공천을 국민참여형으로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 당권과 대권을 분리하는 현행 제도 대신에 과거처럼 대선 후보가 당 대표를 맡을 수 있도록 바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물론 친박은 이 제도가 박근혜 전 대표를 불러내어 정치적 책임을 지우려는 것이라고 반대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젊은이가 당대표를 맡아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새로 선출된 황우여 원내대표는 감세정책 철회, 대학 등록금 반액 추진 등 서민의 입맛에 맞는 새로운 정책을 내놓고 있다. 이처럼 한나라당이 인물 교체, 제도 개선, 정책 변화를 통해 거듭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과연 우리들은 이러한 개혁 노력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우리들은 민주화 이후 정당들의 개혁 경쟁을 여러 차례 보았으나 기대가 실망으로 변하였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 지지 세력은 새천년민주당을 뛰쳐나와 국민 참여의 진정한 손발이 되겠다고 열린우리당을 만들었으나 실패하였다. 당시 강준만 교수는 신당 창당을 위해 국민개혁당을 해체하는 것을 준열하게 비판했으나 유시민 대표는 갖은 교언영색으로 창당을 정당화했고 그의 열린우리당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났다. 새천년민주당은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정당 개혁의 기치 아래 소위 국민참여경선제를 도입하여 흥행에 성공하였으나 이 제도를 통해 대선후보가 된 노무현 대통령이 새천년민주당을 버렸다. 이뿐이 아니다. 2000년 총선을 앞두고 김대중 대통령은 ‘젊은 피 수혈론’을 앞세우고 자신이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를 없애고 천년 가는 정당을 만든다며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했으나 10년도 못 가고 해체되었다. 그런데 오늘날의 한나라당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신한국당의 이회창 후보와 민주당의 조순 후보가 후보 단일화를 하면서 탄생하였다. 사실 신한국당은 김영삼 대통령이 1995년 지방선거 패배 후 1996년 총선을 앞두고 선거전략상 간판을 바꾸었다. 이처럼 민주화 이후 지난 20여년간 한국의 정당은 다가오는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당 개혁의 깃발을 내걸고 창당을 하거나 당명을 바꾸었다. 그 결과 한국 정당은 파리 목숨처럼 단명하였다. 그리하여 한국의 여당은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면 반드시 없어지는 매우 신기한 법칙이 등장하였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각각 공들여 만들었던 민자당, 신한국당,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은 예외 없이 대통령의 임기 이후에 사라졌다. 이제 한나라당의 운명도 과거 여당과 똑같은 신세가 될 것인지, 예외가 만들어질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우리들은 정당이 진정으로 개혁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한나라당의 개혁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 정치인들이 정당 개혁을 수없이 외쳤으나 아직도 한국 민주주의의 최대 문제점은 정당이라는 점에 많은 이들이 동의하고 있다. 왜 아직도 한국 정당은 개혁의 대상으로 남아 있는가. 그것은 한국 정당이 근본적인 개혁을 하지 않고 삐딱한 얼굴에 분칠만 한 탓이다. 다가오는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1년 정도 효과가 나는 화장품이나 덕지덕지 바르기 때문이다. 진정한 정당 개혁이란 지도자의 손에서, 정치인들의 손에서 놀아나고 있는 정당을 주권자인 국민의 손에 되돌려 주는 일이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당을 위해 일하는 국민들이 많아져 아무도 함부로 당을 해체하거나 다른 당과 통합하거나 간판을 바꾸는 일이 일어나지 않고 수백년을 견디어 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이제 한나라당이 진정한 당 개혁을 통해 미국의 민주당이나 공화당, 영국의 보수당이나 노동당처럼 반석 위에 우뚝 서기를 바란다.
  • 김영삼 전 대통령 29일 방러 고르바초프 만나

    김영삼 전 대통령 부부가 오는 29일부터 6월 5일까지 7박 8일간 러시아를 방문한다.  김 전 대통령 측은 23일 “김 전 대통령은 1989년 6월 2일 한국 정치인 최초로 옛 소련(러시아)을 방문해 한∙러 수교(1990년 9월 30일)의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면서 “한∙러 수교 20주년을 기념하는 뜻에서 러시아 극동문제연구소(소장 티타렌코)에서 김 대통령의 최초 방소 일자에 맞춰 초청했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번 방러 기간 동안 극동문제연구소와 모스크바 국제관계대학에서 특별 강연을 한다. 또 한∙러 수교 당시 소련 대통령이었던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을 만나고, 수교 당시 큰 역할을 했던 이그나텐코 이타르타스통신 사장과 오찬을 함께 한다.  김 전 대통령은 옐친 전 대통령 묘소와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부인 라이사 여사 묘소도 참배할 예정이다. 옐친 전 대통령은 1994년 6월 김 전 대통령의 러시아 공식 방문 중 자동 군사 개입 조항이 핵심이던 조(朝·북한)·소(蘇) 조약 폐기와 대북 무기부품 공급 중단을 약속했고, 김일성의 남침을 증명하는 6·25전쟁 관련 문서를 김 대통령에게 넘겨줬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내 정치를 말한다] 공공성 외면한 경쟁체제 동의 안해…혁명? 한 걸음씩 전진하는 게 낫다

    →왜 정치를 하는가. -정치는 남의 일에 간섭하는 것이다. 나는 원래 개인적인 문제보다 공공의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양극화와 저출산 등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자유시장경제 위협 요소를 정치가 제거해야 한다. →언제까지 정치를 하고 싶은가. -재선은 하고 싶다. 많이 떨어져 봐서 초조함은 없다. 다만 재선을 한다면 강물을 거스르는 한 마리 연어에 그치지 않고, 건전한 보수가 신주류로 자리 잡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것이라고 본다. →재선이 가능하다고 보나. -내년 총선이 정당 대결 투표로 가면 힘들다. 능력 있는 국회의원은 살려 놓자는 기류가 형성된다면 기대해 볼 수 있다. →보수주의자인가, 진보주의자인가. -중도 실용론자다. 자유민주주를 강조하는 게 보수이고,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게 진보라면 보수에 가깝다. 하지만 공공성을 외면한 채 개인의 경쟁만 강조하는 보수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정치인이 된 것을 후회하지 않나. -아내 덕택에 후회하지 않는다. 투옥·낙선 등 쉽지 않은 과정이 있었지만 아내는 “당신은 공공적 인간”이라며 배려해 줬다(김 의원은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나 한 번도 헤어진 적이 없는 고졸의 구로공단 노동자 출신 아내에게 고맙다고 했다). →민주화 운동을 할 때의 신념이 변했나. -운동할 때는 혁명을 꿈꿨다. 하지만 정치는 긍정적 가능성을 넓히는 것이다. 작은 한 걸음이 선명하기만 한 정체보다 낫다. →어떤 정치를 꿈꾸나 -정치 축제를 벌이고 싶다. 6·25 참전 용사, 구로공단 여공들, 중동의 건설 노동자, 민주화 투사들이 모두 어우러지는 축제 말이다. →정치적 스승은 누구인가. -정치인의 길로 인도한 고(故) 제정구 전 의원을 존경한다. 장기표 선배님은 나의 경직된 사고를 깨웠고, 정운찬 전 국무총리에게선 한국 경제를 보는 안목과 지식을 배웠다. 요즘은 안철수 교수로부터 자양분을 섭취하려고 노력한다. →김영삼(YS)·김대중(DJ) 두 전직 대통령의 ‘러브콜’을 받지 않았나. -한 분을 택했으면 아마 3선 의원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제정구 전 의원의 가르침대로 지역 정치·보스 정치를 깨기 위해 민중당에 참여했다. →한나라당과 잘 맞는다고 보나. -맞고 안 맞고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바꿔 나가면 된다. 한나라당을 개혁하는 게 정치 개혁의 지름길이다. →한나라당을 얼마나 변화시켰다고 생각하나. -이제 시작이다. 건강한 보수는 항상 변방에 있었다. 진보와 대화할 수 있는 건강한 보수가 힘을 얻어야 한다. →정부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은 없나. -관료들에게 막힌 장벽을 뚫는 정치를 하고 싶다. 좋은 대통령을 만나 내가 설계한 공정한 시장경제를 실현시키고 싶은 욕심도 있다. →정책위 부의장으로서 뭘 할 수 있나. -국민이 진짜 믿을 수 있는 서민 정책을 만들고 싶다. 일자리 창출과 복지사각지대를 줄이는 예산을 짜고 싶다. →한나라당의 쇄신이 가능하다고 보나. -원내대표 경선을 보고 깜짝 놀랐다. 변화를 이끌 리더를 세우는 게 중요하다. 전당대회 투표 인원을 20만명 이상으로 늘려 줄 세우기를 차단하면 당 중심 세력 교체가 가능하다. →쇄신파들이 당권 투쟁에 매몰돼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정치는 권력을 누가 수임받느냐를 놓고 벌이는 경합이다. 당권 투쟁은 당연한 현상이다.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이들의 편협한 비난이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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