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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장엽·김덕홍 주요 진술내용:Ⅳ

    ◎외세개입 없을땐 100% 적화통일 가능/나진·선봉에 남한기업 투자 원치 않아 ▷북한 대외관계◁ ○외교정책·전략 소·동구붕괴 이후 북한 대외정책의 핵심은 ‘체제고수’라는 기본목표하에 내부를 공고히 하면서 대국(주변4각)들과의 마찰을 가급적 피하고 이들을 이용해 나가는 전략임. 외교정책 결정은 소·동구 붕괴이전에는 ①외교부 수립 ②당 국제부 심사 ③김정일 비준 ④외교부 하달순이었으나 90년대 들어 김정일이 직접 관장한 이후부터 외교부가 주도하고 있음. 외교정책 주도인물로는 김영남·강석주 등을 들수 있는데 외교부가 주관한 대미 핵협상이후 강석주가 김영남을 제치고 김정일에게 직접 보고하는 등 신임을 받고 있음. 북한지도층은 일본으로부터 배상금을 받아 경제난국을 타개하려고 했는데 일·북 관계에 진전이 없자 미국과의 관계가 먼저 개선 되어야 함을 깨달았음.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에 주력하고 있는 것은 중국의 간섭을 견제하면서 대미관계 개선을 통해 일본을 따라오게 하고 한국과 미국을 이간시키기 위한 것임. 김정일을 UN을 미국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부속기구로 보고 있으며 대 UN외교활동 중점을 주한미군 철수와 국제기구로부터의 지원획득에 두고 있음. ○해외 주체사상연구소 70.10 김일성과 단독 면담하여 주체철학 확립사업을 승인받고 4년간에 걸친 집필활동을 통하여 김일성 명의로 주체사상을 집대성 하였음. 최근까지 주체사상 연구소 활동을 위해 연간 100∼120만불의 예산을 사용해 왔음. 주체사상의 세계전파를 위해 78.4 동경에서 주체사상 국제연구소르 창설(초대 이사장 야스이 카오루,현재는 이노우에 슈하치)하고 매년 자금을 지원해 왔으나 최근에는 북한의 자금난으로 2년전부터 조총련에서 지원하고 있음. 현재 지역별 주체사상연구소는 인도,불란서,페루,나이제리아에 있으며 동 조직에 대한 자금지원을 하지 않고 있지만 과거에는 아주 주체사상연구소(인도)에 매년 3∼4만불,중남미 지역 1만불,불란서에 5천불 정도 지원한 바 있음. 해외주재 북한대사가 주체사상 전파업무를 담당하게 되어 있으며 일부지역에는 전담요원이 파견된 바도 있으나 이들 조직의 활동보고를 받거나 평가를 내리지는 않았음. ○주요국과의 관계 김정일의 대미접근 의도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시간을 벌면서 「평화적」이라는 대외명분도 세우려는 것으로서 중국의 개혁·개방의 길로 나아가는데 대해 골탕을 먹이고 남한을 고립시키는 등 여러책략을 기본고리로 미국과 상대하려는 것임. 김정일은 미국을 타도대상인 적인 동시에 이용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어 미국과의 수교가 상당기간 성사되지 않을 것으로 보며 수교시 주한미군 철수문제가 제기되고 북한의 남한 고립정책이 더욱 강화될 것임. 북한이 미국과 미사일 관련 협의에 수표하더라도 종잇장에 불과할 것이므로 이를 지키지 않을 것임. 내부적으로 ‘미·북 핵합의’를 “신출귀몰한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승리한 것”으로 선전하고 있으며 대부분 주민들은 정보가 차단되어 있어 모두 이를 믿고 있는 실정임. 김정일이 “일본에 대해서는 고자세를 취함으로써 일본을 끌어 당기라”고 지시한바 있으며,대일관계 개선 목적은단지 사죄와 보상금을 얻어내는데 있음. 일본과의 수교회담은 처음에는 일본과 직접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나 차츰 미국의 승인없이는 안된다고 생각하게 되어 대미관계 개선에 우선을 두고 있음. 일·북 수교회담이 조만간 재개될 가능성이 있으며 1백억불정도의 보상만 받을수 있으면 당장이라도 수교할 것임. 북한과 중국과의 관계는 계속 유지될 것이며 북한은 미국과의 접근을 원치않는 중국을 자극하여 보다 많은 지원을 얻어내려 할 것임. 북한은 한·중 수교이후부터 중국을 자본주의 국가로 인식하고 있으며 외교적 사안을 전혀 통보하지 않는 등 다소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 북한은 소련붕괴이후 중국의 영향력으로부터도 벗어나려 하고 있기때문에 중국측에서 김정일을 수차 방중 초청해도 거절하고 있음. 북한은 남쪽을 무력으로 통일시키는데 러시아로부터 지원을 받을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크게 비중을 두지 않고 있음. 러시아가 한국의 자본과 러시아 기술을 이용하여 북한의 공장을 정상화시키려고할 경우 북한은 설비는 받아들일 것이나 남쪽인원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임. 북한은 대만에서 돈을 끌어들이기 위해 대만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하고 있음. 북한은 홍콩의 중국반환에 대비하여 보위부 반탐국장을 단장으로 한 대표단이 작년 여름 총영사관 설치문제와 관련하여 홍콩을 방문하였다고 함. 91년경 김일성은 “아프리카 국가들은 줄때 뿐이며 자본주의 국가나 남조선에서도 받아먹고 있어 ‘밑빠진 독에 불붓기’”라면서 “이제부터는 동남아에 중심을 두어야 한다”고 언급하였음. 김정일도 21세기를 태평양 시대라고 보고 동남아를 중요시하면서 필리핀·호주 등과의 수교를 추진하고 있음. 김일성은 91년경 교시를 통해 동남아 다음으로 브라질,페루 등 중남미 국가 야당과의 사업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는데 이는 이들국가의 여당은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인 것으로 보임. ○조총련의 대북송금 실태 김정일은 조총련의 송금을 최대의 명줄(중요자금원)로 간주하고 있으나 80년대에는 송금액이 6억달러 정도였으나 지금은 정확한 액수를 알수 없으며 빠찡코,부동산 등의 수입이 감소하여 많이 줄어들고 있음.또한 북한은 조총련에 교육비 명목으로 선전차원에서 자금을 보내기는 하지만 직접 투자는 하지 않고 있으며 지난번 일본 지진시 북한이 위로금을 보냈을때 ‘황’이 “뭐 그렇게 많이 보내느냐”고 하자 통전부 간부가 “보내면 몇배로 되돌아온다”고 대답한 바 있음. 지난 91∼92년도에 수교교섭시 일본으로부터 배상금을 1백억불 이상 받아낼 계획이었음. 김일성 생존시에 배상금을 쓰는 문제에 대해 조금 논의를 했는데 경제부문이 아닌 다른부분에 쓰려는 것으로 들은바 있음. ▷대남 및 남북관계◁ ○북한의 대남 기본전략 과거 김일성은 대남혁명전략으로 남한내 이른바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을 일으킨 다음 연방제로 통일하는 평화적 방법과 전쟁이라는 비평화적 방법을 병행하였음. 김정일은 오직 무력에 의해서만 통일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남한에 비해 경제력은 열세이나 일본 등 외부간섭이 없으면 100% 힘에 의한 적화통일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음. 극심한 식량난에도 아랑곳없이 군사력 강화는 물론 무력통일을 위한 사전 기반조성의 일환으로 주한미군 철수·남한 내부와해 및 지하당조직 공작을 추진하고 있음. 특히 최근에는 남한과 해외의 군사정보 수집을 위해 별도 공작기구를 설립하는 등 군관련 공작에 주력하고 있음. ○연방제통일전략(합작통일전략) 북한의 기본 대남전략은 ①남한은 내부적으로 와해시키고 ②무력으로 밀고 나가자는 것이며 현재 ‘남한정세가 정치적 문제·학생데모 등으로 혁명의 좋은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음. 북한이 대남 강경노선을 유지하는 것은 김정일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 무력으로 통일해야 한다”고 결정한데 따른 것이며 남북관계에서 온건파가 발붙일 자리는 없음. 북한의 연방제 통일전략은 외국 등 외부의 간섭을 배제한 가운데 남한내에 혼란을 일으키고 인민 봉기에 의한 정권을 수립한 후 합작하겠다는 것으로 속임수에 불과함. 김정일은 개방을 하면 체제가 무너지고 자신도 죽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공식권력승계를 하더라도 대남정책에는 변화가 있을수 없고 있지도 않을 것임. ○대남정책 입안 및 집행절차 대남 공작사업은 대남사업을 전담하는 당 소속 통일전선부·사회문화부·작전부·조사부와 인민무력부 정찰국에서 각각 자체계획을 수립,김정일의 비준을 받아 집행하고 있음. 공작부서간 상호 업무협조는 김정일의 직접적인 통제아래 이루어지므로 김정일 이외에 어느 누구의 지휘나 협의·조정없이 자체적으로 수행함. ○남북대화 북한은 남북대화를 ‘적과의 전쟁’으로 간주하여 모든 전략을 김정일의 결재하에 추진하고 있음. 남북대화 전략은 노동당 통일전선부에서 수립하며 동 전략에 따라 조평통·정무원 등 관계자로 구성된 회담대표단이 이를 수행함. 90년 남북 고위급 회담에 응했던 것은 남한을 안심시키고 국제적 이미지를 좋게 하자는 의도였으며 당시 연형묵 총리는 로봇에 불과했음. 94년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한 것은 김일성이 서울을 방문할 경우 지지하는 사람이 많아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며. 회담목적은 연방제통일과 남북 경제교류 문제를 논의하려는 것이었음. 4자회담은 잘 응하려 하지 않을 것이며 쌀을 준다면 나올 수는 있겠으나 딴 이야기나 하며 시간을 끌 것임. 북한이 ‘3+1’회담을 주장한 이유는 중국의 조선문제에 대한 간섭을 싫어하기 때문임. 북한 고위인사 대부분중 대미협상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으며 대미협상이 김정일의 권위와 위상을 높이는 것으로 보고 있으나 4자회담 참석에는 반대하고 있음. 조선기독교연맹 위원장 강영섭은 통일전선부 사람들이 작성해주는 것을 읽는 허수아비에 불과하며,북한에는 종교를 믿으면 곧바로 통제구역으로 쫓겨남. 민간급 접촉은 김정일의 지시로 통전부에서 전담하고 있으며 남한사회를 교란시키기 위해 재야단체 등을 반정부 투쟁에 끌어들이려는 유인술책임. 또한 당국간 대화 거부입장을 정당화 하여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하고 국내 일부단체의 대북접촉을 부추겨 통일국론을 분열시키면서 경제지원 등도 얻어내 보려는 속셈임. 남북경협은 대외경제위 산하 ‘대외경제협력 추진위’가 주관하고 있으며 동 기구는 크게 나진·선봉투자,금강산 개발,남한 기업인 접촉 등 3가지 업무를 담당함. 최근 언론에 보도된 바와같이 비단섬을 경제특구나 관광특구로 개발하려고 하는것은 중국인을 대상으로 1일관광을 시키는 정도일 것이기 때문에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지는 못할 것으로 봄. 북한이 나진·선봉지역을 개방한 것은 폐쇄정책을 고수하고 있다는 국제적 비난을 모면해 보기 위한 것으로 남한기업의 투자는 원하고 있지 않으며 남한기업인에게는 경영권을 절대로 주지 않을 것임.
  • 황장엽·김덕홍 주요 진술내용:Ⅰ

    ◎산소 없애 생물 죽이는 ‘기화폭탄’개발 소문/남측 정정혼란때가 전쟁도발 최적기/김정일 전쟁명령 지휘체계 대폭 축소/‘전쟁나면 미국도 사정권’ 승리 장담 ▷북한의 전쟁준비 동향◁ (1)전쟁준비 관련사항 ○김정일의 전쟁관 및 전쟁의지 김정일은 군대가 많고 수십년간 전쟁을 준비해 왔기 때문에 전쟁을 하면 이길수 있다고 생각하며 한국군을 겁내지 않고 있음. 김정일은 김일성이 50% 밖에 독립시키지 못했다면서 자기대에는 무조건 무력통일시키겠다고 하며 “통일조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정치적 야욕을 가지고 있음. 북한은 전쟁을 6개월 이상 끌지 않는다고 해서 전쟁물자를 6개월분만 비축하고 있음.북한 특수부대원들에게 한국군 군복을 입혀 북측지역에 침투할 것으로 위장한 후 한국군이 먼저 도발했다면서 서울에 5∼6분동안 포를 쏘아 잿가루로 만든 다음 미군이 증원되기전에 부산까지 밀고 내려가고 미국이 개입하려 할 경우 동경 등 몇개 일본도시를 미사일로 타격하여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함으로써 개입을 저지시킨다는 계획을 수립하고 있음 김정일이 권력의 핵심으로 등장한 70년대초부터 모든 부서는 전쟁준비에 주력하도록 해왔으며 특히 91.12 김정일이 최고사령관이 된 이후에는 전쟁분위기가 더욱 고조되었음. 김일성 사망이후 김정일은 수시로 “조국통일의 주력은 군대다.믿을 것은 군대뿐이다.모든 힘을 다해 군대를 지원하라”는 지시를 수시 하달하는 등 오직 전쟁준비에 광분해 왔음. 김정일을 포함한 지휘부는 전쟁시 승리를 100% 확신하고 있으며 일반주민들은 남한군을 「허재비」(허수아비)로 인식하고 있음. 김정일은 “북한이 없는 지구는 존재할 필요가 없으며 북한이 망하게 되면 세계와 함께 자폭하겠다”고 극언하였음. 북한의 김정일 및 당·정·군 고위간부들은 경제력 등은 남한이 월등하나 군사력은 북한이 우세하여 외부간섭(미국)만 없으면 100% 힘에 의한 적화통일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음. 한편 주민들은 극심한 식량난으로 차라리 전쟁이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음. 62.10 쿠바사태시 김일성은 “형님 지갑돈은 내 지갑돈만 못하다.항상 내지갑에 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전쟁준비를 시작,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한다는 정책을 추진해왔음. 김정일은 64년 김일성대학을 졸업한 후 국방건설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직접 지휘하였으며 그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군사분야에 관여해 왔음. 북한은 전쟁이 발발할 경우 평시체제를 그대로 전시에 적용하는 전시형 국가관리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무기생산은 100% 자체 해결하고 있고 전투헬기·미사일·방사포도 대대적으로 생산하고 있음. 63년 김일성을 수행,평강지구(5군단 사령부)를 방문했는데 갱도에서 모든 생활이 가능하고 대포출입이 가능케 되어있는 등 완전 지하요새화가 되어 있었음. 산업분야의 전기공급이 아무리 부족해도 지하군사시설에 사용되는 전력은 절대로 다른 곳에 전용할 수 없음. 평양근교 지하 군사시설의 경우 조명·급수·환기장치 등이 완비되어 있음. 92년 창군 60주년 군사퍼레이드시에 본 모든 장비는 자행식이었으며,군내에서는 남한을 3번 “잿가루”로 만들수 있는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함. 북한의 특수전 부대들은 부대별로 남한내 미사일기지·공항 등 주요 전략시설에 대한 타격목표를 선정해놓고 있으며 유사시 항공육전대(공수부대)나 쾌속정으로 들어가서 타격하도록 되어있음. 중앙당 간부를 비롯,전 주민들은 군대에 ‘헌납미’를 바치는 등 적극 지원하고 있으며 중앙당에서 군에 대한 간부들의 지원실적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지원활동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음. ○전쟁 도발 시기 과거 북한이 도발의 호기라고 보았던 시기는 ‘4·19’라고 생각하였으나 소련과 중국이 반대했으며 또한 전쟁복구 건설이 겨우 끝난 시기였기 때문에 내려오지 못했으며 지금은 대선문제로 상당히 노리고 있을 것임. 한편 전쟁위기가 높았던 시기는 푸에블로호 사건(68.1)·EC­121 격추사건(69.4)·판문점 도끼만행사건(76.8)때로서 주민들을 모두 소개시킨채 “들어오면 하겠다”는 분위기여서 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보였음. 미국과 중국의 태도가 문제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의 정정이 더 혼란상태에 빠지는 때가 도발의 최적시기가 될 것이며 남한내 지하조직을 이용,혼란을 조성하는 한편 미국의 군사력이 여타 분쟁지역으로 쏠릴때 도발할 것으로 예상함. 김정일을 비롯한 지도부는 경제가 더욱 어려워지고 민심도 불안해지고 있는 현상황에서 믿을 것은 무력밖에 없기 때문에 전쟁이외에는 출로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음. ○전쟁지휘 체계 및 군사전략 전쟁지휘체계는 종래 ‘김일성→인민무력부장→총정치국장→총참모장’체계로 되어 있었으나 김일성 사망이후에는 지휘계통을 거치지 않고 ‘김정일→총참모부 작전국장’으로 바로 지시가 내려갈 수 있도록 되어있는 등 김정일의 독단적 명령에 의해 전쟁이 발발할 수 있음. 북한은 전쟁 발발시 평시체제를 그대로 전시에 적용하는 전시형 국가관리체제를 유지하고 있어 별도의 전쟁지휘기구가 필요없음. 북한의 전쟁 시나리오는 ‘전략전’전략에 입각,십수만명의 특수부대원을 사전에 투입시켜 미사일 기지·비행장 등 주요시설을 타격하는데 이어 기동전을 통해 남한전역을 장악한다는것임. 특히 김일성 사후 미사일·방사포 등 화력을 통해 단시간내 서울을 비롯한 전략지대를 타격·파괴시킨후 협상을 추진한다는 전법을 세워두고 있음. 김정일은 김일성 사망 2년전에 최고사령부 ‘작전조’와 함께 남침 시나리오를 작성하였으며,동 시나리오를 본 군 지휘관들이 당장 실천에 옮기자고 하였으나 김일성이 인민생활부터 먼저 해결한 다음에 해야 한다면서 유보하였음. 전쟁이전 단계에서는 우선 남한을 미·일·중·러 등 큰 나라와 이간시켜 국제적으로 고립시키고 미군철수를 유도하는 것임. 김일성,“미군만 철수하면 제주도를 떼어주어도 좋다”고 언급 미국이 개입할 경우에는 ‘인간어뢰’와 항공기에 의한 자살특공대 등으로 미항공모함을 몇척 까부셔 미국여론이 조선전쟁 참여를 반대토록 유도하며 또한 장거리 미사일로 일본을 초토화하겠다고 위협하여 미국이 물러서도록 유도할 것임. 북한은 동맹조약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지원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고 있으며 다만 북침시에는 중국이 북한을 지원해줄 것으로 믿고있음. ○김정일의 군부장악정도 김정일은 최고사령관(91.2)과 국방위원장(93.4)에 취임,명실공히 군통수권을 장악한 이후 대규모 장성진급 및 3선 감시체계(지휘·정치·보위부) 등을 통해 군부를 완전히 장악하였음. 총참모장조차 김정일의 지시사항만 수행하고 있으며 사소한 반대의견이나 제안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군을 장악하고 있고,조명록(총정치국장),김영춘(총참모장),원응희(보위사령관) 등이 측근으로 활동하고 있음.조명록 총정치국장은 공군사령관을 하다가 김정일이 마음이 곱다고 해서 군 정치책임자로 발탁하였음.김영춘 총참모장은 정치적인 감각이 없으며 전략을 쓸만한 인물이 못됨.오극렬 작전부장은 무력부내에 기반을 갖고 있고 머리가 명석하며 김일성이 총참모장직에서 해임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이 당작전부장으로 재기용했음. (2)군사력 증강 관련사항 ○무기개발·생산 및 기술도입 실태 북한의 잠수함 건조는 러시아가 해체한 잠수함에서 회수한 강판을 도입하여 사용하고 부품은 외국에서 도입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특히 전자부품 및 장비는 일본에서 도입하고 있음. 김정일은 중국의 무력을 높게 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중국으로부터의 무기 또는 무기개발기술을 도입하고 있지않으며 소련의 신형무기를 얘기해도 “그런 것은 다 낡은 것”이라고 무시하면서 설명서를 보지도 않음. 북한은 무기개발을 위해 필요한 외국기술자 초청은 인민무력부가 외교부를 통해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음. ○군수부문 우대정책 지속 67년 제4기 15차 당 전원회의시 경제·국방 병진정책을 제시한 이후 군수부문 우대정책을 지속 실시하고 있음.동 희의에서 주변국가들의 정세를 분석한후 무력통일을 자체의 힘으로 해야 한다고 결정하였음. 김정일의 군수공장 우대 실태를 보면. 각 공장·기업소는 민수에는 일체공급하지 못하더라도 군수부문에는 계획대로 최우선 공급해야하며 그렇지 않으면 군사재판에 회부토록 하였음.군수공장은 정무원과 별도로 당중앙위 군수공업부(비서 전병호)에서 관장하고 있으며 모든 민수공장에도 군수생산 직장(부서)을 설치하였으며 여기에 대한 검열도 군대가 하고 있음.군수생산계획 집행여부를 평가하기 위해 당중앙위 군사위원,정치국 상무위원,도당 책임비서,공장·기업소 당비서 및 지배인 등이 참석한 가운데 ‘당 중앙군사위원회 명령 총화회의’를 개최하여 실적 부진자는 직위고하에 관계없이 문책하고 있음. ○전쟁물자 비축 군수동원총국에서 전쟁물자 비축을 총괄하며 동 총국은 행정적으로 호위총국과 같은 독자적인 기구로서 정치위원이 중장으로 편제되어 있는 등 중요시되는 기관임. 전쟁물자의 수입은 2경제위원회가 외화벌이를 해서 조달하며 정무원 등 다른 부서에서는 관여하지 못함. (3)핵·생화학·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핵개발 문제 김일성은 64년 중국의 핵실험에 대해 “장수가 바지벗고 칼차는 격”이라고 말했던 점으로 보아 당시만 해도 핵무기를 가지려는 의지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음. 84∼85년경 당시 주평양 소련대사가 황장엽에게 “북한이 핵을 개발한다는 말들이 많은데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으면서 NPT가입을 종용한데 대해.황장엽은 “그런게 있겠는가”하는 식으로 대응한후 이를 김부자에게 보고하자 김부자로부터 “묵살하라”는 지시를 받은바 있음. 김영남 외교부장은 85·12 NPT에 가입하고 핵안전협정을 체결(92·4)했으나 군수담당 관계자들은 “NPT 가읍으로 골치가 아프게 되었다”면서 김영남을 비판한 바 있음.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비록 핵무기와 관련시설을 직접 본적은 없으나 92년 IAEA 특별 사찰 문제가 제기되었을때 NPT를 탈퇴(93·3)했다는 점에서 모든 당비서들이 그렇게 믿게 되었듬. ○미·북 핵합의 관련동향 미·북 핵협상시 모든 전략은 김정일이 강석주를 통해 직접 지시했으며 여타기관은 여기에 관여하지 않았음. 북한이 화력발전소 대신 경수로 지원을 요청한 것은 화력발전소는 완공후 유류 등 원료공급 능력이 없는 반면 경수로는 연료인 우라늄이 대량 매장되너 있기 때문이었을 것임. 경수로 건설 관련 남측인력의 대규모 방북시 신포인근을 철저히 통제,북한주민과의 접촉을 최대한 차단할 것임. ○핵관련 북한내 동향 및 기타사항 91·12 ‘한반도 비핵화선언’에 합의한동기는 대외적으로 평화이미지를 과시하고 남한 내부의 핵관련 정책분열을 조장키 위한 것이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고 있음. 85·12 NPT 가입은 구 소련으로부터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위한 지원을 얻기 위한 것이었음(85·12 구 소련과 440MW 경수로 4기 공급협력협정 체결). 92·4 IAEA와 핵안전협정을 체결한 것과 미·북 제네바 기본합의(94·10)등은 모두 시간을 벌기위한 전략에서 추진되었고 그 결과 북한은 경수로 건설,매년 50만톤 중유 획득 등의 이득을 보게 되었으며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다고 인식하고 있음. 일부 고위층 간부들은 92·4 IAEA와 핵안전협정을 체결 이후 핵사찰 문제로 인해 대북한 국제정세가 긴장하게 돌아가자 자승자박한 것이 아닌가 하고 외교부에 불만을 토로한 바 있음. ○화생방무기·미사일 개발실태 높은 수준의 화학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으며 ‘화학무기 금지협약’에도 가입하지 않는다는 것이 북한의 확고한 입장이며 상층부에서는 생물무기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인시기하고 있음.북한은 남침시 미국의 개입을 방지하고자 화학무기가 장착된 장거리 미사일로 ‘일본을 초토화’시키겠다고 위협할 것임. 항간에는 포에 장착하여 발사하면 부근의 산소가 없어져 모든 것이 죽는다는 폭탄(기화폭탄 추정)이 개발되었다는 소문이 있음. (4)대남 군사태도 ○대한국·주한미군 인식 북한권력 핵심층과 군 간부들은 북한의 재래식 전력이 세계4위 수준이며,화학무기는 세계적 수준으로 약점이 없는 부대라고 생각하고 있어 한국군의 능력에 대해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미군만 없으면 전쟁에서 이길수 있다고 믿고 있음. 남한의 함정·항공기 움직임을 적시에 식별·감시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고.남한 국방비가 북한보다 많다고 하지만 이에 상관없이 수도권에 대한 5∼6분 정도의 포공격으로도 잿가루가 된다고 믿고 있음. 지금까지의 전쟁에서는 미국땅에 포탄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앞으로 북한과의 전쟁에서는 미국은 결코 후방이 될 수 없다고 하면서 북한 특공대가 남한과 같이 미국에도 임의의 신간에 침입할 수 있는 것처럼 주민들에게선전하고 있음. 미국이 침공할 경우 인적손실을 감수하더라도 함정·항공기 등을 몸으로 직접 막게되면 미국이 물러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걸프전은 전쟁이 아니라고 하면서 미국과 대응할 수 있는 기술적준비가 다 되어 있다고 함. 91년 걸프전 이듬해 김정일은 미국 무기의 약점을 분석하고 이를 격파하는 영화를 제작,군내 작전국등 지휘부 간부에게 시청케 함으로써 미군도 이길수 있다는 자신감 고취 교육을 실시하였음. 미순양함 1척을 자폭해서라도 폭파시키면 미국내에 반전여론이 만연되어 한국을 포기하게 될 것이며,남쪽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말만으로도 남한인민들을 전쟁공포로 떨게 만들수 있다고 믿고 있음. ○팀 스피리트훈련 인식 북한 당·정 간부들은 T/S훈련의 목적이 ①훈련을 진행하다 북한의 방어태세가 허술할 경우 북침하거나 ②한반도에 전쟁 분위기를 조성하여 북한경제를 마비시키기 위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 동 훈련기간중 전군의 군사장비들이 상시 기동태세를 유지함으로써 유류난 속에서도 막대한 유류소모가 불가피하고 군 병력의 경제건설 활동도 중잔됨으로써 북한경제에 미치는 피해가 상당함. 특히 93·3 T/S 훈련을 핵사찰 문제로 인해 ‘준전시 상태’를 선포하는 등 최고조의 긴장태세를 유지하였는바 김정일은 집무실 지하에 설치된 작전상황실에서 집무를 하였고 중앙당은 각과별로 1명씩 당중앙위원회에서 비상근무를 하였으며 모든 차량을 징발하여 대기시키고 군대를 갱도에 투입하였음.
  • 해임설 강성산 6위 “건재”/김일성 3주기 행사 북 주석단 서열

    ◎군원수 이을설 2주기때보다 1단계 격상/김일성 후처 김성애는 34위서 38위로 추락 지난 8일 북한 김일성 3주기 중앙추모대회의 주석단 서열은 일반적인 행사 서열 패턴인 부주석,정치국위원,군부핵심,정치국 후보위원,당비서,부총리,군 차수그룹 등의 순서를 유지하는 등 별다른 권력변동의 징후는 없었다. 내외통신이 북한 중앙방송을 인용,보도한 바에 따르면 이번 서열에서는 김정일을 선두로 이종옥 박성철 김영주 김병식 등 부주석그룹이 2∼5위,정무원 총리 강성산,부총리 겸 외교부장 김영남,당비서 계응태 전병호 등이 6∼9위로 호명됐다.지난해 2주기때 보다 당정치국원 한성용이 10위에서 13위로 밀려난 대신 군원수 이을설,군총정치국장 조명록(차수),군총참모장 김영춘(차수)이 각각 10∼12위로 한 단계씩 격상됐다.지난 2월 인민무력부장 최광의 장례식과 4·25 군창건행사때 이들 이을설 조명록 김영춘이 5∼7위로 부상했던것은 권력서열 변동이라기 보다는 군부행사라는 성격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주기때 34위였던 김일성의 후처 김성애가 38위로 추락했으며,해임설이 나돌았던 총리 강성산은 6위로 호명돼 건재함을 나타냈다.이날 3주기 행사에는 평남도당책 서윤석(당정치국원),자강도당책 연형묵(당정치국 후보위원) 등이 불참했으나 이들은 지방 추모행사에 참석했고 이선실은 건강때문에 불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 북,김일성 탈상 공식선언/어제 3주기 추모대회

    ◎“후계수령” 지칭 김정일시대 전환 시사 북한은 8일 상오 평양 금수산기념궁전 광장에서 김정일이 참석한 가운데 김일성 3주기 중앙추모대회를 개최,김의 3년상이 끝났음을 공식 선언했다. 내외통신에 따르면 이날 중앙추모대회에는 당중앙위 위원들과 후보위원을 비롯해 당·정·군 고위간부들이 대거 참석했으며 부총리 겸 외교부장 김영남의 추모사,당중앙위 비서 최태복·군총정치국장 조명록 차수의 보고에 이어 각계 대표들의 연설이 이어졌다. 외교부장 김영남은 국방위원장 겸 군최고사령관 김정일의 위임에 따른 추모사를 통해 “김정일을 결사옹위하고 김정일의 영도에 따라 사회주의 조국을 굳건히 사수해온 승리의 3년이었다”면서 “김정일 동지의 영도밑에 주체의 한길을 따라 드팀없이 전진해 나갈것”을 촉구했다.당비서 최태복은 “수령님의 사상과 위업의 충직한 계승자이신 김정일 동지를 단결의 중심,영도의 중심으로 확고히 모셔야 한다”고 강조했다.군총정치국장 조명록도 “우리 인민군은 최고사령관 두리에 일심단결하여 수령님의 위업을 총대로 끝가지 완성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중앙추모대회는 상오 7시55분부터 1시간동안 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을 통해 중계됐다. 한편 통일원은 이날 김일성 3주기와 관련 “북한은 이날 평양에서 열린 ‘중앙추모대회’를 비롯한 각종 행사에서 김정일을 ‘후계수령’으로 지칭,김정일시대의 개막을 시사했으나 직접적인 승계관련 언급은 없었다”면서 “그러나 1,2주기때에 비해 김정일을 중심으로 한 혁명의 계승 발전을 부각시킴으로써 이번 3주기 탈상을 계기로 공식적인 김정일시대로 전환시켜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 김일성 3주기 추모행사 이모저모

    ◎행사장마다 “김정일에 대이어 충성”/떡·옥수수 이틀분 배급… 주민불만 무마/승계식 행사용 간부선물 준비로 법석 김일성 사망 3주기인 8일을 전후해 북한전역과 해외에서 각종 추모행사들이 개최됐다.내외통신과 외신 등을 종합한데 따르면 올해 행사는 주민들에게 떡과 옥수수 등 이틀 배급분을 나누어 주는 등 지난 1,2주기때보다 더 성대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이는 탈상 분위기와 함께 체제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을 덮으려는 의도로 보인다.특히 북한은 주민들이 굶어 죽어가는 극심한 식량난에도 불구하고 김일성 3주기 행사에 맞춰 금수산기념궁전에 92.52m나 되는 ‘김일성 영생탑’을 건립하는등 김부자 우상화사업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었다. ○…김정일이 참석한 가운데 8일 상오 평양 금수산기념궁전 광장에서 열린 중앙추모대회는 당중앙위 위원들과 후보위원을 비롯해 당·정·군 고위간부들이 대거 참석했으며 부총리 겸 외교부장 김영남의 추모사,당중앙위 비서 최태복·군총정치국장 조명록의 보고에 이어 각계대표들의 연설이 이어졌다.김정일은 이어 부주석 이종옥 박성철 김영주 김병식과 정무원총리 강성산,외교부장 김영남,당중앙위비서 계응태 전병호,인민군 원수 이을설,총정치국장 조명록,총참모장 김영춘 등 고위간부들을 대동하고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돼 있는 금수산 기념궁전을 참배했다.지난해부터 와병설이 나돌던 강성산은 지난 4월 25일 군창건 65주년 행사에 이어 올해 두번째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나타냈으며 김일성의 처 김성애도 참배에 동행했다. ○…북한은 김일성 3주기가 끝남에 따라 김정일의 공식 권력승계 행사에 대비해 당간부 및 군간부들에게 줄 선물을 일본 등 해외에서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도쿄의 한 북한 소식통은 김정일의 측근인 북한 낙원백화점 간부가 오는 10일부터 일본을 방문,수백명분의 고급 속옷등을 주문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해 왔다고 밝혔다. ○…3주기 행사들은 김일성의 영생을 기원하는 외에도 김정일에 대한 ‘대를 이은 충성’을 촉구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북한은 지난 5일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당·정·군 고위간부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추모모임을 개최해 주민들에게 “김정일을 충성으로 받들어 나갈 것”을 요구했다.3일에는 중앙연구토론회를 평양인민문화궁전에서 개최,김정일에 ‘대를 이은 충성’을 강요하고 ‘우리식 사회주의’를 고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평양 만수대 언덕 김일성동상에만도 “김일성 사망후 지난 3년간 6천6백35만여명의 인민들과 7천7백7십여개 단체의 9만9천80여명의 외국인들,3만5천8백여명의 해외동포들이 참배했다”고 중앙방송은 선전했다. 문화·예술계에서도 김일성 우상화 선전이 재현됐다.‘김일성동지의 명언’6권,‘김일성전집’18권 등 도서들이 잇따라 출간됐다.
  • 군부위상 급부상…당·정은 약화/상반기 북 인명사전 증보자료 분석

    ◎군 10명·당 6명·정무원 3명 실세 형성/이을설·조명록·김영춘 “군부 3인방” 김정일 밑에서 북한을 움직이고 있는 실세들의 면면과 세력분포가 지난 6개월 동안 확연히 드러나기 시작했다.김정일이 공식적으로 권력승계를 하지 않은채 식량난과 경제난으로 초래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군사통치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군부의 대대적인 승진인사와 우대로 군부 실세들의 위상이 급부상한 것으로 나타났다.반면 당정쪽엔 인사가 단행되지 않는 등 당과 정무원 인사들의 영향력은 갈수록 약화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서울신문 국제전략연구소가 올 상반기중 북한인명사전 증보용 주요인물들의 활동자료를 분석한 결과 부주석 이종옥을 비롯 당·정·군 주요인사 30명이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한 것으로 집계됐다.30명 가운데는 부주석들인 이종옥,박성철과 당 비서들인 전병호,한성용 등이 포함돼 있으나 이들은 원로 예우차원에서 서열만 높을뿐 핵심적인 일에서는 점차 뒷전으로 밀리고 있는 것으로 관측됐다. 이들중 김정일의 현지지도나 군부대시찰때수행하거나 국내행사 참석,외국인사들과의 회담등 기타행사에 참석한 것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볼때 ▲군부에서는 조명록 총정치국장 등 10명 ▲당에선 최태복 비서 등 6명 ▲정무원에서는 김영남 부총리 겸 외교부장 등 3명 ▲기타 최용해 청년동맹 제1비서 등 20명의 활동이 가장 두드러졌던 것으로 조사됐다.특히 이들 20명은 김정일이 나들이를 할때 동행하는가 하면 영향력이 큰 핵심요직에 포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김정일의 최측근 심복이라고 할 수 있다.따라서 이들중 상당수는 김일성의 3년상이 끝난후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김정일의 공식승계 때 요직에 발탁되거나 신분이 격상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북한 군부의 영향력은 막강하다.김정일이 믿을 곳은 군밖에 없다며 군 우선,군사 중시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북한 군부의 최상층권을 형성하고 있는 사람은 원수인 이을설(호위사령관),차수로 총정치국장인 조명록,역시 차수로 총참모장인 김영춘 등 3인이다.이들은 지난 4월25일에 있었던 군창건 65돌 기념 열병식의 주석단 서열에서 5∼7위를차지,급부상하고 있다.북한의 특성상 권력서열이 높다고 해서 모두 실세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이들은 군부의 실력자들이기 때문에 정치국원에 임명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이들 3인 외에 지난 4월 승진과 함께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에 기용된 김일철을 비롯 1군단장 전재선,평양방어사령관 박기서,부총참모장 이종산 등 차수 4인,총정치국부국장인 현철해 및 박재경과 군 작전국장 김하규 등 3인의 대장이 군 실세들이다. 당에선 김정일을 수행하는 것 말고는 대외적인 활동이 거의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김정일의 매제로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인 장성택이 최실권자라는게 북한문제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시각이다.장은 북한 인쇄매체에 일체 사진이 실리지 않고 있는데,당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장말고도 당비서들인 최태복(교육담당),계응태(공안담당),김기남(선전담당),김용순(대남담당),김국태(간부담당),김중인(근로단체담당) 등이 많은 활약을 하고 있다. 정무원 쪽에선 부총리 겸 외교부장인 김영남과 총리대리로있는 홍성남부총리,사회안전부장인 백학림이 실세들이다.이밖에 김정일의 친위세력인 청년동맹 제1비서인 최용해가 김정일을 자주 수행하고 김정일보위에 앞장서고 있다.
  • 북,아주에 식량구걸 외교/박길연 외교부장 순방 속뜻

    ◎“재외공관 감사” 명목 내세워/가나·앙골라 등 한달넘게 순회 북한 외교부 박길연 부부장이 지난 4월27일부터 한달넘게 아프리카를 순방하고 있다.김영남 외교부장이 지난 3월에도 한달여동안 아프리카국가들을 방문해 식량지원을 요구한 바로 직후여서 박부부장의 행보가 주목된다. 박부부장의 이번 순방대상국은 가나,토고,베넹,앙골라,모잠비크,잠비아,탄자니아 등 아프리카지역국가 대부분이다.순방의 목적은 재외공관 자체감사 및 독려라고 표명되고 있지만 실제는 식량지원을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무부 관계자는 『짐바브웨에서 김부장의 식량원조 요청을 재확인하는등 북한이 식량난을 타개하기 위해 국제기구의 지원요청뿐 아니라 직접 나서 식량외교를 펼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그러나 『경제가 어려운 아프리카를 북한외교부 고위 간부들이 연속해서 순방하는 것은 납득이 잘 가지 않는다』면서 『김정일이 아직 주석직을 승계하지 않은 공백상태를 틈 타 장기간 외유를 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아프리카에 있는 우리 공관측의 보고를 종합해보면 선뜻 식량지원에 나선 아프리카 나라는 많지 않고 에티오피아 등 일부 북한의 채무국들이 지원을 약속했으며 사회주의권인 세네갈,알제리,우간다,잠비아 등이 지원할 용의를 나타낸 정도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박부부장은 잠비아 방문시 잠비아측 관계자들에게 『한국 집권층은 범죄조직이기 때문에 대화상대로 인정할 수 없으며 한국에는 북한과 평화통일을 논의할 상대가 없다』고 강변했다.
  • 식량얻기 방문·초청외교 활발

    ◎3월이후 16국 순방·17국 인사 초청/무기­산업설비 곡물과 교환도 추진 심각한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북한은 지난 3월이후 방문 및 초청외교를 크게 강화하고 있다.이와함께 북한제 무기와 산업설비를 외국의 곡물과 맞바꾸는 것도 적극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문외교 활동을 보면 지난 3월3일 외교부 부부장 김창봉이 유럽 4개국을 순방,관계개선 및 식량지원을 타진한데 이어 외교부장 김영남은 앙골라,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 7개국을 돌았다.아프리카 순방을 마친 김은 4월5일 비동맹국 외무장관 회의가 열리고 있는 인도의 뉴델리를 방문,비동맹국 원수 및 외무장관들과 연쇄접촉을 가졌다.이와관련,북한 중앙방송은 김이 인도대통령과 아라파트 등을 예방,변함없는 대북지지를 요청했다고 전했다. 또 4월7일엔 부총리 공진태가 베트남을 방문했으며 외교부 부부장 박길연은 4월20일부터 가나,베넹 등 아프리카 여타국가들을 돌았다.그리고 지난 14일 부터는 김정일의 최측근중의 한 사람인 청년동맹 제1비서 최용해가영국을 방문했다.최의 방영목적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영국과 관계개선을 꾀하고 식량지원을 얻어내기 위한 것이라는게 북한문제전문가들의 지배적인 관측이다.이렇게 방문외교를 벌인 나라는 모두 16개국에 이르며 이중 일부 국가로부터 식량지원을 약속 받았으나 양은 많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초청외교활동으로는 지난 3월18일 입북한 영국 외무부대표단 등 모두 17개 대표단과 주요인사들이 북한을 방문했다.지난달말 이후 최근 10여일 동안만 해도 베트남 외무장관을 비롯 모두 11개국의 고위대표단을 초청한 것으로 집계됐다.그 외에도 러시아 하원 대표단,콩고 상원대표단,스웨덴 국회대표단,라오스 무역대표단,석유수출국기구(OPEC)기금 사무총장,쿠바 군사대표,스웨덴 국회대표단 등이 각각 평양을 방문했다. 북한은 이들 대표단을 맞아 고위 간부들이 직접 나서 회담을 갖고 정치,경제협력방안과 쌍방간 친선협력,관계증진 등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으며 특히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 문제를 폭넓게 탐색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또 대대적인 환영연회를 베푸는가 하면 부주석들인 이종옥,박성철이 접견하는 등 환대했다.외교부장 김영남은 베트남 외무장관과 일련의 회담을 갖고 양국관계 발전문제를 비롯해 쌍방간 공동관심사에 관해 토의한데 이어 식량지원 문제 등을 포함한 협력협정을 체결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번에 북한을 방문했던 러시아 하원 대표단은 모스크바 귀환후 가진 회견에서 북한측이 회담에서 대북 식량지원에 러시아가 동참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혀 북한이 다른 대표단들에게도 식량지원을 요청했을 것임을 짐작케 했다.그후 러시아는 북한에 대해 조만간 식량지원을 나서겠다는 의사를 전했으며 베트남도 북한에 쌀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이러한 일련의 방문 및 초청외교를 통해 식량원조를 호소하는 한편 북한의 무기를 식량과 교환하는 문제를 심도있게 논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이와관련,일본의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공진태가 베트남을 방문했을때 베트남의 잉여 식량과 북한제 무기와의 구상무역을 협의했었다고 보도한바 있다.또 북한은 요즈음 중국과의 국경지대에서 산업기계설비까지 고철로 만들어 중국산 곡물과 맞바꾸고 있다고 중국 무역업자들은 전하고 있다.북한은 또 곡물도입에 필요한 외화를 충당하기 위해 중동국가 및 자이레 등 아프리카 국가들을 대상으로 무기수출증대를 꾀하고 있다.
  • 황장엽씨 서울도착을 보며/최평길 연세대 교수·국제정치학

    ◎민주체제 포용력으로 감싸자 한국에 온 칠순의 황장엽 비서를 보는 시각은 통일 견해만큼이나 다양하다.우선 황장엽은 그 근본이 철학자이고 그 나름의 민족주의자이며 북한 정권의 소프트웨어라는 것이다. ○권력 소프트웨어 역할 황장엽은 북한정권이 들어선 이듬해인 1949년,그의 나이 26세에 모스크바 대학 대학원과 철학과에 입학하여 1년간 러시아어를 배우고 다시 3년간의 각고 끝에 1954년에 철학 준박사를 받고 귀국하면서 바로 김일성 대학 철학과장이 된다.그리고 김일성파·연안파·소련파들이 권력을 분점하고 전쟁복구 사업에 전력하여 북한 수준에서 학문활동공간이 있던 1956년 김일성대학 창립10주년 기념 논문집에서 학위논문 「부정의 부정 법칙」을 공산북한사회에 맞추어 발표하게 된다. 그 내용은 낡은 사회인 봉건사회가 부정된 것이 자본주의 사회이고,그 자본주의 사회가 갖는 모순의 부정이 공산사회이며,공산주의사회 역시 자기부정으로 한단계 높은 자기긍정의 통합단계로 발전한다는 것이다.그러나 축적되어온 자본주의 사회의 전통문화와 우수한 생산시설은 그대로 계승된다는 발전의 연속성을 인정하고 노동자계급을 공산사회주의에서 또 한번의 자기부정을 통해 단순노동자­피착취자가 아닌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주체역량을 가진 인간으로 그려내고 있다. 1956년 3월,20차 소련 공산당 대회에서 후루시초프가 밝힌 스탈린 개인숭배와 1인장기집권 비판 입김은 평양에도 들어온다.따라서 6·25전후복구와 경제발전의 지지부진함을 빌미로 소련파·연안파 제휴세력에게 협공당하던 1956년 제3차 노동당 전원회의를 기점으로 김일성은 정치적으로 자주·경제적으로 자립,군사적으로 자위하는 국가를 이루기 위해 주체적으로 자기운명을 개척하고 노동당 주위에 하나로 뭉치자는 주체이론을 정립한다.이 시기로부터 황장엽은 김일성 정권의 정당성에 이론적 밑받침을 제공하고,이를 계기로 그의 나이 40대에 김일성 대학총장,50대에 최고인민회의 의장,60대에 사상담당비서,70대에 국제담당비서로 권력 핵심부에 진입한다.황장엽은 힘있는 집행부서보다는 사상 또는 국제분석 담당 분야에서권력 소프트웨어로서 일해왔다.러시아·중국,과거 동구 공산국가에서 공산당 중앙위원회 국제비서는 외무장관,KGB 등 대외부서의 보고서를 종합하는 외교안보의 최고위직이지만 북한에서 그의 당내 권력서열은 20위에 불과하여 김영남 외교부장이나 같은 비서인 계응태,전병호,한성룡 등은 오히려 10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민족주의자로서 고뇌 이렇게 황장엽은 권력 핵심부의 분명한 공산주의 사상가이기는 하지만,북한공산주의도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는 올곧은 철학도였으며,굶주림으로 죽어가는 북한동포를 살리려 북한에서 남쪽으로 온 그나름의 민족주의자로 보아야 할 것이다.또한 그는 6·25전쟁 전인 1949년에 소련에 가서 유학생활을 하고 전쟁이 끝난 후인 1954년에 귀국하여 엄밀한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전범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극우·극화논리 극복을 따라서 황장엽의 망명동기가 민족주의자로서 고뇌와 번민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주체사상은 출범 초기에는 대내외 자주·자위·자립을 강조하는 정리된 하나의 이념체계였으나 70년대 이후 김일성 개인 우상화의 바이블이 되면서 황장엽은 스스로 이러한 변질된 김일성종교에 거리를 두게 되고,김정일은 아버지의 리더십과 차별화를 노리는 과정에서 스승인 황장엽보다는 신세대 황장엽을 대체하려는 것 같다. 그는 공산독재에 항거하여 저항운동을 벌였던 북한판 솔제니친은 아니다.그러나 이제 남한에 오는 그를 북한에서 경험하고 본 바 대로 정직한 북한 현대사를 쓰게 하고 남한에서 보고 싶었던 것을 보게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하여,나머지 여생을 조용히 사색하고 집필하며 살 수 있도록 하는 우리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의연함을 보여줄 때이다.그의 망명으로 그의 가족은 물론 12촌 친척까지 숙청이 되었다는 소식이 있고 보면 우리는 그의 인간적 비애를 이해하고,황장엽 리스트 폭로와 국내정국 타개용 카드 사용 그 자체가 국내정치적 이용이란 점을 알아야 한다.동시에 북한정보 획득같은 기술 접근방식보다는 원로철학가,북한전문가,지각있는 정보분석가들로 하여금 그의 대화 파트너가 되게 하여 본인 스스로가 자연스러운의견 개진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다.황장엽을 보는 극우,극좌 논리를 극복한 우리의 균형감각이 필요한 때이다.
  • 북­중 「대만핵」 싸고 긴장/일지 보도

    ◎중,국경지대 저장 철회 요구 북한이 대만으로부터 들여올 저준위 핵폐기물을 중국과의 국경지대에 저장처리하려 하고 있다고 일본의 요미우리신문이 13일 중국의 북한관계 소식통을 인용,북경발로 보도했다. 북한은 대만 핵폐기물 저장처리를 지금까지 알려진 휴전선 부근 폐탄광이 아니라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평안북도와 함경북도에 산재한 폐탄광을 집중적으로 이용하려 하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이에 대해 중국은 방사능유출 가능성과 함께 대만의 북한 접근은 중국을 측면으로부터 흔들려는 책략이라고 단정,이 계획의 철회를 요구하는등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으며 이 문제로 북한과 중국의 관계는 험악해지고 있다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이와 관련,중국의 당가선 외교부부장은 황장엽 북한 노동당비서의 망명사건 발생중 방중한 북한의 김영남 부총리 겸 외교부장에게 계획의 재고를 요청했으나 북한측은 「기술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서 중국의 요청을 거부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한편 중국측이 등소평이 사망한 하루 뒤인 지난 2월20일 길림성 연변지구와 통화시 등의 국경수비대에 내린 평시 경계태세 가운데 최고수준의 경계태세인 「제3종태세」를 황비서가 중국을 떠난 3월18일 이후에도 해제하지 않고 있는 것은 핵폐기물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 북,대유럽·아주외교 고전/김영남 외교부장 아주7국 순방성과 미미

    ◎김창룡 부부장 유럽6국 식량구걸도 실패 북한은 최근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서두르는 한편으로 유럽과 아프리카 등 기타지역 국가들과의 관계강화 노력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지만 성과는 미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북한의 김영남 외교부장은 지난 11일부터 아프리카 7개지역 순방에 나서 기네,나이지리아,앙골라,짐바브웨를 거쳐 26일부터는 탄자니아에 머물고 있으며 30일부터 다시 우간다와 이디오피아를 방문한다.북한은 전통적으로 대 아프리카 외교에 강세를 보여왔지만,김부장은 식량원조와 경협확대를 목표로한 이번 순방에서 거의 얻은 것이 없다는 것이 정부 당국자들의 설명이다.특히 김부장은 나이지리아 방문 당시 수천만 달러 규모의 아부자 지역 스포츠단지 건설의 기초설계 및 자문용역을 수주하려 했지만 이마저 「우방국」인 중국에 빼앗기고 말았다고 한다.김부장은 4월2일에는 비동맹회의가 열리는 뉴델리로 떠난다.김부장은 비동맹회의에서 채택되는 성명의 한반도 조항에 좀더 유리한 문구를 반영하려 노력중이지만 이미 비동맹회의가 남한을 「게스트」로 참여시키는 결정을 내려 김이 빠진 상황이다. 이에앞서 지난 5일부터 스위스,독일,노르웨이,독일 등 서유럽과 폴란드,불가리아 등 동유럽을 순방한 김창룡 외교부 부부장도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처한 한계상황만을 절감하고 돌아간 것으로 알려진다.유럽국가들은 김부부장의 식량지원 요청에 대해 『국제사회를 통한 인도적인 지원을 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줬으며,경제협력 제의에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아프리카 국가의 외교당국자는 김영남 외교부장의 방문내용을 한국 대사관 관계자에게 설명하면서 『북한도 우방이고,남한도 우방이지만,경제적 지원을 많이하는 나라가 더 가까운 우방』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 김정일 과도기적 체제 구축 가속/오코노기 마사오(지구촌 칼럼)

    ◎세대교체 급피치… 붉은기­군중시사상 강조 황장엽 비서가 북경을 떠나 필리핀에 머물고 있다.멀지않아 한국에 도착할 것이다.이 망명사건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두가지의 해석이 존재한다.즉,황비서에 대한 냉담한 견해와 동정적인 견해이다. ○냉담·동정 견해 엇갈려 냉담한 견해에 따르면 황비서는 김일성시대에 김일성종합대학의 총장 및 노동당 이데올로기 담당비서를 역임한 순수한 이론가로 관제 이데올로기를 창조한 「어용학자」인 셈이다.그 공적으로 최고인민회의의 의장을 경험하고 당서열 26위까지 올랐다.이 어용학자가 새로운 이데올로기와 지도체제의 형성으로부터 배제돼 숙청을 두려워해 한국에의 망명을 신청했다는 것이다. 한편 동정적인 해석에 의하면 황비서는 지조가 굳은 조선의 전통적 지식인이며 무엇보다도 자신이 체계화한 주체사상이 독재정권의 정당화를 위해 왜곡되고 있는 것이 참을 수 없었다.따라서 그는 민족적인 사명감을 갖고 국외로 탈출했다.주체사상을 바르게 전하는 것,전쟁의 참화로부터 민족을 구해 평화통일을 촉진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황장엽의 망명에는 이들 두가지 측면이 공존한다고 생각된다.그같은 관점에서 말하면 김정일시대의 이데올로기와 새로운 지도체제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며,또 그가 북한의 식량위기의 심각함을 지적하고 전쟁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그러면 새로운 이데올로기와 지도체제는 무엇일까.7월 이후 신체제 발족을 앞에 두고 윤곽을 드러낸데 불과하지만 이런 의미에서는 2월15일에 거행된 김정일 비서의 55세 생일 경축행사를 주목하는 것이 좋다.왜냐하면 그 경축행사에서는 선전·선동담당비서이며 황비서의 라이벌인 김기남이 중요한 보고를 담당했으며 부총리겸 외상이며 김정일의 후견인으로 주목되는 김영남이 축하문을 낭독했기 때문이다. 흥미를 끄는 것은 두 사람의 보고와 축하문 속에 붉은기 사상과 군중시사상이라는 두가지 사상이 김정일 비서의 독창적 이데올로기로서 공식화된 점이다.그 상세한 내용은 불명확하지만 붉은기 사상이란 수령에 대한 절대적인 숭배심과 수령의 결사옹호 정신이다.군중시 사상이란 「군이 바로 당이며 국가이며 인민」이라고 하는 「위대한 혼연일체」인 듯하다.「붉은기 사상」이란 용어가 북한 미디어에 처음 나타난 것이 지난해 1월1일 노동신문 등 3개지 공동사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출현과 황씨의 망명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전쟁 위험성 경고 주목 다음으로 새로운 지도체제이지만 2월22일에 사망한 최광 인민무력부장의 장의위원회 서열에 그것을 알기 위한 힌트가 있다.그 장의위원회의 명단으로부터는 제6위의 강성산,12위의 서윤석,20위의 최영림,22위의 연형묵,28위의 서관희등 유력한 지도자들의 이름이 탈락돼 있어 이것이 이러저러한 억측을 부르고 있다. 사실,일본과 한국의 일부 주간지와 월간지 가운데는 최광에 이은 김광진 인민무력부제1부부장의 사인에 의문을 품거나 마치 북한 지도부내에 김정일파와 반김정일파 사이의 격렬한 권력투쟁이 발생하고 있는 듯이 전하는 기사도 있다.그러나 만일 그러하다면 인민무력부의 수뇌가 살해됐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계엄령이 포고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또 이러한 수뇌가 반김정일파라면 배반자를 위해 국장이 거행된 셈이 된다. 따라서 현재 북한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은 격렬한 권력투쟁이 아니라 오히려 김정일의 새로운 지도체제 형성이다.장의위원회의 명단으로부터는 신구세대교체,군대중시 경향,직무상의 실패에 따른 좌천등의 요소를 읽어내야 할 것이다.황씨의 망명과 최광의 사망은 7월 이후를 향해 이미 진전되고 있던 신지도체제의 형성을 가속화하고 있을 뿐이다. ○식량원조 획득이 관건 한편 황씨 망명후의 진술서와 그 이전의 서한 가운데 북한의 위기적인 상황이 식량사정 및 경제적 곤란을 들어 설명돼 있는 것도 주목되지 않으면 안된다.스스로의 망명에도 불구하고 황씨는 북한의 내부붕괴 가능성을 부정하고 오히려 전쟁의 위험성에 대해 되풀이해서 경고하고 있다.농민폭동이 불가능하며 북한 지도부의 정치적 단결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식량위기가 이대로 심각해지면 내부붕괴보다는 전쟁 시나리오가 나서게 된다는 주장에는 명확한 논리적 일관성이 존재한다. 만일김정일이 망명사건에의 보복을 주장하는 강경파를 억제하지 목하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기술자 파견도 4자회담에 관한 공동설명회도 실현 불가능했을 것이며,남북한간의 격렬한 소모전으로 김정일 비서의 최고지도자에의 취임마저 곤란하게 만들 것이다.이야말로 전쟁시나리오의 서곡이었다.이런 의미에서 북한 지도부가 감정적 반발을 억제해 외교의 유연성과 기동성을 잃지 않았다는 것은 특별히 강조해도 좋을 것이다. 따라서 향후사태를 전망하는 최대의 가늠자는 앞으로 한 두달 안에 북한이 식량원조를 획득하는데 성공해 7월이후 김정일이 정말로 국가주석과 노동당 총비서에 취임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여부이다.북한의 연착륙이 가능한지 아닌지 여부와 같은 논의는 5년뒤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 한·중/출국시기·경로 막바지 절충/황 비서 제3국행 왜 늦어지나

    ◎북 김영남 외교부장 북경방문도 다소 영향 초읽기에 들어간 황장엽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의 출국이 하루하루 지연되고 있다.지난달 12일 황비서가 북경주재 한국대사관 영사부에 망명을 요청한 이후 계속된 한·중의 협상은 지난 7일쯤 「제3국 경유 서울행」으로 사실상 마무리돼 9일쯤 황비서가 북경을 떠날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그러나 지난 8일 김영남 북한 외교부장이 북경을 방문,당가선 중국 외교부 부부장을 만나면서 기류의 변화가 감지되더니 공개되지 않는 이유로 황비서의 출국이 늦어지기 시작했다.정부 당국자는 『김부장의 북경방문이 아무래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했다.외무부 당국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김부장이 중국 당국에 전한 메시지는 『황비서의 망명은 인정하겠지만,앞으로 중국에 망명을 요청하는 인사를 처리하는 선례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이 점에 대해서는 중국도 확실히 해둘 필요를 느끼고 있었고,황비서와 이후 유사사태간의 연결고리를 차단하는 방식을 중국은 검토하기 시작한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은 황비서 망명이후 전기침 외교부장 회견과 외교부 정례 브리핑등을 통해 『황비서 문제는 관련국간의 협의에 의해 해결돼야 한다』는 공식입장을 되풀이 해왔다.그러나 이붕 총리는 14일 황비서 사건에 대한 중국의 「관할권」을 강조하면서 『중국 영토내에 있는 외국대사관이나 영사관에 의한 외교적 비호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 문제에 대한 뚜렷한 합의는 이루지 못한채 한중간의 협상은 계속되고 있다.현재로서는 필리핀의 수비크 만이 가장 유력한 경유지로 꼽힌다.그러나 일본을 방문중인 도밍고 시아존 필리핀 외무장관이 15일 한·중의 경유 요청 및 수락 사실을 공개해 버렸다.얼핏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지만,필리핀으로서는 황비서 경유를 공개적으로만 허용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따라서 공개가 됐더라도 필리핀행을 강행할지,아니면 안전을 우려해 또다른 장소를 택할지 하는 문제를 포함해 한중 양국의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 “교종회 주북한대사 교체/황장엽 비서 망명과 무관”/중 외교부

    【북경 DPA 연합】 교종회 북한주재 중국대사 소환은 황장엽 북한 노동당 비서의 한국망명으로 빚어진 남북한간의 외교 대립과는 관련이 없다고 중국관리들이 12일 밝혔다. 중국 외교부의 한 당국자는 교대사가 평양에서 정상적인 임무를 마친 뒤 11일 귀국했다고 말했다. 교대사의 후임은 외교부 관리인 만영상으로 내정됐으며 전인대와 강택민 주석의 공식 임명과정을 거쳐 평양에 부임하게 될 예정이라고 이 당국자는 말했다. 한편 최천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1일 김영남 북한 외교부장이 지난주 북경을 방문한 사실을 확인했으나 방문에 대한 세부적인 사항을 밝히지는 않았다.
  • 북 외교부장 교체설 해프닝/강석진 도쿄 특파원(오늘의 눈)

    북경을 방문중인 도이 다카코 일본사민당당수 일행은 이날 주양전국인민대표대회 외사위원회 주임위원과 오찬회담을 가졌다.이 자리에 동석했던 덴 히데오 의원은 주주임위원의 말을 빌려 『북경을 방문한 북한의 김영남 부총리 겸 외교부장이 부총리직만 전담하게 됐다.외교부장 후임에는 최우진 부부장이 승진됐다』고 전했다. 황장엽 망명사건이후 북한 지도부의 변화에 이목이 쏠리고 있는 시기에 이같은 발언은 일본측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덴의원은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에 이같은 정보를 확인한 뒤 기자단에 『나는 물론 일본 외무성과 매스컴이 전혀 몰랐다는 것은 충격적이다』라고 놀라운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주주임위원이 오랫동안 해당 직위에 근무한 인물일뿐아니라 사람됨이 성실하고 침착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그의 말은 신빙성이 두어졌을 법하다. 그러나 이날 저녁 당가선 외교부부부장과 만난 사민당 의원들은 다시 놀라야 했다.당부부장은 『북한의 외교부장은 현재도 김영남』이라고 잘라 말했기 때문이다.그는 또 주주임위원이 지난 8일 김영남 외교부장이 북경에서 전기침 중국외교부장과 만난 사실을 인정한데 대해서도 『전외교부장이 바빠서 내가 김부장과 회담했다』고 말해 큰 차이를 보였다. 당부부장은 이어 도이위원장에게 『등소평 사후 세계 각국 지도자들이 중국대사관 빈소에 조의를 표했으나 클린턴 미 대통령,옐친 러시아대통령과 김정일 비서만이 조문하지 않았다』면서 혈맹관계의 북한 최고 실력자가 직접 조문하지 않은데 대한 섭섭한 마음도 넌지시 내비쳤다. 북한에 대해 비교적 상세한 정보를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중국의 외교일선에서 왜 이런 혼란이 일어났는지는 아직 미지수다.또 누구의 말이 사실인지도 정확히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이번 해프닝은 중국도 북한의 내정 파악에 혼란스러움을 겪고 있으며 북한에 대해 감정적으로도 틈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추측을 가능케 해주고 있는 듯하다.
  • 남북한대사 중 외교부 방문/김영남 북 외교부장도 방중

    황장엽 비서 망명사건 처리문제를 둘러싼 한·중,북·중간의 협상이 막바지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8일 정종욱 한국대사와 주창준 북한대사가 외교부를 방문하고 김영남 북한 부총리 겸 외교부장이 아프리카 4개국 순방길에 북경에 들러 주목되고 있다. 정대사는 이날 상오 10시 45분 김부장의 북경도착을 전후해 중국 외교부를 방문,당가선 부부장과 만난후 밝은 표정으로 외교부를 나온데 이어 하오에는 대사관에서 긴급 대책회의를 가짐으로써 협상타결이 임박한 것 같다는 관측을 낳고 있다.
  • 북 “군이 인민·국가·당”/김정일 생일 축하문/군 권력장악 시사

    지난 15일 평양에서 개최된 김정일 55회 생일축하 중앙보고대회에서 『군이 인민,국가,당』이라는 주목할만한 내용이 담긴 축하문이 발표됐다고 산케이(산경)신문이 18일 보도했다. 이 축하문은 김영남 북한부총리 겸 외교부장이 당중앙위,당중앙군사위,공화국중앙인민위,정무원의 공동축하문 형식으로 읽은 것으로 이중에는 『김정일비서와 혁명군대가 혁명주체의 핵심세력을 이루며 「군대가 곧 인민이요 국가이며 당」이라는 독창적인 군중시 사상을 제시했다』고 김의 공적을 칭송하는 내용이 포함됐다는 것이다.
  • 김정일 동거녀 성혜림의 조카/이한영씨는 누구

    ◎82년 귀순후 북 테러 피하려 성형수술까지 받아/유창한 러시아어로 한때 KBS PD로 일해 이한영씨(37)는 지난해 김정일의 전 동거녀 성혜림의 망명사건이 보도되면서 그 존재가 공개됐다. 이씨는 지난 82년 귀순이후 북한의 테러가능성을 피하기 위해 얼굴모습조차 완전히 바꾸는 성형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지난 60년 평양시 중구역 대동문아파트에서 태어났다.군인출신인 부친 이태순씨는 53년경 연형묵 전 북한총리,허담 전 외교부장,김영남 외교부장 등과 함께 모스크바 유학생 1기로 선발돼 모스크바종합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엘리트였다. 이씨는 이같은 가정배경과 이모 성혜림씨가 김정일의 동거녀인 덕에 북한 최고교육기관인 만경대혁명학원에 진학했다.북한에서 가장 성분이 좋은 집안의 자제가 다니는 이 학교는 유치원 1년,인민학교 4년,고등중학교 6년 등 11년제다. 그러나 이씨는 건강때문에 고교 1년때 중퇴하고 76년 모스크바종합대로 유학,81년까지 노어노문학을 공부했다. 그는 유학기간중 틈틈이 동구권 국가를 여행하면서 얘기로만 듣던 미국여행을 꿈꾸게 됐다. 81년 평양으로 돌아간 이씨는 82년9월 1년간의 프랑스어연수를 위해 모스크바를 거쳐 스위스로 나왔다.제네바 레만호부근 아파트에 여장을 푼 이씨는 미국여행을 수소문했으나 북한여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스위스주재 한국대사관으로 전화를 걸었다.한국대사관 직원과 만난 이씨는 9월28일 승용차에 올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비행기를 타고 마닐라에 도착했다. 거기서 다음날 탄 비행기가 서울행.서울에 온 이씨는 유창한 러시아어 덕에 KBS에 입사,국제방송 러시아어담당 PD로 일했다.90년 KBS를 그만둔 뒤 건설업에 손을 대 조합주택 등을 건설하기도 했으나 95년 부도를 내 복역하기도 했다.KBS 재직시절 결혼한 부인과 딸 하나를 두고 있다.
  • 모스크바 유학 북 엘리트 출신/피격된 이한영씨는 누구인가

    ◎82년 귀순… 테러피해 얼굴수술/올부터 월간 여성잡지 기자로 재직 15일 밤 괴한으로부터 권총 피격된 이한영씨(37)는 지난해 김정일의 전 동거녀 성혜림의 망명사건이 보도되면서 그 존재가 공개됐다. 이씨는 지난 82년 귀순이후 북한으로부터 있을지도 모를 테러를 피하기 위해 얼굴모습조차 완전히 바꾸는 성형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지난 60년 평양시 중구역 대동문아파트에서 태어났다.군인출신인 부친 이태순씨는 53년쯤 연형묵 전 북한총리,허담 전 외교부장,김영남 외교부장 등과 함께 모스크바 유학생 1기로 선발돼 모스크바 종합대학에서 역학을 전공한 엘리트였다. 이씨는 이같은 가정배경과 이모 성혜림씨가 김정일의 동거녀였던 덕에 북한 최고 교육기관인 만경대 혁명학원에 진학했다. 북한에서 가장 성분이 좋은 집안의 자제들이 다니는 이 학교는 유치원 1년,인민학교 4년,고등중학교 6년 등 총 11년제.그러나 이씨는 건강때문에 고교 1년때 중퇴하고 76년 모스크바종합대로 유학,81년까지 노어노문학을 공부했다. 그는 유학기간중 틈틈이 동구권 국가들을 여행하면서 얘기로만 듣던 미국여행을 꿈꾸게 됐다. 81년 평양으로 돌아간 이씨는 82년9월 1년간의 프랑스어 연수를 위해 모스크바를 거쳐 스위스로 나왔다.제네바 레만호부근 아파트에 여장을 푼 이씨는 미국여행을 수소문했으나 북한여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스위스 주재 한국대사관으로 전화를 걸었다.한국대사관 직원과 만난 이씨는 9월28일 승용차에 올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비행기를 타고 마닐라에 도착했다. 거기서 다음날 탄 비행기가 서울행.서울에 온 이씨는 유창한 러시아어 덕에 KBS에 입사,국제방송 러시아어 담당 PD로 일했다.90년 KBS를 그만둔 뒤 건설업에 손을 대 조합주택 등을 건설하기도 했으나 95년 부도를 내 복역하기도 했다.이씨는 사업에 실패한 뒤 북한실상과 자신의 체험담을 언론을 통해 공공연히 밝히기도 했다. 이씨는 KBS 재직시절 결혼한 부인과 딸 하나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 김영남 외교부장 “붕괴 위기” 시인 계기로 본 실태

    ◎북 경제 7년째 “뒷걸음”… 파탄직전/에너지·자재난… 공장가동 30% 밑돌아/획기적 개방·국제지원 없인 회생불능 『지난해 발생한 홍수와 동유럽국가들의 몰락으로 인해 대외무역상대국이 사라지면서 북한경제는 붕괴위기에 놓여있다』 북한의 김영남외교부장은 지난 11일 독일TV와 가진 회견에서 북한경제의 실상에 대해 이렇게 실토한 바 있다.웬만해서는 시인하지 않고 사정이 어려워도 잘 돼간다고 호언해온 것이 그간의 북한 당국자들의 언행임을 감안할 때 북한 경제가 어느 정도로 심각한 것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지난 90년 이후 계속해서 성장이 뒷걸음질 치고 있는 북한 경제는 이제 파탄직전에 이르렀다는 것이 북한경제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시각이다.『완전히 거덜났다』,『자력갱생 운운하지만 자력으로는 이젠 회복불능이다』,『더 이상 나빠질 수 없을 정도의 한계상황에 놓여있다』 표현만 다를뿐 북한 경제가 최악의 상황에 놓여있다는 데 모두들 견해를 같이하고 있다. 아직 추정치는 나오지 않았으나 북한경제는 올해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으리라는 게 관계당국이나 북한경제전문가들의 일치된 평가이다.한국 경제가 비교적 높은 성장을 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7년간 내리 경제성장이 후퇴하고 있는 셈이다. 북한경제는 90년대 이후 95년까지 6년 연속 성장이 뒷걸음질쳤다.지난 89년까지만 해도 2∼3% 수준의 저율이지만 그런대로 성장세를 유지해왔으나 90년부터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올해도 그 연장선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에서 북한경제를 연구하는 전홍택박사는 제조업 부문에서도 지난해 보다 나아진 것이 없을 뿐아니라 농업부문에서도 수해가 겹쳐 마이너스 성장이 확실시된다고 분석했다.다만 마이너스 성장폭이 95년의 4.5%보다는 다소 적을 것이라는 시각이다.김석우 통일원차관도 최근에 열린 한·캐나다포럼에서 『북한의 지난해 석탄생산량은 2천3백70만t으로 수요량의 절반에 못미쳤고 원유도입량도 1백10만t에 그쳐 공장가동률이 30% 수준을 밑돌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 경제가 이같이 파탄직전에 이른 것은 여러가지 원인이 있지만 가장 큰이유는 에너지난과 자재난이 가중되고 있는데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큰 수해가 겹쳤기 때문이다. 둘째 시회주의계획경제의 결함이 누적된 가운데 무력증강을 위해 군수분야에 집중투자함으로써 경제전반에 걸쳐 심각한 비효율성이 초래된 결과로 볼 수 있다. 현 시점에서 보면 3차7개년계획의 실패 이후 지난 94년부터 3년간의 「완충기」를 두고 주력해오고 있는 무역·경공업·농업 제1주의도 모두 실패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현재 북한의 대내외 여건으로 보아 획기적인 개방·개혁과 외부의 대대적인 지원이 없는 한 북한경제는 계속해서 최악의 상태로 치달을 것으로 보이며 식량난까지 겹쳐 북한체제는 심각한 위기를 맞게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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