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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정러시아 외교문서 새 발굴 대한제국 비사] (6)러와 淸,日 3국 국경분쟁

    한국과 러시아,중국 3국의 두만강쪽 국경은 1860년 당시러시아와 청 두 나라가 맺은 베이징조약에 의해 일방적으로 획정지어졌다.당시 청의 속국으로 여겨졌던 조선은 협정대상에서 아예 배제됐다. 이로써 한반도 역사상 처음으로 조선은 유럽국가인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게 되었지만 1861년 8월1일 청,러 양국이 동부국경 최남단을 뜻하는 국경표지인 토자비(土字碑·러시아측은 이 비석을 세운 러시아군 장교의 이름 첫자를 따 T자비라고 불렀다.)를 두만강 연안에 세울 때까지 조선은 이같은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베이징조약의 영토조항인 제1조에 의해 러시아는 서북쪽으로는 아무르강,동쪽으로는 타타르스키해협과 동해를,남서쪽으로는 두만강하류에 이르는 이른바 연해주땅을 통째로 집어삼켰다.이 지역에는 원나라때부터 여진으로 불려왔던 말갈족과 고구려인,돌궐인,위구르인,거란인 등이 살고 있었으며 고구려와 발해의 고토(古土)였다. 연해주가 러시아의 영토가 되면서 1872년 러시아 극동함대가 니콜라예프스크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옮겨왔다.극동노령의 최동남단이며 조선국경과 가까운 블라디보스토크가 러시아 극동함대의 기항이 됐다는 사실은 앞으로의 한·러관계에 엄청난 파장을 예고한다. 러시아군이 마적단과 청국 패잔병을 추격하면서 대한제국의 북방 국경선 인접지까지 접근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대한제국과 청국의 국경선은 세계 각국의 지도(독일판,영국판,대한제국판)에서 동북방면으로는 두만강,서북방면으로는 혜산산맥이 경계를 이루고 있다.그러므로 두만강과 혜산산맥을 중립지대로 보는 의견이 있다.러시아군이 부지불식간에 대한제국 북방 국경선을 침범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할 수 있도록 한·청 국경선이 정확히 어디인지 밝혀주길 바란다.(1901년 4월 육군장관 쿠로파트킨이 외무장관 람즈도르프에게 보낸 통신문) 외무부가 갖고 있는 자료에는 대한제국과 청국의 국경 경계는 항상 두만강으로 인정되어 왔다.현재 한인 스스로도 간도(間島)를 청국영토로 인정하고 있다.1894년까지 효력이있던 조·청조약에서도 두만강 좌안지대에서 혜산산맥까지는 중립지대로 인정되어 이곳에 조·청 양국인의 거주가 금지되었다.청·일전쟁이후 한인들이 이곳 두만강 좌안에 무단 이주,점거하고 있지만 여전히 청국영토의 일부로 인정받고 있다.(1901년 10월4일 외무장관이 육군장관에게 보낸 회신) 이 회신은 조선과 청국의 국경선은 두만강이라는 러시아측의 공식입장을 담고 있다.러시아측 해석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할 수도 있지만 엄연히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해당사국의 해석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역사적으로 보면 간도에는 오래전부터 한인이 거주했던 사실은 확실하지만 한인들의두만강 도강을 금한 법을 제정한 1870년까지 간도지방에는극소수의 한인이 살았다.1870년 이후 한인 농민들의 이주가 시작됐고 얼마 뒤 산동지방에서 청국인들이 건너온 것으로 기록돼 있다. 조·청 국경은 두만강이며 간도는 청국의 땅이었을까.여기에서 우리는 두만강쪽 한·청 국경과 관련된 케케묵은 논란에 다시 휩싸이게 된다. 926년 발해의 멸망이후 무주공산(無主空山) 상태였던 2만1000㎢의 더넓은 간도들판(길림성 연변자치주지역)의 주인은 누구였을까.1710년(숙종36년) 청국은 간도지방에서 일어난 한인에 의한 청국인 살해사건 조사단을 현지에 파견,“압록강의 서북은 중국,동남은 조선땅이다.그리고 토문강 서남은 조선,동북은 중국의 영토이다.”라고 일방적으로 선언했다.1712년 양국은 백두산 정상에서 가까운 지점에 정계비(定界碑)를 세웠다. 이후의 쟁점은 토문강(土們江)의 실체에 관한 문제에 모아졌다.토문강이 도문강(圖們江)이라고도 불린 두만강의 별칭이냐,아니면 전혀 별개의 강이냐를 놓고 오랫동안 맞섰다.대한제국이 개국선포(1897년)와 함께 청의 연호를 버리면서 청과 조선의 관계는 끊어졌다.이때부터 ‘두만강과 토문강은 별류(別流)의 강’이라고 주장했지만 진전이 없었다.러시아도 남만주를 차지한 1895년 이전에는 간도를 한국땅으로 여기고 있었다.실제 러시아측 자료에도 ‘토문강은 압록강에서 송화강으로 흐르는 지류’라고 기록돼 있다는 것이다.1905년 조선의 외교권을 앗아간 일본은 간도에 임시파출소를 설치한 뒤 ‘간도는 일본의 지배를 받는한국의 영토’라고 인정했으나 1909년 태도를 돌변,베이징에서 ‘간도에 관한 청·일협약’을 체결하면서 두만강을 국경으로 인정해버렸다.청·일협약의 결과 일본은 남만주철도부설권을얻는 대신 청에 간도의 소유권을 넘겼다. 청국에 조공을 바치는 속국이라는 이유 때문에 소유권을강력하게 주장하지 못했던 조선은 일본의 만주진출이라는정치적 협상에 다시 한번 희생됐다.러시아와 청,일 3국은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남의 나라 국경을 마음대로 긋고 바꾼 것이다. 대한제국과 만주 남방 국경선의 획정에 관해 러시아에서 지도를 다시 제작한다면 한·청 국경선의 중요성에 비춰 수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러시아 지도에는 국경선이 혜산산맥을 따라 표시돼 있다.실제적으로 한·청 두 나라의 경계는1710년에 형성됐었다.두만강하구에서 백두산까지이다.1897년 대한제국이 청국에서 독립하면서 두만강 좌안을 소유하려고 시도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한·청 국경선으로 다시 이전의 국경선을 인정하고 말았다.(1901년 3월11일 서울주재군사무관스트렐비스키 대령이 참모본부에 올린 보고서) 서울주재 러시아 대리공사 파블로프도 1901년 “압록강과두만강 유역에 거주하는 한인과 청국인에 관해 합의한 한·청국경조약에 따르면 압록강과 두만강 좌안에 거주하는 한인은 세금을 청국정부에 냈고 우안에 사는 청국인은 세금을 대한제국에 냈다.”라고 외무부에 보고하고 있다.실제 우안에 사는 조선인은 거의 없었던 점으로 미뤄 이때부터 청의 간도에 대한 기득권이 인정된 것으로 여겨진다. 일본이 두만강 국경선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일본은 두만강 좌안(간도)은 이전에 조선영토였으며 현재 청국 영토라고 하더라도 한인이 거주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두만강좌·우안 모두를 법적으로 확보하려고 한다.그런데 국방부는 두만강이 오래전부터 한·청 국경선이라는 통지를 1904년 아무르 군관구 사령관에게서 받은 바 있다.(1905년 10월6일 극동제1군 총사령관 리네비치가 참모총장에게 보낸 보고서) 또 1908년 3월 서울 총영사관에서 외무장관에게 보낸 보고서에서도 “청국과 대한제국이 간도소유문제로 분쟁을 빚고 있다.일본군 사이토 대좌의 정보에 따르면 간도에는 한인촌 529곳이 형성돼 있으며 이곳에 7만2076명이 살고 있다.청국인은 209곳에 2만2983명이 살고 있다.한인이 압도적으로 많다.간도의 영토는 넓이가 50마일,길이가 75마일이다.이곳은 형식적으로 청국영토에 속해 있으며 토지의 절반이상을 청국인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한인은 임대를 한다.”라고 밝혔다. 일본은 조선인들을 청국,그리고 압록강변 및 간도로 이주하도록 부추기고 있다.일본은 이 지역 4곳에 영사관을 설치하고 일본 국민으로서의 조선인 이주자들을 통해 세력을 확장시킨다.…일본의 의도를 뒤늦게 파악한 청국이 조선인들을추방하기에 이르렀다.일본측 통계에 의하면 1910년 한해동안 약 10만명의 조선인이 이주해왔고 전체 이주자는 20만명을 넘는다.청국이 조선인을 추방하려하자 일본은 조선에 사는 4만명의 화교를 추방하겠다고 맞대응했다.현재 이 문제로 청·일 양국이 협상중이다.(1910년 12월16일 소모프 총영사의 외무부 비밀 지급전보) 청,일두나라의 국경분쟁을 지켜보는 러시아측의 이해관계는 가능하면 간도가 청국영토로 남아있기를 희망했다. 간도가 대한제국의 영토로 귀속된다면 일본이 간도를 전략적인 목적으로 이용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더욱이 러·일전쟁이 발발하면 블라디보스토크와 연해주가 점령당할 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느꼈다.국경방위의 약화를 우려한 것이다. 두만강 국경선 분쟁은 당초 조선과 청국의 직접 분쟁에서1905년 을사늑약 체결로 한국의 외교권을 접수한 일본과 만주지역을 차지한 러시아의 대리전으로 변질됐다.일본은 간도의 소유권을 주장함으로써 만주와 연해주로의 접근로를확보하려고 한 반면 러시아는 청국의 손을 들어줘 일본과직접 맞대지 않는 완충지대를 유지하려했다.정답을 찾을 수 없었던 이 문제는 결국 1985년 구 소련의 외무장관 그로미코와 북한 김영남 외무상간에 조·소국경조약 체결로 일단락됐다. 100년전 살길을 찾아 두만강 건너편 간도땅으로 건너갔던한인들이 지금은 중국동포가 되어 한국으로 되찾아 오고 있지만 당시 러,청,일 3국의 이해득실에 의해 타율적으로 상실했던 ‘토문강 서남쪽’간도땅을 되찾을 기약은 없다. 노주석기자 joo@ ■용암포 개항사건의 진실 러,일,청 3국이 두만강변에서 끊임없이 국경분쟁을 벌인까닭이 간도(間島)의 소유권에 대한 다툼이었다면 1903년러시아가 압록강변의 벌목 목재 집산지 용암포를 독점점유하면서 불거진 용암포개항 사건은 압록강유역에 대한 3국의 이해관계가 충돌한 또 다른 국경분쟁이었다. 용암포사건은 표면적으로는 러시아의 압록강 산림이권 독점에 대한 영국,일본,미국 등 열강의 견제였지만 실제로는만주일대를 차지하고 있던 러시아의 압록강 국경지역에 대한 영향력 확산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강했다.러시아는 한때 용암포를 기점으로 압록강과 두만강에 이르는 한·만국경1300㎞에 만리장성과 견줄 만한 방책선을 두른 뒤 요새를구축하려는 야심찬 계획도 추진했었기 때문이다. 여순에서 개최된 특별회의의 결정사항은 다음과 같다.대한제국 정부의 압록강 개항승낙이 일본과의 개전사유는 될 수 없다.한국과 일본정부에 각각 압록강 개항은 러시아의 이해관계에 적대적인 행위임을 경고해야 한다.개항문제에 관한 한 러시아의 항의는 공격적인 성격을 띠어서는 안된다.(1903년 7월18일 여순에서 알렉세예프 극동총독이 외무부에보낸 통신문) 러시아 극동총독부가 옮겨와 있던 여순에서 열린 이 특별회의는 용암포문제에 대한 러시아측의 종합적인 입장정리란 측면에서 중요하다.용암포의 개항을 최대한 저지시키되 전쟁으로까지 발전되는 극단의 경우는 피하겠다는 것이다.이회의에는 쿠로파트킨 육군장관,레사르 북경주재 공사,파블로프 서울주재 공사,알렉세예프 극동총독,베조브라조프 극동특별위원회 회장,플란손 극동총독 외교담당관 등 러시아극동정책의 수뇌부가 총출동했다. 당시 압록강 산림벌목이권을 놓고 러시아 내부는 두갈래로 나눠져 있었다.비테 재무장관,쿠로파트킨 육군장관,람즈도르프 외무장관은 극동지역의 러시아군 전력의 열세를 들어일본과의 화해를 주장하는 쪽이었다.하지만 베조브라조프,아바자 해군제독,플레베 내무장관,알렉세예프 극동총독,파블로프 서울주재 공사 등은 양보는 양보를 낳아 결국 만주지역에서의 영향력 상실로 이어질 것이라며 적극 정책을 주장했다.니콜라이2세도 이 의견에 동조하고 있었다. 러·일전쟁 개전의 결정적인 빌미가 된 용암포사건은 영국 극동함대의 거문도점령 사건(1885년)과 함께 한반도에 열강의 이목을 집중시킨 세계적인 사건이었다.용암포의 개항은 곧 만주에 대한 개항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러시아는용암포를 끝까지 사수하려고 했으나 열강의 압력에 굴복한대한제국정부의 일방적인 한·러조약 및 이권취소로 인해독점적 지위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서울주재 프랑스 공사대리 퐁트네 자작의 서신에 의하면 고종은 서울주재 영국과 일본대표들로부터 조약의 폐기선언을 하도록 3개월동안 강요받았다.고종이 반대하면 폐위시키거나 시해할 수도 있는 강압적 상황이었다.고종은 강요에 못이겨 선언한 조약파기 칙령은 기회가 오는 대로 철회하겠다는 말을 러시아에 전해 달라고 말했다.(1904년 상하이주재부영사 클레이메노프가 외무부에보낸 비밀전문) 결과적으로 용암포사건은 일본과의 전쟁은 피하되 한반도와 만주에서의 영향력은 유지하려 한 러시아의 유약한 전략이 노출된 사건이었으며 1년후 발발한 러·일전쟁의 패배로 러시아가 그동안 개척한 모든 성과는 물거품이 되었다. 노주석기자
  • 문화광장/ 미술

    ◆ 목아 박찬수-회고와 전망전= 6월30일까지 법련사 불일미술관(02)733-5322,중요무형문화재 제 108호 목조각장인 작가의 불교미술 40년을 조명해 보는 전시.미륵보살반가사유상 관세음보살좌상 법상등 대표작과 동자상 나한상 장승꼭두 등 목조각 100여점. ◆ 동방의 숨결전= 6월6일까지 영은미술관(031)761-0137,곤지암에서 도예작업을 하고있는 김기철,프랑스에서 40년간작업해온 서양화가 방혜자,깨달음에 도달하는 인간의 갈등에 천착해온 설치작가 양주혜. ◆ 김선규 사진전= 21일∼6월4일 문화일보갤러리(02)3701-5757,‘가평 UFO’‘탈영병의 최후’‘목숨 건 도강 10분’ 등 사진으로 언론계에서 명성을 쌓고있는 문화일보 사진부 차장,고향의 숨결과 정경을 담은 두번째 사진전. ◆ 월드컵 성공기원 ‘남북평화미술축전’= 27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조달청 조달문화관(02)3271-0423,한국미술협회와 국제봉사조직 ‘평화를 위한 봉사’공동주최.㈜평화자동차가 북한의 만수대창작사의 후원 아래 반입한 정영만 김성민 김룡권등 인민예술가와 공훈예술가 40여명의작품,이종무 김흥수등 남한 작가 80명의 작품. ◆ 클로드 라이르 유화전= 27일까지 조흥갤러리(02)738-6806,벨기에 작가.지난해 지리산 제주도를 여행하면서 스케치한 한국의 풍경과 인물 유화 26점. ◆ 문순우 사진전= 26일까지 성곡미술관(02)737-7650,6월7일까지 전갤러리(02)736-3736,자연과 사물을 있는 그대로찍는 스트레이트 사진계열의 흑백사진 작업만을 하는 작가.배추와 무를 클로즈업한 작품(성곡)과 작가가 살고 있는강원도의 평범한 자연 이미지를 담은 작품들. ◆ 백남준 특별전= 7월7일까지 한국민속촌 미술관 1·2층(031)286-2111,‘세기말Ⅱ-새천년’(2001)등 대형 오브제작품 16점과 판화 60여점 등 민속촌소장 작품들로 마련한 미술관 개관전. ◆ 미스테리전= 7월11일까지 안국동 갤러리사비나(02)736-4371∼2,추리소설 판타지영화 등을 통해 현대인들에게 사랑받는 환상적인 주제들이 미술 작품 속에서는 어떻게 나타날지 의문을 던져본 기획.안윤모·정환선·함명수·박은선등 28명. ◆ 이상태 문인화전= 21∼26일 서울갤러리 제2전시실(02)2000-9738,막사발 소나무 수세미 고무신 등을 소재로 한 현대 분위기의 문인화 35점. ◆ 김영남 개인전= 21∼26일 서울갤러리 제1전시실(02)2000-9737,서민들의 일상적인 삶을 담은 유화 40점.
  • 외국 VIP 잇단 초청…北 ‘안방외교’

    북한이 최근 눈에 띄게 활발한 외교를 펼치고 있다.그러나고위급들이 다른 나라를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의 고위인사들을 평양으로 초청하는 ‘안방외교’다. 특히 미국의 입김이 비교적 덜 미치는 유럽과 동남아시아를 주요 대상으로 삼고 있다.이들 국가와 협력을 통해 경제를재건하는 동시에 미국과 관계가 악화될 때에 대비한 ‘보험용 외교’라는 분석도 나온다. 가장 최근 북한에 다녀온 유럽 인사들은 지난 11∼14일 북한 민족화해협의회 초청으로 평양을 방문한 장자크 그로와이사장 등 유럽·코리아재단 이사진이다.박근혜(朴槿惠) 한국미래연합 창당준비위원장도 이 재단 이사 자격으로 방북길에 나선 바 있다.제프 블래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도 6∼7일 평양에 머물면서 북한 인사의 월드컵 개막식 참석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독 의원친선협회 회장인 하르트무트 코시크(기독교사회당) 하원 의원이 이끄는 9명의 독일 의원 대표단은 지난달 30일부터 4박5일 동안 북한에서 김영남 위원장과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등을 만나 교류·협력에 대해 논의했다.코시크 의원 일행은 지난 7일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유럽연합(EU) 의장국인 스페인과 차기 의장국인 덴마크 등의 대표단이 조만간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최근 유럽연합(EU)과의 관계 강화와 관련,“우리는EU가 하나의 힘있는 극으로 일극 세계화를 반대하고 세계 다극화를 지향하면서 정치·경제·안보·외교 분야에서 독자성을 강화하며 지역문제를 자체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데 대해서 주목하고 있다.”고 강조,미국의 견제세력으로 활용하겠다는 속내를 비치고 있다. 동남아시아와는 주로 경제적인 이유에서 전통적인 우호관계의 복원을 시도하고 있다. 라오스의 분냥 보라치트 총리는 지난 11∼14일 북한을 공식 방문했다.양측의 회담 성과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14일 순안공항에 홍성남 내각총리와 이광근 무역상,이영일 외무성 부상 등이 나와 분냥 총리를 전송한 점으로 미뤄 식량 차관 도입 등 ‘경제협력’ 방안을 중점적으로 논의했을 것으로 보인다.분냥총리는 방북기간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홍성남 총리 등과 회담을 가졌다. 지난 6일까지 북한을 방문한 석유수출국기구(OPEC)기금 Y세이드 압둘라이 사무총장은 주로 전력문제를 협의했다.OPEC기금은 지난 97년 의료센터 건설자금으로 500만 달러를 북한에 지원했다.압둘라이 사무총장은 홍성남 내각총리,조창덕부총리,강경옥 농업성 부상,장성일 재정성 부상 등과 경제관료들을 잇따라 만났다. 지난 2∼5일 사이에는 트란 둑 루옹 베트남 국가주석이 북한을 방문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회담하고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을 만났다.이 자리에서 트란 둑 루옹 주석은 농득만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의 김 위원장 베트남 초청 의사를 전달했고,이에 대해 김위원장은 ‘적절한 시기’에 답방하겠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두 나라는 투자장려 및 보호에 관한 협정과 양국 무역성 사이의 ‘맞바꿈무역’(바터무역)에 관한 합의서 등 6개 경제관련 협정을 맺었다.베트남은 또 북한에 쌀 5000t을 무상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이밖에도 지난 3월에는 메가와티 수카르노 푸트리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남북한을 차례로 방문했다. 중국·러시아 등 전통적 맹방들과의 외교에도 힘을 쏟고 있다. 자칭린(賈慶林)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 겸 베이징(北京)시 당서기를 단장으로 하는 중국 공산당 대표단은 6일부터 닷새 동안 평양을 방문,김정일 국방위원장 등 최고위급을 만나 우의를 다졌다. 지난달에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블라디미르 아나톨리예비치 야코블레프 시장과 콘스탄틴 풀리코프스키 극동지역 전권대표 일행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등 북한 최고위층과회담을 했다.백남순 외무상은 오는 20∼23일 러시아를 직접방문,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북한 철도 연결 및 전력 지원 등 경제협력 방안과 한반도 정세에 대해 중점적으로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백 외무상 방러에 앞서 평양에서 가진 이타르 타스통신과의 지난 인터뷰에서 “조선(북한)의 평화와안전은 러시아의 안전과 직결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북한이 최근 동남아 국가들과과거 비동맹 외교를 통해 맺어진 관계를 복원하고 유럽 국가들과도 교류를 강화함으로써 미국의 대북 고립정책으로부터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이들 국가가 북한과의 교류에서 별로 얻을 것이 없어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라고 평가했다. 전영우기자 anselmus@
  • “獨정부에 北인권대화 촉구할 것”

    “귀국하는 즉시 독일 정부에 북한과의 인권 대화를 촉구할 방침입니다.유럽연합(EU)과 독일은 인권이 침해당하는나라에 대해서는 이를 분명히 짚는 것을 외교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지난달 30일부터 4일까지 북한을 방문한 뒤 서울에 온 하르트무트 코쉬크(43·기사당) 독일 하원 의원은 7일 “독일 하원이 지난해 6월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한반도 평화를 위한 결의안’에 바탕해 북한의 인권개선을 적극요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하원내 독·한 의원친선협회 소속 의원 7명과 함께 방북,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리광근 무역상 등을 만난 코쉬크 의원은 “방북 기간중 특별히 인권문제를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독일정부는 이를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갔으며 스웨덴과 영국은 이미 북한과 인권대화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북한의 북·미 대화 및 국제사회 경제 개방의지에 대해 “어느 정도 의사가 있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그러나 북한이 7일로 예정됐던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추위)제2차 회의를 무산시킨 것과 관련,“북한은 주요 협상 의제인 철도·도로 연결 사업 등에 대해 준비가 안돼있는 것 같았다.”면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지난달 초 임동원(林東源) 대통령 특사와 만나서 한 약속이진지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독일이 북한에 지원한 식량 분배실태 및 국제구호단체의 인도주의 활동상황을 살펴본 코쉬크 의원은 “북한은 식량분배의 투명성 보장등 국제기구들과 협력을 잘해 나가고 있다.”고 평가한 뒤 “EU 현 의장국인 스페인과 차기 의장국인 덴마크 등 대표단이 조만간 방북,협력사업 확대방안 등을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실리 우선” 北 자본주의 학습 열풍

    북한이 ‘경제살리기’와 함께 자본주의 학습에 적극 나서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북한은 지난 3월 유럽연합(EU)에 처음으로 경제각료들로구성된 경제시찰단을 파견한데 이어 대규모 경제연수생을받아줄 것을 EU측에 공식 요청했다. 특히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은 이달초 평양을 방문한 임동원(林東源)특사에게 다음달 장성택(張成澤) 노동당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등 최측근을 포함한 경제시찰단을파견하겠다며 “북한이 배워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중소기업형 산업들을 보여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최우선 자본주의 학습장은 ‘대북 지원·협력 전략 문서’를 채택하는 등 북한과의 관계강화에 적극 나서고 있는 EU이다.미국의 영향을 덜 받는 자본주의 국가들이 많기 때문이다.리광근 무역상을 대표로 한 경제시찰단은지난달 벨기에·이탈리아·스웨덴·영국 등 4개국을 순방했다.이들은 증권거래소와 금융감독원·투자보험공사 등현대 자본주의 상징적인 장소들을 방문하며 시장경제와 국제금융,정보통신(IT)산업 등에 대한 강연을 받았다.EU 본부는 이들에게 동구 등 체제전환국들의 경제상황과 EU의지원경험 등을 설명했다.북한측은 마지막 방문지인 영국방문 후 500명의 북한경제 연수생을 받아줄 것을 EU측에공식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EU측도 적극 호응하고 있다.EU대표부 존 사가 정치경제담당관은 “북한 정부 및 경제부문 관리들이 시장경제 경험도 없고,시장지향적 사고도 결여돼 있음을 감안,시장경제등 자본주의 교육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4개국 순방후 북한과 EU간 경제지원협력이 두드러지고 있다.북한은 지난 11일 스웨덴과 경제·기술협력 합의서를채택한데 이어 지난 17일 독일과 계량계측분야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북한의 전문가들을 독일 물리공학연구소에 파견키로 합의했다. 북한과 아시아국가들과의 교류도 눈에 띈다.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지난 2월말 태국 말레이시아를 방문,닭고기 가공공장과 멀티미디어 개발회사 등을시찰했으며,태국 정부에 탄광·축산·통신부문의 협력사업을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조창덕 내각 부총리는 경제대표단을 인솔하고 지난 4일부터 9일간 러시아 극동지역을 방문,경제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돌아왔다. 북한은 또 경제·식량난이 심화된 90년대 중반부터 미국,호주와 이탈리아 등지에 소수지만 영농기술과 국제 경제·금융을 배우는 유학생들을 파견했다.98년 무렵부터는 이러한 유학에 더욱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EU측은 자본주의 연수와 경제개혁,산업재편 등 북한경제의 구조조정에 관심을 두고 있는 반면,북한은 정보통신 관련 선진장비와 과학기술 도입등에 주로 관심을 표명하는 등 양측 관심사가 다르다.”면서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북한이 자본주의 체제학습에 응하면서 서방세계가 마련한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북한 내부적으로도 변화가 일고 있다.노동신문은 최근호에서 ‘경제사업에서의 실리보장과 혁신적인 일본새(근무자세)’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현 시기 경제발전에서가장 중요하게 나서는 것은 최대의 실리를 보장하는 문제”라고 강조,실리를 가장 우선시해야 할 준칙으로 제시했다. 이는 기존 계획경제체제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경영방식이 실용주의적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이러한 변화는 김정일 위원장이 지난해 1월 ‘신사고’를 제창한 이후 모든 분야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치면서 이미 예고됐다. 김수정 전영우기자 crystal@
  • 김정일 軍 앞세워 黨·政 완전장악

    임동원(林東源) 대통령 특사는 지난 3일부터 나흘 동안 평양을 방문,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을 면담하고 한반도위기 예방과 남북관계의 원상 회복에 합의했다.임 특사 일행은 방북 초기 ‘주적론’에 대한 북측의 공방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김 위원장과의 면담에서 모든 것을 타결지었다.전문가들은 “이러한 과정은 예견됐던 것으로 김위원장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돼 있는 북한 특유의 권력구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김 위원장을 정점으로 한 북한의 권력구조를 알아본다. ■북한의 권력구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조선노동당 총비서를 겸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국가를 대표하지만,실질적으로는 김 위원장이 국방위원회와 노동당을 장악,‘모든 권한’을 쥐고 있는 것이다. 국방위원회는 92년 헌법 개정을 통해 중앙인민위원회에서 독립,최고 권력의 군 통수기구로 자리잡았다.이어 98년개헌을 통해 ‘국가주권의 최고 군사지도기관이며 전반적국방관리기관’으로 격상됐다.국방분야의 주권뿐 아니라‘행정권’도 갖는 북한 최고의 권력기구가 된 것이다. 국방위원회는 인민무력부 총참모부를 직접 통제하며,군령·군정권을 동시에 행사한다.‘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녔다는 국가안전보위부도 휘하에 두고 있다.김 위원장은 필요시 총참모부 작전국장에게 직접 명령을 내리는 단독지휘축선도 갖고 있다. 92년 본격 출범때는 김일성(金日成) 주석이 위원장을 맡았으며,김정일이 제1부위원장,오진우(吳振宇)·최광(崔光)이 부위원장,전병호(全秉鎬)·김철만(金鐵萬)·이하일(李河一)·이을설(李乙雪)·김광진(金光鎭)·김봉률(金奉律)이 위원이었다. 김정일은 92년 4월 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취임한 뒤 이듬해 국방위원장직을 맡으며,‘원수’ 칭호와 함께 군 통수권을 공식 승계했다. 인민군 총참모장인 최광이 제1부위원장이 됐다.김 주석의 항일유격 활동을 국가의 ‘정신적 뿌리’로 삼고 있는 북한에서 군을 장악한다는 것은 최고 통수권자가 됐음을 의미한다. 김 위원장은 98년부터는 ‘선군(先軍)정치’란 구호와 함께 군을 최전방위에 내세우며 북한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현재 국방위 위원 대부분의 권력 서열이 당 비서들보다 앞서며 주요 당·정 직책을 겸하고 있다.선군정치는 미국의압박 등 ‘외세’에 맞서는 국가 차원의 대응책이다.아울러 당·정·군에 대한 직할 통치를 가능케 함으로써 안정적인 유일지배 체제를 보장하는 토대이기도 하다.김 위원장은 또 사찰기관인 보위부를 최대한 활용,경제·식량난으로 심화된 사회일탈 현상을 제어하는 기반도 구축했다. 김 위원장은 앞서 97년 10월 당 총비서에 취임했다.북한은 각 도당(道黨)과 시당(市黨) 등의 결의와 당 중앙위원회와 당 중앙군사위원회는 공동 결정을 통해 김 위원장을총비서에 추대했다.이는 김 주석 사망 뒤 ‘3년상(喪)’이 끝난 시점에 김 위원장이 공식적으로 북한의 최고 권좌에 올랐음을 뜻한다. 특히 북한의 행정기관은 당이 결정한 정책을 집행하는 기관에 불과하다.이 때문에 당 관료가 행정관료를 겸직하기도 하고,또 당에는 행정기관 및 부서에 상응하는 조직이갖춰져 있다.따라서 당 총비서에 올랐다는 것은 곧 행정부인 내각까지도 통제하게 됐음을 뜻한다. 김 위원장은 98년 국방위원장에 취임하면서도 ‘주석직’을 폐지했다.그러나 실제로는 김 주석을 ‘선대수령’으로 지칭함으로써 자신은 ‘후대수령’으로 군림하고 있다.특히 95년 ‘붉은기 사상’,98년에는 ‘강성대국론’ 등을새로운 사회건설의 이념적 좌표로 제시하면서 경제·식량난으로 무너진 사회를 복구하는 데 힘쓰고 있다. 전영우기자 anselmus@ ■김정일의 사람들…측근 '권력 엘리트' 곳곳 포진. 북한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체제를 보좌하는 수많은 권력엘리트들이 있다.이들은 당·정과 군부,친인척 및 당 외곽인물로 나뉠 수 있다. 김 위원장의 ‘힘은 군부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을 만큼군이 권력의 핵심축이다.군부에서는 조명록 인민군 총정치국장 겸 국방위 제1부위원장,김일철 인민무력부장,김영춘 인민군 총참모장,이을설 국방위원 겸 호위사령관,현철해 인민군총정치국 부총국장,이용무 국방위원회 부위원장,박기서 평양방위사령관,원응희 보위사령관,박재경 인민군 총정치국 부총국장,이명수 총참모부 작전국장을 측근으로 들 수 있다. 특히 이을설 호위사령관은 1921년생으로 김일성 주석의 전령병으로 만주에서 항일유격 활동을 벌였다.김 위원장의 ‘방패막이’이던 오진우·최광 인민무력부장이 각각 95년과 97년 사망한 뒤 김 위원장의 병풍 역할을 하고 있다.최측근인 조명록 총정치국장은 2000년 10월 특사로 미국을 방문,빌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과 만나 ‘공동코뮈니케’에 서명하기도 했다. 당에서는 전병호 군수담당 비서,한성룡 경제담당 비서,계응태 공안담당 비서,김국태 간부담당 비서,김기남 교육담당 비서,김용순 대남담당 비서 등이 김 위원장을 떠받치고 있다. 자강도 책임비서인 연형묵도 핵심 측근이다. 최고인민회의에는 김영남 상임위원장,양형섭·김영대 상임위 부위원장,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 겸 국제담당 비서,여원구 부의장,박성철 상임위 명예부위원장 등이 포진해 있다. 양형섭은 김일성 주석의 종매부(고종사촌 동생의 남편)이며,여원구 부의장은 몽양 여운형 선생의 딸이다.박성철 명예 부위원장은 1913년생으로 항일유격대출신의 원로다. 내각에는 기술관료(테크노크라트)들이 주류다.홍성남 총리를 중심으로 백남순 외무상,백학림 인민보안상,이광근 무역상 등이 관료사회를 이끌고 있다.최근 대외관계의 중요도에따라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이 실세로 자리매김중이며,김계관 부상도 북·미 대화에 나설 실력자로 꼽힌다. 이밖에 김 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여동생 김경희의 남편)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도 주요 인물이다.김 위원장이 속내를 털어놓는 몇 안되는 인물로 당의 핵심인 조직지도부를 관리하고 있다.우리에게도 친숙한 인물인 송호경 아시아태평양위원회 부위원장,안경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장 등도 김 위원장의 사람들이다. 전영우기자 anselmus@ ■김정일 체제 성립되기까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98년 명실상부하게 북한의 최고 권력자로 올라섰지만 그의 권력 승계작업은 70년대 초반부터 진행됐다. 1942년 2월16일 하바로프스크 인근 소련 극동군 제88특별여단 브야츠크 야영에서 김일성과 김정숙의 맏아들로 태어난 김 위원장은 남산인민학교,만경대혁명학원,평양제1중,남산급중,김일성종합대 경제학부 정치경제학과를 졸업한뒤 64년 노동당 조직지도부 지도원으로 정치에 본격 참여하기 시작했다. 67년 당 선전선동부 과장,69년 선전선동부 부부장,71년문화예술부장,73년 조직 및 선전선동담당 비서 겸 조직지도부장 등을 거쳐 74년 2월 당 중앙위 정치위원으로 선출됐다.당 중앙위는 또 ‘경애하는 영도자 김정일 동지를 위대한 수령님의 후계자로 추대하는 결정’을 만장일치로 채택,권력승계의 발판을 마련했다.이때부터 김 위원장은 ‘당중앙’이란 신비스런 이름으로 불렸다. 김 위원장은 아울러 73년부터 ‘3대혁명소조운동’을 이끌며 요소 요소에 자기 사람을 심어왔다.3대혁명소조란 ‘사상·기술·문화의 3대 혁명을 힘있게 밀고 나가기 위한당 핵심과 청년인텔리’를 뜻한다.다시 말해 김정일 권력승계의 기반 구축에 앞장서는 행동대원들이었다. 김정일은 75년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 호칭을 받았으며,80년 당 정치국 상무위원,비서국 비서,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됐다.88년에는김일성 주석의 전유물이던 ‘현지지도’라는 용어가 김 위원장에게도 사용됐다. 92년 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취임,인민무력부장이던 오진우에게 원수 계급장을 달아주는 등 군장성 664명에 대한 인사를 단행하며 군 최고 책임자에 올랐음을 내외에 알렸다.
  • 北 아시안게임 참가 검토

    오는 9월29일부터 10월14일까지 열리는 부산아시안게임 성화가 백두산에서 채화,봉송되고 북측대표단이 참가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새로 동해북부선 철도·도로, 공사가 중단된 경의선 철도·도로 등을 연결하기 위한 제2차 남북경협추진위원회가다음달 7∼10일 서울에서 열리고,북측의 경제시찰단도 5월중 남측에 파견된다.아울러 오는 28일부터 금강산에서 진행되는 제4차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사업에는 양측에서 100명씩참가할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7일 전날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6개항의 공동보도문이 평양과 서울에서 동시 발표됨에 따라 임동원(林東源) 대통령특사의 방북 결과를 점검하고,남북간 화해·협력을 가속화하기 위한 범정부 차원의 후속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임 특사는 이날 북한의 아시안게임 참석 여부와 관련,“이번 방북시 부산아시아경기대회조직위원회와 문화관광부의 요청에 따라 북측 대표단의 참가와 백두산 성화채취·봉송,개·폐회식의 문화행사 참여 등을 제의했다.”면서 “북측은확답은 하지 않았으나 ‘검토해 볼 수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북측 대표단의 아시안게임 참석에 앞서 남북의 총리급 인사가 월드컵 대회 개막식과 아리랑 축전에 상호 교차 방문할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북측에서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남측에서는 이한동(李漢東) 국무총리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 특사는 또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 문제도 논의됐다.”면서 “김 위원장은 서울을 방문하고 싶고,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입장을 피력했지만 구체적인합의는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제4차 이산가족 상봉의 원만한 이행을 위해 방문단선정작업을 재점검하고,대한적십자사의 협조 아래 판문점연락관 접촉을 통해 북측과 실무협의체를 가동해 나가기로 했다. 이와 함께 시기와 장소를 명시하지 않았지만 남북군사당국자 회담 개최에 합의한 점을 주목하고 동해북부선과 경의선철도 연결,금강산 육로 연결에 대한 대책 마련에도 나섰다. 정부는 임 특사의 방북을 계기로 북한의 대미,대일 대화 의지를 확인하고 8∼9일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한·미·일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회의와 17일 워싱턴 한·미 외무장관회담에서 미·일과의 대북공조 체제를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오풍연 김수정 전영우기자 poongynn@
  • 남북대화 합의 막전막후/ 주적론 문제로 ‘빈손귀환’ 가슴앓이

    임동원(林東源) 대통령 특사 일행은 이번 북한 방문에서당초 2박3일로 예정됐던 일정을 3박4일로 하루 늦추는 등여러가지 상황 변화를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임 특사는 우선 지난 3일 도착,김용순(金容淳) 대남담당비서와 첫 회담을 열고 남북현안에 대한 논의에 들어갔으나 북측은 ‘주적론’ 폐기와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등을 강력히 요구하는 바람에 처음부터 적지 않은 어려움을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임 특사 일행은 ‘빈 손’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는 게 정부 소식통의 전언이다.이런 상황은4일 오후까지 계속됐다. 그러나 이같은 경색 국면은 이날 오후 6시30분쯤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예고없이 백화원초대소로 찾아와 무려 5시간에 걸친 면담과 만찬 회동을 하면서 반전됐다. 이 자리에서 임 특사는 한반도 위기 고조 및 북·미 대화 등과 관련,힘의 우위를 내세운 미국의 대외정책 및 이에대한 러시아·중국의 대응방식 등을 설명하며 핵·미사일문제 등 북·미간 현안을 대화를 통해 해결할 것을 강력히 설득했고,상당부분 이해를 이끌어 낸 것으로 전해졌다. 임 특사와 김 위원장간 장시간 대화를 계기로 분위기가호전됐다.남북은 5일 아침 일찌감치 이산가족 상봉단 교환 방문,경제협력추진위원회 개최 등에는 합의했으나 북측이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아 마무리 협의가 중단됐다.이에 따라 남북은 오후쯤부터 대신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월드컵 참관문제를 놓고 본격적인 이견 절충을 벌였으며,이마저 마무리되지 않자 귀환을 하루 늦춘 채 밤샘 협상을 벌였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이산상봉·경의선연결 재개

    이른 시일 안에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 작업 등이 다시시작되고,제4차 이산가족 상봉단 교환 방문이 이뤄질 전망이다.지난 3일 북한을 방문,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을만나고 한반도 현안을 조율한 임동원(林東源) 대통령 외교안보통일특보는 예정보다 하루 늦은 6일 오전 10시 판문점을 통해 자동차편으로 귀환해 합의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다. 김홍재(金弘宰) 통일부 공보관은 5일 김 위원장과 면담한 임 특사 일행이 “이산가족 교환 방문,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추위) 재개 등에 대해 (북측과) 의견접근을 보았다.”고 밝혔다.다른 정부 당국자는 “경의선 철도·도로연결사업에서 성과가 기대된다.”면서 “공사 재개를 위한 실무 절차는 경추위 등에서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위 소식통은 또 “김영남(金永南) 북한 최고인민회의상임위원장의 월드컵 참관 방안을 놓고 남북이 막판 협의를 벌이고 있다.”면서 성사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했다. 임 특사 일행은 이날 오전부터 진행된 북측과의 ‘공동보도문’ 작성 협의를 통해 이산가족 교환방문,비료 및 식량지원,경의선 연결,개성공단 조성 등과 관련,남북간 협력방안을 협의하기 위한 제2차 경추위를 이달중 개최하기로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남북은 이른 시일 안에 경의선 연결을 위한 국방장관회담과 군사실무접촉을 열고 ‘군사보장합의서’에서명할 것으로 예상된다.이와 함께 경추위를 재개해 식량30만t과 비료 20만t 지원,개성공단 조성,전력지원 문제 등을 논의할 전망이다. 남북은 특히 이달 안에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적십자회담을 열고,중단된 제4차 이산가족 상봉단 교환 문제 등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월드컵과 ‘아리랑’축전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남북협력 방안,금강산 관광사업 활성화를 위한 당국간 회담 재개도 발표할 예정이다. 앞서 임 특사는 지난 4일 오후 6시30분 백화원초대소를방문한 김 위원장과 5시간동안 면담 및 만찬 회담을 갖고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친서를 전했다. 임 특사는 이 자리에서 한반도 평화와 남북 화해·협력을 위한 김 대통령의 뜻을 김 위원장에게 전달했으며 두사람은 한반도 위기해소 및 남북관계 진전 문제에 대해 의견 접근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임 특사는 또 김 위원장의연내 답방문제에 대해서도 깊숙한 얘기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5일 밤 김용순(金容淳) 비서가 만경대예술극장에서 주최한 만찬에는 임 특사 일행 7명 전원과 임동옥노동당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을 비롯,북측의 대남사업 관계자 9명이 대거 참석,회담 결과가 만족스러웠음을 시사했다. 전영우기자 anselmus@
  • 임동원특사 방북 전망/ 김용순 올들어 급부상…남북관계 파란불 암시

    임동원(林東源) 청와대 외교안보통일특보의 방북을 앞두고 임 특보의 맞상대인 김용순(金容淳) 노동당 비서의 당내 위상이 최근 부쩍 높아진 것으로 알려져 그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93년부터 대남사업을 총괄해온 것으로 알려진 김 비서는 지난해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을 수행하는 일이 드물고,대외활동마저 뜸해 한때 ‘실각설’이 나돌았다.남북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지고 금강산 관광사업이 지지부진하자 “김 비서가 대남사업 실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는 설이설득력을 얻었다. 그러나 지난 1월1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함께 평양 금수산기념궁전을 찾는 것으로 공식활동을 재개했다.같은 달 22일 정부·정당 합동회의에 참석했으며 지난달 28일에는 김 위원장이 허종만 책임부의장 등 재일본조선인총연합(총련) 축하단을 접견하는 자리에 배석하는 등 건재를과시했다.이 때문에 정부 일각에서는 특사 발표 이전에도 “김 비서의 재등장은 남북관계에 푸른 신호등이 켜진 것”이라면서 남북대화 조기 재개를 점치기도 했다.한 해외 소식통은 “최근 북한이 러시아와 새로운 핵발전소 건설을 협의하고,석유도입 등을 추진하고 있는데 김 비서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해 김 비서의 역할이 커졌음을 시사했다. 최근 평양을 방문한 총련 관계자는 “김 비서가 전면에 등장했다는 것은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뜻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정부 관계자도 “김 비서의 재등장은 북한 고위층이 남북관계 개선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한 증거”라면서 “특히 김 비서는 1934년생으로 동갑인 임 특사와 ‘주파수’가 잘 맞아 두 사람이 흉금을 털어놓고 ‘작품’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쿄 황성기특파원 전영우기자 anselmus@
  • 총리급 교차방문 추진

    임동원(林東源) 대통령 외교안보통일특보가 대통령 특사로 북한에 간다. 박선숙(朴仙淑) 청와대 대변인은 25일 “남과 북은 우리측 대통령 특사의 평양 방문에 합의했다.”면서 “이번 특사 방문이 정체국면의 남북관계를 타개하는 전기를 마련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발표했다. 박 대변인은 “임 특보의 방북은 우리측 요청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며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한반도 긴장조성을 예방하며,6·15 공동선언을 준수하고 남북간 합의사항 이행 문제 등 제반 현안에 관해 남북 최고당국자간의 폭넓은 의견교환을 위해 특사파견을 제의했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북한의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도 이날 오전 “김대중대통령의 특사가 4월 초에 평양을 방문한다.”면서 “쌍방은 민족 앞에 닥쳐온 엄중한 사태와 함께 북남관계 문제들에 대하여 협의하게 된다.”고 전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임 특보의 방북시기에 대해 “4월3일쯤 파견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임 특보는 방북시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에게김 대통령의친서를 전달하고 김 위원장의 서울답방,이산가족 상봉,남북장관급회담 재개 문제 등 남북한 현안뿐아니라 북·미관계 전반에 대해 폭넓은 의견을 교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임 특보는 오전 기자간담회를 갖고 “북한의핵·미사일 문제 등에 대해서도 우리가 보는 시각을 전달하고 조언을 해줄 필요가 있다.”면서 “북측 최고당국자(김정일 위원장)의 생각을 듣고 김 대통령에게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임 특보는 월드컵과 ‘아리랑’축전의 성공을 위한 남북한 고위 인사의 상호방문에 대해 “금시초문”이라고 밝혔으나,5월 말 개막되는 월드컵 대회 때 김영남(金永南)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남한을 방문하고,4월 말부터 열리는 북한의 ‘아리랑’축전 때 남한의 총리급 인사가 북한을 교차 방문하는 문제도 논의할 것이라는 관측이제기되고 있다. 임 특보는 지난 2월 김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한 ·미 정상회담 결과를 김 위원장에게 설명하고북·미대화에 조속히 나설 것을 촉구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이산가족 상봉 등 남북이 합의한 5대 과제의이행방안 문제도 논의할 방침이다.한편 정부는 임 특보의특사파견 발표에 앞서 미·일·중·러 등 주변 4강과 여야대표에게도 사전 통보했다고 밝혔다. 오풍연 전영우기자 poongynn@
  • 특사파견…세계언론 반응 “”남북관계 정상화 분수령””

    [베이징 김규환·도쿄 황성기·워싱턴 백문일 특파원]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25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특사가북한을 방문하는 것은 “남북한 관계의 정체 국면을 타개하는 중요한 분수령”이라면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집권 후 정체에 빠진 북-미·남북관계를 정상궤도에 올려놓으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전했다. 통신은 임동원(林東源) 특사가 한반도 긴장완화 방안,이산가족 재회,김영남(金永南)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월드컵 축구경기 참관 등을 협의할 것으로 보인다고전했다.중국 정부는 이날 오후 현재 공식 논평은 내지 않고 있다. 미국의 뉴욕 타임스는 임 특보의 방북이 김 대통령에게는햇볕정책으로 알려진 남북대화 노력의 정당성을 입증하는의미가 있으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는 미국의 북한 압박 기도를 무디게 하는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특사교환이 발전적 조치이지만 오랜 긴장관계를 해소할 극적 돌파구로 볼 수는 없다고 평가했다. 이 신문은 이번 발표는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계속되고 있는관계개선 요구에 맞서 다른 외교경로를 찾을 것이라는점을 보여주는 징후라고 분석했다. 일본의 교도통신은 남북한이 김대통령 특사의 평양 파견에 합의함으로써 지난해 11월 이후 중단돼온 남북대화 재개를 위한 국면 타개가 이뤄질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통신은 한국은 이번 특사 파견을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방한 실현을 최우선 목표로 추진할 것이며,남북 이산가족재회·남북 철도 연결 등에 대해서도 조기 합의를 모색할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반면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에 중점을 뒀지만 부시 정권의대북 강경정책으로 대화가 답보상태에 놓이자 남북 대화쪽으로 방침을 전환,북·일 수교 교섭의 환경정비 등을 꾀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요미우리(讀賣) 신문은 북한이 이번에 한국의 특사 파견에 응한 것은 최근 ‘일본인 납치 의혹’ 문제에 대해 북한측이 조사를 재개키로 한 것처럼 외교고립을 탈피하고북·미 대화 재개의 계기로 삼으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이번 특사파견은 미국의위협에도 불구,남북한간에 대화를 재개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것이라고 평가했다. khkim@
  • 누구 만나 뭘 논의하나/ ‘남북 金心’ 간접회담

    대통령 특사로 내주 초 북한에 파견되는 임동원(林東源)청와대 외교안보통일특보는 누구를 만나 어떤 얘기를 나누게 될까. [누구를 만나나] 이번 ‘임동원 특사’ 카드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뽑은 ‘최후의 승부수’인 만큼 당연히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을 만난다.남북,북·미관계와 한반도긴장완화, 6·15공동선언 이행에 관한 김 대통령의 의중을전하고 김 위원장의 뜻을 전달받을 예정이다.또 대남문제를전담하고 있는 김용순(金容淳) 비서는 물론, 군부실세인 조명록(趙明祿) 인민군 총정치국장,임동옥(임춘길) 노동당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이광근 무역상 등도 임 특보의 대화 상대로 꼽힌다. [한반도 긴장완화와 김 위원장 답방 문제] 임 특보는 김 위원장에게 북·미대화 재개와 핵·미사일 문제해결 등을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특히 김 위원장이 서울을 답방,남북간평화의지를 세계에 과시하는 것이 미국으로부터 ‘체제안정’을 보장받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는 의견도 전달할 것으로관측된다. 그러나 북한은 여러 이유를 들어 김 위원장의 답방 문제에확답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설령 김 위원장의 답방에합의한다고 해도 이번에 공개할지는 불투명하다. 하지만 김위원장으로서도 내년에 미사일 발사실험 유보 기간이 끝나고 미국의 핵사찰 요구가 거세지는 등 ‘2003년 위기설’이설득력을 얻고 있는 만큼 쉽게 버릴 수 없는 카드라는 주장도 있다. [월드컵과 ‘아리랑’축전]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는 데부담이 없으면서도 효과가 큰 사안이다.우리 정부는 임 특보를 통해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고위급 인사를 월드컵 개막식에 초청할 것으로 알려졌다.북한도 4월 말부터 두달 동안 열리는 ‘아리랑’축전의 성공을위해서는 우리 정부의 협조가 필수적인 만큼 우리측 제의에응할 확률이 높은 편이다. [이산가족 상봉과 경의선 연결] 이산가족 상봉은 정부가 ‘최우선 해결’을 주장해온 의제다.이에 따라 임 특보는 이른 시일 내 제4차 이산가족 상봉단 교환을 성사시키고,이어면회소 설치 등의 논의를 요구할 것으로 예측된다.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도 햇볕정책의 구체적 성과로상징성이 큰 만큼 임 특보가 북한의 최고위층에 강력하게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경의선 연결에 대한 확답만 받아내도 이번 특사 파견은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전영우기자 anselmus@
  • 서울 오는 탈북25명/ 北·동남아국 외교관계

    북한은 전통적인 친미국가인 필리핀과 2000년 7월 수교관계를 맺는 등 동남아 국가들과 비교적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70년대에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과거 ‘비동맹회의’에 참여하는 등의 영향으로 북한과 밀접한 관계를 맺기도 했다.2000년 8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ARF(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 북한이 회원국으로 가입하기는 했으나 최근 북한의 경제사정이 워낙 어려워 식량수입 이외에는 별다른 교류가 없는 실정이다. 정부 관계자는 “필리핀이 우리 정부의 요청에 따라 베이징 주재 스페인대사관에 진입했던 25명의 탈북자를 이틀동안 머물도록 허용한 것도 북한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지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베트남(50년 수교),캄보디아(64년 〃),라오스(74년 〃) 등캄차카반도 3개국과는 과거 ‘사회주의 형제국’으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현재 별다른 왕래가 없다. 가장 교류가 활발한 나라는 75년 외교관계를 맺은 태국이다.태국과는 78년 무역협정 체결,이듬해 통상대표부 설치등을 통해 활발한 내왕이 있었으나 83년 당시버마 아웅산테러사태 이후 관계가 소원해졌다. 지난달 말∼이달 초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태국을 방문,다시 쌀 30만t을 수입하는 데 합의했다. 73년 수교한 말레이시아,75년 외교관계를 맺은 싱가포르와도 현재뚜렷한 경제적 교류 등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마카오에서는 90년대 위조지폐 제조·유통 혐의로 많은 북한인들이 추방되는 등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전영우기자
  • 北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위원장 태국등 동남아 3國 순방

    북한의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오는 2월 말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3개국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산케이(産經)신문이 방콕발로 15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의 이번 동남아 순방은 경제특구인 나진,선봉지구 등에 대한 투자 유치 및 정보기술(IT) 분야의 실무협력을확대하기 위한 차원에서 이뤄지게 된다고 신문은 전했다. 김 위원장의 순방은 남북관계가 정체돼 있고 북미,북일관계도 냉각기에 있는 가운데 북한이 국제적으로 고립돼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도 있다고 신문은 분석했다. 도쿄 황성기특파원 marry01@
  • 새해맞이 북한 표정/ 삶은 고단해도 “”축하합니다””덕담

    경제난과 식량난 등으로 험난한 삶을 이어가는 북한에서도 새해 첫날을 기념하는 행사들이 다채롭게 열렸다. 휴일을 맞은 북한 주민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가족·친지와 덕담을 나누며 새해 소망을 빌었다. ◆평양의 새해 아침=공장ㆍ기업소,협동농장 종업원을 비롯한 노동자·농민들은 구랍 31일 일터에서 ‘설맞이모임’을 갖고 “새해를 노력적 성과로 빛낼 것”이라고 다짐했다.휴일인 새해 첫날에는 가족·친지끼리 모여 단란한 시간을 가졌다. 평양시내 주요 명소에는 추운 날씨에도 서설(瑞雪)을 배경으로 가족 사진을 찍는 시민들이 많았다.방학을 맞은 학생들도 김일성광장에 나와 연날리기와 제기차기,팽이치기,썰매타기 등 민속놀이를 하며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평양 보링관’(볼링장)은 시민들로 온 종일 붐볐다. 웃어른을 찾아 세배를 하고 꿩만두 등 특식이 준비된 음식점에서 점심 식사를 하는 시민들도 있었다.청류관·옥류관·평양메기탕집 등 시내 음식점들은 꿩 요리,노루고기,송어탕 등 특식과 떡국을 비롯한 설 음식을 준비해 손님을 맞았다. ◆북한의 새해 인사=북한의 새해 인사는 우리와 약간 다르다.“새해를 축하합니다”라는 말이 가장 널리 사용된다. ‘새해를 축하합니다’는 연하장과 평양 거리에 나붙은 플래카드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는 인사말은 사용하지 않는다.80년대에 연하장에등장했던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만수무강을 축원합니다’라는 새해 인사는 요즘엔 거의 쓰이지 않는다. ◆김정일에 대한 충성 편지=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총련)중앙상임위원회는 새해를 맞아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축하문’을 보내 조직강화와 절대적 충성을 다짐했다. 총련은 또 신용조합 횡령 사건으로 총련 중앙본부 및 금융기관이 압수수색을 당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대해 “화를 복으로 기어이 전환하는 공격전을 과감하게 벌여 총련 조직을 굳건히 지켜내고 새세기 해외교포 운동의새로운 본보기를 긍지 높이 창조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공식행사=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용순 대남담당 비서 등 당ㆍ정ㆍ군 고위간부들은 새해 첫날 금수산기념궁전을 찾아 참배했다. 각계 각층 인민들도 금수산기념궁전을 찾아 경의를 표시했다.평양 중앙노동자회관에서는 신년 축하행사인 ‘노동계급의 설맞이 공연’이 열렸다.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러나 예년과 달리 3일까지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김 위원장은 지난해 새해 첫날에는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 참배에 이어 인민군 제932부대를시찰했었다. 전영우기자 anselmus@
  • 박길연 北유엔대사 신임장 제정

    박길연 유엔주재 북한대사가 지난 5일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에게 신임장을 제정했다고 평양방송이 9일 보도했다. 박 대사는 이 자리에서 김정일(金正日)북한 국방위원장과김영남(金永南)상임위원장의 인사를 전했으며 아난 사무총장은 “유엔이 앞으로 조선과의 관계를 발전시키고 조선에 대한 인도주의 협조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고 방송은 전했다. 진경호기자 jade@
  • WHO 사무총장 대북 의료지원 호소

    방한 중인 그로 할렘 브룬트란트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21일 “대북 의료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7∼20일 방북했던 브룬트란트 사무총장은 이날 서울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의 긴급구호 대상자 중 5%만이 보건·의료혜택을 받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또 “말라리아는 북한과 중국의 국경지역에 만연,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방북기간 가진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북한 관리들과의 면담과 관련,“천연두 문제에 대해서 의견을 교환했다”면서도 “그러나 북한내 천연두의 존재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정보가 없다”고 말했다.그는 “북한의보건사정이 매우 열악하지만 북한 측은 결핵·소아바미 퇴치 등 WHO의 활동에 협력하고 있으며,북한 관리들은 낙후된 보건사업 개선을 위한 국제기구의 도움을 호소했다”고 밝혔다. 김용수기자 dragon@
  • WHO총장 남북 동시방문

    그로 할렘 브룬트란트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지난17일부터 3일간 북한을 방문한데 이어 20일 1박 2일 일정으로 서울에 왔다. 현직 국제기구 대표로는 처음으로 남북한을 동시 방문한브룬트란트 사무총장은 21일 청와대에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을 예방한 뒤 최성홍(崔成泓) 외교부 차관 등을 만난다. WHO 북한대표부 개소식에 참석하기위해 평양을 방문한 브룬트란트 사무총장은 19일 만수대의사당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북한 주요인사들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김수정기자 crystal@
  • 브룬트란트 WHO 사무총장 북한 이어 오늘 한국 방문

    브룬트란트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현직 국제기구의 장(長)으로서는 처음으로 남북한을 동시방문한다. 보건복지부는 브룬트란트 사무총장이 지난 17∼20일 북한을 방문한 데 이어 20∼21일 한국을 공식방문한다고 19일밝혔다. 브룬트란트 사무총장은 이번 방한 기간중 김대중대통령을 예방,방북 결과를 설명하고 남북한간 보건의료분야의 협력강화 및 이에 대한 WHO의 역할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또 보건복지부장관과 외교통상부장관,국회 보건복지위원장 등을 만나 현안을 논의하고 국립암센터와 한·양방 협진의료기관인 경희대의료원도 방문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19일 평양에서 열린 WHO 북한대표부 개소식에참석했으며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위원장 등 북한의 주요인사를 면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브룬트란트 사무총장은 2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내외신기자 합동기자회견을 갖고 남북동시방문 결과를 설명한다. 김용수기자 dra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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