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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영상 추문 北 은하수 관현악단 감독 기관포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올해 들어서만 15명의 고위 관리를 처형하는 등 공포·강압정치를 하고 있다고 국가정보원이 29일 밝혔다. 국정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정은은 이유가 통하지 않고 무조건 관철을 시키는 통치 스타일을 보이고, 이견을 제시하면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해 본보기 처형으로 대응한다”면서 “올해 들어서만 넉 달 동안 15명의 고위 관계자들이 처형이 됐다”고 보고했다고 정보위 여야 간사인 새누리당 이철우·새정치민주연합 신경민 의원이 전했다. 국정원은 차관급인 임업성 부상도 산림녹화 정책에 불만을 토로했다는 이유로 지난 1월 처형됐으며, 이는 본보기 시범 사례였다고 설명했다. 또 같은 차관급인 국가계획위원회 부위원장은 대동강변에 건설 중인 과학기술전당의 지붕 모양을 ‘돔’ 형태로 설계했는데, 김 위원장이 이를 ‘김일성화 꽃 모양’으로 바꾸라고 지시하자 시공이 어렵고 공기도 연장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가 지난 2월 처형됐다. 지난 3월에는 음란 동영상 추문에 휘말렸던 은하수 관현악단의 총감독을 비롯한 관계자 4명도 간첩 혐의로 총살됐다고 국정원은 밝혔다. 국정원은 특히 북한에서는 공개처형을 통해 공포정치를 하고 있다며 “사람들을 모여라 해놓고 공개적으로 기관포를 발사(해 처형)하기까지 한다”고 전했다. 국정원에 따르면 김 위원장이 처형한 고위 관리는 2012년 17명, 2013년 10명, 지난해 41명으로 집계됐다. 천안함 폭침의 배후이자 소니엔터테인먼트 해킹사건의 배후로 알려진 김영철 정찰총국장은 이달 들어 대장 계급에서 상장으로 강등됐다고 국정원은 보고했다. 김 총국장은 지난 3년간 대장에서 중장으로 강등됐다가 다시 대장으로 진급하는 등 계급이 네 차례나 바뀌었다. 국정원은 또 김정은 위원장이 다음 달 러시아를 방문할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했다. 현재 러시아 호텔 예약 상황을 점검한 결과 아직 김 위원장이 예약하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됐지만, 주러시아 북한대사관에도 숙식 시설이 잘 갖춰져 호텔 예약은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는 게 국정원의 설명이다. 국정원은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이 다음 달 출산할 것으로 추정했으며, 남편은 김일성 대학 동기생일 것으로 추측했다. 이와 함께 국정원은 북한의 사이버 해킹 조직이 7개에서 6개(직원 1천700명)로 1개 감소한 반면, 관련 지원 조직은 13개(4200명)에서 17개(5100명)로 4개 늘었다고 보고했다. 이에 대해 이철우 의원은 “IT 인력이 고급인력인데, 여기(지원조직)에 근무하면 중국, 베트남, 라오스 등 외국에 가서 근무할 수 있어 선호 대상”이라며 “외국에서 근무하면 2천~5천 달러를 받는데, 2천 달러는 무조건 정부에 상납해야 한다. 외화벌이 수단으로 IT 해킹 기술을 삼는다”고 설명했다. 이 의원은 또 “한국수력원자력과 코레일이 이 조직들로부터 해킹 공격을 당했는데, 자체 폐쇄망을 쓰기 때문에 (북한이 제대로) 공격을 못했다”면서 “민간(회사)까지 이렇게 하려면 사이버테러방지법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국정원장의) 말이 있었다”고 전했다. 한편 북한 해킹 조직은 대북 전단을 날리는 단체의 책임자인 이모 씨의 메일 계정에 침투해 전단 살포 일시 등을 미리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정은 현지지도 수행의 정치학

    북한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현지지도 소식을 전할 때 빠지지 않고 전하는 것이 바로 주요 수행자 명단이다. 이는 외부에서 볼 때 현지지도에 누가 수행원이 되고 누구 빠졌는지 혹은 누가 가장 많이 수행했는지에 따라 최측근 혹은 권력 서열을 가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지지도 수행은 권력 측면에서 보면 부정적인 효과도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12일 “김정은 동지께서 동해안 신도방어중대를 시찰했다”며 노동당 부부장 김여정이 동행했다고 전했다. 중앙통신은 김여정을 제외한 다른 동행자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아 이번 군부대 시찰에는 남매만 공표됐다. 김 부부장에 대해서는 최근 김 제1위원장 현지지도 수행이 부쩍 늘면서 그녀의 위상이 강화되고 김 제1위원장의 신임이 두텁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또 김 제1위원장의 해외 국빈 방문 등 부재시 북한을 대리 통치할 인물로도 거론된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은 나눌 수 없다”는 게 속설이다. 아울러 북한 내에서 김여정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질수록 그녀의 권력구도를 둘러싼 변수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선대인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과거 수많은 현지지도를 다녔다. 하지만 꼭 측근만 수행하게 하지는 않았다. 권력자들의 속성상 믿는 자도 동행하지만 곁에 두고 꼭 지켜봐야만 안심할 수 있는 자도 필히 동행시키기 때문이다. 김 주석에게 있어서는 동생 김영주 부총리가, 김 국방위원장에게는 여동생인 김경희 당 비서가 그랬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단독] “김여정 남편은 리수용 조카… 김정은 통치자금 관리”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리수용 외무상의 조카와 지난해 결혼한 것으로 11일 알려졌다. 정부 소식통은 “김 부부장이 리 외무상 조카와 결혼했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다”며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김 부부장이 최룡해 노동당 비서의 차남과 결혼했다는 소문은 사실과 다를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김 부부장의 결혼과 임신 가능성에 대해서는 개연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달 2일 김 제1위원장의 평양고아원 방문 기사 속 사진에서 김 부부장이 왼손 약지에 반지를 낀 모습을 보도했다. 또 다른 정부 소식통은 “리 외무상의 주된 역할은 김정은이 후계자가 된 후 김정일 비자금을 누수 없이 고스란히 인수 관리하는 것”이라며 “김정은 입장에서는 리 외무상과 인척관계를 맺어 권력분점도 막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리 외무상은 김정은·김여정 남매의 스위스 유학시절 주재국 대사로 오랫동안 있으면서 이들에게 ‘키다리 아저씨’ 같은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김 부부장은 ‘백두혈통’의 일원으로 김 제1위원장 유고시 대체할 수 있는 인물로 꼽히고 있다. 김 제1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제기됐을 당시 김 제1위원장을 대신해 임시로 북한을 통치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김 부부장의 남편은 김 제1위원장의 통치자금 집행기관인 노동당 39호실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39호실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김씨 일가의 ‘통치금고’로 대성은행, 개발은행, 통일발전은행 등 북한 내 금융기관과 대흥지도총국, 낙원지도총국, 경흥지도총국 등 100여개의 외화벌이 기관을 총괄한다. 리 외무상은 김 국방위원장의 ‘해외비자금 총책’으로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김 부부장이 리 외무상 쪽 인물과 결혼한 것을 두고 아버지 때와 마찬가지로 해외비자금 관리를 리 외무상이 전담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김정은 5월 다자외교 데뷔’ 누가 이끄나

    ‘김정은 5월 다자외교 데뷔’ 누가 이끄나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5월 러시아가 주최하는 2차대전 전승 70주년 참가를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김 제1위원장을 보좌할 외교 참모에게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김 제1위원장이 첫 해외 순방지로 러시아를 선택하고 다자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한다면 ‘은둔의 지도자’라 불린 아버지 김정일과는 분명한 대조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북한 외교의 ‘브레인’이자 ‘대표선수’로는 강석주 당 국제비서, 리수용 외무상,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리용호 외무성 부상, 박길연 외무성 부상(전 유엔대사), 자성남 유엔 주재 북한대사 등이 있다. 특히 김형준 주러 북한 대사는 김 제1위원장의 방러 시 실무역할을 도맡을 가능성이 있어 주목받고 있다. 우선 강석주 국제비서는 24년 동안 북핵 협상 및 대미외교를 주도해온 인물로 1990년대 초 불거진 북한 핵개발 의혹 해결을 위한 북·미회담의 북한 단장으로 활동했다. 리수용 외무상도 1988년부터 2010년까지 주스위스 대사와 제네바 대표부 대표를 역임하며 김 제1위원장의 아버지인 김정일의 절대 신임을 받아 다자외교를 경험한 인물이다. 지난해 9월 유엔 총회에 참석하는 등 다자 외교에 익숙한 대표적 외교 베테랑이다. 아울러 2004년부터 6자회담 수석대표를 맡았던 김계관 제1부상, 최근 북·미 싱가포르 회동에 북한 측 파트너로 나섰던 6자회담 수석대표 리용호 부상, 유엔 대사를 역임했던 박길연 부상 등도 김 제1위원장의 지근거리에서 실무를 담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김형준 주러 대사는 주재국 대사란 중요도가 있는 만큼 현지에서 현안 조율을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밖에도 ‘직업 외교관’은 아니지만 지난해 11월 김 제1위원장의 특사자격으로 러시아를 방문한 최룡해 정치국 상무위원이 동행할 가능성이 높다. 최룡해는 방러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비공개 면담을 하고 친서를 전달해 이번에도 수행단에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 연구원은 22일 “북한 입장에서는 김정은 집권 4년차에 첫 국제무대 데뷔가 되는 것”이라면서 “이는 북한 정권 수립 후 첫 다자외교 행사에 참석하는 지도자라는 기록도 갖기 때문에 외교 베테랑뿐만 아니라 가용 브레인을 총동원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 제1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하면 북한을 이끌어갈 인물로는 김 제1위원장의 친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거론된다. 북한 특성상 최고 통치자가 부재 중일 때 내치 담당은 누구보다도 혈족을 우선시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1년 5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 시에도 김경희 당 비서가 국내에 남아 내치를 관장한 바 있다. 일부에서는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이영길 인민군 총참모장, 오일정 당 군사부장, 김원홍 국가보위부장, 조경철 보위사령관 등 당·군의 사정기관 수장이 역할 분담을 통해 김여정을 보좌할 것으로 전망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김정은 여동생 김여정 최룡해 아들과 결혼? 충격

    김정은 여동생 김여정 최룡해 아들과 결혼? 충격

    김정은 여동생 김여정 최룡해 아들과 결혼?   김정은 여동생 김여정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28)이 북한 2인자인 최룡해 당비서 아들과 결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믿을 만한 대북 소식통들은 2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지난해 최룡해 당비서의 아들과 결혼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최룡해 비서는 슬하에 2남 1녀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장남은 30대 후반의 최준, 차남은 30대 초반의 최성으로 김여정과 결혼한 아들은 차남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여정 남편의 현재 직업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북한 노동신문이 2일 공개한 김정은 제1위원장의 평양육아원·애육원 방문을 수행한 김여정의 사진을 보면 왼손 네번째 손가락에 결혼반지를 끼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북한에서는 1990년대부터 여성들이 결혼할 때 신랑측으로부터 반지를 예물로 받고 결혼을 의미하는 왼손 약지에 결혼반지를 끼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김여정 부부장이 최룡해 비서의 아들과 결혼을 하면서 ‘노동당 부부장’이라는 공식 직함을 부여받고 정치적 보폭을 넓히고 있는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최룡해 비서는 아들을 김정은 제1위원장의 유일한 여동생인 김여정과 결혼시켜 로열패밀리가 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함으로써 앞으로도 승승장구하며 북한의 국정운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정은 동생 김여정, 최룡해 아들과 결혼”

    “김정은 동생 김여정, 최룡해 아들과 결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28)이 북한 2인자인 최룡해 당비서의 아들과 결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믿을 만한 대북 소식통들은 2일 “김 제1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지난해 최룡해의 아들과 결혼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최 비서는 슬하에 2남 1녀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장남은 30대 후반의 최준, 차남은 30대 초반의 최성으로 김여정과 결혼한 아들은 차남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여정 남편의 현재 직업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북한 노동신문이 2일 공개한 김 제1위원장의 평양육아원·애육원 방문을 수행한 김여정의 사진을 보면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결혼반지를 끼고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김여정은 지난해 3월 김 제1위원장 부부와 모란봉악단 공연을 관람할 당시에는 반지를 끼고 있지 않았다. 북한에서는 1990년대부터 여성들이 반지를 예물로 받고 결혼을 의미하는 왼손 약지에 결혼반지를 끼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김여정이 최 비서의 아들과 결혼하면서 ‘노동당 부부장’이라는 공식 직함을 부여받고 정치적 보폭을 넓히고 있는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보수적이고 유교적 전통을 가진 북한사회 분위기상 결혼을 통해 미혼 여성의 신분으로 활동을 하는 데 대한 부담을 떨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최 비서는 아들을 김 제1위원장의 유일한 여동생인 김여정과 결혼시켜 로열패밀리가 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함으로써 앞으로도 승승장구하며 북한의 국정운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 [서울&평양 리포트] 피의 숙청·핵실험… 국제 ‘외교고아’

    [서울&평양 리포트] 피의 숙청·핵실험… 국제 ‘외교고아’

    3년 전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자 시신이 안치된 평양 금수산 태양궁전을 찾아 눈물을 쏟아냈다. 당시 조선중앙TV 영상 속 김 제1위원장은 검은 인민복을 입은 채 유리관 속 아버지의 시신 앞에서 퉁퉁 부은 얼굴로 눈물을 훔쳤다. 조문객을 맞이하기 위해 애써 의연한 척도 해봤지만 그의 비통한 표정은 좀처럼 감출 수가 없었다. 아버지를 여의었다는 슬픔과 20대 후반이라는 어린 나이에 너무나 큰 짐을 짊어지게 된 부담감이 뒤섞인 눈물이었다. 주변국들은 이 어린 지도자가 큰 혼란 없이 권력을 이양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하지만 김 제1위원장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북한 핵심부를 장악해 나갔고 시장경제를 일부 도입하며 ‘경제대국’ 달성을 향해 속도를 냈다. 그러나 이후 북한이 3차 핵실험과 장성택 전 국방위 부위원장 숙청을 강행하자 국제사회는 북한에 등을 돌렸다. 심지어 최우방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마저도 냉랭한 태도를 보여 북한은 국제적으로 완전히 고립됐다. 각고의 노력에도 경제가 크게 나아진 것도 아니었다. 지난 17일 아버지인 김정일 위원장 3주기를 맞아 다시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은 김 제1위원장의 얼굴에는 3년 전처럼 짙은 어두움이 드러워 있었다. ●아버지 그림자 지우기 김 제1위원장의 권력 장악은 신속하고 확실했다.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이 숨진 지 보름도 되지 않은 2011년 12월 30일 당 정치국 회의를 열어 김 제1위원장을 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했다. 이듬해 4월에는 당 제1비서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으로 올라서면서 집권 6개월도 안 돼 당·정·군의 최고직위를 손아귀에 넣었다.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의 3년상 기간에 철저히 유훈통치로 보냈던 아버지와는 사뭇 다른 초고속 행보였다. 김 제1위원장은 권력 승계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곧바로 구세대 실세들을 교체하며 ‘아버지 그림자 지우기’에 나섰다. 김 제1위원장은 자신과 함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운구차를 이끌었던 7인방 중 리영호 총참모장, 김영춘 국방위 부위원장,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 등을 퇴진·숙청의 방법으로 물러나게 했다. 고모 김경희의 남편이자 김 제1위원장의 후원자였던 장성택 전 국방위 부위원장도 김정은 1인 지배체제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공개 처형당하며 피바람을 피하지 못했다. 이 일로 김경희는 최고인민회 대의원을 비롯한 모든 직책을 내놓고 정치적 ‘식물인간’으로 전락했다. 정국에 한바탕 태풍이 휩쓴 뒤 남은 자리는 ‘백두혈통’(김일성 직계)·‘빨치산 혈통’·‘김 제1위원장 측근’으로 불리는 권력 삼두마차가 나눠서 차지했다. 김 제1위원장의 유일한 여동생인 김여정은 27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말부터 노동당 부부장에 임명되며 권력무대의 전면에 나섰다. 북한에서 김일성 다음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최현의 아들 최룡해 당 비서도 김 제1위원장의 지지 속에 북한의 2인자 자리를 굳히고 있다. 또 김 제1위원장의 생모 고영희의 신임을 받았던 황병서는 지난 4월부터 군 총정치국장에 올라 군인들을 좌지우지하며 권력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다. ●‘경제강국’을 향한 과감한 변화 김 제1위원장은 2년 전 김일성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서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겠다”고 말했다. 권력을 공고히 한 김 제1위원장은 자신이 내뱉은 말을 지키기 위해 경제 살리기에 팔을 걷고 나섰다. 김정은 정권은 시장경제 요소를 과감히 도입해 기업과 농장의 잉여 생산물 처분 권한을 본래보다 많이 보장해 주고 노동자의 실적에 따라 지급하는 인센티브의 격차도 확대했다. 시장을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정책을 펼친 결과 장마당으로 불리는 종합시장이 전국적으로 400여개에 달한다. 지난해 5월에는 경제개발구법을 제정해 전국 각지에 경제특구를 설치할 법적 토대를 만들었다. 그 결과 지난해 경제개발구 13곳을 설치한 데 이어 올해 7월에는 6곳을 추가했다. 외국 자본에 각종 특혜를 제공하는 경제특구를 짧은 기간에 무더기로 내놓으며 외자유치에 열을 올린 것이다. 또 국가 주도의 대규모 건설사업을 진행해 내수 진작을 독려하고 있고 해외에 5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노동자를 파견해 임금을 송금케 하고 있다. 김정은 정권의 다각적 노력으로 북한의 경제상황은 다소 개선됐다. 북한경제는 2011년 이후 꾸준히 연평균 1% 정도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2011년에 80만대에 불과했던 휴대전화 보급도 2014년에는 240만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2012년 이후 작황 상황도 양호해 쌀값 등 시장물가의 상승세도 둔화됐다. 그러나 이러한 효과는 평양 일부 지역에서만 나타나고 있다. 이외의 지역에서는 여전히 물품 부족 현상이 심각하고 저소득층 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만연해 있다. 남북교역 중단·대북제재·대중무역 수익 악화 등의 외부요인들도 북한 경제를 옥죄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김 제1위원장은 정권 공고화를 위해 마식령 스키장, 문수 물놀이장 건설 등 대규모 전시성 사업을 펼쳤다. 통일부 관계자는 “대규모의 외자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한 북한의 어려운 경제 상황이 나아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면초가에 놓인 김정은 외교 최근 김정은 정권이 가장 곤혹스러워하는 부분은 외교적 고립이다. 북한이 2012년 12월 장거리로켓 발사와 2013년 2월 3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국제사회는 일제히 비난을 쏟아냈다. 대미관계는 사실상 단절됐고 북한의 혈맹국가인 중국도 분노를 표시했다. 특히 지난해 12월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이 잔혹한 방식으로 숙청된 사건은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환기시켰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는 올해 초 보고서를 발표하며 북한 주민의 열악한 인권 상황을 적나라하게 공개했다. 이후 지난 11월 유엔총회 제3위원회는 북한 인권문제를 국제형사재판소에 넘기도록 권고하는 내용의 인권결의안을 압도적인 표차로 채택하며 북한을 압박했다. 북한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리수용 외무상은 지난 9월 북한 외교 수장으로서는 15년 만에 유엔총회에 참석해 국제사회의 압박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밝혔다. 같은 달 강석주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도 유럽과 몽골 순방에 나섰다. 우리나라에는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황병서·최룡해·김양건 등 실세 3인방을 파견했고 미국에는 북한에 억류돼 있던 미국인 제프리 에드워드 파울 등을 풀어주며 유화 제스처를 취했다. 또 러시아에는 최룡해가 특사 자격으로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나고 돌아왔다. 이러한 노력에도 북한의 대외 관계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대표적 중국통이었던 장성택의 숙청과 3차 핵실험으로 감정이 상한 중국은 연간 40여 차례에 달했던 북·중 간 고위급 인사교류를 최소화했다. 북한 언론도 변심한 중국을 ‘줏대 없는 나라’라고 비판하며 양국은 올해 냉랭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또 미국과는 한·미 합동 군사훈련, 미사일방어체계 문제로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한국과는 대북전단 살포, 개성공단 임금제도 일방 개정 등의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미국과 중국이 북한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고 우리나라와도 내년 초 유엔 북한인권현장사무소 개소 등 민감한 이슈가 많아 관계 개선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북한으로서는 내년쯤 러시아와의 정상회담을 추진하며 어떻게든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려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서울&평양] 김정일 사망 3주년…불안하게 시작되는 김정은 시대

    3년 전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자 시신이 안치된 평양 금수산 태양궁전을 찾아 눈물을 쏟아냈다. 당시 조선중앙TV 영상 속 김 제1위원장은 검은 인민복을 입은 채 유리관 속 아버지의 시신 앞에서 퉁퉁 부은 얼굴로 눈물을 훔쳤다. 조문객을 맞이하기 위해 애써 의연한 척도 해봤지만 그의 비통한 표정은 좀처럼 감출 수가 없었다. 아버지를 여의었다는 슬픔과 20대 후반이라는 어린 나이에 너무나 큰 짐을 짊어지게 된 부담감이 뒤섞인 눈물이었다. 주변국들은 이 어린 지도자가 큰 혼란 없이 권력을 이양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하지만 김 제1위원장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북한 핵심부를 장악해 나갔고 시장경제를 일부 도입하며 ‘경제대국’ 달성을 향해 속도를 냈다. 그러나 이후 북한이 3차 핵실험과 장성택 전 국방위 부위원장 숙청을 강행하자 국제사회는 북한에 등을 돌렸다. 심지어 최우방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마저도 냉랭한 태도를 보여 북한은 국제적으로 완전히 고립됐다. 각고의 노력에도 경제가 크게 나아진 것도 아니었다. 지난 17일 아버지인 김정일 위원장 3주기를 맞아 다시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은 김 제1위원장의 얼굴에는 3년 전처럼 짙은 어두움이 드러워 있었다. 아버지 그림자 지우기 김 제1위원장의 권력 장악은 신속하고 확실했다.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이 숨진 지 보름도 되지 않은 2011년 12월 30일 당 정치국 회의를 열어 김 제1위원장을 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했다. 이듬해 4월에는 당 제1비서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으로 올라서면서 집권 6개월도 안 돼 당·정·군의 최고직위를 손아귀에 넣었다.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의 3년상 기간에 철저히 유훈통치로 보냈던 아버지와는 사뭇 다른 초고속 행보였다. 김 제1위원장은 권력 승계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곧바로 구세대 실세들을 교체하며 ‘아버지 그림자 지우기’에 나섰다. 김 제1위원장은 자신과 함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운구차를 이끌었던 7인방 중 리영호 총참모장, 김영춘 국방위 부위원장,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 등을 퇴진·숙청의 방법으로 물러나게 했다. 고모 김경희의 남편이자 김 제1위원장의 후원자였던 장성택 전 국방위 부위원장도 김정은 1인 지배체제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공개 처형당하며 피바람을 피하지 못했다. 이 일로 김경희는 최고인민회 대의원을 비롯한 모든 직책을 내놓고 정치적 ‘식물인간’으로 전락했다. 정국에 한바탕 태풍이 휩쓴 뒤 남은 자리는 ‘백두혈통’(김일성 직계)·‘빨치산 혈통’·‘김 제1위원장 측근’으로 불리는 권력 삼두마차가 나눠서 차지했다. 김 제1위원장의 유일한 여동생인 김여정은 27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말부터 노동당 부부장에 임명되며 권력무대의 전면에 나섰다. 북한에서 김일성 다음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최현의 아들 최룡해 당 비서도 김 제1위원장의 지지 속에 북한의 2인자 자리를 굳히고 있다. 또 김 제1위원장의 생모 고영희의 신임을 받았던 황병서는 지난 4월부터 군 총정치국장에 올라 군인들을 좌지우지하며 권력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다. ‘경제강국’을 향한 과감한 변화 김 제1위원장은 2년 전 김일성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서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겠다”고 말했다. 권력을 공고히 한 김 제1위원장은 자신이 내뱉은 말을 지키기 위해 경제 살리기에 팔을 걷고 나섰다. 김정은 정권은 시장경제 요소를 과감히 도입해 기업과 농장의 잉여 생산물 처분 권한을 본래보다 많이 보장해 주고 노동자의 실적에 따라 지급하는 인센티브의 격차도 확대했다. 시장을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정책을 펼친 결과 장마당으로 불리는 종합시장이 전국적으로 400여개에 달한다. 지난해 5월에는 경제개발구법을 제정해 전국 각지에 경제특구를 설치할 법적 토대를 만들었다. 그 결과 지난해 경제개발구 13곳을 설치한 데 이어 올해 7월에는 6곳을 추가했다. 외국 자본에 각종 특혜를 제공하는 경제특구를 짧은 기간에 무더기로 내놓으며 외자유치에 열을 올린 것이다. 또 국가 주도의 대규모 건설사업을 진행해 내수 진작을 독려하고 있고 해외에 5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노동자를 파견해 임금을 송금케 하고 있다. 김정은 정권의 다각적 노력으로 북한의 경제상황은 다소 개선됐다. 북한경제는 2011년 이후 꾸준히 연평균 1% 정도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2011년에 80만대에 불과했던 휴대전화 보급도 2014년에는 240만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2012년 이후 작황 상황도 양호해 쌀값 등 시장물가의 상승세도 둔화됐다. 그러나 이러한 효과는 평양 일부 지역에서만 나타나고 있다. 이외의 지역에서는 여전히 물품 부족 현상이 심각하고 저소득층 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만연해 있다. 남북교역 중단·대북제재·대중무역 수익 악화 등의 외부요인들도 북한 경제를 옥죄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김 제1위원장은 정권 공고화를 위해 마식령 스키장, 문수 물놀이장 건설 등 대규모 전시성 사업을 펼쳤다. 통일부 관계자는 “대규모의 외자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한 북한의 어려운 경제 상황이 나아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면초가에 놓인 김정은 외교 최근 김정은 정권이 가장 곤혹스러워하는 부분은 외교적 고립이다. 북한이 2012년 12월 장거리로켓 발사와 2013년 2월 3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국제사회는 일제히 비난을 쏟아냈다. 대미관계는 사실상 단절됐고 북한의 혈맹국가인 중국도 분노를 표시했다. 특히 지난해 12월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이 잔혹한 방식으로 숙청된 사건은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환기시켰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는 올해 초 보고서를 발표하며 북한 주민의 열악한 인권 상황을 적나라하게 공개했다. 이후 지난 11월 유엔총회 제3위원회는 북한 인권문제를 국제형사재판소에 넘기도록 권고하는 내용의 인권결의안을 압도적인 표차로 채택하며 북한을 압박했다. 북한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리수용 외무상은 지난 9월 북한 외교 수장으로서는 15년 만에 유엔총회에 참석해 국제사회의 압박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밝혔다. 같은 달 강석주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도 유럽과 몽골 순방에 나섰다. 우리나라에는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황병서·최룡해·김양건 등 실세 3인방을 파견했고 미국에는 북한에 억류돼 있던 미국인 제프리 에드워드 파울 등을 풀어주며 유화 제스처를 취했다. 또 러시아에는 최룡해가 특사 자격으로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나고 돌아왔다. 이러한 노력에도 북한의 대외 관계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대표적 중국통이었던 장성택의 숙청과 3차 핵실험으로 감정이 상한 중국은 연간 40여 차례에 달했던 북·중 간 고위급 인사교류를 최소화했다. 북한 언론도 변심한 중국을 ‘줏대 없는 나라’라고 비판하며 양국은 올해 냉랭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또 미국과는 한·미 합동 군사훈련, 미사일방어체계 문제로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한국과는 대북전단 살포, 개성공단 임금제도 일방 개정 등의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미국과 중국이 북한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고 우리나라와도 내년 초 유엔 북한인권현장사무소 개소 등 민감한 이슈가 많아 관계 개선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북한으로서는 내년쯤 러시아와의 정상회담을 추진하며 어떻게든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려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서울&평양 리포트] 27세 ‘백두혈통 공주’ 김여정, 김정은 뒤 밀착마크

    [서울&평양 리포트] 27세 ‘백두혈통 공주’ 김여정, 김정은 뒤 밀착마크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열백번 바뀌어도 변할 수도 바뀔 수도 없는 것이 백두의 혈통이다. 우리 당과 국가, 군대와 인민은 오직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동지밖에는 그 누구도 모른다.” 지난해 12월 12일 북한 당국이 정변을 모의했다는 혐의로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처형하며 발표한 보도문의 일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여동생 김경희의 남편이자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고모부인 로열패밀리 장성택도 ‘백두혈통’ 김씨 집안의 벽 앞에서는 한 줌 재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임을 단적으로 보여 준 예다. 북한은 장성택 숙청 1주년을 앞두고도 여전히 그의 잔재를 청산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27일 김 제1위원장의 여동생이자 백두혈통의 공주 김여정이 차관급인 노동당 부부장의 직함을 맡고 있음이 확인됐다. 김여정은 첫 공주였던 고모 김경희의 공백을 메우고 있어 단순히 공주가 아닌 김정은 체제의 안정을 위한 핵심 실세 역할을 맡을 가능성에 무게가 쏠린다. 김여정의 전면 등장은 김정일 시대와는 달라진 모습이다. 김경희는 오빠 김정일이 후계자 시절이던 1976년 당 국제부 부부장을 맡았고 1987년부터 당 경공업부장을 맡았지만 공식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정부는 김여정이 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을 맡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아버지 김정일도 당 활동을 선전선동부에서 시작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5일 “김정은이 현지지도하는 데 기록영화를 만들기 위해 선전선동부 간부급은 반드시 동행한다”며 “그만큼 현지지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서”라고 설명했다. ●행정구역 개편에도 영향… 혈통 신성시 올해 27세인 김여정은 지난 3월 9일 최고인민회의 제13기 대의원 선거 투표 행사 때 오빠 김정은의 수행원으로 나왔다. 북한 관영매체들은 이때 김여정이라는 이름을 처음 공개했고 노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꾼’이라는 점을 밝혔다. 한·미 정보 당국은 김 제1위원장의 후계자 시절부터 김여정을 주목해 왔다. 김여정은 김 제1위원장과 함께 1990년대 후반 스위스에서 유학했고 평양으로 귀환한 이후에는 외국인 교사의 개별 수업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여정은 특히 평양에서 아무도 말리지 못하는 당당한 공주로 통한다. 2012년 7월 평양 능라인민유원지 개관 행사에서 고위 관리들이 김정은·리설주 부부를 박수로 환영할 때 홀로 화단 위에 서서 이를 물끄러미 지켜봤다. 고모 김경희도 줄을 맞춰 선 뒤 부동자세를 취했지만 김여정은 달랐다. 김 제1위원장이 간부들과 악수할 때 화단을 넘어 뜀박질하듯 아스팔트 광장을 가로지르기도 했다. 또 김 제1위원장이 꽃다발을 받고 거수경례를 하자 재미있다는 듯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손뼉을 쳤다. 경호의전상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누구도 이를 막지 못했다. 조선중앙TV는 2012년 11월 19일 김 제1위원장의 기마중대 훈련장 시찰 때 김여정이 고모 김경희와 함께 말을 탄 장면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른바 백두혈통인 김일성 가계에 김여정이 자리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이다. 과거 김경희가 김정일을 챙겼듯, 김여정이 김 제1위원장을 지근거리에서 챙기는 최고 실세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북한에서 백두혈통은 행정구역 개편에도 영향을 미칠 만큼 신성시된다. 북한은 2010년 평양시 남쪽 일부 지역을 황해북도로 편입시키는 평양시 축소 개편 조치를 단행했으나 서쪽 외곽의 만경대 구역이나 동쪽의 강동군 등 김정일 가계와 관련된 지역은 제외됐다. 강동군은 김정일의 조부 김형직의 혁명활동 사적지가, 만경대는 김일성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이복형 김정남 등 김씨일가 ‘곁가지’엔 가혹 하지만 북한은 백두혈통의 ‘곁가지’들에 대해서는 가혹했다. 대표적인 예가 김정일의 이복동생 김평일(50)이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교환수 출신이자 후처인 계모 김성애를 어머니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성애에게는 김일성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인 김평일과 김영일, 딸 김경진이 있었다. 그리고 외형상 김평일이 아버지 김일성을 완벽하게 닮았고 학교 성적도 더 뛰어났다. 1969년까지만 해도 북한 고위 간부 사이에서 김일성의 후계자는 김평일이라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1970년 봄 김일성과 김성애 사이에 불화가 생긴 틈을 타 김정일은 김일성에게 계모 김성애의 월권행위와 비리를 일일이 고발했다. 이를 계기로 김성애가 몰락하고 1974년 김정일로 후계구도가 공식화되자 김정일은 곁가지를 쳐내는 작업을 시작했다. 김평일은 1979년 유고 주재 북한대사관 무관으로 쫓겨난 이래 헝가리 대사, 핀란드 대사 등을 전전하며 평양에 발을 들이지 못했다. 김 제1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도 마찬가지다. 김정일의 장남이자 첫째 부인 성혜림 소생인 김정남은 후계구도에서 물러나면서 중국과 마카오를 거점으로 북한 관련 사업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남은 해외 언론과의 접촉에서 북한에 대한 비판을 가하며 요주의 대상이 됐다. ●“이복누나 김설송은 그림자 실세” 주장도 하지만 김 제1위원장의 이복누나 김설송(40)은 베일에 가려진 ‘그림자 실세’라는 주장이 나온다. 김설송은 1974년 김정일과 그의 둘째 부인 김영숙 사이에 태어난 장녀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했고 1990년대 말부터 김정일에 대한 경호와 일정 관리를 총괄했다고 전해진다. 미국의 북한 전문가 켄 고스 미 해군 분석연구소 연구국장은 지난 6월 “김설송이 북한 정권 내부의 모든 정보를 간직하고 정보의 흐름을 통제하는 조직의 정점에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양 교수는 이에 대해 “김설송이 중요한 업무를 맡고 실권을 갖고 있다면 공식 매체에 등장하지 않을 리 없다”고 가능성을 일축했다. 이를 통해 볼 때 김 제1위원장이 의지할 수 있는 가장 큰 상대는 김여정이다. 이복형인 김정남은 적대시하고 있고 유약하다는 이유로 일찌감치 후계자 구도에서 탈락한 친형 김정철은 권력과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 데 비해 김여정은 자신의 자리를 넘보기 어려운 여성이라는 점에서다. 탈북자 출신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북한에서는 이미 김정은을 ‘1호 동지’, 김여정을 ‘2호 동지’로 부르고 있다”며 사실상 2인자 이상의 핵심 실세 역할을 할 것으로 분석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도 “지난 5월 공군 지휘관 전투비행기술 경기대회 시상식에서 김여정이 김정은 바로 뒤에서 메달을 들고 있는 사진은 그가 단순히 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이 아닌 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부장을 맡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남매의 상호 의존·보좌 통한 정당성 강화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 백두혈통의 계모에 대한 대접도 김정일 시대와는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일의 네 번째 부인이자 김 제1위원장의 계모인 김옥(50)의 역할이 주목된다. 김옥은 1980년대 초부터 2004년 김정은의 어머니 고영희가 사망할 때까지 김정일의 기술서기로 활동했다. 안 소장은 “지난해 12월 미국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먼이 방북했을 때 김정은이 베푼 연회에서 김옥이 행사를 진행했다는 증언이 있다”며 “김옥이 숙청되지 않고 김정은의 배려를 받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김여정의 약진은 장성택을 대체할 마땅한 인물이 없는 현재의 북한이 백두혈통 남매의 상호 의존과 보좌를 통해 김정은 체제의 약한 내구력을 채우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양 교수는 “김정일이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 김경희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김정은에게 어느 정도 정치적 경륜이 쌓이면 김여정도 경공업부장처럼 정치권력과는 거리가 있는 자리로 물러설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김정은 동생 김여정 서울행?

    김정은 동생 김여정 서울행?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의 서울 방문이 추진 중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통일부는 “가능성이 낮다”고 일축했다. ‘남북 민족음식 예술문화 대축제’를 내년 3월 서울에서 개최하고자 준비 중인 동방영만 남북경제인연합회(남경연) 회장은 4일 “북측이 보낸 의향서에 김여정이 (참가자 중에 있으며 직책은) 대외사업부 부장으로 돼 있다”고 밝혔다. 동방 회장은 “북쪽에서 김정은 동생 김여정이라고 설명해 줬다”고 덧붙였다. 해당 행사는 내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민간 차원에서 추진 중인 문화 교류 행사로, 북한 요리사 100명을 서울로 초청해 한국 측 요리사 100명과 음식 경연을 펼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하지만 통일부는 김여정의 방남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봤다. 통일부 관계자는 “남경연은 지난 10월 북측 낙원총무역회사와 함께 11월에 서울에서 음식문화축제를 하겠다고 신청했지만 요건이 미비해 반려됐다”면서 “당시 남경연이 가져온 북측 의향서에 김여정이라는 이름이 있긴 했지만 그가 김정은의 동생인지는 확인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낙원총무역회사는 2011년 이후 거의 활동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관계자는 또 “(김여정이 부장으로 있다는) 노동당 대외사업부라는 곳의 존재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면서 “북한 매체가 지난 11월에 김여정을 ‘당 부부장’이라고 확인했는데 10월에 제출된 명단에 ‘당 부장’으로 돼 있는 점도 많은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北 권력 핵심 요직 입성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北 권력 핵심 요직 입성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의 공식 직급이 ‘노동당 부부장’인 것으로 27일 확인됐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김 제1위원장이 ‘4·26만화영화촬영소’를 방문했다고 보도하면서 수행자에 포함된 김여정을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으로 호명했다. 북한 매체가 김여정의 직급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김여정이 활동하는 부서는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김 제1위원장의 촬영소 방문 수행자들이 김기남 당 선전담당 비서, 리재일 당 선전선동부(선전부) 제1부부장 등이어서 선전부 소속일 것으로 점쳐진다. 정부도 이번에 김여정이 김기남, 리재일과 같이 나온 것을 봤을 때 선전부 소속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여정이 활동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당 선전부는 북한 내 권력 핵심조직인 당 조직지도부와 당내 역할을 양분하고 있는 부서로 전해진다. 당 조직지도부가 인사와 감찰이 주된 특권이라면 당 선전선동부는 지도자의 위대성 선전과 당 관료들의 비행과 과오에 대해 비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1967년 당 선전부 과장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후계자 경쟁에 뛰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과거 김 국방위원장은 당 선전부를 지렛대로 3대혁명(사상·기술·문화)소조 운동을 진두지휘하면서 소조원을 북한 전역의 공장과 농장, 학교, 행정기관에 파견했다. 아울러 이들을 통해 관료주의와 형식주의를 타파하고 세대교체를 단행, 1974년 자신이 후계자로 내정되는 데 유리한 여건을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김여정의 당 선전부 부부장 직책은 김 제1위원장이 미처 살피지 못하는 권력 비리의 감시와 견제, 정치 공백 등을 메우는 최적의 위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편 김여정의 부상을 통해 볼 수 있듯이 김 제1위원장의 최근 인사는 혈족과 가신들 중심으로 권력 지도부를 구성하는 모양새다. 최룡해 정치국 상무위원, 오일정 당 군사부장, 오금철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등 선대로부터 생사고락을 같이해 온 ‘혁명가’의 자녀들이 요직에서 ‘김씨왕조’를 지탱하고 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김정은 여동생 김여정, 당 고위 간부와 결혼설

    김정은 여동생 김여정, 당 고위 간부와 결혼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28일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이 이미 결혼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조선족 기업인을 인용해 보도했다. 최근 평양을 방문한 이 기업인은 “노동당 39호실 산하 무역 회사 고위 간부로부터 전해 들은 얘기”라며 “김여정의 남편이 39호실에서 근무한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이 소식통은 결혼 시점과 김여정 남편의 자세한 신상에 대해서는 듣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동당 39호실은 북한 정권의 통치 자금 관리 기관이다. 27세로 알려진 김여정은 지난 3월 제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때 김정은의 투표 수행자로 호명되며 본격적인 권력 행보에 나선 것으로 관측됐다. 안석 기자 ccto@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김정은을 지키는 ‘사상 최대’ 의 경호부대...쿠데타 사실상 불가능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김정은을 지키는 ‘사상 최대’ 의 경호부대...쿠데타 사실상 불가능

    김정은이 40일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동안 김정은에 대해서는 온갖 설(說)들이 쏟아졌다. 스위스 유학 시절부터 입맛을 들인 에멘탈 치즈 과다 섭취 후유증 설부터 지방 별장에서 요양하고 있다는 설, 심지어 군부 원로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켜 도피했다는 설 등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이 인터넷을 덮어 왔었다. 김일성이 사망하고 1995년 함경도 지역에 배치되어 있던 6군단이 반란을 모의하다 적발된 사건 이후 김정은 일가에 대한 쿠데타 설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었다. 김정일이 두문불출했을 때도 그러했고, 김정은이 이립(而立)도 채 되지 않은 나이에 최고 지도자로 추대된 이후에도 리영호나 장성택에 의한 쿠데타 가능성이 수 차례 나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쿠데타는 없었고 김일성과 김정일은 천수(天壽)를 누리다가 병으로 죽었고, 지금은 금수산기념궁전에 방부제 처리까지 되어 '곱게' 안치되어 있다. 김정은은 김정일과 달리 장기간 후계자 수업을 받은 것도 아니고, 경력이 일천하고 나이도 어려 집권 초기부터 얼마 가지 못해 실각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하지만 다른 이유로 인해 실각할 수 있다 하더라도 군부 반란에 의해 권좌에서 끌어내려질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북한에는 사상 유례가 없는 규모의 대규모 경호 부대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 북한판 수방사! ‘평양방어사령부’ 우리나라도 수도 서울을 지키기 위해 군단급 부대인 수도방위사령부를 두고 있지만, 북한의 평양방어사령부는 우리 수방사와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 우리 수방사는 부대를 구성하는 예하 4개 사단이 현역사단이 아닌 향토사단과 동원사단이며, 현역 전투병력은 대부분 헌병과 경비 병력 위주로 구성된 반면, 북한의 평방사는 북한군 내에서도 상당한 정예로 꼽히는 부대이기 때문이다. 평양방어사령부는 평양 외곽 지역을 지키는 군단급 부대이다. 국내 일부 언론에는 북한 최정예 기갑부대로 손꼽히는 ‘근위서울류경수 제105땅크사단’이 평방사 예하 부대로 알려져 있으나, 이 부대는 평양 남부 사리원에 배치된 820훈련소 예하 부대이며, 평방사는 보병과 장갑차 위주의 부대로 편성되어 있는 감편(減制) 군단급 부대이다. 예하에 장갑차로 무장한 4개의 차량화 보병여단과 1개 전차연대를 주축으로 2개 포병여단과 1개 경보병연대 등의 전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북한에서는 위장명칭으로 ‘91훈련소’ 또는 ‘제966대연합부대‘로 불린다. 전시가 되면 남포의 제3군단과 연계해 평양에 대한 방어임무를 수행하며, 남침에 실패해 방어전을 수행해야 할 경우 425훈련소와 820훈련소 등 기계화부대 잔존 전력과 함께 평양 방어 임무를 수행한다. 신형 전투장비를 가장 먼저 지급받는 부대이기 때문에 장비의 질적 수준은 북한군 가운데서 가장 높은 편이다. 4개의 차량화 보병여단은 러시아의 BTR-80 등 비교적 신형 장갑차를 모방해 개발한 신형 차륜형 장갑차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차연대에는 북한 육군이 보유한 전차 가운데 가장 신형인 폭풍호 후기형과 선군호 전차가 배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정예부대인 평양방어사령부 지휘관은 상장(우리 군의 중장급)급 장령이 보직되며, 지금은 숙청된 리영호 전 총참모장이 평양방어사령관을 지낸 바 있었다. ▲ 무소불위의 권력, 호위사령부 평양방어사령부가 기계화 장비를 운용하며 평양 외곽 지역을 방어하는 임무를 수행한다면, 평양 시가지와 김정은 일가에 대한 경호 책임은 호위사령부가 맡고 있다. 인기리에 상영된 국내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호위총국’으로 묘사된 호위사령부는 명목상 군단급 부대이지만, 예하 병력만 6만 명에 달하는 거대한 부대이다. 원래 이 부대는 이렇게 거대한 부대가 아니었다. 광복 직후 북한에 들어와 권력을 잡기 시작한 김일성의 개인 경호부대인 100여 명 규모의 ‘경위중대’로 출발해 6.25 전쟁 중 ‘경위연대’로 커졌으며, 전후 우리의 경호실 격인 ‘정부호위처’로 확대개편 되었다가 1965년에 상장급 장령이 지휘하는 ‘정부호위총국’이 되었다. 이후 정부호위총국은 호위사령부와 호위총국이라는 이름을 번갈아 사용하다가 2000년대 이후 호위사령부라는 명칭으로 굳어졌다. 과거에는 1~7국으로 나뉘어져 김일성과 김정일 일가는 물론 지방의 김씨 일가 전용 휴양소와 초대소, 목장 등을 관리하는 방대한 조직이었으나, 현재는 개편을 통해 그 규모가 다소 축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6개 부로 구성된 제1국은 김정은 일가와 금수산태양궁전, 당과 정부 주요 인사에 대한 직접적인 경호 및 감시 임무를 맡고 있으며, 김정은 일가의 생활 전반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제2국, 사령부 전투근무지원 임무를 수행하는 제3국과 독립전투여단 등으로 구성된다. 최근 화제가 되었던 황병서 총참모장의 경호원들 역시 제1국 소속이다. 이들은 황 총참모장의 경호 임무를 수행하면서, 동시에 감시 임무도 맡고 있다. 호위사령부는 총참모부가 아닌 국방위원장 직속이기 때문에 당시 인천을 찾았던 황 총참모장이나 최룡해 비서, 김양건 비서를 수행하면서 변심 또는 반역의 조짐이 보이면 이들을 사살하는 임무도 맡고 있다. 이러한 임무는 과거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등 고위층 탈북이 이어지면서 추가된 것으로 알려졌다. 호위사령부 요원들은 출신성분과 충성심을 엄격히 평가해 선발하는데, 보안을 위해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하며, 결혼 시에도 배우자의 출신성분과 당성을 보아야 하며, 결혼 후 지정된 숙소에서 생활하는 등 철저하게 통제된 생활을 해야 한다. 그러나 최고 수준의 공급규정을 적용받아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며, 김일성고급당학교 등 교육 여건을 제공 받아 당 간부로 진출할 수 있는 등 최고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즉, 호위사령부는 말단 전사부터 고위 군관에 이르기까지 처음부터 호위사령부 요원으로 선발된 인원들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온갖 특혜를 누리면서 이러한 특혜에 대해 김씨 일가에 대한 절대적 충성으로 보답한다. 김씨 일가에 대한 경호는 물론, 생활 전반에 걸친 밀착 수행을 담당하기 때문에 지휘관 역시 절대적인 신뢰를 받는 믿을 수 있는 인물이 맡고 있다. 1985년부터 약 30년간 호위사령관 직을 수행했던 리을설은 이례적으로 조선인민군 원수까지 진급했고, 퇴임한 이후에도 원수 계급을 유지하며 예우를 받고 있다. 후임으로 사령관에 임명된 윤정린 상장 역시 1984년부터 호위사령부 참모장으로 일하며 김정일에게 전폭적인 신임을 받아왔고, 최근 상장으로 강등당하기 전까지 대장 계급을 유지해 왔다. 호위사령관은 김씨 일가를 최일선에서 경호하는 ‘문고리 권력’으로 막강한 권한을 가진다. 전시가 되거나 쿠데타 등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인접한 평양방어사령부와 3군단 등 총참모부 통제를 받는 전투부대를 끌어와 휘하에 두고 지휘할 수 있다. 자체 보유한 전투여단 강화된 3개 대대 편성을 갖추고 있으며, 쿠데타 또는 ‘최고 존엄’에 대한 위해 시도가 발생할 경우 즉각 출동하여 기동타격대 역할을 수행한다. ▲ 10만여 친위대... '호위사령부' 건재한 이상 쿠데타 불가능 최근 중국 SNS에서는 ‘김정은 실각설’이 사실처럼 확산되고 있었다. 김정은이 40일 가까이 잠적했고, 최근 황병서 일행이 인천을 찾은 것도 김정은을 축출한 뒤 삼두체제를 인정받기 위해 내려온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되면서 이러한 소문이 돌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설은 평양에 오직 김정은의 명령만 듣는 10만여 명의 최정예 친위부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쿠데타가 발생한다면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호위사령부와 쿠데타 병력 간에 교전이 발발할 것이지만, 아직까지 평양 일대에서 이러한 특이 동향은 감지되지 않고 있고, 김정은은 다시 전면에 등장하여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황병서가 제아무리 2인자, 심지어 1.5인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어도 총정치국은 호위사령부에 대한 지휘권을 가질 수 없다. 2인자조차 인정되지 않는 유일 독재체제 북한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2인자나 1.5인자라는 단어에 박장대소할 것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휘어잡으며 2인자 행세를 했던 장성택조차도 건드리지 못한 것이 호위사령부였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자신들의 권력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안전장치로 반세기에 걸쳐 호위사령부를 철저한 사병 집단으로 만들어 놓았고, 이를 김정은에게 물려주었다. 김정은은 이 호위사령부 안에서도 사령관인 윤정린과 부사령관인 김성덕이 서로 견제하고 충성 경쟁을 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대장이었던 윤정린을 김성덕과 같은 상장으로 강등시킨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재 김정은은 건강상의 문제로 약 2~3개월 가량의 치료가 필요한 상황으로 알려져 있다. 치료가 어느정도 마무리될 때까지는 안정을 취해야하겠지만, 김정은이 통치 일선에서 물러난 것은 아니며, 빈도는 낮아지겠지만 앞으로도 대외 활동은 계속 이어나갈 것이다. 27세에 불과하지만 ‘백두혈통’ 덕분에 우리나라의 청와대 비서실장 격인 서기실장을 맡고 있는 김여정이 오빠인 김정은의 신임을 받으며 권력을 틀어쥐면서 오빠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고, 여기에 ‘총폭탄 정신’으로 무장하고 김정은을 결사 옹위하는 10만여 명의 친위대까지 버티고 있다. 김정일은 생전에 호위사령부 요원들에게 니콜라이 차우셰스쿠(Nicolae Ceausescu)의 경호원들에 대한 영상을 자주 보여주었다고 한다. 루마니아 혁명 당시 차우셰스쿠에게 충성하던 보안군 소속 경호원들은 최후의 1인까지 혁명군에 저항하다 사살됐고, 김정일은 호위사령부 요원들에게 최고의 혜택을 제공하면서 이들과 같은 충성심을 요구해왔고, 호위사령부는 이 같은 독재자의 요구에 충실히 길들여져 왔다. 이들의 충성 대상은 이제 ‘백두혈통’인 김정은에게 이어지고 있고, 김정은은 매년 각종 사치품 수입 최고치 기록을 경신하며 이들에게 막대한 특혜를 베풀고 있다. 김정은 체제 붕괴 또는 권력 약화는 독재자로부터 제공받는 호위사령부 요원들의 부귀와 영화가 끝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호위사령부는 대단히 강력하고 김정은과의 밀착 관계는 쉽게 끊어질 수 없는 관계다. 이 때문에 이립(而立)을 갓 넘긴 철부지 독재자가 권좌에서 끌어내려질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이고, 이로 인한 한반도 정세의 불확실성과 위험은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北 고위급 대표단 전격 방한] ‘北 최고 엘리트’ 당서기실 이끄는 김여정 기획?

    [北 고위급 대표단 전격 방한] ‘北 최고 엘리트’ 당서기실 이끄는 김여정 기획?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등 북한 고위급 실세들의 전격 방한을 두고 과연 누가 이 같은 파격적인 전략을 구상했는지 관심이 쏠린다. 북한 체제 특성상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개인 의지와 판단이 절대적이지만 책사로서의 설계자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대북 전문가 사이에서는 ‘대남통’인 김양건 대남담당 비서와 숨겨진 권력으로 평가받는 김 제1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왼쪽) 당 서기실장의 막후 ‘기획설’이 제기된다. 이번 북한 실세 3인방의 방한에는 결과적으로 김 제1위원장의 결단이 작용했다. ‘수령제일주의’ 국가인 북한은 최고 권력자의 허락 없이 이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체제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북측 대남 정책의 결정 구조상 3대 백두 혈통의 ‘본줄기’인 김 서기실장의 역할이 주효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일성종합대학 출신을 비롯해 최고 엘리트 300명 정도로 구성된 당 서기실은 각 분야를 통제·대응해 김 제1위원장을 보좌하는 조직으로 당내에서도 주요 전략이 만들어지는 곳으로 전해진다. 특히 최고 기밀 사항인 김 제1위원장의 현지지도 동선을 포함해 모든 일정을 최종 확인하고, 인사와 조직은 물론 선전·선동 등 북한 내 여론을 만들어 내는 데도 당 서기실의 결정이 반영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남비서도 김 제1위원장을 측근에서 보좌하며 누구보다 남한 실정을 잘 아는 인물인 만큼 남북 간 경색 국면을 해결할 ‘한 방’을 제안할 수 있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 밖에도 원동연(오른쪽) 당 통전부부장을 비롯해 대남 협상에 경험이 많은 통전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실무진이 힘을 보탰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北 강석주, 9일 유럽의회 외교위원장과 회동

    강석주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의 유럽 순방 일정이 윤곽을 드러내는 가운데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동생으로 알려진 김여정이 ‘1호 행사’(김정은 참석 행사)에서 당 부부장들보다 앞서 호명돼 주목받고 있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4일 강 비서가 이달 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엘마르 브록 유럽의회 외교위원장과 만날 예정이라고 전했다. 유럽의회 관계자는 브록 위원장이 강 비서와 남북 대화 및 한반도 문제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 비서의 이례적인 유럽 순방은 ‘북한식 다자외교’의 서막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어 11~13일엔 이브 로시에 스위스 외교차관과 회동한다고 스위스 일간 ‘르 탕’이 최근 보도했다. 다만 일각에서 제기되는 미국 정부 당국자와 강 비서 간 ‘비밀접촉설’에 대해 미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한편 조선중앙통신은 같은 날 김 제1위원장이 참석한 행사에서 김여정을 리재일 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보다 앞서 호명해 눈길을 끌었다. 김여정은 지난해부터 김 제1위원장의 비서실장 격인 당 서기실장 업무를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그녀의 위상과 역할이 부상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통일부 당국자는 “호명 순서가 반드시 당내 서열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판단 기준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동향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이날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현지 언론을 인용해 북한 노동자들이 술 유통이 금지된 이슬람권에서 몰래 술을 만들어 팔다가 잇따라 적발됐다고 전했다. 북한은 통치자금 확보를 위해 쿠웨이트 등 중동 지역에 7000명 정도의 근로자를 파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김정은 親여동생 김여정 당 서기실장으로 활동 중

    김정은 親여동생 김여정 당 서기실장으로 활동 중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친여동생인 김여정(27)이 지난해부터 김 제1위원장의 비서실장 격인 노동당 서기실장으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 일가 세습 체제에서 서기실장은 최고지도자의 최측근이 역임해 왔지만 직계 가족이 맡은 것은 처음이다. 대북 소식통은 30일 “김여정이 장성택 숙청 이전인 작년 상반기쯤부터 노동당 서기실장에 임명돼 활동하고 있다”며 “그동안 김 제1위원장의 첫 비서실장이었던 김창선 밑에서 일하면서 교육을 받은 셈”이라고 전했다. 청와대 비서실과 유사한 북한 노동당 서기실은 정책 결정에는 관여하지 않으면서 최고지도자와 그 직계 가족에 대한 생필품 구입 및 공급 등 일상생활을 돌보는 일을 수행한다. 특히 서기실은 노동당과 국방위원회, 내각 등 주요 기관에서 올라오는 보고 문건을 김 제1위원장에게 전달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북한 전문가들은 노동당 서기실이 국방위원회 서기실 또는 ‘김정은 서기실’로도 불리고 있어 김여정은 노동당 서기실장과 국방위 서기실장을 겸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장관급에 해당하는 서기실장은 김정일 체제에서는 주로 노동당 제1부부장 직함으로 북한 매체에 소개됐다. 북한 매체는 지난 9일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처음 치러진 최고인민회의 제13기 대의원 선거 투표소에 김 제1위원장과 함께 처음으로 공식 등장한 김여정을 ‘노동당 중앙위원회 책임 일꾼’으로 소개했다. 현재 북한 매체가 김여정을 노동당 부부장 중 맨 마지막에 호명한 것은 나이를 감안한 조치로 추정된다. 그가 불과 26세의 어린 나이에 장관급인 서기실장에 임명된 것은 종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여동생 김경희 노동당 비서의 상징적 역할을 뛰어넘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여정이 첫 공직부터 최고지도자인 오빠의 활동과 생활을 직접 챙기는 위치에 올랐기 때문이다. 김경희는 김정일 후계 체제 구축 시기인 1976년 30세 때 당 국제부와 경공업부 부부장으로 근무했고 41세인 1987년에야 당 경공업부장을 맡았다. 장성택 처형으로 부인 김경희까지 사실상 은퇴해 홀로 선 김 제1위원장의 입장에서는 여동생 김여정을 공식 행사에 자주 동반해 김정은 체제의 이른바 ‘백두혈통’을 과시하고 있는 셈이다. 1990년대 후반에 오빠들인 김 제1위원장, 김정철과 함께 스위스에서 유학했으며 평양으로 귀환해서도 외국인 초빙 교사로부터 불어와 영어 등의 외국어를 배운 것으로 알려졌다. 안석 기자 ccto@seoul.co.kr
  • [모닝 브리핑] 北 김정은, 리설주·김여정과 공연 관람

    [모닝 브리핑] 北 김정은, 리설주·김여정과 공연 관람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부인 리설주, 여동생 김여정과 모란봉악단 공연을 관람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김 제1위원장이 지난 22일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이들 및 다른 간부들과 공연을 관람했다고 23일 보도했다. 신문 1면에 실린 공연 관람 사진을 보면 북한 여성 권력의 핵심으로 떠오른 리설주·김여정의 현재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리설주는 김 제1위원장 바로 오른편에 앉았고, 김여정은 김 제1위원장의 뒷줄 왼쪽 끝에서 두 번째 자리로, 한광상 노동당 재정경리부장과 박태성 부부장 사이에 앉았다. 신문은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 등 동석한 간부의 이름을 열거하며 김여정을 김병호 당 부부장 다음으로 호명했다. 안석 기자 ccto@seoul.co.kr
  • 北 대의원 55% 교체… 본격 권력이동 예상

    北 대의원 55% 교체… 본격 권력이동 예상

    북한이 제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당선자 687명의 명단을 선거 이틀 만인 11일 발표했다. 최룡해 총정치국장과 박봉주 내각총리,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기존 인사들이 여전히 건재하고 일부를 제외한 장성택 인맥 상당수도 대의원에 포함돼 아주 급격한 세대교체는 아니라는 평가가 나오지만, 새롭게 이름을 올린 인물의 면면은 향후 북한 내 본격적인 ‘파워 시프트’가 있을 것임을 가늠하게 한다. 북한 중앙선거위원회는 이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3기 대의원 선거 결과에 대하여’라는 제목 아래 “전체 선거자의 99.97%가 선거에 참여했고 100% 찬성투표를 했다”며 당선자 687명을 공개했다. 376명이 새로 뽑혀 1998년 10기 선거에서 65%가 교체된 이후 가장 높은 55%의 교체율을 기록했다. 이번 선거의 신규 진입자들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수행 현장에서 자주 목격된 인사들이다. 장정남 인민무력부장과 김수길 군 총정치국 부국장, 조연준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등이 대의원에 처음 이름을 올렸다. 장성택 숙청을 논의한 ‘백두산 대책회의 5인방’으로 불리며 주목받았던 황병서, 마원춘, 박태성 당 부부장은 명단에 포함됐지만 김병호, 홍영칠 당 부부장은 빠져 신진 세력의 약진에도 속도 차가 있음을 보여줬다. 기존 대남 라인 인사들이 이번 대의원 명단에 포함된 것은 최근 남북관계 기류가 큰 변화 없이 이어질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장성택 인맥으로 분류돼 신변에 변화가 있을 것이란 예상이 나왔던 김양건 당 통일전선부장은 최근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남북 간 고위급 접촉에서 북측 수석대표를 맡았던 원동연 당 통일전선부 부부장과 강지영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의 신규 진입도 주목할 만하다. 원 부부장은 제336호 개성선거구 다음인 제337호 동현선거구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미뤄 개성공단 인근 지역에서 당선돼 향후 남북 관계에서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고위층 2세의 이름이 10여명 보이는 점도 특징이다. 최재하 전 내각 건설상의 아들인 최휘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리영구 전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의 아들인 리광근 합영투자위원회 위원장 등이 새롭게 당선됐다. 재선에 성공한 최룡해는 김일성과 함께 활동한 최현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이기도 하다. 당선자 명단에서 확인되며 최 총정치국장이 감금됐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 난 셈이 됐다. 장성택의 부인이자 김 제1위원장의 고모로 건강 이상설이 나도는 김경희 당 비서는 명단에서 제외된 것으로 보인다. 제285호 선거구 당선자에 ‘김경희’가 있지만 동명이인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백두혈통’인 김경희의 선거구는 12기 선거에서는 제3호로 앞 순위에 있었다. 지난 9일 투표일에 북한 매체에서 처음 호명된 김 제1위원장의 여동생 여정과 형 정철, 이복 누이 설송 등 김정은의 가계 인물들도 이번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탈락한 인물 중 장성택 인맥과 은퇴한 군 원로그룹이 눈에 띈다. 장성택과 연루된 것으로 보이는 문경덕 당 비서와 로성실 전 조선민주여성동맹 위원장 등의 이름이 없고 ‘김정일의 친위대’였던 현철해 전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과 박재경 전 인민무력부 부부장, 김명국 전 작전국장 등 군 원로그룹도 명단에서 보이지 않았다. 리병삼 조선인민내무군 정치국장도 빠졌고 국방위원회 위원 가운데서는 백세봉 전 제2경제위원장이 유일하게 빠져 향후 12기 최고인민회의 1차 회의에서 해임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들의 빈자리는 강표영 인민무력부 부부장과 박정천 포병사령관 등 김정은 체제의 군 실세들이 대신 채웠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이번 선거는 김정은 정권에 안정성을 부여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면서 “김여정이 빠진 것은 (정치 무대에) 바로 등장하는 것이 북한으로서는 부담스러웠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안석 기자 ccto@seoul.co.kr
  • 北 김정은 동생, 결국 오빠가…

    北 김정은 동생, 결국 오빠가…

    북한이 11일 제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당선자 687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명단 발표는 선거 종료 이틀만에 나온 것이다. 북한 중앙선거위원회는 이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3기 대의원 선거결과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보도를 내고 “전국적으로 선거자 명부에 등록된 전체 선거자의 99.97%가 선거에 참가해 해당 선거구에 등록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후보자에게 100% 찬성 투표했다”며 687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이번 선거에서는 김정은 체제의 실세로 뜨고 있는 장정남 인민무력부장과 김수길 군 총정치국 부국장, 조연준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마원춘 당 부부장 등이 새로 대의원이 됐다. 남편 장성택 처형에도 불구하고 김경희 당 비서가 대의원에 이름을 올렸다. 관심을 모았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은 제외됐다. 지재룡 주중 대사와 자성남 유엔 대사, 남북간 고위급 접촉에서 수석대표를 맡았던 원동연 당 통일전선부 부부장 등은 이번에 새로 대의원이 됐다. 문경덕 당비서와 로성실 전 조선민주여성동맹 위원장 등 장성택과 연루된 것으로 보이는 인물들은 모두 탈락했으며 현철해 전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 박재경 전 인민무력부 부부장, 김명국 전 작전국장 등 은퇴한 군 원로그룹도 대의원 명단에서 빠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설] ‘족벌 3기’ 북한, 주민인권부터 챙겨라

    북한이 그제 제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우리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겸 노동당 제1비서를 제111호 백두산 선거구의 대의원으로 선출했다. 북한 매체들은 “100% 찬성투표로 김정은 동지가 대의원에 높이 추대되셨다”고 호들갑이지만 ‘올백 선거’는 지나던 소도 웃음을 참지 못할 코미디에 다름 아니다. 어쨌든 2011년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치러진 첫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처음으로 대의원에 뽑힘으로써 북한은 김일성 주석 일가의 ‘족벌 3기’ 체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음을 만천하에 알렸다. 때마침 김 제1위원장의 세 살 터울 여동생인 김여정도 이번 선거 과정에서 27살의 어린 나이에 노동당 부부장급(우리의 차관급) 핵심 인사로 공식 등장했다. 김여정은 김 국방위원장의 여동생인 김경희 노동당 비서와 마찬가지로 김 제1위원장의 곁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관측된다. ‘김일성-김정일’, ‘김정일-김경희’에 이어 ‘김정은-김여정’이 이끄는 북한의 ‘족벌 3기’ 체제가 우려스러운 것은 단순히 남매의 어린 나이 때문만은 아니다. 김 주석도 30대 중반에 북한 권력을 거머쥐었고, 김 국방위원장은 32살부터 후계수업을 받았으며 김 비서 역시 30살에 노동당 부부장 반열에 올랐던 만큼 ‘소년 출세’가 가문의 이력이기도 하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김 제1위원장 지배하의 북한은 점점 더 핵과 미사일에 집착해 민생을 도외시하고, 국제적으로 더욱더 고립되고 있다는 점이다. 수많은 주민들이 배를 곯고 있는데도 손을 꼽을 정도로 이용객이 없는 마식령스키장 건설에 수억 달러를 쏟아붓고 희희낙락하는 등 합리적 판단력을 가진 지도자인지 의심스러운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가 하면 고모부 장성택을 거침없이 제거하고, 일반 주민들을 공개처형하는 등 ‘공포정치’로 주민들을 옥죄고 있다. 오죽하면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가 북한 정권의 잔혹 행위에 대해 “나치가 저지른 범죄들을 떠올리게 한다”며 경악했겠는가. 북한 헌법상 최고인민회의는 최고주권기관이자 최고입법기관이다. 실질적으로는 ‘거수기’에 불과하지만 명목상 주민의 대표기관으로서 막중한 권한을 행사한다. 김 제1위원장은 처음으로 주민 투표절차를 거친 대표가 됐다. 수백 명의 대의원 가운데 한 명이지만 그의 위상으로 보면 무슨 일이든 못할 바가 없다. 주민들이 그를 자신들의 대표로 선출한 이면에는 겉으로 드러내기 어려운 많은 기대와 희망이 담겨 있을 수도 있다. 김 제1위원장이 정녕 주민들의 대표라면 그들의 바람을 외면해선 안 된다. 무엇보다 주민들의 인권을 우선적으로 챙겨 지구촌 최악의 인권탄압국이라는 오명을 씻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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