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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삼시충을 기억하라!/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열린세상] 삼시충을 기억하라!/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어렸을 때 섣달 그믐날 밤이면 할머니가 아이들에게 당부하는 말이 있었다. 즉, “오늘 밤 잠자면 아침에 눈썹이 하얗게 된다”라는 말이다. 그 말대로 잠을 자지 않는 아이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아이는 버티다가 결국 잠을 자게 된다. 그런 아이한테는 할머니나 누나가 눈썹에 밀가루를 발라놓는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족들이 눈썹이 하얘졌다고 놀려댄다. 거울을 보니 정말 그렇게 된 것 같아 낙담했던 기억이 있다. 고려시대 이전부터 전해 내려온 이 습속(習俗)은 도교의 ‘사명신앙’에서 유래한 것이다. 도교에서는 ‘사람이 죄를 짓고 그 죄가 쌓이면 죽는다’는 전제 아래 조왕신(竈王神)과 삼시충(三尸蟲)이 죄를 해마다 천상에 보고해 인간이 죽음을 면치 못한다고 설명한다. 조왕신은 부뚜막 신, 곧 ‘부엌의 신’으로 집안에서 생기는 모든 일을 꿰뚫고 있고, 삼시충은 사람의 뱃속에 있는 기생충과 같은 존재인데 우리가 몰래 저지르는 소소한 잘못까지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존재는 삼시충이다. 전해오는 그림을 보면, 삼시충은 세 마리의 기생충인데 두 마리는 흉측한 괴물 모습이고 한 마리는 사람처럼 생겼다. 이놈들은 회충, 요충처럼 실물의 기생충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존재이다. 이놈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신들의 숙주인 인간이 빨리 죄를 많이 짓고 죽어 그 제삿밥을 얻어먹는 데에 있다. 그래서 이놈들은 인간이 가급적 죄를 많이 짓도록 뱃속에서 우리의 감정을 부추기고 충동질했다. 옛 사람들은 우리가 ‘욱’하고 성을 내거나 일을 저지를 경우 그것을 뱃속에 있는 삼시충의 소행으로 생각했다. 다시 말해 삼시충은 우리의 감정을 충동해 죄를 짓도록 하는 것이다. 조왕신과 삼시충은 경신일(庚申日)이나 섣달 그믐날에 하늘로 올라가 그동안 우리가 지은 죄를 고해바쳐 수명을 깎도록 한다. 특히 삼시충은 사람이 잠들 때 몸속에서 빠져나갈 수 있었다. 영악한 우리 인간은 바로 이 점을 알고 섣달 그믐날 밤에 잠을 자지 않았다. 그러면 삼시충이 천상에 올라갈 수 없고 죄를 고해바칠 수 없게 되어 수명이 깎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삼시충은 인간의 잘못이 주로 충동에 의해 저질러진다고 파악한 데서 생겨난 존재이다. 옛 사람들은 일찍부터 충동이 인간행위에 미치는 중요성을 실감하고 이러한 신화적 스토리텔링을 통해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고 매사에 조심하고자 했던 것이다. 아이들에게 잠을 자지 않도록 하는 습속에도 욕망을 억제하고 인내하는 힘을 길러주기 위한 의도가 있었으리라. 오늘도 우리는 집을 나서자마자 각종 충동에 휩싸인다. 특히 한국에서는 운전대를 잡으면 제 아무리 성인군자라도 어느 순간 제어할 수 없는 충동에 사로잡힌 자신을 발견하기 십상이다. 한국에서의 운전은 단순한 교통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와 인격을 건 자존심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 속에서 나오는 행위이다. 많은 사람이 매번 순간을 참지 못하고 본의 아닌 거친 언동을 한 후 자괴감에 빠지게 되는 것은 그놈의 삼시충, 아니 충동 때문이다. 정말 ‘모래야, 나는 얼마나 작으냐?’ 하는 김수영의 시구가 이렇게 실감나게 다가올 수가 없다. 살인과 강도, 강간 등 강력범죄의 직접적 동기에 관한 통계는 대부분의 경우 순간적이고 우발적인 충동이 범행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울러 최근 층간 소음, 사소한 언쟁 등이 살인으로 번진 일련의 사건은 우리의 심성이 그 어느 때보다 충동에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물론 이러한 상태는 단순히 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심층적으로는 장기간의 경제 불안과 양극화 등 바람직하지 못한 사회 상태로부터 기인한 바 크겠지만, 충동 조절이 이제 개인의 문제를 떠나 사회적 문제가 된 것은 분명하다. 출판계의 힐링(치유)서적 붐은 우리 마음의 취약한 현실을 방증하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시점에서 충동을 삼시충이라는 뱃속의 기생충으로 상징화하고 구성진 스토리를 만들어 그놈을 제어하는 기술을 아이들에게 은연중 가르쳤던 선인들의 지혜가 새롭게 음미된다. 상징화는 신화시대부터 충동을 다스려온 가장 검증된 방법이다.
  • “My soul is dark” 김수영 시인 고백에 반해서 그 지독한 주사 다 견뎠지

    “My soul is dark” 김수영 시인 고백에 반해서 그 지독한 주사 다 견뎠지

    “동공은 빛을 잃었고 귀에선 피가 흘렀습니다. 그렁그렁 가래 끓는 소리만이 숨이 붙어 있음을 알려줬습니다.” 1968년 6월 16일, 새벽 5시쯤. 47년의 짧은 생애를 마친 김수영(왼쪽) 시인은 조각처럼 희고 단정한 얼굴로 ‘무’(無)의 세계에 들었다. 선불로 받은 번역료로 친구들과 술판을 벌이고 귀가하던 시인은 서울 마포구 구수동의 인적이 드문 길에서 인도로 뛰어든 버스에 받혀 풀잎처럼 쓰러졌다. 20년 가까이 동고동락했던 김현경(오른쪽·86) 여사는 김수영 시인의 마지막 모습을 이렇게 떠올렸다. 그는 지난 두 달간 구술로 김수영의 삶을 풀어놨다. 원고는 조만간 자전적 에세이 ‘김수영의 연인’(실천문학사 펴냄)으로 빛을 보게 된다. 에세이에는 생전 김수영이 탈고했던 시구 속에 숨은 창작 배경과 일화가 오롯이 담겨 있다. 김수영은 평소 집에서는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고, 말수도 별로 없었다. 그런 그가 술만 취하면 무궁무진한 애교로 웃음을 자아냈다. 장기는 무성영화의 변사 역할, 레퍼토리는 ‘수일과 순애’였다. 하지만 비위가 거슬려 술을 마신 날이면 주사가 심했다. 이혼 얘기가 입에 오르내리고 열흘간 별거까지 했다. ‘당신이 내린 결단이 이렇게 좋군’으로 시작하는 김수영의 시 ‘이혼 취소’는 이런 부부의 삶을 말해 준다. 몸도 돌보지 않고 폭주를 하는 날이면 시인은 자유당과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 욕을 퍼붓곤 했다. 4·19 직후 부정 선거에 대한 칼럼 청탁을 받고 동아일보에 원고를 보냈는데, 지면에는 김수영 이름 석자만 있고 휑하니 비어 있었다. 김수영은 “멋있잖아, 이런 게 저항이지”라며 오히려 신이 나 했다고 한다. 김현경은 진명여고 2학년이던 1942년 5월 김수영을 만났다. 만남을 주선한 이는 이종구(1990년 사망)로, 광산을 경영하던 김 여사 부친의 첩의 남동생이었다. 이종구와 김수영은 선린상고 2년 선후배로 일본 도쿄에서 함께 유학한 사이였다. 김 여사는 6살 차이인 김 시인을 ‘아저씨’라 부르며 따랐고, 이후 일본에 유학 중이던 시인과 편지로 사랑을 나눴다. 일제 패망 직전인 1944년 귀국한 김수영은 ‘마이 솔 이즈 다크’란 한마디 영어로 사랑을 고백한다. 1949년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 신접살림을 차렸지만 이번엔 6·25전쟁이 둘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김 여사는 부산 피란살이 기간 동안 이종구와 동거한 뒤 김수영과 재결합했다. 이렇게 정착한 곳이 서울 성북동집. 김 여사는 “원래 거부 백낙승의 별장이었는데 내가 그곳에 세를 얻었다”면서 “정원 한쪽에 비가 오면 폭포가 되는 절벽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시 ‘폭포’를 썼다”고 회고했다. 1968년 발표한 절명시 ‘풀’은 그해 5월 29일 바람이 몹시 불던 날 무성한 풀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나부끼는 모습을 보고 지었다. 김수영의 삶 속엔 현대사의 비극이 담겨 있다. 1950년 8월 인민군에 끌려가 의용군으로 징집된 김수영은 총살 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도망쳐 거제 포로수용소에 수용된다. 8남매 중 가장 총명했던 넷째 수경은 의용군에 자원 입대했고, 셋째 수강은 우익단체인 대한청년단 단장을 하다 납북됐다. 여동생 김수연씨 내외도 1969년 KAL기 납북 때 북쪽으로 끌려갔다. 김 여사는 현재 경기 용인시의 한 아파트에 살며 김수영의 육필 시를 정리하고 있다. 그는 “살아생전 ‘김수영문학관’을 짓는 게 꿈”이라고 전했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인사]

    ■대법원 ◇가정법원장△대전 손왕석△대구 김태천△광주 강신중◇지법 부장판사△서울중앙지법 조용현 성수제 엄상필 한숙희 김수일 김재호 윤종구 전주혜 조휴옥 홍이표 김용관 박평균 이범균 이성구 강태훈 김종호 김태병 배호근 서경환 이재희 김우수 박이규 송경근 정창근 최규현 장준현 지영난 박홍래△서울가정법원 노정희(수석) 김경호 송인우△서울행정법원 윤인성 이승택 이승한 반정우 김경란△서울동부지법 김현룡 서창원 정선재 최승욱 양사연 김종문 이성복 김지영△서울남부지법 장재윤(수석) 오기두 임병렬 장진훈 박종택 김종원 김양규 김진형 박정수△서울북부지법 서태환(수석) 강성국 최복규 김병수 오선희△서울서부지법 김성곤 김정학 성지호 염기창 오성우 박재현△의정부지법 박상구 이정호 김춘호 이광영 한정훈 박남천 김병룡△고양지원 이규홍 최석문 박주현△인천지법 김동석 남성민 심담 백웅철 이내주 강병훈 임태혁 이대연 이재욱 문혜정 황기선 문유석 김도현△부천지원 정준영(지원장) 이환승 김지철 문수생△수원지법 김성수 전지원 진상범 장순욱 김진동 설민수 오상용 최기상 송인권△성남지원 손지호(지원장) 김용철△여주지원장 김형훈△평택지원장 이인형△안산지원 이상현△춘천지법 임성철(수석) 강성수 오덕식△강릉지원 이종우(지원장) 김종우 이성호△속초지원장 이태우△대전지법 최성진 이현우 신종오 조영범 김병철 박태안 양철한 권희 김진철 김용덕 이태영△대전지법·대전가정법원 서산지원 성보기(지원장) 권덕진△대전지법·대전가정법원 천안지원 윤성묵△청주지법 김도형 김재형 이관용 이승형 신혁재 조미연△영동지원장 금덕희△대구지법 손봉기 김성수 김형한 이영숙 백정현 서경희 김각연 이병삼 김명섭 최한순 박형순△서부지원 김정도(지원장) 남근욱 손현찬 손삼락△대구가정법원 임재훈△대구지법·대구가정법원 안동지원장 이상균△대구지법·대구가정법원 김천지원장 박재형△대구지법·대구가정법원 의성지원장 한재봉△부산지법 강석규 신종열 성금석 노갑식 이일주 박민수 백승엽 이언학 이상무 최주영 이현우 이민수 김형태 차경환△동부지원 최호식 박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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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학동 간송 선생의 생가 일대 공원으로

    방학동 간송 선생의 생가 일대 공원으로

    간송 전형필 선생은 일제 강점기에 사재를 쏟아부어 민족문화유산을 온갖 정성으로 관리하고 지켜냈다. 그가 평생에 걸쳐 지켜낸 훈민정음 해례본 원본, 추사 김정희 글씨, 신윤복 화첩 등은 지금도 간송미술관에 남아 누구나 함께 향유할 수 있다. 그의 자취가 깃든 생가와 묘역이 공원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도봉구는 방학동 간송 가옥이 최근 문화재로 등록된 것을 계기로 간송 생가를 새롭게 보수 정비하고 일대를 공원으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6일 밝혔다. 100년 이상된 한옥 건물과 묘역이 함께 자리하고 있어 그 문화적 가치와 의미가 남다르다. 이 밖에도 구에서 오랫동안 공들인 숨어있는 문화유산 찾기 노력이 최근 속속 빛을 발하고 있다. 서울시 지정보호수인 ‘방학동 은행나무’ 역시 문화재 지정을 앞두고 있다. 조선 전기에 식재된 것으로 추정되는 방학동 은행나무는 연산군과 그의 비 신씨의 합장묘 아래에 위치해 지역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생장상태가 양호하고 수형 또한 아름다워 문화재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서울에 남아있는 유일한 서원인 도봉서원 복원사업도 착공을 앞두고 있다. 또한 함석헌 기념관 건립사업이 서울시 주민참여예산으로 본격 추진되는가 하면, 김수영 문학관은 금년 개관을 목표로 한창 진행중이다. 이 밖에도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가 숨어있는 연산군묘와 은행나무길을 비롯해 무수골 왕족묘역길, 도봉서원과 바위글씨 길, 도봉 현대사 인물길 등 ‘스토리가 있는 도봉 역사문화길’ 7곳이 개발돼 구의 문화적 정체성을 높이는 데도 한몫하고 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인사]

    ■국회사무처 ◇차관보급 <수석전문위원>△국회운영위원회 진정구△법제사법위원회 임중호△기획재정위원회 류환민△행정안전위원회 손충덕△교육과학기술위원회 임진대△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이인용△농림수산식품위원회 문강주△지식경제위원회 지성배△환경노동위원회 한공식△국토해양위원회 허태수△정보위원회 허영호△여성가족위원회 이용원△예산결산특별위원회 김춘순◇이사관△기획조정실장 조용복△법제〃 김병선 ■기획재정부 △종합정책과장 김정관△경제분석〃 이형일 ■지식경제부 △행정관리담당관 이용필△전자산업과장 서기웅△엔지니어링플랜트팀장 서정란△미주협력과장 윤성혁△동부광산보안사무소장 이판대 ■충북도 ◇부이사관 <승진>△바이오산업국장 박인용△혁신도시관리본부장 송인헌△교육 양권석<전보>△균형건설국장 윤재길△교육 김광중◇서기관 <승진>△정보화담당관 금한주△식품의약품안전과장 박기익△미래산업〃 이두표△의회사무처 산업경제전문위원 나기성△건축디자인과장 고규식△도로관리사업소장 박영규△농산사업〃 김주수△충청권광역발전위원회 파견 구정서△교육 신선기<전보>△예산담당관 정사환△비서실장 김용국△교육 손자용 피의섭 김태왕△자치연수원 도민연수과장 김상선[부군수]△영동군 송재구△괴산군 이차영△음성군 강성택[과장]△생활경제 박승영△국제통상 성기소△문화예술 장화진△단지개발 윤신부<중앙부처 교류>△외교통상부 문석구△행정안전부 신병대 ■제주도 ◇이사관△특별법제도개선추진단장 이인섭◇지방이사관△기획관리실장 공영민△도의회 사무처장 강관보◇지방부이사관△국제자유도시본부장 강승화△도시디자인〃 박용현△농축산식품국장 고복수△세계환경수도추진본부장 오정숙△수출진흥〃 한동주△문화관광스포츠국장 이명도△신공항건설추진기획단장 강성후△민생시책추진〃 정태근△서귀포시 부시장 양병식△제주컨벤션뷰로 오익철△지방행정연수원 교육 오승익◇지방서기관·지방기술서기관△자치행정국장 변태엽△정책기획관 이행수△환경수도정책관 강승부△제주관광공사 양경호△문화예술재단 이규봉△공보관 오태휴△축산진흥원장 오운용△제주컨벤션뷰로 김영일△서귀포의료원 강동호△도의회 사무처 정미숙<직무대리>△해양수산국장 박태희△지식경제〃 김진석△인재개발원장 고한철△수자원본부장 문원일<단장>△민군복합형관광미항추진 김용구△청렴감찰 양창호△민생시책추진 김정학△세계자연유산관리 김성훈<감사위원회>△사무국장 직무대리 강문실△감사과장 강명삼<과장>△총무 문영방△자치행정 유종성△특별자치교육지원 양기철△문화정책 문순영△스포츠산업 강왕진△복지청소년 차준호△여성가족정책 오순금△도시계획 양희영△건축지적 강창석△건설 송두식△교통항공 문경진△미래전략산업 강시철△기업지원 홍봉기△스마트그리드 김홍두△정보정책 양시연△환경관리 고경윤△친환경농정 김충의△수산정책 김창선△해양개발 강태석<인재개발원>△교육운영과장 부광진△평생교육〃 홍성익<농업기술원>△총무과장 이원순△원예연구〃 고태신△감귤육종센터소장 허태현△기술지원조정과장 현원화△제주농업기술센터소장 이중석△동부농업기술센터〃 손명수△서부농업기술센터〃 문영민<수자원본부>△상수도관리부장 윤엄석△하수도관리〃 양성부<소장>△한라산연구 양영환△한라산국립공원관리사무 진기옥△4·3사업 김영철△동물위생시험 허창현△도로관리사업 김민하△돌문화공원관리 현병휴<교육>△평생교육진흥원 고영실△지방행정연수원 홍성택 현공호 김은배△국방대 고창덕△세종연구소 김익수△경찰대 김우길<파견>△관광협회 김성권△외교통상부 이상헌△세계자연보전연맹 김양보<서귀포시>△자치행정국장 양동곤△서귀포보건소장 고태구 ■한국식품연구원 △산업지원연구본부장 신동빈◇연구단장△대사기능 하태열△기능소재 박동준△기능평가 손동화△저장유통 정문철△안전시스템 전향숙◇센터장△식품분석 하재호△우수식품인증 김명호△중소기업기술지원 양승용 ■국회일보 △편집부 국장 김태혁△〃 부국장 이석호△정경부장 전수영△특집부장 유원상 ■KBS미디어 △대표이사 전용길△콘텐츠사업본부장 고영탁 ■한화투자증권 ◇선임△프로덕트본부장 조병주 ■KBP펀드평가 ◇승진 <상무>△펀드솔루션본부 윤필상<이사>△펀드평가본부 김영훈△기관컨설팅본부 엄익현 ■한국애보트 △대표이사(진단의학사업부사장 겸임) 정유석 ■동양파이낸셜 ◇임원 승진△전무 김성대△이사대우 양영모 ■동양 ◇임원 승진△상무 백의현 이석원△상무보 김삼열△이사대우 양광철 라정석 원영조 김병효 김용남 ■동양시멘트 ◇임원 승진△상무보 최종구△이사대우 손경욱 남용한 ■티와이머니대부 ◇임원 승진△상무보 김남승 ■동양네트웍스 ◇임원 승진△상무보 나태준 ■동양매직서비스 ◇임원 승진△이사대우 송종환 ■효성그룹 ◇승진 <부사장>△산업자재PG 울산공장 총괄공장장 조춘<전무>△산업자재PG 타이어보강재PU 조용수△화학PG 용연공장 총괄공장장 조도선△효성굿스프링스PU장 임우섭△건설PG 김동우<상무>△섬유PG 나이론폴리에스터원사PU 김형생△섬유PG 나이론폴리에스터원사PU 김영호△산업자재PU 타이어보강재PU 오덕호△화학PG TPA PU 김경택△화학PG 조성민△중공업PG 전력PU 성병조△중공업PG 전력PU 조문기△중공업PG 기전PU 김순탁△노틸러스효성PU 이병훈△전략본부 김경환 이호준 여예근 이종복 김태기△비서실 김수영<상무보>△섬유PG 나이론폴리에스터원사PU 박석화△산업자재PG 테크니컬 얀 PU 문현곤△화학PG 패키징PU 이경섭△화학PG 옵티컬 필름 PU 김성균△중공업PG 전력PU 유호재△중공업PG 전력PU 이근호△중공업PG 전력PU 배용배△효성굿스프링스PU 김현식△효성에바라엔지니어링PU 박태진△노틸러스효성PU 남궁준△효성캐피탈PU 이창엽△전략본부 정영식 정홍준△전략본부 싱가포르법인장 김병욱△법무팀장 김민식△미디어홍보팀장 이정원△비서실 장성옥△진흥기업 김성일
  • [명사가 걸어온 길] 1.바람의 시인, 시대를 말하다(상) 고은

    [명사가 걸어온 길] 1.바람의 시인, 시대를 말하다(상) 고은

    “프랑코가 곧 죽을 모양이다. 사르트르가 그자를 ‘라틴의 돼지’라고 부르고 그놈이 어서 죽기만 기다리노라고 말한 것이 통쾌하다. 거리의 사람들. 독재를 견디어내는 이 인내의 일상 체념과 방관의 일상이야말로 독재의 온상이다. 의병의 역사, 봉기의 역사가 있었으나 그것의 분출 자체가 타자 의존적인 경우도 적지 않다. 저항보다 순응과 피동의 역사가 더 길다. 혁명, 영구혁명은 관념인가. 창조는 어떤 경우도 혁명적이지 않으면 창조가 아니다.” 1975년 11월 15일 고은(당시 42세)은 청소년기 이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써온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독재를 견디어내는 이 인내의 일상 체념과 방관의 일상이야말로 독재의 온상이다’는 대목에서는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에 맞서 1974년 11월 18일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대표로서 ‘문학인 101선언’을 주도했던 침묵을 깨야 한다는 결단이 느껴진다. ‘창조는 어떤 경우도 혁명적이지 않으면 창조가 아니다’에는 문학이 현실과 동떨어지면 안 된다는 철학이 강하게 배어 있다. 함박눈이 쏟아진 지난 연말 경기도 안성 자택에서 만난 고은은 책으로 벽을 쌓아 지은 고분 같은 서재에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한쪽 창으로 햇빛이 쏟아져 서재는 어두운 듯하면서 환했다. 미닫이문을 터서 만든 10평 안팎의 장방형 서재는 시인에게 어머니 자궁 같은 안온함을 준다고 했다. 짙은 감색 셔츠에 같은 색 실크 머플러를 목에 두른 고은은 고요했다. 전설처럼 떠돌던 술에 전 낭만의 시인이나, 열정의 시인, 독재에 저항하는 시인의 모습은 사라지고, 팔순의 성찰하는 고은이 보였다. 어쩌면 이것이 본래의 고은일지도 모르겠다. 전쟁은 고흐를 열망한 내 소년기를 부쉈다 ‘한국의 고흐’가 되고 싶었던 17살 예술지상주의자였던 소년의 운명을 맨처음 뒤틀어 놓은 것은 한국전쟁이었다. 외삼촌 집에서 본 고흐의 화보집을 보며 꿈을 키우던 고은에게 한국전쟁은 감당할 수 없는 참극이었다. “좌익이 점령했을 때는 우익이 죽었고, 우익이 돌아오자 좌익이 죽었죠. 내 고향에서만도 이 죽음의 재앙이 세 번 되풀이됐다. 군인들이 와 시체를 파내서 옮기라고 했는데, 그 작업을 하고 나면 보름 동안 씻고 또 씻어도 시체 냄새가 몸에서 없어지지 않았다. 그러니 인간 하면 서로 죽이는 행위, 고향 하면 핏줄끼리도 이데올로기 때문에 싸우는 그런 것만 연상됐다. 죽음에 대해 아무 준비도 없던 10대 어린애가 그것을 만난 것이다. 소년 자체가 부서져버렸다.” 고아의 의식이 투철하다는 고은은 한국전쟁으로 조상과 끈이 끊겼다고 생각했다. 고향도 무섭고, 핏줄도 무서웠다. 극한 상황에서 인간이 얼마나 피에 주려 있는가를 본 소년의 정신은 온전해지지 못했다. 정신착란으로 집을 뛰쳐나갔고, 자살도 여러 차례 시도했다. 전쟁통에 군산고를 중퇴했는데, 전쟁 중에 그는 모교인 군산북중학교 국어교사를 맡기도 했다. 하지만 견딜 수 없는 혐오들이 밀려오던 터에 1952년 출가를 했다. 1957년에 전등사 주지를 지냈고, 1958년 ‘불교신문’을 창간해 주필을 맡았던 그는 1962년 환속했다. 등단은 1958년, 26살 때다. 시인협회 조지훈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폐결핵’이 실렸다. 현대시인이 100명 정도에 불과하던 시절이라 그는 현대문학 2세대 정도되는데도 1세대로 평가받는다고 했다. 김동리, 오상순, 김수영 등과 어울리며 살았다. 유미주의자였던 그의 예술관과 삶의 방식을 전복시킨 것은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의 분신자살이었다. 잊어버린 과거가 된 전태일의 죽음이 술에 절어 나른했던 시인의 삶을 바꿔 놓았다. “지금은 서울 무교동에 현란한 고층건물들이 서 있는데, 당시에는 바라크였다. 낮은 건물뿐이었다. 통행금지 시절이었는데, 술을 마시고 돌아갈 수가 없으니 주모에게 사정하고 아첨해서 술집 탁자 같은 데서 자곤 했다. 그날도 아마 그런 날이었다. 먼동이 틀 무렵인데 신문 쪼가리들이 바람에 굴러다니더라. 묵은 신문이었는데, 사회면과 사설면에 ‘노동자 분신자살!’이라고 써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죽음이 워낙 육친화되어 있다 보니 죽음이라는 말에 눈이 번쩍 떠지더라. 어, 이것 봐라! 일종의 죽음의 비교라고 할까. 그런데 이런 죽음이 있었던 것이다. 풀빵 10개로 점심을 때우고,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우이동 판잣집까지 버스비가 없어 한밤중까지 걸어가고, 그런 인간의 삶이 나오더라. 가슴이 서늘해졌다. 이게 뭔가. 현실을 깨달았다. 거대한 착취와 비인간화, 허리도 제대로 펼 수 없는 다락방 지옥의 밀실 같은 곳에서 소녀들이 가혹한 노동을 하고, 폐결핵으로 피를 토하고.” 민주화 전위? 뒤늦게, 엉거주춤 서 있었다 현실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던 그를 두고 사람들이 ‘초개’라고 했는데, 그는 밀물처럼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에 각성이 됐다.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1970년대 봉제공장의 노동현실을 설명하던 그는 다시 평온한 얼굴로 돌아와 “사람들은 내가 민주화 운동의 전위에 섰다고 하는데, 사실 뒤늦게 뒤꽁댕이를 따라다니면서 한 것이다. 뒤늦게 엉거주춤하게 거기에 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때 전태일의 죽음에 나만 충격받은 것이 아니다. 서울대 법대생들도 다 깨쳤다. 나중에 감옥에서 만난 조영래, 장기표, 걔네들도 다 깨쳤더라. 나는 지식인이랄 것도 없고 예술인이었는데 전태일의 죽음의 폭풍이 나까지 몰아세웠다. 그래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 작가들도 뭔가 해야겠다. 그때 자기 몸을 던지는 행복이 생겼다.” 동료 작가들은 물론 선후배 작가들까지 뭉치도록 앞장서서 나갔다. ‘나를 빼고 몰래 하면 안 된다’는 작가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가 설득하면 다소 보수적인 현대문학 1세대 선배들도 동참했단다.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회 대표간사가 된 배경이다. 당시 자유실천문인협회의 주장은 5가지였다. 구속자를 석방하라,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라, 자유민주주의 정신의 절차에 따른 새로운 헌법을 마련하라 등이었다. 당시 세종로에서 시위하고 그와 조해일, 윤흥길, 박태순 등 7명이 연행됐다. 고은의 본격적인 빵살이(감옥살이)는 그로부터 3년이 지난 뒤부터 시작됐다. 1977년, 1979년이 자유실천문입협회 건이었다. 1980년에는 김대중내란음모죄에 연루됐다. 죽음이 목젖까지 찾아왔던 때다. 1988년 정부가 월북·납북작가 작품들을 해금하자, 고은은 더 나아가 한국작가회의와 함께 북한의 작가동맹 소속 작가들과 ‘남북작가회담’을 추진한다. 이것이 문제가 돼 1989년 다시 투옥됐다. 국가가 달아준 ’별’이 4개다. 1980년대 중반 민주화운동이 본격화될 때 그는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1987년)를 맡았다. 국가와의 갈등이 완화된 건 문민정부인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였다. 그의 나이 60세 때다. 1993년 처음으로 여권이 나왔다. 그전까지는 임시여권만 발급됐다. 시인 고은이 ‘세계의 시인 고은’이 된 시점도 그때부터다. 1970년부터 1993년까지 23년간 그는 1960~70년대 산업화 과정의 각종 폐해를 해소하고,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거리의 시인’으로 살았다. 한국전쟁으로 상처받은 그는 이제 통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나에게는 독특한 통일 이론이 있다. 다연방 통일제를 주장한다. 북한의 언어는 문화어(표준어)-평양중심의 언어로 통합된다. 남한은 표준어는 서울 종로에 사는 중산층의 언어다. 마포에서 쓰는 언어도 아니다. 그런데 표준이나 통합은 말살이다. 시인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사투리, 지역어는 다 신성한데 다 말살되고 있다. 이것은 나쁜 단일화다. 그래서 나는 사투리와 지역어가 존중될 수 있도록 제주도, 경상도, 전라도, 함경도 등 20여개 연방으로 만들어서, 수상최고회의를 국가최고의사결정기구로 하는 남북한 통일된 국가를 꿈꾼다. 스위스, 말레이시아, 미합중국, 넓게 보면 중국도 다 연방 아니냐.” 그는 100년 안에 아시아에도 유럽연합(EU)과 같은 국가연합이 탄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구상이 한낱 백일몽에 그치지는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 올해로 80세인 고은의 삶은 파란만장하다는 표현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태어나 식민지와 1945년 해방과 분단, 1948년 대한민국 건국, 1950년 한국전쟁, 1960년 4·19민주화혁명, 1961년 5·16군사쿠데타, 1979년 박정희 정권의 몰락, 1980년 서울의 봄과 5·18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10민주화운동, 1997년 외환위기와 극복까지. 롤러코스터보다 더 다이내믹한 인생이다. 침묵할 수 없던 시대, 그것은 선물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시대는 조용할 수 없는 시대였지만, 남들보다 더 격렬하게 부딪치며 살아온 측면이 있다. 시대가 나에게 준 것도 있고, 내가 시대에 준 것도 있다. 이것이 맞물려서 심상치 않은, 비일상적인 삶의 연대기를 갖게 됐다”며 허허롭게 웃은 뒤 “사람들은 나를 ‘풍운아’라고도 부르지만, 돌아보면 시대가 나에게 준 선물과 같은 것이 많다”고 회고했다. 마지막으로 고은은 역사와 사회에 대한 고언을 잊지 않았다. “우리는 역사의 유산을 정리해본 적이 없다. 민족끼리 싸우는 삼국시대, 후삼국시대를 고스란히 복제하고 있다. 그런 바보 같은 땅이 어디 있나. 치유되지 않은 삶을 자손들에게 넘겨줘야 할 판이다. 피의 흔적을 닦아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물론 당대의 정당성이 있겠지만, 이대로 가면 역사라고 할 수도 없다. 길들여져 있는 체제에 의해 쉽게 변경될 수 없는 관행, 제도가 있으니 현안을 다루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당대에 손가락질당하고, 역적이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미래에 대한 불온한 꿈을 꾸고 확산해야 한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씨줄날줄] 시인의 정치/임태순 논설위원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이상국가’에서 시인은 추방되어야 한다고 했다. 문학(시)이 사람의 이성을 북돋우지 않고 감정을 조장해 도덕적으로 유해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반면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문학은 사람의 감정을 정화하고 조절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며 오히려 문학을 옹호했다. 시를 포함한 문학, 음악 등 예술은 시대상황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 시나 소설이나 모두 현실의 부조리, 모순을 풍자하고 비판하면서 탄생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고전 사서삼경의 하나인 시경(詩經) 에 ‘초상지풍(草尙之風) 초필언(草必偃) 수지풍중(誰之風中) 초부립(草立)’이란 구절이 나온다.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는 ‘강의’라는 책에서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는다. 누가 알랴, 바람 속에서도 다시 풀이 일어선다는 것을”이라고 번역한 뒤 위정자들에게 짓밟히면서도 꿋꿋이 일어서는 민초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다시 일어서는 풀의 착상은 1960년대 저항시인 김수영의 시로 다시 태어난다. 그는 ‘풀’이란 시에서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선다.”고 해 암울함 속에서도 생명력을 잃지 않는 민중을 노래했다. 일제시대 이육사나 이상화도 대표적인 참여시인이자 저항시인이다. 이육사는 백마타고 오는 초인(광야)을 갈망하며, 이상화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고 절규하며 나라 잃은 현실에 울분을 토로했다. 시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안도현의 행보가 입길에 오르고 있다. 그는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는 이타적 삶의 자세를 간결하게 표현한 시로 유명하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시민캠프선거대책위원장인 그가 엊그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여성후보론에 대해 “공주가 여성을 대표하는 일은 봉건사회에서나 가능하다.” “남편 수발, 자식 수발하면서 살아 오신 우리 어머니 같은 분이 여성 대통령이 되겠다면 모르겠지만…”이라며 날 선 비판을 가했다. 지난 달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 힘겨루기를 할 때만 해도 안 후보는 소멸하는 태풍이라며 사뭇 시인다운 비유를 구사했지만 정치판에 휘말리면서 입이 거칠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치행보가 거듭될수록 그의 시 또한 다시 보게 된다. 영웅은 난세에 난다지만 시인은 민주화를 넘어 보수, 진보로 진화한 시대에 정치하기가 더욱 어렵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김수영 방학동에 ‘풀’처럼 눕다

    김수영 방학동에 ‘풀’처럼 눕다

    한국 현대문학의 거장 김수영 시인을 기리는 문학관과 기념 거리가 서울 도봉구에 마련된다. 13일 도봉구에 따르면 지역출신으로 강렬한 현실비판과 저항정신에 기초한 선각자적 문학세계를 보여준 김수영 시인의 문학관을 방학3동에 건립하고 있다. 이는 지역 문화 정체성을 회복하는 차원에서 추진된 것으로 내년 하반기까지 공사를 완료할 계획이다. 도봉산에는 김 시인의 유골이 안장돼 있고 시비가 세워져 있을 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살았던 본가 자리도 있다. 이에 맞춰 구는 문학관에서 원당공원에 이르는 거리를 ‘김수영 거리’로 꾸민다. 시인의 동상과 시비 등을 설치해 누구나 시인 김수영의 문학세계를 접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시와 풍물화 등을 담은 예술작품을 설치하고 담장벽화를 조성해 걷고 싶은 문화의 거리가 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특히 이 거리는 지난해 개통된 북한산둘레길 왕실묘역길 구간과의 연계성이 뛰어나다. 국가사적 문화재인 연산군묘와 정의공주묘, 심한 가뭄에도 마른 적이 없다는 원당샘과 원당공원, 서울시 지정보호수 1호인 830년 된 방학동 은행나무 등이 하나의 동선을 형성하게 된다. 이동진 구청장은 “시인 김수영은 도봉구를 대표하는 역사적 인물 중 한 분”이라면서 “김수영 문학관과 거리가 조성되면 부족한 지역 문화 인프라 확충과 함께 지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섬진강 시인’과 나누는 자연·詩·삶

    ‘가을은 어떤 의미일까.’ 서울 광진구 주민들이 시와 함께 계절과 삶의 의미를 반추해 볼 시간을 갖는다. 15일 구청 대강당에서 열리는 ‘천원의 행복, 2012 광나루 아카데미’에 참여하는 것만으로 기회가 된다. 아카데미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평생학습 강좌로 이번이 여덟번째. 섬진강 시인으로 유명한 김용택 시인이 ‘자연과 나의 시(詩), 그리고 더불어 사는 삶’을 주제로 강연한다. 김 시인은 자연과 시, 더불어 사는 삶에 관한 근원적 물음을 특유의 감성으로 풀어낼 예정이다. 강의에 참여한 주민은 1000원 이상의 기부금을 내면 된다. 기부금은 저소득층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지원사업에 사용된다. 한편 김용택 시인은 김소월과 백석을 잇는 시인으로 평가되며, 제6회 김수영 문학상, 제12회 소월시문학상, 제7회 윤동주 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 ‘섬진강’, ‘맑은 날’ ‘사람들은 왜 모를까’ 등이 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사색의 도서관’ 교도소… 책에서 새 길 찾는 수감자들

    ‘사색의 도서관’ 교도소… 책에서 새 길 찾는 수감자들

    소문난 독서광이었던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중 바쁜 일정 탓에 책 읽을 시간이 없자 “감옥에 한 번 더 가야겠다.”는 농담을 하곤 했다. 재야 정치인 시절, 사형선고를 받는 등 두 차례나 투옥돼 수감생활을 하면서 수백권의 책을 두루 섭렵했다. 국내 1세대 환경운동가로 꼽히는 최열 환경재단 대표가 ‘미래의 밥벌이’를 찾은 곳도 교도소였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그는 1975년 명동성당사건으로 투옥된 뒤 일본어를 독학하고 환경서적을 250권이나 읽은 뒤 비로소 공해문제에 눈을 떴다. 소설가 장정일은 폭력사건으로 열아홉 살에 소년원에서 1년 6개월을 지내며 독서에 눈을 떠 출소 후 25세에 최연소로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교도소를 새로운 범행 수법을 익히는 ‘범죄 대학’이 아니라 ‘사색의 도서관’으로 선용하는 것은 이들뿐이 아니다. 지금도 많은 수감자들이 책 속에서 새 길을 찾고 있다. 교정의 날(28일)을 맞아 수감자들의 독서 실태를 살펴봤다. “교도소에는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만 모여 있다는데…. 우리 교육생들은 그렇지 않다.” 강원도 강릉교도소에서 ‘독서치료교육’을 진행하는 정연수 강릉원주대 평생교육원 교수는 “수감자들은 삶에 대한 성찰이 빠르고 깊다.”며 이렇게 말했다. 2년째 독서치료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정 교수는 해마다 두 달간 8회씩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7~8세 자녀를 둔 수감자 10명을 모아 ‘아버지 독서교실’로 운영했다. 치매에 걸린 엄마를 찾는 과정에서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아가는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함께 읽고, 애틋한 모정을 그린 동화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를 낭독했다. 동화 구연을 하면서 흐느끼는 한 수감자의 음성은 고스란히 CD에 담겨 가족들에게 전해졌다. 교도소 관계자는 “면회 온 가족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수감자들도 뿌듯해한다.”고 전했다. 최근 들어 재범에 의한 강력사건이 잇따르면서 교도소 교화정책 무용론까지 대두되고 있다. 한 베테랑 프로파일러는 “재범자를 보면 교도소에서 교화는커녕 악만 키워 오더라.”라고 말했다. 형식적인 교화는 교정정책에 대한 불신만 쌓을 뿐이다. 독서를 통해 수감자들의 심성을 바꾸려는 노력이 주목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독서는 사색으로 이어져 교정 효과가 좋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독서를 통한 교정프로그램은 일선 교도소에서 계속 확산되고 있다. 강릉교도소처럼 독서치유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 전국 50개 교도소·구치소 중 44곳이나 된다. 일부 신간은 교도소가 구입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관련 단체가 기증한 책들이다. 더러는 출소자가 책을 두고 가기도 한다. 전국 44개 교도소·구치소 도서관에는 이렇게 쌓인 장서가 35만 2000권에 이른다. 특히 독서는 초범 재소자들의 교화에 효과적이다. 초범 중에도 살인 등 중죄를 저지른 수감자들도 있지만 우발적 범행을 저지른 이들이 많다. 처음에는 피해자나 그 가족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다가도 독서를 시작하면서 다른 수감자들과 진지하게 대화하거나 소설 습작까지 쓰는 등 자발적으로 과오를 뉘우치는 사례가 흔하다. 이런 수감자들의 고민과 관심사는 인기 대출서적의 목록에서 잘 드러난다. 성인들이 수감된 강릉교도소의 경우 최근 들어 ▲죽기 전에 답해야 할 101가지 질문 ▲엄마를 부탁해 ▲나에게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등을 가장 선호했다. 삶을 돌아보거나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책들이다. 소년범들이 생활하는 김천소년교도소의 인기 도서는 이와는 또 다르다. 배움에 대한 갈증 때문인지 교육방송(EBS)이 간행한 교양도서 ‘지식e 시리즈’가 단연 인기다. 또래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 ▲불량가족레시피 ▲완득이 등이 뒤를 이었다. 청주여자교도소에서는 ▲김남주의 집 ▲남자의 향기 ▲성균관 유생의 나날 등 에세이나 로맨스 소설 등이 잘 나간다. 어학을 배우며 사회 복귀를 준비하는 수감자들도 많다. 교정시설 중 영어와 일본어 교육을 맡는 의정부교도소에서는 최근 3년간 81명의 수감자가 토익시험에 응시, 이 중 35명이 800점 이상의 고득점을 올리기도 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독서 관련 교정프로그램은 만족도가 80~90%에 이를 만큼 호응도가 높다.”면서 “문화체육관광부와 협의해 장서를 늘리는 등 양과 질을 개선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열린세상] 세종대왕이 지금 다시 온다면/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

    [열린세상] 세종대왕이 지금 다시 온다면/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

    머지않아 다음 달이 되면 언론 매체들은 앞다투어 한글 찬양 기사를 쏟아낼 것이다. “영어, 프랑스어와는 달리 한글은 쉽게 배울 수 있는 독특한 언어다. 한글 읽기를 깨치는 데는 하루면 족하다. 한글은 매우 과학적이며 의사소통에 편리한 문자다.” 마치 도돌이표를 붙이기라도 한 듯 해마다 반복되는 말이다. 물론 한글은 과학적으로 대단히 우수하다. 해외의 저명 언어학자들도 한글의 과학성에 토를 달지 않는다. 하지만 한글이 다른 문자보다 과학적이고 편리하다는 게 ‘당연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글은 일본의 ‘가나’(假名)보다 600년, 영어의 원형인 로마 글자(알파벳)보다 무려 2000년 뒤에 ‘발명’된 최신형 글자이기 때문이다. 신형 컴퓨터가 구형 컴퓨터보다 성능이 뛰어난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당연한 일을 찬양하는 건 공허하고 진부하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과학성 예찬이 식상하지 않은가? 그런데 ‘과학성’이 뛰어나면 ‘경쟁력’도 우수한 걸까? 일본 교토산업대의 마스카와 도시히데 교수는 “영어를 못해 물리학을 택했다.”고 농담할 만큼 영어와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았다. 대학원 시험 때 지도교수가 그의 외국어 시험을 면제해줄 정도였고 평생 외국도 못 나가 여권도 없었다. 하지만 일본어밖에 할 줄 몰랐던 그는 2008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일본어만으로도 세계 최고 수준의 학문적 성취가 가능했음을 뜻한다. 과연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가능할까? 한글만으로도 세계 최고 수준의 지적 성취가 가능할까? 물론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단 하나, 한글의 콘텐츠가 턱없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스카와 교수가 입증했듯이 일본어로는 그것이 가능하다. 1980년대 VTR 시장에서, 앞선 기술력의 베타(β) 방식이 풍부한 콘텐츠의 VHS 방식에 밀려 도태된 역사적 사실이 떠오른다. 시인 김수영(1921~1968)은 1930년 이후 태어난 신세대 문학청년들을 ‘뿌리 없이 자라난 사람들’이라고 혹평하곤 했다. 일본어를 읽을 줄 모르는 까닭에 세계문학의 흐름에서 차단된 그들에게 가장 결핍된 것은 ‘지성’이라는 것이다. 그는 산더미같이 밀린 외국 고전을 우리말로 번역해 한글 콘텐츠를 일본어 못지않게 늘리는 일이야말로 국운(國運)에 관계되는 문제라고 질타했다. 그렇다, 김수영의 시대로부터 50년이 흐른 지금도 문제는 결국 ‘번역’이다. 뛰어난 과학성에도 불구하고 한글의 콘텐츠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시원스럽게 뚫린 8차선 고속도로에 어쩌다 한 대씩 자동차가 달리는 을씨년스러운 풍경, 그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세종이 만든 최고 성능의 도로(한글)에, 우리는 수많은 자동차(콘텐츠)를 채워 전 세계를 누비고 다녀야 했다. 우리는 조상(세종) 자랑, 과학성 타령에 바쁜 나머지 이 시대에 마땅히 할 일을 하지 못한 게으르고 못난 후손이 아닐까? 최신형 고성능 DSLR 카메라(한글)를 들고 거들먹거리면서 근사한 사진 한 장 찍을 줄 모르는 풋내기 사진사가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이에 비해 일본은 낡아빠진 필름카메라(가나)로 멋진 작품을 뽑아내는 노련한 사진가의 모습이다. ‘번역 왕국’ 일본의 현주소다. 우리에게 당장 시급한 과제는 정부 주도의 번역 사업을 통해 한글 콘텐츠를 대대적으로 확충하는 일이다. 한시바삐 정부 내에 ‘번역청’을 설립해야겠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1868) 직후 정부 내에 ‘번역국’을 따로 두고 단기간에 수만 종의 서양 고전들을 번역했다. 그들이 19세기 말에 번역한 서양 고전 가운데 아직도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은 책이 부지기수다. 부끄럽기 그지없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만일 세종대왕이 지금 다시 온다면 조상 자랑, 과학성 타령이나 하고 있는 우리의 게으름을 엄히 꾸짖을 것만 같다. 당장 대대적인 번역 사업에 착수하라고 호통칠 것만 같다. 세종이 최고의 문자 한글을 발명했다면, 우리는 그 한글에 최고의 콘텐츠를 채워 후손에게 전달할 책임이 있다. ‘역사의식’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세종에겐 세종의 할 일이 있었고, 우리에겐 우리의 할 일이 있다. 이걸 못한다면 우리는 두고두고 후손들에게 못난 조상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 [길을 품은 우리 동네] (17) 충북 단양군 삼봉로

    [길을 품은 우리 동네] (17) 충북 단양군 삼봉로

    유장한 물줄기는 길을 따라 둥그렇게 굽이쳤다. 물줄기 곁에 새로 터를 잡은 마을을 복주머니 모양으로 감싸고 돌았다. 사람들은 충주호에 잠긴 땅을 떠나 새로 만들어진 곳으로 옮겼다. 하지만 그들은 변함없이 남한강에 그물을 던져 쏘가리, 메기 등속을 잡았고, 오랫동안 그래왔듯 매년 가을마다 육쪽 마늘밭을 일궜다. 충북 단양군 이야기다. 조선 개국의 일등공신 정도전(1342~1398)이 단양에서 태어났다는 얘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와 최소한 이곳에서만큼은 사실(史實)로서 회자되고 있다. 또한 현대사 속 시대와 불화했던 비운의 시인이자 뛰어난 출판편집자인 신동문(1928~1993)이 문필을 꺾고 이곳으로 찾아들어 밭을 일구며 말년을 보냈다. 단양 사람들은 그의 시비를 만들어 자신들의 삶의 공간에 끼워 넣었다. 이 모든 것들은 삼봉로를 중심축 삼아 씨줄날줄로 얽혀 있다. 삼봉로에 기대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로명 주소는 꽤 친숙했다. 외지인이 흔히들 찾는 장다리식당(삼봉로 370)이며 돌집식당(중앙2로 11), 대교식당(중앙2로 9) 같은 제법 유명한 식당에 전화로 위치를 물어보니 “어디세요. 차 가지고 오시면 삼봉로 ×× 찍으시면 돼요.”라고 대뜸 도로명 주소를 얘기한다. 1985년 계획지구로 조성돼 길이 비교적 간명하게 만들어졌고 유서 깊은 옛이야기와 현대 문화사의 인물 등이 잘 버무려져 생활 속에 밀접하게 들어와 있는 덕분이다. 횡으로 늘어선 삼봉로에서 수변로, 중앙로, 도전로, 별곡로, 상진로가 종으로 삐져 나와 있다. 아무튼 삼봉로를 따라 걷다 보면 만나는 식당마다 순댓국도 마늘순댓국, 갈비탕도 마늘갈비탕, 밥도 마늘밥, 떡갈비도 마늘떡갈비 등 온통 마늘 음식 천지다. 여기에 대강양조장(대강로 60)에서 만든 소백산 막걸리를 곁들이면…. 그 맛을 기억하는 이들이 입가를 스윽 훔치며 즐겨 찾을 만한 길이다. 하지만 식도락만으로 만족하기에 삼봉로가 품고 있는 문화적, 역사적 함의는 너무도 크다. ●‘신동문 시비’ 소금정 공원에 위치 신동문이라는 이름은 어지간한 문학 딜레탕트에게도 그다지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그는 신동엽, 김수영 등과 같은 1960년대 현실 참여시인의 대표적 인물 중 하나였다. 195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그는 1960년 4·19혁명을 태평로 길 위에서 직접 봤고, 사회 변혁에 대한 확신을 총칼에 맞서는 청년의 거친 숨결 속에서 품는다. 그리고 ‘아! 신화같이 다비데군(群)들’이라는 108행에 이르는 격정의 장시를 써내려갔다. 신동문은 시인이면서 또한 기획력 번뜩이는 편집자이자 문단의 마당발이기도 했다. 잡지 ‘새벽’의 편집주간이던 그는 문예지도 아닌 그 잡지에 최인훈의 중편소설 ‘광장’을 게재한다. 이후에도 신구문화사, 사상계, 창작과비평사 등 진보적 문학주간지의 토대를 닦고 당대 시인, 문인들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자임했다. 그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야 함은 남은 자의 당연한 몫. 중앙고속도로 단양나들목을 나와 5번 국도를 타고 올라가면 상진대교가 나오고 다리를 건너자마자 오른쪽으로 삼봉로가 시작된다. 차로 5분 남짓만 가면 대명리조트(삼봉로 187-17), 청소년수련관(삼봉로 187-18) 바로 길 맞은편에 소금정 공원이 있다. 남한강 기슭과 삼봉로 사이에 좁고 길게 위치한 공원이다. 주거하는 건물이 아니기에 도로명 주소는 따로 없다. 이 공원 입구에 바로 신동문 시비가 있다. 화강암 너럭바위에 새겨 놓은 시편은 ‘내 노동으로’의 마지막 세 번째 연이다. 그가 마지막 남긴 시다. 굳이 전문을 읽지 않더라도 그의 절절했던 고뇌가 스며온다. 신동문은 문득 절필한 뒤 1975년 서울을 등지고 단양으로 낙향했다. 5·16 군사쿠데타 이후 계속된 독재정권이 그를 낙담케 했음은 훗날 사람들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여기에서 포도밭을 가꿨고, 침술을 배웠다. 마지막 떠날 때까지 18년 동안 약 10만명에게 무료로 시술해 줬고, 일대에서는 그를 ‘신바이처’라고 불렀다고 한다. 신경주 단양군 민원봉사과장은 “신동문 선생은 병원을 찾을 수도 없이 가난한 이들의 병을 침술로 치료해 준 뒤 치료비 걱정에 쭈뼛거리고 있으면 씩 웃으며 ‘노래나 한 자락 불러 봐라’하며 돌려보냈다고 들었다.”고 그에 대한 기억을 더듬었다. 하지만 그가 생전을 보낸 집은 이제 아무도 찾지 않는 빈집으로만 남아 있다. 옛 중앙선 철길을 따라 수양개 선사유물전시관 가는 길 왼쪽에 있지만 아무런 표지도 없어 쉬 찾기 어렵다. ●정도전의 지략 서린 도담삼봉 물론 단양 하면 소년 정도전의 지략과 담대함이 서린 도담삼봉을 빼놓을 수 없다. 정도전은 조선 개국 과정의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한 사상가이자 지략가였다. 그에 앞서 낡은 체제를 바꾸고자 했던 혁명가였다. 비록 훗날 태종이 되는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한 불운의 정도전이지만 단양땅에 와서는 민간설화의 한복판에 서 있다. 그의 호가 삼봉이라는 점, 아호가 종지라는 점 등을 가운데 놓고 얘기는 살을 붙이고 몸집을 키워 간다. 지현숙 단양군문화관광해설사협회장의 얘기인즉슨, 본래 강원도 정선에 있던 도담삼봉이 홍수로 떠내려 왔단다. 정선군에서 자꾸 도담삼봉에 대한 세금을 내라고 요구하자 그 지역 관아들이 쩔쩔 매고 있는데, 그때 소년 정도전이 나타나 “도담삼봉 때문에 오히려 물길이 막혀 홍수가 나니 도로 가져가라.”고 했단다. 모두 소년 정도전의 총명함에 고개를 주억거렸고…. 여기에 정도전의 아명인 종지(宗之)도 사실은 단양에서 가장 높은 양백산전망대인 종지봉에서 따왔다는 얘기가 덧붙여졌다. 종지를 엎어 놓은 모양이라고 해서 종지봉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선후관계는 알 수 없다.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단양 사람들의 정도전에 대한 자부심이다. 뭐래도 좋다. 도담삼봉에 가려면 삼봉로를 따라 뱀허리처럼 굽이치는 남한강을 오른쪽에 끼고 돌아 상류로 거슬러 가야 한다. 도담삼봉 터널을 지나자마자 떡하니 모습을 드러낸다. 바위로 이뤄진 세 개의 봉우리에 각각 처봉, 남편봉, 첩봉이란 이름이 붙어 있다. 자욱한 아침 물안개가 피어 있는 모습이나 남한강이 흘러 돌아가는 풍경이 아름답다. 김홍도와 최북 등 조선 후기에 도담삼봉을 그림으로 그린 이들이나 당대의 문인들이 써내려간 한시(漢詩)가 100편이 넘는다 하니 도담삼봉 휴게소 건물(삼봉로 644-13)에 오르거나 10분 남짓의 발품을 팔아 석문에 올라가 내려다보는 도담삼봉이 특히 멋지다. 글 사진 단양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18회는 광주 북구 민주로를 소개합니다.
  • 김소월 ‘진달래꽃’ 대표시집 1위

    김소월 ‘진달래꽃’ 대표시집 1위

    문학평론가들은 한국현대문학사를 대표하는 시집으로 김소월의 ‘진달래꽃’(1925년 매문사 펴냄)을 꼽았다. 시 전문 계간지 ‘시인세계’는 창간 10주년을 기념한 가을 특집호에서 문학평론가들이 뽑은 한국 대표시집 순위를 10일 발표했다. 평론가 75명이 각각 고른 시집 10권을 정리한 결과 63명이 선택한 ‘진달래꽃’이 1위를, 60명이 선택한 서정주의 ‘화사집’이 2위를 차지했다. 3위는 백석의 ‘사슴’(59명), 4위는 한용운의 ‘님의 침묵’(56명),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와 정지용의 ‘정지용 시집’이 각각 48명과 45명의 선택으로 5, 6위에 올랐다. 이상의 ‘이상 선집’과 김수영의 ‘달나라의 장난’, 임화의 ‘현해탄’, 이육사의 ‘육사시집’이 근소한 차이로 7~10위에 올랐다. 시인별 득표수로는 서정주가 1위를 차지했고, 정지용, 김소월 순이었다. ‘시인세계’는 “전후의 폐허와 군사정권의 폭압 등 시대가 어려울수록 뛰어난 시집이 나온다는 게 입증됐다.”면서 “이번 설문에서 문학평론가들은 감성의 시보다는 격정의 시를, 서정성보다는 실험성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평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서울시 ‘100년 후 보물’ 박경리 가옥 등 보존

    서울 남산에 있는 옛 중앙정보부 건물과 소설가 박경리 가옥 등이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보존된다. 근대화 경제 성장의 무대였던 구로공단에는 역사기념관이 만들어진다. 서울시는 1900년대 서양문물 유입부터 2000년까지의 역사와 문화, 생활 등 근현대 문화유산 1000개를 발굴해 보존하는 ‘근현대 유산의 미래유산화 기본구상’을 마련해 추진한다고 7일 밝혔다. 발굴 대상에는 역사적 인물의 생가나 묘지,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베델 등 개화기 외국인 유적, 근대화 경제성장을 이끈 구로공단과 창신동 봉제공장, 달동네의 시민 생활상,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인 충정·동대문 아파트 등이 포함된다. 그동안 시인 박목월과 소설가 현진건 생가가 소유자에 의해 철거되고, 시인 김수영 가옥은 폭설로 훼손되는 등 역사적 상징성이 있는 곳이 잇따라 훼손돼 발굴·보존 대책을 세우게 됐다고 시는 설명했다. 시는 우선 5곳을 시범 사업지로 선정, 5억 5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타당성 조사를 거쳐 발굴·보전사업을 펼치기로 했다. 시범 사업지 5곳은 ▲이준·손병희 선생 등 순국선열 묘역인 강북구 수유동 역사문화유적 분야 ▲경교장, 이화장 등 정부수반 유적 복원 등 건국관련 분야 ▲남산의 옛 중앙정보부 건물 보존 및 활용 등 민주화 분야 ▲구로공단 역사기념관 조성 등 산업화 분야 ▲소설가 박경리, 시인 김수영과 마해송, 문화재 수집가 전형필 등 문화예술인 유적이다. 시는 자치구와의 합동 실태조사와 시민 공모를 통해 내년 7월까지 ‘서울속 미래유산 1000선’을 확정하기로 했다. 서울시장과 시민위원장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미래유산보존위원회’(가칭)도 구성해 보존 대상을 선정하고 사업우선 순위를 결정하기로 했다. 시는 내셔널트러스트 관련 단체와 공동으로 서울속 미래유산 찾기 시민공모를 오는 8월 중순까지 실시할 계획이다. 아울러 민간단체의 미래유산 보전활동을 활성화하고 민간이 소유한 미래유산에 대해 보수비나 프로그램 운영비 지원이 가능하도록 연말까지 ‘미래유산보존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기로 했다. 박원순 시장은 “이번 사업은 100년 후 보물을 준비하는 것으로 근현대 유산은 현 세대가 미래세대와 공유하고 미래의 창조적 자산으로 전달해야 할 소중한 자산”이라며 “방치돼 왔던 근현대 유산을 시민과 함께 적극 발굴, 보존해 2000년 고도 서울의 역사성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제23회 김달진문학상 수상자 2인 인터뷰

    제23회 김달진문학상 수상자 2인 인터뷰

    23회를 맞은 2012년 김달진문학상은 40대 시인과 평론가에게 돌아갔다. ‘김달진문학상 운영위원회’와 서울신문이 공동 주최하는 김달진 문학상 시 부문에 장석남(47·한양여대 교수)의 시집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가, 평론 부문에는 이경수(44· 중앙대 교수)의 ‘춤추는 그림자’가 각각 수상작으로 뽑혔다. 100세를 살아간다는 21세기에 청춘의 나이인 40대에 가볍지 않고 묵직한 걸음으로 작품 활동을 해온 작가들을 만나봤다. 김달진 문학상은 시인이며 한학자였던 월하(月下) 김달진(1907~1989)을 기리고자 1990년 제정된 문학상으로, 시사랑문화인협의회(회장 최동호 고려대 교수)가 주최하고, 창원시와 서울신문사가 후원한다. 인간의 고유한 얼에 대한 믿음에 바탕을 둔 정신주의를 성공적으로 구현한 시인과 평론가를 선정해 매년 시상하고 있다. 김달진문학상 수상 축하 시낭송회는 역대 수상자들이 함께 모여 6월 5일 오후 6시 고려대 백주년 기념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린다. 시 부문 수상 장석남 교수 어려운 시대 서정시 더 필요 균형 이루는 삶 자세로 詩 써 “시인은 끊임없이 자신과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고, 반성하는 사람이다.” 제23회 김달진문학상 시 부문 수상자인 장석남(47) 한양여대 교수는 22일 자신에 대해 그렇게 소개했다. 이어 “사회적 위치에서, 우주적 위치에서, 자연의 위치에서도 과연 잘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의문을 갖는 사람이고, 그 의문을 한시도 놓지 않고 지켜보면서 의문의 풍경을 시로 만드는 사람이다.”라고 덧붙였다. 마치 화두를 들고 평생을 정진하는 승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시인 오세영이 심사평에서 “다수의 시류가 아니라 소수의 개성 혹은 정체성이 중요하다.”고 평가할 만했다. 장석남은 김달진문학상 수상 이전에 김수영문학상(1992)과 현대문학상(1999), 미당문학상(2010)을 수상했다. 이번 수상이 그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는 “앞의 문학상들은 어둠침침한 회랑에 있는데 밝고 화창한 날이 찾아온 것처럼 시인으로서 고비를 넘길 수 있게 하는 힘이 됐다.”면서 “그러나 김달진문학상은 조용히 다가와서 어깨를 툭 치며 눈을 끔쩍끔쩍하는 듯한 격려로 이전과 아주 다르게 그윽하고 편안한 기분이다.”고 했다. 그는 “만나 뵌 적은 없지만 일생을 숨어살면서 자족하고, 부귀나 명예 등 욕망을 좇지 않았던 월하 선생의 치열했을 삶을 동경해왔다.”고 했다. 특히 김달진의 ‘산거일기’는 머리맡의 솔바람소리 같았다. ‘산거’라는 연작시가 나온 배경이다. 자신이 쓰는 시와 선생의 삶과 문학이 비슷해서 이번 수상이 아주 편안하고 기분 좋다는 것이다. 그는 “시가 세속적 욕망을 표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욕망을 이길 수는 없지만 욕망을 들여다보면서 균형을 이루면서 살아가려는 마음가짐으로 쓰는 것”이라고 했다. 전업작가에서 교수가 된 지는 7년이 됐다. 모순덩어리 교육은 대학교라고 해서 없지 않아 갈등이 존재한단다. 그는 연간 10편의 마음에 드는 시를 쓴다고 했다. 시 관련 잡지도 많고 덕분에 청탁이 많은데, 계속 거절하면 잘난 척한다고 하니 작품을 안 쓸 수도 없단다. 연간 10편이면 50~60편의 시가 들어가는 시집은 5~6년만에 나오게 된다. 장석남의 생각으론 그런 간격이 정직한 시집들이 나오는 주기다. 서정시를 쓰기 어려운 시대에 살면서 서정시를 쓰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서정적이지 않은, 어려운 시대일수록 서정시가 더 필요하다. 속도 때문에 치어서 죽고, 병 걸려서 죽고 하는데, 왜 그런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더 절실하게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평론 부문 수상 이경수 교수 비평적 거리·균형감각 유지 덜 말하며 효과적 쓰기 모색 “2~3년 전에 나왔어야 할 평론집 ‘춤추는 그림자’가 올해 나와서, 제때 이별하지 못한 연인을 보듯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마음이었는데, 수상까지 하고 나니 마음이 더 복잡하다.” 제23회 김달진문학상 평론부문 수상자 이경수(44) 중앙대 교수는 21일 수상소감으로 기쁨을 표현하지 않았다. 시원하지도, 즐겁지도 않다. 시종 차분하고 망설이는 어투가 그를 싸고돌았다. 문학평론은 ‘문학을 위한 이타적인 글쓰기’인데, 문학이 힘을 잃고 영향력이 축소되고 있고, 그에 따라 문학과 독자의 매개자인 평론의 역할과 자리도 축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작가들이 ‘콘서트’란 형식으로 독자들과 직접 만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문학평론가는 할 일이 사라지고 있다고 느낀다. 이 교수는 “문학비평을 통해 세상하고 소통해나갔던 나로서는 이 시대 문학비평의 역할이 무엇인지, 어떻게 글쓰기를 해가야 할지 더욱 고민하게 된다.”고 했다. 그는 미혼의 여성으로, 대한민국에서 버티고 살기 쉽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그간 그의 평론은 여성으로서의 내 자리는 어디인지, 비평가로서 내 자리는 어디인지, 문학의 자리인가 어디인지를 찾아가면서 써내려간 평론들이라고 했다. 문흥술 서울여대 교수는 심사평에서 “이경수의 비평은 무겁고 둔중하다. 수사적 현란함을 펼치는 최근의 비평 경향과 거리가 있고, 문학과 삶과 사회라는 세 꼭짓점이 갖는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런 평가가 꼭 맞는 것 같다. 그는 “권력의 자장에 포섭되는 순간 개개의 목소리는 힘을 잃어버린다는 생각에 비평적 거리와 균형적 감각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면서 “어디에도 매이거나 포섭되지 않는 외로움의 자리를 지키고 견디며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2008년 암수술을 하고 투병을 하면서 연간 최대 34편까지 쓰던 평론을 뚝 끊었었다. 1999년 등단한 이후로 10여 년 열정적으로, 의욕적으로 써내려갔던 평론이었다. 문단에서 성실하다고 평가받은 것은 세상과 소통하겠다는 열망 탓이었다. 그래서 병이 나았나 하는 생각도 한단다. 지난해부터 몸을 추스르며 다시 평론가로 돌아온 그는, 덜 말하면서 효과적인 글쓰기의 방안을 찾고 있다고 했다. 그는 그래서 평론에 ‘가난하고 외롭고 낮고 쓸쓸한’이라고 붙였다. 이것은 백석의 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에서 따온 것으로, 시는 ‘높은 자리’이지만, 평론은 소외된 ‘낮은 자리’에 있기를 희망하며 붙인 것이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 시대에 문학이 힘을 잃고 있지만, 문학과 문학비평이 자본주의적 폐해를 일부 씻어줄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최동호 새벽을 열며] 사랑의 시인 김수영 사전

    [최동호 새벽을 열며] 사랑의 시인 김수영 사전

    5월 8일 김수영 시비를 찾아 도봉공원을 향했다. 현대시 젊은 연구자들과 함께 10년의 작업을 거쳐 김수영 사전을 마치고 난 다음 현장을 한번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오후 늦게 도봉산을 향하니 초여름을 연상시키는 무더운 기운이 느껴졌다. 오래전과는 주변상황이 크게 달라져 시비는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등산객에게 물어보아도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고 등산로 어디에도 표지가 없었다. 도봉산서원의 복원공사가 진행 중이었는데, 굽은 산길을 오르다 보니 시비는 공사장 펜스 앞에 초라하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등산로 한구석을 지키고 있는 시비가 쓸쓸해 보였다. 2003년 가을 시작된 김수영 사전은 연인원 80명이 넘는 인원이 작업에 참여해 30여 차례의 기획 편집회의를 열었고 10차례의 교정을 보아 지난달 출간되었다. 한국현대문학 연구를 보다 실증적 차원에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연구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기초와 뿌리에 대한 객관적이며 실증적인 연구 없이 이루어지는 문학 연구가 외래의 비평 방법에 좌우되거나 감성적인 비평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실증적 연구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화려하지도 않아 일반적으로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 사명감을 가지고 시작한 일이 사전작업이다. 이 사전의 표제어는 모두 5220개이며 대상 작품은 모두 176편이다. 사전을 통해 시어 활용의 특징을 살펴보면 이러하다. 김수영은 부정어 ‘않다, 없다, 안, 없어, 아니, 말다, 못하다, 안한다’ 등의 시어를 98편의 시에서 가장 많은 250차례 사용했다. 이는 김수영이 지닌 부정의 정신을 그대로 말해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긍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사랑’이란 시어를 16편의 시에서 48차례나 사용하고 ‘좋다’를 32편에서 41차례 사용했으며 ‘웃다’를 17편에서 33차례 사용했다. 그는 참여시를 대표하는 부정의 시인으로 알려졌지만 보다 근원적으로 그는 사랑의 시인이요, 긍정의 시인이기도 했다는 사실이 입증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사람’이란 시어도 56편에서 92차례 사용했는데, 이는 그의 사랑이 사람에 대한 것이었으며, 이는 사회현실에 대한 그의 비판이나 부정이 사람을 사랑하는 긍정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다고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게 한다. 감각인지어 계열의 시어는 ‘보다’가 72편에서 123차례 사용됐으며 ‘보이다’가 22편에서 34차례 사용됐다. 이는 그가 사물이나 현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음을 뜻하며, 동시에 피동적인 방식이 아니라 능동적이며 적극적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려 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김 수영은 20세기 후반 한국현대시를 대표하는 시인 중의 한 사람이다. 1960년대 김수영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1970년대의 김지하의 풍자적 담시나 1980년대의 신경림의 민중시를 생각할 수 없다. 어휘 활용사전에서 실증적으로 입증된 것처럼 그는 현실을 부정적,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도 사랑과 긍정에 도달하는 시적 인식의 과정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새롭게 평가되어야 할 시인이다. 이는 그의 시를 바라보는 종전 시각의 대전환을 의미한다. 명편으로 알려진 ‘풀’이나 ‘사랑의 변주곡’ 등은 그가 보여준 부정의 정신이 사랑에서 우러나온 것이며, 시대에 대한 그의 부정과 비판은 사랑과 긍정이라는 더 큰 목표를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수영은 4·19혁명의 시인이다. 그는 4·19의 영광과 좌절을 경험한 1960년대 시의 한 정점에 도달했다. 그는 자유에서 피의 냄새를 느끼고 자유의 억압에서 굴욕을 느꼈던 시인이었다. 오는 6월 16일은 그의 44주기이다. 이를 기념하여 작은 무대가 마련되어 이 사전을 헌정하는 것은 물론 한 시대의 첨단에서 고투했던 그의 영혼을 위무하는 자리가 있었으면 한다. 김수영 시비가 지키고 있는 도봉산의 서늘한 기운이 방향감각을 상실한 21세기 한국의 현대시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 시인 김수영이 묻는다 당신은 진정 자유로운가

    ‘김일성만세’/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인정하는 데 있는데//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정치의 자유라고 장면이란/관리가 우겨 데니//나는 잠이 깰 수밖에(김수영의 ‘김일성만세’) 어느 강좌에서 강단에 선 이가 대뜸 이리 읊는다면 어떤 느낌을 갖게 될까. 다음 구절을 궁금해하게 될까, 마음이 불편해지거나 당혹감을 느낄까. 철학자 강신주는 그가 대학을 다니던 군사독재 시절과 지금 대학의 모습이 확연히 달라진 것을 느낀다. 삼삼오오 모여 있으면 작당모의를 하진 않는지 감시의 눈초리를 받고 불신검문도 감수해야 했던 것이 20여년 전인데, 오늘의 대학생들은 대학 벤치에서 해맑은 웃음으로 자유롭게 대화를 나눈다. 과연 인문정신이 살아 숨쉬고 창조적인 작품을 생산할 수 있는, 그 자유를 비로소 누리게 된 것인가. 이런 궁금증으로 강신주는 강단에서 이 시를 읊었다. 객석에 앉은 사람들의 불쾌한 표정을 확인한 뒤에야 강신주는 무겁고 괴로운 마음에 휩싸였다. 시인 김수영(1921~1968)이 ‘김일성만세’를 외친 50년 전과 비교해 지금도 내면은 달라진 것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탓이다. ‘김수영을 위하여’(김서연 만듦, 천년의상상 펴냄)는 강신주가 우리가 ‘자유‘라고 느끼던 것이 어떤 이유로 진실일 수 없는지, 김수영을 통해 고찰한다. “자유로운 공기가 없다면 숨을 쉴 수 없다는 사실을 이 시인보다 잘 아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김수영은 김수영이려고 발버둥 친 시인”이라고 소개한다. 자기를 사랑하고 긍정하면서도 끊임없이 ‘온전한 나’이기 위해 채찍질한 사람이다. 보통 사람들은 투덜거리며 치워 버릴 거미줄을 보면서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 버렸다’(‘거미’ 중에서)고 이상에 닿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고, ‘만약에 나라는 사람을 유심히 들여다본다고 하자/그러면 나는 내가 시(詩)와는 반역(反逆)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구름의 파수병’ 중에서)라고 회고한 사람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그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깃들어 있는 ‘단독성’을 찾아내기 위한 몸부림이다. 저자는 사람(人)이 만드는 문양이나 표현(文)이 ‘인문’(人文)이며, 모든 존재들은 내면에 각각의 발자국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을 단독성으로, 자신만의 포즈로 표현한 사람이 김수영이다. 이런 김수영의 표현방식이 이해 가능한 것이 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때에, 비로소 인문이 완성되고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2만 3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올 9급 공무원 시험, 왜 그리 쉽게냈나 했더니

    올 9급 공무원 시험, 왜 그리 쉽게냈나 했더니

    지난 7일 전국 194개 시험장에서 국가직 9급 공채 필기시험이 치러졌다. 지원자 15만 7000여명 가운데 72%인 11만 3000여명이 응시했다. 지난해(73.3%)보다 조금 낮아진 72.0% 응시율이었다. 출제수준은 대체로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더 쉬웠다는 것이 수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내년부터 일부 시험과목이 선택과목으로 바뀌기 때문에, 출제 측이 문제유형·난이도에 변화를 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공무원단기학교(학원)와 함께 ‘인책형’ 문제지를 기준으로 과목별 주요 경향과 눈에 띄는 문제를 짚어봤다. 국어, 어문규정·어휘 문제 11개 출제 국어는 한자 독음이나 표기 등 한자 문제가 많이 출제되지 않았고, 수험생들이 까다로워하는 고전문학 작품이 한 문제도 출제되지 않아 난도가 낮았다는 평이다. 김영준 강사는 “기본서를 중심으로 착실히 준비했다면 2문제 이상 틀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역별로 어문 규정 7문항, 어휘 4문항이 출제되었고, 비문학은 5문항, 문학은 4문항이 출제되었다. 어문 규정에서는 9번이 대표적이다. 일상생활에서 자주 틀릴 수 있는 부분인데, ‘죄다’에 연결어미 ‘-어’를 연결하면 ‘죄여’가 아니라 ‘죄어’가 맞다. 10번의 사전 등재순서 역시 무조건 내는 문제로, 모음의 순서에서 ‘ㅘ-ㅙ-ㅚ’, ‘ㅝ-ㅞ-ㅟ’의 순서만 알면 풀 수 있다. 17번은 어휘 영역문제다. ①견마지로 ②읍참마속 ③풍수지탄 ④불치하문 등의 보기가 제시됐다. 보기②의 ‘조직의 발전을 위해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감싸 안아줘요.’가 틀린 사용으로, 읍참마속은 ‘큰 목적을 위해 자기가 아끼는 사람을 버린다.’는 뜻으로 ‘감싸 안아’줄 때 사용할 수 없다. 13, 14번은 한용운의 ‘나룻배와 행인’, 김수영의 ‘눈’ 등 운문 문제다. 한용운, 정지용, 김소월, 백석, 신동엽, 김수영 등 출제 가능성이 큰 작품은 평소 잘 정리해 둬야 한다. 영어, 어휘수준 높아져 영어는 영역별로 어휘 4문항, 생활영어 2문항, 문법 및 영작 4문항, 독해 10문항으로 출제됐다. 어휘 수준이 높은 문제들도 눈에 띈다. 난이도는 평이했다. 1번은 complacent(자기만족의)라는 어휘의 뜻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유의어를 찾는 이 문제의 답은 ‘self-satisfied’다. 3번의 ‘pass on’, ‘snuff the candle’, ‘go aloft’ 등 ‘죽다.’는 뜻이 있는 숙어를 제시했다. 이들의 뜻을 물어 빈칸을 채우는 이 문제의 답은 ‘death’다. 8번 영작문제는 ‘with와 by’라는 전치사의 쓰임을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벽돌로 유리창을 깨다.’라고 하려면 ‘smash a window with a brick’이라고 해야 한다. 독해는 대체로 평이했으나, 오스카 와일드의 명언으로 시작, 빈칸을 추론하는 14번 문제는 비교적 어려운 문제로 꼽혔다. 한국사, 문화사·정치사 출제비중 높아 한국사는 주제별로는 고대 사회의 발전과 근대 사회의 태동 시기 부분에서, 분야별로는 문화사·정치사 부분에서 많이 출제됐다. 강민성 강사는 “이해만 하면 쉽게 풀 수 있는 문제가 대부분이었다.”고 평가했다. 10번 이동휘와 관련된 문제는 가장 어려운 문제로 꼽힌다. 보기 ③의 ‘대동보국단을 조직하고 진단이라는 잡지를 발간한 사람’은 박은식·신규식이다. 8번 다산 정약용 당시 농민들의 실태에 대한 문제로 최근 자주 출제되고 있다. 조선 후기에는 양반은 늘고 상민과 노비가 줄어들었다는 특징이 있다. 18번 조선후기 과학문화에 대한 문제는 실수를 유도하는 문제다. 보기 ②번 지석영은 종두법을 최초로 ‘소개’한 인물이 아니라 ‘실시’한 인물이다. 행정학, 정부 조직 관련 암기문제 3문제 행정학개론에서는 정부 조직이나 법과 관련한 문제가 예년보다 많았다. 정부 산하 기관의 조직도와 각 기관의 기능에 대한 암기 문제도 총 20문항 가운데 3문제나 출제됐다. 1번은 국무총리 소속기관이 아닌 것을 고르는 문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대통령 소속기관이다. 9번은 ‘공기업 평가’가 ‘국무총리실’이 아닌 ‘기획재정부’의 기능인 점을 알아야 풀 수 있다. 11번은 기구와 그 법적근거의 연결을 고르는 문제다. 보조사업평가단은 ‘지방공기업법’이 아닌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에 근거한 기구다. 4, 5, 12번 문제는 여러 이론에 대한 지식을 응용해야 풀 수 있는 문제다. 행정법, 판례 문제 80% 행정법총론은 이번에도 판례문제가 대다수인 80%정도 출제됐다. 12번은 2010년 개정된 ‘행정심판법’의 주요 개정 내용을 묻는 문제다. 이 법으로 행정심판위원회의 결정에 이의신청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15번은 행정형벌에 대한 문제다. 의료법 제87조의 규정을 예시로 들었다. 면허증 대여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고, 위반자의 고의 또는 과실이 있어야 행정형벌에 처할 수 있다. 전효진 강사는 “행정법총론의 기본 쟁점을 이해하고, 중요 법령의 조문과 판례를 숙지하는 것이 가장 좋은 공부법”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행정안전부는 내년부터 9급 공무원 시험 선택과목으로 포함되는 사회·과학·수학 과목의 출제범위 및 해당되는 직렬을 오는 13일 발표할 예정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내년 9급 공무원 시험에 응시할 수험생들의 수험기간 등 편의를 고려해 대략적인 시험범위를 일찍 결정해 발표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묵묵히 제 갈 길 가라” 멘토들의 담담한 조언

    삶은 연극과 닮았다고 한다. 연극처럼, 삶에도 오르막 내리막과 길고 짧음의 플롯이 있다. 굴곡 없는 삶이 얼마나 무미건조하겠느냐며 호방하게 말하는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한번 되돌아 보라. 하루하루의 끝에 ‘범사에 감사’하고 있는 자신이 서 있지는 않은가를. ‘청년 인생 공부’(강신주 등 13인 지음, 열림원 펴냄)는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기획한 강연 시리즈 ‘명동연극교실-삶, 무대에서 바라보기’를 풀어 쓴 책이다. 삶이 연극 같은데, 인생 공부를 공연장에서 하면 얼마나 드라마틱하겠나. 강연도 그런 뜻에서 기획됐다. 책은 강연에 나섰던 13인 멘토들의 강연 내용을 묶었다. 강신주·구본형·김석철·김혜남·박웅현·박홍규·신선희·이순재·이인식·주철환·최태지·홍승엽·황병기(이상 게재 순).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주억거릴 만한,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자신만의 위치를 확고히 다지고 있는 멘토들이다. 저자들은 자신이 겪었던 경험들을 예로 들며 스스로의 삶과 일에 대해 털어놓고 있다. 예컨대 철학자 강신주는 시인 김수영과 부인 김현경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기다린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역설한다. 설령 목 빼고 기다렸던 ‘고도’(Godot)가 나타나지 않는다 해도 말이다. 배우 이순재는 보이지 않는 노력이 결국은 성공을 이끈다는 자명한 진리를 다시 한 번 일깨워 준다. 멘토들이 전하는 성공의 길은 여러 갈래다. 하지만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있다. 바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되 가끔은 주변을 둘러보라는 것’. 쉽고 자명하되 실행하기 녹록지 않은 주문이다. 제목은 ‘청년~’이지만, 꼭 젊은이만을 위한 책은 아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떠나 보낸 뒤, 여전히 질곡의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중장년층에게도 충분히 위로가 될 내용들이 담겨 있다. 1만 5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시인 김수영 자전적 산문 발굴

    시인 김수영 자전적 산문 발굴

    시인 김수영(1921~1968)이 25~27살 무렵의 자신을 회고하는 내용으로 1954년에 쓴 산문이 발굴됐다. 문학계간지 ‘문학의 오늘’의 주간 방민호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는 김수영이 ‘시인 김수영’이란 이름으로 1954년 문학잡지 ‘청춘 2월호’에 기고한 산문을 새롭게 발굴했다고 1일 밝혔다. 고서(古書)전문가 문승묵씨가 발굴한 ‘나와 가극단 여배우와의 사랑’(큰 사진)이란 산문이다. 원고지 30~40장 안팎의 짧은 글로, 예술가로 살기 어려웠던 1946~1948년 20대 청춘의 방황 등을 보여 준다. 김수영은 산문에서 ‘(중략) 벌써 지금으로부터 6, 7년 전, 지향하고 있던 문학마저 깨끗이 걷어치우고 P를 따라다니며 소위 ‘간판쟁이’가 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P는 일찍이 오소독시컬한 회화예술의 길을 포기하고, 자칭 ‘상업미술가’로서 백화점 선전부에 들어오는 포스터 주문을 거들어주거나 성냥 딱지에 붙이는 그림을 그리거나, 어쩌다 운이 좋아야 다방의 사인보드 같은 것을 맡아서 그것으로 입에 풀칠을 하여가는 가련하고 불쌍한 친구. (중략)’라고 서술해 나간다. 김수영은 또한 ‘화가 P가 ○○가극단의 이성숙이를 사랑하듯이, 자신도 어느 댄서 하나를 선택하겠다고 비장한 결심을 하고 장선방이라는 어깨와 허리가 고무풍선 같이 탄력이 있어 보이며, 검은 눈동자에 말할 수 없는 비애와 향수와 청춘이 교향악을 부르고 있는 열일곱에서 열아홉밖에는 되어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여자’와 결혼을 꿈꾸는 내용 등을 담았다. 유성호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1946년 김수영은 집안 살림살이가 너무 어려워져 돈벌이가 된다면 일을 가리지 않고 할 때로, 주로 간판화 그리기와 통역 일을 했었는데, 이 산문에서 증언하는 간판쟁이 행적과 고스란히 일치한다.”면서 “화가 P는 본명이 박준경이고, 화명(畵名)이 박일영인 초현실주의 화가로, 김수영이 1960년대 중반 문학적 테마를 ‘양심’이나 ‘윤리’로 정향해 나갈 때 박일영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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