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한 점쟁이·똑 부러진 공무원 역할 척척’ 나 없으면 재미 없을걸~
“뭐야? 지화자와 정부미를 연기한 사람이 같은 사람이었어?” 지화자는 4~5월 안방극장을 뜨겁게 달궜던 MBC 월화 미니시리즈 ‘내조의 여왕’의 헛다리 짚는 점쟁이 캐릭터. 짙은 마스카라에 반쯤 뜬 눈에 힘을 주고, 목소리는 낮게 깔고는 인형 엘자를 끼고 다녔다. 정부미는 요즘 인기 있는 SBS 수목 미니시리즈 ‘시티홀’의 캐릭터다.
애가 셋이나 딸린 억척 엄마이자 똑 부러진 공무원. 두 캐릭터 모두 여자 주인공인 천지애(김남주)와 신미래(김선아)의 ‘베프’(베스트 프렌드)로 출몰하며 드라마 자체를 더욱 감칠 맛 나게 만들어 시청자들 시선을 사로잡았다. 화자와 부미를 같은 배우가 연기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꽤나 놀라는 사람이 많다고 전하자, 정수영(27)은 “그게 바로 최고의 칭찬”이라며 웃는다. 남자 배우 쪽에서 개성파 연기자가 심심치 않게 나오지만, 여자 배우 쪽에선 드문 게 요즘 현실이다. 정수영의 등장은 그래서 더욱 반갑다.
●“아무리 비중 적어도 최선 다해”
성악가를 꿈꿨으나 운명의 장난인지 대학에서 연기 전공을 하게 됐다. 2000년 연극 ‘셰익스피어의 여인들’로 정식으로 무대 데뷔를 했고, 뮤지컬 ‘그리스’, ‘렌트’, ‘갬블러’에 출연하며 존재감을 알렸다. 2006년 살짝 제정신이 아닌 ‘광년이’ 강자 역할을 맡았던 ‘환상의 커플’이 심상치 않았던 드라마 데뷔작. ‘리틀 샵 오브 호러즈’에서 열연한 그녀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던 드라마 제작자가 징검다리가 됐다.
정수영은 아무리 작은 역할을 맡아도 열정과 열의를 다하고, 이 과정에서 캐릭터 비중을 늘려가는 배우로 이름 났다. 캐릭터를 철저하게 분석·연구해 상의하고, 체화하는 모습에 감복하지 않은 연출자가 없을 정도라고 한다. 강자나 화자 등은 원래 시놉시스에서는 중간에 사라질 수 있을 정도로 존재감이 작은 캐릭터였다. 그러나 정수영의 열정과 열의가 캐릭터에 질긴 생존력을 부여했다. 캐릭터 분석에 대한 질문을 하자 그녀는 “저만 특별하게 하는 게 아니라 모든 배우들이 하는 것”이라면서 “캐릭터를 세게 잡았을 뿐인데 운이 좋은 것 같다.”고 자신을 한껏 낮췄다.
극중 캐릭터가 강하면, 나중에 캐릭터만 기억에 남고, 배우는 잊혀지는 경우가 많다. 정수영은 이곳저곳에서 너무 개성이 강한 역할을 하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들려온다고 웃었다. 그러나 그녀는 “작품에서 배우 자신이 아니라 인물을 보이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면서 “완벽한 연기로 캐릭터에 진실성을 부여하고 작품에 시너지를 불어넣는 게 배우에겐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연기 데뷔 뒤 가장 바쁜 나날이다. ‘내조의 여왕’ 종영 전에는 경기도 양주와 강화도를 오가며 ‘시티홀’과 겹치기 촬영을 했다. 다른 캐릭터를 동시에 연기하기가 힘들지는 않았을까. 화자의 분장을 지우며 그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고, 부미가 되곤 했다는 그녀는 올해 말쯤에는 자신을 비워내는 작업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무대에 섰을 때는 캐릭터를 입고, 벗어버리고, 잠시 사이를 두고 다른 캐릭터를 입는 과정이 있었지만, 요즘처럼 그 틈이 없이 거푸 연기하는 게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나문희 선배님처럼 평생 연기자 되고파”
롤 모델과 꿈을 물었다.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함께 연기하는 선후배들이 모두 롤모델이고 카피 대상”이라면서 “사람의 지문이 다르듯 각자 장점들이 있는데 나는 그것을 흡수해서 내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어 연기는 자신의 인생 길로 정의했다. “나문희, 김을동 선생님처럼 연기가 평생 직업이 되는 게 꿈”이라면서 “호호할머니가 돼서도 연기하는 평생 배우로 살고 싶다.”고 활짝 웃었다.
정수영은 18일 크랭크인하는 영화 ‘하모니’를 통해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다. 이명세 감독의 연출부 출신인 강대규 감독이 처음으로 메가폰을 잡는 작품으로 여자 교도소 내 합창단 을 그리는 감동적인 휴먼 스토리다. 한국판 ‘밴디트’로 보면 되겠다. 정수영은 5명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으로 대선배인 나문희, 김윤진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그동안 방송에선 제대로 알리지 못했던 노래 솜씨를 뽐낼 수 있게 된 셈이다.
지난해 출연했던 영화 ‘죽이고 싶은 남자’는 개봉되지 못하고 케이블 채널을 통해 방송됐다. 때문에 ‘하모니’가 사실상 첫 영화 데뷔작이 되는 셈이다. 인터뷰 내내 초심을 강조하던 정수영은 “언제나 처음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영혼을 불태우고 내던져서 연기를 할 계획”이라면서 “잘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노력하겠다고 약속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