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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南北수석대표 대화 요지

    22일 오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 당국자간 첫 준비접촉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이뤄졌다.분위기 탓인지 양측의 인사말은 20분간 진행됐고,향후 회담에 밝은 빛을 던져주는 덕담도 오갔다.다음은 양측 수석대표 대화 요지. ■양영식(梁榮植) 남측 수석대표 판문점에서 5년9개월 만에 만나서 참으로감개무량하다.한반도의 평화와 화해·협력을 산출하는 귀한 만남이 되기를바란다.세분 (북측)대표가 남북기본합의서 산출에 기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대표 두 명도 결실을 보는 남북회담 현장에 있었다.오늘도 차분하게 대화해서 큰 열매를 맺도록 하자. ■김령성 북측 수석대표 이번 준비접촉은 대표단이 서로 3명이어서 회담이잘될 것으로 믿는다.함께 모색하고 노력하자. ■양 수석대표 준비접촉에 북측이 예상보다 빨리 호응해서 온 세계와 겨레가환영했다. 금강산을 함께 개발했듯 판문점도 앞으로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만들자.평화의 샘터가 되는 판문점이 되기를 바란다. ■김 수석대표 이번 접촉은 출발부터 잘해서 결실을 보는 과정이 되도록노력하자.날씨는 어떻습니까. ■양 수석대표 어제 단비가 촉촉히 내렸다.농사에도 좋다.남북한에 뜻하지않은 산불피해를 보았는데 어제 단비는 좋은 징후다.오늘은 무덥지도 않고쌀쌀하지도 않고 축복받은 날씨다. ■김 수석대표 곡우가 절기로 사흘전이다.이번 비는 곡우 비로 농사에 약비일 뿐 아니라 우리 접촉을 축하하는 축하 비라고 생각한다.올해 4월은 새 천년의 첫봄인 양춘가절이다.북남관계에서도 양춘가절이다.우리의 소명을 잘수행할 것으로 믿는다. ■양 수석대표 4월은 꽃피는 자연의 계절이다.귀측도 문제를 풀고 우리측도김대통령이 베를린선언을 통해 한반도 평화의지가 담긴 4가지 중요 과제를해결하겠다.남북경협 등 공동으로 도울 것은 돕는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더이상 미룰 수 없는 이산가족 문제를 북측도 동감하리라 생각한다.오늘 만남을 계기로 남북관계 변화의 결정적 기틀을 마련하는준비회담이 돼야 한다. ■김 수석대표 북남간 여러 현안을 순조롭게 해결하자.북남 평양 상봉과 최고위급 회담을 통해 수많은현안을 풀고 조국통일을 이루는 획기적 전기를이루는 의의를 갖고 있다.중대사를 해결해 첫 대문을 열자.상부의 뜻을 옳게받들어 모든 문제를 해결하자.온 민족의 관심인 평양상봉과 최고위급회담을성과적으로 하자. ■양 수석대표 남북간 화해와 단합,교류협력,평화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두분정상의 만남 성사를 생각하는 양측의 공감이 벌써 나왔다고 생각한다.합의할 수 있는 것은 합의를 보고 남북이 55년간 단절됐던 만큼 차이 있는 점을인정을 해서 실타래를 푸는 접근을 하자. ■김 수석대표 좋은 말씀이다.준비접촉은 이제부터 새로운 방식으로 하자.타방 입장을 고려해 앞으로 갑론을박을 없애 이번부터 새롭게 하자. ■양 수석대표 어제 기자에게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입장으로 접근하겠다고말했다.(북측 김수석대표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시)서로 이해 못할 것이 없다.김선생 말씀에 공감한다.과거 남북대화는 무화과 나무처럼 잎사귀가무성하고 열매가 없어 저절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열매 맺자는 얘기에 공감한다. 판문점 이석우기
  • 배학복씨 어머니 모교 정신여고에 전재산

    독립운동가이자 여성 계몽운동가인 김마리아(金瑪利亞·1892∼1944)선생의수양 딸인 배학복(裵學福·87)여사가 어머니의 모교인 서울 정신여고에 자신의 마지막 남은 재산인 시가 3억원짜리 아파트를 기탁했다. 배씨는 13일 오후 정신여고 김마리아 회관에서 전교생 4,000여명이 참가한가운데 열린 김마리아선생 56주기 기념 추모예배에서 “나라에 필요한 인재를 기르는 것이 곧 어머니의 뜻”이라며 이 학교 이창배(李暢培)교장에게 공증서를 전달했다. 배씨는 김선생이 동경유학을 마치고 함남 원산 마르다 윌슨 신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을 당시 교사와 제자로 만났으며 이후 김선생이 2·8독립선언과 애국부인회 사건 등 독립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르고 풀려난 뒤 병을 얻어 앓아 눕자 병간호를 하면서 모녀지간으로 발전했다.지난 84년 타계한 인하대 2대 학장인 고 최승만선생의 부인이기도 한 배씨는 지난 1월에는 인하대에 남편의 저서 인세를 모은 1억원을 전달했다. 조현석기자 hyun68@
  • ‘씨랜드 희생’ 참스승 뜻 기려 ‘金永在교육상’ 제정 추진

    “참된 스승의 길을 보여준 김선생님이 다시 살아나셨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6월30일 경기도 화성군 씨랜드 화재사건때 불길에 뛰어들어 마도초등학교 어린이 47명을 구한 뒤 숨진 김영재(金永在·38)교사의 ‘살신성인’(殺身成仁) 정신을 기리려는 추모사업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국민학교’ 명칭을 초등학교로 바꾸는데 큰 역할을 한 교육연구 모임인‘씨알교육연구회’회원 등은 지난달 초 ‘김영재선생 추모 사업회’(가칭)를 발족했다.어린이들에게 참스승의 모습을 몸으로 보여주고 자신의 삶을 마감한 김교사를 한국교육사에 영원히 남게 하기 위해서다.마도초등학교 강경자(姜慶子)교장,김경재(金敬宰) 한신대 교수,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도뜻을 같이하고 있다. 김교사의 희생정신 이야기를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반영하고,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어린이를 도우며,‘김영재 교육상’을 제정토록 하는 것이 목표다.여기에 드는 돈은 전국 15만여명의 초등학교 교사 한사람이 1만원씩,모두15억원을 모금해 충당한다는 계획이다. 씨알교육연구회이치석(李致錫·서울 용두초등학교)교사는 18일 “김선생님의 의로운 행동을 영원히 기리고 어린이들에게 진정한 참된 용기가 무엇인가를 가르치기 위해 추모사업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추모사업과는 별도로 교총은 김교사의 자녀 2명(초등학생)의 학비를 대학교때까지 지급키로 했다. 중·고등학교 때에는 한 학기에 20만원씩,대학교 때는 50만원씩을 주기로 했다. 한편 오는 25일 김교사의 석사학위 수여식(고려대 교육대학원)에는 부인 최영란(崔榮蘭·37)씨가 대신 참석하기로 해 주위 사람들을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장택동기자 taecks@
  •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 (30) 김지하 담시 五賊(중)

    편집장과 시인은 발행인 앞에서 서로 잘 모르는 것처럼 보이려고 좀 서투르게 만지기도 하는 등 이 작품이 빛을 보게 하려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오적’을 읽어 내려가던 부완혁 발행인은 웃음을 억제치 못하면서 “김선생이 알아서 처리 하시죠”라며 미뤄 결국 70년대의 문제작은 바로 5.16특집호에 군부독재 권력을 비판하는 여러 글들과 함께 실리게 되었고,그 인기만큼 빨리 법정에 서게 되었다.한 신문은 사설에서 “담시는 일종의 광가(狂歌),광언(狂言)에 속하는 것”으로,“맹랑한 헛소리”라고 깔아뭉갰다. “그 담시가 우리 국가와 국민 전체를 도매금으로 전면 부정하는 것이라면,그것은 ‘폭력혁명’을 선동하고 북괴도당에 부종하려는 결과로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라고 목청을 돋군 이 사설은 계속하여 “전문되는 바에 의하면담시 작자는 북괴 도당의 대남정책인 ‘전면 부정’의 결의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함부로 붓재주를 놀리는 피해망상에 젖은 노이로제 환자였다고 한다”는,마치 구소련의 정신병동 수감정책과 같은 논리를 폈다.“그작자는 무당이 내렸거나 귀신자귀에 홀린 정신 소유자가 아니면,그 작품은 소위 무당들의 ‘대감놀이’ 넋두리나 미숙한 판소리 흉내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문학작품이 되는지 모르겠다는 극언을 해댔다.이쯤 해도 좋으련만 이 글은“병든 작자의 광언같은 것을 인용 게재”한 신민당 기관지 ‘민주전선’에대해서도 “편집 양식을 일탈한 일”이라고 펄펄 뛰었다.참고로 밝히노라면‘민주전선’은 군부독재 시절에 차마 군부의 부패상은 치고 나설 수가 없어 ‘오적’ 중 ‘장성’에 해당하는 부분만은 삭제하고 나머지만 실었다. 언론이 무슨 짓을 했는지,지금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에 대한 연구는 열심히 이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필화사건 때마다의 사설집만 뽑아 그 필자를 밝혀 내노라면 함부로 붓끝을 못 놀릴 것이다. 어쨌건 ‘광언’ ‘오적’의 ‘노이로제 환자’ 시인을 가둔 당국은 세상이 이 신문 사설처럼 취급해주기를 바랐겠지만 전혀 반대방향으로 흘러갔다.이미 남정현의 ‘분지’로 필화의 경험이 풍부해진 문단에서는 유파와 세대를초월하여 석방의 목소리가 커졌고,시는 삽시간에 전국 단위에서 지구촌으로번져나가 김지하는 한국에서 가장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문인이 되어버렸다. 조태일 시인이 주관하던 시전문지 ‘시인’을 통해 1969년 갓 시인이 된 김지하를 알고 있었던 사람은 서울대 출신을 비롯한 극소수였으나 ‘오적’사건은 그를 분단 이후 최대의 저항시인으로 급부상하게 했다.더구나 막상 공판이 열리고 보니 그는 ‘노이로제 환자’도 ‘무당’도 아닌 탁월한 이론가에다 말솜씨까지 갖춰 자신이 하고싶은 말을 할 수 있도록 변호인이 질문만해주면 되었다.그렇다고 변호인이 들러리였다는 뜻은 아닌 것이 당대의 민권 변호인이었던 태륜기·홍영기·한승헌을 비롯한 여러 변호사가 법정을 뜨겁게 달궜고,방청석에는 함석헌·장준하·안병욱 제씨를 비롯한 문인,민주인사,운동권 출신들이 총집결했다. 대법정에서 열렸던 ‘오적’ 공판은 그의 익살과 달변으로 마치 만담장이라도 된 듯한 분위기 때문에 언제나 초만원이었다.나중에 ‘다리’지 필화 때무죄를 언도하여 화제를 일으켰던 목요상 판사(현 한나라당 의원)가 맡았던이 재판은 나중에 네 구속자와 분리하여 김지하만 별도로 심리하게 되었는데,3개월 쯤 지나자 폐결핵 악화로 김시인은 병보석 되었다.다른 네 구속자들도 시차를 두고 하나씩 풀려나 사건이 마무리 되는가 싶었으나 그 해 9월 26일 유서 깊던 ‘사상계’는 문공부로부터 등록 말소처분을 받았고,김지하 시인은 간헐적으로 불구속 상태에서 이 재판을 계속 받아야만 했다. 김시인은 5.16이후 한국사회를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보면서 그 최고수를 재벌,국회의원,고급공무원,장성,장차관이란 다섯 직종으로 지목했다.그는 이부패의 직종을 알기쉬운 한글로 표기한 게 아니라 웬만큼 유식한 인사가 아니면 알아볼 수 없도록 옥편을 갖다놓고 같은 음을 찾아 이두식으로 꿰어 맞췄는데,되도록 개견변(犬 )이 들어있는 한자를 선호했다.다섯 도둑들은 사람이 아니라 개같은 짐승이라는 이미지를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任軒永 문학평론가]
  • [굄돌] 그 초등 평교사 선생님

    어느덧 천직이라는 교단에 선 지 벌써 30여년이 지나갔다.그 사연 많은 천둥소리 같은 시간 속에 나를 한번 뒤돌아본다.과연 나는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선생이었나,있으나마나한 선생이었나,아니면 쓸모없는 선생은 아니었나. 생각하면 할수록 뭉클뭉클 부끄럽기 그지없다. 옛날부터 선생님은 부모님과 같이 우러러 존경했다.더욱이 선생은 자기 자식한테까지도 알려주지 않는 비법의 가르침을 줄 정도로 사제관계가 귀중했다.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사제지간의 불상사는 황금만능주의에 치우친 일부 정신 상태를 대변해 준다.선생다운 선생,제자다운 제자가 그리운 세태다. 선생다운 선생 두 분을 소개하고 싶다.전북 임실군 운암면 마암리에 있는운암초등학교 분교.전교생 18명에 선생님이 3명,그중 1명이 시인 김용택 선생,학생들이 쓴 시를 모아 펴낸 동시집‘학교야,공차자’를 졸업기념선물로전교생에게 한권씩 주었다. 마암분교 학생들이 시를 쓰게 된 것은 3년전 김선생이 이곳으로 부임하면서부터다.그는 매주 토요일 한 시간씩 아이들에게글짓기를 시켰다.순박한 농촌아이들의 맑은 시심이 김선생과 더불어 지금도 봉숭아마냥 자라고 있다.그는 그렇게 고향에서 분교를 돌며 평교사로 죽비소리처럼 오롯이 자리잡고 있다. 제2건국위원회 TV광고모델 서울 삼광초등학교 이옥례 선생이 49년간의 교직생활을 마감하고 정년 퇴직했다.이선생은 한평생을 평교사로 지내온 최고참선생이었다.‘교육자로서 원없이 일했기 때문에 후회가 없다’는 게 이선생의 퇴임 소감. 조촐한 퇴임식을 가진 뒤 공익광고에 나와 받은 모델료 5백만원을 학교에내놓았다.또 평생 모은 행운의 상징 네잎 클로버를 종이에 붙이고‘세사재심(世事在心)’이라는 낙관을 새긴 뒤 코팅처리한 책갈피로 학생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이러한 촛불 같은 선생이 우리나라 곳곳에 많이 숨어있어 인간의 기본이 바로서고,나라가 바로 서는 것이 아닐까. [홍희표 목원대교수 시인]
  • 연극놀이 ‘죽은 시인의 사회’

    교사극단 ‘연극놀이’가 10대들이 겪고 있는 고민과 입시,사랑 등 청소년 문제를 그린 작품. 톰 슐만 원작이 가진 청소년들의 방황과 좌절을 우리네 실정에 맞게 재구성한 무대로 교육일선에 있는 교사들이 학생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라 특히 눈길을 끈다. 신세대 국어교사 ‘김광’의 부임으로 획일적인 교육에 억눌려온 학생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된다. 한 학생의 자살로 김선생은 학교를 떠나게 되지만 이미 새로운 세계를 접한 학생들은 종전과는 다른 성숙한 삶을 생각하게 된다. 일선교사들이 주축이 돼 96년 구성된 ‘연극놀이’는 학교교육의 한계를 극복할만한 무대를 만들겠다는 창단 취지에 걸맞는 공연을 방학을 이용해 실시해왔다. 10∼12일 국립중앙극장 소극장.(하오 4시,7시)764­3375
  • 독립유공자 125명 새로 확인/보훈처 훈·포장 수여

    ◎이석인 선생 등 생존4명 포함 국가보훈처는 15일 제52주년 광복절을 맞아 국내외에서 조국 광복을 위해 활동한 독립유공자 125명을 새로 확인,훈·포장을 수여했다. 상훈별로는 건국훈장 독립장 4명,애국장 13명,애족장 32명을 비롯해 건국포장 56명,대통령 표창 20명 등이다.이 가운데 현재 생존해 있는 애국지사는 이석인 선생(83) 등 4명이다.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이선생은 조선어학회 사건의 마지막 생존자로,지난36년 조선어학회 기관지 ‘한글’의 편집을 맡았으며 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고 김호 선생은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파견원으로 미국 서부지역에서 독립의연금을 모금하고 한인 국방경위대인 맹호군 창설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완간된 백범일지에 임시정부 후원자로 명단이 등재된 김선생 등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은 19명은 하와이 등 미주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한 공적을 인정받았다. 또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고 김필순 선생은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나 세브란스의전을 졸업한우리나라 최초의 의사로 만주 흑룡강성에 병원을 설립,이동령 선생 등과 독립운동을 했다.
  • 오태석씨 대표작 「태」 11년만에 재연

    ◎단종을 폐위시키고 왕위오른 세조이야기/새달 6∼20일 국립극장서 「또다른 해석」 작가 겸 연출가 오태석씨(57)가 대표작 「태」를 11년만에 다시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오는 3월6일부터 20일까지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될 「태」는 지난 74년 초연된 작품.70년대는 오씨가 거세게 몰아닥치는 서구식 연극에 등을 지고 우리 어법과 정서를 탐구한 연극을 하나씩 올려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던 때다.73년 「초분」에 이어 발표한 「태」도 당시 우리 연극계에 새로운 연극기법을 제시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 연극은 이후 여러번의 재해석 작업을 거친 뒤 지난 86년 아시안게임때 공식초청작품으로 공연했으며 88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공연,NHK방송을 통해 일본 전역에 한국어로 방송되기도 했다. 「태」는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른 세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세조의 주위에는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죽음에까지 이른 사육신과 살아서 벼슬을 마다한 생육신,그리고 이미 폐위된 단종에게 사약을 내려 후환을 없애자고 주장하는 신숙주 등이 있었다.엎치고덮치는 혼란의 순간.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군신들의 이야기로 세조는 판단력을 잃어간다. 세월이 흘러 초기왕정의 어지러움이 가시고 역사는 명분을 따라 흘러간다.하지만 이 와중에 화를 입은 많은 사람들의 희생은 무엇으로 보상받을 것인가.오태석은 면면히 이어지는 생명의 끈인 「태」의 의미를 역사의 혼란기를 배경으로 그려낸다. 초연당시 고 만정 김소희가 맡았던 「한의 소리」를 이번 무대에서는 김선생의 제자 안숙선이 맡아 생명의 이어짐을 소리에서도 전한다. 장민호 오영수 김재건 등 국립극단 단원들이 대거 출연한다.274­1151∼8.
  • 국악계 원로 김천흥옹 회고록 출간/내일 출판기념회

    한국무용사의 산 증인이자 국악계의 대원로인 김천흥 선생(86)이 회고록 「심소 김천흥 무악70년」을 최근 출간했다. 회고록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인 종묘제례악과 제39호 처용무의 예능보유자인 김선생이 19 22년 이왕직 아악부원 양성소 2기생으로 입소한 이래 지금까지 겪어 온 개인사 및 한국음악과 무용의 현대사를 담고 있다. 『크림과 박가분을 바르고 순종황제와 윤황후 앞에서 춤을 춘 기억이 생생하다』는 김선생은 15세이던 19 23년 창덕궁 인정전의 어전 연주회에서 무동으로 춤을 춘 이래 지난 92년 「무악생활 70년 기념공연」에 몸소 출연해 명무의 기량을 선보이기까지 70평생을 오로지 춤과 음악에 바쳐왔다.현재도 하와이대 초청 객원교수·예술원 회원·국립국악원 원로사범·정농악회 회장 등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회고록 출판기념회는 14일 하오 6시30분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에서 열린다.
  • 장백현의 아침(압록강 2천리:1)

    ◎백두산 병사봉 아래서 압록강 발원…/백두산 자락 오솔길엔 아픔드리 나무숲/상류에 163개 작은 섬… 92개는 북한 소유 서울신문은 광복 50주년을 맞아 압록강유역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 민족의 삶을 진솔하게 그린 「압록강 2천리」를 중국 연변 조선족 작가 유연산씨의 집필로 주 1회씩 연재합니다.서울신문 사진부 김명국기자와 동행한 작가는 민족의 개척정신이 면면히 이어진 이른바 서간도땅 압록강유역을 굽이굽이 누비면서 소수민족으로 살아온 동포들의 애환을 소설보다 흥미롭게 엮어나갈 것입니다.그리고 압록강의 대안북한땅을 예의주시하는 가운데 가지 못하는 산하의 모습과 북녘 사람들의 근황을 듣고 본대로 전할 예정입니다.특히 압록강유역은 고구려가 발흥한데 이어 발해가 기상을 떨친 우리 고대국가의 강역이었다는 점에서 역사기행 성격도 지닌 시리즈가 될 것입니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주정부 소재지 연길에서 장백현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중국 동북의 대지를 박차고 막 솟아오른 8월의 태양과 동행한 버스가 백두산 자락이 드리우기 시작한 안도현 이도백하에 이르자 벌써 한낮이 기울었다.갑자기 해를 가린 아름드리 나무그늘로 하여 길은 저녁나절 처럼 어둠침침했다.백두산의 그 많은 나무 가운데 미인이라는 홍송과 백송,사시나무가 어우러진 산자락에는 만화방초가 피어났다. 여름날 백두산 숲길은 참으로 아름다웠다.얼마를 달렸을까,종종걸음을 치듯 골짜기를 흘러내려온 물이 신작로 곁을 따라 철철 넘치듯 모여들었다.압록강 윗물을 만난 것이다.불타는 석양이 미인송의 아름다운 자태를 그림자로 만들어 버린 해거름녘이었다.터덜거리는 버스가 달려 내려갈수록 물빛깔은 푸르름을 더했다.녹음이 짙을대로 한창 짙게 물들어버린 나무 그림자가 수면과 기묘하게 조화되었다. ○홍·백송 어우러 장관 그제서야 압록이라는 의미를 깊이 깨달았다.압록강의 물빛이 오리머리 빛과 같이 푸른 색깔을 하고 있다(수색여압연)란 말을….「동국여지승람」에 나온다.그리고 「사기」나 「한서를 보면 압록강을 패수,염난수,청수라고 불렀다.고구려에서는 청하라고도 했고 중국에선 얄루장으로 부른다.어떻든 이 국경의 강은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다. 장백조선족자치현의 현정부 소재지 장백진에는 좀 늦은 저녁시간에 도착했다.여관에서 저녁밥상을 물리고 미리 약속한 김학현(60)선생을 만났다.그는 길림성 장백조선족자치현 문화관장으로 근무중인데 변계조사조의 일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그러니까 김선생은 중국과 북한 사이에 체결한 변계조약(변계조약·국경조약)에 따라 1963년에 실시한 경계조사에 참여했던 것이다. 국경에 관한 이야기를 밤이 늦도록 나누었다.그러나 백두산 천지 아래서부터 시작된 국경조사와 거기에 얽힌 사연은 다음기회로 미룰 수 밖에 없다.그 이유는 김선생의 말을 들어보면 납득이 갈 것이다. ○여름 장마로 길 끊겨 『백두산 국경비는 천지서남쪽 바로 아래에 있디요.맨 위에서 부터 일련번호를 매겨 내려오는데,1호가 3개,2호가 2개고 나머지 5호까지는 각각 1개씩을 세웠댔습니다.그러니끼리 모두 8개의 국경비가 있다 이 말입네다.그 국경비가 있는 백두산을 가자면 중국쪽 초소는 물론 조선(북한)쪽 초소도 지나가야 하디요.그런데 올 여름 장마에 길이 다가 떠내려가서리 지금은 도저히 올라갈 수가 없이요.도로가 복구되면 안내할테니 좀 기다리시라요.실사구시라고 현장을 안보고 백두산 국경을 어떻게 쓰겠습네까?』 그래서 백두산 국경선 답사는 일단 뒤로 미루었다.자동차를 타지않고 높디높은 백두산,그것도 국경 고산지대를 도보로 등반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김선생에게 뒷날 백두산 국경비답사에 동행해줄 것을 부탁하고 마음을 고쳐먹었다.물길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장백진에 기왕 도착했으니 이곳에 우선 관심을 두기로 작정을 댄 것이다.올라가지 못할 나무 바라보지도 말라고 했던가.길이 떠내려가 못 오를 산을 포기하고 우선 이곳의 압록강 답사에 신경을 쏟기로 했다. 압록강은 널리 알려진대로 백두산 최고봉인 병사봉아래 남동쪽에서 발원한다.처음에는 작은 시냇물을 형성하여 흐르다가 가림천과 오시천이 합수하면서 물길이 넓어진다.그러니까 장백진은 물길이 넓어진 압록강변에 자리했다.압록강은 장백진을 지나면 서쪽으로 흐름을 바꾸어버린다.그러면서 얼마를 흐르면 수력발전으로 유명한 장진강과 허천강을 만나는 것이다. ○강넘어 북한땅 함남 장백진을 지나가는 압록강 길이는 2백57㎞에 이른다.6백리가 좀 넘는 길이인데,압록강 전체 길이의 3분의1에 약간 못미친다.변계조사에 참여한 김선생에 따르면 장백현을 통과하는 압록강 상류 수계에는 섬과 사주가 1백63개나 된다고 한다.그 가운데 중국에 들어온 것이 71개이고 나머지 92개는 북한에 귀속되었다는 것이다.이렇듯 수계를 통한 국경개념이 뚜렷해지면서 웃어넘길 수 없는 일들도 일어난다는 것이 김선생의 귀띔이다. 『강에 있는 섬들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 때가 더러 있습네다.자기 나라 땅이거니 하고 무심히 발을 디뎠다가 기절초풍을 하는 수가 있디요.내 한족 친구 한 사람은 일생에 딱 한번 외국땅을 밟았는데 그것이 압록강 조선(북한)수계에 들어간 섬이었댔습니다.무심히 섬에 올랐더니 옥수수를 따던 조선사람들이 어서 돌아가라고 손짓발짓을 해서 도망쳐 나왔다고 합데다.국경은 그만큼 무서울 때가 있고,자칫 잘못하면 죄인이 되기도 하디요』 김선생과 밤 늦도록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그런데도 새벽에 해발 2백80m가 되는 탑산에 오를 요량으로 일찍 일어났다.탑산에 오르고 나서 장백현에서,아니 좀 더 시야를 넓히면 백두산에서 뜨는 아침해를 맞았다.새벽 어스름이 걷힌 압록강이 확연하게 시야로 들어왔다.그리고 강 건너로 옛 함경남도 땅인 북한의 양강도 혜산진시가지와 그 뒷산 멀리에 펼쳐진 개마고원의 옹기종기한 묏부리들이 보였다.
  • 선생님의 「스승의 날」/서울교대부국 김용한 교사

    ◎국교시절 스승 찾아뵙기 5년/카네이션 달아드리며 사제의 정 확인/“제자에 「참된 교육자」로 기억되고 싶어” 15일은 14번째 맞는 스승의 날. 40년전 코흘리게 시절,「사람의 도리」를 가르친 옛 스승을 늘 가슴에 간직하고 살아가는 서울교육대부속국민학교 김용한(48·서울 양천구 목동) 교사는 이날의 감회가 남다르다. 『선생님의 따스한 눈길과 흐트러짐 없는 기품은 후학을 가르치고 있는 저의 사표입니다』 김교사는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14일 대구국민학교 2학년때 담임이던 송계호(64)선생이 여전히 평교사로 일하고 있는 양천구 신월동 세곡국민학교를 찾았다.이날이 일요일이라 손쉽게 약속을 하고 집을 나섰다. 50의 나이를 눈앞에 둔 제자는 손수 정성스레 만든 카네이션을 스승의 옷가슴에 달아 드리며 손을 잡았고 노 스승은 해마다 이맘때면 잊지 않고 찾아오는 제자의 등을 어루만졌다. 『선생님의 교육철학은 정직이었습니다.거짓은 용서하지 않되 솔직한 행동은 칭찬을 아끼지 않은 참교육자의 모습으로 남아있습니다』 제자의 고마운 말에 스승은 『김군은 어릴적부터 친구들 사이에 책임감이 강하고 남을 앞세울 줄 아는 모범생이었다』고 회고했다. 이들이 다시 만난 것은 지난 91년부터.74년 서울교육대를 졸업하자마자 교사의 길로 들어선 김선생은 숱한 어린 학생들과 부대끼면서 교육자의 길이 얼마나 험난한 것인지를 새삼 몸으로 느꼈다.교육자로서의 어려움이 커질수록 아련하게 남아있던 옛 스승의 모습이 절실하게 떠올랐다. 어려운 처지의 제자들을 일일이 집까지 찾아다니며 격려를 해주고 박봉까지 쪼개며 조무라기들의 조그마한 선행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던 스승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는 백방으로 옛 스승을 수소문했으나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몇몇 학교까지는 추적됐으나 더이상은 알아내기가 어려웠다. 스승이 몸이 편치않아 몇해 쉬는 공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91년 교사모임인 「국어과연구회」에서 마침내 송선생이 아직도 교편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김교사는 『세태가 많이 달라져 사제의 정이 갈수록 메말라 가는 것 같아 가슴아프다.더구나 촌지문제등 교직사회의 삐뚤어진 모습이 부각될 땐 더욱 우울해 진다』고 말했다. 김교사는 세상이 어수선해질수록 옛 스승의 「참된 가르침」을 더욱 되새기게 된다고 말했다. 『내가 옛 스승을 못잊어 하듯 내가 가르친 학생들이 훗날 「참된 교육자」로 나를 기억하도록 하고 싶다』는 김교사는 『선생님이 정년퇴직할때는 옛 친구들을 모두 모아 조촐한 축하연이라도 베푸는게 조그만 소망』이라고 밝혔다.
  • 거의 연애결혼… 신랑집서 예식(“살양말 신어보는게 꿈”:하)

    ◎재봉틀이 호화혼수… 폐백풍습은 사라져/신혼여행 안가고 바로 시댁에 살림 차려/여성 흰색블라우스·주름치마·중국제허리띠 유행 내가 북한을 떠나 오면서 챙긴 짐속에는 91년 회상유치원 교양원 생활을 시작하면서 지어 입은 까만색 양장이 한벌 있다. 내 월급의 4배가 넘는 4백원이란 거금을 주고 감을 떠다 지어 입은 것으로 최근까지도 고상한 멋이 있다하여 유행하던 옷이다.겨울마다 즐겨 입어 애착이 갔지만 중국에서 우리를 도와준 김선생집에 두고 왔다.서울에 가져왔어도 입기에는 좀 어색하겠지만 언젠가 찾아 입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평양선 긴치마 인기 북한여성들 사이에도 옷과 머리의 유행이 있다.내가 살던 함흥에서는 겨울철엔 까만색 한복과 양장이 인기였다.양장치마로는 주름치마를 많이 입는다.요즘에는 흰색블라우스에 주름치마를 입고 그위에 중국제 허리띠를 매는 바람이 처녀들 사이에 한바탕 불고 있다. 허리띠는 천으로 만들어져 입으면 주름이 생기기때문에 집에서 고무줄을 넣어 사용한다.값은 한개 35원으로 큰 맘 먹지 않으면 사기 힘들다. 「헛가다」라고 서양식 추세(유행)를 좇아가는 젊은이들이 있는데 남자는 헐렁헐렁한 옷을 입고 여자는 평양처녀들 사이에 유행한다는 긴치마를 입는다. 처녀들의 머리모양은 나처럼 생머리로 길러 묶거나 머리띠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처녀 「헛가다」들은 머리를 짧게 자르고 파마를 하는 등 별스럽게 하기도 한다. 북한에서 여성들이 여름에 살양말(스타킹)을 신기 시작한 것은 지난 89년 임수경언니가 평양을 다녀간 이후부터였는데 그때 우리 친구들은 모여서 『더워 죽갔는데 양말은 무슨 양말』이냐며 비아냥 거렸었다. 우리는 임수경언니를 두고 『남조선에서 자랐는데 어떻게 저리 키 크고 얼굴도 좋고 지식도 높나』하면서 남한사회 현실에 대해 그동안 들어온 것이 거짓이 아닌가 하고 수근대기도 했다. 어쨌든 그후 한 켤레 20∼40원하는 중국제 살양말을 멋내기 좋아하는 처녀언니들은 몇달치 월급에서 뗀 돈으로 사 신었는데 나한테는 그림의 떡이었다. 북한에서는 중매결혼은 거의 없고 연애결혼이 대부분이다.여자나이 21세가되면 결혼을 신중하게 생각한다.여자나이 22세이면 금값,23세 은값,24세는 동값 처녀로 부른다.25세가 넘어가면 늙은처녀로 분류돼 중매가 오가도 신랑쪽에서 『그만 두자』하는게 보통이다.남자는 25∼27세에 결혼한다. 처녀들 사이에서는 「군당지도원」을 최고의 신랑감으로 꼽는다.군당지도원이란 군대를 갔다 왔는가,당원인가,지식이 있는가,도덕적으로 깨끗한가,돈이 있는가를 뜻하는 말이다.전문학교나 대학을 나오면 「지식이 있다」고 본다. 북한에도 사람사는 사회인만큼 고부간 갈등도 있고 올케·시누이 사이가 나쁜 경우가 많다.이 때문에 생긴 은어가 「벼룩이 닷되」,「염소」등이다. 「벼룩이 닷되」라는 말은 시누이 한명을 뜻하는데 『그집에 벼룩이 닷되 있는가?』고 물어 『10되 있소』하면 시누이가 두명 있다는 뜻이 된다. 「염소」는 시아버지를 지칭하는 말이다.처녀들은 신랑이 「군당지도원」이면서 집안에 「벼룩이 닷되」와 「염소」가 없는 곳으로 시집가는 친구를 가장 부러워한다.남자들이 원하는 배우자는 공장에 다니는 노동자보다 판매원,접대원,유치원이나 탁아소·교양원등 자격증을 가진 생활력 있는 여성이다. ○25살 넘으면 노처녀 대체로 결혼식날 신부집은 울고 신랑집은 웃는다.결혼식은 신랑이 신부집으로 와서 잔칫상을 받고 부모와 사진을 찍은뒤 신부를 데리고 시댁으로 가는 형식으로 치러진다.신부는 친정을 떠나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고 딸을 보내는 친정엄마도 운다.북한에서는 신부가 울어야 교양이 있다고 한다. 2년전만 해도 신랑이 신부를 데리러 갈때는 승용차를 타고 갔으나 지금은 차도 없고 기름도 부족해 가까운 처갓집은 걸어서,먼 곳은 화물차를 타고 가 데려온다.오는 길에 김일성 동상에 들러 친구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것도 중요한 절차에 속한다. 신랑집에 도착하면 문앞에서 기다리던 시부모에게 허리숙여 인사하고 친지들과 함께 차려진 상에 앉아 사진을 찍는다.전에는 동네사람들과도 함께 사진을 찍었으나 2∼3년전 김정일로부터 결혼식을 검소하게 하라는 방침이 내려지면서 친지들만 상에 앉는다.폐백은 드리지 않는다. 결혼식장 분위기는 상당히흥겹다.녹음기에서 보천보 전자악단의 「도시 처녀 시집와요」「축복하라」「축배를 들자」등의 경음악이 흘러 나오면 모두 일어나 덩실덩실 춤도 추고 돌아가며 노래도 부른다.신랑신부가 결혼식날 가장 많이 부르는 노래는 결혼잔치를 다룬 영화 「나의 사랑,나의 행복」과 「반갑습니다」「통일무지개」등이다. 신혼여행은 가지 않고 바로 시댁에 신방을 차린다.주택사정이 나빠 신혼부부들은 집이 나올때까지 시부모,시동생들과 한집에서 산다. 집이 좁아 결혼하자마자 별거하는 신혼부부도 있다.나와 함께 회상유치원에서 교양원으로 근무하던 김정애언니는 지난 3월초 보위부에 근무하는 청년과 결혼했으나 남편과 떨어져 살고있다.토요일 저녁에만 동흥산구역에 있는 시댁으로 가야 하는 주말부부다.신랑이 맏아들이지만 방 두칸 집에 시부모,먼저 결혼한 둘째 내외,시누이 3명이 모여 살기때문이다. 시내에서 50리 되는 길을 걸어서 다니느라 무척 힘들지만 시동생부부를 나가라 할 수 없어 집이 배당될 때까지는 참을 수 밖에 없다고 했다. ○화물차 타고시가로 우리는 지난해까지 아파트에서 살다가 텃밭이 있는 단독주택으로 이사했다.윗방,아랫방,부엌,세면실로 된 집이었는데 겨울에는 탄을 때도 윗방까지 온기가 안가 다섯식구 모두 아랫방에서 줄줄이 누워 잤다. 혼수로는 사발,그릇,수저10벌정도와 양동이등을 사가고 시아버지에게는 양복감을,시어머니에게는 양장감이나 스웨터를 사간다.시동생들에게는 양말이나 스프링(런닝셔츠) 학생셔츠를 준다.일반인들에게 가장 고급스런 혼수는 마선(재봉틀)인데 국산은 없고 3천원짜리 중국제가 장마당에서 판매된다.워낙 비싸 마련해가는 사람이 드물다.냉동고(냉장고)나 세탁기등 가전품도 마찬가지다. ○남존여비사상 강해 신랑이 신부에게 해주는 것은 삐아스라고 부르는 분크림(파운데이션)과 입술연지 눈썹연필등 화장품과 머리수건,봄·가을용 양장감이다. 남아선호 사상이 강해 아들을 볼때까지 자식을 줄줄이 낳는 사람도 있다.그래서 둘째딸은 개딸이라 부르기도 한다.늙은이(북한서는 보통 노인들을 이렇게 부른다)들이 아들부부에게 계속 출산을 요구하는반면 요즘 젊은부부들은 둘만 낳고 말려는 경향이 강하다. 아이를 낳으면 미역국을 먹고 금줄은 달지 않는다. 「남존여비」사상도 강하다.서울에 와서 새세대 남자들이 설거지도 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북한의 남자들은 자기 양말짝 하나도 빨지 않는다. 하지만 집안의 경제권한은 일정치 않다.여자가 세면 여자가 갖고 남자가 세면 남자가 돈관리를 한다. 이혼하는 부부도 종종 있다.배우자가 「바람재」(바람둥이)이거나 성격문제,고부갈등 등이 이혼사유가 된다.예전에는 재판을 걸면 대부분 이혼이 성립됐지만 최근에는 당에서 『웬만하면 마음을 맞춰서 계속 살라』고 권하기도 한다.
  • “김대중씨 납치범은 중정요원”/당시 용금호선원 조시환씨 회견

    ◎“새벽 2∼3시경 비행기 떠 살해기도 실패/윤진원씨가 총책… 사례금 2백만원 받아” 지난 73년 8월8일 일본 도쿄에서 납치된 김대중씨가 한국까지 실려온 것으로 알려진 「용금호」의 선원이었던 조시환씨(65·부산 사하)가 9일 하오 국회 민주당 원내부총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최초로 당시의 상황을 증언했다.조씨는 당시 용금호의 조리장으로 승선하고 있었으며 현재는 부산 사하구에 살고 있다.조씨는 사건후 다른 배의 선원으로 일본에 갔을때 일본 경시청의 조사를 한차례 받았다고 밝혔다. 다음은 조씨가 밝힌 당시 상황. ▷용금호◁ 원래 미군수송선으로 중앙정보부에서 인수한 공작선이었다.용금호 선원이 될때 가족들에게도 말하지 말도록 지시를 받는 등 중앙정보부 선박인줄 알고 있었다.납치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석탄등 화물을 주로 날랐다.납치사건후 부산 남항조선소에서 페인트를 새로 칠하고 김선생을 가둬두었던 닻 보관창고 구멍을 땜질하고 이름도 유성호로 바꿨다. ▷출항◁ 부산에서 출항했으며 출항시 선원은 11명이 탔고 정보부요원 2명이 승선했으며 이들은 김과장·정과장으로 통했다. ▷김대중씨의 용금호 승선◁ 오사카외항에 정박한뒤 정보부원 정과 김,조기장 김광식과 2기사 정순남등 4명이 상륙해 하루저녁 있다가 밤에 보트를 타고 왔다.보트가 용금호에 접선하자 사다리를 내려서 김선생을 올렸는데 선생은 결박당하고 눈을 가린 상태였고 로프로 묶어 끌어당기는 것을 배위에서 지켜보았다.처음보는 순간 김대중선생인것을 알았다. ▷감금장소◁ 선미에 있는 나다실(닻을 넣는 장소)인데 눈을 가리고 두손을 뒤로 묶어 놓았으며 한명이 걸상을 놓고 감시하고 있었다.나는 3차례 김선생을 접촉했다.처음에는 밥을 갖다주었는데 안먹겠다고 해서 다시 미숫가루를 타서 갖다 드렸더니 조금 드셨다. 식사는 아침 저녁만 제공했고 소변도 내가 받아드렸다.경비가 심해 말은 못하고 『고생되시겠습니다』라고만 했다. ▷항해 상황◁ 오사카에서 오다가 새벽 2∼3시쯤 3시간정도 정박했다.아마 그때 살해하려 한다는 것을 육감으로 느꼈다.비행기가 떠서 일을 못한것 같다.비행기가 떴다고선원들이 막 그러는데 나는 식사준비를 하느라고 배밑에 있어 소리는 듣지 못했다.그러나 다알고 있었고 갑자기 배가 요동을 치며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부산항 도착◁ 부산외항의 조선소와 세관사이에 정박하여 이틀동안이나 못나가게 했다.이후 강제로 선원을 다 내려 보내고 정보부원들만 남았다. ▷사건이후 상황◁ 용금호에 타지 않았던 윤진원씨가 총책임자였는데 그사람 주관으로 사건후 두차례 회식을 했다. 나는 이후 정보부에서 알선한 배에 승선하지 않고 일본배로 해외에 나갔기 때문에 압력은 없었다.그러나 선원 김광식은 대만에 갔다가 강제로 비행기에 태워져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선원들이 사례금으로 3백만원씩 받았다고 해서 나는 귀국해 하얏트호텔 근처의 윤진원씨를 찾아갔다.윤씨는 내가 다른 선원들과는 달리 배를 탔으니 2백만원만 받고 영수증은 3백만원으로 쓰라고 요구해 그렇게 했다.당시 납치사건에 관련된 김광식·정순남은 다른 선원과 달리 엄청난 사례금을 받고 잘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행적은 알수 없다.
  • 참견은 노­사랑은 오예­/어른보다 어른스런 어린이 삶 그려

    ◎부모·선생님에 저항않고 자신들 꿈이뤄/절제된 대사·화면 처리… 구성도 뛰어나 태흥영화사(대표 이태원)가 여름방학을 겨냥해 만든 「참견은 노­사랑은 오예­』는 어린이 영화지만 어른들이 보아야 할 영화다.어린이 영화는 으레 유치하고 과장되거나 훈시적일 것이라는 인식을 여지없이 깨뜨린다. 하루에 학원 서너곳을 다녀야 하는 어린이들이 부모와 선생님들의 몰이해와 간섭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꿈의 상징인 야구부를 결성하기까지의 건강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어른들의 요구와 논리에 저항하지 않는다.오히려 어른보다 더 어른스럽다.갑갑해 하고 상처받고 아파하면서도 스스로의 노력으로 어른들을 이해시키고 자기들 편으로 끌어들인다. 여기에 그시절 누구나 한번쯤 가져봄직한 첫사랑의 감정과 우정,담임 최선생(김혜선분)에 대한 체육교사 김선생(신현준분)의 짝사랑이 어우러져 재미를 더한다. 이 영화는 억지 웃음을 만들지 않는다.구구한 설명을 붙이지 않고 절제된 대사와 화면,탄탄하고 짜임새있는 시나리오로관객 스스로가 재미와 감동을 느끼도록 한다.깔깔대고 웃다가 콧등이 시큰한 장면을 여러군데서 만나게 된다. 특히 투수로서 자질이 있으면서도 부모님들의 반대로 야구를 하지 못하는 병수(김철형분)와 야구를 하도록 권유하는 기호(서재경분)가-이들은 상희(김은미분)를 사이에 둔 연적(?)관계이기도 하다-싸우다 함께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장면,아이들이 어렵게 야구부를 결성해 후배들에게 넘겨주는 졸업식 장면에서는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어린이들의 연기도 평소 생활에서 우러나오는만큼 자연스럽고 깜찍하다.모신문사의 현역기자가 야구심판으로 나와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충무로에서는 어린이 영화를 백안시하는 경향이 있다.가벼운 소재인만큼 신인감독들이나 맡는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그래서 「영웅연가」 「시로의 섬」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등을 연출해 역량을 인정받은 김유진감독이 이 영화를 맡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부 영화인들은 『왜 어린이 영화를 만들려고 하느냐』고 만류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감독은마구잡이로 옷을 벗기고 눈물이나 짜내게하는 몰가치한 성인영화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우리의 피부에 와닿는 「가족영화」를 만들었다. 촬영은 정일성씨가,음악은 인기가수 김수철씨가 맡았다.주제곡 「월화수목금토일」은 음반으로도 출시된다. 2년여의 각고끝에 이 영화를 만든 김유진감독에게 박수를 보낸다.17일 국도,미도파 시네마,힐탑 시네마 개봉예정.
  • 의병장 김성일선생 논문집 발간/순국 4백주년 맞아 「학봉…」재조명

    임진왜란 당시의 학자이자 의병장이었던 학봉 김성일선생(1538∼1593)을 재조명하는 논문집 「학봉의 학문과 구국활동」이 나왔다.이 논문집은 학봉선생의 순국 4백주년을 맞아 「학봉김선생기념사업회」(회장 김홍식)가 주관해 발간한 것. 학봉선생은 임진왜란 직전인 15 90년 통신부사로 일본에 갔다온뒤 『왜가 반드시 침입할 것』이라는 정사 황윤길과는 달리 민심을 우려해 『왜가 군사를 일으킬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고 했던 바로 그 인물.이 논문집에는 통신사로 파견됐던 당시 학봉선생의 민족의 기개를 지키려던 노력과 난이 일어난뒤 의병으로 종군하다 순국한 구국정신,퇴계선생 문하의 학자로 남긴 업적을 정리해 그에 대한 후대의 평가를 바로잡고자 했다. 이 논문집에는 이우성의 「학봉전집의 일고찰」과 이재호의 「경상우도에서의 학봉의 토적구국활동」,송재소의 「학봉의 의리정신과 기행시에 나타난 검의 이미지」 등 중진학자의 논문 15편이 실려있다.여강출판사간.
  • “아빠! 빨리 자수하세요”/이진희 사회1부기자(현장)

    ◎부정입시 수배자의 딸,졸업식서 눈물만 『아빠,자수하고 떳떳하게 살아요』 12일 하오2시 서울 선일여중 졸업식장.졸업장을 들고 식장을 빠져나오던 정모양(15)은 꽃다발을 안고 혼자 서 있는 어머니 박모씨(36)를 보는 순간 아빠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정양의 아버지는 93학년도 국민대입시에서 제자에게 대리시험을 치르게 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성수씨와 함께 수배중인 대일외국어고등학교 교사 정인석씨(39),『공부를 못해도 건강하고 정직하게만 살면 된다고 항상 말씀하시던 아빠가…』 정양은 어느날 갑자기 행방불명된 아버지가 돈 때문에 양심을 판 교사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신문보도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어머니에게서 『김선생님으로부터 한달에 20만∼30만원씩 받아썼다』는 말을 듣고는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아빠는 그럴리가 없는데…』 뇌리속에는 평소 검소하고 정직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곰곰 생각해보니 아버지는 91년 목동의 대일고등학교에서 대일외국어고등학교로 전근하면서 조금씩 달라진 것 같았다.전근과 함께 부천에서 서울 은평구 갈현동으로 이사온 정씨가족은 김씨집과 가까워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됐다.한달에 한번쯤 김씨가 한턱 내는 저녁을 가족들과 함께 하기도 했다.학교 오갈때만 김씨와 함께 차를 타고다니던 아빠가 지난해쯤부터 김씨의 전화만 오면 차를 끌고 나가 이상한 느낌도 들었다.정양은 급히 나가는 아버지에게 『아빠가 개인운전사예요,툭하면 오라가라 전화하면 사장모시듯 집까지 바래다주고…』라며 불평하자 『김선생님에게 신세를 지고 있는데 그런말 하면 못쓴다』고 타이르시던 아버지 얼굴을 떠올렸다. 『우리집을 갖는게 소망이었지만 아빠가 본래의 모습을 잃고서까지 얻고싶은 것은 아니었는데…』 현재 월세로 살고 있는 은평구 갈현동 집 주인이 김씨의 장모라는 사실을 알고서는 얼마안되는 돈으로 아버지를 옭아맨 김씨가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정양은 졸업식내내 집으로 전화라도 걸어 졸업을 축하해줄지 모를 아빠 생각에 『식사나 하고 들어가자』는 어머니의 권유를 뿌리치고 바삐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왕무당/김금지 연극배우(굄돌)

    요즈음 나는 「노을을 날아가는 새들」에서 「왕무당」또 「여인」역을 맡아 공연중이다.내년 4월에 열리는 「파리연극제」참가 작품인데 김정옥교수님이 직접 쓰고 또 연출하시고 우리극단 대표 이병복선생님이 무대와 의상을 맡은 작품이다. 주인공 공주역을 비롯해 주요 배역을 「오디션」을 거쳐 선발했는데 다른 곳에서 연기경험이 있는 쪽들이라 괜찮게들 한다.연기자는 무슨 역이든지 소화해내야 된다고 배웠는데 원래 무당굿하는 걸 별로 본적이 없고 무속쪽에 별관심도 없고 해서 무척 고생을 했었다.그저 기를 쓰고 「어허!」 「어허」하고 소리지르고 춤을 덩실덩실 추기도 하고 방울을 힘차게 흔들기도 하는데 내 생각에도 별 신통치 않은 무당같아 내 주변사람등에게 구경오라는 얘기를 안한다. 연극을 처음 시작할때 국립극단의 천승세작 「만선」이라는 작품에서 한번 무당역을 했는데 돌아가신 그때 교회 집사님이셨던 친정어머니와 같이 동네무당집에 가서 배워온 적이 있었다.피나는 노력으로 무당역을 잘했다고 무척 칭찬을 들었는데 그때 겁났던게 혹시 배역때마다 무당역만 돌아오면 어떡하나 하는 거였다.하느님께 기도까지 했는데 기도에 응답이었는지 그후 계속 예쁘고 슬픈 여주인공역만 도맡아 했었다. 그랬는데,그랬었는데 얼마전부터 늙은 여자,노부인 아니면 무당중에도 왕무당역만 내몫이 된다. 20년동안 같이 연극한 연출자 김선생님은 『이번 왕무당은 단순한 무당이 아니라 나래이터라구! 아주 중요해요』『김금지씨! 왕무당 해보시지!』하면서 내 눈치를 보신다.대본을 아무리 읽어 봐도 정말 내가 맡을 배역이 그것밖에 없어 『그래요』했는데 솔직히 별로 신은 안난다.거기다 객석에 불이 켜지고 무대에서 인사할 때는 관객층이 너무 젊어 무안하기까지 하다.대극장인 경우는 좀 덜한데 이번같은 소극장인 경우는 『내가 너무 연극을 오래 하고 있는게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든다.점잖게 연출이나 희곡이나 기획쪽으로 바꿀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좀 고통스럽더라도 내이름 밑에 끝까지 연극배우라는 타이틀로 남아있고 싶다.
  • 속으로 말하기/김금지 연극배우(굄돌)

    젊었을 때는 속에 있는 말을 다 내뱉었는데 요즈음은 속으로 말을 한다. 예를 들면 남편이 내게 섭섭하게하거나 마음에 안들때는 겉으로는 입만 삐쭉하지만 속으론 『치사하다! 치사해! 두고보자!』라고 하거나 영화감독 지망생인 아들아이가 『엄마! 난 시나리오·주연·감독을 다 할거예요.한국의 찰리 채플린이 된다니까요.그다음 마흔다섯에 정계에 등장할거예요.그리고는 드골처럼 멋진 퇴장을 할거예요!』하면 『꿈이 커서 좋구나! 열심히해라!』하면서도 속으로 『애야! 세상이 입맛대로 되니?』라고 한다. 또 요즈음 구두장사도 안되는데 기어이 대학 졸업후 유학을 가겠다는 딸아이에게도 『그래! 석사 박사 다 따와라.뒤 대줄께!』하면서도 속으로는 『아이구! 내팔자야! 늙어 구부러질 때까지 구두팔아야겠구나!』하게 된다. TV보는 동안은 더 증세가 심해지는데 못마땅하면 꺼버리면 되는 것을 기어이 켜놓고 마주앉아 속으로 투덜거린다.추석때 귀향길을 비추면 한편으로는 『효자 효녀들이야! 고향찾아 가느라 저고생을 하고…』하면서도 『왠 차들을저렇게 다 끌고 나올까? 그러니 막힐 수밖에…매해 추석마다 민족의 대이동이 이루어지고…추석 끝나면 해마다 교통사고로 백명이상이 목숨을 잃는 그런나라가 어디있담!』하고 한탄하게된다. 또 요즈음처럼 한중 수교로 TV화면이 꽉차 있을 때는 『왜 저렇게 호들갑을 떨까! 중국은 북한하고도 외교관계를 유지하면서 실속 다 차리는데,대만하고 매정하게 끊고는 무슨 수가 난듯이 저 야단일까?』한다. 그러다가 으레 오찬 만찬 하는 얘기가 나오면 『회담이나 외교는 밤낮 밥만 먹나봐!』하다가 씩웃는다.불경기가 돼서 구두도 잘 안팔리고 나하고 친한 「꽃나엄마」네도 티셔츠 공장하다가 부도가나고,만년청년타입이던 우리극단 연출자 김선생님도 가벼운 협심증 증세라 하시고…. 그래서인지 TV에서 국정을 책임맡은 이들이 활짝 웃거나 너무 행복해하면 『뭐가 좋다고 웃어?』하게 된다. 늙는다는게 이런걸까?
  • 「장관급 거물」 두차례 서울잠입/3공작원 활동상황

    ◎3∼7개월씩 은거 김에 지령 직접전달/공작금·장비 지원… 재야인사 포섭 시도 북한은 간첩 김락중씨에게 공작지령을 내리기 위해 대남공작기구인 「사회문화부」소속 장관급 거물공작지도원 임모(65)등 대남공작원 3명을 3차례나 남파,1년4개월동안 서울에 비밀 아지트를 구축하고 활동하도록 하는등 대담한 공작활동을 벌여온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결과 드러난 공작원들의 남파상황을 살펴본다. ◇1차침투 지난 90년 2월 하순 북한 「사회문화부」소속 공작원 최모(35)·이모(27)등이 경기도 강화군 양도면 해안을 통해 침투,약 7개월동안 서울에 잠복,활동했다. 이들은 남파된뒤 같은해 3월중순 재야인사로 신분을 위장해오던 김락중씨에게 『우리당에서 김선생의 활동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그동안의 활동을 치하하고 『우리와 뜻을 같이하고있는 동지 2명정도를 포섭,지하망을 구축하라』는 지령과 함께 공작금으로 미화 30만달러를 전달했다. 이들은 같은해 4월 초순 다시 김씨를 만나 「위대한 수령 김일성 원수님의 만수무강을 삼가 빈다」는 충성 증표문을 받았다. 이어 갈현동 수국사 이웃에 무인포스트를 지정해 이를 연락장소로 정하고 도장모양의 자살용 독약앰플을 김씨에게 건네줬다.이들은 다시 같은해 8월 북한산 골짜기에서 김씨에게 단파라디오·난수표를 전달하고 지령 해독법을 교육시킨뒤 강화도해안을 거쳐 북한으로 돌아갔다. ◇2차침투 90년 10월하순 평소 「임과장으로 불리는 북한공작지도책 「임」모가 1차침투조였던 최모의 안내로 강화군 양도면 해안을 통해 침투,약3개월동안 서울에 은거했다. 임은 곧바로 김씨와 접선,『민중당 창당에 참여,당권을 장악하고 합법정당을 가장해 혁명사업을 추진하라』『지식인·학자·변호사·노동계유력인사를 포섭,동조자로 끌어들이라』는 지령을 내렸다.임은 이어 같은해 10월하순 심금섭씨를 태국공작거점으로 포섭하기 위해 구명재킷상담을 구실로 청해실업을 방문해 만났으며 11월엔 김씨가 민중당공동대표로 선출된 것을 치하하며 공작금으로 미화 30만달러,무전기,비밀기록용 가루약 1봉지 등을 주었다. 임은 김씨로부터 민중당의 이우재·이재오,「노운협의회」회장 김영곤,인천노동상담소장 양재덕씨 등을 포섭대상자로 보고받고 12월 강화도를 거쳐 돌아갔다. ◇3차침투 91년 10월하순 북한 공작지도책 임은 1차때 침투했던 이모와 함께 강화군 양도면 해안을 통해 다시 침투,김씨를 만나 『민중당을 지원하러 왔다.무슨 수단을 쓰더라도 국회에 진출해 원내교두보를 확보하고 혁명과업을 달성하라』면서 『거액의 자금을 지원할테니 당선가능성이 있는 지역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라』고 지시했다. 임은 그해 12월 김씨에게 이미 포섭된 심금섭씨와 승용차를 함께 타고가 강화군 양도면 간첩장비매몰장소인 이른바 「드보크」에서 캐낸 공작금 1백50만달러를 김락중씨에게,권총·소음기 등을 심씨에게 전달했다. 임은 이어 『오는 대통령선거에도 독자후보를 내라』고 지시했으며 심씨에게 『신변에 위험이 생기면 팩시밀리로 태국 방콕의 「로얄 양윤사」로 위급사실을 알린뒤 탈출하라』고 지령을 내린뒤 강화도를 거쳐 되돌아갔다.
  • 노 대통령,효자·효부등 198명과 어버이날 대화

    ◎“역경속의 효행 참 장하십니다”/“64세에 90세 시모 봉양 본받아야/5대한가족 모두에게 부러운 일”/희생정신 소개될때마다 박수로 격려 제20회 어버이날인 8일 낮 노태우대통령은 효자·효부,장한 어버이,전통모범가정의 가장,노인복지 공로자등 어버이날 수상자 1백98명을 청와대로 초청,한식으로 점심을 함께 하며 노고를 위로했다. 1시간30분동안 계속된 이날 오찬 모임에서 참석자들은 17살에 청각장애 남편과 결혼,시부모를 극진히 봉양하면서 3남3녀를 훌륭하게 키운 조용순할머니(64)의 이야기등 감동적인 인생역정이 소개될 때마다 박수로 격려했다. 식사에 앞서 노인복지 공로자 김자현씨가 나라의 발전과 노대통령내외의 건승을 위해 건배를 제의한데 이어 노대통령이 참석자들의 수상을 축하하는 건배제의로 답하는등 모임은 시종 따뜻하고 흐뭇한 분위기속에 진행됐다. ▲노대통령=(국민훈장을 받은 조용순할머니에게)병환중인 시부모님을 극진히 모시고 장애인 남편을 돌보시느라 고초가 크셨겠습니다. ▲조=시어머니는 올해 90세이고 건강하십니다.3남3녀 가운데 셋째아들만 미혼이고 전부 결혼했습니다. ▲노대통령=이제 효도를 받아야 할 연세이신데도 시어머님을 모시면서 남보다 뛰어난 효행을 실천하고 계시니 참으로 장하십니다.(국민포장을 받은 금기호씨에게)노모께서 오랫동안 와병중이고 막내동생도 맹인이고 부인마저 3년전에 실명하셨다고 들었습니다.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집안일은 어떻게 꾸려가고 있나요. ▲금=어머니,막내동생,아내의 병수발과 빨래,부엌일,농사일등 모든 집안일을 혼자서 맡아하고 있습니다. ▲노대통령=금선생의 효행과 희생정신은 만인이 본받아야 할 모범이라고 생각합니다.용기를 잃지 말고 꿋꿋이 살아가기 바랍니다.(장한 어버이로 국민포장을 받은 조어빈여사에게)자녀들 모두가 훌륭하게 성장했다지요.지금 무슨일을 하고 있나요. ▲조=큰애는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상공부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고 둘째는 지청장을 지낸뒤 법무연수원 과장으로 있으며 다섯째 딸은 소아과의사입니다. ▲노대통령=돌아가신 남편,시부모의 병구완등 남다른 효행을 하셨고 남몰래 불우이웃까지 돕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건강하고 오래 사시기 바랍니다.(노인복지 기여자로 국민훈장을 받은 김경학씨에게)양로원을 경영하고 계시다지요.고향이 이북이라고 들었는데 오갈데 없는 노인을 돌보기로 결심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김=대구에서 영락경로원을 경영,모두 1백13명을 돌보고 있습니다.고향에 두고온 올해 93세가 될 아버님을 그리다가 오갈데 없는 노인들을 아버지처럼 모시기로 했습니다. ▲노대통령=김선생을 포함해 연세가 드신 이산가족들이 하루속히 재회할 날이 오기를 기원합니다.(전통모범가정으로 보사부장관 표창을 받은 장금순여사에게)가족은 어떻게 되나요.할머니 연세는 얼마이신지요. ▲장=시할머니,시부모,저희 부부,아들내외,손자·손녀등 5대 12명이 함께 삽니다.할머니는 금년에 1백세이시고 몇년간 백내장으로 고생하시다가 올해 수술을 받고 이제는 앞을 제대로 보십니다. ▲노대통령=요즘 핵가족화 현상으로 부모를 모시는 것조차 꺼리는 풍조가 늘어나고 있는데 5대가 화목하게 함께 사는 것은 모두가 부러워할 일입니다. ▲노대통령=예로부터 우리는 효를 모든 덕목의 근본으로 삼아왔습니다.우리민족이 반만년의 역사속에서 민족의 동질성을 잃지않고 오늘날 이만큼 당당한 나라를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효의 정신이 원천이 되었습니다. 산업사회의 특징에 맞는 효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하여 온 국민이 힘써 실천하는 도덕운동이 전개되어야 할 것입니다. 나라의 통일을 이루고 한단계 더 높은 선진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물질적 풍요도 중요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정신적 가치관이 확고하게 정립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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