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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밴쿠버동계올림픽]두근두근 24일 벌써 기다려진다

    │밴쿠버 조은지특파원│만 스무살이 되는 ‘피겨퀸’ 김연아(20·고려대)는 명절을 모른다. 설날에도, 추석에도, 생일에도 묵묵히 땀을 흘렸다. 이번 설도 마찬가지. ‘꿈의 무대’인 밴쿠버동계올림픽을 앞둔 김연아에게 휴식은 사치에 가깝다. 김연아는 12일에도 캐나다 토론토 크리켓 스케이팅 클럽에서 5시간 구슬땀을 흘렸다. ●20일 입성… 빙질 적응 3일에 끝내야 ‘거사’를 눈앞에 뒀지만 스케줄에는 큰 변화가 없다. 매일 오전 8~9시에 일어나 간단한 아침식사. 11시엔 훈련장소인 크리켓클럽에 도착이다. 1시간 가량 워밍업과 스트레칭으로 송골송골 땀을 낸 뒤 낮 12시부터 1시간 30분 정도 첫 번째 스케이팅을 한다. 프로그램 완성도가 높은 만큼 요즘은 세심한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 쇼트프로그램이나 프리스케이팅 음악을 틀어놓고 처음부터 끝까지 쭉 연기한다. 브라이언 오서 코치는 날카로운 눈으로 이를 지켜본 뒤 세밀한 부분까지 집중적으로 다듬는다. 오후에도 1시간 30분 가량 두 번째 스케이팅 훈련을 가진다. 오후 5시부터는 1시간 가량 마무리 운동으로 근육을 풀어준다. 오후 8시부터 물리치료를 받고서야 고된 하루 일과가 끝난다. ‘결전지’인 밴쿠버 입성은 20일. 빙질에 적응할 시간은 단 3일뿐이다. 하지만 브라이언 오서 코치는 “공식 연습기간인 3일로 충분하다.”고 할 정도로 김연아는 ‘여왕’의 면모를 뽐내고 있다. 김연아가 마지막으로 치른 대회는 벌써 두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해 12월 도쿄에서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이 마지막 실전 대회였다. 때문에 요즘엔 실전에 대비한 점프감각과 연기력 유지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김연아는 항상 ‘1등보다는 무결점 연기’를 꿈꿔왔다. 김연아가 클린연기를 위해 수행할 과제는 공교롭게도 총 20개. 특히 점프는 그 어떤 과제보다 비중이 높다. 물론 점프가 전부는 아니다. 빈틈없는 연결동작과 빼어난 표현력은 아사다 마오(일본)가 트리플 악셀을 모두 성공시킨다고 해도 뒤집기 어려울 만큼 뛰어나다. 우아한 이나바우어와 전율을 느끼게 하는 빼어난 눈빛연기도 압권. 게다가 ‘대인배 김선생’이라는 별명답게 마인드 컨트롤도 문제없다. 김연아는 최근 미국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금메달이 아니더라도 좌절하거나 실망하지는 않을 것 같다.”면서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연기력·실전감각 끌어올리기 총력 김연아는 24일 쇼트프로그램, 26일 프리스케이팅에서 ‘위대한 도전’에 나선다. 자신이 원하는 ‘만족할 만한 연기’를 펼친다면 그의 목에는 반짝이는 금메달이 걸려있을 것이다. zone4@seoul.co.kr
  • 작업남의 연애술 전수 ‘코믹 터치’로

    작업남의 연애술 전수 ‘코믹 터치’로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라는 말을 듣고 남자는 외친다.“나 좋은 사람인 거 나도 알겠거든? 그래서 나랑 사귈 거야, 말 거야?” 이렇게 연애가 번번이 “좋은 사람” 운운하는 선에서 끝나버리는 사람이라면, 꼭 챙겨봄직한 프로그램이 있다. 오는 28일부터 매주 금요일 오후 11시 OCN에서 방송되는 4부작 TV무비 ‘유혹의 기술’(제작 드림컴스, 연출 심세윤, 각본 유세문)이다. 그러니까 ‘유혹의 기술’은 드라마 형식을 띤 연애백서다. 케이블이란 매체의 특성을 200% 활용한 이 작품은 지상파에서는 보기 힘든 파격적인 소재와 참신한 기법으로 가득하다. 연출을 맡은 심세윤 감독은 “섹시코드를 앞세우는 기존 케이블 드라마와 달리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었고, 그래서 코믹코드에 중점을 둔 작품을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유혹의 기술’은 국가대표급 순진남 현수(신성록)에게 연애 최고수 김선생(조영진)이 전하는 ‘작업 노하우’를 코믹한 강의형식으로 담고 있다. 현수가 뼈를 깎는 연애수업을 통해 마침내 부잣집 외동딸 희진(박수진)의 사랑을 얻는다는 줄거리는 얼핏 보기엔 진부하다. 하지만 진정한 연애의 기술은 결국 ‘진심’이라는 결론은 유쾌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메시지로 다가온다. 심리학, 생물학, 인류학 등 각종 이론에서 탄생한 연애기술들도 귀를 솔깃하게 만든다. 예컨대, 김 선생이 귀띔하는 여자를 유혹하는 방법 하나.“네거티브라는 부정적인 반응으로 여자의 자존심을 자극해 너에게 관심을 집중시켜. 하지만 바로 칭찬으로 연결하는 게 포인트야.” 말 뜻 자체보다는 음조나 억양이 중요하다는 커뮤니케이션 이론 등 설득력 있는 연애 필살기의 향연이 펼쳐진다. 검증된 기술을 구사하기 위해 유세문 작가는 NLP(신경-언어 프로그래밍)라는 최면술을 직접 배우기도 하고 밀턴 에릭슨의 ‘상담심리학’, 제인 구달의 책 ‘인간의 그늘에서’,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 등 다양한 지식들을 참조했다. 유 작가는 “작품에서 궁극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여자를 잘 꼬시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 간의 소통 기술”이라면서 “굉장히 소심했던 극중 현수가 ‘유혹의 기술’을 통해 인간관계를 배우고 성장해나가는 것이 드라마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드라마는 이같은 내용들을 실사와 컴퓨터그래픽이 섞인 화면, 독창적 카메라 기법 등을 두루 동원해 푸짐하게 한 상을 차려내 놓는다.‘디지털 시네마’를 만들기도 한 제작사 ㈜드림컴스는 영화제작 노하우를 살려 지난해 10월부터 4개월여에 걸쳐 드라마를 사전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21일 TV 하이라이트]

    ●인간극장(KBS2 오후 7시30분) 8년 전, 사업 실패로 2억원의 빚을 지고 벼랑 끝에 몰린 부부는 열일곱 살 인웅이와 열두 살 다운이를 남겨두고 영화사 버스를 운전하던 처남의 주선으로 영화 밥차를 시작한다. 아이들과 하루 빨리 함께 살 희망, 오직 그 하나로 부부는 치열한 영화판에서 물불 안 가리고 일하기 시작하는데….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40분) 킬트는 스코틀랜드 전통의상으로 남자들이 입는 스커트. 미국 시애틀의 한 회사가 킬트를 응용해 유틸리킬트라는 옷을 만들었다. 유틸리킬트는 치마처럼 통풍이 잘되고 활동도 자유롭다. 유틸리킬트의 고객층은 매우 다양한데, 주로 자신감 넘치는 남성이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다.   ●다큐人(EBS 오후 9시20분)브로드웨이, 라스베이거스, 도쿄, 홍콩 등 세계 유수의 공연 시장에서 새롭게 인기 급부상 중인 공연 장르가 바로 버블 쇼다. 국내 버블리스트 신용씨는 환상적인 공연을 통해 아이들과 사람들에게 감동과 행복을 선사하고 있다. 신용씨가 불어내는 행복 가득한 비눗방울 세상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강남엄마 따라잡기(SBS 오후 9시55분) 상원이 1인시위에 나서자 교감과 경섭은 김정호선생을 복직시키려 하냐며 그만두라고 말한다. 그러자 김선생이 다가와 억울하지도 않느냐며 이렇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자 상원은 이 학교가 해결해야 될 문제가 많다고 대답한다. 수진은 김정호 선생님이 그만두고 싶어했다는 말을 들려준다.   ●커피프린스 1호점(MBC 오후 9시55분) 한결은 은찬이 결혼할 만큼 자신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은찬은 좋은 것과 결혼은 다르다며 할머니가 많이 편찮으셔서 결혼을 서두르는 것이냐고 묻는다. 심란한 한결은 그것도 이유지만, 평생 너랑 밥먹고 너랑 얘기하고 너랑 같이 있고 싶어서 그런 것이라고 대답한다.   ●하늘만큼 땅만큼(KBS1 오후 8시25분) 명태는 무영과 함께 새벽시장을 보고 뿌듯해하며 돌아오지만 봉례가 식당에 없자 두 어머니가 불편한 관계가 된 것에 책임을 느끼며 봉례에게 전화를 건다. 순임도 사과할 요량으로 전화를 걸어보지만 시침 뚝 떼고 있는 봉례에게 도리어 화를 내고 만다. 한편, 미애는 부모의 교통사고로 힘들어한다.
  • [21일 TV 하이라이트]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40분) 중국 먀오족의 전통축제가 유명해져 관광객이 몰리고 있다. 공연을 맡은 주민들은 큰 수입을 올리지만 관광객이 오지 않는 외딴 마을 사람들은 농사를 져 끼니를 때운다. 정부가 이러한 오지마을을 관광지로 육성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낯설었던 소수민족의 문화가 어느덧 관광상품이 됐다.   ●진실게임(SBS 오후 8시55분) 청순가련 심은하를 꼭 닮은 경상도 심은하. 북한얼짱 평안도 휘파람처녀. 겁나게 매력적인 군산의 킹카. 앙증맞은 사투리를 술술 하는 땅끝마을 해남의 6세 꼬마얼짱. 그까이꺼 뭐 대충 심하게 여유로우신 충청도 45세 새신랑 등 각 도의 구수한 사투리 대표들 중 진짜 서울사람은 누구일까?   ●다큐-맞수(EBS 오후 9시30분) 문선생님이 김선생님 반을 불쑥 찾아온다. 반 아이가 오줌을 싸서 바지를 빌리러 온 것이다. 선의의 경쟁을 벌이다가도 힘들 때면 서로 찾게 된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아빠 참여 수업준비에 두 선생님 모두 바빠진다. 야근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두 선생님은 각자 집에서 아빠 참여수업 맹연습에 돌입한다.   ●주몽(MBC 오후 10시20분) 대소는 주몽을 잡아오라며 흑치에게 군사를 내어준다. 하지만 금와왕 복권의 선봉에 서기로 마음먹은 흑치 장군은 주몽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놀란 주몽이 금와왕이 복권을 꾀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미을에게 전한다. 금와왕은 복권에 성공하면 주몽을 버려야 한다는 부득불의 간청을 떠올리며 고민에 빠진다.   ●놀라운 아시아(KBS2 오후 8시55분) 인도의 5살 롤러소녀 무스칸. 백발백중, 태국의 명사수 텅 루언 할아버지, 바삭바삭 구워서 고소하게 먹는 베트남 이색별미, 집게 달린 전갈의 기상천외한 변신이 공개된다. 또 7Kg짜리 공으로 탁구를 치고 10Kg 쇠젓가락으로 밥 먹는 남자, 중국의 손목천하장사 세자쥔의 특별한 운동법도 공개된다.   ●생로병사의 비밀(KBS1 오후 10시) 여성의 출산 의무를 끝마치게 되는 50세 전후가 되면 폐경을 맞게 된다. 제2의 삶의 시작을 맞은 폐경기 여성의 몸은 그동안 임신과 출산을 위해 분비되던 여성호르몬이란 보호막의 상실로 각종 질병에 직접 노출된다. 건강한 제2의 삶을 위한 홀로서기는 어떻게 준비하고 시작해야 하는가?
  • [깔깔깔]

    ●변호사 개업 사법연수원을 갓 졸업한 한 변호사가 사무실을 차렸다. 한가하게 책상에 앉아 있는데 ‘김’이라는 분이 오셨다고 비서가 부리나케 알려왔다. “얼른 안으로 모셔!” 비서가 ‘김’이라는 분을 데리고 들어오려고 물러나는 순간 어떤 아이디어가 변호사의 머리를 스쳤다. 그는 황급히 전화기를 집어 들더니 소리쳤다. “음, 그리고 5천 이하로는 안 된다고 그들에게 이야기하고 그 금액에 동의하지 않을 거라면 아예 전화하지 말아요!” 이렇게 말하고 수화기를 힘차게 내려놓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님을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 김선생님. 어떤 일이지요?” “전화회사에서 나왔습니다. 전화선을 연결해 드리려고요.”
  • [실전 논술] 반강제와 자율… 바람직한 교육환경은

    ●다음 제시문 (가)는 전상국의 (우상의 눈물)에서,(나)는 루소의 (에밀)에서 발췌한 글이다.(나)의 내용을 참고하여,(가)에서 ‘담임’의 생각이 지닌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것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바람직한 교육 환경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논술하시오(띄어쓰기를 포함하여 1600자 내외로 쓸 것). (가)그 날 편반이 끝나고 키 크기에 따른 각자의 번호와 교실 좌석까지 다 정해졌을 때 새 담임이 된 김선생이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66명이 운명을 함께 하는 역사적 출항을 선언한다.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단 한 사람의 낙오자나 이탈자가 없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아울러 이 시간 분명히 밝혀 둘 것은 우리들의 항해를 방해하는 자, 배의 순탄한 진로를 헛갈리게 하는 놈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나무를 전정할 때 역행 가지를 잘라버려야 하듯 여러분의 항해에 역행하는 놈은 여러분 스스로가 엄단할 수 있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1년간의 일사불란한 항해를 위해서는 서로 사랑과 신뢰로써 반을 하나로 결속하는 슬기를 보이는 일이다.” 새 담임 선생은 과학 교사답지 않게 적절한 비유로써 자기가 맡은 반 아이들에게 뭔가 불어넣으려 애쓰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에게 중요한 것은 무사안일 속의 1년이었던 것이다. “고삐는 여러분 손에 쥐어져 있다.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그 고삐를 당겨 여러분 스스로를 제어해 주기 바란다. 내가 가장 우려하는 바는 여러분 스스로가 내 손에 그 고삐를 쥐어주는 일이다. 나는 자율이라는 낱말을 좋아한다.” 담임선생님은 자율이라는 낱말로 요술을 부려 우리들을 묶고 있었다. 어느 연극 잡지에서 완숙한 연출가는 배우 스스로가 연출하도록 유도하는 비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읽은 것이 생각났다. 대단한 담임을 만났다는 기대로 아이들은 가슴을 부풀이며 앉아 있었다.14개 반에서 사오 명씩 떨어져 나와 새로이 편성된 새 반의 분위기는 사뭇 숙연했다. 나는 문득 이런 숙연한 분위기가 우습게 생각되었다. 단 며칠 못 가 형편없이 허물어질 아이들이 목에 잔뜩 힘을 주고 앉아 담임 선생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게 우습게 보였던 것이다. 이들의 긴장을 풀어주고 싶은 충동을 받았다. “선생님, 우리가 탄 배의 선장은 누굽니까?” 내가 불쑥 일어나서 말했다. 선장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자율이라는 낱말로 우리를 묶으면서도 실상 우리들 머리 위에 군왕처럼 군림하고 싶은 그의 저의를 찔러주고 싶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내 느닷없는 질문에 부스럭부스럭 굳은 몸을 풀고 있었다. “이 배의 선장이 누구냐, 그렇게 묻고 있는 사람의 번호와 이름은?” 담임이 얼굴 가득 미소를 잡으며 여유있게 나를 훑었다. 반격을 당한 나는 얼굴을 붉히며 엉거주춤 다시 일어나야 했다. “35번 이유댑니다.” “예수를 판 유댄가, 이스라엘 유댄가?” 아이들이 와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오얏 리, 옥유, 큰 댓자, 이유대입니다.” “좋았어. 이유대 군이 오늘 이 시간부터 일 주일간 2학년 13반의 임시 선장이다. 물론 일 주일 뒤에는 새 선장을 뽑겠다. 다시 한 번 강조해 두겠다. 이 배의 주인은 여러분 자신이다. 이유대 선장, 내 말의 뜻을 알겠나?” 아이들이 와하하 웃으며 박수를 쳤다. 반장하고 싶어 몸살 난 애라구요. 그렇게 소리 지르는 놈도 있었다. 실로 난처한 입장이 돼 버렸다. 한낱 농으로 시작한 일이 담임의 임기 응변에 의해 꼼짝없이 임시 반장 감투를 쓰게 되었다. 꽁무닐 빼고 어쩌고 할 기회를 주지 않은 채 담임은 첫 만남을 끝냈다. 이렇게 해서 된 임시 반장이 기표의 비위를 사납게 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됐을 것이다. (나) 만약 아이들이 단시일 내에 어른이 가진 이성을 갖는다면 오늘날의 교육은 상당히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적 발육 과정에 따라 교육을 시키려면 오늘날의 교육과는 정반대의 교육이 그들에게는 필요할 것이다. 정신의 기능이 어느 정도 발달하기 전까지는 너무 신경을 쓰게 해서는 안 된다. 초기의 교육은 순전히 아이의 마음을 악덕이나 그릇된 정신으로부터 보호하는 소극적 교육이어야 한다. 만일 여러분이 아이들에게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을 수만 있다면, 또 아이들이 어른에게 아무 것도 배우지 않을 수 있고 아이가 20세가 될 때까지 신체만 건강하게 키워진다면, 비로소 여러분이 가르치는 최초의 교훈을 들었을 때 아이들의 이해하는 눈은 자연과 이성에 대해서 열리게 될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의 교육에 의해 가장 현명한 사람이 되어서 그들은 놀랄 만한 성과를 올리게 될 것이다. 세상의 습관과 반대로만 행한다면 절대로 틀리지 않을 것이다. 부모나 교사들은 아이들을 학자로 만들려고 하기 때문에 꾸짖고 위협하고 달래기도 하는 것이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여러분의 아이에게 도리를 따져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싫어하는 도리만을 알게 되면 이를 귀찮게 여겨 도리를 믿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아이의 체격은 충분히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정조는 아이에게 판단이 생길 때까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악을 막기 위해 선을 급히 해서는 안 된다. ●지문의 분석 이 작품은 합리적이고 날카로운 판단력을 가진 ‘나’, 이유대가 폭력을 휘두르는 문제아 기표와 정당치 못한 방법으로 그를 제압하려는 담임과 실장(형우)을 관찰하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악을 대항하는 자의 또 다른 악에 대해 풍자하고 있다. 최기표의 초라한 몰락에서,‘나’는 합법적 권력을 가진 담임과 형우의 교묘하고 위선적 술책이 기표의 물리적 폭력보다 더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특히 작가는 인물 유형에 대한 제시 방법으로, 관찰자의 분석적 해설에 의한 말하기 방법을 적절히 사용하여 인물을 생동감 있게 그려 내고 있다. 새 학년이 시작된 고등학교 2학년 학급. 자율이란 말로 학생들을 묶으면서 군림하고 싶어하는 담임 밑에서 ‘나’(이유대)는 임시 반장을 맡게 된다. 이것이 최기표에게 ‘메스껍게’ 보여 ‘나’는 린치를 당한다. 담임은 ‘나’에게 반장을 계속 맡아 달라고 했지만 ‘나’는 임형우를 추천한다. 담임이 학급을 위한 조언(고자질)을 부탁하나 ‘나’는 부당함을 인식하고 말하지 않는다.‘형우’가 반장이 되고, 그와 담임의 노력으로 학급은 일사불란한 항해를 계속한다.‘기표’는 학생들을 폭력으로 장악한다. 그러나 의욕에 찬 담임 교사가 ‘기표’를 길들여 나가기 시작한다. 우선 ‘기표’를 재수파들로부터 고립시킬 계획을 세운다. 담임의 묵인 아래 모범생들이 ‘기표’의 시험을 돕기로 한다. 이것이 ‘기표’의 비위를 상하게 하여 ‘형우’는 그에게 린치를 당하고 병원에 입원하지만, 가해자를 끝내 숨겨줌으로써 의리의 영웅이 된다. 매혈(買血)한 돈으로 ‘기표’의 생활비를 보태었던 재수파들이 ‘형우’에게 용서를 빈다. ‘기표’의 어려운 가정 사정과 재수파들의 미담이 담임에 의해서 과장되고 미화되어 알려져 영화화될 단계에까지 이른다. 그럴수록 ‘기표’는 부끄러움을 잘 타는 아이로 변하고, 아이들은 그를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는다. 가출해버린 ‘기표’가 여동생에게 남긴 편지에 “나는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라고 쓰여 있었고, 담임은 영화사 사람들을 만나기로 했는데 자신의 계획을 ‘기표’가 무산시켰다며 신경질을 부린다. 결국 이 작품은 진실과 호의를 가장한 치밀한 위선의 무서움을 말하고 있다. ●출제의도 (가)의 내용은 교사의 권위가 지나치게 강조되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보다는 교사의 일방적인 지시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민주적인 교육의 모습이라기보다는 반강제적인 모습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자율적인 인간상을 기르기 어렵고, 삶을 살아가면서 구체적인 문제에 당면했을 때 창조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지닐 수 없다는 등의 문제점을 도출하면 된다. 물론 논의의 바탕에는 자율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을 토대로 하야 할 것이다. (나)는 18세기 유럽의 교육을 비판하고 있는데, 이 내용에 비추어 우리의 교육 현실을 올바르게 파악하면 된다. 핵심적인 관점은 자발적인 참여에 의한 교육의 중요성이다. 결국 이 문제에서는 귄위주의적인 교육 환경이 자율적이며 창조적인 능력을 길러내는 데에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고 바람직한 교육적 환경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생각하기 (가)는 새학기가 되어 새 담임 교사가 첫인사를 하는 상황이다. 학생들을 훈계하는 담임의 말은 표면적으로는 논리적이고 정당한 것으로 보이지만, 결코 쉽게 긍정할 수 없는 내용이 들어 있다. 훈계의 내용은 앞으로 일 년 동안 사랑과 신뢰를 통한 굳은 결속으로 일사불란한 항해를 해 나가야 한다는 점과, 목적지를 향한 순탄한 항로를 방해하는 자를 엄단하는 자율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고 있다. 그런데 담임이 말한 자율은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는 자율이 아니라 담임이 요구하는 규범에 따라 움직이는 자율임이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보면 담임은 집단주의적 사고 방식과 권위주의적인 태도가 지닌 문제에 대한 논의를 바탕으로 접근하면 된다. 즉, 권위주의적인 사고 방식은 의존적이고 타율적인 인간을 길러 낼 뿐 아니라 창조적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는 점을 언급하면 된다.(나)에서 언급한 바람직한 교육의 방향은 이 글을 전개하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되어야 한다. ●어떻게 쓸까 이 문제에서 요구하고 있는 해결의 방향으로 보아 주제의 방향은 민주적이고 자율적인 교육 환경 속에서 주체적인 청소년을 키워 나가야 한다는 정도로 잡을 수 있다. 우선 서론 부분에서는 지나친 권위주의적 교육의 문제점을 기술하면 된다. 제시문 (가)에 나타난 내용을 토대로 우리 주위에 남아 있는 권위주의적 교육의 양상을 제시하면서 주의를 환기시키고 주제의 방향과 관련된 문제를 제기하면 된다. 그런 다음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야 하는데, 우선 논제와 관련해 제시문에 드러난 담임 교사의 태도에 나타난 문제점을 분석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논의의 바탕에는 (나)에서 언급한 바람직한 교육의 방향과 관련해 논의가 전개되어야 한다. 학생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민주적으로 도출한 학급 운영 계획이 아닌, 일사불란하게 능률만을 강조하는 담임 교사의 행동은 학생들의 창의력과 사고 방식에서 많은 문제를 유발할 수 있음을 언급하면 된다. 그런 뒤에 이러한 권위주의적 교육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을 좀더 심층적으로 언급해야 한다. 학생들은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의견을 수렴하고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사회를 발전시키는 연습보다는 일방적인 지시에 따라, 그것도 일방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권위주의적인 교육 방법은 학생들이 건강한 민주 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장애가 된다는 점을 언급하면 된다. 물론 이러한 논의의 바탕에 청소년을 위한 바람직한 교육 환경이 필요하다는 점을 제시하면 논의의 내용이 심층적으로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토대로 하여 결론을 제시하여야 하는데, 본론에서 논의한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요약하면서 주제문과 관련된 결론, 즉 자율적이고 민주적인 교육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 된다. 이석록 서울 대치메가스터디 원장
  • 74세의 국민학교 졸업

    74세의 국민학교 졸업

      강원도 삼척군 장성읍의 철암국민학교 6학년 담임이었던 김용태(23)선생은 요즘 학교의 먼 변소에 가서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좋게 되었다. 동교 6년생이던 홍순식(洪淳植)(74)노인이 졸업을 했기 때문이다. 국어공부 제일 좋아 손자 복습시키고, 산수공부에는 끙끙 앓아 만학(晩學)이라는 말이 숫제 미안해진다. 68세로 국민하교 1학년에 입학을 해서 6년간을 개근하고 졸업을 했으니 말이다. 한국 교육사상 가장 나이 많은 국교졸업생이 홍노인이다. 바로 주요광산지대로 알려져 있는 머리보다 육체노동이 판을 치는 고장에서 있었던 이야기이다. 홍노인은 2월 10일 제24회 졸업식에서 손자 성덕(13)군과 함께 정든 교실을 떠났다. 제3312호의 졸업장과 6년 개근상과 그리고 군 교육장의 공로표창장과 상품을 한아름 안고 눈길을 걸어 나오는 노인의 얼굴엔 착잡한 감정이 어리고 있었다. 이날 꼬마졸업생 334명에 끼여 홍노인은 남자자리 앞 셋째줄 의자에 손자와 나란히 앉아 귀빈과 학부형들의 눈을 모았다. 재학생 대표 이정아양의 송사(送辭)와 졸업생 답사가 낭독될 때 노인은 두툼한 돋보기 안경을 벗고 노란 손수건을 온통 주름투성이인 얼굴에 연상 갖다 대며 학교를 떠나는 아쉬움에 눈물을 적시었다. 「70줄을 넘어선 놈」이 손자뻘 되는 꼬마들과 6년간 학교에 다니는 사이에는 홍노인을 중심으로 흥미진진한 반응들이 나타났다. 그는 처음 손자가 입학한 68년 3월 7일 병에 앓아 누운 애를 업어 갔고 8일 동안을 내처 그렇게 했다. 이때였다. 못 배운 한을 풀자는 소원이 솟구쳐 손자 보호 겸 자기 공부를 위한 입학수속을 취했다. 1, 2학년 때는 학교서 배운 ㄱ, ㄴ, ㄷ이나「참새 한 마리」같은 것이 재미가 있어 집에 돌아와서는 꼬마놈에게 복습을 시키는 등 열심이었다. 그것이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사과 반쪽을 칠판에 그려놓고 1/2 혹은 1/3 하는 산수공부가 시작되자 어찌나 어려운지 집에 가서도 손자 앞에 큰 소리 한번 못치고 끙끙 앓아야 하기도 했다. 등교길에 손자와 간판 읽기 경쟁, 학교선 청소하고 불피워 1, 2학년 때까지만 해도 노인이 손자를 앞세우고 집을 나서면 동네 사람들의 손가락짓이 대단했다. 그렇지만 노인은 즐거웠다. 학교에 가는 길가에 광부모집광고나 영화선전「포스터」가 나붙어 있으면 으레 손자와 알아맞히기 내기를 걸었고 판가름을 담임선생에게 부탁했다. 노인은 이 내기에서 이기면 이긴대로 지면 진대로 신이 났었다. 학교에 도착하면 교실을 청소하고 난로불을 피워놓고 담임선생을 교무실에 가서 모셔왔다. 공부가 끝나면 손자 또래를 모두 집으로 보내고 교실 복도 유리창 변소청소를 도맡았다. 이러한 생활이 계속됐다. 6년 동안 한 책상에서 할아버지와 나란히 공부한 손자 성덕군에게도 여러가지 감상이 없을 리 없다. 성덕군은 졸업생 중의 가장 친한「클라스·메이트」나 길동무로는 할아버지 한 사람밖에 가지지 않는다. 『4학년 때부터는 할아버지가 내 책가방을 들고 가면 창피해서 할아버지 것도 내가 들고 다녔어요. 공부시간에는 할아버지한테서 담배냄새가 자꾸 나서 참는데 혼나기도 했구요. 그렇지만 이제는 그것도 구수해졌어요』라고 말한다. - 할아버지는 어떤 공부를 제일 많이 했니? 『참 우스워요. 할아버진 집에서 국어공부만 자꾸 하자고 조르거든요. 과학 산수 미술 음악 공부는 전혀 하려고 하지를 않아요. 그래서 시험 때는 내가 할아버지를 도로 가르치느라고 혼이 나기도 했죠』 공부시간에 가끔 담배생각 나는지, 라이터 뚜껑을 잘칵잘칵 - 공부시간에 할아버지가 장난도 쳤니? 『그럼요, 이따금 뚜껑이 떨어져 나간「라이터」를 꺼내 가지고 잘칵잘칵 켜보곤 해요. 담배생각이 나서 그러는 지도 모르겠어요』 체육시간에 손자 또래들이 공차기 시합을 하면 홍노인은 옆에서 지켜 서있는다. 그러다가 애들이 넘어지면 얼른 뛰어가서 일으켜준다. 이 때문에 시합이 잠깐 중단되곤 한다. 노소(老少)가 동락하는 6년이었다. 6학년 담임 김용태 교사는 노인을 깍듯이 모셨다. 맨 처음 담임을 맡아 교실에 쓱 들어섰을 때가 제일 거북했다. 출석부를 부르는데 할아버지뻘 되는 홍노인의 이름을 감히 입에 올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익힌 수법은 눈으로 슬그머니 노인의 모습을 확인하면 그대로 출석란에 도장을 찍었다. 선생님은 출석점호 이름 못부르고 담배도 노인 안보는 곳서 그래서 홍노인은 6년 동안 한 번도 출석부로 호명받지 않으면서도 개근상을 타는 우리나라 유일의 국민학교생도가 되기도 했다. 또 하나 담임선생이 거북했던 것은 담배 피우는 장소. 꽤 먼 변소에 가서 피워야 했으니 말이다. 그런가 하면 학급운영, 아이들 싸움, 시설물 유지 같은 까다로운 일은 담임이 나서지 않아도 홍노인이 도맡아 처리했다. 더욱이 할아버지가 열심히 공부를 하는 통에 덕을 본 사람이 김선생이다. 이 학교에 있는 6학년 6개반 중 김선생의 반이 제일 좋은 성적을 올렸다. 이유는 노인이 열심히 공부하는 통에 꼬마들도 덩달아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김교사는『노인이 우리반에 계셨기 때문에 교과서대로의 공부를 가르치기는 했지만 내가 인생을 배운 것은 가르친 것보다 더 많다』고 말한다. 노인은 잘못하면 졸업장을 못탈 뻔도 했다. 교직원 중에서 주자는 파는 김준한 교장 단 한 사람뿐이고 나머지 45명은 반대파였다. 1주일 동안이나 옥신각신이 벌어졌다. 교직원들은 의무교육법상 칠순 노인에게 졸업장을 줄 수 없다는 유권적 해석(?)을 내세웠고 김교장은 배움에 무슨 나이냐고 주장, 끝내 교장의 교육관이 이겨 졸업대장명부에 3312번으로 등록되고 졸업장이 나갔다. 학교에서 3km나 떨어진 곳에서 매일 등교할 때면 3곳의 철도 건널목을 지켜 꼬마들의 안전통학을 보장한 임시교통순경도 홍노인이었다고. 학교의 시설보수, 학풍조성, 문제아동선도 등에 나서 교사들보다 더 열심히 일한 사람이 또 홍노인이었다. 소원을 푼 노인은 글을 익힌 눈으로 죽을 때까지「소설책」을 많이 읽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날 졸업식을 끝낸 노인은 교문까지 따라 나온 담임선생과 허리를 굽혀 깍듯이 인사를 나누었다. 손자 같은 교사에게 노인이 마지막으로 남긴 인사는『선생님 감사합니다』였다. <삼척 = 송병훈 기자> [ 선데이서울 69년 2/23 제2권 제8호 통권 제22호 ]
  • [기고] ‘도배’ 봉사하는 검사들/김정석 경주한마음봉사단장

    올겨울 들어 가장 추웠던 지난 2월2일 세계적 관광도시 경북 경주시의 변두리 골목 안쪽 허름한 가옥에서는 기계공구들의 굉음 속에 15명의 남자들이 한파 속에 입김을 토해내며 지붕, 마당, 주방, 방안에서 분주하게 일손을 움직였다. 한해동안 방치한 듯 천장은 비가 새 얼룩져 있었고 달력은 2004년 1월에 멈춰 있다. 엄마 없이 생활하다 아버지까지 가출해, 친척집을 전전하며 사는 고등학생 남매의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한마음 봉사단이 남매를 위해 집수리 활동을 펼치는 현장이다. 봉사자들 가운데 선비풍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한 남자가 썩은 장판을 안고 나온다. 대구지검 경주지청 조동석 지청장이다. 방 한편에서는 30대 초반의 김한중 검사가 도배지에 열심히 풀칠을 하고 있다. 그런데 봉사단원 중 누구도 일을 시키면서 검사님이라 부르지 않는다. 조사장님, 김선생이라 부를 뿐이다. 건축기술자들로 구성된 한마음봉사단에서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정기적으로 무료 집수리 봉사활동을 펼친다. 2004년엔 51일간 45가구를 고쳐주었다. 그 봉사활동에 대구지검 경주지청장과 검사가 참여한 것이다. 올해부터 매월 두차례씩 순번제로 참여하기로 한 경주지청의 첫 봉사활동이다. 경주지청 검사들은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만큼 봉사단 규칙에 따라 무엇이든지 시켜만 달라고 했다. 물론 호칭은 ‘검사님’이 아니다. 점심 또한 지청장이 참석하였다고 달라질 게 없다. 평소대로 작업대를 식탁 삼아 선 채로 양푼 밥에 김치와 찌개 한가지를 먹을 뿐이다. 지청장은 잠바에 도배풀로 범벅이 된 젊은 검사를 쳐다보며 “맛있제.”하며 두공기씩 뚝딱 해치운다. 도배기술자 회원이 도배 보조를 한 검사에게 “검사 사직하고 나따라 도배일 할 생각 없느냐.”고 묻자,“일당이 얼마냐?”고 되묻는데, 옆에 있던 총무가 “솜씨보니 세식구는 먹여 살리겠다.”고 하자 모두 한바탕 크게 웃는다.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집수리 현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서툰 솜씨지만 최선을 다해 비지땀을 흘리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정말이지 세상도 변했고 검사들도 변했구나 생각해 보았다. 오는 3월3일에도 검사들이 참여하는 일정이 잡혀있다. 그날 참여하는 다른 ‘선생’들의 모습은 또 어떠할는지 마냥 기대가 된다. 아마 검사들에게 호령(?)하는 사람들은 우리 한마음봉사단 식구뿐일 것이다. 경제불황 속에서도 지난 연말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불우이웃돕기 성금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였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국민성이요 저력이다. 진정 국민의 검찰이자 최고 사정기관으로 거듭나고 있는 검찰! 그들은 바로 국민들의 애환을 보듬을 줄 아는 진정한 ‘사장’과 ‘선생’들일 것이리라. 김정석 경주한마음봉사단장
  • [아하 그렇구나]도전! 크리스마스 케이크

    [아하 그렇구나]도전! 크리스마스 케이크

    올해 서른인 이재영(테크노마트 경영기획실)씨는 요즘 고민에 휩싸여 있다. 만난 지 100일 되는 올 크리스마스에 ‘여친’을 ‘애인’으로 바꾸려는 계획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 한 발 다가가면 딱 한 발 더 멀어지는 여친을 확 ‘땡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그는 케이크를 만들어 마음을 사로잡기로 했다. 그러나 거듭되는 실패, 책과 인터넷을 섭렵해도 좀체 맛있는 케이크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30년 경력의 ‘베이커리 명장’ 김영모선생님을 찾아 사사받았다. 먼저 재영씨는 김선생님과 무슨 케이크를 만들까 상의를 한 결과 ‘허니 그린티’라는 벌꿀과 녹차가 들어간 롤케이크에 생크림과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기로 결정했다. 재료 계란 150g(보통 크기로 3개), 설탕 120g, 벌꿀 25g, 박력분(과자용밀가루) 90g, 전분 8g, 녹차분말 8g, 버터 20g, 우유 30㏄ (1)계란을 거품기로 충분히 풀어준다.팁:거품기를 쓸 때는 반드시 그릇을 유리나 플라스틱 그릇을 써야 한다. 또 계란을 충분히 풀어야 설탕이 응고되지 않는다. 설탕이 계란 노른자에 직접 닿으면 덩어리진다. (2)계란 푼 것에 설탕과 벌꿀을 넣고 45℃로 만들어 거품을 낸다. 꿀은 케이크를 촉촉하게 한다. 팁:직접 열을 가하면 안 되고 끓는 물에 그릇을 담가놓고 거품을 내야 한다. 즉 중탕해야 한다. (3)보통 거품기로 5분 이상, 부피가 처음 계란의 2배 이상될 때까지 거품을 낸다.(4)박력분과 전분, 녹차분말을 체에 내린 다음 (3)과 섞는다. 팁:섞을 때 거품이 꺼지지 않게 주걱으로 거품을 밑에서부터 퍼 올리며 섞어야 한다. 거품이 꺼지면 빵이 딱딱해진다. (5)버터와 우유를 그릇에 넣고 끓는 물에 중탕으로 녹이고 (4)에 넣고 섞는다. 거품이 꺼지지 않게 밑에서부터 섞는다. (6)빵틀에 (5)를 넣고 스크래퍼로 편편하게 만들어 220℃의 오븐에서 8분 굽는다. 팁:케이크를 구울 때 빈 빵틀에 물을 살짝 뿌리고 겹쳐서 굽는다. 그래야만 빵이 타지 않고 부드럽게 구워진다. 장식용 크림은 생크림 500㏄에 설탕 30g, 코앵트로(오렌지향의 술) 5㏄를 넣고 거품기로 5분 이상 충분한 거품을 내면 생크림이 된다. 팁:생크림에 거품을 낼 때는 밑에 얼음물을 넣고 내야 한다. 생크림은 차가워야 거품이 잘나고 단단해진다. (7)케이크가 완전히 식은 다음 딸기를 올리고 시럽과 생크림을 바른다. 안쪽은 많이 바르고 끝으로 갈수록 적게 발라야 끝이 풀리지 않는다. (8)김밥을 말듯이 말고 5분정도 그대로 두면 풀리지 않는다. (9)생크림과 장식으로 겉을 장식한다.
  • [눈에 띄네~ 이 얼굴] ‘범죄의 재구성’ 백윤식

    새로운 발견.중년배우 백윤식(57) 앞에 붙어야 할 수식어다.늦깎이 스크린 스타로 떠오른 그의 존재감은 벼락스타들이 잠식한 최근 영화판에서 더더욱 특별해 보인다.평단의 찬사를 이끌어낸 ‘지구를 지켜라’(2003년)에서부터 돋보인 그의 비범한 영화적 재능은 새 영화 ‘범죄의 재구성’(제작 싸이더스)에서 또 한번 유감없이 발휘됐다. 범죄사기극인 새 영화에서의 역할은 ‘사기꾼계의 전설’로 통하는 일명 김선생.오랜 사기행각에도 전과가 전혀 없을 뿐 아니라 절대 인명피해를 입히지 않기로 유명한 ‘젠틀맨’이다.몇년째 손을 씻고 조용히 은둔생활하던 그가 크게 한탕하자는 젊은 사기꾼 창혁(박신양)의 유혹에 솔깃해 슬슬 몸을 푼다. 중후한 저음으로 무심하게 욕지거리를 쏟아내는 그 독특한 연기를 어느 배우가 흉내낼 수 있을까.극중에서는 자신의 범상찮은 (사기)능력을 예의 그 저음으로 이렇게 응축해 표현한다.“내가 청진기 대면 진단 나와.나,김선생이야.” 애드리브인지 시나리오에 있는 대사인지 모를 기발한 대사들은 거의 그의 몫이다.“형님,손 끊었다면서요?”라며 은근슬쩍 한탕을 부추기는 창혁에게는 이렇게 쏘아붙인다.“아냐.나,수술해서 다시 붙였어.” 중앙대 연극영화과 출신으로 1970년 KBS 공채탤런트 9기로 연예계 데뷔했다.드라마 한편만 떠도 당장 스크린으로 진출하는 요즘 스타들의 행보에 비하면,그의 뒤늦은 스크린 입성은 ‘숙명적’이라고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요즘 그의 인기는 젊은층 사이에서 더욱 가파른 상승곡선을 긋고 있다.신인가수 미스터김의 1집 뮤직비디오에 기타를 들쳐메고 출연해 화제다. 황수정기자 sjh@˝
  • ‘범죄의 재구성’ 관객과 감독 퍼즐 맞추기

    15일 개봉하는 ‘범죄의 재구성’(제작 싸이더스)은 정교한 퍼즐게임을 푸는 것 같은 범죄 스릴러 영화다.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최동훈 감독은 짜임새 있는 구성과 속도감 있는 전개 등 신인답지 않은 노련한 솜씨로 관객의 시선을 빨아들인다. 감독은 일단 ‘한국은행 50억 사기대출’이라는 사건의 현장을 툭 던져 놓는다.주범 창혁(박신양)은 경찰 추적을 피해 도주하다 사망한 것처럼 처리한다.돈의 행방 역시 오리무중이다.이후 촘촘한 그물을 던지며 ‘범죄의 재구성’에 나선다.잔뜩 궁금증을 자아낸 뒤 조금씩 강도를 높여가며 관객의 머리를 고문(?)하는 식이다. 범죄를 재구성하는 주역은 두 명.범죄를 저지른 사기단의 대부인 김선생(백윤식)과 수사를 맡은 차반장(천호진)이다.물론 관점은 다르다.김선생은 손에 거의 넣었다 놓쳐버린 돈을 찾느라 혈안이 된 ‘비분 강개파’.차반장은 김선생을 비롯,나머지 범인들의 체포에 열중한다.두 사람의 시선을 따라다니며 영화는 시간 순서에 따라 범인들을 추적하면서 중간중간에 범죄 구성과정을 회상신으로 비춘다. 영화의 모티프는 1996년 경북 구미의 한국은행 사기 사건.사기 전과자인 창혁은 출소하자마자 한국은행을 털 계획을 갖고 ‘사기계의 전설’로 통하는 김선생을 찾아간다.창혁의 카드에 공감한 김선생은 잡학다식한 떠벌이 얼매(이문식)와 제비 김철수(박원상),그리고 화폐 위조의 달인 휘발유(김상호) 등으로 팀을 만든다. 위조한 50억원의 당좌수표를 갖고 일반 은행원과 현금 호송원으로 위장한 일당은 한국은행에서 현금과 무기명채권으로 교환한 뒤 문을 나서는데,갑자기 정체불명의 여인이 제보전화를 하면서 범죄는 ‘절반의 성공’에 그친다.한편 김선생의 동거녀로 사기극에 합류한 ‘구로동 샤론 스톤’ 서인경(염정아)은 동생 창혁의 사망보험금을 타게된 창호(박신양)의 돈을 노리고 그에게 접근한다. 사건의 진상이 한꺼풀씩 벗겨지면서 영화는 범죄를 재구성하는 한 주범이 창혁임을 암시한다.하지만 김선생이 창혁의 옛 애인을 찾아가 형인 창호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까지 최동훈 감독의 ‘사기극’은 거의 완벽하다.창혁의 실체에 대한 낌새를 조금씩 노출해 영화의 밀도를 높여간다.일당의 존재가 하나 둘 밝혀지고 그들의 증언과 테이프 등의 자료에 기대면서 톱니처럼 맞물린 범죄 퍼즐을 정교하게 맞춰간다.그에 비례해 관객의 궁금증도 조금씩 증폭된다. 꼬일 대로 꼬인 채 물고 물리는 사건 전개,앞 장면의 대사를 받아 다른 상황으로 이어지는 편집 방식 등 최동훈 감독의 세련된 연출력이 돋보인다.직접 취재하면서 건져 올린 생생한 ‘업계 은어’와 치밀한 시나리오,사기의 먹이사슬을 빠르고 활기차게 이어가는 힘은 할리우드 영화 탓에 높아질 대로 높아진 ‘관객의 눈맛’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는다.목소리를 빼고는 창호·창혁 1인2역 캐릭터를 잘 소화한 박신양의 연기에다 염정아·백윤식·이문식 등 개성파 연기자들의 개인기와 팀워크로 빚는 ‘연기 화음’도 영화에의 몰두를 도와준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눈에 띄네~ 이 얼굴] ‘어린 신부’ 안선영

    지난달 23일 ‘어린 신부’의 시사회가 끝난 뒤 열린 기자회견장에는 폭소가 끊일 새 없었다.이 영화로 스크린에 데뷔한 ‘예쁜 개그우먼’ 안선영(28·왼쪽)의 ‘유쾌·상쾌·통쾌한’ 입담 덕분이었다. 극중 역할은 아기자기한 핑크빛으로 일관하는 영화에서 갈등을 부추기는 유일한 캐릭터인 노처녀 김선생님(‘김샘’으로 불린다).할아버지의 뜻을 거역하지 못해 대학생 오빠 상민(김래원)과 억지결혼한 보은(문근영)의 담임선생님이다.하필이면 보은의 학교에 상민이 미술교생으로 부임하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작업’에 들어간다.노골적인 애정공세에 상민이 당혹해하면 협박까지 서슴지 않는다.“(음흉하고 느끼한 목소리로)학교생활 편하게 하려면 우리 한잔 더할까요?” 이렇다 할 갈등구도가 없이 밋밋한 영화에 그는 입체감을 불어넣는 공을 세웠다.느닷없이 상민-보은의 신혼집을 쳐들어가 발칵 뒤집어 놓는가 하면,쩔쩔 매는 상민에게 콧소리 섞어가며 은근한 눈길을 보낼 때는 코믹영화의 주인공으로도 손색이 없겠다 싶다. 부산 경성대 연극영화과 출신.2000년 MBC 섹션TV 연예통신으로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데뷔 전 5년여 연극무대에 섰다.실제 성격도 털털하고 밝은 편이다.“연기는 어려울 게 없었는데,감독님이 쫑파티 때까지 술 한잔 사주지 않는 게 더 참기 힘들었다.”며 기자회견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화면발이 너무 좋더라.”는 어느 기자의 칭찬에 입이 함박만해져서는 속사포처럼 되돌려주는 화답.“오늘,제가 술 살게요!” 황수정기자 sjh@˝
  • 영화 ‘범죄의 재구성’ 주연 박신양

    “이전까진 멜로나 슬픔에 기댄 캐릭터를 주로 맡았는데 이번엔 은행·경찰은 물로 사기꾼에게도 사기를 치는 통쾌한 역할입니다.” 트레이드 마크였던 ‘멜로 배우’에서 형사와 조폭두목 등 다양한 캐릭터로 탈주해온 박신양(36).그가 15일 개봉하는 ‘범죄의 재구성’(제작 싸이더스)에서 희대의 사기꾼으로 변신한다.영화는 사기꾼 대부 김선생(백윤식)에게 사기당한 뒤 자살한 형 창호의 복수를 위해 창혁이 ‘한국은행 50억원 사기인출극’을 벌인 뒤 같은 사기꾼 일당들도 속이는 과정을 밀도있게 다뤘다.박신양은 노랗게 염색한 머리와 화려한 셔츠에다 가죽점퍼를 입고 한탕을 노리는 동생과 책방 주인인 소설가 형의 2역을 맡았다. 30일 시사회가 끝난 뒤 그를 만나 ‘킬리만자로’에 이어 두번째로 1인2역을 마친 느낌을 물었다.“둘 다 싸이더스 작품인데요,이번에도 흥행이 안되면 3번째 1인2역 영화찍자고 하겠죠(웃음).쌍둥이의 정체성 문제를 다룬 ‘킬리만자로’처럼 철학의 문제를 담았다면 심각했겠죠.” 두 역을 동시에 소화하느라 고충도 많았을 듯.“형으로 나올 땐 라텍스로 분장을 했는데 표정이 안드러나고 얼굴이 구겨지기도 해 어려웠어요.특히 5시간쯤 찍다보면 너무 힘들어 ‘입 주위 라텍스를 없애달라.’고 주문한 적도 있습니다.”분장은 감쪽 같았다.파트너인 염정아도 낯설어 “오지도 마라.”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형과 비슷한 인물을 홍익대 근처 헌책방에서 찾았어요.만나서 녹음도 하는 등 준비를 한 덕분에 형의 캐릭터에 힌트를 많이 얻었어요.” 개인적으로는 동생 역할이 더 힘들었다고 털어놓는다.“촬영장이 조용할 때도 맡은 캐릭터 때문에 혼자 흥분하고 들떠있는 역을 하느라 힘에 부치기도 했습니다.쉬운 역은 아니었죠.” 간담회 내내 그는 작품과 최동훈 감독에 대한 감탄사를 연발했다.“시나리오가 너무 좋았습니다.촬영이 20%쯤 진행됐을 때 ‘언제까지 이렇게 재미있게 갈 수 있을까.’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는데 놀랍게도 만족감이 마지막 내레이션 작업까지 이어졌습니다.한국 상황에서 이런 작품을 찍은 최동훈 감독의 능력,특히 변해가는 상황을 중간중간 흡수하면서 촬영을 이어 가는 솜씨에 놀란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이종수기자 vielee@˝
  • “커밍아웃, 연기로 보여드립니다”/SBS ‘완전한 사랑’으로 3년 만에 복귀 홍석천

    2000년 9월 동성애자임을 밝히는 ‘커밍아웃’이후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탤런트 홍석천(32)이 안방극장에 돌아온다.그것도 흥행 보증수표로 통하는 김수현 작가의 멜로 드라마에 비중있는 조역으로 발탁됐다.새달 4일부터 방송하는 SBS 특별기획 ‘완전한 사랑’(연출 곽영범)이 연기 인생 2막을 여는 무대. “커밍아웃한 인테리어 디자이너 역할이에요.주인공 시우(차인표),지나(이승연)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친구로,특히 동업자인 지나와는 동성 친구처럼 속마음을 털어놓는 절친한 사이지요.”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자의반타의반 방송을 그만뒀던 그가 지상파 드라마로 돌아오는 데는 꼬박 3년이 걸렸다.그에겐 30년보다 더 긴 세월이었을 것이다.“너무 기쁘고,두려워요.첫 촬영때 카메라앞에서 얼마나 떨었는데요.어떤 모습을 보여드릴 지 아직 자신은 없지만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그는 작가와 연출자에게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다.일면식도 없던 자신을 불러준 은인들이다.“지난 추석때 처음 김선생님댁에 인사를 갔는데옆집 아주머니처럼 소탈하게 대해주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김 작가는 그에게 동성애자에 관한 사적인 질문을 전혀 하지 않는다.그럼에도 대본에는 동성애자의 일상과 심리들이 아주 날카롭게 묘사되어 홍석천은 무척 놀랐다고 했다. 김 작가가 요구한 것은 단 한가지.“과장하지 말고 자신을 그대로 보여줘라.”호들갑스러운 목소리와 독특한 몸짓으로 희화화되기 일쑤인 기존의 동성애자와 달리 이 드라마에선 지극히 평범한 이웃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한동안은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좌절에 빠져 지낸 적도 있지만 이젠 주변 시선에 일희일비하지 않아요.길가다 마주친 분들이 ‘언제 방송에 나오느냐.’고 격려할 만큼 사회적 인식도 많이 달라진 것 같구요.시청자들의 반응이 궁금하긴 하지만 그래도 불안하지는 않아요.” 시종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는 그에게서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의 우스꽝스러운 ‘쁘와종’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얄궂은' 운명이 많은 것을 앗아갔지만 대신 돈으로 살 수 없는 귀한 인생 경험을 했기 때문이아닐까. 이순녀기자 coral@
  • 스크린 명대사

    #“삶은 때로는 기회를 주기도,때로는 뺏기도 하죠.”…‘러브 인 맨하탄’에서.호텔에서 잡일을 하는 여주인공에게 상사가 관리직 승진을 통보하며. #“자네도 고향을 찾아봐.색이 바래고 모양이 망가져도 늘 그곳에 있지.벤은 내 고향이야.”…‘문라이트 마일’에서.딸의 약혼자가 아옹다옹하면서도 부부가 함께 사는 이유를 묻자 수잔 서랜든이. #“김선생,김선생은 선생같지 않아서 좋아.”…‘선생 김봉두’에서.돈봉투만 밝히는 선생님에게 학부모가.
  • 대한매일 창간98/문학이 추구하는 광장 작가 김주영씨 대담

    2002 한·일 월드컵은 우리에게 우리 스스로도 믿지 못하던 ‘경이로운 힘’을 확인시켜준 계기였다.‘월드컵 4강’이라는 성적도 그렇거니와 대회 전기간을 통해 세계의 눈길을 사로잡은 붉은악마의 응원열기 또한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우리 사회를 온통 붉게 물들인 국민의 자발적인 집체성은 우리에게는 ‘정체성의 확인’이었고,세계인에게는 부러움을 넘어 두려움까지 느끼게 한 ‘경이’였다.이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놀라운 응원열기가 우리사회의 열린 공간인 광장을 우리 자신,특히 신세대가 주체적이고 주도적으로 구축했다는 점에서 무척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평가했다.이에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가김주영씨의 눈을 통해 이 놀라운 현상의 본질이랄 수 있는 광장(廣場)혹은광장지향성(廣場指向性)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번 월드컵 때의 응원열기는 사회 전반에 큰 충격을 전했다.문학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문학의 민중성 혹은 대중성이란 것도 근본적으로 광장이나광장성의 지향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설사 작품에서 밀실을 다루거나 폐쇄를 거론하더라도 궁극적인 지향점은 ‘광장’이라고 보는데 이에 대한 견해는. = 문학은 독자를 전제로 한 창작이며,여기에 비평과 작품의 평가를 둘러싼논쟁이 반드시 수반돼야 하는데 이 세가지가 유기적으로 기능하는 현상 자체가 문학의 광장이다.그렇다면 문학의 최종 목표인 대중성을 획득하려는 노력이 바로 광장지향성 아니겠는가.물론 대중성의 조건은 ‘독자의 구미에 맞는 작품을 창조하는 것’으로 통속성과는 구분되는 개념이다.문학에서의 대중성은 문학의 존엄성과 순수성을 지키면서 얻어지는 것이어야 한다.인간생활의 저변에 깔린 퇴폐성을 조장하거나 그것에 동조하는 문학이어서는 곤란하다.이런 의지가 광장성을 결정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문학을 통해 스스로 이루고자 하는 광장의 원형은 무엇이며,자신의 문학작품에 투영된 ‘광장’이나 ‘광장지향성’의 특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광장의 원형은 대화와 의사소통이며 대화가 가능한 곳이 바로 광장이다.우리보다 시민민주주의가 훨씬 오래전에 발아해서 완성된 유럽의 경우 도시,즉 생활의 중심지에 항상 포룸이 자리했다.이게 바로 대화가 있는 마당,즉광장이다. 내 작품중 ‘객주’를 들어 말하자면 외상인 보부상과 시전 상인,객주들간의 갈등구조가 큰 줄기를 이룬다.이들은 작품 전반을 통해 갈등하고 반목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권력이나 폭력 대신 대화를 통해 이해를 조정하고 문제를해결한다. 이것이 작중 인물들의 광장지향적인 노력이고 내가 그린 광장성의 원형이다. ◆최근 월드컵에서 나타난 광장성 혹은 광장지향성은 엄밀한 의미에서 볼 때우리 사회가 그동안 갖지 못한 ‘광장’혹은 ‘광장성’에의 희구가 반영된결과라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이 해석에 동의하나. = 수백만의 응원인파는 그동안 우리 사회가 얼마나 막히고 통제된 곳이었나를 확인시켜 주었다.사실우리에게는 자연발생적인 축제문화나 서로를 끌어안는 화합·신명의 장이 거의 없었다.사회적 분출구로서의 광장이 없었다는 말이다.그런데 이번에 어땠나.모두가 함께 열광했으며 모르는 사람끼리도 얼싸안고 기뻐하지 않았는가.강제해서 될 일이 아니다. 또 제도적인 것에 업혀 살아온 기성세대에 대한 젊은이들의 불신의 강도를확인시켜준 계기이기도 했다.달리 말하면 그만큼 기성세대가 막힌 시대,통제의 시대를 살아왔다는 뜻이다.사실 우리에게는 자연발생적으로 사회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분출기능이 취약했다. 그런데 이번에 ‘나’가 아닌 ‘우리’,즉 공동체문화를 완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실체적으로 보여줬다.여기에 기성세대도 호응함이 마땅하다.이런 점에서 서울시가 시청 앞 일대에 광장을 만들겠다고 한 것은 좋은 발상이라고여겨진다. ◆이번 월드컵에서 나타난 응원열기를 두고 일부에서는 ‘의식없는 집단성’이라든가 ‘국수적 집단행동’이라고 해석하는 이들도 없지 않은데…. = 편협한 시각이다.이데올로기를 잣대로 지금의 젊은이를 보는 것은 잘못이다.응원열기에 대한 이런 유의 비판은 스스로의 편견이 무너진 데 따른 허탈감의 발로 아니겠는가.응원에 참여한 젊은이들을 의식없는 집단이라고 하는데 의식없이 어떻게 그런 엄청나고 완벽한 집단성과일관된 지향성을 나타낼 수 있는가. 사실 우리 젊은이들이 예전 중동전 때의 이스라엘 젊은이들처럼 ‘나도 싸우겠다.’며 유학을 포기하고 귀국하는 모습을 보일지 회의가 들곤 했는데지금은 아니다.엄청난 응원열기를 보고 우리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갖게 됐다.정말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우리 사회에도 역사적으로 볼 때 마당놀이나 세시기의 집단적 여흥 등 의미있는 광장성이 존재했다.그런 역사적 광장성과 최근에 나타난 광장성에는어떤 차이가 있다고 보는가. = 지금 드러난 광장은 전제주의 시대의 제한된 광장과는 다른 것이다.하회 등지의 탈춤이나 광대놀이 마당이 지배층의 용인아래 이뤄진 타율적 광장이었다면 이번에 선보인 광장은 자발적이고 자연발생적이라는 점에 큰 차이가 있다.요즘 젊은이들은 그런 구시대적 통제를 거부하고 또 개의치 않는다. 또 우리 젊은이들이 권력·금력으로 국민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는 특권의식이나 엘리트의식을 모두 불식시켰다는 점에서 ‘타의’가 작용한 옛날의그것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정말 오묘한 것은,우리 젊은이들이 개인주의적이라서 똑같은 것을 거부하는성향이 강한데 수백만이 주저없이 붉은 옷을 입는 집합성을 보여줬다는 점이다.이를 사회심리학적으로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김선생님도 문학활동을 하면서 광장의 부재에서 오는 한계를 느낀 경우가있었을 텐데.예를 들면 과거 ‘화척' 집필 초기에 절필을 선언한 것도 뒤집자면 냉전적 시대논리가 ‘광장’을 허용하지 않은 데서 오는 일종의 ‘밀실강제에 대한 반발’로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인지. = 과거 우리 사회는 익명성에익숙해 있었다.사회는 구성원들에게 ‘흑백’과 ‘피아’의 선택을 강요했고 이런 사회에서 자신을 숨기고 지키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바로 어느 쪽에든 편입하는 것이었다.마치 단체관광처럼 앞사람의 뒤통수만 보고 따라가면 탈없이 여행은 할 수 있되,돌이켜 보면 뒤통수 말고는 본 게 없는 식이었다.기성세대는 이런 이데올로기 틀에 갇혀 살아왔다.다행스러운 것은 우리젊은이들이 이처럼 일률적인 줄서기문화,밀실문화를 단호하게 거부하고 전혀새로운 광장문화를 이끌고있다는 점이다. 광장이란 게 뭐냐.개방이다.개방이란 스스럼없이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이것은 자신감이고 역동성이다.지금 젊은이들은 이제 누가 시켜도 우리가 산,불행한 전철을 되밟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문학에서도 광장이나 광장성에 대해 거론한 사례가 없지 않았다.물론직접적이냐,우회적이냐의 차이는 있었겠지만,지금까지 우리 문학에서 다뤄온 광장성을 어떻게 특징지을 수 있을까. = 분명한 것은 기성 문인들에게는 논쟁이 결여됐었다는 점이다.서로 다른 관점이 부딪히는 논쟁을 거쳐야 진보와발전이 있는 것인데,우리는 친소관계에 발목이 잡혀 바람직한 논쟁문화를이끌지 못했다.이것이 광장성의 부실로 이어졌다.배타적인 그룹의 집단성도광장성을 가로막는 요인이었다는 점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반해 요즘 신세대 문인들은 불륜이나 섹스,여행 등 주제에 제약을 받지 않고 글을 쓴다.신춘문예나 문예지 추천없이도 책 한권만 내면 문인 대접을 받는 세상이다.이런 추세가 광장성 측면에서는 광장을 넓히는 계기가 되지 않겠나.◆실제로 우리가 처한 반(反)광장적 상황,이를테면 자주적이거나 주체적이지못한 정권,역사적 정당성을 결여한 정권은 필연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고 이런 정치·사회적 요인이 문학을 압박한 사례도 많았을 터인데. = 어디문학뿐이겠는가.군사정권을 거쳐 오면서 문인·언론인 등 수많은 지식인이핍박받은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 아닌가.꼭 물리적인 방법이 아니고라도 얼마든지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익히 경험해 왔다.미묘한 것은 권력이 존재하는 한 이런 제약이 근절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아무리 광장성이 확장된다 해도 그것이 바로 진정한 표현의 자유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볼 때 그 이후는 문인들의 과제 아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문인들은 많은 고뇌와 모색도 했을 것이고 더러는 행동에도나섰는데…. = 문인들의 저항도 치열했으며 이들에게 가해진 유·무형의 고통은 열거하기도 쉽지 않다.정말 다행스럽게 여기는 것은 그런 문인중 누구도정권 교체후 정부 요직에 몸담지 않았다는 점이다.모두가 자기 자리로 돌아와 스스로의 자리를 지키는 것을 보고 그들에 대한 존경심을 갖게 됐으며 내가 문인이라는 사실에 자긍심을 갖는 계기도 됐다. ◆광장성과 관련해 우리 문학의 지향할 바를 진단해 달라. = 우선 문학작품에대한 예리하고 치열한 논쟁이 필요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문학을 위해 더많은 공부가 필요하며 돈에 한눈 팔지 않는 만큼 문학이 존엄해진다는 점도얘기하고 싶다.덧붙이자면 문학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갑자기 유명해 지고싶다는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자승자박이 돼 나중에 문학을 지키지 못하는사례를 많이 봤다. 심재억기자 jeshim@ ■김주영씨의 근황 김주영(63)씨는 교통사고로 다리가 불편한 중에도 기꺼이 인터뷰에 응해 주었다.최근에는 주로 전라도 지방을 기행하며 그곳의 오지와 많은 섬들에 묻혀 있는 ‘우리 것’찾기에 천착한다는 그의 지칠 줄 모르는 탐구열에 외경심마저 느끼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세상을 쉽게 살고 있다는 반증은 아닐는지…. 장편 ‘객주’이후 쏟아낸 그의 작품은 하나같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문명을드높여주었으나,정작 그가 우리의 소중한 문화적 자산인 까닭은 언제나 세상을 사람의 눈으로 보는 가장 보편적이고도 통찰력있는 시각의 소유자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홍어’와 ‘멸치’이후에 어떤 작품을 준비 중이냐는 물음에 그는 “요즘 관심사는 내 인생의 이면에 이삭처럼 흘려놓은 것들,지금의 시선으로는 대수롭지 않거나 괄시해도 된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하나하나 모으고 수습해서 문학작품으로 승화하는 준비를 한다.”며 담담하게 웃어보였다. 심재억기자
  • [편지로 본 1940년대 문단秘史] (8) 궁핍했던 시인 이용악

    “북쪽은 고향/그 북쪽은 여인이 팔려간 나라/머언 산맥에 바람이 얼어붙을 때/다시 풀릴 때/시름 많은 북쪽 하늘에/마음은 눈감을 줄 모르다” 절창 이용악(李庸岳·1914∼1971)의 시 ‘북쪽’이다.같은 고향을 노래하는 데도 곰살스럽지 않게 식민지의 비애가 묻어나면서도 기개와 투지가 넘친다.민족정서를 노래한 시인 중 드물게 건장한 구리빛 얼굴의 농투사니 심경에 바탕한 남성적 세계를 형상화한 이용악은 여성적인 김소월과 대조를 이뤄 오히려 이 시인이야말로 우리의 민족시인이라는 주장이 확산되어갈 지경이다.그가 노래한 ‘북쪽’은 바로 함경북도 경성(鏡城),파인 김동환과 같은 곳이다.지연만으로도 이용악은 충분히 삼천리사와 가까울 수 있는 처지인데 거기에다 그 특유의 마당발식 사람됨까지 겹쳐 북도 출신 문학인의 재경(在京) 친목회장 격이었다. 누구나 서울 오면 그를 앞세워 고향 선배에게 찾아 다녔음이 여러 편지에서 드러난다.꼿꼿하기로 소문난 황순원조차도 평양에서 상경하면 최정희를 직접 만나지 않고 “이용악형과 함께 찾아 뵈올까 했으나 그날 사와 댁에 계실 것같지 않다는 이형의 개의(改意)”로 만나기를 포기하고 하향했다고 전한다. 황순원의 발신지는 평양시 무림리 156-6.숭덕학교 교사로3.1운동에 관련되어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아버지의 기개를 이은 듯한 고결한 시인이자 작가였던 황순원은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뒤 평양에 머물다가 1943년고향인 대동군 재경면 빙장리로 낙향하여 학대받던 한글로창작에 전념하며 상처 없이 8·15를 맞은 깨끗한 문사였다. 평양에서 낙향 직전에 보낸 이 편지로 이용악은 최정희의일정을 꿰고 있다는 것과 황순원을 비롯한 서도(평안도)와북도 문인들을 연계지어 주는 중개역이었음을 엿볼 수 있다. 그것도 잡지사와 작가를 연계시켜 주는 단순한 뚜쟁이가 아니라 집필 상담도 해주는 자문역을 수행하고 있다. 장사꾼이었던 아버지가 객사한 뒤 어머니의 국수 떡 계란을 팔아 연명했다니 이용악 집안의 어려움은 알만하다.일본 유학시절에는 온갖 품팔이를 다 해본 이 시인은 가난의무서움을 알기에 최정희에게 보낸 편지에 민망할만큼 애절하게 취업을 청탁하고 있다.“매신(每日新報) 건(件) 지금으로부터 잘 운동하면 될 것 같은데 김선생(파인)께서힘써 주셨으면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아무튼 수일 내로이력서 다시 써서 김선생께로 보내 볼 작정이 올시다”고이용악은 숫제 사정조다. 다른 한 편지에서는 “김동진(金東進)씨”를 언급하면서 “김선생께선 그후 만나실 기회가있으셨는지” 구체적으로 묻는데, 김은 바로 평양출신 언론인으로 1940년 11월부터 매일신보 상무로 있었던 인물이다.입사하기만 하면 친일파로 낙인찍혔던 매일신보에 그렇게 기를 쓰고 들어가려 했던 이용악의 소망은 좌절당했는데,대체 그가 얼마나 호구지책이 어려웠기에 이 지경이었을까.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1939)한 이용악은 물 불 가릴 틈새 없이 생활난에 허덕이며 ‘인문평론’같은 별로 평판이좋지 않던 잡지에 몸담았다가 서울 생활이 어려워져 귀향한 것이 1942년이었고,그가 최정희에게 보낸 편지는 다 이때 쓴 것들이다. 바로 이 해에 최정희 주변에는 어떤 일이있었던가. 편지에 보면 우선 김동환과 신원혜 부부의 장남영사(英士·1926년생)가 죽었는데,파인은 매우 침통해 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용악은 최정희에게 “최선생 조차곁에 없다면 김선생께선 도저히 이번 슬픔에서 헤어나지못할 것입니다.잘 위로해 주시길 바랍니다”고 했는데,신원혜의 존재를 거의 의식하지 않은 천진스런 시인의 눈치가 엿보인다. 이용악 서간문의 발신지는 청진시 신암동이나,잠시 “극히가난한 월급 봉투를 받고 있던” 청진일보사였다. 그러나이 시인이 아이를 가지고도 “내지인(일본인)이 아니면 배급도 주지 않는다”는 가난 속에서 “입고 있던 와이셔츠등속이랑 뜯어서 기저귀를 만들었답니다.그러나 댁(최정희)에서 애기 낳을 때 쯤에는 혹은 얻을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란 구절은 너무 서럽다. 콩트처럼 이런 가난한 시인의 집에 도둑이 들어 단 한 컬레뿐인 ‘백화(白靴)를 훔쳐 가버렸는데,“용악이 보다도더 비참한 사람이겠습니다.덕분에 며칠이고 들어앉아 독서나 해야 밑지지 않겠습니다.취직되면 구두 한 켤레야 사겠죠”란 구절에 이르면 이용악의 인간됨을 느끼게 해준다. 이런 판세에 최정희에게 아기(지원)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봐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그의 설래발은 여전히 널리 펼쳐져 있었던 것 같다. 이 각박한 시대에 우리의 민족시인이용악이 가난과 병마와 싸우며 ‘채근담(菜根譚)’과 헤세의 ‘데미안’을 탐독했었다는 삽화는 그의 문학론 이해에 새 조명을 쏘게 해준다. 이 고난의 시기에 이용악이 쓴 시 ‘길’(‘국민문학’ 1942.3)은 자칫하면 “싱가포르 함락이라는 ‘지극히 복된기별’을 듣고 별을 우러러 ‘즐거운 백성’된 것을 노래함으로써 일제의 침략 전쟁을 합리화했다는 엉뚱한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실은 “고통스런 시대를 살아가는 식민지 지식인의 부끄러운 자기 확인의 사회적 의미”(윤영천,‘이용악론;민족시의 전진과 좌절’)로 보기도 한다.사족이지만 이용악은 이 혹독한 가난의 체험 때문에 8.15직후상경하여 ‘조선총독부 도서관(국립도서관의 전신)’ 일본인 관장 관저가 적산가옥으로 접수된 걸 불하받는 민첩성을 발휘할 수 있었다.조선문학가동맹에 적극 가담,활동했으나,정부수립 전후해서는 정인택(鄭人澤) 등과 정릉 이웃에 살다가 6.25 직전에는 서대문형무소에 수감,전쟁중 현덕·설정식 등과 월북한 그에 대해서는 북한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관계는 얽히고 설키기 마련이어서 이용악이 그토록 들어가고자 했던 매일신보사의 ‘사진순보(寫眞旬報)’에 근무했던 작가 정인택은 직장 관계로 꽤나 친일작품을 지저분하게 남긴 심리주의적 경향의 작가로 이상·안회남(安懷南) 등 서울내기 중 몰락한 집안 출신들과 가까웠다.안회남은 ‘금수회의록’의 작가 안국선의 외아들로 우국지사인 아버지 때문에 불우한 성장기를 보낸 고독한 작가로 술을 즐겼다.진도로 유배당한 안국선이 현지 처녀와 결혼,방면 후 서울에서 얻은 아들이 바로 회남이다.지사 기질을이어받은 회남에게 식민지 교육은 배포가 안 맞아 아버지의 타계와 비슷한 시기인 고교 4학년 때 등록금을 유용한채 자퇴,문학과 술과 연애라는 일제 통치 아래서의 전형적인 절망의 문학병에 빠져들었다. 최정희에게 언제나 술타령 구절이 들어있는 편지를 보냈던곳은 종로구 체부동 시절로 안회남이 1940년대 초반 충남연기군 전의면으로 낙향하기 직전에 쓴 글들이다. 편지에는 친하게 지냈던 작가 현덕(玄德),이석훈(李石薰)이 등장하고,원고료를 받으면 “아내가 월여를 두고 조르던 전기다리미를 하나 사고는 최정희에게 점심을 사겠다”는데 그메뉴가 “정식을 취하시든지 또는 50전 영화 구경 50전 맥주 50전 런치를 취하시든지”하라는 제안은 당시 문인들의취향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엽서는 오히려 노골적인 사과내용을 담아낸다. “저녁에 댁에 간 것은 저의 잘못이올시다.용서해 주시옵소서.술이 대취했습니다”고 정중히 사과하는 안회남의 자세는 다른 문인들과는 달리 지사형 작가로서의 풍모가 드러나 있다. 이용악을 중심축에 둘 때 그 양쪽에 배치되어야 할 인물은당연히 같은 고향인 재주꾼 김종한과 문단에 별 기반을 못잡은 박찬모(朴贊謨)일 것이다. 원산 북선매일신보를 발신지로 한 박찬모의 편지에 등장하는 인물은 단연 ‘용악형’이 제일 많고, 그 다음이 현덕인데,작품 경향으로 볼때 용악과 현덕은 어떤 의미에서는 상통한다.“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이번 삼독째 덤벼 중권을 읽는 참에 독소전단(獨蘇戰端)의 보(報)를 받았다는 것이 요즈음 마치 살아나게 되는 것 같은 자극입니다”는 구절은 이 젊은 작가가시골에 몸은 두고서도 세계정세를 정확히 독파하고 있구나싶은 대목이다.세계사를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라면 독일의패배는 예견된 필연이었다. “딱 엎드려 동면을 하고 싶은가 하면 느닷없이 어디 부딪쳐 보고 싶어 못 견디겠고”라고 이어지는 구절은 심상찮은 암시다. 아들 자랑과 가정을들먹이는 대목은 역사의 격랑 속으로 뛰어들지 못하는 자괴감을 달래려는 속내를 드러낸다. 임헌영 문학평론가·중앙대 겸임교수
  • [편지로 본 1940년대 문단秘史] (5)여인의 우정

    사랑이 시대와 사회와 민족성에 따라 달라진다는 건 스탕달의 ‘연애론’ 제2부에 나오는 유명한 화두다.식민지 시대의 연애는 어땠을까.한국 문단사에 등장하는 1920년대의연애는 기생과 문사의 사랑이었고,1930년대로 접어들면서민중운동성 연애가,그리고 일제 탄압이 강화되면서 보다 비극적인,그러나 다분히 불륜적인 연애의 유형이 등장한다.최정희를 둘러싼 세 여성,모윤숙과 노천명은 바로 이런 일제탄압기의 연애 유형을 실천한 여인상으로 부각된다.셋 다유부남과의 관계 때문에 고뇌하면서 문학과 인간과 사랑을함께 헤쳐나간 평생 동지적인 관계를 유지했다.그녀들의 애인은 셋 다 공교롭게도 납(월)북됐고,그 사실 때문에 우정은 더욱 공고해질 수 있었다.셋은 최정희를 가운데 두고 서로 여성적 독점욕의 질투를 보이기도 했지만 그게 큰 문제는 안되었다.1911년 9월 1일 황해도 장연에서 태어난 노천명(盧天命·1911∼1957)의 아명은 기선(基善)이었으나 여섯 살 때 홍역을 너무 심하게 앓아 죽는 줄 알았다가 살아나자 하늘이 내린 명이란 뜻으로 오히려 시인에 더욱 걸맞는멋진 이름을 얻었다. 진명여고를 거쳐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1934)한 깡마르고 고적해 보이는 그녀가 일약 문단의 목이 긴 사슴으로 명성을 얻은 건 첫 시집 ‘산호림’을 내고 꽤나 호사스런 경성호텔에서 출판기념회를 개최하고서였다. 1938년 1월이었는데,이 해가 그녀에게는 길운이었다.조선일보 출판부 발행 ‘여성’지 기자로 취직이 된데다,극예술연구회에 가입,체호프 원작 ‘앵화원’의 여주인공인 라프네스카야(모윤숙扮)의 귀여운 딸 아냐로 출연했다. 보성전문 김광진(金洸鎭)교수는 무대 위의 노천명에 매료되었고,그들은 이내 깊고 심각한 관계로 빠져 들었다.유진오가 소설 ‘이혼’(‘문장’ 1939.3.창간호)에서 이들의연애사건을 다뤄 장안의 화제가 되어버린 건 문단 가십의하나다. 소설은 홍윤희란 여학교 교사인 영문학 전공의 27세 노처녀(당시로서는 이 정도가 노처녀였다)여주인공과,조혼으로 아내를 외면한 채 여급,유한마담 등과 빈번한 관계를 가진 상사회사 회계주임인 38세의 박재신이 열애에 빠진 사건을 다뤘는데,참고로 말하면 유진오는 김광진과 같은 보성전문(고려대 전신) 교수(1936∼1945.3월 폐교 때까지)였다. 소설 속의 등장인물은 나이나 성격 등이 비슷하여 입방아에 올랐는데,남주인공은 아내에게 논 열마지기를 떼어주고 서류상으로는 이혼했으나 언제든지 시댁에 와도 좋다는,한번시집간 여인은 영원히 그 댁의 귀신이라는 철칙은 지키는기묘한 형태의 헤어짐을 강박했다. 사실 신여성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이혼서류였으며,남자는 이걸 위해 고향에 장기 체류했다가 상경했는데,여주인공은 그새 삐쳐서 싸우는 장면에서 소설은 끝난다. 이 소설이 딱히 실제와는 다를지라도 노천명과 김광진의애정행로에 가로놓인 난관을 이해하는 데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데이트 중 여인은 주로 로렌스의 ‘차탈레이 부인의사랑’이 어떻고 계속 이야길 하지만 남자는 시큰둥하고,남자는 해군비행기가 중경(重慶)을 폭격했다는 등의 다분히 시사적인 화두를 끄집어 내는데,이에 대한 여인의 반응은 냉담 정도가 아니라 대륙의 지리에 대하여 너무나 무지하여 놀랄 지경이었다고 묘사하고 있다.사실 노천명이 최정희에게 보낸 편지 내용의 상당 부분은 이런 둘 사이의 여러 갈등을 하소연하고 있는데,이 소설이 좋은 참고가 됨직하다. 물론 소설대로 믿기어려운 대목도 있다.남자에게 춤을 가르쳐달라고 여자 쪽에서 먼저 접근해 간 것으로 묘사한 건 아마도 작가가 동료 교수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 사건을 접근한 탓으로 보인다. 1902년 평남에서 태어난 김광진은 동경(東京)상대 졸업 후 보성전문에서 경제사를 강의했던 마르크시스트였는데,해방 직후부터 건준(建準) 평남지부의 무임소 위원이 되는 등이내 월북하여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노천명에게 더욱 큰 상처가 된 것은 김광진이 유명한 기생 왕수복과 관계를 맺어버렸다는 사실로,결혼까지도 고려했던 남성으로부터의 배신은 이 섬세한 여성시인에게 실의를 안겨 주었다.북한에서도 경제학 관계 연구활동을 계속했던 그는 1981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임대식 편 ‘식민지시대 한국사회와 운동’).편지도 일기장처럼 가장 고통스러울 때 길고 아름다워진다.워낙 고독한 노천명은 유부남과의 사랑의 아픔을최정희에게 서리서리 펴놓는다. 조선일보 근무 시절(1942년 사직)에 가장 많은 편지를 보낸 것으로 봐서 연애의 초기가 가장 괴로움과 기쁨이 충만했던 것 같다.아마 노천명이 최정희에게 보낸 첫 편지는 “웬 일이겠수.며칠 전부터 당신에게 괜히 자꾸만 긴 편지를보내고 싶어 겉봉을 써 가지고는 호주머니 속에다 이렇게넣고 다니는데 당신에게서 우연히 글이 왔구려”라는 것인듯하다.‘친전’이란 걸로 봐서 직접 전해줬는데,이건 그만큼 은밀한 사연을 담고 싶다는 욕망의 표현이기도 하다. “당신은 내 맘에 맞는 이--고운 여인이오.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당신의 얘기를 하므로써 내가 자랑을삼”는다는 말처럼 노천명에게 최정희는 마력처럼 다가섰다.이 편지는 시집 ‘산호림’이 출간되기 불과 며칠 전이니까 아직은 천진스런 처녀 시인의 감상적인 일면이 그대로드러나 있다.즉 김광진을 알기 직전이었다. 다음 편지의 “문외한 김선생이 ‘거울’을 몹씨 칭찬하는구려”에 등장하는 ‘김선생’은 김광진으로 초기 데이트단계로 보인다.“정희!”라고 시작하는 편지에 이르면 김광진과 사랑이 깊어져 환희와 고뇌가 공존하는 모습을 엿볼수있다.“내 마음은 옛날을 더듬어 오직 아픈 것을 어찌 하겠소.허나 이런 말을 해 무엇하오.그는 진실하고 유망한 청년이었소.언제나 내가 사랑할 수 있는 훌륭한 청년이었소. 그가 행복하기만 몰래 빌고 있을 뿐이오”란 대목은 종잡을 수 없는 열정의 회오리 속에서 방황하는 자세가 나타난다. 이 기간에 아마 노천명은 구미포,진주,합천 해인사,백천(白川)온천 등지를 여행하며 최정희에게 편지를 보냈는데,대개가 사랑으로 말미암은 고통을 호소한다. 자신의 사랑 이야기만 하기가 미안했던 그녀는 “당신은이제서야 안전한 배에 가 탔소.김선생(김동환)은 반드시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것이오.그는 죽도록 연애감정을 가질수 있는 사람인 것 같았소.…해당화 같은 당신이 또 그분을 행복케 하고 남음이 있을 것을 내가 믿소.어서 잔치를 하자구나.내가 국수랑 말구 떡이랑 담으마.나는 아무 짓을 그날 해도 좋을것만 같다.어서 기쁜 날을 가져와다우 친구야”라는 편지에 이르러서야 파인과 최정희는 공개된 동거관계로 들어간 것 같다.그 뒤 파인과 최정희의 덕소 집 모습이 아름답게 묘사되는 편지와,출산,모윤숙의 모종의 험담으로 신문사를 그만 둬야 할 것 같다는 내용이 이어진다.그리곤 매일신보(노천명은 1943년 매일신보에 입사) 잡지부에앉아 ‘여류작가’들에게 “병정 얘기”,즉 “군국물(軍國物)”을 청탁하는 편지가 식민지 시기에 보낸 아름답지 못한 마지막 편지로 남는다. 광복후 노천명은 서울신문 문화부에 근무했다.이미 김광진은 월북해 버려 그녀에게는 친일행위와 함께 식민지 시기의 아픔은 이중의 상처로 저며왔다.종로구 동숭동에 최정희가 기거했던 시기는 1949년 1월부터 1957년까지 매우 긴 기간이었다. “언제 이 땅 그 남자들의 품격이 우리 여인들과 동등이 될는지 너무 한심한 상태요”란 구절은 문단 모임에 나갔다가 당한 모욕감에 대한 화풀이리라.노천명은 1946년 서울신문을 사직하고 엉뚱하게도 유학을 빙자하여 일본 밀항을 감행했는데(1947),가족들의 맹렬한 반대로 이듬해 귀국했다. 아무려면 김광진이 그리워 취했던 해프닝은 아닐 테지만 노천명답지 않은 돌출이었는데,그 상상 밖의 행위가 바로 6.25 때도 반복되었다.인민군 점령하의 서울에서 그녀는 문학가동맹에 가입,‘반동 문학인’ 체포에 협조한 혐의로 서울 수복 직후 체포돼 20년형을 선고받고 부산에서 복역했다. 이헌구.김광섭.모윤숙 등 문인들의 석방운동으로 1951년 4월 출옥한 그녀는 부산에서 최정희에게 외로운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는 편지를 보냈다.공군 종군작가단(1951년 1.4후퇴 직후)과 육군 종군작가단(1951.5.26)은 다 대구에서결성되었는데,최정희는 공군종군 작가단 소속으로 대구에서 지내고 있었다.이 무렵 노천명의 편지에 언급된 문인들은다 여기 소속이었다. 석방후 부산 중앙성당에서 가톨릭에 입교,베로니카란 세례명을 얻은 그녀는 공보실 중앙방송국에 근무하는 등 안정을 되찾았으나 이미 목이 긴 사슴으로서의 센티멘탈한 여성시인은 아니었다.그녀의 시에는 잡식성이 침윤되어 청순 단아하던 세계는시들어 버렸다.친일,친공,반공 행위를 두루 거친 이 목이긴 외로운 사슴 시인은 1957년 6월 16일,누하동자택에서 세상을 등졌는데,최정희는 문인장으로 치러진 그녀의 장례식에서 울먹이며 약력을 낭독했다. 임헌영 문학평론가·중앙대 겸임교수
  • [‘6.15’이후의 북한](8)비전향장기수 최하종씨

    지난 9월2일 평양은 들끓고 있었다.64명의 비전향 장기수가 송환되는 이 날을 북측은 임시휴식일(공휴일)로 정했다.아침 10시 판문점을 통해 송환된 비전향 장기수들이 평양시 초입인 통일거리 환영행사장에 도착한 것은 오후 3시35분.고층아파트촌인 통일거리는 환영인파로 발디딜 틈도 없었다. 이날 북으로 돌아간 비전향 장기수중 한 사람인 최하종씨(73).그의개인사는 우리 현대사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면에서 특기할 만하다. 최씨가 남으로 내려온 것은 62년 3월.‘5·16혁명’ 주체중 한 사람이었던 삼촌 최주종(작고·주택공사 사장 역임)장군을 만나러 내려왔다.최장군은 박정희 전대통령의 만주군관학교·일본육사 후배 출신. 최씨는 함경북도 성진(현 김책시)에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중국 하얼빈공대와 김책공대를 나와 당시 국가계획위원회에 근무중이던,북의 청년 엘리트였다.남으로 내려온 이유를 그는 “삼촌과 통일문제를협의하기 위해”라고 밝혔다. 그런데 서울에 와서 삼촌에게 연락하자마자 그는 바로 체포됐다.삼촌은 “그것이 너도 살고 나도 사는 길이다”면서 “재판정에서 ‘강제로 내려왔다’고 진술해라.그러면 내가 빼내 주겠다”고 했다.그러나 최씨는 끝내 “자진해서 내려왔다”고 진술했고 결국 무기형을 받았다. 최씨가 감옥문을 나선 것은 36년 만인 1998년.당시 그는 만70세였다.이북에서 태어나 생의 절반 이상을 이남에서 보내야 했던 그에게는남쪽과는 또 하나의 큰 인연이 있다.바로 북에 두고 온 부인이 서울출신이었던 것이다.부인의 이름은 김재숙(70).대한매일에서 출판한‘북한인명사전’에는 상업성 국장을 지내고 은퇴한 것으로 나와 있다. 김씨는 일제하 신간회 서기장을 지낸 독립지사 김항규 선생(93년 건국포장 추서)의 딸이다.김선생은 해방후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면서 이승만 정부에 참여를 끝내 거부했다.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김병로선생,허헌 변호사와는 일제하 결의형제를 한 사이였지만 김병로 선생이 단독정부에 참여한 후로 그와 결별했다.48년 김선생이 서울의 한달동네에서 쓸쓸히 눈을 감았을 때 김병로 대법원장이 경찰 사이드카를 앞세우고 달동네 상가를 찾아오는 바람에 동네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고 한다. 김여사는 48년 월북해 허헌 집안에서 기거했고,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를 나와 상업성에 근무하던 55년,최씨와 결혼했다.그러나 부부는 결혼한 지 6년 만에 헤어져야 했다. 9월2일 오후 7시 평양시민들의 열광적인 환영 속에 환영행사를 마친 비전향 장기수들은 고려호텔 식당에서 가족들과 둘러앉았다.마침내마주앉은 최하종·김재숙 부부.최씨에게 감회를 물었다.“우선 기쁘고요,우리는 다른 이산가족들처럼 헤어지지는 않아도 되니 울 일은없겠구나 했는데 판문점에서 아내의 얼굴을 본 순간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자신들을 돌봐준 남쪽 사람들의 고마운 사연을 죽을 때까지 잊지 않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신준영기자 현지르포 junyoung@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16)낯선 땅에서

    *제주 똥돼지치기 자연순환 따른 '유기사육법'. 변소에 들어가니 판자를 얹은 변기 구멍 위로 막대기 하나가 비죽히올라와 있다.이건 뭣에 쓰는 막대기인고.급한대로 주저앉는데 갑자기밑에서 꾸울,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돼지 대가리가 널판자 아래로 쑥들어온다. 내려다보니 돼지우리쪽에서 변소의 밑으로 통하는 개구멍같은 통로가 있고 그리로 돼지가 상체를 들이민 것이다.나는 혼비백산하여 얼른 바지를 추스르고 일어나 변소 밖으로 뛰어 나와 버렸다. 대번에 어떤 광경을 머리 속에서 떠올렸기 때문이다.일을 보는 중에오물이 밑에 있는 돼지의 귀에라도 떨어지고 그것이 머리를 흔들며털어댄다면 나의 아랫도리는 그야말로 초토화 될 게 아닌가. 밖으로 나와서 어쩔줄 모르고 발을 구르며 서성대다가 하여튼 일이급하여 다시 들어가서 조심스럽게 주저앉는데 또 꾸울,한다.그제서야 나는 구멍 위로 비죽히 솟아 있는 막대기의 쓰임새를 알아차렸다.막대기를 잡아 이곳 저곳 찌르면서 머리를 들이밀려는 동물을 쫓으면서 일을 치뤘다.아래에 신경을 쓰느라고일도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대충 하고서 얼른 나온다.나오면서 뒤를 돌아보니 돼지가 다시 울타리판자 사이로 그 영리한 눈을 반짝이며 나를 본다.나는 뒤늦게야 돼지의 눈빛이 어째서 그렇게 영리해 보이는지를 짐작했다.그가 나를 보는 눈빛은 이를테면 “야,밥 온다!” 하는 느낌의 표정 그대로였기때문일 것이다.괘씸한 놈 같으니. 자연보호 좋아하는 이들 말로는 변소를 돼지 식당으로 삼는 제주도의전통식 돼지치기야말로 자연의 순환 법칙에 따른 지혜로운 사육 방법이라고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럴듯한 말이다. 사람 거시기 먹고 싼 돼지거름은 밭으로 가고 푸성귀는 그걸 먹고 자라나 사람이 다시먹게 된다.그럴듯하기는 해도 어쩐지 먹는 얘기 하다가 싸는 얘기 하려니 께름직하다. 제주의 돼지는 전통적인 사육 방법 때문에 지금은현대식 돈사로 모두 바뀌었지만 옛날 이름 그대로 ‘돋통시(똥돼지)’라는 정답지만 치열한 이름을 그대로 달고 있다. 그러나 조상이 그렇게 자라나 그런지 제주 토종돼지의 맛은 전국에서 알아준다.우선 기름기가 적고연하고 부드러우며 살이 찰지다고 한다.맛있기로는 제주도의 산야에 즐비한 구멍이 촘촘한 화산석을 달구어 그 위에서 소금뿌려 구어 먹는 맛이 일품이다. 기름기를 돌이 흡수해 버린다.적당히구워 먹다가 새것으로 바꾸면 된다. 이런 얘기를 하면 나더러 야만인이라고 하겠지만,세계 어디에서나 민속 음식치고 약간은 야만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가령 ‘새끼회’ 같은 것은 여자들은 대부분 먹지 못하고 남자들 사이에서도 비위 좋은총각 녀석들이 키들대며 서로 격려하며 먹을만한 음식이다.이것은 새끼를 밴 돼지를 잡아 태 속에서 그야말로 태어나기 직전의 돼지새끼를 꺼내어 깨끗이 손질하여 칼로 조아서 갖은 양념한 날 것이다.대접에 담아 내온 것을 보면 거의 물회처럼 보이기도 하고 죽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처음 먹는 사람은 이런 물기가 어디서 나온 것인가 의문을가져서는 절대로 먹을 수가 없다. 실은 애기보를 함께 존 것이라 양수가 고기와 함께 섞인 것이다.독한 소주와 물회를 함께 먹으면서 찬으로 곁들여서 밥도 먹는다.나는 체험에 대한 욕구가강한 편이고 호기심이 많아서 몇번 먹어보고 나서 즐기지는 않지만 가끔씩은 마다하지 않게 되었다. 어느 해인가 팔십년대에 일본에 갔다가 제주도 출신 재일동포 작가인김석범 선생과 만났는데 그가 나를 우에노 야시장 부근에 있는 조선음식점 거리로 데려갔다. 그는 아마도 나를 은근히 떠보려고 했는지도 모른다.자리가 네 다섯 밖에 없는 작은 주점으로 데려가서는 김선생이 새끼회를 시켰다.나는 하나도 놀라지 않고 아주 맛있게 그것을 먹어 치웠고 노인은 매우 놀란 듯 했다.이쯤 하면 아마도 두 손을들줄 알았던 모양이다. 나는 이런 엽기적 만찬에 한국에서 온 손님을초대하고 자신도 즐거워하는 고향 잃은 노작가를 열심히 먹어 주는행동으로 위무해 드렸다. 독일 망명 시절에 윤이상 선생도 가끔씩은 추억 속에서 ‘개장’을떠올렸는데 일본에 갔더니 어느 교포가 몰래 하는 보신탕 집이 있다며 초대를 하더라는 것이다.너무도 신이나서 허리띠 끌러 두고 입맛을 다시며 호텔을 나서려다가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고 했다.혹시라도누군가 기자가 알고 신문에라도 쓰고 그것이 독일 사회에 알려지면저명한 작곡가인 그의 삶과 예술은 그날로 끝장이라는 것이다.실제로독일에서는 그 무렵에 자르 탄광지대에 있던 한국인 광부 몇이서 놀러 갔다가 동네에서 어슬렁거리는 개를 한 마리 잡아 먹고 들통이나서 온 독일의 신문에서 떠들썩했던 일이 있었다.이것은 서구에서는우리 사회에서 토막살인 정도의 엽기적인 사건이 된다.그들 광부들은 막대한 벌금을 물고나서 국외 추방을 당했다.그러나 한편 생각해 보면 타관 객지에서 그런 강렬한 토속 음식은 알지못하게 시달렸던 다른 종족으로서의 정체성을 달래주는 것이 되기도 한다. 돼지고기 이야기가 좀 길어졌지만 육개장도 빼놓을 수가 없다.제주의한라산고사리는 먹고사리라고 하여 연하고 맛이 좋은데 돼지 살코기와 함께 찢어서 양념하여 육개장을 끓이면 얼큰하고 구수하다.간을맞출 때에 밀가루나 메밀가루 갠 것을 훌훌 뿌리면 국물이 꺼룩하고진득해진다. 선선한 가을이 되면 꿩이 살이 오르고 한창 먹을만 해지는데 ‘메밀저배기’는 꿩 고기 음식으로 가장 알려진것이다.메밀을 반죽하여밀어서 칼국수처럼 썰어 두고 꿩은 살을 발라내고 뼈를 칼등으로 두드려서 생강 마늘을 두어 푹 우려낸다.국물에 간을 하고 채 썬 무를넣고 다시 끓이다가 메밀국수와 파를 넣고 끓여낸다. 메밀로 하는 음식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빙떡’도 그중의 하나다.메밀 가루를 풀어서 돼지 기름으로 번철에 넙적하니 지진다.그 위에 고명을 얹는데 전통적으로는 고사리와 무를 채 썰어서 넣지만 요새는 표고 돼지고기 당근 파 등속을 쓰기도 한다.조금 더 고급으로하려면 무채와 다진 꿩 고기를 넣기도 한다. 익어가는대로 끝에서부터 돌돌 말아서 지져낸다.이런 빙떡을 칼로 썰지 않고 길다란 채 그대로 손에 들고 먹어야 맛이 좋다.꿩고기 샤부샤부 같은 것은 꿩 사육장이 많아진 뒤에 나온 관광식당의 품목이다. 차조로 하는 것으로는 평안도의 노티처럼 ‘오매기 떡’이라는 게 있다.차조를 불려 방아에 찧어 가루로 만든 다음 동그랗게 빚어서 끓는 물에 삶아서 꿀이나 묽게 만든 설탕에 갠다.여기에 콩고물이나 팥고물을 묻히기도 한다.고구마를 말려서 가루를 내어 생고구마를 얇게저며서 켜로 깔고 시루에 쪄내는 ‘감제떡’도 맛이 있다. 이런 여러 먹을거리 외에도 나는 뭐니 뭐니 하여도,더운 여름날 찬밥에 세닢짜리 콩잎을 따다가 깨끗이 씻어서 멜첫(멸치젓) 한 마리 얹어서 앞니 끝으로 꼬리 지느러미 잘라 뱉어내고 싸먹는 콩잎쌈 맛을잊지 못한다.젓갈이라면 그밖에도 ‘게우젓’과 ‘자리젓’이 밥맛을돋군다.자리젓은 제주도 발음으로 ‘자리젯’이라고 해야 입 안에 침이 고이는데 위에 나온 자리돔을 소금에 절여 삭힌 것이다.통째로 담근 것을 잘 다져서 풋고추와 다진 마늘 고춧가루로 양념하여 밥 반찬으로 먹는다.게우젓은 일테면 전복의 내장으로 담근 젓인데 요즈음은너무 비싸서 발발 떨며 먹어야 한다.단골 회집이 있다면 서너번 가서호기있게 팔아 주어야 한번쯤 작은 종지에 내다줄 정도다. 전복내장을 사다가 집에서 소금에 절여 푹 삭이고나서 묵혔다가 조금씩 내어갖은 양념하여 먹는데 잘 묵힌 게우젓은 오래된 고추장처럼 되직하고짙은 암갈색이 된다. 이것을 젓가락 끝으로집어다 뜨거운 밥위에 살살 비비면 쌉쌀하고 비릿비릿하고 고소한 맛이 입 안에 가득찬다.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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