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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양학의 진수 주역인생 반세기

    ▲스승의 길 주역의 길-김석진 지음/한길사 펴냄. 우리들 대부분의 인생은 소설이 되기엔 너무 평범하다.또소설아닌 다른 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독서의 수고를 요구할정도의 깊이를 가지고 있지 못한다.‘‘주역의 대가 대산 김석진의 주역인생 반세기’란 부제가붙은 ‘스승의 길 주역의 길’(한길사)은 소설처럼 앞길의전개가 궁금해지면서 동시에 소설보다 훨씬 자주 지은이와주인공의 영혼,독자인 우리들의 인생에 대한 진정성 등을 묻게 하는 책이다. 지은이(大山 金碩鎭)는 1928년생(83세)으로 50대 후반인 80년대부터 주역강의로 이름을 날려 지금은 책 부제처럼 ‘주역의 대가”로 받들어지고 있다.세상살다 보니 별일 다 있다싶게 십여년 전만 해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동양 고전·동양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그런 만큼 동양학의 정수라는 주역(周易) 최고 대가의 ‘주역인생 반세기’는 흥미있는 소재다. 십대 때 신학문 대신 ‘다른 사람이 버리는 것을 나는 취한다(人棄我取)’는 조부의 말씀과 함께 한학에 뜻을 세웠고,19세인 1946년부터 13년간 주역대가이자 기인인 야산 이달(也山 李達) 문하에서 스승의 발을 씻겨주는 세족지제로서 스승과 생사고락을 같이한 인생역정은 흔한 것이 아니다. 흔하지 않는 인생에 대한 호기심으로,동양학에 대한 관심의 일환으로 이 책을 시작한 독자는 20세기 한국에서 주역공부에 인생의 모든 것을 건다는 것의 의미를 깨달으면서 호기심의 질을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모든 사람이 서양,신학문,근대화로 치달았던 그 시절에 1889년생의 스승 야산과 제자 대산은 왜 ‘다 떨어진’ 주역공부에 목을 맨 것일까. 우리는 거기서 우리 주위에서는 보기 어려운 순수와 열정의‘선택’을 본다.우리와 다른,우리보다 고귀한 선택의 인생은 아름답다.그 선택의 내용인 주역 또한 아름답게 다가온다.2만5,000원. 김재영기자kjykjy@
  • 경실련 공청회, “공직자재산 상시 공개해야”

    공직자들의 부정한 재산증식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재산관련 정보와 자료를국민들이 수시로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또 고위공직자와배우자,자녀의 재산은 공인된 독립적인 수탁인에게 맡겨 관리하는 이른바 ‘가려진 신탁’제 도입도 제기됐다.이같은 주장들은 10일 경실련 주최로 열린공직자 재산공개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공청회에서 나왔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김종성 특별연구원은 이날 발표에서 “부동산 및 세무관련 전산망,금융종합 전산망과 연계해 공직자의 모든 재산을 종합관리하는 ‘공직자 재산관리 종합전산망’을 구축해 이를 토대로 재산변동 내역과 과정을 상시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연구원은 “현행 공직자 윤리법 시행령은 주식이나 부동산 매도·매입 등재산증식 과정을 비공개로 하고 있는 데다가 재산등록 및 심사과정도 비공개로 해 불성실 및 허위신고를 한 공직자가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도록 돼있어 재산형성 과정에 대한 투명한 검증이 불가능하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또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실사과정과결론은 물론 수정·보완요구 내용,징계 대상자 명단 등의 공개를 의무화하는 등 윤리위 자체활동에 대해서도 투명한 공개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나아가 “재산등록 의무자 범위는 현행 4급 이상에서 5급 이상으로 확대하고 공개대상 범위도 1급 이상에서 3급 이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북대 경영학부 김석진 교수는 ▲내부정보 거래 규제에 관한 홍보 및 교육▲포괄적 사기금지조항 신설 ▲일정금액 이상 거래 세부사항 보고 및 가려진신탁 등 공직자 윤리법 보완 ▲금융종합과세와 금융실명제를 통한 금융거래투명성 확보 ▲집단소송제도 도입 ▲제보자 포상제도 보완 ▲시장감시 및 조사 강화 ▲증권계 내부 자율규제 강화 등을 보완책으로 주장했다. 김교수는 특히 정기공시 제도와 관련,“현행 반기보고서 대신 분기보고서제도를 도입,재무상황에 대한 정보를 신속하고 지속적으로 공급해 기업의 부도발생 여부 예측,재무상황에 대한 신속·정확한 정보를 쉽게 입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공시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충남대 자치행정학과 신희권 교수는 “고위 공직자들은 국민들의 대리인으로 그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지적한 뒤 “한손으로는 규제업무를 집행하고 또 다른 한손으로는 주식투자를 한다고 할 때 도덕적 해이의 가능성이99.9%라 할 수 있다”며 경제윤리적 관점에서 공직자의 주(株)테크 문제점을지적했다. 신교수는 특히 “공직자 재산공개 제도 개선은 제도화될 때 가능하다”면서“정치권과 정부는 이 문제를 과거처럼 일시적 여론회피를 위한 정치적 제스처가 아닌 사회발전을 위한 불가피한 과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현갑기자 eagleduo@
  • 일러스트레이터들 새달 전시회

    동화책이 날로 다양해지고 화려해지고 있다.그림도 단순한 선 위주의 디자인에서 본격적인 유화 내지는 수묵화 등 예술성을 담은 작품으로 바뀌고 있다. 어릴수록 글보다 그림에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그러나 유명화가들이 그려 화제가 된 몇권의 책 말고는,동화책의 그림은 부수적인‘삽화’ 정도로 대접받는 실정이다. 그러나 동화책의 그림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들은 “이야기가 가사라면그림은 멜로디”라고 주장하면서 동화의 예술적 향기를 높이는 것이 바로 그림인 일러스트라고 강조한다.특히 이야기와 그림은 ‘상호유기적’이어야 어린이에게 크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동화그림작가 14명은 이런 관점에서 다음달 8일부터 일주일 동안 서울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일러스트 전시회를 갖고 동화책에 나온 그림의 원화 등을보여준다.97년에 이어 두번째로 열리는 것. 강영수 김민정 김소영 김희영 박찬욱 백은희 안수민 윤미숙 이은선 임경희정세희 최원선 최현미 황성혜씨 등이 출품작가.이들은 자신의 그림을 보면서어린이들이 자란다는 데 크게 자부심을 갖고 있다. “동화책 안의 박제된 그림이라는 점이 아쉬워 책 밖으로 나온 것입니다”강영수씨는 전시회가 작가를 위해 마련됐지만 어린이들을 꿈의 세계로 안내하는 또다른 길이 되기에 충분할 것이라고 밝힌다. 더욱이 이번 전시회는 일본풍과 프랑스의 유명작가의 아류가 판을 치는 풍토를 벗어나보자는 취지도 담고 있다. “동화 일러스트레이터들에게 부여된 과제는 우리 것에 대한 애정과 현대적인 감각을 어떻게 담아내느냐 하는 것입니다” 한양여대 일러스트레이션학과김석진교수는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이런‘독립전’이 발전의 자극이 될 것 이라고 전망한다. 첫번째 전시회에서 어린이는 물론 부모들도 “동화와 꿈의 세계에 젖었다” “마음이 착해지는 느낌이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고 전하는 이들 출품자들은 이번 전시회에도 큰 기대를 갖고 있다.‘아기들은 동화의 그림에서 세상을 만난다’는 확고한 신념을 지닌 이들 일러스트레이터.착한 마음을 갖고나쁜 마음을 반성하는 동화같은 세상을 꾸미는 데 앞장서겠다고 다짐한다.이번 전시회는 어린이들에게 풍성한 꿈을 주는 장(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허남주기자 yukyung@
  • 되돌아본 ‘DJ노믹스’ 1년/독일 질서자유주의/한국경제정책연구회

    지난 1년간 새 정부의 경제정책 색깔이 심심치 않게 도마에 올랐다.진보적인 성향의 학자나 노조측에서는 정부 정책이 “기업위주와 해고 만능의 미국식 신자유주의로 치우쳐 있다”고 비판했다.재벌측에서는 “복지를 내세우고 고용자제를 요청하는 것으로 봐서는 유럽식 복지주의로 흐르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최근 본사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새 정부 정책사조의 본류는 미국과 영국식 신자유주의이지만 여기에 독일식 질서자유주의가 강하게 접목돼 새 정부의경제정책이나 ‘DJ노믹스’로 구체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 정부 경제정책의 틀을 짠 한국개발연구원(KDI) 이진순(李鎭淳)원장은 “신 정부 정책의 구성요소를 보면 미국과 영국의 신자유주의가 60%,독일식 질서자유주의 요소가 40%정도”라고 밝혔다.노조나 재벌 양측이 서로 반론을펼 수 있는 부분이 새 정부 정책에는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영미식 신자유주의 가운데서도 미국보다는 영국의대처 전 총리의 신자유주의가 더 반영되어있다”고 말했다.복지정책에서 정부 정책의 실패를 고치려는 방향으로 선회한 영국이,성장위주 정책의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우리나라와 유사한 면이 많기 때문이다.100여년 전부터 법과경제질서가 확립돼 자유방임적인 정책을 취하는 미국보다 영국 정책이 우리에게 보다 친근한 것이었다는 설명이다. 현 정부가 특히 독일식 질서자유주의를 취한 대목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재벌의 내부거래 규제 등 독과점규제 ▲독일에서 처음 시작된 노·사·정 위원회의 도입 ▲실업자와 빈곤층에 대한 지원 ▲지난해 의도적인 경기부양에반대한 부분 ▲시민단체의 역할을 강조한 것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새 정부의 경제정책이 정확히 독일식 질서자유주의를 답습한 것은아니다.서울대 안병직(安秉直)교수는 ▲재벌개혁에서 정부가 앞장 선 부분이나 ▲노조파업해결에 정부가 개입한 것 ▲노·사·정 위원회 등에서 노조의지나친 우대 등은 질서자유주의의 이념에 어긋난 것이라고 지적했다.안 교수는 “앞으로 정부는 인기를 다소 잃더라도 시장경제원칙에 더 충실하고 노조의 대우도 낮추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정부 관계자는 또 “새 정부 경제정책이 복지 부문을 강조하고 있으나 실업자 지원을 제외하고는 국민연금 등의 경우 자신의 부담이 많아 재정지원이많은 유럽식 복지주의와는 다르다 ”고 밝혔다. 이상일기자 bruce@- 독일의 질서자유주의란 “기근의 와중에서도 쌀을 바닷속으로 버리는 일이 일어난다.독점이나 부분독점이 시장을 지배하는 경우 재고를 이런 식으로 폐기하는 것은 드문 일이아니다.” “자유방임하면 경쟁이 생기고 노동과 재화가 합리적으로 분배될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자유방임 정책은 ‘상호 결합해 경쟁을 배제하는자유’도 보장해주었다.” 독일의 질서자유주의(Order-Liberalism)는 이런 독점과 자유방임 경제의 문제점에서 출발한다. 질서자유주의는 독일 프라이부르크(Freiburg)학파의 지도자였던 발터 오이켄(Walter Eucken)이 주창한 사상이다.대공황과 나찌지배체제에서 오이켄은다음 두가지를 주목했다.첫째 이익단체 등 사적(私的)경제권력의 비대한 성장과 둘째 사적 경제권력의 압력으로 국가의 힘이 빈껍질이 되어가는 현상이다.따라서 그는 시장경제를 원칙으로 하되 독과점규제 등 시장질서 수립과유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정부는 또 중소기업,노약자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질서자유주의는 2차대전후 독일(구 서독)경제정책의 줄기를 이루었다. 질서자유주의는 정부규제 축소와 가격기구 활성화 등에서는 신자유주의와공통된 면을 갖고 있다.그러나 신자유주의는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축소를 주장하는 점에서 저소득층의 보호장치를 강조하는 질서자유주의와 다르다. - 새정부 경제철학 산실 한국경제정책연구회 신정부 경제정책 철학의 줄기를 잡은 것은 ‘낙성대연구소’를 무대로 활동한 ‘한국경제정책연구회’였다.서울대 안병직(安秉直.64.경제학)교수 주도로 지난 87년 사단법인 형태로 출범한 이 연구소는 원래는 한국근대경제사연구팀을 위한 장소였다. 여기에 안 교수가 회장,제자인 이진순(李鎭淳)당시 숭실대 교수(50.현 한국개발연구원장)가 간사로 한국경제정책연구회를 조직,낙성대연구소에서 회동했다.성장위주의 한국경제정책이벽에 부딪쳤다는 인식에서 새로운 한국경제의 정책 모델을 연구하자는 취지였다. 경제정책연구회는 안 교수 제자인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들이 주축을 이루었지만 다른 학교 학자들도 가세했다.윤원배(尹源培) 당시 숙명여대교수(현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와 김태동(金泰東)당시 성균관대교수(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외에 숭실대 조우현(曺尤鉉),경희대 장의태(張義泰),연세대 이제민(李濟民),방송통신대 박덕제(朴德濟),경북대 김석진(金石鎭),원주 상지대 황신준(黃愼俊)교수 등이 참여했다.관리로는 유일하게 이근경(李根京)당시 세제심의관(현 재정경제부 차관보)가 참여해 토론을 벌였다.새 정부 출범전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모였다. 새 정부의 브레인 역할을 한 ‘중경회(中經會)’의 회원이며 나중에 새 정부의 요직을 맡은 이진순,김태동,윤원배씨 외에 대부분의 경제정책연구회 회원들은 학문적 관심에서 모였을 뿐 정치적 연계가 없었다.일부 교수는 그후국민회의와 다른 노선에 서기도 했다.다만 이 KDI원장은 모임 초창기부터 연구성과를 당시 정치를떠나있던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수시로 보고했다. 수년간 낙성대연구소를 중심으로 이뤄진 경제정책연구회의 활동이 DJ와 직접적인 연계를 가졌던 것은 아니다.그러나 그 성과가 새 정부의 경제정책과철학에 한 축을 형성하게 된 데는 이 원장의 역할이 있었다. 이상일기자
  • 증시 작전세력 무더기 적발/회계사 등 10명 구속

    ◎허위정보­가장매매로 주가 조작/증권사 간부와 짜고 고가처분… 70여억 챙겨 서울지검 특수1부(안대희 부장검사)는 26일 ‘작전’으로 주가를 조작해 거액을 챙긴 공인회계사 정재섭씨(40),증권브로커 이혁희(33)·김광래씨(46)등 10명을 증권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한누리살로먼증권 전 차장 박성희씨(35)등 2명은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정씨는 96년 4∼10월까지 대우증권 부산 부전동 전 지점장 박동식씨(40·구속)와 짜고 태평양종합산업의 1백17만주에 대해 고가 매수 주문을 내는 수법으로 주가를 1만9천9백원에서 6만8천원까지 끌어올린 뒤 되팔아 27억여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증권브로커 이·김씨는 96년 10월∼97년 4월까지 한일이화,미창석유공업의 1백50만주와 31만주에 대해 같은 수법으로 작전을 펴 각각 24억원,20억원의 시세차익을 챙겼다. 이들은 주로 단기간에 주식을 매집할 수 있는 자본금 35억∼1백20억원의 소규모 기업을 대상으로 고가매수·통정매매 등의 작전을 폈으며,이 과정에서 신기술 개발설 등을 흘려 일반 투자자들을 끌어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충청은행 펀드매니저 유정현(35·구속),동원증권 서초지점 차장 김석진(35·구속),한누리살로먼증권 전 차장 박씨 등 5명은 이들과 짜고 작전에 가담한 뒤 사례금으로 4천6백만∼1억3천만원씩을 챙겨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위반(알선수재)혐의로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됐다.
  • 대낮 지진/전국이 깜짝 놀랐다

    ◎대형건물 “흔들”… 아파트주민 대피소동/“무슨 일이냐” 언론사 등에 문의 빗발/진앙지 인근 건물 수십채 파손·균열 13일 대낮에 발생한 지진은 전국을 한동안 술렁이게 만들었다.대형 건물이 흔들릴 정도로 강도가 높아 일부 아파트 주민들은 한바탕 대피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진앙지인 강원도 영월·정선군에서는 건물 수십채가 파손 또는 금이 가거나 유리창이 깨지는 피해를 입었다. 지진이 발생한 뒤 언론사를 비롯,기상청·소방서·경찰서에는 시민들의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기상청은 『진도가 4.5이면 건물이 심하게 흔들리고 꽃병이 넘어지고 그릇에 담긴 물이 넘치는 중진』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지진으로 서울 여의도의 63빌딩에서는 85년 건립 이후 처음으로 지진계 기록장치가 작동되면서 비상벨이 울렸다.이 빌딩 지하 1층 「63 시월드」에서는 수족관이 갑자기 흔들려 관람중이던 시민 500여명이 잠시 소동을 빚었다. 진앙지인 영월군 하동면사무소와 중동면 석항출장소의 벽은 각각 20∼10m나 금이 갔고,석항리 석항연쇄점의 유리창 3장도 깨졌다. 정선군 남면 무릉리 묵산아파트에서는 변압기가 파손돼 50가구에 전기가 공급되지 않았다.동면 북동리의 가옥 2채가 일부 부서졌고 많은 건물의 벽과 천정에 금이 가고 타일·석고보드 등이 떨어졌다. 정선군 신동읍사무소 직원 김석진씨(40)는 『읍사무소 건물 내벽 타일 10여개가 떨어지고 보일러실 벽 10여군데에 금이 갔다』고 밝혔다. 김포공항의 국제선 1·2청사와 국내선 대합실에서는 건물이 한순간 좌우로 크게 흔들리자 당황한 일부 시민들은 건물 밖으로 뛰쳐나가기도 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던 김현수씨(32·회사원)는 『느닷없이 밥상위에 놓여 있던 밥그릇과 숟가락 등이 흔들려 순간적으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떠올랐다』고 지진 발생 순간을 설명했다.
  • 서예가 여초 김응현(이세기의 인물탐구:77)

    ◎비학과 첩학을 접목한 온자한 서풍/우리 전통서예 존중,「옛것」 부활 노력/동방연서회 설립… 후학 7천명 양성/보통학교때 붓글씨 시작… 단 1점의 타작도 안써 「고졸하나 우둔하지 않고 활달하나 법도가 있고 염미하나 속되지 않고 웅혼하나 패도하지 않아 강과 유가 서로 돕고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룬다」,즉 『글자마다 생동미 넘치는 운필은 자연스러운 리듬과 균형미에 따라 「중화의 기」가 흐른다』는 뜻이다.이는 여초 김응현 서법에 대한 종명선 교수(서안교대)의 평이다.종교수는 현재 중국서협 학술위원이며 평론가,중국서법대가의 한 사람이다.지난 92년 한·중건교기념 김응현서법전에 붙여진 이 찬사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북경사범대 교수이며 당대 명서법가로 명성을 떨치는 계공은 여초의 서법을 전대의 대가인 추사와 비유하는데 아무 주저함이 없다.우선 두 사람이 모두 「금석고고학에 대한 조예가 깊고 비학과 첩학의 접목을 중시하여 자재로운 천취를 얻고 있는 점」을 들고 있다.단지 추사의 글씨가 「바람을 끼고 비를 몰고오듯 유유자적하게 걸어나오는 데 비해 여초의 서법은 유고유아한 특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70년대 북경서 초대전 널리 알려지다시피 여초는 우리 서예계에서 옛것을 존중하여 전통을 부활시키며 이를 연구하여 마침내 새로운 것을 이뤄내는 데 전생애적 노력을 기울여온 원로다. 그는 일찍이 국제무대로 눈을 돌려 70년대 중반에 대북과 도쿄에서 각각 초대전을 가졌고 80년대말에는 본격적으로 중국본토에 진출하여 북경의 계공,상해의 사치유·왕북악등과 교분을 트면서 한국인으로서는 처음 북경 천안문광장 혁명기념관에서 개인전을 개최,연변·장춘·심양등을 순회하여 그곳 서예인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특히 중국여행중 발표한 「당대의 해서가 동국에 미친 영향」 「안진경이 한·일서법에 끼친 영향」제하의 논문은 「중원시대의 문자와 단군시대의 문자,중원서법과 고구려의 인연관계」를 정밀하게 파헤쳤고 「동방의 금석은 자발적으로 진전됐으며 서체 또한 중국 영향권에만 있어왔다는 통념은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여 한·중 학자간의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그러나 「심도 있는 견해와 견실한 입론,광활한 사로로 펼쳐진 그의 문장은 추호의 빈틈 없는 치학태도」로 평가되어 오히려 중국 서법가들의 공감과 호감을 산 바 있다. 여초의 초기의 서법은 주로 진의 왕희지,당의 구양순,원의 조맹부에 영향을 받아 「새벽바람 속의 잔월(효풍잔월) 같은 청려,대해파도 같은 웅호,뜬구름 스치듯한 표일,고하고 졸하며 기하고 위한 여러 글씨체를 지나」비학을 통한 광개토왕비체와 훈민정음체를 탐구하면서 「화려와 아첨(유미)을 몰아낸 강건한 주경을 성취」한 것으로 대찬되고 있다. 그는 18대째 서울에서 살고 있는 사대부명가의 후손이다.그의 증조부는 구한말 종일품벼슬을 지내다 경술국치때 순국한 김석진 학자이며 조부는 비서원승직을 지낸 동강 김영한,창문여고 설립자인 김윤동씨의 5남3녀중 3남으로 태어나 숭인보통학교에 다니면서 그는 벌써 붓글씨를 쓰기 시작했고 휘문중시절 동몽선습과 명심보감,율곡의 격몽요결 등 옛명현의 시문에 접근해 있었다.그러다가 1944년 아무 연고없이 일경에 연행됐다가 풀려나온 데 대한 후유증으로 도봉동 초가에 묻혀 그때부터 법첩으로 독학한 것이 친형인 김충현·창현 등과 함께 서예의 길을 걷게 된 동기다. ○불의에 타협않는 성품 성품이 꼿꼿하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그는 50년대 중반 「평론 없는 분야는 독립된 분야로 성립될 수 없다」는 자각에서 60년대초까지 스스로 필봉을 휘둘러 「붓에 먹을 찍어서 종이에 긋기만 하면 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문의 뜻도 모른 채 쓰거나 글씨를 그림그리듯 하거나 남의 글씨를 임서하거나 손끝의 재주로 숙달된 필체」가 아닌,「오랜 서법에 의해 연마되고 탁마된 고매한 인격에서 우러나온 작품」을 주장해왔고 국전 서예부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선현의 가언경구나 명문장을 선택하여 민족의 나갈 바를 열어주는 진취성 있고 주체적인 내용」,그리고 「아무리 원로라도 공부하지 않는 원로」는 심사위원으로 추대할 수 없으며 「추호의 사정이 깃들이지 않은 엄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심사원 선출」을 역설하여 서예계를 긴장시키기도 했다. 또 개인적으로는 서예계의 난맥상을 쇄신한다는 차원에서 56년 체계적인 서예연구와 보급을 위해 지금의 동방연서회를 창립,전예해행초 오체의 철저한 연구와 훈련끝에 그동안 배출한 서예인만도 7천여명,서예전문지 「서통」을 지난 30년간 개인의 힘으로 꾸준히 발간해오고 있다. 그가 평생을 두고 신조로 삼는 것은 노자의 「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라는 글귀다.「스스로의 만족됨을 알게 된다면 부끄러움이 있지 아니하고 그칠 바를 알아서 위태롭지 아니하여 오랠 수 있다」는 경구다. 그런 그에게 사욕이란 있을 수 없다.더구나 지난 91년 봄 손위 형인 창현씨가 「대화도중 갑자기 쓰러져 타계」하는 것을 보고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인생」에 무상을 절감한 나머지 그해 여름 자신의 사재 18억원을 출연,「사람은 사라져도 세상에 무엇인가 의미있는 것」을 남긴다는 취지와 함께 동방연서회를 재단법인으로 재출범시켰다. 그는 지금도 새벽이면 도봉동에 있는 그의 집을 나와 아침 8시 서실이 있는 동방연서회에 도착,종로구 경운동에 위치한 서실은 글씨를 쓰는 책상외에 방안 가득히 서법에 관한 서적이 산적해 있고 행길가인데도 난향과 수석과 녹차향 때문일까,온자한 서풍이 감도는 속에서 그는 「오늘은 심선이 그려질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엄숙히 자문해본다.낙관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라도 그는 한점의 타작도 용납치 않으려는 주의다.그래서 한평생 붓을 잡으면서도 지금까지 아무 때나 기분내키는대로 가볍게 붓을 잡은 적은 한번도 없다고 말한다.심기가 평화롭고 사방이 청결하고 날씨가 화창하면 그날은 왠지 일점일획에도 오차가 없는 「정수」가 탄생될 것을 기대해 볼 뿐이다. ○세속적 취향과는 멀어 전보다 많이 옳은 말을 줄이고 일체의 세속적 취향에 타협하지 않는다.예를 들어 골프를 하고 싶어도 「자연을 훼손하는 일에 일조」하는 것같아 철저히 외면한다.물론 서예와 관련된 모든 잡사에도 끼어들지 않는다.하오에는 문중 사람을 더러 만나지만 특별히 친분 있는 사람도,그렇다고 서로 소원할 필요도 없이 모든 사람을 포용하는 시기다.다만 그의 개인전을 집중적으로 주선해온 동방화랑의 서정철사장과는 30여년간 난향 같은 청교를 나눈다.가족은 부인 강영순 여사와 5남매,서예를 잇는 자녀는 없다. 「서두르면 서두를수록 안되는 것이 글씨다.서법은 쓰는 사람의 내면의 성숙과 외율의 조화이기 때문에 천질만으로도 부족하고 노력만으로도 미치지 못한다.따라서 서예는 미숙만이 있을 뿐 영원한 프로는 있을 수 없다」.이는 여초의 변이다. 그러나 그 서체가 무르익을대로 무르익어 「천외천,예술외 예술」로 찬사되고 있는 시점에 서 있다.명지대 진태하 교수의 평처럼 「고희를 내년으로 앞둔 여초의 세계는 문자향과 서권기가 넘치는 가운데 원숙과 창로의 경지에 들어 혼연천성하고 묘합자연하여 자신만의 서법언어를 향유」하고 있는 것이다.이제 그로서는 「예술이상과 예술도에 이른 자신의 지음을 눈부신 지면에 향기로 뿌리는 일만이 남았다. □연보 ▲1927년 서울 출생 ▲46년 휘문중 졸업 ▲51년 고려대 졸업 ▲50∼61년 국회보 주간,국회도서관 창설참여 ▲56년 동방연서회 창립멤버 ▲60년 국전 추천작가 ▲69년동방연서회 이사장 ▲70년 숙대·홍대·성균관대 강사 ▲71년 동방연서회 회장 ▲74년 방화전(중국국립 고궁박물원) ▲75년 국전 초대작가,한중 서법학대회 대회장 ▲76년 현대화랑초청 개인전 ▲78년 동방화랑초청 개인전 ▲79년 국제서도연맹초청 개인전(도쿄),중국국립 역사박물관 초청 개인전(대북) ▲80∼현재 한국전각학회 회장 ▲82년 동방화랑초청 개인전 ▲83년 신가파 중화서화협회고문 ▲84년 이마미술관 초청 개인전 ▲86년 중앙일보사 초청 개인전 ▲89∼현재 사단법인 국제서법예술연합 한국본부 이사장,동방연서회 서법교류 방중단단장 ▲90년 김응현서법전(중국북경 천안문광장 혁명기념관),신가파 제1회 국제서법교류대전 ▲91년 염황예술관이사회 명예이사,절강성박물관·서호서원 명예원장,서안 중국서법예술박물관·종남인사 예술고문,서안서학원 특격원위 ▲92년 김응현·김종길시화전,죽산 조봉암 선생 추모의전(추모의전),김응현서법전(서안 중국서법예술박물관 및 상해) ▲93년 산동대학 동방서화연구원 고문겸 교수,김응현서법전(정주 하남성서화원),하남성서화원 고문 ▲94년 김응현·계공서법전(북경 영보재) 김응현서법전(서울 동방화랑) ▲95년 7월3일부터 8월7일까지 한·중·일 산경 서법전(한국 김응현·중국 계공·일본 임금동 일본 동경 선샤인문화회관)예정
  • 아시아나기 참사 해남 마산리의 7월 26일

    ◎“뒷산에 비행기 추락… 모두 나오시오”/산마을 인간애가 희생 줄였다/주민 3백여명 필사적 구조작전/빗속 진흙길 부상자 업고 줄달음/뒤늦게 온 유가족·구조대원엔 식사대접 『뒷산에 비행기가 떨어졌으니 동네사람들은 모두 낫과 삽을 들고 마을회관으로 모이시오』 아시아나 여객기추락 직후인 26일 하오 5시30분.전남 해남군 화원면 마산리 이장 김석진씨(60)의 비상을 알리는 급박한 목소리가 마을 스피커를 타고 온동네에 울려 퍼졌다.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마을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것없이 삽과 톱등을 들고 마을회관으로 달려왔으며 『우선 사람들을 살려야 한다』는 김씨의 설명을 대충 듣고 운거산으로 내달았다. 울창하게 우거진 숲과 덤불을 연장으로 잘라 헤치며 해발 3백20m의 운거산 8부능선에 다다른 이들은 너무나도 참혹한 현장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저기서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소리,처참하게 산산조각난 비행기 잔해와 옷가지,짐꾸러미 등등. 쓰러진 사람들에게 달려가 옷가지를 찢어 상처를 싸매 지혈을 해주었고 비행기 잔해 사이에 끼여 신음하는 사람들을 끄집어 내기 시작했다.힘센 장정들은 부상자들을 들쳐업고 산밑으로 뛰고 노인이나 부녀자들은 사고현장에서 정신없이 승객들을 보살폈다. 이렇게 하길 1시간쯤.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어느새 3백여명의 마천부락 주민들로 대규모 「인명구조단」이 자연스레 구성됐다. 아시아나항공 737편 보잉 737국내선 여객기 추락사고의 구조작전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결국 44명의 귀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끔찍한 대형참사속에서 여객기 추락사고치고는 그야말로 기적적으로 많은 인명을 구한 것이다. 사고 여객기 승객 김현식씨(21)가 하오 5시20분쯤 홀로 산밑으로 기어내려와 마을에 사고소식을 전한 뒤부터 군·경의 본격적인 구조작업이 이루어지기까지 두시간동안 마천부락 주민들의 필사적인 희생노력이 없었다면 이번 사고는 엄청나게 더 큰 재해로 이어졌을 것이다. 한차례 폭우가 내린 뒤끝인데다 40도의 급경사인 산을 오르내리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미끄러운 산길을 오르면서 뒤에서 밀어주고 앞에서 당기느라 주민들의 몸은 어느새 땀으로 뒤범벅됐다. 이장 김씨는 김성수씨(23)등 청년 3∼4명에게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생존자들을 마을로 후송시켰고 나머지 주민들은 승객들의 안전벨트를 낫으로 끊어가며 생사를 확인했다.청년들이 생존자들을 등에 업고 막 산을 내려갈때 면사무소의 연락을 받고 출동한 군용헬기가 계곡위에서 맴돌았다.헬기에서 구조로프와 카고네트가 내려왔고 주민들은 무게가 가벼운 어린이 4명을 우선 헬기로 올렸다.곧이어 또다른 헬기가 도착하자 주민들은 헬기에서 내려온 군인 1명의 도움을 받아 생존가능성이 있는 중환자를 로프에 묶기 시작했다. 『헬기에서 구조로프를 내렸을때 강한 바람으로 로프가 흔들리는 바람에 한사람을 묶는데만도 10분씩이 걸렸습니다』주민 천용진씨(45)는 온몸이 피로 물든 자신을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박연규씨 등 동네주민들과 함께 8명의 생존자를 로프에 묶어 헬기로 올려 보냈다. 박씨는 『서로 살려달라고 몸부림치는 환자들을 대할때 누구부터 구해야할지 괴로웠으나 어린이나 피를많이 흘린 중환자에게 먼저 손이 닿았다』면서 사고 신고가 조금이라도 빨랐더라도 더 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주민들은 생존자들을 확인하기위해 사고 현장인 고도 2백50m의 계곡을 중심으로 직경 1백여m안쪽의 숲과 나무를 헤치며 샅샅이 뒤졌다.다리가 부러진채 근처 숲에 쓰러져 있던 40대 승객은 『나는 괜찮으니 급한 환자부터 옮겨달라』고 애원해 함께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사고 당시 이곳에는 비바람이 세차게 불어 여객기가 추락할때 「꽝」하는 굉음을 천둥소리로 잘못 알아들었다』는 주민들은 한결같이 사고소식을 뒤늦게 알아 유가족들에게 죄를 진 것같다고 말했다. 마을에 남아있던 주민들은 각 가정에 있는 밥솥 30여개를 총 동원,생존자와 뒤늦게 달려온 구조대원등 3백여명에게 따뜻한 저녁식사를 대접했다.또 화원면장 김한철씨(53)는 근처 방앗간에서 2백여명분의 주먹밥을 만들어 사고 현장에 긴급 운반하기도 했다. 『많은 희생자가 나 마음이 아프지만 구조된 생존자들만이라도 빨리 완쾌되길 바랄뿐입니다』이 마을 사람들은 『사람으로서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사고현장에 찾아와 울부짖는 유가족들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었다. □특별취재반 전국부 임정용부장 최치봉기자 박성수〃 남기창〃 김수환〃 사회부 김재순〃 박찬구〃 사진부 김명환〃 남상인〃
  • 음주운전 경찰관 중앙선 침범사고

    14일 하오9시20분쯤 서울 종로구 예지동269 청계4가 고가도로에서 서울중부경찰서 형사계소속 김석진경장(38)이 술에 취해 서울1루9463호 엑셀승용차를 몰고 가다 가변차선의 중앙선을 넘어 마주오던 서울4파6882호 스텔라택시(운전사 박성훈·53)와 서울2초9653호 스쿠프승용차(운전자 이상무·23)를 차례로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김경장이 가슴과 좌측골반을 크게 다쳤고 스쿠프승용차 운전자 이씨등 5명이 중경상을 입고 이화여대 부속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이날 사고는 김경장이 청계고가도로 가변1차선을 따라 광교에서 마장동방면으로 시속 70㎞로 달리다 뒤따라오던 택시가 갑자기 앞으로 끼어들자 이를 피해 핸들을 왼쪽으로 급히 꺾는 바람에 일어났다.
  • 향나무/동백나무/주목/희귀목 불법채취 성행

    ◎전국 곳곳 나무도둑 극성/풍·석란등 마구캐가 멸종위기/한밤 트럭대놓고 대량밀반출/본사취재팀 확인/조경용 한그루 수백만원에 팔려… 단속 시급 □특별취재반=조성호·김동진·최용규·최치봉·김병철기자 유명산과 해안지방에서 자생하는 각종 희귀목들이 마구 잘리거나 뿌리째 뽑히는 수난을 겪고 있다. 최근 식목철을 맞아 전국 곳곳에서 일부 악덕 관상수판매상들이 새벽이나 야간을 이용해 희귀목을 불법으로 채취해가는 일이 부쩍 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상인은 주목·향나무·동백나무등 희귀목에서부터 소나무·진달래에 이르기까지 돈이 되는 나무는 무엇이든 마구 캐가고 있으며 섬지방에선 주로 풍란·석란등 난초류를 불법으로 채취해가고 있다. 이때문에 일부 자생지에선 이들 희귀목들이 멸종될 위기까지 맞고 있다. 이같은 불법채취의 현장은 15일 상오8시 경북 경산군 하양읍 대곡1리 부근 산과 같은날 하오8시 강원도와 경기도의 접경지인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대둔리 부근 48번 국도상에서 본사 취재진에 의해 확인됐다. 또 14일 하오6시 전남 여천군 돌산읍 평사리와 같은시간 진도군 지산면 세토리에서도 목격됐으며 강릉시 유천동,충남 대전시 서구 괴정동,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정자동에 있는 화원에선 불법채취돼 반입된 희귀목들이 대량 발견됐다. 취재진이 경산군 하양읍 대곡1리에 도착했을때 작업복차림의 30대 2명이 인근 산에서 캐낸 소나무를 1·5t 트럭에 싣고 있었으며 가까이 다가가자 재빨리 차를 몰아 4번국도를 따라 대구방면으로 달아났다. 이곳 주민 김석진씨(49)에 따르면 이들 나무절도범은 지난달 상순부터 거의 매일밤 산에서 소나무·진달래 등을 캐놓았다가 아침 해뜰무렵에 트럭을 이용,대구등지로 간다고 말했다. 강원도지방에서 캐오는 주목과 향나무 등은 대형트럭을 이용해 48번국도를 따라 수도권부근의 농원등지로 옮겨놓았다가 서울의 조경업체로 팔려나가고 있다. 여주군 강천면 대둔리 주민 원용진씨(56)는 『식목철이 되면서 향나무 등을 실은 트럭들이 밤마다 3∼4대씩 지나가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면서 『대부분이 불법채취한 나무들이어서 트럭의 화물적재함은 항상 덮개도 씌워져 있으며 운반시간도 주로 밤시간을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남 진도군 지산면 세포리주민 김병화씨(32)도 『최근 악덕분재상들이 관광객을 가장해 섬으로 들어와 이곳에서 자생하는 석란·풍란 등과 동백나무·느릅나무 등 분재용으로 쓸만한 희귀나무들을 마구캐가고 있어 멸종위기를 맞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렇게 불법채취된 희귀목들은 서울·부산·대구 등 대도시로 엄청나게 비싼값에 팔려나가고 있다. 대전시 서구 흑석동 D농장에는 강원도 홍천,전남 해남등지에서 불법채취해 들여온 소사나무 1백여그루,단풍나무 40여그루,소나무 30여그루,동백나무 10여그루,주목 20여그루 등이 심겨져 있었으며 가격은 그루당 소사나무가 20만∼5백50만원,동백나무 20만∼4백만원,소나무는 50만∼5백만원씩에 거래되고 있었다. 경기도 수원의 S농원에 따르면 이곳에는 주목이나 향나무 등이 주로 강원도 삼척군 원덕읍 노곡리 일대 향나무 군락지 등에서 들어오고 있는데 일부는 토석채취장 등에서 임산물 반출허가를 받아 적법하게 들어오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이 불법으로 채취해 반출되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나무값도 1백년이상된 향나무는 보통 1천만∼2천만원을 호가하고 있으며 주목도 보통 4백∼1천만원씩에 판매되고 있었다.
  • 석유 용량 속여 8백만원 챙겨/업자 7명 영장

    서울시경은 6일 금강석유대표 김석진씨(37ㆍ서울 중구 쌍림동 151의117) 등 석유판매업자 7명에 대해 석유사업법 위반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봉익석유대표 이원삼씨(37ㆍ서울 종로구 봉익동 39의1) 등 3명을 같은 혐의로 입건했다. 김씨는 지난88년 8월부터 석유소매업을 무허가로 경영해오면서 석유공급업체인 ㈜서울석유 장충동주유소로부터 석유를 공급받아 이를 18ℓ용기에 담은 뒤 중구 을지로3가 삼성금박회사 등 80여곳에 20ℓ라고 속여 팔아 8백30만원의 부당이득을 본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 등 이들 석유판매업자들은 20ℓ들이 규격용기를 사용하지 않고 16∼19ℓ들이 용기를 따로 만들어 한통에 1∼4ℓ를 남겨 부당이득을 취하는 수법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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