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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견 만화가들 한국 만화의 역사와 미래를 말하다

    중견 만화가들 한국 만화의 역사와 미래를 말하다

    한국 만화 100주년이다. 일반적으로 1909년 6월2일 대한민보 창간호 1면에 실린 이도영 화백의 시사만화를 한국 근대 만화의 출발점으로 본다. 한국 만화는 100주년을 맞아 새로운 100년을 향한 도약을 꿈꾸고 있다. 관련행사도 다채롭게 열린다. 시대의 흐름과 함께 호흡하며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켜왔던 김동화(59) 화백, 이희재(57) 화백, 박재동(56) 화백이 지난 20일 남산 자락의 서울애니메이션 센터 인근 찻집에서 한국 만화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 가야 할 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만화는 무엇인가. 김동화 만화는 간식이다. 안 먹어도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지만 만화는 새로운 면을 보여주며 생활을 즐겁고 윤택하게 만든다. 이희재 영양가 있는 간식이면 더욱 좋겠지. 작가 입장에서 보면 그리는 대상이 무엇이든 친철하고 쉽게 표현하는 게 쉽지 않다. 만만하고 쉬운 것 같지만 노하우와 내공이 있어야 한다. 박재동 그림과 시와 연출 등이 집약된 게 만화다. 예술 양식의 정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폭발력 있게 무엇을 전달할 수 있는 매력적인 방법이다. 작가는 그것을 위해 고통스러운 즐거움을 누린다. 만화는 정말 사랑스러운 매체다. →한국 만화가 순탄한 길만 걸어온 것은 아닌데. 김동화 내가 가진 한국 만화 이미지는 대체로 회색 풍경이었다. 비바람, 눈보라 등 알록달록한 화려함보다 무채색이다. 사회적 여건이 어려웠다. 사전 검열이 가장 그랬다. 창작하는 사람들은 아름답고 감동적인 것을 찾아내야 하는데 검열에 걸리고 수정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 이어졌다. 칼을 제대로 그릴 수도 없었고, 찢어지거나 때묻은 군복을 입은 군인을 그려서도 안 됐다. 박재동 어릴 때 부모님이 만화방을 했다. 남들은 만화를 골라서 봤지만 나는 무차별적으로 봤다. 너무 행복했다. 그런데 학교 선생님들은 만화방에 가지 말라고 했고, 학부모들은 만화를 찢어버렸다. 단속 때문에 부모님이 잡혀가기도 했다. 만화는 천시받고 금기시됐다. 또 울며겨자먹기로 재미 없는 책도 사야 할 정도로 독점 자본식 출판사가 횡포를 부렸다. 그런 사회적 편견과 출판사의 횡포가 검열과 함께 우리 만화 발전을 막았다. →지금은 만화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됐나. 김동화 굉장히 달라졌다. 과거에는 오해가 많았다. 만화를 보지 않는 세대가 사회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직접 보지 않고 나쁘거나 반사회적이라고 재단했다. 우리는 굉장히 억울했다. 지금도 동시대 작가를 보면 동료라기보다는 전우라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현재는 만화를 보고 자란 세대가 사회를 이끌어간다. 만화를 봤고, 좋아했기 때문에 반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희재 조선 시대 500년 동안 글 중심의 유교적 사고 속에서 살아 왔다. 글을 알아야 현자가 되고 출세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림은 가벼운 것이라는 의식이 생겼다. 그림 그리는 사람을 환쟁이로 낮춰 불렀다. 많이 달라지기도 했지만 500년 관습이 유전자처럼 조금은 남아 있는 것 같다. 박재동 과거에는 한글도 천하게 생각해 한글 소설은 불량한 것으로 여긴 적이 있었다. 요즘은 소설을 권장한다. 입시에 나오기 때문이다. 영상 시대인데 글을 우위에 두는 것은 여전한 것 같다. 그렇지만 교과서에 만화가 실리고, 만화학과도 생기다 보니 인식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 아마 시험 문제로 만화가 출제되면 더욱 달라질 것 같다. 내가 대학에 갔을 때 어머니는 만화방 아들이 대학에 갔다고 동네방네 소리치셨다(웃음). →한국 만화의 기념비 같은 작품을 꼽는다면. 이희재 각 시대마다 대중들과 호흡한 작품들을 살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김종래의 ‘엄마 찾아 삼만리’는 1950~1960년대 히트했다. 전쟁 뒤 이산가족이 많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1960년대 김산호의 ‘라이파이’는 우울한 현실을 잊게 하는 환상적인 영웅으로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1970년대는 이상무의 독고탁이 절대적이었다. 서울 변두리를 무대로 우리들의 동생 같은 주인공을 내세워 당시 정서를 듬뿍 담았다. 1980년대에는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이 있다. 과거와는 달리 비호 같은 날렵한 템포로 질주하는 까치를 통해 사람들은 대리만족과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1987년 민주화의 물결과 함께 허영만이 한국 최초 이데올로기 만화인 ‘오! 한강’을 발표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 만화 장르에 스포트라이트가 쏠리고 있다. 김동화 당연한 현상이다. 이제는 콘텐츠 시대다. 즐기는 시대인데 그 중심에 만화가 있다. 글과 그림을 함께 가지고 있는 만화로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 영화, 게임도 만들 수 있다. 만화가 뜨는 것은 세계적인 흐름이다. 중국이 발표한 5대 국가 사업에 만화와 애니메이션 육성이 들어가 있다. 이희재 문화 시대에는 원천 소스가 중요하다. 1990년대 이후 문화·예술 관련 창작품 한 개가 자동차 10만 대를 파는 것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인식이 퍼졌다. 문화의 힘을 알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만화는 여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투자 대비 파급 효과가 가장 큰 고부가가치의 장르다. 수많은 창작 만화가 나왔을 때 어떤 작품이라도 문화 폭탄이, 문화적 영약이 될 수 있다. →이제 한국 만화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김동화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었던 일본 만화는 1960년대에 문학과 겨뤄보자며 양장에 평론까지 붙인 고급 만화를 내놓기도 했다. 우리는 검열 등 외부 여건과 싸우는 데 시간을 소모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노하우와 실력을 쌓았다. 실력으로 따지면 우리 작가들은 세계적이다. 이제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좋은 작품을 내놔야 할 때다. 내부 혁명이 있어야 한다. 다양성이 있어야 한다. 그동안 아동·청소년에게 집중했는데, 이제는 아저씨·아줌마·할아버지·할머니를 위한 작품도 늘려야 한다. 100명의 작가가 있다면 100개의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 것이다. 박재동 100명의 작가, 100개의 이야기는 정말 중요한 말이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힘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주로 만화가가 되는데 나중에 보면 늘 스토리에서 부딪히게 된다. 만화의 본질은 스토리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한계를 일찍 드러내게 된다. 이희재 작가들에게 그림은 기본이다. 그런데 그림은 내용을 담는 그릇일 뿐이다. 우리가 먹는 것은 그릇에 담긴 밥이다. 맛있는 만화를 짓기 위해 인문학을 공부하고 또 창작을 할 때 몰입해야 한다. 그래야 독자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선사할 수 있다. 스토리가 부족하면 좋은 스토리 작가와 협력하면 된다. 예술가는 혼자 하려는 성격이 강하지만 좋은 결과를 위해 만남과 협력의 폭을 넓혀가는 게 필요하다. →창작 만화를 발표할 통로가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김동화 예전에는 출판물만 중요하게 여겼지만, 요즘은 인터넷이라는 바다와 같은 잡지가 있다. 만화 독자는 늘었지만 만화 잡지를 사는 독자는 줄었다. 그들은 인터넷으로 만화를 본다. 환경이 변한 것이다. 적극적으로 인터넷을 활용해야 한다. 지금은 적응하는 시기라 힘들지만 곧 극복할 것으로 본다. 이희재 인터넷은 만화시장의 문제이자 해법이다.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진다. 하지만 창작자가 스스로 설 때까지 안전 장치가 필요하다. 독자를 구축하고 성과가 이익으로 돌아와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작가가 전체 5% 정도다. 그 폭을 적어도 20~30%로 늘려야 한다. 창작 인력을 발굴하고, 일선에 오래 머물게 하며 내공을 키워 거인이 될 수 있게 하는 토대를 마련하는 게 만화계와 정부의 숙제다. →한국 만화의 미래는 어떠한가. 김동화 60억이라는 120배 시장이 있는 세계로 나가야 한다. 일본을 비롯한 세계의 만화 작가들이 한국 만화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우리는 다양한 역사가 있고, 아픔이 많은 민족이라 필연적으로 만화 왕국이 될 수밖에 없다. 전국에 만화 관련 학과가 140~150개가 있다. 해마다 1000명 정도의 만화 인력이 배출된다. 지금 당장은 일본과 차이가 있겠지만 빠른 시일 내에 만회할 것이다. 박재동 노인들 사랑 이야기를 담은 만화가 등장할 정도로 폭이 넓어졌지만 일본 만화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부분도 있다. 나는 미래를 준비하자는 말을 하고 싶다.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찍은 스필버그가 성공한 것처럼, 우리 어린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만화를 그리는 풍토를 만들어 주면 좋겠다. 그렇게 10년을 키우면 더욱 탄탄해지지 않겠나. 이희재 우리 만화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한국 만화 100년이지만 우리가 가진 생각을 신명나게 풀어낸 것은 10년 정도밖에 안 됐다. 일제 시대, 권위주의 정부 시절 탄압,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 사건에 이르기까지 힘든 과정을 겪었다. 지금은 세계에서 만화를 가장 활발하게 지원하는 나라가 될 정도로 상황이 달라졌다. 가을에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도 출범한다. 이제 만화가들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정리 홍지민 강병철기자 icarus@seoul.co.kr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김동화 화백 한국형 순정만화의 아버지. 한국만화가협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만화 100주년 위원회 공동위원장이다. 대표작으로는 ‘요정 핑크’, ‘기생 이야기’, ‘황톳빛 이야기’, ‘빨간 자전거’ 등이 있다. 부인이 한승원 작가로 만화가 부부다. ●이희재 화백 우리시대 최고의 리얼리스트. 우리만화연대 대표를 지냈으며 한국만화 100주년 위원회 집행위원장이다. 대표작으로 ‘악동이’,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간판스타’, ‘저 하늘에도 슬픔이’ 등이 있다. 소설가 이문열과 ‘만화 삼국지’를 펴내기도 했다. ●박재동 화백 국내 대표 시사만화 작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애니메이션과 교수이자 한국만화 100주년 위원회 공동위원장이다. 대표작으로는 ‘목 긴 사나이’, ‘만화 내사랑’, ‘정치야 맛좀 볼텨’ 등이 있다. 애니메이션 ‘오돌또기’를 만들었다.
  • “한민족의 기원 화폭에 담았습니다”

    “한민족의 기원 화폭에 담았습니다”

    지난달 25일부터 광주광역시 광주문화예술회관 전시관(옛 시립미술관)에서 ‘그림으로 보는 역사 이야기’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6월28일까지 이어진다. 전시회를 여는 작가의 이름에 시선이 꽂힌다. 만몽(卍夢) 김산호 화백. 50년 전 스무 살의 나이에 SF 만화 ‘라이파이’를 탄생시키며 당시 청소년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든 작가다. 청소년들은 22세기를 배경으로 빛보다 빠른 제비호를 타고 5대양 6대주를 누비며 악의 무리를 처부수는 라이파이의 영웅담에 열광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암울했던 시절, 희망과 용기를 주었던 까닭일 것이다. 라이파이의 아버지가 역사화를? 20년 동안 그가 그려온 역사는 어떤 것일까. 광주에 갔다. 전시관에서 만난 김 화백은 그림을 먼저 보라고 권한다. 1200㎡가 넘는 공간을 가득 채운 거대한, 그리고 크고 작은 아크릴화, 유화 350여점을 찬찬히 눈에 담는 시간도 꽤 걸린다. ●치우천황의 밝달 국·단군의 대쥬신제국·밝지·실라 생생하게 신라 박제상이 썼다고 알려진 ‘부도지’의 마고주신 신화와, 기원전 8세기부터 3300여년 동안 이어졌다고 하는 국, 이제는 일반인에게도 익숙한 치우천황이 활약했던 1500여년의 밝달(배달)국, 그리고 단군이 세운 대쥬신제국(고조선), 부여, 위가우리(고구려), 밝지(백제), 실라(신라) 등의 모습이 생생하다. “제가 그리는 역사는 대한민국사가 아니라 한민족사입니다. 대한민국은 한민족사의 파편일 뿐이에요. 한민족의 뿌리가 어디에서 왔고, 또 어디로 갔는지 복원하는 작업이죠.” 낯설어하는 모습을 보이자 김 화백은 재차 전시관으로 손을 잡아끌며 여러 그림을 다시 보여준다. “요나라 시조는 야율 아보기(阿保機)인데, 아보기는 우리말로 치면 아버지예요. 중국 발음으로도 아버지이고. 우리와 같은 민족이 아니라면 쓸 수 없는 말이죠. 마의태자와 함께 신라 재건을 위해 싸우던 유민들이 북쪽으로 올라가요. 김함보라는 사람이 있는데 나중에 여진을 통일하죠. 신라 김씨예요. 이 사람의 8대손이 금나라를 세운 김아골타 황제입니다. 후금(청나라) 시조는 누르하치 황제인데 성(姓)이 애신각라(愛新覺羅)입니다. 신라를 사랑하고 잊지 않는다는 뜻으로 신라의 핏줄이 분명합니다. 청나라 건륭제의 칙명으로 지어졌던 ‘만주원류고’에는 만주족은 쥬신족이라고 서술돼 있죠. 바이칼 호수 인근에 부리야트족의 자치공화국이 있는데 부리야는 다름 아닌 부여입니다.” 그의 그림 속에서 한민족의 선조들은 바이칼 호수에서부터 만주, 산둥 반도, 한반도, 그리고 일본에 이르기까지 말을 달린다. 그는 한민족 벨트라고 했다. 사대 사상이나 식민 사관을 빼고 우리를 중심으로 우리 민족의 역사를 바라보자는 민족사학, 재야사학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정통사학(강단사학)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그는 “제도권 사학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바라보는 방향이 다른 것이죠. 제도권 사학이 앞면만 보고 있다면 저는 뒷면을 보고 거기에 나타난 다른 모습을 그리는 겁니다.”라고 설명했다. 김 화백은 만리장성 바깥의 역사를 이민족의 것으로 여겼던 중국이 이제 동북공정을 통해 자신의 역사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했다. 예전에는 괴물로 묘사하던 치우천황까지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고조선이나 고구려마저도 중국의 지방 정부 가운데 하나로 만들려 한다고 성토했다. “최근 중국 동북지방에서 황하문명보다 오래된 홍산문명 유물들이 나오고 있어요. 그곳은 바로 고조선이 활약했던 한복판입니다. 우리 스스로 한반도에 갇혀 우리 민족사를 배척하는 동안 중국은 조금씩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역사는 한 번 빼앗기면 찾을 수가 없습니다. 잃어버린, 숨은, 알려지지 않은 우리 민족사를 널리 소개하는 것, 그것이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작업입니다.” ●직접 그린 역사화 2000여점 상설 전시관 세우는 게 꿈 민족사 복원 작업에 매달리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김 화백은 1966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만화 외에 패션 및 관광 사업에 도전했다. 사이판과 제주도에 있는 잠수함 관광이 그의 작품이다. 1978년 중국 정부의 초청으로 개방되기 전인 만주를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그곳에 남아 있는 고구려 풍습과 문화를 만나며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깨닫게 됐다고 했다. 1988년부터는 아예 사업을 접고 북만주에서 타클라마칸 사막 등 중국 각지는 물론 몽골, 러시아를 드나들며 한민족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대쥬신제국사’와 계속 발간되고 있는 ‘대한민족통사’ 시리즈는 그 결과물이다. 한국 만화 재평가 작업의 흐름을 타며 지난해 만화가로서는 일곱 번째로 문화훈장을 받았던 김 화백. 6월 말까지 예정된 이번 전시회가 끝나면 한국 만화 100주년과 겹쳐진 라이파이 50주년 기념 행사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박재동 화백이 회장으로 있는 라이파이 팬클럽과 함께 팬미팅 겸 전시회를 서울에서 가질 예정이다. 국립현대미술관, 부천만화정보센터,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도 라이파이 관련 기념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미국의 준리 사범, 멕시코의 문대원 사범 등 한국을 빛낸 태권도 그랜드 마스터의 삶을 담은 500페이지짜리 만화책을 다음달 즈음 출간할 예정이다. 직접 그린 역사화 2000여점에 대한 상설 전시관을 만드는 게 소원이라는 김 화백은 “제 호가 만몽인데, 수많은 꿈을 지니고 있다는 뜻입니다.”면서 “만화를, 그림을 그리는 자체가 꿈이에요. 언제나 꿈을 꾸고 그 꿈을 실현하고 있죠.”라고 웃음 지었다. 글 사진 광주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박기광 대한지적측량협회장 “지적측량인의 권익 발목잡는 법률 고치는데 노력하겠다.”

    박기광 대한지적측량협회장 “지적측량인의 권익 발목잡는 법률 고치는데 노력하겠다.”

    대한지적측량협회는 최근 ‘전국 지적측량업자 제5차 정기총회’를 갖고 박기광 회장을 만장일치로 추대, 취임식을 가졌다. 박 회장과 김산 사무국장은 연임됐다.협회는 지적측량업자들의 권익 대변과 함께 소비자에게 정확하고 질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지적측량의 국가경쟁력 제고와 제도 발전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3선 회장으로 연임된 박 회장은 그동안 지적법 제41조 3 항이 민간 지적측량업자의 업무범위를 과도하게 규제하는 개악적 조항이므로 삭제하고, 제도적 보완을 거쳐 지적측량 업무를 전면 개방해야 한다며 헌법소원을 내고 현 정부의 국가인수위원회 홈페이지에 실어 국민추천으로 선택되게 했다.이 건은 지난 1월 국가경쟁력위 제10차 회의에서 규제일몰제 대상으로 확정되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 회장은 취임 인사말을 통해 “협회는 민간 지적측량 발전에 앞장서는 것은 물론 다양한 어젠더를 통한 알고리즘을 구축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그는 이어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사분오열되는 지적측량업자들의 모습이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면서 “이럴 때일수록 단결해 지적측량업자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고 있는 현행 지적법 제41조 3항과 국회에 제출돼 있는 측량·수로 조사 및 지적에 관한 법률 제45조의 수정을 위해 의기투합해 달라.”고 주문했다.  박 회장은 또 “지적측량업자들의 참여 폭을 넓혀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적측량의 전면 개방을 위해 노력하고 지적확정측량을 발주하는 자치단체와 공사 등 기관에 대한 예방활동 강화해 나가겠다.”며 “민생안정과 재산을 보호하는 안전 지킴이로서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협회의 활동 영역 확대를 위해 시ㆍ도 단위에 본부를 설치할 수 있도록 정관을 개정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대한지적측량협회는 지난 2005년 1월 정기총회에서 정식 출범했다.2004년 7월 협회 창립 준비위가 발족돼 가칭 대한지적측량협회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2~3개월도 되지 않아 해산의 위기에 봉착했다.이 때 박 회장이 회원 및 관계자들을 설득해 협회 설립을 마쳤다.  협회 설립 계기는 2002년 지적법 제41조 제1항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2004년 지적측량이 일반 지적기술자들도 지적측량업자로 등록하면 지적측량을 할 수 있도록 개방됐지만,현행 지적법에서는 지적측량업자의 업무 범위를 수치지역과 지적확정 측량에만 한정하고 여전히 국토의 96%에 해당되는 도해 지역에는 독점권을 주고 있어 명목적 개방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에 협회는 청와대, 국무총리실, 정부에 건의하고 언론보도를 통해 이같은 비현실적인 규제를 폐지할 것을 호소해 왔다.협회가 지적한 비현실적 내용은 △지적측량업무를 완전 독점체제로 운영해 발생된 국민의 재산권 행사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지적불부합지 △무계획적인 방만경영으로 인한 지적측량 기준점 설치 및 성과의 정비 소홀 △끼워 맞추기 또는 덮어주기 측량에 의한 측량 착오 누적 △서비스의 질적 수준 저하 △복지부동적 복고주의에 의한 지적측량제도의 퇴보 등 현행 지적제도의 문제점을 감추기 위한 대책 조항에 불과하다는 것 등이다.  현재 협회는 지적측량업자의 대외적 신인도를 높이기 위해 지적측량의 정확성과 지적측량업자의 성실성을 높이는데 주력하고 있다.박 회장은 “협회는 앞으로 지적측량 전면개방 노력과 함께 각 부처, 지자체, 공사 등의 단체에 대한 지적측량 발주의 비효율을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지적측량개방을 위한 우리의 노력이 곧 세상을 밝힐 빛이 될 터…”

    “지적측량개방을 위한 우리의 노력이 곧 세상을 밝힐 빛이 될 터…”

    그 동안 지적측량업자들의 권익을 대변하고 제도적 발전을 이끌어내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온 대한지적측량협회(www.kcsa.co.kr)가 지난 2월 26일 ‘전국지적측량업자 제5차 정기총회’와 더불어 박기광 회장을 협회 회장으로 만장일치로 추대, 취임식을 가졌다고 뒤늦게 밝혔다. 이날 협회 회장으로 추대된 박 회장과 사무국장 김산은 연임되어 각각 3선이 되었다. 협회 측은3선에 연임된 박 회장은 그 동안 민간지적측량업자들의 업무범위 확대를 위해 현행 지적법 제41조의3 조항이 민간지적측량업자의 업무범위를 과도하게 규제하여 대국민서비스의 질적 수준 향상과 지적측량 발전에 역행하는 개악적 조항이므로 삭제하고, 제도적 보완을 거쳐 전면개방 되어야 함을 헌법소원은 물론 현 정부 국가인수위원회 홈페이지에 게재하여 국민추천으로 선택되게 한 바 있다. 이를 계기로 지난 1월29일 국가경쟁력위원회 제10차 회의에서 규제일몰제대상으로 확정하는데 기여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높게 평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 회장은 이날 인사말을 통해 “지난 2004년 지적측량의 개방으로 지적측량업자의 권익보호와 지적측량의 제도발전을 위해 태동한 대한지적측량협회가 제5차정기총회를 맞아, 본 협회 발전을 위해 그 동안 헌신적으로 임해 준 임원 여러분의 노고를 치하하고 이들과 함께 민간지적측량 발전을 위한 보호육성에 앞장서는 것은 물론 다양한 아젠다를 통한 알고리즘을 구축하여 앞으로도 지적측량제도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라는 각오를 밝힌 뒤, 열악한 환경으로 인하여 사분오열되고 있는 지적측량업자들의 모습이 매우 안타깝고 가슴을 아프게 한다며 이럴 때 일수록 한마음, 한 뜻으로 민간 지적측량업자들이 단결하여 현안과제인 지적측량업자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고 있는 현행 지적법 제41조의3즉 현재 국회에 제출된 측량ㆍ수로조사 및 지적에 관한 법률 제45조의 수정을 위하여 의기투합하여 줄 것과 지적측량업자의 경쟁력은 지적측량의 신속ㆍ정확한 서비스의 제공은 물론 고객의 마음속에서 만족감을 넘어 감동을 불러 일으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때 제고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하게 주문했다. 이어 “지적측량업자들의 참여의 폭을 넓혀 왕성한 활동을 전개할 수 있도록 지적측량의 전면개방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것이며, 지적측량업자들의 주요업무인 지적확정측량을 발주하는 자치단체와 공사 등의 기관에 대한 예방활동을 강화함은 물론 서비스의 질적 확대를 위한 봉사활동의 영역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며 “민생안정과 재산을 보호하는 안전지킴이로서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3선 회장으로 연임된 박 회장은 민간지적측량 관계자들의 건의를 경청하고, 현재 민간지적측량업자들이 의기투합하여 단결하지 않는 다면 위기를 극복할 수 없을 뿐더러 자멸을 초래할 뿐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반드시 숙지하여야 할 것이라며, 위기를 극복 한다면 반드시 도약하는 뜀들의 발판이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안전에 전개되는 이익에 급급하여 비방과 자기본위적인 얄팍한 행위를 일삼는 것을 지양하는 가운데 현실의 고동을 감래하며 장기적인 안목 하에 공존을 위한 공감대형성 및 화합에 주력해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협회의 활동 영역 확대를 위하여 각 시ㆍ도 단위에 본부를 설치할 수 있도록 정관을 개정하고, 이밖에 지적측량 전면개방과 관련한 제안과 현장의 불만 등에 대한 건의는 물론 민간지적측량업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정부의 제도적인 지원도 필요하다는 입장을 나타내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때 국내 규제개혁위원회에서는 독점은 과다한 규제에 해당한다고 지적한바 있다. 2002년 비영리재단법인의 독점을 유지시키기 위한 당시 지적법 제41조 제1항이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2004년에 지적측량이 일반지적기술자들도 지적측량업자로 등록하면 지적측량을 할 수 있도록 개방되었다. 하지만 현행 지적법에서 지적측량업자의 업무범위를 수치지역과 지적확정측량에 만 한정하고 여전히 전국토의 96%정도에 해당되는 도해지역의 독점권을 부여하고 있음은 사실 명목적 개방에 불과했다. 이에2004년 7월 준비위가 발족되어 가칭 대한지적측량협회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불과 두 세 달도 되지 않아 해산의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현 박 회장이 설득해 2005년 1월 드디어 정기총회를 계기로 정식 출범하게 이른다. 협회는 지적측량업자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것은 물론 소비자들에게 정확하고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며 지적측량의 국가경쟁력 제고와 제도의 발전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에 협회는 청와대, 국무총리실, 정부에 건의하고 언론보도를 통해 이와 같은 비현실적인 규제를 폐지할 것을 호소하며, 수 차례에 걸쳐 해당기관을 방문 설명 및 협의하기를 다람쥐 채 바퀴 돌 듯 반복하고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지적측량업무를 완전 독점체제로 운영해 발생된 국민의 재산권 행사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지적불부합지 △무계획적인 방만경영으로 인한 지적측량 기준점 설치 및 성과의 정비 소홀 △끼워맞추기 또는 덮어주기 측량에 의한 측량 착오 누적 △서비스의 질적 수준 저하 △복지부동적 복고주의에 의한 지적측량제도의 퇴보 등 현행 지적제도의 문제점을 감추기 위한 대책 조항에 불과하다는 협회 측의 주장에서다. 현재 협회는 열악한 지적측량업자의 대외적 신인도를 높이기 위해 지적측량의 정확성과 지적측량업자의 성실성을 높이는데 주력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MB정부 출범과 함께 지적관서가 행정자치부에서 국토해양부로 이관됨에 따라 측량법, 수로업무법, 지적법의 통합이 추진되어 측량ㆍ수로조사 및 지적에 관한 법률로 국회에 제출. 지적측량업자의 업무범위를 전국토의 3~4%로 극히 제한하고 있는 현행 지적법 제41조의3이 그대로 이 법의 제45조로 삽입되고 있음에 지적측량개방을 위해 이를 수정하는데 고군분투하고 있다. 한편 박 회장은 “그 동안 협회는 지적측량전면 개방을 위해 헌신을 다 해 왔지만, 앞으로도 직무수행에 있어 각 부처, 지자체, 공사 등의 단체에 있어서 지적측량 발주에 대한 비효율을 개선하고 성실히 봉사하기 위한 모든 지혜와 의지를 모아, 지적측량업자의 대외적 신인도 제고를 통한 지적측량 개방으로 밝은 미래를 만들어 가는 창이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것” 이라며 “따라서 오늘 이후, 협회는 화합과 사랑으로 활짝 피어나도록 노력할 것이며, 곧 협회의 노력의 결실로 현행 지적불부합지 해소와 지적측량의 정확성 제고를 통한 지적측량제도의 정비 및 발전을 꾀할 수 있는 토대가 되는 ‘지적측량 전면개방’이 현실화 될 수 있는 계기로 자리매김 할 것이라 믿는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거구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이긴 다윗을 연상하며 박 회장의 헌신적인 노력은 어떤 특정분야의 일이 아니라 변화와 개혁을 통한 혁신이 요구되는 21세기의 기본적 정신의 토대가 되는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노력이 곧 세상을 밝히는 빛과 이를 받아 들이는 창이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지적측량업자들이 제 위치를 찾는데 기여할 것이라 믿는다.
  • [자동차산업 위기를 기회로](상)상생만이 살길이다

    [자동차산업 위기를 기회로](상)상생만이 살길이다

    글로벌 경기둔화와 미국 자동차 산업 붕괴 쓰나미가 국내 자동차 업계를 강타하고 있다. 완성차 업체가 감산·감원 등 ‘기침’을 하면 부품 협력업체들은 줄도산 위기에 몰려 ‘감기 몸살’을 앓는다. 증상은 1→2→3차 협력업체로 내려갈수록 악성이다.‘갑(甲)’과 ‘을(乙)’의 반복된 관계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부품협력업체 부실은 향후 완성차업체의 체질 약화로 되돌아오는 만큼 ‘상생(相生)협력’ 필요성을 강조한다. 당장엔 정부의 한 박자 빠른 금융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기아차,GM대우, 르노삼성, 쌍용, 대우버스, 타타대우 등 국내 7대 완성차 업계에 부품을 대는 1차 협력업체는 901곳,2·3차 협력업체는 3300여 곳으로 파악된다. 이 가운데 1차 협력업체의 전체 납품액은 지난해 기준 38조 6409억원으로 업체당 평균 429억원에 이른다.1년새 7.5%(30억원)나 증가했다. 그만큼 완성차 업계 의존도가 높아진 셈이다. 현대차(56.5%), 기아차(60.9%),GM대우(67.5%)등 매출액 대비 납품액 비중이 60% 안팎이나 된다.2·3차 협력업체는 워낙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정확한 규모 파악조차 힘든 실정이다. 이 같은 구조로 인해 최근 협력업체들은 연쇄적인 경영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글로벌 수요 감소가 단초를 제공했으나 완성차 업체의 구조조정에 따른 일감 축소와 남품가 인하, 대금 지연 등 ‘연쇄 압박’이 직격탄이 됐다.2차 협력업체인 A부품업체 관계자는 “완성차 업체들의 감산 및 구조조정이 막 시작 단계인데도 일감이 30% 안팎 줄어 경영이 위태로운 상황”이라며 “게다가 1차 협력업체는 5개월짜리 어음을 끊어주면서 ‘납품가격을 낮추면 현금을 줄 수 있다.’고 일방통행식 압력을 넣어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상처가 곪기 전에 환부를 도려내는 지혜를 강조한다. 복득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완성차 업체는 여유가 없기 때문에 정부가 먼저 나서서 협력업체에 금융 및 기술개발 등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설업과 조선업 못지않게 자동차 산업이 곧 심각한 위기상황에 빠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일본 도요타의 상생경영 사례를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자동차산업 팀장은 “완성차업체가 원가절감 추진으로 생긴 추가 이익을 부품업체의 납품단가 인상 등으로 철저히 공유하는 도요타의 성공사례를 도입해야 한다.”면서 “현대·기아차 등이 협력업체에 연구·개발(R&D) 지원을 하고 있으나 이는 자사의 이익을 위함이지 부품업체의 생존과는 크게 관련이 없다.”고 지적했다. 가장 바람직한 상생 협력은 공정한 거래 및 성과 분배를 통해 쌓은 신뢰에서 비롯된다는 얘기다. 이 팀장은 “완성차업체가 해외에서 생산할 때도 기존 협력업체들과 동반 진출하고 신제품 구상 단계부터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산 자동차공업협동조합 기획조사팀장도 “보슈나 덴소처럼 협력업체들이 거래 대상을 다변화해 글로벌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거래물량 보장이나 현금거래 확대 등 임시방편보다 체질 개선 유도가 효과적이다. 부품업계의 잠재적 부실을 사전에 털어내는 정부의 지원도 절실하다. 이항구 팀장은 “자동차 부품업체 수가 외환위기 전보다 500여개나 많은 4200여개로 늘어나 중·소형화되면서 완성차 업계의 경영악화 파고에 더욱 취약해졌다.”면서 “선택적인 금융 및 연구·개발(R&D)지원과 함께 업체간 인수·합병시 세제지원을 통해 부품업체의 대형화를 유도하고 위기 대응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표 홍희경기자 tomcat@seoul.co.kr
  • 김영랑 시인에 금관문화훈장 추서

    정부는 15일 김영랑(본명 김윤식·1902~1950) 시인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는 등 문화훈장 서훈자 25명을 선정했다. 정부는 또 송승환 ㈜PMC프로덕션 대표 등 6명을 제40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수상자로 선정해 대통령 상장과 상금 1000만원을 각각 수여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30대 젊은 예술가들에게 시상하는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수상자로는 소설가 김애란, 가수 장나라 등 9명이 선정돼 문화장관 상패와 상금 500만원을 각각 받는다. 서훈과 시상은 18일 오후 4시 청주 예술의전당에서 개최되는 ‘2008년 문화의 날 기념식’에서 이뤄진다. 부문별 수훈자와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문화훈장▲금관문화훈장 고 김영랑(시인) ▲은관문화훈장 오세영(서울대 명예교수) 최종태(화가·예술원 회원) 박광진(화가·예술원 회원) 한백유(화가·예명 한묵) ▲보관문화훈장 고 차일혁(전 공주경찰서장) 윌라 김(무대의상 디자이너) 권용태(전 한국문화원연합회장) 앙드레 김(패션디자이너) 고 이종수(전 이화여대 교수) 이만방(숙명여대 교수) 정재국(국립국악원 원로사범) 고 김형표(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초빙교수·예명 김진걸) ▲옥관문화훈장 안선재(서강대 명예교수) 김준식(안동문화원장) 박주환((사)한국화랑협회 원로회원) 박만식(망운암 주지·법명 성각) 김윤철(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김산호(만화가)▲화관문화훈장 구자흥(안산문화예술의전당 관장) 김계담(전 서귀포문화원장) 박영수(청주문화원 고문) 김현(㈜디자인파크커뮤니케이션즈 대표) 배용준(배우) 박공서(한국영상프로덕션 대표)◇대한민국 문화예술상▲문화 송승환(㈜PMC프로덕션 대표) ▲문학 홍성란(시인) ▲미술 서기흔(경원대 교수) ▲음악 임헌정(부천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예술감독) ▲연극·무용 한태숙(극단 물리 대표) ▲대중예술 부천만화정보센터◇오늘의 젊은 예술가상▲문학 김애란(소설가) ▲미술 정연두(조각가) ▲디자인 박은선(보석 디자이너) ▲음악 최명훈(작곡가) ▲전통예술 조주선(국악인) ▲연극 장유정(연출가) ▲무용 임혜경(무용가) ▲영화 민규동(영화감독) ▲대중예술 장나라(가수)◇문화예술발전 유공 공무원▲허순영(순천시 기적의도서관 관장) ▲이미경(종로구청 재무과) ▲이수원(태백시 문화시설관리사업소) ▲박인선(구례군청 문화관광과) ▲안성자(영월군청 도시개발과) ▲신형석(울산광역시 문화예술과)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책꽂이]

    ●시간 추적자들(하랄트 바인리히 지음, 김태희 옮김, 황소자리 펴냄) 서양사 속에 등장하는 신화와 문학작품, 철학서들을 인용하면서 인간이 풀지 못할 숙제인 시간의 모습을 추적.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등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들을 텍스트로 조명한다.2만 5000원.●무지개를 풀며(리처드 도킨스 지음, 최재천·김산하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광활한 우주에서 우리가 지구에 살게 된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오케스트라 연주에서 수십개의 악기 소리를 어떻게 구별해 내는지 등 우주와 인간유전자의 비밀까지 폭넓게 훑어 보는 과학이야기.1만 6000원.●초월적 관념론 체계(프리드리히 셸링 지음, 전대호 옮김, 이제이북스 펴냄) 독일 관념론의 대표적 철학자로 낭만주의에도 큰 영향을 끼친 프리드리히 셸링이 1800년에 발표한 대표작. 자신의 철학에 스며든 피히테의 주관적 관념론과 결별하고 객관적 관념론이라는 독자적 철학체계를 정립한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자연과 정신의 종합’이다.1만 8000원.●화양연가(華陽戀歌)(이종민 지음, 이지출판 펴냄) 전북대(영문학과) 교수이자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인 저자가 쓴 에세이. 생활 속 단상들을 음악과 연결시킨, 잔잔하면서도 울림있는 글들을 모았다.1만 500원.●슬로푸드, 맛있는 혁명(카를로 페트리니 지음, 김종덕·황성원 옮김, 이후 펴냄) 패스트푸드의 상대개념인 슬로푸드의 효용과 가치를 역설한 책. 슬로푸드 세상을 열기 위해서는 소비대중이 미식가의 소양을 키우고 농민과 공동생산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1만 5000원.●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일기(김성호 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건강한 숲에서만 사는 우리나라 텃새 큰오색딱따구리의 번식생태 과정을 180여장의 컬러사진과 함께 담았다. 둥지 짓기에서 새끼 기르기까지 50일간의 관찰기록.2만 5000원.●경제인의 종말(피터 드러커 지음, 이재규 옮김, 한국경제신문 펴냄) 피터 드러커(1909∼2005)가 1939년에 내놓은 초기 저작.1차대전 이후의 가치관 혼란으로 산업사회의 ‘경제적 인간’이 전체주의의 가치 앞에 굴복하는 상황을 우려했다. 드러커는 초판 서문에서 “전체주의를 받아들이고 자유를 포기하려는 위협에 맞서 자유를 견지하려는 의지를 다지기 위한 책”이라고 밝혔다.1만 7500원.
  • [여행·레저 단신]

    # 마야문명의 속살을 탐하다 중앙아메리카 마야문명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여행 에세이집 ‘라틴홀릭-마야를 엿보다, 쿠바를 탐하다!´가 출간됐다. 스포츠월드 김산환 여행전문기자가 과테말라 안티구아와 유카탄 반도의 마야 유적, 그리고 쿠바를 4개월에 걸쳐 돌아보며 아내에게 쓴 편지를 한 권의 책으로 정리했다. 생생한 사진과 서간체로 쓰인 유려한 문장은 금방이라도 카리브해의 에메랄드빛 바다 속으로 독자들을 몰아넣는다.1만 3000원. 랜덤하우스. # 대학생 관광광고대상 한국관광공사는 ‘제5회 대학생 관광광고대상´ 공모를 실시한다. 광고 주제는 ‘휴가 4계절 나눠가기(휴가분산제 캠페인)´와 ‘우리국민 모두 한국관광홍보대사(친절마인드 홍보 캠페인)´ 등 두 부문. 공동출품작 포함 2점까지 응모할 수 있다. 대상(1점)에 장학금 500만원 등 푸짐한 부상도 마련됐다. 접수는 4월7∼11일. 대학생은 물론 대학원생(박사과정 제외)도 참여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www.visitkroea.or.kr) 참조. # ‘온필´ 보홀 탐험대 모집 ‘필리핀의 모든 것´ 온필(www.onfill.com)에서 신비의 섬 ‘보홀´로 떠날 탐험대를 찾고 있다. 응모는 13일∼4월9일. 참가 이유와 보홀의 여행지 3곳을 온필 ‘스팟´에서 찾아 신청하면 된다. 행사 참가자에게는 아이팟터치 8G(3명) 등도 준비되어 있다. # 신혼여행을 꿈꾸는 예비 부부를 위해 인터넷여행사 로그인투어(www.logintour.co.kr)는 3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콘퍼런스룸 330호에서 ‘허니문 강좌´를 개최한다. 참가자에게 전세계 허니문 지역에 대한 안내 자료를 제공하며, 행사 당일 예약하는 경우 30만∼60만원 할인해 준다. 웨스틴 조선호텔의 오찬 뷔페도 준비했다.02)744-6200. # 뉴칼레도니아 관광청 한국사무소 오픈 뉴칼레도니아 관광청(www.new-caledonia.co.kr)이 14일 한국사무소를 연다.‘남태평양의 작은 프랑스´로 불리는 뉴칼레도니아는 호주와 뉴질랜드로부터 약 1500㎞떨어진 프랑스령의 섬. 남한의 3분의1 크기에 연평균 24℃의 열대성 해양기후 지역으로 산호초로 둘러싸인 에메랄드 빛 바다를 비롯해 희귀 동식물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다.02)732-4150).
  • [부고]

    ●심운식(한국쓰리엠 소비자 및 오피스 사업본부장)씨 모친상 11일 여의도 성모병원, 발인 13일 낮 12시 (02)3779-2191●신성욱(굿이엠지 이사)씨 부친상 강태석(식약청 국립독성연구원 일반독성팀장)박성호(서울보증보험 팀장)황성민(SC제일은행 상무대우)씨 빙부상 11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13일 오전 11시30분 (02)392-3299●김종학(전 중외제약 상무·써니팜 대표)종철(신일 건설사업본부장 상무)씨 부친상 궁인협(자영업)씨 빙부상 1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3일 오전 6시30분 (02)3010-2230●강병기(건축사무소 공간그룹 상임고문·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 대표)씨 별세 수남(미국 타임워너 전산부장)수경(삼성전자 책임연구원)수마(모토로라코리아 부장)씨 부친상 배동준(UCS TRADING 이사)김태진(중앙일보 경제부문 차장)씨 빙부상 강경민(재미 변호사)씨 시부상 1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3일 오전 9시 (02)3410-6916●임승득(국민은행 검사기획부장)씨 부친상 11일 동국대 일산병원, 발인 13일 오전 5시 (031)961-9401●이규원(미국 거주)규태(전 삼성물산 전무)씨 모친상 허재원(전 상업은행 지점장)박성동(동흥기업 대표)씨 빙모상 이준영(미국 거주)씨 조모상 허영호(CCMP캐피탈 한국대표)씨 외조모상 1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3일 오전 8시 (02)3010-2261●김산웅(최정섭이비인후과 실장)숙일(동강대 교수)씨 부친상 천영욱(서울중앙내과 원장)김종이(성림침례교회 담임목사)이황기(서울세란병원 원장)최정섭(최정섭이비인후과 원장)씨 빙부상 11일 광주 그린장례식장, 발인 13일 오전 9시30분 (062)250-4407●이기용(전 중동중 교감)씨 별세 태진(뉴질랜드 거주)철진(사업)승진(다이나화언 대표)씨 부친상 10일 서울 역삼동성당 요셉관, 발인 13일 오전 6시30분 (02)553-0820●임학수(전 해군 병기감·예비역 해군 대령)씨 별세 재범(싱가포르 거주)재연(미국 시카고대학 박사과정)씨 부친상 10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2일 오전 8시30분 (02)3410-6912●이인주(우리금융정보시스템 팀장)영모(삼성전자 디자인경영센터 과장)종무(사업)씨 모친상 10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2일 오전 8시 (02)3010-2235●김남현(한국금융신문 기자)씨 부친상 김태현(개인사업)신현택(방배웰치과 원장)씨 빙부상 11일 충남 당진군 송악면 광명리 중앙장례식장, 발인 13일 오전 7시 (041)358-3000
  • [부고]

    ●당택상(서울신문 윤전2부 과장)씨 빙모상 25일 전남 고흥군 도화면 당오리 162번지 자택, 발인 27일 오전 11시 (061)834-7404●홍석의(전 현대중공업 부사장)씨 모친상 2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7일 오전 8시 (02)3010-2292●한용만(전 고려대 학생과장)씨 별세 영근(OB맥주 이천공장장)영남(평화은행 카드부장)영준(현대캐피탈 부장)씨 부친상 강의철(삼성물산 건축사업본부장)씨 빙부상 윤인섭(주독일 문화원장)씨 시부상 한정석(서울중앙지법 판사)씨 조부상 24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7일 오전 8시 (02)3410-6914●정덕철(한국은행 강남본부 차장)기철(자영업)성철(〃)씨 부친상 황갑진(자영업)씨 빙부상 25일 경남 통영강남병원, 발인 27일 오전 7시 (055)645-6699●이재천(태양중기 대표)씨 모친상 윤영진(사업)김산(아텍진공 대표)홍진호(KT 인천서부 NSC 5ESS 실장)김동주(동아일보 사진부 차장)씨 빙모상 25일 인천 가천의대길병원, 발인 27일 오전 8시 (032)471-6361●이운용(유창 전무)봉우(대한주택공사 판교신도시사업단 부단장)씨 모친상 25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7일 오전 7시 (02)3410-6916●지건태(인천신문 정치부 기자)씨 부친상 이덕재(용인시청)최철호(사업)씨 빙부상 25일 경기도 용인 기흥장례식장, 발인 27일 오전 10시 (031)275-4884●심현철(성신여대 경영학과 교수)철웅(서울대 미술대 〃)씨 모친상 2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7일 오전 7시 (02)3010-2261●황광연(동신대 사회과학대학장)씨 별세 인균(파인닷컴 대표)은지(서울대 교육학과 박사과정)윤아(인천여상 교사)씨 부친상 김회경(늘푸른나무복지관 사회복지사)씨 시부상 서창우(삼성전자 대리)손정민(나인스페이스건축사무소)씨 빙부상 25일 광주 미래로21병원, 발인 27일 오전 9시 (062)450-1401●김주성(명지전문대 시각디자인과 교수)성호(아이엘디자인 대표)씨 부친상 최순호(삼정지오텍 이사)씨 빙부상 2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7일 오전 9시 (02)3010-2252
  • [인사]

    ■ 국방부 ◇서기관 승진 △총무팀 趙敬子△군수관리관실 장비팀 柳在正△감사관실 직무감찰팀 朴均泰△군사시설기획관실 시설기획팀 李圭弘△혁신기획본부 혁신기획팀 姜東柱■ 해양수산부 ◇과장 전보 △어업자원국 양식개발과 崔完鉉△대통령비서실 姜仁求■ 우정사업본부 ◇4급 전보 △부산체신청 정보통신국장 許圓錫△우정사업본부 전입 朴台熙 閔載晳■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심의지원부장 손충호△진흥사업〃 최경애△혁신기획〃 신숙희△심의지원부 도서만화팀장 김성만△〃 정기간행물〃 김학수△〃 외국간행물〃 장택환△진흥사업부 독서진흥〃 박용덕△〃 전략사업〃 이선구△혁신기획부 홍보기획〃 최남율△〃 경영지원〃 김진형△독서아카데미운영반장 배진석■ 국제교육진흥원 ◇승진 △서기관 박석진■ KT&G ◇전무급 전보 △마케팅부문장 이광열△생산〃 민영진△전략〃 이영태◇상무급 전보△R&D부문장 이동욱△생산부문 제조본부장 이태형△지원〃 김일종△마케팅부문 마케팅〃 함기두△〃 글로벌〃 허승오△생산부문 원료〃 유제복△영주제조창장 박강제 ◇상무보급 전보△지원본부 인재개발원장 강용탁△재무실장 김산겸△전략부문 홍보실장 이철수△남서울본부장 강희룡△북서울〃 김해성△부산〃 방형봉△대구〃 김대성△인천〃 강주원△경기〃 이상기△신탄진제조창장 김광준△인쇄〃 이재헌△김천원료공장장 정준하 ◇임원대우 전보△감사실장 이수영△전략부문 전략실장 허업△〃 CR〃 최정원△마케팅부문 마케팅본부 마케팅〃 김준기△〃 〃 브랜드〃 김창렬△〃 글로벌본부 해외사업〃 최상철△생산부문 제조본부 생산관리〃 이광훈△〃 〃 품질관리〃 유영동△〃 원료본부 원료관리〃 장재식△〃 원료본부 구매〃 민병한△R&D부문 제품개발〃 최윤주△〃 기술개발〃 박재민△〃 중앙연구원 연구기획〃 김영회△〃 〃 담배과학연구소장 이문수△〃 〃 인삼〃 도재호△〃 〃 생물자원〃 유연현△〃 〃 분석과학〃 민영근△성장사업본부 자산개발실장 최성관△〃 신사업〃 백철만△지원본부 인사〃 권봉순△〃 정보〃 이갑수△〃 스포츠〃 최규형△전남본부장 홍문봉△충남〃 최정일△원주제조창장 정태풍△광주〃 염동배△남원원료공장장 박성훈◇1급 전보△지원본부 비상계획실장 우용하△전북본부장 전준영△남서울본부 강동지사장 강만형△북서울본부 종로〃 이하형△북서울본부 북부〃 전장호△부산본부 부산진〃 류도근△인천본부 안산〃 이권성△신탄진제조창 MAC실장 이수호△원주제조창 생산〃 이용건△〃 지원〃 서석록△광주제조창 생산〃 나강윤△〃 지원〃 전충열△영주제조창 생산〃 정헌영△인쇄창 인쇄〃 전은철△전북본부 유영구△생산부문 원료본부 원료생산실 김진원△마케팅부문 글로벌본부 해외투자실장 이진희△생산부문 원료본부 원료생산〃 노선호△지원본부 인재개발원 연수〃 방광혁△신탄진제조창 생산〃 임무수△〃 지원〃 신현록△영주제조창 지원〃 윤여대△제주본부장 민병환△남서울본부 강남지사장 김현진△신탄진제조창 생산〃 임무수△전략부문 CR실(KT&G복지재단 파견) 윤영승■ 경향신문사 ◇승격 (국장)△미디어전략연구소장 조성환(부국장대우)△논설위원실 논설위원 이승철(차장)△편집국 정치부 이기수△〃전국부 박용근 윤희일△전략기획실 기획인사팀 심우진△제작국 제작1팀 김광만 정석모△윤전1팀 김대환 안태준△〃윤전2팀 장순택△광고마케팅국 마케팅 4팀장 박재구△스포츠칸본부 스포츠칸편집국 종합뉴스부 류원근(차장대우)△편집국 경제부 박성휴△〃산업〃 최우구 김석△〃전국〃 최인진△〃문화1〃 한윤정△〃사진부 박민규 김정근 박재찬△〃 편집1〃 김연수△경영지원실 시설관리팀 류창환△〃 업무지원팀 김태준△제작국 전산운영팀 김선중△〃제작2팀 홍성민 양영만△〃윤전1팀 서호정 정병석△〃 윤전2팀 오세동△판매국 호남팀 이광천△〃중부팀 박상열△광고마케팅국 마케팅2팀 박인수△출판본부 출판관리팀 박홍만△〃레이디경향광고팀 정인섭△〃뉴스메이커광고팀 조영수◇보직변경△논설위원실 논설위원 유병선△편집국 선임기자 유인화 설원태△〃국제부장 양권모△〃전국부장 박래용△〃여론독자부장 최병태△〃산업부 차장 안치용△〃문화2부 차장 최병준△출판본부 레이디경향 부장 유인경△스포츠칸본부 스포츠칸편집국 사진부장 권호욱■ 아산의료원 △정읍아산병원장 최영균△보령〃 정종기△홍천〃 박학천△보성〃 김중열△금강〃 안영락△영덕〃 김연수■ 한성디지털대 △총장 김창국△대외협력 부총장 선형기△기획처장 서승기△교무처장 장대갑△학생처장 육효창△홍보처장 조경훈
  • [박성서의 7080X파일] 35년 만에 재결합한 자니브라더스

    [박성서의 7080X파일] 35년 만에 재결합한 자니브라더스

    남성적인 매력이 한껏 돋보였던 남성 4중창단 자니브라더스가 35년 만에 재결합을 선언했다. 평균연령이 자그마치 68세. 이로써 우리나라 최장·최고령의 보컬 팀이 탄생한 것. 유독 박력 있고 시원스러운 가창력과 더불어 싱싱한 수목을 연상시키는 건강미가 매력 만점이던 이들 멤버는 각각 김현진(리드,71세), 양영일(테너,68세), 김준(본명 김산현, 바리톤,67세), 진성만(베이스,67세). 여전히 ‘빨간 머플러’가 썩 잘 어울릴 듯한 외모, 전성기 때 못지 않은 박력에 깊이까지 갖춘 이들의 정겨운 화음은 세월을 뛰어넘어 특히 중장년층들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낼 것으로 기대된다. 1961년, 당시 최고의 음악성을 갖춘 정예들로 구성된 예그린합창단 1기생으로 출발, 기량을 뽐내던 중 뜻이 맞는 이들 네 명이 모여 4중창단을 결성했다. 이어 문화방송 톱싱거대회 월별 예선을 통과, 연말 본선 결선을 앞두고 예그린이 해체된다. 아울러 이들은 당시 문화방송 톱싱거 경연대회, 동아방송 연말 중창단경연대회 등을 잇달아 휩쓸며 무서운 신예로 급부상했다. 특히 춤과 연기 실력으로 완전무장한 예그린 출신답게 TV쇼를 화려하게 바꾼 동시에 영화주제가 ‘빨간 마후라’를 비롯해 ‘방앗간 집 둘째딸’,‘아나 농부야’,‘수평선’ 등을 잇달아 발표, 정상에 오른다. 아울러 당시 꿈의 무대였던 워커힐에 전속되며 통행금지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마치 한 몸인 양 ‘사인오각(四人五脚)’을 이뤄 바쁘게 활동,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최정상에서 이들은 해체를 선언한다. 각자의 재능을 살리기 위해 솔리스트로 전향을 꿈꾸던 이들은 결국 1968년 6월8일 동양TV ‘쇼쇼쇼’를 통해 ‘자니브라더스 고별쇼’를 갖는다. 하지만 이들의 재능을 아쉬워하던 당시 장태화 서울신문사 사장 등 후견인들에 의해 다시 재결성, 그룹명을 ‘메아리진(전국에 메아리친다는 순수 우리 말)’으로 바꾸고 1970년 1월11일 mbc-TV ‘메아리진쇼’를 통해 컴백, 매주 30분씩 브라운관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들은 당시 중창단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제각각 부업전선에 나선 후 이어 1972년, 서울 을지로 4가에 ‘메아리진’이라는 음악 살롱을 차려 경제적 타개책을 적극 모색하지만 1년이 채 못돼 하나둘씩 각자의 길로 흩어진다. 오는 3월12일 공식적으로 KBS 가요무대를 통해 재결합을 선언, 컴백무대를 갖는 이들이 마지막으로 함께 섰던 무대는 1973년 1월, 당시 TBC ‘쇼쇼쇼(PD 황정태)‘ 400회 특집프로그램. 오랜 만에 똑같은 의상으로 통일한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비록 그동안 제각각의 길을 걸어왔지만 늘 음악과 함께 해왔기에 이 번 재결성은 매우 자연스레 이루어진 일”이라고. 실제로 멤버 중 바리톤 파트의 김준씨는 그룹 해체 후 솔로가수로 전향, 현재까지 매년 음반을 발표해오며 국내 유일의 남성재즈보컬리스트로 활동하고 있고 멜로디 파트의 김현진씨는 그간 보험일을 거쳐 현재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본인이 이끄는 ‘울바우 남성합창단’과 더불어 매년 정기공연을 해왔다. ‘빈대떡 신사’의 작곡자인 양원배씨의 차남으로 경희대 음대 출신이기도 한 테너 양영일씨는 지난 23년간 음악교사로 재직해 왔다. 현재는 부산 코스모스악기사 상무로 재직 중이다. 그런가하면 동아방송 성우 1기생이기도 한 베이스 진성만씨는 영화배우 김지미씨의 여동생 김지애씨와 결혼, 지미필름 대표를 거쳐 현재는 요식업에 종사하고 있다. ‘자니브라더스’라는 이름으로 함께 무대에 서는 것이 오랜 꿈이었다는 이들은 이미 지난 가을부터 매주 한 차례씩 모여 호흡을 고르고 화음을 맞춰 왔다. 이전까지는 멜로디 위주의 유니송(Unison)을 주로 발표해 왔지만 이제부터는 하모니 위주의 4성, 즉 네가지 화음을 조화시켜 남성4중창단으로서의 매력을 한껏 펼칠 예정. 클래식과 교회음악에서 출발한 이들이 들려줄 주요 레퍼토리는 역시 올드팬들에게 친숙한 ‘올드송’들이다. 자신들의 히트곡은 물론 민요에서 올드 팝까지 폭넓게 펼칠 예정으로 편곡은 작곡가 김기웅(71)씨가 맡았다. . 대중음악평론가 sachilo@empal.com
  • [책꽂이]

    ●초콜릿 다이어트(구스타 에리코 지음, 정선희 옮김, 고려원북스 펴냄) 초콜릿은 카카오나무 열매 속에 있는 카카오콩에서 뽑아내 만든다. 카카오의 학명 ‘테오브로마 카카오’는 18세기 식물학자 린네가 붙여준 것으로,‘신들의 먹을거리’라는 뜻이다. 초콜릿이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결론. 카카오 함량이 70%인 초콜릿을 먹도록 한 뒤 체내 지방조직에서 분비되는 식욕억제 물질인 렙틴의 혈중 함유량의 변화를 조사한 결과,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는 것이다.9500원.●노벨상 수상자 36인의 학습법(탄샤오위에 엮음, 오성실 옮김, 문학수첩 리틀북 펴냄) 아인슈타인은 세살이 다 되도록 말을 하지 못했다. 비록 남보다 말은 늦게 시작했지만 아인슈타인에게는 독특한 언어습관이 있었다. 말할 때 반드시 완벽한 문장을 만들어 구사한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들은 지식보다 상상력이 중요함을 역설한다. 현대에서 문맹의 개념은 글을 모르거나 지식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공부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을 뜻한다.9500원.●세계적 인물은 어떻게 키워지는가(빅터 고어츨 등 지음, 박중서 옮김, 뜨인돌 펴냄) 열한살 때까지 글을 읽지 못한 우드로 윌슨,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에게서 버림받은 루이 암스트롱, 먼저 죽은 누나를 대신해 여자처럼 자라야 했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 미혼모에게서 버림받은 뒤 권위적이고 오만한 할머니 밑에서 자란 오프라 윈프리, 젊은 시절 반항아였던 넬슨 만델라…. 이 책은 역사적 인물들의 교육과 성장배경을 살핀다. 자기 주장이 강한 부모, 싸고도는 어머니 등 유명인사 부모들의 성향을 열가지로 나눠 설명한다.1만 5000원.●청소년을 위한 길가메쉬 서사시(김산해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기원전 2812년부터 126년간 수메르의 도시국가 우르크를 통치한 길가메쉬의 일생을 다룬 ‘길가메쉬 서사시’를 쉽게 풀어쓴 책. 길가메쉬는 폭행을 일삼는 난폭한 임금이었다.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신들은 길가메쉬와 맞설 수 있는 존재인 엔키두를 만든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나 히브리족의 창세기 ‘베레쉬트’보다 길게는 1700년 이전에 씌어진 작품.1만 3000원.●仙道 공부(정재승 등 엮음, 솔 펴냄) 소설 ‘단’으로 한국 선도의 실체를 증명한 봉우 권태훈 선생의 한국 선도 이야기. 선도 혹은 선교(仙敎)는 중국 도교와는 달리 독자적으로 발전해 온 우리 고유의 사상체계. 최치원의 ‘난랑비서’에 표현된 현묘지도, 풍류도, 화랑도를 의미하며 상고시대 단군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봉우 선생과 여러 학인들이 나눈 대화록이다. 정신수련법의 형태로 우도, 즉 자신의 역량만으로 도를 닦는 방법인 조식호흡법(고르게 숨쉬는 법)을 강조한다.4만 5000원.●나루를 찾아서(박창희 지음, 서해문집 펴냄) 청량산의 광석나루는 퇴계 이황이 공부하며 건너던 곳이요, 고령 개포는 팔만대장경이 옮겨진 나루, 합천 밤마리(율지)는 오광대의 발상지로 큰 장이 섰던 곳이다. 함안 악양은 ‘처녀 뱃사공’의 사연이 깃든 나루, 양산 가야진은 신라 때부터 국가 제의로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 민중의 삶의 터전이자 선비들의 독특한 풍류가 살아 숨쉬는 나루에 관한 보고서.1만 3500원.
  • [책꽂이]

    ●인디아 코드 22(김봉훈 지음, 해냄 펴냄) 인도의 기업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1868년 잠셋지 타타가 설립한 타타 그룹이다. 인도 북동부 자르카트 주에 있는 잠셋푸르에는 타타 그룹 100주년 기념관이 있어 그 역사를 엿보게 한다. 타타 그룹은 인도의 인재를 만드는 산실이다. 불가촉천민으로 처음 대통령 자리에 오른 코체릴 라만 나르야난 전 대통령도 ‘타타 장학생’이었다. 민간기업으로는 특이하게 그 첫 번째 윤리강령으로 ‘국가이익’을 내세우고 있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포스코경영연구소 인도전문 연구위원인 저자가 세계경제의 뉴 아이콘으로 떠오른 인도를 소개한 책.1만원.●중국 처세의 성인 증국번의 인생조종법(증도 지음, 지세화 옮김, 시아출판사 펴냄)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한 지도자이자 서유럽으로부터 근대기술을 도입해 청나라의 자강(自强)을 시도한 양무운동의 추진자 증국번. 마오쩌둥은 “근대의 사람 중 오로지 증국번에게만 탄복할 뿐이다.”라고 칭송했고, 마오쩌둥의 라이벌 장개석은 증국번의 문집과 유작집을 읽고 난 뒤 “각고에 찬 마음과 강한 의지력은 스승으로 삼을 만하다.”며 그의 언행을 책으로 엮어 황포군관학교의 교재로 썼다. 후세 사람들은 증국번을 ‘완인(完人)’, 즉 완전한 사람이라 불렀다. 증국번의 ‘나를 다스리는 법´이 담긴 인생교본.1만 3000원.●김산 평전(이원규 지음, 실천문학사 펴냄) 평북 용천 태생인 비운의 독립투사 김산(본명 장지락) 전기. 김산은 상해로 가 안창호·이광수 밑에서 ‘독립신문’ 식자공으로 일했으며 테러리스트 오성륜과 약산 김원봉, 유자명의 영향으로 아나키스트가 됐다. 공산주의를 조국 독립의 방편으로 삼은 그는 비범한 이론가이자 조직가, 선동가였으며 시인, 소설가, 번역가의 면모도 보여줬다. 중국공산당의 근거지인 연안에서 님 웨일스(본명 헬렌 포스터 스노)를 만나 자신의 투쟁과 조국의 독립운동에 대한 증언을 한 김산은 일제 첩자로 몰려 억울하게 처형당했다.1983년 중국공산당은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그를 복권시켰다.1만 5000원.●스위스 예술기행(이수영 지음, 시공아트 펴냄) 새로운 현대미술의 메카로 떠오른 스위스 문화탐방기. 스위스는 근·현대 미술에 관한 한 내로라하는 작품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바스티옹 광장과 생피에르 성당 그리고 풍경화가 호들러로 유명한 문화도시 제네바. 포도밭과 레만호수가 정겨운 로잔의 에르미타주재단 미술관, 정신병자들의 작품을 모아놓은 목조건물의 아르브뤼 미술관, 렌조 피아노가 설계한 폴 클레 미술관 등 풍성한 볼거리를 소개한다.1만 5000원.●실록 열국지(좌구명·사마광·사마천 지음, 신동준 엮어옮김, 살림 펴냄) 중국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난세인 춘추전국시대(기원전 770∼221). 이 시대는 제자백가가 출현해 난세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제시, 학문과 사상의 황금기를 구가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 동아시아 정치사상의 연수(淵藪)가 된 공자와 맹자, 순자, 한비자 등 수많은 사상가들이 이 시기에 활약했다. 이 책에서는 중국의 3대 역사서 ‘춘추좌전’‘자치통감’‘사기’의 기록을 토대로 춘추전국시대 550년의 역사를 편년체 방식으로 되살렸다. 전3권 각권 2만 3000원.
  • “日은행권 경제침탈” 유통반대운동 주도

    왕산 허위(1854∼1908)는 구한말 정미의병 때 ‘서울진공작전’을 펼치려고 했던 의병장이다. 서울 동대문에서 청량리 구간은 1996년부터 그의 호를 따 ‘왕산로’라고 불린다. 왕산뿐 아니라 왕산의 바로 윗 형인 성산 허겸과 맏형 방산 허훈도 독립운동을 했다. 이들은 군자금을 만들어 왕산에게 보내주기도 하고, 왕산과 함께 의병활동도 했다. 국내 활동이 여의치 않게 되자 만주로, 연해주로 뿔뿔이 흩어지며 독립운동을 했다. 왕산은 맏형 방산 허훈(1836∼1907)에게 글을 익히고 학문을 배우며 영남학파의 지식주의와 실용주의를 익혔다.27살이 되던 1881년에 아버지를 여읜 왕산은 10년 동안 후배들을 가르쳤고, 이 때 의병활동을 함께 할 동지들과 교분을 쌓기 시작했다.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공포된 1895년 동학군을 피해 피난생활을 하고 있던 방산이 아우 성산 허겸과 함께 진보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을미의병이다. 이 때 방산의 나이는 이미 환갑 가까이 됐다. 방산과 함께 피난 중이던 왕산은 김산으로 가서 의병을 일으켰지만, 관군에 패한 뒤 세력을 다시 모으고 있었다. 이 때 왕산이 쓴 격문의 일부다. “지금 왜적이 우리나라 안에 발을 내리고 앉았음이 이미 두어 해나 되었건만 의리를 좇아서 응모하는 자가 보잘 것 없다. 팔도 안에 참으로 의용과 지략 있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겠는가. 손을 내리고 바라만 볼 수 없기에 기필코 이 도적의 괴수를 소탕코자 하는 바이다. 여러분은 같은 소리로 응모하라. 비록 몽둥이와 허리를 가지고 달려들어 공격해서 용기를 도우면, 적들도 감히 가까이 오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1896년 3월 왕산은 이기찬을 대장으로 추대하고 다시 김산의진을 일으켰지만, 몇차례 관군에 패하고 해산하게 된다.1898년에 왕산은 이건석과 함께 구국상소를 올렸고, 이듬해에는 나중에 대한광복회를 결성해 독립운동을 전개한 박상진을 제자로 받아들였다. 45살이 되던 1899년 왕산은 관직생활을 시작했다. 영희천 참봉 판임관, 성균관 박사, 소경원 봉사를 거쳐 러일전쟁이 일어난 1904년을 전후해 주차일본공사관수원, 통정대부, 평리원 재판장 등 고위직에 올랐다. 이 동안 왕산이 한 활동 중 눈에 띄는 게 일본 제일은행권 유통반대운동이다. 제일은행권 유통은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전초를 만드는 작업으로, 우리 정부의 허가 없이 이뤄진 작업이다. 유통반대운동은 공제소에서 주도했지만, 일본공사의 압력 때문에 대한제국 정부는 1903년7월 공제소에 대한 해산령을 내렸다. 하지만 왕산은 동료들을 규합해 운동을 이어갔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뮤지컬도 ‘사극바람’ 났네

    뮤지컬도 ‘사극바람’ 났네

    영화 ‘왕의 남자’에서 드라마 ‘주몽’으로 이어진 사극 붐이 뮤지컬 무대에도 일어날까. 역사와 설화를 바탕으로 한 창작 뮤지컬 4편이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 개막을 앞둬 눈길을 끈다. 경기도 문화의전당의 ‘화성에서 꿈꾸다’와 서울예술단의 ‘바람의 나라’는 각각 조선시대와 고구려를 배경으로 한 역사물. 서울시뮤지컬단의 ‘키스 미 타이거’와 안산문화예술의전당의 ‘반쪽이전’은 전통 설화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역사에 판타지를 입히다-‘화성에서 꿈꾸다’VS‘바람의 나라’ ‘화성에서 꿈꾸다’(8∼17일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공연장)는 조선시대 개혁군주 정조와 최초의 여성실학자 빙허각의 사랑을 토대로 미완의 꿈이 되고 만 화성 천도 과정을 그린다. 빙허각은 실학자 서유본의 아내로 여성실학백과인 ‘규합총서’를 쓴 실존 인물이다. 기득권 세력의 반발로 개혁을 이루지 못한 왕과 봉건사회의 억압에 갇힌 여성실학자의 가상 로맨스는 단순한 남녀간의 사랑을 뛰어넘어 폭넓은 메시지를 전한다. 중견 연출가 이윤택을 비롯해 작곡가 김영동, 안무가 조흥동, 인간문화재 하용부 등 내로라하는 각계 전문가들이 제작진으로 참여했다.‘로미오와 줄리엣’에서 호흡을 맞춘 차세대 스타 민영기와 조정은이 주역을 맡았다.(031)230-3440. ‘바람의 나라’(14∼21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는 김진의 동명 만화를 무대화한 것으로 고구려의 시조 주몽에 이은 2대 유리왕의 아들 ‘무휼’이 주인공이다.2001년 한차례 공연한 적이 있지만 이번에 줄거리를 비롯해 음악, 안무, 무대 세트 등을 전부 새로 만들었다. 방대한 분량을 11개의 장면으로 압축하고, 이미지 중심의 영상과 입체 효과를 통해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리스’‘헤드윅’ 등으로 두각을 나타낸 여성 연출가 이지나와 드라마 ‘상도’‘대장금’의 음악감독 이시우, 현대 안무가 안애순이 의기투합했다. 고영빈·김산호(무휼)유나영(연) 등 출연.(02)523-0986. ●설화에서 드라마를 찾다-‘키스 미 타이거’VS‘반쪽이전’ 초연 제목은 ‘호랑이 처녀 바람났네’였다. 재공연 땐 ‘송산야화’, 그리고 이번엔 ‘키스 미 타이거’(18일∼8월6일 세종문화회관 소극장)다. 물론 포장만 바뀐 건 아니다. 내용도 매번 업그레이드됐다. 삼국유사 이야기중 ‘김현 감호설화’가 뿌리다. 낮에는 호랑이로 밤에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호녀와 순박한 총각 김현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재기발랄한 로맨틱 뮤지컬로 탈바꿈시켰다.‘오, 당신이 잠든 사이에’‘김종욱 찾기’로 차세대 뮤지컬 블루칩으로 떠오른 장유정 작가와 김혜성 작곡가 콤비의 데뷔작.(02)399-1114. ‘반쪽이전’(21일∼8월27일 서강대 메리홀)은 한국판 ‘미녀와 야수’라고 할 수 있는 우리 전래의 반쪽이 설화를 무대로 옮긴 가족 뮤지컬이다. 태어날 때부터 신체의 반이 온전치 못해 온갖 멸시를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성장해 아름다운 사랑을 이루는 반쪽이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려낸다.2004년 안산문화예술의전당이 자체 제작한 작품으로 일본, 프랑스 등 해외무대에서도 호평받았다. 전통 마당놀이와 국악을 현대적으로 차용한 시도도 참신하다.(02)3673-0156.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한국유일의 남성 재즈 보컬리스트 김준(2)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한국유일의 남성 재즈 보컬리스트 김준(2)

    악보 보는 것을 시작으로 탄탄한 기본기를 갖추어야만 활동이 가능했던 당시 ‘예그린악단’. 이 악단의 합창단원 출신답게 춤과 연기 실력으로 완전무장한 자니브라더스의 등장으로 당시 평면적이었던 TV 쇼가 놀랍도록 화려하고 입체적으로 변신했다. 쇼 프로그램에서의 절대적인 인기 못지않게 이들은 ‘방앗간 집 둘째딸’ ‘아나 농부야’ ‘마포 사는 황부자’ 등에 이어 ‘빨간 마후라’ ‘수평선’까지 공전의 히트를 날리며 정상의 인기그룹으로 급부상했다. 당시 멤버는 김산현(김준)을 비롯해 김현진, 양영일, 진성만. 이들의 힘차고 경쾌한 하모니는 듣는 이들에게 ‘알파파’(※마음이 평온해질 때 나오는 뇌파)가 샘솟게 만드는 노래,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인기가 높아갈수록 멤버 김준씨는 되레 심각한 고민에 빠져든다. 음악적인 불만족에서 오는 갈증이었다.4중창단은 4성, 즉 네 화음이 모여 노래가 구성되어야 하는데 당시에는 ‘유니 송’으로 불러달라는 주문까지 받아야 했던 만큼 중창단이라는 의미가 무색하던 시절이었다. 중창단의 인기에 비례해 본인만의 개성은 죽여야 하는, 이른바 개개인의 능력을 제대로 드러내 보일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점차 이들은 각자 솔리스트로서의 기량을 쌓아나가며 해체 수순을 밟기 시작한다. “한사람, 한사람만으로도 무대가 꽉 차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때문에 자니브라더스는 TV와 워커힐 무대 등에서 화려한 스테이지와 함께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면서도 쇼 중간 중간 쉬는 시간을 이용해 각자 솔리스트로서의 기량을 키우기 위해 경쟁적으로 각자 연습무대에 나섰던 장면들이 생각납니다.” 당시 워커힐악단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며 ‘저녁한때 목장풍경’ ‘비둘기집’ 등의 작곡가로 명성을 날리던 실력자 김기웅(70)씨의 회고다. 그는 당시 이들의 레퍼토리 편곡을 기꺼이 도맡아 주기도 했다. 결국 68년 8월, 그룹보다 각자 솔로로 활동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린 이들은 마침내 TBC-TV ‘쇼쇼쇼’를 통해 ‘자니브라더스 고별쇼’를 갖는다. 솔리스트로의 변신을 위해 피아노 독주부터 빅밴드 곡에 이르기까지 100여 곡을 준비해오며 ‘스타일리스트(Stylist)‘를 꿈꾸던 김준씨가 멤버 중 가장 먼저 독립, 솔로활동을 시작한다.69년 11월, 평소 즐겨 부르던 레퍼토리들을 모아 독집음반 ’김준과 톱송(Top Song)’을 발표한 것. 스탠더드 팝과 재즈의 번안곡이 주를 이룬 이 음반의 수록 곡들은 지금까지도 김준씨의 변함없는 애창곡들이다. 그러나 자니브라더스는 주위의 권유에 의해 또다시 재결성하게 된다. 이들의 재결합을 가장 적극적으로 권유했던 사람이 바로 당시 서울신문사 발행인이던 장태화 사장. 음악애호가이기도 했던 장 사장은 이들의 재능을 아까워하던 끝에 직접 그룹명을 ‘메아리진’(전국에 메아리 친다는 뜻의 순수 우리말)으로 개명해준 뒤 1969년 12월,MBC-TV를 통해 화려한 컴백쇼를 주선했다. 결국 이들 네명은 주위의 강력한 권유에 의해 다시 ‘메아리진 쇼(전우중 PD)’를 시작으로 컴백, 매주 한 차례씩 음악성과 예술성 있는 인상적인 프로그램을 한동안 펼쳐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인기’도 그들 개개인의 ‘끼’와 ‘욕구’를 막기엔 역부족, 결국 이들은 완전히 해체하고 만다. 싱어 송 라이터로 변신한 김준씨는 솔로가수로 그리고 작곡가로도 재능을 한껏 발휘해왔다.‘사랑하니까’(패티김)를 비롯해 84년 TBC 세계가요제 금상 수상곡 ‘나 이제 여기에’(박경희),‘내 마음은 풍선’(장미화),‘그래도 설마하고’(임희숙),‘Blue Smile’(이미배), 그리고 김준 자신의 목소리로 발표한 ‘휘파람 하이킹’ ‘여보소 날보소’ ‘태양의 데이트’(김준 작사, 김학송 작곡) 등. 그는 70년도부터 지금까지 36년간 단 한 차례도 음반을 발표하지 않은 해가 없을 정도로 ‘음악의 생활화’, 그 일관된 삶을 지켜왔다. 김준씨는 1980년에 International JUN Free Art를 설립한데 이어 K.J.C(한국재즈모임)의 창립회장을 맡기도 하는 등 재즈 활동을 위해서라면 모든 힘과 신명을 바쳐왔다. 아울러 주위 동료들의 신명을 돕고 참여하고 앞장서왔던 그는 현재, 평창동에서 부인 김미자 여사와 함께 ‘김준재즈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이 곳에 마련된 작은 라이브 무대에는 한국의 대표적 재즈 뮤지션들이 모두 한 번씩은 섰을 정도로 값진 공간이기도 하다. 수많은 공연과 음반작업을 통해 재즈를 생활화하고 있는 김준씨는 올 11월, 자신의 삶을 그린 자서전 ‘타박타박 주절주절 두비두바’를 출간할 계획이다. 그의 이러한 작업이 반가운 것은 재즈처럼 자유스럽고 심오하게 살아온 그의 삶의 윤곽이 이 책을 통해 선명히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sachilo@empal.com
  • [박성서의 가요X파일] 한국 유일의 남성 재즈 보컬리스트 김준(1)

    [박성서의 가요X파일] 한국 유일의 남성 재즈 보컬리스트 김준(1)

    ‘시작은 그 끝과의 약속이다.’라는 어귀가 먼저 눈에 띄는 평창동의 ‘김준 재즈클럽’. 이 곳에는 ‘재즈계의 신사’라 불리는 김준씨가 늘 삽화처럼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고 있다. “재즈는 여백이 많은 음악입니다. 불협화음을 화음화하는데 묘미가 있지요. 악보에 없는 음을 표현하는 즉흥적인 호흡이 생명입니다.” 재즈는 연습을 게을리하면 그걸로 끝장이라고 말하는 김준(66)씨. 때문에 그는 활발한 공연과 더불어 매년 한두 장 이상의 음반을 꾸준히 발표해오고 있다. ‘하루 연습 안 하면 내가 알고 이틀 안 하면 남이 알고, 사흘 안 하면 무대에서 떠나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재즈에 몰두하는 김준씨 클럽에는 필자가 시간 날 때마다 드나들었지만 불과 두세 번 정도를 빼면 손님이 단 한명도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 스스로 강조하듯 ‘돈 안 되는 일’에 매달려 온 지 30여년째다. 솔로 활동 이전 ‘빨간마후라’로 잘 알려진 남성 4중창단 자니브라더스의 멤버였던 그는 또한 69년도부터 동료 박상규, 장우, 차도균씨와 함께 프로젝트 그룹 ‘포 다이나믹스’를 결성해 현재까지 근 36년간 함께 활동하며 우정과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가수 겸 작곡가 김준씨의 본명은 김산현. 그의 삶은 귀족풍의 얼굴과는 달리 파란만장했다. 1940년 임야만도 18만여 평이 넘었던 신의주의 만석꾼 집안에서 태어났다. 여섯 살 때 토지개혁으로 재산을 몰수당하자 신변에 위협을 느낀 가족은 46년, 진남포 해안에서 어선을 이용하여 탈북, 서울로 와 남산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이후 강원도의 원주와 영월, 문경, 목포 등을 거쳐 제주 최남단 모슬포에 정착, 대정고를 졸업했다. 타고난 음악적 자질로 각종 콩쿠르에서 제주를 석권했던 그였지만 가난으로 인해 대학 진학의 꿈은 좌절되었다. 그러나 그 무렵 그는 대학입학자격이 주어지는 경희대 주최 ‘전국 남녀 고교 음악경시대회’에 참가한다. 이미 졸업생이었지만 학교장의 배려로 고3재학생으로 서류를 위조해 응시한 것. 결국 그는 200여 명의 참가자 중 3위로 입상하며 경희대 음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한다. 60년, 대학생활이 시작되자마자 4.19를 맞아 잦은 휴강과 함께 결국 휴교령이 내려졌다. 갈 곳이 없었던 그는 종로2가 ‘뉴월드’ 음악감상실 DJ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함과 동시에 당시 50인조로 구성된 교회 성가대 ‘시온성가단(단장 이동일)’의 일원이 된다. 아울러 이 무렵 당시 4인조 쿼텟 ‘멜로톤’의 멤버 한 명이 입대해 결원이 생기자, 대타로 참여해 잠시 활동하기도 했다. 61년 5월16일, 라디오에서 새벽을 가르는 군가연주와 ‘혁명공약’을 낭독하는 아나운서의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학교는 4.19에 이어 다시 휴교령이 내려졌다. 학교 정문 앞에는 엄청난 포신을 자랑하듯 탱크가 버티고 있었고 이른바 ‘혁명군’들이 10m 간격으로 서서 삼엄한 경비를 펴고 있었다. 2학기 수강신청을 끝내고 정상수업이 시작되던 어느 날, 그는 한 방문객과 마주친다. 그리고 이내 지프차에 실려 미아리고개에 있는 군부대 막사로 이송된다. 그 곳엔 이미 예닐곱 명이 먼저 와서 초조한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이윽고 그들 중 한명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예술 중흥을 위해 엄격한 자격심사를 거쳐 새로 창단하는 ’예그린가무단‘의 합창단원으로 입회시키겠다’고 했다. 사실상 일방적인 통고에 가까웠던 이 예그린의 단장은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혁명 주체 세력’ 김종필씨였다. ‘단복은 계절에 따라 무상 제공’ ‘출연료 파격 대우’ ‘향후 무대활동 보장’ 등이 그들이 내건 조건이었다. 이 예그린합창단의 월급은 당시 돈으로 무려 ‘오천원’ 정도였기 때문에 기성가수나 교직에 몸담은 실력자들까지 앞 다투어 응시, 경쟁이 치열했던 터라 그로선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부푼 꿈을 안고 시작된 예그린, 그는 창작 뮤지컬 ‘한 여름 밤의 꿈’에 단역으로 출연하는 등 활동을 시작했으나 1년 후 예그린은 해산되고 만다. 때문에 합창단 중 막내이자 가장 ‘끼’가 많았던 동갑내기들, 즉 김준, 양영일, 장호성, 진성만은 4중창단을 결성,62년 ‘자니브라더스’를 결성한다. 예그린은 당시 악보 보는 것을 시작으로 연기, 춤까지 그야말로 만능 엔터테이너를 요구했던 만큼 이들 네 명의 실력은 이미 탄탄한 기본기를 갖추고 있었다. 이들의 음악적 실력은 대표곡인 ‘빨간 마후라’ 취입과정에서도 잘 나타난다.63년 초여름. 이 영화 제작사인 신필름 측은 작곡가 황문평씨에게 주제가 작곡을 의뢰해온다. 아울러 이 영화주제가는 파일럿들이 첫 출격할 때 불러야하는데 하필 오늘 OO기지 비행장을 빌려 촬영하는 날짜라 오늘 중으로 만들어 달라고 독촉을 해왔다. 가사를 받아 쥔 황문평씨는 노래 구상은 물론 동시에 노래를 불러줄 가수부터 찾아야 할 형편이었으므로 급한 대로 당시 동아방송 강수향 음악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때 마침 방송국에 자니브라더스가 나와 있다는 것을 알고 황씨는 곧바로 악상의 뼈대를 잡고 방송국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멜로디를 다듬었다. 주제가를 의뢰받은 뒤 불과 몇 시간 만에 작곡을 했고 두서너 번의 연습 끝에 ‘빨간 마후라’는 자니브라더스에 의해 취입된 것이다. 자니브라더스의 넷 모두는 악보만으로도 곧 바로 노래가 가능한 실력자들이었다. 이렇게 급조된 ‘빨간 마후라’는 어느덧 대표적인 공군가로 자리했다. 또한 이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수출되면서 특히 대만에서도 이 노래가 대만 공군가로 불려지고 있는데 심지어 아직까지도 대다수의 대만국민들은 이 노래가 자국의 군가로 알고 있을 정도다.(계속) sachilo@empal.com
  • [박성서의 7080 가요 X파일] ‘건전가요 부르기’의 선구자 전석환(1)

    [박성서의 7080 가요 X파일] ‘건전가요 부르기’의 선구자 전석환(1)

    ‘아름다운 노래 정든 그 노래가 우리 마을에 메아리쳐 오면….’ 60∼70년대 라디오 전파의 잡음 속에 들려오던 그리운 노래들 중 하나인 ‘정든 그 노래’다. 이 노래들에 대한 기억과 더불어 60년대 말, 달달 꿰고 다니던 ‘국민교육헌장’만큼이나 아직도 선명하게 각인된다. 다름아닌 전석환씨다.‘싱어롱 Y’를 통해 ‘건전가요 부르기’의 선구자적 역할을 하던 그에 의해 전국적으로 번졌다. 특히 스포츠머리에 기타 하나 달랑 메고 노래를 지도하던 그의 캐릭터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능란한 화술과 시원시원한 리더십으로 공개방송 ‘다함께 노래하자’ ‘노래의 메아리’ ‘삼천만의 합창’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전국 방방곡곡 직장과 학교를 찾아다니며 노래를 전파했다.70년 9월 한 인터뷰에서,“그동안 2500회의 노래 부르기 지도를 했으며 한 해 동안 만나는 사람이 무려 16만명, 그리고 가지고 있는 레퍼토리는 3000여곡 정도 된다.”고 했다. 그의 왕성한 활동과 함께 전국적으로 벌어진 ‘다함께 노래 부르기’ 열풍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당시에는 유행가 일부를 ‘소리의 공해’라 치부하기도 했고 때문에 건전가요 보급은 일종의 국가적 시책이기도 했다. 전석환씨는 “하루 여덟 시간,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나머지 시간을 모두 노래와 함께 살았다.”고 당시를 회고한다. 그는 1934년 황해도의 섬, 용매도에서 태어났다. 음악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인천고 3학년 시절인 55년, 교회 성가대원들로 4중창단을 결성해 활동하면서부터. 이어 57년 HLKX(인천기독교방송국)에 특별출연하면서 찬송가를 기타반주에 맞춰 부르는 파격적인 시도를 한다. 이 행동은 당시 경건하게만 여겨지던 교회음악에 대한 정서로 인해 찬반논쟁까지 불러일으켰을 정도로 파장을 몰고 왔다. 파격적인 시도만큼이나 음악을 바라보는 눈도 깨어 있던 그는 연세대 종교음악과에 입학한 후인 58년 조선호텔 ‘미군장교클럽’에서 전자 오르간을 연주하며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한다. 이때의 레퍼토리들이 그가 후에 전개하는 노래 부르기 운동의 밑바탕이 되어주었다. 60년대 초, 전석환씨는 학교 선배이기도 한 당시 YMCA 청년부 김창열 간사와 함께 ‘싱어롱 Y’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한다. “당시는 4·19와 5·16으로 이어지는 매우 혼란했던 시기로 연일 데모와 함께 휴강이 잦았기 때문에 대학생들은 대부분 갈 곳이 없어 음악감상실 등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이때 둘은 의기투합해 ‘돌체’ ‘뉴월드’ 등 음악감상실을 돌며 ‘싱어롱 Y’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싱어롱 미치’라는 프로그램 명에서 힌트를 얻은 이 이름의 Y는 ‘Young’과 ‘Youth’ 그리고 ‘YMCA’ 등의 의미를 함께 포괄한 단어입니다.” 이런 행사를 통해 그동안 부르기 쉽지 않았던 외국곡이나 민요 등을 발굴, 채보해 보급했는데 대표적인 곡들이 ‘작별(Auld Lang Syne)’ ‘사모하는 마음(I Do Adore Her)’ ‘그리운 고향(Sloop John B)’, 그리고 전래민요인 ‘군밤타령’이나 ‘밥타령’ ‘꼬불꼬불’ 같은 노래들이다. 현재 악보집을 살펴보면 전석환씨가 채보, 개사한 대부분의 노래들은 특정 가수 표기가 없다. 주로 합창을 통해 불려져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도 역시 많은 가수들과 함께 활동을 전개했는데 그 중 하나가 남성4중창단 쟈니브라더스. 당시 예그린합창단 출신들로 구성된 이 남성4중창단의 첫 멤버는 김산현(김준), 양영일, 장호성, 진성만. 이 중 장호성씨가 멤버에서 빠지자 전석환씨가 긴급 합세해 62년 서울운동장(현 동대문운동장)에서 개최된 MBC 주최 ‘5·16혁명 1주년 기념 중창 콩쿠르’에 출전, 대상을 수상한다.‘쟈니’는 전석환의 미8군 무대에서의 애칭. “이 무대에서 내가 직접 통기타를 치며 함께 하모니를 맞춘 노래가 ‘냉면’과 ‘맹꽁이와 삽살개’였는데 이 노래들 역시 그 무렵 내가 악보를 만들어 보급하던 노래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때까지 소규모의 ‘싱어롱 Y’를 통해서만 불려지던 노래가 대형무대에서, 그것도 통기타 반주만으로 일반 대중들에게 선보인 최초의 장면일 것입니다.” 이렇게 선보인 통기타 음악은 계속해서 ‘코코넛 트리오(박상규, 남승우, 김경수)’,‘사인트리오(리더 이인순)’ 등 대학생 보컬팀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고 YMCA가 본격적으로 ‘싱어롱 Y’라는 프로그램을 정기행사로 끌어들이면서 통기타 붐은 젊은이들 사이에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전석환의 싱어롱 Y’는 이렇듯 우리나라에서의 캠프송, 레크리에이션송 문화로 깊이 자리 잡으며 포크송, 즉 통기타 노래 붐으로 점차 확산되어 갔다.(계속) 글 박성서(가요평론가/저널리스트) sachilo@empal.com
  • [임영숙칼럼] 어느 독립운동가의 딸

    [임영숙칼럼] 어느 독립운동가의 딸

    독립운동가의 딸인 김순희(72)씨에게 지난 8월은 우울한 달이었다. 광복 60주년이라지만 아버지가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해 보훈처에 관련자료와 탄원서를 냈으나 ‘해방 이후 행적 불분명’이란 이유로 포상 대상에서 탈락됐다는 통고만 받았다. “심사위원님들께서 이 글을 읽어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고 김유성씨의 5녀로 김순희라고 합니다.…1996년 6월 6·10만세 운동 70주년 기념학술회의가 열린 세종문화회관에 가서 책자에서 아버지 성함을 발견하고 감사하였습니다.…2004년 9월 신문에서 보훈처 포상보류 좌익 항일운동가 113명의 명단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보고 고민하였습니다.…제 나이 이제 72세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내 살아 생전에 아버지 명예회복해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이 글을 올리니 살펴봐 주십시오.” 김 할머니가 지난 봄 탄원서와 함께 심사위원들께 올린 글은, 김 할머니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2년 전 “내가 언문이라도 쓸 줄 알면 내 살아온 이야기를 책으로 쓸텐데…”하며 딸에게 들려준 이야기와 자신의 어린시절 기억을 살려 쓴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은 아버지·어머니께 올리는 편지로 시작된다.“…이제 아버지보다 더 나이를 먹어버린 딸이 되었습니다. 두 분의 애틋한 사연과 통한의 세월들을 저의 가슴 속에 묻은지 43년이 지났습니다.…애국가만 흘러나오면 나는 아버지를 느낍니다. 가슴으로, 온 몸으로 나라를 사랑하셨던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이글에 따르면 김 할머니의 아버지 김유성(1893∼1950)씨는 집안의 노비를 풀어주고,6·10만세와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3년 반 옥고를 치르고, 광주학생운동의 발단이 된 사건으로 체포돼 부당한 구타를 당하는 한국인 학생의 구명운동을 펼치고, 창씨개명을 거부해 초등학교에서 무기정학을 당했던 딸이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자 링컨 대통령의 사례를 들어 위로해주고, 거지를 집안에 들여 따뜻한 밥과 국을 대접하고, 허백련·김철·신익희 선생과 교분을 나누며 시조창과 판소리·서예 등을 즐기고, 보도연맹에 가입했다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6·25 때 잠시 인민위원장을 맡았으나 경찰과 군인 가족을 보호하다가 회색분자로 몰리고, 자식들에게 정치에 관여하지 말 것을 유언하고 선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었던,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고자 했던 한 낭만적인 민족주의자의 모습을 따스한 체온과 함께 전해주는 글을 읽으며 글 쓰기의 중요성을 새삼 다시 생각해본다. 님 웨일스가 ‘아리랑’을 쓰지 않았다면 저 강인한 지성과 뜨거운 가슴의 혁명가 김산(1905∼1938·본명 장지락)을 지금 우리가 기억할 수 있었을까? 파출부로 일하며 살고 있는 김 할머니는 “평생 욕심 없이 지내왔는데 아버지 명예회복을 바라는 마음에 처음 욕심을 가져보았다. 독립유공자 인정은 못 받았지만 내 죽으면 아무도 기억 못할 아버지·어머니 이야기를 글로 써서 후손들이 알게 되었으니 이제 여한이 없다.”고 말한다. 개인의 기억이 모이면 역사가 된다. 특히 이념, 주체, 노선 등 다양한 특징을 지닌 우리 독립운동사의 온전한 복원을 위해서는 더 늦기 전에 그 시대를 산 각 개인의 기억들이 기록돼야 한다. 제2, 제3의 김 할머니가 등장하기를 기대하며 그들의 소박한 소망이 실현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논설고문 ys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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