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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12」 「5·18」 24차 공판­증인신문 지상중계

    ◎“공수부대 지원 요청한 일 없다”·황영시씨 유혈진압 지시 어이없어 거부­정웅 증인/참모총장 승인 받아야 특전사 출동 가능­김재명 □25일 출두 증인­괄호안은 당시 직책 ·정웅(31사단장) ·김재명(육본 작전참모부장) 12·12, 5·18사건 24차 공판이 25일 상오 10시 재판부의 입정으로 시작돼정웅 당시 31사단장 등 증인 4명에 대한 신문이 진행됐다. ○정웅 증인 ▲이부영 검사=5·18당시 공수부대의 지원을 요청한 일이 있습니까. ▲정증인=전혀 없습니다. ▲이검사=공수부대의 작전통제가 실제로 이뤄졌습니까. ▲정증인=5월 20일이후 작전상황에 대한 보고가 완전히 단절됐고 공수여단장들은 정호용 특전사령관에 직보하는 등 계엄하 작전지휘체계가 이원화된 상태였습니다.정상적인 지휘가 사실상 불가능해졌습니다. ▲이검사=초기 강경진압에 대한 육본측의 지시가 있었습니까. ▲정증인=지시를 받았으나 거부했습니다.특히 황영시 육본차장은 유선으로『무장헬기 등을 동원, 버스를 공격하라』는 등 강경 유혈진압을 지시했는데하도 어이가없어 『그렇게는 못한다』고 거부했습니다. ▲이검사=80년 6월 5일 강제해임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정증인=표면상 초기진압에 실패했고 시민들에게 무기를 빼앗긴 책임 등을 물어 해임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실제론 신군부측의 작전지시를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창렬변호사=사단장의 병력요청없이 육군본부가 공수여단을 투입할 수있지 않습니까. ▲정증인=통상은 현지 지휘관의 의견을 묻습니다. ▲전변호사=증인은 87년 7월 5일 국회본회의에서 『80년 5월 15일 육군본부 회의실에서 정호용 피고인이 김대중씨를 체포하면 광주지역에서 시위가 예상되지만 공수부대 1개 대대병력만 작전을 벌이면 충분히 진압할 수 있다는발언을 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까. ▲정증인=예. ▲전변호사=당시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국회본회의에서 질의할 수 있습니까. ▲정증인=국회에서 의원들이 검증된 사실만 이야기를 합니까. ▲전변호사=5월20일 정오부터 윤흥정 전교사령관과 정호용 특전사령관으로부터 지휘권을 박탈당했다고 국회본회의에서 말한 근거는 무엇입니까. ▲정증인=20일 하오부터 저의 작전통제권하에 있는 공수여단장을 아무리유.무선으로 호출해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지휘권을 박탈당했다기 보다는지휘권 행사가 불가능했습니다. ▲전변호사=증인은 국회 광주청문회에서 80년 5월22일 박충훈 국무총리가 광주에 내려와 간담회를 열었을 때 정호용피고인이 『광주사람들은 한 사람도 남기지 말고 싹쓸이 해야 한다』고 발언했다고 증언했습니까. ▲정증인=그렇습니다. ▲전변호사=간담회에 참석한 다른 사람들은 정호용피고인이 그런 말을 한적이 없다고 말했는데 증인은 무슨 근거에서 그런 말을 합니까. ▲정증인=법정에 있는 정호용피고인에게 물어보십시오. ▲전변호사=증인은 당시 공수부대들이 정호용 특전사령관에게 직보하는 등지휘체계가 이원화돼 있었다고 진술했는데 본인이 직접 확인한 바 있습니까. ▲정증인=직접 확인한 건 아니고 당시 시중에 공공연히 나돌던 소문과 책자 등의 내용 등을 통해 파악한 사항입니다. ▲김영일 재판장=7공수여단 33.35대대를 작전배속받고 전남대와 조선대에 배치했는데 당시 학교에 배치할 만큼 학생들 시위가 심각했습니까. ▲김재판장=정호용 피고인이 여단장이나 대대장 등 예하부대 지휘관들에게 직접 작전명령을 내리는 것을 보거나 들은 일이 있습니까. ▲정증인=보거나 들은 바는 없습니다. ▲서익원 변호사=당시 과격한 시위진압 방지를 위한 노력을 해봤나요.또 공수여단에 대한 지휘가 어려워졌다고 주장했는데 지휘권의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했었나요. ▲정증인=19일 하오 사단 작전명령을 통해 무혈작전을 지시했습니다. 지휘권 정상화를 위해서 여단장들을 계속 호출했으나 그들이 응하지 않았습니다. ▲이진강 변호사=5월14일 하오 2시 전교사에서 열린 학생가두시위대책 합동회의에 신우식 7공수여단장도 참석했죠. ▲정증인=그렇습니다. ▲이변호사=증인과 윤흥정사령관이 5월21일 전교사를 방문한 2군사령관에게 계엄군의 자위권 발동을 건의했나요. ▲정증인=아닙니다. ▲정호용 피고인=전남대와 조선대등에 공수부대 배치를 직접 지시한 사람은 정웅 사단장 아닙니까. ▲정증인=맞습니다. ▲정피고인=공수여단의 시위진압 작전을 본인이 직접 지휘한 걸 확인했습니까. ▲정증인=직접 확인할 필요는 없는 일입니다. ▲정피고인=강경진압을 지시한 것이 누구입니까. ▲정증인=충정훈련 교리에 나와 있는 얘기입니다. ▲정피고인=본인이 공수부대를 직접 지휘했다고 하는데 누구로부터 확인한 것입니까. ▲정증인=지휘권도 없는 내가 그런 걸 어떻게 알수 있습니까. ▲정피고인=공수여단장이 제대로 보고안하면 대대단위에라도 확인할 수 있는 일 아닙니까. ▲정증인=정상적인 지휘체계가 아닌 상태에서 어떻게 합니까. ○김재명 증인 ▲김상희 부장검사=11·3공수여단과 20사단 광주 증파가 광주지역의 전교 사령관이나 31사단장으로부터 건의를 받고 결정된 것은 아니죠. ▲김증인=직접 요청받은 바는 없으나 요청없이 이뤄지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봅니다. ▲김부장검사=5월25일 상무충정작전 계획을 황영시 피고인과 함께 광주를 방문,소준렬 전교사령관에게 전달했는데 2군사령관을 거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김증인=극히 보안을 필요로 하는데다 시간을 다투는 사안이었기 때문에 직접 가지고 내려간 것입니다. 좀 늦게 도착했는지는 모르지만 2군사려오간에게는 연락장교를 통해 보냈습니다. ▲전창렬 변호사=육군참모총장 승인없이 예하부대장이 자신의 부대를 출동시킬 수 있습니까. ▲김증인=부대에 따라 다릅니다. 특전사는 참모총장의 직접 지휘를 받기때문에 총장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2군사령부와 전교사가 계엄업무 수행을 위해 병력을 이동하는 것에 대해서는 육본이 개입하지 않습니다. ▲전변호사=공소장에 따르면 전두환·이희성·황영시·정호용 피고인이 함께 전교사의 보고를 받고 광주시위 상황이 자신의 집권계획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공수부대를 투입해 시위를 강경진압했다는데 이들 피고인이 병력 투입에 간여할 수 있습니까. ▲김증인=안됩니다. 계엄사령관의 문서명령없이 병력출동은 안됩니다.
  • 백번 보는 것보다 한번 두드려라(컴퓨터 걸음마:4)

    나이 90 먹은 김부장 아버지가 미국의 나이아가라 폭포를 구경하다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폭포수로 뛰어 내렸습니다.『뭐라고 소리를 질렀게요?』 『나이야 가라!』 김부장이,자기는 생전에 컴퓨터를 직접 만질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이거 별거 아니잖아」하는 생각을 합니다. 컴퓨터에서 사용하는 디스켓에 무엇이 들어있는 가를 살피는 명령이 dir이랍니다. 『dir를 치고 엔터 키를 치세요』라는 말대로 따라합니다.엔터 키는 키보드의 오른쪽에 있습니다.Enter나 Return이라고 씌인 키입니다.dir를 치고 엔터 키를 누르니까 모니터 화면에 주루룩 글자가 나타납니다.이런 신기할 데가 있나요.화면에 나타난 글자들을 파일 목록이라고 한다나요.책을 보면 앞부분에 차례가 있지요.dir는 바로 디스켓의 차례 부분을 보는 것이랍니다.dir 명령으로 자기가 갖고 있는 디스켓에 무슨 파일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있지요. 『뚱보강사님,디루는 어느 컴퓨터에서나 됩니까?』 『네? 디루라뇨?』 『dir 말입니다』 『dir는 디아이아르나 디렉토리로 읽지요』 아이비엠486이니 펜티엄이니 이런 컴퓨터에서 도스(DOS)를 사용할 때는 dir 명령이 다 먹습니다.도스가 뭐냐고요? 모니터 화면에 C〉(시꺾쇠)가 보이면 도스를 사용하는 중입니다.C〉상태에서 dir(디아이아르)를 치고 엔터키를 누르면,하드디스크인 시드라이브(HDD C:)의 파일 목록을 볼 수 있습니다.dir를 치고 빗금 에이에치(dir /ah)를 하고 엔터키를 누르면 감춰진(히든) 파일목록도 볼 수 있습니다.행정전산망용 컴퓨터의 자판에는 수직바(|) 키와 같이 있는 역슬래시(/)가 안보입니다.대신 원() 표시가 보입니다./가 없는 경우에는 원표시()를 쳐도 됩니다.직접 한번 눌러 보세요. 파일의 목록이 너무 많아서 앞의 파일 이름이 주루룩 앞으로 넘어가서 안보일 때는 한 화면씩 보는 명령을 추가하면 됩니다.빗금(슬래시,/)와 피(P)를 추가합니다.dir/p 이렇게 말입니다.역슬래시가 아닙니다.dirp는 틀린 것입니다.dir/?를 치고 엔터키를 치면 dir 명령어의 사용법이 친절하게 화면에 나타납니다. 뚱보강사가 잘 사용하는 명령어를 보여드릴까요? 파일을 만든 날짜순으로 파일 목록을 보고싶으면 dir뒤에다 /을 치고 오(O)와 디(D)를 추가합니다(dir /od).컴퓨터는 그저 백문이 불여일타입니다.백번 보는 것보다,1번 두드려보는 것이 더 이해가 빠르다는 겁니다.〈이기성 계원조형예술대학 전자출판과 교수〉
  • 「12·12」­「5·18」 20차공판/검찰 증인보충신문 지상중계

    ◎“유학성씨가 「최 대통령 곧 하야」 전해”­김종환 증인/“김재규 내란목적 살인 증거 없었다”­양병호씨/“선제공격 진술 보안사서 강요 받아”­김인선씨/전씨 합수부에 모든 보고 하도록 조치­김진기씨/노재현 장관 명령으로 출동병력 복귀­박동원씨 12·12 및 5·18사건의 제20차 공판이 8일 상오10시 서울지법 제417호 대법정에서 열렸다.공판개정과 함께 이양우·한영석 변호사 등 전두환·노태우 피고인측 변호인단이 사임계를 제출,30분간의 휴정을 거쳐 검찰이 양병호 전 대법원 판사를 상대로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양병호 증인 ▲김상희 부장검사=80년 1월말 보안사 장교가 증인을 찾아와 김재규 내란사건의 상고를 기각해줄것을 요청한 사실이 있지요. ▲양증인=그렇습니다. ▲김부장검사=80년 5월20일 상고심에서 증인 등 6명의 대법원판사가 내란목적 살인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상고를 기각하는 소수의견을 냈는데 그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양증인=내란목적 살인으로 볼 만한 증거가 없었습니다. ▲김부장검사=그후 증인은 같은해8월3일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연행돼 3일간 고문을 받으면서 소수의견을 냈다는 이유로 사표를 강요당했지요. ▲양증인=그렇습니다. ▲김부장검사=보안사를 나온 후 당시 이영섭 대법원장을 찾아갔더니 소수의견을 냈던 나머지 5명도 사표를 냈더라는 말을 했지요. ▲양증인=맞습니다. ▲김부장검사=소수의견을 냈던 증인등이 강제사직을 당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양증인=그 사람들(보안사측)은 내란목적 살인으로 인정했고,우리는 내란 목적 살인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하니까 왜 반대하느냐며 그랬던 것으로 압니다. ▲김부장검사=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양증인=80년 1월말 법원을 출입하는 육군소령이 찾아와서 상고기각을 요청했었는데 『판사 모두가 합의해야 한다』며 거부하자 밉게 봐서 그런 것같습니다. ○김인선 증인 ▲김상희 부장검사=12.12당시 정승화 육참총장 경호 장교였던 증인은 당시 입은 총상으로 순천향병원에서 2개월간 치료를 받은 후 퇴원,보안사 서빙고분실로 끌려가 15일간 조사를 받았습니까. ▲김증인=그렇습니다.제가 우경윤대령 등에게 먼저 총을 쏴 총격전이 발생했다는 진술을 강요받았습니다. ▲김부장검사=증인은 당시 총을 쏜 사실도 없고 총 쏠 여유도 없었지요. ▲김증인=그렇습니다. ○김진기 증인 ▲김상희 부장검사=12.12당시 육군본부 헌병감이었던 증인은 10.26사건으로 10월27일 비상계엄이 선포된 뒤 계엄사령부 치안처장을 겸직하게 되었나요. ▲김증인=그렇습니다. ▲김부장검사=비상계엄 선포후 치안본부,중앙정보부 등지에서 계엄사 치안처로 올라오던 각종 정보보고가 11월 중순부터 갑자기 중단된 사실이 있었나요. ▲김증인=그렇습니다.나중에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모든 보고를 합수부로만 하도록 조치를 취했기 때문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김부장검사=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체포하겠다는 생각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김증인=대통령이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총장공관에서 총격전을 벌인 것은 명백한 반란이며 당시 상황은 내란이나 다름 없는 것이었습니다. ○김종환 증인 ▲김상희 부장검사=80년 5월14일 내무부장관이던 증인은 신현확국무총리에게 시위상황을 보고하면서 “경찰력만으로는 시위진압이 한계에 달했다”고 말했고 관계장관 회의에서도 같은 내용을 발언을 한 사실이 있지요. ▲김증인=관계장관 회의에서는 그런 발언한 적이 결코 없습니다. ▲김부장검사=8월10일 롯데호텔 식당에서 유학성 피고인이 증인에게『최규하 대통령이 곧 하야할 것같으니 통일주체국민회의를 주재해달라』고 말한 사실이 있지요. ▲김증인=당시 유피고인이 정보제공 차원에서 그런 말을 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동원 증인 ▲이재순 검사=수경사령관 작전참모로 근무한 증인은 79년 11월16일부터 같은해 12월12일까지는 장태완 장군을,79년 12월13일부터 80년 8월20일까지는 노태우 장군을 수경사령관으로 모셨습니까. ▲박증인=그렇습니다. ▲이검사=장사령관이 술에 취한채 이성을 잃은 상태에서 명령을 내렸습니까. ▲박증인=그렇지 않습니다.원래 성질이 급한데다 불의를 보면 성격이 더 급해져서 그렇지 당시에 내린 지시는 모두 합리적인 것이었습니다. ▲이검사=수경사병력을 출동시켰다가 조재현 국방부 장관의 명령을 듣고 병력을 복귀시켰습니까 ▲박증인=그렇습니다. 하지만 노장관이 명령을 한 것은 새벽 2시였고 장사령관이 병력을 대기시킨 것은 새벽 1시30분이어서 30분정도 병력을 대기시켜 놓았습니다. ○성환옥 증인 ▲이재순 검사=당시 육군본부 헌병감실 기획과장이던 증인은 12월 8일에서 10일 사이 허삼수 보안사 인사처장과 우경윤 육본 범죄수사단장으로부터 2차례에 걸쳐 정승화 총장 연행에 대한 협조를 부탁받고 보안유지를 위해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지요. ▲성증인=그렇습니다. ○김만기 증인 ▲김상희 부장검사=증인이 위원장으로 군무하던 중보위 사회정화위원회가 중정·검찰·경찰·보안사 등에서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고위급 숙정자 15명,B급 1백64명으로 분류했습니까. ▲김증인=그렇습니다. ▲김부장검사=허삼수 피고인도 국보위 사회정화위원회에 참석,숙정대상자 결정과 사회정화분과위원장 선정에 관여했습니까. ▲김증인=북정대상자 결정에는 참여했지만 사회정화분과위원 선정에 참여했는지 모르겠습니다.
  • 「12·12」 「5·18」 17차공판­지상중계·이모저모

    ◎정 총장 연행 관련 대통령과 통화 못해­윤성민/신 총리엔 보고… “슬기롭게 수습하라” 지시받아­윤성민/유혈사태 우려… 장태완씨 병력출동 요청 거절­이건영/정승화·장태완씨 “전씨 불법행위 낱낱이 밝히겠다” 12·12 및 5·18사건 17차공판이 27일 상오10시 서울지방법원 417호 대법정에서 열려 당시 윤성민 육군참모차장,노재현 국방부장관,장태완 수경사령관,이건영 3군사령관,정승화 육군참모총장 등 12·12 관련증인 5명에 대한 검찰과 변호인측의 신문이 진행됐다. ▷윤성민 증인◁ ▲김상희 부장검사=12월12일 하오 8시30분쯤 육본 B­2벙커에서 참모들의 보고를 통해 합수부 소속 허삼수,우경윤대령 등이 정승화 총장을 10·26사건과 관련하여 강제로 연행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나요. ▲윤증인=그렇습니다. ▲김부장 검사=전두환 합수본부장으로부터 위와 같은 연행에 대하여 사전이든 사후이든 보고를 받은 적 있습니까. ▲윤증인=없습니다. ▲김부장 검사=증인은 이 사실을 알고 최규하대통령과의 전화통화를 시도했나요. ▲윤증인=수차례시도했지만 대통령과는 통화를 못했고 최광수비서실장이 연결됐는데 최실장이 대통령과 통화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전화를 끊어 신현확 총리에게 정총장 연행사실을 보고하니 신총리가 알고 있다며 슬기롭게 수습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양우 변호사=증인은 검찰측 신문과정에서 합수본부장으로부터 정총장 연행에 대해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는데 모월간지의 「12·12 현장 육성녹음테이프」에는 증인이 이건영 3군사령관과의 전화통화에서 전사령관으로부터 정총장을 안전하게 모시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얘기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어느 것이 사실 입니까. ▲윤증인=녹음테이프가 맞습니다. ▲이변호사=10·26사건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합수부가 이 사건과 관련된 정총장을 연행했으니 적법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나요. ▲윤증인=계엄중에 계엄사령관을 연행하려면 국방부장관과 대통령의 재가가 있어야하는데 대통령의 재가가 없었기 때문에 불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변호사=최광수 비서실장과 신현확 총리는 12·12 이후 증인과 통화한사실이 없다는데요. ▲윤증인=확실히 통화했습니다. ▲이변호사=30경비단에 있던 황영시 장군과 전화통화에서 정총장 연행에 대해 대통령재가를 받는중이라는 얘기를 들었나요. ▲윤증인=못들었습니다. ▲정주교 변호사=정총장 연행사실을 알고 신현확 국무총리에게 전화를 했을 때 신총리가 증인에게 말한 내용은 정확히 무엇입니까. ▲윤증인=최대한 피해없이 지혜롭게 사태를 수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변호사=당시 통화중에 전보안사령관으로부터 대통령에게 정식으로 보고를 드리고 재가를 받으려 한다는 해명이 없었습니까. ▲윤증인=전혀 없었습니다. ▲정변호사=증인이 12일 하오8시50분쯤 이건영 3군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정총장이 잘 보호돼있으니 진도개 비상발령을 취소하라』고 말했다는데 사실인가요. ▲윤증인=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잠깐 주춤하다가 결국 발령을 내렸습니다. ▲정변호사=진도개 비상발령을 내린 이유는 계엄사령관이 연행됐기 때문입니까,아니면 북한의 남침우려가 있었기 때문입니까. ▲윤증인=정총장 연행으로 북한의 남침우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변호사=당시 증인은 박준병·백운택을 체포하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구체적인 체포이유는 뭡니까. ▲윤증인=반란에 가담했다는 첩보가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정변호사=12·12당일 변규수 육본 보안부대장을 체포한 이유는 뭡니까. ▲윤증인=당시 변규수가 사건의 진행 상황을 신군부측에 보고하고 있다는 것이 첩보로 접수되고 장태완 수경사령관이 체포를 건의해옴에 따라 육본 지휘부를 수경사로 이동하는 도중에 체포해 영창으로 입창시켰습니다. ▲이양우 변호사=『10·26사건에 관해 조사할 것이 있어 정총장을 연행 했다』는 전두환 사령관과의 전화통화 내용을 이건영 3군사령관 말고 장태완 수경사령관등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했습니까. ▲윤증인=참모들에게 전달했고 장사령관에게는 전달하지 않았습니다. ▲김재판장=전피고인으로부터 전화로 정총장 연행사실을 들었다고 했는데 혹시 전전피고인의 지시로 합수부측 다른 사람이 전화한 것을 전피고인이 직접 전화한 것으로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윤증인=테이프에 기록된 내용처럼 전사령관으로부터 직접 들었습니다. ▷이건영 증인◁ ▲김상희 부장검사=12월13일 상오1시50분쯤 장태완수경사령관이 증인에게 전화를 걸어 수기사와 26사단의 병력출동을 건의했지만 이를 거절한 것은 국방부장관의 지시와 병력이 출동되면 유혈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는 증인의 판단 때문이었습니까. ▲이증인=그렇습니다. ▲김부장검사=12월13일 상오6시쯤 김용휴 국방차관이 증인에게 전화를 해서 노장관이 국방부로 들어 오라고 한다고 해서 8시쯤 들어갔다가 미리 기다리고 있던 합수부측 수사관에 의해 연행됐습니까. ▲이증인=장관이 『제들이 물어볼께 있다고 하니 가서 답변좀 해주라』고 해서 장관실에서 나와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들에 의해 끌려갔습니다. ▲전상석 변호사=12·12 이후 국방부장관이 한·미연합사에서 육본으로,육본에서 국방부로,다시 국방부에서 육본으로 위치를 자주 옮겼는데 그때마다 국방부장관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나요. ▲이증인=장관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김재판장=12·12 당시 합수부측에서 정총장 연행등 12·12 경위에 대해 설명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이증인=없습니다. ▷공판 스케치◁ 12·12사건에 대한 첫 증인신문이 열린 27일 증인으로 나온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장태완수경사령관,윤성민육참차장 등 육본측 장성들은 사건발생 17년여만에 무대를 법정으로 옮겨 신군부측 피고인들과 「총성 없는」 싸움을 했다. ○…윤육참차장은 검찰신문에서 『5공 때 국방부장관까지 지냈는데도 피고인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게 돼 인간적으로 몹시 괴롭지만 역사앞에 진실을 밝힌다는 심정』이라고 소회를 피력. 이어 『정승화 총장 연행은 대통령과 국방부장관의 재가를 얻지 못했으므로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주장한 뒤 『언젠가는 역사적 진실이 규명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어 79년 12월23일 법무부 군사감실에서 80분짜리 녹음테이프를 만들어뒀다』고 설명. ○…이양우·전상석 변호사 등 변호인단은 『증인들과 막역한 사이라서 신문하는 것이 괴롭다』,『증인들이 초급장교이던 50년대초에 법무관으로 군에 있었다』는 등의 유화적인 표현으로 신문을 시작. 그러나 정작 신문에 들어가서는 5공 때 국방부장관 등의 요직을 거친 증인들의 전력을 거론하며 『기회주의자』,『정치여건에 따라 변신했다』는 등 인신공격성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맹렬히 공박. 재판부는 『우격다짐식으로 증인에게 모욕감을 주는 신문은 자제해달라』고 제동. ○…정승화·장태완씨는 공판이 열리기전 기자실에 들러 『정치군인의 불법행위를 낱낱이 증언하겠다』는 「출정의 변」으로 기세를 올리기도. 정씨는 『당시 육참총장으로서 12·12사건을 예방하지 못한 도의적인 책임은 느끼나 10·26사건을 빌미로 신군부측이 나를 제거하려 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주장.장씨도 당시 수경사령관의 임무 등을 설명하며 『변호인단이 군교범·예규 등 군사적인 지식도 없이 맹목적으로 피고인들을 변호하고 있다』고 비난. ○…재판 시작 전인 상오 9시쯤 법원 1층 로비에서 장태완 당시 수경사령관이 신군부측 멤버였던 김진영 당시 수경사 33경비단장에게 『이놈아,옛 상관에게인사도 안하느냐』고 호통. 장씨는 오랜만에 만난 김씨에게 먼저 눈웃음으로 인사했으나 김씨가 그냥 지나치자 소리를 지른 것. ○…재판진행을 둘러싼 변호인단의 끊임없는 불만토로가 급기야 재판부와 변호인단 간의 감정싸움으로까지 비화. 전상석변호사가 형사소송법 규정을 들어 『지난 공판때 피고인의 신문조서 등을 증거로 채택한 재판부의 결정은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고 꼬집자 김영일재판장은 격앙된 목소리로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면 안된다』고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 김재판장은 변호인단과 몇번 더 설전을 벌이다 『재판장이 열을 낸 것은 피고인의 이해관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한뒤 서둘러 폐정을 선언. 한편 전변호사는 공판 직후 『편파적인 재판진행을 더이상 받아들일 수 없어 내일은 (전두환 피고인이 수감된) 안양교도소로 가서 변론을 그만두겠다고 말할 것』이라고 맞불을 놓았으나 진의 여부는 불분명. ○…변호인단은 검찰이 권정달 전 보안사 정보처장과 일부 피고인들을 서울시내 호텔 등 은밀한 장소에서 대질신문해진술조서의 신빙성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한 변호인은 『5·18특별법이 제정된 후 검찰이 권씨를 비롯한 서너명을 하얏트 호텔 등지로 불러 대질신문,조서를 작성했다』며 『이를 증거로 채택한 재판부의 처사는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
  • 변호인 “진행 협조”… 재판부에 유화 제스처/공판 이모저모

    ◎전씨 “12·12상황 다시 벌어져도 정 총장 연행”/노씨 “87년 대선때 「12·12」 국민심판 받았다” 12·12 및 5·18사건의 공판이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주중에 열린 제9차 공판은 예상과 달리 순조롭게 변호인의 반대신문이 진행됐다. ○…지난 20일 8차 공판에서 야간재판을 거부,퇴장하는 등 재판부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던 변호인단은 이 날 『원만한 진행에 협조하겠다』며 재판부에 유화 제스처. 이양우 변호사는 신문에 앞서 『변론권의 적절한 행사와 피고인의 인권옹호 측면을 감안해 가급적 주 1회 공판을 지켜주시고 야간신문을 자제해 달라』고 공손하게 말한 뒤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등 한결 부드러워졌다. ○…변호인측의 한 관계자는 『어제 재판부와 만나 재판진행 방식에 대한 서로의 오해를 충분히 풀었다』며 『재판이 물 흐르듯 잘 진행될 것』이라고 언급. 특히 이 변호사는 상오 재판에서 1백23문항을 신문,8차공판 상오에 진행된 53문항보다 두배 이상의 속도를 냈다. ○…평소 「칼같은」 재판진행을 자랑하는 김영일 재판장은 피고인들의 입정 때 순서를 바꾸어 호명하는 등 두어차례 실수.박종규 피고인의 입정을 명하면서 박준병 피고인이라고 잘못 부른데 이어 입정순서가 4번째인 황영시피고인의 이름을 맨 나중에 호명. 김부장판사는 피고인 대기실에 황피고인이 남아있는 것을 확인한 법정경위가 이를 알려주자 멋적은 웃음을 띠며 황피고인의 입정을 지시. ○…변호인단은 김재규의 내란사건에 정승화 육참총장이 연루됐음을 주장하면서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을 고대 로마의 「시저 암살사건」에 비유.시해 직후 군부에서는 김재규를,시저를 암살한 부르터스에 비유하며 천하의 패륜아·반역자로 지칭했다고. ○…변호인측은 공판에 앞서 8차 공판당시 배포했던 전두환 피고인의 반대신문 내용의 문구를 일부 고친 수정본을 배포.그러나 기존의 문항수(4백28문항)보다 15문항이나 늘어나자 일각에서는 『또 다른 재판지연책』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수정본은 내용의 추가나 변경은 전혀 없이 기존의 신문을 2∼3문항으로 쪼개거나 여러 신문사항을 묶어 다시 되묻는형식으로 고쳐진 정도다. ○…신군부측이 기술한 「5공전사」가 검찰의 수사 참고자료로 이용돼 피고인들의 발목을 잡은 것처럼 변호인단은 장태완 당시 수경사령관의 「12·12쿠데타와 나」라는 자서전을 인용해 장 수경사령관 등이 반란군이었음을 주장. 이변호사는 당시 윤성민 육참차장이 30경비단에 대한 공격명령을 제지하자 『나보고 가만히 앉아있으란 말이냐.이제 당신들(윤차장 등 육본측 장성)마음대로 하라』는 등의 문구를 들며 이러한 행위는 명백한 하극상이며 위법한 것이라고 주장.전피고인도 『자서전을 읽어보았다』고 진술. ○…전피고인은 변호인의 신문에 구체적인 설명을 곁들이거나 군사적인 지식을 활용해 상황을 설명하는 등 적극적인 변론.특히 장 수경사령관의 『총장공관 지역에 있는 모든 사람을 사살하라』는 공격명령과 관련,이 지역에는 국방·외무장관과 합참의장·육참총장·해병대 사령관의 공관이 있어 무조건 사살하라는 명령은 위법한 조치라고 주장. ○…노태우피고인은 하오 5시를 넘어 시작된 반대신문에서 12·12 당시9사단 29연대가 전방을 이탈했지만 1개 예비연대가 후방으로 빠지더라도 방위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그는 『결과적으로도 휴전선 경비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 1개 연대병력이 이탈했다고 해서 북한이 남침할 정도로 국방태세가 취약하지는 않다』며 12·12당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 ○…전피고인은 『12·12와 같은 상황이 다시 벌어지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변호인의 질문을 받고 『정승화 육참총장을 연행하겠다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고 대답.그러나 『다만 12·12사건 과정에서 불행을 당한 분들에 대해서는 가슴아프게 생각한다』고 부연. ○…노피고인은 반대신문 말미에 『지난 87년 대선때 12·12사건이 선거이슈로 다뤄져 국민의 심판을 받고 대통령에 당선됐었다』며 『그런데도 다시 이 자리에서 같은 문제가 거론되니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항변. 노피고인은 12·12사건 당시 30경비단을 떠나 부대로 복귀하는 최세창 여단장 등과 헤어질때 『(육본측에)잡혀죽을 지도 모르니 사별하는 심정이었다』고 했던 검찰 직접신문때의 진술은 착각으로 잘못 답변한 것이라고 정정. ○…김부장판사는 지난 8차공판때 야간재판을 열어 변호인단이 퇴정하는 등 파행을 빚은 것과 관련,『앞으로 저녁식사후의 야간재판은 열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주2회 공판이 적절하다고 판단할때는 열 수 있다』고 설명. 이는 변호인 반대신문 분량이 많거나 신문을 느리게 진행돼 재판의 효율성이 침해될때는 언제든지 2회공판을 강행하겠다는 경고성발언이라는 평.
  • 공판 이모저모/최후진술 피고인들 “송구…” 한목소리

    ◎변호인,다른 뇌물사건 형평성 들어 성토/안현태씨 유서작성사실 공개… 한때 술렁 29일 상오 열린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사건 3차공판에서는 안현태피고인 등 4명에게 구형이 내려졌다.이어 속개된 12·12 및 5·18사건의 6차공판에서는 검찰과 변호인단 사이에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계속됐다. ○…검찰의 구형을 받은 안피고인 등 4명은 재판장의 지시에 따라 피고인석에서 차례로 일어나 최후진술. 각각 『특별히 드릴 말씀은 없지만 재판부의 너그러운 판결을 기대한다』(안피고인),『누를 끼친 모든 분께 죄송하며 깊이 반성한다』(성용욱피고인),『물의를 일으켜 송구스럽다』(안무혁피고인),『경제전문가로 국가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기회를 달라』(사공일피고인)고 피력. ○…변호인단은 최후변론에서 뇌물죄의 법적용을 성토하거나 다른 뇌물사건과의 형평성을 거론하며 검찰을 성토. 이보환변호사는 『수뢰자가 받은 돈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으면 뇌물이 아니다』라며 『이는 형법교과서에 나와 있는 기초이론』이라고 지적. 정상학 변호사는 장학노전청와대 부속실장의 사법처리와 관련,『검찰이 당시 22억원을 떡값으로 처리했으니 안피고인이 받은 5천만원도 같이 적용해야 할 것』이라고 검찰수사를 맹공. ○…정변호사는 최후변론에서 『안피고인이 검찰 조사과정에서 유서를 작성했다』고 말해 법정이 술렁.정변호사는 『평소 강직하고 성실한 생활을 해온 안피고인이 검찰에서 조사받던 중 유서를 작성했다』며 『현재 검찰이 이 유서를 보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공개했다. 검찰은 전피고인이 구속된 직후인 지난해 12월5일 「대통령을 제대로 모시지 못해 이런 사태가 빚어져 죽고 싶다」는 심경을 피력한 3장분량의 유서와 부인 앞으로 보낸 유서 등 2가지를 서울 중구 쁘렝땅백화점에 있는 안피고인의 개인사무실에서 압수해 참고자료로 첨부했다는 것. ○…하오 5시부터 5·18사건에 대한 검찰 직접신문이 이어질 예정이었으나 변호인단이 「공소사실요건미비」를 주장하며 재판진행을 수용할 수 없다고 강력히 항의. 변호인단은 『검찰 공소장에는 「성명불상자」,「수많은 광주시민」 등 범죄행위를 특정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아 이 상태로는 재판을 받을 수 없다』는 등 20여분동안 재판연기를 거듭 요구.이들은 『간통죄사건에서도 언제,누가,어떻게 간통했다는 내용이 들어가야 하며 이 가운데 한 가지만 빠져도 법정에서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빗대며 힐난. 재판장은 『그같은 이유는 재판연기사유가 되지 못한다』고 설득했으나 변호인단이 주장을 굽히지 않자 『이런 분위기에서는 도저히 재판을 진행할 수 없다』며 화가 난 표정으로 폐정을 선언. ○…성피고인측의 손진곤 변호사는 최후변론에서 『정치자금을 뇌물로 보는 것은 우리 법률문화가 아직 미개성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라며 자금성격을 정확히 규명해줄 것을 재판부에 당부했다.이어 『공소장을 그대로 베끼는 판결이 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간곡히 주문. ○…하오에 속개된 5·18사건 등 6차공판에서는 검찰이 제출한 석명서에 대해 변호인단이 『성의가 없다』고 공격,검찰과 변호인단 사이에 설전이 전개됐다. 김상희 부장검사는 석명서를 제출하면서 『검찰은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등의 조치를 큰 폭동으로,그외의 진압과정은 작은 폭동으로 보고 있다』며 『검찰은 공소장변경의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필요하다면 변호인들의 반대신문을 지켜본 뒤 결정하겠다』고 설명. 재판장인 김부장판사는 『변호인단의 주장은 어느 부분이 배경이고 어디까지가 내란·반란인지가 특정돼 있지 않다는 것이기 때문에 어렵더라도 변호인 반대신문에 들어가기 전까지 정정해주어야 변호인단이 변론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검찰의 성의를 촉구했다.〈박상렬·박은호 기자〉
  • “자민련 300억 주장 사실무근”/안 중수부장 밝혀

    ◎“노씨 차명계좌… 대선자금과 상관없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안강민 검사장)는 8일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을 수사할 당시 3백억원의 대통령 선거자금 계좌를 발견했으나 묵살했다는 자민련의 주장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안중수부장은 『노씨가 91년과 92년 동아투금의 임원 명의로 개설한 2개의 차명계좌에 비자금 2백68억원이 들어있는 것은 사실이나,이는 이자소득을 얻기 위한 어음관리계좌로 대선자금과는 상관없다』고 말했다. 이어 『한차례 인출된 20억원과 이자를 합치면 계좌 규모는 3백억원 정도로 이미 몰수추징을 위한 보전절차를 밟은 상태』이라고 덧붙였다. 김성호 서울지검 특수3부장이 외부의 압력을 받고 수사를 중단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김부장검사는 수사에 참여했지만 자금추적은 맡지 않았다』며 『사실무근』이라고 말했다. 자민련이 밝힌 제보자의 팩스 전화번호는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인쇄소의 것으로 지나가던 30대 남자가 빌려쓴 것으로 확인됐다.〈박홍기 기자〉
  • JP 「독도발언」/박정희 의장 「거론 금지」 훈령 “위반”

    ◎62년 지전수상에게 “독도 폭파해버릴까” 제의/일측 집요한 거론에 JP “제3국이 중재” 양보 일본은 지난 52년 한·일회담이 개시된 이후부터 줄곧 독도영유권을 주장했다.일본은 회담의 고비마다 독도영유권문제를 카드로 사용했지만,진심으로 독도의 영유권을 확보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인가는 명백하지 않다. 62년9월3일 제6차 한·일회담 2차정치회담 예비절충 4차회의 회의록에 따르면 일본측 대표인 이세키 국장은 『사실상 독도는 무가치한 섬이다.크기는 「히비야」공원 정도인데,폭발이라도 해서 없애버리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구권협상 때문에 좀처럼 실마리가 잡히지 않던 한·일회담을 타결시키기 위해 62년10월20일과 11월12일 두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김종필 중앙정보부장(현자민련총재)과 오히라 마사요시(대평정방)외상간의 회담에서도 바로 이 독도문제가 거론됐다. 지금까지 공개된 회의자료등에 따르면 10월20일 1차회담에서 오히라는 『독도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데 한국이 응해달라』고 요청했다.이에 대해김부장은 『독도문제는 한·일회담과는 별개이므로 국교정상화후 시간을 갖고 해결하자』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다.일부에서는 이날 회담에서 오히라의 국제사법재판소 제소요청에 대해 김부장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아 오히라는 김부장이 양해한 것으로 해석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독도문제가 부각되자 박정희 최고회의의장은 62년11월8일 긴급훈령을 통해 『일본측에 독도문제는 한·일회담의 현안이 아니라고 지적하고,일측이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한국민에게 일본의 대한침략을 상기시킴으로써 회담의 분위기를 경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라』고 지시했다. 11월12일 재개된 김·오히라의 2차회담에서도 독도문제가 협의됐다.오히라외상은 독도의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를 집요하게 요청했다.김부장은 이에 대해 제3국 중재안을 역제안한 것으로 알려진다. 김부장은 또 이에 앞서 11월11일 도쿄 오쿠보호텔에서 일본 교도통신과 회견하는 자리에서 『이케다(지전)총리와의 회담시 「독도를 폭파해버릴까」하니 지전총리는 「그러면 더욱 큰 문제로 된다」고 하면서 크게 웃은 바 있다』고 말했다. 김부장이 3국 조정안을 거론한 사실은 이후 양국 실무자간의 회의내용에서 확인된다. 62년11월19일 한·일회담 제2차 정치회담 예비절충 15차회의 회의록에 따르면,일본의 우시로쿠 국장은 『이 자리에서 당장 토의할 수 있는 문제는 청구권 명목과 독도문제를 제3국 조정에 넘기는 문제인데,독도문제는 일본정부가 국회등에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겠다고 말해온 터이므로 이케다 총리의 결정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이에 대해 우리측은 『독도문제는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게 되면 승패가 명백하게 돼 모처럼 조성된 좋은 분위기가 깨질 염려가 있으므로,제3국에 의한 조정에 맡기자는 제의를 김부장이 하게된 것이며,이는 김부장의 최종적인 생각인 것』이라고 말했다.
  • JP,62년 「오히라담판」때 “독도 제3국서 조정” 양보

    ◎한·일회담에 빌미로 잡혀 한일회담 흑막의 진원지인 62년 「김­오히라회담」에서 당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현 자민련총재)은 독도를 제3국 조정에 맡기자고 일본측에 제의했던 것으로 13일 확인됐다. 한일회담 회의록에 따르면 김부장은 두차례(62년 10월20일,11월12일)에 걸친 오히라 마사요시(대평정방·80년 작고) 일본 외상과의 정치담판에서 오히라가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를 통해 독도문제를 해결할 것을 요구한데 대해 제3국 조정안을 제시,일본측의 집요한 독도문제 제기에 물러서고 만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사실은 당시 김­오히라 담판 이후 그 내용을 서로 대조하면서 후속 협상을 진행했던 양국 회담대표단간의 회의록 곳곳에서 반복돼 확인되고 있다. 이와관련,2차 김­오히라회담 4일후인 62년 11월16일 일본 외무성에서 열렸던 양국 회의록은 일본측이 청구권의 명목문제와 함께 『독도문제를 제3국조정에 넘기는 문제를 당장 토의하자』고 들고 나온데 대해 한국측은 『제3국 조정안이 김부장의 최종적인 생각』이라고 밝힌 것으로 나타나있다. 또 같은해 12월21일의 20차 회의록은 일본정부가 한일회담에 대한 기본입장을 설명한 문서를 제시한데 대해 『제3국에 의한 거중조정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을 줄로 생각한다』는 한국정부의 「타협안」이 그후의 양국 협상과정에서 일측의 빌미로 잡혔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같은 기록들은 김 자민련총재가 그동안 오히라와의 회담등 한일회담과정에서 청구권문제만 관여했었다고 밝혀온 것과 거리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김부장의 3국 조정안 제시는 오히라와의 1차담판이 끝난 후 박정희 최고회의의장이 긴급훈령(62년 11월8일)을 통해 독도문제는 언급하지 말라고 김부장에게 지시했던 것과도 어긋나고 있다.
  • 12·12 5·18사건 3월중에 첫 공판

    서울지법 형사합의30부(김영일 부장판사)는 26일 12·12 및 5·18사건에 대한 첫 공판을 3월 중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부장판사는 『두 사건의 수사기록이 방대해 변호인측이 검토하는데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줘,반대신문을 효율적으로 진행하도록 하기 위해 전두환 피고인의 비자금 사건 2차 공판기일인 4월15일 이전에 12·12사건 등의 첫 공판을 갖기로 했다』고 말했다.
  • 전씨 비자금 공판­재판 열리던 날

    ◎점심 휴정때 검사들과 일일이 악수/“주소는 안양교도소…” 대답에 방청객 폭소/법정분위기 의식한듯 꼿꼿한 자세유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에 대한 1차 공판이 구속 86일만인 26일 서울지법 4백17호 대법정에서 열려 재판부의 인정신문과 검찰의 직접신문 순서로 두차례 휴정 끝에 하오 5시쯤 끝났다. ▷공판◁ ○…전피고인은 재판부가 피고인들의 주소 및 주민등록번호 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현주소를 「안양교도소」라고 대답해 방청객들의 폭소를 자아내기도.전피고인은 곧 『안양교도소에 있다가 경찰병원으로 옮겼으며 현주소는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2동 95의4 입니다』고 정정. ○…전피고인의 변호인 전상석 변호사는 김성호 부장검사의 공소사실 요지 낭독이 끝나자 『공소장에는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이 희박하게 기술됐기 때문에 뇌물죄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며 공소기각을 10여분에 걸쳐 주장. 변호인단은 검찰의 기소 내용에 대해 『어린애들 말처럼 그야말로 웃기는 얘기』라고 반박해 방청객들이 실소.검찰이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뇌물성이라고 하더라』고 다그치자 전씨는 『그 사람 속에 들어가보지 않아 모르겠다』라고 말해 다시 폭소. ○…전피고인에 대한 검찰의 직접신문이 1시간15분 가량 진행된 상오 11시30분쯤 전변호사는 『신문이 길어지면 피고인의 건강상태로는 견디기 힘들 것 같다』며 재판부에 전피고인이 쉬게 해달라고 요청. 이에 김부장판사는 『힘이 드느냐』고 전피고인에게 묻고 『약간 힘든다』고 대답하자 10분간 휴식을 허용. 낮 12시10분쯤 상오 공판이 끝나자 전피고인은 옆자리의 안현태씨 등 피고인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뒤 김부장검사 등 공판담당 검사들과도 웃는 낯으로 악수했다. ○…전피고인은 하오에 이어진 검찰신문에서 『기업인들의 성금 기부는 모두 다 나라를 살리기 위한 우국충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나중에는 『재임 때 정치자금을 받아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소신을 번복. 전피고인은 『기업이 돈을 냈기 때문에 정치가 가능했다』며 『기업인들은 정치와 국가 발전에 기여한다는 마음으로,또 세금을 낸다는 사명감으로 돈을 냈다』고 주장. ○…전씨 비자금 사건 2차 공판이 50일 뒤인 4월15일로 늦춰진 것과 관련,재판장인 김영일 부장판사는 『전피고인 등이 관련된 12·12 및 5·18 사건의 심도깊은 재판을 위해 기일을 늦춰잡았다』고 설명하고 『두 사건은 수사기록이 워낙 방대해 재판부와 변호인단이 수사기록을 검토하는데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부장판사는 하오 5시쯤 공판을 마치면서 『전피고인의 건강이 매우 부실하다는 사실이 오늘 드러났다』며 전씨를 향해 『전피고인,어차피 넘어야 할 산이고 건너야 할 강입니다.건강에 유의하세요』라고 당부했다. ▷입정◁ ○…재판부가 상오 10시에 입정,『96고합 12호,병합 96고합 95호,피고인 전두환』이라고 호명하자 전피고인은 여유있는 표정으로 법정에 들어와 재판부를 향해 가볍게 목례. 전피고인은 덤덤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어깨에 힘을 주고 가슴을 편 자세를 유지.가끔 법정분위기에 위축되지 않으려는 듯 다리를 흔들거나 몸을 뒤로 젖히기도. ▷병원·법원 주변◁○…경찰은 법원과 경찰병원 주변에 모두 17개 중대 2천여명의 병력을 배치하는 등 물샐 틈 없는 경비. 재판을 방청하기 위한 「방청권 구하기 전쟁」도 노씨의 첫 재판 때보다 치열해 노씨 재판 때 최고 30만원에서 이 날은 50만원에 거래됐다. ▷구치감 도착◁ ○…전피고인은 경찰병원을 출발한지 20분만인 상오 9시17분쯤 앰뷸런스를 서울지법 청사 구치감에 도착. 이어 엷은 하늘색 수의 왼쪽 가슴에 미결수 번호 「3124」번을 달고 차에서 내려 교도관 2명의 호위를 받으며 지하 구치감으로 이동. 전피고인은 지하 구치감 바로 앞에서 사진기자들을 향해 왼손을 치켜올리는 등 노태우 전 대통령의 출정 때와는 대조적인 모습을 과시. ▷방청석◁ ○…법정 방청석에는 재국·재용·재만씨 등 전피고인의 세 아들과 김진영 전 육참총장 등 측근 몇명이 나와 긴장된 표정으로 재판을 지켜봤다. 재국씨 형제는 9시15분쯤 법원청사로 들어오다 고 박종철군의 아버지 박정기씨로부터 계란세례를 받기도. 「민가협」 등 재야단체 회원들이 대거 방청석을 차지했고 지난 91년 숨진 명지대생 강경대군의 아버지 강민조씨도 방청했다. ▷연희동◁ ○…전피고인의 아들 삼형제는 재판을 지켜보기 위해 상오 8시30분쯤 연희동 집을 출발.그러나 부인 이순자씨는 첫 재판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방청을 포기.연희동관계자는 『이씨가 최근 며칠 사이에 많이 핼쑥해졌다』고 귀띔.
  • 전씨 굳은표정 묵상…긴장 역력/공판하루앞둔 병원·검찰·연희동표정

    ◎병원 “만약사태 대비 법정에 의료진 파견”/방청권 얻기 위해 하오부터 줄서기 경쟁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첫 공판을 하루 앞둔 25일 전씨가 입원 중인 경찰병원을 비롯,법원·검찰·전씨의 연희동 사저는 겉으론 평온해 보였으나 긴장감이 감돌았다. ○…담당 재판부인 형사합의 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는 24일 밤늦게까지 재판 준비상황을 최종 마무리지은 탓에 이날 출근을 하지 않았으나 당직 근무자들은 재판이 열릴 417호 대법정과 법정으로 통하는 통로에 금속탐지기 등 설치물을 점검하느라 분주한 모습. ○…공판에 투입되는 서울지검 특수3부 김성호 부장검사를 비롯,검사 4명은 하오 1시30분쯤 김부장검사 주재로 1시간 동안 회의를 갖고 신문사항과 증거목록 등을 최종점검한 뒤 곧바로 귀가. 검찰은 전씨의 경우 신문항목을 1백60여개,나머지 피고인들은 각각 40∼50여개 정도로 압축했으며 전씨는 김부장검사,안현태 전 경호실장은 최찬영검사,정호용 의원과 사공일 전 경제수석은 홍만표검사,성용욱 전 국세청장과 안무혁 전 안기부장은 임상길검사가 각각 맡아 신문하기로 결정. ○…26일 상오 9시에 배포하는 방청권 80장을 얻기 위해 법원 정문에는 이날 상오 6시부터 시민과 용역회사원 등이 하나 둘 몰려들기 시작,하오 3시40분쯤에는 80명이 줄을 서 대기하는 바람에 나머지 시민들은 발길을 돌리기도. 이들은 서로 대기표를 만들어 도착 순서대로 배포하고 2시간마다 확인도장을 찍는 등 새치기를 막아 눈길. ○…경찰병원 입원 67일째를 맞은 전씨는 이날 아침 병원에서 제공한 밥과 죽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았으며,재판 관련서류도 제쳐두고 굳은 표정으로 묵상하는 등 긴장된 분위기가 역력했다고 병원 관계자가 설명. 담당 의사인 이권전진료1부장은 『전씨의 현기증이 오랜 시간 재판을 받는데 가장 큰 장애가 될 것』이라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링거주사 등을 준비한 의료진 한명을 법정에 보낼 계획』이라고 소개. ○…평소 전씨를 면회하며 아침 나절을 보냈던 부인 이순자씨는 연희동집에서 불경을 읽으며 착잡한 심경을 달랬고 재국·재용·재만씨 등 아들 삼형제도 집에 모여 공판 문제를 논의. 전씨의 한 측근은 『공판에는 재국씨등 아들 삼형제만 출석하고 이씨 등 다른 가족들은 연희동집에 머물거나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릴 계획』이라고 귀띔. ○…경찰은 전씨가 법정에 출두하는 26일 상오 경찰병원 주변에 모두 5개 중대 6백여명의 병력을 배치,외부인의 접근을 철저히 차단할 계획.
  • 비자금 싸고 「불꽃공방」 펼듯/전씨 공판 검찰·변호인단 면면

    ◎정통 수사통… 노씨사건으로 노하우 축적­검찰/법조·재야서 두루 경험 쌓은 중량급 포진­변호인 26일 열리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에서는 검찰과 변호인단의 「격돌」도 주목거리다. 검찰측은 정통 수사통으로,변호인단은 재조·재야에서 두루 경험을 쌓은 중량급으로 진용이 짜여졌다.상대적으로 젊은 검사들의 「패기」와 변호사들의 「노련함」의 한판 승부로 표현된다. 검찰쪽에서는 서울지검 특수3부가 공소유지를 맡았다.김성호 부장검사를 비롯,최찬영·홍만표·임상길 검사 등 4명이다.임검사를 뺀 3명은 지난번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때 대검에 파견돼 수사를 맡기도 했다.충분히 「노 하우」를 쌓았다는 평가다. 김부장검사는 이철희·장영자 사건,명성그룹 어음부도사건에 이어 문민정부 초기 대검중수부에서 사정을 주도,이름을 날렸다.한번 잡은 「먹이」는 끝까지 놓치지 않아 「악바리」란 별명이 붙었다. 최검사도 마찬가지.지난해 서울시 구청 세무비리사건 때 중하위직 공무원들을 수십명 옭아넣었다.공무원 사이에서는「악명」이 익히 알려진 상태다. 홍검사는 의정부지청 검사로 있으면서 인지사건의 실적을 가장 많이 올려 특수부로 발탁됐다.노씨 비자금사건때 능력을 인정받았다. 변호인단 10명의 면면도 화려하다. 5공 말기에 청와대 사정수석을 지낸 이양우 변호사를 비롯,부산지법원장·대법관 출신의 전상석 변호사,대검 특수3과장을 역임한 석진강변호사 등 5명이 전씨의 법정 대리인으로 나온다.김유후·한영석 변호사 등 두 명을 선임한 노씨보다 3명이 많다.그만큼 「총력전」을 예고한다.이 가운데 이변호사는 5공청산 때부터 8년여동안 전씨 곁을 지켜온 핵심측근.12·12 및 5·18사건 재판에서도 「주역」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피고인 5명의 변호인들도 재조시절 쟁쟁했던 인사들이다.안무혁 전 안기부장의 변호인은 서울고법원장을 지낸 윤승영 변호사와 서울고법 부장판사 출신의 이보환 변호사.이들은 노씨 재판때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과 삼성 이건희 회장의 변론을 각각 맡아 치밀한 변론을 펼쳤다. 「검찰의 꽃」이라는 서울지검장과 대전고검장 출신의 전재기 변호사와 서울지법 형사수석부장을 지낸 정상학 변호사는 각각 사공일 전 재무부장관과 안현태 전 경호실장의 변호인으로 나온다. ◎법정·공판절차/재판장이 호명후 피고인 차례로 입정/모두 진술이어 검찰 1백60개항 신문 26일 상오 10시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 법정 경위가 『일어서십시오』라고 외친다.1백90석을 가득 메운 방청객들이 일제히 일어서고 재판장인 김영일 부장판사와 주심 김용섭판사,좌배석 황상현판사가 입정한다. 김재판장이 「96고합12 피고인 전두환」을 호명하자 검사석 옆 피고인 출입구를 통해 엷은 하늘색 수의를 입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경위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와 피고인석 왼쪽 끝에 선다. 안현태 전 청와대경호실장 등 5명의 피고인도 재판장의 호명에 따라 차례로 입정한다. 이때 사진기자들은 40초 동안 쉴새없이 플래시를 터뜨린다. 전씨의 비자금 사건에 대한 첫 공판이 시작된 것이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이름과 생년월일,주소 등을 일일이 묻는 인정신문을 한다.피고인의 신원을 확인하는절차다. 이어 피고인들의 모두진술.피고인들이 혐의사실에 대해 의견을 밝히는 기회다.모두진술이 끝나면 검찰의 직접신문.전 전대통령이 재임 중 받은 돈이 뇌물임을 입증하려고 준비한 1백60개 신문사항이 열거된다.전 피고인은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뇌물이 아닌 성금이었다』고 주장한다. 검찰이 직접신문을 마치자 재판부는 변호인 반대신문을 2차 공판으로 연기해달라는 변호인측의 요구를 받아들여 재판을 끝낸다.
  • “전씨 언론계 무마비 진술은 사실”/특수부 이본부장·김부장 문답

    ◎“비자금 받은 언론인·정치인 명단은 없어/전씨가 조서 직접 읽어본 뒤 일일이 수정”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의 이종찬본부장(서울지검 3차장)과 김성호서울지검특수3부장은 7일 기자들과 만나 전두환전대통령이 「5공청산 당시 언론 무마비로 1백50억원을 돌렸다」고 진술했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했다.다음은 이본부장과 김부장검사와의 문답 요지. ▷이종찬차장◁ ­문제의 진술을 조서로 작성했나. ▲(캐비닛을 열고 서류를 보다가)언론계에 대한 진술이 없다고 해서 조서를 다시봤다.언론계에 대한 진술 부분이 있더라(조서를 들어보임). ­비자금을 받은 정치인과 언론인의 명단도 있는가. ▲이미 말한 것처럼 명단은 없다.총체적으로 진술한 것이다.이런 진술은 여러차례 조각조각 얘기하다가 『그럼 조서를 만듭시다』고 하니까 본인(전씨)도 동의한 것이다. ­전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나. ▲거짓이 아니라고 본다.물론 전씨가 남은 돈이 없다는 것을 꾸미기 위해 했을 수도 있지만…. ­전씨가 모종의 「작전」에 따라 진술한 것은 아닌지. ▲그럴지도 모르겠다.단식이 최대 고비였다.뭘 좀 알아보려고 하면 『아이고 어지러워』하면서 누워버리는데 어떻게 조사하나.우리는 『비자금을 확실히 밝히고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라고 설득해서 조금씩 진술을 받았다.수시로 모든 것을 털어놓을 것 같다가도 태도를 바꿔 입을 다물었다.정말 많이 애를 태웠다. ▷김성호부장검사◁ ­전씨가 진술한 과정은. ▲조서를 전씨가 직접 다시 읽어보고 마음에 안드는 부분은 자구 하나하나를 일일이 본인손으로 다 고쳤다.무인도 다 찍었다.(통화를 한뒤)이양우변호사에게서 온 전화다.자신은 그렇게(전씨가 언론 대목은 거론하지 않았다는)말한 적이 없다고 그런다.
  • 5·18공소시효 논쟁 사실상 종료/법원 위헌제청 신청 기각 안팎

    ◎“기산일 비상계엄 해제 시점”… 거듭 확인/헌소 내더라도 번복 가능성 희박할듯 31일 법원이 정호용전특전사령관등 3명이 낸 위헌제청신청을 기각하고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은 그동안 5·18사건의 공소시효를 둘러싸고 치열하게 전개돼 온 전두환전대통령측과 검찰과의 논쟁에 사실상 마침표를 찍은 것으로 풀이된다. 전씨측은 지난해 말 검찰이 5·18사건 재수사에 착수할 때부터 공소시효 문제를 끈질기게 거론하며 검찰수사가 부당함을 성토해 왔다.즉 5·18사건의 공소시효 기산일은 광주민주화운동이 무력으로 진압된 80년 5월27일이거나 늦어도 전씨가 11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80년 9월1일이기 때문에 이때부터 15년이 지난 지난해 8월31일에 시효가 완성됐다는 주장이었다. 전씨측의 위헌제청신청을 심사한 서울지법 유해용판사는 그러나 모두 7만여쪽에 이르는 검찰수사기록과 전씨측의 신청서 및 검찰측 의견서를 검토한 끝에 이날 상오 1시30분쯤 『5·18사건의 공소시효 기산일은 비상계엄이 해제된 81년 1월24일로 봐야한다』고 결정,전씨측의 주장을 일축했다. 전씨측은 이에따라 향후 전개될 본안소송 단계에서 담당재판부를 통해 위헌신청을 내거나 헌법재판소에 직접 헌법소원을 내는 등 다각적으로 대응방안을 마련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지난 18일 김문관판사가 이미 같은 취지로 기각결정을 내렸었고 유판사가 이날 또다시 전씨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5·18사건 공소시효 논쟁은 사실상 끝난 것으로 보고있다. 12·12 및 5·18사건 담당재판부인 형사합의30부(김영일부장판사)의 견해도 두 판사의 결정과 대체적으로 비슷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김부장판사는 지난 18일 전씨측이 처음으로 위헌신청을 냈을 때 다음날 상오부터 재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날 밤을 꼬박 세우고 난 뒤 새벽에야 집으로 돌아갔었다.당시 영장당직 판사인 김판사에게 여러가지 법률적 「조언」을 해 주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이같은 정황으로 미뤄 적어도 5·18사건의 공소시효 문제에 대해서는 법원측이 이미 묵시적인 합의를 세워 놓았음을 엿볼 수 있다. 한편 전씨측은 지난해 11월 당사자들의 헌법소원 취하로 무산된 평결에서 5·18사건의 공소시효는 최규하전대통령이 하야한 8월16일로 보고 「공소시효는 끝난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는 내용의 다수평결을 내린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한가닥 기대를 걸고 있다.
  • 재벌총수 구형량“뇌물규모에 비례”/「노씨 비자금」구형공판 언저리

    ◎여론 악화 우려 공방자제… 재판 신속 진행/비자금 실명화·법정 전력자엔 「높은 형량」 검찰이 29일 노태우전대통령의 비자금 사건 3차 공판에서 피고인 가운데 노씨를 제외한 기업인 9명과 이현우전청와대경호실장 등 14명에 대해 뇌물공여 등 혐의로 징역1년∼10년을 구형함으로써 이 사건에 대한 판단은 사법부의 손으로 넘어갔다. 당초 이 사건 공판은 뇌물죄 성립 여부를 둘러싸고 지리한 법정 공방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노씨와 재벌 총수들의 변호인들이 공방을 자제,세번째 공판에서 결심에까지 이르게 됐다. 노씨 등 피고인측이 이처럼 자제한 것은 계속해서 목소리를 높이더라도 여론만 나빠지고 자신들의 이미지만 추락할 뿐,아무런 실익이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여겨진다.이 사건 재판장인 김영일부장판사가 가급적 법적 공판을 자제해 달라고 거듭 당부한 것도 작용했다.김부장판사는 이날도 직접 신문을 통해 검사 못지 않게 노씨 등의 범죄사실을 꼬치꼬치 캐물어 피고인들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재벌총수의 변호인들은 이날 증인으로 나온 소병해삼성생명부회장 등 3명에 대해서도 총수들이 직접 돈을 건넨 것이 아니라 실무자급에서 건넸다는 답변을 끌어냈을 뿐 뇌물죄 성립 여부에 대해서는 다투지 않았다. 반면 검찰은 이날 논고문과 보충신문 등을 통해 노씨와 재벌총수들이 주고 받은 돈이 뇌물임을 거듭 강조했다.재벌측 피고인들은 2차 공판 등에서 인사치레 또는 국사에 보태쓰라는 뜻의 성금이라고 변명했지만,대통령의 권한 또는 영향력 행사에 대한 대가라는 취지가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전달되면서 금품을 주고 받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검찰은 『기업을 하는 사람이 돈이 남아 그렇게 많은 돈을 갖다 줄리가 있겠습니까.대통령과 독대했다는 소문만 나면 관련 부처에서 알아서 모시기 때문입니다』라고 진술한 한 피고인의 고백이 이 사건의 진실이라고 강조했다. 재벌 기업 총수들에 대한 구형량은 대체로 뇌물로 인정된 액수와 비례했다.이 가운데 김우중대우그룹회장과 정태수한보그룹총회장,최원석동아그룹회장은 노씨 비자금을 실명화해 주었거나동화은행사건과 수서사건으로 이미 한차례씩 법정에 섰던 전력 때문에 다른 기업인보다 무거운 4년씩을 구형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법정 태도도 양형에 반영됐다.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잘못을 반성하면서 개전의 정을 보인 기업인들에게 낮은 형이 구형됐다.상대적으로 낮은 형이 구형된 이준용대림그룹회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전청와대경호실장 이현우피고인에게는 뇌물을 알선한 이외에 6억1천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가 적용돼 피고인 가운데 최고형인 징역 10년에 추징금 6억1천만원이 구형됐다. 이들에 대한 1심형량은 다음 공판에서 확정된다.그러나 구속기소된 이현우씨와 뇌물 수수를 알선한 1∼2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집행유예를 선고받을 전망이다.노씨와 이현우씨를 제외하고 모두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은 사실로도 짐작되듯 특히 재벌총수들에는 경제발전에 대한 기여도 등의 사유가 참작될 것으로 보인다.재벌기업 총수 모두에게 뇌물공여의 법정 최고형인 징역 5년에 못미치는 형이 구형된 것도 사법부의판단을 예단케 하는 것이다. 앞으로 이 사건에 대한 선고공판은 12·12 및 5·18 사건에 대한 결심 공판이 마무리 될 때까지 열리지 않을 전망이다.노씨를 제외한 나머지 피고인에 대해서만 미리 형을 선고하면 노씨 공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 노씨,일부대목선 큰 소리로 부인/비자금 2차공판 이모저모

    ◎재판장­변호인 노씨 호칭싸고 신경전/이건희회장 가훈 내세우며 뇌물 부인 15일 열린 노태우전대통령의 비자금사건 관련피고인 15명에 대한 2차 공판은 노씨측 변호인이 반대신문을 포기함에 따라 느슨한 분위기속에 진행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반대신문에 이은 검찰측 보충신문 과정에서 노씨가 신문내용에 이의를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활기를 띠기도 했다. 법무부 지침에 따라 올해부터 재소자들에게 새로 지급된 청회색 상하의 수의 차림으로 법정에 나온 노씨는 지난달 18일 1차 공판 때처럼 비교적 건강해 보였다. 이날 공판은 1차 공판 때 검찰의 직접신문 내용에 대한 재판부의 확인절차에 이어 변호인측 반대신문,검찰측 보충신문의 순으로 하오 7시30분까지 계속됐다. ○…이날 상오 10시 재판장이 「피고인 노태우」를 호명하자 노씨가 피고인출입구를 통해 나타난 데 이어 나머지 피고인 14명이 1차 공판때와 같은 순서로 입정. 이날 공판의 하이라이트로 주목받았던 노씨에 대한 반대신문은 변호인인 김유후변호사가 「반대신문을 하지 않는 사유」라는 유인물을 낭독하는 것으로 대체,취재진과 방청객들의 「기대」를 빗나가게 했다. 그러나 재벌총수측은 국가경제에 차지하는 기업의 위치와 역할,기업의 이미지 실추와 해외공사수주 등에서의 불이익,3공 때부터 내려온 상납관행 등을 내세우면서 적극적으로 자기변호에 나섰다. 이건희삼성회장은 가훈까지 소개하며 특혜를 위해 뇌물을 상납하지 않았다고 강변한 뒤 상용차진출과 차세대전투기 기종변경 때문에 재산상의 피해만 입었다고 검찰의 공소사실을 강력 부인. 김우중대우그룹회장은 『어려운 기업여건을 해외시장개척을 통해 이겨낸 불굴의 경영정신』을,최원석동아그룹회장은 리비아대수로공사 등 해외대형공사수주에 이 사건 기소가 끼친 악영향을 거론하며 변론을 전개. ○…이날 공판에서는 노씨의 호칭을 둘러싸고 재판장과 변호인이 한때 날카로운 신경전. 재판장인 김영일부장판사가 이날 공판에 앞서 피고인을 부를 때 별도의 호칭을 삼가도록 주의를 주었음에도 불구,노씨및 이현우전경호실장의 변호를 맡은 김유후변호사가이피고인에 대한 반대신문에서 「노태우대통령」이라는 호칭을 빈번히 사용한 것. 김부장판사는 이에 『호칭도 재판진행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면서 『1차공판 때부터 여러차례 지적한 주의사항을 계속 어기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질책. 잠시 주춤하는 듯하던 김변호사는 그러나 「노대통령께서」 「노대통령께」 등의 표현을 다시 사용해 두번째 지적을 받았다. 김변호사가 태도를 바꾸지 않고 「노태우대통령」으로 호칭하며 이피고인에 대한 변론이라기보다는 노씨의 치적을 내세우는 듯한 신문을 계속하자 재판장은 이피고인에 대한 신문을 제일 마지막으로 돌리고 다음 차례인 금진호피고인을 호명. 그러나 김변호사는 이태진전경호실경리과장에 대한 반대신문 도중 『대통령으로 직접 곁에서 모셨던 분에게 피고인이라는 호칭을 쓰기 어려운 점을 이해해 달라』고 다시 도전장을 던졌다. 이에 김부장판사가 『이곳은 법정이니 원칙을 따르라』고 충고하자 김변호사는 직접 노씨의 의향을 타진하기에 이르렀으나 노씨는 『그렇게(피고인이라고) 불러주세요』라고 대답,법정이 웃음바다로 변하는 해프닝을 연출. 이후 김변호사는 꼬박꼬박 「노태우피고인」이라는 호칭을 사용. ○…노씨는 이날 하오 검찰의 보충신문이 진행되는 동안 일부 대목에서는 큰 소리로 혐의사실을 부인하고 때로는 흥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해 고개를 숙이고 낮은 목소리로 일관하던 1차공판때와는 크게 대조. 노씨는 특히 홍만표검사가 동아그룹 최원석회장에 대한 보충신문에서 대통령의 공사수주 내락을 받은 업체는 속칭 「신랑」으로 불리고 나머지는 「들러리」로 불리는 관행 등을 묻자 갑자기 왼손을 번쩍 치켜들어 진술을 자청. 김영일부장판사가 검찰신문을 그대로 진행시키자 조바심이 난 듯 세번씩이나 계속 손을 치켜들어 반론기회를 얻은 노씨는 『대통령 혼자서 모든 것을 다 결정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는데 사람인 이상 관심은 가질 수 있지만 전적인 결정은 발주처에서 하는 것』이라고 흥분한 목소리로 반박.
  • 구속직전 「비자금장부」 파기/서울지검 이종찬·김성호검사 문답

    ◎연희동 집·채권·예금 추징보전 검토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의 이종찬본부장(서울지검 3차장검사)은 12일 김성호서울지검특수3부장 등 수사검사 전원을 배석시킨 가운데 전두환전대통령 비자금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최대 관심사항인 전씨의 비자금 보유규모를 아직 파악하지 못해 아쉬워하는 모습이 역력. 김부장검사는 『성금을 뺀 7천억원과 퇴임시까지 보유했던 1천6백원까지는 밝혀냈지만 현재 보유액수는 밝히지 못했다』고 시인한 뒤 『워낙 오래돼 자금추적도 어렵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사안임을 이해해 달라』고 하소연. 검찰은 압류할 전씨의 재산 규모에 대해 『많지 않다』고만 언급. ○…검찰은 전씨가 조성한 비자금 7천여억원 가운데 뇌물 2천1백59억여원을 뺀 5천억원의 조성경위가 적시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 곤혹스러워하면서 비자금 조성총액,뇌물액수,퇴임시 잔액 등은 모두 전씨의 직접 진술임을 거듭 강조. 검찰은 전씨가 퇴임당시 보유액이 1천6백억원가량이라고 시인했으나 여러 친인척이나 측근들에게분산되어 있다며 사용처나 현 보유액를 말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 ○…전씨가 재임기간 중 거둬들인 9천5백억원은 재임 7년동안 매일 4억여원을 거두어 들인 꼴.당시 시세로 하루에 최고급 아파트 한 채값을 거둬 들였다는 게 검찰의 설명. 전씨는 비자금을 거의 모두 1억원단위의 금융자산으로 쪼개어 분산하고 이윤이 가장 높은 금융상품에 예치하는 등 탁월한 금융지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눈길. 전씨는 수백억원단위의 거액을 일괄 관리했던 노태우전대통령보다는 금융면에서도 월등한 고단수임을 증명. ○…검찰은 전씨의 측근들이 내놓은 1백26억원의 성격을 규정하는 문제를 놓고 고심을 거듭했다는 후문. 검찰관계자는 이 돈은 헌납이라기 보다는 증거로 해석해야 한다며 앞으로 몰수될 전씨의 재산에 이 돈도 포함될 것이라고 설명. 그러나 김부장검사는 설명 중간에 「압수」라는 표현을 쓰기도. ○…전씨는 뇌물을 수수하면서 현금이나 수표 뿐아니라 당장 돈을 낼 수 없는 기업인에게는 약속어음까지 받은 것으로 드러나 왕성한 「식욕」을과시. 전씨는 지난 84년 11월 국제그룹 양정모회장으로부터 골프장 인가와 관련,3개월 만기의 10억원짜리 약속어음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 취재진 따돌리고 차내서 문답조사/검찰 광주현장조사 이모저모

    ◎광주 종교·법조계 원로 면담은 모두 무산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의 김상희 부장검사 등 수사팀은 28일 5·18당시 민간인이 살해된 광주교도소 등에 대해 이틀째 현장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이날 상오 9시45분쯤 광주교도소 앞에 도착해서 10시 교도소 본관에 이를 때까지 15분동안 취재진을 따돌린채 허연식 5·18공대위간사(32)를 자신들의 차에 태우고 차안에서 문답식으로 현장조사를 실시. 주임검사인 김부장검사는 『차에서 내려 현장조사를 하는게 원칙이지만 15년이상이 지난 상황이라 도로와 건물의 모양 등이 너무 달라져 차안에서 설명을 듣는 것으로 충분했다』고 설명. ○…5·18당시 교도소부근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일가족 3명이 숨지거나 다친 김성수 5·18상이사망자유족회장(63)과 남편(당시 37세)을 잃은 이숙자씨(49)씨가 이날 상오 검찰에 출두,당시 상황을 증언. ○…검찰은 현장조사가 수박겉핥기식이라는 관련자 및 광주시민들의 비난을 의식한듯 이번 현지조사는 현장검증이 아닌 현장조사임을 강조. ○…서울지검 특별수사본부와 광주지검등 합동수사팀은 이날 따로 광주지역의 종교계·법조계의 원로인사들을 면담할 계획이었으나 면담당사자의 사정으로 모두 취소. 특히 천주교신자인 김부장검사는 5·18당시 많은 활동을 했던 천주교 광주대교구 윤공희 대주교와의 면담을 강력히 희망했으나 윤대주교가 워낙 고령인데다 일체 외부와의 접촉을 피하고 있어 무산됐으며 광주지검이 접촉키로 했던 홍남순 변호사도 고령이어서 역시 면담이 무산.
  • 3공수여단 양민학살 확인/5·18현장 검증

    ◎시민군 도청접수 상황 증언 청취 【광주=최치봉·김태균 기자】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서울지검3차장)는 광주 현장조사 이틀째인 28일 광주시 북구 문흥동 광주교도소 앞에서 5·18 당시 계엄군과 시위대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진 상황과 다수의 양민이 살해된 경위 등에 대해 조사했다. 특별수사본부 김상희 부장검사와 광주지검 공안부 이귀남 부장검사 등 합동수사팀은 또 시위대의 교도소 습격여부,계엄군의 사망자 암매장 장소 등에 대한 현장조사를 벌였으며 김성수(61)5·18상이사망자유족회장 등 참고인의 진술을 들었다. 김부장검사는 『당시 시 외곽으로 통하는 유일한 길이었던 교도소 앞길로 시민들이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매복하고 있던 3공수여단이 총격을 가해 다수의 시민이 사망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5·18 때 함평경찰서 정보과 소속 순경으로 전남도청앞에 배치됐던 윤나용(47·현 전남경찰청 공보담당관실 근무)경위를 불러 80년 5월20·21일 사이에 도청이 시민군에 의해 접수되던 상황에 대한 증언을 청취했다. 한편 검찰은 이날 하오 전남도청 및 주남마을 등지에서 실측조사 및 사진촬영 등을 실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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