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봄엔 인간적노사관계로/김문수(일요일 아침에)
요즈음 불이 다가오니,임금인상투쟁을 위한 춘투를 앞두고,여기저기에서 노사분규를 걱정하는 소리가 많다.해마다 이맘때 쯤이면 하던 걱정을 올해도 하고 있다.문민시대가 시작된지 1년이 되지만 노동현장에서는 봄만 되면 왜 연례행사 처럼 노사분규를 걱정해야 하는가.
군사독재정권 아래서 우리들은 해마다 봄이 되면 젊은 청년학도들의 반독재가두투쟁을 진압하느라 쏘아대는 최루탄냄새 때문에 「민주주의를 위한 눈물」을 흘리며 세월을 살아 왔다.학생들의 반정부투쟁은 정권의 정통성 시비가 많이 약화된 이제는 한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하고 있지만,노사분규만은 문민정부 첫해인 작년에도 울산 현대그룹파업으로 상징 되듯이 그 기세가 전혀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누그러지기는 고사하고 신경제 1백일 계획기간 대부분이 파업돌풍에 휩싸였다.
올해는 작년 보다 더욱 심한 노사불안이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집권초년도의 고통분담분위기도 없어진 데다가,무엇보다 물가불안이 심하기 때문에 임금생활자들의 어려움은 상당히 증폭되지 않을 수 없다.어떤 이들은 말한다.『자본주의사회에서는 노동자와 사용자의 대립은 필연적이므로 노사분규가 일어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데 뭘 그러느냐』고 한다.이 말은 『아이들은 울게 마련인데 뭘 달래려고 하느냐』는 소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옛날에는 집집마다 왜 그리 우는 아이들이 많았는지 모르겠다.아주 어린아이들만 울어대는 것이 아니라,다 큰애들까지 학교 가기전에 월사금이나 공책 살 돈 달라고 엄마에게 조르다가 안되면 뒹굴면서 돈 줄때까지 울어댄다.그래서 우는 아이들을 달래려고 곶감이다,호랑이다,별의별 이야기까지 지어 내었으나 탁효는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즈음은 아이들 우는 소리를 거의 들어 볼 수 없다.아이들이 울지 않아도 엄마들이 알아서 척척 문제를 미리 해결해 주기 때문에 울 필요가 거의 없게 된 것이다.
「우는 아이에게 젖 준다」는 말이 있다.이 말은 울지 않는 아이에게는 아예 젖을 줄 생각도 않는다는 말이다.이러한 육아방법이나 생각을 가진 어머니의 아이들은 젖이 먹고 싶으면,무조건 울어대기 시작한다.애가 울기전에 미리 알아서 젖을 주고 알뜰살뜰 보살피는 습관을 들이지 못하고,애가 울어대기 시작해야 겨우 젖을 주는 버릇을 들여 놓았으니 그애야 배만 고프만 당연히 울어대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 경제는 후진국상태를 벗어난지 벌써 오래되어 중진국의 선두에 서 있을 뿐만 아니라,선진국을 바라보며 온갖 힘을 기울이고 있건만,노사관계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노사간에 극단적인 힘의 대결현상이 세상을 뒤덮고 있다.여기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노사관계의 최고경영자인 기업주들의 태도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아이가 꼭 악을 쓰며 울어대고 대굴대굴 뒹굴어서,온나라를 시끄럽게 하지 않으면,문제를 해결해주기는 커녕 거들떠 보지도 않으니,이런 어머니 밑에서 아이는 봄만 되면 무조건 악을 쓰며 울어대기 시작하는 것이다.
최고경영자들이 평소에 항상 현장노동자들과 친근하게 대화하고 따뜻이 인간적으로 대접한다면,어느 노동자가 기어이 악을 쓰며 울어댈까? 아무리 돈많은 집 아이라도 부모와 대화가 없고 어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 없으면 탈선하여 온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게 마련이다.첫째 가는 재벌회사 노동자들이 다른 어느 곳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고,더 좋은 복지혜택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가장 다루기 어려운 문제아처럼 처신하는 이유는 어려운데 있는 것이 아니다.반면에 어려워서 쓰러져 가는 중소기업에서 회사를 살려보려는 노사간의 아름다운 미담을 더러 접한다.이런 경우는 어머니의 몸이 쇠약해졌으나 어머니는 정성을 다해 아이에게 젖꼭지를 물리고 있지만 젖이 나오지 않아 서로 안타까워하는 모자의 모습 만큼이나 우리를 감동하게 한다.
노사관계를 계속 후진국의 수준으로 버려둔 채로 선진국에 진입하겠다는 생각은,문제아를 둔 부모가 사회적으로 출세해 보겠다는 생각 만큼이나 터무니 없는 것이다.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인 노사관계야말로 가장 인간적으로 푸는 길이외에는 달리 답이 없는 법이다.그리하여 이 봄에는 함부로 버려져서 울어대는 아이도,최루탄 눈물도 없는 그러한 진달래,개나리 꽃동산을 우리 모두 함께 만들어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