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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美 전투병규모 갈등

    |서울 김수정기자·워싱턴 백문일특파원|정부는 이라크파병 대미(對美)협의단이 8일,2차 정부합동 이라크조사단이 9일 각각 귀국함에 따라 관련 정보를 종합,이라크 추가파병 세부계획에 대한 수정안 마련 작업에 착수했다. ▶관련기사 3·4면 대미 파병협의단과 이라크 조사단은 금명 노무현 대통령에게 협의 및 조사 결과를 보고할 것으로 알려졌다.정부는 조만간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안보관계장관회의를 소집,파병 수정안을 마련한 뒤 오는 17일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이 참석하는 가운데 서울에서 열리는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때 다시 파병 협의를 벌일 예정이다.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방한 때 노무현 대통령을 면담,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파병관련 입장을 전달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정부는 공병·의료부대 위주로 구성된 비전투병 파병안의 전투병 비율 및 규모 증원 문제를 집중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대미 협상단 수석대표인 이수혁 외교부 차관보는 9일 “우리측은 평화·재건을 위한 3000명 규모의 파병안이 적절하다고 판단한 뒤 이를 제시했고,미국은 안정화 작전을 위해 보다 큰 규모의 파병을 기대했다.”고 말했다.우리측은 2000명의 비전투병에 1000명의 전투 경비병으로 구성된 혼성부대를 미측에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이와 함께 다른 나라 부대 아래 배속하는 방안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로이터 통신은 미 국방부 고위관리의 말을 인용,“미국은 한국에 대해 5000명에서 최대 1만명의 안정화작전을 구사할 수 있는 전투병 파병을 요청했다.”면서 미국은 모술에 배치된 제101공정사단 임무를 한국이 맡아주기를 아직도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제2차 이라크 현지조사단 단장인 김만복 NSC정보관리실장은 현지 치안상황에 대해 “지난달 말부터 최근들어 위협세력들이 점차 공격화,조직화돼 가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고 말했다.특히 “수니 삼각지대 등의 치안상황은 심각하며,모술 지역 역시 좋지 않다.”면서 “이라크 각계 인사들은 전후복구 지원을 위한 파병을 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crystal@
  • “3000명內 파병”NSC 고위관계자 밝혀

    정부는 이라크에 2000∼3000명의 국군을 파병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고위관계자는 27일 이라크 추가파병 규모와 관련,“아직 정부 방침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미국이 요청한 폴란드형 사단 규모를 감안할 때 2000∼3000명선이 될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일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폴란드형 사단에서 폴란드 병력은 2350명선”이라고 설명했다.고위관계자는 “지난 18일 이라크 추가파병을 결정한 후 파병 규모와 관련해 다양한 숫자들이 보도됐으나 대부분 과장된 것”이라고 밝혔다.관계자는 “1차로 파병을 결정할 때에는 국익과 한·미관계,유엔 결의 등이 주요 고려대상이었지만 이번 2차 결정에선 국민여론과 이라크 평화정착과 재건지원 등에 가장 도움되는 방향이 어떤 것인지가 중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방부 관계자는 “파병 규모가 3000명 이내 규모라면 1개 연대 편제에 준용해 부대가 짜여질 가능성이 크다.”면서 “전투병(육군 보병이나 특전사,특공여단 등)과 공병,의료 등의 혼성부대가 될 여지가 크며,현재 이라크에 나가 있는 서희(공병)·제마(의료) 부대가 활용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정부는 이라크 추가파병과 관련,이번 주부터 10여일간 제2차 정부 합동조사단을 이라크에 파견키로 했다.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김만복 NSC 정보관리실장을 단장으로 모두 13명의 파견단을 구성해 사회 인프라와 보건,의료,민심 등 비(非)군사적 부문을 중점 점검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곽태헌기자 tiger@
  • NSC 정보실장 김만복씨 위기관리센터장 유희인씨

    노무현 대통령은 14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 정보관리실장(1급)에 김만복(57) 국가정보원 단장을 임명했다.위기관리센터장(2급)에는 유희인(47) 위기판단관을 임명했다.
  •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이세기의 인물탐구:74)

    ◎독주회·협연 한해 15회꼴… 쉬지않는 연주자/9세때 이대실내악단 연주에 매료 입문/“남다른 정열·힘있는 음악” 평… 고정땐 많아/소중한 악기 「과다니니」 제자에게 흔쾌히 빌려주기도 사랑을 하게 되거나 혹은 참혹한 현실에 부딪칠때 사람은 울부짖거나 통곡하거나 희열과 유열에 몸부림치게 된다.니체는 이런 종류의 광기를 「디오니소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예술가가 만약 디오니소스적 광기에 몰입 할 수 없다면 얼마나 불행한가.『디오니소스적 광기에 도취하여 자기라는 이성과 관습과 틀과 형식을 박차고 훨훨 창공을 날아오르는 이가 바로 김남윤』이다.이는 지휘자 김만복씨의 말이다.그는 과연 고뇌와 좌절의 여러 파란을 지나 참으로 조용히 예술의 정점을 응시하려는 예술가다.더 더욱 최근들어 영감에 가득찬 흐르는 듯한 연주는 「모든 음악에는 컬러가 있고 분위기가 있다」는 시게티의 방식을 실천시킨다.특히 그가 들려주는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은 절후의 명작다운 심오한 감정과 고고한 기품,바흐의 풍부한 환상을 유연한 선율로 이끌어낸다.경쾌한 쿠랑트(주)와 장중한 폴리포니(복음락),저음테마와 고음이 교차되는 5악장 샤콘은 마치 「꽃잎이 피어나는 넋의 개화」로 평받고 있다.그는 과연 음악을 캐내기 위해 까마득한 터널을 달려가는 고독한 자의 비애와 고뇌를 절창으로 성취해 낸 것이다. ○악보에 생명력 불어넣어 「그의 레퍼토리는 모든 작곡가를 두루 꿰고 있지만 악보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음악을 살아 숨쉬게 하는 매력이 특징이다.특히 그의 모차르트는 이따금 너무나 격정적이며 비브라토의 처절성이 모차르트에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해도 그의 백열하는 열정 때문에 청중은 온통 열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유신씨는 평한바 있다. 김남윤의 연주회에 가보면 당장 느낄수 있는 것이 그에겐 고정팬이 확보돼 있다는 점이다.그러니까 알만한 사람들이 인사치레로 온다든가 학교 인맥등으로 동원된 관객과는 전혀 그 유가 다르다.그의 미국 매니저인 테어 디스페커는 일반관객이 김남윤의 연주회 입장권을 구매하는 것을 여간 자랑스러워 하지 않는다.예를 들어지난 85년 일본 도쿄의 사보회관과 무사시노 문화시민회관 독주회가 대단한 성공을 거두자 도쿄 인터내셔널 뮤직코퍼레이션은 다음해 앙코르연주를 요청해왔고 이미 정해진 스케줄로 인해 2년후로 계약을 미룬 일 등이 이를 증명한다. 그는 78년 미국서 귀국후 지금까지 한해도 거르지 않고 독주회를 여는가하면 실내악과 오케스트라 협연등 연평균 15회 이상의 왕성한 활동을 벌이는 연주가로 유명하다.그래서 국내의 비중있는 평론가인 유신 이상만 서우석 한상우들로부터 「그해의 음악인」으로거듭 선정되는등 음악과 관련된 모든 상을 혼자서 휩쓸다시피 했다. 그는 부친 김희룡씨와 음악을 좋아하는 정경선 여사 사이의 2남2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은행지점장이던 부친의 임지를 따라 전주 대전등지에서 유아기를 보냈고 처음은 피아노를 치다가 9살되던해 이대 실내악단의 순회연주를 보고 섬세한 선율에 이끌려 바이올린으로 악기를 바꿨다.바이올린을 시작한지 3년만에 이화·경향음악 콩쿠르 특상,이화여중 3학년때 동아음악콩쿠르 1등에 입상하면서 스승과 부모의 기대를 받으며 그는 누구보다 행복하고 순탄한 음악의 길을 걸어왔다. 줄리아드 음악원시절에는 김영욱 정경화를 길러낸 저명한 이반 갈라미언교수를 사사,또하나의 스승인 펠릭스 갈리미어교수는 「남윤의 남다른 정열과 힘있는 음악」을 유독 편애하여 그가 스위스 티보바가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하자 줄리아드 오케스트라의 솔리스트로 발탁했었다.이후 정상의 연주가,서울대 교수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그는 방학이면 미국의 지도교수들에게 자신의 음악의 진취를 확인하는데 게으르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한시도 쉬지않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연주회에 가고 친구들을 만난다.실제로 연습이나 강의가 없을땐 그의 손에는 라디게나 랭보나 이문열이 들려있다.원만한 대인관계로 폭넓게 사람들을 사귀지만 그중에서도 한국종합예술학교 음악원장인 이경숙과의 그림자같은 우정은 음악계에서 널리 부러움을 사고 있다.일상생활에서는 학생들과 격의없는 대화를 즐기고 아끼는 제자가 연주를 앞두고 악기 때문에 걱정하면 자신의 소중한 과다니니를 선뜻빌려주기도 한다. ○요즘도 새벽녘에 연습 요즘도 연주 교섭이 들어오면 아무리 스케줄이 빡빡해도 일단 「하겠다」고 승낙해 버린다.이를테면 자선음악회는 자선음악이기 때문에 거절할 수 없으며 지방연주는 지방인들을 위해서 당연히 외면할 수 없다는 식이다.유학시절에는 1시간의 독주회를 위해 1년동안 꼬박 하루 10시간의 연습을 지켰고 요즘은 새벽 1시이후 2∼3시간씩 바이올린을 잡는다. 그로선 빗발치는 박수갈채와 타인들의 시선속에서 어텐션을 받는 입장이다.사람들은 곧잘 그를 향해 「액티브하다」느니 또는 「슈퍼 우먼」으로 부르고 있지만 그것은 아마도 그의 음악성이 「강하고 적극적이며 곡전체를 장악하고 있다」는 뜻에 더 가깝다.간혹 엉뚱한 오해와 매도의 그물에 걸려 깊은 상처를 받는 경우에도 그는 상대방의 언어의 자유와 판단에 맡길뿐 「시간의 해결」을 믿고 동요하지 않는다.강한 정신력과 책임감,음악에 대한 사랑과 집념이 강인한 음악인으로 자신을 완성시켰고 그래서 정상에 우뚝 선 자의 자랑스러움이나 오만이 한낱 부질없음을 터득한바 오래다. 겉으로는 밝고 명랑하고 소녀처럼 들뜬 모습이지만 그와 오래 사귄 사람은 그의 내면 깊숙이 감춰진 실낱같은 섬세함을 알고 있다.실제로 이런 면은 연주에서도 자주 노출되어 악보의 한소절에도 한치 소홀함이 없다.각 소절이 갖는 의미와 정감을 세밀하게 따져본 다음 자신이 느낀 것을 청중이 그대로 느낄수 있도록 농현(농현)의 현란을 멈출줄 모른다. 『세상물정 모르던 어린시절엔 어머니가 시켜서 음악을 공부했고 음악을 하다보니 걷잡을 수 없이 음악에 빠져들었으며 이제는 「운명」처럼 음악없인 한시도 살수 없을 것이다.음악은 나의 피가 되고 살이 되어 나 자신이 음악자체라해도 과언일 수 없다』고 말할수 있게 되었다. ○“세속의 희열 초월” 극찬 그는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서 어릴때부터 끝없이 그의 음악을 뒷바라지해왔고 지금도 변함없이 딸의 연주회장에 모습을 나타내는 80노모와 외아들(윤주영·17·미국유학중)과 함께 음악 못지않게 사랑과 정성으로 가족을 지키며 단란하게 살고 있다.여전히 의욕적인 연주활동을 늦추지 않아 올 상반기에 벌써 「이야기와 영상음악」청소년소녀 교향악단등 3차례의 연주,오는 6월4일 예술의 전당 독주회를 비롯,8차례의 연주 스케줄을 잡아놓고 있다. 언젠가 뉴욕타임스가 평했듯이 「그의 음악은 일체의 세속의 희열을 초월하여 자신의 생애를 보석타래로 엮어내듯」 악절마다에서 향기로운 화현마저 흘러나온다.더이상 정열에 넘치거나 솟구치는 법없이 캄캄한 어둠을 뚫고 흐르는 지하수처럼 방울방울 맺힌 영롱한 리듬은 듣는 이의 가슴속에 진한 각성을 던진다. 그가 친애해 마지않는 모차르트는 더 더욱 눈부시고 베토벤 프랑크는 장엄미가 두드러지면서 「시가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언어」이듯이 그의 음악은 「음악자체로서 존재하는 언어」로서 날이 갈수록 성숙한 차원을 성립하고 있다.이제 그는 멀고 긴 아득한 터널을 지나 햇빛 찬란한 푸른 벌판에 나선듯 예술가로서의 최상의 절정기를 지금 맞고 있는 그 순간이다. □연보 ▲1949년 전주 출생 ▲59년 이화·경향콩쿠르 특상,백운창 김용윤 양해엽 사사 ▲64년 동아음악콩쿠르 1등 ▲67년 서울예고 졸업,미 줄리아드 음악원 입학 ▲69년 워싱컨 메리워더 포스트 컴피티션 입상 ▲70년 워싱턴 내쇼널심포니 오케스트라협연 데뷔 ▲71년 줄리아드 차이코프스키 콘체르토 컴피티션 우승,줄리아드 오케스트라 협연 ▲72년 LA 영뮤지션스 파운데이션 컴피티션 캐리어그란트상 ▲73년 허드슨밸리 영아티스트·스위스 티보바가 국제음악콩쿠르 1등 ▲77년 줄리아드음악원 졸업 ▲78년 귀국,제1회 독주회(서울시민회관)이후 해마다 독주회,경희대 음대조교수 ▲80년대 싱가포르 심포너 오케스트라,자그레브방송 교향악단 협연 ▲82년 서울대 음대교수 ▲83년 서울쳄버 오케스트라 창단 ▲85년 일본 독주회 ▲미국 시카고및 뉴욕 독주회,테어디스페커 매니지먼트사 소속계약,전주및 지방 6개도시 순회연주 ▲87년 미국 독주회(카네기홀) ▲90년 제1회 대만 국제콩쿠르및 싱가포르 롤렉스콩쿠르 심사위원 ▲92년 미국 보드윈 서머페스티벌 객원교수,도쿄 국제콩쿠르 심사위원,영국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지휘 라카르도 사이)협연 ▲93년 상트 페테르부르크(구 레닌그라드)심포니 오케스트라(지휘 알렉산더 드미트리예프)협연 ▲94년 상하이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협연(서울·중국) 등 5백여회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 한국음악페클럽상 난파음악상 올해의 음악가상 월간음악상 채동선 음악상 한국음악평론가상 예음상
  • 「르네상스」(외언내언)

    고전음악감상실 「르네상스」.지금은 사라진지 오래됐지만 40대이상의 장년들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일깨워주는 명소였다. 60년대초 서울 종로1가 영안빌딩4층 르네상스에 들어서면 흐릿한 조명속에 클래식음악의 선율이 감미롭게 흐르고 안락한 소파에는 눈을 지그시 감은 감상객들이 삼매경에 도취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음악인들은 물론이고 문화예술인들,대학생들이 즐겨찾던 음악의 메카이자 문화예술의 사랑방이었다. 아직 무명이었던 작곡가 윤이상씨가 이곳에서 작품발표회를 가졌고 김만복,임원식씨 등이 악보를 갖고와 지휘연습을 하기도 했다.그런가 하면 대학생들의 데이트장소로도 인기가 높았다.70년대까지 고전음악을 제대로 들을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르네상스였으니까. 르네상스가 문을 연것은 대구피란시절인 51년.음악애호가였던 박용찬씨가 8천여장의 음반을 두대의 트럭에 싣고 피란감으로써 시작되었다.전화에 시달리던 문화인들에게 르네상스는 오아시스같은 존재였다.환도후 54년 인사동에서 문을 열었다가 59년 종로1가로 이사하면서 전성기를 맞게 된다.60∼70년대에 걸쳐 르네상스는 황금기를 맞지만 80년대들어 팝뮤직의 성행과 오디오의 보급에 밀려 사양길을 걷게 된다. 적자의 누적으로 87년 르네상스는 마침내 문을 닫았지만 문을 닫는다는 기사가 보도되자 전국에서 「르네상스를 지켜달라」는 격려전화와 편지가 쇄도,화제가 되기도 했다.젊은날의 꿈과 낭만이 배어있던 추억의 공간을 오래오래 보존하고 싶은 마음때문이었으리라. 어쨌든 르네상스는 36년이란 긴 세월동안 음악감상실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설립자인 박씨는 문을 닫으면서 그가 평생수집했던 귀중한 음반 1만1천여장을 포함,오디오기재와 희귀자료등을 모두 문예진흥원에 기증했다.소년시절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기를 꿈꾸었던 음악애호가 박용찬씨.그가 우리 음악계에 큰 업적을 남기고 타계했다.
  • 서울시향 46년/500회 정기연주회 “위업”

    ◎새달 4일 국내 교향악단 사상 처음으로/백건우­초대지휘자 김생려씨 함께 출연/「신세계」등 한국의 대표선율 팬들에 선사/48년 「서울교향」이 뿌리… 상임 지휘자만 5명 거쳐가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오는 2월4일 제5백회 정기연주회를 갖는다.5백회째의 정기연주회는 국내 교향악 사상 첫번째 위업.이 경사스런 날을 맞아 초대지휘자로 활약했던 김생려씨(82)와 창단 초기 어린 나이에 협연자로 나섰던 피아니스트 백건우씨(48)가 초청됐다. 서울시향이 지금의 이름으로 창단된 것은 지난 19 57년8월.그러나 그 명맥은 현제명·김성태씨가 중심이 되어 45년 창단된 고려교향악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만 2년동안 26회의 정기연주회를 가진 고려고향악단이 재정난으로 해체되자 김생려씨가 48년 발족시킨 것이 서울교향악단.서울시향의 정기연주회는 이 서울교향악단의 제1회 정기연주회를 기점으로 계산되고 있다. 서울교향악단은 6·25전쟁이 일어나자 해군정훈음악대에 편입되었고 다시 해군교향악단으로 이름이 바뀐뒤 서울시에 흡수되어 오늘의 서울시향이되었다.서울교향악단과 해군정훈음악대 해군교향악단이 치러낸 정기연주회는 모두 60여 차례.서울시향이라는 이름으로 치른 정기연주회만도 4백40여회에 이르는 셈이다. 서울시향은 이제 KBS교향악단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교향악단으로 성장했다.악조건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짧은 교향악 역사 속에서 이처럼 갖가지 풍상을 견뎌온 저력때문이라는 것이 음악인들의 서울시향에 대한 한결 같은 평가이다. 그동안 상임지휘자를 맡은 사람은 김씨에 이어 김만복·원경수·정재동·박은성씨.현재는 지난해 말 취임한 원씨로 다시 이어져 29일 「재데뷔 연주회」가 열린다. 서울시향은 2월18일 정기연주회에는 정재동씨,또 4월에 있을 「서울정도6백주년기념연주회」에는 김만복씨를 각각 내세울 예정이어서 지난해 물러난 박씨를 제외한 역대 상임지휘자 전원을 연이어 지휘대로 초청하는 셈이다. 이번 연주회의 레퍼터리는 그리그의 피아노협주곡과 하차투리안의 「스파르타쿠스」조곡,그리고 드보르자크의 「신세계」교향곡이다.특히 그리그의 협주곡은 백씨가 14살의 어린 나이에 김씨가 지휘하는 서울시향과 협연했던 바로 그 곡으로 두사람에게는 의미있는 작품.이 곡은 그 때 그 공연을 기억하는 나이 든 음악팬들에게도 옛날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또 「신세계」는 창단 당시 자주 연주해 청중들의 환호를 받았던 「단골 메뉴」이다.
  • 서울시향상임 에르데이 내정/헝가리출신… 내년한해 지휘

    헝가리출신의 지휘자 미클로스 에르데이가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새 상임지휘자로 내정됐다. 서울시향은 지난 2일 「상임지휘자 선임을 위한 자문위원회」를 열어 에르데이를 적임자로 결정하고 서울시장의 재가를 7일 요청했다. 자문위원회가 밝힌 에르데이의 계약조건은 계약기간이 93년1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 1년간으로 6개월동안 국내에 체류하며 연봉7만2천달러에 연주회당 3천5백달러의 수당지급,아파트와 차량제공등이다.이에따라 서울시가 에르데이를 상임지휘자로 기용하는데 드는 비용은 1년에 2억원정도가 된다. 지난해와 올해 서울시향의 수석객원지휘자로 활동한 에르데이는 1928년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나 리스트음악원졸업과 함께 헝가리 라디오합창단 음악감독으로 발탁된뒤 곧바로 부다페스트오페라하우스 수석지휘자로 임명돼 뛰어난 역량을 발휘해온 헝가리의 정상급지휘자이다. 그는 베를린심포니와 베를린필,런던필,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등 미국및 유럽의 유수한 교향악단을 지휘했으며 오페라지휘자로서도 주목을 받았다. 지금은 네덜란드라디오심포니의 종신객원지휘자와 핀란드 국립오페라단,일본 요미우리 니폰 심포니의 수석객원지휘자의 직함을 갖고있다. 서울시향은 지난 90년말 20여년동안 상임지휘자를 맡은 정재동씨가 물러남에 따라 지난해와 올해 객원지휘를 한 13명의 지휘자에게 단원들이 점수를 매기는 방식으로 상임지휘자 인선작업을 벌여왔다. 그 결과 이탈리아의 말도체카토와 불가리아의 에밀타바코프,에르데이 순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는데 국내체류가능기간등 시향의 음악적 성장에 도움이 될 여러 조건에서 에르데이가 적임자로 결정된 것이다. 서울시향의 「상임지휘자 선임을 위한 자문위원회」는 서울예고 한상우 음악과장과 음악평론가 이상만씨,전KBS 교향악단 음악감독 김만복씨,연세대 이재헌교수,서울시향지휘자 박은성씨,서울시향 하영수 운영위원회대표등으로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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