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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인 김동환 잡지편집자로 정의를””

    파인 김동환(金東煥)의 탄생 100주년를 맞아 그의 다양한면모 가운데 출판인으로서의 면모를 조명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최근 출판문화학회(회장 전영표)가 개최한 제10회 학술포럼에서는 제1부 주제로 ‘잡지·출판인으로서의 파인 김동환연구’를 다뤘다.이 포럼에서 류재엽(신구대)전영표(〃)부길만(동원대)출판미디어학과 교수,고덕환 한국출판사연구소장이각각 주제발표를 했다. 고소장은 ‘출판인으로서의 파인 김동환 연구’에서 “파인은 1929년 4월 삼천리사를 설립,잡지와 도서를 출판하였으며도서는 별 도로 계명사(啓明舍)에서도 출판했다”면서 “같은해 창간한 월간종합지 ‘삼천리’가 총독부 원고검열로 제때 발행이 어렵게 되자 ‘공약삼장’에서 도서출판을 통해이를 보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고 설명했다.고소장은 파인이 단행본과 신문화운동 30권 시리즈,문학전집,‘삼천리’별책부록으로 발행한 ‘조선사상가총관·반도재산가총람’등을 들었다. 파인은 흔히 서사시 ‘국경의 밤’이나 서정시 ‘산넘어 남촌에는’등의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그러나 일제하 대표적월간지인 ‘삼천리’를 발행한 잡지인으로도 활약했다.전영표교수는 ‘삼천리 발행과 잡지인 김동환’에서 “일제하에서 해방후까지 발행한 잡지는 ‘삼천리’가 152호,삼천리의후신인 ‘대동아’3호,월간여성지 ‘만국부인’1호,계간문학지 ‘삼천리문학’2호,해방후 속간 ‘삼천리’20호를 합치면총178권의 잡지를 펴냈고,50년 생애 가운데 20년을 잡지와살다갔다”며 “파인을 잡지편집자로 정의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한편 일제 말기 잡지 ‘삼천리’의 친일보도를 비롯해 파인개인의 친일행적에 대한 따가운 비판도 제기됐다.부길만교수는 “1938년 창간한 ‘삼천리문학’은 출발부터 친일적인내용을 노골적으로 담았다”고 지적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독립·친일후손‘화해의 악수’

    한겨울 추위가 기승을 부린 11일 오후 7시 서울 명동 인근 국민은행본점 앞. 몇몇 노인이,해방후 친일파 처단의 본거지인 반민특위가 있던 이곳으로 모여들었다.조문기(趙文紀·74)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을 비롯해 김정육(金正陸·66) 김준형(金駿炯·57) 김영식(金英植·68)씨 등이다. 조이사장은 건국훈장을 받은 애국지사,김정육·김준형씨는 반민특위의 상징적 인물인 김상덕(金相德)위원장과 김상돈(金相敦)부위원장의자제들이다. 반면 김영식씨는 일제 말 친일잡지 ‘삼천리’를 경영한시인 김동환(金東煥)의 아들이니 이 모임은 ‘극과 극’이 만났다고나 할 자리다. 모임은,민족문제연구소가 향후 설립할 ‘반성과 화해를 위한 재단’설립 문제를 원로들에게 보고하고 자문·협조를 구하기 위해 마련했다. 자기소개 시간이 되자 김영식씨는 “친일반민족 행위를 한 김동환의자식”이라고 스스로를 밝히고는 돌연 맞은편에 앉은 조이사장 등 좌중을 향해 큰절을 하였다.한참을 꿇어 엎드렸다가 일어선 김씨의 눈에는 눈물자국이 역력했다.아버지를 대신해흘린 ‘참회의 눈물’이었다. 부친을 대신한 김씨의 ‘진실한 사죄’에 대한 ‘찬사’와 ‘뜨거운악수’가 뒤를 이었다. 조이사장은 “해방 직후 친일파들이 기가 죽은 때가 잠시 있었는데 그 후로 이런 장면은 처음”이라며 김씨에게‘화해와 용서’의 악수를 청했다.나머지 두 김씨도 김영식씨를 ‘동지’의 심정으로 반겼다. 조이사장은 “독립운동가와 친일경력자,그리고 그 유족들이 만나서화해와 과거사 청산을 함께해야 한다”고 역설하고는 “오늘 모임은그 첫출발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동참한 서우영(徐羽泳·37)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도 “자주 이런 자리를 마련해 화해와 역사청산을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2000년 미술계 ‘미디어아트’ 주류진입

    2000년 미술계는 제3회 광주비엔날레,‘미디어시티 서울 2000’ 등국제적인 행사로 축제분위기를 이룬 가운데 미술품 거래 과세 등 현안으로 골머리를 앓은 한 해였다. 광주비엔날레는 세 차례의 행사를 치르면서 많은 성과를 거뒀지만시행착오 또한 적지 않았다.‘아시아성’에 초점을 맞춘 제3회 광주비엔날레는 기존의 서구중심 비엔날레와 차별화된 모습을 보였다는점에서 일단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그러나 전시 총감독 교체,본전시 한국작가 사퇴파동 등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고질적인 화단정치와분파주의를 극복하는 일이야말로 한국 미술계의 영원한 과제다. 올 미술계의 화두는 단연 미디어 아트다.실험미술 정도로 인식되던미디어 아트는 이제 그 지평을 넓히며 미술계의 ‘주류’로 떠올랐다.미디어와 컴퓨터 기술을 토대로 하는 미디어 아트는 평면회화 중심의 기존 미술계에 새로운 예술적 각성을 요구하고 있다.지난 11월 막을 내린 ‘미디어시티 서울 2000’은 그 기폭제가 됐다.70여억원이들어간 이 행사는 기대만큼의 호응을 얻지는 못했지만 미디어 아트가결코 어려운 예술이 아님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야곱의 사다리’란레이저 작품으로 화제를 모은 백남준(68),23년만에 고국전을 가진 재불작가 김순기(54) 등 비디오 아티스트들의 기획전도 미디어와 미술의 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기에 충분했다.멀티미디어 미술관인아트센터 나비(NABi)와 일주아트하우스의 개관 또한 문화예술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남북관계의 진전은 미술계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몰고 왔다.지난 2월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세계평화미술제전 2000’에서는 정영만·김룡권·김동환 등 북한작가의 작품이 최초로 당국의 허가를 얻어 전시됐다.이어 북한 천재화가 오은별의 전시가 열렸고,인민예술가 정창모는북한 화가로는 처음으로 서울 땅을 밟아 주목받았다. 미술품 종합소득세 문제는 지난 10년간 논란을 빚어온 미술계의 뜨거운 감자다.미술품 양도 및 매매차익에 대한 과세는 미술경기 침체와 맞물리며 미술계의 커다란 반발을 샀다.그러나 국회 재정경제위가지난 14일 소위원회를 열어내년 1월1일부터 시행될 미술품 종합소득세의 부과 시기를 3년간 미루기로 결론지음으로써 또 다시 유보됐다. 90년 법제화된 미술품 거래과세가 91·93·96·98년에 이어 다섯차례나 시행이 연기된 것이다.미술계에서는 급한 불은 껐지만 미술품과세법조항 자체가 폐기된 것은 아닌만큼 미술시장의 저변을 넓히는 등 경쟁력을 갖춰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종면기자
  • 정부산하委 비상임 민간위원 사외이사 겸직실태 전면조사

    정부는 각종 정부산하 위원회에 비상임위원으로 있으면서 기업체 사외이사로 활동중인 사람들의 실태를 조사해 개선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국무총리실의 한 고위관계자는 25일 “금융감독위원회의 일부 비상임위원들이 특정 기업체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는 점을 감안,행정부처 전반에 걸쳐 산하위원회에 참여하는 민간위원들의 기업 사외이사 겸직 실태를 전면 조사할 것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비상임위원들이 참여하고 있는 행정부처 위원회 소관업무와,사외이사로 있는 기업체 성격을 비교해 사외이사로서의 활동이 정부위원회 업무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사외이사를 맡지않도록 권유하고 불응하면 정부 비상임위원직을 물러나도록 하는 방안을 논의중이다. 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도 비상임위원인 이성순(李成舜) 성균관대 교수가 제일화재 사외이사로 일하고 있는 등 3명이 사외이사를 겸직중인 것으로 나타났다.국회정무위 소속 김부겸(金富謙·한나라당)의원은 이날 “이 교수와 공정위 약관심사자문위원인 김광년(金光年) 변호사가 현대 자동차와 현대강관의 사외이사로,같은 직책을 맡은 김동환(金東煥)변호사는 웅진닷컴의 사외이사로 재직중”이라고 밝혔다. 금감위의 한 고위관계자는 “기업체 사외이사를 겸하고 있는 금감위소속 비상임위원 3명이 모두 사외이사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고말했다. 사퇴의사를 밝힌 금감위의 비상임위원은 삼성엔지니어링에서 사외이사로 활동중인 국찬표(鞠燦杓) 위원(서강대교수),LG그룹이 대주주로있는 데이콤의 박상용(朴尙用)위원(연세대교수),현대중공업의 박진원(朴進遠) 위원(변호사)이다.이들 비상임위원은 금감위에서 매월 거마비를 포함 120만원 정도의 보수를 받고 있으며 업체에서는 사외이사보수로 월 300만원 안팎을 받고 있다. 박현갑기자 eagleduo@
  • 업무는 따분 승진은 막막 예산처 간부들“낙이 없네”

    기획예산처의 인사 숨통은 좀처럼 트이지 않는다.옛 재정경제원 시절에는같은 조직이었던 현재의 재경부와 대비된다.재경부와는 달리 인사 숨통에 도움이 되는 산하의 청(廳)도 없는 데다 ‘낙하산’으로 갈 수 있는 넓은 의미의 공기업과 금융기관이 직접적인 영향권 내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올 들어 재경부는 부이사관 과장 중 9명이 정식 국장(급)으로 됐다.재경부출신이 청와대와 한국은행,예금보험공사 등으로 옮기면서 빈 자리도 생긴 데다 관세청,조달청 등 산하 기관 국장으로도 소화됐기 때문이다. 반면 17일 현재 올 들어 기획예산처에서 부이사관 과장이 국장으로 승진한경우는 단 한번.지난 1월 당시 정동수(鄭東洙)기획관리실장이 환경부 차관으로 승진하면서 빈 자리가 생긴 게 유일하다. 정지택(鄭智澤)전 예산관리국장이 지난달 말 중앙종합금융의 부회장으로 옮기면서 김동환(金東煥)총무과장이 18일쯤 국장(공보관)으로 승진하는 게 올들어 두번째다.정 부회장의 명예퇴직이 기획예산처 인사 숨통에는 그나마 가뭄 끝에 단비격인 셈이다. 재경부는 부이사관이 된 지 늦어도 1년이 되면 국장급으로 되지만 기획예산처는 부이사관이 된 지 3년이 지나도 과장으로 남아 있는 경우까지 있다.기획예산처의 한 과장은 “재경부로 남아있는 게 좋은 선택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할 정도다. 기획예산처 간부들은 업무도 ‘따분한’데다 예산도 한정돼 있고 승진 기회도 별로 없어 재경부쪽과 통합하는 것을 내심 바라지만 공개적으로는 말하지않고 있다.조직을 생각해서다. 곽태헌기자 tiger@
  • ‘언론인 김동환’ 생애 재조명

    시인 파인(巴人) 김동환(金東煥·1901∼?)의 언론·잡지 분야의 활동내용을전집으로 묶은 ‘언론인 파인 김동환연구’(사진·전15권·신성출판사)가 출간됐다.이번 ‘전집’은 ‘파인 김동환전집’‘삼천리영인본’‘파인 김동환문학연구’에 이은 파인 자료의 ‘결정판’. 모두 파인의 3남 영식씨(67)가편찬했다.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파인 김동환이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분야는 신문기자였다.1924년 당시 고향인 함북 경성에서 발행되던 ‘북선(北鮮)일일신문’을 시작으로 동아·시대·조선일보 등에서 사회부기자로 활동했다.그는 순회기자로 함북지방을 돌며 일본인들이 이 지역 조선인들의 토지·어장을 탈취한 실태를 파헤쳤다.‘원산 총파업사태’를 현지취재하기도 했다. ‘전집’에는 그의 신문기사들과 평론가들의 ‘신문기자 김동환’ 등이 영인본 상태로 실려 있다.이밖에도 그가 계명사(啓明舍)라는 별도의 출판사를 경영한 사실,또 새로 찾은 ‘삼천리’의 ‘부록’및 영인본보유(補遺)편,가곡(歌曲) 등을 실었다. 편찬자는 “언론인으로 활동한 부친의 자료를 집대성해 언론학도들에게 연구자료로 제공하고 싶었다”고 밝히고 “부친의 일제말기 친일행적에 대해 가족을 대표해 머리숙여 사죄한다”고 말했다.값 1질 120만원. 정운현기자 jwh59@
  • ‘환경의 날’유공자 포상

    정부는 5일 환경의 날을 맞아 푸른전남21협의회 서한태 이사장에게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하는 등 환경 보전에 공이 큰 유공자들을 포상했다.포상자명단은 다음과 같다. ■국민훈장 동백장 서한태 ■녹조근정훈장 김환기(전북대 교수) ■국민포장김황희(환경노래보급협회 회장),이충웅(대자연보전환경협회 회장),정상영(한겨레신문 기자) ■근정포장 박청길(부경대 교수) ■대통령 표창 구리시 평촌1경로당,오세철(금호산업 타이어산업부 부사장),김용만(KBS대전방송총국 보도국 부장),해군작전사령부 제6전단,방효선(한국가스공사 환경영업팀장),최승일(고려대 교수),홍현종(LG칼텍스정유 상무보),서대종(한국재생유지공업협동조합 전무),한국도로공사,김종원(환경관리공단 부장) ■국무총리 표창 한라산 지킴이,진용진(한라산 지킴이 회원),인선기업,김영민(구미YMCA 사무총장),민영수(이화산업 과장),김지우(KBS 작가),윤성진(환경시설공사 사업본부장),녹색어머니회,홍순구(진들농산 대표),박길용(세명대 교수),김동환(수자원환경신문사 편집국장),신범환(북한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 소장),이석영(국립환경연구원 연구교수)문호영기자 alibaba@
  • 잡지 ‘삼천리’ 11호 최초 공개

    1948년 12월 유엔으로부터 한국정부 승인을 얻어내기 위해 프랑스 파리에서개최된 제3차 유엔총회에 옵서버 자격으로 참석한 유엔한국대표단 일행의 행적사진 등 희귀사진이 담긴 월간 ‘삼천리’ 제11호(1949년 3월호)가 처음공개됐다. 이번에 공개된 ‘삼천리’ 제 11호는 파인(巴人) 김동환(金東煥)이 해방후인 1949년 3·1 의거 30주년을 기념해 특별제작한 것으로 유엔한국대표단 일행이 유엔총회기간중 네덜란드 헤이그 소재 이준열사의 묘소를 참배하는 사진을 비롯,대표단 일행중 김활란,모윤숙이 정부승인후 외국의 귀빈들에게 우리의 문화재를 소개하는 사진 등 사료가치가 우수한 자료가 상당수 포함돼있다.제11호는 그동안 원본이 전해오지 않아 ‘삼천리’영인본에도 빠져있는 것을 파인의 3남 김영식(金英植·67·사진)씨가 최근 개인소장가로부터 입수,공개한 것이다. 이 잡지에는 개화기부터 해방이후 정부수립 직후까지의 역사적 사건을 생생히 담은 사진과 기사가 여러 건 실려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우선 1949년 2월경 ‘삼천리’ 기자가 일본으로 건너가 당시 재일거류민단장으로 있던 애국지사 박열(朴烈)과 함께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영친왕 이은(李垠)을 단독 인터뷰한 기사를 비롯해 1920년 상하이서 발행된‘노스 차이나 데일리’지가 상해 임시정부 초대총리 이동휘(李東輝)를 인터뷰한 기사도 실려있다.또 제3차 유엔총회 참석차 프랑스 파리에 체류중이던모윤숙이 현지에서 쓴 시 ‘센 江의 밤’과 일기를 비롯해 고당 조만식과 민세 안재홍이 각각 인도의 간디와 의암 손병희의 사상·행적 등에 관해 쓴 글들도 포함돼 있다. 정운현기자 jwh59@kadily.com
  • [굿모닝 새천년](18)창의력을 키우자

    ‘제3의 물결’,‘권력이동’ 등의 명저로 국내에도 많은 고정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21세기의 본질을 “지식과 정보싸움”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미래엔 지적 자본이 가장 주요한 생산요소로 작용할 것”이라며 “정보사회(제3의 물결)에서는 창의력을 가진 우수한 두뇌를 많이 길러내야 하며,이를 위해 농장식으로 이뤄지는 지금의 대량교육 방법을 탈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의 충고가 아니더라도 ‘21세기는 창의력이 지배할 것’이라는 대명제에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산업사회에서 지식사회로 패러다임이 급변하면서 뉴 밀레니엄 시대는 모든 분야에서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게 된다. 바야흐로 정보와 아이디어가 국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부상하는 ‘뇌본가(腦本家)’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디어는 하루아침에 저절로 쏟아지는 것이 아니다.창의력을 중시하는 체계적인 교육이 바탕에 깔려야 한다.창의력을 얘기할때 자연스럽게 ‘교실’을 먼저 떠올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성적위주의 암기식 교육이 판을 치고 있다.교육목표도 표준화되고 규범화된 인간을 만드는데 치우쳐 있다.유치원때부터 창의력향상을 위한 교육이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선진국과는 딴판이다.때문에교육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현재의 틀에 박힌 학교교육부터 바꿔야한다는 주장이 나온게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학교부터 바뀌지 않으면 21세기 지식사회의 장래는 암담할 뿐 이라는 지적이다.최근 학생들을 교실로부터 해방시키자는 ‘대안학교’가 붐을 이루고있는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열린 교육’의 실천으로 창의적인 인재를 배출해야 국제적인 경쟁력을 높일수 있다는 공감대에서 비롯된 것이다. 서강대 교양과정부 정유성(鄭有盛)교수는 “현재의 우리나라 교육은 창의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고 거꾸로 말살하고 있다”고 단언한다.그는 “최근 대안학교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교육개혁’을 바라는 사회분위기를 반영한것”이라며 “그러나 대안학교가 제도교육을 대신 할수 없는 만큼,학생 개개인의 개성과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수 있도록 일선 학교부터 근본적인 변화가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변화의 출발은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할수 있는 전문가 양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산업화시대에 요구되던 틀에 짜여진 업무수행능력은 21세기에는 더이상 중요치 않다.‘팔방미인’보다는 한 분야에서 독창적인 창의력을 갖고있는 전문가가 뉴 밀레니엄의 리더로 자리잡게 된다. 학교뿐 아니라 기업에서도 창의력은 무한경쟁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최대의 무기다.직원 개개인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신기술개발은 무한경쟁시대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先占)할수 있는 교두보가 된다. 공장,자본,노동같은 유형자산보다는 창의력이 뛰어난 인력에서 나오는 부가가치가 훨씬 높다는 것은 오래전에 입증됐다.현장 직원들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중시하는 ‘지식경영’도 이미 틀을 잡아 가고 있다.새로운 아이디어를 무기로 한 벤처기업이 최근 들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는 것도 이같은시대조류를 반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벤처기업이 자리잡기 위해서는 인프라를 조성하는 일이 시급하다”면서 “무턱대고 양적인 지원을 할 것이 아니라 벤처산업이 꽃필수 있는 사회 문화적인 풍토를 만드는 일이 선행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성수기자 sskim@ * * 열린교육 어떻게 “영어수업에 교과서 이외에 영어로 된 만화·노래·퀴즈·퍼즐·만화영화등 다양한 자료를 활용,학습흥미를 일으키고 있습니다”(서울 남강중 성모연교사) “바른생활 시간에는 인형으로 역할놀이를 하거나 실천카드를 가지고 생활태도를 점검토록 합니다”(서울 강덕초등학교 박영옥교사) 교육부 주최로 이달초 열린 ‘제1회 열린교육 실천사례 연구발표대회’에참여한 전국 20개 초등·9개 중학교 가운데 우수발표 사례이다. 암기·주입식 교육에서 탈피,학생들의 학습동기 유발과 창의력·사고력을키우기 위한 학생중심의 교육,열린 교육이라는 용어는 이제 낯설지 않다. 86년 서울의 운현초등학교 등 일부 사립학교를 중심으로 선보인 수요자 중심의 교육은 당시 획기적이고 신선한 충격으로받아들여졌다.정부에서도 시도하지 못했던 교육방법이 일선 현장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교육부는 93년전국 시·도교육청별로 시범학교를 지정,본격적인 지원에 나섰으며 95년 ‘5·31 교육개혁’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아직 초등학교보다도 ‘열린교육’수준이 떨어지는 것으로 여겨지는 중학교도 ‘수준별 교육’으로 차근차근 변화를 모색한다는 방침이다. 일부 중학교에서는 ‘팀 티칭(Team Teaching)’ 즉 ‘통합교육’ 등 새로운 교수법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예컨대 국사시간의 삼국시대 음악과 미술,지리 관련 단원일 때 해당과 교사들이 수업에 참여,학생들의 이해를 돕는 수업방식이다.폭넓고 깊이있는 교육을 위해서다. 하지만 열린교육은 대학입시에 매달리는 고교에서는 아직 불가능한 실정이다.한가롭게 학생들의 창의성 등을 따질 수 없다는 게 일선 학교의 목소리이다.교육부의 한 관계자는 “2002년 대입제도가 변화하는 만큼 고교에서도 학생들의 특성과 능력을 고려한 다양한 교육이 이뤄져야 할 것”면서 “디자인·만화 등의 특성화고나대안학교 등도 열린교육의 한 예”라고 말했다. 박홍기기자 hkpark@ *[밀레니엄 인터뷰] (주)세아실업 김동환사장 “반도체 칩은 제품수명이 3개월이지만 포테이토 칩은 30년이 될 수 있다” 서울 종로구 당주동 ㈜세아실업 김동환(金洞煥·42)사장이 평소 아이디어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면 애용하는 비유다.하찮은 생활속의 아이디어가 첨단기술보다 오히려 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역설적인 논리다. 언뜻 말장난이라고 웃어 넘길 수 있겠지만 김 사장의 이력을 보면 간단치않은 실천철학임을 알 수 있다. 그는 볼펜 뒤를 돌리면 볼펜심 끝부분에서 불빛이 나오도록 한 ‘반디펜’을 고안,‘대박’을 터뜨린 주인공.교통경찰이 야간단속을 하며 목과 어깨사이에 손전등을 끼고 어렵게 스티커를 발부하는 모습을 보고 떠올린 아이디어였다. 군·경찰·안전요원 등이 주로 사용하고 있으며 지금은 수출이 전체 매출액의 70%가 넘는다.개당 80센트에 불과한 이 제품의 올해 예상매출액은 놀랍게도 100억원.수익률도 20%나 돼 웬만한 벤처기업수준이다. 학생들이 각이 진 책상모서리때문에 팔뚝이 짓무르는 것을 보고 개발한 ‘이지 암’(EASY ARM)도 ‘반짝 아이디어’의 산물이다.인체공학적인 형태로만든 플라스틱 제품으로 책상 모서리에 부착토록 돼 있다. ‘젖은 음식쓰레기 즉석 건조기’는 일본시장 석권을 노리는 야심작이지만발상은 단순하기 짝이 없다.씽크대 개수대 구멍에 끼우는 음식쓰레기 거르는 통에 강력 드라이기를 부착,즉석 건조가 가능한 제품이다.발효방식의 기존건조기는 가정용도 대당 50만∼200만원의 고가품이지만 이 제품은 개당 2만원에 불과하다.현재 일본 정부에 납품을 추진중으로,그가 예상하는 일본시장규모는 연 200억원정도다. 이처럼 남다른 사고와 관찰력 덕택에 김 사장이 보유한 특허·실용신안만도100건이 넘는다. 그렇다고 그가 배움이 많았던 것은 아니다.전북 익산출신으로 가정형편 때문에 중2때 학교를 중퇴한 뒤 뒤늦게 23살에 방송통신고에 입학했고 방송통신대 졸업이 최종학력이다. 그는 “도전이 없는 삶이란 실패는 없겠지만 결국 불행만이 남게 될것”이라며 도전과 창의정신을 예찬했다. 김환용기자 dragonk@
  • [문명자 회고록] 비화 3공의 실세들 (6)반대자들의 변신

    5·16 직후 워싱턴에 있던 한국학생·지식인·예비역 장성 가운데 5·16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백악관앞에서 연일 ‘5·16 반대시위’를 벌였다.이는 미국정부가 5·16을 인정하지 않도록 압력을 넣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 일을 처음 시작한 사람은 5·16후 ‘한국인 정치망명 1호’를 기록한 내 남편 최동현(崔潼鉉)이었다. 5·16 반대시위에 열성적으로 참여한 사람들로는 당시 주미대사였던 장리욱(張利郁·작고)박사,주미대사관 참사관 신병현(申秉鉉)전 부총리,최경록(崔慶祿)·강문봉(姜文奉·작고)·김웅수(金雄洙)장군과 국회의원 양일동(梁一東·작고)씨 등이었다.강영훈(姜英勳)전 국무총리는 5·16직후 시골에 있어시위에 참가하지는 못했지만 워싱턴으로 온 뒤부터는 이 모임에 항상 참여했다. 5·16 당시 강씨는 육사 교장이었는데 쿠데타세력이 요구한 육사 생도들의5·16지지 시가행진을 거부했다.강씨와 처남 매부간인 김웅수 장군(전6군단장),장면(張勉) 정권에서 육참총장을 지낸 최경록씨도 5·16을 반대했다.당시 2군사령관이던 최씨는 자기밑에부사령관으로 있던 박정희(朴正熙)가 쿠데타를 일으켰으니 하극상 사태를 당한 셈이었다.최씨는 조선일보 등에 “군은 절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글을 발표하는 등 5·16을 반대했다.이 세사람은 5·16이 기정사실화된 후 미국측 배려로 미 국방부 장학생으로 미국에 왔다. 백악관앞 시위에는 워싱턴 조지타운대학에 재학중이던 한국유학생도 많이참여했다.당시 열심이던 학생으로는 오세응(吳世應·전 국회부의장)씨와 한광년이 기억에 남는다.그때 오씨는 워싱턴지역 한국학생회 회장이자 ‘한국인 택시운전사 1호’였다.한광년은 초지일관하지 못하고 70년대 들어 중앙정보부의 공작에 넘어가고 말았다. 5·16 직후 박정희는 민주당 정권이 임명한 주미 대사관 공관원들을 모두해임시켜버리고 그 자리를 온통 자신의 수족들로 채웠다.그가 특히 신경을썼던 주미대사 자리에는 당시 하버드대학 청강생으로 있던 정일권(丁一權)을 ‘미국통’이라고 해서 앉혔다. 정일권이 주미대사로 앉게 되자 백악관앞 5·16 반대시위 참여자 중 여러사람이 입장이 난처하게 되었다.남편 최동현부터 정일권의 하버드시절 그의 영어가정교사를 했던 사람이었다.영어선생과 학생이 데모대장과 진압대장으로만난 셈이었다.또 강문봉 장군은 정일권과 같은 함경도출신으로 현역때부터형님,동생 해온 사이였다.그런 그가 백악관앞에서 반(反) 5·16 시위를 하니 정일권이 닦달할만도 하였다.그때마다 그는 “골프치러 가려고 운동화 신고 나서는데 최경록이가 와 같이 가자고 해서 할 수 없이 따라갔어요”하는 식의 변명으로 모면하곤 했다. 한편 백악관 앞에서 5·16 반대시위를 벌인 사람들의 그후 행적을 살펴보면 여러가지 생각되는 바가 많다.박정희는 이들을 한 사람씩 회유해 한국으로불러들였다.민주당정권때 주미대사관 경제담당 참사관으로 있던 신병현씨는5·16이 나자 이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으며 백악관앞 시위에는 그의 부인까지도 참여했던 것으로 기억된다.이후 미국에서 세계은행 이사로 있던 신씨는 그의 후배 김정렴(金正濂)이 박정희의 비서실장이 된 후 회유공작에 넘어가 귀국,청와대 경제특별보좌관을 거쳐한국은행 총재를 지냈다.최경록장군도 “선배님,그러실 것 없이 한국에 와서 손잡고 일합시다”하는 박정희의 간청에 결국 귀국해 주영대사,교통부장관 등을 지냈다. ‘백악관앞 시위동지’들 중 가장 부끄럽게 처신한 사람은 강영훈이라 하겠다.강영훈도 초기에는 깨끗하고 꿋꿋하게 살았다.그의 부인은 미장원에서 일했는데 독한 파마액때문에 손가락이 모두 헐 지경이었다.그런 생활고 때문이었던지 70년대 들어 강씨는 결국 중앙정보부의 돈으로 ‘한국문제연구소’라는 것을 설립,미국 언론계·학계에 친박정희세력을 심는 역할을 담당했다. 백악관 앞 시위에 참가하지는 않았지만 5·16을 반대한다고 떠들던 사람들의 행적도 기억해둘 만하다.장면 정권하에서 민주당 원내총무를 지낸 이석기(李錫基·작고)씨와 나중에 야당 당수를 지낸 이철승(李哲承)씨가 그들이다. 이석기는 주미대사관 국정감사를 위해 워싱턴에 왔다가 5·16소식을 듣고는장리욱 대사 방에 달려와서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붙이고 “대사님,미군을 동원시켜야 합니다”하면서 열을 올렸다.그런데 5·16이 기정사실화되고 미 CIA부장 매쿤의 초청으로 당시 김종필(金鍾泌·현 국무총리) 중앙정보부장이처음 미국에 왔을 때의 일이다. 주미 대사관 중앙정보부 공사 김동환의 집에서 김종필 부장 환영파티가 열려 다른 특파원들과 함께 갔더니 뜻밖에도 이석기와 이철승씨의 모습이 보였다.나는 이석기에게 대뜸 물었다.“이의원,와이셔츠 걷어붙이고 미군 동원시키라던 분이 웬일이세요? 번지수를 잘못 알고 오신 것 아닙니까?” 이석기는 당황한 표정으로 변명했다.“김 부장하고 나는 한 고향 출신이라 옛날부터잘 아는 사이입니다.게다가 김 부장의 춘부장도 제가 잘 알고,김 부장의 형님도 내가 은행에 취직시킨 처지라 먼길 오셨는데 몰라라 할 수도 없고….” 뒷날 김종필이 정계에 진출할때 이석기는 자신의 지역구인 부여를 주고 자신은 서울로 옮겨갔다.그 점에선 이철승도 마찬가지다.그토록 열렬히 5·16을 반대한다던 그가 왜 그자리에 왔었겠는가.정리 정운현기자 jwh59@kdaily. com
  • 구치소 ‘히로뽕 향연’ 사실로

    히로뽕 사범이 구치소 수감때 히로뽕을 몰래 반입,동료 재소자들과 투약한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경찰과 구치소측의 피의자 및 재소자 소지품 검사가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지검 강력부(閔有台 부장검사)는 1일 히로뽕 2g을 구치소에 반입,투약한 양경덕(梁景德·29·전과 4범)·김병철(金炳鐵·27)·김동환(金東煥·25)씨 등 3명을 향정신성의약품 관리법위반혐의로 추가 기소했다. 양씨는 지난 5월 18일 히로뽕 밀매 및 복용 혐의로 경찰에 구속돼 부산구치소에 수감될 당시 히로뽕을 숨겨놓은 팬티를 영치해 놓았다가 부산교도소로이감된 뒤 8월 17일 부산구치소로 재이감되자 영치물을 확인하면서 숨겨놓은 히로뽕을 몰래 꺼내 수감복 상의 재봉선 끝자락에 감춰 소지해왔다. 양씨는 같은달 20일 사방(舍房)에서 히로뽕 0.03g을 꺼내 몰래 투약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공범인 김병철씨는 양씨로부터 히로뽕 1회 분량인 0.03g를 건네받아 소지품 가방에 숨겨 놓았으며,김동환씨는 김씨가 숨겨놓은 히로뽕을 훔쳐 식수에 타서 마셨다.양씨는 같은 방 재소자들이 히로뽕 반입사실을 알게되자 증거를 없애기 위해 나머지 히로뽕 1.94g을 세면장에 내다버렸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지난 8월 24일 재소자로부터 구치소내 히로뽕 반입 및 투약 제보를받고 수사에 착수했다.이에 따라 재소자 28명에 대한 모발 및 소변감정을 벌였으며 소변검사에서 양성반응을 보인 김씨를 집중 추궁한 끝에 이들의 투약사실을 밝혀냈다. 부산 김정한기자
  • 본사 정운현차장 ‘나는 황국신민이로소이다’ 출간

    역사는 정직해야 한다.정직한 역사는 민족의 밝은 미래를 보장한다.그러나우리의 현대사는 권력에 의해 왜곡된 역사로 얼룩져 있다.현대사의 왜곡은해방 후 당연히 단죄됐어야 했던 친일세력들이 권력의 핵심을 차지한 불행한 일로부터 시작됐다.많은 것을 희생하며 오로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워 온 애국투사들은 독립된 조국의 무대에서 밀려나고,친일세력이 옷을 갈아입고그 무대를 장악했다는 사실은 민족적으로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부끄러운자화상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나는 황국신민이로소이다’라는 책이 나왔다.(개마고원 8,500원) 이 책은 정운현 대한매일 문화부 차장이 1998년 8월14일부터 올 4월26일까지 대한매일(98년 11월11일 이전에는 서울신문)에 ‘친일의 군상’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글에다 일부 내용을 추가하여 만들어졌다.친일파 문제가 일간지에 연재된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다. 친일파 문제를 집요하게 천착해 온 지은이는 일본에서 입수한 새로운 자료등을 바탕으로 기존의 연구성과를 뛰어넘는 알찬 내용을 담아 이 책을 꾸몄다.강화도조약 체결 때 일제에 협력한 ‘친일파 1호’ 김인승,조선인 출신신직(神職) 이산연,만주 특무공작의 거두 김창영 등은 ‘친일의 군상’ 연재를 통해 처음 공개된 친일파들이다.지은이는 또 최남선의 친일 행적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7년 먼저 시작됐음을 자료를 통해 입증했다. 이 책은 을사오적 중의 한 명인 이근택,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우범선,공주갑부 김갑순,박흥식,이선근,이항녕,김활란,윤치호,윤보선 일가,최남선,김성수,방응모,주요한,김동환,이광수,여자 밀정 배정자,무용가 최승희,승려 이종욱,최린,이갑성,재일 친일파 거두 박춘금,고등계형사 선우순·갑 형제 등많은 친일파들의 행적을 인물별로 소개한다. 저자는 집필동기를 이렇게 말한다.“친일파 문제는 법적·역사적 청산이 안됐다.많은 친일파들이 해방 후에도 권력 엘리트로 군림해 옴에따라 사회정의에 대한 가치관의 혼란을 가져왔기 때문에 사회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민족사를 더럽힌 사람은 역사에 오명으로 기록된다는 엄숙한 경고를 보여줘야한다”. 친일파 문제를 청산하지 못한 부끄러운 현장은 우리사회 도처에 깔려 있다. 민족의 성지인 국립묘지에도 백낙준·진의종·백두진·엄민영·황종률·이은상·이선근·조진만·이응준을 비롯,10명이상의 친일경력자들이 국립묘지에묻혀 있는 것이다. ‘위대한 3·1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제정된 3·1문화상 예술분야 수상자중에도 조연현·안수길·백철·모윤숙·최정희·이상범·김인승·김기창·김성태 등 모두 13명의 친일파가 포함돼 있다.정부차원의 독립유공자 심사위원에 친일파가 포함됐는가 하면 ‘동인 문학상’‘난파 음악상’등 친일파 인사들의 이름은 딴 여러가지 상이 만들어졌다.최근에는 이화여대에서 친일파인 김활란의 이름을 딴 ‘우월 김활란상’을 제정하겠다고 밝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겼다. 저자는 아직도 우리사회에 뿌리깊게 남아 있는 친일의 잔재를 끈질기게 추적하고 있다.친일문제의 청산은 굴절된 현대사를 바로 잡는 중요한 작업이다.그 작업은 역사의 시계를 제대로 돌아가게 하는 동력이 될 것이다. 이창순기자 cslee@
  • 정보화예산 민간전문가가 짠다

    민간이 예산을 짠다. 기획예산처는 24일 내년도 정보화사업 예산편성에서 관련 37개 부처와 사업의 연계성을 높이고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민간이 주도적으로 예산을 조정하도록 했다.이를 위해 30·40대 중심의 민간전문가 7명으로 조정반을 구성,주도적 역할을 맡기기로 했다. 전문가들이 맡는 조정 대상은 37개 부처가 내년도 166개 정보화사업을 추진하며 요구한 9,597억원이다. 이 요구액은 지난해보다 17·4% 증가한 올해의 정보화사업 예산(6,274억원)보다 무려 50% 가량 증가한 규모다. 주요 예산 요구액은 ▲등기업무 전산화(대법원) 777억원 ▲특허업무 전산화(특허청) 566억원 ▲중소기업 Y2K해결 지원(중기청) 59억원 ▲시·군·구 행정종합정보화(행자부) 190억원 ▲고용안정 인프라 구축(노동부) 219억원 ▲슈퍼컴퓨터 도입 운영(기상청) 77억원 ▲초·중등학교 학내 전산망 구축(교육부) 294억원 등이다. 민간 조정반은 이 요구액을 놓고 다음달 말까지 사업 타당성과 예산 소요량,적정 예산증가율 등의 실무안을 마련할 예정이다.기획예산처 관계자는 “민간에 예산편성을 아웃소싱하는 것은 그만큼 전문성을 높이겠다는 뜻”이라며 “민간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해 최종 예산을 짤 방침”이라고 말했다.이에따라 내년도 정보화 예산은 올해 증가율보다 높은 30%선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민간전문가는 염헌영(廉憲英·서울대 전산학과 교수) 허순영(許舜寧·KAIST 테크노경영대 교수) 김동환(金東桓·중앙대 교수) 정국환(鄭國煥·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오광석(吳光錫·한국전산원 기획조정실장) 박정수(朴釘洙·서울시립대 행정학과 교수) 박기식(朴基植·한국전자통신연구원 표준시스템연구 팀장)씨 등이다. 박선화기자 psh@
  • [정직한역사되찾기]연재를 마치며-자료제공·격려해준 독자에 감사

    작년 8월14일자로 첫회 연재를 시작한 ‘친일의 군상’은 연재 8개월만에 34회로 나래를 접는다.이 연재물은 본지가 과거 ‘서울신문’의 구각을 벗고구한말 민족지 ‘대한매일신보’의 뿌리를 되찾으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시작한 야심작이었다. 한국언론사에서 일간지 사상 처음으로 시작한 이 연재는 시작 전부터 학계와 독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모았다.해방후 반민특위의 좌절로 친일파 문제는 ‘역사의 미라’처럼 썩지 않은 채 논란의 여지로 남겨져 왔다.그러나 언론계는 물론 역사학계조차 정치적 상황을 이유로 한동안 이 문제를 외면해왔다.오직 재야사학자 임종국만이 외로운 길을 가며 평생을 이 분야 연구에바쳤을 뿐이다.이 연재는 그가 뿌린 씨앗이 싹 하나를 움틔운 것이라고 할수 있겠다. 본사가 이 연재를 시작한 취지 중의 하나는 금세기에 발생한 역사적 문제는 금세기에 마무리하고 넘어가자는 역사적 사명의식에서였다. 수년전 모 일간지에서도 이같은 내용의 연재를 시도한 적이 있다.그러나 어떤 이유에선지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그때만 해도 분위기가 성숙되지 못했던 탓인지도 모른다.따라서 이번에 본지가 이 연재를 기획,실행에 옮길 수있었던 것은 50년만의 정권교체와 같은 우리사회의 대변혁이 한 요인이었다고 생각된다. 연재기간중 자료제공과 함께 편지나 전화로 격려해주신 독자여러분께 지면을 빌어 감사드린다.특히 자신의 부친이 연재대상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자료제공과 함께 호의를 베풀어주신 파인 김동환의 자제 김영식 선생에게 특별히 감사드린다.본 연재물은 대상인물을 일부 추가하여 조만간 단행본으로선보일 예정이다. 정운현기자
  • 파인 김동환 문학세계 정리

    최초의 장편서사시 ‘국경의 밤’과 ‘봄이 오면’‘산너머 남촌에는’ 등감미로운 서정시로 우리 귀에 낯익은 시인 파인(巴人) 金東煥(1901∼?).기자·문인·출판인 등 다양한 일생을 살다간 그의 삶 가운데서 그의 문학적 면모를 집대성한 ‘파인 김동환 문학연구’가 출간됐다.1백질 한정판 출간(논문자료사 간행·전30권,연락처(02) 353-0772) ‘파인 김동환274’은 1925∼98년 사이 문인이나 문학도들이 쓴 문학평론(128편)·연구논문(48편)·참고문헌(364편) 등과 가족관계 자료 171편 등 총700여 편을 담고 있다.문인 한 사람의 관련자료를 이 정도로 방대하고 밀도있게 집대성한 예는 국내에서 처음있는 일이다. 이 총서는 파인의 3남 金英植(66·전직공무원)씨가 6년간 혼신을 다하여 수집,편찬한 것이다.金씨는 여류작가 金知原·采原씨의 이복오빠다. 1925년 문예지 ‘금성(金星)’을 통해 문단에 데뷔한 이래 1950년 한국전쟁 기간중 납북될 때까지 파인이 남긴 작품은 장르를 통틀어 700여편.이 작품들의 전체 목록이 밝혀진 것도 이 총서를 통해서다.제1권 ‘총람편(總覽篇)’에는 파인의 아호·필명에 얽힌 이야기와 함께 각 장르별 작품연보·화보(畵報) 등이 수록돼 있다. 한편 이 총서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파인의 ‘어두운 부분’인 친일문장까지도 망라하고 있다는 점이다.학도병 출진을 권유한 친일시 ‘권군취천명(勸君就天命)’(‘매일신보’43년 11월7일)을 비롯해 ‘미영장송곡(米英葬送曲)’(‘매일신보’42년1월13일)등.편자 김씨는 “친일강요시대에 부친이 친일성향의 글을 써 오욕의 길을 걸었다”며 “아버지의 친일죄과를 용서해 주실 것을 빌면서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밝혔다. 편자는 이에 앞서 94년 파인의 일대기 ‘아버지 파인 김동환’을,95년에는‘파인 김동환전집’과 파인이 창간,주간으로 있었던 ‘삼천리’를 영인본(전32권)으로 출간한 바 있다.鄭雲鉉 jwh59@
  • 김지원씨 새 장편 ‘낭만의 집’

    ◎로맨스 부부·다섯 딸의 삽화같은 이야기 파인 김동환 시인과 소설가 최정희를 부모로 둔 작가 김지원(56)은 어려서부터 문학적 분위기 속에서 자랐고,당연하다는 듯이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에게 있어 문학을 한다는 것은 공기를 호흡하는 것과 같았다. 이런 영향은 동생 김채원에게로 이어져 그 역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부모를 통해 자연스레 문학의 늪에 빠진 작가 김지원에게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그는 말한다. “사는 것은 사랑을 배우고 완성해 가는 과정이지요” 화해와 조화의 정신 속에 사랑을 이뤄가는 것,그 드높은 ‘인간주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그는 오늘도 살아가고 문학을 한다. 김씨가 이번에 펴낸 새 장편소설 ‘낭만의 집’(작가정신)에는 이러한 작가의 세계관이 오롯이 담겨 있다. 로맨스 부부임을 자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그리고 다섯 딸의 삽화같은 이야기가 소설의 줄기를 이룬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오늘날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시대적 질문과 함께 자신의 오랜 문학적 화두인 애정과 인연의고리를 섬세하고 따뜻하게 보여준다. 이 소설 속의 다섯 딸들은 저마다 애정의 속성 혹은 애정의 조건을 보여준다. 독점적인 소유의 사랑,저돌적인 맹목의 사랑,영성적인 신비의 사랑…. 그러나 이런 것들은 이 시대 사랑의 문법이 될 수 없다. 결국 작가가 내세우는 것은 헌신적인 예지의 사랑이다.
  • 親日의 군상:9/시인 金東煥(정직한 역사 되찾기)

    ◎名詩 남긴 민족 시인 끝내 변절의 길로/“聖戰 나가 죽는것이 충성의 길” 전국 돌며 강연회/‘삼천리’ 등 각종 친일매체에 논설·평론 게재 앞장/1941년 임전대책 협의회 결성 주도… ‘황민화’ 실천/해방후 반민특위에 자수/6·25때 납북후 행방불명/3男 부친 행적 대신 사죄 “아하,無事히 건넜을까/이 한밤에 男便은/豆滿江을 탈없이 건넜을까?//저리 국경 강안을 경비하는/외투 쓴 검은 巡査가/왔다- 갔다-/오르명 내리명 분주히 하는데/발각도 안되고 무사히 건넜을까”//소곰실이 密輸出馬車를 띄워놓고/밤새가며 속태이는 젊은 아낙네/물레 젓던 손도 脈이 풀려서/파!하고 붓는 漁油등잔만 바라본다,/北國의 겨울밤은 차차 깊어가는데.(‘국경의 밤’ 제1부 첫머리에서) 새벽마다/고요히 꿈길을 밟고와서/머리마테 찬물을 솨- 퍼붓고는/그만 가슴을 드듸면서 멀니 사라지는 北靑물장수.//물에 저즌 꿈이/北靑물장수를 부르면/그는 삐걱삐걱 소리를 치며/온 자최도 업시 다시 사라진다.//날마다 아츰마다 기대려지는/北靑물장수.(‘北靑물장수’ 전문)‘시인은 가도 시는 영원한가?’ 낯익은 두 편의 시를 보면서 우리는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 한 시인을 그리워하게 된다.파인(巴人) 金東煥(1901∼?,창씨명 白山靑樹).바로 그다.흔히 그를 ‘북국(北國)의 시인’이라고도 부르는 것은 그가 함경북도 경성(鏡城)출신인데다 북방지역의 정서를 담은 시를 여럿 쓴 때문이다. ○한때 민족시인으로 각광 위에 첫번째 소개한 ‘국경의 밤’은 우리 국문학사에서 ‘최초의 장편 서사시’로 평가받고 있다.당시 북방지역 조선인들의 애환을 담은 이 시는 작품 저변에 흐르는 민족적인 색채로도 특별한 평가를 받고 있다.두번째 시 ‘북청(北靑)물장수’는 ‘북청’이란 지명을 유명하게 만들었다.당시 경성(京城·현 서울)에는 물장수를 하면서 아들이나 동생의 학비를 대는 북청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얘기다.문단생활 초창기 토속적인 정서로 식민지하 조선인들의 삶과 애환을 노래한 ‘민족시인’ 김동환.일제말기 그의 변절은 이래서 더욱 안타까운 것이다. 김동환의 첫 출발은 신문기자였다.서울 중동중학교를 마치고 1921년 일본 동양(東洋)대학에 입학한 그는 23년 9월1일 도쿄 일대를 강타한 ‘관동(關東)대지진’이 나자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하였다.그는 1924년 고향 경성에서 발행되던 ‘북선일일신문(北鮮日日新聞)’기자로 입사,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이 신문은 일본인이 발행하던 지방신문으로 일문판(日文版)과 조선문판을 발행하고 있었는데 그는 여기서 조선문판 기자로 있었다. 입사 한 달만에 그는 동아일보로 일자리를 옮겼는데 여기서도 1년을 채우지 못했다.당시 좌익기자들이 주도하던 파업에 참여했다가 결국은 그도 사표를 내고 동아일보를 떠나야만 했다.이후 시대일보·중외일보를 거쳐 27년 5월 조선일보에 자리를 잡았다.그의 5년 남짓한 신문기자 생활은 조선일보에서 막을 내렸다. 그는 신문기자보다는 시인·문필가로 더 유명하다.그의 문단활동은 신문기자 생활보다도 앞선다.24년 5월 梁柱東의 추천으로 ‘금성(金星)’지에 ‘적성(赤星)을 손가락질 하며’를 발표하면서 그는 문단에 데뷔하였다.대표작중의 하나인 ‘북청물장수’는 그가 동아일보 입사 1주일만(24년 10월13일)에 동아일보 지면에 발표한 것이다.첫 시집 ‘국경의 밤’은 이듬해 3월 한성도서(漢城圖書)에서 출간됐다.2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그의 시작활동은 40년대 초반까지 계속됐다. 신문기자,시인에 이어 그를 상징하는 또 하나는 잡지 ‘삼천리(三千里)’발행인(사장).‘삼천리’는 1929년 6월에 창간하여 42년 1월까지 통권 152호를 발행한 월간 종합잡지.(42년 5월1일자부터 ‘대동아(大東亞)’로 바뀜) ○中日전쟁 계기 친일 선회 ‘삼천리’ 창간배경에는 재미있는 일화 한토막이 있다.원래 그는 자본가는 아니었다.그가 이 잡지를 창간한 밑천은 ‘촌지’였다.당시 그는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차장)로 총독부를 출입하고 있었다.그해 가을 조선총독부는 경복궁에서 ‘조선박람회’를 개최하면서 출입기자들에게 300원씩(액수에 대해선 일부 주장이 엇갈림) ‘촌지’를 돌렸는데 당시 쌀 한가마 13원 하던 시절이니 꽤 큰 돈이었다.대부분의 기자들은 ‘공돈’이라며 옷을 사 입거나 유흥비로 날렸으나 그는 이 돈을 ‘사업자금’으로 활용한 셈. 초창기 ‘삼천리’는 우리 국토를 상징하는 제호(題號)만큼이나 민족적인 색채가 강한 잡지였다.당대의 거물 문사·논객들이 단골필자로 참여하여 조선의 역사·문화와 당대의 시대상을 주요 테마로 다루곤 했다.‘삼천리’는 당시 민간신문사들이 발행하던 종합잡지 ‘신동아’‘조광(朝光)’ 등과 어깨를 겨룰만큼 인기있는 잡지였다. 3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그는 잡지 발행 이외에도 신문과 다른 잡지 기고를 통해 왕성한 문필활동을 했다.그러나 그에게도 이른바 ‘시국(時局)’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37년 7월 중일전쟁 발발을 분수령으로 일제의 ‘황국신민화 정책’이 전개되자 여타 문사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이 친일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시국은 점점 긴장하여 가고 장기전(長期戰)의 체제는 점점 굳어가고,그리하여 국민총동원의 추(秋) 다다랐도다.우리는 일체의 힘을 합하여,‘전쟁에 이깁시다.국책(國策)의 선(線)에 연(沿)하여 일체의 동작을 합시다’…” ○학병 참가 촉구 詩 발표 38년 5월 ‘삼천리’ 창간 10주년호 ‘편집후기’에서 그는 자신의 향후 친일노선을 공개적으로 천명하였다.같은 호 기명칼럼 ‘시평(時評)’(‘권문세가의 반성을 촉(促)함’)에서 그는 “…이제 제국은 아세아의 번영과 행복을 위하여 대지(對支)응징의 전쟁을 기(起)하고 있다.…자식과 조카(侄)를 단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군문(軍門)에 보내야할 것”이라며 지원병으로 나갈것을 독려하였다.그가 친일로 전향한 배경에는 ‘삼천리’의 재정난이 한 요인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이보다는 기득권 유지와 ‘대세순응주의’가 주된 요인이었다고 보여진다. 그의 친일시는 이듬해부터 노골적으로 시작된다.지원병을 찬양한 ‘1천병사(兵士)의 삼(森)’에서는 ‘저마다 폐하의 무궁한 성대(聖代)를 노래부르는 젊은 건아’로,‘고란사에서’라는 시에서는 ‘대화(大和)의 처녀가 사라져 가버린 뜰에 나홀로 서성거리며 어조영(御造營)의 망치소리에 천년 역사를 회상’하며 부여신궁(扶餘神宮) 근로봉사의 감격을 읊었다.(두 편 모두 ‘삼천리’39년12월호) 조선인 학병 동원이 시작되자 그는 ‘매일신보’에 ‘권군취천명(勸君就天命)’(43년 11월6일)이라는 시를 통해 ‘번듯하게 사는 길이란­ 제 목숨 나라에 바쳐,…군국(軍國)에 바칠 때일세 ’라며 ‘성전(聖戰)’에 나서라고 촉구하였다.이 밖에도 그는 각종 친일매체에 다수의 친일논설·평론 등을 남겼다. ○각종 단체서 背族행위 그의 대표적인 친일행적은 그가 주동이 돼 41년 8월25일 ‘임전대책협의회’를 발족시킨 일이다.이 단체는 임전(臨戰)체제하에서 자발적으로 황민화운동을 실천하기 위해 조선내 친일인사를 총망라하여 구성한 단체로 발족 1개월 후인 9월에는 尹致昊 중심의 친일단체인 흥아보국단 준비위원회와 통합,‘조선임전보국단’으로 재출발하였다.그는 이 단체의 핵심요원인 상무이사로 활동하였다.이 밖에도 그는 조선문인협회 발기인,조선문인보국회 상임이사,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위원,대화동맹 위원 등을 지내면서 일제말기 친일대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해방후 그는 자신의 친일행각을 뉘우치며 반민특위에 자수하였다.반민재판에서 공민권 정지 5년을선고받은 그는 6·25때 납북됐다.94년 그의 3남 英植(65)은 부친의 전기를 펴내면서 부친의 친일행적에 대해 대신 사죄한 바 있다. “문인이 지켜야 할 절개에 두 가지가 있다.…믿던 부류의 사람까지 이(利)에 팔리고 지위에 움직임을 받아서 부끄러운 처신을 취한다면 대중이 그를 버릴 것이요,예술은 그를 타기(唾棄)할 것이다…”.아직 민족혼이 살아 숨쉬던 시절 그가 쓴 이 한 구절이 가슴을 치는 것은 왜일까. ◎金東煥­崔貞熙 ‘사랑의 행로’ ‘같이한 친일’/유부남­미망인의 동거/7년 산뒤 딸 둘 낳아/崔貞熙 일제말 친일 전향 巴人 金東煥과 여류소설가 崔貞熙(90년 작고)의 ‘불륜’은 한국문단에서 잘 알려진 이야기다.두 사람 모두 문인이자 일제말기 친일행적도 똑같이 남겼다. ‘시대일보’ 기자 시절인 1926년 원산(元山) 출신 신여성 申元惠(93년 작고)와 결혼한 파인은 이 사이에서 3남1녀를 두었다. 파인이 崔貞熙를 처음 만난 것은 1931년 초가을.중앙보육학교장 朴熙道(33인중 1인으로 나중에 친일로 변절함)의 취직부탁을 가지고 삼천리사를 찾아 온 崔貞熙를 파인은 당일로 ‘부인(婦人)기자’(여기자)로 채용하였다.당시 崔貞熙는 결혼한 몸이었다. 두 사람이 동거를 시작한 것은 43년초.이무렵 崔貞熙는 남편과 사별한 상태였다.두 사람은 50년 파인이 납북될 때까지 7년간 동거하면서 두 딸을 낳았다.崔貞熙는 생전에 전 남편과의 사이에 태어난 아들을 파인의 호적에 올렸다가 申元惠측으로부터 피소된 적도 있다. 34년 ‘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사건’으로 9개월간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崔貞熙.그러나 그 역시 결전부인대강연회(41년 12월27일)에 연사로 참여하는 등 일제말기 친일로 전향하였다.대표적 친일작품으로는 소설 ‘장미의 집’(‘대동아’42년 7월호),‘야국초(野菊抄)’(‘국민문학’42년 11월호),수필 ‘동아(東亞)의 새아침’(‘매일신보’42년 2월21일) 등이 있다.
  • ‘푸른 코러스’ 정기연주회

    노래로 애사심을 키우고 나아가 직장홍보까지 해낸다. 푸른상호신용금고(구 사조상호신용금고)직장인 합창단 ‘푸른 코러스’가 24일 하오 7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제5회 정기연주회를 갖는다. 직장일 틈틈이 노래를 하는 아마추어합창단이지만 정기적으로 발표회까지 갖는 등 실력이나 활동에서 프로 못지않은 연주단체.지난 93년 과장급이하 직원들로 창단된 ‘푸른 코러스’는 현재 단원 75명으로 구성돼 있다.처음엔 악보조차 읽지못해 한달을 연습해야 겨우 한곡을 불렀을만큼 서툴렀으나 지금은 한시간에 한곡씩을 소화해낼 정도로 수준이 높아졌다. 이번 공연에선 파헬벨의 ‘캐논’,김동환의 ‘세노야’,김규환의 ‘철새’,모차르트의 ‘잊지못할 사랑’ 등을 부른다.또 바리톤 고성현 최현수씨를 특별 초청한다.지휘 현호웅(서대문지점 대부계),피아노 허은영씨.
  • 5·7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누가 뛰나

    ◎서울­여권서만 7명… 조 총재 대행 등 물밑 탐색/부산­문 시장·한이헌 의원 한나라·국민신당 맞대결/인천­최 시장 재도전… 국민회의 박상규 부총재 거론/“공천은 당선” 전남 한화갑 의원·광주 송 시장 등 각축 오는 5월7일 치러지는 4대 지방선거는 여야 모두에 의미심장하다.3월 국회의원 보궐선거와 함께 정계개편의 시발점이 될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공동집권당으로서 여소를 딛고 정치적 토양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에서,한나라당과 국민신당은 대선 패배를 설욕하고 정치적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물러설 수 없는 한판승부가 예상된다. 각 정당은 이달 초 지방선거특위 구성 등을 통해 준비작업을 시작했다.특히 16개 광역자치단체장 선거는 대선 못지 않는 총력전을 펼 전망이다.시·도별 광역단체장 출마예상자를 간추려 본다. ▷서울◁ 여당으로 변모한 국민회의가 전통적 야도에서 아성을 지킬지 관심이다.국민회의 이상수 의원이 출마의사를 밝힌데 이어 조세형 총재권한대행,정대철 노무현 부총재,한광옥 이해찬 의원도 의욕을 보이고 있다.자민련에선 한영수 의원이 이미 출마를 선언했다.한나라당 최병렬 의원도 출마의사를 굳혔고 김덕룡 의원은 당 지도체제 개편여부에 따라 출마가능성이 점쳐진다.무소속 홍사덕 의원도 ‘시민단체 추전후보’로 나서는데 강한 의욕을 내비친다.국민신당은 뚜렷한 후보가 없어 고심인데 참신한 40대 변호사를 물색중이다. ▷인천·경기◁ 인천시장에는 한나라당 최기선시장이 재도전할 전망인데,한나라당 서정화 의원도 의사를 갖고 있다. 국민회의 박상규 부총재,신용석 전 인천시지부장,자민련 강우혁 전 의원이 거론된다.국민신당은 심상길 전 인천시의회의장이 출마를 준비중이다.김학준 인천대 총장도 자천타천으로 거론된다. 경기지사는 서울시장과 함께 대통령후보로 가는 징검다리로 인식돼 있는 만큼 경합이 치열하다.국민회의 안동선 의원이 출마의사를 밝혔고 한나라당 손학규 의원도 출마 1순위로 꼽힌다.한나라당 이해균 제정구 의원도 오르내리는데 민주당에서 합당해온 장경우 전 의원과 임사빈 전 경기지사도재도전의 의욕을 내비친다. ▷대전·충남북◁ 자민련이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한나라당과 국민신당의 2∼3자 대결구도가 될 전망이다.대전에선 자민련 홍선기 시장,이양희 의원,이헌구 서구청장이 공천을 바라고 있다.한나라당에선 대전시장을 지낸 염홍철 한국공항공단이사장이 출마의사를 굳히고 있다.국민신당에선 안양로 송천영 위원장이 본인의사와 관계없이 거론된다. 충북에선 한나라당 주병덕 지사가 재선을 바라는 가운데 이원종 전 서울시장이 재기를 노리고 있다.자민련에선 박준병 전 의원과 구천서 오용운 의원이 거론되고 있다.국민신당은 홍재형 전 부총리가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충남은 자민련 심대평 지사,한나라당 김한곤 한청수,국민신당 박태권 전 지사 등의 전현직 지사간 뜨거운 승부가 예상된다. ▷광주·전남북◁ 공천이 곧 당선을 의미하는 국민회의 내부에서 경합이 치열하다.광주에선 송언종 시장이 재선의지를 불태우고 있다.박광태 의원과 강운태 전 내무장관이 공천을 받기 위해 뛰고 있다.한나라당은 김동환 전 광주시장,자민련에선 연합공천을 통한 배려로 지대섭 의원 등이 거론되고 있다. 전북은 국민회의 유종근 지사가 재선을 바라나 새 정부에 참여 가능성이 높다.김태식 정균환 최재승 장영달 의원 등이 출마를 엿보고 있다.한나라당에선 강현욱 의원이 꼽히나 출마는 불투명하다. 전남은 허경만 지사 외에 지사를 꿈꿔온 한화갑 의원이 강력한 도전자로 떠오르고 있다.이밖에 김인곤 의원도 상황을 지켜보고 있고 지난 지방선거 경선에 출마한 김성훈 중앙대 부총장도 거론된다.한나라당은 전석홍 의원과 정시채 전 농림부장관도 출마여부에 관계없이 오르내린다. ▷대구·경북◁ 한나라당의 우세 속에 자민련의 도전이 거셀 전망이다.대구에선 한나라당 문희갑 시장과 이의익 이해봉 의원,김상연 대구시의회의장이 공천을 바라고 있다.국민회의 엄삼탁 부총재가 거론되기도 하나 자민련 인사의 연합공천으로 정리될 공산이 크다. 경북은 한나라당 이의근 지사가 재선을 바라고 있는데 자민련의 이판석 전 지사도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박정희 전 대통령의 조카 박준홍씨도 거론된다. ▷부산·울산·경남◁ PK지역에서는 한나라당과 국민신당의 맞대결이 예상된다.부산은 한보사건 무죄선고를 받은 문정수 시장이 재신임을 받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같은 당 김기재 의원과 안상영 부산매일신문사장이 시장경력을 내세워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국민신당에선 박찬종 김운환 한이헌 의원이 물망에 올랐다가 한의원으로 가닥을 잡았다.국민회의는 부산출신의 김정길 전 의원,자민련은 정상천 전 시장이 거론된다.김광일 청와대정치특보도 출마의사를 굳혀가고 있다. 울산은 한나라당 심완구 시장의 재출마가 확실시되고 있고 국민신당 강정호 변호사 차화준 전 의원,자민련 이복 울산시지부장이 거론된다. 경남은 한나라당 김혁규 지사,하순봉 윤한도 의원이 경합중이다.이들 중 김지사는 공천을 받지 못하면 국민신당이나 무소속으로 나올 공산이 크다.국민신당 안병호 경남도지부장도 출마의사를 굳히고 있다. ▷강원·제주◁ 강원은 영동출신의 한나라당 최각규 현 지사의 재출마여부가 관심을 끈다.이밖에 영서출신의 함종한 의원 이민섭전 의원 이상용,한석용 전 지사도 거론된다.자민련에선 한호선 의원이 연합공천될 공산이 크다.국민신당 유승규 전 의원도 거론된다. 제주는 신구범 지사와 우근민 총무처차관의 맞대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 진로 화의신청 속 부도/6개사 어제 1차 32억 못막아

    진로그룹의 (주)진로와,진로종합유통 진로건설 진로종합식품 진로인더스트리즈 진로쿠어스맥주 등 6개 계열사가 8일 상업은행등 9개 금융기관에 돌아온 어음 32억5천만원을 결제하지 못해 1차부도를 냈다.진로와 채권은행단은 이를 결제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9일 최종부도 처리될 예정이며 이에 따라 2만여 협력업체들의 연쇄부도가 예상된다.〈관련기사 9면〉 이보다 앞서 진로측은 이날 상오 법원에 이들 6개 계열사에 대해 재산보전신청과 함께 화의신청을 냈다. 화의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진로는 장진호 회장 등 현 경영체제를 유지하면서 화의신청일에 소급해 채권·채무가 동결돼 지금보다 유리한 상황에서 경영정상화를 추진할 수 있게 되나 그동안은 당좌거래정지로 현금으로만 영업을 해야 한다. 주거래은행인 상업은행 김동환 상무는 “화의신청은 부실기업을 정상화시키기 위한 하나의 절차이기 때문에 채권은행 입장에서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법원의 화의개시 결정은 보통 업체가 신청한 뒤 10일쯤 뒤에 내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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