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라운지]K리그 득점왕 김도훈
“내년 봄 쯤엔 장가 가야죠.”
지난 16일 막을 내린 프로축구 K-리그에서 짜릿한 막판 뒤집기로 3년만에 토종 득점왕을 되찾으며 올해를 최고의 해로 장식한 김도훈은 여전히 바빴다.
●“내년 봄에 늦장가 갑니다”
K-리그를 마친 뒤 48시간 만에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팀에 차출돼 18일 불가리아와의 A매치에 출전했고,21일 개막한 FA컵대회에 대비해 다시 경기도 용인의 구단 합숙소에서 훈련중이다.좀체 짬을 내기 어려운 빡빡한 일정의 그를 만난 건 연습 시작 30분전이었다.
구단 합숙소에서 어렵사리 만난 그에게 구구절절이 얘기를 풀어 헤치는 것이 번거로울 것만 같아 대뜸 언제쯤 국수를 먹을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사실 지금까지 축구만 생각하고 뛰느라 결혼이라는 것을 생각할 시간이 없었지만 이제는 서서히 인연 보따리를 풀 생각”이라며 “내년 봄쯤엔 결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있다는 뜻이었다.“물론 있죠.하지만 밝힐 수는 없어요.그 때 가면 알게 될 것”이라며 입을 꾹 다문다.
“연습시간 5분 지각에 100만원 벌금”이라는 그의 ‘협박성 재촉’에 시간을 재면서도 물을 건 물어야 했다.
축구 말고도 다른 운동에도 관심이 있을 것 같았다.경기가 없는 날엔 골프를 친다는 그는 8년 전에 입문했으며,지금은 80대 초반 정도 친단다.“싱글까지는 아직 멀었어요.”라면서도 컨디션이 좋으면 드라이버 샷이 300야드는 훌쩍 넘는다고 자랑한다.한때는 당구도 즐겨 쳤는데 한참 쉰 탓에 요즘엔 200점 놓는 것도 무리란다.
물론 골프 동반자는 선배인 신태용 등 주로 팀 동료들이다.“예전엔 대부분 이겼는데 요즘은 지는 날이 더 많아요.내기로 돈 많이 퍼 줬어요.”라며 환하게 웃는다.화제를 돌려 극적으로 득점왕을 확정한 시즌 마지막 경기 때의 심정을 묻자 “전반에 1골을 보탠 뒤 하프타임 때 경쟁자인 마그노(전북)가 골을 넣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자신이 생겼다.후반 추가골 때는 (득점왕을)굳혔다는 확신이 생겼다.살얼음판 걷는 기분이었지만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은 결과였다.”고 말했다.일부에서 ‘용병과 토종의 자존심 대결’이라며 의미를 부여한데 대해서는 “어차피 그것도 하나의 이벤트다.심리적으로 부담도 됐지만 한편으론 도움도 됐다.”고 토로했다.그리곤 “국내리그에서 외국인선수에게 타이틀을 넘겨줄 수 없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실 33세면 은퇴를 생각할 나이다.그는 “올해 같기만 한다면 은퇴는 아직 이른 것 아닌가.팀이 우승했고,별다른 부상없이 정규리그를 마쳤으니 내년 시즌을 치르고 난 다음 생각해 보겠다.”면서도 “하지만 그럴 일은 조만간은 없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은퇴 뒤엔 유럽서 지도자 연수
“은퇴 뒤에는 지도자의 길로 접어드는 게 순서라고 본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그러기 위해선 공부를 더 해야 겠지만 미국보다는 유럽쪽에서 축구 관련 분야를 두루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그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양아버지가 있다는 말이 사실이냐고 슬쩍 건드려 봤다.하지만 그는 “고향 통영에 계신 부모님 외에 양아버지처럼 모시는 분이 있다.”면서도 “고교 시절부터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인데 그 이상은 말 못한다.밝히지 말아 달라.”며 오히려 간곡히 부탁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올해는 나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해다.득점왕은 마지막 순간까지 성원해준 팬들 덕에 가능했다.”며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성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보답하겠다.”고 다짐했다.
최병규기자 cbk91065@
■토종용병 득점왕 경쟁사
지난 1983년 출범한 프로축구에서 토종과 용병이 득점왕을 놓고 혈전을 치른 것은 3∼4년 전부터다.
원년의 박윤기(유공·9골)와 이듬해 백종철(현대·6골) 등 토종들의 몫이던 득점왕 타이틀은 85년 태국 출신의 피아퐁(럭키금성)에게 돌아간다.
피아퐁은 21경기에서 12골을 넣어 이흥실(포철·10골),정해원(대우·7골) 등을 제치고 용병으로서는 최초로 타이틀을 움켜쥔다.피아퐁은 도움왕(6개)까지 거머쥐어 토종들을 주눅들게 했다.
하지만 이후 98년까지는 국내선수들의 독무대.94년 윤상철(LG)이 역대 최다인 24골로 생애 두번째(90년 포함) 영광을 차지한 것을 비롯해 최상국(87년) 이기근(88·91년) 조긍연(89년·이상 포철) 임근재(92년·LG) 차상해(93년·포철) 노상래(95년·전남) 신태용(96년·천안) 김현석(97년) 유상철(98년·이상 울산) 등이 토종의 자존심을 지켰다.
99년 샤샤(수원)가 안정환(부산)에 2골 앞선 23골로 용병으로서는 14년만에 최고 골잡이에 오르며 토종과의 맞대결에 불을 지폈고,이후 대거 몰려든 브라질 출신들이 위세를 떨쳤다.
2000년 김도훈(15골)이 최용수(안양)를 1골차로 따돌리고 반격했지만 그것도 잠깐.이듬해에는 산드로(전북·17골)가 우성용(포항)의 추격을 뿌리치며 ‘삼바 특급’을 뽐냈고,지난해에는 에드밀손(전북·14골)이 뒤를 이었다.김도훈은 올 시즌 내내 마그노(전북)와 시소를 벌이다 마지막날 27·28호골을 터뜨려 1골차의 극적인 뒤집기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