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향상뒤지고…/가격경쟁안되고…/섬유수출 설땅 잃어간다(심층취재)
◎대구·경북 「중추산업」 활로는 어디에/업체 97% 영세… 하청 임가공 의존/신소재·기술개발보다 모방 급급/국제정보센터 운영… 시장다변화에 적극 대응/물량위주 탈피,다품종·소량생산체제 전환을/노후시설 개체 등 금융지원 강화 절실
섬유산업은 이미 사양길에 접어 들었는가.지난 90년까지만해도 순수교역 흑자가 전자제품의 두배에 이르는 등 우리나라 수출산업을 주도했던 섬유산업이 최근 큰위기를 맞고 있다.우리제품이 미국·동남아 등 주요 수출시장에서 중국·태국·인도네시아 등 후발국의 값싼 제품에 밀려나고 일본·이탈리아 등 섬유선진국에 비해 기술 경쟁력도 떨어져 설땅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특히 최근 몇년사이 극심한 수출부진으로 관련업계가 잇따라 도산하는가 하면 조업률도 계속 떨어지자 일부 전문가들은 국내 섬유산업이 치유가 불가능한 상태에 빠진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다.국내 섬유산업의 메카인 대구지역 섬유업계의 실태를 중심으로 섬유산업의 현주소와 미래를 점검해 본다.
▷섬유산업실태◁
대구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굴지의 합섬직물산지로서 이 지역 산업구조 자체가 거대한 섬유제조업군으로 형성돼있다.
대구·경북지역에는 전국 섬유업체의 18%인 2천5백60개의 업체가 있으며 섬유산업의 중간업종인 제직 및 염색가공시설은 각각 전국의 78.2%와 35.2%가 밀집돼 있다.
특히 최근 세계적인 유행품목으로 성장하고 있는 폴리에스테르직물의 가공시설은 85%가 지역내에 몰려 있다.
그러나 전체 업체의 97.5%인 2천4백96개업체가 종업원 3백명 이하의 영세규모이며 기업형태도 85.4%가 가족중심의 개인업체로 전체업체의 75% 정도가 대기업이나 수출상사에 의존하는 하청임가공 생산형태를 취하고 있어 기술축적과 기능숙련 등에는 구조적으로 취약점을 지니고 있다.
지난 70년대 국내 전체수출액의 30%이상을 차지했던 섬유산업의 비중이 80년대 들어 25% 수준으로 낮아진데 이어 최근에는 23%선으로 떨어진 것도 이같은 섬유산업의 취약구조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특히 지난해 7월부터 지역수출 물량의 54%를 차지하고 있는 홍콩지역 수출물량이 줄어들면서 시작된 대구·경북지역의 섬유경기 위축은 최근까지 전혀 회생의 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지역업체의 잇단 휴·폐업 및 도산 등으로 이어지고 있어 섬유관계자 및 시민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섬유기술진흥원(원장 유재선)의 조사결과 지난 2월 대구·경북지역의 섬유산업 정상조업률은 66.2%로 지난해 7월이후 계속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염색의 경우 정상조업률이 35.1%로 지난해 같은 기간 61.2%보다 무려 26.1%포인트가 떨어졌으며 직물은 51.5%로 지난해 69.5%보다 8.0%포인트,메리야스가 65.7%로 5.7%포인트,견직물이 73.9%로 1.0%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진원인◁
이같은 조업률 하락과 업계의 휴·폐업 도산 등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수출부진이 43.1%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내수부진과 자금난이 각각 22.1%,21.2%로 조사됐다.
폴리에스테르·나일론 등 화섬직물의 경우는 83.8%가 수출부진에 의한 조업하락으로 나타나 국제경쟁력 회복이 가장 큰 과제로 꼽히고 있다.국내·외적인 여러가지 변화요인에 국내업계와 관계기관이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의 우회수출 기지인 홍콩시장의 경우 1달러당 12원 수준이었던 인민화폐가 지난해 7월 9원으로 절상되면서 현지 수입상사들이 우리 상품의 수입을 꺼리고 있는데다 국내 염색가공물량 가운데 상당량이 클레임에 걸려 수입선을 변경하고 있는데도 전혀 대책을 세우지 못한채 국내업체끼리 덤핑경쟁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이탈리아 등 선진국과 중국·태국·말레이시아 등 후발국과 해외시장에서 기술·가격·품질 등 각 부문에서도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는 것도 우리 섬유산업의 어려움을 부채질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기술의 경우 선진국에 비해 화섬은 85% 염색가공은 50∼60% 수준으로 끌어 올렸으나 경쟁국과 후발국도 이미 가각 60∼80%,45∼55% 수준에 이르러 경쟁력을 잃고 있다.
지난해 수출클레임이 직물 1백3건,의류 65건으로 지난 90년 각각 65건과 46건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것도 이같은 섬유업종 근로기피 현상을 반영한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당 인건비는 우리나라가 3.6달러로 중국·태국등의 0.34∼0.87달러에 비해 월등히 높고 노동생산성 역시 우리나라를 1백으로 잡았을때 대만 1백22,홍콩 1백30,일본 5백50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지역섬유업계가 안고 있는 구조상의 문제점으로 ▲소품종 대량생산 ▲중간소재에의 특화 ▲의료소재의 특화 등을 지적하고 있다.그동안 소품종 다량생산체제에 안주해 왔고 미가공상태에서 염색까지의 중간소재 생산에 치중,최종소비자의 기호변화에 따른 패션시장에 반영하지 못해 왔다.또 합섬직물 분야의 지나친 특화로 인테리어나 산업용 자재등과 같은 비의류분야의 비율이 극히 낮고 탄소섬유·광섬유·플라스틱 등 통신·의학분야로의 진출이 가능한 첨단 섬유부문의 개발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책◁
대구시와 섬유기술진흥원은 올해를 「섬유산업 육성의 해」로 정하고 섬유관련 신기술개발 및 해외시장 개척 등 섬유산업 지원에 주력하고 있다.
또 내년부터 오는 98년까지를 섬유발전 5개년계획기간으로 설정하고 이에대한 체계적인 발전계획 마련을 위해 지난해말 대구·경북개발연구원에 용역의뢰 했다.
국내섬유산업의 여건은 갈수록 악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나 이같은 극심한 불황도 원사·직물·염색가공업계 등 섬유관련업계의 유기적인 협조체계와 기술 및 소재개발의 공동노력으로 극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난달 29일 지역화섬직물업계들이 화섬직물수출특별위원회(위원장 김대호)를 결성,해외시장에서의 출혈경쟁을 막고 신기술의 공동개발에 나서기로 한 것은 고무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같은 업계의 자구노력과 함께 생산체제의 변혁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대량생산체제는 코스트 절감효과는 있으나 가격경쟁이 이미 상당부분 약화된 만큼 품질향상과 제품차별화를 위해서는 다품종소량생산체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한 물량위주의 저가수출품은 생산설비를 과감히 해외시장으로 이전하고 지역업계에서는 고급품 개발과 함께 고부가상품인 첨단섬유부문으로의 투자가 시급하다는 설명이다.
또생산구조 개선과 노후시설 개체작업 및 운영난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당분간 과감한 금융지원도 병행돼야 한다고 지역업계는 주장하고 있다.
◎전문가 진단/“「종합패션센터」 건립 국제화 기반조성”/섬유대학 설립… 전문인력 양성/해외시장 개척기술개발 지원/신석규 대구시 섬유담당관
『섬유산업은 인구가 늘어날수록 수요가 증가하고 문화가 발전할수록 고급화하는 산업적 특성을 갖고 있는 만큼 사양산업이라기보다 첨단산업화로 높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유망산업입니다』
신석규대구시섬유담당관(59)은 영국과 미국의 섬유산업 사양화과정을 예로 들어 섬유산업이 필연적으로 사양화 할 것이라는 일부의 주장을 반박했다.신소재 개발 등 기술고도화와 함께 고부가가치산업인 패션산업과 병행 육성할 경우 무한한 개발 가능성을 가진 산업이라는 분석이다.
신담당관은 『그동안 수출과 내수부진 등으로 침체의 늪에 빠져 있으나 중국특수가 점차 살아나면서 섬유경기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고 『섬유산업 지원에 대구시의 전 행정력을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다양한 소재의 개발,제직공정에서의 엄격한 품질관리,염색가공공정의 합리화와 과학화,텍스타일과 패션디자인의 개발 등을 업계와 관련기관단체 및 행정기관이 공동으로 노력해야 할 부문으로 꼽았다.
신담당관은 또 『대구가 섬유도시로 유명하나 이곳에선 제작만할뿐 봉제와 수출은 서울에서 이뤄져 경쟁력 약화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만큼 서울 의존적 유통구조 개선에 주력하겠다』며 『상설전시장·정보센터·무역지원기능·쇼핑센터 등의 지원기능을 갖춘 종합패션센터를 건립,생산지 중심의 국제화 기반을 조성하고 지역섬유업계의 재도약의 계기를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와함께 섬유기술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섬유전문대학을 지역업계와 학계의 협조를 얻어 설립하고 관련섬유단체와 지역대학이 공동으로 기술개발에 주력할 수 있는 여건 마련에도 힘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금융의 우선 지원과 해외시장 개척을 위한 갖가지 지원책을 마련,섬유업계의 해외경쟁력 육성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
또 이같은 지역섬유업계의 극심한 불황타개를 위해서 섬유업계에 대한 현황분석과 체계적인 지원대책 등 전반적인 정밀분석이 필요하다고 판단,지난해 12월에는 1억2천만원을 들여 대구·경북개발연구원에 「섬유산업발전 5개년(94∼98년)종합개발계획」을 용역 의뢰했으며 오는 9월쯤 종합계획이 마련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