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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구선생 서거한 장소 ‘경교장’ 국가문화재로”

    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과 5ㆍ18 민중항쟁구속자회 회원 50여명은 15일 서울 종로구 평동 서울강북삼성병원내 경교장(京橋莊)을 방문,경교장의 국가문화재 지정 등을 촉구했다. 김인수(金仁壽) 실천운동연합 대표는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이 서거한 곳인 경교장이 그동안 홀대받아오다 지난 4월에야 서울시 문화재로 등록됐다”면서 “민족사의 거인(巨人)이 스러져간 장소이자 ‘임시정부의 마지막 집무실’이라는 역사적 의의를 감안할 때 경교장은 마땅히 국가문화재로 지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학자마다 의견이 다른 임시정부의 종료일을 정부차원에서 공식화하고,경교장을 ‘임정기념관’으로 지정해야한다는 내용의 건의서를 16일 정부에 제출할 예정이다. 류길상기자 ukelvin@
  • 광복절 ‘유관순’ 가장 떠올라

    충북지역 고교생들은 광복절에 가장 기억나는 독립운동가로 유관순 열사를 꼽았다. 충북도교육청이 광복절을 앞두고 도내 고교생 1,60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15일 공개한 바에 따르면 전체의 41%인 662명이 가장 기억나는 독립운동가로 ‘유관순’을 꼽았다. 다음으로는 안중근(307명),김구(214명),윤봉길(110명),안창호(85명),신채호(68명),손병희(37명),기타(123명)의 순이었다. 또한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해 아는가’란 질문에는 ‘아주 잘 알고 있다’(66%),‘들은 것같기는 하다’(32%),‘모른다’(2%),‘알고 싶지 않다’(2%) 순으로 답했다. 이밖에 ‘일본상품 불매운동 등에 동참할 의향이 있는가’란 물음에는 85% 가량이 ‘당연히 참여하거나 상황을 보며참여하겠다’고 답했다. 청주 김동진기자 kdj@
  • 부끄러운 白凡묘역…술판 ‘전락’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강행으로 반일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항일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점점 멀어지고있다.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 등 상해임시정부 요인 4명과이봉창(李奉昌) 의사 등 삼의사(三義士)의 묘소와 영정이안치돼 있는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은 낮에는 노숙자들의쉼터로,밤에는 불량 청소년들의 술자리로 바뀐지 오래다. 공원 내에는 백범 묘소외에 이동녕(李東寧)·조성환(曺成煥)·차이석(車利錫) 선생 등 ‘임정요인 묘역’과 이봉창·윤봉길(尹奉吉)·백정기(白貞基) 의사를 함께 모신 ‘삼의사 묘역’이 조성돼 있다. 하지만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에도 애국지사들을 기리는 참배객들은 거의 눈에 띄지않았다.더욱이 공원관리소장 최영화씨(54)는 광복절인 15일에도 유족과 기념사업회의 참배가 예정돼 있을 뿐 지방자치단체나 정부 차원의 공식 참배 일정은 없다고 전했다. 공원 안에는 더위를 피해 나온 노인들과 조깅이나 산책을즐기는 시민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백범 묘역 뒤 쪽 숲에는 노숙자와 청소년들이 먹고 버린 소주병과 담배 꽁초가 뒹굴었다. 7인의 영정을 모셔두고 매년 4월 합동추모제전을 치르는의열사(義烈祠)는 문이 굳게 닫혀 있어 시민들의 발걸음을돌리게 했다. 또 공원 안에는 창고가 없어 의열사 뒤 후미진 곳에 폐자재가 흉물스럽게 쌓여 있었다. 김구 선생의 묘역 정문은 페인트 칠이 벗겨졌고, 철문에달려 있는 태극기 문양도 페인트 칠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다.지난 5월 말부터 ‘백범기념관’ 건립 공사를 시작한건립위원회측은 “99년 6월부터 기념관 건립비 모금을 시작했지만 아직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고 말했다. 공원관리자는 “올들어 효창공원에는 25만 7,000여명이 찾았지만정작 공원 안 묘역으로 들어가 참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전했다. 묘역만 있을 뿐 역사자료관이나 현장체험을 할만한 볼거리가 없어 최근에는 중·고생들의 견학도 거의끊겼다. 두 딸을 데리고 ‘삼의사 묘역’을 둘러본 김혜숙(金惠淑·40·여·서울 성동구 행당동)씨는 “광복절 전날이라 공원을 찾았지만 묘소에 꽃 한송이도 놓여 있지 않아 아이들보기가 부끄러웠다”고 말했다.한편 재한 일본문화원에 따르면 야스쿠니 신사에는 매년 600만명의 참배객들이 몰려들어 우리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류길상 안동환기자 ukelvin@
  • 西安광복군·임정요인 명단‘햇빛’

    중국 시안(西安)지역에서 활동했던 광복군 118명의 명단등이 처음으로 발굴돼 공개됐다. 국가보훈처는 13일 광복 56주년을 맞아 국·내외 학자 5명으로 구성된 사료발굴조사단이 중국 시안·중칭(重慶)지역등을 현지 답사하며 정부기록보존소(당안관) 및 각 지역·대학 도서관,현지 한국학 연구자,사료 소장자 등을 통해 광복군 관련 독립운동자료 166종(1,289쪽)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이중 국내에 처음으로 공개된 자료는 ▲西安市 居留 韓僑調査表 ▲重慶市 居住韓僑表 ▲韓國光復軍 總司令兵消費合作社文書 ▲임시정부 활동 기관지 등이다. ‘시안 조사표’는 1942년 4월23일 중국 국민당정부 협서회 경찰국에서 작성한 것으로,시안지역서 활동한 안춘생 선생 등 광복군 대원 118명의 이름,성별,연령,중국 입국시기등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정부는 광복군 출신 인사들의증언 등을 통해 이중 52명만 포상한 상태다. 1943년 중칭시 경찰국에서 작성한 ‘중칭 한교표’는 당시 중칭에 거주하던 임정요인과 광복군 간부,가족 등 185명의 명단을 소속 단체 및 재산상황 등과 함께 적고 있다. 명단에는 김구,차리석,류자명,이시영 선생 등 임시정부 요인들이 망라돼 있다. ‘광복군 문서’는 1942∼43년 중칭의 한국 광복군 총사령부가 대원들의 복리후생을 위한 소비합작사(소비조합)를 조직,중국 당국에 허가를 신청하며 작성한 것으로 광복군의재정문제를 밝힐 수 있는 사료다. 이밖에 한국독립당 기관지인 ‘진광’(震光),독립운동진영이 발간한 잡지 ‘독립공론’(獨立公論),임정 선전부가 발행한 서적인 ‘일제국주의 철체하적 조선(日帝國主義 鐵諦下的 朝鮮)’ 등도 중국 후난(湖南)성 도서관에서 발굴됐다. 조사단에 참여한 단국대 한시준 교수는 “이들 사료는 국내에 처음 알려진 것으로 향후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와 광복군 활동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노주석기자 joo@
  • [김삼웅 칼럼] 모로 기는 게들의 슬픈 존재여!

    한때 사회주의를 신봉하고 페이비언협회를 설립했던 아일랜드의 극작가 쇼는 유머와 기지로써 사회의 결함을 날카롭게 꼬집었다. 그는 사회주의를 ‘삶은 게’에 비유했다. 게가 살았을 때는 파란색이지만 삶으면 빨갛게 변하듯이사회주의(공산주의)도 사멸할 때는 빨갛게 제 색깔을 낸다는 것이다. 철없는 색깔논쟁이 한바탕 휩쓸고 갔다. ‘논쟁’이랄 것도 없는 억지가 지면과 화면을 도배한다. 회오리바람 같은 1회성이 아니라 언제 또 닥칠지 모른다. 늘그랬다. 참으로 한가하달지 한심하달지, 이런 정치인들을믿고사는 국민이 한심한지 체념상태인지, 안타깝다. 현실적 공산주의는 이미 죽었다. 지구절반을 지배했던 그붉은 기상은 간데없고 낡은 이데올로기만, 혹은 변방에서겨우 잔명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사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는 처음부터 모순과 한계를 안고 출발했다. 마르크스와 같은 천재도 미처 중산층의 존재를 예측하지 못했던것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노사대립으로 붕괴되는 것이아니라, 오히려 발전과정에서 중산층이 생겨나고 이들에의해 자본주의가 수정을 거듭하면서 더 발전하게 된다는수정이론을 상상하지 못했다. 이때문에 공산주의는 한세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망신고를마쳤는데, 그 유령이 시도때도 없이 이땅에 나타나 활개치고 사회를 혼란시킨다. 요즘에 나타난 ‘유령’의 존재는한나라당 김만제정책의장이다. 김의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회주의적 집단이 전교조”“노사정위원회나 주5일근무제는 사회주의적 정책”“언론에서 정기간행물법을 고쳐 특정주주가 30%이상 주식을갖지 못하게 하는 것도 사회주의적 발상”등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닥치는 대로 ‘사회주의’딱지를 붙이고색깔론을 제기한다. 수구세력은 지난 반세기동안 색깔론을 우려먹으면서 기득권을 유지했다. 공산주의가 퍼렇게 살았을 때는 반공의 깃발을 들고 비판세력을 용공으로 몰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퍼렇던 게는 죽고 북쪽이 우리의 도움을 바라는 처지가 되면서 용공의 약발이 별로 먹히지 않게 되었다. 더욱이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 민주주의를 말살해온수구세력의 정체가드러나면서 많은 국민이 등을 돌리게되었다. 그러나 아는 것이 ‘품바’라고 색깔공세 이외에는 달리 방법을 찾지 못한 그들은 약발떨어진 품바를 외쳐대는 것이다. 괴벨스는 히틀러가 행한 선전선동의 특질을 이렇게 요약했다. “끊임없이 반복해서 대중의 심리를 파악한다. 그러면 ‘네모꼴이 실제로는 원’이라고 논증하는 것도 어렵지않다.”히틀러의 주장은 더욱 지능적이었다. “추상적인관념따위는 피하라. 그대신에 감정에 호소하라. 몇마디 정해진 문구를 끊임없이 반복하라. 결코 객관적이지 않아도좋다. 즉 논의의 한 측면만 부각시켜 적을 격렬히 비난하되, 항상 특정한 적을 하나씩 정해서 하라.” 히틀러는 선전선동의 귀재였다. 항상 ‘특정한 적’을 하나씩 정해서 끊임없이 ‘반복’하여 공략하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그는 이런 방법으로 먼저 베르사유조약을 체결했던배신자들을, 다음으로 공산주의자를, 그 다음으로 유태인을 속죄양으로 정해 비난하고 낙인찍어 죽였다. 그리고 자신도 참혹한 전쟁을 일으키고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중세 암흑시절에 정치적 반대자나 종교적 비판세력을 이단자로 몰아 마녀사냥을 할 때나, 20세기초 미국에서 매카시선풍이 불 때 가해자들은 상대를 마녀와 공산주의자로몰았다. 증거를 대라는 사람들에게 마녀가 타고다녔다는낡은 빗자루와 공산주의자가 입었다는 헌 티셔츠를 ‘증거’로 제시했다. 통일정부 수립을 주장하는 김구선생을 암살하고 평화통일론을 제시한 조봉암씨를 공산주의자로 몰아 사법살인한 이래 얼마나 많은 시민·학생과 지식인이 색깔론에 희생되었는가. 공산주의가 망하고 선진 각국이 수정자본주의 정책을 펴고 있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 독일의 슈뢰더총리까지 시장경제와 사회주의 장점을 조화시키는 ‘제3의 길’을 걷고 있다. 이들이 공산주의자란 말인가. 앞을 모르고 모로만 기는 게들의 슬픈 존재여! [주필 kimsu@]
  • 홍수·가뭄 정밀 예측한다

    홍수나 가뭄 등 자연재해를 보다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지구의 기후변화 정보를 인공위성을 통해제공하는 첨단 해저관측장치인 ‘로봇 부표(Profiling Float)’가 우리나라 바다에도 설치되기 때문이다. 1일 서울대 해양순환연구실에 따르면 한국 아르고(ARGO)위원회는 세계기상기구(WMO)의 ‘고도해양감시계획’의 하나로 오는 9월 동해 및 동중국 해역에 로봇 부표 19기를투하하기로 했다.한국위원회는 ‘아르고 프로그램’의 총책임자인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 스탠 윌슨 박사와 세부 논의를 마쳤다. 로봇 부표는 수심 2,000m 속을 떠다니다가 10일을 주기로수면에 떠올라 기후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해수의온도와 염도,해저 표면에 대한 정보 등을 기상위성으로 보낸다. 로켓 모양의 높이 1m,무게 30㎏인 로봇 부표 1개는반경 300㎞ 해역의 각종 기상정보를 수집한다. 로봇 부표는 2005년까지 전 세계 해상에 3,000개가 설치된다. 아르고 프로그램에는 한국을 포함,세계 13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한국 아르고위원회 김구(金坵·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회장은 “로봇 부표가 제대로 활용되면 현재 45% 수준인장기예보 정확도가 2005년에는 70%까지 향상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
  • 8월의 독립운동가 정정화 선생

    국가보훈처는 31일 임시정부의 안살림을 맡았으며,한국애국부인회 재건을 주도한 여성 독립운동가 정정화(鄭靖和)선생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1900년 서울에서 태어난 선생은 3.1만세운동 후인 1920년독립운동단체 대표이던 시아버지와 남편과 함께 중국 상하이로 망명했다.이후 31년까지 모두 6차례에 걸쳐 국내에 잠입,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해 임정에 전달했다. 22년 일경에 체포돼 고초를 겪기도 한 선생은 일제의 패망으로 1946년 환국할 때까지 임시정부 안살림을 도맡아 왔다.당시 임정 요인 가운데 선생이 지은 밥을 먹지 않은 이가없었다.이동녕 선생이 중국 사천성에서 외롭게 숨질 때 임종을 지키기도 했다. 43년에는 임시정부내 좌우익 통합을 위해 여성 차원의 민족통일전선인 한국애국부인회를 재건하는데 주요 역할을 하기도 했다.광복 이듬해 귀국한 선생은 정치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지만,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김구(金九) 선생의 노선을 지지했다.정부는 8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추서했다. 노주석기자 joo@
  • 김희선의원 “반민족행위 다시 조사 국회내 특별기구 두자”

    민주당 김희선(金希宣)의원은 18일 국회 본회의 신상발언을 통해 “일제하 반민족 행위를 조사하기 위해 국회 내특별기구를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이는 국회 내에 새로운 ‘반민 특위’를 구성,친일 문제를 원점에서 재조사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돼 눈길을 끌었다. 김 의원은 특히“일제하 언론의 경우 조선,동아일보 등 일부 언론사가 일제 말기 천황 찬양기사를 1면에 싣고 일왕 생일을 민족 명절로 선전·선동해 조선 젊은이들을 일제의 총알받이로,군대 위안부로 팔아 넘겼다”고 특정 언론사를 겨냥했다. 이어 “이들 언론사들은 속죄도,역사적 심판도 없었으며 오히려 교과서에 ‘민족신문’으로 왜곡, 기술되어 있는 등민족 정기가 심각하게 훼손되어 왔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일제 때 독립군 3지대장 김학규 장군의 손녀이며 백범 김구가 이끌던 한독당의 비밀 청년 당원이었던 김일련씨의 딸이다.김 의원은 그동안 민족 정기를 고양하는데 앞장서왔다. 이종락기자
  • 부 음/ 독립운동가 정영국 선생. 박병배 전 국회의원

    ■독립운동가 정영국 선생 독립운동가 정영국(鄭永國)선생이 13일 오전 0시 5분 보훈병원에서 노환으로 타계했다.향년 91세. 평북 철산 태생인 정선생은 1930년 창동(彰東)학교에서 반제동맹을 조직,책임자로 활동했으며 상해 임시정부의 김구·안창호 등을 만나 애국단 조직확대에도 참여했다.또 귀국후국내에서 항일활동을 하다가 동지 72명과 함께 체포돼 모진고문을 받고 척추와 팔에 부상을 입어 불구가 됐다.90년 정부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유족은 부인 이열자씨와 치섭(청주대 교수),경훈(재미 치과의사),예실(재미 약학의사)등 2남 1녀.빈소는 서울 강남성모병원.발인은 16일 오전 9시,장지는 대전국립묘지 애국지사묘역.(02)590-2560. ■박병배 전 국회의원. 박병배(朴炳培) 전 의원이 12일 밤 숙환으로 별세했다.향년84세.고인은 제4,5,7,8,9대 국회의원과 민주통일당 총재대행 등을 지냈으며 학교법인 돈운학원 이사장으로 육영사업을벌여왔다. 유족은 장남 선우(善宇.학교법인 장훈학원 이사장)씨 등 1남4녀.빈소는 삼성서울병원,발인 16일 오전 7시.(02)3410-6915
  • [김삼웅 칼럼] 대모산을 민주역사의 산교육장으로

    미국 웬트워스대 카치아피카스교수(사회학)는 ‘신좌파의상상력’이란 저작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학자다. 그가지난 5월 광주민주항쟁 21주기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내용은 한국민주화운동의 국제적 역할을 되새기게 한다. 그는 광주민주항쟁을 지구를 움직인 ‘아르키메데스의 고정점’에 비유했다.광주항쟁이 필리핀과 타이완의 민주개혁,중국의 톈안먼에서 태국·미얀마·인도네시아로 이어진학생봉기에 윤리적 영감과 전술적 지침을 제공한 ‘아시아민주화운동의 방아쇠’역할을 했다는 평가이다. 광주항쟁뿐일까.근현대 한국의 민족·민주화운동은 항상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인 민족해방운동과 민주화운동의 ‘방아쇠’역할을 했다.1919년 3·1운동은 아시아의 다른 식민지 및 반식민지의 민족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특히 중국의 5·4운동, 인도의 무저항배영(排英)자주운동, 사타그라하운동, 이집트의 반영자주운동, 터키의 민족운동 등 아시아·중동지역의 민족해방운동을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1960년 4·19학생혁명도 남베트남·버마·태국·필리핀등 아시아 민주화운동을 불러일으킨 촉진제 구실을 했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나라가 어려울 때면 항상 깨어있는 지성으로서 행동에 나섰고 이것은 아시아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엄청난 희생이 뒤따랐다.외적과 싸울 때는 그만두고라도 이승만정권이래 독재정권과 싸우느라 얼마나 많은젊은이가 희생되었던가.4·19와 5·18항쟁은 일시에 다수의 희생을 불러왔지만 ‘6월항쟁’으로 상징되는 민주화운동의 줄기찬 투쟁 과정에서는 오랜 기간에 걸쳐 숱한 젊은이들을 제단에 바쳐야 했다. 4·19혁명과 5·18항쟁의 경우 수유리와 광주에 희생자들을 기리는 묘소를 만들었다.그러나 4·19이래 최근까지 독재정권과 싸우다 희생된 민주열사들을 추모하는, 또 그들의 유해를 모시는 묘역이 조성되지 않았다. 김대중정부가 수립되면서 제주4·3사건진상규명위원회를비롯하여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백범김구선생기념관건립위원회 등과거정권에서 하지 못한 일들이 진행되고 있다.마땅히 해야 할 일들이 이제야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빠진 것이 있다.바로 민주화운동과정에서 희생된민주열사들의 묘역을 만드는 일이다.그동안 유가협을 중심으로 뜻있는 분들이 노력하고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가성공회대학에 프로젝트를 준 연구 결과가 보고되었다. 민주열사 묘역조성 후보지로서 서울 내곡동 대모산(大母山)기슭이 추천되었다.남산안기부터와 마석 모란공원 등여러 후보지중에서 대모산을 택한 것은 풍치가 수려하고‘어머니의 품’같은 명당이고 풍수전문가 최창조교수가‘저항과 명상이 숨쉬는’민주묘역의 최고 적지라는 이유에서 추천한 것이다. 민주공원조성과 관련해서 성공회대학측의 연구성과는 새겨둘 만하다.“시공간을 초월해 영속하는 민주화운동의 기치를 역사적 전통으로 기억하고 그러한 행위가 현재와 미래를 열어가는 당대의 사회적 존재양식임을 확인하는”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적 의미도 만만치 않다. “자라나는, 그리고 앞으로피어나는 생명체들에게 파급될 구체적인 역사교육의 지향과 내용을 확보하자”는 주장이다. 민주공원은 4·19희생자와 5·18희생자를 제외한 1960∼1990년대 민주화운동 희생자가 대상이다.5·16쿠데타 이후1987년 6월항쟁으로 군사정권을 퇴진시키기까지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던진 열사들을 모시는 묘역이 돼야 한다. 장소선정이나 안장범위와 관련해서 여러가지 논란이 있을수 있다. 그러나 유가협과 연구팀이 선정한 대모산으로 장소를 정하고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죽임을 당한 사망자(250여명)를 중심으로 안장대상을 삼는다면 합의도출이 어렵지않을 것이다. 민주공원에 민주기념관도 함께 건립하여 험난한 민주역정을 돌아보는 산교육장이 되도록 하고 외국관광객들이 찾는‘아시아 민주화운동 방아쇠의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 주었으면 한다. 김삼웅 주필 kimsu@
  • [김삼웅 칼럼] 언론의 길, 정도(正道)냐 사도(邪道)냐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정도냐 사도냐가 생명이라는 것을 명기하여야 한다” 오늘(26일) 서거 52주년을 맞는 백범 김구선생의 말씀이다. 백범은 오랜 망명에서 귀국하여 반성을 모르는 채 날뛰는친일·분단정부 수립 세력을 지켜보면서 ‘정도·사도론’을 폈다. 결국 백범은 ‘사도세력’에 피격되고 이땅은 사도가 지배하는 길고 긴 역설의 현대사가 전개되었다. 우리는 20세기에 봉건왕조-식민지-해방과 분단-동족상잔-군사독재-근대화-민주화로 이어지는 독특한 역사적 경험을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형 선진모델을 찾지 못하고 국가적 내홍(內訌)에 시달리고 있다. 역사는 길어도 역사의식이 희박하고,민주제도는 훌륭해도민주질서가 취약하고,학벌 좋은 지식인은 많아도 참된 지성이 드물고,언론기관은 넘쳐도 정론이 빈약한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 분단구조의 민족모순, 영호남의 지역갈등, 보수와진보의 이념대결, 자본과 노동의 계급격차, 남녀 성차별에이르기까지 비동시적인 것들의 동시적 대립과 갈등상을 보이고있다. 이렇게 모순과 갈등이 나선형식으로 겹친 원인과 책임의상당 부분은 언론에 있다. 족벌언론의 특권의식과 식민성에서 기인한다. 정치가 패거리 싸움이고 공직자가 복지부동하고 기업이 부실하고 집단이기주의가 판치더라도 언론이 여론을 선도하고 정론을 편다면 우리 사회는 건강성을 회복할수 있다. 온 세상이 모두 취하고 혼탁한데 언론만 깨어있겠는가, 할지 모르지만 세상을 취하고 혼탁시킨 언론의 책임과 역할을 피하기 어렵다. ■비판 비켜간 마지막 성역 비판받지 않는 권력은 타락하고 부패한다. 과거 비판에서성역화된 청와대권력이 타락하고 부패한 것이 이를 입증한다. 그동안 언론사처럼 무오류의 성역으로 남은 곳이 없다. 오만과 타락은 필연적이다. 남을 비판하면서 내부적으로는탈세·외화도피·자금세탁등 ‘비리 백화점’을 방불케 한다. 정권이 바뀌고 군벌이 심판받고 재벌이 해체돼도 언벌(言閥)은 철옹성을 지키고 삼권 위에 군림한다. 친일 반민족과권·언유착에도 심판받지 않았고 ‘황제사주’의 전횡도 단죄되지 않았다. 지난 정권때까지도 청와대의 ‘위스키와 캐시(cash:현금)’로 상징되는 1급 로비 대상은 족벌언론사주와 간부들이었다. 청와대팀은 안기부 돈까지 끌어다 로비자금으로 쓴 것이 최근 드러났다. 이렇게 성역화되고 특권화된 언론이 민족의 진로나 민중의 아픔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정권을 만들고 북한과는 적당한 위기를 조장하면서 국민의 관심을 외부로 옮기고 지역갈등을부추겨 손쉽게 기득권을 지켜온 것이 족벌언론의 실상이다. 신라가 반도 통일을 하고도 대륙진출은커녕 고구려영토를수복하지 못한것은 골품제 때문이라 한다. 골품제로 얽힌기득권세력이 울타리를 치고 경주를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6·15선언의 민족사적 성과도‘골품세력’에 발목이 잡히고 북한상선에 총쏘지 않는다고, 안보에 구멍이 뚫렸다고, 퍼준다고, 남북화해의 발목을잡고 대결국면으로 여론을 몰아간다. ■국민이 지켜본다 국세청이 23개 언론사에 5,056억원의 세금추징을 발표하자어느 족벌신문이 “그 세금 받아 북한 대주려고?”라 썼다. 이 한마디에,반성은커녕 전통적 매카시즘과 특권의식, 기지촌 언론의 식민성이 집약된다. 자신들의 범법을 매카시즘으로 환치하려는 수법이다. 건국 이래 최초의 ‘언론정화’는 가능할까. 족벌언론의필사적 저항이 따르고 야당의 정략적인 비호와 여당 대권주자들의 기회주의가 문제다. 그러나 ‘언론인 100인 선언’에 참여한 용기있는 언론학자들과 깨어있는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시민단체들의 언론개혁의지와, 과거를 청산하고거듭나려는 양심적 언론사들이 존재한다.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언론탄압이라고 몰아세웠던 일부 족벌언론이 비리 사주를 검찰고발 대상에서만 빼주면 논조 변경과 간부교체도 가능하다고 로비를 벌인다고 한다. 그야말로 ‘갈대논조’이고 ‘하루살이 간부’신세 아닌가. 김대중정부와 모든 언론에 묻는다.“정도냐, 사도냐!” [김삼웅 주필 kimsu@]
  • [클린 사이버 2001] (1-2)지금 인터넷은 신음중

    중학교 때만 해도 모범생 소리를 들었던 A군(18).또래들은지금 대입 준비에 정신이 없지만 지난해 학교를 자퇴한 A군에게는 오직 인터넷만이 삶을 지탱해 주는 유일한 끈이다.하루종일 방안에 틀어박혀 누구와도 만나려 들지 않는다. 정신병원에도 다녀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A군의 부모는 아들 문제로 다투다 현재 이혼 수속을 밟고 있다. B군(17·고2)은 어린이포르노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음란 CD와 비디오테이프를 팔다 올초 경찰에 붙잡혔다.반에서 5등안에 드는 우등생이었지만 포르노 판매가 안겨주는 ‘황금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B군이 한달동안 벌어들인돈은 580만원이나 됐다. C군(16·고2)은 ‘대일본제국’이라는 인터넷사이트를 개설해 놓고 일본을 찬양하다 지난달 경찰에 적발됐다.김구선생과 윤봉길 의사 등 독립지사의 사진을 일장기와 ‘대일본제국 만세’라는 문구와 합성해 훼손하고,‘한국을 일본의 식민지로’‘일본인은 한국인보다 우수하다’는 등의 글을 올렸다. 30대 주부 D씨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채팅사이트에 접속한다.남편과 함께 있을 때에도 마음은 딴 데 가 있다.사이버세계의 친구가 아닌,실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은 그에게참기 힘든 고통이다. 6살 난 E양은 언어발달이 늦어져 아직까지 말을 제대로 못한다.엄마(30대)가 3년전부터 온라인게임에 빠져 제대로 보살피지 않은 탓이다.유치원 교사는 E양에게 특수교육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안티 XX’라는 간판을 내건 인터넷 A사이트 게시판.‘개XX’‘XX이가 궁예보다 못한 8가지’‘XXX=빨갱이’ 등 독설이 판을 친다.‘지역감정·인신공격 자제’라는 주의문은허울일 뿐이다. 국내 최대 인터넷포털 B사이트의 동호회.‘섹스’라는 검색어를 입력하자 대번에 50여개의 동호회 목록이 나타난다.스스로 찍은 나체 사진을 공개하자는 곳부터아무 조건없이 하룻밤 즐기자는 곳, 부부·애인을 맞교환하자는 곳까지 입에 올리기 민망한 제목들이다. 인터넷이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개인과 사회가극심한 혼돈에 빠져들고 있다.국내 인터넷 인구는 지난달말 현재 2,400여만명.7세 이상 국민의 55.3%에 이른다.이용시간 면에서는 단연 세계 최고다.조사전문기관 닐슨-넷레이팅스에 따르면 올 1월 기준으로 한국인의 한달 평균 인터넷접속시간은 16시간 17분으로 2위인 캐나다(10시간 48분)를압도했다. 그러나 화려한 외형적 팽창에 걸맞은 내면의 가치는 찾아보기 힘들다.인터넷과 사이버 문화가 별다른 여과장치 없이,단기간에 무절제하게 생활 속으로 파고든 탓이다.사이버공간이 실제 공간에 연착륙(軟着陸)할 수 있는 여유를 갖지못해 마치 몸집은 어른이고 사고능력은 초등학생 수준인 기형적인 꼴이 됐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교통표지나 횡단보도없이 마구잡이로 차가 돌아다닌 초기 자동차문화에 비견하는 사람도 있다.특히 사회 전반의 도덕·윤리규범의 혼란이 개인들이 실제 공간보다 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사이버 공간과 만나면서 더욱 빠르게 부작용을 분출하고 있다. 사이버 공간의 역기능이 미치는 범위와 확산속도는 갈수록심각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범죄나 비행과 같은 일탈행위이외에 인터넷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워지는 인터넷중독증이 큰 사회문제로 떠올랐다.올초 나온 서울대 석사논문에 따르면 서울시내 고교생의 40% 가량이 중독증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또 과거 수동적인 ‘소비자’에 머물렀던 일반 네티즌들이 불건전 정보를 만들어내는 ‘생산자’로 대거 전환되는 경향도 뚜렷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연령과 계층도 다양해지고 있으며사이버공간과 실제공간의 경계도 허물어지고 있다. 인터넷의 각종 게시판과 채팅 사이트에는 자음과 모음이뒤틀린 오염된 국어가 홍수를 이루고,유언비어와 욕설 괴롭힘 비난 말싸움이 난무하고 있다.특정 기업이나 개인·단체에 대한 반대 사이트들이 ‘안티’(Anti)사이트라는 모습으로 생겨나면서 윤리적인 불감증도 심해지고 있다. 김태균기자 windsea@. *현장전문가의 제언. 우리사회의 가치기준이 흔들리고 있다.세계화 과정 속에서포스트모던적인 상대주의 경향이 개인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정보화 시대의 특성과 결합하면서 의도하지 않았던 부정적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이성 결혼 배움 직업에 대한 가치관이 세계화와 정보화의 물결 속에서 급속히 변모하면서 충격적인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다. 10대들의 성의식,자신의 잘못을 주위의 탓으로 돌리는 지도층의 태도,소외된 자에 대한 배타적 태도,배움이나 결혼을 물질주의 추구의 방편으로 계산하는 인식 등 생활의 중요한 부분에 대한 가치관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최근 일어나고 있는 부정적 사회현상은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하겠다. 이제 이러한 불분명한 가치관이 온라인에도 넘쳐나고 있다.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익명으로 존재할 수 있는 사이버 공간의 특성을 타고 부정적인 영향이 엄청난 속도로전파되고 있다.사이버 유토피아가 자칫하면 디스토피아로전락할 위험마저 있는 것이다. 흔히 우리는 본질을 외면하고 문제와 상황에만 반응한다. 음란 폭력 비방 자살 등 사이버 공간의 현상은 인터넷 공간만의 문제가 아니다.우리 사회의 문제이다. 대안은 실제 사회에 건전한 가치관을 형성하는 것밖에 없다.또 사이버 공간에서는 이런 현상이 상승효과를 발휘하지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계몽을 해나가야 한다. 이 두 가지를 모두 달성하기 위해 초·중·고 교육과정에‘네티켓(인터넷 예절)’이 포함되길 바란다. 이제 사이버 스페이스도 일상적 생활 공간이다. 초등학교윤리교육에 푸른 신호등을 보고 건너라고 가르치는 것처럼사이버 공간에서도 명확한 메시지를 주어야 한다.인터넷 업체들도 네티켓 문화 확산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홍윤선 네띠앙 대표이사. *‘사이버공간 행동 인식’ 설문. 직장인의 절반 이상은 인터넷때문에 회사 일에 어려움을겪은 적이 있다.특히 대다수가 당초 생각보다 더 오랫동안인터넷에 접속해 있었던 경험을 갖고 있다.또 10명 중 3명이상이 현재 인터넷 문화의 건전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같은 사실은 대한매일이 서울에 직장을 둔 남녀 282명을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사이버 공간에서의 행동과 인식’설문조사에서 밝혀졌다. ‘원래 마음 먹은 것보다 더 오래 인터넷에 접속한 적이있느냐’는 물음에 응답자의 80.1%(225명)가 ‘가끔’(48.4%),혹은 ‘자주’(31.7%) 그런 적이 있다고 답했다.6.1%는‘항상그렇다’고 했다.‘전혀 없다’고 한 사람은 3.6%에불과했다. 또 응답자의 56.9%가 인터넷때문에 집안 일을 소홀히 해 본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자주 그렇다’는8.3%,‘항상 그렇다’는 1.7%였다.‘배우자나 연인과의 애정관계보다 인터넷에 더 흥미를 느낀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 대해서도 ‘드물지만 있다’(17.8%) ‘가끔 있다’(13.3%) ‘자주 있다’(3.4%) 등 34.9%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6.8%는 ‘종종 익명을 사용해서 현실공간에서 맛볼 수 없는 성적 환상을 즐긴다’고 했으며,8.2%는 ‘성적 흥분이나만족을 느낄 수 있는 기대감에 자꾸 인터넷에 접속하고 싶어진다’고 했다.자신이 인터넷으로 무엇을 하는지 가족이나 친구에게 숨긴다고 한 사람도 9%나 됐다. 사이버공간에서 남들로부터 욕설이나 비난을 들은 경험에대해 16.1%가 ‘2∼3회 들은 적이 있다’고 했으며 12.1%는‘1회’라고 답해 34.3%가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직접 겨냥해 성적인 표현을 한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는 29.7%가 ‘1번 이상 있다’고했다.4차례이상도 9.2%나 됐다. 건전한 인터넷문화를 만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으로 48%가 ‘이용자들의 자정노력’을 꼽았으며 이어 ‘인터넷서비스업체의 건전화 유도’(26%) ‘가정·학교의 윤리교육’(19%) ‘정부의 계도·단속’(5%) 등 순이었다. 김태균기자
  • ‘열국지’ 새 번역·평설본 나와/ ‘춘추전국시대’보면 오늘을 알 수 있다

    흔히 ‘동주 열국지’라 불리는 ‘열국지’는 가장 많이읽히는 고전 중의 하나다.그것은 ‘열국지’가 동주(東周)시대,즉 중국 역사상 가장 극적이고 역동적이었던 550년간의 춘추전국시대를 다루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최근 원로시인 김구용씨(79)가 ‘동주 열국지’(풍몽룡 지음,솔)를 새로 번역해 낸 데 이어 소설가 유재주씨(45)가‘평설 열국지’(김영사)를 펴내 관심을 모은다. ‘열국지’의 인문학적 가치와 재미는 종종 ‘삼국지’와비교된다.‘삼국지’가 위·오·촉 3국의 50여년 역사를 다루는 데 비해 ‘열국지’는 2,500여년 전 100여개 나라가생존과 패권을 위해 싸웠던 춘추전국시대의 이야기를 그린다.그런 점에서 ‘열국지’는 이 시대를 그대로 비춰주는거울같은 고전이라 할 수 있다. 전12권 중 4권까지 나온 ‘동주 열국지’가 원문을 꼼꼼히 번역,사실(史實)을 중심으로 기술했다면 ‘평설 열국지’는 ‘해설을 곁들인 소설’에 가깝다.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하되 소설적 상상을 적절히 섞어 춘추전국시대를 새롭게조명했다.‘평설 열국지’는‘황하의 영웅’‘장강의 영웅들’‘일통천하’등 3부 13권으로 이번에는 1부 5권만 나왔다.
  • 신간 맛보기

    ◆격동 한세기,인천이야기 상·하(경인일보 특별취재팀 지음,다인아트 펴냄)인천의 근·현대사 100년을 재조명한 대중역사교양서.‘하와이 이민과 인하대’‘전환국’‘첫 성냥·담배공장’‘경인철도 100년’‘기와집 동네 율목동’등이 상권의 주요내용.하권에서는 죽산 조봉암,운석 장면,송암 박두성,우현 고유섭,산재 고일,우월 김활란,삼연 곽상훈 등 해방공간기와 그 이후의 인천사를 인물 이야기를 통해 살폈다.각권 1만2,500원. ◆풍미·뇌염(김구용 지음,솔출판사 펴냄)‘난해성의 장막’에 가려 외면당했던 김구용의 시편들을 묶은 시집.김구용의 시는 미당 서정주의 신라 불교의 현현(顯現)의지나,고은 시인이 보여주는 선적(禪的)취향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피어난 ‘불교적’세계다.그의 시엔 1940,50,60년대의 고난과 전쟁,살육의 고통 등 혹독한 시대고(時代苦)가 아로새겨져 있다.그런 의미에서 역사적이다.각권 9,000원. ◆노자에서 데리다까지(한국도가철학회 엮음,예문서원 펴냄)노자의 무위와 불언(不言)의 도,장자의 역설적 사유 등 도가철학과서양철학의 접점을 모색한 연구서.후설의 현상학이나 하이데거의 실존주의,데리다의 해체주의 등은 모두 인간중심주의를 철저히 배제한다.그것은 “큰 도가 행해지지않자 인의가 있게 되었고,지혜가 생겨나자 커다란 거짓이있게 되었다”고 한 노자의 사상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1만5,000원. ◆사불산 윤필암(송영방 등 지음,정영목 엮음,학고재 펴냄)윤필암은 경북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 사불산(四佛山) 중턱에 자리한 비구니 도량.직지사의 말사인 대승사의 산내 암자로 수덕사 견성암,오대산 지장암과 함께 3대 비구니 선원으로 꼽힌다.17명의 화가와 조각가들이 이 윤필암과 맺은인연을 그림과 사진,글로 풀어냈다.불심의 저쪽과 세속의이쪽을 이어주는 인연의 아름다움을 정갈한 문장에 담았다. 1만3,000원.
  • ‘6월의 독립운동가’ 나창헌 선생

    국가보훈처는 31일 조선민족대동단과 한국노병회를 조직, 일본 총영사관 폭탄의거 등 의열투쟁을 전개한 나창헌(羅昌 憲) 선생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선생은 1896년 평북 희천에서 출생해 경성의학전문학교 2 학년 재학중 3·1운동추진계획에 학생대표로 참가하면서 독 립운동에 뛰어들었다.3·1운동의 절정기인 5월초 서울에서 결성된 대한민국청년외교단에 가입,특파원자격으로 상해임 시정부에 파견돼 독립운동 자금을 전달했다. 국내로 잠입,고종황제의 아들 이강(李堈)공의 탈출을 꾀했 으나,일경에 발각돼 실현하지 못했다.1922년 김구,여운형선 생 등과 함께 1만명 이상의 의병을 양성하고 100만원이상의 전비를 마련,독립전쟁을 전개할 목적으로 한국노병회를 조 직,이사로 활동했다. 일제를 피해 중국 스촨(四川)성 만(萬)현으로 가 의원을 운 영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36년 6월26일 위암으로 순국했 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 을 추서했다. 노주석기자 joo@
  • 대한매일 제정 제9회 공초문학상 수상 시인 정진규

    “공초 오상순은 호에서 알 수 있듯이 공(空)마저도 초월한,불교사상의 궁극에까지 나아간 시인입니다.시인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사상가라고 할 수 있지요.불교적인 영원성의 세계를 시로 구체화하고 또 생활로 실천한 분이 바로 공초입니다.” 올해 제9회 공초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정진규 시인(62)은 “아무리 리얼리즘을 중시하는 문학이라도 그 바탕에는모름지기 모종의 초월적 정신성이 깃들여 있어야 한다”는말로 소감을 대신했다. 정씨는 지난 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나팔 서정’이 입선돼 문단에 나왔으니 벌써 시력(詩歷) 42년의 ‘원로’다.기나긴 세월,그의 시에 기복이 없을 수 없다. “兵舍의 새벽이 아니더라도/당신은,/우리네 가슴 속에 한번쯤 울렸어야 할/쟁쟁한 새벽의 음성…” 등단작 ‘나팔 서정’은이처럼 ‘우렁찬’ 시다.그러나 그의 시는 이내 내면의 천착과 언어의 연금술에 매달리게 된다.‘자의식적인 세공품’에 가까운 그의 초기시는 다소 모호하고 관념적인 편향을 보인다.그러나 구체적인 일상의 사물과 생체험을 화두로 삼은 뒤로는 몰라보게 생채(生彩)를 띠기 시작한다.이른바 ‘몸시’와 ‘알시’가 그 증거다. “관념일변도에서는 벗어나야지요.정신과 육체가 하나가 돼야 비로소 사물의 근원을 만날 수 있습니다.” “몸의 어원이 ‘모으다’에서 나왔듯이 몸이란 원래 육체만이 아니라정신까지 아우르는 개념”이라고 말하는 정씨는 이제 ‘몸의 말’을 들을 수 있다.그런 몸과 마음이 완벽하게 하나를 이룬 순수생명의 실체,그것이 ‘알’이다. ‘몸시’와 ‘알시’를 통해 생명의 원형상을 보여준 정씨는 최근 시집 ‘도둑이 다녀가셨다’(세계사)를 통해 다시한번 치열한 시적 사유를 드러낸다.모호성의 자취는 더이상찾아보기 힘들다.둥글둥글하게 읽힌다.그의 말처럼 알과 같고 몸과 같다.올해 공초문학상 수상작 ‘純金’(순금)은 시집 ‘도둑이 다녀가셨다’를 대표하는 작품이자 시인의 일관된 초월 정신을 압축해 보여주는 명편이다. “옛날 여속(女俗)에 따르면 도둑이 들었을 때 우리 조상들은 ‘손님이 다녀가셨다’고 말하곤 했다고 합니다.다시는도둑이 들지말라는 ‘이방’의 뜻이 담긴 지혜의 말이죠.‘도둑이 다녀가셨다’는 시 ‘純金’에서 암시를 얻은 일종의 옥시모론(모순어법)입니다.” 그는 “잃어버린 금붙이는 아깝지만 도둑이 ‘정신의 순금’을 내게 줬다”고 말했다. 시인 정진규를 이야기하면서 산문시를 빼놓을 수 없다.그는 산문시에서 독자적인 세계를 일궈냈다.1977년 시집 ‘들판의 비인 집이로다’(교학사)를 내면서부터 시에 산문형태를도입하기 시작했다.개인과 집단의 문제,다시 말해 시성(詩性)과 산문성(散文性)의 통합을 시도한 것이다. “산문시는 형식으로부터 자유롭지만 나름의 리듬을 갖고 있지요.나는 그것을 ‘호흡률’ 혹은 ‘생명률’이라고 부릅니다.산문시는무엇보다 이미지의 자장을 넓게 펼칠 수 있어 좋습니다.어떠한 환상의 파도도 서정의 어조로 풀어낼 수 있으니까요.” ‘純金’은 이러한 산문시의 독특한 작법을 보여준다.어떤대목에서는 네 줄 가까이 장광설을 늘어놓는가하면 어떤 부분에서는 단 넉 자로 끊어 호흡을 급박하게 몰아간다.시적인 긴장과 이완이 자유자재다. 정씨에게는 시작활동에 못지않게 공을 들이는 게 하나 있다.시전문지 월간 ‘현대시학’을 꾸려가는 일이다.지난 88년전봉건 시인이 작고하면서 ‘현대시학’을 물려 받은 이래지금까지 무려 14년동안 주간을 맡고 있다.“고료도 받지 않고 기꺼이 글을 써주는 문우들에게 감사할 뿐”이라는 그는“공초문학상 상금을 매달 300만원 이상 적자가 나는 ‘현대시학’을 위해 쓸 작정”이라며 행복해했다.현재 한양여대문예창작과 교수로 있는 그는 학교에서 받는 월급도 고스란히 시잡지에 쏟아 붓고 있다. 정씨는 시인 김구용이 지어준 호를 갖고 있다.경산(絅山,홑옷산).비단옷을 입고 홑 덧옷을 걸친 형국,곧 안을 아름답게 꾸미되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깊은 뜻이 담겼다.그야말로 깨어있는 견자(見者)의 자세요 참시인이 지향해야할 마음의 자리가 아닌가. ◆純 金. 우리집에 도둑이 들었다 손님께서 다녀가셨다고 아내는 말했다 나의 금거북이와 금열쇠를 가져가느라고 온통 온 집안을들쑤셔놓은 채로 돌아갔다 아내는 손님이라고 했고 다녀가셨다고 말했다놀라운 秘方이다 나도 얼른 다른 생각이 끼여들지 못하게 잘하셨다고 말했다 조금 아까웠지만 이 손재수가더는 나를 흔들지는 못했다 이를테면 순금으로 순도 백 프로로 나의 행운을 열 수 있는 열쇠의 힘을 내가 잃었다거나,순금으로 순도 백 프로로 내가 거북이처럼 장생할 수 있는시간의 행운들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손님께서도 그가 훔친 건 나의 행운이 아니었다고 강변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큰 죄가 되기 때문이다 언제나 상징의 무게가 늘함께 있다 몸이 깊다 나는 그걸 이 세상에서도 더 잘 믿게되었다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상징은 언제나 우리를머뭇거리게 한다 금방 우리를 등돌리지 못하게 어깨를 잡는손, 손의 무게를 나는 안다 지는 동백꽃잎에도 이 손의 무게가 있다 머뭇거린다 이윽고 져내릴 때는 슬픔의 무게를 제몸에 더욱 가득 채운다 슬픔이 몸이다 그때 가라, 누가 그에게 허락하신다 어머니도 그렇게 가셨다 내게 손님이 다녀가셨다 순금으로 다녀가셨다. ◆심사평. 공초문학상은 운영세칙상 20년 이상의 시단경력과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1년간 발표된 작품을 대상으로 수상작을 뽑게 되어 있다.이것은 중진 이상의 시인을 대상으로 하되 반드시 작품에 주어지는 문학상임을 못박고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 나라 시문학상 가운데 가장 품위 있는 상으로 자리매김해오고 있다. 우리 심사위원들은 이러한 상의 비중에 걸맞는 시인들의 대상작품을 엄정하게 가려 뽑고 다시토의를 거듭한 끝에 정진규의 시 ‘純金’을 올해의 수상작으로 결정하였다. 시 ‘純金’은 정진규가 오늘의 시단에 줄기차게 내놓고 있는 산문시의 한 전범이다.짜임새가 빈틈이 없을 뿐 아니라‘純金’으로 표상되는 물질적 가치관과 집에 도둑이 들어잃게 되는 상실감 사이의 시대적 ‘상징의 무게’가 밀도있게 실려 있다. 그리 특별할 것이 없는 화자의 체험이 도저한 시적 사유와만나고 다시 사물과 사건 속에서 작은 우주를 형성해나가는문채(文彩)는 생각의 틀을 한 차원 고양시켜준다.‘純金’의 값이 이처럼 시로 매겨지는 일도 바로 저 공초(空超)시의무소유의 세계와 맞닿고 있음이 아닌지? 이 작품으로 상의중량감이 더해질 것이다. 심사위원장 이근배(재능대 교수·공초숭모회장). ◆시인 정진규. ▲1939년 경기 안성 출생▲19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나팔抒情’으로 등단▲1963년 시인 전봉건의 권유로 동인 ‘현대시’에 참가▲1965년 김광림 시인의 주선으로 처녀시집 ‘마른 수수깡의 平和’ (모음사)출간▲1977년 제3시집 ‘들판의 비인 집이로다’(교학사) 출간. 시에 산 문형대 도입▲1980년 제4시집 ‘매달려 있음의 세상’(문학예술사)으로제12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1981년 평전 ‘마돈나 언젠들 안 갈 수 있으랴’(문학세계사) 간행▲1985년 제6시집 ‘연필로 쓰기’ (영언문화사)로 월탄문학상 수상▲1987년 제7시집 ‘뼈에 대하여’ (정음사)로 현대시학작품상 수상▲1994년 제9시집 ‘몸詩’(세계 사)출간▲1997년 제10시집 ‘알詩’(세 계사) 출간▲1998∼2000년 한국시인협회장▲2000년 제11시집 ‘도둑이 다 녀가셨다’(세계사)출간▲현재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 ‘현대시학’ 주간김종면기자 jmkim@
  • ‘역사는 남북을 묻지 않는다’저자 이구영 선생

    “뭔가 뚜렷한 일도 하지 못한,남 부끄러운 과거이지만,남들이 겪지 못한 경험이 많아 자료적 측면에서 정리해 보았습니다.” 올해로 만 81세를 맞은 노촌 이구영 선생.그는 이같이 겸손한 한마디로써 자신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책에 담게 된배경을 압축했다.책 제목은 ‘역사는 남북을 묻지 않는다-격랑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온 노촌 이구영 선생의 팔십년 이야기’(소나무).선생의 구술을 심지연 경남대 교수가 옮겼다. 이구영 선생은 1920년 의병장 유인석의 활약이 돋보이던충북 제천의 양반집에서 태어났다.자라면서 자연스레 항일운동에 참여했고 청년기에 사회주의 사상을 만났다.이어 8·15 광복을 맞으면서 사회주의 활동에 나섰고 한국전쟁때 월북,58년에 남파됐다가 경찰에 붙잡혀 22년간 감옥에서 지냈다.80년 가석방된 뒤 서울 홍제동에 이문학회 사무실을 차리고 한문을 가르치고 있다.그의 이런 인생역정은우리나라가 그동안 겪은 질곡을 한눈에 보여준다. 그가 일생동안 만난 사람은 무수히 많다.의병장 유인석의 종사관이 작은 아버지였기에 의병들에 대해서도 면식과기록을 갖고 있다.벽초 홍명희로부터 글을 배웠고,사회주의에 빠져들면서 박헌영 등도 알았다.광복 후에는 김구선생을 찾아가 말씀을 들었고,시인인 육사 이원록,지훈 조동탁 등과도 알고 지냈다. 그는 책을 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신식공부도 못한 채 커서 세상에 나와 어리둥절하다가 순수한 의미에서 사회주의를 배웠으나 그것도 갈래가 많고,파생되는 일들을 격랑속에서 겪었고 전쟁도 지냈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게 신기하다.” 그는 이번 책을 내자마자 새로운 저술에 나섰다.자신이겪은 사회주의 운동에 대해 글을 써보려 했지만 그보다는의병사를 다루기로 했다.지난 93년 ‘호서의병사적’을 출간했으나 의병의 전모를 밝히기에 미흡하다는 안타까움에서다.“사회주의에 대해 실제 겪으면서 갖게 된 생각을 풀어내야 하는데 아직 관련자들의 자제들이 많이 살아있어서….의병활동은 집안에 자료가 있어 먼저 정리하려는 겁니다.” “작년 남북정상회담에 쏟은 국민의 관심을 잊지 말아야한다”는 그는 “우리나라는 외세에 의해 분단됐고 외세가 해독을 끼쳤고,옳은 말을 하는 사람들의 자손들이 좌절하고 피어나지 못했으며,이런 맺힌 것들이 풀려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책에 담았다”고 강조했다. 박재범기자 jaebum@
  • 백범 김구 영문편지 첫 공개

    백범 김구 선생이 해방 이듬해 미국과의 통상관계 수립을위해 한독당 관계자를 미국에 파견,당시 미 상무장관에게 보낸 편지(영문)가 새로 발견됐다.당시 임정세력과 미국 정부간에 정식 외교라인이 없었던 상황에서 백범이 미국정부 각료에게 통상 관련 서한을 보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1946년 8월 31일자로 작성된 이 편지는 발신지가 당시 한독당 본부가 자리잡은 운현궁으로 돼 있다.편지의 발신자는 한독당 위원장(Chairman Independence Party)인 백범,수신자는 미 상무장관 아브렐 해리먼(1891∼1986)이다.또 이 편지를가지고 미국으로 건너간 사람은 전경무(田耕武·1900∼1947)당시 재미한족국내파견대표단 외교위원이었다.백범은 편지에서 전씨를 워싱턴 주재 한독당 특별대표로 소개하고 전씨가미국정부에 한미 양국의 통상관계 수립을 요청할 것이라고밝히고 있다. 노경채 수원대(사학과) 교수는 “46년 2월 백범이 미군정자문기구인 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의 총리를 맞고 있어서 미국과 관계가 나쁘지 않았다”고 전제하고 “백범이 한독당위원장 자격으로 특사를 통해 미국측에 편지를 전달한 것은이승만과의 정치적 역학관계 등을 감안,미국과 독자적인 유대관계를 맺기위한 시도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편지 수신자인 해리먼은 제2차 세계대전과 전후의 냉전기간 동안 외교관으로서 미소간의 외교관계를 주도한 인물로 루스벨트 대통령시절 소련대사,영국대사를 지냈으며 케네디 대통령시절 국동문제담당 국무차관을 지낸 인물이다. 한편 이 편지는 재미사학자 안형주씨(安炯柱·65)가 미국 LA에 거주하는 전씨의 사촌여동생으로부터 입수한 것으로,편지 하단에는 백범의 한문 서명,낙관과 함께 ‘K.Kim’이라는 영문서명이 부기된 점이 이채롭다.백범의 비서를 지낸 선우진 백범기념사업회 상임감사는 “미군정초기 백범이 미국정부 각료에게 편지를 보낸 경우는 희귀한 사례”라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백범편지 전달 전경무씨는. 백범의 편지를 휴대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전경무씨는 1906년 사탕농장 노동자로 하와이로 건너간 재미한인 이민1세대의 후손이다.미 본토로 건너가 미국인에게 입양돼 미시건대를 졸업한 전씨는 임시정부 후원단체에서 외교·선전활동을 벌였다.1941년 재미한인들의 통합단체인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의사부 위원으로 선임되었으며,1944년 임정에서 새로 구성한 주미외교위원부의 외교위원장 비서로 활동하였다. 해방후 올림픽대책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임된 그는 한국올림픽위원회의 IOC가입을 위해 다양한 외교활동을 전개했다.1947년 5월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IOC총회 한국대표로 참석차미 군용기를 타고가던 그는 일본 후지산 부근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타계했다. 지난 95년 정부는 뒤늦게 그의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건국훈장 애국장(4등급)를 추서했다.그의 묘소는 서울 도봉구 우이동에 있었는데 돌보는 이가 없어 도시개발 과정에서 유실된것으로 알려졌다.
  • [김삼웅 칼럼] 미국과 사대언론의 인식전환을

    국가에도 시운(時運)이 따르는가. 우리는 가끔 좋은 기회를 놓치면서 좌절과 패배를 신념처럼 안고 살아간다. 1945년해방공간은 한국 현대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시기였다. 일제질곡에서 해방된 겨레는 새나라 건설의 희망에 부풀었다. 우익도 좌익도, 빈부격차도, 지역갈등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애국자와 친일파의 간극이 있었을 뿐이다. 우리는 그 좋은 기회를 놓쳤다. 지도자들이 국제정세를 내다보는 안목과통찰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해방공간의 훼방꾼은 느닷없이불거진 신탁통치문제였다. 1945년 12월27일 전후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모스크바에 모인 미·영·소 외상은 한국문제 4개항에 합의했다. ①임시 조선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한다. ②조선 임시정부 구성을 원조할 목적으로 미·소공동위원회를 설치한다. ③한국 임시정부 수립을 돕기 위해 미·소·영·중의 4개국이 공동관리하는 최고 5년 기한의 신탁통치를 실시한다. ④2주일 이내에 조선에 주둔하는 미·소 양군 사령부 대표로 회의를 소집한다. 그런데 이 합의문 전문(全文)이 아닌 신탁통치 문제만 국내에 전해지면서 국민의 반발은 마치 벌집을 쑤셔 놓은 듯했다. 즉각독립을 기대했던 국민에게 신탁통치란 상상하기 어려운,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었다. 신탁통치 문제를 둘러싸고 풀리지 않는 하나의 미스터리가있다. 45년 12월27일 동아일보는 1면 머리기사에서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이란 제목의 보도를 했다. 이 기사는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3개국 외상회담을 계기로 조선독립문제가 표면화하지 않는가 하는 관측이 농후해가고 있다. 즉 번즈 미국무장관은 출발 당시에 소련의 신탁통치안에 반대하여 즉시 독립을 주장하도록 훈령을 받았다고 하는데, 3국간에 어떤 협정이 있었는지는 불명하나 미국의 태도는 카이로선언에 의해 조선은 국민투표로써 그 정부 형태를 결정할 것을 약속한 점에 있는데, 소련은 남북 양지역을일괄한 한국신탁통치를 주장하여 38선에 의한 분할이 계속되는 한 국민투표는 불가능하다고 하고 있다”면서 ‘소련의구실은 38선 분할점령’이라는 큰 제목을 달아 보도했다. 이 보도를 근거로 이승만과 한민당, 김구와 임정세력은 신탁통치를 주장한 장본인이 소련이라 주장하면서 격렬한 반탁운동을 전개했다. 모스크바 3상회담이 진행중인 시점에서 반탁운동에 불을 지른 이 기사는 3상회담의 내용을 신탁통치안으로 국한시켜 보도하면서, 미국은 즉시독립을 주장하고 소련은 신탁통치를 주장한 것으로 왜곡한 것이다. 이 기사의 배경에는 당시 언론을 통제하던 미군정의 단순실수인지, 아니면 반소·반탁감정을 형성하기 위한 모종의 국제음모가 개입된 것인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다. 문제는 국가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시기에 잘못된 기사 하나가 역사의 물굽이를 바꿨다는 사실이다. 6·15선언 이후 현시점은 해방공간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남북이 적대와 대결을 접고 화해와 통일국가의 기초를 닦는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그런데 미국 부시대통령의 대북강경정책으로 한반도정세가 흔들리고 있다. 여기에 남북화해를못마땅하게 여기는 수구세력과 사대언론이 부화뇌동하면서포용정책이 위협을 받고 있다. 다행히 페르손 스웨덴총리를통해 북한이 2003년까지미사일 발사를 유예하고 남북공동선언을 이행할 것임이 확인됐다. 이제 부시 미국정부와 한국의 사대언론이 변할 차례다. 한국과 미국은 혈맹관계이다. 우리도 미국의 은혜를 입었지만 미국도 우리에게 빚을 졌다. 분단과 신탁통치문제는 묻어두고라도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일본의 작용으로) 한국을 전승국에서 제외시킨 것은 씻을 수 없는 과오이고 빚이다. 우리 임시정부가 대일 선전포고를 하면서 일제와 싸웠는데 한국을 제외시킴으로써 배상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거듭된 망언과 역사교과서 왜곡의 수모를 겪게 되었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미국은 남북화해에 협력해야 한다. 언론도 민족적 양심에서 남북문제를 보도해야 한다. 내일(9일) 한국을 방문하는 리처드 아미티지 미국무부 부장관 일행은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해서는 대북 포용정책이외의 대안이 없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하기 바란다. 그것이 미국의 이익에도 부합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김삼웅 주필 kimsu@
  • 박은식선생 호적 발굴

    사학자·독립운동가이자 민족지 대한매일신보의 주필을 지낸 백암 박은식(朴殷植·1859∼1925)선생의 대한제국 당시의 호적이 처음 발굴됐다. 이 당시의 호적자료가 거의 남아있는 것이 없는 데다 대표적인 민족지사 가운데 한사람인백암의 가계·가족사항·생활상태 등을 소상히 보여주는 자료여서 사료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이 호적은 대한매일신보사가 지난 99년 간행한 ‘백범김구전집’에 이어 ‘박은식·양기탁전집’(전10권) 간행을 위한 자료수집 과정에서 전집편찬위원회(위원장 윤병석)가 발굴,공개한 것이다. 이번에 발굴된 호적은 광무10년(1904년) 6월 한성부(현 서울시) 북서(北署)에서 작성한 것으로,당시 백암의 집주소는가회방(嘉會坊·현 가회동)이나 통(統)·호(戶)는 상태불량으로 확인이 어렵다. 당시 백암은 호주로 나이는 48세,본(本·본관)은 밀양,부인은 연안 차씨 44세로 나와 있다.또 직업을 쓰는 칸에 백암의 직업을 전교관(前敎官)으로 적고 있다.백암은 1900년부터 경학원 강사와 한성사범학교 교수를 지냈다.호적에 직업을 적은 것은 ‘갑오경장’으로 신분제가 철폐되면서 호적에 신분을 명기할 수 없게 된 데 따른 것이다. 선조의 가계란에는 부(父·用浩)·조(祖·宗錄)·증조(鳳儀)·외조(外祖·盧允儉) 등은 물론 생부(生父)란까지 두고있는데 이는 당시 입양이 흔한 일이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윤병석 전집편찬위원장(인하대 명예교수)은 “백암 선생의부인·증조부·외조부에 대한 신상은 이번 호적에서 처음확인됐다”면서 “백암이 남긴 이력자료가 거의 없는 데다이번에 발굴된 호적은 공문서라는 점에서 사료가치가 매우크다”고 말했다.‘전집’은 대한매일신보사와 ㈜동방미디어가 공동주관으로 발행하며,올 가을 전10권(박은식 7,양기탁 3) 규모로 출간될 예정이다. 한편 전집편찬위원회는 백암의 저서 가운데 ‘한국통사’등 11종은 입수했으나 ‘동명성왕실기’‘발해태조건국지’‘명림답부전’‘대동민족사’‘이순신전’‘이준전(李儁傳)’‘발해사’‘금사(金史)’ 등 8종의 행방은 수소문 중이다.(02)2000-9008정운현기자 jwh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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