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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의 힘으로” 백범정신 기린다

    “교육의 힘으로” 백범정신 기린다

    “앞으로 세계 인류가 모두 우리 민족의 문화를 사모하도록 하지 아니하려는가. 나는 우리의 힘으로, 특히 교육의 힘으로 반드시 이 일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 우리나라의 젊은 남녀가 다 이 마음을 가질진대 아니 이루어지고 어찌하랴!” 서울 성동구 금호동의 금남시장 로터리에 백범학원 설립 기념비가 들어선다. 성동구는 백범 김구 선생의 탄생일인 29일 오전 11시 기념비 제막식을 연다고 밝혔다. 백범은 성동구와 인연이 깊다. 백범은 광복 이후 전재민의 생활상을 크게 걱정했다. 2차대전 관련 노역에 시달리다 되돌아온 전재민들이 어렵게 사는 것을 가슴 아파했다. 그래서 1949년 전재민 부락이 있던 금호동에 백범학원을 세웠다. 또 안정적인 주거를 제공하기 위해 전재민주택, 일명 김구주택을 짓는 데 노력했다. 어머니 곽낙원 여사의 유해환국봉안식 때 들어온 부의금, 아들 김신의 결혼식 축의금 등을 탈탈 털어넣은 사업이었다. 구는 백범의 이런 뜻을 기리기 위해 지난해부터 백범학원의 정확한 위치를 찾는 사업을 진행했다. 6·25전쟁 때 폭격으로 사라지고 남은 건 낡은 사진 한장뿐이었으니 주민들에게 수소문하고 전문가들의 자료 조사 결과를 참조했다. 또 최고의 전문가들을 초빙했다. 김운성, 김서경 조각가가 기념비 제작을 맡았다. 일본대사관 앞에 위안부소녀상을 만들었던 작가다. 새겨 넣을 문구는 국내 최고의 백범 전문가로 꼽히는 도진순 창원대 교수가 ‘나의 소원’ 중에서 정했다. 글자꼴도 백범일지에 쓰인 친필 글자를 집자해 만들었다. 고재득 구청장은 “기념비 제막식을 통해 우리 후손들이 백범 선생의 동포애를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싸이 비하면 우린 아기… 하이힐 벗고 우리 색깔 찾았죠”

    “싸이 비하면 우린 아기… 하이힐 벗고 우리 색깔 찾았죠”

    “사진 찍을 때도 예쁜 척 금지, 브이(V)자도 금지, 인위적인 표정과 포즈 모두 금지예요. 자유롭고 개성 있는 모습이 저희 색깔이니까요.” 머리에 쓰는 헬멧을 바구니처럼 하나씩 손에 들고 14일 서울신문사를 찾은 5인조 신인 걸그룹 크레용팝(웨이, 소율, 금미, 초아, 엘린)은 자신들을 이렇게 소개하며 활짝 웃었다. 첫눈에도 ‘심상찮은’ 걸그룹이다. 단추를 목까지 채운 티셔츠에 미니스커트 아래로 긴 트레이닝복을 받쳐 입고 머리에 헬멧을 쓴 채 ‘빠빠빠’를 외치는 이들은 민망한 노출이나 선정적인 춤 동작 없이도 맹렬한 기세로 가요계에 급부상했다. 재미있는 안무, 신나는 노래가 이들의 병기다. “‘빠빠빠’로 생각지도 못한 사랑을 받게 돼 한동안 적응이 안 됐어요.”(소율), “온라인 음원 사이트에서 ‘빠빠빠’가 1위를 한 날 눈을 씻고 차트를 다시 봤어요. 저희끼리 소리를 지르면서 좋아했죠.”(웨이) 지난해 7월 데뷔한 이들은 엄밀히 말하면 ‘중고 신인’이다. 데뷔 앨범은 다른 걸그룹들과 차별화하지 못하면서 실패했고, 석 달 뒤 낸 두 번째 앨범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지난 6월 발표한 세 번째 앨범 타이틀곡 ‘빠빠빠’도 초반에 묻히는 듯했으나 한 달여 만에 역주행해 정상까지 올랐다. “‘빠빠빠’가 음원 순위 100위에 걸쳐 있어서 기뻤어요. 그것도 처음이었거든요. 잠깐 내려가는 듯했는데 SNS에서 뮤직비디오와 안무 연습 동영상이 입소문을 타면서 순위가 올라가기 시작했어요.”(초아) “가요 관계자들이 예전에는 음반을 내면 순위가 점점 올라가는 게 정상인데 요즘은 이런 일이 통 없었다고 얘기해 주시더라구요.”(엘린) 이들의 안무를 보면 누구나 입가에 미소를 짓게 된다. 특히 다섯 명의 멤버가 5기통 엔진처럼 뻣뻣한 자세로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는 ‘직렬 5기통’ 춤은 장안의 화제다. “원래는 위아래로 뛰는 동작만 있었는데 체력 소모가 많더라구요. 그래서 점프할 때 손동작을 추가했는데 피스톤이 움직이는 것 같은 착시현상을 주면서 그런 이름이 붙었어요. 원래 저희는 ‘두더지춤’, ‘점핑춤’, ‘널뛰기춤’이라고 불렀었죠.” 실제로는 도입부에 손을 45도 각도로 올려붙이고 추는 개다리춤을 가장 좋아한다는 이들은 “뛰어다니는 동작이 많아 숨이 차지만 무대에서는 티 안 내고 밝게 웃으려고 표정 연습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이들의 노래와 춤은 연예인은 물론 경찰관, 외국인들까지 패러디에 동참하며 신드롬을 낳고 있다. 방송인 김구라가 한 프로그램에서 선보였던 ‘구라용팝’도 그중 하나다. 따라하기 쉽고 코믹한 안무에다 중독성 있는 멜로디로 이들은 ‘제2의 싸이’로 불린다. 미국 빌보드는 지난 13일 공식 홈페이지에 “지난 1년간 바이러스처럼 퍼진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이을 스타가 탄생했다”며 크레용팝을 소개했다. 세계적 음반사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와도 앨범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싸이 선배님에 비하면 저희는 코흘리개인 셈인데 나란히 이름이 거론되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죠. 소니와 계약한 것도 기분 좋구요. 코믹 걸그룹이라는 이미지도 저흰 아주 마음에 들어요. 저희만의 유쾌한 면모를 원없이 보여 줄 수 있잖아요.” 히트곡 ‘빠빠빠’가 탄생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오랜 시행착오의 결과물이다. 데뷔 앨범을 내고도 방송에 출연하지 못하던 이들은 자신들을 부각시켜야 한다는 절박감에 2집 ‘댄싱퀸’ 때부터 트레이닝복을 입기 시작했다. 후속곡 ‘빙빙’으로 활동할 때도 교복에 트레이닝복을 입은 불량 여고생을 콘셉트로 잡았다. “아이돌 홍수시대이다 보니 좀 더 과감히 우리 색깔을 보여 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댄싱퀸’ 때 발차기와 고독춤 등 특이한 안무를 살리려고 트레이닝복을 입자고 제가 먼저 제안을 했죠. 원래는 쫄쫄이를 입으려고 했는데 발차기 느낌이 잘 안 살아서 트레이닝복으로 바꿨어요. 그때부터 일명 ‘추리닝돌’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서 팬들이 생겨났어요.”(웨이) 털모자에 트레이닝복을 입고 명동, 홍대, 신당동 등 길거리에서 게릴라 콘서트를 펼치기도 했다. 이들은 “처음에는 우리가 가수인지 댄서인지 헷갈려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옷에다 그룹과 멤버 이름을 새겨넣기까지 했다. 수도권 지역은 아마 거의 다 돌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헬멧을 쓰게 된 것은 초아의 아이디어. 초아는 “독수리 5자매 같은 느낌을 주고 싶어서였다”고 했다. 이들의 의상은 다 합해 대여섯 벌이 고작이다. 헬멧에 있는 두 줄의 띠는 매번 매니저가 색깔을 바꿔 붙인다. 삼복더위에 온몸을 꽁꽁 싸맨 의상이 더울 법도 하지만 트레이닝복 예찬론을 펼쳤다. “데뷔 때는 저희도 하이힐에 귀걸이 등 액세서리를 하고 춤을 췄는데 모두 다 뺐어요. 요즘은 다른 걸그룹들이 밥을 먹어도 배 안 나와 보여서 좋겠다고 부러워해요.” 크레용팝의 뒤에는 30~40대 아저씨팬들, 일명 ‘저씨팝’이 버티고 있다. 이들은 “공개방송 때 ‘저씨팝’들도 트레이닝복에 헬멧을 쓰고 오셔서 우릴 응원해 준다”고 웃었다. 일본에서도 미니 콘서트를 열 정도로 인기가 높다. 그런 과정에서 한때 일본의 괴짜 걸그룹들을 모방했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늘 무대에서 최선을 다해 장기를 펼쳐 보이겠다는 생각에 TV 예능 프로그램에는 나가지 않는다는 원칙도 세웠다. 인기가 수직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는 이들은 다음 앨범에서는 어떤 아이디어로 팬서비스를 할까, 즐거운 고민 중이다. “‘빠빠빠’는 가사가 많지 않고 반복되는 부분이 많아 저희 모습을 다 보여 드리지 못한 것 같아요. 다음 앨범에는 발라드도 넣어 더 다양해진 색깔을 보여 드릴 겁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광복 68주년 의미 있는 행사 2題] 애국·진보운동 태두 조봉암 생가 복원한다

    [광복 68주년 의미 있는 행사 2題] 애국·진보운동 태두 조봉암 생가 복원한다

    제68주년 광복절을 맞아 독립운동가이자 ‘진보운동의 태두’로 추앙받는 죽산 조봉암(1899∼1959) 선생의 사상과 업적을 재조명하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누구보다 애국적인 삶을 살았지만 공산주의자로 몰려 정적인 이승만에 의해 ‘사법살인’된 조봉암을 되돌아보자는 움직임이 죽산의 고향인 인천에서 일고 있는 것이다. ‘죽산 조봉암 기념사업중앙회’는 우선 생가 복원을 추진하고 있다. 사업회는 죽산의 생가터를 강화군 선원면 금월리 가지마을로 확정하고 토지 매입, 생가 건립 방안을 인천시와 협의 중이다. 시는 이 사업에 10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여기에는 송영길 인천시장의 의지가 담겼다. 진보주의자인 송 시장은 “조봉암은 현대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라며 “지금부터라도 죽산을 객관적으로 조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노동운동 원조’ 지용택(76)씨가 이끄는 새얼문화재단이 주축이 돼 동상 건립운동도 추진하고 있다. 재단은 2011년부터 시민 성금으로 7억 5000만원을 모았다. 목표액 8억원이 달성되면 동상 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할 계획이다. 조봉암은 30세 때 3·1운동에 참가했다가 주동자로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 동안 복역했다. 1920년 서울로 상경, YMCA 중학부에서 수학하다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준비한 혐의로 또다시 평양경찰서에 잡혀가 모진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해방 후에는 제헌의원·초대 농림부 장관이 돼 농지개혁과 농업협동조합운동을 전개했다. 1952년과 1956년 잇따라 제2·3대 대통령에 출마했으나 차점으로 낙선했다. 그 후 진보당을 창당했으며 1958년 1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돼 대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이듬해 7월 형이 집행됐다. 그러나 2011년 1월 대법원에서 간첩죄와 국가보안법 위반 등 주요 혐의에 대해 무죄 선고를 받았다. 백범 김구 선생이 구한말 인천에서 감옥생활을 한 곳에 기념관을 건립해야 한다는 주장도 지역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힘을 얻고 있다. 인천중구의회 전경희 의원은 김구 선생이 옥고를 치렀던 중구 내동 감리서 터의 역사성을 활용, 기념관을 건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인천 감리서는 김구 선생이 1896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대한 분노로 일본인을 살해하고 수감된 곳이다. 1911년 독립운동을 하다 두 번째로 수감된 곳도 감리서다. 인천시는 중구에서 공식 요청이 오면 이를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일본 망언 속상하죠? 애국 체험 함께해요

    일본 망언 속상하죠? 애국 체험 함께해요

    제68주년 광복절을 맞아 서울시 자치구들이 다채로운 행사를 마련한다. 특히 일본 정치인들이 잇단 망언에 이어 광복절에는 야스쿠니 신사를 대거 참배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우리 역사를 바로 알고 애국을 체험할 기회를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 중구는 14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중구협의회와 남산 팔각정에서 ‘68주년 광복절 기념 제22회 통일기원 남산봉화식’을 개최한다. 올해는 ‘참여·화합의 희망 애(愛)너지로 평화통일의 횃불을 밝히다’라는 주제로 구민들이 직접 행사에 참여한다. 15개 동별로 3명씩 모두 45명의 구민들이 별장, 감고, 봉군 등 봉수군으로 동참한다. 오후 7시 40분 시작하는 기념식에 앞서 7시부터 서울경찰홍보단의 오프닝 무대와 성악앙상블, 트럼펫 연주 등 식전 행사가 분위기를 한껏 달군다. 평화통일 사진전과 나라사랑 태극기 액자 만들기 체험행사도 있다. 봉수대 아래 나무 쉼터에서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남산 봉화 500년과 정보통신의 역사 등을 알려주는 청소년 느티나무 역사교실이 운영된다. 선조들의 애국심을 느낄 수 있는 거리 행사도 다양하다. 종로구는 광복절 당일 오전 10시~오후 2시 보신각과 종로대로 주변에서 ‘나라 찾은 날 광복절 재현 거리축제 봉사활동’을 펼친다. 청소년 430여명으로 구성된 자원 봉사자들은 종로구청~보신각 태극기 물결행진, 시민들에게 소형태극기 나눠주기, 보신각 타종 행사에 참가한다. 성동구는 김구 선생에 대한 특강을 마련했다. 13일 오후 4시 구청 대강당에서 ‘백범(白凡)과 월인천강(月印千江)?’을 주제로 백범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도진순 창원대 교수가 강연에 나선다. 백범 김구는 1949년 성동구 금호동에다 백범학원을 설립, 지역에서 어렵게 살던 주민들을 구호하는 활동에 활발하게 펼치기도 했다. 성동구는 도 교수의 특강을 계기로 기념비 건립 사업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시론] 우리 역사 교과서 문제의 핵심은…/이호철 소설가·예술원 회원

    [시론] 우리 역사 교과서 문제의 핵심은…/이호철 소설가·예술원 회원

    내가 우리 작단에 소설가로 데뷔한 뒤 처음으로 특별 글 청탁을 받아 응낙했던 것이 바로 1956년 봄인가, 이 서울신문이었다. 그로부터 어언 60년 가까이 지나 모처럼 같은 서울신문에서 글 청탁을 받고 보니, 82세에 이르러 뭉클한 감회도 없을 수가 없고, 1970년대와 1980년대 두 번에 걸친 감옥살이를 비롯해 필자대로 파란만장하게 겪었던 숱한 일들이 새삼 한 아름으로 당겨온다. 그리하여 모처럼 기회가 닥친 이 자리에서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할 것인가. 오늘 2013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가장 간곡하고 당면한 그리고 간절한 이야기를 내밀고 싶은데,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 점을 두고 며칠을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렇게 얻어낸 결론은 다름이 아니었다. 요즘 항간에 부글부글 끓고 있는 우리네 중·고등학교의 ‘역사교과서’ 문제였다. 그렇잖아도 지난 7월 31일자 어느 신문에도 ‘청와대, 새누리당, 교육부가 검토 중인 역사교육 강화 4개 방안’이니, ‘국사(國史), 국사학과 독점 안 된다’느니 관련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는데, 그 점을 한번 이 자리에서 필자대로 제기해 볼까 한다. 1945년 해방 뒤의 우리네 역사는, 우선은 남북 양측 권력의 실황(實況)에 초점을 맞추어야만 확실한 답이 나온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이를테면 남쪽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과 북의 권력자 김일성, 이 두 사람만을 놓고 정면으로 한번 마주 비교해 보자. 1947년에 이승만이 ‘정읍(井邑) 발언’에서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했을 때 당시 김구·김규식을 비롯해 이 나라 방방곡곡에서 반대의 물결이 회오리쳤었는데, 바로 그때 북에서는 그곳에 주둔했던 소련군 지휘하에 그 1년 전인 1946년 2월 8일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라는 단독정부가 이미 출범해 있었다. 그러나 이승만은 만난(萬難)을 무릅쓰고 갖은 무리한 짓까지 서슴지 않으며, 좌익 쪽 스탈린의 졸개들인 박헌영 일당을 송두리째 탄압해 이 남쪽의 공산화를 막아냈던 것이었다. 1948년 4·19를 기해 북의 평양에서 북한 정권 주관으로 남북 협상이라는 것이 열렸을 때도 김구·김규식을 비롯한 남쪽 요인 여럿이 북으로 들어가지만 김구 일행은 그냥 돌아오고, 벽초 홍명희는 그대로 북에 남아 그해 8월에는 박헌영과 함께 북한 정권, ‘공화국’의 부수상이라는 자리를 맡기에 이른다. 그로부터 66년이 지난 현 2013년 시점에 와서 새삼 돌아보면, 그때 이승만이 거의 혼자 힘으로 해 냈던 그 일, 스탈린 휘하의 박헌영 일당을 무찌름으로써 우리 남한의 ‘공산화’를 막아냈던 그가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그리고 어떤가. 그 이승만은 지금도 그 뒤의 박정희·김대중과 함께 동작동의 묘소 속에 묻혀 있고, 부산 토성동 ‘이승만 기념관’이라는 곳에 가 보아도 그지없이 조촐하고 질박하지만, 북의 김일성과 김정일은 어떤가. 저들 부자(父子)의 시체는 엄청난 거금을 들여 보존, 온 세계에 유례가 없는 호화찬란한 사후 궁전까지 조성함으로써 전 인류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어찌 한 나라의 권력이라는 것이 저 지경까지 이를 수 있다는 말인가. 필자는 바로 5년 전인 2009년에 우리네 남북이 겪어온 지나간 역사를 그 실상(實狀)대로 소설 형식으로 다룬 ‘별들 너머 저쪽과 이쪽’이란 책 한 권을 출간했었는데, 이번 기회에 교육부를 비롯해 관련 부처 담당자들이 관심을 가져준다면, 새로 책 제목부터 ‘손쉽게 읽을 우리네 근·현대역사’ 같은 것으로 고쳐 전국 중고생들부터 읽혔으면 싶다. 아무쪼록 관련 부처 담당자들부터 이 책을 한번 읽어주었으면 하는 간곡한 바람이다.
  • SBS ‘화신’ 27일 90분간 생방송

    SBS ‘화신’ 27일 90분간 생방송

    SBS 예능 프로그램 ‘화신’이 27일 밤 11시 10분부터 90분간 생방송 토크쇼 ‘더 화신 라이브’를 방영한다. 신동엽, 김희선, 김구라, 봉태규 등 4명의 MC들이 편집 없이 이뤄지는 생방송에 처음 도전해 기대가 높다. 프로그램이 이처럼 파격적인 시도를하는 이유는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다. ‘19금 토크’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신동엽과 ‘폭탄 돌직구’를 날리는 김희선, ‘독설 머신’ 김구라, ‘집착 캐릭터’를 선보인 봉태규까지 아슬아슬한 MC 4명이 생방송 토크쇼에서 어떤 돌발 발언과 행동을 벌일지 벌써부터 관심이 뜨겁다. 제작진은 “생방송 토크쇼를 한다면 ‘화신’을 이끌고 있는 MC들이 최상의 조합”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 박남현 “인상 강해서 암살 위험…청와대 경호원 탈락”

    박남현 “인상 강해서 암살 위험…청와대 경호원 탈락”

    연예계 싸움순위 1위로 꼽히는 배우 박남현이 강한 인상 때문에 대통령 경호원 시험에서 떨어진 경험담을 들려줬다. 31일 ‘황금어장-라디오스타’-전설의 주먹’ 편에 출연한 박남현은 ‘대통령 경호원이 될 수 있었는데 인상이 테러리스트같아서 탈락했다. 인상이 너무 강해서 적에게 노출돼 암살될 위험이 있어 탈락했다는 얘기가 있다’는 김구라의 질문에 “청와대 경호원 시험을 보러 갔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박남현은 “달리기 1등, 투기 1등 했는데, ‘야, 넌 안 되겠다. 넌 얼굴이 너무 강하다’는 소리를 들었다”며 외모 때문에 탈락한 사실이 있음을 인정했다. 이에 김구라는 “VIP(대통령)가 보고 놀라잖아”라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네티즌들은 “박남현 정말 매서운 인상”, “그래도 너무 웃기다”, “싸움순위 1위 정말 맞을까” 등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4차원녀’ 사유리 어머니도 4차원?…”사위는 김구라 닮아야”

    ‘4차원녀’ 사유리 어머니도 4차원?…”사위는 김구라 닮아야”

    ’4차원녀’ 사유리 어머니도 4차원? 사유리 어머니가 사윗감으로 김구라 닮은 남자를 꼽았다. 23일 방송된 KBS 2TV ‘여유만만’에서는 일본인 방송인 사유리와 그의 어머니 후지타 카즈코 씨가 출연했다. 이날 방송에서 사유리 어머니 카즈코는 “남편과 김구라가 많이 닮았다. 사유리가 김구라 같은 남자와 결혼했으면 좋겠다”고 폭탄 발언을 했다. 사유리 어머니는 이어 “(김구라 씨는) 20년 전의 남편과 똑같이 생겼다. 깜짝 놀랄 정도다”라고 설명했다. 또 “저와 김구라 씨가 결혼하면 사유리가 나오는 거다. 그 정도로 닮았다”고 덧붙였다. 이에 사유리도 “김구라 오빠 같은 남자 좋다. 김구라 오빠가 방송에서 보이는 바와 다르게 매우 신중하다. 머리가 똑똑하고 생각이 깊다”며 어머니의 의견에 동의했다. 사유리 어머니는 좋아하는 한국 연예인이 또 없냐는 질문에 배우 송강호와 배용준을 꼽았다. 그러나 배용준과 송강호, 김구라 중 누가 가장 좋으냐는 질문에 사유리 어머니는 주저 없이 “김구라”를 외쳐 폭소를 자아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마지막 권 ‘망국’ 편에서 국난극복 희망을 봤죠”

    “마지막 권 ‘망국’ 편에서 국난극복 희망을 봤죠”

    “제 책이 조선왕조실록으로 들어가는 내비게이션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휴머니스트)으로 500년 조선사를 만화로 되살린 박시백(49) 화백의 대장정이 10년 만에 마무리됐다. 2003년 7월 제 1권 ‘개국’으로 출발해 마지막 편인 20권 ‘망국’으로 완간하기까지 꼬박 10년이 걸렸다. 22일 완간에 맞춰 서울 연남동의 출판사 휴머니스트 사옥에서 기자들과 만난 박 화백은 “가장 아픈 역사를 담은 ‘망국’ 편에서도 희망을 봤다”며 홀가분한 미소를 지었다. “현재 우리가 보기엔 답답하고 안쓰러운 역사지만, 조선 말기 의병·독립군 등으로 일어선 선조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 시대에도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을 보았습니다. ‘아픈 역사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김구 선생, 안중근 의사 등 독립에 헌신한 인물들을 조명한 마지막 컷으로 책을 완결한 것도 그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총 2077책에 이르는 조선 정사의 기록으로 국보 제151호이자 유네스코 선정 세계기록문화유산이다. 이를 만화로 옮긴 박 화백의 손끝에서 탄생한 인물은 500여명이 넘고 컷수만도 2만 5000여 컷이나 된다. 한겨레신문 만평 화백이었던 그는 역사드라마를 보고 커가는 호기심에 2001년 회사를 그만두고 ‘외로운 작업’에 몰두했다. 조선왕조실록 CD을 탐색하고 혼자 그림 구성에 채색까지 다 해내는 등 하루 12시간의 노동에 매달렸다. 그러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들이 실록의 기록과 상당부분 배치된다는 점에 번번이 놀랐다. “드라마뿐 아니라 대중적으로 유명한 역사서에서도 야사를 따라간 기록들을 많이 봤습니다. 때문에 ‘실록을 제대로 알리는 것 자체가 중요하겠구나’하는 생각에 작업 초기에는 만화적 재미를 추구했다면 후반으로 갈수록 사실 전달에 더 방점을 뒀어요. 그래서 재미가 없다는 지적도 많이 받았지만요.”(웃음) 작업을 하면 할수록 그는 조선왕조실록의 위대함에 고개를 숙이게 됐다. “실록은 중요 정책과 왕과 신하의 주요 회의 등에 대해 대부분 기록을 남겨놨습니다. 특정 당파의 집권기에는 당파적 시각에 따른 해석이 많았지만, 있었던 사실에 대해서는 그대로 기록이 되어 있죠. 왕이 당대에 볼 수 없게끔 차단한 점, 지금껏 우리가 볼 수 있게 잘 보관했다는 측면에서 선조들의 지혜가 잘 나타난 세계에서 보기 드문 기록물입니다.” 이와 관련, 서해 북방한계선(NLL) 대화록 논란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는 “조선왕조가 500년간 기록과 보존을 대해 온 태도를 되새겨볼 때가 아닌가 한다. 그 정신을 잘 받든다면 이런 일이 재발되어선 안 된다”고 대답했다. 조선왕조를 이끈 500여명의 인물 가운데 그를 사로잡은 인물은 ‘세종’이었다. “세종은 하늘이 내린 인물이란 느낌입니다. 타고난 자질의 비범함이 대단했고 일 추진에 있어서도 민주적 리더십의 소양을 갖췄어요. 엄청난 일벌레인데다 추진력, 기획력까지 모든 걸 갖춘 천재라고밖엔 달리 표현할 수 없는 인물이죠” 박 화백의 책 이야기는 오는 29일부터 매주 휴머니스트 팟캐스트를 통해서도 만날 수 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내 작품 잘 알지도 못하지? 이번엔 제대로 보여주겠소”

    “내 작품 잘 알지도 못하지? 이번엔 제대로 보여주겠소”

    “싫다는 여배우를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고 극장 측의 몰이해로 관계자와 시비까지 붙었어요. 비난이 빗발쳤고 공연은 딱 한 번으로 그쳤습니다(김구림 화백).” 1970년 9월 서울 남산 국립극장에선 세계적 전위음악가 12명이 모여 인간의 가능한 소리를 모두 표현하는 ‘제1회 서울 국제현대음악제’(서울신문 주최)가 이틀간 열렸다. 소리 나는 물건을 때리고 차고 뜯는 이색행사에서 단연 눈길을 끈 것은 백남준의 ‘콤퍼지션’. 막이 반쯤 내려진 무대 위에 피아노를 놓고, 그 위에서 예술가 정찬승과 차명희가 애정행각을 벌였다. 몸동작에 따라 남녀의 네 발이 건반을 두드려 소리를 냈는데, 피아노 의자 위에는 남녀가 벗어놓은 속옷이 나란히 놓였다. ‘한국 전위예술의 선구자’로 불리는 김구림(77) 화백이 이 작품의 기획과 연출을 맡았다. 그는 “음악제를 앞두고 한 언론사 부장이 ‘이상한 사람이 있으니 꼭 만나보라’며 주최 측에 나를 추천했다더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김 화백은 국민교육헌장을 패러디해 인간 해방을 선언한 ‘제4집단’ ‘A.G.그룹’ 등 전위예술 단체를 이끌며 1960~1970년대를 풍미했다. 하지만 어느덧 대중의 기억에서 잊혔고, 정장에 검정색 뿔테 안경차림의 청년작가는 이제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됐다. ‘잘 팔리는 작가’가 아니어서 대중은 그를 잊었지만 기실 그는 건재했다. 지난해 말 영국 테이트모던 미술관에서는 백남준에 이어 한국 작가로는 두 번째로 초대전을 가졌다. 개인전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15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그를 만났다. 오는 10월 13일까지 이어지는 초대전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시립미술관 사상 처음 마련한 생존작가의 개인전이다. 김 화백은 “그동안 공간 제약 때문에 작품을 다 못 보여줘 안타까웠는데, 큰 미술관에서 제대로 펼치는 소원이 이뤄졌다”며 감회에 젖었다. 평생 50차례나 개인전을 열었지만 제대로 된 화랑은 4~5곳뿐이었다. 그가 누구인가. 회화, 행위예술, 무용, 설치, 조각, 보디페인팅, 비디오 아트, 연극·영화 연출 등 장르를 넘나들며 세상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데 몰두한 ‘아방가르드’의 전형이었다. 그런 그는 늘 화제를 몰고 다녔다. 여성의 몸에 국내 작가로는 처음 보디페인팅을 했고, 한국 최초의 실험영화 ‘24분의1초의 의미’를 찍었다. 대지미술을 선보인다며 한양대 건너편 한강 강둑에 100여m나 불을 지르기도 했다. 백남준과는 미 캘리포니아 헌팅턴비치에서 2인전을 열었을 만큼 ‘절친’이었다. 오래된 얘기 한 토막. 어느 날 백남준이 그에게 붓과 물감을 다루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진지하게 물어왔다. “농담조로 ‘물감을 짜서 처박아보라’고 했는데, 문득 TV화면을 보니 그 친구가 진짜로 물감을 짜서 여기저기 뿌리는 퍼포먼스를 벌이더라”며 껄껄 웃었다. 국내에서 인정받지 못한 그는 1980년대 미국으로 건너가 활동하다 2000년 귀국했다. 이번 전시에선 이 시기를 포함해 전 생애에 걸친 40여점의 작품들이 공개된다. 대형 얼음 설치작품인 ‘현상에서 흔적으로’, 대지에 구덩이를 파고 그 위에 커다란 돌을 올리는 ‘현상에서 흔적으로D’ 등도 나온다. 굴지의 미술관에 초대됐다가 녹아내리는 얼음이나 구덩이를 파는 작업이 성가시다는 이유로 취소·철거돼 공개되지 못했던 작품이다. 팔순을 앞둔 노(老) 화백은 미술계에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예술가는 장사꾼이 아니다. 그런데 최고 작가라는 사람들은 학맥, 인맥에 얽혀 작품을 파는 데만 몰두한다. 보기 좋은 게 예술이 아니다. 시대의 모순을 꼬집고 새로운 충격을 안겨야 그게 예술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특별기고] “베델이 꿈꾼 조선의 미래, 국민행복 시대로 구현되길”/윤병세 외교부 장관

    [특별기고] “베델이 꿈꾼 조선의 미래, 국민행복 시대로 구현되길”/윤병세 외교부 장관

    서울신문이 창간 109주년을 맞았다. 1904년 우리 민족이 외세의 침탈에 맞서던 당시,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는 일제의 침략을 전 세계에 알리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다. 특히,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고 조선을 위해 싸운 어니스트 베델은 37살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면서도 “나는 죽으나, 신보(新報)는 영생케 하여 한국 동포를 구하시오”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1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이 말은 우리를 숙연케 한다. 낯선 나라 조선을 위해 젊음을 바쳤던 베델은 무엇을 꿈꾸었을까? 베델은 박은식, 신채호 등 한국의 선각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독립과 번영을 누리는 조선의 미래를 상상했을 것이다. 100여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선각자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현대사에 거의 유례가 없을 정도로 단기간 내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일구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아직도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고, 국가의 발전이 국민 개개인의 행복으로 충분히 구현되지는 못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 기조는 이러한 역사인식과 문제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국민행복, 희망의 새 시대’는 국가발전의 양적 측면 못지않게 질적 측면을 중시하면서 국민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국민중심적인 비전’이다. 또한 “우리가 행복하고 남을 행복하게 하는 아름다운 나라”를 꿈꾸었던 백범 김구 선생님처럼 이웃과 함께 성장하는 협력적 공동발전을 지향하는 비전이기도 하다. ‘신뢰 외교’는 이러한 국정 기조를 구현하기 위한 철학이자 외교전략이다. 국가 간의 관계나 공동체의 형성 과정에 있어 지속가능한 협력은 항상 신뢰의 수준과 같이 했다는 것이 역사의 경험이자 순리이기도 하다. 신뢰외교는 진정성과 원칙에 입각한 정책을 일관되게 전개해 나감으로써 공고한 상생의 인프라를 구축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이러한 국정 기조와 외교 전략의 기치하에 확고한 안보를 토대로 남북 간 신뢰를 구축하여 한반도에 지속가능한 평화를 정착시키고 평화통일의 기반을 조성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강해야 할 때는 강하게 대응하여 평화를 지키는 한편, 유연해야 할 때는 원칙 안에서 유연하게 대응하여 평화를 만들어 내려는 것이다. 남북 간 신뢰구축뿐 아니라,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의 올바른 변화를 유도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은 신뢰외교를 동북아 지역으로 확대하여 ‘아시아 패러독스’ 현상을 협력의 구도로 바꾸어 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작지만 의미 있는 연성 이슈에서 시작하여 협력의 습관을 축적함으로써 함께 번영하는 동북아를 차분히 만들어 나가겠다는 것이다. 주변국에 의해 많은 어려움을 겪은 우리 민족에게 평화롭고 협력적인 동북아의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한반도와 동북아에서의 신뢰형성 과정이 상승 작용을 일으킬 때 통일 과정도 촉진될 것이다. 한반도와 동북아 차원을 넘어 박근혜 정부는 지구촌의 행복이라는 기조하에 세계 평화와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하고 있다. 새로운 안보 위협에 대한 대응, 인권 증진, 기후변화와 세계 경제문제 해결 등 글로벌 거버넌스 분야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한편, 개도국에 ‘하면 된다’는 희망을 주는 맞춤형 개발협력을 통해 나눔과 배려의 대한민국을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그간 성공적인 한·미,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신뢰에 기반한 포괄적인 협력의 틀을 구축하고, 북한에 대해 강력한 안보태세를 기반으로 도발 의지를 차단하면서 변화를 위한 올바른 선택을 일관되고 강력하게 촉구해 왔다. 또한 북극이사회 진출 등을 통해 새로운 외교 지평을 확대하고, 아세안과 동남아, 중남미 등 우리 외교의 후방을 든든히 하였다. 최근 한반도 문제는 물론 주요 국제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우리의 위상과 역량이 크게 달라졌다. 핵심국들과의 전략적 소통이 더욱 원활해졌고 통일된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졌다. 우리의 능동적인 역할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대 또한 높아졌다. 이제 우리는 100여년 전 역사의 변방에 내던져졌던 객체가 아닌 당당한 역사의 주체로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베델과 같은 선각자들이 꿈꾼 조선의 미래가 국민행복, 한반도 행복, 지구촌 행복의 시대로 구현되리라 확신하며, 서울신문 창간 109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 정주리 연하남 공략법은 ‘최면요법’…”나를 좋아하게 될 것이다”

    정주리 연하남 공략법은 ‘최면요법’…”나를 좋아하게 될 것이다”

    정주리가 자신만의 연하남 공략법을 공개했다. 17일 방송된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 출연한 개그우먼 정주리는 MC 규현에게 “나한테 관심 없냐. 나 별로냐”며 돌직구 질문을 해 눈길을 끌었다. 이에 규현은 “별로라기보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규현의 답에 정주리는 “생각하게 될 걸요. 곧”이라고 말해 규현의 얼굴이 붉어지게 만들었다. 정주리는 이어 “나를 좋아하게 될 것이다. 분명 집에 가서 내 생각이 날 것이다”는 말로 연하남을 공략한다고 해 MC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MC 김구라가 “그럼 남자들은 무슨 반응을 보이느냐”고 묻자 정주리는 “규현 같은 반응을 보인다. 난 오래 투자를 한다. ‘너는 결국 나를 만나게 된다’고 주입시킨다”라고 거듭 강조해 폭소를 자아냈다. 또 “매일 연락하다가 갑자기 연락을 끊는다. 그러면 궁금해서 나에게 전화 하게 된다”라고 말했고 규현도 “연락이 끊어지면 왜 연락하지 않는지 궁금해질 것 같다”라고 공감하는 반응을 보였다. 한편 이날 방송된 ‘라디오스타’는 ‘연하남 사용설명서’ 특집으로 김준희, 안선영, 정주리, 박재범이 게스트로 출연해 연애 비법을 전수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신성우 과거 고백 ‘나이트 클럽 죽돌이’ 소문 해명 “장호일이 꼬셔서”

    신성우 과거 고백 ‘나이트 클럽 죽돌이’ 소문 해명 “장호일이 꼬셔서”

    가수 신성우가 과거 나이트클럽 마니아였다고 고백해 화제가 되고 있다. 신성우는 지난 10일 방송된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나이트 죽돌이’라는 소문에 대해 해명했다. 신성우는 “솔직히 클럽에 가기 싫었다”면서 “죽돌이도 맞는 표현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죽돌이는 장호일이었다”면서 “내가 집에 간다고 하면 전화가 와서 11시까지만 있다가 가라고 했다”고 소문의 진상을 밝혔다. 이에 김구라가 “나이트클럽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뜻인가?”라고 묻자 신성우는 “여러 번 가다 보니 나도 동화가 되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요즘에도 클럽에 자주 가냐”는 질문에 “이 나이에 클럽 가면 인수하러 온 줄 안다”고 답했고 장호일 역시 “딸 찾으러 온 줄 안다”고 답해 웃음을 안겼다. 신성우 과거 고백에 네티즌들은 “신성우 과거 고백, 어딘지 궁색하네”, “신성우 과거 고백, 장호일이 뒤집어썼네”, “신성우 과거 고백, 클럽에서 인기 많았을 듯”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임수향, “19禁 영화 가루지기 다섯번 봤다”…주연 봉태규 반응은

    임수향, “19禁 영화 가루지기 다섯번 봤다”…주연 봉태규 반응은

    배우 임수향이 봉태규 주연의 영화 ‘가루지기’ 광팬임을 밝혀 네티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가루지기는 아낙네들의 놀림을 받는 떡장수 강쇠(봉태규)가 한 사건을 계기로 정력남으로 변하는 과정을 그린 19금 코믹영화다. 임수향은 9일 방송된 SBS ‘화신-마음을 지배하는 자’에 출연해 “가루지기를 5번 넘게 봤다. 케이블 채널에서 자주 해준다”고 밝혔다. 또 MC 봉태규를 향해 “그래서 그런지 남 같지 않다”고 밝혀 시청자와 출연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봉태규는 “나도 5번은 안 봤다”라며 민망하다는 반응을 보였고 MC 김구라는 “어쩐지 임수향이 봉태규를 동료 연예인으로 안보고 스타로 보더라”고 농담을 던져 또 한번 폭소를 자아냈다. 네티즌들은 “가루지기 나도 못봤는데 한번 봐야겠다”, “도대체 어떤 부분 때문에 그렇게 많이 본거지” 등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편 임수향은 이날 방송에서 “나랑 똑같이 생긴 사람이 도플갱어가 강남에서 내 행세를 하고 다닌다”고 밝혀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줬다. 임수향은 “내 도플갱어는 아이돌, 배우 등 톱스타를 가리지 않고 스킨십을 한다”고 설명했다. 또 도플갱어와 스킨십을 한 사람이 누군지 아느냐는 질문에 “전 알죠”라고 말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강용석 “盧, NLL 포기 해석 어려워…정문헌·서상기 의원직 사퇴해야”

    강용석 “盧, NLL 포기 해석 어려워…정문헌·서상기 의원직 사퇴해야”

    종편 채널 JTBC의 인기 프로그램 ‘썰전’에 출연하고 있는 강용석 전 의원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 관련 회의록과 관련, “회의록 전문을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강용석 전 의원은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의혹들 제기했던 정문헌·서상기 새누리당 의원을 향해 “사퇴하라”는 발언을 해 눈길을 끌었다. 4일 방송된 썰전은 ‘국정원 NLL 대화록 공개 논란! 노무현 전 대통령 NLL 포기발언의 진위는?‘이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이날 방송에 출연한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발언’은 포기가 아니라는 시각이 많다”면서 “NLL 문제제기에 책임지겠다던 사람은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강용석 전 의원은 “국정원의 NLL 대화록 공개는 선거개입을 ‘물타기’ 하는 수준이 아니라 ‘물갈이’ 하는 것”이라며 이철희 소장의 의견에 동조했다. 강용석 전 의원과 이철희 소장이 지목한 이들은 정문헌 의원과 서상기 의원이다. 정문헌 의원은 지난해 10월 통일부 국장감사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방북 당시 NLL을 포기하겠다는 발언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사실이 아닐 경우 정치 생명을 걸겠다”고 말했다. 서상기 의원도 “내 주장에 과장이 있으면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공언했다. 강용석 전 의원은 “(두 의원이) 사퇴해야 한다. 이 정도 이야기 해놓고 착오라고 하면 (곤란하다)”면서 “서상기, 정문헌 의원이 과했다. 자신의 발언에 책임을 지겠다고 했으니 마땅히 사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용석 전 의원의 발언에 진행을 맡은 방송인 김구라가 “오늘 세게 나오는 것 아니냐”고 제동을 걸자 강용석 전 의원은 “나는 행동하는 양심”이라면서 소신을 굽히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맹수열 기자 guns@seoul.co.kr
  • 민주 “정치공작 진상규명” 첫 장외투쟁

    민주 “정치공작 진상규명” 첫 장외투쟁

    민주당이 국정원의 대선 개입 논란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와 관련해 30일 첫 장외투쟁을 갖고 원내외 병행 투쟁에 나섰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국정원의 대선 개입 등에 대해 여권에 부정적인 여론이 우세한 것으로 드러나자 본격 대여 공세에 나선 것이다. 당 지지세를 만회해 보겠다는 의지도 엿보인다. 민주당은 원내에서 국정원 국정조사에 주력하는 동시에 원외에서 권역별 규탄대회를 여는 등 병행 투쟁에 나섰다. 제1야당으로서의 위상을 보여줌으로써 무소속 안철수 의원과의 차별화를 드러내는 효과도 있다. 민주당은 부산, 광주 등에서도 순회 집회를 여는 등 여론전에도 주력하기로 했다. 민주당은 이날 오후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정치공작 진상규명 및 국정원 개혁 촉구 서울시당 당원 보고대회’를 개최했다. 보고대회에는 김한길 대표와 전병헌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와 서울지역 민주당원 등 600여명이 참석했다. 민주당이 옥외집회 대신 옥내 대회를 택한 것은 국회를 포기하고 거리로 나설 경우 여론이 부정적으로 흐를 수 있고, 동원 능력에 한계가 예상되는 데다 폭염까지 겹치면서 자칫 참석 인원이 저조할 경우 대여투쟁의 기세가 급격히 꺾일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대회에서 민주당 서울시당 당원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요구 등을 담은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 [책꽂이]

    영웅 백범(홍원식 지음, 지식의숲 펴냄) 백범 김구의 생애와 사상을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백범 일지’의 사건들을 소설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400쪽. 1만 3900원. 활력 경영(정이만 지음, 나남 펴냄) 63시티, 플라자호텔 대표이사를 지낸 저자는 인간 중심 경영을 통해 사람들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면 목표 대비 130%, 200%도 달성할 수 있다는 ‘활력 경영’론을 주장한다. 267쪽. 1만 4000원. 길에서 별을 만나다(유별남 지음, 이마고 펴냄) 10여년간 사막이나 고산지대, 분쟁지역을 오간 사진작가 유별남의 편지와 사진을 엮었다. 온몸으로 뚫고 지나온 길 위의 삶이 담겼다. 240쪽. 1만 5000원. 제왕들의 사생활(윌 커피 지음, 남기철 옮김, 이숲 펴냄) 제왕들의 인간적인 면모에 주목한 유쾌한 역사서. 이집트의 파라오부터 페리클레스, 네로 등 그리스·로마의 통치자, 루이 14세 등 유럽의 군주까지 제왕 20여명의 삶을 소개했다. 328쪽. 1만 5000원. 셜록 홈즈 추리파일(팀 데도풀로스 지음, 윤금현 옮김, 보누스 펴냄) 150개의 미해결 사건을 제시하고 독자가 직접 이를 풀어내도록 유도한다. 수학적 사고를 추상화한 책의 화법이 돋보인다. 300쪽. 1만 2800원. 신동삼 컬렉션:독일인이 본 전후 복구기의 북한(신동삼 지음, 눈빛 펴냄) 전후 북한과 관련된 500여장의 컬러 사진을 복원해 수록했다. 망명한 북한 유학생 출신 신동삼(83) 선생이 함흥시 재건 현장과 북녘 산하, 문화재 등의 모습을 전한다. 488쪽. 2만 9000원. 사랑은 왜 아픈가(에바 일루즈 지음, 김희상 옮김, 돌베개 펴냄) 감정사회학의 대가인 에바 일루즈의 역작. 오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이성 간 사랑의 이면에 대한 사회학적 통찰이 빛난다. 부제는 ‘사랑의 사회학’. 556쪽. 3만원.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테드 코언 외 지음, 문은실 옮김, 미다스북스 펴냄) 야구와 철학을 접목한 통섭적인 서술이 독특하다. 테드 코언 시카고대 철학과 교수 등 20명의 필진이 야구사의 흥미로운 사건과 비화를 끄집어내 철학적인 해답을 찾는다. 422쪽. 2만원. 열녀전(유향 지음, 이숙인 옮김, 글항아리 펴냄) 동아시아 2000년 역사에서 고전의 권위를 누려온 열녀전의 완역본. 기존 문헌 속 인물을 선별해 편집하는 대신 저자가 이야기를 변형시켰다. 역사와 서사, 사실과 허구가 섞였다. 712쪽. 2만 9000원. 하루 한 끼의 기적(이태근 지음, 정신세계사 펴냄) MBC다큐멘터리 ‘기적의 사나이’의 주인공이 전하는 1일 1식의 기적. 신장이식을 했던 저자는 1일 1식으로 28년간 약을 끊고 누구보다 건강하게 살고 있다. 208쪽. 1만 2000원. 밤의 인문학(밥장 지음, 앨리스 펴냄) 늦은 밤 ‘바’에서 벌어지는 인문학의 아라비안나이트. 인문학의 접근 범위를 넓힐 수 있게 도와주는 도서 지침서. 저자가 맥주잔을 기울이며 읽어온 책의 기록이다. 300쪽. 1만 5000원. 상인 이야기(이화승 지음, 행성:B잎새 펴냄) 인의와 실리를 좇아 천하를 호령한 중국 상인사. ‘사기’의 화식열전에 실린 범려, 자공, 백규와 같은 상인들의 경영전략이 담겼다. 국내 학자가 처음으로 집대성한 중국 상인의 성장사다. 384쪽. 1만 8000원.
  • 백범 김구 선생 서거 64주기 추모

    백범 김구 선생 서거 64주기 추모

    백범 김구 서거 64주기 추모식 및 경교장 내부 복원 기념식이 26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경교장에서 열렸다. 고 이한열씨의 어머니 배은심(왼쪽에서 세 번째부터) 여사, 백기완 민족문제연구소장,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등이 단상에 헌화하고 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 ‘요물 발언’ 논란 성규, 알고보니 본인이 더…

    ‘요물 발언’ 논란 성규, 알고보니 본인이 더…

    케이블 채널 tnN ‘더 지니어스 - 게임의 법칙’에 출연하고 있는 그룹 인피니트의 멤버 성규가 다른 출연자인 방송인 박은지에게 “요물”이라는 말을 해 논란에 휩싸인 가운데 성규의 프로그램 속 말과 행동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더 지니어스는 13명의 출연자가 매주 2차례의 게임을 통해 1명씩 탈락자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처음 프로그램을 시작할때는 카리스마가 뛰어난 방송인 김구라, 머리회전이 빠른 이준석 클라세스튜디오 대표, 드라마 ‘올인’의 실제 모델로 뛰어난 게임 감각을 자랑하는 차민수 카지노인터내셔널 회장 등이 우승 후보로 꼽혔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막바지로 접어든 현재 이 세 사람은 모두 탈락한 상황. 성규는 방송인 김경란, 가수 이상민, 전 프로게이머 홍진호와 함께 생존자 명단에 들어가 있다. 성규는 첫 방송부터 게임 룰조차 잘 모르겠다며 다른 경쟁상대들의 견제를 빠져나갔다. 성규는 자신을 이용해 살아남으려는 김구라 등에 의해 첫 회부터 우승을 차지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성규는 영민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지난달 31일 방송된 6회에서는 메인 게임인 ‘도둑 잡기’에서 도둑을 맡아 모든 출연자들을 장악했다. 14일 방송된 8회에서는 예상을 뛰어넘는 부정행위와 연합을 통해 탈락 위기에 놓인 박은지가 살아남게 하는데 큰 몫을 했다. 특히 성규는 거의 모든 출연자들로부터 애정과 불신을 동시에 받으면서도 적절한 야합과 배신으로 살아남기를 반복했다. 성규가 다른 출연자에게 ‘요물’이라는 단어를 쓴 것이 더욱 아이러니하고 눈길을 끄는 이유는 예측불허의 행동으로 게임의 룰을 쥐고 흔드는 그의 캐릭터가 큰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정전협정 60년] 브루스 커밍스 美 시카고대 석좌교수가 말하는 ‘한국전쟁’

    [정전협정 60년] 브루스 커밍스 美 시카고대 석좌교수가 말하는 ‘한국전쟁’

    “한국 사람들은 왜 어느 쪽이 전쟁을 일으켰는지에만 관심이 있습니까.” 브루스 커밍스(70) 시카고대학 석좌교수는 지난 20일(현지시간) 진행된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남북한이 한국전쟁의 책임을 놓고 서로를 손가락질하는 비난전을 그만둬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그의 부인인 한국인 우정은 박사가 학장으로 있는 버지니아주립대 캠퍼스 내 자택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커밍스 교수는 한국 현대사와 관련된 구체적인 날짜와 한국인 이름을 자료도 없이 술술 말해 한국전쟁 연구의 최고 권위자임을 실감케 했다. →미국과 한국이 북한의 남침을 유도했다는 당신의 수정주의 이론에 반해 옛 소련의 기밀문서를 통해 북한의 남침이 확인됐는데. -나는 수정주의자가 아니라 개척자다. 내가 쓴 글은 미국 정부의 1급 비밀 문서에 기반을 두고 있다. 나는 미국과 한국이 북한을 침공했다고 말한 적이 없다. 1985년부터 전두환 정권이 그렇게 (조작)한 것이다. 내가 1990년에 쓴 책은 1950년 6월에 전쟁이 시작됐다는 기존의 관념을 허물려는 시도였다. 한국전쟁의 뿌리는 1945년 이후 발생한 일련의 일들에 있다. 미국은 일방적으로 한반도 분단을 결정했고 소련이 나중에 그것을 수용했다. 그것이 한국전쟁의 기반이 됐다.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의 남과 북에 진주했고 남한에서는 이승만이,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권력을 잡았다. 이 때문에 한국전쟁은 근본적으로 내전이다. 나는 북한이 남한을 6월 25일 침공한 것을 알고 있다. 문제는 그 침공이 남한의 자극에 의해 일어났는지 여부다. 1949년 8월 옹진, 개성, 철원 등지에서 남북 간 충돌이 격화됐다. 이승만이 공격을 원할 때 주한 미국대사가 반대했고, 김일성이 공격을 원할 때 주북 소련대사가 반대했다. 양측의 공격 욕구는 이렇게 억제됐다. 그리고 이듬해 봄 스탈린과 마오쩌둥(毛澤東)이 김일성에게 제한적인 대남 공격을 승인한 것이다. →소련 기밀문서 공개에도 불구하고 기존 이론을 수정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는 얘기인가. -기밀문서를 통해 소련의 연관성이 예상보다 깊숙했다는 점이 밝혀진 것을 빼면 나머지는 별로 수정할 필요를 못 느낀다. 나는 내가 했던 일에 대해 여전히 굳은 확신을 갖고 있다. 다만 책을 쓰는 시점에 아직 나오지 않은 문서에 대해서는 예상할 수 없었을 뿐이다. 나는 다른 학자들이 하지 못한 방대한 북한 문서를 연구했다. 나는 지난 20여년간 내가 하지도 않은 말 때문에 공격받았다. 사람들은 내 책을 읽지도 않고 말했다. →한국전쟁을 미국이 일부러 유도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나. -안 했다. 나는 단지 딘 애치슨 당시 국무장관이 탱크와 항공기를 한국에 두기를 거부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 무기로 이승만이 북한을 공격하는 것을 우려했다. 하지만 그 결정으로 인해 남한은 북한이 6월 25일 침공했을 때 대처할 무기가 없었다. 애치슨은 한국에 대해 매우 모호한 전략을 갖고 있었다. 이 때문에 김일성은 어리석게도 전쟁을 일으키고 말았다. 애치슨이 전쟁을 유도하기 위해 음모를 꾸몄다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그는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고 그로 인해 미국은 많은 ‘옵션’을 확보할 수 있었다. 만약 이승만이 공격하면 미국은 지원하지 않는 반면 북한이 공격하면 이승만을 지원한다는 것이었다. 애치슨이 남한을 ‘애치슨 라인’에서 제외한 이유는 이승만이 미국을 등에 업고 북한을 공격하는 상황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남한이 북한을 침공할 가능성도 있었다는 얘기인가. -1949년 5월부터 12월까지 38선 곳곳에서 벌어진 대부분의 싸움을 남한이 먼저 시작했다. 따라서 1950년 6월 25일의 침공은 북한이 ‘전면전’을 일으켰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1949년 8월 주한 미국대사는 워싱턴에 보낸 전문에서 “이승만이 북한군의 옹진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철원을 공격하려 한다”고 밝혔다. 한국전쟁의 본질은 당시 남북한의 지도부가 서로를 죽이려 했다는 것이다. 미국과 소련 모두 뜨거운 감자를 두 손에 쥐고 있는 꼴이었다. 그런데 이승만이 그해 12월부터 한국군에 “38선에서 도발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린다. 이후 38선 남쪽이 조용해졌다. 남한의 공격을 남침 명분으로 삼으려던 김일성이 1950년 2월 주북 소련대사에게 “왜 남한이 요즘 공격을 안 하느냐”고 물을 정도였다. →미국이 애치슨 라인에서 남한을 배제한 것은 북한의 침공을 예상치 못했기 때문인가. -아니다. 1949년 6월 30일 남한에 있던 마지막 미군이 오키나와로 나간 직후 애치슨 장관이 국무부 극동담당 차관에게 ‘만약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면 유엔에 회부한다’는 메모를 건넸다. 한국전 발발 1년 전에 이미 전쟁 가능성을 예측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스탈린이 승인하지 않으면 북한은 남한을 침공할 수 없는데, 스탈린은 침공을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은 소련이 2차 대전의 후유증 때문에 새로운 전쟁에 뛰어들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 스탈린이 허락지 않으면 감히 중국도 전쟁에 개입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스탈린이 통제하는 획일적인 공산주의가 있다고 잘못 추정한 것이다. →한국전쟁의 특징은 무엇인가. -반(反)식민지 전쟁이라는 점에서 베트남전과 매우 비슷하다.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했던 빨치산 출신 김일성 등은 북한을 접수한 반면 남한에서 김구와 같은 민족주의자들은 밀려났다. 남한에서 미국은 일본 경찰과 장교 출신들을 기용했다. →한국에서는 내전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는데. -이곳에서 8마일(약 12.8㎞)만 리치먼드 쪽으로 가면 남북전쟁박물관이 있다. 거기에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남군을 침공할 명분을 얻기 위해 남군의 공격을 유도하는 속임수를 썼다’는 내용이 씌어 있다. 남부 사람들은 남북전쟁이 내전이 아니라 주(state)들끼리 벌인 전쟁이라고 한다. 한국인들이 6월 25일에만 초점을 맞추는 한 김일성, 스탈린, 마오쩌둥만 나쁘고 남한은 결백한 게 된다. →한국과 미국도 한국전쟁의 책임이 있다는 얘기인가. -미국의 책임이 크다. 미국은 38선을 그을 때 어떤 나라와도 상의하지 않았다. 그것은 나쁜 결정이었다. 70년 가까이 흐른 지금까지도 한반도 문제의 근원이 되고 있다. 이승만도 큰 책임이 있다. 그는 일본군에서 복무한 장교를 기용했다. →결국 한국전은 국제적 역학관계 속에서 발생했다고 봐야 하나. -아니다. 가장 중요한 원인은 한국 내 모순이다. 일제강점기부터 1945~1950년 사이 일련의 사태들이 영향을 줬다. →지난 60년간 정전체제는 잘 운영됐다고 보나. -아니다.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사건 등 매우 불행한 일들이 일어났다. 정전체제는 평화협정으로 대체돼야 한다. 중국과 소련은 1990년대 초 남한을 승인했지만 미국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한국전쟁의 교훈은. -미국인으로서 나는 한국전쟁 당시의 트루먼 대통령과 애치슨 국무장관에게 큰 존경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당시 미국은 식민지 국가들의 독립 열망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한반도에서 김일성의 반(反)식민지 운동에 봉착한 것이다. 1944년 국무부 문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한국인과 진정한 관계가 없는 반면 만주의 빨치산은 일본군에 잘 대적하고 있다”면서 “김일성을 접촉해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제안이 현실화했다면 한국전은 발발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형제를 사랑하라”고 말하고 싶다. 정전 60년이 흐른 지금도 한국인들은 누가 먼저 전쟁을 일으켰는지에만 관심이 있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1997년 북한에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갔을 때 한 북한인이 “누가 한국전쟁을 시작했다고 생각하느냐”고 묻더라. “많은 원인이 복합작용한 내전”이라고 답했더니 그는 “한민족에 대한 미 제국주의자들의 전쟁”이라고 하더라. 한국전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런 ‘비난 게임’을 멈추고 화해해야 한다. 글 사진 샬러츠빌(버지니아주)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미국 컬럼비아대 정치학(동아시아 전공) 박사 출신이다. 1960년대 후반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한국에 온 이래 한국 현대사 연구에 천착했다. 그의 저서 ‘한국전쟁의 기원’은 반공주의에 치우친 기존 연구의 평면성을 넘어 수정주의적 관점에서 식민지와 냉전, 계급 갈등이라는 전쟁의 구조적 기원을 파고들었다는 점에서 한국전 연구를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고, 1980년대 통일, 반미 운동과 맞물려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한국전쟁 연구는 커밍스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까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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