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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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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경원 특검’ 국민청원에 청와대 “공정 향한 강한 열망 느껴”

    ‘나경원 특검’ 국민청원에 청와대 “공정 향한 강한 열망 느껴”

    ‘조국 수사’ 검찰 기밀누설 처벌 청원에 “수사 지켜봐야”‘나경원 의혹 특검요청’ 청원에는 “국회가 결정할 사안” ‘기밀누설죄를 범한 윤석열 검찰총장을 처벌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대해 청와대가 26일 입장을 밝혔다. 김광진 청와대 정무비서관은 이날 청와대 SNS를 통해 밝힌 답변에서 “경찰이 이번 일과 관련한 고발 건을 지능범죄수사대에 배당해 절차에 따라 수사하고 있다”면서 “경찰 수사 진행 상황과 그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해당 청원은 지난 8월 28일에 올라와 한달 만에 48만여명의 참여를 받았다. 이번 청원의 계기가 된 것은 8월 27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의혹과 관련해 서울대, 부산대 등을 검찰이 압수수색한 직후 나온 언론 보도였다. 당시 한 언론은 조국 전 장관 딸의 지도교수인 노환중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문재인 대통령 주치의 선정 과정에 개입했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이에 박훈 변호사는 서울중앙지검 관계자가 수사 기밀 사항을 언론에 누설했다면서 같은 달 30일 성명 불상의 검찰 관계자를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경찰에 고발한 바 있다. 김 비서관은 윤석열 총장이 공무상 비밀 누설죄를 지었는지를 판단하려면 해당 보도가 어떤 경로로 이뤄졌는지 등을 판단해야 한다면서 “이런 판단은 결국 수사를 통해 밝혀질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날 청와대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해 특검을 요청하는 국민청원에 대한 답도 내놨다. 청원인은 청원글에서 “나경원 원내대표의 각종 의혹·논란들이 일파만파 퍼졌다”면서 “특검을 설치해 모든 의혹을 말끔히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청원인이 의혹의 구체적인 내용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정치권에서는 나경원 원내대표의 자녀의 입시 부정 의혹 등을 가리킨 것이라는 추정이 나온다. 이 청원은 8월 28일부터 한달간 36만여명의 동의를 받았다. 김 비서관은 “정부는 본 청원을 계기로 국회의원을 비롯한 사회 특권층, 그리고 이들 자녀의 입시특혜 등 다양한 불공정에 대한 국민적 우려와 공정에 대한 강력한 열망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고 말했다. 그는 “특검 도입 여부는 국회에서 논의해 결정해야할 사안으로, 법무부장관이 정부와 무관한 사안에 대해 특검을 발동할수는 없다”며 “지난 9월 한 시민단체는 나경원 의원의 ‘자녀입시 의혹’과 관련해 검찰에 이를 고발했고, 이후 본 사건은 검찰에서 수사 중이기 때문에 검찰의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최근 교육부에서 학생부종합전형 전면 실태조사를 엄정히 추진하고 있고 고교서열화 해소 방안 등 입시제도 개편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하면서 “국회에서도 ‘국회의원 자녀의 대학입학전형과정 조사에 관한 특별법’, ‘고위공직자 자녀 입시비리 조사를 위한 특별법’ 등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고 언급했다. 이들 법안은 입시비리에 대한 전수조사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고위공직자 자녀에 대한 특혜를 조사하고 결과에 따라 고발 및 수사요청, 감사원 감사요구 등을 실시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이와 함께 지난 9월 한 시민단체가 나경원 원내대표의 자녀 입시 의혹을 검찰에 고발한 사실을 전하면서 “검찰의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청와대 “문대통령, 황교안 대표 삭발에 염려와 걱정 전달”

    청와대 “문대통령, 황교안 대표 삭발에 염려와 걱정 전달”

    문재인 대통령이 강기정 정무수석을 통해 조국 법무부 장관 퇴진을 촉구하는 삭발투쟁을 벌인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에게 염려와 걱정을 전달했다고 청와대가 16일 밝혔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문 대통령이 수석보좌관 회의가 끝나자마자 강 수석을 불러 황 대표의 삭발과 관련해 염려와 걱정의 말을 전달했다”며 “강 수석이 바로 황 대표 비서실장인 김도읍 한국당 의원에게 전화해 국회로 직접 가서 대통령의 뜻을 전하겠다고 말씀드렸지만 만나지 않겠다는 답을 받았다”고 말했다.강 수석은 삭발식이 열린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황 대표를 만나고 싶다는 뜻을 거듭 전했으나 한국당 쪽에서 정중히 거절했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강 수석은 이날 김광진 정무비서관과 함께 삭발식 현장을 찾아 황 대표를 만났다. 고 대변인은 “강 수석이 문 대통령의 염려와 걱정에 대한 말씀을 전달했고 삭발 재고를 요청드린다는 의견도 전했다”며 “이에 대해 황 대표는 조국 장관을 파면해야 된다는 말씀을 하셨고 강 수석은 잘 전달하겠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딸 인턴 논란 KIST서 국무위원 ‘데뷔’ 조국, 文·신임장관 차담회 참석 안 해

    딸 인턴 논란 KIST서 국무위원 ‘데뷔’ 조국, 文·신임장관 차담회 참석 안 해

    靑수석·장관들과 환담… 일부는 응원구호 현충원 방명록엔 ‘검찰개혁 완수에 최선’조국 법무부 장관이 10일 국무위원 자격으로 국무회의에 처음 참석했다. 데뷔 장소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었다. 소재·부품·장비 분야 국산화 지원 상황을 둘러보기 위해 선정된 장소지만, 공교롭게도 조 장관 딸의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입시에 활용된 인턴십 증명서가 부정 발급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곳인지라 한층 시선이 쏠렸다. 오전 9시 30분쯤 도착한 조 장관은 회의장 옆 차담회에서 담소를 나눈 다른 국무위원들과 달리 곧장 회의장으로 들어갔다. 전날보다 긴장감이 풀린 듯 미소를 보이며 입장하는 참석자들과 눈을 마주치고 인사했다. 강기정 정무수석과는 한동안 대화를 나눴고 윤건영 국정기획상황실장, 신동호 연설비서관, 김광진 정무비서관과도 웃으며 악수했다. 일부 비서관은 조 장관에게 응원의 의미를 담은 짧은 구호로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등 일부 장관과도 인사를 나눴다. 회의 시작 직전 도착한 문재인 대통령은 이낙연 국무총리와 차담회 장소로 이동했다. 문 대통령 도착 안내가 나왔지만 조 장관은 대통령과 함께 선 모습이 연출되는 게 부담스러운 듯 끝까지 차담회장으로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메인 테이블에서 새로 임명된 국무위원들을 불렀고, 조 장관과 함께 있던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왜 안에 계세요”라며 나가길 권유했지만 조 장관은 손사래를 치며 사양했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과 신임 장관들의 상견례 성격 차담회는 조 장관 없이 10분간 이어졌다. 조 장관은 ‘장관으로서 처음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소감이 어떠냐’는 취재진의 물음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민정수석 당시 국무회의 좌석 뒤편에 앉았던 조 장관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박 장관 사이에 놓인 법무부 장관 자리에 앉았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대통령과 시선이 마주치는 지근거리였다. 조 장관은 앞서 오전 8시쯤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하며 취임 이틀째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김오수 법무부 차관, 이성윤 검찰국장, 이용구 법무실장, 황희석 인권국장, 김수현 정책기획단장, 강호성 범죄예방정책국장, 박재억 대변인 등 법무부 간부들이 함께했다. 조 장관은 방명록에 “국민으로부터 받은 권한, 국민께 돌려 드리기 위하여 법무부 혁신과 검찰개혁을 완수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페이스북 개설한 조국 부인 정경심, 의혹 보도 적극 반박

    페이스북 개설한 조국 부인 정경심, 의혹 보도 적극 반박

    가족 사모펀드 운용사의 투자회사 고문료 의혹에“영어학자로 자문했을 뿐…투자·경영 관여 안 해” 복장 바꿔 서류뭉치 들고 나오는 CCTV 화면 보도“수업자료 정리하다 학생 개인정보 나와 갖다둔 것”청와대 정무비서관 페북에 대리 해명문 논란되자직접 언론 대응 나선 듯…조국 지지자 응원 댓글도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가 가족 펀드 투자사로부터 매달 고문료를 받았다는 일부 보도에 대해 해명했다. 경향신문은 9일 정 교수와 두 자녀 등 가족이 투자한 사모펀드를 관리하는 코링크프라이빗에쿼티(PE)가 투자한 회사로부터 수천만원의 돈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코링크PE는 정 교수의 가족펀드가 투자한 가로등점멸기 제조업체 ‘웰스씨앤티’와 코스닥 상장기업 ‘더블유에프엠(WFM)’을 합병해 우회상장하려고 했는데, 정 교수가 바로 이 WFM으로부터 지난 2년간 매달 수백만원의 고문료를 받았다는 주장이다. 경향신문은 코링크PE의 이모 대표가 지난해 1월부터 최근까지 WFM 대표를 맡았다며, 조 후보자 측의 그 동안 해명과 달리 정 교수가 운용사의 투자 전략이나 펀드 투자처의 경영 상황을 알았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와 관련 정 교수는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경심의 해명’이란 제목의 글을 직접 올렸다.정 교수는 “더블유에프엠은 원래 영어교재 등 영어교육사업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라며 “저는 영문학자로서 어학 사업 관련 자문위원 위촉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영어교육 관련 사업을 자문하고 자문료로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6월까지 7개월간 월 200만원, 총 1400만원을 받았다는 게 정 교수의 해명이다. 그러면서 그는 “제가 더블유에프엠의 경영에 관여했다는 보도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WFM은 제가 투자한 펀드에서 투자한 회사도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정 교수는 자문업무와 관련 동양대에 겸직허가를 신고하고 세금 신고도 했다며 결백을 주장했다. 그는 “언론보도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모든 진실은 검찰 수사와 재판으로 밝혀질 것”이라며 “그 때까지 일부 사실만 갖고 왜곡해 추측으로 보도하는 것은 삼가달라”고 부탁했다. 정 교수는 최근 페이스북 계정을 개설하고 자신을 둘러싼 각종 의혹 보도에 대해 직접 대응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앞서 지난 7일 김광진 청와대 정무비서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 교수의 연구용 PC에서 총장직인 그림파일이 발견됐다’는 보도에 대한 정 교수의 해명문을 실어 논란이 일었다. 정 교수는 이날 조선일보가 서류 문서를 연구실에서 들고 나가는 자신의 모습이 찍힌 CCTV 화면을 공개하면서 의혹을 제기한 것에 대해서도 “개강 준비를 하면서 지난 학기 수업자료를 정리하려다 학생 개인정보가 있어 다시 연구실에 갖다 놓은 것”이라며 “이 문서는 현재 수사 사안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정 교수의 게시물에는 조 후보자의 지지자들로 보이는 페이스북 유저들이 수백 건의 응원 댓글을 달고 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靑정무비서관, 페북에 조국 부인 입장문 게재 논란

    靑정무비서관, 페북에 조국 부인 입장문 게재 논란

    김광진 청와대 정무비서관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입장문을 지난 7일 페이스북에 게재하면서 적절한지에 대해 논란이 불거졌다. 김 비서관은 당시 페이스북에 “저는 동양대학교 교수 정경심입니다”로 시작되는 정 교수의 입장문을 게재했다. 정 교수가 동양대에서 사용한 업무용 PC에서 동양대 총장의 직인이 파일 형태로 저장돼 있는 것을 검찰이 발견했다는 언론보도에 대한 해명글이다. 정 교수는 이 글에서 “현재 제 연구용 PC는 검찰에 압수돼 있는 상황이므로 해당 파일이 어떤 경로로 그 PC에 저장된 것인지 그 정확한 경위나 진위를 알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정 교수의 해명 내용보다는 김 비서관이 정 교수의 해명 글을 공개한 것이 적절하느냐는 데 이목이 집중됐다.김형준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는 8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가 장관 후보자 부인을 변호하는 기관으로 전락한 것 같아 안타깝다”며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했다. 자유한국당 관계자도 “청와대가 조 후보자의 스피커 역할을 하면서 망신을 자초하는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지키기에 선봉에 서니까 국가기관마저도 사익에 이용되는 모양새”라고 비판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김 비서관이 왜 해당 글을 올렸는지 모르겠지만 검찰 조사 등에 대해 정 교수가 억울한 점을 말할 통로가 없지 않나”라며 “(김 비서관) 본인 판단에 따라 (해명 글을) 알려야겠다고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김 비서관은 해당 글에 대해 논란이 일자 부담을 느낀 듯 8일 오후 늦게 게시물을 삭제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조국 딸 표창장 위조 의혹’ 정경심 교수 검찰소환 임박

    ‘조국 딸 표창장 위조 의혹’ 정경심 교수 검찰소환 임박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아내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총장 표창장’ 위조 혐의로 기소된 가운데 검찰은 주말에도 정 교수를 둘러싼 여러 의혹을 수사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고형곤)는 사문서위조를 비롯해 정 교수에 대한 다른 여러 혐의 관련 서류를 검토하고 있다. 검찰은 이른 시일 내 정 교수를 불러 표창장이 위조된 경위 등을 조사할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당장 8일 정 교수에 대한 소환 조사는 이뤄지지 않을 전망이다. 정 교수는 6일 조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진행되던 중 사문서위조 혐의로 불구속기소 됐다. 정 교수는 지난 2012년 9월 7일 조 후보자의 딸 조모씨가 2012년 9월 7일 받은 동양대 총장 명의의 표창장(최우수 봉사상)을 위조한 혐의를 받는다. 앞서 정 교수 딸은 지난 2014년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에 지원하면서 해당 표창장을 받았다는 점을 기재했다. 당시 부산대 의전원은 총장과 도지사, 시장, 장관급 이상 수상만 제출할 수 있도록 했다. 검찰은 정 교수가 딸 입시에 활용할 목적으로 표창장을 위조한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검찰이 정 교수의 표창장 위조 사실을 입증한다면 조씨가 해당 표창장을 부산대 의전원에 사용한 혐의(사문서위조 행사)와 더불어 부산대에 표창장을 제출해 부산대 입시를 방해한 혐의(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적용까지도 가능해진다. 그러나 조 후보자 측은 딸 조씨가 동양대 교양학부 산하 영어영재프로그램에서 학생들의 영어지도를 돕는 등 실제 봉사활동을 수행했다고 주장한다. 또 총장 표창장 수여는 부서장에게 위임 전결을 해왔던 대학 관례에 따라 처리했을 뿐 위조한 건 아니라고 설명했다. 전날에는 정 교수가 검찰에 임의로 제출한 연구실 컴퓨터에서 총장 직인이 찍힌 사진 파일이 발견됐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이 파일이 실제 정 교수의 혐의를 뒷받침하는 증거인지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김광진 청와대 정무비서관의 SNS를 통해 ‘저는 동양대학교 교수 정경심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해명했다. 정 교수는 “현재 제 연구용 PC는 검찰에 압수된 상황이므로 해당 파일이 어떤 경로로 그 PC에 저장된 것인지 그 정확한 경위나 진위를 알지 못한다” 밝혔다. 이어서 “다만 저는 (동양대) 어학교육원장, 영어영재교육센터장 등 부서장으로서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직원들로부터 여러 파일을 받았기 때문에 그 파일 중 일부가 PC에 저장된 것으로 추정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해당 파일은 부서장 업무 수행을 위해 받은 것으로 추정되며 표창장 위조 의혹과는 관련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정 교수는 검찰이 수사 중인 내용이 섣불리 언론에 공개된 것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명했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김광진 청와대 정무비서관 페북에 정경심 호소문, 옳은 일인가

    김광진 청와대 정무비서관 페북에 정경심 호소문, 옳은 일인가

    궁지에 몰린 사람은 시야가 좁아진다. 김광진 청와대 정무비서관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배우자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입장을 대신 전해 눈길을 끈다. 지난 7일 김 비서관은 페이스북에 “저는 동양대학교 교수 정경심입니다. 오늘 일부 언론에 제가 사용하던 연구용 PC에 총장 직인 그림파일이 발견됐다는 보도와 관해 말씀드린다”라고 시작하는 글을 올렸다. 이날 앞서 SBS는 검찰이 정 교수가 임의 제출한 PC에서 총장 직인을 파일 형태로 저장해놓은 것을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누가 봐도 이상하지 않은가? 전날 인사청문회 도중에 사문서 위조 혐의로 전격 기소된 정 교수가 개인용 컴퓨터나 랩톱 컴퓨터, 휴대전화 등을 검찰 압수수색에 빼앗겼을 것이란 객관적 정황에도 불구하고 다른 지인도 있을텐데 왜 굳이 청와대 비서관의 페이스북 계정에 이런 호소의 글을 올려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잖아도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어찌됐든 공소 시효 완료를 이유로 들어 검찰이 배우자를 기소한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임명을 강행해야 할지 여부를 놓고 적잖은 정치적 부담을 안고 있는데 말이다. 참모로서 올바른 처신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페이스북이 개인의 의사 표현 장이란 점을 십분 이해하더라도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자유한국당이나 바른미래당 등 조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요구하는 야당들에게도 좋은 ‘먹잇감’을 던져준 것이기 때문이다. 정 교수가 밝힌 대로 “기소된 피고인이 방어권을 행사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게 하는 내용의 보도를 자제해주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했지만 그 진의가 왜곡될 여지를 스스로 제공했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연구실 PC서 ‘총장 직인’ 파일 발견?…정경심 “정확한 경위 몰라”

    연구실 PC서 ‘총장 직인’ 파일 발견?…정경심 “정확한 경위 몰라”

    “직원들로부터 받은 파일 추정…언론 보도 유감”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연구실 컴퓨터에서 총장의 직인이 파일 형태로 저장돼 있었다는 보도에 대해 정경심 교수가 “정확한 경위나 진위를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해당 보도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김광진 청와대 정무비서관은 지난 7일 오후 10시 56분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경심 교수의 입장문을 올렸다. 앞서 검찰은 지난 3일 정경심 교수의 동양대 연구실을 압수수색했다. 정경심 교수는 압수수색 전 연구실 컴퓨터를 외부로 반출했다가 검찰에 임의제출했다. 일부 언론에 따르면 검찰은 해당 컴퓨터를 분석하다 동양대 총장 직인이 파일 형태로 컴퓨터에 저장돼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직인 파일’이 딸 조모씨에게 발행된 총장 표창장에 찍힌 직인과 동일한지 검찰이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정경심 교수는 입장문에서 “현재 제 연구용 PC는 검찰에 압수돼 있는 상황이므로 해당 파일이 어떤 경로로 그 PC에 저장된 것인지 그 정확한 경위나 진위를 알지 못한다”면서 “다만 저는 어학교육원장, 영어영재교육센터장 등 부서장으로서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직원들로부터 여러 파일을 받았기 때문에 그 파일들 중 일부가 PC에 저장된 것으로 추정할 뿐”이라고 밝혔다. 이어 “현재 기소가 돼 있는 제 자신도 검찰에서 어떤 증거를 갖고 있는지도 전혀 알지 못하고 어떤 설명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러한 사실이 보도된 점에 대하여는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정경심 교수는 “재판 과정에서 증거가 공개되면 그 때 정확한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이니 이미 기소된 사건에서 피고인도 열람하지 못한 증거나 자료에 대한 내용을 유출하거나 기소된 피고인이 방어권을 행사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게 하는 내용의 보도를 자제해줄 것을 당부드린다”고 요청했다. 정경심 교수는 동양대 총장의 표창장을 조작한 혐의(사문서 위조)로 지난 6일 기소됐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靑 1부속 신지연·정무 김광진·민정 이광철...비서관 5명 인사

    靑 1부속 신지연·정무 김광진·민정 이광철...비서관 5명 인사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제1부속 비서관에 신지연 제2부속 비서관을 임명하는 총선 출마 예정인 비서관 5명에 대한 교체 인사를 단행했다고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이 밝혔다. 대통령 비서실 제1부속 비서관에 여성인 신지연(52) 제2부속 비서관이 자리를 옮겼다. 미국 변호사 출신인 신 비서관은 부산 경남여고를 졸업해 미국 미시간대에서 국제정치학 학사학위를 받고 미국 뉴욕 로스쿨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수료했다. 이후 김앤장 등을 거쳐 2012년 대선 때 문 대통령의 외신 대변인을 맡았고 지난 대선때는 스타일리스트 역할을 담당했다. 문 정부에선 해외언론 비서관과 2부속비서관을 맡았다. 정무비서관엔 김광진(38) 전 국회의원이 내정됐다. 김 비서관은 전남 순천고를 나와 순천대에서 조경·경영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비례대표로 19대 국회에 입성했다. 자치발전 비서관엔 유대영(53) 정무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 승진했다. 유 비서관은 서울 세종고를 나와 국민대에서 정치외교학 학사 학위, 서강대에서 경제대학원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국민대에서 정치대학원 겸임교수로 일했다. 민정비서관엔 이광철(48) 민정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 승진했다. 이 비서관은 서울 보성고를 나와 한림대에서 법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사법 고시에 합격해 법무법인 동안에서 대표 변호사로 일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회 사무처장을 역임했다. 사회정책비서관에 정동일(50) 숙명여자대학교 경영학부 교수가 내정됐다. 서울 영일고를 나와 서울대에서 사회학과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은 정 비서관은 미국 코넬대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림대 사회학과 조교수로 일하다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국민성장분과 위원을 역임했다. 이번 교체로 청와대를 떠나는 비서관들은 총선 출마가 예상된다. 조한기 전 1부속비서관은 충남 서산·태안, 김영배 전 민정비서관은 서울 성북갑, 복기왕 전 정무비서관은 충남 아산갑, 김우영 전 자치발전비서관은 서울 은평을, 민형배 전 사회정책비서관은 광주 광산에 도전할 예정이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데뷔 55주년’ 헌정앨범… 남진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데뷔 55주년’ 헌정앨범… 남진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가수 남진(73)의 데뷔 55주년을 앞두고 헌정앨범이 제작된다. 24일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센터에서는 남진 데뷔 55주년 기념 헌정앨범 제작발표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남진과 추진위원장을 맡은 가수 김광진, 이자연 대한가수협회 회장, 김승기, 진성, 서문탁 등이 참석했다. 1965년 1집 앨범 ‘서울의 플레이보이’로 데뷔한 남진은 ‘님과 함께’, ‘가슴 아프게’, ‘미워도 다시 한번’, ‘빈잔’, ‘둥지’ 등 히트곡을 부르며 1970~198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다. 남진의 가수 인생을 기념하는 헌정앨범에는 설운도, 박미경, 김종서, 장윤정, 진성, 박승화, 강인봉, 서문탁, 알리, 육중완밴드 등 후배 가수들이 참여한다. 김광진은 이날 행사에서 “가요 100년사를 되돌아 볼 때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가 누구냐’고 한다면 단연 남진이다. 55년 동안 한번도 인기가 내려간 적이 없다. 남진이 생을 마감할 때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자연은 “남진은 데뷔 때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고, 피나는 노력 끝에 춤도 춘 원조 댄스가수이기도 하다. 자랑스러운 선배님이다”고 찬사를 보탰다. 이어 “헌정앨범이 길이길이 빛나는 앨범이 됐으면 한다”는 바람도 덧붙였다.남진은 답사를 통해 “영광스러운 앨범을 발표할 수 있게 준비해준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또 “팬들이 만들어주지 않았으면 어떻게 헌정 앨범을 만들 수 있겠나.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이날 행사에 참석한 50여명 등 그의 오랜 팬들에게 영광을 돌렸다. 아울러 “멋진 곡을 만들어준 작곡가들도 고맙다. 멋진 후배들이 내 노래를 불러준다고 하니 기대되고 흥분된다. 이제 시작인 것 같은데 55년이 이렇게 빨리 갈 줄 몰랐다.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열심히 열심히 하겠다”는 소감도 전했다. 전통가요, 록, 발라드, 댄스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남진 데뷔 55주년 헌정 앨범은 오는 8월 발매된다. 앨범 수익금은 기부된다. 글·사진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10년 전 티아라 효민에게 “아주 힘들지만 후회 안 할거야”

    10년 전 티아라 효민에게 “아주 힘들지만 후회 안 할거야”

    가수 효민이 10년 전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털어놨다. 효민은 5일 MBC 표준FM ‘아이돌 라디오’에 가수 레이나와 함께 출연해 데뷔 11년 차 아이돌의 공감대를 나눴다. 이날 ‘아이돌 라디오’는 1989년생으로 데뷔 11년 차를 맞은 동갑내기 효민과 레이나를 위해 ‘8979’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레이나와 효민은 음악 방송에 가면 후배들로 둘러싸여 복도로 나서기 망설여지는 상황에 공감대를 쌓았다. 레이나는 “혼자 대기실에만 있게 된다”고 귀띔했고, 효민은 “최근에 기사에서 ‘친해지고 싶다’고 했는데 보신 건지 (후배들이) 먼저 와서 말도 걸어주고 좋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또한 효민은 최근 음악 방송 중 구두가 벗겨졌지만 남다른 내공으로 무사히 무대를 소화한 일화를 언급하기도 했다. 효민은 “끝나고 인사드리는데 작가님이 (구두가 벗겨진 상황을) 모르더라. ‘(내가) 잘하는 부분이 있구나’라고 생각했다”는 뒷이야기를 전했다. 레이나는 유튜브 개인 채널을 개설한 근황을 전했다. 그는 “노래하는 모습을 많은 분들에게 보여드리고 싶은데 옛날만큼 활발하게 활동하지 않으니까 그런 기회가 없었다”며 “한창 바쁘다가 일상이 무료한 것 같아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레이나는 수익을 묻는 질문에 “콘텐츠 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과 거의 같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효민과 레이나는 각자 10년 전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는 질문엔 진솔한 속내를 드러냈다. 효민은 “아주 많이, 많이 힘들 거야. 그렇지만 시작하지 말란 말은 안 할 거야.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레이나는 “‘다음에 또 잘돼야 해’라는 강박이 있었다. (좋은) 결과들이 있을 때 행복을 느꼈어야 했는데 그게 스스로 생각했을 때 아쉽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레이나와 효민은 진솔한 입담 외에도 여전한 보컬과 안무 실력을 과시했다. 레이나는 김광진의 ‘편지’ 라이브로 ‘꿀음색’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효민 역시 재즈 버전의 ‘입꼬리’를 라이브로 선보이며 매력적인 목소리를 자랑했다. 효민은 솔로곡 ‘MANGO’, ‘으음으음’, ‘입꼬리’와 티아라의 ‘Bo beep Bo beep’, 레이나는 오렌지 캬라멜의 ‘까탈레나’, ‘립스틱’, ‘마법소녀’와 애프터스쿨의 ‘Flashback’, ‘Bang’을 메들리 댄스로 선보이며 흔들림 없는 퍼포먼스를 자랑했다. MBC 라디오의 아이돌 전문 프로그램인 ‘아이돌 라디오’는 밤 12시 5분~1시(주말 및 공휴일 밤 12시~1시) MBC 표준 FM(서울·경기 95.9MHz), MBC 라디오 어플리케이션 mini에서 방송된다. 평일 밤 9시~10시엔 네이버 브이라이브(V앱)에서 방송 전 보이는 라디오로 만날 수 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부 seoulen@seoul.co.kr
  • “軍 사망사고 유가족에게 진실 알려드리는 것이 목표”

    “軍 사망사고 유가족에게 진실 알려드리는 것이 목표”

    “참여정부 때와 달리 모든 군 사망 조사 신뢰 위해 헌병 조사관 등 군 출신 배제 순직 결정 안 된 채 남은 3만 9000여명 은폐 의혹 사건에 관련자 적극 협조를”“오랫동안 국가가 국가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던 측면이 있었습니다. 지금이라도 국가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유가족이 원하는 진실을 알려 드리는 게 저희의 목표입니다.” 김광진(38)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은 20일 서울 중구 명동 진상규명위 사무실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진상규명위의 출범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진상규명위는 지난해 9월 ‘군 사망사고 진상 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의해 출범한 대통령소속 기구다. 과거 군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대해 사실을 조사하고 고인과 유가족의 명예를 되찾아 주기 위해 설립됐다. 참여정부 때인 2006년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설치됐지만 2009년 예산을 이유로 해산됐다. 때문에 그동안 군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대한 진상 규명에 공백이 있었다. 이에 유가족들은 진실을 조사할 기구 설치를 요구해 왔고 문재인 대통령 공약에 따라 위원회가 출범했다. 이번 위원회가 지난 위원회와 다른 점은 군에서 발생한 모든 사망사건을 조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수사과정과 결과에 대한 공정성·신뢰성 담보를 위해 지난 위원회와는 달리 이번 위원회에서는 헌병 조사관 등 군 출신 인사를 배제했다. 김 사무국장은 “과거 의문사위원회는 1993년도 이후에 발생한 사건부터 조사할 수 있었지만 이번 위원회에서는 1948년 창군 이래 모든 사망 사건에 대한 조사가 가능하다”면서 “이번 특별법에는 진상규명위가 사고 조사 결과, 순직 결정을 내리면 국방부가 이에 대해 재조사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고 설명했다. 오래된 사건을 조사하다 보니 어려움도 따른다. 1980년 이전의 사망 사건의 경우 기록이나 문서 등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당사자의 적극 협조가 중요한 이유다. 김 사무국장은 “본인이 가해에 가담했던 경우에도 진실을 진술하면 일정 정도의 처벌 유예나 선처를 권고하는 권한도 특별법에 포함돼 있다”며 “사건 관련자가 늦게라도 진실을 말해 준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출범 이후 진상규명위에 접수된 사건은 250여건이다. 조사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1년여의 시간이 소요된다. 특별법상 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 기한은 3년이다. 촉박한 시간에 되도록 많은 조사가 진행돼야 한다. 김 사무국장은 “군 사망자 중 아직 3만 9000여 분 정도가 순직 결정이 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며 “기본적으로 유가족이나 사건을 알고 있는 분이 은폐 의혹이 있을 만한 사건에 대해 진정서를 많이 내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이준형 서울시의원 “도시농업에 대한 서울시 차원의 과감한 투자필요”

    서울시의회 이준형 의원(더불어민주당·강동1)은 10일 오후 서울시민청 태평홀에서 개최된 제2회 ‘미세먼지에 대응한 도시농업의 역할’ 정책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했다. 서울시도시농업전문가회가 주최한 이번 토론회는 미세먼지에 대응하는 서울시 도시농업의 현주소와 역할에 대한 주제로 도시농업 관계자들과 각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도시농업이 미세먼지 저감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마련됐다. 오늘 토론회에서는 한재춘 서울시도시농업전문가회장과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의 인사말과 축사를 시작으로 ▲미세먼지는 왜 사회적 이슈가 되었나?(김용표 이화여자대학교 환경공학 교수) ▲미세먼지를 바라보는 환경공학 외적인 관점(서성석 한국환경기술사회 사무총장, 박사) ▲공기정화 식물의 미세먼지 저감 기능(김광진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박사) ▲미세먼지에 대응한 서울시 도시농업 정책 반영계획(정여원 서울특별시 도시농업과 도시농업정책팀장)의 주제발표가 이어졌다. 서울시는 경제진흥본부 도시농업과와 농업기술센터를 통해 도시농업실태조사, 도시농업공원 조성, 도시농업기술 보급, 상자텃밭, 옥상텃밭, 학교 텃밭 설치 등 늘어나는 도시농부와 도시농업 생태계 확대를 추진하고 있으며 2017년 142억원, 2018년 171억원으로 도시농업분야 사업예산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토론자로 나선 이준형 의원은 “미세먼지로 인한 2차 오염이 심각한 가운데 시민 건강에 대한 위협이 심각해지면서 서울시 자치구에서는 자구책을 마련하기 위해 살수차, 공기청정기 지원 등을 하고 있지만 보다 실효성 있는 정책마련을 고민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동안 도시농업 활성화에 대한 논의가 중앙정부, 서울시, 자치구가 함께 이뤄지지 못했으며 협치를 통한 미세먼지 저감에 필요한 서울시 차원의 체계적이고 과감한 도시농업 투자가 동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대학 퇴학생, 성추행한 후배에게 처벌불원서 받더니

    대학 퇴학생, 성추행한 후배에게 처벌불원서 받더니

    퇴학 징계 부당 소송 제기···법원 “퇴학은 정당, 2차 피해 막아야” 후배를 성추행한 대학생을 퇴학 처분한 것은 정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2차 피해를 막아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서울동부지법 민사11부(부장 김광진)는 A씨가 서울 소재 한 대학교를 상대로 제기한 징계처분 무효 확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29일 밝혔다.A씨는 지난해 4월 학과 행사에 참석했다가, 술을 마시고 잠든 후배 B씨를 성추행했다. B씨는 피해 사실을 즉각 학교와 경찰에 알렸다. 학교 측은 양성평등위원회의 진상 조사를 거쳐 A씨를 퇴학 처분했다. 퇴학 뒤 A씨는 B씨에게 합의를 요구했고, B씨는 적어도 학교에서 마주치지는 않게 됐다는 생각에 형사 사건에 관한 처벌불원서를 써줬다. 이에 검찰은 B씨의 처벌불원서와 A씨가 초범임을 참작해 A씨에게 성범죄 예방교육 이수 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그러자 A씨는 “피해자와 합의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는데 퇴학 처분은 과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처벌불원서 작성과 기소유예 처분 모두 퇴학 징계 이후 발생한 것”이라며 “징계의 적법성은 당시 사정을 토대로 판단해야지 그 이후 사정을 소급적으로 고려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같은 과 선배가 후배를 강제로 추행한 것이고, 그 정도가 가볍지 않아 피해 학생은 휴학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며 “성범죄 피해자를 2차 피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엄중 징계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학생에 대한 지도·감독·교육 의무를 게을리 한 학교가 퇴학 징계를 내린 것은 재량권 남용이라는 A씨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성인인 대학생의 행위를 구체적으로 지도·감독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면서 “지도·감독을 게을리 한 것이 이 사건의 실질적 원인으로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비긴어게인2’ 하림 “벌써 마지막 버스킹” 박정현 끝내 ‘눈물’

    ‘비긴어게인2’ 하림 “벌써 마지막 버스킹” 박정현 끝내 ‘눈물’

    JTBC ‘비긴어게인2’에서 박정현, 하림, 수현의 마지막 버스킹 현장이 공개된다. 박정현, 하림, 수현은 감기 기운으로 인해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선곡에 신중을 기하며 마지막 버스킹을 준비했다. 박정현은 20년 전 데뷔곡인 ‘나의 하루’를 선곡했고, 하림도 본인의 1집 데뷔곡 ‘출국’을 선곡하며 마지막을 더욱 의미있게 장식할 수 있을만한 곡들로 연습을 이어나갔다. 하림은 “끝이 멀게만 느껴졌던 버스킹 여행이었는데, 벌써 마지막이 왔다”며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마지막 버스킹을 위해 숙소를 나선 멤버들은 국회의사당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어부의 요새’에 도착했다. 세 사람은 화려한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감상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그리고 시작된 대망의 마지막 버스킹. 하림은 버스킹에 익숙해진 듯 관객들에게 가까이 다가오라고 여유롭게 말하며 ‘출국’을 열창했다. 수현 또한 “버스킹을 즐기지 못하면 마지막이 아쉬울 것 같다”며, 관객들과 소통하며 즐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날 수현은 김광진의 ‘편지’를 부르며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컨디션 난조로 고생했던 박정현도 하림과 수현의 노래에 힘을 얻은 듯 열창을 이어갔다. ‘Fields of Gold’를 부른 박정현은 “노래를 부르며 기분이 좋아지니 자동으로 컨디션이 좋아졌다”고 전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마지막 버스킹이 이어지고, 박정현의 데뷔곡 ‘나의 하루’가 시작되자 관객들은 물론 멤버들 모두 야경 속에 어우러진 노래의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노래가 끝나고 모든 버스킹 공연이 마무리 되는 순간 박정현은 눈물을 보였다. 하림과 수현은 울음이 터진 박정현을 꽉 안아 주었고, 수많은 감정이 교차하는 듯 서로를 말없이 토닥여줬다. 박정현을 눈물 흘리게 한 마지막 버스킹은 6월 29일 금요일 밤 9시 20분에 방송되는 JTBC ‘비긴어게인2’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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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교육청 ◇부이사관 승진△행정국장 고수형◇서기관 승진△공보관 김경희△교육예산과장 고용민△교육재정과장 한관수△제주도의회 교육전문위원 강문식◇사무관 승진△교육예산과 김정익 임경희 김동철◇서기관 전보△교육행정과장 김희운△제주교육박물관장 이승룡△제주시교육지원청 행정지원국장 강영훈△서귀포시교육지원청 교육·행정지원국장 강형인◇사무관 전보△체육복지과 강미선△총무과 양진규△교육재정과 고연희△제주시교육지원청 고남근 변숙희△서귀포시교육지원청 김순정 이정윤△제주제일고 강애선△제주영지학교 강상훈 ■한국씨티은행 ◇지점장 이동△목동오목교 윤천호△서교동 신동구△안산 김광진△제주 정홍 ■신영증권 ◇상무 승진△크레딧마켓부 신혁진△리스크관리팀 이승환 ■삼일회계법인 ◇신임 파트너 영입△금창훈 김가율 김기록 김도형 김성호 김승환 김운규 김종산 김태훈 김효건 류제욱 박수연 박승정 박인대 박종우 서용태 서희원 양윤정 양인병 오혜정 이경민 이남선 이용희 이홍석 장혜윤 전성만 전종성 정승원 정지원 조한준 진병국 최성우 한규영 한재상 한정탁 홍성표 홍승환 홍창기 ■KB손해보험 ◇상무 신규 선임△자산운용부문장 한승철
  •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광복 후 유명 역사학자들 월북·납북… 남한은 식민사학자들 장악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광복 후 유명 역사학자들 월북·납북… 남한은 식민사학자들 장악

    북한의 역사학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먼저 아래 글을 보자.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을 완전한 식민지로 만들기에 성공하자 그들의 소위 역사학자들은 조선역사에 대해서 이상한 관심을 보였다… 그들이 입증한 사실의 가장 중요한 것이란 과연 어떠한 것들인가? 첫째 서기전 1세기부터 4세기까지 약 500년 동안 오늘의 평양을 중심으로 한(漢)나라 식민지인 낙랑군이 설치되었다는 것이요, 둘째 신라·백제와 함께 남조선을 분거하고 있던 가라가 본래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것이요….” ‘조선’만 ‘한국’으로 바꾸면 아직도 한국 사학계가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한다고 비판하기 위해 엊그제 쓴 글 같다. 그러나 이 글은 ‘임꺽정’(林巨正)의 저자인 벽초 홍명희의 아들 홍기문이 1949년에 쓴 ‘조선의 고고학에 대한 일제 어용학설의 검토(상·하)’라는 글의 일부다. 윗글은 일제의 식민사학이 두 축으로 되어 있다고 분석한 글이다. 하나는 낙랑군이 서기전 108년부터 서기 313년까지 500여 년간 평양에 있었다는 ‘낙랑=평양설’이고, 다른 하나는 가야가 임나라고 주장하는 ‘가야=임나설’이다.홍명희는 1948년 4월 백범 김구와 함께 ‘전조선 정당 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남북협상)’ 참석차 방북했다가 내려오지 않은 독립운동가이자 국어학자였다. 아들 홍기문도 훈민정음과 향가 및 이두(吏讀) 등에 정통한 국어학자였는데, 홍씨 부자는 국어뿐만 아니라 국사에도 해박했다. 정상적인 학자들이라면 국어와 국사는 떨어질 수 없다.●北은 ‘낙랑=평양설’ 1949년 이미 비판 홍기문이 1949년에 이미 ‘낙랑=평양설’을 비판한 것은 남한 학계에서 ‘낙랑=평양설’이 100년 전에 논증이 끝난 ‘정설’이라고 우기는 것과 잘 대비된다. 더구나 이때는 김일성 일가 중심의 주체사관이 등장하기도 전이었다. 그런데 이런 글들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니었다. 북한이 역사학을 남북한 체제 경쟁의 주요한 요소로 설정한 데서 나온 글들이기 때문이다.1945년 10월 10~13일 평양에서 조선공산당 ‘이북 5도당 책임자 및 열성자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에서 김일성은 박헌영이 당수인 조선공산당에서 북한 지역을 떼어 독립하겠다는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설치를 주장했다. 오기섭, 정달현 등 국내파 공산주의자들이 ‘한 나라에는 하나의 공산당만 존재한다’는 코민테른(제3국제 공산당)의 ‘1국1당주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반대했지만 소련 군정이 지지하는 김일성의 주장이 관철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같은 해 10월 23일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이 설치되었다. 이 대회에서 북한을 먼저 사회주의 체제로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남한까지 사회주의화하겠다는 이른바 ‘민주기지론’을 채택한 것은 ‘북조선분국’ 설치와 맥을 같이하는 것이었다. 북한에 먼저 사회주의 체제를 수립하고 남한과 체제 경쟁에 나서 통일하겠다는 의미였다. 북한은 이때 역사학을 체제 경쟁의 중요한 요소로 여겼다. ●南선 식민사관을 정설 인정 비난 자초 1946년 7월 31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김일성은 남한에 파견원을 보내 유수한 역사학자들을 초청했다. 박시형·김석형·전석담 같은 마르크시스트 역사학자들이 김일성의 초청에 응해 월북했다. 이외에 경성대학 법문학부 교수였던 역사학자 백남운도 1947년 5월 여운형 등과 근로인민당을 결성해 부위원장을 역임하다가 월북했다. 식민사관에 비판적인 남한의 역사학자 중에서는 국학대학 학장 정인보와 안재홍 등 소수만 남게 되었다. 그나마 이들도 6·25전쟁 때 모두 납북되고 말았다. 그 결과 남한에는 조선사편수회 출신의 이병도·신석호 등만 남아서 역사학계를 완전히 장악했다. 이들이 북한의 학자들처럼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역사학에 의문을 품고 광복된 조국에 맞는 새로운 역사학 연구 기풍을 일으켰다면 지금 남한의 역사학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북한이 남한을 식민지 등으로 폄하하는 논리가 궁색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병도·신석호 등은 조선총독부에서 조작한 역사학을 하나뿐인 ‘정설’로 승격시키고 이를 비판하는 모든 학설을 이단으로 몰아 강단과 국사관련 국가기관에서 내쫓았다. 그 결과 조선총독부가 왜곡한 ‘낙랑군=평양설’이 이미 100년 전에 확립된 ‘정설’이라는 망발이 지금까지 횡행하면서 남한 사학계는 여전히 조선총독부를 추종한다는 비난을 자초하게 된 것이다. ●패수, 신채호 “요령성에” 이병도 “청천강” 북한은 1947년 2월 17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내에 ‘조선력사편찬위원회’(이하 위원회)를 설립했다. 위원회는 “가장 과학적이고 선진적인 사상에 의거해서 조선민족의 장구한 역사를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옳게 표현”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고대부터 오늘날까지’라는 연속성은 역사학의 가장 기초이다. 그러나 남한은 이른바 전공이란 칸막이로 역사학과 다른 학문을 단절시키고, 역사학 내에서도 각각의 전공으로 서로 단절시켜서 ‘전공이 아니라서…’를 입에 달고 사는 분절적 역사학자들만 양산했다. 위원회의 위원장에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공산주의 활동을 전개하다가 투옥되었던 이청원이 맡았다. 이청원은 최익한의 사위였는데, 최익한은 조선 말기 영남 유림의 거두이자 파리장서 사건으로 투옥되었던 곽종석의 제자이자 사회주의자였고 1938년부터 ‘동아일보’에 ‘여유당전서를 독(讀)함’을 연재했던 다산 정약용 전문가였다. 위원회는 1948년 10월 2일 관할 기관을 교육성으로 이관했는데, 위원장은 교육상(敎育相: 교육부 장관) 백남운이 겸임했다. 위원회에는 백남운·박시형·김석형·김광진 등의 역사학자와 도유호 같은 고고학자뿐만 아니라 홍명희·한설야·리기영 등의 문학가들과 최창익 등의 정치가들도 참여했다. 그야말로 범국가적인 위원회였다. 이 위원회의 기관지가 앞의 홍기문의 글을 실은 ‘력사제문제’(歷史諸問題)였다. ‘력사제문제’는 1948년부터 1950년 6·25전쟁 직전까지 만 2년이란 짧은 기간에 18집이나 간행되었다. 고대사에 관한 여러 논문이 실렸는데, 그중 하나가 정세호가 1950년 ‘력사제문제’ 16호에 실은 ‘고조선의 위치에 대한 일고찰’이고, 또 하나가 17호에 실은 정현의 ‘한사군고’(漢四郡考)다. 정세호와 정현의 논리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고조선의 서쪽 강역이 지금의 북경 부근까지 이르렀다가 연(燕)나라 장수 진개(秦開)에게 1000~2000리의 땅을 빼앗긴 이후 지금의 대릉하와 요하 사이까지 밀렸다고 보고 있다. 한사군도 당연히 한반도 북부가 아니라 요동 지역에 있었다고 보았다. 남한에서 고조선의 강역을 평안남도에 국한했던 것에 비교하면 큰 차이였다. 이런 역사인식은 다분히 단재 신채호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고조선과 중국의 경계였던 패수(浿水)의 위치에 대해서 일제강점기 식민사학자들은 압록강(쓰다 소키치)·청천강(이병도)·대동강(이나바 이와기치) 등 한반도 내의 강으로 비정했지만 정세호와 정현은 지금의 요하(遼河) 부근으로 비정했다. 그것도 연나라 장수 진개에게 1000~2000여리의 땅을 빼앗겨 축소된 이후의 패수가 그렇다는 것이었다. 신채호는 패수의 위치를 지금의 요령성 해성(海城)시로 비정했는데, 정현은 ‘한사군고’에서 “(신채호는) 패수를 지금 해성현에 있는 헌우락(軒芋樂)이라고 했는데, 참으로 탁월한 고찰 방법이다”고 높였다. ●신채호를 北 “탁월한 고찰” 南 “또라이” 패수의 위치에 대해서는 나중에 설명할 기회가 있겠지만 남한에서는 지지난 정권에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학진흥사업단장으로 연간 300억원대의 예산을 주무르던 한 역사학자가 공개 학술대회 석상에서 “단재 신채호는 세 자로 말하면 또라이, 네 자로 말하면 정신병자”라고 폄하했다. 신채호의 학설을 ‘참으로 탁월한 고찰’이라고 보는 북한학계와 ‘또라이, 정신병자’로 보는 남한학계 사이의 괴리는 클 수밖에 없다. 더구나 북한 학계는 1960년대 초반까지 고조선의 중심지와 낙랑군의 위치를 고대 요동으로 보는 리지린 등의 문헌사학자들과 평양으로 보는 도유호 등의 고고학자들 사이에 치열한 논쟁을 거치며 학설을 정리해 나갔다. 일체의 논쟁을 봉쇄하고 ‘낙랑군=평양설’이 ‘정설’이라는 따위의 비학문적 논리로 문제제기 자체를 막았던 남한 역사학의 행보와는 달랐다.(계속) 中 국공 내전 때 학자 쟁탈전…대만, 지식인들 학문 기반으로 대륙과 겨뤄 중국의 국공 내전 때 국민, 공산 양당은 문화재 쟁탈전만 전개한 것이 아니라 역사학자 쟁탈전도 전개했다. 1948년 12월 북경에서 이륙한 국민당 비행기에는 북경대 총장을 역임한 호적(胡適)과 청화대 역사학과 교수 진인각(陳寅恪) 등이 타고 있었다. 유수한 학자들을 대만으로 이송하는 ‘학자 이송’의 서막이었다. 그러나 비행기가 남경에 기착하자 진인각은 대륙을 선택해 내렸고, 호적은 대만으로 갔다. 다수의 학자가 대륙을 선택했지만 북경대 총장대리를 역임했던 부사년(傅斯年)도 대만을 선택했다. 부사년, 호적 등은 국립 대만대와 중앙연구원(中央研究院) 등을 세계적인 연구기관으로 성장시켰다. 현 중화민국(대만)이 그 협소한 영토에도 대륙과 정신적으로 당당히 겨룰 수 있는 원천이 대만을 선택한 지식인들이 만든 학문에 있었다.
  •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낙랑=요동설 vs 낙랑=평양설… 北·中 국가대항전으로 번지다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낙랑=요동설 vs 낙랑=평양설… 北·中 국가대항전으로 번지다

    한사군의 중심군현인 낙랑군의 위치에 대해 한국의 고대사학계는 평양이라고 주장한다. 2017년경에는 이른바 젊은 역사학자들이 여럿 나서서 이런 주장을 되풀이했는데, 한 보수 언론은 이들에게 ‘무서운 아이들’이라는 닉네임을 붙여주었다. 나아가 이들은 낙랑군의 위치에 대한 질문에 “낙랑군이 평양에 있다는 건 우리뿐 아니라 제대로 된 학자는 모두 동의한다. 100년 전에 이미 논증이 다 끝났다. 바뀔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한국일보’, 2017년 6월 5일)”라고 말했다.●南학계는 일제 학자 주장 비판 없이 수용 이들의 말은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100년 전 조선총독부에서 ‘낙랑군=평양’이라고 못 박은 이후 이 문제를 가지고 논쟁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논쟁 자체가 없었다는 뜻이 아니다. 두만강 북쪽 700리 공험진이라고 한·중 사료에 숱하게 나오는 고려·조선의 북방강역을 함경남도 함흥평야로 조작한 이케우치 히로시의 설을 지금껏 추종하는 것처럼 일체의 논쟁 없이 추종한다는 뜻이다. ‘낙랑군=평양’설에 대한 비판은 숱하게 있었다. ‘후한서’(後漢書)의 ‘광무제본기’ 주석에 “낙랑군은 옛 (고)조선국인데, 요동에 있다(在遼東)”라고 말한 것을 비롯해서 낙랑군이 고대 요동에 있었다는 중국 사료가 숱하기 때문이다.●北 고조선 노예제와 왕험·낙랑 규명 논쟁 그럼 북한 학계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북한 학계도 남한처럼 ‘낙랑군=평양’설이 100년 전에 논증이 끝난 문제라고 생각할까? 물론 그럴 리는 없다. 남한과 다른 것은 북한 학계가 이 문제를 두고 치열한 논쟁을 전개했다는 점이다. 북한 학계의 고조선사 논쟁은 크게 두 방향에서 전개되었다. 하나는 고조선의 사회 성격에 대한 논쟁이고, 다른 하나는 고조선의 강역과 중심지, 즉 왕험성의 위치와 낙랑군의 소재지에 대한 논쟁이었다. 고조선의 사회 성격에 대해서는 마르크스가 주장한 역사 발전 5단계설 중에 어느 단계에 해당하는가의 문제였다. 마르크스는 인류 사회의 생산 관계를 토대로 ‘①원시 공동체 사회→②고대 노예제 사회→③중세 봉건제 사회→④근대 자본주의 사회→⑤공산주의 사회’의 다섯 단계로 발전한다고 보았다. 이중 고조선의 사회 성격이 노예제 사회인지 봉건제 사회인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사회경제사학자 김광진(金洸鎭)은 ‘력사과학’ 1955년 8~9호에 발표한 ‘조선에 있어서 봉건 제도의 발생 과정’에서 조선 역사에는 노예제도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서 1935년 철학박사 학위를 딴 고고학자 도유호(都宥浩)가 ‘력사과학’ 1956년 3호에 ‘조선 력사상에는 과연 노예제 사회가 없었는가’를 발표해 김광진의 견해를 비판하면서 노예제 사회가 존재했다고 주장했다. 김광진이 재반박하면서 이 문제를 둘러싸고 10여 차례의 학술토론회가 열렸다. 이 논쟁은 경성제대 출신의 김석형이 ‘력사과학’ 1961년 3호에 ‘조선 고대사 연구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리론상의 문제’를 발표함으로써 정리돼 갔다. 노예제 사회였던 고조선이 봉건제 사회인 고구려·백제·신라로 발전했다는 주장이었다. 이 이론이 북한 학자들의 지지를 얻어가면서 고조선은 노예제 사회로, 삼국은 봉건제 사회로 견해가 정리됐다. 고조선이 노예제 사회라는 것은 나중에 요동반도의 강상 무덤과 누상 무덤에서 대규모 순장(殉葬) 유골이 발굴되면서 사실로 밝혀졌다. ●낙랑=평양설 北서 中사료 근거로 비판 고조선의 수도인 왕험성과 낙랑군의 위치 문제도 숱한 논쟁을 거쳤다. 도유호를 비롯한 고고학자들도 처음에는 고조선의 도읍과 낙랑군의 위치를 평양으로 보았다. 그러자 문헌 사학자들이 중국 사료를 근거로 평양이 아니라고 반박하면서 논쟁이 벌어졌다. 이 와중인 1958년 북한은 리지린이란 학자를 북경대 대학원으로 유학을 보내 고조선사를 연구하게 했다. 와세다대 출신의 리지린은 해방 후 과학원 력사연구소 고대사연구실에서 근무했고, 1959년 ‘력사과학’ 5호에 ‘광개토왕비 발견 경위에 대하여’를 발표했지만 그가 어떤 경로를 거쳐 유학생으로 선발됐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의 북경대 지도교수가 고사변(古史辨) 학파의 중심이었던 구제강(顧剛·1893~1980)이란 사실은 범상한 대목이 아니었다. 중국의 신문화운동을 이끌었던 고사변 학파는 중국인들이 그간 사실로 받아들였던 숱한 역사적 상식에 의문을 제기했다. “옛것을 의심해서 가짜를 판별한다”(疑古辨僞)라는 말로 상징되는 고사변 학파는 구제강과 첸쉬안퉁(錢玄同·1887~1939), 북경대 총장을 역임한 후스(胡適·1891~1962) 등이 중심이었다. 이중 첸쉬안퉁은 한자(漢字)를 폐지하고 로마자 식의 병음자모로 바꿔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고사변 학파는 중국 고대사의 숱한 문적들은 유학자들이 의도적으로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심지어 공자가 쓴 ‘춘추’(春秋)도 공자가 아닌 노(魯)나라 사관들이 집단으로 쓴 것이라고 보았다. 구제강은 ‘첸쉬안퉁 선생과 고대 사서(史書)를 논하다’(與錢玄同先生論古史書)라는 논문 등에서 중국 고대사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고 주장했다. 첫째, “시대가 뒤로 갈수록 전설 속 고대사의 기간이 더욱 길어진다”는 것이다. 주(周)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오래된 전설상의 인물은 우(禹)였는데, 공자 때에는 요순(堯舜)으로 끌어올려졌고, 전국(戰國)시대에는 다시 황제(黃帝)·신농(神農)씨로 끌어올려지고, 진(秦)나라 때 삼황(三皇)이 나오고, 한(漢)나라 이후 반고(盤古)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둘째 “시대가 뒤로 갈수록 전설상 중심인물에 대한 내용이 확대된다”는 것이다. 공자 때의 순(舜)임금은 ‘다스리지 않고도 다스려지는(無爲而治)의 성군(聖君)’이었지만 맹자(孟子) 때에는 효자의 모범이 추가되었다는 것이다. 1926년 ‘고사변’ 제1권을 출간한 이래 1941년의 7권까지 350편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사마천 이래 이른바 ‘중국을 위해 치욕의 역사는 감춘다’는 ‘위한휘치’(爲漢諱恥)의 춘추필법으로 중국의 사가들이 왜곡했던 이(夷)의 역사, 즉 한국 고대사를 새롭게 밝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유학사관 비판 구제강, 중화사관 못 벗어 그러나 고사변 학파의 중심인물인 구제강 자신은 끝내 ‘위한휘치’의 춘추필법을 벗어나지 못한 중화주의 역사가였다. 1931년 일제가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를 차지하고, 만주와 몽골을 중국 본토에서 분리시키는 ‘만선사관’(滿鮮史觀)을 제창하고, ‘중국본토론’을 내세우자 구제강은 1936년 ‘변강연구회’(邊疆硏究會)를 창립해 이에 맞섰다. 일제의 ‘중국본토론’은 만주·몽골과 조선 등은 중국의 영토가 아니니 중국은 본토에 대해서만 통치권을 가진다는 이론이었다. 곧 일제가 만주·몽골을 차지하겠다는 것인데 구제강은 이에 맞서 만주·몽골 등은 중국사의 강역이란 논리로 맞섰다. 구제강은 1939년 2월 자신이 주간을 맡고 있는 ‘변강주간’(邊疆周刊)에 ‘중화민족은 하나’라는 글을 게재해 여러 민족의 혼합으로 중화민족이 형성됐다고 주장했다. 현재 중국 공산당에서 한족(漢族)과 55개 소수민족이 하나의 ‘중화민족’이란 논리로 소수민족의 강역을 중국 영토라고 우기는 국가 이념의 토대가 됐다. 그는 또 운남(雲南)에서 발행하던 ‘익세보’(益世報)에 “‘중국본부’라는 한 이름은 빨리 폐기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평론에서 중국인들이 중화와 이민족을 나누는 전통적인 화이관(華夷觀)을 비판했다. ‘중국본부’라는 용어를 쓰면 일제가 만주와 몽골을 낚아채 갈 것이라는 경고였다. 고사변 학파를 주도할 때는 유학사관이 왜곡한 고대사를 의심하자던 구제강은 막상 한중 고대사에 이르자 중화 사관으로 돌아섰다. 좋게 말하면 애국적 중화 사가(史家)가 된 것이었다. 그는 위만조선의 도읍이 대동강 남쪽에 있었고, 따라서 낙랑군도 평양에 있었다는 ‘낙랑=평양’설을 주장했다. 따라서 북한에서 온 유학생 리지린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리지린은 중국 고대사서에 ‘낙랑=요동’설이 숱하게 나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구제강의 학문 지도를 받기 위해서 유학을 간 것이 아니라 단지 학위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지도교수인 구제강과 제자 리지린 사이에 일종의 국가대항전이 전개되는 셈이었다. <계속> 北·中 공동 고고유물 발굴 1964년 강상·누상무덤서 ‘요동도 고조선 강역’ 고증 북한은 중국과 1963년 조·중 고고발굴대를 조직해서 만주 지역의 고고유물 발굴에 나섰다. 1964년 요동(遼東)반도 끝자락 여대시(旅大市·여순과 대련)의 감정자구(甘井子區) 후목성역(後牧城驛)에서 강상(崗上) 무덤과 누상(樓上) 무덤이 발굴되면서 고조선의 강역이 평남에 국한되었다는 조선총독부의 주장과 달리 만주까지 걸쳐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서기전 8~7세기쯤의 무덤인 강상 무덤에서는 140명의 순장(殉葬) 무덤이 발견됐고, 누상 무덤에서도 주인을 따라서 죽인 50여명의 순장 무덤이 발견됐다. 고조선이 노예를 순장했던 노예제 사회였다는 사실이 유적·유물로 드러난 것이었다.
  • [팩트체크] ‘세월호 7시간’ 검찰 수사로 드러난 ‘박근혜 청와대’의 거짓말

    [팩트체크] ‘세월호 7시간’ 검찰 수사로 드러난 ‘박근혜 청와대’의 거짓말

    검찰이 세월호 침몰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대한 수사 결과를 28일 발표했다. 검찰이 규명한 바에 따르면 그동안 박근혜 청와대 관계자들의 관련 진술들은 대부분 거짓인 것으로 드러났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476명이 탑승한 세월호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8시 52분쯤 좌현으로 30도 가량 기울어졌고 8시 54분 탑승객의 신고가 접수됐다. 목포해양경찰서가 해경123정에 전화해 사고 현장으로 이동할 것을 지시한 시간이 8시 57분. 청와대는 이보다 20여분이 지난 9시 19분에 세월호 침몰 사실을 처음 알게 된다. 박근혜 청와대의 인사들은 사고가 발생한 뒤부터 줄곧 박 전 대통령이 10시에 첫 보고를 받고 보고를 받자마자 구조 지시와 함께 하루종일 11차례의 서면보고를 받으며 상황을 계속 챙겼다고 주장했다. 2014년 7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위의 대통령비서실 보고에서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은 박 전 대통령이 10시에 첫 보고를 받았고 이후 해경에 인명구조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 결과 박 전 대통령이 처음 서면보고를 받은 시간은 10시 19~20분쯤이었고, 당일 실시간으로 11차례 서면보고를 받은 것이 아니라 오후와 저녁 각 한 차례씩 일괄적으로만 보고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청와대가 박 전 대통령이 처음 보고받은 시각을 수정한 이유로 ‘골든타임’ 전에 보고를 받고 신속하게 구조 지시를 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고 파악했다. 검찰은 “세월호 사고 발생 직후부터 ‘대통령이 출근하지 않은 채 관저에 머무르고, 국가안보실이 사고 상황을 신속하게 보고하지 못해 골든타임을 허비하는 바람에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는 비난이 고조됐다”면서 “탑승자가 마지막 카카오톡을 발송한 시간인 10시 17분 전에 박 전 대통령이 보고를 받고 인명구조와 관련된 지시를 한 것처럼 가장할 필요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후 4월 16일 오후 박 전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청와대 관저에 들어간 것으로 밝혀지면서 “관저에 외부 인사의 출입이 없었다”는 청와대 관계자들의 진술도 거짓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박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관련 행적을 당시 청와대 인사들의 주장과 검찰의 수사 결과를 시간대별, 상황별로 정리해 비교해 봤다.■ 대통령 첫 보고 시각…靑 10시 vs 檢 10시 19분 ●朴 청와대 주장 (김기춘 전 비서실장, 2014년 7월 10일 국회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위 보고내용) -9시 19분 청와대 국가안보실, 사고상황 처음 인지해 해양경찰청 상황실에 유선으로 사고 사실 확인 -9시 24분 청와대 내부 문자로 사고 상황 전파 -9시 31~33분 대통령비서실, 중대본과 해경 통해 상황 보고 접수 -10시 이후 사고상황 추가로 확인해 사고 개요 및 현장상황을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 윤전추 전 청와대 행정관은 2017년 1월 5일 헌법재판소의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의 증인으로 출석해 “대통령이 9시경 관저 집무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고, 10시에 보고서를 전달해 드렸다”고 말했고, 검찰은 이는 명백한 위증이라고 강조했다. ●검찰 수사 결과 -9시 19분 국가안보실 위기관리센터 TV 속보 통해 세월호 사고 발생 인지 -9시 24분 청와대 내부 문자 발송 -9시 22~31분 위기관리센터 실무자들, 선박 명칭, 승원 인원, 출항시간, 배의 크기 등 파악 -9시 39~42분 위기관리센터 실무자들, 구조세력 동원 현황 파악 -9시 54분 위기관리센터 실무자들, 구조 인원수 파악 -9시 57분 “구조된 인원 56명이 사고지점 북쪽 4마일 거리에 위치한 서거차도로 이동 예정‘ 확인해 상황보고서 1보 초안 완성 -10시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 1보 초안 전달받고 신인호 전 위기관리센터장에게 전화 보고 받음 -김장수 전 실장, 박 전 대통령에게 휴대전화 걸었으나 연결 안 되자 안봉근 전 제2부속비서관에게 ”대통령에게 보고될 수 있도록 조치해 달라“고 말함 -10시 12~13분 신인호 센터장 상황보고서 1보 완성한 뒤 상황병에게 관저 전달 지시 -10시 12분 이영선 전 행정관이 본관 동문으로 나가 승용차를 이용해 관저 도착. 침실 앞에서 수회 대통령을 부름 -10시 19~20분 상황병이 관저 경호관 통해 내실 근무자에게 보고서 전달, 내실 근무자는 대통령 침실 앞 탁자에 보고서 올려둠■ 대통령 최초 지시시간 및 횟수…靑 10시 15분 vs 檢 10시 22분 ●朴 청와대 주장 (김기춘 전 비서실장, 2014년 7월 10일 국회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위 보고내용) -10시 15분 박 전 대통령의 유선 지시사항을 해경에 전달 -10시 30분 박 전 대통령이 직접 해경청장에게 인명구조 독려 지시 김규현 당시 외교안보실장도 2017년 2월 1일 헌법재판소의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의 증인으로 나가 “대통령에게 서면으로 10시에 보고를 드렸고 10시 15분 대통령이 김장수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구조 지시를 했으며, 10시 22분 다시 김장수에게 전화를 걸어 추가 지시를 하셨다”고 증언했다. ●검찰 수사 결과 -10시 22분 김장수 전 실장에게 처음으로 전화로 지시 -10시 25~26분 김장수 전 실장, 해경 상황실에 ‘핫라인’으로 대통령 지시 전파■ 보고받은 횟수…靑 11회 ‘실시간’ vs 檢 아침·저녁 1회씩 ●朴 청와대 주장 (김기춘 전 비서실장, 2014년 7월 10일 국회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위 보고내용) -11회 (첫 보고+국가안보실이 서면보고 3회+유선보고 7회) 김기춘 전 실장은 2014년 7월 10일 국정조사 특위 기관보고에서 김광진 의원이 박 전 대통령에게 대면보고를 하지 않은 점 등을 지적하자 “저희들이 계속 간단없이 2, 30분 단위로 문서로 보고를 드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이 충분히 직접 만나서 물어보는 것 이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고 저희들은 생각을 합니다”라고 답했다. 2016년 11월 당시 청와대는 홈페이지에 게재한 ‘세월호 당일 이것이 팩트입니다’ 타임 테이블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이 4월 16일 오전 9시 53분 외교안보수석실로부터 국방과 관련된 서면보고를 받은 뒤 10시에 국가안보실로부터 세월호 구조 인원수와 구조세력 동원 현황 등 종합 서면보고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10시 15분 박 전 대통령이 김장수 전 안보실장에게 상황을 보고받은 뒤 지시사항을 전달했고, 22분 다시 전화해 추가 지시시항을 하달한 뒤 10시 30분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에게 특공대를 투입해서라도 인원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10시 36분 정무수석실로부터 70명이 구조됐다는 보고를, 10시 40분 안보실로부터 106명이 구조됐다는 서면보고를 각각 받았고, 11시 20분과 23분 안보실로부터, 11시 28분 정무수석실에서 서면보고를 또 받았다고 주장했다. ●검찰 수사 결과 -대통령비서실이 10시 36분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에게 상황보고 1보를 이메일로 발송한 뒤 밤 10시 9분까지 11회에 걸쳐 상황보고서 전달 -그러나 정 전 비서관은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서를 실시간으로 전달하지 않고 오후와 저녁 1차례씩 그 때까지 수신된 보고서를 일괄 전달■ 외부인의 청와대 방문 여부…靑 “없었다” vs 檢 “최순실 관저 방문” ●朴 청와대 주장 -“간호장교와 미용사 외에 없었다” 청와대는 당초 세월호 참사 당일 관저를 방문한 외부인은 없었다고 설명해 왔다. 그러다 2016년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본격적으로 세월호 7시간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고 특히 의료·미용 시술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간호장교의 관저 출입 사실을 확인했다. 2016년 12월 22일 국회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위 청문회에서 당시 이영석 대통령경호실 차장은 외부인의 관저 출입을 묻는 질의에 “저희들이 확인해 본 결과에 의하면 관저 근무자들이 얘기한 결과로는 외부에서 들어온 인원은 없는 걸로 확인이 됐습니다”라고 답했다가 “청와대 내부 근무자, 특히 의무실의 간호장교를 포함한 사람의 출입은 있었느냐”고 재차 묻자 “간호장교가 가글을 전달해 주러 간 그것은 저희들이 확인하고 있습니다”라고 답변했다. 간호장교가 머문 시간은 약 4분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미용사의 출입은 이에 앞선 2016년 12월 6일 한겨레의 보도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의 미용사로 알려진 정송주·정매주씨 자매는 2017년 1월 9일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의 증인 출석을 거부했다. 정매주씨는 청문회에 불출석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지난 1월 증인 출석 요구 과정에서 위법이 있었다며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 수사 결과 -오후 2시 15분 이영선 전 행정관이 운전한 업무용 승합차를 타고 ‘A급 보안손님’인 최순실씨가 청와대 관저 방문 -관저 내실에서 박 전 대통령과 최씨, 이재만·정호성·안봉근 전 비서관이 5인 회의를 갖고 중대본 방문 결정 -정호성 전 비서관은 윤전추 전 행정관에게 머리 손질을 담당하는 정송주·정매주씨를 불러줄 것을 지시 검찰은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수사 과정에서 이영선 전 행정관이 운전한 업무용 승합차의 남산 1호터널 통과내역(오후 2시 4분과 오후 5시 46분), 이 전 행정관의 신용카드 결재내역을 확인해 이를 근거로 청와대 관계자들을 조사해 최씨의 출입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또 박 전 대통령과 최씨, 문고리 3인방 비서관들의 5인 회의는 매주 열렸던 것으로, 4월 16일 최씨의 관저 출입은 사전에 예정됐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알렸다. 박 전 대통령은 5인 회의를 통해 중대본 방문을 결정한 뒤 오후 4시 33분 관저를 출발해 5시 15분쯤 김기춘 전 실장과 함께 중대본에 도착했다. 이후 6시쯤 다시 청와대 관저로 복귀해 그 뒤로 계속 관저에 머물렀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내가 딴 출전권, 왜 협회가 포기하나”

    “내가 딴 출전권, 왜 협회가 포기하나”

    “내가 힘들게 얻은 출전권을 나랑 상의 한 번 하지 않고 포기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프리스타일스키 하프파이프 국내 1호 선수 김광진(사진ㆍ23)이 대한스키협회가 지난달 28일 국제스키연맹(FIS)에 제출한 최종 출전 명단에서 빠진 것으로 2일 알려졌다. 지난 연말부터 협회의 지원이 줄어들자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대회에 출전해 올림픽 출전 기준인 FIS 포인트(50)와 월드컵 랭킹 30위 안에 들어 한국에선 유일하게 자력으로 출전권을 따냈는데 그의 부상을 이유로 이름을 빼버린 것이다. 김광진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평창만 바라보고 4년을 살았는데 당사자와 한마디 나누지도 않고 자기들끼리 결정했다. 직접 통보한 것도 아니었다. 외국인 코치에게서 전해 들었을 때 허무함에 눈물까지 났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지난해 12월 중국 허베이성에서 열린 FIS 프리스타일스키 월드컵 1차 시기에서 70.40점을 얻어 한국 선수 최고 성적을 거뒀다. 그러나 2차 시기에서 왼무릎 전방 십자인대가 파열됐다. 현재 그는 목발에 의지하지 않고 걸을 정도로 회복됐다. 그와 트레이너들은 완주는 물론 기대 밖의 좋은 성적도 거둘 수 있다고 출전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해 왔다. 자력으로 출전권을 따낸 선수를 출전 명단에서 제외하면서 상의조차 하지 않은 건 절차적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행정 편의주의’란 지적을 받을 수 있다. 협회는 “수술 집도의 등의 공신력 있는 자료들을 바탕으로 선수의 상태를 파악하는데 지금 몸 상태로 경기에 나가는 게 괜찮다고 보기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그런데 하프파이프 공식 연습일은 오는 17일, 경기는 20일 열리는데 일단 이름을 올려놓고 나중에 출전 여부를 판단해도 되지 않았겠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굳이 스키협회가 이렇게 서둘러 출전권을 포기한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스키협회는 “그의 부상 사실을 다른 선수들도 뻔히 아는 상황에서 기술위원회 등에서 이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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