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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광진
    2025-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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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고 온 사람들(두만강 7백리:5)

    ◎광복­6·25이후­문혁때 귀향 줄이어/60년대말까지 쉽게 도강… 65% 다시 연변에/“지금은 갈수 없는 땅”강 건너 바라보며 눈물 ○보따리 이고 강 건너 끼룩 끼룩 끼루룩…. 한떼의 기러기가 일찍 얼음이 녹은 강 한구석을 박차고 북한땅을 멀리 돌아 날아간다.걸음을 멈추고 강 건너 마을을 바라보았다.한낱 짐승들도 자유로이 넘나드는 강.그렇지 못한 우리에게 두만강은 늘 한을 던져준다. 「기러기 갈 때마다 일러야 보내며/꿈길에 그대와는 늘 같이 다녀도/이 몸이 건느면 월강죄란다」 옛날 선조들이 불렀다는 「월강곡」을 되뇌어 보았다.나라의 독립을 위해 개척민에 뽑혀 산길을 찾아 나선 선조들은 밀물처럼 강을 건너왔다.그리고 또 광복 후 이주 당사자들과 후손들은 고국이 그리워 피땀으로 일군 삶의 터전을 버리고 다시 강을 되건너 썰물같이 대거 고국으로 돌아갔다. 첫번째 귀향은 광복 당시였다.일제의 말발굽에 짓밟혔던 나라가 독립을 맞자 조선족들은 보따리를 싸지고 두만강을 건넜다.당시 귀향민들은 두가지 부류다.대부분의 사람들은조상들이 묻힌 땅을 찾아 귀향했다.어떤 사람들은 북한의 고향을 찾았지만 살수가 없어 이남으로 곧장 월남했다.광복이 되자 연변과 북한의 공산당 정부는 일제주구 청산부터 시작했다.훈춘의 대지주이고 대동아전쟁때 비행기를 헌납하고 동경에 가서 천황의 접견을 받은 한희삼은 물론 다른 지주와 친일파들은 처단 당했다.항일부대 토벌에 공로가 있는 용정의 박도끼는 북한으로 도망가서 숨어 있다가 청진에서 잡혀 총살당했다고 한다. 화룡현 신선대 대장 김일로는 일제가 연길공원에 동상까지 만들어 세웠던 김동환 다음으로 가는 주구였다.1940년 3월25일 일본인 산림경찰대장과 함께 자기의 병졸들을 휘몰아 독립군을 추격하다가 홍기하에서 매복습격을 받아 1백20여명의 졸개를 잃었다.김일로도 졸개들을 호령하다가 벌린 입으로 탄알이 꿰뚫고 지나갔지만 요행히 목숨은 건졌다.이남으로 건너간 그는 여생을 편히 보내다가 수원에서 일생을 마감한 것으로 전해진다. 두번째 대 귀향은 1956년부터 1962년까지였다.한국전쟁(6·25)이후의 일인데 전후복구 지원을 위해 많은 조선족들이 북한으로 들어갔던 것이다.화룡시 용화향 상화촌에서만도 49호가 나갔다.그리고 인민공사가 시작되면서 굶어 죽게 되자 다시 살길을 찾아 북으로 건너갔다.용정시 삼합진 북흥촌의 최태경 일가는 19 62년에 함경북도 연사군으로 이사했다.최씨의 막내 딸 최해옥은 연사에서 소학교를 다니던 중 5학년 때 평양으로 뽑혀갔는데 현재 유명한 영화배우로서 「꽃파는 처녀」에서 주인공 꽃분이 역을 맡고 있다고 한다. 인재들이 많이 갔다.중국에서의 반우파투쟁이 지식인들을 잡는 운동이나 다름이 없고 민족심을 가진 사람들은 반동적 민족주의자로 되는 판국이라 떠나들 갔다.유명한 시인 주선우,작곡가 정진옥,소설가 김동구,아동문학가 채택룡 등 문학예술계 인사들도 떠나갔다.용정시 삼합향 승적 신재룡은 길림성 공업학원 학생이고 축구를 잘 했다.지금 그는 조선체육대 교수로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건너왔다 도로 가고 용정시 삼합향 북흥촌 이기희(54)는 연변대학을 다니다가 2학년 때인 1961년 7월 북한에 들어가 만 6년을 살고 다시 돌아왔다.그의 말을 들어보면 북한에 살다가 다시 연변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많다. 『당시 회령의 사탕공장건설은 연변에서 건너간 귀향민이 대부분이였댔습니다.나는 대학을 다니던 사람이라 공무직장에 배치 받았디요.직장장의 이름을 딴 김희진작업반에 배치합데다.그때 국가 철도상이자 함북도 건설사업소 소장으로 파견나왔던 김주봉이 하루는 우리 공장에 와서 연설을 하면서 「중국에서 하루에 백오십명씩 건너오고 또 매일 백여명씩 되넘어갑니다.조국에 왔으면 참답게 살아야지 이것이 뭡니까」라고 비판을 했디.어떤 날 출근하면 많은 사람이 없어집데다.알아보면 중국으로 돌아간거디요.67년 7월에 나도 가정을 데리고 도강을 했으니 아마 이튿날 내 자리가 비어 야단이었을 것이 뻔합데다.이북으로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은 중국에서는 호구를 붙여주지 않다가 67년 9월 정부에서 한꺼번에 복적시켰댔시요』 세번째 귀향은 문화대혁명시기이다.용정시 대소과수농장만 해도 항일에 참가했던 사람들 70여명 모두가 귀순 분자로 투쟁을 맞았으니 2백50호 중에 70호가 적이된 셈이었다.그중 10여호가 북한으로 도망갔다.용정시 백금향 백금촌 차덕균은 일제시기 동경대학을 나온 지식인이었다.일본에서 공부한 사실이 간첩조건이 되어 투쟁을 맞았다.모진 매를 견디다 못해 온 가족이 북한으로 갔는데 떠나던 날 큰 딸이 친척 집에 가고 없어서 두고 간것이 생이별이 되었다. 용정시 개산툰진 선구촌 사이섬에서 총 사격을 받고 수백명이 종성으로 집체도주 한 일이 대표적 사건이다.선구촌 문영기(54)씨도 그 사건에 끼었던 한사람이다.캉다(강대)요 홍색이요 하는 조직간에 말로하던 시비질이 주먹질,돌팔매질,몽둥이 싸움으로 번졌다. ○“북에 남아라”만류도 1967년7월29일 연길 캉다에서 개산툰에 와 개산툰 캉다와 합세하여 홍색을 쳤다.싸움은 공장울안에서 일어났는데 쌍방은 돌멩이를 던지고 창으로 찔렀다.홍색에서는 열세에 몰리자 해관의 총을 내다 불질을 해댔다.캉다패들은 결국 선구 대안 두만강 복판 사이섬으로 쫓겨나고 말았다.8월2일 홍색은 사이섬을 포위하고 투항하라고 공포를 놓았는데 총소리를 들은 북한땅 종성 사람들이 강변으로 나와 어서 건너오라고 소리를 쳤다.3백여명이 모조리 강을 건너갔으나 여자 하나가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북한에서는 대우를 제법 해주었다.그러면서 돌아가면 잘못 된다고 북한에 남으라는 선전을 했지만 몇사람 이외에 모두가 두달 후 되돌아왔다.주모자들은 감옥에 들어가 1년씩 구류를 사는 것으로 그쳤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개혁개방이 이루어지면서 당시의 일들이 억울한 것으로 판명되었다.그때 북한으로 건너가 거주하는 사람들이 중국에 와서 손해배상을 받아갔다.용정시 삼합진 승지촌 김광진은 지방 자위단에 있었다는 죄로 투쟁을 당하다 죽었다.그래서 온 가정이 야간 도주하여 회령으로 건너갔다가 지난 92년에 아들 김상연이 와서 용정시 민정국에 상소,3만원(인민폐)을 보상받았다고 한다. 현재 화룡시 덕화진 남평촌의 내 숙부(유인상·77)는 낮이면 두만강가에 나가 건너 쪽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눈물을 지으시기 일쑤다.내 고모가 60년도에 조선 청진으로 간 이후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이다.조카들은 60년대 초에 다녀갔고 몇해전까지는 편지라도 오갔는데 벌써 5년째 소식조차 모르고 있다.앞길이 멀지 않은 숙부는 생전에 단 한번이라도 만나보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다.부친(유민상·84년 별세)께서도 하나 밖에 없는 여동생을 말끝마다 외우시다가 한많은 세상을 뜨셨다.
  • 군부/김정일 버팀목은 혁명 3세대/북장성 60여명 인맥분석

    ◎92년 이후 대거발탁… 현재 준장­대장급 포진/거의 당중앙위원 겸임… 실세중 실세로 부상/혁명1세대 원로 예우 오진우 후임에 최광유력 북한군 실세 장령(장성) 60여명의 면면을 보면 한결같이 김정일의 충복이거나 직계들로 대부분 당의 요직을 겸하면서 군의 주요 위치에 포진하고 있다.현재 북한군 장성의 수는 약1천2백명으로 이중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상장급 이상 핵심 장성들은 거의가 군부 엘리트코스인 만경대 혁명학원과 김일성군사종합대학·강건종합군관학교 출신들이며 김정일친위 군맥을 형성하고 있다. ○떠오르는 세대 혁명 1세대부터 3세대까지 걸쳐 있는 북한군 기축세력 가운데서도 앞으로 김정일체제의 버팀목 역할을 할것으로 예상되는 실세로는 단연 3세대가 꼽혔다.현재 소장(우리의 준장)∼대장급인 이들 제3세대는 대부분이 김정일이 원수진급(92.4.23)과 동시에 북한군 최고사령관으로서 6백64명의 장령들을 승진시켰을 때와 휴전 40주를 계기로 「군최고사령관 명령 제40호」로 99명(중장14명,소장85명)을 승진시킬 때 포함된 장령들이다.특히 이들 「떠오르는 별」 가운데 당중앙위원회 위원과 후보위원을 겸하고 있는 장령들을 눈여겨 봐야 할 것으로 관측 됐다. 당중앙위원회는 당대회와 당대회 사이의 모든 당사업을 관장하는 당조직의 최고지도기관.당중앙위원들은 정치국과 정치국 상무위원회,총비서와 비서를 선출하고 비서국과 군사위원회 조직결정권을 가짐으로써 그 힘은 실로 막강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따라서 인민군 장령으로 중앙위원회 위원이나 후보위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면 일단 그는 향후 북한 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라는 얘기가 된다.이같은 관측은 이들이 김일성·오진우의 국가장의위원회 위원이었다는 점에 의해서도 뒷받침되고 있다.특히 인민군장령으로 중앙위위원이나 후보위원을 겸하고 있는 인물들은 대부분 김정일의 후계승계가 김일성에 의해 공표된 이후 보충된 인물들이다.이는 곧 김정일이 집권에 대비,앞날을 내다보고 중앙위원회에 자기 사람을 심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특히 이들 장령들 가운데서도 최근의 김정일군부대시찰이나 행사참석시 수행 내지 동석한 김광진 김봉율 이하일 조명록 김일철 김명국 이봉원 박재경 김정각 정호균 김하규등이 실세중의 실세인 것으로 평가됐다. 이밖에 지난해 김일성의 국가장의위원회 명단에 23위,지난달 25일에 발표된 오진우의 국가장의위원회명단에 서열 20위로 발표된 김철수도 눈길을 끄는 인물이다.이 정도의 서열이면 당정치국후보위원 수준의 거물급이나 그의 신상에 관한 것이 일체 알려지지 않고 있다.현재 그의 나이는 50대초에 계급은 상장(우리의 중장)급이며 호위총국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면 물갈이 없을듯 북한군의 세대교체는 외부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대폭적인 물갈이 형태로는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됐다.김정일이 전권을 장악했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김일성과 항일 빨치산활동을 같이 했던 혁명1세대들을 갈아치우기는 어렵기 때문이다.외부 세계에서는 혁명 1세대들이 군부 엘리트들로부터 퇴진압력을 받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설령 그렇다고 해도김정일로선 혁명 1세대를 홀대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그 까닭은 북한정권이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투쟁이라는 군사적 권위에 통치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최광 외에도 북한군에는 백학림 이을설 이두익 최인덕 전문섭 김철만 태병렬 이종산 등의 혁명 1세대가 버티고 있다.그러나 이들중 2∼3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원로의 예우를 받고는 있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실권은 제2세대와 제3세대들이 행사하고 있어 사실상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나 다름없다.이와 관련,전문가들은 지난 73년부터 시작된 김정일후계체제 구축과정에서 이른바 그 조직기반으로서의 「3대혁명소조」가 군부에도 침투,기반을 형성해왔음을 눈여겨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이는 달리 표현하면 형식상·제도상으로는 북한군부의 핵심세력이 고령의 항일 빨치산그룹으로 돼 있지만 김정일을 떠받들고 있는 신진 엘리트가 실세로 군내부에 포진하고 있음을 의미하는게 된다.따라서 북한군의 세대교체는 몽땅 물갈이하는 식이 아니라 이들 혁명 1세대의 자연수명이 다할 때까지 기다리면서 자연스럽게 빨치산 1세대들을 권력의 무대에서 퇴장시키거나 이들이 김정일에 대한 충성맹세를 하며 사의를 표하고 이를 김정일이 받아들여 빈 자리를 제2,3세대로 메우는 수순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광이 인민무력부장이 될 경우 총참모장은 김광진이나 오극렬 이봉원 김두남 오용방 장성우 같은 2세대중 한사람에게 돌아갈 것으로 관측됐다.즉 김정일이 혁명 1세대이자 인간적인 인연을 갖고 있는 최광을 인민무력부장으로 예우하면서 내용적으로는 실세인 제2세대로 하여금 북한 군부를 이끌어 가게 할 가능성이 가장 많다. ○개혁주장 못한다 북한군이 북한의 개혁주도세력으로서 힘을 모을 가능성은 매우 적은 것으로 진단됐다.북한군 장교들은 일단 「선택된 사람들」로 일반주민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봉급외에 각종 혜택을 누리고 있다.그런 만큼 자신들의 기득권이나 프리미엄을 포기하려 들지 않을 것이고 체제붕괴나 변혁을 초래하게될 개방이나 개혁은 더더욱 주창하고 나서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또한 북한군이 노동당의 지휘를 받고 있기때문에 당방침으로 결정되기 전에는 군부가 앞장서 개방이나 개혁을 주장하고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됐다. ○국부적 도발 가능성 북한경제형편이 지금보다 훨씬 나빠지고 핵문제가 제대로 풀리지 않아 국제적 고립이 심화되는 등의 국면이 전개되지 않는 한 북한군의 대남도발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관측됐다.전문가들도 막강한 한미연합전력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승리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군부의 군사적 모험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다만 내부적 불안요인 소진을 위한 정치적 목적에서 긴장조성의 필요성을 느낄 경우 국부적 도발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됐다.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의 이유를 한국과 미국의 도발에 대비한 군비충당 쪽으로 전가하고 있는 만큼 일부 소장 지휘관들이 이판사판의 심정에서 대남군사도발을 주장할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결론적으로 「의도하지 않은 전쟁」발발 가능성은 배제하기 어려우나 전면적이고도 계획적인 대남군사도발은 여려울 것으로 분석됐다.
  • “「오진우사망」북군부 대변화 신호탄”/「김정일버팀목」붕괴이후 분석

    ◎「차기 총참모장 성향」 북향방 좌우할것/러 유학 신세대장교 개혁주도 가능성/최평길 연세대교수 함북 북청의 물장수아들,국민학교 중퇴의 북한혁명 1세대 군최고지도자인 78세의 오진우가 김일성의 뒤를 이어 사라져 갔다. 김일성이 모택동군 휘하 동북항일연군 게릴라부대를 이끌 때부터 참가한 오진우는 1937년 일본 관동군의 토벌에 밀려 50명 안팎의 김일성 게릴라 부대가 러시아땅 하바로프스크에 밀려갈 때도 충실한 김의 전사로 행동을 같이한다. 장차 한반도에 공산정권이 들어서면 전위무력부대로 사용할 수 있겠다하여 당시 소련극동군사령부는 아무르강 언덕에 88독립저격여단을 만들어 중국게릴라 지도자 주보중을 정점으로 한인 김일성을 1대대장으로 한 정보정탐 훈련팀을 키우고 있었다. 1대대장 김일성 대위밑에는 3개 중대와 1개 경비소대가 있고,1중대에는 3개소대가 있었는데 1중대장은 후일 인민군 3군단장과 부총리를 역임한 최용진,1중대 1소대장은 6·25당시 탱크사단장을 지내고 전사한 유경수,부소대장이 바로 오진우였다. 북한인민무력부는 행정부의 국방부같이 정상적 정부기관에 소속되지 않고 북한최고 정부지도 기관인 중앙인민위원회 국방위원회 직속 별동대로 존재하고 있다. 1백52개 여단과 사단으로 구성된 지상군 65%가 휴전선에 전진배치되어 있다.해·공군사령관,전차·기계화군단사령부,평양방위사령부,해·공군사령부를 직접 관장하는 인민군 총참모장을 지휘하는 인민무력부장은 김일성이 죽은 권력공백기간에 가장 위협적이며 권력승계자인 김정일로서는 가장 두려운 존재였다.서서히 수면위로 부상하는 개혁파·우파,또는 반김정일파 등 어느 정파도 인민군을 끼지 않고는 북한정권을 장악할 수가 없다.북한군은 어떤 의미에서 김일성 이후 시대의 「사회안정자」또는 북한정권 정파에 대한 캐스팅 보트의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정치의 키를 쥐고 주변 국가에 위협적으로 등장하는 북한이 내놓을수 있는 유일한 세계화의 상품인 군사력의 실질 관리자가 사라진 이 시점에 차기 인민무력부장,인민군총참모장,그에 따른 군수뇌부 이동과 권력승계,정치향방,핵무기 개발 여부등은남북관계 변화에 매우 큰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 아마도 같은 혁명1세대인 현 총참모장 최광이 인민무력부장이 되고,총참모장으로는 같은 혁명1세대인 이을설·김봉율 아니면 2세대에 해당하는 김광진이 기용될 수도 있다.이 경우는 현재 인민군 지휘체계의 골간을 크게 바꾸지 않고 김정일의 정권장악을 위해 김일성이 미리 마련해놓은 군지휘부가 유지되는 것이며 현체제가 안정돼 있다는 지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또하나의 가능성은 설사 최광·김광진 등이 인민무력부장이 되더라도 인민군 총참모장이 혁명 2∼3세대에서 나오는 경우,그리고 그들 성향이 개혁지향일 경우 북한 정국의 향방이 크게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오진우의 사망은 김일성 시대의 사병화된 김일성군의 개념이 서서히 사라지고 전문직업군,변화의 촉진제가 될 효율화된 군이 정치에 개입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줄잡아 1만5천명 정도의 북한장교는 러시아에서 군사훈련을 받은 경험이 있고,3백명의 젊은 대위·소령급장교(나이는 28∼30살)들이김일성에의 맹목적 충성심과 탁월한 부대지휘능력을 인정받아 엄선되어 모스크바 고급군관학교에 5년장기 유학훈련을 받은 바 있다. 최근에 보내진 장기유학장교단은 1년은 러시아어를 배운후 4년간 소속병과훈련을 받았다.그런데 이 시기가 고르바초프가 등장하고 또 옐친이 직선제 러시아대통령으로 당선되며 동구의 김일성인 루마니아 차우셰스쿠가 처형되고,체코의 무명 지하극작가 하벨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때였다.공산체제 붕괴와 자유시장체제로의 전환을 현장에서 경험하고,한국무역진흥공사의 전시장과 한국기업들의 러시아 진출을 직접 체험한 이들은 훈련이 끝날 무렵인 1991년경에는 크나큰 심경의 동요를 겪었다. 그들은 주석직은 직선제로,조선노동당이 유일합법당이라면 국민투표로 인민들의 신임에 맡기자는 논의를 한 끝에 훈련종료 직전에 모두 평양으로 송환되었다. 이들은 지금 북한군을 실병지휘하는 대대장·연대장으로 있으며 만만찮은 개혁세력으로 잠재해 있다.이들 유학장교단은 혁명1세대가 계속 자리를 차지하든,2∼3세대가 계승하든군의 중요 간부로 활약하게 마련이이여서 김정일 권력승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앞으로 이들은 식량난 가중으로 주민봉기가 일어날 경우 정보사찰안전조직의 장악,개혁파 지도계층과의 연계 등으로 개혁의 핵심역할을 할 것이며 그들의 운신폭은 계속 넓어질 것이다. 오진우의 죽음은 이같은 북한 인민군의 군사·정치적 변화의 중요한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 김정일 공연관람

    【내외】 북한 김정일이 28일 제9차 군선동원대회 참가자들과 함께 군협주단 예술인들이 출연한 무용조곡 「장군님 받들어 군민은 한마음」공연을 관람했다고 중앙방송이 29일 보도했다. 이날 평양 2 문화회관에서 진행된 김정일의 공연관람에는 군참모장 최광,차수 김광진·김봉율과 대장 이봉원,상장 박재경 등 군고위간부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 김정일,오진우 만나

    【내외】 북한 김정일이 28일 인민무력부장 오진우(79)를 만났다. 김정일은 이날 제9차 군선동원대회 참가자들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오진우와 총참모장 최광,차수 이을설 김광진 김봉율,대장 이봉원,상장 박재경을 만났다고 평양방송이 보도했다.
  • 김정일 권력승계 순항 과시/김정일의 공석출현 안팎

    ◎추도분위기 높여 「등극」 정당화 노려/군차수급 상위서열 앉아… 「실세」 입증 16일 평양 금수산 의사당에서 열린 김일성 사망 1백일 중앙추모회에 김정일이 모습을 나타냄으로써 그동안 나돌던 건강이상설이나 권력암투설등 그를 둘러싼 갖가지 추측들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향후 그의 권력승계가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에 앞서 이날 상오 만수대언덕 대형 김일성동상앞에서 열린 1백일 추모대회에는 김정일이 참석치 않아 갖가지 추측을 자아내게 했는데 결국 김일성에 대한 추도분위기를 최대한 높여 김정일의 1인자 등극을 정당화하는 「추대분위기」로 이어가 「극적효과」를 노리기 위한 시나리오였던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 ○…김정일은 이날 하오4시쯤 당정간부들을 대동,주석궁으로 불리는 만수대 의사당에 88일만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지난번 장례식때보다는 건강상태가 비교적 양호해 보였으나 공식연설은 일체 없었다.그는 이날 상오 오진우 등 당정 고위간부 대부분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화환 증정식에 얼굴을 내밀것으로 예상됐었으나 나타나지 않았다. ○…이날 행사에서 당서열 2,3위인 오진우 인민무력부장과 강성산 정무원총리가 김정일의 좌우에 도열하는등 이들과 박성철 양형섭등 고위 당정인사들의 권력서열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던것으로 관측됐다. 북한주민과 군간부등 10만여명이 참석한 이날 하오의 만수대 의사당 중앙추모회는 평양시 당책임비서 강현수의 개회사에 이어 당비서 김기남이 당대표로,북한군대표로는 총참모장 최광이 나서서 추모사를 했다.김기남은 『김일성주석이 창시한 주체혁명 위업을 완수하기 위해 김정일지도자에게 충성을 다하자』고 다짐.최광도 『우리 군은 김주석의 유훈을 받들어 김정일지도자에게 충성을 다할것』이라고 강조. ○…이날 상오에 열린 대규모 추모제에는 북한 권력서열 2위인 오진우를 비롯,강성산 정무원총리와 이종옥·박성철·김영주부주석 등 고위 당정간부 전원이 참석. 김정일의 측근으로 알려진 박남기 평양시 행정경제위원장은 화환증정식에서 추모사를 통해 『애도의 나날에 수령님의 영전에 다진 엄숙한 맹세대로 김정일에 충성을 다할 것』이라며 김정일을 「친애하는 지도자」로 호칭. ○…한편 이날 행사에서 지난 7월의 김일성 장례식때와 달리 김봉률·김광진·김익현 등 몇몇 인민군 차수급들이 김기남 당비서보다 상위서열에 자리잡아 김일성 사망후 군부를 포함한 강경보수세력들이 실세로 부상하고 있다는 일부 관측을 낳기도. 정부의 한 당국자는 이와 관련,『김정일의 권력승계가 완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은 현재 노동당 정치국 중심의 권력구도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면서 『이 와중에서 군부나 노동당내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 ○…앞서 북한 중앙방송은 이날 김일성 사망 1백일을 계기로 평양을 비롯한 주요 도시 거리에 김일성의 대형 초상화를 미리 세워 놓았다고 보도. 북한당국은 김정일의 지시로 평양 제1백화점 앞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글과 함께 가로15m,세로11m의 대형 초상화를 세워 놓았으며 문수네거리에도 대형 초상화를 걸어 놓았다는것.한편 북한당국은 이날 추도대회 행사장면 TV녹화 화면을 당초 상오 10시 일본TV 공동취재단에 보내주기로 했다가 시간을 하오 3시,하오 5시로 잇따라 연기해 또한차례 갖가지 추측들을 증폭시켰었다.
  • 중학생 가수 백동우/「마법의 성」 가요계 강타

    ◎「나의 꿈속에서 너는 마법에 빠진 공주…」/그룹 「더 클래식」음반 타이틀곡… 한달만에 12만장 팔려/“학업에 지장” 얼굴 알리지 않고 노래만/미성·동화같은 가사로 여학생에 인기 얼굴없는 중학생 가수가 부른 노래가 가요계를 강타하고 있다. 출반한 지 한달여만에 12만장이 팔릴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있는 그룹 「더 클래식」의 음반 타이틀곡 「마법의 성」. 『나의 꿈속에서 너는 마법에 빠진 공주… 마법의 성을 지나 늪을 건너 어둠의 동굴속 멀리…』 소년인지 소녀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의 미성으로 부르는 동화같은 가사때문에 자칫 동요로 착각할 정도이지만 「마법의 성」은 중·고생들은 물론 20대들에게도 인기를 끌고있는 어엿한 대중가요이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는 15살 소년 백동우군(서울 S중 2년).교회 성가대의 일원인 백군은 변성기가 지나지않은 미성이 워낙 탁월해 「더 클래식」의 객원가수로 발탁됐다. 「더 클래식」은 김광진·박용준이 결성한 그룹으로 「마법의 성」은 이 그릅이 처음 낸 음반.가수 이승환이 객원가수와 공동 뮤직 디렉터로 참여했다. 타이틀곡 「마법의 성」은 얼마전 젊은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전자오락게임 「페르시아의 공주」를 소재로 해 만든 노래다.그룹 「더 클래식」은 「마법의 성」을 자신들이 직접 불러 음반의 첫머리를 장식했으나 아무래도 가사의 내용상 미성의 소년이 부르는 것도 필요하다는 판단아래 백군을 발탁해 음반의 중간에 백군이 부르는 「마법의 성」을 삽입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백군의 「마법의 성」이 「더 클래식」의 「마법의 성」보다 큰 인기를 얻은 것이다.백군의 노래는 무엇보다도 중·고생들사이에서 인기가 높다.노래가사가 「동요는 유치하고 대중가사는 어딘지 어색한」 청소년들에게 호소력을 갖고있기때문이다.특히 여중·고생들이 『마법에 빠진 공주처럼』 이 음반을 많이 찾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백군은 학업에 지장을 받을 것을 우려해 얼굴을 외부에 알리지않고 있다.백군의 인기가 「마법의 성」을 이끄는 견인차이긴 하지만 이 음반에 수록된 노래가 하나같이 정성이 깃든 작품이란점도 이 음반의 매력이다. 이 음반에는 「머피의 법칙」을 응용해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사소한 불운」들을 재미있게 노래한 「오비이락」,전설적인 로큰롤가수인 제리 리 루이스를 추모하는 노래 「제리 제리 고 고」(Jerry Jerry Go Go」,발라드곡 「서툰 이별」등이 수록되어있다.구태여 장르를 고집하지않고 청소년용 노래에서 고고와 발라드곡에 이르는 다양한 노래를 담고있는 것이다. 「더 클래식」 멤버 가운데 김광진은 미국 미시간 주립대 경제학 석사출신으로 현재 회사를 다니는 가수여서 이채를 띠고있다.그는 섬세한 노랫말과 서정적인 멜로디가 뛰어난 작곡가로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있다.같은 멤버인 박용준은 편곡실력이 상당해 이승환의 라이브 공연때마다 건반을 담당해왔다.
  • 북 군부 강경파 득세한듯/김익현 등 서열 급부상

    ◎제네바핵협상 제동 추정/정부 당국자 분석 김일성 사망후 군부를 포함한 강경보수세력들이 북한의 실세로 등장,주요 대외·대남 정책을 주도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정부의 한 당국자가 29일 밝혔다. 정부는 특히 제네바에서 진행중인 미북간 핵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은 북한 군부 강경파들이 신속한 타결에 제동을 걸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보고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이와 관련,『김정일의 권력승계가 완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은 현재 노동당 정치국 중심의 권력구도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면서 『이 와중에서 군부나 노동당내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커진 것 같다』고 해석했다. 이 당국자는 지난 8월28일 「김정일노작 발표20돌」기념식에서 공안담당 비서인 계응태가 『김정일을 중심으로 한 「당의 두리」에 굳게 뭉치자』고 밝힌 이래 북한정권 핵심인사들이 포진한 당정치국 회의를 통해 중요 정책방향이 결정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이른바 「당적 지배체제」로 북한의 권력구도가 정립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실세그룹과 관련,『폐쇄체제의 속성상 과도기에는 무력을 장악한 군부와 공안계통이 힘을 쓰게 마련』이라고 말해 최광인민군총참모장,인민무력부부부장인 김광진·김봉율,김익현중앙군사위원 백학림사회안전부장 등 인민군 실세그룹과 최근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는 계응태 공안담당비서의 득세 가능성을 점쳤다.특히 김익현등 인민군차솔그룹들은 김일성사망직후 발표된 장의위원 명단에서 서열이 43위에서 79위 사이에 불과했으나 이후 열린 여러 행사에서는 서열 24위인 김기남 당비서보다 서열이 앞선 것으로 나타나 정부당국은 이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 김용순·김영남·계응태 두각/김정일 뒷받침 인물들

    ◎조문대표 접견·추도대회 주도… 활동 활발 서열이 중시되는 북한 권력상층부에 아직 이렇다할 변화가 감지되지않고 있는 가운데 김일성사망이후 김용순 노동당 대남비서등 몇몇 사람의 행보가 두드러져 관심을 끌고 있다. 현재 김용순과 함께 주목되는 인사는 부총리겸 외교부장인 김영남,노동당 공안담당비서인 계응태,인민무력부 부부장인 김광진등. 이중에서도 그동안 활동이 활발했던 사람은 남북정상회담 실무접촉 북측단장이기도했던 김용순.대남및 대외업무를 다루어온 그는 김일성의 장의위원 서열로는 29위에 불과하나 김일성의 시신이 처음으로 공개됐을때 참배하는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를 부축함으로써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으며 북한 지도부를 대표해 조문차 방북중이던 조총련대표들을 만나는등 가장 활발한 행보를 보였다.그는 김정일이 김일성사망이후 처음으로 만난 외국인인 이탈리아의 국제관계연구소 총서기 면담때도 배석했을 정도.또 최근엔 외국방송으로 김일성사후 평양에서 첫 실황방송을 했던 미국의 CNN방송의 대표단과 만나고 5일엔 방북중인 독일자유민주당 간부들을 만나기도 했다. 김영남은 지난달 20일 치러진 김일성추도대회에서 김정일의 위임에 의해 대표 추도사를 하면서 김정일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고 그를 후계자로 옹립하고 나온 김정일의 핵심측근.이날 군을 대표해서 나온 차수 김광진도 『김정일을 당정군의 최고수위로 받들자』는 내용의 추도사를 낭독해 주목을 끌었다. 김일성 추도대회때 사회를 본 계응태는 지난달 27일 열린 「전승기념일」행사에서 보고를 해 관심을 집중시켰는데 그 역시 김정일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곧 모습을 드러낼 김정일체제의 권력핵심부에서 요직을 차지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 충성 결의모임 개최/최광 등 참석

    【내외】 북한은 27일 하오 「전승」(휴전)41주를 맞아 평양 서장동에 위치한 전승기념탑에서 육해공군 청년군인들의 「충성의 결의모임」을 개최하고 김정일을 중심으로 일심단결해 주체혁명위업과 조국통일의 과업을 앞당겨 달성할 것을 다짐했다. 북한군 총창모장 최광,차수 김봉율,김광진을 비롯한 북한 육해공군 청년군인들이 참석한 이날 모임에서는 『김정일의 명령을 곧 김일성의 명령으로 받들어 김정일동지가 있으면 반드시 이긴다는 신념을 안고 군전투력을 더욱 향상시킬 결의를 다졌다』고 평양방송이 이날 보도했다.
  • 김일성위상 가늠할 첫무대/오늘 북 「전승기념일」 행사

    ◎군주요간부 서열­충성강도 윤곽/「총비서 대관식」 군중집회 가능성 김정일의 권력승계의 공식화 시점이 지연됨으로써 27일 열리는 북한의 이른바 「전승기념일」행사에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북한은 휴전협정일을 전승기념일로 정해 대대적인 행사를 치르고 있는데,이날 행사를 통해 군부 주요인사들의 서열변동 여부와 충성서약의 강도를 통해 김정일의 권력장악 정도를 간접적으로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번 행사는 또 그동안 김정일에 대한 권력승계 절차가 늦어짐으로써 제기됐던 ▲김정일의 건강악화설 ▲권력핵심부의 암투설 등 갖가지 의문들의 진위를 파악해볼 수 있는 계기도 된다. 물론 이날 행사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김정일이 구체적으로 어떤 자격으로 참석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의 선전매체들은 온갖 수사를 동원해 김정일에 대한 우상화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그를 「위대한 수령」,「인민의 영도자」,「절세의 위인」,「동방에 솟아오른 창공의 태양」 따위의 호칭으로 찬양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 뒤엔 권력승계 절차의 완결을 뜻하는 당총비서와 국가주석 등의 직책이 따라붙지 않고 있다.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이번 행사를 김정일 추대를 위한 분위기 조성용 군중집회로 치를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보고 있다.북한매체들이 김일성 사망 이후 각계각층의 김정일에 대한 충성다짐 사실을 선전해온 연장선상에서 정권장악의 최대 관건인 군부의 충성서약을 북한주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각본을 연출할 것이라는 얘기다.지금까지 공개적으로 김정일에게 충성을 다짐한 군고위인사는 의외로 손꼽을 정도로 적다.14명의 당중앙군사위원 중에서 김광진인민무력부 부부장과 김일철해군사령관 둘 뿐이다. 때문에 이번 행사에 도열할 주요 군간부들의 서열과 김정일에 대한 충성발언의 강도 등으로 김의 군장악력과 1인자 공식화 시점을 유추해볼 수 있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이번에 그의 당총비서 선출사실을 공표함으로써 행사 자체를 김정일의 「대관식」 성격으로 치를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있다.북한은 김일성의 장례기간인 지난11일 당중앙위원 전원을 평양으로 소집해 놓은 바 있어 20일 추도대회 이후 어느 시점에 비밀전원회의를 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북한은 지금까지 요직인선을 위한 당중앙위 전원회의를 거의 대부분 비밀리에 개최했고 그 결과도 일정한 시점이 지난 뒤에 발표하는 게 상례였다.
  • “추모열기 식을때 기다려” 해석 유력/김정일 권력승계 왜 늦어지나

    ◎“건강·리더십 문제로 난기류” 관측도 북한 김정일의 당총비서 및 국가주석 취임 등 권력승계 절차가 마무리되는 시점은 과연 언제쯤일까.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 선전매체들의 지속적 김정일 미화작업으로 따놓은 당상처럼 비쳤던 그의 공식 1인자 등극 시점이 지연되고 있다. 22일 상오까지 북한방송들에 나타난 김의 호칭은 여전히 최고사령관과 국방위원장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이를테면 북한중앙방송은 21일 저녁 김정일을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로 찬양했으나 그에 대한 호칭은 「장군」에 그쳤다. 20일 김일성 추도대회에서 사실상 김이 후계자로 추대됐음에도 불구하고 김광진 인민무력부부부장 등 각계 인사의 충성다짐만 계속 선전할 뿐 그의 당총비서 및 주석 승계발표를 서두를 낌새는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북한이 「다된 밥」처럼 여겨졌던 김의 1인자 공식화에 뜸을 들이고 있는 까닭에 대해 현재로선 누구도 자신있게 정답을 제시할 수 없는 형편이다.불리한 정보의 외부유출을 철저히 차단하는 북한체제의 속성상 몇가지추론만 가능할 뿐이다. 우선 2년 동안의 후계체제 구축작업으로 그의 승계가 기정사실화된 만큼 굳이 절차적 문제를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추론이 가능하다.북한권력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수령의 유일지도체제인 데다 김일성 생전에 이미 김을 「미래의 수령」으로 북한주민들에게 세뇌시켜온 만큼 당총비서 등 구체적 직책의 승계는 부차적 문제라는 얘기다. 요컨대 다른 「대안」이 없도록 상황조성을 해놓은 마당에 현재 「상주」의 지위에 있는 김이 아버지의 카리스마를 훼손해가면서까지 승계절차를 앞당겨 강행할 까닭이 없다는 것이다. 이같은 논거에 따르면 당중앙위 전원회의와 최고인민회의를 열어 당총비서·국가주석 등 핵심요직에 대한 승계절차를 밟을 시점이 임박했다고 볼 수 있다.김일성에 대한 「추모열기」가 가라앉기만 기다려온 형국이기 때문이다. 이와는 정반대의 해석도 있다.김정일의 건강이나 지도력에 문제가 생겨 완전한 1인 지배체제에 난기류가 조성되고 있다는 관측이 그것이다. 이는 미­북 3단계회담 등 북한정권이 운명을 걸고 대비해야할 대내외적 현안이 산적한 마당에 국가주석 등 요직의 장기공백을 방치할 상황이 아니라는 점에 근거하고 있다.즉 김이 명목상 1인자 자리에 오르는 데는 합의가 이뤄졌으나 실질적인 권력장악에는 문제가 생겼다는 분석이다. 정부내 북한전문가들은 김정일을 외형상의 대표로 내세우되 실제 정책결정과 집행은 당정치국을 핵심으로한 당중앙위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향으로 북한체제가 변모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이른바 「당적 지배체제」로 불리는 유사 집단지도체제가 그것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김에 대한 공식 후계선언이 늦춰지고 있는 것도 단순히 선출절차나 시기에 대한 이견이 아니라 「당적 지배체제」에 참여할 핵심인사들간의 「파워게임」이 끝나지 않은 탓이라는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 정오 북전역서 3분 묵념/김일성 추도대회 이모저모

    ◎김정일 「교시」없이 참관만 북한 김일성의 추도대회는 20일 상오 10시부터 약 1시간 18분동안 평양 시내 중심부 김일성광장에서 김정일을 비롯한 당정군핵심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 북한방송은 이날 추도식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행사진행상황을 생방송으로 북한전역에 중계했고 이를 수신한 미CNN이 세계로 송출. ○…추도식이 진행되는 동안 김일성광장과 연결된 모든 대로와 주체사상탑앞 광장,전승광장등 평양시내 곳곳에는 대형스피커가 설치돼 수백만명의 주민들이 이를 청취했다고 북한관영 중앙통신이 보도.또한 평양시내 모든 경기장과 체육관,학교운동장에는 수많은 시민들과 북한군 장병들이 운집해 인산인해. ○…추도대회 참석 규모는 김일성광장에 20만명,대동강 건너편의 주체탑 아래 10만명등 약 30만명에 이른다고 평양주재 한 외교관이 추산.이들 북한주민은 김정일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도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이 외교관은 덧붙였다. ○…추도대회에서는 김영남 부총리겸 외교부장이 김정일의 위임으로 대표추도사를 낭독했으며 이어 근로자대표,농민대표,군대표 김광진인민군차수,해외동포대표등의 순으로 추도사를 낭독. 이들의 추도사는 하나같이 반제혁명투쟁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는 김일성의 혁명투쟁을 열거,추앙한 데 이어 김정일을 「새로운 지도자」로 추대하자는 내용.특히 추도사 내용가운데는 과거 「미제국주의」를 극렬히 비방하던 내용이 없어 북·미3단계 회담 등 향후 북한의 대미외교 노선을 염두에 둔 것 같은 모습. ○…김정일은 김일성 광장 앞면에 마련된 주석단 단상 중앙에서 검은색 상하의에 왼쪽 팔에 검은색 완장을 차고 선 채로 추도대회에 참석.그는 전날 장례식때와 마찬가지로 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로 상체를 약간 오른쪽으로 기울인 채 서 있었는데 무척 초췌한 모습.당초 추도대회장에서 김정일이 새 지도자로서 북한 인민들을 향해 추도사를 겸해 「교시」를 내릴 것으로 예상됐으나 한 마디 말 없이 묵묵히 참관. ○…북한 주민들은 이날 김일성참배나 장례식때처럼 광적으로 울부짖는 모습과 달리 비교적 엄숙한 표정으로 대오를 지키며 질서있게 참석.그러나 추도대회가 1시간이 넘도록 진행된데다 날씨가 무척 더운탓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몸을 비틀고 자리를 벗어나거나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는 주민들의 모습이 보이기도.이들은 남자의 경우 검은색 상하의,여자들은 검은색 치마에 흰색 저고리로 동일한 복장이며 군인들은 인민군 제복 차림. 이어 낮 12시에는 북한 전역에서 추모경적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북한주민들은 3분간 묵념을 올렸다. ○…김일성 추도대회는 예정보다 40분 일찍 끝나 참가자들은 11시30분부터 해산하기 시작. 평양 주재 외교관들은 이처럼 추도대회가 예정보다 빨리 끝난 것은 무더운 날씨로 인해 대회장 곳곳에서 여성들이 쓰러지고 대형 스탠드에 있던 일부 초청 손님들도 견디지 못해 부축을 받아 밖으로 나갔기 때문이라고 추측.
  • 북,김정일 「후계자」 추대/김일성 추도대회

    ◎당·정·군의 수령… 충성 다짐 북한은 20일 상오10시 평양시내 김일성광장에서 가진 김일성 추도대회에서 김정일을 김일성의 후계자로 사실상 추대했다. 이날 추도대회에서 김영남부총리겸 외교부장및 김광진 인민무력부 부부장(차수)과 노동자 농민 해외동포등 각계 대표들은 차례로 나서 김일성의 업적을 찬양하고 김정일에 대한 충성을 다짐했다. 김정일의 「위임」에 의해 먼저 등단한 김영남은 추도사에서 『김일성동지는 수령의 후계자,혁명의 영도자를 잘 모실 것을 간곡히 당부했다』고 말하고 『오늘의 비통한 슬픔을 힘과 용기로 바꿔 김정일동지를 수반으로 전당·전군·전민이 일심단결해 우리식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빛내어 나가자』면서 김정일을 후계자로 추대하고 나섰다. 김영남은 대외문제와 관련,기존의 자주·평화·친선의 외교정책 노선을 일관되게 고수해 나갈 것이라고 말하고 「3대원칙」과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에 입각해 통일정책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해 김일성노선을 답습할 것임을 밝혔다. 김영남에 이어 나온 화력발전소의 한 노동자는 김정일에 대해 『친애하는 김정일지도자는 곧 수령이며 지도자동지를 중심으로 단결하자』고 호소하고 김정일을 「수령」으로 호칭했다. 북한군 차수인 김광진도 추도사에서 『김정일을 당정군의 최고수위로 받들고 김정일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며 충성으로 받들겠다』고 다짐했다. 이에따라 김정일은 곧 당중앙위 전원회의와 최고인민회의소집등 요식 절차를 거쳐 총비서와 국가주석직에 취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관련,정부의 한 당국자는 북한이 21,22일쯤 최고인민회의를 소집해 김일성사망으로 공석인 국가주석에 김정일을 선출할 가능성이 많다고 전망했다. 이 당국자는 또 북한이 최고인민회의 소집을 전후해 김정일이 당총비서에 취임하는 요식절차를 거칠 가능성도 있다고 관측했다.
  • 당중앙위 중심 「집단지도체제」 가능성/추도사로 본 김정일체제·노선

    ◎“김일성 주체혁명 유지 계승” 천명/대미·일 비난 자제… 고립탈피 시도 20일 열린 김일성 추도대회는 사실상의 김정일 추대식의 성격을 띠었지만 동시에 김정일체제의 불안한 앞날을 알리는 예고편이었다는 지적이 많다. 북한은 이날 김일성의 사망에 따른 권력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김정일체제의 출범을 사실상 선언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추도사를 통해 권력서열 8위인 김영남정무원부총리겸 외교부장이 당정을,혁명1세대의 막내격인 김광진인민무력부 부부장이 군을 대표해 김정일에 대한 충성을 서약한 데서 분명해진다..즉 북한정권이라는 한배를 탄 핵심 기득권 세력들이 북한체제의 난파를 막기 위해 일단 김정일 후계구도를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그러나 이날 김영남이 읽은 추도사에는 종래의 수령 중심이 아닌 「당중앙위」를 중심으로 하는 단결을 강조한 데서 김정일체제가 과거 김일성체제와 같은 절대권력을 휘두르지는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즉 모든 권력이 김정일로 집중되기 보다는 1백45명의 실력자로 구성되는 당중앙위원회,그중에서도 핵심권력자 10∼15명정도로 구성되는 정치국을 중심으로 권력이 행사될 지도 모른다는 분석이다.결국 김정일은 일단 권력의 정점인 국가주석과 당총비서를 맡더라도 실질적 정책방향은 당정치국의 원로급들의 합의에 의한 이른바 「당적 지배체제」방식으로 결정될 것이라는 전망인 것이다. 이날 추도사에서 천명된 김정일체제의 대내외적 정책노선에서 새로운 방향제시를 찾아볼 수 없는 것도 김정일의 이같은 취약한 입지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도 있다. 북측은 이날 대내적으로 이른바 「주체혁명 위업」이라는 김일성의 유지를 계승할 것임을 천명했다.노동당 중심의 단결과 사상·기술·문화 등 3대혁명을 강조함으로써 이미 「배고픈 사회주의」로 판명된 「우리식 사회주의」를 고수할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북측은 또 이날 대남 노선에서는 자주·평화·민족대단결 등 평화통일 3대원칙과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 」의 실현을 거듭 주장했다. 이는 분단 이래 북한의 지상목표였던 적화통일이 당분간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고 남한으로부터의 흡수통일 우려를 없애는 방어적 성격을 지닌다.그러면서도 장기적으로는 대남 혁명이라는 그들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통일전선전술,즉 우리 정부와 민간을 분열시키는 공세적 측면도 포함되어 있다. 왜냐하면 김일성이 직접 작성했다는 「10대 강령」에는 우리측이 수용하기 힘든 주한미군 철수 등의 실천적 요구가 부가되어 있고,북한이 주장하는 민족대단결도 우리의 당국과 비당국을 갈라놓으려는 「통일전선」형성을 염두에 둔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날 추도사의 대외정책 기조도 김일성이 올해 신년사에서 제시했던 내용과 큰 차이가 없다.이같은 기조를 구체화하는 각론에 대해선 구체적 언급이 없었다.다만 종래 「주적」으로 설정했던 미·일에 대한 비난이 전혀 없었다는 점에서 예의 「핵카드」를 통해 대미·대일 관계개선으로 고립 탈피를 시도할 것이라는 추론은 가능하다.
  • 반김정일세력/군부소장파·유학생 주축

    ◎북,김일성 사망직후 「불온분자」 색출령 북한은 「정적」이라든지 「반체제」라는 개념이 없는 이른바 「유일사상·유일체제」의 사회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전문가들은 「김정일체제」가 얼마나 오래 가느냐 하는 것은 반금정일세력의 움직임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북한정권 스스로도 「불온분자」가 있음을 인정한다.북한은 지난 9일 정오 김일성의 사망을 보도하기 직전 북한 전역에 반금정일세력을 색출하도록 긴급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한국과 미국·일본 3개국 정보기관이 파악한데 따르면 북한의 국가사회안전국은 각 지방지부에 「불온분자에 대해 즉각 대응하고 색출하라」는 지시를 시달했다는 것이다. 김정일에 반대하거나 그를 비판하는 세력으로서 우선 주목되는 대상은 북한군부이다.군은 당장 무력을 동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군부의 핵심세력은 3부류로 나누어진다.첫째는 오진우 인민무력부장과 최광 총참모장등 이른바 빨치산세대이다.이어 오극렬 전총참모장,김광진 인민무력부부부장,이봉원 인민무력부총정치국부국장등 60대의 장성그룹이 있다.마지막으로는 수천명에 이르는 해외유학 경험이 있는 영관급 장교들이다. 이들 가운데 김정일체제를 위협하는 계층은 유학파 장교들이다.그들 다수는 러시아및 동구의 변화를 보면서 북한도 변해야 한다는 합리적 사고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다.그에 비해 빨치산세대가 김정일에게 등을 돌릴 가능성은 낮다.60대의 장성들도 김에게 충성하며 군원로들의 자리를 차지하려 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과 내각에서는 김일성의 총애를 받던 친·인척이 잠재적으로 김정일의 적대세력이다.김일성의 동생과 부인인 김영주와 김성애,그리고 김성애의 아들 김평일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김정일체제를 위협하는 것은 일반유학생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지식분자」들의 반금정일세력화이다.이들이 본 외국의 「신세계」가 입과 입으로 전해지면서 김정일에 대한 불만층의 폭이 넓어져 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 정부는 누가 반금정일세력인가에 대해 신중한 편이다.최근 들어서는 유일하게 국방부측이 이와 연관된 자료를 내놓았다. 이병대국방부장관은 지난 11일 국회국방위에 제출한 비공개자료를 통해 김정일에 대한 「비판세력」이 5백77만여명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수용소에 갇혀 있는 정치범,당원이 못된 감시대상자,유학생출신,지주등 출신성분이 나쁜 사람등을 뽑아 보니 그정도 수치가 나왔다는 것이다.모스크바 타임스지도 14일자 사설에서 북한주민가운데 5백만명은 김일성조문에 동참하지 않았다고 썼다.우리 국방부와 비슷한 추정을 하는듯 싶다. 그렇다고 북한의 나머지 1천7백만명이 김정일을 지지한다는 얘기는 아니다.그들은 김에 반대할 엄두를 못내고 있다고 보는게 정확할 것이다.김이 경제정책에 실패,북한주민들을 지금보다 더 못먹인다면 잠재적 반대세력은 더 늘어나고 표면으로 나올 수도 있다.북한사회가 개방되면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커져가리라 예상된다. 김정일은 20년전부터 김일성의 비호아래 후계작업을 진행시켜 왔다.자기에게 충성하는 인사들을 이미 당·정·군에 많이 박아놓았다.따라서 스탈린,모택동사후의 소련이나 중국처럼 「대숙청」은 없으리라고 북한전문가는 전망한다.
  • 3대혁명 소조/만경대혁명학원/김정일 버팀목 “쌍벽의 두집단”

    김일성 사망후 북한의 세습군주로 부상하고 있는 김정일에게는 그를 지탱해주는 2개 특수집단이 있다.만경대혁명학원 출신집단과 3대혁명소조가 바로 그것이다.만경대학원 출신들이 일종의 두뇌집단이라 한다면 혁명소조는 친위조직으로서 김정일을 돕고 있다. ◎김의 모교… 소장졸업생 대부분 직계 활약/주도권 쟁탈전땐 「돌격대」역 맡을 가능성 김정일의 모교로 졸업생들 가운데 소장그룹 대다수가 김정일의 측근을 형성하고 있다.극소수 김정일과 소원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40∼50대는 대개 김정일파로 분류된다.김정일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만경대혁명학원이다. 만경대혁명학원은 혁명유가족의 자녀들과 당·정 고위간부들의 자녀들에게만 입학이 허용되는 특수학교다.아니 귀족학교라는 표현이 더 옳다.북한의 특수학교로는 또 강반석혁명유자녀학원 해주혁명유자녀학원이 있다. 만경대혁명학원은 지난 47년 10월21일 평남 대성군에서 문을 열고 3백35명을 수용했다가 다음해인 48년 현재의 평양 만경대로 이전하면서 수용인원도 5백22명으로 늘렸다.요즈음 학생수는 9백여명.교육기간은 유치원 상급반 1년,인민학교 4년,고등중학교 6년을 포함해 모두 11년이다.인민무력부 소속으로 학생들은 재학기간동안 장교복장을 하고 의무적으로 모두 기숙사에서 생활한다.졸업후 최우선적으로 김일성종합대학에 진학하거나 장교임관 또는 당·정의 초급간부로 기용된다.원하면 해외유학을 갈 수도 있다.이 학교에 입학만 하면 북한사회의 엘리트코스를 밟을 수 있다. 졸업생가운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김정일말고도 강성산(정무원총리)서윤석(평남도당책겸 인민위원장) 전병호(당비서) 최태복(당비서) 연형묵(자강도당책겸 인민위원장) 김환(부총리겸 화학공업부장) 윤기정(재정부장) 오극렬(전군총참모장) 김광진(인민무력부부부장)등이 있다.김정일 오진우(인민무력부장)에 이어 당서열 3위인 강성산과 연형묵 오극렬 최태복 전병호 김광진등 사방을 둘러봐도 대부분 김정일의 직계들이다.정무원총리를 역임했으며 남북고위급회담 단장으로 서울에 왔던 연형묵도 김정일의 사람으로 분류된다.김정일과 나이가 비슷하거나 젊은 층은 당·정에 폭넓게 포진해 김정일이 혁명 1세대들에 맞서 권력을 쟁취해가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앞으로 북한 내부에 헤게모니 쟁탈전이 벌어질 때 김정일의 돌격대로 나설 공산이 크다.상류층의 자제들로 구성돼 김정일과 마찬가지로 개방적인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김정일의 술친구들은 대부분 김정일 또래의 만경대혁명학원 동창생들이다. ◎혁명2세대 「친위조직」… 2인자부상 기여/총10여만명… 73년 김영주 축출에 앞장도 이른바 북한의 혁명 2세대는 바로 3대혁명소조를 가리키는 것이다.김정일이 김영주 김성애를 누르고 김일성 다음가는 2인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데는 3대혁명소조의 뒷받침이 눈부셨다.김정일이 책임자인 부장에 매제인 장성택을 임명한 것을 보아도 그가 얼마나 이 조직에 애착을 갖고 있는지 금새 알 수 있다.장성택은 김정일과 함께 김정숙에게서 태어난 김경희의 남편이다.당서열 1백위권 밖에 머루르고 있지만 실력자로 알려져 있다. 3대혁명소조는 지난72년 북한의 사회주의헌법에 규정된 「3대혁명」에 따라 73년 2월 발족됐다.김정일이 김일성의 후계자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72년 12월 노동당 중진들의 비밀회의가 있은지 두달남짓만이다.「3대혁명」이란 사상혁명 기술혁명 문화혁명을 이르는 것으로 3대혁명소조 역시 이들 3분야로 나누어져 있다.소조원은 당원과 국가기관종사원 대학생 대학교원 기술자 과학자 가운데 미혼남녀로 구성돼 있다.지난 83년 9월 개최된 3대혁명소조원 대회에서 현인원 4만6천명,소조를 거쳐간 인원 11만명으로 발표된 바 있으나 그 뒤에는 정확한 숫자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3대혁명소조는 당정책의 관철이라는 표면적인 명분 아래 간부들의 보수주의 경험주의 요령주의 기관본위주의 관료주의를 개조하기 위한 사상투쟁을 활동의 목적으로 삼고 있다.중국으로 치자면 문화혁명을 주도한 홍위병인 셈이다.김정일의 직접 지휘 아래 각급 생산단위는 물론 행정기관 문화기관 학교등에 파견돼 기존의 당조직과 더불어 활동해왔다.하지만 사상투쟁의 실질적인 목적은 김정일의 반대세력 견제와 그의 후계체제 구축이다.3대혁명소조는 사실상 노동당 조직과는 따로 움직이는 김정일의 사조직인 것이다. 김정일은 3대혁명소조를 김영주를 제거할때 제일 먼저 이용했다.73년 당시 당조직부장이었던 김영주를 그릇된 사상의 찌꺼기를 가진 사람으로 몰아 마침내 한직으로 축출하는데 성공했다.김정일은 여맹위원장이었던 계모 김성애를 견제하는 데도 3대혁명소조를 동원했다. 하지만 유사시 김정일의 명령에 따라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칠 준비가 돼있는 김정일의 수족으로 알려져 있다.
  • 떠오르는 「김정일체제」의 기수들

    ◎당/장성택·황장엽/정/김용순·김달현/군/오극렬·이봉원/“이 인물을 주목하라”/장성택/김의 매부… 신임 전폭적/김용순/대외관계 전담 예상/강성산·연형묵·김기남·김국태등도 「활약」 클듯/황장엽/주체사상 최고 이론가/오극렬/차기 무력부장 유력 김정일시대가 사실상 개막됨에 따라 지난 20여년간 그의 후계수업 과정에서 심어둔 측근들이 급부상할 계기를 맞게 됐다. 김정일은 지난 74년 노동당의 핵심요직인 조직비서에 취임한 이래 당·정·군에 걸쳐 그의 인맥 형성에 주력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김의 권력승계가 기정사실화 됨에 따라 상당부분 감춰져 있던 그의 심복들이 속속 전진배치될 전망이다. 김정일의 친위세력이나 인맥은 그가 지난 72년 이래 줄곧 김일성의 엄호아래 단계적인 권력승계 절차를 밟아 오는동안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왔다.이들의 성향상의 편차도 김일성 주체사상을 맹종하는 극단 수구세력들로부터 조심스럽지만 개방을 주장하는 테크노크라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포를 보이고 있다. 이들중 김정일체제의 향후 노선을 결정할 기수들은 역시 당정에 깔려 있는 이른바 「혁명 2세대」,특히 경제·행정 전문가들이다. 당우위사회인 북한의 특수성과 관련해 가장 주목을 끌 인물은 장성택이다.김정일의 친동생인 김경희(경공업부장)의 남편인 그는 현재 당서열은 1백위권 밖이다.하지만 김정일의 신임도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점에서 핵심요직인 당조직비서를 맡게될 것으로 관측되며 이를 계기로 급부상이 예상된다. 김일성의 조카사위이자 김일성대학총장을 지낸 황장엽국제담당비서도 빼놓을 수 없는 김정일의 당내 브레인이다.김일성 주체사상의 최고이론가인 그는 이번에는 김정일 우상화작업을 위해 그의 지모를 총동원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구호제조기」로 알려진 김기남과 「혁명1세대」인 김책 전부수상의 아들인 김국태 등도 선전선동 및 조직 문제를 전담하는 당내 김정일 심복들로 알려져 있다. 핵문제와 대남관계를 포함한 대외 관계를 전담할 북한의 외교 3인방인 김영남외교부장·김용순대남비서,강석주외교부부장 등은 모두 김정일의 신임이 두터운것으로 전해진다.이들중 김이 가장 신임하는 인물은 최고인민회의 통일정책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김용순이다.김정일의 「술친구」로 알려진 그는 김일성사망후 정상회담 무기연기를 내용으로 하는 편지를 우리측에 보내와 김정일과 상당한 「교감」을 갖고 있음을 입증했다. 정무원 쪽에 포진한 김정일 측근에는 상대적으로 유연한 성향을 갖고 있는 인사들이 많다. 강성산정무원총리는 이들 경제·행정 관료의 대부격이다.김일성의 이종사촌 동생으로 모스크바대를 졸업한 경제통인 그는 합영법 제정과 나진·선봉특구 개발에 앞장선 개방파로서 김정일체제에서도 연형묵 전총리와 함께 중용이 예상되는 인물이다. 지난해 김정일을 대신해 경제실패의 책임을 지고 순천비날론 연합기업소 책임자로 좌천된 것으로 알려진 김달현전부총리의 화려한 재기도 점쳐지고 있다.그는 지난 11일 밤 김정일의 김일성 참배 때 함께 모습을 드러내 복귀가 초읽기에 들어간 느낌이다. 김달현은 최영림부총리겸 금속공업부장 및 박남기평양시 행정경제위원장 및 홍석형국가계회위원장 등 김의 다른 경제참모들에 비해 대남 경협에 보다 적극적이다.그와 비슷한 성향의 김정일의 고종사촌인 김정우대외경제위부부장의 중용여부도 관심거리다. 이들에 비해 군부내 김정일의 친위세력들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인사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특히 오진우인민무력부장을 필두로 최광총참모장,이을설호위총국장,김광진인민무력부부부장 등 이른바 「빨치산 1세대」가 여전히 건재하고 있으며 이들이 김정일에게 반기를 들 조짐은 아직 없다. 그러나 김정일시대에 빛을 볼 군부내 실세로는 김정일이 오랫동안 공을 들여 지원해 온 「혁명2세대」와 해외유학파들이다.즉 김정일과 같은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의 오극렬 당민방위부장,이봉원 인민무력부총정치국 부국장 등과 구소련 군사아카데미 등을 수료한 김두남대장,김봉율 인민무력부부부장 등이 그들이다. 이중 오극렬은 김강환·김두남 당군사위원 등과 함께 김정일의 군부내 친위 트로이카의 일원이다.70년대 중반 당시 이용무 군총정치국장 등 군부내 김정일 후계체제에 소극적인 인사들을 몰아내는 데 앞장선 인물로 오진우의 뒤를 이을 인민무력부장 제1후보라는 관측이다.
  • 개방파·「혁명소조」출신 친위그룹 주도/김정일의 적과 동지들

    ◎당 김용순·황장엽­적 「프라하 3인방」 포진/평일모자·빨치산출신 「잠재적」 반발세력 김정일이 일단 북한권력의 헤게모니를 장악할 것이 확실시됨에 따라 그의 친위세력들이 대거 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김일성이라는 절대권력자의 사망으로 인한 권력의 진공사태를 메우기 위한 필연적인 수순이다. 따라서 앞으로 김정일체제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 지는 미지수이긴 하나 당분간 북한정국은 친김정일 세력과 잠재적인 반대세력간의 물밑 암투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친김세력과 반김세력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북한이라는 특수체제의 성격상 쉽지 않다. 우선 김일성 생전에 김부자간 권력세습에 대한 공개적인 반발은 곧 파멸을 의미했기 때문에 김정일에 대한 불만이 있더라도 내연할 수 밖에 없었던 탓이다.그리고 김정일 친위세력은 대부분 김일성 추종세력과 겹치고 있다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김정일은 지난 72년 당중앙위 비밀 전원회의에서 공식 후계자로 낙점된 뒤 꾸준히 자신의 시대에 대비해온 것은 사실이다.당·정·군에 걸친 주요 포스트에 은밀히 자신의 세력을 심어온 것이다. 이같은 그의 측근세력은 크게 ▲3대혁명소조를 중심으로 한 소장 저변 친위세력 ▲당·정·군의 이른바 혁명2세대 간부 ▲혁명1세대 중 김정일과 잦은 사적인 교유를 갖는 인물군 ▲친족세력 등으로 대별된다.이들은 상당부분 중첩되는 것도 특징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노동당쪽에선 김용순·김기남·김국태·황장엽 등이 눈에 띈다.이중 대남담당 비서와 최고인민회의통일정책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는 김용순은 외교 및 대남관계 핵심브레인으로 등장할 전망이다.「주체사상」의 최대 이론가인 황장엽과 김정일의 각종 연설문 등을 대필해온 김기남 등은 김정일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우상화작업을 선도할 이론과 실무책임자로 부상할 공산이 크다. 김정일의 권력안정에 핵심적 열쇠를 쥐고 있는 군쪽에선 오극렬대장과 김강환·김두남 두 전현 당군사부장이 대표적 측근이다.이들 중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였던 오증흡의 아들인 오극렬이야말로 군부내 「혁명2세대」 중 김정일의 최측근 인사로 차기 인민무력부장이 유력시된다는 관측이다.그는 김정일의 비호하에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다 88년 오진우인민무력부장과의 마찰로 군총참모장직을 재임 10년만에 최광에게 넘겨준 바 있다. 행정 및 경제분야에선 프라하공대 출신의 3인방인 강성산·연형묵·박남기 등과 전현직 국가계획위원장인 김달현·홍석형 및 최영림 등이 측근인사로 거명된다.이들은 대부분 조심스럽지만 개방노선의 불가피성을 인식하고 있는 대표적 테크노크라트들이다. 이밖에 김정일을 위해 중국 문화혁명기의 홍위병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해온 3대혁명소조를 이끌고 있는 장성택도 빼놓을 수 없는 측근이다.그는 김정일의 친여동생인 김경희의 남편이라는 사실 하나 때문에 김으로부터 절대적 신임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고 있는 측근세력과는 달리 반김세력들은 수면하에 잠재해 있다.더욱이 어차피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북한권력의 속성상 측근세력중에서도 김정일세가 약화될 경우 언제라도 등을 돌릴 인사가 상당하다는 관측이다.이같은 관점에서 주목되는 잠재적 반김 세력들로는 군부와 당에 걸친 이른바 「혁명1세대」그룹 일부와 군부내 소장 및 중견 장교층,그리고 김성애·김평일 등 족벌세력들이다. 김정일의 권력장악에는 오진우를 정점으로 최광인민군총참모장과 이을설호위총국장·백학림사회안전부장·김철만 국방위원을 비롯해 「혁명1세대」의 막내격인 김광진차수 등 빨치산 원로급들의 협조가 절대적이다.그러나 이들중 상당수는 그동안 김일성이 카리스마에 눌려 침묵을 지켰으나 내심 김정일의 노선과 지도력에 회의를 품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때문에 이들 중 일부가 동구유학을 다녀온 중견장교들과 연계해 김정일체제가 대외적 고립과 경제난을 극복하지 못할 경우 반기를 들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표면적으로는 후원세력이나 언제든지 등을 돌릴 가능성도 있는 인물들로는 친삼촌인 김영주와 계모 김성애,이복동생 김평일 등 족벌세력들이다.특히 김정일과 후계경쟁에서 밀려나 18년의 은둔 끝에 지난해 일약 부주석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김영주는 일단 김의 후견인역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당정에 걸친 추종세력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요주의 인물이라는 관측이다. ◎매부 장성택 가장 신임… 요직 앉혀/작년 재기한 숙부 영주의 향배에 관심/김정일과 족벌내 역학관계 김일성은 생전에 자신의 아들 정일을 둘러싸고 빚어지고 있는 가족간 갈등에 대해 심히 우려했었다고 전해진다.그만큼 김정일과 다른 가족간 대립이 심각했고 이는 자신의 사후 정권존립 자체에 위험요소가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일성의 가장 큰 근심거리는 김정일과 자신의 후처 김성애,자신의 친동생 김영주,김성애와 사이에 난 아들 즉 김정일의 이복동생 평일과의 관계였다. 지난 72년 이후 20여년간 후계자로서의 정권 정지작업을 다져온 김정일에 있어서 가족관계는 철저히 적과 아의 개념이 분명했다.권력장악의 걸림돌이냐 추종세력이냐가 그 기본선으로 특히 김일성과 자신의 생모 김정숙(49년 사망)사이 관계인 「기본가지」와 계모 김성애(김일성과 56년 결혼)와의 관계인 「곁가지」를 철저히 구분했다. 따라서 김정일이 가장 신임하고 있는 것은 친 여동생으로 북한 여성계의 참모역할을 하는 당 경공업위원장인 경희와 그의 남편 장성택이다.그는 실세로 불리며 중앙당 27개 부서 가운데 3대혁명소조부·근로단체부·청년사업부 등 핵심 3개부서를 맡고 있다.이밖에 신임하는 사람으로는 자신의 브레인으로 사상적 부족함을 메워주는 가정교사 황장엽(전 김일성대총장으로 사상담당 당서기·김일성의 조카사위),양형섭(최고인민회의 의장·김의 4촌동생 김신숙의 남편),김정숙 민주조선 책임주필(김의 4촌동생)등이 있다. 김정일이 배척,김일성의 우환거리를 제공했던 이들과의 「가족화해」를 시사한 일련의 사건들이 이어져 세계의 이목을 끈 것은 지난해.70년대 초반 남북조절위 공동위원장,10년간의 당조직위원장을 지내며 막강한 실력을 행사하다 75년 김정일에 의해 사실상 숙청된 김영주가 재등장한 것.당내 막강한 지원세력까지 김정일에 의해 「여독청산」란 이름으로 거의 제거돼 은둔생활에 들어간 그는 지난해 7월17일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 준공식에김부자등과 모습을 나타내고 이어 며칠뒤 당정치국서열 7위로 부상했다. 또 지난 71년 여맹위원장이 돼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다 김정일에 의해 73년 여사칭호를 박탈당하고 친동생 김성갑마저 평양시 인민위원장 자리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었던 김성애도 마찬가지.80년 이후 줄곧 공식행사에 얼굴을 못내민채 평양근교 별장에서 두문불출해 오다 지난해 11월 노동신문에 쿠바여성대표단을 맞는 사진이 나오고 이어 여맹전원회의에서 「김정일지도자를 받들자」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지난달 김일성과 함께 카터 전미국대통령을 맞으며 내외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것은 세계의 뉴스거리로 받아들여질 정도였다. 한편 김평일은 김정일로부터 가장 박대를 받아온 인물.김일성을 닮은 건장한 체구와 카리스마적 얼굴,원만한 성격이 김정일로 하여금 그를 권력의 언저리에서 감시의 대상으로 올려 놓았던것. 불가리아 대사로,핀란드 대사로 겉돌며 북한주민들로부터 동정을 받았던 그가 최근 북한으로 돌아가 군요직을 맡았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도 그 하나다. 이같은 김정일의 관용이 김일성의 심기를 편하게 해주는 단순한 배려로 그치고 김일성이 사망한 지금 다시 이들을 숙청하거나 「안거」토록 할는지는 분명치않다. 일단은 복권된 이들 친족들이 「조카의,의붓아들의,형의,처남의 대권에 도전하지 않고 적극 밀어주겠다」고 약조한 끝에 나온 족벌정치강화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김정일족벌의 정확한 향배는 11일 이후 김정일이 정식 권력승계절차를 마치고 통치를 행사함에 따라 조만간 드러날 전망이다. ◎올들어 공식행사 6차례만 참석/「친필서한」은 부쩍 늘어… “충성경쟁 유도”/김정일 최근 어디서 뭘했나 김정일은 공식석상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아버지 김일성을 예우하는 차원이라는 분석도 있으나 몇가지의 콤플렉스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1백58∼1백62㎝로 추정되는 단신에다 그의 연설문이 육성으로 단 한 차례도 방송되지 않을 정도로 말을 더듬는 콤플렉스가 있어 대인 기피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김정일의 최근 행적 가운데 특별히 눈에 두드러지는것은 없다.평소보다 활동이 눈에 띄게 뜸했다거나 아니면 왕성했다거나 하는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김정일의 최근 행적에서 그의 권력승계 여부를 확인하는 단서를 찾기란 힘들다는 얘기이기도 하다.공식적인 자리에 자주 얼굴을 내미는 대신 뒤에서 조용히 기반을 다져 권력승계에 대비해온 것이다. 김정일이 올들어 공식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여섯차례에 불과하다. 새해 벽두에 근로자들과 신년모임을 가진데 이어 2월 28일에는 조총련 책임부의장인 허종만과 면담했다.뒤이어 3월 5일에는 북한군 협주단 공연을 관람했고,4월 6일에는 최고인민회의 9기 7차회의에 참석했다. 4월 25일에는 군창건절을 맞아 아버지 김일성과 함께 564군부대를 시찰했고,5월 6일에는 조총련 제1부의장 이진규와 「친선담화」를 나눴다.지난달 카터 전 미국대통령이 방북했을 때 김정일은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처럼 의례적인 공식활동을 하면서도 실질적인 통치자로서의 정책지도 활동이라 할 수 있는 「현지지도」 및 외빈접견 활동은 김일성이 사망할때까지 단 한차례도 갖지 않았다. 올들어 김정일의 보이지 않는 행적 중 눈에 띄는 것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친필서한」을 보내는 숫자가 예년에 비해 부쩍 늘었다는 점이다.친필서한이란 김정일이 주민들에 대한 「사랑」을 과시하고,이들을 고무·격려하기 위해 직접 쓰는 편지이다.지난 90년 11월 1일 「조선중앙통신사」 당원들에게 보낸 것이 효시이다. 올들어 지난 5월초까지 7차례의 친필서한을 보냈다.예년의 1년치와 맞먹는다. 전문가들은 친필서한이 잦아지고 있는 것을 김정일의 「인덕정치」를 부각시키고 그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정치적인 속셈으로 보고있다.사상적으로 취약한 새 세대들에게는 김정일에 대한 「대을 이은 충성」을 확고히 하고,핵문제로 국제적 압력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청년 군인들에게는 김정일 체제 수호를 위한 긴장감을 불어 넣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이후 김정일의 외형적인 행적에서 변화를 찾는다면 생산현장에 대한 「현지지도」가 줄어든 대신 군관련 행사 참여가 늘고 있는 점이다.군후방일꾼대회·전승기념탑 제막식·공병대회 등에 참석하고,전승기념 퍼레이드를 관람하는 등 군관련 행사에는 매우 활발하게 참여했다.지난해 4월 국방위원장으로 선임된 이후 당연한 결과로 지적되고 있으나,권력승계에 대비해 군부를 미리 장악하려는 의도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 혁명 2세대 「3인방」·「80그룹」이 직계/김정일의 군부인맥

    ◎오극렬·김강환·김두남… 대장급 실세/3인방/이봉원등 80년이후 급부상한 브레인/80그룹/혁명 1세대 제거 시도땐 큰혼란 올듯 김일성의 사망 이후 김정일이 원만하게 권력을 세습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몰리고 있다. 공산사회는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모택동의 말처럼 권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군부의 장악이 선결조건이다. 과연 김정일은 북한군부에 어느만큼 영향력을 지니고 있을까. 김정일은 현재 당국방위원회 위원장과 군최고사령관직을 함께 맡고 있다. 김일성이 생존 당시 부자권력세습을 위해 미리부터 아들에게 군요직을 이양,군부를 장악할 수 있도록 모든 도움을 아끼지 않은데 힘입은 것이다. 김정일은 이에 따라 현재 북한군부에서 많은 지지자를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정일이 군부에 영향력을 본격적으로 행사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4월25일 인민군창건 60주년 기념행사때부터.이 행사에서 북한군부는 김정일에 대해 『위대한 군사전략가이며 만물의 영장』이라고 칭송하고 김정일에게 북한군 최고 계급인 원수를 부여했다. 김정일은 이어 지난 4월21일 인민군총참모장 최광,사회안전부장 백학림,남북고위급회담 북측대표 김광진과 국방위 위원인 이을설,김일성 군사종합대 총장 최인덕,국방위 위원 이두익·김봉율등 8명의 대장을 차수로 승진시켰다. 이어 4월23일 「군최고사령관 명령 제 0024호」를 발령,인민무력부장 오진우원수와 이들 차수에게 직접 계급장을 달아주는등 모두 6백64명의 군장성에게 계급장을 수여했다. 김정일이 북한군 최고지도자 위치를 굳힘에 따라 북한군 내부에는 그의 측근들이 급격히 부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일 인맥의 선두주자는 오극렬 당 민방위부장(대장·63)·김강환 당 군수부장(대장·61)·김두남 전당 군사부장(대장·63)등 이른바 3인방이다. 이들은 김정일처럼 만경대 혁명학원 출신으로 소련에서 유학한 혁명 2세대들이다. 3인방에 이어 최근 새로 떠오르고 있는 인물들은 군총정치국 조직담당 부총국장 이봉원(65)·해군사령관 김익철(65)·공군사령관 조명록(68)·포병사령관 최상욱·당군사위원 오용방등 「80그룹」이다. 「80」그룹은 80년 김정일체제가 본격 출범하면서 군부 전면에 등장했다. 이중 가장 관심을 끄는 인물은 이봉원으로 86년 12월 상장(중장)으로 진급해 당차원에서 군을 통솔하고 있으며 최근 군정책이 모두 그의 작품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김정일이 군부를 완전장악하기에는 아직 거리가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오진우·최광·이을설·백학림등 빨치산출신의 군원로들이 군부의 최고위층을 형성하고 있어 김정일이 섣불리 혁명1세대를 제거하고 자신에게 충성을 보내는 혁명2·3세대로 물갈이를 시도할 경우 군부내에 큰 혼란이 초래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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