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K 진실게임’ 2라운드] 여전히 남은 의문점
김경준씨 측이 주장해온 이면계약서의 내용이 전면 공개됐지만 여전히 많은 의문점이 남는다.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한글계약서에 허술한 부분이 많은 데다 진위 여부를 가릴 서명 등에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100% 위조”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50억원 거래 계약서에 허점투성이
50억원에 이르는 거액이 오가는 내용이지만 한글계약서에는 허술한 점이 많다. 김씨의 주소지 부분에서 ‘서울특별시’가 ‘서울특별비’로 잘못 쓰였는가 하면,LKe뱅크가 관여된 거래인데도 이 후보는 ‘LKe뱅크 대표이사’로 표시되지 않았다.
‘본계약 체결과 동시에 매매대금을 지급한다.’는 조항 뒤에는 ‘단 양측의 합의에 따라 가능한 시점에 매매대금을 일괄 지급할 수 있다.’고 명시,50억원이라는 거금의 지급일자를 한정하지도 않았다.
고승덕 변호사는 “통상 계약서와 달리 매도인보다 매수인의 서명이 먼저 나와 있는 점, 이름 바로 위에나 겹쳐 찍기 마련인 인감 도장을 멀찌감치 떨어뜨려 오른쪽에 한 줄로 찍은 점 등은 미리 도장을 찍어놓고 그 위에 내용을 프린트한 위조계약서라는 사실을 뒷받침한다.”면서 “2000년 2월 당시 BBK의 주식 대부분인 60만주를 제3자인 e캐피탈이 소유하고 있었는데, 본인 소유도 아닌 주식을 이 후보가 어떻게 팔 수 있었겠느냐.”고 지적했다.
●MB 영문 서명, 다른 문서와 차이
영문 계약서에 있는 이 후보의 영문 서명은 다른 문서에서 이 후보가 한 서명과 다르다는 문제점도 있다.
3장의 영문계약서에서 이 후보는 ‘Myung Bak Lee’를 필기체로 서명했는데, 대문자와 소문자 사이에 끊어짐이 없고 ‘M’자도 둥글게 썼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김씨 측에서 입수했다고 주장하는 2001년 2월23일 주식매입계약서에서의 서명은 ‘M’이 인쇄체처럼 뾰족하고,‘L’자의 모양도 차이가 난다.
하나은행과의 풋옵션(조건부) 계약서에는 한글로 ‘이명박’이라고 서명했고, 지난해 발급된 여권에는 필기체로 성을 먼저 써 ‘Lee M Bak’이라고 서명한 점도 다르다.
●‘위조 남매’가 공개한 계약서 신뢰성 논란
에리카 김과 김씨 남매가 이미 문서 위조 혐의를 인정받은 전력이 있다는 점은 계약서의 신뢰성에 의심이 들게 한다.
김씨는 여권과 법인설립인가서 등의 문서를 수차례에 걸쳐 위조했고, 에리카 김은 지난 8월 본인에 대한 형사소송에서 대출서류 위조 혐의 등을 인정하고 미 연방검찰에 의해 기소됐다.
실제로 두번째 영문 주식매각 계약서에는 매도인으로 ‘크리스토퍼 김’이 등장한다. 설립등기상으로는 EBK증권 총자본금 100억원 중 8억원을 보유한 이사이지만, 사실 크리스토퍼 김은 김씨가 만들어낸 유령인물이다.
김씨는 약 5개월 뒤 크리스토퍼 김으로 개명한다. 정식 개명 전에 본인의 차명을 빌려 유령 이사로 활동한 셈이다.
●진위 여부 영원히 묻힐 수도
이면계약서 공개와 함께 진위 여부가 김씨 수사의 최대 변수로 떠올랐지만, 진실은 영원히 묻혀버릴 가능성도 있다.
증권거래 전문인 법무법인 세종의 송종호 변호사는 “서명과 인감 혼용, 계약서의 형식적인 허점 등은 실제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무조건 위조의 증거로 몰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아무리 거래금액이 많더라도 계약자들의 관계 등에 따라 양도·양수인·주식수·매각대금 항목만 갖춘 간단한 양식의 계약서로 만들 수도 있고, 상대방을 믿으면 도장 이외에 굳이 서명으로 날인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 것이다.
그는 “막도장 역시 양측이 사용에 동의했다면 계약서가 법적 효력을 지닐 수 있다.”면서 “만약 이 후보가 한글계약서의 도장이 본인 도장이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김씨는 이 후보가 준 막도장을 찍은 것이라는 주장을 편다면 이 계약서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