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 BBK 보도에서 언론이 잃은 것/금희조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지난 주 검찰이 BBK 관련 이명박 후보의 전면 무혐의 결정을 내렸으나 아직 대통합민주신당에서는 검찰수사에 이의를 제기하며 BBK특검법을 제안하고, 한나라당은 여권이 김경준씨의 송환을 기획했다는 의혹을 내세워 공세에 대응하고 있다. 검찰의 발표 훨씬 이전부터 언론은 BBK 의혹에 엄청난 지면을 할애해 보도경쟁을 벌였다. 이제 대선을 일주일 남겨놓고 있다. 유권자들이 언제까지 BBK에 매달리는 정치권과 함께 이에 덩달아 휩쓸리는 언론을 지켜봐야 하는 것인가. 물론 BBK 사건은 유력 대통령 후보의 범죄 관련 여부를 규명하여 유권자의 판단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그 뉴스가치가 매우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선 캠페인이 진행되는 동안 BBK 의혹 관련 언론보도는 초기부터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우선 대부분의 언론보도가 사실 여부를 뒷받침하는 합리적 자료나 근거, 정보원의 신뢰성, 정보획득 절차의 합법성, 피해자에게 확인해 보려는 최소한의 노력 등이 결여된 가운데 폭로와 비방을 무분별하게 다루었다는 점이다.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사안인 만큼 언론은 혐의사실과 수사진행과정에 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알려 독자의 알 권리를 신속하게 충족해 줘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러나 독자의 알 권리를 위한 언론의 자유가 아무런 제약 없는 마구잡이 보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동안 보수언론, 진보언론 구분 할 것 없이 BBK 사건 보도에 있어 정치 공세적 주장을 무책임하게 그대로 실어나르는 보도태도를 보여줬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사안의 중요성이 지대한 만큼 언론은 책임 있는 자체검증 과정을 거쳐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여론재판이 아닌 공정성과 객관성을 전제로 보도에 신중을 기했어야 한다.
독자들은 김경준씨 가족의 일방적 진술이나 정치인들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혹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내세우는 잡다한 주장보다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했다. 그러나 언론의 BBK 보도는 정치권의 공방에 휩쓸려 어느 한쪽을 편드는 편파성까지 띠고 흥미위주의 보도를 하는 데 그쳤다는 인상을 준다. 유감스럽게도 이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는 이명박 후보, 정동영 후보, 이회창 후보 그 누구도 아닌 유권자들이다. 아직도 유권자들은 진실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워하고 있고, 언론은 올바른 의제설정 기능을 다하지 못한 채 정치공방을 중계하고 범죄혐의자의 목소리를 공공연히 대변하고 있는 형국이다.
서울신문은 BBK 사건과 관련해서 다른 언론매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도의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정책선거 원년으로’ 시리즈를 통해 후보자의 정책 분석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시도를 계속해 왔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서울신문이 공정한 의견 제시와 사실의 전달을 위해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혐의자 혹은 후보자들의 공세를 그대로 전달하는 정치 공학적 보도가 눈에 많이 띈다.
이번 BBK 사건과 지루하게 이어져 오는 네거티브 전략은 정치권과 공권력에 대한 불신의 벽을 다시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정치권에서는 자신들이 눈앞의 이익을 두고 벌이는 진흙탕 싸움을 바라보는 유권자들의 짜증스러운 시선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언론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치권과 검찰에 대해서뿐 아니라 언론에 대해서도 국민들이 얼마나 실망하고 신뢰를 철회했는지 깨달아야 한다. 미디어에 나타나는 정치 네거티브는 유권자의 의견형성을 왜곡할 뿐 아니라 정치 냉소주의를 조장하여 정치참여와 투표율을 저하시킨다. 언론은 지금이라도 정치권의 시각이 아닌 유권자의 시각에서 이번 대선을 바라보고 유권자들의 합리적 판단을 도울 수 있는 보도에 충실하기 바란다.
금희조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