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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8) 천문은 ‘정감록’의 기둥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8) 천문은 ‘정감록’의 기둥

    예언서 ‘정감록’을 한 채의 기와집에 비유하면, 정면 기둥은 풍수지리와 미륵신앙이 아닐까 한다. 얼핏 눈에 잘 띄진 않으나 집의 뒷면에도 기둥은 있는 법이다. 천문과 역법이 그에 해당하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풍수와 미륵에 대해선 그동안 제법 자주 이야기를 해온 셈이다. 하지만 천문과 역법에 관해선 따로 말할 기회가 없었다. 한꺼번에 많은 이야기를 다 털어놓자니 어려운 점이 적지 않다. 그래서 이번에는 우선 천문사상이 ‘정감록’에 남긴 흔적을 더듬어 보았으면 한다.‘정감록’에 보면 이런 대목이 있다.“혜성이 진성(軫星) 머리에서 나타나 은하수로 들어간 뒤 다시 자미(紫微)를 범하고 두미(斗尾)로 옮았다가, 두성(斗星)을 거쳐 남두(南斗)에서 멈출 것이다. 그러면 대중화(大中華)와 소중화(小中華)가 일시에 멸망하리라.”(감결) 이것은 정감의 예언이다. 그는 여러 별자리에 괴변이 일어나면 중국(대중화)과 한국(소중화)이 동시에 망한다고 했다. 요모조모 ‘정감록’을 잘 뒤져보면 비슷한 내용이 자꾸 눈에 띈다.“진성(軫星) 머리에서 혜성이 나와 몇 달 동안 없어지지 않네. 그 뒤 별들이 남극(南極)에서 싸우고 흰 무지개가 태양을 꿰뚫었네. 하늘 길이 한번 트이니 하늘 북이 두 번 울리네.”(삼도봉시) 조선건국의 주역 정도전이 지었다는 예언시의 일절이다. 실제로는 위작이 분명한데 이 시에 등장하는 천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좀더 새겨봐야겠다. 비록 그렇다 해도,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드는 것만은 어쩔 수가 없다. 하나만 더 예를 들어보자.“자미(紫微)에 저녁 무지개가 떴네. 다시 들러서 동쪽으로 나뉘니, 나라에 변괴가 있고, 상사가 참혹하네.”(경주이선생가장결) 역시 천문을 살펴 자미성에 이상한 징후가 일어날 경우 나라에 변괴가 있다고 예언하였다.‘정감록’에서 이와 엇비슷한 예언을 찾아내 일일이 언급한다면 끝이 없을 것이다. ●나라의 운명을 관장하는 별과 혜성 고대로부터 동아시아 사람들은 28수(宿)를 중시했다. 이것은 황도(皇道)에 가까운 별자리들이었다. 황도란 지구에서 태양의 운행괘도를 일년간 연속적으로 관찰할 때 하늘에 그려지는 하나의 원이다.28수는 황도의 동서남북에 각기 7개씩 배치돼 있다. 그 가운데서도 한국 사람들이 비교적 많은 관심을 표했던 별자리는 기성(箕星·궁수좌), 벽성(壁星·페가수스좌), 익성(翼星·바다뱀좌) 그리고 진성(軫星·까마귀좌)의 4개였다. 특히 진성에 대한 관심은 아주 유별났다. 이 별자리를 이른바 “청구칠성”이라 하여 청구 또는 한반도의 운명을 주관하는 것으로 보았다.‘정감록’에서도 진성의 머리에서 혜성이 나오면 나라가 망한다는 식으로 예언한 것은 그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그 뿌리를 캐 보면 진성은 신라의 국운을 담당하는 별자리였다. 헌덕왕 7년(815) ‘삼국사기’의 기록에서 단초를 발견한다. 그 해 서쪽 변방에 큰 흉년이 들어 굶어죽는 사람이 많았다 한다. 그러자 도적 떼가 연달아 일어나 조정에서는 군대를 파견해 토벌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런 변고를 예언케 하는 천문 현상이 있었고 문제의 별이 등장한다.“큰 별이 익성과 진성 사이에서 나타나 서쪽을 향해 뻗어 갔다. 그 빛의 길이가 여섯 자쯤 되고 너비가 두 치나 되었다.”고 하는 기록이 그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큰 별은 혜성이다. 만일 아니라면 별의 길이와 너비가 그처럼 컸을 턱이 없다. 혜성이 서쪽으로 움직여 가자 천문을 담당하는 신라의 관리들은 반란의 진원지가 서쪽임을 알게 되었다. 하필 혜성이 익성과 진성 사이에서 시작된 것은 두 별자리가 28수 가운데 서로 이웃해 있기 때문이다. 익성과 진성은 이른바 남방주작(南方朱雀)에 해당한다. 황도의 남쪽에 있어서 그런 명칭이 붙었다. 방금 말한 두 개의 별자리 말고도 정(井), 귀(鬼), 유(柳), 성(星), 장(張)의 다섯 별자리가 더 있다. 통일신라 이후 한반도의 운명은 진성에 달린 것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삼국시대엔 사정이 달랐다. 고구려의 운명은 서쪽 하늘의 별들이 맡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중국 측의 역사기록에 나와 있다. 고구려 보장왕 27년(668) 4월, 필(畢)과 묘(昴) 사이에서 혜성이 관측되었다. 그러자 허경종(許敬宗)이 보고하기를,“혜성이 거기 나타난 것은 고구려가 장차 멸망할 징조입니다.”(‘삼국사기’, 권 22)라고 하여 당 태종을 기쁘게 하였다. 허경종은 천문에 능한 당나라 관리였다. 그 역시 ‘정감록’이나 ‘삼국사기’와 똑같은 방식을 써서 고구려의 비참한 종말을 예언했다. 필성과 묘성은 모두 황도 서쪽의 별자리들이다. 묘성(황소자리)은 누(婁) 및 위(胃)와 더불어 호랑이 새끼 3마리로 여겨졌고, 필성(오리온자리)은 호랑이의 입으로 이해되었다.‘정감록’을 전파한 조선후기의 술사들은 되도록이면 고구려의 전통을 따르고자 했다. 그런 그들도 고구려의 별인 백호를 저버리고 주작(진성)을 국운의 상징으로 간주했다. 통일신라 이후 천년 동안 내리 지속돼 온 전통의 무게를 감당하기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자미, 남북두성, 그리고 남극성에 숨은 뜻 변란을 알리는 혜성은 ‘정감록’에 객성(客星) 또는 요성(妖星)으로 나온다. 혜성은 때로 자미를 침범하거나 북두칠성, 남두육성도 쳐들어간다. 심지어 남극성을 유린하기까지도 한다. 이들 별자리는 우리에게 과연 무엇인가. 자미는 이른바 북쪽 하늘을 셋으로 쪼갰을 때 그 가운데 하나다.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에서 태미(太微), 천시(賤視) 및 자미를 삼원이라고 했다. 달리 말해, 자미는 북두칠성의 북쪽에 위치한 별로 천자 또는 임금의 운명을 관장하는 별이다. ‘삼국사기’를 보면 일찌감치 백제 기루왕 9년(85) 4월에 이미 객성이 자미를 침범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왕위를 찬탈하려는 시도가 있으리라는 예언이었다.‘정감록’은 18세기에야 등장했다고 할 때, 최소한 그보다 1600년이나 앞서 반역에 관한 천문예언이 존재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또 하나. 밤하늘을 수놓은 숱한 별자리 가운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다 아는 것이 북두칠성(北斗七星)이다. 그 반대편인 남쪽 하늘엔 남두육성(南斗六星·궁수좌)이 있다. 이 별들은 상징하는 바가 다르다.7성은 죽음을 관장하는 별로 먼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이 섬겨왔다. 그에 비해 6성은 삶의 세계를 맡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오늘날엔 잘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6성은 서양식 명칭으로는 궁수좌인데,28수의 하나인 기성과 중복되기도 한다. 그 옛날 고구려 사람들은 별자리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다. 고구려 고분벽화들을 보더라도 틀림없이 그랬다. 지금까지 모두 22개나 되는 고분에서 다양한 별자리 그림들이 발견되었다. 그 중에서도 북두칠성은 19개의 고분에 등장하고 있으며, 남두육성 역시 최소한 10군데서 확인되었다.6성이 발견된 고분벽화에는 7성이 어김없이 짝을 이뤄 나타난다. 고구려인들은 두 별자리를 함께 염두에 두었던 것이다. 요컨대, 생과 사를 주관하는 별자리가 6성과 7성이었다. 그런데 혜성이 그 별들을 모두 침입한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전란, 굶주림, 또는 질병으로 수많은 인명이 살상될 조짐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정감록’은 한국 고대의 천문 전통에서 이런 예언 방식을 그대로 이어받았다.“기성(箕星)이 희어질 무렵 피가 흘러 절구공이가 떠내려가고, 천리가 한 책상이 되니 갑옷에 두 뿔이 나는구나.”(정북창비결)라는 구절이 있다. 남두육성으로 볼 수도 있는 기성은 태풍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이 별자리가 풍해를 막아준다며 받들기도 한다. 최근 미국 남부지방을 강타한 허리케인도 기성과 연관해 생각해 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피가 강물을 이뤄 민가의 절구공이가 떠내려갈 지경이라면 단순히 자연재해로 간주하기 어렵다. 전란의 피해로 봐야 옳을 것도 같다. 인용문의 뒷부분에 갑옷이 등장한 점으로 볼 때 더욱 그렇다. 흉조라는 점에선 남극성(노인성이라고도 함)을 당해낼 별이 없다. 통일신라의 마지막 왕이던 경순왕이 고려 태조 왕건에게 항복하기로 결심한 것도 남극성을 보았기 때문이라 한다. 경순왕 8년(934) 9월 그 별이 나타나자 왕은 고심했고, 이듬해 10월 마침내 항복문서를 바쳤다.(‘삼국사기’ 권 12) 때로 남극성은 태평성대의 상징으로 풀이된다. 남극성이 빛을 발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개는 그렇게 긍정적으로 해석되지 않는다. 더구나 ‘정감록’에서 보듯 혜성이 남극성을 침범하는 경우라면 기성 왕조가 완전히 붕괴되고 만다는 예언으로 풀이된다. 혜성뿐만 아니라 무지개가 별을 꿰뚫을 경우도 흉조로 해석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백홍(白虹·흰 무지개)이 해를 꿰뚫고 지나간다는 예언이다. 이것은 국왕이 바뀔 징조로 여겨졌다. 예컨대 고려 현종 5년(1013)에도 “흰 무지개가 관일(貫日)하였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나오는데,‘정감록’에도 유사한 표현이 여러 군데서 발견된다. ●오성의 변괴 이밖에도 ‘정감록’엔 오성 즉, 목성, 화성, 금성, 수성 및 토성의 변화에 대한 언급이 제법 많다. 물론 국가의 운명이 그와 직결된다는 전제 아래 끔찍한 예언이 도처에 숨겨져 있다. 우리 역사를 잘 살펴보면 오성은 사실 고대로부터 큰 관심거리였다. 고구려 차대왕 4년(149) 5월에 이런 일이 있었다. 오성이 동쪽하늘에 모였다. 목성(세성 歲星), 화성(형혹 熒惑), 금성(태백 太白), 수성(진성 辰星) 및 토성(진성 鎭星)이 한자리에 늘어선다는 것은 정말 희귀한 일이지만, 그것은 실상 흉조였다. 그러나 담당관리인 일자(日者)는 왕이 화낼까 걱정돼 거짓말로 둘러댔다.“이는 임금님의 덕이요, 나라의 복을 뜻합니다.” 왕은 그 말에 만족하였다.(‘삼국사기’ 권 15) 고구려는 일찍부터 천문이 발달한 나라였다. 고분벽화마다 별자리를 그려놓을 정도였으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미 국초부터 조정에 천문을 담당하는 특수 직책이 설치돼, 별을 보고 국운을 점치는 관리가 존재했다. 오성에 관한 예화에서 보듯 가끔은 담당관리가 국왕을 속이는 일도 있었다. 예언이라면 고려나 조선시대처럼 풍수가 아니라 천문이 근간을 이뤘다. 그런데 오성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 길조로 해석될 때도 있었다. 고려 인종 10년(1132) 11월 동짓날, 오성은 물론 해와 달까지, 그러니까 칠요(七曜)가 정북방향에 모여들었다. 인종은 이 같은 길조가 예언서에 이미 예고돼 있다며, 국정을 일신할 중요한 계기로 삼겠다는 뜻을 밝혔다.(‘고려사’ 권 16) 칠요가 한 곳에 모이는 것은 신라 때부터도 길한 징조로 받아들여졌다. 삼국통일의 명장 김유신은 칠요의 정기를 받아 태어났기 때문에, 등에 칠성을 뜻하는 점이 있었다 한다. 영웅이 될 기상을 가진 그에게는 어려서부터 기이한 일이 많이 일어났다.(‘삼국유사’) 본래 칠요란 개념은 서양 고대에 있었던 것이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별의 신들이 인간세상을 관장한다고 보았다. 성신(星辰) 신앙이라고 할 만하다. 별의 신들은 전쟁, 흉년, 지진, 가뭄과 홍수를 마음대로 하며, 모든 인간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믿어졌다. 특히 행성인 오성과 해와 달을 합한 칠요는 더욱 중요시 됐다. 칠요의 신들은 시공을 뛰어넘어 모든 인간사를 맡아본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칠요신앙은 실크로드를 따라 동양에도 전파된 것 같다. 김유신이 태어난 7세기에는 한국에서도 대중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한국 고대에 칠요신 특히 그 가운데서도 오성의 신들이 열렬한 신앙대상이 돼 있었다는 점은 다른 역사기록에서도 확인된다. 태봉의 발풍사란 사찰에는 석가여래상 앞쪽에 토성(塡星 또는 鎭星)의 신을 새긴 조각이 봉안돼 있었다 한다.(‘고려사’ 권 1) 궁예 왕은 토성의 신을 예언서 ‘고경참’의 저자로 믿었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오성과 칠요의 신은 한국 민중의 뇌리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잔영은 ‘정감록’에 여전히 남아 있다.“계축년에 세성(歲星·목성)이 바다에 잠기니 왕자가 섬으로 도망친다.”(오백론사)라고 했다. 목성은 천문학상 매우 중요한 별이다. 그 공전궤도를 12등분해 목성이 처한 위치에 따라 한 해의 이름을 다르게 불렀을 정도다. 이를 세성기년법(歲星紀年法)이라 하는데, 목성에 일어난 자그만 변화도 개인이나 국가의 운명을 뒤바꾸는 징조로 이해됐다. 화성의 변화도 중요한 조짐으로 받아들여졌다. 고려 때 달이 형혹성(熒惑星·화성)을 침범하자 일관(日官)은 “귀인이 죽을 것입니다.” 라고 풀이하였다. 최근 발견된 ‘송하비결’에도 화성에 관한 예언이 실려 있다.“형혹성이 기성을 범하리니 북쪽 문에서 천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누런 용이 여의주를 얻으리라.” 혹자는 화성이 목성을 침범했으므로 한반도엔 전쟁에 버금갈 만한 큰 변고가 일어난다고 풀이하기도 했다. 화성은 화란 또는 전쟁의 징후를 알려주는 별이고, 목성은 가득차거나 이지러지거나 또는 변화가 멈춘 현상을 보여주는 별이라서 그렇다 한다. 목성은 나라의 명운을 예고하기에 적합한 별이라는 것이다. 이런 목성을 화성이 쳐들어갔다는 것은 나라에 병란이 일어난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마련이다. 여기서 일일이 거론할 수는 없지만 ‘정감록’엔 금성과 수성에 관계되는 흉한 예언도 많은 편이다.‘삼국사기’를 비롯한 역사기록에서도 마찬가지다. 만일 차이가 있다면 역사에는 오성의 길조가 꽤 많이 언급됐다는 사실이다. ●복성이란 존재 ‘정감록’에도 천문에 관한 예언이 길조로 나타난 경우가 있다. 그 대표적인 예를 들면,“산의 동쪽과 삼남(三南)에 복성(福星)이 두루 비친다.”(서계이선생가장결)라고 한 대목이다. 복성은 녹성(祿星) 및 수성(壽星)과 더불어 삼성이라 일컬어진다. 보통은 북두칠성의 왕별인 무곡성을 복성으로 믿고 있다. 조선후기의 유명한 고소설인 ‘토끼전’에선 복덕성(福德星)으로 간주해 목성으로 본다. 복성에 관해 한 가지 재밌는 전설이 있다. 임진왜란 때 변도탄이라는 선비가 살았는데, 그는 천문에 밝았다. 군량미를 관리하는 관원으로 일하던 중 어느 날 우연히 천기를 보았더니 머지않아 전쟁이 일어날 조짐이 역력했다. 그는 국난에 대비해야 된다고 상소했으나, 인심을 흉하게 만든다며 도리어 관직만 빼앗겼다. 변 선비는 낙향을 결심했는데 어느 날 밤 복성(福星)이 남쪽으로 밝은 빛을 내뿜는 것을 보았다. 그는 평소 저장했던 양식을 소달구지에 싣고 복성의 빛을 따라 발길을 재촉했다. 그러기를 여러 날 동안 하다 전북 장수군 번암면의 한 골짜기에 도착했다. 복성의 인도를 따른 것이다. 과연 얼마 안 되어 왜적이 침입해 온 나라가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변 선비가 터를 잡은 곳은 아무 일도 없었다. 7년에 걸친 전쟁이 끝나자 조정에서는 미리 앞을 내다 본 변 선비의 뛰어난 지혜와 충성심에 감탄해 상을 내려주었다. 그 소식을 듣고 사람들이 모여들어 마침내 복성(福星)마을을 이루게 됐다 한다. 복성을 따라 피난처를 구했다는 전설이나 복성을 보고 길지를 찾을 수 있다 한 ‘정감록’ 예언은 ‘성경’에 나오는 동방박사들의 이야기를 연상하게 만든다. 그들 역시 별빛의 인도로 먼 길을 걸어 아기 예수에게 경배할 수 있었다 했기 때문이다. 이제 도시의 하늘에선 더 이상 별빛을 보기 어렵다. 별을 봤댔자 어느 별이 어느 별인지 구별도 못할 만큼 현대인들은 천문에서 멀어졌다. 별은 더 이상 우리의 현재도 미래도 아니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스포츠 라운지]亞육상선수권 ‘황금창’ 던진 박호현 선수·허성민 코치

    [스포츠 라운지]亞육상선수권 ‘황금창’ 던진 박호현 선수·허성민 코치

    불쑥 나타난 여성을 보자마자 고개가 절로 갸우뚱거렸다. 길이 2m30에 600g짜리 창을 무려 55m나 던졌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겨우(?) 166㎝에 57㎏의 체구란다. 바로 지난 4일 막을 내린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창던지기에서 한국에 금메달을 선사한 박호현(27·SH공사)이다. 박호현은 이 대회에서 한국선수로선 유일하게 ‘황금 창’을 던져 자칫 몰락할 뻔했던 한국 육상에 큰 위안을 준 주인공이다. 한국체대 대운동장에서 몸을 풀고 있던 박호현과 함께 금메달을 빚어낸 코치이자 남편인 국가대표팀 허성민(30) 코치를 만났다. ●빵과 우유가 먹고 싶어 뛰고, 던졌다. 1989년 어느날 충북 증평군 삼보초등학교 5학년 교실. 육상부 코치가 와락 문을 열고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댔다. 높이뛰기 선수인 친구를 찾으러 왔지만 친구는 벌써 도망가고 없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또래들보다 한뼘 가까이 키가 큰 어린 호현을 주시했다. 코치는 호현에게 다가와 “너, 뜀박질 한번 해볼래.”라고 물었다. 어릴 때부터 소꿉장난보단 뛰어노는 게 훨씬 좋았고 운동하면 준다는 빵과 우유가 아른거렸던 박호현은 선뜻 코치 손을 잡고 말았다. 단거리 선수가 됐다. 주 종목은 200m. 하지만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 시·도대항전에 나가면 순위는 뒤에서 재는 게 빠를 정도였다. 다만 재능이 다른 곳에 숨어 있었던 걸 몰랐다. 이듬해 체력장 공던지기에 나선 박호현은 친구들보다 수십m 멀리 공을 던져 코치의 입을 딱 벌어지게 만들었다. 그때부터 뜀박질 대신 줄기차게 공을 던졌고 증평여중 2학년이 돼선 공던지기 대회가 없는 탓에 대신 창을 잡았다. ●남편 뒷바라지로 얻어낸 금메달 누구보다 뛰어난 선수라고 자부했지만 그에겐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다. 한국체대 5년 선배이자 15년 가까이 한국 여자 창던지기의 간판으로 군림한 이영선(31·대구시청)이 버티고 있었던 것.98방콕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에선 이영선을 누르고도 국제경기 경험이 모자라 방콕행 티켓을 넘겨준 아픔도 있다. 이 때문에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다. 가장 좋아하는 선수가 누구냐는 물음에 주저없이 “자기관리가 엄격한 영선 언니”라고 손꼽지만 잠시 눈가에 그늘이 드리웠던 이유였다. 게다가 이후엔 장정연(28·익산시청)이 나타나 간판 자리를 이어받으면서 애간장은 더욱 타들어 갔다. 이때 박호현에게 든든한 ‘도우미’가 나타났다. 바로 대학 3년 선배였던 허 코치였다. 허 코치는 힘들어하는 박호현을 때론 따뜻하게 감싸안고, 때론 냉정하게 채찍질하며 항상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돼 줬다.4년 전 허 코치가 충남 서천군청 소속으로, 박호현이 충남도청 소속으로 함께 공주에서 훈련하던 어느날 둘은 박호현의 프러포즈로 커플이 됐고, 지난해 3월7일 백년 만의 폭설이 내리던 날, 백년가약을 맺었다. ●“내년 아시안게임 정상 오르면 아이 가질것” 이렇게 박호현은 남편이자 코치의 든든한 후원을 등에 업고 이번 대회에서 이영선을 꺾고 ‘만년 2인자’ 타이틀을 벗어던졌다. 하지만 박호현의 꿈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내년 12월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목표가 남았다. 그 뒤엔 미련없이 창을 내려놓은 뒤 2세를 가질 계획이다. 허 코치는 “호현이는 승부 근성과 오기로 똘똘 뭉쳐 뭐든지 끝장을 봐야 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작은 체구가 가진 단점만 보완하면 다시 한번 큰일을 해낼 것”이라고 자신했다. 남편이 훈련에 많은 도움을 주느냐고 묻자 “태릉선수촌에서 합숙하는 오빠(허 코치)를 볼 수 있는 기회는 함께 훈련하는 시간밖에 없는데 내게 눈길조차 안 준다.”며 입을 삐쭉거렸다. 그러자 허 코치는 “사람들 눈이 있으니 다른 선수를 10번 지도할 때 호현이는 한번에 집중해서 가르친다.”며 웃음으로 가름했다. 서로를 보는 눈길에 담긴 정이면 내년에 다시 한번 큰일을 해낼 것 같다는 느낌이다. ●박호현은 생년월일=1978년 3월21일 충북 증평 출생 출신학교=삼보초-증평여중-충북체고-한국체대 가족사항=박노열(53)·조기순(53)씨 1남1녀 중 첫째 주요경력=03년 전국체전 3위,04년 종별육상선수권대회 2위,04년 부산국제육상경기대회 4위,04년 전국체전 2위,05년 아시아육상경기선수권 1위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신나는 과학이야기] 밥짓는 전자레인지

    [신나는 과학이야기] 밥짓는 전자레인지

    부엌 한편에 전자레인지라는 가전제품이 자리잡은 지도 꽤 오래다. 비슷한 용도의 가스레인지와 달리 전자레인지의 경우 우유를 데우거나 인스턴트 식품을 익히는 것 이외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가스레인지로 라면을 끓이는 시간보다 더 빠르고 간편하게 전자레인지로 밥을 지을 수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전자레인지는 그동안 홀대받은 게 사실이다. 전자레인지는 마이크로웨이브(Microwave·극초단파)를 이용한다. 전자레인지의 영문 이름이 ‘마이크로웨이브 오븐’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이크로웨이브는 주파수가 300∼3000㎒로, 이는 전기장의 극성(+,-)이 1초에 3억∼30억번씩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중 전자레인지의 마이크로웨이브는 TV의 전자파 등과 비슷한 2450㎒에 해당한다. 때문에 전자레인지에 넣는 음식은 마이크로웨이브의 영향을 받을 수 있도록 극성 분자가 포함돼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음식은 수소와 산소로 이뤄진 물 분자, 즉 수분을 함유하고 있다. 물 분자 속 양극(+)의 수소 원자와 음극(­)의 산소 원자는 마이크로웨이브의 극성이 바뀔 때마다 초당 24억 5000만번씩 방향이 바뀐다. 이 때 물 분자들이 서로 충돌, 빠르게 움직인다. 이는 운동에너지가 크다는 것을 뜻하며, 운동에너지가 열에너지로 바뀌면서 음식을 데우고 익히는 것이다. 이렇듯 음식 속 수분은 전자레인지를 활용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다. 예컨대 전자레인지에 바짝 마른 오징어보다 물에 살짝 적신 오징어를 넣어보면 그 차이를 금방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얼음을 전자레인지에 넣으면 잘 녹지 않는다. 얼음은 마이크로웨이브를 흡수하더라도 물 분자들이 결정격자 구조에 갇혀 있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충분치 않기 때문에 운동에너지 및 열에너지가 적게 생긴다. 음식과 달리 전자레인지에 넣는 그릇은 극성을 띠면 안 된다. 마이크로웨이브를 흡수, 지나치게 뜨거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릇이 마이크로웨이브를 흡수하지 못해도 문제다. 반사된 마이크로웨이브가 마이크로웨이브 발생장치인 ‘마그네트론’을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자레인지를 작동하려면 마이크로웨이브를 흡수하는 물체가 안에 있어야 하며, 아무 것도 넣지 않은 채로 작동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마이크로웨이브를 반사하는 금속이나 플라스틱 그릇은 피해야 한다. 특히 철사처럼 뾰족한 부분이 있는 금속은 피뢰침 역할을 해서 스파크가 일어날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 스티로폼 용기와 비닐봉지 등은 음식의 열에 의해 변형될 수 있다는 사실도 염두에 둬야 한다. 이에 비해 유리, 세라믹, 종이 등은 전자레인지에 넣어도 비교적 안전하다. 다만 유리 가운데 납 성분이 들어있는 크리스털 제품은 사용해서는 안 된다. 납이 마이크로웨이브를 흡수해 뜨거워지면 금이 갈 수도 있다. 같은 맥락에서 광물질을 포함한 세라믹 그릇도 피해야 하다. 아울러 머그잔 등 사기로 된 그릇은 표면에 흠집이 있거나 금이 갈 경우 점토층 내부에 물이 스며들 수 있어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세연 서울 명덕고 과학교사
  • [열린세상] ‘땀 흘리는 비석’ 이야기/이해준 공주대 사학 교수

    경남 밀양 무안에는 땀 흘리는 비석이 있다. 이 비석은 임진왜란 중에 승려의 몸으로 국난을 구한 사명대사 유정의 충절을 기리는 유물인데, 그가 생전에 나라를 위하여 노심초사하였던 것처럼 사후에도 국가의 환란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려 예언과 경계를 한다고 한다. 몇해 전 모 방송사에서는 전문가를 동원, 문제의 이 비가 흘리는 땀이 과연 영험해서인가, 아니면 과학적으로 나타난 현상인가를 밝히려 하였다. 이 프로를 통해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사명대사의 ‘나라사랑 정신’이 자연과학의 논리 앞에서 허망하게 무너져 가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고, 좀 성격 급한 사람은 ‘역시 우리 조상님들이 참으로 아둔한 믿음을 가졌다.’고 생각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 보면 각처에 이같은 영험을 보여주는 비석이나 부처님들은 매우 많다. 남원 실상사의 철불상이 그러하고, 해남 우수영의 명량대첩비도 그런 유형이다. 그런가 하면 마을의 신앙대상인 당산나무는 재앙을 예고하기도 하고, 어느 마을의 우물은 특별한 우환의 조짐을 샘물의 색깔로써 예고하기도 한다. 대개 이는 초월적인 존재의 예시를 믿고 그에게 의지하고자 하는 과거형 문화 모습이다. 그래서 많은 현대인들에게 이러한 문화모습은 허황한 것이라거나, 혹은 참으로 재미있는 일 정도의 흥밋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틀린 말은 아니다. 비석이 어떻게 땀을 흘리겠는가? 부처님이 땀을 왜 흘리겠는가? 그러나 사실 그것은 땀이라는 자연현상으로 이해·설명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부처나 비석이 어떤 자연조건에서 농축된 수분을 머금게 된다든가, 그것을 수치나 기계로 증명하려는 순간에 이미 인간이 믿고 의지하던 그 영험한 존재는 부정되고 만다. 비석이 땀을 흘린다면 그것은 당연히 자연의 조화이다. 과학적으로 말한다면 석질이나 주변의 기후 변화에 따라서 땀의 양이 많거나 적기도 할 것이다. 또 이들 돌비석들은 세워진 이후 수도 없이 많은 날에 땀을 흘렸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나라가 평안하다거나 걱정이 없던 시절에는 ‘저 혼자 흘리고 마는’ 것이고, 사회가 불안했던 시절에만 민중들은 아침저녁, 혹은 밤낮으로 그 비석을 찾아 자신들과 초월적인 존재의 공감을 ‘땀=눈물’로써 확인해 냈던 셈이다. 민중들이 그렇게 느끼기 때문에 땀 흘리는 비석과 땀 흘리는 부처가 영험해지기도 하고, 민중의 염원을 대변하는 신비한 대상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땀이 나고 안 나고가 아니라, 민중들의 불안감이 비석의 땀을 확인하였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여론수렴의 장치이자, 일종의 위정자에 대한 시위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저 유명한 계룡산의 정감록에는 우리나라를 진인(眞人)이 나타나 구해준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과연 진인이 누구일까 궁금했는데 한국전쟁 때 유엔군을 한국에 파병하도록 주선한 미국 대통령 트루(眞)+맨(人)이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믿기 때문에 결과는 설명이 되는 것이고, 정감록의 위력은 당당해지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우리 조상들은 현실적 불안을 해소하는 다음과 같은 자기 암시와 지혜도 지니고 있었다.“이 비석이 땀을 흘리면 반드시 커다란 환란이 생기지만, 세번 연속해서 흘리면 나라에 커다란 길조가 나타나는데, 엊그제까지 두번 땀을 흘렸으므로 이제 한번만 더 흘리면 우리나라는 크게 번영할 것”이라고. 옛것과 전통문화들은 무지몽매한 조상들의 하잘것없는 유산이 결코 아니다. 참으로 경이롭기까지 한 지혜와 이러한 경험적, 정신적 바탕 위에서 형성되고 전승되어 왔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의 정치인들이 바로 이 땀 나는 비석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국민들이 비석의 땀을 확인하는 데 열중하지 않도록 말이다. 이해준 공주대 사학 교수
  • [사진으로 본 전통의 숨결] (4) 화문석과 완초공예

    [사진으로 본 전통의 숨결] (4) 화문석과 완초공예

    “전통적인 느낌의 발이 내려진 한옥 대청마루. 화문석 돗자리가 깔려 있고, 앞뜰에는 소박하고 아담한 꽃들이 피어 있다.” 여름철 전통가옥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대본의 한 구절이다. 여기서 화문석(花紋席)은 중요한 소재다. 우리 살갗에 잘 맞는 토종 깔개인 화문석이 자연친화적인 살림집인 한옥과 더없는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화문석은 꽃모양의 자리로, 고려가 몽골에 저항하기 위해 강화로 도읍을 옮겼을 때 개성 이주민이 부업으로 만들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역사의 유구함과 더불어 종류와 제조기법도 다양하다. 완초(莞草:일명 왕골)를 뽑아다가 껍질을 벗겨 말려서 짠 것이 함평의 왕골돗자리이고, 껍질째 통을 쪼개 말려서 짠 것이 강화 화문석이다. 정교하고 섬세한 수공예품인 화문석의 진가는 완초 하나하나가 드러내는 문양에서 발휘된다. 원앙을 비롯한 길조나 매화, 나비 등이 새겨지며 장생(長生)을 상징하는 학, 거북이, 소나무가 화려하다. 전통 짚풀공예의 아름다움을 대표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화문석이다. 화문석은 사용 목적에 따라 변신을 할 줄 안다. 마루나 방안에 깔아놓으면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이 되고, 일하는 공간에서는 유희의 장이 된다. 또 세속적인 공간에 자리를 까는 것만으로도 제사를 모시는 성역(聖域)으로 변모한다. 한국인에게 화문석은 단순한 돗자리가 아니라 마음의 여유다. 마파람이 기어드는 여름밤, 화문석이 깔린 대청마루에 누워서 은하수를 바라보던 ‘행복한 여름’의 추억은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유산이자, 계승해야 할 삶의 가치다. 사진 글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완초장 무형문화재 103호 이상재 씨 강화도 교동에서 나고 자란 이상재(63·완초장 무형문화재 103호)씨가 만들고 있는 것은 올이 촘촘하고 때깔이 고운 꽃삼합(무늬를 넣은 세개의 왕골 합)의 바닥이다. 방사형으로 뻗은 날줄에 씨줄을 원을 그리며 감아 나간다. 어릴 적 집에서 부업으로 꽃삼합이나 방석을 결어 내다 팔았기 때문에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처음엔 색색으로 수놓아진 탐스러운 화문석에 반했어요.” 왕골을 쪼개고 말리고 삼고 물들이는 과정을 배워 가면서 손이 성할 날이 없었다.“인간의 인내를 시험하는 일입니다.” 제품을 만드는 시간이 너무 길고 값이 비싸므로 돈벌이가 어렵다는 말이다. 그래도 어려운 살림에 불평없이 수제자가 되어준 아내 유선옥(52)씨가 고맙단다.“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내가 좋아서 잡아온 왕골입니다.” 사진 글 강화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동아시아축구대회] 女축구 “이젠 세계 정상”

    ‘세계 정상도 멀지 않다.’ 오랜 인고의 세월이었다. 축구팬들도, 축구협회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지만 한국 낭자들은 분연히 들고 일어났다. 한국여자축구가 2005동아시아연맹축구선수권대회 여자부 경기에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정상권의 실력에 바짝 다가섰다. 한국(세계 26위)은 6일 대구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일본(11위·2무1패 승점2)과의 경기에서 0-0으로 비겨 종합전적 2승1무(승점 7)로 이날 중국(8위·1무2패 승점1)을 1-0으로 꺾은 북한(7위·2승1패 승점6)을 제치고 우승컵과 함께 상금 5만달러를 챙겼다. 한국여자축구의 이번 쾌거는 ‘골든 제너레이션’의 등장과 명장 안종관 감독의 탁월한 지도력에서 비롯됐다. ‘골든 제너레이션’은 ‘여자 박주영’ 박은선(19·서울시청)과 남북전에서 그림같은 결승골을 성공시킨 박은정(19), 한송이(20), 차연희(20·이상 여주대) 등 2004아시아청소년축구대회(19세 이하)를 우승시킨 주역들을 일컫는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유소년축구를 경험하며 뛰어난 개인기를 보유해 세계 정상급인 중국·북한과의 경기에서 전혀 위축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박은선은 고질적인 허리부상에도 불구하고 선굵은 움직임으로 그라운드를 휘저으며 조금만 더 다듬으면 세계를 뒤흔들 만한 재목임을 보여줬다. 이용수 KBS해설위원은 “90년 등장한 여자축구 1세대는 대부분 다른 종목에서 전향한 선수들이었지만 이번에 주축을 이룬 젊은 세대는 유소년 축구를 경험한 것이 큰 힘이 됐다.”면서 “한국 스포츠 특유의 여성 파워를 감안하면 여자 축구가 세계 정상으로 먼저 갈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번 대회를 통해 명장으로 떠오른 안종관 감독의 지도력도 빼놓을 수 없다. 적재적소에 투입한 교체멤버가 귀신같이 골을 터트리는 ‘제갈량급’ 용병술을 과시한 안 감독의 가장 큰 성과는 성공적인 세대교체를 이뤄낸 것. 안 감독은 ‘골든 제너레이션’과 함께 대회 최고의 수비수로 뽑힌 유영실(30), 윙백 송주희(28), 한진숙(26), 부동의 공격수 이지은(26·이상 INI스틸) 등 경험 많은 노장들을 적절히 섞어 패기와 노련미를 함께 갖춘 팀을 엮어냈다. 세계 최강 중국이 ‘월드스타’ 쑨웬과 바이지에 등에게 의존하며 세대교체 시기를 놓쳐 이번 대회에서 경험없는 선수들만으로 1무2패에 그친 것과 비교되는 점. 안 감독은 “인위적인 세대교체보단 물 흐르는 듯한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대구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롯데백화점 본점 토털 라이프스타일 편집매장 ‘매긴 나잇 브리지 그린숍’

    롯데백화점 본점 토털 라이프스타일 편집매장 ‘매긴 나잇 브리지 그린숍’

    “백화점내 매장들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쇼핑하다 보니 많이 힘들고 귀찮으시죠. 이제부터는 하나의 매장 안에서 쇼핑을 끝내세요.” ●지난 17일 오픈… 중가 이하가 주류 지난 17일 문을 연 서울 롯데백화점 본점 2층 남쪽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토털 라이프스타일 멀티숍(편집매장)인 ‘매긴 나잇 브리지 그린숍’이 인기몰이에 나서고 있다. 남녀의류 및 여아의류·패션잡화·액세서리·플라워숍·생활용품 등 쇼핑에 필요한 품목들을 골고루 갖추고 있어, 매장 내에서 원스톱 쇼핑이 가능하고 가격도 비교적 저렴한 덕분이다. 우길조 롯데백화점 여성캐주얼 매입팀 담당 바이어는 “개점일 하루동안에만 무려 1억 3500만원의 매출을 기록한데 이어, 주말에도 하루 평균 1500만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등 큰 인기를 끌고 있다.”며 “가격이 싼 중가 이하의 브랜드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데다, 매장 내에서 원스톱 쇼핑이 가능한 새로운 형태의 매장이라는 점 등이 인기를 끄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업면적이 70여평으로 국내 최대 규모인 ‘매긴 나잇 브리지 그린숍’은 남성·여성·여아·캐주얼의류는 물론 패션잡화·액세서리·플라워숍 등 다양한 카테고리를 선보이고 있는 전문 매장이다. 기존 의류 중심의 멀티숍에서 한발 더 나아가 생활용품 등을 한자리에 모아 원스톱 쇼핑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꾸민 곳이다. ●‘플라스틱 아일랜드´등 17개 브랜드 선보여 이곳에서 만난 홍선정(27·여·서울시 종로구 혜화동)씨는 “토털 라이프스타일 멀티숍이어서 그런지 원스톱 쇼핑이 가능할 정도로 이 매장 안에서 의류·패션잡화 등의 여러가지 상품을 고를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며 “가격대도 백화점 매장답지 않게 비교적 저렴한 수준인 중가 이하의 브랜드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 부담을 별로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매장은 입기가 편한 이지캐주얼 브랜드인 ‘플라스틱 아일랜드’와 여성캐주얼 의류인 ‘매긴 나잇 브릿지’, 여자 어린이 의류인 ‘프린세스 매긴’, 수입 데님(진) 브랜드인 ‘프리미엄 데님’·’앤티크 데님’·‘야눅’, 생활용품 브랜드인 ‘헬시 라이프’·‘라디우스’·‘샵스 바버 앤 숍’, 액세서리 브랜드인 ‘셀바폰테’·플라워숍인 ‘첼시’ 등 17개의 중가 이하의 브랜드를 선보이고 있다. 이중 ‘플라스틱 아일랜드’와 ‘셀바폰테’,‘프린세스 매긴’,‘라디우스’,‘샵스 바버 앤 숍’,‘첼시’ 등의 코너가 관심을 끈다.‘플라스틱 아일랜드’는 내년에 정식 오픈을 앞두고 ‘맛봬기’로 선을 보이는 브랜드. 필요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변형이 가능한 플라스틱처럼 베이직한 아이템들로 멀티 코디가 가능한 것이 특징. 티셔츠류 5만 8000원, 니트와 바지는 7만 8000원대이다. 친구와 함께 니트를 고르던 전경진(20·여·서울시 강서구 방화동)씨는 “이들 제품의 디자인이 대체로 간결하면서도 깔끔해 세련된 느낌을 주는 데다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패션잡화·플라워 등의 제품도 갖추고 있어 쇼핑하는 재미가 쏠쏠하다.”며 “다만 멀티숍인 만큼 여러 브랜드를 편집해 짜깁기하다 보니 산만하고 상품의 구색이 좀 부족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매장 다소 산만한 느낌” 액세서리를 선보이는 ‘셀바폰테’는 국내에 첫선을 보이는 브랜드로 원석·뿔·자개 등 천연소재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특히 일부 상품은 한 두개의 아주 적은 양으로 들여오는 까닭에 한정상품 형태로 판매된다. 귀고리가 6만원대, 목걸이는 8만∼9만원대이다.‘프린세스 매긴’은 엄마와 함께 온 딸들을 위한 의류로 독특하고 세련된 멋을 추구하는 아이템. 티셔츠와 원피스가 주류를 이룬다. 원피스 17만 8000원, 티셔츠는 4만 8000원대이다. ‘라디우스’는 칫솔·치약·목욕용품 등 간단한 생활용품을 내놓은 브랜드이다. 타이머가 달려 이닦는 시간을 알려주는 칫솔 2만 5000원, 보디로션 4만 8000원, 목욕소금은 2만 8000원 등이 주요 제품.‘샵스 바버 앤 숍’은 샴푸(1만 8000원), 셰이빙 젤(1만 8000원) 등 목욕용품을 주로 출시했다. 꽃과 화분을 판매하는 플라워숍인 ‘첼시’는 영국풍 전문 플로리스트의 작은 소품들을 만날 수 있다. 가격은 1만∼5만원대이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잘 찾아보면 커피로 목축일 수 있는 1.5평‘T+’가 보여요” ‘매긴 나잇 브리지 그린숍’ 내에서 가장 사랑받고 있는 코너는 매장 한 귀퉁이에서 보일듯말듯 다소곳이 자리잡고 있는 ‘T+’이다. 간단한 음료를 판매하는 이 코너는 1.5평의 규모로, 쇼핑을 하다가 커피·차·주스 등으로 잠시 목을 축이며 지친 몸을 추수릴 수 있는 곳.‘소비자들의 사랑방’인 셈이다. 서숭교 롯데백화점 여성캐주얼 매입팀 바이어는 “‘T+’는 소비자들이 쇼핑하는 과정에서 몸이 피곤하거나 지칠 때 음료를 먹으며 쉴 수 있는 공간”이라며 “현재 백화점이나 할인점 매장에는 티나 커피 등의 간단한 음료를 파는 곳이 없었는데, 이곳에 처음으로 도입함으로써 소비자들로부터 ‘매우 신선한 발상’이라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 주요 메뉴는 티(3000∼3500원)와 요거트 케이크(한조각 3500원), 요거트 아이스크림(3500원), 생과일 주스(4000원), 커피(3000∼3500원) 등이다. 특히 티를 전문으로 테이크아웃이 가능한 음료 및 쿠키를 제공함으로써 머지않아 소비자들에게 쇼핑은 말할 것도 없고 ‘+α’도 제공하는 생활공간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동해서 ‘길조’ 하얀 대게 잡혀

    동해안에서 길조로 여겨지는 하얀 대게가 발견돼 눈길을 끌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 동해수산연구소는 지난달 독도 근해에서 잡혀 경북 영덕군 강구항에서 위판된 대게 중 몸 색깔이 흰 1마리가 발견됐다고 10일 밝혔다. 하얀 대게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대게는 몸통 13.5㎝, 몸통 폭 13㎝, 무게 958g인 수컷으로 12년산으로 추정됐다. 하얀 대게는 염색체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생긴 드문 사례로 일종의 ‘백화현상(알비노현상)’이라고 국립수산과학원은 분석했다. 영덕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4·30 재보선 표밭 민심] (1)진보·호남세 강한 성남 중원

    [4·30 재보선 표밭 민심] (1)진보·호남세 강한 성남 중원

    4·30 재·보선전이 13일간의 대장정(大長征)에 들어갔다. 이번 선거는 국회의원 6곳, 기초단체장 7곳, 광역의원 10곳, 기초의원 21곳 등 44개 선거구에서 치러진다. 이 가운데 최대 관심은 국회의원 재선거가 치러지는 6곳에 쏠려 있다. 서울신문은 선거구별로 각기 다른 테마를 선정, 여야 각당의 시각이 아닌,6개 지역 유권자의 눈높이로 민심을 점검하고 판세를 읽어보는 기획시리즈를 연재한다. ‘무심한 유권자, 흔들리는 호남 표심, 고민 많은 시민단체….’ 성남은 지난 1968년 서울에서 밀려난 철거민들을 위해 세운 도시다. 그중에서도 성남 중원은 7명의 후보가 출마,4·30 재보선의 최대 각축장이며 말 그대로 ‘성남 정치의 한 복판-중원(中原)’이다. 지하철 8호선 신흥역과 단대오거리역 사이 성남대로를 따라 줄지어 늘어선 각 후보들의 선거사무실은 이곳이 성남 ‘정치 1번지’ 임을 한 눈에 확인케 해준다. ●후보 7명 ‘최대 각축장’ 공식 선거운동 이틀째이자 월요일 출근 시간인 18일 아침 8시 단대오거리. 각 후보들과 자원봉사자들은 유세차량에 음악을 틀어놓고 율동과 구호를 반복했다. 하지만 출근길 바쁜 시민들은 후보들이 애써 밝은 얼굴로 건넨 명함을 무심한 손길로 받아들 뿐, 제대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전남 영광에서 올라와 성남에서 25년째 살고 있다는 최모(38·경기 성남시 은행동)씨는 “지역개발과 병원 설립 등 선거 때마다 말은 번드르르했지만 뭐 하나 지켜진 것이 없다.”면서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성남대로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권오근(36)씨는 “주변 사람들과 얘기해 보면 선거 사실조차 모르기 일쑤고, 알고 있어도 별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유권자 선거 무관심 팽배 선거에 대한 관심이 이처럼 낮은 만큼 어느 누구 하나 선뜻 우세를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조직표에 기댈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하지만 한나라당 신상진 후보, 민주노동당 정형주 후보가 모두 시민·사회 운동가 출신이다. 열린우리당 조성준 후보와 민주당 김강자 후보, 민주노동당 정 후보, 무소속 김태식 후보는 호남 출신. 두가지 측면에서 서로의 지지층이 겹친다는 점이 이들의 고심을 깊게 한다. 호남향우회와 충청향우회의 도움을 애절하게 바랄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호남향우회를 찾았다. 회장과 사무총장 등 간부들은 자리에 없었다. 휴대전화로 연락한 김기현 호남향우회장은 “거의 모든 후보들과 지역적 인연이 있어 도와달라는 아우성을 거절하기 힘들어 아예 사무실을 비워 놓았다.”면서 “빨리 선거가 끝났으면 하는 마음뿐”이라고 곤혹스러워했다. ●곤혹스러운 시민·사회단체 시민·사회운동 단체들도 그저 곤혹스러울 뿐이다. 그나마 진보성향의 민중운동단체들은 민주노동당 정형주 후보에 대한 지지가 확고하다. 고민이 복잡해지는 곳은 여성·청년·시민단체들이다. 회원들의 지지 성향이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나라당 신상진 후보가 20여년의 지역운동으로 다져온 개인적 네트워크가 만만치 않은 점도 고민을 더한다. 시민단체들이 공식적 입장을 밝히지 못함은 물론이다.‘성남시민모임’ 이영진 집행위원장은 “회원들의 성향이 엇갈리는 만큼 각자의 선택에 맡길 뿐”이라면서 “단체의 공식 입장을 밝히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산토끼(부동표)보다는 집토끼(조직·지역표)를 잘 챙기는 것만이 승리를 보장해줄 것입니다.” 한 후보측 관계자의 말이 이곳 선거 판세를 짐작케 할 뿐이다. 성남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안동환기자의 현장+]시신과 함께한 하루… 삶에 눈뜨다

    [안동환기자의 현장+]시신과 함께한 하루… 삶에 눈뜨다

    언제나 그렇지는 않겠지만, 장례식장은 소란스럽고 흥청거리게 마련이다. 이청준의 소설 ‘축제’나 박철수 감독의 영화 ‘학생부군신위’에서도 죽은 자는 뒷전이다. 적당한 슬픔과 절제된 흥겨움이 앙상블을 이루는 우리네 장례식장. 인생 버스를 종점까지 내달린 망자(亡者)는 오히려 엑스트라에 불과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망자는 몸을 정갈히 하고 의관을 갖추는 염습(殮襲)실에 이르러 비로소 주인공이 된다. 이곳에서 죽은 자를 주인공으로 마지막 리허설을 준비하는 사람이 ‘장례지도사’다. 기자는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에서 일일 인턴사원으로 장례지도사의 일상을 체험했다. 지난 29일 오전 9시, 장례식장에 출근하자마자 장아름(26)씨의 지시가 떨어진다. 그녀는 1999년 국내에서 처음 생긴 서울보건대학 장례지도과 1기 졸업생.4년의 경력을 쌓은 이 장례식장의 유일한 여성 장례지도사이다. 미혼인 그녀는 한달 평균 30∼40명, 그동안 멀고 먼 저승길을 가는 1500여명의 시신을 단장했다. “안치실 청소부터 하세요. 입관은 9시부터 1시간 간격이에요.” “저 염습실은 언제 들어가나요?” “오전과 오후에 한번씩 들어가면 충분하겠죠?”“헉∼두 번씩이나….” 염습실은 안치실 옆에 있다. 시신을 22구까지 보관할 수 있는 냉장고는 온도가 0∼1도로 자동 유지된다. 옆방에는 향나무며, 오동나무로 만들어진 관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장씨를 따라 들어간 염습실은 7평 남짓한 크기다. 앞에는 투명한 유리창으로 된 별도의 공간이 있다. 유족들이 고인과 작별인사를 하는 곳이다. 그녀와 냉장고에서 암으로 숨진 50대 남자의 시신을 조심스레 꺼낸 뒤 염습실로 옮겼다. 유족이 오기 전 준비를 마쳐야 한다. 관을 가져다놓고 수의는 버선, 아랫도리, 윗도리의 순서대로 놓아둔다. 상주가 시신의 얼굴을 확인한다.“이제 시작합니다.” 장씨는 유족들에게 정중히 목례를 올린다. 기자도 따라서 깊숙이 머리를 숙였다. 그녀는 시신의 얼굴조차 마주치지 않으려는 기자에게 “머리를 꽉 잡으라.”고 지시한다. 장씨는 솜으로 손가락부터 팔, 다리 순으로 닦았다. 출혈도 있었지만 경건해 보일 만큼 정성껏 닦아나갔다. 수분을 잃은 피부는 건조했다. 그녀는 시신의 입꼬리를 올리려 애쓰고 있었다.“미소를 만들고 있어요. 고인이 웃는 것처럼 보여야 유족들도 마음이 편하거든요.” 여성 특유의 손길을 거치면서 고통의 흔적이 지워지고 자연스러운 표정이 만들어진다. 고인의 얼굴에 비로소 평안이 깃든다. 여기에 남성이라면 면도를 하고 얼굴에 밀크로션을 바른다. 여성은 화장을 한다. 아름씨의 화장법은 독특하다. 로션을 바르고, 눈썹을 그리고, 입술을 바르는 과정은 똑같지만 마음이 다르다.“거울 앞에서 제가 화장하듯 해요.” 유족들은 “평생 화장 한번 안 하신 어머니를 가시는 길이나마 예쁘게 해줘서 고맙다.”고 연신 인사한다. 고인의 얼굴에는 살아온 인생이 나타난다고 한다. 장씨는 삶에 찌든 얼굴을 볼 때마다 “욕심부리고 살지 말자.”고 다짐을 한단다.“등을 잡으세요.” 수의를 입힐 때는 고인의 몸이 뒤척이지 않도록 조심한다. 무거운 시신을 건사하는 것도 쉽지 않다.21차례의 매듭을 짓고 시신을 관에 담는다.40분은 너무나도 긴 시간이었다. 장례지도사는 스스로를 ‘3D 전문직’이라고 부른다. 장례식의 실질적인 지휘자로 24시간 근무하며 시신을 직접 다루지만 보수는 낮은 편이다. 무엇보다 시신을 다루는 일은 위험하다. 병원에서 온 시신은 더욱 주의해야 한다. 결핵이나 에이즈로 사망한 시신은 병원에서 미리 통보한다. 에이즈로 숨진 시신도 6개월에 한번 꼴로 들어온다. 지도사의 손에 상처라도 있으면 2차 감염이 되는 탓에 온몸을 중무장한다. 시신을 닦은 솜 등 감염성 폐기물은 모두 전문업체가 처리한다. 지난해 4월 장씨는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한다. 병원에서 내려온 시신에 수시(收屍)작업을 했다. 수시는 막 운명한 시신의 몸이 굳기 전에 손발을 주물러 곧게 펴주는 일이다. 부검을 한다는 통보를 받고 시신을 옮기자 의사와 간호사는 온 몸을 중무장하고 들어섰다. 알고 보니 시신의 주인공이 급성호흡기증후근(사스) 의심환자였던 것. 누군가의 실수로 미리 통보를 하지 않은 것이다. 다행히 사스는 아니었다. 특히 곤혹스러운 것은 시신의 부패. 약물 투여가 많은 시신은 냉장고 안에서도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살갗이 쉽게 벗겨지는데다 고약한 냄새로 염을 할 때면 온 몸은 땀으로 젖는다. 장례지도사는 특별한 시신이 아니더라도 염습을 할 때 마스크를 하고 얇은 수술용 고무장갑을 낀다. 기자 역시 고무장갑을 꼈고, 단단히 각오를 했음에도 염습이 끝난 뒤 소독약으로 6차례 이상 손을 씻는 등 극도로 민감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인생의 종착역인 장례식장에도 각박한 세태는 그대로 투영된다. 장씨는 “돌아가신 분에게 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무슨 한이 쌓였는지 모르지만 아버지의 시신을 화장하고 “새 모이 준다.”고 말하는 상주를 본 적도 있다는 것이다. 눈치보며 곡소리를 내는 며느리는 인지상정이라지만 노인을 씻기지 않아 온 몸에 덕지덕지 때가 묻은 시신도 많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성공한 자녀도 다를 것이 없다. 장례식장을 찾은 유족들의 첫마디는 대부분이 “가장 싼 것을 달라.”이다. 수의나 관을 정하면서 물건조차 보지 않고 무조건 싼 것을 찾는다. 분수에 넘치는 허례허식은 경계해야 하지만 마지막 가는 길조차 인색하고 각박한 자녀들을 보면 장씨가 더 서운하다. 최근에는 삶에 지친 시신도 많다. 산 자에게 세상 짐을 떠맡긴 시신은 표정도 평화롭지 않다. 조용균(54) 관리실장은 “1주일에 한건 정도 자살한 시신이 들어온다.”고 전했다. 쪼들리다 세상을 버린 사람들의 장례식은 더욱 쓸쓸할 수밖에 없다. 이 세계에서 여성은 아직 생소한 존재이다. 장씨가 장례 상담에 나서면 상주들은 남자 직원을 찾기 일쑤다. 하지만 그녀의 섬세한 손길을 경험한 유족들은 절대로 무시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자신의 ‘사후’를 일찌감치 부탁하는 노인들도 있다고 한다. 죽음은 일상 곳곳에서 우리를 응시한다. 죽음이 보내는 소환장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뿐 모두에게 평등하다. 짧은 체험이었지만, 장례지도사가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이 느껴졌다. 날마다 죽음을 접하면서 삶의 소중함에도 눈을 뜬 것인가. 장례지도사는 죽음이 아닌 삶을 다루는 직업이었다. ■ 장례지도사란 장례지도사(Funeral Director)는 장의사를 대체하는 용어이다. 장례 상담에서 시신안치, 염습, 발인까지 장례식의 모든 과정을 책임진다. 장례지도사는 정규 대학과정에서 양성된다.1999년 서울보건대학이 장례지도과를 설치한 이후 대전보건대학과 창원전문대학에 학과가 개설됐다. 졸업생의 90%는 전공을 살려 대학병원 장례식장 등에서 일하고 있다. 여성도 해마다 10여명씩 배출돼 전국에서 4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커리큘럼은 기본적인 상·장례부터 보건법규, 방부처리, 사체화학, 훼손된 시신를 복구하는 회복기술학, 해부학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문직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으면서 2년 과정에서 올해부터 3년 과정으로 개편됐다.2003년 현재 전국 623개 장례식장에서는 해마다 24만여구의 시신이 처리된다. 전국에서 활동하는 장례지도사는 2400명 안팎이다. sunstory@seoul.co.kr
  • [누드브리핑] 두꺼비 출현 숨긴 까닭은?

    [누드브리핑] 두꺼비 출현 숨긴 까닭은?

    서울시 공원녹지관리사업소 직원들이 ‘두껍아, 두껍아’를 노래하고 있다. 지난 9월 말 시청 청원경찰이 본관 뒷뜰과 서울광장을 관리하는 사업소 담당자에게 체력단련실 앞 화단에 두꺼비가 나타났다는 제보를 해 며칠 뒤에는 서울광장에서 뒤뜰로 이어지는 보도에서 촬영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는 ‘비밀’로 숨겨져왔다. 그 속사정이 참으로 안쓰럽다. 두꺼비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니 말이다. 박인규 공원녹지관리사업소장은 “지난 3월 중순 남산에 도롱뇽과 개구리가 출현했다는 보도가 나간 뒤 일부 몰지각한 시민들이 알을 퍼가는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출입금지구역인 남산 숲 속에 페트병을 들고 들어가 알을 퍼간 까닭은 “도심에 나타났다는 점에서 신기하게 여긴 데다 보신에 좋고 희귀병에도 효험이 있다는 속설 때문”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사업소 직원들은 오가는 사람수가 엄청난 데다 자동차 통행까지 많아 번잡하기 그지없는 도심에 적어도 암수 한쌍이 시청 뒤뜰에 살고 있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다. 무엇보다 사업소 직원들 사이에서 ‘길조’라는 해석이 분분해 흥미롭다. 한 직원은 “핫이슈였던 수도이전 계획이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꺾인 것도 두꺼비가 가져온 좋은 징조”라면서 “앞으로도 좋은 일이 이어질 것”이라고 반겼다. 또 다른 직원은 “청계천 복원, 대중교통체계 개편, 뉴타운 개발 등 서울시 역점사업들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리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징조”라면서 “수장(首長)인 이명박 시장에 대한 것일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이 시장이 대권주자로 꼽히는 점을 가리키는 것이다. 예부터 왕비를 상징하는 두꺼비가 나타나면 가뭄 땐 비를 몰아오고 집안에 재물이 들어올 조짐으로 여겨진다. 또 최근 들어서는 토종 동물을 해치는 황소개구리의 천적으로 손꼽힌다. 공원녹지관리사업소는 시청 두꺼비가 겨울잠에서 깨면 동물생태 전문가를 초청해 생태통로 조성 등 체계적 관리에 대한 용역을 맡길 계획이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따뜻한 손 나눠요] ④용산쪽방 사람들의 새해 소망

    [따뜻한 손 나눠요] ④용산쪽방 사람들의 새해 소망

    “없이 살지만 우리끼리라도 서로 챙기면서 도와야지요.” 품안을 파고드는 세밑 겨울바람에 몸이 잔뜩 오그라드는 28일 오후.30m쯤 떨어진 곳에서 33층짜리 주상복합건물 신축공사가 한창인 서울 용산구 용산5가동 한 식당에 주민 15명이 모여 김이 모락모락나는 쌀죽과 라면을 후후 불어가며 먹고 있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된 ‘용산공원 남측 도심재개발사업’으로 당장 쫓겨날 처지에 놓인 용산5가동 19번지 철거촌 세입자들이다. 가진 것 없는 이들이지만, 이렇게 가끔씩 음식을 추렴하는 나눔의 미덕으로 서로를 돌본다. 식당 주인 한미자(52·여)씨는 “쌀이 조금이니 양을 늘리려 죽을 끓였다.”고 말하고 “죽맛이 아니라 이웃간의 정을 주는 맛으로 먹는다.”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죽으로 때워도 인심은 부자들보다 따뜻 이 일대에는 지난해 10월까지만해도 400여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주로 저소득층이나 독거노인들이었지만 인정만은 어느 부자동네보다 훨씬 따뜻했다. 하지만 2001년 7월 서울시가 용산개발계획을 세운 뒤 지난해 11월28일 재개발조합이 갑자기 사업승인통지서를 내밀며 “3개월 안에 나가라.”고 통보해 오면서 이들의 삶은 절박해졌다. 지금은 대부분 주민들이 철거용역반원들의 횡포에 쫓겨 뿔뿔이 흩어지고 정말 갈곳없는 40여가구 100여명만 남아 있다. 김옥순(66·여)씨는 전기가 끊겨 불이 들어오지 않고 연탄불조차 제대로 때지 못하는 4평짜리 쪽방에서 손자 세호(10)와 손녀 혜선(8)이를 키우며 근근이 살고 있다. 아이들 밥은 이웃들에게 얻어 먹이고 있지만 한겨울에 얇은 홑이불만으론 아이들을 재울 수가 없어 밤이면 서로의 체온으로 추위를 달래는 처지다. 다른 철거촌이나 쪽방촌과 달리 용산5가동은 세간에 알려지지도 않아 이제까지 도움의 손길조차 없다. 김씨는 “나야 이제 다 살았지만 저 어린 것들을 봐서라도 그냥 내몰릴 수 없지 않으냐.”면서 “어떻게든 새해에는 아이들이 따뜻하게 등을 누일 수 있는 한평 공간이라도 생겼으면 좋겠다.”고 되뇌었다. ●문 뜯긴 냉골서 스티로폼으로 바람 막아 19번지에는 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갈 곳없는 이들에겐 그나마 이웃들의 정이 삶의 영양제다. 23년 동안 노동 일을 하며 19번지에 살아온 배춘근(54)씨는 지난 8월 철거용역반원들의 명도집행으로 집이 무너지는 것을 눈뜨고 지켜봐야 했다.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진 뒤 배씨는 지금 2평 남짓한 주인없는 쪽방에 들어가 혼자 살고 있다. 방문도 뜯겨나가 스티로폼으로 바람을 막아야 하는 골방에서 항상 이불을 덮고 지내는 처지라 몸은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다. 그렇지만 마냥 외롭지만은 않다. 보온병에 끓인 죽을 넣어 끼니를 챙겨주고, 병원이라도 가보라며 쌈짓돈을 찔러주는 이웃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틈틈이 배씨를 돕고 있는 심순자(52)씨는 “서로 돕지 않으면 다같이 무너지지 않겠느냐.”면서 “새해에는 천막이라도 ‘내집’이라 생각하고 모두가 편히 발 뻗을 수 있는 공간을 갖고 싶다.”고 소박한 소망을 밝혔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되돌아본 2004 문화] ③영화계

    올해 한국 영화계는 꿈의 숫자인 1000만 관객 돌파라는 기분 좋은 뉴스로 상쾌하게 출발했다.‘실미도’가 개봉 58일 만에, 그리고 ‘태극기 휘날리며’가 이보다 빠른 39일 만에 달성한 ‘1000만 고지’는 한국영화 르네상스의 정점을 알리는 길조처럼 여겨졌다. 해외에서도 낭보가 잇따랐다. 김기덕 감독이 베를린영화제와 베니스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이 칸영화제에서 각각 감독상과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뒀다. 한류 열풍에 힘입어 해외 수출 역시 순풍에 돛단 듯 성장세를 이어갔다. 하지만 빛의 강도만큼 그늘도 짙었다. 상반기 2편의 핵폭탄급 영화 이후 이렇다할 흥행작을 내지 못한 데다 막대한 제작비 상승을 매출액이 못따라가면서 실질 성장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기초 체력 부실에 대한 우려를 더하게 했다. ●극심한 관객쏠림 현상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의 호황을 바탕으로 한국 영화는 시장점유율 56%를 기록했다.90년대 이후 역대 최고다. 그러나 두 영화를 제외하고, 올 한해 서울 관객 100만명을 넘은 영화는 ‘말죽거리 잔혹사’(102만명) 한 편에 불과했다. ‘어린 신부’(88만명),‘내 머리속의 지우개’(79만명),‘범죄의 재구성’(78만명),‘귀신이 산다’(75만명) 등 ‘중박’ 규모의 히트작도 대여섯편에 그쳤고, 저예산 영화는 여전히 관객의 관심권 밖에 머물렀다. ●세계 무대에서 높아진 한국 영화 위상 김기덕 감독이 ‘사마리아’로 베를린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포문을 연 상복은 곧이어 칸영화제에서 ‘올드보이’(박찬욱)가 심사위원대상을, 김기덕 감독이 또다시 ‘빈집’으로 베니스영화제에서 감독상을 거머쥐면서 한해에 3대 국제영화제를 모두 휩쓰는 기록을 세웠다. 또 최고 권위의 애니메이션축제인 안시페스티벌에서 ‘오세암’(성백엽)이 대상을 차지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해외 마켓에서의 성장세 역시 눈부시다. 상반기에 이미 전년비 78% 증가한 3250만달러의 해외 판매수익을 거뒀다. 한류 열풍에 힘입어 장동건, 김희선, 김윤진 등 우리 배우들의 해외 진출 기회도 늘었다. ●실존 인물 영화 봇물, 엇갈린 평가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 등 근현대사를 소재로 한 영화가 흥행하면서 충무로는 실존 인물과 과거의 역사에 눈을 돌렸고, 이는 올해 한국영화계를 관통하는 키워드였다. 안중근 의사(도마 안중근), 극진 가라테의 고수 최영의(바람의 파이터), 프로레슬러 역도산(역도산), 원년 프로야구의 ‘패전처리 전문 투수’ 감사용(슈퍼스타 감사용) 등이 스크린을 통해 다시 태어난 실존 인물들. 하지만 대부분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았다. ●스크린쿼터, 제한상영관 등 현안 갈등 지난 6월 문화관광부가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을 공식적으로 밝히면서 한동안 잠잠했던 스크린쿼터 문제가 수면위로 다시 떠올랐다. 문화부는 ▲점유율과 쿼터의 연동제 ▲종합적인 지원방안 마련 ▲영화산업 주체적 정책판단에 따른 논의 등을 조건으로 내세웠지만 대다수 영화인들은 ‘축소 논의 불가’를 외치며 강경대응하고 있다. 또 지난 5월 문을 연 제한상영관이 유명무실해지면서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등급체계 개혁에 대한 논의도 불거지고 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의회]노원구 쓰레기더미 철로변 꽃길로

    [의회]노원구 쓰레기더미 철로변 꽃길로

    구청의 행정력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민원을 구의회 의원이 나서 뚝심으로 해결했다. 2년여의 노력 끝에 각종 생활쓰레기로 방치되던 길을 꽃길로 바꾸어놓은 서울 노원구의회 오동수(월계4동·초선)의원이 주인공이다. 서울 지하철 1호선 월계∼성북역 사이는 선로 옆 방음벽을 따라 폐건축자재, 폐가구, 고장난 가전제품 등이 10년 이상 방치돼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곳이다. 주민들이 악취 풍기는 쓰레기를 치워달라고 요구했지만 구청측으로부터 “철로와 방음벽이 있는 공간은 철도청 부지이기 때문에 행정력이 미치지 못한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동사무소 차원에서 주민들과 함께 가끔씩 쓰레기를 치우기도 했지만 미봉책에 불과했다. 이 문제를 선거공약으로 내세웠던 오 의원은 당선 직후부터 약 2년간 구청과 구의회를 오가며 ‘해법찾기’에 몰두했다. 오 의원은 지난 5월말부터 지역주민 60여명과 동사무소 직원 등과 함께 직접 쓰레기를 회수하기 시작했다. 구청에서 청소차 6대를 지원받아 1주일에 걸쳐 모두 28t의 쓰레기를 말끔하게 치웠다. 이후 지난 8월 추경예산 편성시 꽃길조성 및 가로수 식재 비용 5500만원 지원을 요청해 지난 9월 노원구의회 임시회를 통해 확보했다. 지난달 말 예산이 집행되면서 이 지역은 화초와 관목, 가로수 등이 가득한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했다. 오 의원은 “누구나 피하던 길을 누구나 걷고 싶은 길로 바꾼 것은 결국 주민의 힘”이었다며 “‘남의 탓’만 하는 행정이 아닌 주민들의 일상생활에 살며시 스며드는 세심한 행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좋은도시 만들기](3)’담장’ 쌓은 임대·일반아파트

    [좋은도시 만들기](3)’담장’ 쌓은 임대·일반아파트

    “한 단지에 살지만 아이들의 등하굣길조차 서로 달라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성격이 비뚤어질까 걱정됩니다.” 2000여가구가 모여 사는 성북구 길음동 임대주택 동부아파트의 주민 정이선(43·여·가명)씨는 요즘 매일같이 단지내 이웃 주민들과 감정싸움을 벌이고 있다. 인근의 미아초등학교에 다니는 둘째아들의 등하굣길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기 위해서다. ●5분거리 학교를 20분 돌아서 다녀 동쪽으로 난 임대 아파트 정문만 통해서 다닐 수 있지 서쪽을 향하고 있는 일반분양 아파트의 정문을 이용하지 못하는 것. 임대아파트와 일반아파트사이에는 철망 형태의 담이 설치돼 주민의 이동이 불가능하다. 이로 인해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초등생 80여명이 단지를 빙돌아 학교에 가는 불편을 겪고 있다.5분거리를 20여분정도 더 돌아다니는 것이다. 정씨는 아이들의 등하굣길 불편을 덜어주고 싶어 실랑이를 벌이지만 혹시 아이들에게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갈등으로 비쳐져 더 큰 마음의 상처를 안겨주지 않을까 마음이 아프다. 이 곳 아파트내 300가구의 임대아파트 주민들은 아이들의 이런 불편함을 덜어주기 위해 벌써 2개월 넘게 한 단지내 일반아파트 주민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쪽문설치를 요구하는 집회도 해보고 서명작업도 펼쳐봤지만 좀처럼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사유지’ 핑계 쪽문설치도 반대 주민 대표로 나선 이정원(50·여)씨는 “위험하다, 사유지라서 안 된다는 등 갖가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거부당하고 있다.”며 “이는 임대아파트 주민들을 같은 단지의 이웃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개하고 있다. 이씨의 말처럼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주민 대부분은 이런 억울함과 불편을 삭이며 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실제로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관악 드림타운, 두산아파트 등지에서도 여전히 임대와 일반아파트 주민들을 분리시키는 담장과 주차장 등으로 주민간에 갈등을 빚고 있다. 용산구 도원동의 삼성 래미안아파트도 일반아파트와 임대아파트를 높은 담장과 서로 다른 출입구로 단절시켜 놓아 보는 이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임대=저소득층’ 편견 만연 우리나라에서는 ‘임대아파트=저소득층거주아파트’라거나 임대아파트 지역내의 학교는 문제가 있다는 식의 잘못된 편견까지 작용하고 있다. 임대와 일반아파트 주민간에는 재산상의 격차만큼이나 높은 장애물이 놓여 있는 것이다. 최근 서울시의회는 임대아파트를 별도로 배치하지 않도록 하는 ‘서울시도시 및 주거환경정비조례중개정조례안’을 의원발의로 상정, 통과시키는 등 임대와 일반 아파트주민간의 갈등을 없애는 노력을 다각도로 펼치고 있다. 조례안을 발의한 정호동(한나라당·노원1)의원은 “같은 단지내 어린이들도 임대와 일반아파트를 구분해 따로 어울리는 게 현실”이라며 “개선책 찾기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도시연구소는 임대·일반아파트 주민간 갈등의 원인은 ‘집값 하락’을 이유로 가난한 사람들과 같이 섞여 살기 싫어하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남원석 연구원은 “선진 외국의 경우 임대주택 주민들의 역량 개발을 위해 직업교육 및 공동체 프로그램 등을 지원하고 있다.”고 밝히고 “이웃이라는 공동체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 문화행사나 봉사활동 등을 적극 지원해주는 행정적 뒷받침과 사회적 분위기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더불어 살기’ 은평뉴타운 첫 시도 다양한 계층이 모여사는 ‘소셜 믹스(Social Mix·더불어 살기)’가 국내에서도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찬반론도 팽팽하다. ●같은 棟에 임대·분양가구 동시 배치 서울 은평뉴타운이 주목받는 이유중의 하나는 국내에선 처음으로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을 섞어 짓기 때문이다. 은평 1구역의 아파트는 18∼60평형으로 다양하게 구성됐다. 분양아파트(2750가구)와 임대아파트(1471가구) 비율이 6대 4 정도이다. 특히 같은 동에 분양 및 임대가구가 동시에 들어서는 아파트도 상당수 배치됐다. 서울시 이건기 뉴타운사업반장은 “기존 재개발아파트도 임대아파트를 일정부분 포함하고 있지만, 단지가 다르고 상호교류가 단절된 상태여서 사실상 별도의 아파트로 간주해야 할 것”이라면서 “진정한 의미의 소셜 믹스는 은평뉴타운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건설교통부는 국민임대단지안에 일반아파트와 임대아파트를 섞어 짓도록 할 방침이다. 내년 4월부터는 재건축단지내 임대아파트 건설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또 지난 11월 경기도 시흥능곡지구 실시계획을 승인하면서 첫 블록은 일반, 그 다음 블록은 임대아파트를 짓도록 했다. 찬성론자들은 여러 계층이 조화와 통합을 이룰 방법론적 대안을 ‘소셜 믹스’에서 찾고 있다. 서울시립대 건축도시조경학부 박철수 교수는 “현재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주민들은 라이프스타일과 성장단계에 따라 유목민처럼 이사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면서 “소셜 믹스가 이뤄지면 정주성을 확보할 수 있고, 정주성이 지속되면 자발적인 커뮤니티가 형성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커뮤니티 형성” “시장원리” 찬반양론 그러나 소셜 믹스는 부동산가격 하락 등을 우려하는 기득권층과 상대적 박탈감이 커질 것이라는 소외계층의 현실적 주장에 막혀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다. 건설업체 관계자는 “오히려 떨어져 사는 게 나아 보인다.”면서 “건축과정에서 소셜 믹스를 꺼리는 시장원리를 무시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털어놨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장영희 박사는 “임대료를 임대주택의 종류가 아닌 입주자의 소득수준에 따라 차등화하면 다양한 규모와 형태의 가족이 함께 거주할 수 있다.”면서 “여기에 ‘쿼터제’를 도입해 특정 소득계층이 몰리는 현상을 보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다만 인위적인 소셜 믹스는 자제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평택대 도시계획학과 윤혜정 교수는 “신도시를 개발할 때는 소셜 믹스를 시도할 수 있지만, 재개발이나 재건축 과정에서는 기존의 커뮤니티가 유지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서울 시범·시민·시영아파트 현황 시범·시민아파트에는 현재 전형적으로 저소득층이 살고 있다. 이들 주민은 국·공유지를 빌려 자신들의 아파트를 지은 대신 대부료를 내야 하나 지금까지 30여년간 한푼도 납부하지 않았다. 공공용지 사용 대부료는 연간 공시지가의 5%이다. 또 공공용지를 무단으로 점유했을 경우 대부료의 20%를 얹은 변상금을 물어야 한다. 지방재정법은 채무의 소멸시효를 5년으로 규정, 서울시 등은 적어도 이 기간 동안의 대부료를 청구할 수 있지만 청구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계약서에 관련규정을 담지 않아 (대부료를 납부하지 않아도 되도록) 관행적으로 굳어진 것 같다.”고 털어놨다.‘잘못 꿰어진 첫 단추’를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바로잡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시민아파트는 지난 1969년 국·공유지에 난립한 무허가건물을 정비하기 위해 서울시가 건물의 골조만 지어 분양한 아파트로 모두 32개 지구에 434개동 1만 7353가구가 지어졌다. 이후 안전상의 문제가 발생하자 서울시가 건물을 매입해 현재 대부분 철거가 이뤄졌고, 주민들에게는 택지개발지구내 아파트 우선입주권이 주어졌다. 완공 1년만인 1970년 4월 붕괴돼 대형 인명피해를 낳은 마포구 창전동 와우아파트도 시민아파트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서울시는 시범아파트를 짓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범아파트는 시민아파트와 달리 일반아파트와 동일한 방식으로 분양이 이뤄져 안전관리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주민들에게 있지만 문제는 부실이 크게 진행되는 데도 서울시가 주민에게 책임을 미루는 데 있다. 안전점검에서 지자체가 개입할 의무가 있는 D등급이하가 나오지 않았다고 위안만 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시영아파트는 건물뿐 아니라 토지까지 주민에 팔아 완전 민영방식으로 분양된 아파트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MLB 월드시리즈] 우승 전조 있었다

    우승은 실력과 함께 행운이 뒤따르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 보스턴 레드삭스가 한 세기 가까운 무관의 저주를 털어내는 데에도 행운의 전조가 함께했다. 제 1의 전조는 ‘밤비노의 저주’를 낳게 한 ‘철천지 원수’ 뉴욕 양키스를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ALCS)에서 꺾은 것. 지난 1999년과 지난해 아쉽게 무릎을 꿇은 보스턴은 올해도 초반 3연패를 당하며 지긋지긋한 ‘밤비노의 저주’를 다시 떠올렸다. 그러나 ‘붉은 양말’들은 적지 뉴욕과 홈에서 4연승을 거두는 기적을 일궜다. 메이저리그 첫 3연패 뒤 4연승이었다. 천적을 천신만고 끝에 꺾은 보스턴의 기세는 메이저리그 최강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도 막을 수 없었다. 베이브 루스의 악령은 보스턴이 양키스에게 최후 펀치를 날리던 지난 21일 이미 힘을 잃은 셈. 커트 실링의 피로 더욱 붉어진 빨간 양말은 제 2의 전조. 오른 발목 부상으로 11일 ALCS 1차전에서 패전의 멍에를 쓴 실링은 20일 6차전에서는 살갗을 찢어 안쪽 조직과 꿰매면서 힘줄을 고정하는 수술을 받고 마운드에 올랐다. 그는 수술 부위가 찢어지면서 피를 흘리는 부상에도 불구,7이닝 1실점의 완벽투를 선보였다.25일 월드시리즈 2차전에서도 6이닝 1실점으로 승리를 안겼다. 24일 월드시리즈 1차전에서 터진 ‘페스키 폴(Pesky Pole)’ 홈런도 길조 가운데 하나. 보스턴은 9-9로 팽팽하던 8회말, 마크 벨혼의 펜웨이파크 오른쪽 파울 기둥인 페스키 폴을 맞히는 2점 홈런으로 첫 승을 올렸다.1940년대 보스턴의 주전 유격수였던 조니 페스키의 이름에서 딴 이 폴은 홈플레이트에서 불과 92m 거리. 다른 구장에서는 파울 라인으로 벗어날 타구가 여기에 맞고 행운의 홈런으로 되곤 한다. 지난 9월 1일 보스턴의 매니 라미레스의 홈런 타구에 16세 소년 리 개빈의 앞니 두개가 부러진 것도 또 다른 길조. 개빈은 공교롭게 베이브 루스가 1916년부터 10년 동안 지냈던 집에서 살고 있었다. 보스턴은 이날 이후 10연승을 달린 반면, 양키스는 이날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0-22라는 구단 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했다.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국정원에 ‘우담바라’ 수곳서 발견

    불교에서 상서로운 꽃으로 불리는 우담바라가 국가정보원 내부에서 발견돼 화제다. 우담바라는 지난달 24일 청사 6동 5층에서 발견된 뒤 7층에서도 보였고, 이후 고영구 국정원장 관사의 뜰에서도 발견돼 관심을 끌고 있다. 국정원은 사찰이 아닌 곳에서 우담바라가 발견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주장한다. 국정원측은 우담바라를 길조라고 여기며 반기는 분위기다. 불교에서 우담바라는 여래(如來)가 태어날 때 피며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나타날 때만 핀다는 꽃으로 사람이 목격하는 것은 좋은 징조라고 말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우담바라가 꽃이 아닌 풀잠자리 알 또는 곰팡이의 한 종류라고 보고 있다. 풀잠자리의 애벌레가 빠져나갈 때 알 껍질이 벌어지기 때문에 꽃이 핀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얘기다. 곰팡이 중 점균류인 ‘슬라임 몰드’가 자라다가 한데 뭉쳐 위로 중기를 형성해 포자가 매달린 형태라고 보지만 아직 정확하게 과학적으로 규명되지는 않고 있다. 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 [이사람] ‘40년 터전’ 춘천 떠나는 이외수 소설가

    [이사람] ‘40년 터전’ 춘천 떠나는 이외수 소설가

    어느 젊은 시인은 소설가 이외수를 찾아가는 길에 이렇게 읊었다.“그를 만나기 위해서는 경춘선 보통열차의 차창에 기대어 그리운 이름들을 한번쯤 불러보아야 한다/그리하여 말갛게 씻겨진 의식의 한켠으로 저물녘 소양강 물비늘의 깊은 숨소리를 들어야 한다.” 하지만 기자는 경춘선 보통열차를 타지도 않았고, 소양강 물비늘의 숨소리를 들을 수도 없었다. 대신 그를 만나자마자 “스스로를 기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세속적인 질문을 던지는 게 고작이었다. 소설가 이외수(58). 그는 네평 남짓한 침실 겸 집필실에서 마른 풀잎같은 몸피와 구부정한 어깨로 컴퓨터 자판과 씨름하고 있었다. 방안의 풍경은 단출하다. 앉은뱅이 책상에 컴퓨터, 그리고 하모니카 하나.(그는 글·그림 말고도 작곡이 수준급이라는 평을 듣는다.) 그의 관심영역을 말해주는 각 분야의 서적, 현미경, 지구의 등이 눈길을 끈다. 기자의 질문에 그는 빙긋 웃음부터 내놓는다. ●화천군 ‘이외수 문학공원’으로 옮겨 “젊은 시절 쓰레기통이나 개집에서 자고 떠돌 땐, 스스로 생각해도 기인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건 세상과의 부조화 때문이었지요. 모든 예술가들에게 시대의 현실은 ‘적’입니다. 끊임없이 세상에 대해 개선을 요구하지만 현실은 예술가의 생각보다 느리게 바뀌지요. 그런 불화에서 나오는 행동을 기행이라 부른다면 그 말이 맞겠지요. 하지만 나이가 들어 생각해 보니 일종의 치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는 자신을 지극히 평범한 존재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평범한’ 그의 눈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욱 기인처럼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흉내도 낼 수 없는 일들을 하고 있잖아요? 제도와 보편성에 철저히 의존하는 삶, 시간에 묶여 허덕거리는 삶은 정말 불가사의해 보입니다.” 기자의 눈에 비친 그는 물론 기인이 아니었다. 소설이라는 신앙에 자신을 바친, 그것을 이루고자 뼈를 깎고 피를 짜내는 치열한 작가일 뿐이었다. 굳이 남들과 다른 점을 찾으라고 한다면,“세상에 미안해서” 하루 한끼만 먹는 식사와 밤낮이 바뀐 생활습관 정도. 일상도 마찬가지다. 시간 사용법이 조금 다를 뿐 세상에 대한 관심은 남들과 같다. 주말이면 독자들을 만나고 영화를 보고, 축구경기를 하는 날은 TV 앞에서 목청을 높인다. 아름다운 것들이 파괴되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분노하고 슬퍼한다. 그런 이외수가 춘천을 떠난다.1964년 춘천교대에 입학하면서 정착했으니 40년만이다. 작가로서는 30년만이고. 그가 다음 정착지로 정한 곳은 강원도 화천이다. 화천군에서 그를 군민으로 초청하기로 하고,‘이외수 문학공원’이라는 터전을 닦고 있다. 중간에 잠깐씩 떠난 적은 있었지만, 춘천은 그의 뿌리였다. “아쉬움이야 왜 없겠습니까? 춘천은 아름다운 도시지요. 문학의 문외한도 춘천서 3년만 살면 시인이 되고, 낯선 사람끼리도 안개 속을 걸으면 서로 사랑하게 되는….” 그가, 문학적 정서를 얻었다는 춘천을 떠나는 이유는 분명하다. 지금 틀고 앉은 춘천시 교동은 이제 더 이상 ‘글을 쓸 만한’ 곳이 아니다. 근처의 대학을 중심으로 상가가 갈수록 팽창하고주택가 재건축도 한창이다. 그러다 보니 그의 집은 도심 속의 외딴 섬이 되었다. “2년 동안 글을 제대로 못 쓰고 잠도 잘 수 없었습니다. 낮에는 공사하는 소리, 밤이면 취객들의 소음…. 새가 알을 낳지 못하는 둥지에 계속 틀고 앉아 있을 수는 없지요.” 엄살이 아니었다. 그를 만나는 중에도 창을 뚫고 들어오는 소음은 새벽까지 그치지 않는다. 취객의 고성에서부터 노래 소리까지. 밤에 글을 쓰는 그에게는 최악의 환경이다. 집 주변은 공사하느라 곳곳이 파헤쳐져 있다. 그는 이번 화천군의 결단을 매우 고맙게 여긴다. 안정된 ‘삶터’나 ‘밥’이 확보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지자체가 문인에게 눈길을 줬다는 사실이 반가운 것이다. 시·군 차원에서 문인을 유치한 첫 사례이기에 다른 지자체의 비상한 관심을 모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작가들은 불쌍합니다.1930년대 작가들은 그 무덤조차 찾을 수 없는 사례가 많습니다. 유산보존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지금 각 지자체는 역사적 인물을 가지고 싸우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정작 살아 있는 문인에게는 눈길조차 안 주지요. 그런 의미에서 화천군의 결정은 높이 평가돼야 합니다.” 그러하기에 군 차원에서 생존하는 문인의 문학공원을 조성하는 것은, 지자체의 문화 수요와 작가의 안정적 환경 확보라는 측면에서 적절하게 맞아떨어진 상생의 선택이라고 강조한다. “화천군은 내가 30년동안 이뤄 놓은 문학적 성과를 빌려 가는 것입니다. 즉 나를 하나의 자원으로 보는 것이지요. 몇몇 사람은 특혜라며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기도 하는데, 이해의 부족입니다. 화천군수는 나의 대외적 경쟁력을 인정한 것입니다. 특혜를 주고받는 게 아니라 상생의 방안을 찾은 거지요. 화천은 한때 수력발전소로 명성을 얻었지만 이젠 주목받지 못하는 낙후지역이 돼 버렸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제3의 문학형태를 만들 계획입니다. 뼈를 깎겠다는 심정으로 결심한 겁니다.” 그곳에서 펼칠 청사진도 그려놓았다. 작업실과 전시실, 독자사랑방, 야외공연장 등을 꾸며 찾는 사람들에게 잃었던 감성을 되찾아 주고 싶다고 한다. “메마른 사회는 메마른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갑니다. 문인만이라도 감성을 되살리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그곳을 ‘이외수의 감성마을’이라 이름짓고, 감성을 되살리는 도구로 쓸 계획입니다. 마을의 풀 한포기 꽃 한송이에도 그런 장치를 해놓을 것입니다.” 새로운 삶터를 미리 그리는 그의 눈은 아이처럼 빛난다. 소설가가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을 찾는 것은, 새가 알을 낳아 부화시킬 곳을 찾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는 안정된 세끼 밥이나 편한 침대를 추구해 본 적이 없다. 그의 삶이 얼마나 신산하고 치열했는지는 건강 상태를 보면 알 수 있다. 결핵을 네 번이나 앓다 보니 한쪽 폐가 제 구실을 못한 지 오래됐고, 한쪽 눈은 시력을 잃었다. 허리가 고장난 건 말할 것도 없고, 어느 날은 수저 위로 이(치아) 하나가 툭 떨어져 내리기도 했다. 집필 중인 소설 이야기가 나오자 어조에 활기가 더해진다. 그는 글을 느리게 쓰기로 유명하다. 문장에 조금이라도 어울리지 않는 낱말이 들어가면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그래서 원고지에 글을 쓸 땐 엄청난 파지를 내기도 했다.100매를 쓰고 1000매의 파지를 만든다고 할 정도였으니. 그래서 ‘마침표 하나 찍는데 4년이 걸릴 만큼 재능이 없다.’는 그의 소설에는 항상 각혈의 흔적이 낭자하다. 이번 소설 역시 진통이 크다.500매 이상을 쓴 뒤 가차없이 갈아엎고 새롭게 파종하고 있다.200매쯤 진행된 소설은 소재부터 특이하다. “지금 우리에게 달이 있을까요? 눈에는 보이지만 가슴 속의 달은 사라진 지 오랩니다. 즉 물질로서의 달은 있지만 정서상의 달은 없는 거지요. 소설에서는 어느날 갑자기 달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면 세상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기억과 가슴에서 달이 사라져 버린다면….” ●네 번의 결핵… 한쪽 폐·눈 구실 못해 그는 달이 사라지면 세상은 크게 바뀔 것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전투적·배타적으로 변하고 혈연끼리도 반목하고, 식물도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우리 민족에게 달의 의미는 굉장히 커요. 중국은 ‘양음의 문화’이지만 우리는 ‘음양의 문화’지요. 중국은 ‘주야(晝夜)’라고 하지만 우리는 ‘밤낮’이라고 하잖아요? 도자기를 보더라도 내쏘는 빛깔보다는 배어드는 은은함을 추구했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린 달의 존재를 잊어버렸어요. 물질만능주의와 서양문화에 대한 동경으로 정체성을 잃고 메말라 가는 거지요. 그래서 달이 일단 우리에게서 사라졌다고 보고 소설로 가시화해, 일어나는 사건이나 문제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사라진 달을 다시 되찾게 해주는 거지요. 눈에 보이는 달이 아니라 정서로서의 달을….” 그는 이번 소설을 종래의 작법과 전혀 다르게 쓰고 있다고 한다. 또 에너지나 의욕이 다른 소설을 쓸 때보다 엄청 강해졌다고 자신감을 보인다. 40만∼50만명을 헤아린다는 그의 독자들에 관해 얘기해 달라고 하자 “행복한 사람들보다는 어둠과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잘라 말한다. “과거에는 대학에서 내 글을 읽었지만 지금은 군대에서 읽습니다. 감옥에서도 독자편지가 많이 옵니다. 가장 절박할 때 내 글이 제대로 보이는 것이지요. 온실 안에 있는 사람을 위해 글을 쓰는 것은 더이상 내 몫이 아닙니다. 그래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이니 내가 먹고 살 수 있고….” 웃으면서 하는 말이지만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이어서 던지는 말 역시 그가 어떤 마음으로 소설을 쓰는지 잘 보여준다. “난 거룩해지기를 원치 않습니다. 고통을 안고 있는 독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가장 잘 들어줄 것은 작가로서 존재하는 것, 그거 하나면 충분합니다.” 그를 만난 시간이 밤 11시, 인터뷰를 마친 건 다음날 아침 9시였다.10시간 이상을 마주 앉아 나눈 이야기를 지면에 다 옮길 수는 없다. 대화의 주제는 우주와 역사와 철학에서부터, 이웃의 아픔과 그의 사랑방 ‘격외선당’을 찾는 독자들의 신상까지 거침없이 넘나들었다. 방을 나서면서, 그의 삶 한 조각조차도 제대로 그릴 수 없을 것 같다는 절망감이 무릎의 통증과 동시에 엄습했다. 글 · 사진 이호준 인터넷팀장 sagang@seoul.co.kr
  • 아니 벌써 용병교체?

    ‘대체 용병을 찾아라.’ 04∼05시즌 개막을 코앞에 둔 프로농구 각 구단이 벌써부터 대체 용병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이번 시즌부터는 외국인선수 선발 방식이 드래프트에서 자유계약으로 바뀌어 감독들은 지난여름 내내 미국에서 살다시피 하며 쓸 만한 용병을 찾았고,지난달 30일 KBL(한국농구연맹)에 등록을 마쳤다.이 과정에서 일부 구단은 함량 미달로 판단된 용병들을 서둘러 교체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선발한 용병을 시즌이 시작되기도 전에 다시 바꾸려는 이유는 뭘까.가장 큰 이유는 이달말이면 미국프로농구(NBA) 입성에 실패한 ‘물건’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다음달 2일 시즌이 시작되는 NBA 구단들은 이달말까지 로스터를 확정한다.02∼03시즌 TG를 챔피언에 올려놓은 3점슈터 데이비드 잭슨 등 국내 구단이 끈질기게 ‘러브콜’을 보낸 선수들은 NBA 캠프에 참가하느라 눈길조차 주지 않았지만 끝내 NBA의 부름을 받지 못한다면 사정은 달라진다.유럽리그가 이미 시작됐기 때문에 한국 시장으로 흘러올 가능성은 더욱 크다. 구단 단장들이 주축이 된 KBL 이사들은 지난 5일 이사회에서 ‘용병교체는 정규리그에서 1경기 이상을 치른 뒤 가능하다.’는 규정을 삭제해 시즌 전이라도 교체할 수 있는 길을 터 놓았다.한 구단 관계자는 “우리는 물론 다른 구단들도 새 용병을 탐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오는 15∼24일까지 열리는 시범경기에서 용병들의 실력을 최종 점검한 뒤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SBS 드라마에 올인

    최근 내놓는 드라마들이 줄줄이 히트하면서 입이 귀에 걸린 SBS가 ‘주마가편’격으로 아침 드라마에도 ‘올인’전략을 펼치고 있다.MBC가 잠시 주춤한 틈을 타 ‘드라마 왕국=SBS’라는 입지 다지기에 한창인 것. 아침 드라마 시장은 그동안 각 방송사들이 주말이나 평일 저녁시간대 드라마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원이 소홀했던 것이 사실.오죽하면 방송사들 사이에서는 출연료가 싼 ‘한물 간’ 조연급 배우들과 그저그런 연출자가 모여서 ‘불륜 드라마’를 만드는 ‘마이너 리그’라는 평까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SBS는 지난주 종영한 드라마 ‘청혼’에서 이례적으로 조민수 등 비중있는 연기자들을 섭외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은 끝에 웬만한 드라마나 오락프로그램보다 높은 20%에 가까운 시청률로 줄곧 1위를 확보했다.이에 고무된 SBS는 후속작인 ‘선택’에서도 온갖 지원을 쏟아붓고 있다.주말·저녁 드라마 수준의 캐스팅 비용을 지불하고,아침 드라마로서는 최초로 지방 로케이션에 나서는 것.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심혜진·이종원·김상중.모두 그동안 아침 드라마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정상급 스타들이다.조연도 이유진·안정훈·강부자·선유용녀 등 호화 배우들로 포진시켰다. ‘선택’의 손홍조 프로듀서는 “드라마 ‘품질’을 높이기 위해 기존 아침 드라마에 비해 제작비는 30%,주연 배우 출연료는 저녁 드라마에 못지않은 수준을 지급했다.”면서 “출연료 등으로 빠져 나간 제작비용과 향후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그리고 드라마 세트장 건립에 드는 돈 12억원은 모두 여수시로부터 지원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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