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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안부 증거 있다] “내가 산증인…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한가”

    [위안부 증거 있다] “내가 산증인…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한가”

    일본군 위안부를 강제 동원한 증거가 없다는 일본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의 망언이 전해지자 위안부 피해할머니들은 “국가 간의 이해를 떠나 패륜의 극치”라며 분노했다. 강제동원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파렴치한 일본의 행보에 “내가 강제 동원의 산증인이다.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한가.”라며 울분을 토했다. 경술국치 102주년인 29일 오후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1037번째 수요집회에 참석한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87)·길원옥(85) 할머니는 “증거가 필요하면 우리에게 직접 물어보라고 하라. 이렇게 증인들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길 할머니는 “나만 해도 일본 육군 제15사단을 따라 싱가포르, 타이완, 홍콩, 말레이시아 등지를 끌려다녔다.”면서 “지금까지도 그때 그 악몽 같은 기억이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김 할머니는 “민간인이 (위안부로 강제 동원된) 그 어린 소녀들을 다 데리고 (위험한 전선을) 다닐 수가 있느냐.”면서 “일본 정부가 주도하지 않았다는 말은 상식적으로도 맞지 않는 억지”라고 말했다. 일본 정치인들의 잇단 망언에 피해 할머니들은 공분했다. 대구에 머물고 있는 이용수(83) 할머니는 “역사의 산증인인 나와 다른 할머니들이 엄연히 살아있는데 일본이 이젠 있던 일까지 없는 일로 만들려 한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파렴치한 일본의 정치인들이 인륜의 문제를 정치의 소도구로 이용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범수기자 bulse46@seoul.co.kr
  • 서울 위안부 할머니들 새 보금자리 마련

    서울 위안부 할머니들 새 보금자리 마련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3가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쉼터 ‘우리집’이 새로운 터전으로 옮긴다. 한국교회희망봉사단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23일 ‘우리집’이 이르면 오는 9월 마포구 연남동에 마련된 새집에 둥지를 틀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복동 할머니 등 3명이 함께 생활 지난 2003년 12월 입주한 방 6개의 2층 건물인 ‘우리집’에는 이순덕(95)·김복동(86)·길원옥(84) 할머니 3명이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지어진 지 34년이 지나 낡고 비가 새, 생활하기에 적잖이 불편했다. 보수하려 해도 정대협에서 전세로 빌린 탓에 쉽지 않았다. 더욱이 ‘우리집’이 위치한 지역이 재개발 대상지로 지정돼 지난해 초에는 건물을 비워 달라는 계고 통지까지 받았다. 강동구에 있는 명성교회(담임목사 김삼환)는 2010년부터 정대협을 돕는 봉사단의 주선으로 ‘우리집’의 어려운 사정을 알고, 적극 나섰다. 마포구 연남동에 대지 313.5㎡에 지하 1층, 지상 2층의 단독주택을 새 거처로 마련해 준 것이다. 새 쉼터 ‘우리집’은 매입 비용과 공사비 등 16억원가량을 투입, 새롭게 단장했다. 현재 내부 공사가 거의 마무리된 상태다. 교회와 봉사단은 할머니들의 편의를 위해 1~2층을 오가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했다. 새 가구도 들여놓을 계획이다. ●“할머니들 여생 좀 더 편안하게 보내셨으면” 명성교회 측은 “할머니들이 한 분이라도 계시는 한 불편없이 지낼 수 있도록 무상으로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김종생 봉사단 사무총장은 “1990년대에 위안부 문제를 처음 대내외에 알릴 때 한국교회여성연합회가 큰 역할을 했다.”면서 “기독교계에서 시작을 함께한 만큼 할머니들이 좀 더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시도록 지원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는 “집주인이 그동안 전세금을 올리지 않는 등 전폭적으로 지원해 세들어 살았지만 정도 많이 들었다.”면서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새집으로 간다는 소식에 할머니들이 모두 기뻐하신다.”고 전했다. 봉사단은 25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1032번째 수요집회에서 새 쉼터 개소 사실을 보고하기로 했다. 김진아기자 jin@seoul.co.kr
  • “日 배상금 나오면 전쟁피해 여성 위해 기부”

    “日 배상금 나오면 전쟁피해 여성 위해 기부”

    “13살 때 끌려간 이후 72년 동안 아픈 가슴을 안고 살아왔습니다. 우리처럼 아픔을 당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있다니 배상금이 나오면 그들을 위해 써주길 바랍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왼쪽·85)·김복동(오른쪽·87) 할머니는 8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일본으로부터 법적 배상금을 받게 되면 전쟁에서 성폭행 피해를 당한 여성들을 위해 전액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정대협은 일본 정부의 법적 배상이 당장은 실현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해 일단 할머니들의 뜻이 실현될 수 있도록 기금을 만들기로 했다. 이른바 나비기금이다. 윤미향 정대협 대표는 “고치 속 누에같이 오랜 시간 고통을 받던 여성들이 나비처럼 훨훨 자유로워지길 바란다는 의미에서 지은 이름이다.”라면서 “할머니들의 뜻에 동참하는 이들에게 릴레이 후원을 받아 기금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나비기금이 지원할 첫 대상자로는 콩고인 레베카 마시카 카추바가 선정됐다. 20년 가까이 내전이 계속되는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2009년 한 해에만 8000명 이상의 여성들이 성폭행 피해를 당하고 있다. 자신 역시 성폭행 피해자인 마시카는 1999년부터 피해 여성과 아동을 위한 지원 활동을 해오고 있다. 기금은 5월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개관에 맞춰 마시카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윤 대표는 “일본 정부가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외면하는 동안 위안부 피해자들은 이처럼 시야가 넓어졌다.”면서 “나비기금은 할머니들의 배상 요구가 결코 돈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동시에 고통받는 콩고 여성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진호기자 sayho@seoul.co.kr
  • 위안부 할머니 ‘살신성인 유언’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으로부터 법적 배상금을 받게 되면 아프리카 내전 성폭행 피해 여성들에게 전액 기부하겠다는 유언을 남긴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8일 104주년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86), 길원옥(85) 할머니가 일본 정부로부터 법적 배상금을 받게 되면 콩고민주공화국 내전에서 성폭행 피해를 본 여성들을 돕는 데 전액 기부하겠다는 뜻을 전하겠다고 7일 밝혔다. 길원옥 할머니는 2010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해 독일을 방문했을 때 주독 콩고대사로부터 할머니의 투쟁이 콩고의 성폭행 피해 여성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고 격려받기도 했다. 정대협은 일본 정부의 법적 배상이 당장은 실현될 수 없다는 점을 감안, 할머니들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나비기금’을 만들어 오는 5월 콩고 성폭행 피해자 지원 활동을 벌이고 있는 콩고인 레베카 마시카 카추바에게 일차적으로 전달할 계획이다. 아울러 가수 이효리(33)씨가 나비기금의 첫 주자로서 기부금을 전달하겠다고 정대협에 의사를 밝혔다. 신진호기자 sayho@seoul.co.kr
  • “평화비 철거? 日 몰염치 철거하라”… 분노 더한 1001번째 수요시위

    “평화비 철거? 日 몰염치 철거하라”… 분노 더한 1001번째 수요시위

    “일본 정부는 평화비 철거를 요구하는 몰염치를 거둬라.” 21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1001회 정기 수요시위가 열렸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정기적인 시위였지만, 피해 할머니들의 분노는 더 크게 울려퍼졌다.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가 최근 한·일 정상회담에서 지난 14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건립한 소녀 형상의 ‘위안부 평화비’를 철거하라며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기증한 ‘희망 승합차’를 타고 시위에 참여한 김복동(85)·길원옥(84)씨 등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영하의 추운 날씨 속, 내리는 눈을 맞으며 한목소리로 일본 정부의 진심어린 사죄를 거듭 촉구했다. 참석자들은 길 할머니가 주도해 “바위처럼 살아가 보자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라고 시작하는 노래 ‘바위처럼’을 함께 불렀다. 빨간 산타 모자를 쓴 피해 할머니들은 ‘산타 할머니’가 돼 시위 참가자들에게 선물을 나눠 주기도 했다. 정대협 직원들은 직접 만든 덧신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증정하기도 했다. 캐럴인 ‘창밖을 보라’를 ‘전쟁은 안돼’로 개사해 부르며 참혹한 전쟁의 기억을 되새기기도 했다. 성탄절을 앞둔 이날, 평화비의 머리에는 빨간 털모자가 씌워졌고, 목에는 두툼한 목도리가 둘렸다. 무릎에는 빨간 담요가 덮였고 시려 보이는 발에도 덧신이 신겨졌다. 곁에는 빨간 모자를 쓴 작은 눈사람 인형이 놓여 소녀의 외로움을 달랬다. 김진아기자 jin@seoul.co.kr
  • 위안부 소녀 형상화 ‘평화비’ 건립… 日, 사과없이 철거 요구

    위안부 소녀 형상화 ‘평화비’ 건립… 日, 사과없이 철거 요구

    14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맞은편에 고개를 숙인 채 다소곳이 앉은 소녀의 상이 세워졌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1000번째 수요시위를 맞아 시민사회단체가 모금을 통해 만든 ‘평화비’였다. 130㎝ 크기의 평화비는 한복 차림에 손을 무릎에 모은 채 작은 의자에 앉은 위안부 소녀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소녀 옆의 빈자리는 그를 위로하는 시민들의 ‘자리’로 남겨 뒀다. 의자 옆 돌바닥에는 ‘1992년 1월 8일부터 이곳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가 2011년 12월 14일 1000번째를 맞이함에 그 숭고한 정신과 역사를 잇고자 이 평화비를 세운다.’라는 문구가 한국어와 영어·일본어 등 3개 국어로 새겨졌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주최로 열린 이날의 1000번째 수요시위에는 길원옥(84)·김복동(85)·박옥선(87)·김순옥(90)·강일출(83) 등 5명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와 한명숙 전 총리, 정몽준 한나라당 전 대표,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 등 정치권 인사와 시민 등 3000여명(경찰 추산 1000명)이 참석했다.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는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 정부에 과거 잘못을 사죄하고 배상할 것은 배상하라고 말해 줬으면 좋겠다.”면서 “일본은 이 늙은이들이 다 죽어 없어지기 전에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길원옥 할머니는 “우울하다. 저 일본인들이 사죄하지 않는데 1000회라고 해서 다를 게 뭐 있느냐. 각자가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 다시는 이 땅에서 나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게 해 달라.”고 당부했다. 사회를 맡은 배우 권해효씨는 “1000회를 맞는 이날까지 우리는 분노하고 있다. 소원이 있다면 다음 주에는 (시위를)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일본의 시민단체도 함께 시위에 참가했으며, 일본 NHK와 후지TV, 로이터 등 외국 언론사도 현장을 취재했다. 이날 일본 도쿄와 미국 뉴욕 등 8개국 42개 도시에서 똑같은 시위가 열렸으며, 국내에서는 서울과 경기, 부산 등 9개 시·도 30개 지역에서 집회가 열렸다. 한편 무토 마사토시 주한 일본대사는 이날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통상부를 방문, 박석환 제1차관을 만나 항의의 뜻을 전하고 평화비 철거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박 차관은 “일본은 위안부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하며, 우리 측이 요구한 한·일 양자 협의에 응해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고 외교부 당국자가 밝혔다. 김미경·김진아기자 jin@seoul.co.kr
  • “지진 피해자 추모했는데… 日에 또 분노”

    “일본이 또 배신했다.” 30일 정오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 수요일이면 늘 그랬던 것처럼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그러나 일곱명의 할머니들 얼굴은 하나같이 굳어 있었다. 입술을 굳게 다물거나 주먹을 꽉 쥐는 등 분을 삭이지 못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불과 이주일 전 같은 장소에서 열린 ‘일본 지진 희생자 추모집회’에서 보여 준 안타까운 표정은 찾을 수 없었다. 이날 치러진 제963차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수요집회는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중학교 교과서를 공식 채택해 역사왜곡을 시도하는 일본 정부를 규탄하는 자리였다. 피해 할머니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지난 16일 추모집회에서 “(일본인의) 죄는 미워도 사람은 밉지 않다.”고 말했던 그들은 “일본 정부는 역사왜곡을 중단하라!” “올바른 역사교육을 실시하라!”고 목청껏 구호를 외쳤다. 이날 일본 대사관 측에 항의서한을 제출한 길원옥(84) 할머니는 대사관을 나오며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에서 보듯 그들이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것에 너무 화가 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할머니들은 다른 때보다 더 격렬한 목소리로 일본을 비판했다.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는 “우리는 지금껏 일본의 지진피해자들을 생각했고, 그들을 위한 활동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일본의 죄상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 수밖에 없다.”면서 “아무리 일본이 우리에게 우호의 손길을 보내도 화해는 있을 수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정대협 측은 “일본의 지진과 쓰나미 참사의 아픔을 나누려는 국민들의 온정과 지지가 모이는 가운데 보인 일본정부의 이 같은 행보는 외교적 결례를 넘어 전면적인 분쟁 선포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지적했다. 집회에 함께 참석한 대학생 최희진(23)씨도 “죄를 지었으면 반성을 하고 할머니들에게 합당한 대우를 해 줘야 한다.”고 일본 정부의 반성을 거듭 촉구했다. 윤샘이나·김소라기자 sam@seoul.co.kr
  • “사람은 밉지 않다”… 말 없이 말했다

    “사람은 밉지 않다”… 말 없이 말했다

    “난 일본군의 칼을 맞고도 살아남았어. 그 원한이 평생 가슴에 사무치지만, 그들도 인간인 걸 어떡해. 너무 불쌍해. 울지 말고 힘내서 일어났으면 좋겠어.” 16일 낮 12시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다섯명이 매주 수요일마다 그래 왔던 것처럼 건물에 내걸린 일장기를 바라보며 의자에 걸터앉았다. 하지만 집회 때마다 항의의 표시로 할머니들 손에 들려있던 노란색 나비모양의 손 팻말은 없었다. 대신 흰색 바탕에 검은 글씨로 ‘희생자 명복을 빕니다. 일본 시민 여러분 힘내세요.’라고 적은 손 팻말이 보였다. 집회의 시작을 알리던 대학생들의 흥겨운 춤과 노래도 없었다. 조용한 음악만이 집회 현장을 채웠다. 이날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제930차 수요집회’는 동일본 대지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침묵시위’로 진행됐다. 위안부로 모진 고초를 겪었던 이옥선(84)·이용수(84)·길원옥(84)·김순옥(89)·박옥선(86) 할머니가 참석했다. 할머니들은 정신대대책문제협의회 관계자가 일본인의 안전과 무사 구출을 기원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낭독하자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10분간 묵념을 했다. 평소의 집회였다면 주먹을 불끈 쥐고 “일본 정부는 사죄하라!”고 외쳤을 할머니들이었다.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에 대한 한(恨)으로 가득한 가슴으로 일본인들이 겪고 있는 시름과 고통을 끌어안았다. 길원옥 할머니는 “우리가 (일본에 짓밟혀) 아팠던 것이 생각나지만, 고통받는 일본 사람들이 빨리 힘내야 할 텐데….”라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죄는 미워도 사람은 밉지 않다.”면서 “진심으로 일본 지진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힘내세요!”라고 외치는 이 할머니의 음성은 울먹임으로 떨리고 있었다. 정대협 허미례 간사는 “희생자를 추모하는 마음에서 침묵이라는 방식을 택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8일 어버이날… 6년째 일본군위안부 할머니 3명 모시는 손영미씨

    8일 어버이날… 6년째 일본군위안부 할머니 3명 모시는 손영미씨

    “배 아파 낳지만 않았지 모두 저를 친딸로 여겨주시는 어머니이십니다.”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7일 오전 서울 충정로 3가의 ‘우리집 쉼터’. 일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 세 분이 사는 이곳에서 만난 손영미(50·여·사회복지사)씨는 한 할머니의 머리를 매만지며 밝게 웃었다. 이날은 어버이날을 맞아 위안부 할머니와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직원들이 함께 점심 외식을 하는 날이었다. 정성스레 할머니들의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손씨의 표정은 싱글벙글이었다. 손씨는 “오후엔 어버이날 할머니들께 해드릴 고기를 사러 시장에 나갈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우리집 쉼터’에는 4명의 여성이 산다. 위안부 출신 길원옥(83)·이순덕(93)·김복동(83) 할머니와 이들의 ‘수호천사’인 손씨다. 2003년 11월 문을 연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부속기관인 우리집 쉼터는 건강이 나빠져 혼자 지내기 힘든 위안부 할머니들을 보듬어 주는 곳이다. 손씨는 할머니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딸이자 엄마, 그리고 때로는 든든한 가장이다. 24시간 할머니들과 함께 생활하며 할머니들의 식사, 건강, 취미 등을 모두 책임진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쁘다. 아침에 눈을 떠 밤에 잠들 때까지 할머니들을 씻기고, 식사를 준비하고, 일주일에 두 번씩 돌아오는 서예교실과 한글교실의 준비물을 챙긴다. 건강이 안 좋으신 할머니들이 시시때때로 두통과 복통을 호소하면 손씨는 새벽이라도 할머니들을 차에 태워 응급실로 달려간다. 그는 2004년부터 할머니들과 인연을 맺었다. 이 곳에 오기 전 부산의 한 수도원에서 행정일을 봤다는 그는 신부님의 추천으로 서울에 올라와 사회복지 공부를 시작했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돕는 일을 시작했다. 할머니들을 보다 전문적으로 돌보기 위해 경기대 사회복지학과에서 석사과정도 마쳤다. 학교도 쉼터에서 가까운 곳으로 정했다. 그는“급하면 바로 뛰어와야 되는데 어디 멀리 갈 수 있겠어요.”라며 웃었다. 손씨는 아버지를 19년 전에, 어머니를 12년 전에 잃었다. 지금까지 결혼하지 않았다. 때문에 “쉼터에서 할머니들을 만난 이후 ‘할머니들이 내 엄마고 할머니’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할머니들을 내가 모신다는 생각보다 이분들을 만나서 내 삶이 행복해지고 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돼 오히려 감사하다.”면서 “요즘 사람들은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보지도 않고 귀찮아한다. 어른들과 함께 살면 내가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면서 웃어 보였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위안부 해결없이 해방이란 말 못해”

    “위안부 해결없이 해방이란 말 못해”

    할머니의 숨이 거칠어졌다. 눈물이 촉촉이 맺힌 두 눈이 살짝 감기기 시작했다. 대화를 나눈 지 채 40분이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길원옥(83) 할머니는 꼿꼿하던 등을 소파에 기댔다. 3·1절을 이틀 앞둔 지난 27일, 서울 충정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쉼터 ‘우리집’에서 길 할머니를 만났다. “올해가 한일병합 100년이라지? 나라에서는 해방된 지 65년 됐다고 기념하는 모양이지만,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진정한 해방이라고 할 수 있나. 우린 아직도 해방되지 않았어.” 가늘게 이어가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할머니의 답답증은 3·1절, 광복절만 되면 심해졌다. 정부에서 ‘과거는 다 잊고 새로 잘해 보자.’는 말을 할 때면 억장이 무너져 내린다. 길 할머니는 “과거를 왜 없애. 인정할 건 하고 사과할 건 해야 앞으로 서로에게 좋은 것 아냐.”라면서 “자기 가족, 지인 중에 위안부 피해자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이럴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할머니가 바라는 것은 하나다.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 그것이다. “죽을 날이 머지않았는데, 뭘 더 바라겠어. 우리는 ‘배상’하라는 말은 안 해. 계속 할머니들이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으면 ‘이제 내 차례다.’싶어 불안하지.” 지난 10일 전북 익산에서 치료를 받던 이점례(89)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우리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86명으로 줄었다. 수요집회가 처음에는 “망신스러웠다.”고 했다. 텔레비전을 보는데 수요집회 장면이 나왔다. ‘나도 저기 나간다면….’ 잠깐 생각을 했지만 동네 망신스러워서 상상도 못했다. 수요집회를 알게 된 후로 매일 눈물이 났다. 견딜 수 없었다. 92년부터 시작된 수요집회에 길 할머니는 2002년부터 참여했다. 길 할머니는 거의 매일 추운 겨울, 더운 여름 가리지 않고 수요집회를 지킨다. ‘우리 후손이 당하면 안 된다, 알려야 한다’는 심경에서다. 할머니는 “일자무식에다 학교 근처에 가본 적도 없지만 강연에 나가서 증언할 때면 스스로 놀란다.”면서 “말하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워 우황청심환을 2~3개씩 먹지만 내 할 일이 그것이다.”고 말했다. 쉼터 친구인 이순덕(93) 할머니가 몸이 안 좋다며 병원에 갔다. “일주일에도 몇 번 있는 일이야. 둘 다 안 아픈 곳이 없어. 나도 당뇨가 있는데 오늘은 당 수치가 떨어지지 않아서 괴롭네.” 몸 가누기를 힘들어하는 길 할머니는 “팔십 넘도록 사람답게 한 번 못 살아봤는데, 죽기 전에 일본이 진심으로 사과하면 눈을 편하게 감을 수 있을 것 같다.”며 마지막 소원을 말했다. 글 사진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한·일 국민 1% 서명운동 추진”

    “한·일 국민 1% 서명운동 추진”

    “900회까지 오니까 먼저 간 사람들이 생각나. 1000회까지는 안 갔으면 좋으련만….” 6년 만의 강추위가 서울을 강타한 13일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900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 모인 길원옥(82), 강일출(82) 등 4명의 할머니는 목소리를 높였다.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를 밑도는 강추위지만 할머니들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수요집회를 잊지 않았다. 집회 참가자들은 외로운 싸움을 해 온 서로를 격려하고 앞으로도 꿋꿋이 힘든 싸움을 진행하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1992년 1월8일부터 진행 수요집회는 1992년 1월8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만행에 대한 역사교육 시행 등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면서 시작됐다. 1995년 1월 발생한 일본 고베 지진 때 단 한 차례를 제외하고 매주 진행됐다. 900회 수요집회에는 한국여성단체연합,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등 40여개 단체가 참가하거나 연대해 힘을 보탰다. 일본 도쿄·후쿠오카·오사카·나고야·교토와 독일의 베를린, 프랑스 파리, 미국 워싱턴·LA·뉴욕에서도 연대집회가 열렸다. ●“국회서도 앞장서줬으면” 윤미향 상임대표는 “앞으로는 일본 정부로 하여금 관련 법을 제정해 배상하고 사과하도록 하는 데 힘을 쏟겠다.”면서 “이를 위해 한국 국민의 1%인 50만명, 일본 국민의 1%인 100만명, 도합 150만명의 서명을 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집회에 참여한 캐나다인 안젤라(36)는 “900차 집회는 슬픈 기념일이다.”면서 “아직도 일본 정부가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화가 난다.”고 말했다. 이현숙씨도 “여성으로서 할머니들에게 감사한다.”면서 “할머니들 덕분에 여성의 인권이 향상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현재 한국에는 87명의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이 생존해 있다. 길 할머니는 “이렇게 추운 날씨에도 집회에 직접 찾아와 응원해줘서 감사하다.”면서 “시민들 덕분으로 늙은 몸이지만 하루하루 지탱해 나가는 것 같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강 할머니는 “시민들뿐만 아니라 국회에서도 앞장서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나눔 바이러스 2009] 굶주린 北아이에 아낌없는 후원

    [나눔 바이러스 2009] 굶주린 北아이에 아낌없는 후원

    “내가 보낸 콩우유로 북한 아이들이 쑥쑥 큰다니 얼마나 좋아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북한 어린이들에게 콩우유를 보내주는 일에 팔을 걷었다. 주인공은 길원옥(사진 오른쪽·82) 할머니. 길 할머니는 지난 18일 콩우유 기계 한 대 값인 성금 500만원을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겨레하나)에 전달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주변 사람들도 ‘길사모(길원옥 할머니를 사랑하는 모임)’란 모임을 만들어 후원을 돕겠다고 나섰다. 평양이 고향인 길 할머니는 13살 때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뒤 분단 때문에 다시는 고향으로 되돌아가지 못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5월 겨레하나의 도움으로 70년 만에 고향 땅을 밟게 됐다. 그곳에서 콩우유를 맛있게 먹는 북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후원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겨레하나는 2005년부터 북녘어린이 콩우유 사업본부를 만들어 북한 탁아소와 유치원에 콩우유 기계와 재료비(한 달에 50만원)를 지원하고 있다. 길 할머니는 “기계 한 대로 북한 아이들 50~100명이 콩우유를 배불리 먹는 대요. 나같이 힘없는 사람이라도 굶주린 아이들이 쑥쑥 자랄 수 있게 도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에요.”라며 웃어 보였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가슴속 아픔 보듬은 ‘특별한 어버이날’

    가슴속 아픔 보듬은 ‘특별한 어버이날’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8일 경기 평택 ‘햇살복지회’의 담장 너머로 ‘어버이 은혜’ 노래가 울려 퍼진다. 왼쪽 가슴에 카네이션을 단 할머니 35명의 얼굴에 쓸쓸한 미소가 스쳐갔다. 이날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쉼터에 거주하는 할머니 10여명과 ‘햇살복지회’와 함께하는 평택 기지촌 할머니 25명이 함께 어버이날을 보냈다. 같은 아픔을 공유하는 할머니들은 만나자마자 금세 언니 동생이 됐다. 이날 행사는 정대협, 한소리회, 민변 여성위원회 등 여성단체들의 연대체인 ‘기지촌 여성들과 함께하는 여성연대’가 주최했다.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는 위안부·기지촌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해 열어드린 잔치 마당이다. 오전 11시30분쯤, 팽성 시립 남산어린이집에서 온 어린이 20여명이 복지회 마당에 들어섰다. 아이들은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할머니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 드렸다. “할머니 오래 사세요.”라며 고사리 손으로 핀을 꽂더니 한약과 양말이 담긴 선물도 할머니들에게 하나씩 건넸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할머니들의 얼굴이 환하게 빛난다. 곧이어 아이들은 가수 박현빈씨의 ‘샤방샤방’을 부르며 재롱을 떨었다. 할머니들은 “쟤네들도 다 내 손자야. 세상 아들 딸이 다 내 아들 딸이거든.”이라며 얼굴에 웃음꽃을 피웠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픈 세월을 겪었던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동병상련 때문일까. 할머니들은 단 하루 곁에 있었을 뿐인데 서로의 상처를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듯했다.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는 “같은 아픔을 나누는 분들이라 그런지 금방 친해졌다.”며 기뻐했다. 아이들 재롱 속에 할머니들은 흥겨워했지만 그렇다고 가슴 한 편에 묻어둔 아픔까진 지우지 못한 듯했다.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82) 할머니는 “괴롭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 고통을 당하고 살았나 생각하니까….쓸쓸한 마음이야.”라며 고개를 떨궜다. 햇살복지회 우순덕 회장은 “올해 처음으로 함께 모였는데, 어버이날뿐 아니라 할머니들 주거 문제나 진상 규명을 위해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위안부 할머니 교문앞 통곡

     “한밤에 자는데 입 막고 등에 총 들이대면서 끌고 갔다.그때가 15살 때다.”  백발 할머니가 고등학교 교문 앞에서 소리 치고 있었다.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이용수(80) 할머니다. 그 옆엔 같은 단체 길원옥(81) 할머니가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말 없이 눈가가 붉었다.할머니들은 “우리가 아직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데 어떻게 이런 특강이 열린단 말이냐.”고 했다.28일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의 한국현대사 특강이 열린 서울 인창고 교문 앞이었다.  안 교수는 “일제 시대 정신대는 강제동원이 아닌 자발적 매춘이었다.”고 주장해 물의를 일으킨 인물이다.뉴라이트 교과서를 만든 교과서포럼 고문이기도 하다.  정대협 할머니와 참교육학부모회,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관계자 10여명은 특강 시작시간인 오전 10시,인창고 앞에서 “역사왜곡 특강을 당장 중단하라.”며 기자회견을 열었다.그러나 안 교수와의 만남은 없었다.충돌을 우려한 안 교수는 이날 오전 9시쯤 미리 학교로 진입했다.  기자회견 후 정대협 할머니들은 강의실로 향했다.“직접 안 교수를 만나 얘기를 해 봐야겠다.”고 했다.그러나 들어가지 못했다.교직원들이 막았다.“누군데 마음대로 학교에 들어오냐.”,“안 교수를 만나 할 얘기가 있다.”는 고성이 서로 오갔다.할머니들은 “추후에 정신대 할머니들 특강도 따로 마련하겠다.”는 약속을 들은 뒤 학교 밖으로 나왔다.  안 교수는 논란을 의식한 탓인지 조심스러운 분위기로 강연을 이어갔다.“나는 보수적 견해에서 얘기를 하는 것일 뿐이니 옳고 그름은 학생들이 다른 얘기도 들어보고 알아서 판단하라.”는 말도 수차례 반복했다.특별히 논란이 될 만한 발언은 없었다. 그는 “진보가 대한민국의 역사를 실패한 역사라고 하고,김정일과 손잡고 통일하자는데 어떤 게 좋을지 여러분이 잘 생각해보라.”고 했다.그러면서 “진보도 결국 근대화의 산물인데 왜 그들은 한국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도 했다.강의에는 이 학교 3학년 학생 80여명이 참석했다.  서울 창문여고에서 열린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의 특강과 강서공고에서 열린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의 강연도 별다른 무리 없이 끝났다.학교측은 “미리 교육청에 편파적 강연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전세계 힘모아 위안부 문제 풀자”

    “전 세계가 힘을 모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하자!”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피해자와 전 세계 활동가들이 모이는 제9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아시아 연대회의가 23~25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다. 재일 한국 YMCA 건물에서 열리는 이번 회의에는 한국을 비롯해 중국, 필리핀 등지의 피해자와 앰네스티인터내셔널 활동가 등 300여명이 모인다.1992년부터 2년에 한 번씩 열린 이 회의는 일본 정부의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의 피해국 활동가들이 만들었다. 올해는 각국 활동가들의 경과보고와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 공개 심포지엄과 공동 결의문 채택 등을 할 예정이다. 올해 회의를 주최하는 일본의 아시아연대회의 실행위원회 대표 다카하시 기쿠에는 “지난해 미국·캐나다·네덜란드 하원과 유럽 의회에서 위안부 문제 결의안이 채택되는 등 일본군 성노예 문제가 과거 아시아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의 세계적 인권문제라는 사실이 부각됐다.”면서 “그러나 피해자에게는 시간이 얼마 없다. 하루 속히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죄 결의를 채택하고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는 법안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길원옥(81), 이수산(82), 이용수(81) 할머니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관계자, 곽정숙 민주노동당 의원 등이 참여했다. 곽 의원은 “필리핀, 타이완, 한국 등 결의안을 채택한 나라들이 점점 늘어나는 분위기에 맞춰 올해 연대회의의 분위기는 사뭇 뜨겁다.”면서 “일본 정부는 피해자들이 살아있을 때 사죄와 배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서울시 여성상’ 대상 길원옥씨

    1998년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피해를 당한 사실을 고백한 이후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해 앞장서 온 길원옥(81)할머니가 2일 ‘제5회 서울특별시 여성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길 할머니는 과거의 피해로 인해 육체적인 질병을 얻었지만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린 뒤에는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있다. 길 할머니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외 각국을 순방하며 역사적 진실을 알리고, 문제 해결에 함께 나서 줄 것을 요청해 왔다. 지난해 11월에는 네덜란드·벨기에·독일·영국 등 유럽 4개국을 순방하며 네덜란드와 유럽연방 의회가 일본정부의 사죄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유럽의회, 日 위안부 사과·배상 촉구

    |파리 이종수특파원|유럽의회는 13일(현지시간) 오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본회의를 열고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인정과 사과·배상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은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날 본회의에서는 최대 정파인 중도 우파 성향의 국민당을 비롯해 사회당·자유당·녹색당 공동 명의로 발의한 제재안 투표에서 57명의 의원이 참석해 찬성 54표, 기권 3표가 나왔다. 국제사회에서 일본군의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한 것은 지난 7월30일 미 하원을 시작으로 네덜란드 하원(11월8일), 캐나다 연방하원(11월28일)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다. 결의안은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이 20만명 이상의 아시아 여성들을 위안부로 강제동원해 저지른 만행을 일본 정부가 인정하고 공식 사과와 배상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또 일본 역사 교과서에 그 진상을 정확하게 기술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애초 국민당 등 5개 정당이 각각 발의했지만 10일부터 각당 대표들이 모여 의견을 조율한 뒤 공동 명의로 발의했다. 이번 제재안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국제사회에 일본군의 만행을 환기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단일 국가가 아니라 유럽 시민들을 대표하는 의결 기구인 유럽의회에서 일본군의 위안부 만행에 대한 제재안을 채택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의 상징적 의미가 더 커진 셈이다. 유럽의회의 이날 제재안 채택에 앞서 한국의 길원옥(79), 네덜란드 엘렌 판 더플뢰그(84), 필리핀의 메넨 카스티요(78) 할머니는 국제앰네스티 주관으로 벨기에·영국·독일 의회와 시민단체 등을 방문해 국제적 연대를 호소했다. 특히 길 할머니 등은 지난달 6일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의회에서 처음 열린 인권·민주 분과위원회 위안부 청문회에 참석해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고 결의안 채택을 촉구하기도 했다.vielee@seoul.co.kr
  • 위안부 희생자들 ‘성난 발걸음’ 영국으로

    |파리 이종수특파원|일본군의 만행을 규탄하는 위안부 희생자들의 ‘성난 발걸음’이 벨기에와 네덜란드를 거쳐 영국으로 이어졌다. 국제 앰네스티 운동가들과 함께 영국에 도착한 길원옥 할머니 등 위안부 희생자들은 12일(현지시간) 런던 주재 일본대사관 앞에서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의 위안부 만행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이날 ‘62년이 지나도 정의를 바라고 있다.’는 깃발을 들고 “일본 의회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하고 일본 정부는 희생자들에게 배상하라.”고 촉구했다. 또 유럽의회가 추진하고 있는 ‘위안부 동의안’을 지원해 달라는 내용을 담은 포스트카드를 지나가는 이들에게 나눠주면서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했다. 행사를 주도한 앰네스티의 아이리스 청은 “이번 시위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진실을 말하도록 촉구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라며 “서울의 일본대사관 앞에서 정기적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든 위안부 희생자들과의 연대감을 보여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앞서 길 할머니 등은 지난 6일 유럽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일본군의 만행과 자신들이 겪은 참상을 생생히 증언했다. 이어 8일에는 네덜란드 하원을 방문해 자유민주당 의원들을 만나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는 공개 서한을 전달했다. vielee@seoul.co.kr
  • 위안부 할머니들 유럽도 울렸다

    “열세살 때 집앞에서 놀다가 초등학교에 있던 일본군 막사로 끌려갔다. 일본군 두명이 들어와 성폭력을 했다. 저항하자 담뱃불로 목을 지졌다. 목에서 피가 나서 죽는 줄 알았다. 이후 낮에는 청소하고 밥하고, 밤에는 성노리개로 학대당하는 생활이 계속됐다….” 6일 오후(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유럽의회 의사당에서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피맺힌 증언이 절절히 이어졌다. 사상 처음으로 유럽의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청문회가 열렸다. 한국의 길원옥(79), 네덜란드의 엘렌 판 더 플뢰그(84), 필리핀의 메넨 카스티요(78) 등 세 명의 할머니들은 일제의 만행을 생생하게 고발했다. 이들은 아직도 공식 사과를 안 하고 있는 일본에 유럽 여러 나라들이 압력을 가해달라고 호소했다. 길 할머니는 “열세살 때 고향인 평양에서 돈벌고 기술을 가르쳐 준다기에 철없이 부모에게 알리지 않고 따라갔다.”면서 “막상 가보니 공장이 아니라 다다미 한장 깔린 조그만 방이었다.”고 운을 뗐다. 이어 “곧 군인들이 차례로 들이닥쳐 몹쓸짓을 했고, 울고 소리지른다고 때렸다. 몹쓸 성병을 얻었다는 기막힌 이유로 집에 돌아올 수 있게 됐다.”고 증언했다. 할머니는 이어 “병에서 회복되자 다시 어떤 사람이 와서 기차에 실어 어디론가 데려갔고, 이번엔 조금 더 컸다고 연속해서 군인들을 들여보냈다.”면서 “열여섯살 때 다시 성병에 걸려 일본군 의사가 자궁을 들어냈을 때 속으로 ‘죽었구나’라고 느꼈다.”고 털어놨다. 할머니는 끝으로 “그 아픔과 괴로움은 듣는 것만도 힘들 것이다. 몸이 성한 곳이 없다. 배 수술만 네번을 했다.”면서 “(일본이) 한마디 사과하는 말이 없으니까 여러분 힘을 빌려 죽기 전 소원을 풀어볼까 하고 아픈 몸을 이끌고 여기까지 왔다. 많이 도와달라.”고 흐느꼈다. 엘렌 판 더 플뢰그 할머니는 “열일곱살 때 인도네시아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 당시 얻은 성병은 일본군이 패배한 후 네덜란드로 돌아와서야 고쳤다.”면서 “이후 62년이나 지났지만 일본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항상 거짓말을 하고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분개했다. 열세살 때 일본군에게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했다는 메넨 카스티요 할머니는 “도움을 요청하러 여기에 왔다.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법적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우리 모두 늙고 죽어가고 있다. 가난하게 살고 있고 먹을 것도 부족하다.”며 도움을 호소했다. 이날 청문회는 국제앰네스티의 주선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이 유럽 국가를 방문해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이야기하는 ‘스피킹 투어’의 일정 중 하나로 이뤄졌다. 오는 25일 국제 여성폭력 근절의 날에 앞서 런던, 베를린 방문도 예정돼 있다. 이날 청문회엔 유럽의회 의원들과 의회관계자, 인권단체 회원, 언론인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한편 교도통신은 7일 일본 사이타마현이 히가시마쓰야마시 평화자료관 내 ‘쇼와(昭和)사 연표’ 가운데 ‘종군위안부’란 표현에서 ‘종군’부분을 삭제하고 ‘위안부’로 바꾼 채 8일부터 공개키로 했다고 보도했다.김성수 이재연기자 sskim@seoul.co.kr
  • “日 정부는 할머니들 돌아가시기 전에 사죄를”

    “日 정부는 할머니들 돌아가시기 전에 사죄를”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책임지고 공식 사죄해야 합니다.” 22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제755회 수요집회에서 일본인 극단 ‘극단 수요일’이 20분 남짓 공연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공연 제목은 ‘바다를 넘어 연결되는 우리’로 모두 4장으로 구성돼 일본인의 조선인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다뤘다. 원래 1시간 분량이지만 집회 시간을 고려해 20분만으로 짧게 끝냈다. 도쿠다 유키히로(65) 단장은 “미국 하원에서 위안부결의안이 통과됐지만 생존한 위안부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일본 정부의 빠른 사과와 배상이 있어야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2005년 창단한 이 극단은 “일본 정부는 위안부 제도를 전쟁범죄로 인정하고 그 책임자를 규명, 처벌해 피해 여성들에게 법적 배상을 하라.”며 그동안 일본에서 21차례 공연했다. 전문 극단이 아니어서 각자가 생계를 꾸려가며 시간이 날 때마다 공연을 하고 있다. 도쿠다 단장은 “일본 사람들이 위안부 문제를 접하지 못하고 일종의 차별 의식을 가지면서 무지해지는 것을 보고 이를 깨우쳐 주고 싶었다.”면서 “그래서 극단 이름도 수요집회를 의미하는 수요일이라고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 공연을 통해 일본인들의 관심을 얻을 수 있었고 재일교포들과 연대를 하게 된 성과도 있었다.”면서 “이 덕분에 일본내 조선학교에서 한국어 공연을 세 번 했고, 교과서에 없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어린이들이 관심을 갖도록 하는 효과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날 수요집회에는 연극 관람을 위해 강북청소년 수련관 학생 40명과 위안부 피해 할머니 6명이 나왔다. 극단 수요일의 니시오카 사토루(75) 고문은 암으로 투병하면서도 참석해 할머니들을 위로했다. 위안부 피해 여성인 길원옥 할머니는 “일본 사람들이 와서 우리 문제를 알리는 연극을 공연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한다.”면서 “한 손에도 손가락 크기가 다 다르듯이 일본인도 이렇게 양심 바른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에 힘이 된다.”고 말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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