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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인디언 서머/문소영 논설실장

    추석이 지나고 귀 따가운 매미 울음을 견디며 열어 놓은 창문으로 서늘한 바람이 들어와 가을인가 싶었다. 잘 싸놓았던 온수 매트를 꺼내 등짝을 지진 지 2주가 넘었는데, 어제오늘 덥기가 한여름 같다. 일요일 출근해 사무실에 앉아 있자니 에어컨도 작동을 안 해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가을에 되돌아온 늦더위인지라 ‘인디언 서머’인가 싶었다. 사전을 찾아보니 인디언 서머가 되려면 가을이 더 깊은 뒤에 찾아오는 더위여야 한다. 북아메리카에서 한가을부터 늦가을 사이에 비정상적으로 따뜻한 날이 계속되는 기후 현상을 말하니 말이다. 100일을 기른다는 김장 배추를 10년째 키우다 보니 여름처럼 더운 날씨가 채소에게 얼마나 좋은지 금방 알게 된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배추 모종을 겨우 1주일 앞서서 심었을 뿐인데, 그 1주일 차이에 배추 크기가 두 배는 되는 것 같다. 지난해 찍어 놓은 사진과 비교하니 그렇다. 다들 적기라는 것이 있다. 생일이 늦은 친구들에게 ‘여름날 하루 땡볕이 어딘데´라며 나이를 벼슬처럼 자랑할 만한 수준의 날씨다. 더위에 짜증이 날 뻔하다가 뒤늦게 온 땡볕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랄 텃밭의 장미꽃 같은 김장 배추를 떠올리니 짜증이 노글노글해진다.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빨래가 마르는 동안/황수정 논설위원

    광고에서 빨래를 아직도 햇볕에 말리느냐, 전기 건조기에 맡겨라, 닦달을 한다. 볕에 빨래를 말리는 일에 이렇게 면박을 줘도 되는 건가. 젖은 빨래를 탈탈 털면서 나는 툴툴거린다. 무진장 볕에 절개를 지키리라 마음 다지면서. 편리(便利)에 밀려나 뭉개지는 풍경들이 있다. 바지랑대에 떠받친 빨랫줄은 마당귀의 햇볕 명당에서 사시사철 보초를 섰다. 여름의 소임을 다한 홑이불이 뿌듯하게 나부꼈거나, 나달거리는 난닝구가 사방에 삶은 비누내를 풍겼거나, 장롱에서 갓 나온 긴소매 옷들이 몸을 돌려가며 누웠거나. 빨랫줄은 종일 붐볐고, 그 아래로 장독대 봉숭아는 씨앗주머니나 터뜨리면서 일없이 놀았고. 손끝에서 마르던 빨래의 안부는 사람의 안부였다. 솔기마다 속속들이 살아가는 안부가 궁금했던 일. 늘어진 소매, 무릎이 나온 바짓자락, 간당간당 뒤꿈치 닳은 양말짝. 안녕의 이야기들로 빨랫줄은 눈이 부셨다. 빨래가 마르는 하늘을 볼 수 없어졌다. 빨래를 널고 걷는 시간은 벌었는데, 시간 속에 훈김을 담아 차곡차곡 개키는 법은 다 잊어버렸다. 볕 좋은 베란다에 빨랫줄이나 걸어 볼까. ‘나이롱’ 빨랫줄이 가야금보다 쨍한 소리를 튕길 것 같은 이런 가을날에. sjh@seoul.co.kr
  • [길섶에서] 100대 명산/이종락 논설위원

    우리나라 땅의 65.2%인 6만 4775㎢는 산지로 이뤄져 있다. 우리나라 산의 평균고도는 482m인데, 아시아의 평균고도 960m에 비하면 비교적 낮은 지대로 돼 있다. 어느 정도 높이가 되면 산이라고 하는가에 대한 기준이나 원칙은 없다. 지형적인 특성이나 나라, 지방 또는 기관별로 견해를 달리한다. 우리나라에선 보통 해발고도가 500m 이상이면 산으로 보는 게 통념이다. 산림청은 지난 2002년 우리나라 산 중에서 아름답고 의미 있는 산들을 모아 ‘한국의 100대 명산’에 선정했다. 등산용품 업체인 ‘블랙야크’, 월간지 ‘산’, 등산사이트 ‘한국의 산하’ 등도 제각각 100대 명산을 뽑아 등산 동호인들의 산행을 돕는다. 공식 통계를 공개하는 블랙야크는 11만 7643명(25일 현재)이 100대 명산 도전에 등록했고 매주 2만여명이 전국의 100개 명산에 오른다고 한다. 올해 65세인 큰형님도 지난 2017년 9월부터 100대 명산 등정을 시작해 다음달 초에 완등한다. 2년 동안 매주 꼬박 1개씩 오른 셈이다. 몇 달 전 등산에 함께 나섰다가 열 살 위인 형 뒤를 따라가느라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무척 힘겨워한 적이 있다. 60대 중반에도 젊은이 못지않은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형을 보며 100대 명산 등정의 효험을 새삼 느꼈다. jrlee@seoul.co.kr
  • [길섶에서] 엘리베이터/이순녀 논설위원

    마침내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한 달여 전 아파트 게시판에 안내문이 붙었다. 추석 연휴가 끝나면 엘리베이터 교체 공사를 한다는 알림이었다. 오래된 아파트여서 시설물 고장이 심심치 않게 발생했는데, 엘리베이터도 그중 하나였다. 고장이 날 때마다 수리해서 사용하더니 결국 한계에 이른 모양이었다. 문제는 엘리베이터가 딱 한 대여서 짧지 않은 공사 기간에 꼼짝없이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집은 15층 중 9층. 가끔 운동 삼아 계단을 오르내린 경험상 체력적으로 큰 무리는 아니다. 조금 귀찮긴 해도 고층에 사는 주민들에 비하면 충분히 감내할 만하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하지 않던가. 이참에 ‘강제 운동’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걱정은 따로 있다. 택배와 배달 음식이다. 관리실에 보관하거나 1층 현관 입구에서 기다렸다가 받아 오는 방법이 있지만, 쌍방 불편하긴 마찬가지. 그리하여 엘리베이터가 다시 가동될 때까지 가급적 택배나 배달 음식은 자제하기로 마음먹었다. 다만 미처 예상치 못한 불편이 있었으니 바로 신문 배달. 공사 첫날 문밖에 신문이 없어서 어리둥절했는데, 출근길에 보니 1층 우편함에 다소곳이 꽂혀 있었다. 당분간 난감하게 됐다. coral@seoul.co.kr
  • [길섶에서] 사기꾼 이동식/이지운 논설위원

    ‘사기꾼 이동식.’ 그렇게 생각한다. 이동식을 만나면, 늘 고민한다. 비서의 보고를 받을 때면, “동식이라고? 이번엔 진짜인 거야?”라고 되묻게 된다. 이동식은 어지간하면 ‘가짜’다. 새 국도, 지방도로에 압도적으로 많다. ‘누가 이 인적 드문 곳까지 찾아와 카메라를 설치하랴!’ 합리적 추론은 적중률이 높다. 그러나 어쩌다 날아든 통지서는 ‘허풍쟁이도 진실을 말할 때가 있다’는 진리를 깨닫게 한다. 그러니 ‘내(비게이션) 비서’의 보고 자체를 무시할 수는 없다. 이동식은 아마도 ‘무인식’의 뒤를 이었을 것이다. 사고 예방을 위해 설치된 가짜 ‘무인’(無人) 단속 카메라에는 논란이 일었다. 효과는 탁월했지만, 모형 무인 카메라는 국민을 속이는 것으로 비난받았다. 법 집행이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언제부턴가 비서가 새로운 보고를 시작했다. ‘박스형’이다.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한참을 지나서야 이동식의 새 이름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이동식은 그렇게 십수년 만에 사라지는가. 동식이는 그나마 친근감이라도 느껴지는데…. 길 위의 고민이 과했다. 사기(詐欺)를 부르는 건 욕심인데, 공연히 동식이 탓을 해 왔다. 왜 길에 올라 고민하는가? 천천히 가는 법을 배우지 못한 탓이다. 답을 알긴 아는데…. jj@seoul.co.kr
  • [길섶에서] 잘 말하고 잘 듣기/이동구 수석논설위원

    모파상은 “인간이 말하는 단어들은 하나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우리 속담처럼 말은 실제로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에게 모두 영향을 미치는 힘이 있는 듯하다. 말은 언제나 가려서 해야 하는 이유다. 선현들은 “신중히 세 번 생각하고 한 마디 말하라(三思一言)”라고 했다. 진실성이 없는 말은 공허한 메아리, 헛소리로 들릴 뿐이니까. 정치인들은 단순하고 분명한 것조차 복잡하고 모호하게 이야기하는 버릇이 있다. 진실을 그럴듯하게 포장된 언어로, 화려한 말솜씨로 가리고자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내뱉는 수많은 미사여구에 웬만해선 대중이 잘 수긍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의 말에 진실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이미 여러 차례 경험하고 실망한 탓이다. 주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가지려면 말하는 사람도 신중해야 하지만 듣는 사람도 마음의 문을 열고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격언은 여전히 미덥다. 한 유명 작가는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은 하나의 예술이다”라고 역설하기도 했다. 소통이 삶의 기본이라면, 소통의 기본은 올바로 말하고 제대로 듣는 게 아닐까. yidonggu@seoul.co.kr
  • [길섶에서] 잉꼬부부의 온도차/장세훈 논설위원

    가을바람이 분다. 여름 내내 아내와의 ‘에어컨 눈치전쟁’이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다. 가을바람은 또 다른 눈치작전을 불러온다. 아내는 이즈음 구스 패드를 꺼낼 채비부터 한다. 겨울용인 줄 알았는데 비(非)여름용으로 쓴다. 해를 넘겨 장마철이 다가올 때쯤 다시 접어 보관하니, 구스 패드가 침대 위로 늦게 올라오기만 바랄 뿐이다. 부부간 온도차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신체적 차이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현상인 탓이 크다. 내 온도에 맞추면 아내는 “춥다”는 말을 연신 입에 달고 다니고, 아내 온도에 맞추면 여름이든 겨울이든 반바지 차림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어중간한 온도는 나와 아내 모두의 불평 대상이다. TV에서 ‘사랑꾼부부’나 ‘잉꼬부부’로 소개되는 인사들을 보면 언제부턴가 “부부간 온도차는 못 느낄까?”라는 게 따라붙는 궁금증이 됐다. 온도차가 어찌 신체 문제에서만 있겠는가. 사고 방식, 가치 체계, 양육 관점 등 무수한 차이가 있다. 몸의 온도를 맞추는 것보다 마음의 온도를 맞추는 게 더 어렵다. 가끔 사석에서 부부가 화제로 오르면 농반진반으로 “부부싸움의 원인은 바로 부부간 대화야”라고도 한다. 그럼에도 서로 눈치를 보니 부부고, 싸우다가도 맞춰 줄 수 있으니 부부다. shjang@seoul.co.kr
  • [길섶에서] 헛기침과 공중예절/김균미 대기자

    30대 남성이 휴대전화로 한창 통화를 하고 있다. 엄청 큰 소리로 통화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목소리를 낮추거나 입을 가리고 얘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은 원하지 않아도 그 남성의 개인적인 얘기를 듣게 된다. 가족 모임 때 뭘 먹을지를 놓고 이야기가 오간다. 그러더니 옷으로, 자신의 패션 감각으로 얘기가 옮겨 간다. 그 즈음 버스 안 여기저기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린다. 동시에 터져 나온 헛기침 소리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목소리 좀 낮춰 주세요’, ‘중요한 이야기 아니면 나중에 버스에서 내려서 하시죠’라고 말하는 듯하다. 승객들이 보낸 무언의 신호를 눈치챈 건지 알 수 없으나 얼마 안 지나 전화를 끊었다.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통화하는 사람들이 많다. 남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경우도 많다. 듣기 민망한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이를 지적하는 이는 많지 않다. 대신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큰 숨소리와 헛기침,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린다. 소심한 항의의 몸짓이다. 무언의 신호를 그 사람들이 알아채 주길 바라면서. 문득 ‘공중도덕’, ‘공중예절’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오랜만이다. 요즘은 배려에 자리를 내주고 잘 쓰지 않지만. kmkim@seoul.co.kr
  • [길섶에서] 햇볕맞이/전경하 논설위원

    계절이 바뀌는 시기의 연휴나 주말에 햇볕이 좋으면 마음이 바쁘다. 계절이 바뀌면 한 계절 동안 가족들이 덮고 자던 이불들을 빨아서 정리하고 오는 계절에 맞는 이불로 바꿔야 한다. 넣어둘 이불을 바짝 말리기에는 맑은 햇볕이 제격. 이불을 말리다 보면 이불 친구인 베개도 함께 빨래걸이에 오른다. 건조기가 신생활 가전으로 등장한 요즘이라지만 그래도 공짜에 살균 제대로인 햇볕이 제일 마음이 편하다. 내가 편한, 원하는 시간에 오지 않는 햇볕에 일하는 시간을 맞추느라 때론 투덜댄다. 올 추석 연휴에도 까슬한 여름 이불을 건조기에 넣기가 꺼림칙해 햇볕 오기만을 기다렸다. 건조기에 살균 기능도 있던데 건조기에서 막 꺼낸 옷감의 온도를 생각하면 살균 기능 역시 까슬한 여름 이불에는 아니다 싶다. 면 속옷이나 수건, 애착인형 등은 건조기를 쓰는 걸 생각하면 여름 이불은 까탈스럽다. 햇볕 가득 품은 이불은 제철에 다시 만나자는 다짐과 함께 이불장 안으로 깊이 들어갔다. 한낮 햇볕을 가득 담은 베개는 가족들 머리맡에 있다. 뽀송뽀송한 햇볕 냄새에 그날은 잠이 그냥 달다. 사람이 햇볕을 가득 품으면 나쁜 생각이 사라지는 건 없을까. 햇볕이 우울증에 좋다니 나름 효과가 있나 보다. 햇볕이 달다. lark3@seoul.co.kr
  • [길섶에서] 그때, 그곳/손성진 논설고문

    머릿속 깊숙한 데 파묻혀 있던 기억이 불려 나온 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어떤 사람이 종로3가 쉘부르에서 ‘진정 난 몰랐네’란 노래에 빠져들었던 그때가 아련히 떠오른다고 했다. 45년 전 1974년 어느 봄날이라 했다. 내 기억 속의 장소는 대학가의 허름한 술집, 1981년 겨울이었다. LP 판에서는 같은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멋모르는 청춘이었고 뭔지 알 수 없는 이유로 심장은 터질 듯했었다. 세월은 무심히도 흘렀다. 무엇을 향해, 무엇을 위해 달려왔는지도 모르는 사이 가만히 있어도 울렁대던 가슴은 사막처럼 바싹 메말라 버렸다. 앞날을 알 수 없었던 그때는 비록 힘들고 어두웠고 더러는 후회로 남았더라도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잠시 회상에 빠져 본다고 해서 나쁠 건 없다. 도리어 가뭄 끝의 소나기처럼 마른 가슴을 적셔 준다. 누구에게나 젊은 날이 있었다. 청춘의 애틋함은 사라진 게 아니다. 기억 속에선 봄 순처럼 살아 꿈틀댄다. 지금 이 순간도 미래에는 추억으로 회자되리라. 모든 것에 열정을 쏟는다면 먼 훗날 오늘을 돌이켜 보면서 되뇔 수 있을 것이다. 후회 없이 살았노라고.
  • [길섶에서] 몽중몽(夢中夢)/박록삼 논설위원

    초등생 시절 늘 어울리던 친구 A가 문득 집을 찾아왔다. 최근 10년 넘도록 못 봤는데 엊그제 차를 바꿨다는 둥 늘상 만나온 듯하더니 소주나 한잔하자 한다. 추석 명절이라 반가운 동무 만난 듯했다. 근데 뭔가 부자연스럽다. 술집 공간이 자꾸 바뀌고, 대화 주제도 맥락 없이 바뀐다. 자식 얘기하는가 싶더니 우주 탄생의 비밀을 풀어냈다가 또 정치 얘기로 이어졌다. 모처럼 봤는데 사사건건 의견이 부딪치는 게 조금 불편했다. 어느새 아내가 곁에 앉아 술 좀 그만 마시라며 성화다. 무례한 태도에 친구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해서 신경질을 확 냈다. 문득 보니 침대에 반듯이 누워 있었고, 친구는 온데간데없다. 꿈이었다. 다행이다 생각하며 일어날까 말까 하며 머뭇거리던 중 아내가 옆에서 “이거 꿈 같지? 꿈 아니야! 그러니까 술 좀 작작 마시라고”하면서 또 지청구를 연신 늘어놓는다. 괴로웠다. 꿈에서야 소나기에 맞서는 호기를 부릴지언정 현실에서는 피하는 게 상책이다. 귀찮은 마음속에 “어, 어 알았어”하며 건성으로 대답하는 중 문득 눈이 떠졌다. 아내는 옆에서 세상 모른 채 코 골며 자고 있고. 연휴 끝날 새벽녘 ‘꿈 속의 꿈’이다. 친구에 연락 게을리한 나태함, 주도락(酒道樂)하는 무사안일함을 심히 꾸짖는다. youngtan@seoul.co.kr
  • [길섶에서] 집으로/황수정 논설위원

    빗방울이 한두 점 떨어지면 아까는 불러도 대답 없던 어머니는 어디선가 틀림없이 나타나셨다. 저만치서 보내는 손짓은 어서 빨래를 걷고 장독 뚜껑을 닫으라는 수신호였다. 딴 건 몰라도 나는 언제나 그 신호만은 찰떡같이 알아먹었다. 작가 이태준은 ‘무서록’에서 길을 가다 어느 집 부엌의 저녁 짓는 그릇 소리에 문득 내 집, 내 어머니가 그립다고 썼다. 그릇 소리에 꼬리표가 붙었을까마는, 간절한 옛 문장을 내내 기억하게 된다. 나는 장독 뚜껑 여닫는 소리에 고향집이 생각난다. 이즈음 우리 집 장독대의 단지들은 날마다 바람을 쐬었다. 금싸라기 볕에 장맛은 속속들이 단물이 들지 않고는 못 배겼다. 햇된장이 떫어질세라 따독따독 눌러서는 장독 주둥이에다 쨍쨍, 숟가락을 털고 하얀 광목으로 뚜껑을 싸매면 저녁 해가 기다렸다가 꼴깍 넘어갔다. 다정했던 숟가락 소리,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던 저녁. 어머니가 떠나고 된장독을 열지 못했다. 장독에 볕과 바람을 들이는 요령을 이 나이 먹도록 나는 알지도 못한다. 묵은 된장독을 열어 오래 밀린 안부를 물어보고 오려 한다. 가을볕이 된장독에 잠기고 잠기다 지칠 때까지, 저녁이 목젖에 차오를 때까지, 떨어지는 대추알이나 실컷 주워 먹으면서. sjh@seoul.co.kr
  • [길섶에서] 개미가 물었어/문소영 논설실장

    텃밭을 경운하지 않고 필요한 곳만 삽질해서 퇴비를 넣고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심는다. 붉은색인 맨땅은 거의 드러나지 않을 만큼 잡초와 민트, 쑥, 민들레, 고들빼기 등이 가득하다. 초봄에는 다 뜯어서 새싹 비빔밥을 해먹을 수 있을 정도로 풍요로운 땅이다. 삽으로 땅을 뒤집으면 지렁이가 반드시 따라 올라온다. 건강한 땅이다. 농약을 치지 않는다. 먹거리도, 달팽이도, 농부도 안전하다. 이 뿌듯한 땅에 문제가 생겼다. 언제부터인가 삽질을 하면 개미집이 파괴되기 시작한 것이다. 내 텃밭에 세상의 모든 개미들이 집을 지은 듯이, 삽질하는 곳마다 개미집이 파괴된다. 들깨 사이즈 개미들이 우왕좌왕하고 정신없이 움직이고, 때로는 하얀 개미알들이 검은 흙에 흩어지는 모습을 보면 죄의식이 생긴다. 이 심리적인 위축에 육체적인 고통이 추가된다. 크고 작은 개미들이 목장갑과 장화로 기어올라와 팔목이나 발목을 깨물기 때문이다. 큰 개미가 물면 눈물나게 아프고, 작은 개미가 물면 따끔따끔하다. 이렇게 물리고 12시간쯤 지나면 빨간 두드러기가 올라오고 가려움에 사나흘을 고생한다. 이 과정을 예닐곱 번 거치고 나면 겨울이 온다. 김장배추 모종을 끝내고 개미에 수십 번 물린 팔목이 가려워 긁적댄다.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호박잎을 씻으며/황수정 논설위원

    동네 마트 한편에 호박잎 묶음들이 소복했다. 칠팔월 땡볕을 건너 용케 보드라운 잎사귀를 거두고 있었구나, 덥석 한 묶음을 들여왔다. 어릴 적 우리 동네는 구월이면 집집 담벼락마다 늙은 호박이 문패처럼 걸렸다. 뉘 집 담장에, 어느 채마밭 고랑에 호박이 엉덩이를 눌러 앉혔는지 서로 말 안해도 다 알았다. 그 가을에 늙은 호박은 익어 갔는지 늙어 갔는지. 잘생긴 호박이 익다 말고 종적을 감추면 어느 집 마루 끝에서 호박 속을 긁느라 달강달강 숟가락 부딪던 소리. 그 소리 담장을 넘어 지글지글 콩기름 타는 냄새가 온 동네를 한 바퀴 돌면, 저녁상마다 노릇한 호박전. 샛노란 구월의 꿈을 둥그런 밥상머리에서 둥글둥글 똑같이 꾸던 날. 가을마다 더 멀어지는 오래된 삶의 잔무늬들. 끝물의 호박잎을 살살 달래며 씻다가 나는 왜 프랑시스 잠의 시가 생각났는지. 인간의 위대한 일이란 덜거덕거리는 베틀 소리와 올빼미와 한밤중 귀뚜라미 소리를 조용히 듣는 것. 넘치는 밥물에 설지도 무르지도 않게 쪄낸 호박잎, 푸른 물이 기적처럼 스민 밥 한 공기, 여름의 발목을 붙들 것처럼 되직한 강된장 한 종지. 오늘 저녁 밥상은 위대한 일로 상다리가 휜다. sjh@seoul.co.kr
  • [길섶에서] 태풍이 지나가고/이순녀 논설위원

    초강력 태풍 ‘링링’의 북상이 예고된 지난 토요일 오전, 집 문을 나서며 몇 번을 뒤돌아봤다. 이미 수차례 확인했음에도 베란다 창문은 제대로 잠겼는지, 방충망은 잘 버텨 줄지 걱정이 컸다. 불가피한 행사로 강원도 원주로 향하는 길. 애써 불안감을 털어 내며 차창 밖으로 본 풍경은, 태풍의 불길한 전조들로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하루 종일 맘 졸이다 한밤중 귀가해 베란다부터 살펴보니 다행히 이상무. 어디서 날아왔는지, 방충망에 매달린 나뭇잎들이 바람의 강도를 짐작하게 했다. 전국적으로 ‘링링’의 상흔이 크고, 깊다. 순간 최대풍속이 초속 54.5m인 역대급 강풍을 동반한 ‘링링’은 스쳐 간 지역마다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3명이 숨지고, 24명이 다쳤다. 농작물 피해 면적은 1만 40000여㏊에 달한다고 한다. 추석을 앞두고 수확의 꿈에 부풀었던 농민의 심정이 얼마나 처참할지 안타깝다. 자연은 인류에게 늘 경이로운 대상이지만, 이럴 땐 딱 인정사정없는 폭군이다. 무자비한 ‘자연의 시간’ 앞에서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한낱 미물임을 절감할 뿐. 그러나 태풍이 지나가고, 그 자리엔 어김없이 ‘인간의 시간’이 흐른다. 어떤 고난에도 다시 일어설 힘, 그것이 우리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니까. coral@seoul.co.kr
  • [길섶에서] 변두리2-지질(紙質)/이지운 논설위원

    십수년 전 중국의 한 깡촌에서 만난 1위안짜리 지폐는 찾을래야 찾을 수 없을만큼 진귀한 것이었다. 첫인상으로는, ‘이것이 돈인가?’ 싶었다. 얼마나 구겼다 펴고, 빨면 이렇게 될까? 어떤 인위적인 ‘와싱’ 작업으로 이것이 가능할까? 그렇게 희바래지고도, 구멍이 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다. 화폐가 특수지를 사용하기에 형태는 유지할 수 있었으리라. 그제서야 깡촌의 지폐들이 대도시에서는 구경하기 힘들만큼 낡고 닳아 있음이 눈에 들어 왔다. ‘평등사회’에서도 지폐는 평등하지 않구나 생각하게 됐다. 이때의 경험을, 서울에서 떠올리게 될 줄 상상도 못했다. 어느 ‘변두리’의 현금인출기에서 만난 1만원짜리들, 봉투에 넣기에 민망했다. 누군가에게 전달하려 했기에 눈에 들었을 것이다. 두어 차례 더 수수료를 지불하고 인출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어디나 상황은 대략 이러한가 보다” 단정지어 버렸다. 화폐는 분명 힘이지만, 그 ‘지질’(紙質)도 힘과 무관치 않은가 생각하게 됐다. ‘힘있는 기관’에 입주한 은행들은 신권 교환에 너그럽다. 명절을 거치고 거쳐 내린 결론이다. 답을 얻지 못한 일도 있다. 구겨진 셔츠 같은 지질의 조간신문이다. 다리미로 다려 읽을까 하는 충동마저 들게 한다. 신문사와 변두리, 어디에 기인한 것인가? jj@seoul.co.kr
  • [길섶에서] 무선 이어폰 공해/이종락 논설위원

    대부분의 직장인은 출근 버스나 지하철에서 단꿈을 꾼다. 전날 밤 마신 술이 덜 깨거나 직장에서 누적된 피로를 해소할 요량으로 버스나 지하철을 타자마자 눈을 감는다. 짧게는 10~20분, 길게는 1시간 동안 단잠을 자고 일어나면 그날의 활력을 되찾는 기분이다. 그런데 최근 이런 단잠을 방해하는 훼방꾼이 나타났다. 선이 없는 무선 이어폰이다. 기다란 선은 물론 목걸이형 넥밴드 등 추가 기기가 없는 무선 이어폰은 패션 아이템으로까지 부상했다. 문제는 이런 무선 이어폰을 사용하는 이용자들의 예절이다. 전화가 걸려오면 입을 최대한 막고 통화를 하거나, “지금 차량 안이니 내려서 통화하겠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는 게 예의일 것이다. 하지만 이용자들은 남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들리는 음량대로 대화를 이어 간다. 차량 내에서뿐만 아니라 길거리를 지나갈 때도 큰 소리로 대화하느라 보행자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올 2분기 무선 이어폰의 세계시장 규모는 2700만대로 올 1분기(1750만대)에 비해 54% 성장했고, 연말에는 1억대를 돌파할 것으로 내다봤다. 최첨단 기기 개발로 세상은 편해졌지만 그만큼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나 예절이 못 따라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 [길섶에서] ‘서둘러 온’ 추석/김균미 대기자

    추석이 열흘도 남지 않았다. 아침저녁으로 공기가 제법 선선해졌다지만 여전히 한낮에는 기온이 30도에 육박할 정도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올해 추석(13일)은 작년보다 11일 이르고, 재작년보다는 3주나 빠르다. 달력을 들춰 보니 3년 전인 2016년에도 추석이 9월 15일로 이른 편이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사과나 배값은 비싼데 맛이 덜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추석이 ‘서둘러 온’ 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추석이 코앞인데 영 명절 기분이 나질 않는다. 여름 같은 날씨 탓도 있고, 여름휴가 뒤끝이라 그럴 수도 있다. 무엇보다 들려오는 얘기란 게 온통 우울하니 도통 신이 나지 않는다. 정치권은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싸고 정쟁이 한창이다. 고용 사정은 별로 나아진 게 없고, 수출은 9개월째 줄었다. 경기가 좋지 않아 상여금을 주는 기업도 작년보다 줄었다고 한다. 쓸 돈도 없는데 연휴만 길면 뭐하냐는 탄식도 들린다. 추석은 가족이다. 예전처럼 지방에서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 사촌들이 올라와 추석을 쇠고 가지도, 명절 음식을 많이 준비하지도 않는다. 형제들과 조카들과 오붓하게 차례상에 둘러앉는다. 별 얘기 하지 않아도, 추석을 같이 보낼 가족이 있음에 감사한다. kmkim@seoul.co.kr
  • [길섶에서] 이 빠진 날/장세훈 논설위원

    ‘이 빠진 날’에 대한 기억할 만한 경험은 크게 세 번 있다. 어릴 적 첫 이가 빠지는 날. 막연한 두려움으로 울먹였던 것 같다. 어머니는 흔들리는 배냇니를 실에 묶어 능숙하게 뽑아냈다.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두 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빠진 이를 지붕 위로 던져 까치가 물어가길 소원했다. 아픔과 뿌듯함으로 기억한다. 몇 해 전 딸아이의 첫 이가 빠졌다. 실이라는 민간요법은 치과에서 의학적 방식으로 대체됐고, 빠진 이는 지붕 대신 ‘유치 보관함’ 속에 담겼다. 첫 이 빼는 풍경 자체는 달라졌지만, 이번에도 코끝이 찡했다. 기특하고 대견한 마음이 컸다. 그리고 얼마 전 처음으로 발치를 했다. 잇몸이 녹아 내린 탓에 임플란트를 해야 한단다. 치아 관리에 소홀한 탓인데 누구를 탓하랴 만은 ‘눈물 없는 울음’과 같은 감정이 가득했다. 이를 빼는 아픔보다 그동안 모르거나 잊고 있었던 사실을 새삼 깨닫거나 알게 된 데 따른 슬픔이 더 크게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니 회사 선배가 대뜸 “소형차야, 중형차야?”라고 물었다. 적잖은 비용이 드는 임플란트에 이미 중형차 값을 썼다는 선배로선 소형차 값으로 막는 게 그나마 최선이란다. 현실적이어서 서글프다. shjang@seoul.co.kr
  • [길섶에서] 가정간편식과 추석/전경하 논설위원

    시금치, 부추 등 나물용 채소를 처음부터 집에서 다듬다 보면, 우리 식사는 과거 노비를 부리던 양반집이 모델이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재료를 하나씩 다듬어서 씻고, 삶거나 무쳐서 요리하고, 그리고 설거지까지. 먹는 시간은 길어야 20~30분인데 먹고 나서 해야 할 일을 보면 가끔은 허탈하다.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주인의 생활에 맞춘, 재산으로 간주된 노비가 있었기에 양반 대가족의 일상이 가능했을 것이다. 요즘은 과거보다 요리하기가 훨씬 쉽다. 찌개·찜 등 각종 요리용 소스는 물론 채소도 1회용으로 포장해 판다. 한 회분 재료와 소스를 함께 파는 ‘밀키트’도 있다. 씻어서 끓이기만 하면 된다. 그래도 가끔 요리가 버겁다. 그래서 요리된 제품을 배달하는 업체들도 많이 생겼다. 음식배달업체는 표준화된 요리법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언젠가 반찬배달업체 공장을 견학 갔는데 그곳 공장장이 요리사가 바뀌어도 같은 맛을 유지한다고 자랑했던 기억이 난다. 표준화된 맛. 추석이 다가와 유통업계가 전과 나물 세트에 갈비찜 등을 더한 세트를 판다고 광고한다. 미리 주문하면 할인도 해 준단다. 추석에 표준화된 상차림을 차리면 후손들은 편하고 그래서 화목할 수 있다. 그런 화목함에 조상도 만족했으면 좋겠다. lark3@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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