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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신혼까치/오일만 논설위원

    아파트 한 모퉁이에서 야산으로 이어지는 언저리,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절묘한 안전지대(?)가 있다. 우거진 숲속에 온갖 종류의 나무와 새들이 어우러져 묘한 생태계를 이루는 곳이다. 아침이면 숲속의 수다쟁이로 불리는 직박구리를 비롯해 까치, 참새 등이 모여들어 소리 경연장을 방불케 한다. 인간세상의 시장통에서 느끼는 삶의 활기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 숲속에서 분주한 변화가 감지된 건 요 며칠 사이였다. 삐쭉 솟아 있는 느티나무 위, 유난히 요란을 떠는 까치 한 쌍이 눈길을 끈다. 겨우내 기척이 없던 빈 둥지를 분주하게 오가는 품새가 예사롭지 않다. 날렵한 생김새나 정답게 부리를 맞대는 모양새가 영락없이 신접살림을 차리는 까치부부다. 뒤늦게 직박구리 한 마리가 빈 둥지 근처를 얼씬거리다 이들 부부에게 혼쭐이 난다. 미련이 남았는지 옆 가지로 피신한 뒤에도 한참을 승강이를 벌이다 자취를 감췄다. 의기양양한 듯, 입에 문 나뭇가지를 빈 둥지로 옮기며 둥글넓적하게 둥지를 쌓아 간다. 아파트 ‘리모델링’처럼 앙상한 빈 둥지가 제법 튼실한 새집으로 변신했다. 아직 새끼들은 보이지 않는다. 알을 품는 기간이 보름 남짓이라고 하니 이달 말쯤 재잘대는 아기까치를 볼 수 있을는지, 기다려진다. oilman@seoul.co.kr
  • [길섶에서] 병아리와 달걀/이지운 논설위원

    이맘때인가, 하굣길에는 병아리 좌판들이 있었다. 삼삼오오 쪼그려 앉은 데 끼어 병아리들을 보노라면 기어이 호주머니를 털게 마련이다. 이제는 값도 잊었지만, 큰 맘 먹으면 한두 마리는 살 수 있었던 가격이었나 보다. 병아리들은 명은 길지 못했다. 모이도 사다 주고, 물도 떠다 주며 정성을 다했건만 십중팔구는 성체(成體) 근처도 가지 못했다. 어른들은 ‘손이 타’ 죽는 거라 했다. 좌판 주인들이 ‘손 탄다’며 만지지 못하게 했던 것이 그런 의미였나 보다 떠올리며 눈물짓곤 했다. 이듬해, 그 이듬해도 결과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드물게 제법 크게 기른 친구들 집에 갈 때마다 우리 집에서 죽어간 병아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병아리는 죽음을 떠올릴 때가 많지만, 달걀은 그렇지 않다. 내 손에 시름시름 죽어갔어도, 이 껍질을 깨고 살아나온 것들이었다. 특히 이맘때는 생명으로서의 달걀이다. 어린이들 손에 쥐어진 것이 비록 ‘삶은 것’일지언정, 생명 탄생의 신비까지 삶아진 것은 아니다. 달걀 없는 부활절을 맞았다. 풍요의 시대에 달걀 받으러 교회로 성당으로 가는 발길이 있을까 싶지만, 생명으로서의 달걀을 어린 자녀와 공유하지 못하는 부모들이 더 서운할 수 있겠다. 이스터를 잃은 서구 사회에 더 처연한 마음이 든다. jj@seoul.co.kr
  • [길섶에서] 신(新)선거풍경/이동구 수석논설위원

    기억 속의 선거철은 언제나 시끄럽고 혼란스러웠다. 골목골목을 누비는 선거운동원이나 귀를 따갑게 하는 확성기 소리, 줄을 잇는 흥청망청 관광 행렬 등등. 그 당시 가장 흔하게 듣던 단어 중 하나가 ‘선거특수’. 선거 관련 각종 모임이 늘어나고 은밀히 전달되는 선물 등으로 소비가 활성화되고 사회 분위기는 한껏 들뜨게 마련이다. 막걸리와 고무신이 부정·혼탁 선거의 대명사로 꼽혔던 기억이 생생하다. 며칠 후면 지역 대표를 뽑는 선거일인데 요즘 거리 분위기는 이상하리만큼 차분하다. 확성기를 통한 출마자의 유세, 선거운동원들의 외침뿐 아니라 선거 관련 홍보물조차 별로 보이지 않는다. 선거특수라는 말은 아예 들리지도 않는다. 잊힌 단어가 됐다. 코로나19 때문이라고 하지만 여느 선거 때와는 다른 분위기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 문화가 정말 제대로 자리를 잡은 것일까. 아쉽게도 선거판에 남아 있는 몇 가지 현상들은 그런 기대감을 저버린다. 출마자들의 막말, 상대 후보 비방, 아니면 말고 식의 선심성 공약 등등. 개중에 복지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포퓰리즘은 신종 바이러스처럼 변화된 모습으로 확산 중이다. 막걸리와 고무신이 50만원, 100만원 등으로 변화된 듯하다. yidonggu@seoul.co.kr
  • [길섶에서] 기계치/장세훈 논설위원

    손재주가 없다. 평소 단추를 끼우는 게 가장 하기 싫은 일 중 하나로 여길 정도다. 뭉툭한 손끝 탓으로 돌린다. 기계치이기도 하다. 손만 댔다 하면 멀쩡한 기계도 탈이 나는 그런 부류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손재주가 없는 기계치들의 특징이 몇 가지 있다. 우선 매뉴얼을 잘 읽지 않는다. 이리저리 만져 보다 손을 들기 일쑤다. 복잡하고 다양한 기능엔 관심이 없고, 기본적인 기능 한두 가지만 주로 쓴다. 다양한 기능과 뛰어난 성능에 혹해서 기기 구입을 결정했다는 점에서 과소비가 아닐 수 없다. 대부분의 기기는 무리한 힘을 가하면 안 되는데, 제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싶으면 힘으로 해결하려 든다. 올바른 사용법을 익히는 것을 귀찮아하거나 어렵게 여기다 보니, 남들보다 기기를 오래 사용하는 경우도 극히 드물다. 물론 기계치로 산다는 것 자체를 불편하게 느끼지는 않는다. 문제는 딸아이 눈에는 “하기 싫어서”, “생각하기 귀찮아서”와 같은 핑계로 보이나 보다. 특히 코로나19 확산으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딸아이가 손재주를 요구하거나 기기를 다뤄 달라고 할 때가 적지 않다. “친구 아빠들은 다 해준다는데”라면서 고개를 떨구면 없던 손재주도 생긴다. 이런 나를 보면 헛웃음이 절로 난다. shjang@seoul.co.kr
  • [길섶에서] 도둑맞은 봄/김균미 대기자

    곳곳에 봄꽃 천지다. 한강을 따라 개나리와 진달래가, 서울 양재천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집 근처 산책로를 따라 이름도 모르는 들꽃들이 만개한 지 오래다. 건물 사이 그늘진 길을 따라 미색의 목련꽃과 살구꽃도 활짝 피었다. 보도 중간중간에 놓인 화분에는 색색의 팬지가 피어 있다. 화분에 꽃을 옮겨 심던 사람들은 기억나는데, 매일 아침저녁 출퇴근길에 있던 팬지는 왜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버스 창 너머로 스쳐 가는 꽃들이 왜 이리도 낯설까. TV 뉴스와 신문에 실린 상춘객 사진으로 대신 봄꽃 소식을 접한다. 통행이 허용된 꽃길마다 마스크를 한 사람들로 북적인다. 몰리는 관광객 때문에 정성 들여 가꾼 유채꽃밭을 갈아엎은 강원 삼척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 한 곳인 제주 녹산로 유채꽃도 한 달이나 앞서 자취를 감출지 모른단다. 코로나19가 바꾼 봄 풍경이다. 집 밖에는 변함없이 봄기운이 완연한데, 사람들 마음은 아직도 겨울이다. 갑갑해 걸으러 나가도 사람들 피하느라 꽃에 눈길 한번 제대로 못 준다. 꽃시장에서 작은 화분 하나 사다가 봄 기분을 내 보는 데 만족한다. 코로나19에 도둑맞은 봄, 마스크 쓰지 않고 맨얼굴로 맞았던 봄이 그립다. kmkim@seoul.co.kr
  • [길섶에서] 코로나 이혼/전경하 논설위원

    코로나19로 가족들이 외부 활동을 자제하면서 주부의 일상이 뒤엉켰다. 그동안 가족이 출근 또는 등교를 하면 집은 오롯이 주부의 공간이었다. 계획을 세워 집안일을 하는 동안 집은 ‘직장’, 일이 끝난 뒤에는 휴식 공간이다. 최소한 평일에는 이런 구분이 보장됐다. 코로나19로 개학이 연기되는 동안 지인은 퇴근한 남편에게서 ‘아직도 집안일이 안 끝났느냐’는 말을 들었다.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무엇을 했냐는 말이다. 주부가 혼자 있던 ‘직장’에 가족이 함께 있으면서 일과 휴식이 뒤엉킨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그 말에 화가 났다. ‘그런 몰지각한 말을 듣고만 있었느냐’고 위로와 야단을 함께 했다. 코로나19로 가족들이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코로나 이혼’(covidivorce)이란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가족과 함께 있는 예기치 못했던 긴 시간은 종종 불행으로 치닫는다. 가족이어도 때론 거리두기가 필요한데 거리를 둘 수 없어서 그럴까. 그것보다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누군가의 노동을 당연시했기 때문이다. 돌봄과 가사노동은 안 하면 표나는 이상한 일이다. 분업이 제대로 이뤄져 있지 않으면 누군가 묵묵히 표 안 나는 일을 하게 된다. 돌봄과 가사노동의 가치 확인, 코로나19로 가능해졌으면 좋겠다. lark3@seoul.co.kr
  • [길섶에서] 추억의 소환/손성진 논설고문

    추억 또는 기억이라는 것이 머릿속에만 있다면 그저 환상처럼 빙빙 돌 뿐이다. 추억을 떠올려 줄 장소나 물건이 있다면 추억은 꺼냈다가 다시 넣어 둘 유형의 존재처럼 될 수도 있다. 사진이 그런 것이 될 수 있고 움직일 수 없는 집이나 동네도 그렇게 될 수 있다. 기억을 되살려 줄 것들이 오래도록 한자리에 있다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다. 자고 나면 달라진다고 할 정도로 변화가 많은 세상인 까닭이다. 지금까지 6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한 달이라도 살았던 공간을 헤아려 보니 20여곳쯤 된다. 그중에 온전히 남은 것은 근래에 거주한 몇 곳밖에 없다. 간혹 유년기에 살았던 곳을 떠올리며 기억을 머리에서 짜내 보는 적이 있다. 어렸던 10년의 시간 중에 기억할 수 있는 장면을 영상으로 만든다면 1시간짜리도 안 되지 싶다. 추억의 소환을 쉽게 하기 위해 살던 곳을 지도로 탐색해 보지만 골목길이 이어지던 그곳은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돌아가고 싶어도 갈 곳이 없는 것이다. 변화의 바람을 덜 타는 농촌이나 벽촌 출신의 사람들은 오랜 세월을 버틴 고택이 있다면 유년의 추억을 금세 되살려 줄 그곳을 당장 내일이라도 찾을 수 있을 터다. 그래서 부럽기만 하다. sonsj@seoul.co.kr
  • [길섶에서] 봄날의 구세군/박록삼 논설위원

    벚꽃과 미세먼지 속 도심에서 종소리가 땡그랑 울린다. 연말 눈발 흩날릴 때 두꺼운 외투 속에 고개 파묻고 종종걸음 치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듣던 소리였다. 구세군 종소리다. 벚꽃이 난분분히 흐드러지고 개나리의 짙은 노랑에 눈부신 봄이건만. 구세군 직원이 겨울 여느 풍경처럼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자선냄비를 걸어 놓고 있다. 겨울과 다르다면 봄날 옷차림으로 마스크 속에 입과 코를 가린 이들이 그 주변을 지나친다는 점, 그리고 그 구세군 직원은 마스크의 기부를 받으려 종을 흔들고 있다는 점이다. 소셜미디어에 떠돌던 ‘요즘 재벌의 지갑’이라는 사진 속에는 마스크가 수십장 두둑이 들어 있었다. 요즘 마스크가 얼마나 귀한지 보여주는 우스개 연출 사진이다. 문득 생각해 본다. 있을 리가 없겠지만, 만약 실제 저런 지갑을 들고 다니는 이라면 구세군 냄비에 기꺼이 마스크를 집어넣을까? 조금 더 여유로운 이에게는 조금 부족해도 그만일 것이, 어떤 이에게는 여전히 절박함 그 자체다. 한국서 공적 마스크 판매는 한 달이 넘어서면서 수급에서 여유가 생기고 있다. 이제 코로나19 속에서 대면 활동이 빈번한 환경미화원과 버스기사, 아파트경비원 등과 사회취약계층에 더 기꺼이 양보하는 것도 좋겠다. youngtan@seoul.co.kr
  • [길섶에서] 명분과 핑계/장세훈 논설위원

    서울살이를 하면서 해마다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집을 찾는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설·추석 명절과 부모님 생신을 빼면 더욱 그렇다. 고향에 내려갈 ‘명분’을 찾기보다 못 가는 ‘핑계’를 만드는 데 더 익숙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요즘엔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19가 핑곗거리가 됐다. 올해 팔순인 아버지와 70대 중반인 어머니도 바깥출입을 극도로 자제하고 계신다. 마스크를 구하기 어렵다고 하셔서 택배로 보내고 나니, 장은 제대로 보고 계시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내친김에 명분을 삼아 얼마 전 주말을 이용해 고향으로 향했다. 직장에 다니는 아내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빼고, 개학이 연기돼 ‘자가격리’ 생활 중인 딸아이만 데리고 갔다. 삼대가 모여 앉아 밥을 먹는데 “모처럼 고기 먹네” 하신다. 답을 할 수 없었다. 내려가기 전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코로나19 전파자가 되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올라올 때는 “밥상에 올릴 반찬보다 밥상에 둘러앉을 가족이 아쉽지 않을까”로 옮아갔다. “모처럼 집에 왔네”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 속으로 “곧 또 내려가야지” 하지만 명분과 핑계 사이에서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 장을 좀 봐드리면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괜한 기대였다. shjang@seoul.co.kr
  • [길섶에서] 40년 만의 전화 상봉/박홍환 논설위원

    사회적 거리 두기가 길어지면서 새삼 전화의 고마움을 절감하는 요즈음이다. 문자, 카톡은 물론 5G 기술로 끊김 없는 영상통화까지 할 수 있으니 재택근무도 큰 무리가 없다. 게다가 쇼핑이며, 외식 배달이며 다 전화로 해결돼 집 밖에 나갈 일이 없다. 몸이 근질거리고, ‘확 찐자’가 되는 부작용만 견뎌 내면 얼마든지 ‘집콕’이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이 모두 스마트폰이 없었다면 언감생심이다.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얼마 전 반가운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휴대전화 창에 등록돼 있지 않은 전화번호 하나가 떠 “누굴까?” 궁금해하며 받았는데 뜻밖에도 ‘깨복쟁이’ 동네 친구다. 초등학교까지 함께 보낸 후 중학교 때 오가며 만난 뒤로는 연락이 끊겼었다. 40년 만의 전화 상봉이다. 1시간 가깝게 서로 그동안 살아온 얘기며, 골목 추억, 근황 등을 반갑게 공유했다. 개구쟁이 유소년기 10여년을 어깨동무했던 친구와는 40년 공백도 벽이 되지 못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면 직접 만나 소주잔을 나누기로 했다. 지금의 공자라면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유붕시격호구전화래(有朋時隔好久電話來), 불역락호(不亦樂乎)! “벗이 있어 너무도 오랜만에 전화가 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stinger@seoul.co.kr
  • [길섶에서] 코로나19 백신/이종락 논설위원

    지난 26일은 소아마비(Polio) 백신 개발자인 조너스 소크가 백신 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날이다. 67년 전의 일이다. 지금은 이 소아마비 환자를 우리나라에서는 발견할 수 없고, 전 세계적으로도 아주 적은 수의 나라를 제외하고는 사라졌다. 하지만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전 세계에서 매년 50만명의 소아마비 환자가 발생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 대통령도 39세 나이에 소아마비에 걸려 평생 왼쪽 다리의 장애를 겪었다. 우리나라에서도 1950년대까지 매년 2000여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그런데 1984년 이후로는 소아마비 환자가 한 명도 발견되지 않았다. 바로 소크가 개발한 백신 덕분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제약회사에 백신을 판매해 억만장자가 될 수 있었던 소크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특허권은 없어요. 태양에도 특허권이 없잖아요”라며 특허권을 포기하고 백신 생산법을 공개했다. 값싸게 백신이 보급되니 이 병을 빠르게 퇴치할 수 있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에 창궐하면서 각국이 백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국내에서도 진행 중인 코로나 치료제 임상시험 건수가 6건에 달한다고 한다. 신속한 백신 개발도 중요하지만, 개인이나 기업의 이익이 아닌 공공의 이익을 앞세운 ‘소크의 정신’을 보고 싶다. jrlee@seoul.co.kr
  • [길섶에서] 춘래불사춘/오일만 논설위원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은 왔지만 봄 같지가 않다는 의미로 자주 쓰이는 말이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 그 의미가 더욱 실감 나곤 했다. ‘춘래불사춘’은 중국의 4대 미녀로 꼽히는 왕소군(王昭君) 때문에 유래됐다고 한다. 한나라 원제의 궁녀였는데 흉노와의 화친 정책에 의해 흉노왕에게 바쳐진 비운의 여성이다. 원제는 수많은 후궁의 초상화 가운데 가장 흉한 인물을 골랐는데 하필 그녀가 왕소군이었다. 뇌물을 받지 못한 화상이 앙갚음으로 그녀를 추녀로 둔갑시킨 것이다. 황제와의 이별연에서 왕소군을 처음 본 원제는 그 아름다움에 정신을 빼앗겨 화상의 목을 쳤다는 일화도 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당나라 시인 동방규가 소군원(昭君怨)이란 시로 풀어냈다. 흉노 땅에 봄이 왔지만 고향 땅의 봄 같지 않아 더욱 사무치게 고향이 그립다는 왕소군의 애절한 심정이 담겨 있다. 남녘에서 전해 온 벚꽃 소식이 서울까지 북상한 요즘, 아파트 내 벚꽃들이 하루 새 기지개를 켜는 봄날이다. 매년 이맘때쯤 벚꽃놀이 인파가 꼬리를 물었던 여의도 윤중로에 올해는 인적이 끊겼다. 봄은 왔지만 온전한 봄의 정취를 느낄 여유조차도 없다. 황량한 흉노의 봄을 맞는 왕소군의 마음이 어렴풋이 전해진다. oilman@seoul.co.kr
  • [길섶에서] 단체 대화방/이지운 논설위원

    모든 게 적응까지 상당한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단체 대화방’도 그랬다. ‘소리´는 애당초 없앴다. 문제는 ‘숫자´. 휴대폰, 컴퓨터 화면에 남아 있는 ‘숫자´를 유난히 못 견디는 이들 중 하나이다. 뭔가 대답을 해 줘야 하지 않나 하는 부담감에서인가보다. 그래도 중소 규모라면 문제없다. 100명 넘는 방에 처음 초대됐을 때는, 숨이 막혔다. 탈출하고 싶은 충동이 솟구쳤지만 그럴 용기도 없었다. 하나둘씩 방을 뜰 때 ‘따라 나가야 하는데’ 하면서도 주저앉곤 했다. 그리고 인내하고 적응한다. 지금은 100명쯤 되는 방도 몇 개 되고, 50명 이상 되는 방도 적지 않다. 견딜 만하다. 단체 대화방은 또 하나의 세상이다. 특별한 적응 능력이 필요하다. 1대1 메신저와는 확연히 다르다. 때를 맞춰야 하고, 수위를 조절해야 하며, 누군가를 적당히 거들어 줘야 할 때도 있다. 특별한 표현도 잘 숙지하고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림과 기호’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늘 어렵다. 무엇보다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격언을 시각적으로 보여 주는 공간이다. ‘삭제’ 기능이 추가됐지만 누군가는 그걸 보곤 한다. 재택근무의 한 현상인지, 단체방에서 수다가 많아졌다. 그럼에도 무작정 대화를 흘려보내는 방이 있다. 내 세상이 아닌가 싶다.
  • [길섶에서] 기억하는 습관/이동구 수석논설위원

    가끔 집앞 마트에서 당혹스런 일이 생긴다. 포인트를 적립하라고 하는데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는다. 아내가 등록해 모른다고 하면 “휴대전화 번호일 테니 한 번 시도해 보세요”라고 권한다. 갑자기 더 당황스러워진다. 아내의 전화번호가 선뜻 기억나지 않다니…. 난처함을 피하기 위해 포인트 적립을 포기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이제 마트 직원은 아예 포인트 적립을 권하지도 않는다. 스마트폰이 일상화되기 전만 해도 친구, 친인척 등 주변인들의 전화번호 50여개 정도는 머릿속에 저장하고 다녔다. 하지만 스마트폰에 익숙해지면서 하나둘씩 지인들의 전화번호는 내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그저 전화기에 저장된 번호를 그때그때 찾아서 버튼만 눌렀다. 기억하는 습관이 사라진 것이다. 한 발짝 한 발짝씩 별다른 불편 없이 ‘디지털 치매’에 빠져든 것이다. 전화번호를 오랫동안 기억했다는 것은 평소 교류가 잦았다는 증표나 다름없다. 자주 만났거나 틈틈이라도 주고받는 연락이 없었다면 상대방의 전화번호를 기억할 수 있었을 리가 없다. 세상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것을 탓해야 할지 씁쓸하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번호가 아닌,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누군가를 많이 간직해야 진정 행복한 삶일 텐데…. yidonggu@seoul.co.kr
  • [길섶에서] 취미활동이 국난극복/문소영 논설실장

    처음에 ‘국뽕’이란 단어를 이해하지 못했다. 국가와 필로폰의 ‘뽕’을 합성한 단어다. 국뽕이란 극심한 민족주의로 자국만이 최고라고 여기는 행위나 사람을 말한다. 그래서 국뽕의 최고봉은 유사역사학으로 친다. 무조건 한국을 찬양하니, 포스트모던 시절에 국뽕은 비웃을 때 썼다. “또 국뽕이냐”며. 최근 국뽕은 찬양용이다. 국뽕의 용례는 이렇다. ‘영화 기생충의 아시아 최초의 오스카 작품상 수상으로 국뽕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거나 ‘방탄소년단(BTS)이 미국 빌보드차트를 석권해 영국 비틀스 이후 최고의 그룹으로 평가받아 국뽕에 흠뻑 젖었다’ 등등. 코로나19 시대에 최고의 국뽕은 이렇다. “한국인의 취미활동은 국난극복이다.”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으로 세계 금값을 떨어뜨린 나라가 한국이고, 코로나19 확산에도 사재기가 없고, 모범적인 감염병 방역의 모델국가로 지목되니 ‘국난극복이 취미활동’이란 국뽕에 어이가 없다가도 뭔가 으쓱한 마음이다. “한국인에게는 국난극복의 DNA가 있다”는 낯간지러운 공익광고도 나온다. 그러나 24일 오전 10시 현재 세계의 누적 확진자가 약 38만명이고 누적 사망자는 약 1만 7000명이다. 전쟁도 아닌데 감염병 앞에 속수무책인 인류이니, 국뽕보다 미래의 향방에 더 주목해야 한다.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통행금지/김균미 대기자

    자정을 앞두고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골목 곳곳에서 뛰는 발소리가 들려온다. 1981년까지만 해도 흔히 볼 수 있었던 장면이다. 이후 사라졌던 야간 통행금지라는 단어를 최근 자주 듣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가 무서운 속도로 확산하면서 이동의 자유가 제한되는 나라가 늘고 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과 남미의 많은 나라에서 식료품점과 약국을 제외한 식당과 상점들이 영업을 중단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와 뉴욕주 등이 외출을 전면 금지하는 ‘자택 대피령’을 내렸고, 뉴저지주는 매일 밤 8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통행금지를 시행하고 있다. 낯설다. 한국에서 야간 통행금지는 광복 직후인 1945년 9월 8일 미군이 들어오면서 치안 유지를 목적으로 시행됐다. 1982년 1월 5일 해제될 때까지 만 36년 넘게 실시됐다. 초기에는 밤 8시부터 이튿날 새벽 5시까지 9시간, 1961년부터는 자정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통금이 있었다. 택시 할증요금이 붙는 시간대다. 다른 나라들처럼 통금이나 이동제한 조치까지는 내려지지 않아 다행이지만 한 달 넘게 이어지는 사회적 거리 두기가 언제쯤 끝날지, 평범한 일상이 그립다. 우리 모두 조금만 더 인내하자. kmkim@seoul.co.kr
  • [길섶에서] 1조원의 가치/전경하 논설위원

    꽤 오래전 기억이다. 외환위기 발생 직후 구조조정을 담당하던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의 이헌재 위원장은 종종 기자실에서 관련 사실을 설명했다. 어느 날 구조조정 자금 수십조원을 설명하는데 한 기자가 부족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짧은 침묵 이후 이 위원장은 이렇게 답했다. “구조조정을 하면서 조 단위가 자주 언급되다 보니 조가 얼마나 큰지 감이 안 오는 거 같다.” 1조원은 매일 1억원을 쓴다면 1만일을 쓸 수 있으니 27년 정도 쓸 수 있는 돈이다. 1억원까지는 종종 다루는 숫자라 감이 오지만 조 단위로 넘어가면 사실상 글자에 불과하다. 코로나19로 추가경정예산(추경), 재난수당 등이 조 단위로 거론된다. 상황이 절박하니 수십조 단위에도 망설임이 없다. 코로나19 관련 상황들이 정리되고 나면 재정적자가 커져 있을 거다. 그럼 정상적인 다음 수순은 세금 인상. 세금을 올리겠다는 ‘간 큰’ 정권이 있을까. 신용카드소득공제 축소 등 세금 감면을 줄여 세수를 늘리려는 노력들은 사실상 세금 인상이라는 비판으로 잘 이뤄지지 않았다. 다음 정권에 떠넘기는 ‘수건 돌리기’가 시작됐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재정이 화수분도 아니고,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걸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다.
  • [길섶에서] 무심한 봄/손성진 논설고문

    봄 햇살이 눈부셔서 그 속에 몸을 던지고 싶던 때가 있었다. 세상은 너무 아름다웠고 천상(天上)의 바람처럼 구름처럼 봄과 하나가 돼 주체할 수 없는 기쁨으로 어쩔 줄 몰라 했었다. 전장(戰場)의 포연 속에서도 봄꽃은 피어났지만 지치고 힘들 때도 무심하게 찬란한 풍경을 쏟아내는 봄이 도리어 야속했던 적도 있긴 했다. 올해, 봄이 벌써 가까이 왔는데도 마음이 무덤덤한 것은 시류(時流) 탓인지 점점 시들어 가는 육체와 정신 탓인지는 단정하기도 어렵다. 단지 나만 그런 게 아닌 것은 사람마다 이유가 있는 고된 세상살이 때문일 것이다. 여전히 열정은 끓어넘칠진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찾아오는 봄에게 관심을 둘 여유를 우리는 잃어버렸다. 잠시 주변을 돌아보면 한 걸음 한 걸음 살며시 다가온 봄이 옆에서 해시시 웃고 있다. 봄 딴에는 엄동의 풍파를 견디고 달려왔지만 아무도 반겨 주지 않는 우리가 미울 것이다. 그래도 봄은 갖은 치장을 하고 지친 우리를 달래 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우리는 시큰둥하다. 세상이야 어떻든 홀로 아무렇지도 않은 봄이 달갑게 보이지 않겠지만, 마음을 열고 손을 내밀어 봄의 위로를 받아봄이 어떨지. sonsj@seoul.co.kr
  • [길섶에서] 쑥 캐는 여인/박록삼 논설위원

    강바람은 아직 매서웠다. 여전히 얼음장 같을 차가운 물을 두려워하지 않는 윈드서핑 마니아들 네다섯 명이 한강 위를 펄럭거리며 물결을 강둑 쪽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지난 주말 한강 언저리에는 마스크로 코와 입을 꽁꽁 감싼 채 열심히 운동하는 이들로 제법 북적거렸다. 그 틈바구니에 일고여덟쯤 되는, 손주를 데리고 나온 여인이 있었다. 쭈그려 앉아 허리 숙여 뭔가에 열중이다. 강 구경하는 척하며 슬그머니 곁에 앉았다. 여인이 “맛있는 쑥국도 끓여 먹고, 쑥떡도 해먹자”라고 하니, 아이는 “난 쑥떡 싫은데?”라며 야물게 받아친다. 문구용 칼을 든 여인의 손은 쉬지 않은 채 어린 쑥을 자르고 손주도 “여기도 있다. 여기도” 하며 덩달아 바빴다. 봄이 왔다는 신호는 곳곳에서 뿜어져 나온다. 아직은 땅에 납작 엎드려 있지만, 봄의 기운, 생명의 기운을 잔뜩 머금은 쑥이 겨울이 끝났음을 선언했고, 봄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사람들은 기꺼이 쑥맞이, 봄맞이에 나섰다. 버드나무도 곧 진한 초록이 될 연둣빛을 머금고 있고, 개나리도 노란 움을 틔울 준비가 된 듯하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한다며 봄과도, 생명과도 거리를 두는 건 좀 서운한 일이다. 나중에 2020년 봄의 기억은 사람마다 유별나게 남을 것이다.
  • [길섶에서] 권력과 자율성/문소영 논설실장

    사람들은 잘못된 선택에 대해 비판받으면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한다. 타인의 강압 탓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지진과 태풍으로 집이 무너지고 다친다면 불가피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의 일이라면 늘 선택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특히 권력의 문제라면 더 그렇다. 사람들은 자신의 권력이 약할 때는 선택권이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권력이 생기면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행사하는 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다. 그러니 더 큰 힘 앞에 굴복했다고 해명해야지 불가피했다고 변명하는 것은 진실한 주장이 아닐 수 있다. 미래한국당에서 그제 비례대표 명단을 발표했는데, 그 명단을 보고 이 위성정당을 창당하라고 권유하고 당대표까지 점지해 준 것으로 알려진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격노했단다. 황 대표가 영입한 체육계 미투 1호 김은희씨는 아예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고, 윤봉길 의사의 손녀딸인 윤주경 전 독립기념관장은 당선권 밖인 21번에, 탈북 북한인권운동가 지성호씨는 예비명단 4번에 올려놓았단다. 통합당이 명단의 전면 수정을 주장했는데 한선교 한국당 대표가 재의하겠다고 어제 밝혔단다. 부자(父子)간에도 권력은 나누기 어렵다는데, 대놓고 두 정당이 모자(母子) 관계라 가능한가. sym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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