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길섶에서
    2026-03-21
    검색기록 지우기
  • 아파트값
    2026-03-21
    검색기록 지우기
  • 로보틱스
    2026-03-21
    검색기록 지우기
  • 아동복지법
    2026-03-2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107
  • [길섶에서] ‘만추’ 단상/오일만 논설위원

    입동(立冬)이 지나니 성큼 추위가 다가온다. 더 붙잡아 두고 싶지만 세월은 거꾸로 돌릴 수는 없는 법, 그 곱던 단풍 대신 낙엽에 취하는 시간이다. 나무들마다 잎사귀를 떨구며 나목(裸木)의 자유를 갈구하는 만추의 계절이다. 허무한 마음으로 가을의 자락에서 서성이며 겨울의 길목을 향해 가는 중이다. 봄철 ‘벚꽃 엔딩’을 듣는 것처럼 이 계절에 다시 보고 싶은 영화가 ‘만추’(晩秋)다. 낙엽이 바람에 흩날리는 늦가을, 머리까지 목도리로 감싼 여주인공의 고혹적인 표정이 선하다. 남녀의 복잡한 심리를 감각적인 영상미로 풀어냈다.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 내면의 공허함을 멋지게 그려냈다. 젊은 세대에겐 중국 스타 탕웨이와 현빈의 영화(2011년)로 기억되지만 사실 1966년 거장 이만희 감독의 작품이다. 영화 배경도 안개가 자욱한 미국 시애틀로 옮겼지만 낙엽이 뒹구는 공원 벤치에서 하염없이 그를 기다리던 주인공의 모습은 변함이 없다. 중년 세대에겐 TV 드라마로 친숙한 탤런트 김혜자의 데뷔작 ‘만추’(1982년)가 인상적이다. 끝내 오지 않은 기다림 끝의 마지막 멘트가 압권이다. “그 사람 반드시 와. 꼭 와줄 거야….” 절망 속에서 희망을 건져 내려는 인간의 본성을 표현하고 싶었을까. oilman@seoul.co.kr
  • [길섶에서] 큰누나/김상연 논설위원

    학교에서는 ‘형’을 영어로 ‘올더 브러더’(older brother), ‘동생’을 ‘영거(younger) 브러더’라고 배웠지만, 실제 미국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걸 들어본 적은 거의 없다. 나이에 민감하지 않은 그들은 그저 ‘브러더’라고만 하거나 굳이 형임을 강조하고 싶을 때는 ‘빅(big) 브러더’, 동생은 ‘베이비(baby) 브러더’라고 한다. 베이비 브러더…, 너무 귀여운 말이다. 미국인들은 누나도 ‘빅 시스터(sister)’라고 하는데, 우리말에도 ‘큰누나’가 있어서 그런지 정감이 간다. 나중에 어머니가 세상에 안 계시는 막막한 날이 오면 누가 ‘어머니 대행’을 할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큰누나가 떠올랐다. 큰누나는 어릴 때도 어른스러웠고 나이 들어서도 어른스럽다. 큰누나는 형제자매들 사이의 탐진치(貪瞋癡)로부터 초월해 있는, 어머니와 형제자매들 사이에 있는 중간자적 존재 같다. 한편으로는 장녀로서의 책임감 같은 게 평생 큰누나를 옥죄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큰누나가 며칠 전 감자 샐러드를 만들어 보내 줬다. 큰누나한테는 다 큰 동생이 여전히 ‘베이비’ 같은지 이것저것 챙겨 주려 한다. 큰누나한테 고맙다는 말을 진지하게 하고 싶은데 살가운 ‘베이비 브러더’ 역할이 여전히 힘들다. carlos@seoul.co.kr
  • [길섶에서] 주전부리/이동구 수석논설위원

    말투나 잠버릇, 좋아하는 색깔이나 음식 등 삶의 대부분이 생활 습관으로 결정된다. 몸에 밴 습관을 고치기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여덟 살 버릇 평생 간다는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군음식을 자주 먹는 주전부리 또한 습관인 듯하다. 어릴 적 과자 먹던 버릇이 반백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그대로 남아 있다. 특히 고소하거나 달달한 과자를 보면 참기 어렵다. 한번 손이 가면 과자 봉지가 깨끗이 비워져야 멈춘다. 사무실 후배가 불쑥 건넨 과자 한 봉지에 옛 기억이 새록새록해진다. 시골 동네에 나타난 엿장수와 뻥튀기 장수도 떠오른다. 고철이나 빈병으로 바꿔 먹었던 어린 시절의 주전부리는 추억 때문인지 유난히 달콤했던 것 같다. 팝콘과 뻥튀기야말로 주전부리의 묘미를 가장 잘 살려 주는 메뉴가 아닐까. 그것도 영화나 TV, 만화책 등을 볼 때는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무엇인가를 먹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의 무아지경으로 손이 간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어묵이나 떡볶이, 만두 등도 빼놓을 수 없는 주전부리 감이다. 특히 추운 겨울날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새어 나오는 어묵의 국물 냄새에는 발길을 외면할 재간이 별로 없다. 소주 한 잔에 어묵 한 입. 괜스레 겨울이 기다려진다. yidonggu@seoul.co.kr
  • [길섶에서] 행복의 조건/문소영 논설실장

    조찬 행사인 ‘광화문 라운지’에서 5일 혜민 스님을 모셨다. 지난 4일 미국 대선 개표방송을 보느라 거의 날밤을 새운 탓에 조찬 강연이 달가울 리 없었다. 강연 제목은 ‘성공과 행복의 비밀열쇠’. 비몽사몽인지라 비밀열쇠라는 것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며 기대가 없었는데, 귀가 솔깃하면서 선잠이 달아나는 구절들이 있었다. 비교하지 말고 감사하라! 멈추고 감상하라! 내 몸을 사랑하라! 경쟁에 익숙한 우리는 항상 남과 비교하기 마련인데, 그러다 보면 상대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자꾸 끄집어내게 된다. 그러면 프레임이 단점에 꽂혀 세상 전체가 단점으로 가득 차 보인다는 것이다. 마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오히려 코끼리 생각으로 주변이 가득 차는 것과 비슷하다. 푸르고 높은 가을 하늘과 노란 은행잎, 붉은 단풍잎이 주변에 가득하지만 멈추지 않으면, 또 그 아름다움을 감상할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행복을 느낄 수 없다고도 했다. 혜민 스님은 또 오른손을 심장이 있는 곳에 올려 두고 토닥이면서, 이 몸을 함부로 썼는데 함께해 줘 고맙다고 인사하라고 했다. 나를 사랑할 때 남도 사랑할 수 있다는 메시지이다. 행복은 찾아 나서면 파랑새처럼 멀어지지만, 찾기를 멈추면 행복이 보인단다. 멈춰라!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협치/김균미 대기자

    협치(協治). 많이 들어봤지만 제대로 시행하는 걸 본 기억이 거의 없다. 반대의 경우는 허다하게 목격한다. 언제부터인가 뉴질랜드에 대한 기사가 눈에 자주 들어온다. 3년 전 37살에 최연소 총리에 올라 현직에서 출산한 저신다 아던. 이때까지만 해도 화제성이 더 강했지만 이후 테러와 화산 폭발, 코로나19라는 대형 난제들을 특유의 리더십으로 극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좀더 심각하게 주목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치러진 총선에서 소속 노동당이 49.1%의 지지를 얻어 전체 의석 120석 중 64석을 차지했다. 현재의 선거제도가 도입된 1996년 이후 특정 정당이 단독으로 과반 의석을 확보한 것은 처음이다. 노동당 단독으로 내각을 구성할 기회를 잡았지만 아던 총리의 선택은 달랐다. 아던 총리는 10석을 차지한 녹색당에 손을 내밀었다.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2017년부터 연정 파트너였던 녹색당과 갈라서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보기 좋게 뒤집고 협정을 맺었다. 환경과 복지 분야에서의 전문성을 강조하며 가정성폭력예방장관과 기후변화장관을 녹색당 공동대표에게 맡겼다. 독주할 수 있지만 협치를 선택한 아던의 지도력. 그래서 더 돋보인다.
  • [길섶에서] 마스크 얼굴/전경하 논설위원

    코로나19로 마스크를 쓴 얼굴이 기본이 되면서 종종 지인들을 못 알아볼 때가 있다. 알아보더라도 속으로 ‘저렇게 동안이었나’, ‘저렇게 잘생겼었나’ 싶어 가끔 놀란다. 눈만 보여서일까. 마스크로 가려지는 부분은 인상에 어떤 영향을 끼쳐서일까. 나이가 들면 생긴다는 심술보는 탄력을 잃은 볼살이 처지는, 의학적 용어로 심주볼이다. 코 옆 양쪽 볼에 생기는 팔자 주름은 나이가 들면 웃으면서 생기는 주름이다. 누군가를 ‘동안’이라고 할 때는 그 사람의 심술보나 팔자주름이 동년배들보다 적어서 듣는 말일 거다. 마스크를 써서 눈가 주름만 보이니 주변에 동안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난 셈이다. 눈만 보면 잘생긴 사람도 많다. 화장법이 바뀐 탓도 있을 것 같다. 마스크를 늘 써야 하니 마스크에 묻어나는 립스틱, 블러셔(볼터치) 대신 아이섀도, 마스카라 등 눈화장에만 신경을 쓴다. 화장하는 여성들은 현재의 화장법이 더 좋단다. 경기가 불황이면 저가 화장품인 립스틱 판매가 늘어난다는 ‘립스틱 효과’가 적용될 수 없는 상황이다.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날이 오면 예전의 화장으로 돌아가고, 잘생긴 사람들이 줄어들겠지. 그래도 마스크를 벗고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다. lark3@seoul.co.kr
  • [길섶에서] 단풍/손성진 논설고문

    열병을 삼킨 속앓이가 얼마나 컸기에 저리도 한꺼번에 붉은빛을 토해 내는 것일까. 펄펄 끓는 태양을 감당하기엔 살갗은 너무 보드라워서 애처롭게 지켜보았던 성하(盛夏)의 푸르름이었다. 일순간 찾아온 홍조는 새색시보다 부끄러우면서도 장미보다 강렬하다. 멀찌감치 서 있을 뿐인데도 어질어질 도취시키는 단풍의 매혹. 감히 손을 대다간 마음속까지 뜨거움에 델까봐 그저 바라만 본다. 이별의 시곗바늘은 째깍째깍 빨리도 돈다. 바람처럼 지나가는 그 짧은 시간을 야속해하며 하루를 한 시간에 살 듯 단풍은 몸을 활활 사르고 있다. 풀벌레며 이슬이며 늦가을 석양이며, 늘 만나던 것들을 뒤로하고 몸뚱어리를 메마른 대지에 바쳐야 할 운명. 그래도 낙하는 멋들어지게 아름답다. 이승의 마지막 발걸음도 무희처럼 사뿐사뿐 밟아야 단풍답다. 생명줄을 놓고 엎어지고 포개져서도 오래도록 변색하지 않으며 기품을 지켜 낸다. 단풍도 때가 되면 고귀한 몸을 아낌없이 스스로 부수고 썩어서 미래의 새싹을 위한 한 알의 밀알이 될 것이다. 누군가의 선택을 받아서 책갈피 속에 갇히어 원치 않는 영생(永生)의 길을 걷는 것보다는 그편이 낫다.
  • [길섶에서] 11월 영하의 날씨/문소영 논설실장

    한국 중부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 날씨가 작물생장을 받쳐 주지 않는다. 씨를 뿌려야 하는 4~5월에는 주로 봄가뭄이 기본이다. 이앙법이 18세기에야 널리 퍼진 것은 벼모종하는 시기에 비가 오지 않으면, 직파보다 못한 상황이 되는 탓이었다. 여름이 되면 또 어떤가. 하루 종일 비가 오는 장마, ‘우기’가 있는데, 올해처럼 비가 너무 자주 많이 와서 밭이 콘크리트처럼 단단해져 작물이 자랄 수 없는 땅이 되기도 한다. 봄여름을 무사히 넘겨 다 극복했다고 해도 안심할 수 없는 것이, 가을은 짧고 겨울은 빨리 온다는 것이다. 노지 재배하는 채소들은 서리가 내리면 비실비실하다가 영하로 떨어지면, 그냥 죽는데, 10월 말에서 11월 초에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일이 있다. 그러면 고추는 물론 토마토, 가지, 호박들은 이제 끝장이 난다. 배추는 영하 3도까지 견디지만, 김장용 무는 상한다. 날씨 예보를 보니 3일에 영하 2도이다. 11월 중순인 17일쯤에 오는 한파가 보름 가까이 빨리 온다는 것이다. 2018년에는 10월 말에 영하 0도였던 적이 있었으니 새삼스럽지 않은 일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영하 0도와 영하 2도는 파괴적인 수준이 다르다. 오늘까지 무를 거둬야 하는데, 걱정이 태산이다.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만성절 전야/박홍환 논설위원

    기념일과 축제를 즐기고 기억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기원과 유래를 따져 의미를 새기는 데 열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이 친 장단에 궁둥이춤 추듯 생각과 줏대 없이 세태를 따르는 부류까지 천차만별이다. 밸런타인데이 등 외국에서 유래한 축제와 기념일일수록 후자가 다수다. 몇 해 전 10월 마지막 날 밤, 한 단체의 초청으로 핼러윈 파티에 참석했다. 행사장 입구에서 주최 측이 참석자들에게 온갖 기괴한 가면과 귀신 복장을 나눠 줬다. 머리에 고무 도끼가 박힌 가면이 손에 쥐어졌다. 가면 상견례와 다채로운 공연, 식사를 마친 뒤 행사가 끝나갈 무렵 커다란 바구니 하나가 돌았다. 뚜껑에 ‘십시일반 이웃돕기’라고 써 있었다. 핼러윈은 기념일 없는 성인들을 기리는 만성절 전야라는 뜻이다. 중세에는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의 평온을 빌고,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며 하루를 뜻깊게 보냈다. 여기에 오락적 요소를 가미해 괴물이나 유령, 마녀 등의 복장과 가면을 한 채 동네를 돌아다니며 사탕과 과자를 나누는 풍습이 더해진 것이다. 만성절 전야인 내일 밤 엄청난 인파가 이태원, 강남 등에 몰릴 것이다. 이웃을 배려하는 원래의 핼러윈 의미를 생각한다면 올해는 ‘집콕’이 낫지 않을까. stinger@seoul.co.kr
  • [길섶에서] 줄임말 홍수/이종락 논설위원

    중국은 1956년부터 복잡한 한자의 획을 간단하게 줄인 간화한자(簡化汉字)를 사용했다. 중국에서 쓰는 약자를 흔히 간체자(簡体字)라고도 부른다. 간화한자를 만들면서 원래 한자가 가진 뜻이 글자에 나타나지 않는 문제점도 생겼다. 애(愛)는 간화자가 되면서 심(心)자가 사라져 애(爱)로 쓴다. 마음 없이 사랑하게 된 것이다. 친(親)도 견(見)을 빼고 친(亲)만 남았다. 만나지 않으면서도 친하게 된 것이다. 친한 사이라면 얼굴도 보고 만나야 하는데 만나지 않는데 과연 친해질 수 있을까. 우리말도 소셜미디어가 대중화되면서 줄임말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진다),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 존버(끝내 버티면 언젠가 이긴다) 등이다. 줄임말은 세대 간 소통을 막으면서 관계 단절을 일으킬 수 있다. 국민대통합위원회가 최근에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청소년의 은어가 세대와의 갈등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느냐는 질문에 ‘공감한다’는 의견이 82%로 나타났다. 줄이지 않아도 되는 말은 일부러 줄여 사용하지 말았으면 한다. 오늘 집에 가면 아내와 딸에게 줄임말 안 쓰기 운동을 제안하려 한다. 언어를 줄여 쓰는 재미에 빠져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질까 걱정돼서다. jrlee@seoul.co.kr
  • [길섶에서] 추억의 연날리기/오일만 논설위원

    장년층이면 어릴 적 연에 얽힌 추억들이 있을 법하다. 바람이 거세지는 늦가을 무렵부터 동네 꼬마들과 어울려 연 만들기에 돌입하는 것이 첫 순서다. 보통 대나무로 골격을 만들고 그 위에 창호지를 붙여 본체를 완성한다. 보통 망가진 비닐우산에서 대나무를 떼어 내지만 급할 때는 온전한 비닐우산을 생짜로 망가뜨렸다가 된통 혼난, 추억의 아픔도 있다. 둥그런 창호지에 태극 모양을 색칠해 상단에 붙이고 꼬리를 길게 붙이는 작업 끝에 방패연이나 가오리연을 만든 기억이 생생하다. 하얀 무명실에 정성 들여 풀을 먹여 연줄의 강도를 높이는 작업도 무척이나 중요하다. 무명실을 얼레에 감은 뒤 연에 묶으면 본격적인 연날리기가 시작된다. 어렵게 연을 만들어도 정작 바람이 있어야 출정이 가능하다. 오매불망 기다리는 마음은 삼국지 제갈량이 동남풍을 고대하는 심정이리라. 얼레를 들고 팽팽한 연줄을 휘감을 때의 손맛은 바다낚시에서 월척을 끌어올릴 때의 그 느낌이다. 꼬리를 흔들며 하늘 높이 비상하는 연의 모습에 덩달아 신났고 연싸움을 하다 티격태격 다퉜던 기억도 있다. 최근 서해에 갔다가 연날리기에 몰두하고 있는 가족을 봤다. 연줄 하나로 따뜻하게 연결된, 그 모습이 너무도 정겹다. oilman@seoul.co.kr
  • [길섶에서] 자존심/김상연 논설위원

    “무슨 자존심이 그렇게 강합니까. 그냥 내려놓으세요.” 몇 년 전 배가 아파 찾아간 병원에서 노년의 의사는 내 얼굴을 슬쩍 보고 청진기를 가슴에 대보더니 이렇게 철학적인 진단을 내렸다. 의학용어를 예상하고 있던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의사는 계속 뜬금없는 진단을 이어간다. “여기 병원 입구에 쓰레기통 있죠? 나는 출근할 때 거기에 자존심 같은 거 모두 버리고 들어옵니다. 그 많은 환자와 간호사를 상대하며 일하는데 일일이 자존심 따지면 내가 어떻게 살겠어요?” 그는 며칠치 약을 처방해 주면서도 약보다는 자신의 ‘말 처방’이 더 중요하다는 듯 무심한 표정이었다. 환자가 줄지어 선 병원을 나오면서 보니 입구에 정말 쓰레기통이 있었다. 그 후로도 내 성격은 잘 고쳐지지 않았다. 하지만 속이 아플 때는 ‘내가 또 자존심을 부리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됐고, 그러면 통증이 사라졌다. 얼마 전 모처럼 그 병원 근처를 지나가다 병원 건물이 없어진 것을 발견했다. 알아 보니 그 의사가 은퇴해서 병원이 폐업됐다고 한다. 그가 명의가 아니었다면 나는 또 아파서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었을 텐데…. 평생을 자존심과 싸워 온 그 의사의 노후가 이제 그만 편안하기를 평생을 자존심과 싸우고 있는 ‘전직 환자’가 기도한다. carlos@seoul.co.kr
  • [길섶에서] 어떤 만남/임병선 논설위원

    5년 정도 됐다. 웬만하면 낮 2시 방송과 다음날 새벽 3시 재방을 모두 들으려 한다. 그의 음악 소개는 핵심을 찌르고 군더더기가 없다.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작가가 작품에 소개하고 일본의 클래식 애호가가 “이런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다니” 경탄한 일도 널리 알려져 있다. 전곡(全曲) 방송이라 두 시간 동안 소개된 음악은 다섯 곡이 전부다. KBS 클래식FM의 ‘명연주 명음반’을 20년째 진행하는 정만섭(57)씨는 명함에 이름 석 자만 돋을새김하는, 그런 사람이다. 편성국 눈치 보지 않고 PD가 간여할 틈도 주어지지 않는다. 모든 것을 그저 자기 뜻대로, 원고도 없이 해낸다. 듣도 보도 못한 음원을 추천하고, 40년 전에 두 장을 사 뜯지 않은 LP를 처음 개봉해 애청자들을 감복시킨다. 애플리케이션에 미적 감각 뛰어난 앨범 사진들을 소개해 귀한 앨범 찾는 길라잡이로 쓰이게 한다. 이달 초 고깃집에서 소주 각 병을 비우며 얘기 나누고 밤늦게 그의 집에 쳐들어가 큰 볼륨으로 한 시간쯤 음악을 들었다. 인터뷰가 목적이었던지라 200자 원고로 18장쯤 쓰다가 작파했다. 인터뷰를 마다하는 그가 정녕 원할 때로 미루기로 했다. 이런 말 늘어놓을 자격 없지만, 음악에 대한 생각과 이 세상 사는 느낌이 닮은 걸 확인한 것만으로 충분했다. bsnim@seoul.co.kr
  • [길섶에서] 버스 하차벨/문소영 논설실장

    일산에서 출퇴근을 광화문으로 하는 자로서 ‘빨간 버스’, 즉 광역직행버스를 타고 다닌다. 이 광역버스의 버스요금이 꾸준히 올라 1회 이용에 2500원으로, 왕복으로는 5000원, 20일 기준으로 10만원이다. 만취한 날, 택시를 타면 2만 5000원의 비용이 나오는 탓에, 한 달간 버스 출퇴근 비용이 크게 비싸다고 하기도 어렵다. 또 ‘빨간 버스’에는 회사원들이 많기 때문에, 왠지 모를 동료애도 있다. 숙취와 피로에 찌들어 광화문에서 떼로 하차하는 샐러리맨의 비애라고나 할까, 뭐 그런 묘한 동류의식이 있다. 그런데 최근 이상현상이 나타났다. 버스 하차벨을 누르던 수많던 ‘우리의 동료’가 사라진 것이다. 동화면세점에서 하차해야 하는데 아무도 하차벨을 누르지 않아서 해당 정류장에 정차하지 않을 뻔한 일이 발생했다. 뒤늦게 구두로 “내려요”라고 승객이 이야기하자, 버스 운전기사가 화를 냈다. 우연인가 싶었는데, 며칠 전에는 연대 앞 정류장에서 하차하는 학생들 중 아무도 하차벨을 누르지 않아서 무정차로 가려고 하다가 난리가 났다. 밈이 작동하는 것 같았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하겠지 하는 세상은 없다. 내가 해야지 할 때야 누군가 대신해서 전체적으로는 업무를 나누는 효과가 있을 뿐이다. 내가 해야 한다.
  • [길섶에서] “성공은 하루 한 컵씩”/김균미 대기자

    얼마 전 읽은 신문에 난 서평의 한 구절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세계 최대 커피 체인점 스타벅스의 최고경영자 하워드 슐츠와 경제잡지 포브스 기자 출신인 조앤 고든이 함께 쓴 슐츠와 스타벅스에 대한 책 ‘그라운드 업’이다. 이 책은 슐츠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이를 통해 습득한 소속감과 사회성이 어떻게 슐츠가 스타벅스를 사회적 기여를 강조하는 기업으로 키워냈는지 담고 있다. 책의 내용 못지않게 눈길을 끌었던 것은 서평에 붙은 “성공은 하루 한 컵씩 이루는 것”이라는 제목이었다. 무슨 소리인가 싶어 서평을 읽어 내려가니 이런 대목이 나왔다. 회사의 간부와 직원들이 성공에 안주하는 모습을 보이자 슐츠가 “과거에 누렸던 성공은 권리가 아니다. 권리는 하루에 한 컵씩 매일 획득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고. 성공하려고 과욕을 부리지 말라는 소리인가 했는데, 그보다는 과거의 성공에 취해 있지 말고 계속 한 발 한 발 나아가라는 얘기였다. 권리이든, 성공이든 하루에 한 컵씩. 자만하지도 낙담하지도 말고 뚜벅뚜벅 하루에 한 걸음씩 떼다 보면 어느새 저만치 가 있지 않을까. 조용히 되뇌며 다짐해 본다. ‘○○은 하루 한 컵씩 이루는 것’이라고. 빈칸을 무엇으로 채울지는 각자의 몫이다. kmkim@seoul.co.kr
  • [길섶에서] 편의점/전경하 논설위원

    두 아들이 가끔 먹는 200㎖ 음료를 늘 10개들이로 산다. 그럼 음료 무게만 2ℓ이니 배달 주문이 필수다. 종종 할인 행사를 하는지라 한 박스에 4000원 이하일 때만 여러 박스 사서 쟁여 둔다. 우연히 주문 가격을 본 아들이 그 음료수가 편의점에서는 하나에 900원이라고 했다. ‘설마’ 하는 생각에 가끔 편의점에 가면 물건값을 확인해 본다. 편의점이 국내에 보편화된 것은 1980년대 후반 이후다. 편의점 초창기 대형마트나 시장이 문 닫은 시간 당장 필요한 것을 사려고 편의점을 마지못해 갔었다. ‘편의’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니 당연히 물건값은 비쌌다. 아들들은 편의점에 자주 간다. 먹고 싶거나 필요한 물건을 한두 개 바로 살 수 있는 것이 편해서다. 다양한 물건이 진열돼 있으니 쇼핑 재미도 있다.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집에 쟁여 둔 물건들이 때론 눈에 거슬린다. 1인 가구가 많아지면서 그때그때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는 편의점이 중요해졌다. 편의점에서만 파는 제품도 있고, 전국에 4만개가 넘는 편의점의 유혹을 피하기도 힘들다. 산재된 편의점과 본사의 구매력이 더해져 가격이 합리적일 수는 없을까. ‘1+1’이나 ‘2+1’이 아니어도 사고 싶은 값이었으면 좋겠다.
  • [길섶에서] 수종사의 아량/손성진 논설고문

    한국의 아름다운 경치에서 두물머리를 뺀다면 한강이 노(怒)할 수 있다. 동쪽 고원에서 따로따로 샘솟은 두 물줄기가 굽이굽이 천릿길을 달려 견우와 직녀처럼 만나 빚어내는 아련한 비경. 강과 맞닿은 경기 남양주시 운길산 중턱에 두물머리의 아름다운 형상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수종사라는 절이 있다. 1458년에 중창(重創)됐다고 하니 역사가 600년은 족히 넘을 이 절이 높은 곳에 자리한 큰 이유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전망 때문일 것이다. 멀리서 흐르는 강물은 서쪽으로 서쪽으로 무심히 흘러간다. 그 옛날 수종사 스님들도 저 풍경에 반해 힘든 참선을 이겨 냈던 건 아닐까. 놀랍게도 해발 410m에 있는 수종사까지 자동차로 올라갈 수 있다. 자연 훼손이라는 말이 떠오르기 전에 내방객들에게 가파른 산악도로를 개방한 것에서 수종사의 포용심이 느껴진다. 그 덕에 힘에 부쳐 도저히 산을 오를 수 없는 어르신들도 쉽게 수종사로 올라가 두물머리의 아름다움을 젊은이들과 함께 만끽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절문을 활짝 열어 놓은 수종사는 그래서 더 아름다웠다. 좋은 것을 독차지하지 않고 베푸는 아량. 수종사에서 얻은 작은 깨달음이다. sonsj@seoul.co.kr
  • [길섶에서] 코로나 레드/이종락 논설위원

    폴란드 영화감독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3연작 영화의 제목은 ‘세 가지 색: 블루’, ‘화이트’, ‘레드’다.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은 1994년에 만든 영화 ‘레드’를 통해 박애 정신을 강조했다. 박애의 사전적 의미는 인종, 종교, 습관, 국적 등을 초월한 인간애, 휴머니즘이다. 하지만 레드가 박애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2002년 월드컵에서 태극전사들과 ‘붉은악마’가 상징색을 빨간색으로 내세웠듯이 열정을 나타낸다. 또한 종종 공포, 분노를 가리키기도 한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사소한 일에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는 ‘코로나 레드’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가 올해 3·5·9월 3회에 걸쳐 코로나와 관련한 국민 정신건강 실태를 조사한 결과 ‘짜증과 화’ 지수가 9월 조사에서 증가했다. 감염병 발발 초기인 2~3월에는 불안이 주된 정서여서 ‘코로나 블루’가 팽배했다면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분노 감정’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내 주위를 둘러봐도 모르는 사람이 다투는 모습을 심심찮게 목격한다. 며칠 전에는 음식물을 가지고 탄 여성 승객과 버스기사가 욕설을 해 대며 싸워 승객들이 말렸다. 코로나 피로감이 쌓여 가는 요즘, 서로 자제하고 배려해야 할 때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 [길섶에서] 흑묘백묘/박홍환 논설위원

    생쥐들이 천장을 운동장 삼아 뜀박질하던 시절이 있었다. 한밤중 ‘우당탕탕’ 소리에 놀라 이불 속을 파고든 기억이 아련하다. 부엌 한쪽 시렁에 얹어둔 음식이 감쪽같이 사라지자 어머니는 “고양이 한 마리 들여야겠네”라고 결심한 듯 말하셨다. 책상 아래에 고양이 집을 들인 지 며칠도 안 돼 신기하게 ‘천장 운동회’가 멈췄고, 부엌의 음식물들도 온전하게 자리를 지켰다. 1970년대 말 개혁개방을 추진한 중국의 ‘작은 거인’ 덩샤오핑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다.’ 이른바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이다. 경제 부흥에 이념은 중요치 않다는 것으로 중국식 실용주의의 대명사가 됐다. 그 시절 고양이의 용도는 쥐 잡는 데 그쳤다. 친한 후배 한 명이 페이스북에 종종 흑묘백묘와의 동거 행각 흔적을 남기고 있다. 사진 속 그는 남부럽지 않은 부자의 얼굴이다. 웃을 일 별로 없는 그를 요즘 웃게 만드는 유일한 존재가 흑묘백묘라고 한다. 어제부터 실시하는 2020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처음으로 ‘반려동물을 키우냐’는 문항이 포함됐다. 반려동물 사육인구가 1500만명에 이르는 사회변화상을 반영한 것이다. 이제 고양이가 쥐를 잡고 개가 집을 지키는 시대가 아니다. stinger@seoul.co.kr
  • [길섶에서] 깔끔한 사과/문소영 논설실장

    ‘세무공무원 아니냐’고 물어보게 하는 얼굴과 달리 욱하고 타오르는 가파른 성격이 숨어 있다. 불같이 화를 내지만 뒤끝은 없지 않으냐며 자위했는데, 어느 날 한 후배가 “그렇게까지 화를 내고 뒤끝까지 있으면 어떡하느냐”고 반박하는 바람에 할 말을 잃었다. 뒤끝이 없음을 장점이라고 일단 손꼽고, 나에게는 또 다른 장점이 있다. 상황이 일단락되면 복기해 본 뒤 화를 낸 정도가 과도했거나, 상대에게 부당한 대우를 했다고 판단되면 망설이지 않고 사과한다는 사실이다. 선후배나 부모 자식, 연인 관계에서 성질을 부린 뒤 사과하기는 그 사유와 상관없이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하지만 인과를 더 따지는 성격 때문인지 사과해야 한다고 판단될 때는 깔끔히 사과한다. 언제부턴가는 사과를 자주하게 되니까 욱하는 성격을 다스리려고 노력해서 최근 쫌 나아지기도 했다. 사과의 빌미를 만들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다. 잘못했으면 “사과하라”, 이건 어떤 주문과도 같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50%를 넘은 채로 몇 주간 이어지고 있다. 사과하면 끝날 일을 가지고 계속 거짓말로 돌려막는 장관들이 있다. 그 장관들이 현 정부의 지지율을 갉아먹는 것이다. 깔끔히 사과해야 한다. symun@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