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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2026-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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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방화벽/황성기 논설위원

    [길섶에서] 방화벽/황성기 논설위원

    세밑 참변을 부른 서울 아파트의 화재 사고 직후 내가 사는 아파트가 달라졌다. 저층에 사는 터라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을 통해 1층에 내려가는 일이 많은데 층마다 방화 철문이 굳게 잘 닫혀 있는 모습이 신기하다. 관리사무소는 방화 철문을 잘 닫도록 안내 방송을 하곤 했다. 하지만 닥치지 않으면 쉽게 잊는 것일까. 직원들이 철문을 닫아도 주민들이 볕이 안 들어오고 불편해서 그런지 이내 열려 있기 십상이었다. 습관이나 기억의 유효기간은 얼마일까. 기억이나 문화가 하나의 현상으로 지속적으로 만들어지려면 끊임없이 망각이 작동해야 한다는 프리히드리 니체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기억의 동물이자 망각의 동물이다. 방화 철문은 언제까지 잘 닫혀 있을까. 한 달? 반 년? 아파트도 진화 중이다. 방화 철문을 무심코 열어 두지 않도록 자동으로 만들거나 열려 있으면 경계등이 들어오는 장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생각을 부른다.
  • [길섶에서] 작심(作心)/서동철 논설위원

    [길섶에서] 작심(作心)/서동철 논설위원

    요즘엔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을 듣기가 어려워진 것 같다. 주변에 담배 피우는 사람이 줄어드는 추세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다. 어찌 보면 작심삼일이란 사흘을 끊기가 어려운 담배에 특화된 사자성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이 들어 가면서 뭔가 해보겠다는 다짐을 해본 기억 자체가 거의 없는 듯하다. 고작 사흘밖에 실천을 못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사흘이라도 실천할 마음조차 먹지 않은 것이 문제라는 뜻이다. 새해 첫날도 그랬다. ‘쉬는 날에는 아침에 5000보, 저녁에 5000보를 걸어 하루 1만보를 채워 볼까’ 하고 ‘공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오전에 걷고 나니 저녁에는 그냥 쉬고 싶었다. 마음속으로 ‘녹았던 길이 다시 얼었을 테니 괜히 미끄러져 넘어지는 것보다는 낫지’ 하고 합리화하면서…. 그러니 한심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싸다. 이제 뭔가를 새로 시작한다는 친구를 만나면 존경스럽다. 한 가지라도 작심(作心)하는 게 새해 목표라면 좀 딱한가.
  • [길섶에서] 싱글남의 소원/황비웅 논설위원

    [길섶에서] 싱글남의 소원/황비웅 논설위원

    최근에 갔던 어느 모임에서 MZ세대 남성들과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이들의 나이는 91년생, 92년생으로 예전 같으면 딱 결혼 적령기의 남자 나이다. 미혼과 기혼이 뒤섞여 있는 가운데 이들은 특히 기혼자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결혼을 하면 어떤 점이 좋으냐, 안 좋은 점은 뭐냐면서 꼬치꼬치 캐물었다. 요지는 결혼을 한 것 자체가 부럽다는 거였다. 자신은 결혼을 하면 모든 것을 희생할 준비가 돼 있는데, 여자들은 결혼을 원하는 사람들도 별로 없다는 푸념이 가득했다. 아이를 낳기는커녕 결혼 자체가 너무나도 어려워진 시대다. 최근 보도를 보니 1988년에 태어난 남성 10명 중 6명이 지난해(당시 34세)까지 결혼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3~4년 정도 어린 남자들은 이들보다 더 심각할 것이다. 결혼을 하지 않은 것보다는 하지 못한 남자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청룡의 기운을 받아 새해에는 젊은 선남선녀들이 조금은 기를 펴고 살 수 있는 나라가 됐으면 한다.
  • [길섶에서] 나쁜 습관 고치기/임창용 논설위원

    [길섶에서] 나쁜 습관 고치기/임창용 논설위원

    잠들기 전 누운 채 스마트폰을 보다가 가끔 폰을 떨어뜨린다. 깜빡 잠이 들려는 찰나 놓치는 경우다. 폰이 바닥에라도 떨어지면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깜짝 놀라 잠이 확 달아난다. 아랫집 이웃이 항의라도 할까 봐 조마조마할 정도다. 간혹 폰이 코에 떨어져 코뼈가 몹시 아플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책망하지만 얼마 안 가 같은 풍경이 되풀이된다. 이미 고치기 쉽지 않은 습관으로 굳어진 것이다. 습관은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한다. 사실 개인의 일상은 상당 부분 습관으로 채워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면 습관, 식습관, 말하는 습관, 소비 습관 등등. 그래선지 인터넷이나 책에는 습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가르침이 가득하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건강을 위한 10가지 습관’ 등등. 아픈 코를 만지면서도 다시 누워 스마트폰을 드는 내게 이런 거창한 습관 만들기는 언감생심일 터. 새해엔 스마트폰을 들고 침대에 눕는 습관부터 고쳐야겠다.
  • [길섶에서] 겨울의 안부/황수정 수석논설위원

    [길섶에서] 겨울의 안부/황수정 수석논설위원

    지난날의 겨울 빨래들은 불가사의다. 고드름 주렁주렁 매달린 마당의 빨래들은 쥐꼬리만 한 겨울볕에 어떻게 다 말랐을까. 빨랫줄의 빨래들은 그대로 식구들 안부였다. 솔기마다 깃든 삶 안쪽의 무늬들. 축 처진 어깨는 토닥여서 빨래집게로 세워 주고, 지친 소매는 짱짱하게 펴서 빨랫줄 가운뎃자리에, 목이 늘어난 양말짝은 가만히 어루만져서 가장자리에. 살얼음 낀 빨래들은 해가 지면 집안으로 들어왔다. 밥을 잦히는 솥냄비 위로, 아랫목으로. 더 다급한 것들은 속성 비법으로 말랐다. 애벌 다림질로 습기를 걷어내서는 엄마의 요이불 밑으로. 엄마 뒷등에 밤새 업혀서 마른 교복셔츠를 이맘때면 자주 입었다. 마르지 않고는 못 배긴 겨울옷의 비누냄새, 뒷등의 온기.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던 온도. 그 겨울볕을 천천히 펼쳐 놓고서 나는 빨래를 오래 널고 있다. 봄날의 원추리처럼 지친 다리를 활짝 한번 뻗어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그 힘으로 또박또박 다시 잘 걸을 수 있을 것 같아서.
  • [길섶에서] 고향기부 참여기②/이순녀 논설위원

    [길섶에서] 고향기부 참여기②/이순녀 논설위원

    반가운 택배가 왔다. 얼마 전 이 코너에 소개한 고향사랑기부제 참여 답례품이다. 올해 여행 갔던 지역 중에서 한 곳을 엄선해 기부하고, 그 지역에서 준비한 답례품에서 한 가지를 골라 배송을 신청했다. 답례품 항목은 지역 특산물과 가공식품, 지역상품권, 관광·숙박 상품까지 다양하다. 특색 있는 지방자치단체 답례품들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벌초 대행 서비스, 캠핑장 이용권, 주택화재 안전 꾸러미 설치 서비스 같은 아이디어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기부금의 30%에 해당하는 포인트에 맞춰 내가 고른 답례품은 농축산물 꾸러미였다. 상자 안에는 삼겹살, 쌈채소, 버섯, 고추 등이 알차게 들어 있었다. 포장도 꼼꼼하고 내용물도 충실해서 만족스러웠다. 어느 지자체에서 답례품으로 보낸 삼겹살이 비계 덩어리여서 기부자가 실망했다는 기사를 봤다. 나라도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선의를 속임수로 돌려받는다면 누가 기꺼이 동참할까. 참 안타깝다.
  • [길섶에서] 결자해지/황성기 논설위원

    [길섶에서] 결자해지/황성기 논설위원

    올 연말의 여러 모임을 되돌아본다. 즐거웠던 기억이 몇 떠오른다. 압권은 사자성어였다. 어떤 일을 잘못 발설해 참석자 중 일부에게 소소한 민폐를 끼친 에피소드가 발단이었다. 얘기를 하다 보니 관련자가 3명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주범’ 색출에 들어갔다. 최초 발설자의 과실이 20%, 그것을 전한 사람은 30%, 그 얘기를 듣고 결정적인 민폐를 발생시킨 자에게 50%의 과실이 있다는 암묵적 결론에 도달했다. 좌중의 눈은 과실이 가장 많은 사람에게 쏠렸다. 두 번째 발설자가 세 번째 발설자에게 결자해지(結者解之)하라고 주문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피해와 관계없는 좌장이 느닷없는 질문을 던진다. 결자해지의 ‘지’ 자 한자를 어떻게 쓰냐고 물은 것이다. 그랬더니 두 번째 발설자가 그칠 지(止)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두 번째 발설자는 한자를 모르는 세대가 아니었다. 아마도 송년 모임을 즐겁게 하려고 엉뚱한 답변을 한 것이라고 다들 생각하기로 했다.
  • [길섶에서] 열일하는 시루/안미현 수석논설위원

    [길섶에서] 열일하는 시루/안미현 수석논설위원

    그 집 앞을 지나는 길은 적잖이 곤욕스럽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 코끝을 휘감고 도는 쌀 내음. ‘365일 다이어터’의 한 사람으로서 저것은 달콤한 쌀 냄새가 아니라 사악한 탄수화물 유혹이라고 저항해 보지만 거개는 맥없는 투항으로 끝난다. 떡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도 그렇다. 갓 지은 떡을 평상 위에 널어놓는 떡집은 언뜻 봐서는 무척 허름하다. 그럼에도 따끈따끈한 떡이 검정 ‘봉다리’에 쉼없이 담겨 나간다. 요즘 같은 세밑에는 평상을 파고드는 코가 더더욱 많다. 근처에 비교도 안 되게 세련된 빵집과 이름값 하는 대형마트가 포진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을 없애네 마네, 새벽 배송을 허용하네 마네, 다시 시끄러워진 탓인지 동네 맛집의 존재가 새삼 반갑고 고맙다. 각자의 경쟁력으로 오래오래 상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실력(맛)과 부지런함(출근시간쯤이면 그 집 시루는 이미 열일하고 있다)에 견줘 볼 때 세상 쓸데없는 걱정 같긴 하지만….
  • [길섶에서] 무인 가게/박현갑 논설위원

    [길섶에서] 무인 가게/박현갑 논설위원

    동네에 무인 가게가 늘고 있다. 거실에서 내려다보이는 도로 건너편의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에 이어 출퇴근길 옆 상가 건물 1층에 무인 가게가 들어섰다. 각종 문구류에 반려동물 간식도 판다고 안내한다. 작은 카페가 있던 자리다. 책을 읽으며 손님을 기다리던 젊은 직원은 어디로 갔을까 궁금해진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로봇이 타 준 커피를 마신 적이 있다. 카페 라테 한 잔을 주문하자 로봇이 인간 바리스타처럼 움직인다. 기계팔을 뻗어 종이컵을 꺼낸 뒤 에스프레소 샷을 추출하고 우유를 섞는 행동이 부자연스럽게 보이지 않았다. 음료를 받기까지 1분여 정도 걸렸다. 시골에도 무인 가게가 늘고 있다. 고추, 달걀 등 농작물을 판매한다. 현금 거래가 기본이나 계좌이체가 가능한 곳도 있다. 기술 발달이 가져온 현상이다. 그러고 보니 무인 PC방, 무인텔, 무인 주차장 등 가히 무인 경제시대다. 효율성은 있는지 모르나 만남을 통한 인간미는 사라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
  • [길섶에서] 어떤 송년 모임/서동철 논설위원

    [길섶에서] 어떤 송년 모임/서동철 논설위원

    처음엔 머리에서 떨어지지 않게 고정시켜 놓은 줄 알았다. 쪽진 머리 위에 접시가 놓였고 포도주색 액체가 찰랑거리는 술잔이 더해졌다. 춤꾼은 사뿐사뿐 무대로 걸어나와 섬세한 발디딤으로 아기자기한 춤사위를 이어 간다. 조심스럽기만 했던 몸짓은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과감해지고 빙상의 여왕 김연아를 방불케 하는 회전으로 치닫는다. 접시와 술잔이 그저 머리 위에 올려놓은 것이었다는 사실은 춤꾼이 객석으로 걸어내려와 앞자리의 어르신 관람객에게 공손히 잔을 건네는 순간에야 알았다. 다시 무대에 오른 춤꾼은 비녀를 북채 삼고 접시를 소고 삼아 한바탕 휘젓는다. 교방소반놀음춤이라고 했다. 춤꾼은 이 춤을 창원의 예기(藝妓)에게 직접 배워 무대화시켰다고 한다. 은밀한 공간의 놀이춤을 예술성 높은 무대예술로 발전시킨 춤꾼의 감각이 놀랍다. 팬이 많은 춤꾼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이런 송년 모임은 많을수록 좋다. 뒤풀이 한잔 술은 빠지지 않았지만….
  • [길섶에서] 초등생 놀이터/황비웅 논설위원

    [길섶에서] 초등생 놀이터/황비웅 논설위원

    “와~ 다이소 진짜 크다.” 초등학교 5학년인 첫째는 어딜 가든 다이소를 먼저 찾는다. 동네마다 입점해 있지만 다이소의 규모부터 살핀다. 대형 매장이라야 동네 자그마한 다이소에 없는 득템이 가능하다나. 어쩌다가 2층짜리 또는 건물 전체가 다이소 매장인 경우에는 소리를 지르며 흥분한다. 그런 매장에 들르면 ‘없는 게 없다’는 다이소에서 마음에 드는 저렴한 아이템을 싹쓸이하느라 싱글벙글이다. 반 친구들도 똑같단다. 다이소가 그야말로 ‘초등생의 놀이터’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대체 다이소의 비결이 뭘까. 그저 가격이 저렴한 다양한 상품들만으로는 설명이 안 될 것 같다. 알고 보니 다이소에선 매월 신상품이 600개 이상 출시된다고 한다. 구매 리뷰로 인증된 다양한 순위도 확인할 수 있게 돼 있다. 최근에는 온라인몰인 ‘다이소몰’을 개편하면서 익일 택배 배송 서비스까지 도입했다. 일본 기업 지분을 매각해 ‘일본 꼬리표’를 뗀 토종 국민가게 다이소의 비상이 어디까지 갈지 내심 궁금해진다.
  • [길섶에서] 송년회 선거운동 유감/임창용 논설위원

    [길섶에서] 송년회 선거운동 유감/임창용 논설위원

    동창 송년 모임에서 간혹 정치인이나 정치 지망생을 마주할 때가 있다. 대부분 학교 동기나 선후배이니 참석하는 게 딱히 이상할 건 없다. 하지만 분위기가 영 편치 않다. 평소 교류하거나 모임에 나오는 일이 거의 없다가 자신이 필요할 때만 얼굴을 비치기 때문이다. 그래도 모임 주선자는 예우 차원에서 인사말을 할 기회를 준다. 하지만 뻔한 자기 자랑과 인사치레를 듣는 참석자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다. 총선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올해 송년 모임은 가는 데마다 출마 희망 인사들이 얼굴을 내민다. 평소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동문이라며 명함을 내밀고 악수를 청한다. “열심히 해 보라”고 덕담을 건네긴 하지만 진정성이 있을 리 없다. 한 송년 모임에선 이웃 학교 출신의 출마 희망자까지 와 테이블 이곳저곳을 휘젓고 다니며 인사를 한다. 사실상 선거운동이다. 모처럼 가까운 친구나 선후배가 모여 한 해를 정리하며 소회를 나누는 자리가 침범당하는 듯해 슬며시 화가 난다.
  • [길섶에서] 겨울의 맛/황수정 수석논설위원

    [길섶에서] 겨울의 맛/황수정 수석논설위원

    묵은 김치에 군물이 돈다 싶을 때. 어김없이 시골집 김장김치가 왔다. 계피향 설핏한 우리 집 양념맛을 나도 낼 줄 알아야지. 해마다 다짐하고서 올해도 그냥 지나 버렸다. 택배상자는 텃밭 직송 종합선물세트. 신문지에 돌돌 말린 것들이 김장 봉지 옆구리에 구석구석 들어찼다. 못생겼어도 단물 든 무, 노란 속배추, 올겨울 처음 솎았을 시금치, 가을 내내 마당가를 두드린 알대추. “사 먹고 말지, 구접스럽게” 퉁박을 주면서도 상자를 꼭꼭 여몄을 아버지, 그저 웃었을 어머니. 청매실 그려진 종이상자, 풋것들 감싼 팔월의 신문지. 매실청 담근 오월에 상자를 곱게 접어 두셨겠지, 배추씨 뿌린 여름날부터 구메구메 싸 보낼 신문지도 모으셨고. 김장을 보내려고 한 해를 사셨구나. 오월도 따라오고 팔월도 따라온 김장 한 포기가 올라간 밥상. 숨이 덜 죽은 배춧잎 풋내에 가만히 숨죽이는 저녁. 먼 훗날 그리움까지 미리 달려와서, 겨울마다 더 아득해지는 겨울의 맛 그리운 맛.
  • [길섶에서] 고향기부제 참여기/이순녀 논설위원

    [길섶에서] 고향기부제 참여기/이순녀 논설위원

    고향사랑기부제에 참여했다. 지방재정 확충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동참한다는 명분에 더해 연말정산 세액공제와 답례품 혜택까지 챙길 수 있으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연초부터 기부를 마음먹었지만 게으름 탓에 미뤄 오다 세밑이 코앞에 다가와서야 실행에 옮겼다. 거주지 빼고 전국 어디든 기부할 수 있는데 나는 올해 여행 갔던 강원, 충청, 전라도 지자체 3곳을 후보에 올렸다. 잘 아는 연고지에 기부하는 것도 좋지만 이왕이면 여행을 매개로 새롭게 알게 된 지역과 인연을 맺는 게 더 의미 있겠다 싶었다. ‘고향사랑e음’ 홈페이지에 접속해 후보지의 기금사업 계획과 답례품을 비교했다. 답례품은 모두 정성을 쏟은 흔적이 역력했다. 그런데 기금을 어디에 어떻게 쓰겠다는 계획에선 차이가 컸다. 상세하게 작성한 곳이 있는가 하면 형식적으로 적은 곳도 있어 아쉬웠다. 얼마나 모으느냐 못지않게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 지자체들이 내년엔 좀더 분발하면 좋겠다.
  • [길섶에서] 독립/황성기 논설위원

    [길섶에서] 독립/황성기 논설위원

    나이 60을 넘긴 은퇴자 중에 인생 2막의 승부를 블로그나 유튜브에 거는 이들을 종종 만난다. 퇴직 전 학원에 다니며 블로그를 배우고 그럴듯한 간판까지 만들어 시작했다고 한다. 휴대폰으로 자신의 블로그를 보여 주는 얼굴이 약간 겸연쩍어 보인다. 한편으론 꽤나 스스로가 대견하다는 표정도 띤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블로그이지만 다녀간 사람들도 적지 않은 데 놀랐다. 어떤 이는 유튜브에 2년쯤 공을 들이더니 프로 뺨치는 영상을 제작한다. 포부도 거창하다. 지금은 7000명 가까운 구독자를 내년엔 10만 팔로로 늘리겠다고 한다. 그러면 퇴직 전 이상의 수입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 장담도 한다. 유튜브에서 발신하는 콘텐츠가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살짝 일탈해 있지만 어느덧 전문가의 영역에 오른 듯한 말투다. 자막을 넣고 편집을 하는 일 모두 스스로 한다고 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이젠 누구 아래서 일하고 싶지 않다”이다. 진정한 독립이 필요하단 뜻으로 들린다.
  • [길섶에서] 빅브러더 엘리베이터/박현갑 논설위원

    [길섶에서] 빅브러더 엘리베이터/박현갑 논설위원

    출근길 엘리베이터에서 재채기했다. 사이렌이 울리며 기다려 달라는 남자의 목소리가 스피커로 나왔다. 혼자 탔기에 망정이지 이웃 주민이라도 있었으면 무척 무안했을 일이다. 승강기 내 비명 감지 시스템이 오작동한 것이다. ‘24시간 비명 감시 중. 비명을 지르면 즉시 경비가 출동합니다’라는 안내 글이 보인다. 아이 울음소리와 큰 소음에 작동할 수 있다는 주의 사항도 있다. 생활 편의를 위한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이 놀랍다. 사람도, 차량도 무인 시스템으로 통제한다. 폐쇄회로TV는 아파트 단지와 주차장에서 24시간 움직임을 지켜본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가 생각난다. 사람을 감시하는 빅브러더를 의심하던 주인공은 금지된 일기 쓰기 등 생각하는 행동으로 경찰에 체포되고 세뇌당한다. 그리고 권력자의 뜻대로 2+2=5이며 그를 사랑했다고 외친다. 비명 감지 시스템이 분명 나와 이웃의 안전을 위한 이기(利器)임을 모르지 않는데, 빅브러더를 떠올리는 건 무슨 이유 때문일까.
  • [길섶에서] 빠져 버린 우산/안미현 수석논설위원

    [길섶에서] 빠져 버린 우산/안미현 수석논설위원

    전철이 혼잡했다. 내려야 할 역에서 서둘러 빠져나오는데 가방끈에 누군가의 접이우산이 딸려 나왔나 보다. 문 앞에서 툭 떨어지더니 통통 두 번 튀고는 승강장 사이의 틈으로 쑥 빠져 버렸다. 잡을 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사람이 많아 누구 우산인지도 확실치 않았다. 다급하게 물었다. 어느 분 거냐고. 뜻밖에도 문 바로 앞쪽이 아닌 두세 줄 뒤쪽에서 20대쯤 돼 보이는 여성이 말없이 손을 들었다. 스크린도어가 곧 닫힐 것 같았다. 급한 대로 가방 속의 우산을 얼른 꺼내 건넸다. 여성은 잠시 멈칫하더니 손을 저었다. 재차 건넸으나 다시 돌아온 거부의 몸짓. 항의의 말은 단 한마디도 없었다. 분노나 짜증의 의성어조차도. 자칫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일 것 같다는 생각, 저녁 약속에 늦었다는 생각 등이 엉키며 뒤로 물러났다. 이내 닫힌 스크린도어. 떠나는 전철 유리창 너머의 여성 표정이 못내 잊히지 않는다. 뭐라 표현하기 힘든 야속함이 가득한…. 때론 무언(無言)이 더 무섭다.
  • [길섶에서] 속초 문화/서동철 논설위원

    [길섶에서] 속초 문화/서동철 논설위원

    사회생활 선배가 속초에 이른바 생활형 숙박시설을 장만해 종종 함께 찾는다. 1박 2일이라면 가까운 포구를 찾아 회 한 접시에 소주 한잔을 나누면 될 일이다. 그런데 이틀이나 사흘 저녁을 묵으면 회 말고도 먹고 싶어지는 것이 많아진다. 지난 주말에도 그랬다. 밤이 깊어 치맥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어디를 가나 그렇게 많은 치킨집이 속초에선 찾기 어려웠다. 닭강정이 유명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추측할 뿐이었다. 속초에서 며칠을 보내다 보면 아쉬운 것은 하나 더 있다. 먹는 문화 말고는 이렇다 할 문화가 없다는 것이다. 속초문화예술회관이 있다지만 대공연장이 채 600석에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청초호 빨간 다리 옆 초대형 회센터 자리로 자꾸 눈길이 간다. 이곳에 대형 공연장이 들어선다면 속초의 세계적인 자랑거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속초 관광의 수준도 높아질 것이다. 당연히 회센터엔 손님들이 더 쉽게 찾을 수 있는 명당을 찾아 주고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 [길섶에서] 사교육 단상/황비웅 논설위원

    [길섶에서] 사교육 단상/황비웅 논설위원

    초등학교 5학년 첫째 아이의 학원을 옮겼다. 학원들도 수준과 방식이 천차만별이라 아이의 수준과 적성에 맞는 학원 고르기도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영어와 수학 두 과목인데도 절차가 무척 복잡하다. 실력에 맞는 반 배치를 위한 레벨 테스트도 봐야 하고, 결과에 따라 학부모가 선생님과 상담도 해야 한다. 레벨 테스트 결과에 따라 학원에서 상담을 하는데 정말 깜짝 놀랐다. 요즘에는 중학교에 들어가면 내신을 신경써야 하기 때문에 영어뿐 아니라 수학도 초등학교 때 고교 과정까지 미리 끝내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집에 돌아와 아이와 얘기를 해 보니 반 친구 중에 고교 수학 문제를 푸는 아이가 있다고 했다. 문제를 읽기도 어렵다며 혀를 내두른다. 킬러문항을 없앴다는 이번 수능이 ‘역대급 불수능’이라서 만점자가 단 1명이라고 한다. 킬러문항을 없앤다고 경쟁이 완화되고 사교육이 경감될까.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 배불리기 위한 선행학습에 목을 매고 있는데.
  • [길섶에서] 표어 ‘우리 인사해요’/임창용 논설위원

    [길섶에서] 표어 ‘우리 인사해요’/임창용 논설위원

    “안녕하세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탔는데 형제인 듯한 두 아이가 꾸벅 인사를 한다. 둘 다 태권도복을 입고 있는 걸 보니 집 앞 체육관에 가는 모양. 한 아이는 붉은띠, 다른 아이는 검은띠를 두르고 있다. 형인 듯한 ‘검은띠’ 아이에게 “벌써 유단자네. 기특하다”고 칭찬을 하니 “감사합니다” 하고 사례까지 한다. 옆에 있던 ‘붉은띠’ 아이가 샘이 났던지 “저도 내년에 검은띠 딸 거예요”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언젠가부터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많아졌다. 아마 엘리베이터 게시판에 ‘이웃끼리 인사하고 지내요’란 표어가 붙은 뒤부터인 듯싶다. 인사를 하면 서로 눈을 마주치게 되고, 눈을 마주치다 보니 사람들의 표정도 밝아진 듯하다. 엄마, 아빠가 인사를 하니 함께 있는 아이들까지 덩달아 인사를 한다. ‘혹여 눈을 마주치면 어쩌나’ 하고 내릴 때까지 바닥이나 스마트폰만 쳐다보던 풍경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누가 제안해 표어를 붙였는지 모르겠지만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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